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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와 딸 사이 자식 7명…아르헨 ‘인면수심’

    아르헨티나에 오스트리아판 ‘조세프 프리츨’은 과연 얼마나 더 숨어 있는 것일까. 17년간 딸을 성폭행 한 74세 된 아르헨티나의 노인이 경찰에 체포됐다. 올해 29세인 딸은 아버지의 성폭행으로 지금까지 7명의 자녀를 낳았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노인은 손자까지 손을 댔다. 신고과정에서 파렴치한 그의 행적은 더 드러났다. 노인이 성폭행해 온 딸은 모두 3명이었다. 딸들은 쉬쉬하면서 아버지의 범죄를 발설하지 않아왔다. 딸과 딸ㆍ손녀(아버지와 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까지 합치면 무려 6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 해 왔다. 이 엽기적인 사건은 아르헨티나 지방 코리엔테스에서 발생했다. 노인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체포됐지만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건 18일이다. 12세부터 아버지의 성폭행에 시달린 딸이 그를 고발하기로 결심하면서 충격스런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딸은 경찰을 찾아가 “17년 동안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으며 15세, 12세, 9세, 7세, 5세, 3세, 1개월 된 자녀 7명을 낳았다.”고 고발했다. 딸은 “15세와 12세된 내 딸과 5세인 아들까지 아버지의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바로 출동해 노인을 체포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추행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신고 후 딸이 동생들과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추가 범행이 확인됐다. 여동생 2명이 “그간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경찰은 “검사 결과 15세, 12세, 5세 된 자녀가 노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은 사실로 확인됐다.”면서 “혐의가 불거진 부분은 모두 조사해 철저히 진상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에선 지난 5월에도 20년간 친딸을 성폭행해 자식을 7명이나 낳은 67세 남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아르헨티나 지방 멘도사에 살고 있는 문제의 노인은 상습 성폭행으로 딸을 임신시켜 19살, 17살, 16살, 12살, 11살, 6살, 2살 등 7명의 자식까지 낳았다. 한편 지난해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조세프 프리츨’ 사건은 70대 노인이 24년간 친딸을 감금·성폭행해 7명의 자식까지 낳은 사건으로 전세계를 경악에 빠뜨린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종플루 국내 2명 사망] 日 첫 사망자…타이완은 두번째

    │도쿄 박홍기·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전경하기자│지구촌 전역에서 신종플루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남미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사망자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 세계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에서 첫 신종플루 사망자, 타이완에서는 두번째 사망자가 15일 발생했다. 16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사망자수(지난 6일 기준)는 1462명이다. 일본인 사망자는 오키나와현에 사는 57세 남성(무직)이다. 최근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어 국내 감염자로부터 신종플루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장병 수술을 한 적이 있는 데다 만성신부전증으로 투석치료를 받아왔다. 최근 목 부위 통증과 기침 증세가 심해져 12일부터 입원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타이완 위생당국은 지난달 25일부터 신종플루 증세로 치료를 받던 6살 여자 어린이가 병세 악화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말 간암 경력의 39세 남자가 신종플루로 사망했다. 타이완에는 아직도 7명의 중증 환자가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중국은 첫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치료 중인 17세 소년이 위독한 상황이라 긴장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 소년이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지만 병세는 약간 호전됐다고 이날 보도했다. 지난 3일 경제중심지 뭄바이 인근 도시 푸네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인도는 열흘만에 사망자수가 26명으로 폭증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15일 3명의 사망자가 추가 확인돼 사망자가 62명으로 늘어났다. 남미의 사망자는 더 많다. 아르헨티나는 14일(현지시간)까지 보고된 사망자가 404명, 브라질은 339명이다. lark3@seoul.co.kr
  • 안중근 조카며느리 생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시 난강구 안산가에 사는 안로길(97) 할머니. 안씨는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며느리다. 안씨는 1944년 일제에 의해 남편이 사망하면서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했다. 안 의사 가문의 며느리라는 데 자긍심을 갖고 있던 안씨는 이때부터 원래 차(車)씨였던 성을 안(安)씨로 바꿨다. 이적 행위 단속이 거세던 1958년 안씨는 하얼빈역 광장 등에서 태극기와 안 의사 초상화를 앞세우고 안 의사 공적 인정과 종교의 자유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안씨는 1958년 1월 긴급 체포돼 반혁명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게 됐다. 86살 되던 1998년 반평생을 옥중에서 보낸 뒤 자유의 몸이 됐다. 하얼빈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안씨를 반겨줄 곳도, 안씨를 뒷바라지해 줄 일가친척도 찾을 수 없었다. 우연히 안씨의 사연을 알게 된 최선옥(72·전 성모자애병원 원장) 수녀의 도움으로 아파트 방 한 칸을 얻어 함께 생활하고서야 안 할머니는 비로소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다. 안씨의 조카인 정덕재(71·랴오닝성 선양 거주)씨는 “평생을 바쳐 갈구했던 조국이 나서는 모습만 보여줘도 반평생 얽힌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양 연합뉴스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나무없는 산’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나무없는 산’

