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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비만개의 ‘다이어트 성공기’ 화제

    ”다이어트 성공했어요!” 최근 영국에서 혹독한 운동으로 몸무게를 줄인 한 비만 애완견의 다이어트 성공기가 화제를 모으고있다. 무려 20kg 이상의 몸무게를 빼 화제가 된 주인공은 6살된 래브라도르(labrador) 종의 개 미니(Minni). 6개월전 57kg이었던 미니의 몸무게가 30kg 수준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눈물겨운 다이어트가 있었기 때문. 전 주인의 무신경함 때문에 몸무게가 불어난 미니는 지난해 9월까지 긴급구조센터에서 지내다 지금의 주인 브리스토우(Gary Bristow·43)를 만나게 되었다. 비만이라는 이유로 미니를 입양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선뜻 비만견을 받아들인 브리스토우는 다이어트를 시키며 건강에 무리를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시도했다. 5개월간 다른 강아지들과 함께 매일 산책을 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운동을 한 끝에 미니는 그 나이 또래의 정상적인 몸무게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브리스토우는 “미니의 다이어트는 일종의 도전이었다.”며 “처음에는 미니가 운동을 마치고 나면 맥없이 자빠지거나 얼마 걸어다니지도 않고 힘겨워했다.”고 밝혔다. 또 “꽤 힘들었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예전보다 건강해진 미니가 행복해 보여서 기쁘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1) 산청 성심원 유의배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1) 산청 성심원 유의배 신부

    경남 산청의 나환자 마을 성심원(산청군 산청읍 내리 100). 한센병을 앓는 170여명이 함께 살며 요양도 하고 치료도 받는 환우촌이다. 프란치스꼬 수도회에 소속된 3명의 신부와 7명의 수사(修士)를 중심으로 직원 60여명이 환우들을 돌보는 이곳엔 ‘환자’가 없다.‘가족’이 있을 뿐이다. 비록 병증이 심해 마비된 손발이 뒤틀리고 앞을 볼 수 없어도 모두가 한 식구들. 이 성심원의 중심에, 밤낮 없이 아픈 이들의 곁을 지키며 마음과 몸을 챙겨 주는 푸른 눈의 외국인이 있다. 한국서 32년째 살며 병자성사에 몸바쳐 온 스페인 바스크 지방 게르니카 출신의 유의배(62·본명 루이스 마리아 우리베·수도명 알로이시) 신부이다. 지난 정월 대보름날 저녁. 환자 곁을 지키다 수도복 차림으로 기자 앞에 불쑥 나타난 푸른 눈의 신부는 첫 대면임에도 보름달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짧은 흰 머리와 길게 자란 하얀 턱수염, 그리고 검은색 수도복에 하얗게 번지는 웃음. 그 누구라도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편한 웃음이었다. 병자, 그것도 가장 대하기 힘들다는 한센병 환자들을 한결같이 내몸같이 살피는 유의배 신부는 일찍부터 병자성사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신학대 재학시절 간호사로 일할 만큼, 그의 길은 아픈 이들을 향해 정해졌던 것 같다. 사제서품을 받고 스페인 나환자병원서 처음 피정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평생을 나환자들과 살고 있는 유의배 신부. 그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 신학대 재학시절 간호사 경험 ‘큰 도움´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1937년 스페인 내란 중 파시스트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과 학살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담은 피카소의 그림으로 잘 알려진 비극의 땅, 게르니카에서 유 신부는 태어나 자랐다. “게르니카 폭격현장에 있었던 어머니로부터 전쟁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5∼6살 무렵이었지요.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한국전쟁이 신기할밖에요. 전쟁이란 어머니를 통해 듣는 과거사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집안에 프란치스꼬 수도회 소속 수사들이 많아 어릴적부터 수사가 될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졌던 그는 16살 때 프란치스꼬 수도회에 입회, 종신서원을 했고 바스크 지방 아란사수 신학대학을 졸업하면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어릴 적 관심 많았던 한국은 변함없이 가고 싶은 나라. 신학대학 시절에도 한국에 파견된 선배 사제들의 편지와 소식이 실린 잡지들을 꼬박꼬박 구해 보았다고 한다. “신학대 재학시절 간호사 경험을 살려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아픈 이들과 살아갈 요량으로 한국을 지원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한국의 군사독재 체제가 경험 없는 초년 사제에겐 위험하다는 이유였지요.” 첫 발령은 파라과이 가와수로 났지만 발령 대기 중 볼리비아 코파카바나 수도원 본당 사역이 더 급하다는 관구의 뜻을 따라 볼리비아에서 2년간을 사역해야 했다. “볼리비아로 떠나기 전 마드리드 북쪽의 트릴료병원서 나환자들과 보름간 피정을 함께했는데 그때 만난 나환자들에게서 평생 가야 할 신앙의 길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볼리비아 사역을 마친 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전 단계로 아일랜드와 런던에서 1년여 동안 영어공부를 했다고 하니 한국을 향한 집념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그런데 성심원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산 것은 한국에 와서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한국에 입국해 정동 프란치스꼬 수도원서 한국어를 배우던 무렵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성심원 이야기를 처음 듣고는 ‘바로 이곳이다.’라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 10여년 전부터 임종환자의 염도 직접 도맡아 정동 수도원에서 시작해 진주 칠암동 양로원 사역, 주문진 본당 보좌, 제주 공동체에서의 기도생활 등 5년여를 보낸 끝에 성심원에 온 것이 1980년 5월. 지금은 번듯한 요양원이며 수용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당시 처음 맞닥뜨린 나환자촌은 세상의 박대와 눈초리를 피해 숨어든 환자들이 허름한 집에서 가정을 이루거나 외롭게 살아가는 ‘버려진 땅’에 다름 아니었다. “막상 환자들과 생활하려니 그들을 도울 일이 변변치 않았어요. 세상에서 버림받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일이란 그저 ‘더 이상 버림받지 않는다.’는 위안을 주는 정도였지요.” 처음엔 그냥 이유 없이 피하려고만 들던 환자들도 격의 없는 푸른 눈의 이방인에게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밤낮 아픈 환자들의 수발을 들며 마지막 가는 길까지 함께 배웅하는 외국인 신부가 친구나 가족보다 더 살가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대부분 화장을 하지만 매장풍습이 계속됐던 나환자촌에서 장지까지 상여를 따라가며 함께 우는 사제가 단지 신앙에 매몰된 ‘하느님의 종’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혹시 잘못될지도 모르는’ 중환자의 곁은 어김없이 유 신부가 지킨다.10여년 전부터는 임종 환자의 염(殮)도 직접 한다. 임종 환자의 손발을 거두고 시신을 씻어 수의를 입혀 입관하는 일까지 도맡는다. “이곳에서 앓다가 사망한 환자들의 시신을 거두던 촌로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염을 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어깨너머로 보아두었던 대로 죽은 이의 마지막을 수습하기 시작한 게 일상이 되었네요.” 따져보면 유 신부도 정상인의 몸은 아니다. 지난 1993년 상태가 악화된 환자를 인근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당한 교통사고로 왼쪽 어깨부터 손가락까지 심하게 다쳐 이식수술을 해야 했다. 1998년 성심원 영내에서 경운기에 치여 넘어지는 후유증으로 목 디스크를 심하게 앓고 있다. 요즘은 오른팔의 마비증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손가락 감각도 거의 없어져 뜨거운 것을 만져도 느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두 번의 사고가 오히려 환우들의 입장을 더 깊숙이 알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나중에 알았지만 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던 기간 내내 환우들이 성당에 모여 저를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제대로 한 것이 없는데….” 아픈 이들을 대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만남과 구원의 믿음을 거듭 확인한다는 유의배 신부. 그는 어쩔 수 없는 프란치스꼬 수도회 수사이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손발이 다 문드러진 나환자일지라도 자식들에겐 환자가 아닌 그냥 어머니요, 아버지”라는 말은 왜 그가 평생을 나환자들과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2002년엔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수여하는 사회봉사상을 받았고 지난 2006년엔 동년배의 환자가 주선해 조촐한 회갑연도 열었다고 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노 신부가 느닷없이 “식구들을 소개하겠다.”며 기자의 손을 잡아 환우들 앞으로 이끈다. 불쑥 나타난 신부의 모습에 반가움의 표정이 번진다. “신부님 안녕하세요.”“아이구 오늘은 더 예뻐졌네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인사에 일일이 다가가 껴안으며 얼굴을 부빈다. 비틀린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힘겹게 만들어 보이는 할머니의 손을 맞잡던 유 신부가 말한다.“보는 눈에 따라 흉한 몰골의 환자가 될 수도 있고 허물없는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제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산청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유의배 신부는 ●1946년 스페인 바스크지방 게르니카 출생 ●1962년 프란치스꼬 수도회 입회 ●1969년 종신서원 ●1970년 바스크지방 아란사수 신학대학 졸업, 사제서품 ●1973∼1974년 볼리비아 코파카바나 수도원 본당 사역 ●1976년 한국 입국 ●1980년 성심원서 수도생활 시작 ●2002년 아산사회복지재단 사회봉사상 수상 ●현재 성심원서 수도생활 및 병자성사
  • 프로그래밍 ‘척척’…中 8살 ‘IT신동’

