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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생 구하려고” 개와 혈투벌인 6살 소년

    “동생 구하려고” 개와 혈투벌인 6살 소년

    달려드는 개에 온몸으로 맞서 동생을 구한 6살 소년이 ‘어린 영웅’으로 미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플로리다 주 홈스터드에 사는 소년 티모 테레즈는 지난 6일(현지시간) 집 뒷마당에서 남동생 카를로스(4)와 이웃집 4세 소년과 놀다가 끔찍한 일을 당했다. 근처 공장에서 전날 도망친 셰퍼드 경비견이 갑자기 이들에게 달려든 것. 세 사람 가운데 가장 맏형이었던 티모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낸 개가 두려웠지만 침착하게 대처했다. 티모는 동생들에게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가라고 말한 뒤 온몸으로 개를 막아섰다. 흥분한 개가 티모의 머리와 팔, 어깨 등을 물어뜯었지만 티모는 동생들을 막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소년들의 비명을 듣고 집에서 뛰어나온 티모의 아버지 덕에 개는 공격한 지 몇 분만에 도망쳤다. 이미 피투성이가 될정도로 상처가 심했던 티모는 그 때야 울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티모는 곧바로 마이애미 어린이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지만 머리와 목 등에는 사건 당시의 끔찍함을 떠올리게 하는 큰 상처들이 여럿 남았다. 동생을 구하려는 티모의 용기 있는 행동이 알려지면서 미국의 많은 신문과 방송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등 티모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퇴원해 집에서 회복 중인 티모는 “동생이 다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개에게 물릴 때는 정말 아팠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편 홈스터드 동물관리 당국은 문제의 개가 사건 다음날인 7일 사살됐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twitter.com/newsluv) 
  • 유니세프 “카다피 저격수, 어린이 노렸다”

    “5일 동안 밤낮으로 애썼지만 결국 어젯밤 떠나보내고 말았네요.” 리비아 제3의 도시인 미스라타의 히크마 병원에서 근무하는 심장·폐 수술 전문의 라마단 아테와는 지난 7일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자에게 이 같은 비보를 알렸다. 전날 아침 이 한살배기 아이를 만났던 기자는 10일 기사를 통해 “얼굴을 다 덮을 정도로 긴 속눈썹을 가진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돌아본 뒤 이곳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아이는 6살짜리 언니와 함께 부모님 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중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친위 병력의 총격을 받았다. 언니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이처럼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이들조차 언제 카다피군의 타깃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아들의 삶이 처절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트리폴리가의 한 학교에는 생후 수개월~15세 아이들 105명이 담요 한장에 의지해 지내고 있다. 정부군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쳤지만 학교라고 안전할 리 없다. AP통신에 따르면 저격수 여러 명이 배치돼 활동 중인 곳이 바로 트리폴리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인슈어런스 빌딩’이다. 마리시에 메르카도 유니세프(UNICEF) 대변인은 8일 기자들에게 “미스라타 저격수의 표적 중 어린이들이 있다는 믿을 만하고 일관성 있는 보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의약품과 식료품을 공급하기 위해 미스라타로 출발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저격수들이 어린이를 노리고 있다는 보고에 대한 조사도 벌일 예정이다. 40일 넘게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미스라타에서는 지금까지 최소 수백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슈마허보다 빠른 사나이 될것”

    “슈마허보다 빠른 사나이 될것”

    귓가로 바람이 찢어진다.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다. 손과 귀엔 감각이 없어졌다. 그리웠다. 한달 만에 느끼는 고통이었다. 이 짜릿한 고통 때문에 머신에 오른다. 포뮬러 머신 연습주행 한 바퀴째. 기록은 그리 좋지 않았다. 뒤에 선 선수보다 앞을 달리는 머신이 더 많다. “괜찮아. 이제 시작이니까. 더 달려 보자.” 드라이버 서주원은 이를 악물었다. 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서팡 F1 경기장이었다. 두 바퀴째. 18대 머신 가운데 16등을 달렸다. 당장 순위는 그리 상관없었다. 지금은 자기 기록을 줄여 나가는 게 중요하다. 속도를 더 올렸다. 기록은 2분 14초대를 찍었다. 선두권과는 2초 정도 차이가 났다. 그래도 지난달 생전 처음 이 경기장에서 포뮬러 머신에 올랐을 때보다는 1초가량 기록을 단축했다. 매번 레이싱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기록을 향상시키는 건 좋은 드라이버의 자질 가운데 하나다. 더구나 서주원은 처음 머신을 타 본 뒤, 지난 한달 내내 연습 주행을 한번도 못해 봤다. 한국에선 머신으로 연습할 공간이 없다. 세 바퀴째 돌입했다. 속도가 좀 더 올라갔다. 레이싱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안압이 오르고 구토가 몰려 왔다. 등수는 그대로지만 선두권과의 격차가 미세하게 줄었다. “됐다. 좀 더 줄일 수 있겠다.” 기대가 생긴 그 순간. 머신에 이상 신호가 왔다. 기어가 터졌다. 갑자기 올라간 속도를 기계가 못 버텨 냈다. 서주원은 일단 연습 주행을 포기했다. ‘JK 레이싱 아시안 시리즈’ 첫날 연습은 이걸로 끝이다. 한국 F1 드라이버 유망주 서주원. 올해 16살, 고등학교 2학년이다. 미성년자라 운전 면허도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가장 차를 잘 모는 남자 가운데 하나다. 역대 이 대회에 참가한 한국인 드라이버 가운데 최연소다. 2005년 출전했던 안석원보다 15개월 정도 빠른 기록이다. 지난해 이 대회를 뛰고 올해부터 F2에 나선 문성학보다는 3년 가까이 빠르다. 참가하기 쉽지 않은 무대다. JK 레이싱은 이날부터 10일까지 치러지는 F1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의 서포트 대회다. 전 세계에서 20명이 참가한다. F1에 진출하기 위한 전전 단계다. 지난해 F1 월드챔피언 세바스티앙 베텔은 2004년 이 대회 총 20라운드 가운데 18승을 거뒀었다. 그런 뒤 F3를 거쳐 F1에 진출했다. 서주원도 지금 그런 경로를 노리고 있다. 서주원이 처음 레이싱을 시작한 건 2008년이다. 중학생 시절 캐나다에서 처음 F1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봤다. 가슴이 뛰었다. “머신의 굉음을 들으면서 저게 내가 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머신을 타기 전 단계인 카트 운전대를 잡았다. 평가가 좋았다. 레이싱 전문가들은 “전투적이고 직선적인 드라이버다. 대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시작한 지 2년 만인 지난해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지난달 JK 레이싱 테스트를 통과했고, 드디어 포뮬러 머신을 타게 됐다. 아직 이룬 건 없고 갈 길도 멀다. 그러나 꿈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될 겁니다. 슈마허보다도… 베텔보다도….” 운전대를 잡은 손이 단단했다. 쿠알라룸푸르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오늘의 눈] 희망 대신 절망을 주는 사람들/박건형 온라인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희망 대신 절망을 주는 사람들/박건형 온라인뉴스부 기자

    “왜 우리 수민이를 그런 데 내세우느냐.” “그래도 목소리를 내야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권익을 이해해줄 것 아니냐.” 6일 자 ‘소아암 앓아 다리 못쓰는 6살 수민이의 병원가는 길’ 기사가 보도된 후 수민이네 집에서는 밤 늦게까지 부부싸움이 이어졌다. 수민이 아빠는 가뜩이나 안쓰러운 딸의 얘기가 사진과 함께 신문에 나왔다는 사실을 마뜩잖아했다. 수민이 엄마는 “그래도 리프트 고장이 덜 나고, 저상버스가 늘어나면 더 좋아지는 것 아니냐.”며 남편을 달랬다. 나의 생각도 수민이 엄마와 같았다. 기사에 등장한 사례들은 수민이와 같은 장애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하고 있을 법한 불편들이다. 이 중 단 한가지라도 나아진다면 기사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서울메트로(3호선), 도시철도공사(7호선), 서울9호선운영㈜ 모두 기사를 접한 후 궁금해한 것은 ‘고장난 리프트의 위치’뿐이었다. 메트로와 9호선운영은 “우리 관할이 아니니 회사 명예를 위해 이름을 빼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책임 당사자인 도시철도공사는 “사실 확인을 해보니 지난해 10월 신형 리프트 교체 작업 이후에는 고장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사에 나온 이동경로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며 “엄마 말만 듣고 쓴 과장된 기사”라고 폄훼하기 바빴다. “장애인의 달이라고 억지 기사가 자꾸 나온다.”고도 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적반하장’일까. 전화번호 없는 안내문에 대해서만 “역장이 규정을 어겼다.”고 시인했다. 리프트 고장에 대한 신속한 대책,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저상버스 증설. 수민이 엄마와 수민이가 바라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매년 쏟아지는 수많은 장애인 대책에 이미 담겨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찬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은 6살 어린이에게 ‘희망’ 대신 ‘절망’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이다. kitsch@seoul.co.kr
  • 소아암 앓아 다리 못쓰는 6살 수민이… 유모차 타고 병원 가는 길