    아버지가 떠나버린 집. 6살 소녀 진과 동생 빈은 엄마와 산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는 자매를 시골의 고모 집에 맡겨두고 떠난다. 돼지저금통이 꽉 차면 돌아오겠다는 엄마의 말은 아이들에게 주문이 된다. 메뚜기를 구워 팔고, 100원 동전을 1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가며, 진과 빈은 빨간 저금통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고모는 두 아이를 외할아버지 댁으로 데려간다. 세상모르고 언니만 따르는 빈은 진에게 자꾸 묻는다. “엄마는 언제 와?” 시간이 흐르면서 진의 대답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버려두는 어른이 있을까만, 세상에는 그런 일이 흔하고 흔하다(빈 역을 맡은 꼬마는 실제로 고아원에 살고 있다). 어른의 태도를 꾸짖듯 스스로 살아가는 두 아이의 모습은 큰 채찍이 되어 다시 어른에게로 향한다. 도시에서 점점 시골마을로 옮겨 가면서, 진은 공부할 곳에서 멀어지고, 빈의 드레스에는 때가 묻고, 또래 친구들은 하나둘 사라진다. 결국 두 아이의 곁에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할머니만 남는다. 영락없이 소녀들의 수난사처럼 전개되는 ‘나무 없는 산’은, 그러나 고맙게도 잔혹한 인생이야기가 아니다. 감독 김소영은 전작 ‘방황하는 날들’에 이어, 어린 두 비전문 배우가 출연한 ‘나무 없는 산’에서도 과감한 클로즈업을 택한다. ‘나무 없는 산’은 두 소녀가 세상에 펼치는 표정들의 파노라마다.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조금씩 인식하면서, 천진난만한 두 소녀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특히 똑똑한 언니지만 여전히 오줌싸개인 진은 투정을 부리고, 반항의 몸짓을 시도하고, 거짓을 경험하고, 눈물을 배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세상 앞에서 두 소녀의 영혼이 한치도 더러워지지 않음을, 관객은 목도한다. ‘나무 없는 산’은 아름다운 영혼이 담긴 얼굴의 기록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에서 보았듯이, 나무는 아이가 기댈 곳, 즉 아버지의 메타포다. 의지할 데 없는 아이는 방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무 없는 산’은 ‘나무’가 아닌 ‘산’에 방점을 찍는다. 이상하리만치 아버지의 모습을 제거한 ‘나무 없는 산’에서 눈여겨 볼 점은 ‘여성들의 연대 혹은 연계’다. 극중 엄마와 고모는 두 아이를 버린다기보다 생명의 근원으로 인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침내 두 아이가 머무는 할머니의 품은 산과 땅, 그러니까 생명을 살리는 공간을 의미한다. 말라죽을 뻔했던 두 아이는 위대한 자연과 사랑의 힘으로 누구도 범할 수 없는 건강한 생명의 빛을 발한다. 김소영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태로 삼았다고 말했다. 유아기의 기억과 상처를 다룬 작품이 자칫 빠지기 쉬운 신파와 유치한 재현을, ‘나무없는 산’은 가뿐하게 넘어선다. 신화적인(결코 과장이 아니다) 두 인물을 통해 ‘나무 없는 산’은 상처와 기억을 승화하는 경지에 오른다. 아무리 찬란한 보석도 ‘나무 없는 산들’의 영롱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김소영은 ‘하늘’의 표정을 영화에 종종 삽입하곤 한다. 무심한 듯 변화무쌍한 하늘 아래, 조금씩 성장하는 인간은 하늘과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 김소영이 소원하는 영화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27일 개봉. 영화평론가
  • ‘워낭소리’ 할아버지의 뒷이야기, TV로 만난다

    ‘워낭소리’ 할아버지의 뒷이야기, TV로 만난다

    독립영화 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남은 이야기를 TV로 만난다. ‘워낭소리’는 올해 국내에서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KBS 2TV ‘리빙쇼 당신의 여섯시’는 오는 12일 오후 6시 ‘최동석의 바꿔드립니다: 워낭소리2’를 방송한다. ‘워낭소리2’에서는 정성을 쏟았던 소가 죽은 후 최원균(82) 옹의 솔직한 심정과 그의 일상을 새롭게 살펴본다. 또 팔팔한 6살배기 소를 훈련시키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영화 ‘워낭소리’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던 자녀들의 심경을 좀 더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사진제공 = KBS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연극무대 서니 상상력이 절로”

    “연극무대 서니 상상력이 절로”

    아이가 공부를 포기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지긋지긋했다. 8살 초등학생 시절부터 학원으로 내몰렸다. 아침 일찍 학교 가서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오는 생활. 답답했다. 9년 정도 했으면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부 말고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16살 하나(사진 가운데·서울 계성여고 2학년)는 슬그머니 공부에서 손을 뗐다. 엄마는 울었다. 화내고 야단쳤다. 그러나 자식에게 이길 부모는 없다. “네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그때 다시 공부하라.”고 했다. 하나는 그때부터 어느 대학에 갈지가 아니라 내 꿈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연극반에 들어갔다. 중학생 시절 장기자랑 시간에 뮤지컬 공연을 했던 기억이 나서다. 마침 지난해 계성여고 연극반은 서울문화재단과 시교육청이 진행하는 ‘청소년 비전 Arts-TREE’사업 대상학교로 선정됐다. 기회였다. 이 사업에는 연극인 조재현 등 예술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아이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놀이하고 어울리며 경험을 전수받는다. 사업의 특색은 모든 과정을 아이들 힘으로만 진행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그저 지켜보다 필요할 때 조언할 뿐이었다. 전담 교사는 끊임없이 “네 느낌대로 하라.”를 주문했다. 대본부터 아이들이 만들었다. 각자 돌아가며 단어 하나씩을 던졌다. 이후 상상력을 발휘해 단어를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문장들은 하나씩 이야기가 되어 갔다. 이 과정에만 한달 이상이 걸렸다. 하나는 “이러면서 싸우기도 하고 맘대로 안 돼 울기도 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상상력의 힘은 컸다. 각자의 생각들은 충돌하고 조합돼 ‘나의 가장 빛나던 날’이라는 연극을 만들어 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이 사업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됐다. 문화재단은 오는 10일 남산 예술센터 개관 첫 작품으로 이 연극을 올리기로 했다. 아이들은 지금도 작품을 계속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연습 때마다 또 다른 상상력이 발휘된다. 연극반 박동준 전담교사는 “공부에는 조금 소홀할지 몰라도 결국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이런 과정들이다.”라고 말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5일 TV 하이라이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옷깃이 스치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로 통증이 심한 통풍. 주로 중년 이후의 남성들에게 걸리는 병이었지만 최근 30~40대를 중심으로 발병률이 늘고 있다. 각종 성인병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통풍의 원인과 증상을 알아보고 통풍을 다스리기 위해선 어떤 치료와 예방법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소비자 고발(KBS2 오후 11시5분)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지난 주말 하루 수십만명의 피서객들이 전국의 해수욕장과 계곡을 찾았다. 그런데 피서 하면 ‘바가지요금’이 떠오를 정도로 매년 피서지를 찾는 많은 소비자들이 ‘바가지요금’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다. 불법 호객행위로 얼룩진 피서지의 바가지 숙박요금 실태를 고발한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누나에게 잡혀 사는 가수 연습생 장우. 희진은 점점 비전없는 장우의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희진은 준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준수는 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되자 기쁨을 느낀다. 오랜만에 참견할 남의 일이 생긴 동네 사람들. 희진에게 장우와 헤어져라, 말아라 편 갈라 찬반 논쟁이 벌인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15분) 한 여성보호시설에서 만난 21살 이하나(가명)씨. 그녀는 16살 때부터 15곳의 티켓다방에 팔려 다니며 성매매를 했다. 10대라고 봐주는 곳은 없었다. 한 악덕업주는 아버지뻘 되는 남자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5년. 단속의 사각지대인 티켓다방의 불법 성매매 실태를 고발한다. ●극한직업<고등어 양식>(EBS 오후 10시40분) 통영에서도 36㎞ 떨어진 아름다운 섬 욕지도. 그곳에서는 자연산 작은 고등어를 해상 가두리에서 기르는 고등어 양식이 이뤄지고 있다.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고등어를 양식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고등어 양식장 바다 사나이들의 진한 땀의 현장을 찾아가 본다. ●YTN 초대석(YTN 낮 12시35분) 18대 국회 제1야당 첫 원내대표 1년을 마친 민주당 전 원내대표 원혜영 의원. 가장 잘 했던 점은 무엇이고 아쉬운 점은 무엇이며, 그리고 지난 3월 미디어법 처리에 관해 여야가 합의를 했지만 그것이 지켜지지 못하고 최근 여야 충돌 끝에 날치기 처리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본다.
  • 소설가 최민경 “청소년기 방황 빙의로 표현했죠”