    “프로그래밍이 가장 쉬웠어요.” 최근 중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천재소년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광시(廣西)성 난닝(南寧)시에 사는 8살 난 뉴즈(牛仔)군은 3살 때 혼자서 윈도우 프로그램을 설치해 부모를 놀라게 했다. 이후 뉴즈는 4살 때 DOS와 각종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6살 때부터는 비주얼베이직(VisualBasic·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프로그래밍 언어)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뉴즈의 선생님은 7년간 컴퓨터 회사에서 일해 온 삼촌이다. 삼촌 예(葉)씨는 “뉴즈가 2살 때부터 마우스를 이용해 게임을 즐겼다.”면서 “당시 게임에 대해 잘 몰랐지만 컴퓨터를 켜고 프로그램을 다루는데 매우 흥미있어 했다.”고 전했다. 얼마 전 뉴즈는 CCTV(중국 관영방송)에 ‘IT천재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보도를 접한 한 컴퓨터 업체는 뉴즈에게 4대의 컴퓨터와 한대의 노트북을 주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디버깅(프로그램의 오류를 발견하고 그 원인을 밝히는 작업)하는 시험을 보게 했다. 그 결과 뉴즈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로 3일 만에 이 일을 모두 해내 감탄을 자아냈다. 뉴즈는 “컴퓨터랑 노는 것이 가장 즐겁다.”며 “어른이 되면 컴퓨터 관련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좋은 선생님으로 아이들 만나고 싶어”

    “좋은 선생님으로 아이들 만나고 싶어”

    “하루빨리 좋은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첫 기혼 여성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했던 ‘아줌마 신입생’들이 마침내 졸업한다.2004년 이대 초등교육과에 입학했던 기성화(32)씨.6살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기씨는 오는 25일 입학 4년만에 졸업, 초등학교 교사의 꿈을 이루는 데 한 발짝 다가섰다. 기씨는 함께 입학했던 또다른 기혼자 전영미(36·약학부)씨가 휴학길에 올라 기혼신입생 중 가장 먼저 졸업장을 받게 됐다. 1998년 대학을 졸업한 후 공기업의 장애인 치료교육 업무를 담당했던 기씨는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결혼 이듬해인 2002년 말 직장을 뛰쳐나와 대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10여년 만에 다시 잡은 교과서는 만만하지 않았다. 재수학원을 전전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수능을 6개월 앞둔 2003년 5월에는 첫딸을 출산했다. 기씨는 “주위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힘든 길을 택한다고 많이 반대했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용기를 준 남편 덕분에 힘을 얻었죠.”라고 말했다. 결국 기씨는 2003년 금혼학칙을 폐지한 이화여대에서 ‘기혼여성 첫 입학’이라는 기록으로 세인의 관심 속에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학과 공부는 수능준비보다 더 어려웠다. 인터넷 등 IT로 무장된 ‘어린 동급생’들이 엄청난 분량의 리포트를 소화해낼 때는 기가 죽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기씨를 힘들게 한 건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점. 기씨는 “시골에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올라와 아이를 봐주셨는데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기씨는 졸업 전 임용고사에서는 아쉽게 탈락했지만 교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지도교수님이 제 손을 꼭 잡고 교사는 보람된 직업이니 힘들더라도 참고 끝까지 해보라고 말씀해 주셨다.”면서 “하루빨리 학교에서 순수하고 솔직한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바람이다.”고 말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화려한 볼거리 ‘점퍼’ 가족애 듬뿍 ‘화성아이’

    화려한 볼거리 ‘점퍼’ 가족애 듬뿍 ‘화성아이’