    소아암 앓아 다리 못쓰는 6살 수민이… 유모차 타고 병원 가는 길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입니다. 7호선 환승은 9호선 동작→4호선 이수역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이에요. 지금 제 앞에는 30개 남짓한 계단이 있어요. 많은 건 아니지만 전 쉽게 올라갈 수가 없답니다. 유모차와 제가 타야 하는 계단의 전동 리프트 앞에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만 달랑 한장 붙어 있거든요.이 안내문대로라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 동작역, 이수역을 거쳐 두번을 갈아타야 한다는 얘기군요. 엄마는 난감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저와 유모차를 한꺼번에 ‘으랏차차’ 들어올려 계단을 타볼까 고민하는 듯합니다. 저는 엄마 눈치를 봅니다. 남보다 체구가 작은 엄마가 훌쩍 커서 무거워진 저와 유모차를 동시에 들어올릴 수 있을까요. 엄마는 역무실에 전화를 겁니다. 고장안내문 밑에 전화번호도 없어서 결국 지금 서 있는 지하철역의 전화번호를 114에 연락해서 물어봐야 합니다. 한참을 목소리 높여서 다투시네요. 역무원이 엄마한테 “지금 어느 방향에 계세요?”라고 묻습니다. 계단 위쪽에 서 있으면 3호선이나 9호선 역무실에 전화하고, 계단 아래쪽이면 7호선 역무실에 전화하라고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십니다. 그럼 중간쯤 가다가 섰으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뭐 어느 쪽이든 별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항상 그랬거든요. 결국 또 택시를 불러야 하겠죠. 아, 제 소개를 빼먹었네요.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는 인사부터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전 서울 상도동에 사는 6살 이수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경모세포종이라는 소아암을 앓고 있고 지금까지 14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선 암은 거의 완치 단계랍니다. 하지만 암세포가 척추를 눌러 다리를 쓰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네요. 엄마는 입버릇처럼 “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못하는 게 많다는 걸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휠체어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로 불리는 일본사람 구니에다 신고입니다. 구니에다는 9살 때 척수종양으로 하반신 마비가 됐지만,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5년 연속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영웅입니다. 저도 구니에다처럼 꼭 다른 친구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많이 배워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처럼 불편한 아이들이 외출하기엔 너무 힘든 나라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고속터미널역의 안내문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워낙 자주 겪는 일이라서요. 오늘 하루 반나절의 나들이에도 엄마는 여러 차례 답답해했고, 전 멀뚱멀뚱 엄마만 지켜보고 있어야 했어요. 엄마와 전 건국대병원에 가기 위해 아침 9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 노선은 10개가 넘습니다. 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가지만 전 계속 기다립니다. 유모차가 올라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잘 안 오거든요. 오늘은 그나마 20분만 기다렸으니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번엔 비오는 날에 40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 결국 지하철을 두번 더 갈아타고도 우리는 정작 건대입구역에는 내리지 못합니다. 저희 집에서 가는 방향에는 병원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없거든요. 예전엔 역무원 아저씨가 도와줬는데, 언제부턴가 역무실이 비어 있더군요. 자동화인가 뭔가 시설이 좋아져서 역무원 아저씨들이 필요없게 된 거래요. 엄마는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어린이대공원에서 돌아오는 방법을 생각해냈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모차를 들어달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엄마는 가능한 한 도움을 받지 않는 게 좋은 거라면서 항상 스스로 하는 습관을 고집합니다. 아참, 우리 엄마는 요즘 이사를 하려고 고민 중이신데요. 어린이집이랑 병원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깝고, 덜 갈아타는 곳으로 가고 싶대요. 적당한 아파트도 찾았대요. 근데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네요. 마을버스는 유모차로 못 올라가는데. 어제는 엄마가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보여 줬습니다. 미국에서 열린 TED라는 행사에서 저처럼 걷지 못하던 어맨다라는 여자가 일어서는 모습이었지요. 스키를 타다 다친 어맨다는 “절대로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평생을 절망 속에 살았대요. 근데 이더 벤더라는 과학자가 어맨다를 일으켜 세운 거죠. 로봇 같은 뼈를 입은 어맨다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사람들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숨죽여 우시더라고요. 그러고선 “수민아. 엄마가 꼭 돈 많이 벌어서 저거 사줄게.”라고 했어요. 저 로봇다리가 얼른 싸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걸 신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편하게 타고 싶어서냐고요? 아니요. 다른 애들처럼 달려보고 싶거든요. 글 사진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어느 미남 승려와 폐결핵 환자 아가씨와의 청순한 러브 스토리. 원효(元曉) 대선사가 요석공주와 동침하여 파계한 끝에 설총(薛聰)을 낳았다는 천년 전의 로맨스처럼 지현(知玄)스님의 로맨스는 물씬한 감동마저 준다. 지금은 환속하여 부산(釜山)에서 알뜰하게 살고 있다는 그들의 파계 장소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돌산도(突山島) 향일암(向日庵)에 얽힌 얘기-.  전남(全南) 여수(麗水)시에서 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돌산(突山)섬이 나온다. 여천(麗川)군 돌산(突山)면 율촌(栗村)리에서 1km쯤 북쪽에 금오산(金鰲山)이 있고 산에는 흔들바위란 게 있다. 집채만큼 큰 바윗덩이가 사람이 밀면 흔들거린다는 기묘한 바위다. 이 흔들바위 밑에 까치집처럼 앙증맞은 향일암(向日庵)이란 암자가 있다. 하지만 이 암자의 유래는 거창하다. 신라 선덕(善德)여왕 13년(사기 639년)에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고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이 곳을 본거지로 승군(僧軍)이 활약했다는 곳. 그 건 그렇고 이 일대 경치가 장관이다. 울창한 낙락장송의 솔바람 소리, 온갖 기묘한 모양의 바위, 그리고 남해바다의 장쾌한 파도가 기막힌 절경이다.  1957년이면 17년전. 키가 헌칠하고 미목수려한 스님 한분이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로부터 향일암(向日庵)으로 왔다. 당시 나이 27살, 법명은 지현(知玄), 속명은 박영식(가명), 호는 호월(湖月).  경남 남해(南海)가 고향인 지현(知玄)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살에 출가, 전국 유명 사찰을 돌아다니며 10년을 목표로 수도하다가 마지막 3년을 채우기 위해 향일암(向日庵)을 찾은 것이다. 지현(知玄)스님은 절 주변을 알뜰하게 손질한 뒤 백팔염주에 사바세계 번뇌를 실어 깊은 사념의 경지를 거닐었다.  그동안 폐사처럼 버려져 있던 향일암(向日庵)에는 이로부터 여신도들이 몰려들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곡식 위의 제비같은 탈속(脫俗)의 지현(知玄)스님, 게다가 인물 좋고 경치마저 절경이어서 그는 인기스님이 된 것이다.  세월은 흘러 59년 봄이 되었다. 향일암(向日庵)에서 1km 떨어진 해변가 율촌(栗村)마을에 양장 차림의 미인 아가씨가 찾아들었다. 광주(光州)에 산다는 박애희(朴愛姬)양(23·가명). 폐결핵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요양차 이모가 사는 율촌(栗村)에 왔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의 홍보가 요정처럼 기막히게 예쁜 미인.  아열대성 식물인 동백·산죽(山竹)·비화(飛花)가 온 섬을 뒤덮고 바위 틈에 도사린 석란(石蘭)의 향기는 십리 안팎을 뒤덮어 6순 환갑이라 해도 마음 설렐 판이었다.  박(朴)양의 병은 이런 절묘한 풍경의 탓(때문)이었는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차츰 힘이 생겨 산책 코스를 넓혀갔다.  그때 그녀의 눈에 띈 남성이 바로 지현(知玄)스님. 부처님 앞에 정좌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근엄한 모습을 취한듯 응시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2개월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일암(向日庵)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고 지현(知玄)스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잠이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장승. 눈길 한번 주는 법이 없었다.  가을이 되었다. 사무친 가슴 속의 사연이 맺히고 맺혀 이번엔 폐결핵이 아닌 상사병에 몸부림하다가 농약을 마셔 버렸다. 위급한 그녀를 두고 이모 되는 여인은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현(知玄)스님에게 달려가『그 애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그 요청을 거부하고『나의 손길보다는 당장 해독시키게 녹두물이나 먹이시오』했다. 이모는 되돌아와 녹두를 갈아 먹였다. 의사 없는 갯마을에서 꼼짝없이 죽어야 했던 그녀는 신통하게도 살아났다.  59년이 저물고 새해 음력 1월14일 새벽 4시. 지현(知玄)스님은 화엄경(華嚴經)을 독경하며 새벽의 경내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뒷산으로 달려갔다. 박(朴)양이 흔들바위에 맨발로 서서 바다를 향해 투신하려는 찰나였다.  혼비백산한 지현(知玄)스님. 자기로 인해 원한을 품고 죽을 여자를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아가씨 소원은 뭐요? 다 들어 주겠으니 제발 뛰어내리지만 말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소원이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스님과 함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망설이고 더듬거릴 나위가 없었다.『알겠으니 제발 그곳에서 내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 박(朴)양은 바위 위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스님은 그녀를 구출해 냈다. 암자에 누이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스님의 품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싱싱한 여인의 체취와 풍만한 마찰감에 스님도 얼이 빠져 버렸다.  29년동안 막혀 있던 정열이 용솟음 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10년 수도를 1년도 못남기고 거센 폭포수 속의 물거품이 되었다. 이날 새벽부터 지현(知玄)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지난 65년 여름. 대구(大邱) D사에서 참회의 수도에 전념하던 지현(知玄)스님은 어떤 모녀의 방문을 받았다.  『이 애가 스님의 딸입니다』면서 모녀는 6살 귀여운 아기를 내보였다. 스님은 가가대소,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면서 즉시 승복을 벗고 딸을 한가슴 가득 안았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뒤로 스님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얻어 1남2녀를 두었다.  지난 71년 5월. 향일암(向日庵)을 중창할때 속인 지현(知玄)부부는 찬조금 5만원을 보냈다.  그들은 현재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으나 찾아간 기자에게 사진찍기를 거부-.  그러나 한 여인의 억센 사랑의 집념으로 10년 수도승의 마음을 움직인「흔들바위」는 오늘도 의연하다. <麗水=金德鉉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7월15일 제6권 28호 통권 제248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국내 첫 프로 마술사 이흥선 옹