    ‘빙의’를 소재로 한 청소년 소설이라고? 올해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는 할머니와 산다’(현문미디어 펴냄)’는 소재부터 독특하다. 바로 죽은 할머니의 혼이 들린 16살 소녀 ‘은재’의 이야기. 왜 이런 소재를 골랐을까. 책을 출간하고 29일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센터에서 만난 소설가 최민경(35)은 “청소년기에 가끔 느끼는 ‘내 자신이 내가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을 빙의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공은 할머니의 혼을 천도하는 굿을 구경한 이후 말투와 식성까지 할머니를 닮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를 말과 행동을 가끔씩 한다. 작가는 “청소년기에는 좋은 친구나 스승을 만나는 것만큼 큰 행운은 없다.”면서 “할머니가 그런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품을 쓰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주인공 은재는 자기 안에 있는 할머니와 티격태격 하면서도 한편은 할머니를 멘토로 삼아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또 스스로의 정체감도 세워간다. 청소년기의 고민을 다룬 작품이지만 작가는 “청소년들을 계몽하거나 선도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보다는 “독자들이 잊고 있던 마음을 일깨워 주는 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지금은 비록 어른이라 해도 누구든 청소년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란다. 특히 작가는 누구나 청소년기에는 한두 가지 상처쯤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했다. “누구든 혼자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이들과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 보면 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청소년기는 그런 시기니까요.” 작품에는 가장의 실직, 재개발, 학교폭력 등 우리 사회 현실적 문제들도 녹아 있다.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를 다룰 생각은 없다.”라고 작가는 선을 그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는 다양한 견해, 다른 생각을 포용하는 힘이 부족하다.”면서 “다른 생각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자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가는 청소년 문학으로 시작했기에 오히려 “한정되기보다는 더 다양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다음에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쓸 계획. “만담, 입담처럼 작가의 입으로 줄줄 서사를 풀어가는 작품”이라고 귀띔한다. ‘나는 할머니와 산다’는 올해 안에 일본에서도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중산층 두껍게] 희망 잃은 빈곤층 2인 인터뷰

    [중산층 두껍게] 희망 잃은 빈곤층 2인 인터뷰

    “게으르니까 가난한 거라고요? 잘살려고 노력할수록 가난해지더군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빈곤층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먹고 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가난의 질곡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빈 손으로 남하한 뒤 돈 없고 배운 것 없어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한 모자와, 영세자영업자로 일하면서 생긴 빚으로 파산하고 만 한 가장의 사연을 통해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빈곤층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 두평 쪽방살이 80대 할머니 김씨 “월수 70만원… 아들 약값에 돈 다써” 서울 후암동의 김순애(81)씨와 김수용(49)씨 모자는 한 달에 25만원을 주고 두 평 남짓한 쪽방에서 산다. 10년 전만 해도 같은 동네의 4평짜리 방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들 김씨가 7년 전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평수를 절반이나 줄여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자는 기초생활보호생활자로 등록돼 동사무소에서 각각 40만원, 30만원을 받아 생활한다. 다른 수입원은 없다. 얼마 전까지는 어머니 김씨가 리어카를 끌고 폐지와 빈 병을 주워 용돈벌이를 했지만 구청에서 나온 감시관에게 적발돼 수급비를 깎일 뻔한 일을 겪고는 그만두었다. 한 달에 70만원을 받아 방값 25만원, 아들 약값 20만원, 생활비 20만원을 쓰고 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아들이 사고가 난 뒤 병원비가 없어 MRI(자기공명 단층 촬영장치) 한번 제대로 찍어보질 못했어. 아직 젊은데 어쩌면 좋아.”라며 아들을 걱정했다. 그렇다고 단 하루도 게을리 보내본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전쟁이 끝나고 영등포역 뒤 영일동 판잣집에 자리를 잡았다. ‘가난해서 걸리는 병’인 장티푸스와 콜레라로 아들 넷을 모두 잃고 막내 하나만 겨우 살렸다. 그 막내는 돈이 없어 중학교 1학년을 자퇴하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16살부터는 공사판을 다니며 어깨 너머로 전기 기술을 배웠다. 80년대 개발붐을 타고 한강 둔치 건설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뒤로 일용직을 전전했으므로 4대 보험이나 정년 등은 꿈도 못 꿨다. 어머니 김씨는 “평생 번 돈은 약값으로 다 들어갔다. 만날 아들하고 둘이서 방 안에만 있어 혹시 나가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병원비는 또 누가 내나 싶어서…”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모자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한다. 얼마 전 한 봉사단체가 밥솥을 줘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집 근처 교회에서 일주일에 두 번 반찬을, 한 달에 한 번 쌀을 갖다줘서 생활에 큰 보탬이 된다. 그러나 시장에 나갈 때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물가 때문에 한숨만 는다. 아들 김씨는 “반찬값이 점점 올라서 시장에 가기가 무서울 정도예요. 파도 한 단에 3000원이나 하더라고요. 요즘엔 파를 한 번 사서 잘라둔 다음에 나눠 먹어요.”라며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 20여년 직업 전전 장애인 최씨 “5000만원 빚이 두배로… 파산도 못해” 서울 성동구에 사는 최모(50)씨는 ‘만세’를 부르기 일보 직전이다.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세’는 곧 파산을 일컫는 말이다. 20여년 동안 과일노점상, 전파상, 초고속 인터넷 대리점 등 안 해본 일이 없는데 희한하게 일을 할수록 빚만 쌓였다. 9년 전 동업하던 친구가 먼저 ‘만세’를 부르고 난 뒤 빚 2000만원이 생겼다. 그걸 갚지 못해 대여섯 개의 카드를 가지고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사단이 난 것이다. 3살 때 뇌성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한 최씨는 고등학교 전자과를 나와 1985년 조그만 전파사를 차렸다. 2년간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했지만 대기업이 애프터서비스망을 본격적으로 구축하면서 조그만 전파사는 고객을 한꺼번에 잃게 됐다. 12년 전 한 중소 보일러회사에 들어갔지만 학력도 낮고 장애인인 최씨에게 승진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5년간 다니다 과일 노점상으로 나섰다. 과일은 빨리 팔지 않으면 썩어서 내버리는 물건이라 재고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지만 처음 장사를 해보는 최씨는 요령을 전혀 몰랐다. 모아둔 돈을 까먹고 나서 1998년 친구와 함께 초고속 인터넷 대리점을 열었다. 인터넷이 전국에 막 깔리기 시작한 때라 가입에 두세 달이 걸렸고 설치가 안 되는 지역도 많았다. 당연히 최씨의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신용유의자가 되자 최씨의 빚을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빚 2000만원이 생겼다. 이듬해부터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2003년 카드대란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나 마구 카드를 발급해주던 때라 간신히 터져나오는 빚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 못갔다. 2003년 최씨와 그의 아내는 신용유의자가 됐다. 최씨는 “그저 열심히 일해 가족들하고 먹고 살려고 한 것밖엔 없는데 신용유의자의 나락에 떨어져 버렸다.”며 울먹였다. 그는 “빚 원금이 5000만원이었는데 얼마 전 파산신청을 하려고 계산해보니 1억원이 됐다. 그동안 파산할 돈이 없어 파산도 못하고 있었다.”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책과 파산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고전 산수화의 재해석

