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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살 서신애가 밝힌 ‘아역배우’의 ‘명과 암’

    10살 서신애가 밝힌 ‘아역배우’의 ‘명과 암’

    탤런트 서신애(10)가 ‘아역 배우’의 명과 암에 대해 밝혀 눈길을 끌었다. 1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열린 KBS 1TV 후속 TV소설 ‘청춘예찬’(극본 최민기·연출 이진서)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서신애는 데뷔 5년차 인기 아역배우로 자리매김 하기까지 자신이 느꼈던 아역배우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했다. “요즘은 학교 가는 것 보다 촬영이 더 재밌다.”며 함박 미소를 머금은 서신애는 최근 촬영 중인 ‘청춘예찬’의 순자역 재미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서신애는 “처음 TV에 나올 때는 6살이었다.” 며 ”그동안 연기해 오면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아역배우의 장단점을 화두로 꺼냈다. “연기하면서 여러 언니 오빠 배우들에게 많은 점을 배울 수 있는 점이 가장 좋다.”고 밝힌 서신애는 “어려운 연기가 있으면 도와 주시고 때로는 친구같이 놀아 주시기 때문에 매번 촬영장 가는 것이 즐겁다.”고 전했다. 서신애는 가장 배울 점이 많은 연기자로 지난해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할아버지와 손녀딸로 호흡을 맞췄던 신구를 꼽았다. 서신애는 “신구 할아버지는 연기도 잘하시지만 재밌고 자상하셔서 정말 많은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상한 점도 있다.”고 말을 이은 서신애는 “가장 아쉬운 점은 학교에 빠지게 되는 점과 친구들처럼 공부 할 수 없다는 것, 또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학급에서 부반장이라고 밝힌 서신애는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공부하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며 “어제와 오늘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학급 친구들이 모두들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학교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서신애는 연기 선생님이자 촬영 일정을 함께 소화하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엄마는 연기를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촬영도 함께 다니신다.”고 자랑한 서신애는 “남동생도 있는데 멀리 지방으로 촬영 갈 때면 가족들에게 더욱 미안하다. 특히 엄마가 아프셨을 때는 너무 미안했다.”고 어린이 답지 않은 속내를 드러냈다. 가장 자신 있는 연기로 영화 ‘눈부신 날에’에서 열연했던 우준 역을 뽑은 서신애는 “당차고 씩씩한 연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이제는 눈물 연기도 많이 익숙해 졌다.”고 진지한 모습를 보였다. 장차 장래희망을 묻자 서신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연기자’가 아닌 직업들을 쏟아냈다. “선생님이 제일 되고 싶고, 애니메이션 작가도 되고 싶고…” 꿈을 열거하던 서신애는 “저는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였다. 한편 서신애를 캐스팅한 ‘청춘예찬’ 이진서 PD는 “모든 배역 중 서신애를 가장 먼저 캐스팅 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극중 순자가 야무지고 당돌한 어린이 캐릭터 인데 연기력과 표현력을 갖춘 아역 배우로 처음부터 서신애가 딱 떠올라 가장 먼저 결정했다.”고 엄지를 추켜 세웠다. 서신애와 이진서 PD가 호흡을 맞춘 KBS 1TV의 새 TV소설 ‘청춘예찬’은 1960년대 후반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시대극으로 내년 1월 5일 첫 방송된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 KBS,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1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고령화 사회를 넘어 이제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고령사회의 적은 ‘병든 노년’이다.누구에게나 노년을 맞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은 삶의 마지막 계절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길이다.건강하게 늙는 것이 개인과 사회를 위한 과제가 되었다.과연 어떻게 건강하게 늙을 것인가. ●대결! 노래가 좋다(KBS2 오후 8시55분) 결혼 후 방송3사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채영이 심수봉의 ‘개여울’을 그녀만의 매력적인 음색으로 부른다.최근 스포츠 해설가와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활동 중인 유상철이 ‘대결 노래가 좋다’에 첫 출연하여 그동안 방송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노래실력을 선보인다. ●그 분이 오신다(MBC 오후 7시45분) 자신이 낸 방송사고로 감봉 처분을 받았다는 전진에게 미안해진 영희는 사과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후진하던 전진의 차에 부딪쳐 입원하게 된다.한편,문식의 기를 살려주기로 한 경순과 소정은,문식에게 가족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만한 피자를 만들면 차를 한 대 사주겠다고 말한다. ●연애시대(SBS 오후 11시15분) 후끈했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버리는 내 남자의 개념없는 말.20,30대 여성들이 직접 뽑은 ‘키스 후 하지 말아야 할 말’ BEST 5가 공개된다.‘남자들은 다가오는 여자를 막지 않는다?’.사실 확인을 위한 실험 개시! 길거리에서 남자들에게 연락처를 건네는 미녀.과연 몇 명이 미녀에게 연락을 할까.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한 연구에 따르면 6살부터 12살 사이의 아동 10명 중 한명은 어떤 상태로든지 간에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과연 우리 아이는 소아우울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소아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이며,소아우울증을 겪는 아이의 정확한 진단,치료방법 등을 배지수 원장과 함께 이야기해 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지난해 시드니로 이민을 떠난 이모씨는 이민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백혈병 판정을 받고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다.외로운 투병생활에서 이씨에게 힘이 돼 준 이들은 바로 동포 자원봉사자들이다.자원봉사자들은 병 간호뿐 아니라 영어가 서툰 이씨를 위해 든든한 통역사가 돼 주고 있다.
  • 이기우 “난 미녀 톱스타 첫사랑 전문배우”

    이기우 “난 미녀 톱스타 첫사랑 전문배우”

    오는 10일 첫 방송되는 SBS 수목드라마 ‘스타의 연인’에 주인공인 이기우가 ‘톱스타 연상녀만 상대하는 첫사랑 전문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해 화제다. 그동안 이기우는 영화 데뷔작인 ‘클래식’에서 손예진과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고 영화 ‘극장전’에서는 엄지원의 첫사랑으로 등장했다. 영화 ‘두 사람이다’에서는 윤진서와, ‘새드 무비’에서는 신민아, 개봉을 앞둔 ‘달콤한 거짓말’에선 박진희의 첫사랑이다. 또한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서는 16살 연상의 억척엄마 문희경의 사랑을 받는 노래방 총각으로 ‘사랑을 놓치다’에선 8살 많은 송윤아를 사이에 두고 설경구와 주먹다짐까지 벌이는 사이였다. MBC 드라마 ‘발칙한 여자들’에서는 띠동갑 연상의 이혼녀 유호정과 뜨거운 키스를 나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기우가 ‘첫사랑 전문 배우’로 러브콜을 많이 받는 이유는 모성을 자극하는 여린 외모와 훤칠한 키와 소년다움 순진함이 누나들을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우는 톱스타 미녀들과 러브라인을 형성해도 대부분 연적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기우는 ‘스타의 연인’에서도 한류 톱스타로 등장하는 최지우를 넘본다. 극중 재벌 2세 정우진으로 출연하는 이기우는 최지우를 두고 유지태와 삼각관계를 이루게 된다. 이에 대해 이기우는 “이번 작품 ‘스타의 연인’에서도 유지태 형의 매력이 워낙 뛰어나서 최지우 누나를 또 빼앗길 것 같다.“며 ”이젠 톱스타가 아니라도 좋으니 내 여자를 찾고 싶다.”고 전했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들과 함께하는 캠퍼스 생활 설레요”

    “아들과 함께하는 캠퍼스 생활 설레요”

