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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프로젝트’ 본격 가동한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중국·일본과의 역사왜곡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국민 대부분이 사이버외교관이 되는 것이지요.그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10년 후 반드시 우리가 승리합니다.” 전 세계 8억 네티즌을 향한 풀뿌리 한국 홍보단(반크)을 이끄는 박기태(31) 단장.‘반크’는 요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핫이슈화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사이버 민간외교사절단인 반크(VANK)는 ‘Voluntary Agency Network Korea’의 약자로 국민 모두가 한국을 알리는 요원이 되자는 뜻이다.가입회원은 현재 국내외 1만 3700여명.이들은 지난 6년동안 전 세계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교과서·인쇄물 등을 뒤져 한국역사의 오류를 300군데나 지적하고 바로잡아낸 나라사랑 일꾼들이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약수시장내의 한 오피스빌딩 6층.10평도 채 안되는 공간에 반크의 베이스캠프가 있었다.온라인상 ‘반크의 힘’보다는 초라한 편이었다.직원은 박 단장을 포함해 고작 5명.주위에서는 ‘독수리 5형제’로 불린다.무더위도 잊은 채 각자 컴퓨터 앞에서 사이버외교관 양성을 위한 교육에 여념이 없었다. 박 단장은 회원들 가운데 사이버외무고시에 합격한 프로급 외교관은 1300여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그는 또 지난 9일부터 ‘고구려 회복 및 부흥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다면서 국민적 동참을 거듭 호소했다. “역사왜곡은 중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제3국가 등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지구촌 네티즌들과 서로 친구가 돼 이같은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합니다.” 반크는 지난 10일 세계 최대 포털사이트인 야후를 비롯해 백과사전,영영사전 등에 ‘평양이 기원 전 108년부터 이후 2000년간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설명한 부분을 찾아내 수정을 요구했다.앞서 지난 4일 캐나다 외교부 영사국 홈페이지에 제주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또 얼마 전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했던 유럽 최대의 온라인 지도 회사 ‘멀티맵’측도 반크의 지적에 따라 오류를 정정했다. 이같은 반크 활동은 1999년에 시작됐다.당시 박 단장은 사정상 유학이 어렵게 되자 외국 친구들과 펜팔을 통해 국제감각을 익히겠다고 마음을 돌렸다.이어 미국·유럽 등 각 대학의 아시아 관련학과 게시판에 무작정 자기소개서를 띄웠다.‘우리는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한국의 젊은이들이다. 한국과 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사귀고 싶다.메일을 보내면,당신만의 사이버 관광가이드가 되어주겠다.’라고. 그러자 하루에 수십 통의 메일이 쏟아졌다.메일에는 우리나라를 잘못 아는 내용도 많았다.내친김에 그는 지금의 동료들인 이정애(32) 이선희(31) 장성일(26) 임현숙(23) 연구원 등과 함께 사무실을 마련했다.이때부터 반크는 순수 민간 ‘국가홍보-사이버 외교관’으로 역할전환을 했다.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겨자씨가 나중에 풀과 나무,숲이 되듯 국민 1인당 (사이버상에서든) 외국인 친구 1명만 사귄다고 가정해 보십시오.겨자씨의 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그는 “세계 유명 포털사이트를 통해 ‘Sea of Japan’이나 ‘Korea History’라는 단어를 쳐보면 왜곡된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며 한번쯤 시행해볼 것을 당부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아!들

    “어머니 저승에서도 제가 등 두드려 드릴 게요.” 60대 어머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효성깊은 40대 아들이 유서를 남기고 뒤따라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4일 오후 6시쯤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김모(42·미2사단 PX근무)씨의 집에서 김씨가 계단 난간에 전깃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친구 박모(42)씨가 발견했다. 방안에서는 “엄마 혼자 보내서 힘들다.나 엄마 따라 간다.엄마 등 두드려 드리려고 간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김씨는 6년동안 심근경색을 앓던 어머니(63)가 이날 숨을 거두자 무척 괴로워 했으며 평소에도 동생 등 가족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따라 죽겠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4일 새벽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의정부의 한 장례식장에서 장례준비를 놓고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사라졌다.김씨는 또 어머니가 입원치료를 받을 때에는 매일 저녁 의정부 직장에서 퇴근한 뒤 서울의 병원으로 찾아가 간호를 하는 등 효심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 [파산, 그 이후] “살길은 있다”…파산자 카페 ‘희망가’

    [파산, 그 이후] “살길은 있다”…파산자 카페 ‘희망가’

    “저는 인터넷 쇼핑몰의 분양사기를 당해 파산했습니다.빚 6억원을 모두 면책받았습니다.우리가 잘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죽음을 선택하거나 숨어 살 정도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우리 희망을 가집시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중국집.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파산카페 회원 20여명이 ‘선배’의 경험담을 듣고 있었다. 그는 ‘신용불량자가 돼도 우체국 거래는 가능하다.’,‘완전면책을 받으면 연대보증인 보증채무도 사라진다.’는 등 직접 체득한 정보를 설명했다.모두가 신용불량자로 파산 신청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회원들은 초등학생처럼 경쟁적으로 손을 들고 질문을 퍼부었다.그들은 직접 체득한 생생한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아픈 마음 나누는 동병상련 회사원 이영선(가명·26·여)씨는 부모가 파산 위기에 있다.그의 아버지(60)는 36년동안 결근 한번 없이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사람을 너무 믿어 3차례나 보증을 선 끝에 1억원의 빚을 졌다.50대에 간신히 장만한 집은 5년만에 경매로 넘어갔다.어머니(56)는 친척에게 신용카드를 빌려줬다가 빚을 졌다.이씨는 회원들 앞에서 “두 분이 외가에 얹혀 살며 추심원 전화에 오금을 못 펴는 모습이 불쌍하다.”면서 “파산이라도 신청해 두 분을 지옥에서 구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그러자 회원들의 동병상련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개인 실책이 많아 완전면책이 힘들지 모르니 꼼꼼하게 준비하라.”는 충고부터 “하루빨리 파산을 신청해 두 분을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라.”고 걱정도 나눴다. ●상처,눈물…희망이라도 나누자 울산에서 올라온 정진화(가명·29·여)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언니가 선 보증과 카드빚을 갚으려 다단계 판매에 뛰어들었다.정씨는 “지난해 카드 빚이 1억 3000만원이라는 고지서를 받아보고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면서 “우연히 알게 된 파산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곁에 있던 양정석(가명·35)씨가 “다단계 빚은 진화씨 책임이라 면책이 어려울 것”이라고 한마디 거들자,정씨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안양에 사는 주부 강지선(가명·34·여)씨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마지막 희망을 그렇게 짓밟으면 안 된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예비파산자’우리도 전문가 파산 관련 서류를 들고 온 사람도 많았다.회사원 강지석(가명·28)씨는 파산신청서를 들고 와 자문을 구했다.