    고전 산수화의 재해석

    추계예술대 석철주(59· 동양화) 교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6살 때다. 서울 인왕산 밑자락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목수일을 봐주던 집들 중에 청전(靑田) 이상범(1889~1972)의 집도 있었다. 야구선수로 막 이름을 날리던 아들이 부상으로 체육인의 길을 중도에 포기하고 낙심하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청전에게 아들을 부탁했다. 청천은 석 교수집으로 넘어와 아무 말도 없이 난 한그루를 쳐서 넘겨 줬다. 이른바 채본 하나를 받아든 것이다.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기를 한달, 연습한 화선지를 모아 청전에게 가지고 갔다. 청전은 화선지를 넘겨 보면서 어디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도 없이 “아, 이건 아주 잘 됐다.”고만 했다. 그런 식으로 청전이 몰(歿)했던 1972년 봄까지 6년 간 도제식으로 동양화 공부를 했다.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대학진학을 생각했고 실행했던 시기는 그의 나이 27살 때. 추계대학 동양화과 같은 학번 동기 여학생들은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렇게 오랫동안 동양화에, 먹물에 푹 담그고 있었기에 그의 그림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어도 동양화의 향기가 물씬하다. 서울 소격동 학구재에서 오는 8월20일까지 구관, 신관 1· 2· 3층 전관에서 열리는 석철주 개인전은 서양 안료로 그려낸 동양화다. 특히 구관에 걸린 그림의 소재는 겸재 정선(1676~1759)의 ‘박연폭포’, 조희룡(1789~1866)의 ‘매화서옥도’, 전기(1825~1854)의 ‘매화초옥도’, 강희언(1710~1784)의 ‘인왕산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 한국화의 고전들이다. 이들 고전의 원작은 작품의 크기가 대체적으로 반절로 접은 신문지만한데, 석 교수는 이것을 10배에서 20배씩 키웠다. 그랬더니 박연폭포의 줄기는 더욱 장중해지고, 매화 한 줄기를 서안 위에 올려 놓고 들여다 보는 선비의 품성은 더욱 고매해 보인다. 고전을 재해석해 아크릴화로 그려낸 석 교수는 잊혀져 가는 한국 고전 산수화의 아름다움을 전면에 내세우고,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1980년대 ‘탈춤’ 연작을 시작으로 1990년대에는 항아리를 소재로 한 ‘생활일기-옹기’ 연작, 2000년대 ‘생활일기-식물이미지’ 연작에 이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고, 사람들과 공유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한국화는 먹물이나 석채, 종이 등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편견에서도 그는 자유롭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것도 1990년 개인전부터였다. 당시 옹기에 있는 무늬를 그려야 했는데 실감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캔버스에 아크릴로 독을 그린 후, 독쟁이들이 손가락으로 유약을 훑어내 그림(지두화)을 그리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안료를 훑어 내며 그린 것이 계기였다. 학고재 본관 뒤편의 신관에서는 도자기와 화분 등의 ‘자연의 기억’ 연작을 긁어 내기 기법을 이용해 그렸다. 캔버스 위에 바탕 작업을 대여섯 차례 한 뒤, 전체 물감을 다시 올려 대나무나 혁필, 판화 제작 도구인 스퀴즈(고무) 등으로 긁어 내는 것이다. 마치 어릴 적 미술 시간에 여러가지 색깔을 칠한 뒤 검은 색으로 도화지 전체를 입혀 동전 등으로 긁어 냈던 기법을 연상하면 되겠다. 바탕 작업을 몇차례 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깊이가 달라지는데 흐릿한 화분과 꽃, 풀들의 모습이 꿈 속처럼 아련한 것이 인상적이다. 8월1~10일에는 휴관. (02)720-152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원색으로 담아낸 ‘비극의 한국사’ 그리고 신화