    한국 첫 프로 마술사인 이흥선씨가 31일 오후 5시 10분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26살 때 마술에 처음 입문한 고인은 비둘기 마술에서부터 공중부양 마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마술을 한국에 도입했고 1964년부터 각종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마술의 대중화에도 힘썼다. 1996년에는 한국 최초의 마술 상설 공연장 ‘알렉산더 매직바’를 열고 후배들을 양성했다. 2004년 한국마술협회 공로상을 받고, 2005년 서울랜드마술대회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 딸 영숙, 영희, 영애씨가 있으며 외손자인 김정우(41)씨가 뒤를 이어 프로 마술사로 활동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발인 4월 2일. (02)2227-840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밤 7시 30분)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춤과 정열의 나라 쿠바. 이곳에서 한국 여자와 쿠바 남자의 운명적인 사랑이 피어났다. 촬영차 간 쿠바에서 평생의 반쪽을 만난 다큐멘터리 감독 정호현씨. 10살 연상의 아내 호현씨와 철부지 남편 오리엘비스가 주인공이다. 연인에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의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를 들어본다. ●1대100(KBS2 밤 8시 50분) 멋진 음색의 소유자 가수 김태우와 똑 부러지는 대학생 예심 고득점자 한지희씨가 각각 1인에 도전한다. 연예인 퀴즈 군단과 봄의 웨딩마치를 기다리는 예비 신랑신부들, 그리고 연세대 ‘퀴즈파이터’ 회원과 평생의 소원을 이룬 ‘방송 출연’ 회원, 비트박스팀, 한수원과 ‘신입사원들’, 그리고 65인의 예심 통과자들이 100인으로 도전한다. ●짝패(MBC 밤 9시 55분) 왕두령패는 재산을 모두 잃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다. 참봉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자가 된 막순은 김대감네 식구들의 옷을 지어 김대감을 찾아오고, 귀동은 유모를 찾아가 어머니로 생각하지 않을 테니 자신을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한편 장꼭지는 왕두령에게 복수하기 위해 홀몸으로 왕두령을 찾아가는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 30분) 365일 ‘물 줘’란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아이. 물이 있는 곳은 귀신같이 찾아내 어디든 등장하는 자타공인 워터보이 재호. 아이의 관심사는 오로지 물뿐이다. 하루 3ℓ는 기본으로 마시고, 밥도 물에 말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대체 왜 물과 사랑에 빠진 걸까. 재호가 워터보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함께 알아본다. ●60분 부모(EBS 오전 11시) 집 밖에 나가기를 거부하는 6살 도훈이. 어렸을 적 겪었던 배변 활동의 수치심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싫어하는 아이다. 심지어 도훈이는 벽장 속에 숨어서 대변을 본 적이 있다. 어렸을 적 배변 활동의 충격으로 화장실을 무서워하는 도훈이와 그런 도훈이가 걱정이 되는 엄마의 하루를 함께한다.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5분) 산 하나를 넘어야 옆집이 나오는 첩첩산중 오지 마을. 전기를 놔달라는 부탁조차 하기 미안했던 산속에 노부부의 외딴집이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자연이 주는 환경에서 느린 걸음으로 살고 있는 노부부. 바쁜 세상살이는 귀로 흘려 듣고, 느리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한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입학사정관제 정착… 대학교육 패러다임 바꿔야”

    “입학사정관제 정착… 대학교육 패러다임 바꿔야”