강씨는 “변호사 수임료 100만원이 없어 직접 파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파산을 선고받고 면책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김태현(가명·44)씨는 “신청서에 처지를 과장하지 말고 심경을 진실하게 써야 하며 채무는 빠트리지 말고 모두 기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수첩에 받아적던 강씨는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격으로 이 자리의 회원들이 진짜 전문가”라며 정보를 얻기에 분주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신용회복 지원 4개제도 운용 개인의 신용을 회복하기 위한 지원 제도는 크게 4가지가 있다. ●개인회생제도 오는 9월23일부터 시행되는 일종의 개인 법정관리제도이다.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해 신용불량자를 구제한다.정기 소득이 있는 사람이 7년동안 빚을 성실히 갚으면 나머지 빚을 탕감받는다.개인 워크아웃제가 신협에서 빌린 돈이나 사채 돈을 구제하지 않는 데 반해 모든 채무를 포괄적으로 구제한다. ●개인워크아웃 신용불량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된 채무자에게 상환 기간의 연장,분할상환,이자율 조정,변제기 유예,채무 감면 등의 채무조정 수단으로 경제적 재기를 돕는다.채무액이 적으면 상환조건을 조절할 수 있고 보증 채무도 사라지지만,채무액이 3억원으로 제한되어 있고 신청요건이 까다로운 단점이 있다. ●배드뱅크 채무자가 장기·저리로 신규 대출을 받아 채권기관에 빚을 변제하고,채권기관은 채무자에 대한 신용불량등록을 해제한다. 까다로운 소득증빙 요건이 없고 즉시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한시적으로 운용되는 데다,원금의 3%를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해 부담이 크다. ●개인파산제도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을 때 법원이 그 경위를 심리한 뒤 면책 선고로 빚을 탕감한다.조세 채무를 제외하고 모든 책임이 소멸되며 신분과 자격 제한도 사라진다.다만 공무원,변호사,공인회계사,사립학교 교원,의사,약사 등이 될 수 없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면책땐 공직생활 가능 파산은 모든 채무를 벗을 수 있는 면책의 필수적인 사전 절차이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파산으로 불이익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꺼려한다.파산이란 말만 들어도 겁나게 하는 ‘카더라’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 상당부분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파산을 하면 호적에 빨간 줄이 가나? -호적에는 파산선고를 받은 사실이 올라가지 않는다.음주운전 전과기록이 호적에 기재되지 않는 것과 똑같다.다만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의 명부가 따로 있어 신원증명서를 발급받으면 파산선고 사실이 나온다. 하지만 완전 면책을 받으면 본적지에 통보하지 않으며,기록이 있어도 10년이 지나 복권되면 말소된다.또 형사 관련 일반조회에서는 파산과 면책 흔적이 남지 않는다. 파산은 가족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며 면책을 받으면 공무원이 되는 데도 지장은 없다. 파산을 하면 은행이나 신용거래가 불가능한가? -파산자의 신용거래는 신용불량자와 같다.지급정지를 당하고 거래하던 은행의 통장에서 돈을 찾을 수 없다.그러나 면책받은 뒤 채권기관에 내용증명을 보내 신용불량 해지 신청을 하면 신용거래법에 따라 정상거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해지 뒤에도 기록을 일정기간 갖고 있는 채권기관이 대부분이라 본인 명의로 신용거래하는 것을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상적인 금융 거래까지는 통상 몇 년이 소요된다. 카드가 연체되면 지명수배나 형사고소되나? -연체로 형사처벌이나 지명수배까지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형사처벌을 받으려면 채무자가 처음부터 돈을 갚지 않을 목적으로 대출받고 고의로 연체하거나,대출받은 뒤 한 차례도 갚지 않거나,채권자를 속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카드깡’은 구제가 안 되나? -카드깡은 면책을 가로막는 사유가 된다.파산법 제367조 2항은 ‘파산의 선고를 지연시킬 목적으로 현저하게 불이익한 조건으로 채무를 부담하거나 신용거래로 인하여 상품을 구입하여 현저히 불이익한 조건으로 이를 처분하는 행위’를 과태파산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금액이 적을 때는 판사가 무시하기도 한다.판사가 재량면책 권한을 행사하여 일부 면책을 승인하기도 한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전문가가 말하는 ‘파산의 조건’ 파산하면 면책을 받아도 재기가 쉽지 않다.전문가들은 파산을 ‘죄와 벌’이라는 전근대적인 인과응보로 보는 데서 벗어나 채무자들의 경제적 재기에 최우선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종학(경실련 정책위원) 경원대 교수는 “미국은 경제적 회생 여부가 파산의 가장 중요한 선고 기준이지만 우리는 파산에 이르게 된 원인만 따진다.”면서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의 청산가치를 따져 처분했듯 개인파산도 새출발의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현 국회 입법정보연구관은 “면책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채권자가 강제집행을 할 수 없도록 미국과 같은 ‘오토매틱 스테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파산자의 새 출발을 위해 파산면제 재산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면 채권기관의 무분별한 대출이나 카드발급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전병서 중앙대 법대 교수는 “파산선고를 받으면 30일 이내에 다시 면책신청을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합쳐 파산과 동시에 면책을 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그는 “법적으로 ‘낭비’는 면책의 불허가 사유이지만 그 기준이 명확치 않다.”면서 “과거의 낭비가 지금은 레저 개념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는 등 불합리한 측면이 많다.”고 비판했다. 임동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국장은 “정부가 운용하고 있는 배드뱅크도 실제로는 원금탕감 없이 빚을 모두 받아내고 있다.”면서 “채권자와 채무자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국정현안 이렇게 풀자](1)국가경쟁력 키우자-대담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치 사회 경제 각 부문별로 개혁이 본격화되면서 해결해야 할 국민적 현안과 이에 대한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이해가 상충되는 집단이나 계층간 갈등을 어떻게 조정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민생의 안정을 꾀할 수 있을까.18일로 창간 100주년을 맞는 서울신문은 5대 국정 현안에 대해 분야별 전문가 대담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본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처음 달성했다.그 후 10년.국민소득은 여전히 1만달러를 맴돌고 있다.‘잃어버린 10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그렇다고 조만간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노인인구는 늘어나고,신생아는 급감하는데 신(新)성장동력은 손에 잡히지 않는 까닭이다.민·관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이 돌파구”라고 입을 모았다.그런데 방법론의 우선순위는 달랐다.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재정경제부 박병원 차관보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느끼는 한,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은 요원하다.”며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국민인식의 과감한 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꼽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년부터 매년 6% 지속성장이 가능하다고 장담한다.그러나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경기가 이미 꼭지점을 찍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지난 5월을 기점으로 경기 풍향계가 ‘하향’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반기 경제성장률은 상반기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일각에서 더블딥(짧은 회복 뒤의 재침체)을 제기하지만 아예 추세적으로 경기흐름이 꺾인 것으로 보인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보 동의하기 어렵다.