    원색으로 담아낸 ‘비극의 한국사’ 그리고 신화

    “한달 전인가요,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이 방계 족보에 잘못 올라간 자신들의 족보를 변경해 달라고 소송해 승소했어요.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이 1456년에 일어났으니 이미 550여년 지난 일이죠. 이번 소송의 결과는 왕위를 둘러싸고 삼촌이 조카를 죽인 세조와 단종의 비극은 21세기 지금도 진행 중인 일이라고 봐야겠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작가’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서용선(58) 작가는 ‘왜 단종과 사육신의 비극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사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기억을 통해서, 또는 구체적인 오늘날의 현상을 통해 연장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박팽년의 아내는 세조에게 출산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세조는 딸을 낳을 경우에만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고, 박의 아내는 아들을 낳자 종의 자식과 바꿔치기를 해 그 아들을 살렸다. 이름을 숨기고 살던 박팽년의 자손은 조선 숙종 때 단종이 복권되자 함께 복권되면서 박씨 족보에도 이름을 올리는데,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뿌리를 잘못 찾아 갔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오태석의 연극 ‘태(胎)’는 이런 역사의 비극을 그렸다. ●단종과 사육신 연작, 6·25연작 등 그려 서 작가는 국내 서양화단에서는 드물게 ‘역사화’에 관심을 가지고 1986년부터 단종과 사육신 연작을 그리고 있다. 6· 25전쟁과 관련한 연작이나, 단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한국인의 조상에 대해 그린 신화 시리즈 ‘마고성 사람들’ 그림 등도 역사화의 한 연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서 작가는 “서양 명화라는 것이 수천년 동안 사회와 인간 사이의 갈등과 투쟁, 역사· 신화· 문학 속 인간들에 대한 끈끈한 관심 등을 시각화했는데, 우리를 포함해 동양은 수천년 동안 관념 속의 맑고 아름다운 풍경만을 그렸다.”면서 “이런 자각이 역사화나 신화를 그리도록 했고, 특히 신화의 경우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정신을 고양시키기에 자꾸 그리게 된다.”고 말했다. 역사화나 신화를 그리는 배경으로 그는 뒤늦은 자아의식의 발견을 든다. 그는 가세가 기울자 방황하며 수 차례의 대입에 실패해 군대를 다녀온 후 남들보다 5년 정도 늦은 1975년에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을 했다. 서 작가는 “내 나이 25~26살 때인데, 창조적 상상력 하나 없이 그 얼굴이 어떤 역사와 배경이 있는지도 모른 석고 데생으로 입시를 치른 것을 생각하면 창피하다. 어떻게 작가가 됐는지 모를 정도다.”고 이야기한다. 반백이 된 지금이야 슬그머니 웃음을 머금고 과거를 토로하지만, 30~40대에는 치열하게 고뇌했을 것만 같다. 서 작가는 색채 사용도 그 나이 또래의 서양화가들과 다르다. ‘한국의 마티스’란 별명을 얻은 박생광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는 “원색에 대한 본능을 의식적으로 꺼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고 말한다. 탱화나 불화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 냈던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 미술과 문화는 색채를 억제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먹의 농담을 활용한 수묵화가 크게 발달했다는 것. 그는 500년 이상 억제된 색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잠재의식 속에서 색채감각을 꺼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원색을 사용한다. 때론 그림에서 색들이 조화롭지 않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촌스러움을 즐긴단다. 그림의 크기도 개인들이 소장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 그 이유는 이렇다. 그는 ‘도시인’ 연작 시리즈를 위해 서울이나 베이징을 왔다갔다 한다. 그는 베이징에서 20대 중반의 젊은 작가들이 실평수 100평(330㎡)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작업하는 걸 보고, 의식적으로 크게 그려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을 보면서 서 작가는 어린 시절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을 읽으며, 잃어 버린 영토에 대해 분함을 느꼈을 때와 비슷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자꾸만 축소지향적이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9월20일까지 전시… 작품의 크기·색채 등 끊임없는 도전 주제의식, 색채와 크기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정신 등이 그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이유로 보인다. 작품 감상의 포인트겠다. 지난해 서울대 미대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있는 그는 틈이 나면 강원도 영월을 방문한다. 단종릉인 장릉, 유배됐던 청령포, 나중에 시신이 버려졌던 서강 등을 돌아본다. 또 투기된 단종의 시신을 차가운 물속에서 수습한 영월호장 엄흥도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1986년 서강에서 단종의 이야기와 강물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함을 느꼈다는 그는, 파란 강물에서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의 비극과 인생의 비애를 함께 보았으리라. 그가 청년의 심정으로 느낀 감정들이 2009년 초대형 회화 50여점과 조각 10여점, 드로잉 120여점으로 시각화됐다. 전시는 9월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선정· 전시하는 ‘올해의 작가’는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서 크게 기여했거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는 작가들로, 전수천(1995), 김호석(1999), 노상균· 이영배(2000), 전광영· 권옥연(2001), 이종구· 서세옥(2005), 정현(2006), 정연두(2007)씨 등이 선정됐다. 관람료 3000원. (02)2188-600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16년간 키웠는데… 남의 딸

    간호사의 실수로 신생아가 뒤바뀐 사실이 16년 만에 확인돼 병원이 70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하게 됐다. 19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A씨는 1992년 경기 구리시의 한 병원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다. 딸의 생김새가 부모를 닮지 않았지만 친자녀가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딸 B양이 16살이던 지난해 7월 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확인하고 의문을 품었다. 부모가 모두 B형이어서 딸이 A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B양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딸을 출산한 구리시의 D병원 간호사가 실수를 저질러 다른 아이와 딸을 바꾸었던 것이다. A씨는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부장 이준호)는 “신생아들을 주의 깊게 살펴 각자의 가정으로 돌려보낼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과실이 병원에 있다.”면서 “A씨 가족에게 위자료로 7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딸을 출산할 때 태어난 신생아들의 병원 분만기록정보를 공개하라는 청구는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때문에 A씨가 친딸을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30년 생생한 경험… 아마존의 진실

    정글에서 살아남은 호기로운 모험담이 아니다. 진지하게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것이고, 간단하게는 지구의 허파 아마존의 속살이다. 언어학자이자 일리노이 주립대의 언어·문학·문화학 학장인 다니엘 에버렛은 브라질 중부 아마존 정글 속 피다한 원주민들과 함께한 30여년의 시간을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윤영삼 옮김, 꾸리에 펴냄)에 담았다. 에버렛은 26살인 1977년 기독교 선교사 자격으로 아내와 세 아이를 데리고 피다한 마을로 들어갔다. 아내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고, 지역 사람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는 등 혹독한 학습을 거치며 저자는 아마존의 진실을 익혀간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와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러 간 곳에서 저자는 오히려 그런 개념이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무신론자가 됐다. 인간에게는 타당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잠재력이 있다는 노엄 촘스키류의 형식주의 언어학에서 벗어나, 언어학은 인류학이며 문화연구라는 자신만의 이론을 완성했다. 세상 어떤 언어와도 연관성 없는 피다한족의 말에서 “언어의 본질은 일상의 기쁨과 소통을 위한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도 깨닫는다. 피다한 언어를 초록색으로 표시하고, 음절 위에 방점을 찍어 높은음을 표현했다. 아찔한 저자의 오지 생활과 상상 이상의 웅장함을 가진 아마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가운데 피다한 언어를 따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까지 있다. 1만 8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두산 핸드볼팀 한솥밥 윤경신·경민 형제