    “학생 선발과 입학도 분명히 대학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이지만, 대학의 가장 근본적인 임무는 바로 학생을 어떻게 제대로 가르치느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선임된 김영길(71) 한동대 총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발언에서는 ‘지향점이 분명한 교육’이라는 철학이 읽혔다. 그는 “대교협 총장으로서 입학사정관제의 정착을 통해 학생 선발과 대학 교육 간의 연계를 강화해 인격과 창의성을 가진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는 16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혁신적인 커리큘럼과 기독교 정신에 기반을 둔 도덕성 교육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주목받는 대학의 반열에 올랐다. 1995년 한동대 초대 총장으로 임명돼 16년째 이 학교를 이끌어 온 김 총장을 지난 24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칠순에도 불구하고 김 총장은 90여분간의 인터뷰 내내 쉬지 않고 “국내 대학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에 이어 지난 8일 제17대 대교협 회장에 당선돼 이날 서울신문과 첫 언론 인터뷰를 가졌다. →현재 한국 대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 분야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연구중심대학(대학원)도 상위권이다. 하지만 대학교육은 최하위다. 이게 뭔가. 21세기형 인재의 중요한 자질은 창의적인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들은 아직도 산업화시대의 마인드에 빠져 지식 암기에만 골몰한다. 소위 명문대학들도 상위 1%를 뽑아 4년 뒤 그대로 상위 1%로 졸업시킨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한 학생의 능력가치가 얼마나 향상됐는지 대학이나 기업은 도무지 따지질 않는다. 능력 50% 학생을 뽑아 10%로 만드는 게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목표여야 한다. →총장 취임 후 줄곧 학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대학의 본 기능은 연구가 아니고 교육이다. 교육을 잘하기 위해 연구가 필요한 것 아닌가. 국내 202개 대학의 학생 95%가 학부에 다닌다. 그런데도 정부 지원은 대학원에 집중된다. 이 때문에 교수들도 학생들 가르치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 역사만 300년이 넘은 미국도 최근 들어 다시 학부교육을 강조하는 추세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양산 인력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비판과 분석, 문제해결 능력까지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 툴을 만들어 입학과 동시에 졸업까지 검증한다. 우주선을 만드는 과학자부터 한 나라를 지도하는 대통령을 만드는 데도 대학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대학에서는 학부만 나와서 세계적인 기업, 대학원에 간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3~4학년만 되면 스펙에 목을 매고, 영어 점수 얻어서 취직만 하려 한다. 창의성 없는 인재는 모방은 할 수 있어도 영원히 1등은 못한다. 인력교육이 아니라 인간교육이 중요하다. →대학에서도 학생의 인성, 도덕성을 주로 강조해 왔는데. -하버드대 총장도 지난번 100주년 기념사에서 대학의 윤리, 정직성, 책임성을 강조했다. 뜬금없이 요즘 시대에 왜 도덕인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지난번 세계적인 금융위기 때 하버드 MBA 출신들이 거액의 보너스와 돈벌이에만 눈이 멀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거다. 미국 최고 대학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우리 대학생도 당장 졸업하면 대기업 가서 얼마나 많은 월급을 받는가에만 골몰한다. 다들 혼자 잘먹고, 잘사는 데만 빠져 있다. 도덕성을 초·중·고교에서만 가르치면 안 되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한동대의 모토가 바로 ‘배워서 남 주자’이다. 대학의 전문지식 교육은 이미 충분하다. 남과 더불어 사는 삶, 글로벌 시민의식을 교육하자는 게 나의 또 다른 목표다.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 문제로 여전히 논란이 많다. -노무현 정부 말에 시작된 제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입학사정관제가 중요하다. 점수가 아니라 학생의 성장잠재력을 보고 뽑자는 거다. 잘만 되면 공교육 정상화는 물론 사교육도 없앨 수 있다. 그런데 대학들이 뽑기만 하고 제대로 가르치질 않는다. 미국에서는 이미 50년 전부터 사정관제를 시도했다. 학부교육이 먼저 정착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려면 학부 교육이 먼저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 대학들이 선발에서만 경쟁할 것이 아니라 대학에 들어와 가르치는 데에서도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학과 동시에 대학 교육과의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교협 회장으로서 가장 큰 목표도 입학사정관제 정착이다. →대학에서 직접 입학사정관제를 운용해 본 소감은. -지금까지의 입시는 사람을 불신했다. 선발의 공정성만 따지다 보니 컴퓨터로 0.1점을 갈라 학생을 뽑았다. 이제는 사람이 학생을 뽑는 시대다. 면접은 주관성이 개입된다는 단점도 있지만, 컴퓨터로 검증할 수 없는 잠재력과 창의성을 뽑아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족집게 과외로 훈련한 학생이 시험 점수는 더 높을 수 있어도, 실제 대학 교육에서는 도움이 안 된다. 한동대는 이미 전체 학생의 80%를 사정관들이 뽑는다. 면접에서는 가장 먼저 ‘졸업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세계로 나가 경쟁할 준비가 돼 있는지 검증하는 거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학문에 대한 동기와 열정이다. 왜 이 과목을 배우느냐, 또 거기에 얼마나 열정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의사 돼서 돈 많이 벌고, 잘사는 사람은 우리 대학에서는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학생의 재능과 학습능력을 확인한다. 컴퓨터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내년부터 대교협 차원에서 대학 평가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국내 일간지나 영국의 더타임스가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실 대학원이지 학부 평가가 아니다. 이러다 보니 교수들도 논문 점수 한점 높이려고 바쁘고, 대학도 평가 높이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결국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사과와 오렌지는 같은 과일이면서도 속은 전혀 다르듯 대학원과 대학 두 과정은 당연히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 앞으로의 대학 평가는 양적 평가, 연구성과, 인풋(in-put) 위주의 평가에서 교육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 졸업 후 학생이 얼마나 달라졌나와 같은 부가가치 창출 능력과 아웃풋(out-put) 위주로 가야 한다. →대학교육의 특성화와 다양화를 강조했는데 상세히 설명해 달라. -우리나라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자기 재능을 모른다. 아직도 이과에서 1등 하면 의대 가고, 문과에서 1등 하면 사법시험 본다. 수백, 수천 가지 직업이 있는데도 똑똑한 학생은 두 군데만 바라본다. 이공계 살리자고 장학금 줬더니 나중에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다 간다. 앞으로는 장학금도 상위 1% 학생에게 줄 게 아니라 소위 중간층 몸통 학생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한동대는 무전공·무학과로 입학해 2학년 때 자기 맘대로 학과를 고른다. 복수전공을 필수로 해 학문 간 융합도 강조한다. 대학 교육의 목표는 학생이 가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동대 초대 총장 취임 후 16년이 흘렀다. 소회는. -우리 학교에만 매년 62개 나라에서 학생들이 온다. 졸업하면 대기업에도 많이 가고, 창업교육 수업을 통해 직접 회사도 차리고, 재학 중에 봉사활동을 필수로 시켜 월드비전 같은 비정부기구(NGO)에도 많이 나간다. 다양한 학생이 들어오니 취업도 다양하게 한다. 지방이라고 불리할 거라 생각하지만 역으로 한동대가 지방이라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학교 가는 길에는 산과 논뿐이다. 서울 유명 대학들처럼 주변에 술집, 노래방이 하나도 없다. 진짜 공부밖에 할 게 없다. 세계적인 대학 치고 수도 한복판에 있는 거 봤나. 지역주의도 결국 산업화시대 고정관념이다. 과학의 3요소인 시간·경제·물질은 21세기에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사실 거리로만 따지면 포항이 서울보다 미국에서 더 가깝다. →대학생과 학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대로 가도록 인도만 해주면 된다. 어차피 자기 삶은 스스로 사는 거다. 어느 대학을 가라, 아니면 의대, 법대를 가라고 시키는 건 잘못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부모만큼 대학 전형요강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나라가 없다. 그보다는 자녀가 어떤 재능을 갖고 잠재력을 가졌는지를 발견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감성과 지성의 융합이다. 머리에 좌뇌, 우뇌가 있다. 산업화시대에는 우뇌가 중요했다면 다가오는 시대는 좌뇌도 중요하다. 대학에 들어오면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것에도 반드시 관심을 둬야 한다. 그리고 혼자 잘사는 것에만 관심 갖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나누어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한번쯤 고민해 보길 바란다. 김효섭·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김영길 총장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사범병설중학교, 서울사대부고,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거쳐 뉴욕 RPI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원으로 일하다 1979년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로 15년간 재직했고, 1994년부터 현재까지 한동대 총장을 맡고 있다. 포항공대 초대총장인 고(故) 김호길 박사가 6살 위의 형이다.
  • 이시영 “얼굴 부상 걱정보다 복싱열정 더 컸어요”

    이시영 “얼굴 부상 걱정보다 복싱열정 더 컸어요”

    “얼굴 다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보다 복싱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각종 권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돌주먹’이라는 별명을 새롭게 얻고 있는 여배우 이시영(29)은 갑자기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얼마 전 제7회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은 그녀를 21일 서울 종로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복서와 배우, 도전인생 복사판 대회 우승 뒤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이시영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위험한 상견례’ 개봉(31일)이 코앞인데 복싱에 너무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을 신경쓰는 눈치였다. “제 본업은 배우예요. 운동은 좋아서 열심히 한 건데 사적인 부분이 너무 부풀려지는 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너무 칭찬만 해 주시니까 걱정도 되고요. 솔직히 복싱을 한 기간에 비해 잘한다는 것이지, 수준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게 잘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복싱만 하는 분들이 보시면 언짢아하실 수도 있을것 같아요.” 1년 전부터 대회에 출전해 왔는데 유독 이번에 큰 관심이 쏟아지는 것이 의아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시영. 그녀의 도전이 색다른 것은 얼굴이 생명과도 같은 여배우가 부상이 다반사인 복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영화 촬영 때문에 당초 대회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대회 일정에 맞춰 매일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등 복싱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였다. “알려진 대로 복싱을 시작한 것은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 때문이었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고 하기 싫어서 일주일에 세번이나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연습에 빠졌어요.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 의지가 약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힘든 운동이라 더 도전 의욕을 자극한 것 같기도 해요.” 정작 열심히 연습한 그 드라마는 ‘엎어졌지만’(무산), 복싱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단다. 힘든 만큼 운동의 재미가 느껴지면서 점점 복싱이 좋아지게 됐다는 것. 소속사도 일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그녀의 복싱 도전을 굳이 만류하지 않았다. “여배우인데 어떻게 얼굴 다치는 것이 걱정이 안 됐겠어요. 하지만 그 마음보다 복싱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링에 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지만, 복싱을 하게 되면서 얻은 것이 많아요. 건강해지고,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됐고요. 배우들은 일이 없을 때 집에만 있게 되는데, 정신적·육체적으로 활력소가 된 것 같아요.” 이시영은 권투선수로는 체력도 그리 강한 편이 아닌 데다 먹으면 잘 찌는 체질이라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악조건을 이기고 ‘챔프’가 된 과정은 그녀의 배우 인생과도 닮아 있다. 이시영은 26살 때인 2008년 드라마 ‘도시괴담 데자뷰 시즌3-신드롬’을 통해 데뷔하기까지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연기 오디션 낙방만 수백번 “5년 동안 기획사는 수십번, 광고나 에이전시 오디션은 수백번을 봤어요. 낙방의 연속이었죠. ‘넌 안 된다. 왜 연기하려고 하느냐’는 말을 수없이 들었어요. 나중엔 학교에 출석하듯이 오디션을 봤어요. 그러다 보니 이 일이 더 하고 싶어졌고, 스물다섯쯤 되니까 조급증이 사라지더군요.”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영상을 CD에 담아 기획사 문을 두드리던 그녀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에서 주인공 잔디(구혜선)를 질투해 위험에 빠뜨리는 악역을 맡게 된 것. 적잖은 안티 세력을 몰고 다녔지만 이듬해 출세작 격인 ‘부자의 탄생’ 배역을 따내는 발판이 됐다. 이 드라마에서 그녀는 통통 튀고 망가지는 부태희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안티팬이 있든 없든 작은 역할이라도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어요. 정말 연기가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안티팬들은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요즘엔 좋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 감사해요. 앞으로 배우로서 연기를 더 열심히 해야죠.” 이시영의 손톱은 다른 여배우와 달리 짧게 다듬어져 있었다. 복싱 때문이기도 하고 단정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복싱 영화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단다. 로봇 건담 수집광이기도 하다. 평소엔 겁 많고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편이라는 이시영. 배우로서나 복서로서나 근성은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왕따의 반격’으로 호주서 영웅된 왕따 소년