실사지수라는 것이 대부분 서베이지수,즉 여론지수이다.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5월에는 국제유가가 급등하고,미국의 금리인상 위험이 본격화되는 등 악재가 많았다.하반기에는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개선되고,신용불량자 증가세도 떨어질 것으로 보여 실물지표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 적어도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 경제가 중병까지는 아니더라도 순환기적 장애를 앓고 있다는 점이다.일각에서는 체질은 튼실하니,일시적 경기조절 정책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병인(病因)을 찾아서 근본적인 치유를 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살아나기 힘들다. 지난 6년동안 기업 구조조정을 열심히 했지만 아직도 상장기업의 30%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고 있다.또 시중에 돈이 충분한데도 신용경색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금융기관들이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받고도 제대로 중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 옳은 지적이다.전통적인 거시경제정책으로 지금의 문제점을 치유하기는 힘들다.소비만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수요 자체가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국내에서 충족이 안돼 해외로 옮겨간 수요 또한 적지 않다.골프니,병 치료니,자녀유학이니 해서 외국에 갖다 바친 돈이 얼마인가.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공장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심각하게 걱정하면서 서비스 수요가 빠져나가는 데는 둔감하다.정 전무만 해도 벌써 주장의 바탕에 제조업 중심의 사고가 깔려 있다. 정 (웃음)서비스산업이 취약해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문제는 활성화 방법이다.한려수도나 제주도 등을 세계적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면 수조원의 돈이 들어간다.이 돈을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해외자본을 유치하는 데는 제약이 많다.국내에서 이같은 자본력을 갖춘 곳은 제조업밖에 없다.제조업도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 박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게 뭐가 있나.없다. 정 왜 없나.출자총액제한제만 해도 투자를 가로막고 있지 않는가. 박 출자총액제한제는 얘기가 안된다.솔직히 예외규정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놨나.출자총액제한제 때문에 투자못한다는 주장은 무리다.그리고 핵심은 ‘자본 동원’이 아니라고 본다.문제는 국민의식이다.우리나라 국민들은 누가 아파트를 짓는 것은 봐줘도 아파트를 지어서 돈을 남기는 것은 못본다.다른 사람한테 제대로 된 사업기회를 주는 것을 특혜로 여긴다.국민들이 의식개혁을 하지 않으면 경제도약은 불가능하다. 구체적으로 국민의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가. 박 시장경제를 수용하고,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하다못해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지방에 들어가려고 해도 기를 쓰고 막는 게 우리 국민이다.당장 동네 구멍가게가 죽는다는 이유에서다.그러나 멀리 내다보면 대형 유통시설이 생겨야 고용도 훨씬 많이 창출되고 기존 영세 자영업자의 입점 기회도 생긴다.외국병원 유치도 마찬가지다. 정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 고리를 다시 잇기 위해서는 가계와 기업의 투자여력 확대도 중요하다고 본다.가계만 하더라도 과다한 부채에 눌려 소비할 엄두를 못내고 있지 않은가.개인소득세를 과감히 깎아줄 필요가 있다.기업 법인세도 더 내려야 한다.정부도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경기조절 수단을 지금까지의 재정지출 위주에서 세제로 바꿔야 한다. 급격한 고령화와 출산율 급감을 감안할 때,성장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박 그래서 정부가 10대 신성장동력을 제시하지 않았는가.여기에 농업과 서비스업을 추가해야 한다.정부관료들도 제조업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신성장동력에서 농업과 서비스업을 빠뜨렸다.경북 구미의 한 원예공단은 2만 5000평짜리 온실에서 한 종류의 튤립만 생산해 100명의 고용을 창출했다.2만 5000평이면 여섯 농가가 겨우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다. 정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모든 게 비슷한데도 농업생산성은 10배나 차이가 난다.원인은 누구한테 식민통치를 받았느냐에 있었다.산업혁명을 통해 대규모 생산을 경험한 영국이 말레이시아를,세금으로 노동력을 단순히 착취했던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다.우리나라에서도 농업의 규모화,기업화가 시도된 적이 있다.현대그룹의 서산간척지가 그 예다.그런데 최근 들어 이 땅을 거꾸로 쪼개팔고 있어 안타깝다. 약해진 체질은 어떻게 개선하나. 정 외환위기 이후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개혁정책,예컨대 부채비율·자기자본비율 규제 등을 지금쯤 되돌아보고 걸러줘야 한다.제2금융권 자금의 과다한 축소 등 일방적 규제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아울러 구조조정을 더 해야 한다.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과거 대기업 때처럼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인지,아니면 금융기관에 맡겨야 할 것인지 방법론의 고민은 남아 있지만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더 미룰 수는 없다. 박 동의한다.정부가 얼마전 중소기업 퇴출기준을 발표한 것도 그래서다. 정부가 성장을 의식해 구조조정을 다소 늦추고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 박 구조조정의 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흔히 자생력없는 기업을 퇴출시키는 것만이 구조조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좀 더 적극적인 구조조정은 업종 전환을 유도하고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시장경쟁을 제한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구조조정이요,개혁이다.대표적 사례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인데 일부 국민들은 이에 반대한다.국민의식이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의식전환을 계속 주장하는데 정부의 역할은 없나. 박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그런 시대는 이제 갔다. 정 그 부분은 견해가 다르다.영미식 시장경제를 아시아 국가,특히 한국에 그대로 접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탠리 피셔 씨티그룹 부회장 등 외환위기때 한국경제를 영미식으로 바꾸라고 앞장서 외쳤던 사람들이 지금은 정반대의 주장을 내놓고 있다.한국 경제는 스티글리츠 전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의 제안대로 ‘정부와 시장이 함께 주도하는 모델’로 가야 한다.즉,정부가 시장친화적 방식으로 마켓 메이커(시장 조성자)로서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60∼70년대식 개발경제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 않겠는가. 정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시장이 독자적 힘으로 신사업을 창출할 능력이 있는 미국에서도 정부가 마켓 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2006년부터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TV에 디지털TV 리시버를 내장하도록 법제화시킨 것이 좋은 예다. 박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할 문제가 교육,즉 인적개발이다.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려면 양보다 질,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그러자면 교육의 차별화가 이뤄져야 한다.그런데 정부 안에서조차 고부가가치는 괜찮지만 고급화는 곤란하다는 ‘모순된’ 발상이 있다. 정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쯤에서 성장과 분배 얘기를 안꺼낼 수가 없다. 박 성장이 먼저니,분배가 먼저니 하는 논쟁은 헛발질에 불과하다.조화의 문제이지,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정 20세기를 통해서 그 논쟁은 대충 끝이 났다. 행정수도를 옮기면 국가경쟁력이 더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는데. 정 행정수도 이전 자체로 국가 경쟁력이 약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다만,행정기능 분리 이후의 수도권 개발모델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정부가 아직까지 이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해 속단하기는 이르다. 박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분명 살 길은 있다.전 국토의 5.6%에 불과한 토지이용률을 일본 수준(7.8%)으로만 끌어올려도 기회는 생긴다. 안미현 박지윤기자 hyun@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Seoullites]독일인 서울시 공무원 크라이젤