    연초부터 한국영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유명 SF문학소설을 원작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 두편이 나란히 도전장을 내밀었다.14일 개봉한 액션영화 ‘점퍼’와 휴먼드라마 ‘화성아이, 지구아빠’. 이들 작품이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흥행에 성공한 ‘해리포터’,‘반지의 제왕’,‘황금나침반’의 뒤를 이을지 관심을 모은다. ●‘순간이동’으로 에펠탑·스핑스크 여행 영화 ‘점퍼’는 미국 SF소설계의 샛별로 불리는 스티븐 굴드의 대표작. 순간이동을 자유자재로 하는 초능력을 지닌 점퍼들의 세계를 다룬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평범한 한 소년이 1초 만에 자신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점퍼’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액션 블록버스터로 영화화되면서 머릿속에서만 그려지던 장면들이 실제로 눈앞에 등장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눈만 깜빡하면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빅뱅, 이집트의 스핑크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을 제집 드나들듯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주인공 데이비드(헤이든 크리스텐슨)는 묘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순간이동이라는 소재 탓에 11개국,13개 도시를 돌며 현지 촬영을 했고,‘글래디에이터’ 때도 나오지 않았던 로마의 콜로세움에서의 액션 장면도 등장한다. ‘본 아이덴티티’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등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덕 리만 감독은 소설적 상상력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오락영화의 미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점퍼들을 처단하기 위한 비밀조직 ‘팔라딘’과의 대결이나 자신의 가족과 능력에 얽힌 비밀 등 뻔한 할리우드 코드를 답습한 부분도 적지 않다.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다소 만화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팔라딘역으로 출연한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 새뮤얼 L. 잭슨은 영화의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15세 이상 관람가. ●SF의 탈을 쓴 드라마 ‘화성아이, 지구아빠’ 이에 도전장을 내민 ‘화성아이, 지구아빠’는 ‘스타트랙’과 ‘환상특급’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SF작가 데이비드 제럴드의 ‘화성아이(The Martian Child)’를 원작으로 했다. 자신의 양아들과의 실제 관계를 토대로 한 이 단편은 미국의 4대 SF문학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잇따라 받았다. 발간된 지 10여년 만에 영화화된 이 작품은 SF소설가인 주인공 데이비드 고든(존 쿠삭 분)이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6살짜리 사내아이 데니스(바비 콜맨 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데니스는 지구중력이 약하다며 건전지로 만든 무쇠벨트를 허리에 차고,‘화성소원’을 빌면 눈을 감고도 맛으로 초콜릿 색깔을 알아 맞히는 ‘4차원 꼬마’. 태양을 피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고, 지구중력 때문에 피가 머리까지 가지 않아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데니스의 ‘기행’을 접한 초보아빠 고든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 작품은 원작에서 실제 SF소설가의 진솔한 경험담과 아이를 ‘화성인’으로 묘사한 부분이 설득력을 갖춰 호평을 받았다. 소설이 주는 상상력에 코믹한 요소를 가미해 기존의 아이-어른 커플이 등장해 인기를 모은 ‘어바웃 어 보이’,‘아이엠 샘’ 등과는 또다른 매력을 안겨 준다. 전체 관람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가족형 ‘애니’ 봇물… 설레는 동심

    연휴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어린이들. 오랜만에 친지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일도 그렇지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마음껏 볼 수 있어 더욱 마음이 설레지 않을까. 애니메이션 채널 ‘챔프’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대거 준비해 내보낸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중 극장판 ‘데스’는 6일 밤 12시에, 극장판 ‘에어/진심을 너에게’는 7·8일 밤 12시에 방영한다.‘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자아성장과 인간소외라는 난해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1990년대 처음 선보였을 당시 젊은 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6일 오후 6시에는 판타지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최신 극장판인 ‘이누야샤-홍련의 봉래도’가,6일 오전 9시 30분에는 ‘파워레인저’ 시리즈 3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극장판 ‘파워레인저-매직포스&트레저포스’가 방송된다.7일 오전 9시 30분에는 뮤지컬 애니메이션 ‘바비공주와 숲속 친구들’이 방영될 예정으로,6살 때 난파당해 열대섬에서 살게 된 소녀 로젤라와 우연히 섬으로 온 안토니오 왕자의 사랑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한다. 투니버스는 7일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극장판 애니메이션 특집’을 마련했다.‘로봇’‘날아라 호빵맨 스페셜:꿈 속 고양이 나라의 냐니’‘빨간 모자의 진실’‘아기공룡둘리:얼음별대모험’‘빼꼼의 머그잔 여행’ 등 총 5편의 작품을 선보인다.또 10일 ‘신나는 설날, 친구들의 겨울 얘기’를 특집 편성해 인기 애니메이션 ‘짱구’‘미소의 세상’‘케로로중사’ 등에서 겨울을 내용으로 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만 모아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릴레이 방송한다. 어린이 엔터테인먼트 채널 닉은 연휴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10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9시간 동안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를 내보낸다.개구쟁이 꼬마와 실수투성이 수호천사의 좌충우돌 우정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인기캐릭터 ‘티미’와 ‘지미’를 통해 상큼한 웃음을 안겨준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한국 이름으로 개명한 中출신 탁구대표 당예서