     “아들과 함께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게 돼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요.”43세 어머니가 신체 장애를 가진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들과 나란히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진학했다. 2009학년도 계명대 미술대 서예과 수시 2학기 신입생 모집에 백경화씨가 아들 이시원(18)군과 동시에 합격했다.  어머니 백씨는 1984년 고교를 졸업한 후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살아오다 신체적 장애를 안고 있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늦깎이 공부를 시작, 당당히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백씨의 아들 시원군은 6살 때부터 근육세포가 퇴화되면서 힘이 없어지고 심할 경우 팔다리가 마비되는 근이양증에 걸렸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접지 않았다.백씨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함께 책을 펼쳤다.  백씨는 “시원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시원이 덕분에 평생의 한(恨)으로 남았던 대학 생활을 할 수 있게 돼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아들 시원씨도 “엄마와 함께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건반위의 순례자’ 백건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건반위의 순례자’ 백건우

    피아노 건반은 겨우 88개뿐이다.하지만 건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영원무궁하다.무엇이 그토록 무한한 음악을 만들어낼까.열개의 손가락으로 그저 피아노 건반을 휘갈겨 놓았을 뿐인데 혼을 빼놓는 감동의 시(詩)를 끊임없이 토해낸다.그러면서 구도자의 길을 떠난다.가는 발길은 눈을 감아버려도 사뿐사뿐 새털처럼 가볍다.손놀림은 흐르는 맑은 물 위에 낙엽 하나 올려놓은 듯 세상을 부드럽게 연주한다. ●매년 이맘때 귀국해 고국팬 위해 연주회 ‘건반 위의 순례자’ 피아니스트 백건우(62)씨.파리에 거주하는 그는 지난 해 일시 귀국해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 연주회를 가져 우리에게 ‘베토벤 바이러스’의 세계로 이끌었다.이 무렵,명언 하나. “이제야 피아노를 조금 알 것 같다.”는 득도의 길에 들어선 소감을 피력했다.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을 볼 때 어쩌면 베토벤과 만나는 것이 숙명적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비록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둘 다 9살무렵 피아노 첫 리사이틀을 가졌고 베토벤(1770∼1872)이 사망한 나이(57)에 백씨는 베토벤의 세계에 불랙홀처럼 빨려들어갔다.“베토벤의 대변인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이순(耳順)이 지난 나이에 베토벤의 못다한 음악을 대신하듯이 말이다. 그는 매년 이맘때면 고국의 팬들에게 음악적 감동을 안겨주기 위해 잠시 귀국한다.올해에는 ‘현대음악의 성자’라 불리는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가지 시선’ 전곡연주(11월30일·예술의 전당)로 팬들과 만났다.1996년 명동성당에서 처음 선을 보였지만 메시앙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연주여서 또다른 감동 드라마를 연출했다.이 곡은 연주시간만 두 시간이 넘는 고난도 대곡이다.신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세계를 표현해낸다.파워넘치는 젊은 피아니스트도 소화하기 힘든 레퍼토리를 나이 60이 넘은 그가 꾸준히 도전하는 까닭은 뭘까.  예술의 전당 공연 직전, 지난 주 저녁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 카페에서 백건우·윤정희씨 부부를 만났다.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이 아주 다정해 보였다.인터뷰는 백건우씨 위주로 했다.때마침 대원음악상 수상소식을 접한 터여서 축하인사부터 건넸다. →출국은 언제 하시는지요. “오는 6일 중국 선전에서 연주회가 있어요.그걸 끝내고 귀국했다가 바로 떠나려 했는데 대원음악상 시상식이 11일에 있어서 조금 늦춰졌습니다.” (수상에 대해)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구도자적 몰입과 백씨의 열정적 삶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안다고 하자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가벼운 웃음만 지었다.활달한 성격의 윤씨와는 달리 백씨의 말투는 약간 어눌(?)한 듯 천천하면서도 조용했다. ●메시앙의 곡과는 40년전 쯤에 첫 인연 →메시앙의 곡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인가요. “아마 40년 전쯤 될 겁니다.줄리아드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메시앙의 음악회에 갔었지요.이때 메시앙의 부인 이본 마리오가 연주를 했는데 완벽한 구조와 다양한 테크닉,그리고 성경에 담겨진 진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그후 1980년대 중반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고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몇차례 전곡연주를 했습니다.” →이 곡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독특한 불협화음에 희랍과 힌두언어의 리듬,그레고리안 찬트,모차르트,드뷔시 등 모든 음악적 언어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습니다.성모마리아의 자장가같이 울리면서 천지창조하듯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곡을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메시앙 자신이 써놓은 작가노트와 성서연구가 동반돼야 합니다.이 곡의 해석 포인트는 종교적인 내용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했느냐에 있지요.저 같은 경우에는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많이 들었습니다.” →메시앙은 어떤 인물인가요. “자연인으로 성스럽고 겸손했습니다.늘 봉사하는 자세로 살았지요.작은 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로 봉사하기도 했습니다.세계 최고의 음악인이었지만 아주 따뜻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걸로 압니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성당이 있어요.외국 연주가 없을 땐 아내와 함께 항상 갑니다.또 외국에 갔을 때에도 웬만하면 시간을 내서 성당에 가지요.어느 겨울 폴란드에 갔을 때 성당 안이 꽉차 밖에서 미사를 본 적도 있고 아프리카 튀니지에 갔을 때에도 성당을 찾기도 했습니다.”   화제를 베토벤쪽으로 돌렸다.그러자 베토벤 음악이 가깝게 느껴진 것은 10년 전쯤이라고 했다. 베토벤은 음악의 풍족함을 지닌 작곡가이면서 시대를 초월한, 세상 모든 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음악은 꿈과 용기 주는 것 →베토벤 음악을 잘 감상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베토벤에게는 여러 음악이 있습니다.합주곡,교향곡,소나타 등 폭이 넓지요.여러가지 음악을 듣고 자신과 통하는 음악을 찾으면 됩니다.그 곡을 찾는 길에 재미를 느끼면 한층 베토벤과 가까이 할 수 있어요.”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용기와 꿈,희망,무한한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음악 세계가 점점 풍부해지면 풍부해질수록 더 궁금해지는 것도 많습니다.거기에 대한 열정도 더욱 커지는 것이지요.저도 그 무한함에 빨려들어가고 있습니다.” →건반위의 시인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음악도 소리로써 시를 씁니다.소리란 신비스럽고,같은 곡,같은 무대에 서도 매번 분위기가 다릅니다.많은 작가들이 음악감상을 하면서 콤플렉스를 느낄 정도라고 할까요.음악의 소리는 한정없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집니다.추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가능하지요.” →데뷔무대를 언제로 기억합니까. “1967년 카네기홀에서 연주도 했고,1969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한 것도 있지만 나름대로 음악세계를 알고 연주한 것이 1972년 26살때였습니다.뉴욕에서 라벨 전곡을 연주했지요.그러더니 뉴욕타임스에서 ‘그동안 감동의 순간을 꿈꾸지 못한 최초의 무대’라면서 대서특필하더군요.저는 이때를 음악적으로 데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라벨을 필두로 드뷔시,폴랑,무소로그스키,프로코피예프,리스트,바르토크,모차르트,슈베르트,스크리아빈,메시앙,베토벤 등의 피아노 음악을 집중 연구해오고 있다. ●필요성 못느껴 아직도 자가용 없어 →왜 피아노를 좋아합니까. “피아노는 종합적인 악기입니다.어떤 음악을 하든,작곡을 하든,연주를 하든 피아노가 필요합니다.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악기이지요.또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합니다.” →피아노를 잘 연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즘 젊은이들도 피아노를 잘 칩니다.그런데 피아노를 마스터했다는 사람이 있어요.음악 자체가 미완성인데 어불성설이지요.우리가 피아노를 통해 표현하려는 것은 기교가 아닙니다.메시앙의 경우 어떻게 성스럽게 표현할까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가장 성공한 스타커플이라고 합니다.평소 부부싸움을 합니까. “당연히 싸우지요.하지만 1초 뒤면 화해를 합니다.(윤씨가 백씨를 쳐다보며)서로를 이해하고 취미도 같고 사치하는 것 좋아 안하고,그런 것 등등이 비슷해요.” 백씨 부부는 아직도 자가용이 없다.가정부도 물론이다.지금까지 살면서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슬하에 바이올리니스트인 딸(31)이 있는데 해외 연주가 많아 자주 못 본다고 했다.내년 5월쯤 또다시 잠시 귀국할 예정이라면서 헤어졌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동성결혼이 합법인 런던의 ‘男男커플’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동성결혼이 합법인 런던의 ‘男男커플’