    ‘왕따의 반격’으로 호주서 영웅된 왕따 소년

    ’왕따의 반격’ 이란 동영상에서 왕따를 참지 못하고 반격을 가한 호주 소년이 인터넷 영웅이 돼 20일 호주 채널9의 시사프로그램인 ‘커런트 어페어’에 출연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10학년의 16살 케이시 헤인즈. 헤인즈는 뚱뚱한 체형과 소극적인 성격으로 거의 매일 왕따를 당해 왔다. 아이들은 헤인즈의 뒤통수를 때리며 뚱뚱하다고 놀렸고, 심지어는 테이프로 기둥에 묶어 놓기도 했다. 그런 폭력에도 헤인즈는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했다. 헤인즈는 방송 중에 ”왕따가 너무 심해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고 고백했다. 3주전 부터는 동영상에서 헤인즈를 폭행한 7학년 12살 리처드 게일이 주축인 된 집단으로 부터 집중적인 왕따와 폭행을 당했다. 14일에도 학교 수업 시간표를 확인 하러 가는 길에 게일 집단에게 걸렸다. 게일은 헤인즈를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헤인즈는 “그날은 3년여 동안 쌓였던 분노가 폭발 한 듯하다.” 며 “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고 말했다. 그날의 반격으로 게일은 발목을 다쳤고 두 소년은 정학을 받았다. 헤인즈의 반격 동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투브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뉴스에까지 방송되면서 화제가 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23만 명의 팔로워가 정학을 받은 헤인즈 구명운동에 동참했고, 그를 ‘영웅’으로 부르는 신드롬이 일어났다. 블로거 웨인 맥코이는 “헤인즈는 왕따를 당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삶에 변화를 주었다.” 고 적었다. 그러나 “그가 행사한 반격으로 자칫 상대편 학생의 목이 부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헤인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며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고 놀려대지도 않는다.” 고 말했다. 사진=호주 채널9 서울신문 나우뉴스 호주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16일 TV 하이라이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매년 어김없이 우리나라에 불어오는 황사와 날리는 꽃가루는 봄철 면역력이 약한 노인의 호흡기 건강을 위협하는 불청객이다. 폐활량이 적은 노인, 특히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지닌 노인들은 황사로 인한 증상 악화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주요 사망요인으로 꼽히는 만성폐쇄성폐질환에 대해 알아본다. ●가시나무새(KBS2 밤 9시 55분) 유경은 스캔들 동영상 파일을 영조에게 들켜 궁지에 몰리자 모든 것을 정은(한혜진)에게 뒤집어씌운다. 유경의 거짓말을 알게 된 정은은 명자 앞에서 모든 걸 밝히려 하지만 명자는 이미 은퇴를 선언하고 사라져버린 후다. 그리고 정은은 다른 영화의 주인공으로 뽑히며 기회를 거머쥐지만 정은을 오해한 영조가 막아선다. ●수목 미니시리즈 로열 패밀리(MBC 밤 9시 55분) 인숙(염정아)이 지훈의 후원자라는 기사에 화가 난 공여사는 두 사람을 감금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인숙은 공여사가 자신의 아들 병준까지 이용해 자신을 내치려고 하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한편 지훈은 갇히기 전 몰래 가져온 민경의 전화로 충기와 통화하려 애쓰지만 쉽지만은 않다. ●드라마 스페셜 49일(SBS 밤 9시 55분) 연인의 기일을 맞아 사망 현장을 찾은 이경은 자신의 연인에게 바치는 꽃 한 다발을 들고 달리는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차도로 몸을 날린다. 그 바람에 연이은 급정거 사태와 추돌 사고가 발생하고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지현은 그만 놀라서 서둘러 핸들을 돌리지만,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가로등에 부딪치고 마는데…. ●다큐10+(EBS 밤 11시 10분) 최근 아이티부터 칠레와 타이완까지 지구 곳곳을 가공할 힘으로 파괴하는 대지진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도로를 끊고 산맥을 움직이며 도시의 건물들을 산산조각 내는 거대한 힘, 지진. 현대 과학의 당면과제는 일기예보처럼 지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진 예보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과연 지진 예보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메디컬 다큐 생명(OBS 밤 11시 5분) 동정맥 기형이라는 혈관기형으로 무리가 온 심장과 신장 수술을 위해 서울의 병원으로 올라 온 동협이. 16살 동협이는 벌써 열번째 시술을 준비 중에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수술과 시술을 견뎌 온 탓에 동협이는 이번 시술이 마냥 두렵기만 하다. 자신의 왼팔보다 두배는 큰 오른팔을 가진 부산 소년 동협이를 만나본다.
  • [11일 TV 하이라이트]

    ●독립영화관(KBS1 밤 1시 10분) 엄마와 살고 있는 사랑스러운 두 자매 진과 빈.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홀로 두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진 엄마는 진과 빈을 지방에 사는 고모에게 맡기고 아빠를 찾으러 간다. 엄마가 떠나던 날, 진과 빈은 돼지 저금통이 차면 돌아온다는 약속에 메뚜기를 구워 팔고, 큰 동전을 작은 동전으로 바꿔가며 조금씩 저금통을 채워 나간다. ●금요기획(KBS2 밤 11시 5분) 하마르족 사회에서는 남자가 성인식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결혼할 자격을 부여받는다. 성인식은 한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그런 가보마을의 15세 소년 목동이 성인식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 전체의 잔치이자 부족을 결속시키는 축제의 현장을 따라가 본다. ●몽땅 내 사랑(MBC 밤 7시 45분) 금지는 자신의 일을 늘 도와주던 두준이 없어지자 리포트와 학원 일로 바빠진다. 힘들어하는 금지를 본 김 원장(김갑수)은 도와주려고 채점을 대신해 주겠다고 말한다. 킹크랩을 얻게 된 영옥은 아르바이트로 몸이 약해진 승아만을 위해 킹크랩을 삶으려고 한다. 하지만 승아는 은희 가족들과 함께 먹자고 한다.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SBS 밤 8시 50분) 65년을 함께한 부부가 있다. 하지만 10여년 전 치매 판정을 받은 할머니의 기억은 조금씩 사라져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단기 기억 장애도 심해져 할머니의 기억력은 고작 하루뿐이라는데…. 자고 나면 어제의 기억을 잃는 아내에게 사랑을 각인시키고픈 한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세계의 아이들(EBS 밤 8시 50분) 남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 투발루. 파란 바다에 작은 섬들이 길쭉하게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그런 투발루가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에게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유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나라가 잠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자연의 재앙 앞에 살아가고 있는 투발루의 아이들을 만나 본다. ●명불허전 신영희편(OBS 밤 10시 5분) 우리나라 최고의 명창이자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판소리 명창 신영희. 아버지이자 대명창인 신치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1살에 판소리를 시작해 16살 소녀가장으로 집안을 돌봐야 했던 어린 시절과 1980년대 인기 개그코너 ‘쓰리랑부부’ 출연 당시 에피소드, 국악계에 대한 질타와 추억담 등을 공개한다.
  • ‘스마트폰 앱’으로 48kg 감량한 여성