    [스포츠 라운지] 한국 이름으로 개명한 中출신 탁구대표 당예서

    “그는 환자다.(탁구에) 미쳤다. 토·일요일도 없다. 몸 상태만 좋으면 밤 11시30분까지도 연습한다.”(강희찬 대한항공 여자탁구단 감독) 지난해 10월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탕나(27)는 지난 22일 자신의 이름을 ‘당예서’로 바꿨다.20일 충북 단양에서 끝난 세계선수권 파견 대표 선발전에서 10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하며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해엔 종합탁구선수권에서 단·복식을 제패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연습생 신분으로 2000년 4월 바다를 건너온 지 8년 만에 정상에 올라선 것. ●연습생 8년만에 태극마크… 백어택 일품 그는 삶의 99%를 탁구 연습에 쓰고 나머지 1%는 탁구 연구에 바친다. 그는 “시간 있으면 탁구 비디오를 봐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난 2006년 결혼했지만 중국에 있는 남편과 9개월째 만나지 않았다. 자녀도 없다. 연습에 지장을 받을까 우려해서다. 인천 원당동에 있는 체육관과 숙소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오가기 때문에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오죽하면 강 감독이 “탁구 말고 다른 것 좀 해보라.”고 애원(?)할 정도. 그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연습을 너무 열심히 했다. 따낸 메달을 몇 십년 뒤 보면 ‘너무나 잘했어.’라는 뿌듯한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첫 국제 대회 출전이다 보니 아직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는 “우선 중국 광저우 세계선수권(2월24일∼3월2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다음 목표다.”며 각오를 다졌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세계를 누비고 싶어서였다. 그는 “중국에서 국가대표로도 뽑혔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해 국제대회엔 나가지 못했다. 대한항공에서 제의했을 때 계속 탁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오른손 셰이크핸드 그립의 그는 주특기가 ‘핌플(돌출)’ 러버에서 나오는 백어택이다. 강 감독은 “백어택은 전세계에서 제일 좋다. 백핸드의 연타가 강력하고 박자가 아주 빠르다. 단점이라면 신체조건(158㎝ 52㎏)에서 밀려 파워가 약하다.”고 설명했다. ●“왜 하필 한국이냐고요? 그놈의 情 때문에…” 그는 한국 사람이 될 운명이었나 보다.2년 만에 중국의 부모를 보러 갔을 때 어머니 장위칭에게 “깍두기 먹고 싶다.”고 말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살아라.”는 욕만 들었다. 한국 음식이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특히 김치찌개를 즐긴다. 이젠 한국 탁구의 앞날도 걱정한다. 그는 “중국은 기술이 계속 올라가는데 한국은 지금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중국은 대표만 50명이다.5명이 출전하면 45명이 파트너 역할을 하고 몇년간 함께 연습한다.”고 밝혔다.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난 그는 6살 때 처음 라켓을 잡았다. 몸이 약해 아버지 탕구이산이 권했다. 그는 “자주 감기에 걸렸다. 운동하면 튼튼해진다는 말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나 홍콩 등으로 갔더라면 국적 취득도 쉽고 몇년 앞서 프로대회에 나가 돈도 벌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에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한국의 엄격한 국적 취득 조건 탓에 다른 선수보다 한참 늦은 27세에 태극 마크를 달게 된 것도 그렇다. 후회한 나머지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릴까 하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게 한국인의 ‘정’이다. 강 감독은 “한국이란 곳이 까다로운 게 많지만 정이 많다. 중국은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한다. 우리는 인연이 이어진다.”며 아직 한국말이 서투른 그를 대신, 설명했다. 그는 “강 감독이 옆에 계속 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정 때문에 한국에 남은 그는 “외롭다. 엄마, 아빠, 친구도 없고 매일 탁구 연습만 하니까.”라면서도 오늘도 라켓을 꽉 잡는다.‘코리안 드림’의 마지막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까 문득 궁금해졌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레저 자택서 숨진채 발견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레저 자택서 숨진채 발견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히스 레저(28)가 지난 22일(현지시간) 요절했다고 AP, AF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경찰은 “히스 레저(28)는 뉴욕 맨해튼 남부 소호지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가정부에 의해 발견됐으며 사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레저의 마사지사가 아파트에 도착한 사실을 알리려 가정부가 갔을 때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타살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의 사인은 약물과다복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부검은 23일 진행될 예정이다. 호주 퍼스 출신의 레저는 10살 때 아마추어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으며 16살 때 시드니로 건너가 TV 영화 등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살 때 로스앤젤레스로 거처를 옮겨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 출연했다. 레저는 ‘몬스터 볼’ ‘패트리어트-늪속의 여우’ ‘기사 윌리엄’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제이크 질렌할과 공동 주연으로 열연하며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 영화에서 아내로 출연한 배우 미셸 윌리엄스와 실제로도 사랑에 빠져 함께 살다 지난해 9월 헤어졌다. 또 린제이 로한, 나오미 와츠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과 열애설이 나기도 했다. 생의 마지막까지 열정적인 배우였던 그는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밥 딜런의 전기 영화 ‘나는 거기 없다’에서 딜런의 분신 역을 연기했으며 ‘배트맨 비긴즈 2 :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역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나우뉴스팀@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인류에 꿈과 모험 선사한 ‘겸손한 영웅’ 에베레스트 첫 등정 힐러리卿 잠들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티베트 이름 초모랑마·8850m)를 인류 최초로 등정한 뉴질랜드 산악인 겸 모험가인 에드먼드 힐러리 경(卿)이 11일 8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이날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평소 보잘것없는 재능의 보통 뉴질랜드인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해온 힐러리 경이 영면했다.”며 “에베레스트를 발 아래 두었을 뿐 아니라 결단력과 겸손함, 관대함으로 삶을 이어온 점에서 진정한 영웅”이라고 기렸다. 고인은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 오클랜드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으며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뉴질랜드 화폐에 생존인물로 첫 등장 힐러리 경은 1953년 5월29일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는데 누가 먼저 발을 디뎠는지 한사코 밝히지 않아 국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86년 텐징이 죽고 13년이 흐른 뒤, 힐러리는 책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텐징보다 한발 앞서 최고봉에 발을 올려놓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함께 오른 것”이라며 그같은 논쟁은 부질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등반가로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젊을 적 벌 치는 일에 종사했음을 강조하며 자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네팔과 셰르파 부족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산악지대에 학교와 병원, 활주로를 세우기 위해 62년 창설한 ‘히말라야 트러스트’ 모금운동에 앞장섰다. 뉴질랜드 화폐에 첫 생존 인물로 등장한 그는 82년 자신의 서명이 담긴 5달러짜리 새 지폐 1000장을 경매에 부쳐 이 기금에 53만달러를 보탰다. ●네팔·셰르파 부족 위해 평생 바쳐 그가 네팔을 찾은 것만 120회가 넘었고 75년 첫 아내 루이즈와 당시 16살이던 딸 벨린다를 잃은 것도 네팔여행 중 비행기 추락 때문이었다. 힐러리는 90년 남극에서 역시 비행기 사고로 먼저 간 친구이자 동료 모험가 피터 멀그루의 아내 준과 재혼해 그의 소생 피터, 사라와 새 가정을 꾸렸다. 아들 피터 역시 모험가로 활동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정 뒤에도 영연방 탐험대에 합류, 58년 남극점에 도달한 뒤 67년 이곳의 허셀산(3282m)을 최초로 등정했고 77년에는 제트보트를 이용해 갠지스강의 발원지를 확인하고 죽기 전까지 네팔을 다녀오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왜 산에 오르는지 명확한 답을 하긴 어렵지만 많은 이들은 거기 오르기 위해 여전히 갈 뿐”이란 명언을 남겼다. 임병선기자 arakis.blog.seoul.co.kr
  • 영화 해리포터 주인공 안경 홀로코스트 추모 전시 기증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대니얼 래드클리프(18)가 영화 속에서 썼던 안경이 유대인 홀로코스트(대학살)를 추모하는 전시에 기증된다.AP통신은 3일 래드클리프가 6살 아역으로 출연했을 당시 꼈던 금속제의 타원형 안경을 영국 리버풀에서 21일 시작되는 전시에 기부한다고 전했다. 머니가 유대인인 래드클리프는 “이번 전시가 사람들에게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잊지 않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깨워줄 것”이라고 밝혔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19살 여승(女僧)얻어 7순(旬)에 득남(得男)하니