    “서울은 1000만이 넘는 거대 인구가 모여 사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별탈 없이 운영되는 게 신기해요.버스체계 개편이나 청계천,뉴타운 등 여러 대형 프로젝트를 동시에 해 나가는 것도 놀랍고요.” 서울시의 ‘건강도시 만들기’ 프로젝트에 합류한 독일인 카트린 크라이젤(30·여)은 22일로 서울시 공무원 100일째를 맞았다.지난해 4월부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다 지난 3월15일자부터 비전임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지난 2월부터 국제협력과에서 근무중인 미국인 레슬리 벤필드에 이어 시의 두번째 ‘마르코 폴로’인 셈이다. “한국 사람들은 만사를 매우 빨리 처리합니다.전형적인 독일사람들은 먼저 자세하게 계획을 세운 뒤 차근차근 일을 진행시키죠.청계천 프로젝트가 만일 독일에서 추진됐다면 2010년이나 2050년쯤에야 비로소 끝났을 거예요.” 하지만 일처리는 ‘빨리 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의 민첩함과 독일사람 특유의 꼼꼼함을 섞는 ‘퓨전형’이 적당하다고 말했다.공무원으로뿐만 아니라 서울 살이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는 언어 장벽을 꼽았다. “지난 직장에서는 독일에서 유학한 한 동료가 통역사 역할을 톡톡히 했주었어요.시에서는 ‘콩글리시’로 의사소통을 하죠.많이 좋아졌지만 아직까지도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언어의 장벽을 느껴요.”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시나 공무원들의 직무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뭐라 말하기 어렵다.”면서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다만 열린 한 공간에 모여 일하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했다고 말했다.같이 점심을 먹고 휴식시간도 함께 갖는 문화가 개인주의에 익숙한 유럽사람에게 낯설었던 모양이다.친밀한 동료애나 끈끈한 인간관계는 한국인의 장점으로 평했다. “한국사람의 건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정신 건강이에요.일이나 가정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술로 이어져 육체적인 건강을 해치기 마련이죠.지하철에서 자살이 증가하는 것에는 정신적인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죠.” 남자 친구의 직장을 따라 한국에 왔다는 그는 사실 서울 살이가 처음은 아니다.세계보건기구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1977년부터 6년동안 서울내기를 경험했다.당시 서울국제학교에 함께 다닌 한국인 친구들은 지금까지 만난다. “독일인의 모임에는 안 갑니다.여기서는 한국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요.외국인 공무원이 됐다는 기사가 실리자 아버지의 한국 친구들이 전화를 많이 해왔어요.” 그는 서울의 명소로 남산과 고궁을 꼽았다.매일 조깅장소로 애용하는 남산은 같은 장소만 위아래로 왕복하는 탓에 아쉽다고 했다.또 복잡한 도심의 한 가운데 외딴 섬처럼 위치한 고궁이 한적한 분위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태어난 크라이젤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과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공중보건학 석사와 영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세계보건기구에서 인턴근무를 시작으로 빈의 ‘건강도시 프로그램’ 등에 참여했으며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연구원과 대학 강사 등 국제적인 실무경험을 갖춘 재원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Seoullites]독일인 서울시 공무원 크라이젤

    [Seoullites]독일인 서울시 공무원 크라이젤

    “서울은 1000만이 넘는 거대 인구가 모여 사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별탈 없이 운영되는 게 신기해요.버스체계 개편이나 청계천,뉴타운 등 여러 대형 프로젝트를 동시에 해 나가는 것도 놀랍고요.” 서울시의 ‘건강도시 만들기’ 프로젝트에 합류한 독일인 카트린 크라이젤(30·여)은 22일로 서울시 공무원 100일째를 맞았다.지난해 4월부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다 지난 3월15일자부터 비전임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지난 2월부터 국제협력과에서 근무중인 미국인 레슬리 벤필드에 이어 시의 두번째 ‘마르코 폴로’인 셈이다. “한국 사람들은 만사를 매우 빨리 처리합니다.전형적인 독일사람들은 먼저 자세하게 계획을 세운 뒤 차근차근 일을 진행시키죠.청계천 프로젝트가 만일 독일에서 추진됐다면 2010년이나 2050년쯤에야 비로소 끝났을 거예요.” 하지만 일처리는 ‘빨리 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의 민첩함과 독일사람 특유의 꼼꼼함을 섞는 ‘퓨전형’이 적당하다고 말했다.공무원으로뿐만 아니라 서울 살이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는 언어 장벽을 꼽았다. “지난 직장에서는 독일에서 유학한 한 동료가 통역사 역할을 톡톡히 했주었어요.시에서는 ‘콩글리시’로 의사소통을 하죠.많이 좋아졌지만 아직까지도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언어의 장벽을 느껴요.”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시나 공무원들의 직무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뭐라 말하기 어렵다.”면서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다만 열린 한 공간에 모여 일하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했다고 말했다.같이 점심을 먹고 휴식시간도 함께 갖는 문화가 개인주의에 익숙한 유럽사람에게 낯설었던 모양이다.친밀한 동료애나 끈끈한 인간관계는 한국인의 장점으로 평했다. “한국사람의 건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정신 건강이에요.일이나 가정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술로 이어져 육체적인 건강을 해치기 마련이죠.지하철에서 자살이 증가하는 것에는 정신적인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죠.” 남자 친구의 직장을 따라 한국에 왔다는 그는 사실 서울 살이가 처음은 아니다.세계보건기구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1977년부터 6년동안 서울내기를 경험했다.당시 서울국제학교에 함께 다닌 한국인 친구들은 지금까지 만난다. “독일인의 모임에는 안 갑니다.여기서는 한국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요.외국인 공무원이 됐다는 기사가 실리자 아버지의 한국 친구들이 전화를 많이 해왔어요.” 그는 서울의 명소로 남산과 고궁을 꼽았다.매일 조깅장소로 애용하는 남산은 같은 장소만 위아래로 왕복하는 탓에 아쉽다고 했다.또 복잡한 도심의 한 가운데 외딴 섬처럼 위치한 고궁이 한적한 분위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태어난 크라이젤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과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공중보건학 석사와 영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세계보건기구에서 인턴근무를 시작으로 빈의 ‘건강도시 프로그램’ 등에 참여했으며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연구원과 대학 강사 등 국제적인 실무경험을 갖춘 재원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우리 결혼해요]이사람 혹시 간첩아냐?