    |런던 박건형특파원|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거리,일본 도쿄 교엣마에.동서양을 대표하는 대도시에 자리잡은 두 거리의 공통점은 ‘동성커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점이다.동성연애는 고대 로마시대 이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남과 여라는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시각은 기독교,가톨릭,이슬람 등 어느 종교나 민족의식을 막론하고 동성애자를 인정할 수 없는 ‘절대악’이자 사회부적응자로 인식하게 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비교적 동성애자 비중이 높은 예술인들이 많이 활동하는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파리,런던 등지의 대도시에는 하나둘씩 ‘게이마을’로 불리는 그들만의 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특히 지난 수십년간 일반인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행사해 온 엘튼 존,조디 포스터 등 유명 연예인과 패션,예술계 스타들이 잇따라 ‘커밍아웃’을 하며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각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개인의 가치추구와 성문화에 개방적인 유럽 각국은 21세기 이후 잇따라 동성커플의 혼인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으며,미국에서도 일부 주정부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물론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가 다시 불법화시킨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성연애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개방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사회학자들은 동성애가 발전적인 인간형태라고 평가할 수 없지만,사회적 통합과 사회 자체의 포용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가늠자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영국 런던에서 만난 동성커플 에드워드(28·여행사 직원)와 톰(27·런던시 공무원)은 3년전 동성애자 파티에서 친구 소개로 만난 후 함께 살고 있다.두 사람은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그렇게 타고난 것”이라며 “단순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 데는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는 문제지만,성적인 문제를 포함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다음은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 자신이 동성에 관심을 느낀다는 것을 언제 깨달았고,가족들에게는 언제 알렸나? -톰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있었지만 취향이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했었다.스무살 때 미국을 방문했는데 동성애자들이 모여사는 지역에 살았다.그때 그들과 얘기하면서 깨닫게 됐다.집에는 22살 때 얘기했다. -에드워드 나 역시 16살까지는 여자친구가 있었다.그런데 18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입학 전에 1년간 사회 경험을 쌓을 때 여러 동성애자들과 접할 기회가 있었다.그들이 너무 편했고,나 역시 그들 중 일부가 됐다. 21살 때 가족들에게 말했는데,아직까지 보수적인 할아버지는 모르신다.톰과 나 모두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전통적인 영국 가정에서 자라서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다만 고백하고 나니 정말 편해졌다. 비교적 개방적인 영국의 경우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식이 세대별로 어떻게 다른가?받아들이는 정도가 세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는지. -톰 부모세대부터는 동성연애자들이 늘고 있는 분위기를 이해하는 것 같다.부모님들은 고백을 잘 받아들이셨다.영국이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조금 쉽지 않았나 싶다.나이가 든 동성애자들하고 얘기해보면 지난 30년간 많은 사회경제학적인 변화가 있었으며,동성애를 보는 시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하다. 영국 내에서 동성애에 대한 법적인 권리는 어떻게 돼 있나? -에드워드 현재 영국에는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이라는 권리가 있다.동성커플에게 결혼한 이성커플과 똑같이 보험,유산 등의 권리를 동등하게 부여한다.다만 명칭이 다를 뿐이다. 영국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나? -톰 런던은 진보적인 도시고,인구도 많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한 이후 가족들과의 약간의 마찰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다만 시골도시에 가면 아직도 조심하게 된다.호텔에서 방을 구할 때도 ‘더블침대’대신 ‘트윈침대’를 요청한다.얼마 전에 에드워드와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는 아예 방을 두개 빌리기도 했다. 영국은 캐나다나 네덜란드처럼 동성연애에 대해 100% 개방적이지는 않지만,점차 개방화되고 있는 추세다.정부 정책에 대해 바라는 부분이 있나? -에드워드 아직 나이가 어려 톰과 결혼계획을 잡고 있지는 않다.결혼한 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에는 만족한다.굳이 ‘결혼’이라는 명칭을 얻고 싶어하는 동성커플도 있지만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점진적인 변화가 바람직한 것 같다.다만 교육기관에서 교사들은 아직까지 동성애에 대한 이해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어린 시절에 일찍 동성애를 자각하는 학생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톰 20년 전만 해도 학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인종차별적인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점차 사회가 변해서 지금은 이런 것이 금지돼 있고 교사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이렇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kitsch@seoul.co.kr
  • [일요영화] 블랙아웃

    [일요영화] 블랙아웃

    ●블랙아웃(SBS 영화특급 밤 1시) 미국드라마의 인기와 영화 ‘추격자’,‘세븐데이즈’ 등의 성공으로 이젠 국내에서도 인기 장르로 자리잡은 스릴러물.영화 ‘블랙아웃’은 ‘프라하의 봄’,‘필사의 도전’ 등의 작품에서 할리우드 대중주의와 장인의 연출력을 조화롭게 접목시켰던 필립 카우프먼 감독의 스릴러 영화로 큰 관심을 모았다.극의 구성은 ‘여형사의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고,숨겨진 진실을 찾는다.’는 것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극이 끝날 때까지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혼란에 빠진 인간 심리에 대한 묘사나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서의 여형사인 제시카(애슐리 주드)는 어렸을 때 겪은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경찰관이었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당시 6살이었던 그녀는 아버지의 경찰 파트너였던 부장 존 밀스(사무엘 L. 잭슨)의 도움을 통해 경찰로 성장하고,과거의 암울한 기억 모두를 잊고 싶어 한다.강력반계 최초로 여자 경관이 된 제시카.그녀는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지만,여성이라는 이유로 팀내 남자 경찰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하지만 자신의 파트너 마이크(앤디 가르시아)만은 늘 옆에서 그녀를 응원하고 격려해 준다.  드디어 첫번째로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연쇄살인사건.해변가에서 몸에 난도질을 당한채 발견된 시체로부터 시작된다.그러나 피해자들이 제시카가 하룻밤을 보낸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살인 사건이 발생한 밤마다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셨던 제시카는 정신을 잃어 그 순간의 기억이 없다.  결국 4번째 희생자와 함께 침대에 누운 채 발견되는 제시카.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제시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 사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뭐니뭐니해도 스릴러영화의 가장 큰 묘미는 ‘범인이 누구냐’를 놓고 관객들과 벌이는 ‘두뇌게임’이다.그런 면에서 영화 ‘블랙아웃’은 일단 범인을 찾아가는 구성을 따라가는데 무리는 없지만 종종 몰입을 방해하는 구석이 있다.아무리 안좋은 기억을 잊기 위해 매일 밤 술을 마신다지만,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여주인공의 행동은 설득력을 잃는다.2004년초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대중적 흥행에 실패하지는 않았지만,일부 평론가들은 극적 개연성과 연출의 디테일 부족을 들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렸다.하지만 지나치게 감독의 이름 값에 기대지 않더라도 애슐리 주드와 앤디 가르시아 등 호화 배역진의 연기와 스릴러물 특유의 긴장감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블랙아웃’은 정신의학 용어로 ‘일시적인 기억상실’을 뜻한다. 97분.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천상의 목소리’ 코니 탤벗, 12월 14일 내한 공연

    ‘천상의 목소리’ 코니 탤벗, 12월 14일 내한 공연

    ‘천상의 목소리’로 유명한 7세 영국 소녀 코니 탤벗이 한국을 찾는다. 코니 탤벗은 6살의 나이로 영국 ITV의 ‘Britain’s Got Talent’(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출연, 2위에 입상해 화제가 됐으며 2007년 영국에서 발매된 첫 음반 ‘Over The Rainbow’로 20만장 이상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지난 4월 국내 앨범 발매를 기념하며 한국을 찾은 코니 탤벗은 당시 SBS ‘스타킹’에 출연해 국내 팬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에 코니 탤벗은 그 인기를 보답하기 위해 지난 22일 국내에서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 ‘Connie Talbot’s Christmas Album’을 발매하고 다음달 14일 오후 7시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이병우, 임태경, 서울 시립 뮤지컬 단, 레퍼토어 앙상블 등과 ‘코니와 친구들의 행복한 콘서트’를 연다. 더욱이 코니 탤벗은 이번에 발매된 음반에서 20여 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The Laurence Cottle Big Band’의 스윙 재즈 스타일의 반주에 ‘Bulgarian Symphony Orchestra’, 12명의 어린이로 구성된 합창단, 그리고 여성 보컬리스트 ‘Ginger Kwan’이 녹음에 참여로 예전 보다 한 층 맑은 목소리로 음악 팬들을 사로잡을 예정이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다음달 9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을 찾는 코니 탤벗은 12월 방송 될 SBS ‘스타킹-왕중왕전’ 편에도 출연할 계획이다. 사진제공=뮤직 컴퍼스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배우 세계적인 부호와 잇단 결혼 “미녀는 재벌을 좋아해!”