    19살 여승(女僧)얻어 7순(旬)에 득남(得男)하니

    71년 봄은 고목에 꽃이 피는 상서로운 해인지도 모를 일이다. 73살 4대독자 할아버지가 50살 아래의 23살된 꽃다운 처녀에게 장가들어 만월같은 아들을 본 것. 소백(小白)·태백(太白)산맥이 마주쳐 갈라지는 충북 풍기(豊基)군 풍기(豊基)면 금계(金鷄)동 험준한 산골짜기 동네에 찾아든 이 「얼씨구 지화자 경사났네」의 초특급(超特級) 희소식. 겨우 조상체면 세웠다며 “뭣보다 건강이 제일이죠” 『자, 이렇게 앉으면 되겠소? 잘좀 찍어 주구려. 이녀석 보게, 예쁘게 보여야지 사진이 잘 찍혀요. 그렇지, 옳지, 웃어야지…』 소문만 듣고 찾아간 기자는 이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천진난만(?)한 노인앞에 우선 기가 죽었다. 완강한 체구에 이글거리는 눈동자, 탄탄한 피부가 아직도 젊음(?)을 안고 있는 듯. 『쌀 한가마 쯤은 문제없이 들고 다닐 수 있지. 건강이 제일이요, 건강』 하면서 노인은 호탕하게 웃는다. 『성생활문제? 그것도 걱정않지. 1주일에 3번쯤은 저분에게(아내를 가리킴)가는데 「수명을 재촉하는 짓」이라고 단호히 거부해서 할 수 없이 1개월에 3번쯤 허락해주지. 자세하게 얘기해 드릴까?』하며 노인은 심술궂은 웃음. 이 세계적인 기록이라해도 좋을 정력적인 노인은 황해(黃海)도 백천(白天) 조(趙)씨 종직(宗直)옹(73). 종직옹보다 50살 아래인 부인 임자원(任子元)씨는 23살. 조노인은 이조(李朝)개국공신 조반옹의 18대손으로 현재 4대독자로서 1점혈육 아들을 기적적으로 보아 겨우 조상들에게 체면을 세우게 됐다. 『정감록(鄭監錄)에 보면 풍기면 금계동이 십승지지(十勝之地)가운데 하나로서 피난처로 가장 좋다고 돼있지. 이곳 갈미봉 밑에는 신라(新羅)시대 사고(史庫)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 고향 황해도 백천읍 북리에서 땅마지기깨나 짓던 팔자였는데 공산당놈들 등쌀에 월남하여 이곳에 오게 된거요. 물론 그땐 처 자식들 모두 있었지』 이곳 금계동에 정착한 뒤로 3년만에 아내가 죽고, 10년만에 아들이 죽어 버렸다. 딸 근화씨(29)만이 살아남아 현재 강원(江原)도 영월(寧越)에서 홍(洪)일성씨(34)와 단란히 살고있을 뿐 홀몸이 됐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유랑생활을 하던 조노인은 불문에 귀의 독실한 신자가 됐다. 현재의 아기를 본것은 지난 1월 23일 밤12시. 30여가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금계동 부락민들은 밤잠을 자지못하고 손에 땀을 쥐며 조노인댁의 출산을 기다렸다. 임여인의 끈덕진 구애에 처음엔 놀린다고 꾸지람 『아들이다』 느닷없는 조노인의 고함소리가 터지자 모였던 부락민들은 『만세』를 연거푸 부르며 『얼씨구! 지화자』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쌀됫박과 미역더미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조노인 개인의 경사만이 아니라 그것은 온통 부락의 잔치였다. 동네 젊은 이들은 애초 조노인의 결혼을 두고 『아이를 낳는다』『못 낳는다』설왕설래하던 끝에 내기까지 건 일도 있었을 만큼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조노인은 그의 굳센 아래쪽 힘을 젊은이들이 부끄러울만큼 뽐내고 만 것이다. 도대체 「괴테」를 무색하게 한 이 희한한 결합은 어떻게 해서 시작됐는가를 들어보자. 지난 68년 봄. 풍기면사무소가 있는 영전사(靈田寺)에서였다. 초파일 행사를 앞두고 조노인은 조화(造花)를 만들고 있었다. 이 작업을 옆에서 거들어 주었던 여승이 당시 19살 임여인. 신도와 다른 스님들은 범상스럽게 이들의 작업을 보아 넘겼으나 이때 이들은 사랑의 신호를 피차 보내고 있었다. 먼저 신호를 발신(?)한건 임여인쪽. 『할아버지, 아들이 없어 쓸쓸하지 않아요? 다른 신도들은 부처님께 아들을 보게해달라고 비는데 할아버지도 한번 빌어보세요.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면 절손(絶孫)이 될거 아녜요?』 『글쎄 낸들 왜 섭섭하지 않겠나? 그러나 이젠 다 틀렸어. 내 나이가 69살. 무슨 힘으로 아들을 볼수 있으며 씨는 또 어디다 뿌리누?』『저는 세상에 태어났다가 하나의 씨도 뿌리지 못하고 저 세상엘 간다는건 너무나 허무하게 생각이 되어요. 파계의 생각인지 모르나 저는 꼭 씨를 뿌려놓고 가기를 결심했어요?』『그길이 좋을지도 모르겠군…나이가 아직도 한창이니까 차차 있노라면 좋은 젊은사람이 나타날게요』 부처님 앞에서 이들의 얘기는 강론아닌 속세의 얘기로 꽃을 피웠다. 첫닭이 울고 법당에는 여명을 알리는 새벽의 흰빛이 비칠 무렵, 여승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며 눈에는 광채가 번뜩였다.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드리겠어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아들을 낳으면 훌륭한 불제자를 만들겠어요. 부처님도 저의 파계를 용서하겠지요』 조노인은 어안이 벙벙해서 『늙은 이를 놀리느냐』고 꾸지람. 그러나 신도와 여승의 관계는 차차 사랑하는 연인들의 관계로 변하여 갔다. 그러기에는 임여인의 끈덕진 구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놀라운 정력…환속 1개월만에 태기있어 이 별난 부부의 정사가 소문이 나면서 내용을 알길이 없는 사람들은 빈정거렸다. 임여인이 10일도 못살고 도망가리라는 것. 그러나 임여인은 13년동안 입었던 승복과 염주를 내던지고 지금의 금계동에 있는 조노인의 초가로 환속해 버렸다. 조노인 살림이라야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간에 토끼궁둥이 같은 산전 3백평. 여기서 거둬 들이는 좁쌀과 구호곡(구호대상자임)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는 어려운 살림이었다. 그러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밤새는줄 모른다」던가? 햇살이 두둥실 비치고난 뒤에도 한참 있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기미로 미루어 아주 신혼살림 재미에 깨가 쏟아진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환속 1개월만에 태기가 있었던 것. 점점 배가 불러가는 임여인의 모습에 부락민들은 고개를 수그리게 됐다. 10개월 채우고 난 자식이 딸 인희(仁熙)양(3). 온 동네가 이 기막힌 출산에 떠들썩하니 잔치기분으로 들떴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월에는 아들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 소문은 군내에 꼬리를 치고 퍼져 이 험한 산골짜기에 구경을 겸한 출산축하객들이 줄지어 미역과 쌀을 가져왔다. 부인 임여인의 과거도 기구하다. 6살되던 해 여름, 부모가 무슨 병인지 1개월 사이를 두고 모두 세상을 하직했다. 천애고아가 된 임여인, 즉 딱한 어린애를 거둬 먹이고 입히며 기른것이 주지스님. 주지 이운각(李雲覺)스님에게 천자부터 배우기 시작, 「초심」「발심」도 익히고 독경도 배웠다. 15살때 어엿한 여승이 된 그녀는 17살때 영전사로 다시 옮겨 오늘의 남편을 만났던것. 『금년안으로 냉수라도 떠놓고 혼례식을 거행해야지요. 그때도 꼭 오슈』하며 껄껄거리는 노인은 작명가에게 아들이름이나 짓게 해달라며 사주를 적어준다. 음력으로 경술(庚戌), 기해(己亥), 무신인자(戊申寅子)라는 것 -. <영주(榮州)=이태호(李泰浩)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4월 25일호 제4권 16호 통권 제 133호]
  • 이대생들의 처녀엄마