    “얘는 내 후배 종민이야.일명 살찐 안성기라고 불리지∼.” 중학교 3년내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총각 국어선생님을 대학생이 되어 찾아 갔던 날.선생님은 내마음은 아랑곳하지도 않으시고 후배라며 옆에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셨다. 그당시 나는 대학 2학년생,그 사람은 대학원생.그를 만나고 난 뒤 그의 나이많은 후배 아저씨들이 내게 “형수님,형수님”하며 깎듯이 대접을 해주는 것이 불편했는데,6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적당히 즐기는 듯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이차가 많아서 그가 이해를 많이 해주는 덕에 제대로 싸움 한번 안했다.싸우면서 정도 많이 든다는데,오히려 그러지 못한 것에 조금은 억울해해야 하는건가? 6년동안 연애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만난 지 얼마 안되어 안개가 자욱이 낀 날,임진각에 놀러가기로 하고는 자유로를 달렸다.40분쯤 달려도 임진각이 안나오는 것이다.불안한 마음은 굴뚝 같은데 그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북한’이라는 표지판이 나오기에 이르렀고,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차는 멈춰섰다. 아직 친숙하지도 않은 관계,낯선 곳,어색한 기류,그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잘 알지도 못하는 길을,그것도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안개낀 날에 차를 갖고 나선 우리 사이엔 이 일로 잠시 냉기가 흐르기도 했다. 이제 막 사랑을 꽃피우는 커플들! 안개 낀 날에는 결코 임진각에 가지 마세요.자칫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위기를 넘긴 우리는 오는 24일 결혼한다. “날 많이 이해해준 자기야!이제부터는 내가 받아왔던 사랑을 돌려줄게.평생∼사랑해!”˝
  • 서울 10곳 간선버스 운행 4개 우선협상사업자 선정

    서울시는 오는 7월 버스체계 개편에 따라 신설되는 4개 권역 10개 간선축의 버스운행사업을 담당할 우선협상대상자를 14일 선정,발표했다. 권역별 우선협상대상자는 ▲도봉권역(2개 간선 4개 노선) ㈜도봉간선버스 ▲강동권역(2개 간선 4개 노선) ㈜동서울버스 ▲송파권역(3개 간선 6개 노선) ㈜서울공영버스 ▲은평권역(3개 간선 5개 노선) ㈜중부운수 등이 각각 선정됐다. 이들 업체는 서울시와 최종 계약을 체결한 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7월 1일부터 6년동안 한정 면허를 부여받아 버스운행을 맡는다. 장세훈기자 shjang@˝
  • [기네스 코너]

    ●가로 154m 세로 78m 깃발 세계 최대의 깃발은 미국의 ‘슈퍼플랙’이다.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스키 뎀스키라는 사람이 소유한 이 깃발은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154m,78m이고 무게가 1.36톤이다.펜실베이니아주 포츠타운에 있는 험프리 깃발회사가 제작해서 1992년 6월14일 애리조나주와 콜로라도주 경계선에 있는 콜로라도 강의 후버댐위에서 펄럭이게 했다. 깃대 위에서 휘날리는 깃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 있는 브라질 국기로 이 깃발의 크기는 각각 70m×100m이다. ●114㎝ 유리창 3장 11.34초에 닦아 영국 에식스 지방의 사우스 오켄돈에 사는 테리 버로즈는 창문 빨리 닦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그는 1999년 7월22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에이 지 베버리지에서 가로,세로 각각 114.3㎝의 유리창 3장을 11.34초에 닦았다.당시 그는 30㎝짜리 고무롤러와 9ℓ의 물을 사용했다. ●16년동안 타이핑 호주 퀸즐랜드 머징바 비치에 사는 리 스튜어드는 16년 동안 1에서 100만까지의 숫자를 타이핑했다.총 분량은 종이 1만 9990장에 달했으며 1982년에 시작해 1998년 12월17일에 끝냈다고 한다. ●1시간동안 1994명에 면도하기 1998년 6월19일 데니 로는 영국 켄트지방 헌만에서 1시간동안 전기면도기로 1994명에게 면도를 해 주었다.한 사람당 평균 면도시간은 1.8초이며 불과 4번의 상처를 냈을 뿐이다. 면도날로 기록을 세운 사람은 켄트지방 체담에 사는 톰 로덴이다.그는 1993년 11월10일 한 사람당 평균 12.9초의 속도로 278명을 면도해 주었다.면도 중 전부 7번의 상처를 냈다. ●116개 집게 사나이 | 1999년 9월27일 케빈 데크웰은 얼굴과 목에 빨래 집게 116개를 매달고 5분동안 있었다.그는 영국 스태퍼드셔의 스톡 온 트랜트 사람이며 체셔 처치 로튼의 호스 슈에서 이 기록을 세웠다. ●67원어치 펑펑펑? 전기세를 내지 않아 단전 조치된 사무실에서 주인 집 전기를 몰래 끌어다 쓴 5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 17일 다른 사람의 전기를 무단으로 사용한 정모(51)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는 전날 낮 12시쯤 광주 서구 농성동의 사무실에서 허락을 받지 않고 건물 주인 김모(62)씨의 집 전기 콘센트에 난방기구를 20분 동안 연결,사용요금 67원어치의 전기 0.333㎾를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135대 뻥뻥뻥 ‘돈도 안 주는데 차 타이어에 펑크나 내자.’ 서울역에서 노량진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 수산시장에 주차된 차량 135대의 타이어를 펑크내며 분풀이를 한 노숙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유모(59)씨는 지난 17일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 4층짜리 주차빌딩에 몰래 들어갔다.유씨가 능숙한 솜씨로 손에 든 십자드라이버를 주차된 차량의 타이어에 찌르자 차량은 풀썩 주저앉기 시작했다.유씨가 이날 펑크낸 차량만 17대.주차빌딩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찍힌 유씨는 다음날 수산시장 인근을 돌아다니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에 잡혔다. 유씨는 지난달 17일에도 4시간에 걸쳐 무려 118대의 차량을 펑크낸 것으로 밝혀졌다. 새벽 1시30분쯤 주차빌딩에 들어간 유씨는 박모(27)씨의 승용차 타이어 2개에 드라이버로 구멍을 내는 등 4시간 남짓 동안 닥치는 대로 펑크를 냈다. 유씨는 경찰에서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 수산시장에 가 상인들에게 돈을 좀 달라고 그랬더니 돈은 주지 않고 무시만 해 홧김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오래 전부터 고향을 떠나 노숙을 해 왔으며 술에 취하면 종종 수산시장에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고 밝혔다.경찰은 유씨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 나눔세상/ 함께 일군 400억 나눔도 함께