    中배우 세계적인 부호와 잇단 결혼 “미녀는 재벌을 좋아해!”

    홍콩 유명배우 리자신(이가흔)이 지난 23일 홍콩 재벌 2세 줄리안 후이와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아시아 팬들은 리자신과 후이의 결혼소식 뿐만 아니라 결혼식을 위해 약 200억원을 지출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재벌2세는 중화권 유명배우들의 단골 신랑감이다. 최근에는 여배우뿐만 아니라 여자 스포츠 스타들도 재벌 2세와 결혼을 발표하는 등 중화권에서 ‘유명스타와 재벌가의 만남’은 당연한 공식처럼 자리 잡혀 있다. 재벌2세와 스타의 결혼이 빈번한 이유는 중화권 재벌기업 대부분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남을 가졌다가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 사례가 많다. 또한 홍콩사교계는 유럽이나 북미지역 못지않게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크고 작은 사교모임에서 재벌2세들과 여배우들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지금까지 재벌2세와 결혼을 했거나 앞두고 있는 중화권스타들은 누가 있는지 살펴봤다. ◆ 아시아 재벌 + 유명여배우 궁리는 지난 96년 싱가포르 출신 사업가 황허샹과 화촉을 밝혔다. 궁리와 황허샹은 지난 94년 첫 만남을 가졌다. 장이머우와 궁리가 결별한 후 황허샹이 궁리를 위로하면서 가까워져 이듬해 결혼했다.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하는 궁리는 10년 결혼 생활 동안 숱한 스타들과 염문을 뿌렸다. 급기야는 지난 2005년 12월 이혼에 합의했으나 지금까지 명확하게 서류를 정리한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법적으로 엄연히 부부이다. 린칭샤(임청하)는 지난 94년 홍콩의 의류재벌 싱리 회장과 결혼한 후 일체의 연예활동을 중단했다. 이들 부부는 한 자선파티에서 우연한 만남을 가졌다. 린칭샤를 보고 한눈에 반한 싱리는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린칭샤는 대만배우 친한과 약 20년 동안 만남을 이어왔다. 때문에 느닷없는 싱리와의 결혼 발표는 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홍콩출신 유명모델 쉬쯔치(서자기)는 지난 2006년 12월 홍콩최대 부동산 재벌인 헝지그룹 리자오지 회장의 둘째아들 리자청과 결혼을 했다. 모델 일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던 쉬쯔치는 세계 22위, 아시아 2위 재벌인 리자청을 만나면서 인생이 180도 뒤바뀌었다. 이들은 결혼식 비용에 약220억 원을 지출했으며 지난 2007년 7월 첫딸을 출산할 때는 총 10억 원이 넘는 비용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때문에 홍콩시민들은 이들의 절제 없는 소비행태에 “너무 무분별하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 재벌 + 스포츠스타 ’다이빙 여제’ 궈징징은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국민스타로 떠올랐다. 궈징징은 지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재벌 3세인 훠치강과 특별한 관계임을 시인했다. 이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다 베이징 올림픽 전 결혼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훠치강은 지난 2006년 타계한 훠잉둥의 손자이다. 훠잉둥은 중국 정치인민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냈다. 그의 사망당시 美 포브스지 집계결과 자산이 약 3조 8천억 원으로 세계 181위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다이빙 스타’ 푸밍샤는 지난 2002년 전 JP모건 체이스 아시아 태평양 지역 CEO 량진쑹과 결혼을 발표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량진쑹의 개인자산은 약 2억 홍콩달러로 홍콩에서 손꼽히는 금융재벌이다. 특히 량진쑹은 푸밍샤보다 26살 연상으로 한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많은 팬들이 “얼마나 가겠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이들 부부는 자녀 한명을 두고 지금까지 행복한 가정을 꾸려오고 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운전사 치고 주저앉은 아가씨 강도(强盜)

    운전사 치고 주저앉은 아가씨 강도(强盜)

    벽돌로 운전사의 뒤통수를 치고는 팔다리가 떨리고 머리가 멍해져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는 「택시」강도. 지난 2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양재동에서 일어난 여자「택시」강도 제 1호의 전말기.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 서글서글한 눈매, 이따금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도무지 「택시」강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수강도미수」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서울 노량진 경찰서에 구속된 이 아가씨의 이름은 이경숙(李京淑)양(19·가명). 범행동기를 묻는 취조형사에게 그녀가 말한 첫마디는 『그이한테만은 제발 연락하지 마세요. 너무나 착한 그이는 이 소식을 들으면 까무러칠 거예요』라는 것이었다고. 아니나 다를까, 기자에게도 「그이」걱정을 앞세우는 李양이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그이」는 지난해 가을부터 동거해온 사이라는 남상태(南相泰)씨(27·가명·성북구 불암동). 막벌이로 연로한 조모를 모시고 근근히 살아가는 남씨를 돕고 싶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이양이 남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성북구에 있는 불암산에 놀러갔다가 불암사에서 잔심부름을 해주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이 할머니가 남씨의 조모. 이양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할머니가 『아가씨가 우리 손자며느리 되어 주었음 좋겠소』하고 말을 꺼낸 것이 동기가 되어 맞선을 보게 됐고, 두 남녀들 첫눈에 서로 좋아해 버렸다는 것.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남씨는 고등학교까지 다닌 이양을 지극히 사랑해 주었다. 그리고 이양은 이미 「과거가 있던 몸」인지라 남씨의 순진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더욱 더 사랑을 쏟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공무원인 아버지 밑에 4남2녀중 막내로 태어난 이양은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국민학교와 여중을 졸업했다. 그러나 이양이 S여고에 입학하던 16살 때 아버지는 간암으로, 곧이어 어머니마저 홧병으로 숨을 거두어 이양은 이때부터 오빠와 시집간 언니집 등을 전전하는 고아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학교를 야간으로 옮기고 낮에는 모부대 인사처에서 사환일을 했다. 이때 (여고1) 박모라는 청년을 알게 되었다. 환경의 탓인지 나이에 비해 조숙한 이양은 2학년이 되자 학교를 그만 두고 박씨와 서울 창신동에 「아파트」방 하나를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한 6개월을 살다가 박씨와 헤어지고 다시 오빠집에 얹혀 살았다. 이미 임신 6개월의 무거운 몸이었다. 얼마 후 사내아기를 낳은 이양은 박씨와 타협, 다시 면목동에 살림을 차렸으나 곧 박씨는 아들과 함께 자취를 감춰버렸다. 오갈데 없는 이양은 또 언니집과 오빠집에서 신세를 지며 불량소녀들과 어울려 다녔다. 불암사에 놀러 간 것은 이때의 일. 『그분들(南씨와 할머니)은 정말이지 법이 필요없는 사람들이에요. 하루 품일을 못 가는 일이 있어도 남을 도우려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생활은 말이 아닐 정도로 가난한 것이 이들 남씨네의 집안형편이라는 것. 할머니는 너무 연로해서 이젠 절에서 잔일도 거들 수 없을 정도이며 남씨가 하루하루 막벌이를 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양은 다만 얼마의 돈이라도 마련해서 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집에 가서 돈 만원쯤 얻어 오겠다』며 남씨집을 나선 것이 지난 1월 29일. 그러나 오빠집에서도 언니집에서도 돈을 얻지 못했다. 범행을 저지른 2일 아침 10시쯤 영등포구 양재동에 사는 언니집을 빈 손으로 나선 이양은 마포구 도화동으로 언니 친구 김(金)모양(23)을 찾아갔다. 그러나 김양은 얼마 전에 시집을 가버리고 집에 없었다. 『그 언니만 시집가지 않았어도 1~2만원쯤은 얻어 올 수 있었어요. 2만원 정도 빌려 친언니한테 1만원정도 주고 1만원 정도 갖고 가려했는데…』 김양집을 나선 것이 하오5시반쯤. 이젠 더 가볼데도 없어 철길을 따라 정처없이 걸어가다 벽돌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그것을 집어든 이양은 마침 철길 옆을 지나는 「코로나·택시」를 세워 탔다. 싸지도 않고 그대로인 벽돌 한 장을 손에 든채. 『양재동으로 갑시다』언니집 3백m앞까지 「택시」가 왔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고만 있었다. 「미터」기를 보니 요금이 8백여원이나 나와 있었다. 호주머니에는 단돈 2백원 밖에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으니 돌아나가자』고 한뒤 운전사 바로 뒷자리로 옮겨앉아 눈을 딱감고 운전사 머리를 벽돌로 내리쳤다. 운전사가 까무러치자 이양도 정신이 없었다. 팔다리가 떨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그 자리에 앉아 엉엉 울어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이양도 운전사도 몰랐다. 어쨌든 한참만에 깨어난 운전사는 이양을 쉽게 잡아 경찰에 넘겼다. 이양은『내가 벽돌을 쥐고 타는걸 운전사가 보기만 했더라도 이런 어리석은 일은 안저질렀을텐데…』 하며 정말로 어리석은 후회를 했다. 『교도소에 가서 소설을 쓰겠읍니다. 모두에게 사죄하고 특히 그이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에서 글을 쓰겠습니다』 학교 때 몇 번인가 소설을 써서 상을 타보기도 했다는 문학소녀 이양은 눈물을 닦으며 체념한 듯 이렇게 말 끝을 맺었다. [선데이서울 72년 2월 13일호 제5권 7호 통권 제 175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30년만에 뮤지컬 ‘고교얄개’ 이승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30년만에 뮤지컬 ‘고교얄개’ 이승현