    [스포츠 라운지]두산 핸드볼팀 한솥밥 윤경신·경민 형제

    2m가 넘는 당당한 ‘높이’에서 뿜어나오는 가공할 만한 왼손 슛을 앞세워 ‘한트발 마에스트로’로 불리던 형. 끈질긴 압박수비로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살림꾼’ 동생. 친절하고 다정하게 농담을 건네는 형과 수줍은 듯 틀에 박힌(?) 모범답안을 내놓는 동생. 둘은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핸드볼에 대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애정만큼은 아주 많이 닮았다. 마침내 두산 남자 핸드볼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윤경신(36)-경민(30) 형제를 만났다. 핸드볼 슈퍼리그가 한창이던 이달 초 전북 정읍국민체육관. 경기가 없는 날인데도 형제는 다른 팀 전력분석을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 선수의 움직임을 꼼꼼히 체크하며 어떻게 경기할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 ●“윤씨 형제의 한솥밥 힘을 보여주자” 충남도청에서 뛰던 동생 경민이 7월1일부터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형 경신은 지난해 7월 먼저 입단했다. 둘은 같은 중·고·대학교를 다녔지만 6살 차이가 나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춘 것은 국가대표팀에서뿐이다. 경신이 13년 동안 외국에서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함께 피부를 맞댄 날도 드물다. 그래도 “전혀 서먹서먹하지 않아요.”라며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한다. 경신은 동생의 플레이에 대해 “수비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데 공격은 더 가다듬어야 해요. 아무래도 포메이션이나 팀 플레이가 다르니까 두산에 적응하면 잘 하겠죠.”라며 일단 때리고 어루만진다. 옆에서 듣는 동생 경민은 장인어른의 말씀이라도 듣는 양 진지하게 고개만 끄덕인다. 장난스럽게 “형이 좀 무섭죠?”라고 묻자 “아니에요. 일상생활에서나 경기에서나 얼마나 자상하게 잘 챙겨주는데요.”라며 펄쩍 뛴다. 옆에 있던 경신이 “야, 그렇게 말하면 진짜 무서워하는 것 같잖아.”라면서 말린다. 경민이 두산 유니폼을 입은 건 형 때문. 형은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았다. 경신은 “은퇴 전에 같은 팀에서 더 많이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그동안은 다른 팀이라 눈치가 보였죠. 대놓고 응원할 수도 없었고….”라고 말한다. 사실 경신은 경민에게 칭찬보다 아쉬운 소리를 더 많이 한다. “다른 후배들한테는 칭찬할 수 있는 것도 경민이한테는 일부러 안해요. 아무래도 애착이 크다 보니까 그렇겠죠?”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하는 진한 마음에 동생 마음은 녹아내린다. ●형은 그림자에서 버팀목으로 경민에게 ‘월드스타’인 형은 벗어날 수 없는 그늘 같았다. 이제는 든든한 버팀목. “처음엔 부담스럽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좋아요. 남들에게도 그렇지만 저에게도 형은 스타예요.”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같은 업계(?)에 있다 보니 형의 위대함을 더욱 피부로 느낄 터. 경신 역시 “날 우상으로 여기는 경민이가 있어 더 열심히 뛸 수 있었죠.”라고 전한다. 경민은 “형과 같은 팀으로 옮겼으니 잘 맞춰 꼭 우승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후, 한참 뜸을 들이더니 “후배들이 저를 ‘핸드볼 좀 잘했던 선수’라고 기억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인다. 국가대표팀은 물론 독일과 이탈리아 리그까지 누볐던 그에게는 조금 소박한 목표 아닌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룬 경신의 목표는 뭘까. 그는 “좋은 이미지로 남는 거죠. ‘최선을 다한다.’, ‘성실하다.’ 이런 소리를 듣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앞으로 2년을 더 뛸 생각이다. 형과 함께 있을 땐 마냥 동생 같은 경민이지만 다섯살 배기 딸 아진이를 키우는 어엿한 가장이다. 형의 아들 재준이도 다섯 살. 경신은 “동생 애가 더 클 뻔했어. 큰일날 뻔했지 뭐예요.”라면서 깔깔거린다. 정읍체육관을 찾은 꼬마들이 “우아~키 진짜 크다. 사인해 주세요.”라며 둘을 에워쌌다. “그래, 이름이 뭐야?”라고 물으며 살갑게 구는 형과 묵묵히 사인을 해주는 동생. 둘은 분명 달랐지만 사람냄새 나는 매력으로 똘똘 뭉친 형제였다. 글 사진 정읍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형 윤경신 ▲출생 1973년 7월7일 서울 ▲체격 203㎝, 95㎏▲학력 숭덕초-광운중-고려고-경희대-동 대학원▲가족 아내 권순균(36)씨와 아들 재준(5)▲포지션 라이트백▲경력 독일 분데스리가 Vfl굼머스바하(1996~2005), 함부르크SV(2006~07), 두산(2008년7월)~▲수상 큰잔치 최다골(556골),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97~2002년 6연패 포함) 및 통산 최다골(2908골), 국제핸드볼연맹 올해의 선수상(2001), 아테네올림픽득점왕(2004), 아시안게임 득점왕(90·94·98),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왕(95·97) ●동생 윤경민 ▲출생 1979년 10월31일 서울▲체격 193㎝, 90㎏▲학력 송중초-광운중-고려고-경희대▲가족 아내 이지현(30)씨와 딸 아진(5)▲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경력 1998년 국가대표, 올림픽 3회 출전(2000·04·08), 아시안게임 2회 출전(1998·2002), 독일 2부리그(2003) 및 이탈리아 리그(2006) 진출
  • [나눔 바이러스 2009] “난생 처음 간 놀이동산… 가슴 뭉클했어요”