    한 병원 주인이 “죽은 뒤 가져갈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자산가치 400억원대의 재산을 흔쾌히 내놓았다.의료법인 전남 여수 성심종합병원의 명예이사장으로 물러난 박순용(朴順龍·사진·61)씨다. 박씨는 “병원은 직원들과 이곳을 이용해준 지역민들의 것”이라며 16년동안 병원을 튼실하게 키워온 직원들에게 돌려줬다. 여수시청에서 가까운 둔덕동에 자리한 이 법인은 평가액만 잡아도 473억여원이나 부채는 64억원에 불과하다.연간 매출액이 200억여원으로 3년 전부터 해마다 7억원 이상 순이익을 내는 알토란같은 병원이다.지하 1층,지상 5층에 295개 병상이 있는 본관동과 종합검진센터·간호학원·장례식장·어린이집 등 4개 별개동이 있다.이곳에서 전문의 20명,간호사 100여명 등 직원 268명이 일한다. 재단이사장은 유춘식 신경외과 과장,병원장은 정대관 내과 전문의로 바뀌었고 병원 직원 등 7명으로 된 재단이사회에서 중요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박씨는 직원들이 당분간 운영 정상화를 들어 재촉하는 바람에 잠시동안 명예이사장을 떠맡았다.서울에서 전기공사 관련 자재업으로 돈을 모은 박씨는 지난 88년 부도가 난 이 병원을 인수하면서 고향(전남 나주)이 아닌 여수와 인연을 맺었다.이후 병원시설 투자에 350억여원을 쏟아 부으면서 친절하고 신뢰받는 의료기관으로 우뚝섰다. 평소에도 그는 좋은 일로 분주하다.해마다 불우이웃돕기와 섬지역 의료사업비 등으로 2억여원씩을 내놓고 중국 조선족 동포학교에도 1000만원을 기탁했다.지금은 달동네에 연탄과 쌀을 대주기 위해 2억여원의 목돈을 마련중이다.틈이 나면 색소폰 연주 실력을 살려 마을 노인회관을 찾아 함께 즐기기도 한다.부인(51)과 1남1녀도 박씨의 고귀한 뜻을 존중해 힘을 실어줬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
  • 하이 서울, 예스 서울신문/창간정신 그대로...국민 속으로

    ■100년 역사와 발자취 서울신문이 세상에 태어난 지 올해로 꼭 100년을 맞았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후 서울신문,대한매일을 거쳐 다시 서울신문으로 돌아온 길은 잠깐의 영광에 이은 오랜 질곡의 역사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고,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려 항일투쟁의식을 고취시켰다.외세의 경제적 침투를 반대하고 자주적 산업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신교육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것도 대한매일신보였다.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하여 1945년 11월22일 다시 태어났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지조있는 선비 위창 오세창을 사장으로 주필 이관구,편집국장 홍기문으로 진용을 짰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애당 권동진과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는 고문으로 추대됐다. 서울신문은 중립지(中立紙)를 표방했지만,언론매체들이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人共)’을 국호로 하자는 몽양 여운형이 인사말을 싣고,홍벽초 고문과아들 홍기문 국장이 모두 월북한 데서 알 수 있듯 좌파적 색채를 지녔다. 정부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서울신문이 반공지(反共紙)로 노선을 바꾼 것은 1949년 5월3일 공보처의 발행정지처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공보처장은 “서울신문이 반정부적이고 이적행위를 하는 신문이라는 비난사례가 허다했다.”고 강변했다.그는 “서울신문은 대통령 지방순시 등 정부발표기사를 타지보다 소홀하게 취급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좌익계열의 간부진을 퇴진시키고 우익인사들로 하여금 서울신문을 속간케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주식 48.8%가 일본인으로부터 이전된 정부소유의 귀속재산이어서 가능했다. 작가인 월탄 박종화 선생이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이런 작업의 결과였다.이헌구 유치진 김동리 등 우익문화예술단체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다.이후 주주총회 및 간부인사에서 정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신문은 그러나 정부의 통제가 미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일부 정치적 보도를 제외하고는 비판적인 논조를 버리지 않았다. 1952년 경남 거창군내 6개 마을에서 공비내통혐의자뿐 아니라 양민 500여명까지 무고하게 집단학살하고,또 이를 덮으려 한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 때도 그랬다. 서울신문은 당시 사설에서 “우리는 국민방위군사건의 비극이 생겼을 때 울었지만,거창사건을 말살하려던 웃지 못할 희극을 보고는 또 한번 울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후 미묘한 정치적 상황에서는 정부를 옹호하면서,사회적 문제에는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유지한 서울신문의 불행한 전통은 2002년 사원이 대주주인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종수 기자 vielee@ ■지령 어떻게 되나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의 지령을 이어간다.1904년 7월18일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구국의 필봉을 휘두르며 독립정신과 민족정기를 고취하다 한일병합으로 폐간되기까지 6년동안 1651호를 발행했다.그러나 대한매일이 그랬듯이,한일병합 이후 1945년 미군정청에 의해 정간될 때까지 발행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지령은 계승하지 않는다.시대와 역사와 발행 주체가 다른 총독부 기관지의 지령을 합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재창간된 서울신문 지령은 1904년에 창간돼 한일병합 때 폐간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광복이후인 1945년 11월22일 창간돼 1998년 11월10일자로 종간한 서울신문의 지령,그 다음날자로 창간돼 2003년 12월31일자로 종간한 대한매일의 지령을 합한 것이다.2004년 1월1일자 서울신문의 지령은 20095호이다. 독자의 눈과 귀 역할 충실히 대한매일신보가 항일의 기치를 드높였던 전설적인 독립언론인 데 비해 대한매일은 권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미완의 언론이었다.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과 양기탁(梁起鐸)선생 등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장도빈(張道斌) 등 애국지사 논객들이 총집결해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침략과 관료의 무능에 맞선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그러나 1998년 1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발행된 대한매일은 같은 이름의 대한매일신보사가 만든 신문이지만 권력의 그림자를 벗지 못했다. 