    인생을 정신없이 살다가 중년의 나이에 딱 어느 하루쯤이다. 20~30년 전의 ‘나’를 만나 데이트를 한다면? 당신은 과연 무슨 말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하루를 같이 지낼 거나. 무대 구석에 조명이 들어온다.40대 후반의 ‘나두수’가 등장한다.(객석을 향한 독백)참 세월이 빠르죠. 저도 여기까지 오는 데 한 30년은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더니만 틀린 말이 아닌가 봐요. 바람이 차가워지면 사람이 추억에 잠기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옛날 생각나고, 몰려다니던 친구들, 옛날에 가던 빵집, 영화관이 떠오르고, 그리고 첫사랑. 영아, 오영아~ 나두수는 유재하의 ‘지난날’을 부른다.‘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 하면서도~’ 이어 학창시절의 자신을 만난다. 젊은 두수: 어? 누구세요? 중년 두수: 나, 나두수다. 30년 후의 바로 너. 젊은 두수: 나라구요? (중년두수를 훑어본다) 야, 너 왜 이렇게 망가졌냐? 관리 좀 하지. 중년 두수: 너도 내 나이 돼 봐. 그게 쉽나. 그건 그렇고 이 자식이 왜 반말이야! 젊은 두수: 씨이, 아저씨가 나래매요. 자신한테 존댓말 쓰는 사람이 봤냐... 구요. 아무튼 그래서 대체 누구신대요? 중년 두수 : 내가 너라니까? 젊은 두수: 아 진짜 쪽 팔려, 아저씨가 나라는 증거를 대보시죠. 세월이 지난 중년의 ‘나’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나’라는 증거가 쉬이 나올 리 만무하며 소통 또한 썩 잘 될까 걱정이다. 어쨌거나 둘이 지낸 하루가 어떠했을지는 작가적 상상에 맡겨보자. 여기에 등장하는 ‘중년 두수’가 바로 하이틴의 우상으로 한때를 풍미했던 배우 이승현(47)씨.1977년 영화 ‘고교얄개’ 를 비롯,24편의 얄개 시리즈에서 주인공 ‘얄개’를 맡아 1970년대 중·후반의 스크린을 휘어잡았다. 당시 5만 관객만 들어도 흥행성공이었지만 ‘고교얄개’는 무려 25만명이 넘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도 얄개는 어느날 팬들의 곁을 홀연히 떠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이름도 점점 잊혀져 갔다. 몇 번의 국내 컴백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그럴 때마다 이상한 소문만 무성했다. 이런 그가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뮤지컬 ‘돌아온 고교얄개’(주원성 연출·내년 1월4일까지)에서 중년의 두수가 되어 추억의 팬들과 다시 만나고 있다. 세월속에 쪼그라진 지금과 꿈 많던 학창시절의 ‘얄개’를 만나 회상하는 형식이어서 이 가을에 잔잔한 추억을 선사한다. 그는 다섯살 때 영화에 데뷔,20여년 동안 무려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주연만 100여편을 맡았다. 또 80여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했으니 웬만한 30대 후반 이상의 팬들은 왕년의 얄개 모습을 여전히 생생 스토리로 기억하고 있다. 현재에도 포털사이트에 얄개팬클럽 회원만 5000여명에 이른다. 서울 정동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에서 데뷔 40여년 만에 오랜 침묵을 깨고 뮤지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씨를 만났다. ▶뮤지컬 무대에는 처음 서는 것으로 압니다. -맞습니다. 사실 늘 긴장이 됩니다. 한달 정도 연습을 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라요. 미흡한 점이 많지만 노래와 대사 등이 버무려지는 뮤지컬 특유의 맛을 느끼고 있습니다. 웃음을 일궈내고 관객들한테 박수도 많이 받아 기분도 좋습니다. 또 지난날의 나였던 젊은 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찡하고 그래요.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됐습니까. -제가 올 2월에 ‘잘될거야’라는 음반을 냈습니다. 이때 주위에서 뮤지컬을 한번 해보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그러던 중 ‘진짜진짜 좋아해’를 만든 제작진에서 교복세대를 위한 추억의 우리 뮤지컬을 만들자는 취지로 ‘돌아온 고교얄개’를 준비했지요. ▶팬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객석을 꽉꽉 메워 주시니까 기분이 무척 좋아요. 왕년에 추억의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던 아줌마 아저씨는 물론 요즘의 젊은 연인들도 많이 오는 것 같아요. ▶하이틴의 우상으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훌쩍 떠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때 군사정권 시절이었지요. 가요계에는 금지곡이 많이 있었고 영화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열도 심했고, 그때 제가 우상으로 너무 뜨니까 중앙정보부에서 은연 중 압박이 왔어요. 우상이라는 게 용납이 안 됐습니다. 특히 하이틴의 우상이라고 하니까 말이죠. 당연히 의욕이 꺾일 수밖에요. 그렇게 주춤하던 차에 서울에서 음식업을 하던 어머니의 사업이 실패하고 말았지요. 하루아침에 몰락하자 저는 영어공부나 하겠다며 달랑 3000달러만 갖고 캐나다로 혼자 떠났습니다.26살 때였지요. 캐나다 토론토에 도착한 그는 랭귀지스쿨을 마치고 영화역사를 공부하려고 토론토대학 1학기 과정을 다녔다. 하지만 돈이 쪼들리게 되자 공부를 포기하고 식당일이며 지렁이잡기 등 돈이 되는 일은 가리지 않았다. 사는 곳도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과 캐나다 북부의 위니펙 등을 전전했다. 그렇게 7년,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1993년 10월에 귀국했다. 곧바로 어머니와 함께 필리핀으로 갔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했다. 그러던 1995년 필리핀 현지 목사의 소개로 유학 온 한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2년 뒤 귀국한 그는 처가가 있는 대전에 살림을 차렸다. 마땅한 돈벌이가 없어 부인과 함께 만두가게를 열었다. 만두도 직접 만들고 배달도 했다. 1998년 어느날 옛고향인 서울 충무로를 찾았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충무로에서 여관을 하던 어머니 친구한테 놀러 갔다가 조긍하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에 첫 출연하면서 배우인생이 시작된 곳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다행히 지인을 만나면서 그렇게 원하던 영화 한 편을 찍게 됐다. 전무송, 박준규 등이 출연한 ‘블루스’에서 조폭 중간보스역을 맡았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세인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시 절망을 한 그는 대전에서 공중전화기와 감식초 판매일을 했다. 그러던 2001년 후배와 함께 영화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투자자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이 무렵 부인과 이혼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술만 마시고 자살하려고 한강까지 갔다. 어린 아들과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나 포기하고 돌아왔다. 마음을 다시 고쳐 먹은 그는 지방의 문화행사 등에 쫓아다니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얄개는 울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KBS의 ‘인간극장’에 등장,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팬클럽과 ‘얄개 이승현 살리기 운동본부’까지 생긴 것도 이때였다. “올해는 다시 시작하는 해입니다.‘잘될 거야’라는 음반을 내자 방송출연도 이어지고 있고, 영화 출연제의도 들어오고, 공연중인 뮤지컬도 반응이 좋구요.” 내년 봄에는 TV 방송 드라마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만큼 앞으로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으로 방송이든 영화든 닥치는 대로 하면서 팬들과 만나겠다.”고 했다. 아울러 ‘고교얄개’ 이상으로 대박을 터뜨릴 영화 한 편을 꼭 만들겠다고 했다.2대독자인 그는 슬하에 초등6년생의 아들을 두었다. 재결합한 부인과 함께 대전에서 산다. 영문학을 전공한 부인은 동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이승현은 누구 ▲1961년 서울 출생. ▲66년 조긍하 감독 ‘육체의 길’ 영화데뷔. ▲68년 동양방송 아역 탤런트 데뷔. ▲77년 ‘고교얄개’ 빅히트, 이후 24편의 얄개시리즈 주인공 출연. ▲80년 경복고 졸업. ▲82년 장안대 졸업. ▲86년 캐나다 출국.7년동안 토론토 몬트리올 위니펙 등에서 지냄. ▲93~97년 필리핀에서 신학공부 및 선교활동. ▲98년 귀국. 영화 ‘블루스’ 조연출연. ▲2008년 2월 음반 ‘잘될 거야’ 출반. ▲08년 11월 뮤지컬 ‘돌아온 고교얄개’ 출연 중. ●주요수상 청룡영화상(1972,73), 대종상특별상(73), 백상예술대상(74,75), 국무총리상(75) 등.
  • 日 첫 ‘엄마 우주비행사’