    이대생들의 처녀엄마

    「프리·섹스」의 거센 물결탓인가, 우리나라에도 해마다「처녀엄마」가 두배로 늘어나고 있다는「쇼킹」한「뉴스」다.「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말이 있다」지만, 과연 이처럼「할말있는 처녀가 늘어가도 괜찮은 것일까? 다음은 이화(梨花)여대 사회사업과에서 최근 조사한「한국 미혼모(韓國 未婚母)실태」조사결과. 아버지가 없어요…호적에 딱지붙어 처녀엄마란 한마디로 정당한 결혼절차를 밟지않고 남성과 관계를 가져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은 처녀아닌 처녀를 말한다. 그러니까 출생신고서엔「혼외출생(婚外出生)」이란 딱지가 붙기 마련. 처녀엄마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법적이며 사회적인 아버지 없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런 까닭에 처녀엄마의 대량출현은 커다란 사회적인 문젯거리로 나타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처녀엄마들을 보호, 수용하는 시설은 단 두 곳밖에 없다. 처녀엄마를 수용하는 기관인 구세군 여자관과, 이들에게 전문적인 도움을 주는 한국기독교양자회뿐. 두 곳 모두 민간단체이며 이들 처녀엄마를 위한 국가적인 복지시설은 전연없는 형편이다. 위험의 고개길은 21~25살 사이 이대 사회사업과의 조사는 이 두 곳에 수용된 처녀엄마들을 대상으로 한것인데 68년부터 70년말까지 3년동안 처녀엄마의 증가비율을 보면-. ▲68년= 50명 신청에 27명 수용 ▲69년= 70명 신청에 54명 수용 ▲70년= 2백명 신청에 1백63명 수용 단순히 이 숫자만 보아도 69년엔 68년의 2배, 70년엔 69년의 3배로 늘어난 것을 알수 있다. 차차 많은 수의 처녀들이 한때의 실수로 아기를 갖게 되거나 낳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을 나이별로 보면- ▲15~20살 16% ▲21~25살 48% ▲26~30살 12% ▲31~50살 24% 그러니까 가장 위험한 고빗길은 21살부터 25살사이의 처녀. 교육수준 낮을수록 많고 대부분 불우한 환경때문 다음은 학력별. ▲국민학교 졸업 38% ▲중학교 졸업 28% ▲고등학교 졸업 16% ▲대학교 졸업 6% ▲무취학·독학 12% 이 비율은 3년동안 거의변화가 없어 교육정도가 낮으면 낮을수록「처녀엄마」의 가능성은 많아진다. 무지가 혼외임신의 중요한 원인이 됨을 알 수 있다. 직업별로 보면- ▲식모 16% ▲공장직공 16% ▲재학생·선생 4% ▲상업 4% ▲유흥업소 18% ▲회사원 14% ▲무직 28% 이 통계 역시 학력별 통계와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어 지식정도가 낮은 식모·공장직공·무직등이 전체의 60%를 차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편부슬하 12% ▲편모슬하 24% ▲고아 16% ▲부모슬하 48% 부모슬하인 경우가 48%라고는하지만 계부, 계모와 함께, 혹은 별거중인 경우가 많아 일반적으로 가정환경이 평화롭지 못한 것을 짐작케한다. 다시말해서 처녀엄마를 만들어내는 내적인 원인은 무지, 외적원인은 불우한 가정환경임을 알수 있다. 올해 18살인 A양은 전남(全南)이 고향인 3남3녀중 장녀. 17살때 양재기술을 배우려고 친구와 함께 서울에 올라왔다. 양재학원에 등록하려니 너무 돈이 많이들어 시내 어느 양장점의 고용원으로 들어갔다. 우선 막일부터 배우기 시작한 것. 그런대로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던중 이웃 가게인 철물상점원 K라는 청년(20)을 알게 되어 좋아지내다가 철없이 육체관계로 까지 발전, 마침내 임신했다. 임신한 사실을 알리기도 전에 K는 딴 직장을 구한다면서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A양은 구세군 여자관에 수용되었으며 낳은 사내아이는 딴집에 양자로 입적, A양은 다시 고향에 내려가 집안일을 돕고 있다. 계부밑에서 자라난 B양(19)은 그런대로 집안이 넉넉하여 고향인 충남(忠南)서 중학교를 졸업, 서울에 올라와 이모집에서 여고엘 다녔다. 이때 친구의 소개로 남자를 알게되어 육체관계까지 맺었으나 그 남자는 곧 자취를 감추었다. 수소문해 본 결과 군에 입대했다는 것. 살길 막연, 고민에 몸부림 따뜻한 보호·선도 아쉬워 학교도 중퇴해버리고 이모에게도 얘기할 수 없어 이모집을 나와 친구집을 전전하다가 임신의 증상이 나타나자 유산을 시키려 했으나 돈이 없고 또 낙태수술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포기. 결국 기독교양자회의 신세를 지고 낳은 사내아이는 양자로 주고 현재는 어느 공장에 취직중. 3살때 아버지를, 6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가 된 C양은 20살때 서울에 올라와 식모로 취직했다. 그러다 옆집 총각과 눈이 맞아 사귀던 끝에 마침내 석달남짓 동거생활까지 했다. 그런대로 처음 맛본 행복이었으나 어느날 동거하던 총각은 죄를 짓고 형무소행. 식모살이를 다시 시작하려고 직업소개소를 찾아간 것이 그만 남대문 사창가로 전락, 윤락녀가 되고 말았다. 어느날 시립부녀보호소단속반에 잡혔을땐 이미 임신한 몸. 이윽고 만삭이 되었으나 아이의 아버지는 물론 찾을 길이 없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채 기독교양자회에서 아이를 낳아 양자로 주고 현재는 다시 식모생활로 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처녀엄마」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다. 기아, 고아, 비행소년문제가 이들로부터 생기며「처녀엄마」자신은 자학증세에 사로 잡힌다. 이대 사회사업과의 실태조사서는 이런「처녀엄마」의 문제해결책으로 다음의 세가지를 제시했다. (1) 학교·부모·「매스콤」을 통한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교육. (2) 처녀엄마가 주위에 생겼을때 이웃은 따뜻한 마음으로 협조·선도할 것. (3) 처녀엄마들을 위한 보다 많은 보호시설과 사회보장제도가 이루어 질 것. [선데이서울 71년 4월 25일호 제4권 16호 통권 제 133호]
  • 軍, 15년만에 부자상봉 도와

    軍, 15년만에 부자상봉 도와

    15년 전인 6살 때 부모와 헤어져 보육시설을 전전하다 군에 입대한 이등병이 부대 간부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았다. 육군 제17사단 미추홀 부대 이윤우(사진 왼쪽) 이병. 이 이병이 혈육을 찾는 데는 대대 주임원사인 김영구 원사의 도움이 컸다. 이 이병으로부터 사연을 듣고 직접 나섰던 것. 유일한 단서는 이 이병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15년 전 큰 집의 전화번호였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김 원사는 이 이병의 큰 어머니와 통화에 성공했고, 아들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부대까지 한 걸음에 달려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오다기리 죠의 연인 카시이 유우는 누구?

    오다기리 죠의 연인 카시이 유우는 누구?