서울신문 임직원들은 19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이 창간된 뒤 여당지 또는 관제언론이라는 오명과 질곡의 역사를 겪으면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정부가 대주주인 신문이 권력의 고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1998년 2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관제언론의 피해자라고 믿고있던 DJ정권은 서울신문을 정론지로 탈바꿈한다는 명분으로 그해 11월11일자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독자와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가 아니라 새 권력의 일방통행식 결정이었다. 임직원들은 대한매일로 제호가 바뀐 뒤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이어받고 정론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그러나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한 진정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1999년 중반부터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여 2002년 1월 결실을 맺었다.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는 2002년 후반기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민영화로 터진 물꼬는 막을수 없었다. 최대 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11월18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하는 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2.71%,반대 26.05%로 통과시켰다.12월3일 열린 주주 총회도 전폭적으로 사주조합의 제호 회복안을 받아들였다. 황수정기자 sjh@
  • “국내 최저 보험료로 서비스”車보험 출시 교원공제회 이기우 이사장

    온라인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보험료 깎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교원공제회가 이달부터 65만명의 교직원을 대상으로 온라인자보 상품인 ‘에듀카’를 출시했다. 교원나라자동차보험㈜을 설립한 교원공제회 이기우(李基雨·사진·56) 이사장은 14일 “내년말까지 가입자 15만명을 확보,온라인자보 점유율 10%를 달성할 것”이라면서 “화재·배상책임 등 일반보험까지 확대,10년내 업계 최고의 건실한 보험사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원나라자보를 만든 이유는. -일선 교직원들의 자동차 사고율은 일반인에 비해 상당히 낮지만 일반인과 같은 보험료를 내고 있다.이에 따라 교직원 전용 보험상품을 개발,일반 자보상품보다 최고 30%까지 저렴한,국내 최저 수준의 보험료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얼마나 회원을 유치할 계획인가. -현재 교직원만을 위한 특화된 보장혜택과 각종 서비스를 통해 영업 개시 이후 하루 최고 300여건에 달하는 가입실적을 올리고 있다.내년말까지 45만여명의 자동차 보유 교직원의 30% 수준인 15만여명의 가입을 유치할 계획이다.모든 교직원을 한명도 빠짐없이 교원나라자보에 가입시킬 목표를 세우고 있다. 다른 회사 자보상품과 다른 점은. -에듀카보험은 교직원 복지 차원에서 저렴한 보험료로도 많은 보장을 받는 실속형 상품이다.업계 최초로 ‘제자사랑 보상지원금’과 ‘방학 또는 연수중 사고위로금’,‘교내 주차상태 사고 보상지원금’ 등 교직원 가족들만 위한 7가지 맞춤형 특약을 제공한다. 또 일선학교를 돌면서 교직원 차량에 대해 36가지 정비항목을 무료로 점검하는 이동점검서비스와 학교별 전담 보상전문가 서비스,LPG차량 견인서비스 등도 다른 보험사에는 없는 서비스다. 교원공제회는 종전에도 보험상품을 팔았는데. -95년부터 판매한 생명보험상품인 ‘종합복지급여’에 이어 올 11월 종신보험인 ‘교육가족 종신공제’를 출시했다.이번에 온라인자보 출범으로 생보·손보영업에 모두 진출하게 됐다.또 유가증권 투자,펀드 운용 등 기금운용사업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36년동안 교육부 국장,부교육감 등을 거친 교육행정 전문가로 지난 3월 교원공제회 15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사회 플러스 / 6·25전사자 유해발굴 DMZ확대 추진

    육군은 현재 남측에서 추진중인 6·25전쟁 유해발굴사업을 2009년까지 마무리한 뒤 이 사업을 비무장지대(DMZ)와 북측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육군은 이 사업의 중·장기계획에 따라 1단계로 32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부터 2009년까지 남측지역 42곳에 대한 발굴사업을 벌이고,2단계로 2010년부터 6년동안 DMZ내 24곳,3단계로 2016년부터 5년동안 북측 16곳에 대한 발굴사업을 벌일 계획이다.육군 관계자는 “통일이 되기전이라도 북측과 상호 교류와 인도적 차원의 협상을 통해 발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나의 건강보감] 세브란스 외국인 진료소장 인요한 박사

    “사냥에는 저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습니다.1895년 처음 이 땅을 밟으신 저의 진외증조부(아버지의 외조부) 유진 벨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사냥을 했습니다.그 분들에게 사냥은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는 방편이자 이 땅 구석구석을 이해하는 길이었습니다.” 연대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진료소장 인요한(44) 박사.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그를 ‘외국 사람’이라고 한다.금발에 파란 눈,체격도 110㎏이 넘으니 그럴 수밖에.그러나 마주보고 인사 한마디라도 나눈 사람치고 그를 외국인이라고 우길 사람은 없다.확실히 그는 ‘벽안(碧眼)의 한국인’이다. ●진외증조부 이후 5대가 109년간 한국생활 그의 가족은 5대 109년동안 이 땅을 지키며 살고 있다.그와 그 가족들이 이 땅에 씨뿌려 가꾼 사랑이라는 이름의 나무는 어느새 웅숭깊게 자라 그 허구한 세월을 과실처럼 매달고 우뚝 서있다.3대의 조상이 이 강산에 혼백을 묻었음에도 우리에게 더 건 그 무엇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까.“저는 한국과 한국인에게서 받은 게 참 많습니다.이 땅에서 이국의 선교사 아들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라 교육받고 또 이렇게 병마의 고통을 더는 구원의 일까지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딨겠습니까?”그러면서 “제가 이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할지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런 그에게 사냥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땅과 이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값진 지침’이다.그래선지 사냥이라면 밥먹다가도 숟가락을 놓는다.“최근엔 가족들이 전남 보성에서 사냥 휴가를 보내고 왔어요.일주일동안 꿩만 열댓마리 잡았지요.”사냥을 위해 여름 휴가를 미뤘다가 수렵장이 개설되자마자 부리나케 뛰어가 보성의 산야를 훑고 왔다.