    日 첫 ‘엄마 우주비행사’

    |도쿄 박홍기특파원|6살난 딸을 둔 일본의 우주비행사 야마자키 나오코(37)가 오는 2010년 2월 우주비행에 나선다. 일본인의 우주비행은 7번째, 여성으로서는 두번째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11일 야마자키가 2010년 2월11일 발사 예정인 미국의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에 탑승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일본의 첫 엄마 비행사”라고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프로 기사(棋士)의 치사한 이야기

    프로 기사(棋士)의 치사한 이야기

    F=고단「프로」기사 김(金)모씨가 자기집 가정부로 있던 16살 소녀의 몸을 버려놓았다고 말썽이더군. 김씨는 지난 18일 처가에 가서 놀던 2살된 아들을 유괴당해 경찰에 신고했지. 범인을 잡고 보니 김씨집 식모로 있다가 1년 전에 그만둔 이(李)모양(16)이 아니었겠나. 충북 중원군 자기 집에 김씨 아들을 유괴, 숨어 있다가 잡혀온 이양은 경찰 신문에서『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유괴를 했다』 는 엉뚱한 진술을 한 거야. 사연을 들어보니 이양은 4년 전 한국기원에서 일하던 고향사람 소개로 김씨의 현 장모집에 가정부로 들어갔다는 것. 그때 기사 김씨가 이 집 맏딸과 약혼을 하고 동거생활까지 하게 되었지. 장모는 딸 생각을 해 이양을 딸네집에 보내 일을 돌봐 주도록 했고.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부터라고 할까. 결혼날이 가까와지자 딸은 결혼준비를 하느라고 친정으로 가고 집에는 김씨와 이양만 있었다나. 이래서 넘어선 안될 선을 넘어버렸다는 거야. 이양은 몸까지 망쳤는데 이씨의 장모에게 맡겨두었던 돈 1만원까지 주지 않아 앙갚음으로 김씨 아들을 유괴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선데이서울 72년 1월 30일호 제5권 5호 통권 제 173호]
  • [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돌아온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으로 디에고 마라도나가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디에고 마라도나! 이렇게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월드 스타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마라도나는 ‘살아 있는 신’이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마라도나교’를 만들어 그의 형상을 딴 신물을 만들어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한다. 우리에게는 마라도나가 현역 시절에는 잘 뛰었을지 몰라도 체중 조절도 못하고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입원도 하고 관중석에 앉아서 신경질적으로 팔이나 휘두르는 성질 급한 중년 사내로 인식되고 있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마라도나는 그저 잘 뛰는 축구 선수 이상의 존재이다. 70~80년대 아르헨티나는 여러모로 힘겨운 사정이었다. 수십년 동안 군부 독재가 억압해왔고 경제 사정은 형편없었다.1978년에 월드컵을 개최해서 우승까지 했지만 편파 판정 시비와 심판 매수설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네덜란드의 대스타 요한 크루이프는 ‘독재 국가에서 공을 찰 수 없다.’며 대회 참가를 거부했다.80년대 초반에는 아르헨티나 축구가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축구협회는 체격 조건이 좋은 장신 선수 중심으로 유럽 축구를 지향했다.19세기 말에 독일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들어왔기 때문에 유럽식 장신 축구를 할 만한 선수층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연전연패를 할 뿐이었다. 독재 정치와 가난한 경제 사정만으로도 힘겨운데 대표팀 축구마저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당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진실로 벅차고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16살의 어린 소년이 대표팀에 발탁되어 경천동지할 사건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라도나가 바로 그 소년이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주류 사회를 형성한 독일계 이민자들이 아니라 기나긴 세월 동안 아르헨티나 역사를 살아온 원주민 혈통의 작고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유전자 속에 내재된 축구의 열정으로 공을 찼다.168㎝의 마라도나는 전세계 축구팬들을 십수년 동안 열광시켰다. 그는 당시까지 유효했던 축구의 모든 조직력과 전술의 개념을 다 파괴해버렸다. 그는 축구라는 모든 요소를 가열하면 결국 `개인기´라는 최소 단위가 남는다는 것을 입증했던 위대한 선수다. 그가 대표팀 감독이 되어 세계 무대에 복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다. 만약 뉴욕 증시에 ‘세계 축구’라는 종목이 있다면 오늘 당장 상종가를 쳤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걱정한다. 그는 개성이 강한 ‘위대한’ 선수일 뿐 뛰어난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작은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선수는 이러해야 하고, 지도자는 저러해야 하며, 협회는 또 그러해야 한다는 식의 제도와 관습이 있다. 마라도나는 그런 제도와 관습을 16살 때부터 부정하면서 컸다. 그는 축구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유일한 야생마였다. 그는 결코 ‘착한’ 선수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이 점이 또한 그의 위대성을 말해준다. 그런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감독’ 마라도나가 되길 바란다. 거대한 구조에 길들여지는 게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마라도나가 ‘뛰어난’ 선수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나아가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마라도나 “울지마요 아르헨티나”