    오다기리 죠의 그녀 카시이 유우는 누구일까? 지난 27일 일본의 인기스타 오다기리 죠オ(ダギリジョー·31)가 11살 아래의 여배우 카시이 유우(香椎由宇)와의 결혼을 전격 발표, 그녀에게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시이 유우는 지난 2001년 16살의 나이에 잡지 커버 모델로 데뷔, 각종 CF와 영화로 얼굴을 알리며 연기자의 꿈을 키워나간 미모의 엔터테이너다. 또 영화 ‘로렐라이’(2005)에서는 홍일점 히로인을 연기해 성공적인 영화계 데뷔를 했으며 ‘린다 린다 린다’(2005)에서 배두나와 함께 개성있는 여고생 역할을 맡아 주목 받았다. 또 15편의 드라마 출연과 사진집 모델 등 꾸준히 활동을 해오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 중이다. 아울러 독일의 한 의학박사는 카시이가 얼굴의 좌우 양면이 똑같다는 ‘좌우대칭성 얼굴’을 갖고 있고 치아 교열이 완벽하다고 주장해 화제가 된바 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인터넷판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흑인청년, 조용필 노래로 日엔카 가수 데뷔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최근 미국 펜실베니아주 출신의 한 흑인 청년이 일본에서 엔카(演歌)가수로 음반데뷔를 앞두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26살의 청년 ‘제로’(ジェロ). 일본인 친할머니를 둔 덕에 어렸을적부터 엔카를 접할 수 있었던 그는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엔카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 24일에는 니혼TV의 방송프로그램 ‘미래보도2007·닛뽄·신히어로전설’(未来報道2007・ニッポン・新HERO伝説)에 힙합스타일로 출연, 신인가수 신고식을 치뤘다. 그러나 그는 곧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帰れ)를 일본어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웬만한 엔카가수보다 완벽한 손동작과 표정으로 열창해 출연진과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방송이 끝난 후 시청자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제로의 가창력과 엔카 실력을 극찬한 소감평이 끊이지 않아 새로운 스타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제로의 공식데뷔는 내년 2월이며 그의 등장으로 일본내 엔카 판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받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희망을 본 사람들] (2) 소년원 출신 대학 합격 김선영양

    [희망을 본 사람들] (2) 소년원 출신 대학 합격 김선영양

    선영(19·여·가명)이는 예쁘다.“소년원에서 생일 세 번 보냈어요. 뭐가 부끄러워요? 이렇게 잘됐잖아요.”라고 말하는 당당함이 매력 포인트다. 김선영양은 내년 봄 ㅇ대 사회체육학과에 들어간다.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죽음, 잇단 소년원행으로 점철된 10대의 끝자락에서 따낸 성취이기에 그의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선영양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6개월 뒤 가출했다.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셨다. 운전기사를 하면서 돈벌이는 곧잘 했지만 사랑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법을 몰라요. 배운 적이 있어야죠.” 운동신경이 좋아 중학교에서 소프트볼을 했다. 신참인데도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숏필더로 뛰었다. 그 바람에 텃세에 치여 봉변도 많이 당했다. 없는 형편에 뒷바라지해 준 아버지를 생각하며 참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운동부에서 뛰쳐나와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오토바이도 훔치고, 오락기도 털고 다니다 급기야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사고를 쳤다. 친구 다섯이서 1층 교무실과 2층 교실을 싹쓸이했다. 불우이웃 돕기 모금함에 있던 5만원과 휴대전화 7개가 나왔다. 고작 14살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땐 힘들었어요. 잠은 여자화장실에서 자고, 낮엔 옥상 넘는 게 일이었죠.” 결국 붙들려 16살 때인 2004년 1월 위탁감호 처분(4호)을 받고 강원도의 감호시설에 수용됐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치는 바람에 그해 3월 단기소년원 송치처분(6호)을 받고 6개월 동안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옛 안양소년원)에 머무른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2005년 2월 또다시 소년원 송치처분(7호)을 받고 19개월을 지냈다. 방황의 극한에 이르러서야 선영양은 희망을 만난다. 정심학교의 서설(26·여) 선생님이 그 희망이다.“태어나서 처음으로 저를 믿어주는 사람이었어요. 선생님이 대학에 가보라고 권유해서 그게 자연스레 목표가 됐죠.” “날 믿어준 사람을 실망시키긴 싫었다.”는 선영양은 소년원에서 15개월 동안 파워포인트, 한문, 워드, 문서실무사 등 자격증 9개를 땄다. 할머니(71)가 면회 올 때마다 자격증을 하나씩 보여 줬다. 뛸 듯이 기뻐하는 할머니를 보니 욕심이 생겼다. 지난해 4월에는 중·고졸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그때부터 대학에 목숨을 걸었다. 수시 전형으로 응시, 합격 통보를 받은 게 지난달 23일. 기뻐해야 할 날이었지만,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선영양은 필기시험을 본 다음날, 방에서 숨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사인(死因)은 당뇨병에 알코올 중독. 선영양은 “그렇게도 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이제는 보고 싶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좀처럼 희망이 끼어들 틈이 없을 것 같은 인생이지만, 선영양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좋은 사람 되는 게 제 꿈이에요.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웃고, 평범하게 잘사는 거요. 나중에 태권도장 차려서 돈 벌려고요.”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사회공헌] 한국석유공사-에너지 관련 이공계 인재 육성

    [사회공헌] 한국석유공사-에너지 관련 이공계 인재 육성

    한국석유공사(KNOC) 임직원들에게 매달 셋째주 수요일 오후 반나절은 특별한 시간이다. 자체적으로 정한 ‘KNOC 사회공헌의 날’이다. 올들어 9월까지 총 31개팀 1075명이 참여했다. 지난해 연간 참여인원(831명)보다도 훨씬 많다. 시간으로 따지면 5120시간.1인당 4.2시간씩 봉사활동을 한 셈이다. 강제성이 전혀 없는 데도 해마다 참여인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공기업 중에서도 석유공사의 사회공헌 활동은 체계적이기로 유명하다. 봉사기금 계좌가 아예 별도로 만들어져 있다. 임직원들이 월급의 우수리를 떼 모은 4000만여원과 회사가 그 금액만큼 내놓은 기금(매칭 그랜트)으로 암 투병중인 사우 수술비와 독거노인 쌀 구입비 등을 지원했다. 올 8월 백혈병 소아암으로 조혈모 세포를 하루빨리 이식받아야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엄두를 못내는 6살 신모 어린이의 딱한 사연을 전해듣고는 수술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공사 홈페이지에 사회공헌 코너가 별도 개설돼 있어 기금 운영 현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여기에는 황두열 사장의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3월 취임한 황 사장은 그 해 8월 사회공헌 봉사단을 조직했다. 그 자신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강원도 춘천의 ‘사랑의 집짓기’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황 사장이 올해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에너지 인재 육성 사업’이다. 본사와 지사가 있는 전국 10개 시·군 115개 고등학교에서 각각 1명의 장학생을 선발,50만원씩 네 차례 연간 200만원을 지원한다. 총 지원금은 2억원이 넘는다. 그 첫번째 결실이 지난달 30일 경기 안양 본사에서 열린 ‘제1기 KNOC 청소년 장학생 장학증서 수여식’이다. 이들 가운데 이공계에 관심과 소질이 있는 학생에게는 석유개발 관련 학과 진학을 장려, 국가 자원개발 인력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김창숙,숨겨온 4년의 그이