    [나눔 바이러스 2009] “난생 처음 간 놀이동산… 가슴 뭉클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놀이동산에 가봤어요. 함께 놀아주던 아저씨와 언니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뭉클해요.” 강원 삼척에 사는 올해 16살인 민지(가명·여)는 2002년 여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평소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놀러가던 아이들이 못내 부러웠는데 그날 소원을 풀었기 때문이다. 민지는 돌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외할머니가 민지를 키웠지만 수입이 없어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힘들었다. 2002년 민지의 딱한 사연을 접한 교원그룹(이하 교원) 임직원들이 삼척에 있는 민지를 찾았다. 그 뒤 지금까지 민지와 인연을 맺고 캠프도 함께 참석하며 민지의 부모 역할을 했다. 교원은 구몬학습·빨간펜 등을 출시하는 교육출판기업이다. 이 회사는 2001년부터 ‘인연을 맺어요 사랑을 나눠요’(인연·사랑)라는 슬로건 아래 소년소녀가장, 편부모가정 등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다. 한 가정을 택해 매달 20만원씩 1년간 후원하고 학용품이나 도서도 지원한다. 지금까지 180여가정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줬다. ‘인연·사랑’ 후원은 그룹 임직원들의 건의로 시작됐다. 현재 350명의 임직원들이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내고 있다. 구몬 교사나 영업부 직원 등도 비정기적으로 돕는다고 한다. 교원의 이웃사랑 실천은 물질적 지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연을 맺은 아이들과 해마다 연수원이나 호텔 등에서 ‘캠프’를 개최해 지속적으로 유대관계를 갖는다. 지난해 7월부터 후원을 받고 있는 이미영(10)양은 “지금까지 인연·사랑 캠프처럼 감동적인 캠프에 간 적은 없었다.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고 기쁘다.”고 했다. 2004년 7월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박아영(18)양은 “주위에 아무도 없어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어느날부터 오빠, 삼촌 등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며 밝게 웃었다. 교원 홍보실 손봉택 부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고 클 수 있도록 작은 밑거름이 되길 바랄 뿐”이라면서 “앞으로는 임직원뿐 아니라 직원 가족 등 여러 사람들이 참여해 더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살아있는 전설의 춤사위 다시 본다

    살아있는 전설의 춤사위 다시 본다

    전북 남원 살풀이춤의 살아 있는 전설, 조갑녀(86) 명인의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춤사위를 만나는 무대가 열린다. 공연기획사 축제의땅은 오는 26일 오후 5시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우리시대 최고의 명인을 소개하는 ‘노름마치뎐’ 세번째 공연으로 ‘춤! 조갑녀’를 올린다. 192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짧지만 인상적인 예인(藝人)의 전설을 만들어낸 조갑녀 명인을 위한 헌정공연이다. ●2007년 세계무용축제 무대에 올라 조 명인은 6살에 장단을 가르치던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남원 권번(기생을 교육하고 관리하던 곳)에 들어가며 춤을 배웠다. 이때 가르친 이가 이장선(1866~1939년) 명인. 이 명인은 궁궐에서 춤을 가르쳤고, 임금 앞에서 직접 춤을 췄던 명무였다. 이 명인에게 개인교습을 받은 조 명인은 승무, 살풀이춤 등을 배우며 ‘소녀 명무’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1931년 처음 열린 춘향제에 8살의 나이로 참가했고, 11회 대회까지 승무, 검무, 살풀이춤을 추면서 소녀 명무는 ‘남원 명무’, ‘춤은 조갑녀’라는 찬사를 받았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환갑잔치, 화전놀음, 단풍놀이 등에서 춤을 도맡은 당대 최고의 예인이었다. 시대를 풍미한 조 명인은 1941년 가족을 돌보기 위해 결혼을 하며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후 1971년, 1976년 춘향제에서 잠시 모습을 비췄을 뿐 무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랜 숨바꼭질 끝에 조 명인은 84세인 2007년 제10회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마자 ‘조갑녀류 민살풀이춤’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명인은 건재했다. ●“조선말의 춤사위 고스란히 간직” 공연기획자 진옥섭은 “이 무대에서 존재조차 희미했던 거대한 춤의 존재가 다시 드러났다.”면서 “세상과 떨어져 있었기에 몸짓은 마치 타임캡슐에 묻혀 있듯 조선시대 말부터 일제 초기의 춤사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공연에서 조 명인은 단 5분간 ‘민살풀이춤’을 선보인다. 수건 없이 추는 살풀이춤이라 ‘민살풀이춤’이다. 조 명인이 선보이는 즉흥춤의 진수는 김청만(장구), 박종선(아쟁), 원장현(대금), 김무길(거문고), 한세현(피리), 김성아(해금) 등이 연주하는 ‘시나위’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 공연을 위해 후배 춤꾼들이 나서 판을 만든다. 강성민이 이매방류의 ‘승무’로 첫 판을 열고, 진주의 예기(藝妓) 김수악의 춤을 이어받은 박경랑이 ‘교방춤’을 춘다. 권명화의 박지홍류 ‘살풀이춤’, 이현자의 강선영류 ‘태평무’, 백경우의 ‘사풍정감’, 이정희의 ‘도살풀이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이 이어진다. 놀음을 마무리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일컫는 ‘노름마치’는 당연히 조 명인이다. (02)3216-1185.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제사혁신·납골당조성에도 ‘열린 마음’