    ‘울지 마요, 아르헨티나. 내가 있잖아요.’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48)가 돌아왔다. 은퇴 이후 약물과 비만, 기행을 일삼던 천덕꾸러기가 아닌, 위기에 빠진 조국의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아르헨티나 국민들 곁으로 돌아왔다. AFP통신,ESPN 등 외신들은 29일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승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카를로스 빌라르도, 마라도나 등과 협의한 끝에 마라도나를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마라도나 감독 내정자는 멕시코 월드컵 당시 함께 선수로 활약했던 빌라르도를 코치로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마라도나의 48세 생일이 되는 30일 감독 선임 사실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현역 시절 펠레와 함께 ‘축구의 전설’로 평가받던 마라도나 감독 내정자는 1977년 16살의 나이로 A매치에 데뷔한 이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1984년 부터 7시즌 동안 나폴리(이탈리아)에서 활약하며 두 차례 세리에A 우승을 일궜으며 국제축구연맹(FIFA)이 수여하는 20세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선수 시절 이력과 달리 지도자로서는 1994년과 1995년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와 데 아베야네다를 맡은 것이 전부다. 마라도나 감독 내정자는 “선수들을 최대한 자주 만나볼 것이고 1986년 같은 팀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통산 13회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남미예선에서 4승4무2패로 파라과이, 브라질에 밀려 3위에 머물고 있다. 특히 최근 5경기에서 4무1패로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초등생·중년 등 12인의 석기시대 체험

    직접 움막을 짓고 사냥으로 음식을 구해야 한다면? EBS ‘리얼실험 프로젝트X’가 실험에 나섰다.21일부터 매주 화요일 3주간 오후 7시50분에 방송될 ‘석기시대를 가다’편에서 현대인 12명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인 9살 소년에서부터 46살의 중년 아저씨까지 12명의 지원자들이 3주 동안 인류 문명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살아보기로 했다. 이번 프로그램에 지원한 실험자는 모두 ‘귀농사모’(귀농을 꿈꾸는 모임) 회원들. 직업과 나이가 다양한 만큼 참여한 이유도 제각각이다. 군 입대 전에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인내심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는 이도 있다. 실험장소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의 금강 상류 지역. 문명의 이기들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는 데다 인적도 드문 곳이어서 그들의 실험을 방해할 건 아무 것도 없다. 참가자들은 3주간 꼼짝없이 돌과 동물의 뼈를 갈고 쪼개 생활도구를 만들고 음식을 구해야 했다. 옷은 가죽으로 직접 해 입었다. 사용하는 언어도 의성어나 의태어, 명사로만 제한됐다. 불은 실험 시작 직전에 딱 한번만 제공됐다. 과연 이들은 생존할 수 있었을까. 처음엔 모든 게 어설펐다. 밤 껍질을 숟가락으로, 갈대를 젓가락으로 그대로 활용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돌로 갈판, 도끼날, 칼날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소통. 한 실험자가 의문을 제기한다.“과연 석기시대의 언어가 있었을까?” 실험자들은 온갖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하며 의사소통을 시도해 보지만, 영 불편하다. 식량 구하기도 큰 문제. 조와 기장만 약간 제공될 뿐 나머지는 각자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이들은 밤, 다슬기, 민물조개, 메뚜기를 잡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뱀과 멧돼지까지 사냥하며 식사를 해결해 나간다. 위기 상황도 닥친다. 불이 없어 종일 한 끼도 못 먹은 출연자에게 제작진이 결국 딱 한번 더 불을 제공한다. 그러나 아차 하는 순간 불씨가 꺼지고 만다. 당번까지 정해가며 불을 사수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부상자도 속출하고 예고 없는 비에 움집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석기시대에서 진화를 이뤄낸다. 실험이 끝난 뒤 족장 최익화(46)씨는 ‘신석기 마을’이란 카페를 운영한다. 일부는 여전히 생식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매순간 첨단문명의 세례 속에서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이들의 실험은 얼마만큼의 충격으로 다가갈까.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16살 아이유 “애절한 정통 발라드로 도전”

    16살 아이유 “애절한 정통 발라드로 도전”

    이제 갓 16세의 생일을 맞은 신인가수가 애절한 사랑 노래를 부른다. 최근 데뷔 싱글을 발매하고 타이틀곡 ‘미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신인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 16)가 그 주인공으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어른들의 사랑이야기를 가사에 담았다. 목소리가 녹음된 음반만을 들었을 때 무르익은 20대 여성의 그것이 연상되지만 인터뷰를 위해 만난 아이유는 10대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른들의 사랑이야기가 어려웠어요.”라며 데뷔 음반을 녹음하던 당시를 회상한 아이유는 “작곡가 오빠와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접경험을 했어요. 가사를 귀담아 듣고 멜로디에 감정을 녹이느라 많은 노력을 했죠.”라고 데뷔곡 ‘미아’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고등학생 가수로 데뷔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양파보다 빠른 나이에 데뷔한 아이유는 10대 가수가 넘쳐나는 요즘 가요계에서도 유일한 솔로 발라드 싱어이다. 다수의 10대 소녀가수들이 그 또래의 발랄함을 이용한 댄스곡을 들고 나오는 것에 비해 아이유는 성인냄새 나는 정통 발라드로 도전장을 던졌다. 선배가수 거미의 음색에 반해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 아이유는 여느 10대 소녀답게 많은 가수들의 팬이었다.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으라니 선뜻 god를 말한다. “저는 god를 정말 좋아했어요. 특히 김태우 오빠의 팬이었거든요. 노래도 잘하고 푸근한 인상이 이상형이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순간만큼은 10대 소녀다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냈다. ‘자신과 팬들이 노래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데뷔명을 ‘아이유’라고 정한 10대 소녀가 만들어 나갈 음악 세계를 기대해보자.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 / 사진=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가족이 77명