    김창숙,숨겨온 4년의 그이

    인기 TV「드라머」『마부(馬夫)』에서 벙어리로 등장, 안방극장의「히로인」이 된 김창숙(金昌淑)양(22)이 목하 열애중이라는 소식. 상대방 남자는 학원을 경영하는 부잣집 외아들 노(盧)모씨(27). 일부에서는 약혼설을 지나 동거설까지 나돌만큼 이들의 관계는 심상치 않다는데-. “지금은 동생 데리고 살아 비밀약혼 절대 안했어요” 『마부』의 딸 김창숙양과 노모씨와의 약혼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정월부터. 김양이 지난해 12월 28일 그때까지 살고있던 재동집에서 한강「맨션·아파트」로 이사하자 약혼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노씨와 결혼을 앞두고 새살림의 보금자리로 마련한 곳이 「맨션·아파트」였다는 얘기와 함께 이미 두 사람은 남몰래 비밀약혼을 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식만을 올리지 않았을뿐 같이 살고 있다는 소문까지 났다. 그러나 김양 자신은 약혼설이나 동거설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부인하고 있는데 그 증거로 현재 자기는 동생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들고있다. 『아무리 뻔뻔스러운 여자라고 하더라도 집안 식구, 더구나 동생들이 보는 앞에서 어떻게 결혼도 하지않은 남자와 같이 살수가 있겠어요? 말도 안되는 헛소문이에요.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속상해 죽겠어요』 이렇게 동거설을 극구 부인하면서 김양은 노씨와의 비밀 약혼설도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노씨와 알고 지낸지가 오래되었고 또 다른 남자와 별다른「스캔들」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게된 것이 약혼설 운운하게 된 동기인 것 같다는 얘기. 남자와 여자가 다정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무엇이 그리 흉이될 일이냐면서…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맨션·아파트」도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듯 노씨가 사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전세(2백만원)를 든 것이라고. 재동집도 전셋집이었는데 집이 좁아서 불편하기 때문에「아파트」로 옮긴 것 뿐이라는 얘기. 김양과 노씨가 서로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4년 전인 68년 6월. 그해 1월에 TBC-TV 5기 「탤런트」로 들어간 김양이 어느날 동료들과 함께 남자들과「그룹·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의 한사람이 노씨였다는 것. 그후 몇차례 만나는 동안 오빠·동생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었고 시간이 있을때마다「데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4년을 지내다보니 이제는 서로 정이 들었고 서로 결혼말이 오갈만큼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은 사실이라는 김양의 말. “정식 결혼은 3년뒤에나 그땐 탤런트 집어치우죠” 그러나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구체적인 얘기는 해본적이 없을뿐만 아니라 김양 계획으로는 앞으로 3년쯤 더「탤런트」생활을 하다가 26살쯤에나 결혼하려고 마음먹고 있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이지만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김양은 지금 동생 2명을 보살펴야 할 가장(家長)의 위치에 있어 더욱 난처한 입장이라고-. 김양의 부모는 몇 년 전에 서로 이혼한 사이.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들의 불행을 당한 김양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슬픈 소녀로 자라야 했었다. 그러다가「탤런트」생활을 시작했고 광고「모델」과 영화배우로 빛을 받기 시작하면서 동생들과 함께 살기로 한 것. 오빠가 한사람 있지만 그동안 군대에 갔다가 올 1월에 제대해서 전북 이리에 있는 O대학 약대 3학년에 복학했다. 그래서 집을 돌볼 형편이 못되고 김양이 가장으로 집안살림을 꾸려나가야 할 형편, 따라서 김양의 지금 형편으로는 결혼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인데, 김양은 만약 자기가 결혼을 한다면「탤런트」생활을 그만두고 집안에 들어 앉아 충실한 아내노릇만 할 결심이라는 얘기다. 아버지 팔잡고 식 올리는게 가장 큰 소원 김양이 지금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헤어진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되찾아주는 것이라는데, 그런 다음에 자랑스럽게 아버지의 팔을 잡고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소원이다. 어찌보면 한없게 철없이 보이는 김양의 모습뒤에 이같이 남모르는 슬픔이 숨어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행복한 가정에의 꿈이 노씨와 더욱 다정하게 해준 자극제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사정으로 인해서 노씨와의 결혼은 당분간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노씨는 경복(景福)고교를 졸업하고 우석(友石)대학을 나온 뒤 부모가 경영하는 학원의 일을 돌보고 있는데 아직 나이가 27세밖에 안돼 결혼에는 비교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처지이지만 외아들이라 마냥 시일을 끌 수가 없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동안 서로 정이 들었어요.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지금 당장이나 올해 안으로 결혼할 수는 없어요. 무엇보다 나는 아직「탤런트」를 그만둘 생각이 없고 또 집안형편도 그렇고…한 3년 뒤에나 결혼을 할 예정이에요. 그러나 그때까지 그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김양의 생각으로는 노씨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지만 3년뒤라면 혹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느냐는 얘기. 그러나 서로 결혼하기로 다짐한 사이이기 때문에 기다려줄 것이라고 믿는 눈치이긴하다. 지금 김양은 화제작이었던『마부』를 끝내고 다시 들어가는 새연속극『동기(童技)』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다. 전남(全南) 완도(莞島)에서 태어나서 서울 경희(慶熙)여고를 졸업한 뒤 경희대 무용과를 다니며 68년 1월부터「탤런트」생활을 해왔다. 현재 TBC에서 받고 있는 출연료가 일일연속극 1편당 3천5백원, 요일 연속극 1편당 7천5백원 정도. 그밖에 Y제약회사 전속「모델」로 60만원에 계약되었고「캘린더·모델」, 영화출연 등으로 비교적 괜찮은 편. [선데이서울 71년 4월 11일호 제4권 14호 통권 제 131호]
  • [깔깔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가 6살짜리 딸 아이에게 물었다.“희정아, 엄마가 좋아?아빠가 좋아? ”“아빠.”이 말을 들은 아빠는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이때 근처에 있던 엄마가 딸아이에게 다시 물었다.“희정아, 아빠가 얼마만큼 좋아?”그러자 아이가 엄마 곁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엄마만큼.”●빵집에서 연말 준비로 바쁜 빵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주문할 차례가 되자 어떤 중년 여인이 감회에 젖어 종업원에게 말했다.“전 사실 15년 전에 어린 소녀 시절에 이 가게에 왔어요.”그러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종업원이 그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최대한 빠르게 맡은 일을 하고 있거든요.”
  • ‘성형실패’ 맥 라이언 “동안 미모는 어디에?”

    ‘성형실패’ 맥 라이언 “동안 미모는 어디에?”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동안 스타 맥 라이언(46)이 성형 부작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라이언은 최근 미국의 공항에서 가족과 여행길에 오르는 모습이 파파라치에 의해 포착되었다. 아들 잭(15)과 딸 데이지(3)와 함께 공항에 나타난 라이언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화장기 없는 모습에 주름진 피부와 보톡스로 부풀어진 입술이 더 부각돼 보였다. 과거 40대에도 20대 못지 않은 미모를 자랑했던 라이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라이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얼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얼굴에 주름을 없애기 위해 보톡스 주사를 맞고 코와 입술 성형 등을 해왔다. 미국 언론에서는 “과욕이 화를 불렀다”며 라이언을 대표적인 성형 실패 스타로 꼽고 있다. 1995년 영화 ‘프렌치 키스’로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라이언은 동안 스타로 각광받았다. 올해 46살이 된 라이언은 성형 실패로 인해 세월을 비껴가는 외모에서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외모로 변모해 팬들에게 큰 안타까움을 전해주고 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 김지혜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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