    영국의 한 여성이 스마트폰에 받은 체중감량 ‘앱’(응용 프로그램)을 활용해 50kg에 가까운 몸무게를 감량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 선에 따르면 하트퍼드셔 세인트 올번스에 사는 실리 헨더슨(22)은 최고 몸무게였던 114kg에서 열 달 만에 66kg까지 감량했다. 헨더슨은 10개월 전 자신의 스마트폰에 1.99파운드(한화 약 3600원)짜리 칼로리 계산 프로그램을 내려받았다. 그녀는 그 앱을 활용해 매일 자신이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입력해 섭취한 열량을 계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앱에 나타난 칼로리 정보를 활용해 자신의 식사량을 조절하기 시작했고 체중이 조금씩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그녀는 정기적인 운동까지 겸해 점점 몸무게를 줄여나갔다. 헨더슨은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기에 음식에 대한 유혹이 끊이질 않는다.”며 체중감량 앱을 활용하게 된 사연을 밝혔다. 그녀는 이번 다이어트로 화제를 모아 레스토랑에서는 매니저로 진급했고 자신을 알아본 많은 사람에게 다이어트 성공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고 전해졌다. 헨더슨은 “16살 때부터 체중이 불기 시작했다.”면서 “다이어트로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돼 올여름에는 새로 산 비키니를 꼭 입겠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 폐지 줍는 노인/박대출 논설위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 보자. 직업(職業)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로 설명돼 있다. 부업(副業)은 ‘본업 외에 여가를 이용하여 갖는 직업’이다. 아르바이트(독일어 Arbeit)는 ‘본래의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는 부업으로 순화됐다. 둘의 사전상 의미는 같아졌다. 하지만 현실에선 뉘앙스가 다르다. 학생들에겐 부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로 쓸 뿐이다. 이런 구분들은 노인들에게는 의미 없다. 폐지(廢紙) 줍기. 언제부터인가 이런 일을 하는 노인들이 늘었다. 직업이자, 부업이자, 아르바이트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니 직업이다. 여가를 이용해 갖는 직업이니 부업이다. 임시로 하는 일이니 아르바이트다. 물론 예외도 있다. 지난해 말 80대 노인이 300만원을 장학금으로 쾌척했다. 이종철(80) 할아버지가 폐휴지를 팔아 모은 돈이다. 그에겐 부업이자 아르바이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살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 근로기준법에 최저 임금이 정해져 있다. 시간당 4320원이다. 아르바이트 급여는 4500~5000원이 많다. 법적 기준을 살짝 넘기는 수준이다. 얼마 전 폐지된 ‘30분 피자 배달’에선 인센티브가 적용됐다. 시간급 4500원에 배달 한건당 300원. 노인들에겐 먼 얘기다. 하루종일 일해야 7000원 정도 번다. 때로는 찻길을 다니느라 목숨을 건다. ‘30분 배달’처럼 인센티브도 없다. 그나마 손수레를 끌 힘이 있을 때다. 힘이 부치면 장보기용 포터를 끈다. 손에 거머쥐는 건 3000원 안팎이다. 할머니들끼리 폐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83살 할머니가 66살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렸다. 66살 할머니는 덤프트럭에 머리를 부딪혔다. 다행히 생명이 위독하지는 않다고 한다. 폐지 줍기는 이래저래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됐다. 최근엔 젊은 실업자들도 가세했다. 노인들에겐 무서운 경쟁자다. 차 조심, 사람 조심을 다 해야 할 판이다. 무상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정부는 사상 최대의 복지 예산이라고 한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겐 공허하다. 대부분이 절대 빈곤층으로 살아간다. 기초수급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80~90%는 기초수급조차 받지 못한다. 모시지 않는 자식이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노인 복지의 사각지대는 많다. 제도적 맹점을 줄이는 노력이 아쉽다. 이게 정치권의 소임이다. 무상 논쟁에서 헤어나야 할 때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지식의 공장’ 된 대학 학문마저 경영하는가

    ‘지식의 공장’ 된 대학 학문마저 경영하는가

    ‘지성의 전당’ 또는 ‘우골탑’이라 불리는 대학을 10~30년 전에 졸업한 기성세대들이 찾는다면 깜짝 놀라기 마련이다. 잔디밭, 테니스 코트, 공터 등에 우뚝우뚝 들어선 기업이나 기업가의 이름을 단 낯선 건물에 놀라고, 시내 식당의 밥값을 능가하는 학생식당의 가격표에 또 놀란다. 아마도 자녀가 들고 오는 등록금 고지서 숫자를 처음 보면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놀랄 것이다. ‘대학 주식회사’(제니퍼 워시번 지음, 김주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한국 대학보다 앞서 기업의 앞마당으로 변해 버린 미국 대학의 현실을 한 언론인이 발로 뛰며 취재한 기록이다. 저자인 워시번은 ‘네이션’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기사와 사설을 쓰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다. 2005년 출판된 ‘대학 주식회사’로 “대학의 기업화 과정에 대해 저널리즘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분석을 보여 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인 스미스 가족이 맏딸 제인을 뉴욕 대학에 보내려면 2003년 기준으로 1년에 3만 95달러(약 330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여기다 방세와 식비, 교재 그리고 용돈까지 합하면 1만 3000달러가 더 든다. 뉴욕대는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대학 순위 평가에서 보스턴 대학 등 경쟁 대학을 제치고 2003년 35위란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1인당 연봉 20만~3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유명 경제학자 8명을 채용하고, 하버드대 안드레이 슐레이퍼 교수를 영입하고자 50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뉴욕대는 산부인과 교수 네명에게는 150만 달러가 훨씬 넘는 연봉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뉴욕대에 입학한 제인이 이런 거물급 교수에게 배울 일은 거의 없다. 뉴욕대는 스타 학자들을 영입하면서 강의는 최소한으로 줄여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학부생인 제인이 듣는 강의는 대학원생이나 워드 리건 같은 시간강사가 맡을 가능성이 더 크다. 36살의 시간 강사 리건은 뉴욕대에서 12년 동안 대학생을 가르쳤다. 1993년 그가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초봉은 한 과정당 2700달러였다. 나중에 그의 임금은 한 과정당 3900달러로 올랐는데 이는 그 과에서 받는 최고 금액이었다. 뉴욕대에 리건과 같은 시간강사는 3277명이 있다. 이들은 뉴욕대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며, 3083명인 전임 교수보다 그 수가 더 많다. 만약 스미스 가족이 딸이 듣는 강의 대부분을 리건처럼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시간 강사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래도 매년 3만 달러가 넘는 돈을 등록금으로 선선히 내놓을까. 2010년 현재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스미스 가족에게 던지는 질문은 대학생 자녀를 둔 우리나라 학부모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내용이다. 드넓은 잔디밭이 풍요롭게 펼쳐진 미국 대학의 풍경도 한국과 다를 바 없다.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소속 위험성 평가센터는 화학회사와 살충제 생산 회사로부터 재정의 60%를 지원받고 있으며, 이들 회사가 생산하는 상품에 대해 우호적인 보고서를 쏟아내는 곳이다. 텍사스 대학은 교수들이 11년간 담배 회사의 변호사들을 위한 비밀 연구를 수행하도록 승인해 주는 대가로 170만 달러를 받았다. 도산한 엔론 사는 하버드대 주요 연구소에 자금을 댔고, 연구소는 캘리포니아주의 에너지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31개나 쏟아냈다. 심지어 대학 총장도 후원금을 끌어모으는 능력이나 기업과의 친밀도에 따라 임명되고, 경영대 학장이나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총장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이사를 겸하기도 하며, 주립대 총장의 봉급 가운데 상당 부분을 세금이 아닌 민간의 재원으로 조달하는 예도 많다. ‘사회의 양심이나 비판자’라기보다는 ‘산업계가 요구하는 특정한 제품(인재 또는 보고서)을 생산하는 공장’이 된 대학. 사회의 모든 부문이 시장에 잠식된 지금, 시장이 간과하는 문제를 탐구하고 비판할 대학의 본령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책은 진지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1만 8000원. 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신생아 담보로 잡은 병원 “병원비 내!”

    신생아 담보로 잡은 병원 “병원비 내!”