    한가족이 77명

    상주(尙州) 박(朴)씨 중형(重衡)영감님하면 전남승주(全南昇州)군내에서 그 기록적인 다산성(多産性) 가문의 장노(長老)로 명망이 높다. 75년전 외톨박이 독자로 태어난 박옹은 56년전 첫아이를 본후로 1년에 1명이상씩 무성하게 자손을 퍼뜨리고도 그 자손을 대부분을 한 부락안에서 살게끔한 부족사회적「리더십」을 훌륭히 발휘한 것. 즐거운 새해 세배 가족을 찾아가 보면-. 구랍 22일 밤늦게 박옹은 논산(論山)에 살고 있는 4남 남석(湳錫)씨(46)로부터「아들출산」이란 반가운 전보를 받았다. 박옹은 서둘러 가족부난에 적어넣고, 새끼를 꼬아 대문앞에 금줄을 달아 걸었다. 자손들이 출산할 때마다 대문에 금줄을 거는 것이 박옹의 최대의 행사이자 기쁨이다. 『이번 금줄이 예순번째여라우. 아직도 10번쯤은 내 손으로 걸 수 있을 것이오』 믿을 수 없게 건강한 박옹은 찬바람을 맞받으며 씽긋 웃는다. 새해를 맞으면 박옹은 걱정스런 행복에 잠긴다고도 했다. 20살이하의 어린 자손들만 30명(외손은 제외)이니 세뱃돈을 작년엔 1백원균일로 하고서도 3천원. 금년에는 15살이상된 아이들에겐 인상해줄 작정이라했다. 『그러니께 내가 14살에 장가들었는디 첫애가 올해 쉰여섯이지요잉. 19살에 아들을 보았것지 않았소? 그 뒤로 지금까지 예순녀석이 태어난 셈이라우. 여기다 외손허고 외손손까지 합하면 77명이 될것이오』 「외손손」이 뭐냐고 물었더니 허허 웃고 난 박옹은「외증손」을 뜻한다고 대답. 까닭인즉 그의 3대조 할아버지 이름에 증(曾)자가 들어 있어서「증손」「외증손」의 증자는 기자(忌字)로 간주, 증자를 사용하지 않고 외손손·손손으로 표기한다는 설명이다. 세뱃돈 올릴 행복한 걱정 박옹 일가가 살고 있는 곳은 전남 승주군 상사(上沙)면쌍지(雙之)리부락. 순천(順天)시에서「택시」로만 1시간20분. 궁벽하기 짝없는 노령산맥 휘어지는 산골동네다. 박옹 선조대대 2백년전부터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 그래서 쌍지리부락 52호 가운데 40여호가 박씨문중이다. 이중에서 박옹의 가족만 8호. 박옹의 자손을 보면 1남 창석(昌錫)씨(56), 2남 동석(東錫)씨(54), 3남 민석(玟錫)씨(49), 4남 남석(湳錫)씨(46), 5남 종석(宗錫)씨(35), 장녀 순심(順心)씨(39). 모두 5남1녀로 돼있다. 2대 3대 4대 이르는 동안 별표와 같이 늘어나 박옹의 자녀가 5남1녀, 손자가 13남15녀, 증손이 10남6녀로 모두 59명(며느리·손부9명·본인제외)이 된것. 이들의 거주지를 보면 고향을 떠나 있는 가족은 박옹의 4남 남석씨가 논산에서 농업을, 5남 종석씨가 인근부락인 낙안(樂安)동국민학교 직원으로 2남 동석씨의 두아들과 딸1명이 서울에서, 장증손인 현모(玄模)군(18)이 역시 서울에서 각각 직장을 다니고 있고, 창석씨의 4남 홍용(烘龍)씨와 5남 홍춘(洪春)군(19)이 현재 군에 복무중이어서 총18명이 객지로 나가 있다. 『지금까지 한 녀석도 세상에 태어나 병을 앓거나 죽어본 일이 없는 것이 자랑이면 자랑이지요. 작년에 마누라(양낙유(梁洛囿)여사)를 먼저보낸일 외에는 아직까지 제 후손의 장례는 한번도 치르지않았지라우』 작년 6월6일 박씨 가문의 장로인 양여사가 노환으로 사망하자 그 장례식이 화젯거리가 됐다. 직계자손은 물론 사위와 손자사위까지 동원돼 실로 70여명의 대가족이 장례행렬을 이루었고 어른들만 입은 삼베옷이 자그마치 50필(4백50m). 그 삼베옷을 만들기 위해 2일동안「미싱」5대를 10사람이 밤낮으로 돌려서야 간신히 끝냈다는 것. 막걸리만 70말, 소주가 2상자, 쌀이 10여가마 축났다는 것이니 시골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대사였다. “적령 20살전”의 조혼가풍(早婚家風) 며느리 환갑잔치 베풀고 40살에 증조부(曾祖父) 소리들어 『금년 2월에 며느리(창석씨 부인 신선업(申善業)여사 환갑잔치를 했당게요. 아마 며느리 환갑을 보는 것도 드물 것이오』이토록 이해할수 없는 신기록 수립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간단하다. 조혼을 가풍으로 존중해온 덕. 박옹 자녀들의 결혼적령기는 20살전으로 돼있다. 창석씨가 15살에, 동석씨가 17살에, 민석씨가 18살에, 남석씨 역시 18살, 종석씨가 19살. 다음 창석씨의 자녀들 가운데 홍기(洪基)씩 17살에, 홍난(洪爛)씨가 20살에, 홍민(洪玟)씨가 역시 20살, 홍용(洪龍)씨도 20살. 이렇게 조혼을 하다보니 갖가지 웃기는 사건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즉 박옹의 장증손인 현모군이 3살때 종석씨는 19살. 종석씨는 말하자면 총각할아버지가 된셈인데, 그때 종석씨는 현모군이『할아버지』하면 창피하다고 도망치기 일쑤였다는 것. 『내 손으로 고손자녀석 금줄을 달아 볼라우. 이렇게 건강하니 5년은 충분히 살것지 않것소?』 박옹의 말하는 품으로 미루어 보면 18살인 현모군을 20살까지도 기다릴 필요없이 장가보낼 심산인듯 하다. 박옹의 가족들에 대한「리더십」은 거의 절대적이다. 모든 수입·지출이 박옹의 명령에 따른다. 40~59대 아들들도 절대로 박옹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박옹이 새벽 5시에 일어나 농사일을 돌아보고 설치는 통에 가족중 아무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박옹은 이곳에서 상당한 부농, 25마지기 정도의 논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식을 얼마든지 낳아도 먹이고 키우는데는 걱정이없다.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흔든다. 『잘먹고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지요. 담배·술 모두 다하고, 고기도 잘 먹지요. 못먹는 것이 없어라우』 박옹의 생일이 1월 하순께. 그래서 이집의 가장 큰 잔치는 설맞이를 미뤘다가 그날에 한다. 76살 기념잔치를 위해 흩어진 가족들까지 다 모이면 흔한말로「민박」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순천에서 박안식(朴安植)·오정묵(吳亭默)기자> [선데이서울 72년 1월 2일호 제5권 1호 통권 제 169호]
  • [길섶에서] 버킷 리스트/ 노주석 논설위원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를 DVD로 빌려 봤다.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출연하고 롭 라이너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말한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66살 동갑내기 갑부와 자동차 정비사가 병실에서 만나 의기투합, 목록을 작성하고 실행에 옮겨본다는 내용이다. 의미있는 죽음에 대한 고찰과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삶의 미학을 관조하는 영화다. 스카이다이빙하기, 최고의 미녀와 키스하기, 장엄한 광경 보기 같은 난제도 있지만 문신하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기처럼 손쉬운 목표도 세웠다. 난 무얼 꼽을까. 얼핏얼핏 생각은 했지만 아직 절실하지 않은 탓인지 정리하지 못했다. 특정시기의 목표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몇가지 정해 보기는 했지만 인생을 망라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명료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차일피일 미룰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나의 버킷 리스트엔 무엇을 올릴 것인가. 숙제가 생겼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동방신기, ‘6살 시각장애 꼬마’ 와 한 무대

    동방신기, ‘6살 시각장애 꼬마’ 와 한 무대

    1년 7개월 만에 국내 무대에 컴백하는 동방신기가 앞 못 보는 6살 피아노 신동 유예은 양과 감동의 무대를 연출한다. 앞 못 보는 6살 피아노 신동 유예은 양은 SBS ‘스타킹’에 출연, 한번 들은 곡을 곧바로 피아노로 연주해내는 절대음감을 과시해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특히 이번 무대는 지난 번 ‘스타킹’에 함께 출연한 슈퍼주니어의 멤버 김희철과 시아준수의 인연으로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의 초콜릿’을 연출하는 성영준 PD는 “‘스타킹’에 함께 출연했던 (유)예은 양과 슈퍼주니어 멤버 김희철의 인연으로 동방신기 멤버들이 예은 양을 알게 됐다.”며 “또한 그 날 방송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던 시아준수가 기획회의를 하던 중 예은 양과 함께 특별한 무대를 꾸며 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해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초콜릿’ 녹화에서는 유예은 양이 MC 김정은이 영화 ‘가문의 영광’에서 불렀던 ‘나 항상 그대를’ 피아노를 연주하고, 김정은이 반주에 맞춰 직접 노래를 부를 예정이어서 더욱 큰 감동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앞 못 보는 피아노 신동 유예은 양이 출연하는 동방신기 컴백 스페셜 SBS ‘김정은의 초콜릿’은 오는 10월 2일 방송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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