    퇴계 이황(1501~1570)의 15대 종손인 이동은(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옹이 7일로 백수(百壽·100세)를 맞는다. 퇴계는 진성(眞城) 이씨 상계파에 속한다.이날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09년 7월7일(음력 5월20일) 안동에서 태어난 이옹은 현재 유모차에 의지할 정도로 거동이 자유롭진 않지만 하루 세 끼 식사를 챙겨 먹고 거의 매일 2시간씩의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다만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의사소통이 불편할 뿐이다.이옹은 태어난 지 불과 1년 만에 나라 잃은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 비운을 맞았지만 ‘조상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는 가문의 뜻을 받들며 ‘종손’의 막중한 삶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 ●객지생활은 중학공부하던 1년 남짓뿐 16살 무렵 대구의 경북중학(당시 5년제)에 진학해 공부를 하다 집안 어른들의 “왜놈들한테 뭘 배우겠다고 그러느냐.”는 불호령을 받고 고향으로 되돌아오기까지 1년 남짓이 객지 생활의 전부다.고향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성리학을 공부하던 이옹은 1970년대 중반 부친이 세상을 뜨면서 집안의 맏종손 역할을 맡게 된다. 이후 그의 삶은 초지일관 조상을 정성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3년여 전 전립선 수술로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만 해도 매일 아침 의관을 갖춰 종택 사당에 참배한 뒤 아침을 먹었고, 먼 길을 오갈 때면 사당에 들러 두 번 절을 한 뒤 이를 고했다. 연중 20회에 걸친 집안의 기제사와 묘사, 차례도 번거롭지 않았다.그러던 중 이옹은 10여년 전 대종가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던 아내와 큰며느리를 차례로 떠나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나 다행히 2년여 전에 손자며느리를 들이면서 잠시 끊겼던 종부(宗婦)의 맥을 잇는 경사를 맞았다. ●500년 종택서 4대가 함께 살아 5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퇴계 종택에는 2007년 8월 이옹의 증손이 태어나면서 4대가 함께 살고 있다.이옹은 엄격한 유교 집안의 종손이지만 누구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가을 서울 운현궁에서 열린 안동지역 전통 한복패션쇼에 손자 부부가 모델로 나서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고, 최근엔 집안의 납골당 조성에도 순순히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17대 주손(胄孫·맏손자) 치억(35)씨의 “(종손의) 제사를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옹도 “시대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이라며 공감을 나타냈다고 한다.이옹의 아들인 근필(77)씨는 “지금도 어른께서 생활하시는 데는 큰 불편이 없지만 연세가 많으셔서 항상 곁에서 돌봐야 한다.”면서 “그래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한다.”고 말했다.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마이클 잭슨 ‘최후’ 지키는 미녀 기타리스트

    마이클 잭슨 ‘최후’ 지키는 미녀 기타리스트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리허설’ 영상에 등장한 여성 기타리스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에만 옆자리를 허락했던 잭슨의 생전 행보에 비추어 보면 상대적으로 무명인 그녀의 존재가 각별하게 다가오기 때문. ‘금발 미녀’ 기타리스트라는 외적 요소도 한 몫 했다. 5일 해외 언론에 따르면 주인공은 호주 애들레이드 출신의 기타리스트 오리안시 파나그라리스(24). ‘오리안시’(Orianthi)란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는 일주일에 6일을 마이클 잭슨과 리허설을 치르며 지난 3개월을 보냈다. 그녀는 “마이클 잭슨과 일한 나날은 황홀한 시간의 연속”이었다며 “엄청난 연습을 거치면서 서로가 모든 곡을 훤하게 꿰뚫게 됐다”고 기억했다. 그녀는 “마이클은 신비한 아우라를 풍기는 아름다운 영혼이었다.”며 “잭슨의 사망 소식에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6살부터 기타를 잡았다는 그녀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때는 지난 2003년. 콘서트차 호주를 방문한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가 그녀를 무대로 초청해 ‘잼 세션’을 벌인 것이다. 숨겨진 재능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세계적 뮤지션들이 그녀를 찾았다. 스티브 바이, 프린스, 지지탑 등 쟁쟁한 뮤지션들과 나란히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미국 컨트리 가수 캐리 언더우드와 꾸민 올초 그래미 시상식 무대는 팝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세계로 전파됐다. 호주 선데이메일에 따르면 그녀는 오는 7일(현지시간)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리는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에서 연주를 펼칠 예정이다. 에드워드 반 헤일런, 제니퍼 버튼, 슬래쉬 등 ‘마이클 잭슨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했던 불세출의 연주자들을 제치고 그녀가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게 됐다. 사진= 공연 기획사 AEG가 공개한 마이클 잭슨 리허설 비디오 장면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음악통신원 고달근@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30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두달 전 부산의 결혼이주여성 12명이 함께 문을 연 다문화 카페 ‘휴’. 앤티루는 이곳에서 제일 애교 많고 싹싹한 막내이자, 베트남 홍보대사다.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응원 속에 하루하루 자신감을 되찾아 가는 앤티루. 고마운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크게 한턱 쏜다. ●1 대 100(KBS2 오후 9시) 특집 ‘최후의 아내’편에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팀 중 김국진이 1인으로 먼저 도전하며, 그 다음 주에는 나머지 멤버인 이경규, 김태원, 이정진, 윤형빈, 이윤석, 김성민이 100인으로 도전한다. ‘최후의 아내’편의 100인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퀴즈의 여왕을 꿈꾸는 주부들이 도전한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미선과의 이별후 잠적해 버린 종신. 온 동네 사람들이 종신을 찾아 나선다. 종신의 엄마는 경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종신을 찾는 한편 자신에게까지 지극정성인 미선에게 마음을 점차 열게 된다. 한편 종신이 호텔룸에 숨어 지내는 걸 알게 된 연습생들은 종신에게 가수 데뷔를 시켜 달라며 조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25분) 3남매 중 첫째.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누구도 맏이로 보지 않는다. 무조건 “난 못해!”를 외치며 엄마부터 찾는다. 뭐든 내 요구대로, 내 마음대로인 아이. 그것도 모자라 수틀리면 울고, 소리 지르다 집어 던지고, 때린다. 더 심하게 하겠다며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6살 승완이를 만나 본다. ●공부의 달인(EBS 오후 10시40분) 전교 최상위권의 성적을 가지고 있던 신영하 군. 어느 날 영하에게 사춘기가 찾아 왔다. 어머니의 간섭, 공부 대신 만화책에 빠져 있던 영하군과 어머니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벗어나 자신의 꿈을 찾은 신영하 군은 어떻게 공부의 달인이 될 수 있었을까.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0분)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온난화.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전 세계 빙하가 급속하게 녹고 있는데 이는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져 섬이나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극빈국가들이다. 이들을 위한 특별한 지원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 송파 어린이 안전포럼 개최

    경기 화성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이 발생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송파구는 인재(人災)와 안전불감증의 대명사가 된 씨랜드 참사 10주년을 맞아 29일 ‘어린이 안전문화 포럼’을 개최한 데 이어 30일 10주기 추도식을 갖는다.활짝 피어나지도 못한 채 까맣게 타 버린 19명의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고, 우리 사회에서 두번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된 자리다.이번 행사는 당시 6살 쌍둥이 딸을 잃은 고석(47·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씨와 막내 아들을 잃은 이경희(55·관리본부장)씨 등 유족들이 내놓은 사고보상금으로 설립된 한국어린이안전재단에서 주관한다. 이날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포럼에서는 ▲씨랜드 참사 후 청소년수련시설의 안전환경분석 및 제도적 발전 방안 ▲보육시설 안전문화 실태분석을 통한 발전방안 등 크게 4개 주제로 어린이 안전문제가 심도깊게 다뤄졌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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