    부모가 병원비를 떼어먹을까 싶어 병원이 갓 태어난 아기를 담보(?)로 잡은 일이 페루에서 발생했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아기는 무려 1주일 동안 병원에 잡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에르밀리아라는 이름의 소녀가 사건을 고발했다. 올해 16살인 그는 지난달 15일 페루 리마에 있는 페리나탈 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았다. 자연분만을 겁낸 그가 고집해 수술로 아기를 낳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불거졌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어린 부부가 병원비를 내지 않자 병원이 아기를 볼모(?)로 잡고 돈을 요구했다.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아기를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은근히 협박까지 했다. 어린 부모는 돈을 구하려 사방으로 뛰어다니다 결국 언론에 이 사실을 폭로했다. “병원이 아기를 담보로 잡고 협박을 한다.” 병원은 발칵 뒤집혔다. 병원은 부부에게 빚(?)을 전액 탕감해주기로 했다. 병원장은 인터뷰에서 “빚 때문에 병원이 아기를 내보내지 않았다는 건 오해에서 비롯된 것” 이라며 “이유야 어떻든 마음이 아팠을 부모를 생각해 출산비용 전액을 병원이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45년 전국투어 나서는 ‘젊은오빠’ 남진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45년 전국투어 나서는 ‘젊은오빠’ 남진

    그때 20살의 한 청년은 ‘서울 플레이보이’란 노래로 세상 무대를 처음 노크했다. ‘나는 못생겼지만/머릴랑 깎지 않고 수염마저 길렀지만/멋쟁이 서울 플레이보이’라고 했다.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울려고 내가 왔나/낯설은 타향 땅에 내가 왜 왔나.’라고 다시 한번 호소했다. 여전히 냉담했다. 오기가 생겼다. 이듬해 청년은 ‘가슴 아프게’라는 카드를 꺼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흐느끼듯 가슴속을 후벼 파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로소 통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그는 당시 톱스타 문희와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사고(?)까지 쳤다. 하지만 청년은 불붙은 인기를 뒤로하고 훌쩍 떠나 버렸다. 어디로?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것. 청룡부대의 노래처럼 ‘월남의 하늘 아래~’에서 군 복무를 마친 청년은 귀국 직후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 무대를 열었다. 소문을 듣고 많은 여성 관객들이 찾았다. 공연이 끝날 무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빠, 오빠’를 외쳤다. 이날부터 청년에겐 ‘오빠부대 원조’, ‘콘서트의 원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절정은 30살 때 ‘님과 함께’였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고 요동을 치며 읊었다. 젊은 남녀들에게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상징하듯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그는 우리나라 가요 45년사를 관통하면서 빅스타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었다. 블루스와 트로트를 비롯해 왈츠, 차차차, 트위스트 등 장르를 뛰어넘는 천부적인 가창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특유의 무대 동작으로 변함 없는 국민 가수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또 한번 대형 사고를 친다. 가수 남진(66)씨. 다음 달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45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에 나선다. 그것도 신곡 세 곡을 들고 확 달라진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과 만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노래 인생 2막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다. 더 ‘젊어진 오빠’의 모습으로, 정열의 무대를 꾸미는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교대역 인근에 있는 ‘차태일 뮤직 스튜디오’. 남씨는 공연을 앞두고 열심히 녹음을 하고 있었다. 머리를 흔들고 손동작과 미소를 지으며 역동적으로 노래를 불러댄다. 라이브 공연에 맞춰서인지 국민 애창곡 ‘님과 함께’는 더 빠른 템포로 편곡됐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이 덩실덩실 움직이게 했다. 신곡 ‘잘가라 청춘아’도 불렀다. 노랫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속절없는 청춘아/가거든 혼자 가지/아무도 모르는 샛길로 찾아와 나까지 데려가나/그래도 괜찮다 고맙다 청춘아~’ 4분의4박자 빠른 리듬풍의 노래다. ‘둥지’ 등으로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차태일씨가 얼마 전 작곡했다. 그렇게 30여분. 녹음을 마친 남씨와 마주 앉았다. 6년 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날 때보다 훨씬 젊어졌다고 했더니 “그때는 살이 많이 쪘었다. 지금은 12㎏이나 빠져 (몸 상태가) 아주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거듭된 질문. 젊어지는 비결이 무엇일까. “언젠가 노래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살이 빠지더군요.(웃음) 노래를 알면 알수록 더 노력하게 됐습니다. 무대에 서면 힘찬 박수를 받게 되거든요. 그런 노래의 힘, 팬들의 힘이 저를 젊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젊어지도록 열심히 해야겠지요.” 이번 무대도 그런 노래의 힘을 바탕으로 꾸몄다. 하여 의미 또한 남다를 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이번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저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965년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시민회관에서 데뷔 곡을 불렀습니다. 또 1971년 첫 단독 공연을 가진 곳이 시민회관입니다. 또 그해 첫 가수왕상을 받은 장소도 시민회관이고요. 이번 무대가 40년 만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갖는 셈입니다. 물론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으로 명칭이 바뀐 다음에는 처음이지요. 2시간여 동안 신·편곡을 포함해 모두 30곡 정도 부를 예정입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곡은 가사에 느낌이 확 꽂혀 선택했습니다. 기대해도 괜찮습니다.” 그는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 ‘사랑하며 살 테야’라는 타이틀 곡으로 45주년 기념 음반을 제작했다. 지금까지 성원을 보내준 팬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겠다는 뜻을 옹골차게 담았다. 또한 노래 인생 1막의 완결편 음반이자 전국 투어를 계획한 것도 이런 마음에서였다. 옛날 극장무대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어 전국의 광역시는 모두 다닐 예정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의 팬들로부터 신청 곡이 벌써부터 쇄도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주제가 ‘사랑’이나 데뷔 곡 ‘서울 플레이보이’ 등 당시 노래는 좋았지만 히트치지 못했던 곡들도 오랜만에 불러 보기로 했다. 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이번처럼 두 시간 동안 라이브로 30여곡을 부를 때, 아무리 자신의 노래라고 하지만 사람인 이상 가사를 잊어 버리지는 않을까. “무대 앞쪽에 설치된 모니터에 가사가 뜨긴 하지만 그걸 볼 수는 없습니다. 보면 몰입이 안 되거든요. 예를 들어 ‘둥지’만 하더라고 수천번 불렀는데 가사를 잠시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비슷하게 얼버무리면서 얼른 넘어갑니다. 또 감기나 몸살 기운으로 정신이 약간 멍할 때도 가사를 놓치는 경우가 있지요. 또 20~30대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를 먹어 가면서 그런 일이 간혹 있습니다.(웃음)”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역시 주저 없이 대답한다. “가수 데뷔 전에 닐 세다카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자주 들었지요. 공교롭게도 엘비스 프레슬리와 몇 가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엘비스도 21살 때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부르며 인기를 끌었지만 곧 군 입대를 했습니다. 제대한 뒤에는 저와 비슷하게 영화 수십편에 출연했지요.” 남씨 역시 21살 때 ‘가슴 아프게’로 스타가 됐지만 곧 군 입대를 했다. 이후 자신의 노래를 영화화한 ‘가슴 아프게’, ‘울려고 내가 왔나’, ‘별아 내 가슴에’ 등에 출연했다. 그럴 때마다 헤어 스타일이나 몸동작 그리고 하얀 가죽옷에 금속 장식이 있는 프레슬리 의상 차림으로 나와 팬들을 열광시켰다. 지금까지 그가 부른 노래는 1000여곡이나 된다. 대부분 애창되고 있지만 ‘남진’ 하면 얼른 떠오르는 대표 곡은 역시 ‘가슴 아프게’와 ‘님과 함께’가 아닐까 싶다. 일화 한 토막. 1966년 남씨는 작곡가 박춘석씨를 만난다. 이때 박씨는 작사가 정두수씨에게 가사 하나를 부탁했다. 고민하던 정씨는 서울 마포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라디오 연속극에서 뱃고동 소리를 들었다. 고향이 경남 하동인 정씨는 갑자기 바다가 그리워져 인천 연안부두로 달려갔다. 하지만 안개가 자욱해서 바다도 보이지 않고 연안 여객선들도 출항하지 못했다. 그러자 승객들 사이에서 ‘가슴이 아프다’라는 탄식이 나왔다. 귀가 번쩍한 정씨는 바다로 인해 생기는 이별을 모티브로 가사를 썼다. 처음 제목은 ‘낙도 가는 연락선’이었다. 그러나 너무 올드패션의 느낌이 들어 고민 끝에 ‘가슴 아프게’로 바꾸게 됐다. ‘님과 함께’는 작곡가 남국인씨의 부인이 작사한 곡. 처음에는 동요처럼 느껴졌지만 때마침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맞물려 삽시간에 남녀노소가 즐겨 부르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가 ‘남진’이 된 사연도 있다. 본명은 김남진(金湳鎭)이다. 데뷔 직전 문여송 감독이 ‘남쪽의 보배’라는 뜻을 담긴 ‘남진’(南珍)으로 예명을 지어 주었다. 이름대로 지난 45년 동안 수많은 히트 곡을 내며 가요계의 보배로 살아 왔다고 얘기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올해 66살. 영원한 청년인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팬들의 힘이 있었기에 제 인생에서 45년 동안 가수라는 직업으로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어느 날 세월 깊이 왔다는 것을 알았지요. 데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앞으로 정말 좋은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가수로서 성심을 다해 잘 마무리하는 것이 제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내내 자신에 찬 목소리였다. 다시 녹음실로 간 그는 신곡 ‘너 말이야’ 중에서 ‘널린 게 행복이잖아~’를 힘차게 불렀다. ‘그렇구나’라는 찐한 느낌표를 뒤로하면서 헤어졌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가수 남진 배우 꿈꿔 영화과 진학… 윤정희·남정임·문희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작품 1945년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6년 목포 북초등학교를 나온 후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경복중학교를 다녔다. 다시 고향으로 가서 1962년 목포고를 나온 뒤 평소의 꿈인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한양대 영화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1965년에 어머니의 지원을 받아 가수로 데뷔했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끼를 살려 60여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당시 윤정희, 남정임, 문희 등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자주 출연했다. 남씨의 부인은 부산 출신이다. 슬하에 3녀 1남을 연년생으로 두었다. 지난해 11월 큰딸이 결혼했다. 막내인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얼마 전 귀국했다. 자녀 중에는 셋째 딸이 노래에 소질이 있어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라고 남씨는 말했다. 건강 관리를 위해 자택인 경기 성남시 분당의 헬스클럽을 가끔 찾는다. 골프 핸디캡은 10 정도이며, 이탈리아 칸초네와 프랑스 샹송을 듣는 취미도 있다. 추억의 팝송도 자주 듣는다. 그는 1965년 데뷔 당시 ‘서울 플레이보이’, ‘울려고 내가 왔나’ 등을 발표했으며 이듬해 공전의 히트 곡 ‘가슴 아프게’를 발표했다. 1969~71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직후인 1971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첫 리사이틀 공연을 벌였고 한국무대예술상 그랑프리를 2회 받았다. 1969∼73년 TBC 남자 가수상 대상을 3회 수상했다.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1991)과 한국연예협회 이사장(2000) 등을 지냈다. 대표 곡으로 ‘가슴 아프게’, ‘별아 내 가슴에’, ‘미워도 다시 한번’,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 마오’, ‘빈잔’, ‘둥지’ 등이 있다.
  • 말썽꾸러기 딸에 겁주던 엄마, 경찰에 체포돼

    말썽꾸러기 딸에 겁주던 엄마, 경찰에 체포돼

    말썽꾸러기 딸에게 잔뜩 겁을 주어 버릇을 고치려던 엄마가 오히려 혼쭐이 났다. 6살 된 딸을 경찰서로 데려가 겁을 준 25세 엄마가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났다. 최근 미국 스태튼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 식으로 문제아의 버릇을 고쳤다는 한 친구의 말에 솔깃한 게 잘못이었다. 남편과 헤어진 후 사귀고 있는 애인과 함께 여자는 학교로 딸을 데리러 갔다. 그리곤 딸을 차에 태워 곧장 경찰서로 달려갔다. 경찰서 안에 들어선 엄마는 “나쁜 어린이들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 너도 이곳에 있고 싶으냐.”며 잔뜩 딸에게 겁을 줬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한 경찰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결국 일이 꼬였다. 딸을 데리고 나와 저벅저벅 차를 향해 걸어가는 엄마를 덜컥 체포해 버린 것. 어린 딸을 무방비 상태로 뒤에 둔 채 앞서 걸었다는 이유에서다. 어린 자식을 돌볼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자는 “도저히 딸이 통제가 안 된다. 이곳에 두고가지 못한다면 소방서를 찾아가 딸을 버리겠다.”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경찰은 차에서 애인을 기다리던 남자에게도 수갑을 채웠다. 두 사람은 경찰서에서 하루를 보낸 후 풀려나고, 할머니에게 맡겨졌던 딸은 4일 뒤에야 엄마에게 돌려 보내졌다. 풀려난 여자는 “경찰로부터 ‘당신은 참으로 나쁜 엄마’라는 말을 들었다.”며 억울해 했다. 한편 두 사람의 변호사는 “모든 게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법정에서 오해를 풀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MB 취임 3주년 간담] 이대통령 “남은 임기 2년이면 몇년치 일할 수 있다”

    [MB 취임 3주년 간담] 이대통령 “남은 임기 2년이면 몇년치 일할 수 있다”

    “나는 처음부터 권력을 써본 일도 없으니까 권력을 놓을 일도 없고 (권력을)당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취임 3주년(25일)을 앞두고 지난 3년간의 소회와 남은 2년에 대한 각오를 진솔하게 밝혔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2시간 30여분간 북악산 산행을 한 뒤 가진 오찬간담회 자리에서다. 이 대통령은 오전 10시부터 청와대 뒤편 길을 통해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에 오른 뒤 하산 후에는 청와대 충정관 지하 식당에서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설렁탕과 수육, 두부김치와 함께 반주로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 자리는 간단한 질의·응답이 이어지며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이 대통령은 오찬 간담회에서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일하는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사람들이 3년이 지났으니까 이제 높은 산에 올라갔다 내려온다 뭐 이런 표현을 하더라.”면서 “그것은 너무 권력적 측면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며, 나는 대통령이 산에 올라가서 정상에서 내려온다고 생각하지 않고 평지에서 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권 3년을 맞는 소회를 묻자 “그걸 지금 답하면 맥이 빠진다. 답변은 2년 이후로 유보하겠다.”면서 꺼낸 얘기다. 이 대통령은 “평지를 5년 뛰고 다음 선수에게 바통을 주는 것”이라면서 “더 우수한 선수가 받으면 속도를 내고 우승을 하는 것이지, 권력이 있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권력을 가지고 한다는 개념은 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임 동안) 우리 대한민국이 정말 선진 일류국가를 이룰 수 없더라도 나는 기초를 어느 정도 닦아 놓고 가겠다.”면서 “그 다음 바통을 받은 사람은 좀 더 쉽게 갈 수 있고 대한민국이 잘살기만 하는 게 아니고 존경받는 나라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또 “내가 서울시장을 4년 해보니까 4년을 2년같이 일할 수 있고, 8년처럼도 일할 수 있다.”면서 “(대통령 임기) 5년을 10년처럼 일할 수 있고, 2년도 안 되게 일할 수 있다. 앞으로도 2년 남았으면 아직도 몇년치 일을 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나는 ‘아이고 이런 나라 대통령 해먹기 힘들다’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한 치의 의심할 여지도 없다.”고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러 정치적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대통령 해먹기 힘들다.”고 말한 것을 빗대어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개헌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것은 생각할 여지도 없다.”고 답변을 비켜갔다. “등산 갔다 와서 그런 딱딱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분위기에 안 맞는 것”이라면서 “다음에 정장하고 넥타이 매고 답변을 하기로 약속하겠다.”며 개헌 관련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 대통령은 “같은 한민족이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결코 우리에게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김정은의 대장 승진과 관련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번 모 국가 정상이 나에게 물어보더라. ‘김정은 그 친구 나이가 몇 살입니까’ 아마 본 나이는 26살일거라고 내가 얘기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분이) ‘그런데 대장 아니냐’라고 해서 대장이라고 내가 그랬더니, 그 정상이 ‘나는 육사를 1등으로 나오고 별을 따는 데 수십년이 걸렸는데 어떻게 26살이 하룻밤 자고 나서 대장이 됐느냐’고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안경’도 화제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지난번 남대문 시장을 방문하고 식사를 하러 가는데 옆에 안경점 주인이 나오더니 고맙다고 인사하더라.”면서 “내가 쓰는 안경이 ‘대통령안경’이라고 불티가 났다면서…. 내가 가끔 스타일을 바꿔야겠다. 그렇게 기여를 해야지.”라고 조크를 던졌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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