네살난 막둥이는 물론 부인 이지나(41)씨도 사냥을 즐겨 최근 수렵 면허시험을 치르기도 했다.해마다 수렵장이 개설되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못가도 스무번은 사냥길에 나선다.“매년 번갈아 순환수렵장이 열리기 때문에 해마다 고을 하나씩을 섭렵할 수 있다.”며 덩치가 집채만한 그가 좋아라 웃는다. 그는 사냥을 ‘단순한 살생’으로 보는 시각에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지금처럼 먹이사슬이 붕괴된 상태에서 사냥은 생태계의 건강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그렇다고 그가 오로지 사냥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다.그는 산,그중에서도 지리산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 천번넘게 찾아 “제가 지리산을 오른 횟수는 줄잡아 천번이 넘을 겁니다.보통은 수렵기가 끝나는 3월부터 10월 사이에 가는데,사연이 있습니다.”그와 지리산의 인연은 깊다.진외증조부 이래 그의 조상들은 지리산에서 지난한 선교의 영적 힘을 얻었는가 하면 종교적 근신을 하곤 했다. 또 지리산은 그의 선조가 콜레라 등 풍토병을 피하는 피난처이기도 했다.지금도 노고단과 왕시루봉 인근에는 이 땅의 고단한 선교 역사를 증언하는 이들 유적이 남아 있어 그들이 살았던 세월을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전 강보에 쌓인 젖먹이때부터 이곳을 찾기 시작했어요.그 후 세상에 걷어 차이고 사람 때문에 울고 싶을 때마다 이곳을 찾아 묵상에 들곤 합니다.묵상 속에서 다시 용서와 화해의 힘,그리고 고난을 이겨내는 용기를 얻곤 하지요.”이를테면 인 교수 가족에게 지리산은 영혼의 안식처이자 그들이 하릴없이 엎어지지 않도록 건강을 준 어머니의 품같은 곳이다. 그에게는 남다른 아픔이 하나 있다.누군가 그곳에 선대의 희생을 모욕하듯 ‘이 곳은 무엇을 했던 곳일까요?’라는 제목의 안내판을 세운 것.제목 밑에는 선교사들이 마치 외세의 전위대인 것처럼 써놓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이 대목에서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제 선조는 일제로부터 고종 황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고,폐교와 추방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신사 참배를 거부했으며,3·1운동 때는 일제의 학살 만행을 알리기 위해 사선을 넘었습니다.또 저는 부끄럽지만 광주민주화 운동때,그 처절한 살륙의 현장을 지키며 외신 기자들에게 진실을 알리다 추방되기도 했고요.전 감히 말합니다.역사는 온당하게 읽어야 한다고.”그 안내판은 그후 슬그머니 철거됐다. ●젓갈없으면 밥 못먹는 ‘진짜 한국인' 인 박사는 195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순천에서 보냈다.1895년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진외증조부 유진 벨 남장로교 선교사와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아버지 휴 린튼에 이어 그와 그의 자녀들까지 5대가 이 땅을 지키며 산다.처음 한국땅에 들어올 때 유진 벨은 당시 상대적으로 낙후한 전남 지역을 택해 그 소외의 땅에서 눈물겨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이런 선조의 고난을 두고 “그 분들은 이 땅에 간과 쓸개,혼까지 아낌없이 바쳤고,나는 그 분들의 음덕으로 편하게 사는 셈”이라고 회고했다.그러나 그 역시 선대가 그랬듯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진외증조부가 이 땅에 들어온지 100년이 되는 지난 95년 둘째형 스티브 린튼과 ‘유진벨 재단’을 설립,북한돕기에 나섰다. 처음에는 식량을 지원하다가 지금은 결핵 퇴치사업에 주력하고 있다.그들 형제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 지난 6년동안 북한에 물경 300억원이 넘는 의약품을 지원할 수 있었다.이 약품으로 북한의 결핵환자 15만명을 치료,이 가운데 13만여명이 완치됐다며 흐뭇해 했다. 그는 틀림없는 한국인이다.이 땅에서 오래 살았다거나 이름을 바꿨대서가 아니라 한국인과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식사는 한국식으로 합니다.양식은 한두끼만 먹어도 질리는데,한식은 안그래요.젓갈 양념에 버무린 김치와 청국장,보쌈을 모르고 사는 서구인들,불행해요.한번은 뉴욕엘 갔어요. 기내식에 질려 도착하자마자 우래옥이란 한식집을 찾아갔는데,그곳에서 먹었던 알탕 맛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유진벨재단 설립 北에 의약품 300억 지원 젓갈이 없으면 밥을 못먹고,술이라면 청탁을 가리지 않으며,사람을 좋아해 틈만 나면 달려나가 술판을 벌이기 일쑤인가 하면 ‘연세세브란스는 내 모든 것’이라는 한국적 연고의식,그러면서도 북한돕기의 열정을 감추지 않는 심지까지 가진 그가 한국에서 주변인이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담소 말미에 덧붙인 그의 얘기는 우리에게 자괴스러운 부끄러움이었다.“북한을 오가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분단의 상처가 이렇게 큰데,지역이 다시 갈려 있다는 건 우리 민족의 건강성을 해치는 고질입니다.이젠 청산해야죠.” 심재억기자 jeshim@ ■사냥 건강예찬 “사냥만 한 스포츠가 어딨습니까?자연과 교감하며 몸과 정신을단련하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도 물에 씻은 듯 털어냅니다.골프처럼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주색잡기처럼 몸이 상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종종걸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사냥터를 누볐다.벌써 초등학교 5학년때 할아버지에게서 20구경 외대 단발총을 넘겨받아 품고 잤던 일도 생생한 기억.젊어서는 훌치기 총인 레밍턴 870을 사용하다가 5년전 거금 200만원을 들여 이탈리아제 베넬리123 자동연발총을 구입했다. 사냥에는 사냥개도 필수.아버지 대까지는 포인터종을 사용했으나 그는 냄새가 싫어 포인터 대신 영국산 코커스패니얼을 택했다.사냥능력이 뛰어나면서도 절대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열혈 헌터’답게 그의 사냥건강론은 막힘이 없다.“가장 멋진 매력은 이 땅의 곳곳을 내 눈으로 살피며 애정을 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알다시피 사냥은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대자연 속에서 지향없이 걷고 뛰며 야성과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즐거움 아니겠습니까?그뿐이 아닙니다.표적을 쫓아 격발하는 순간,세상의 모든 일들을 말끔히 잊곤 하죠.” 전국의 수렵장을 돌며 생경한 풍경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도 무시하지 못한다.더러 희귀 조수류와 만나는 것도 기쁨이다.최근에도 오소리와 산까치를 봤다고 자랑했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탓에 그의 사냥원칙은 철저하다.아무리 그럴듯한 표적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안전핀을 풀지 않는다. 보호 조수를 지키는 일도 그의 몫.평소 보호 조수를 머릿속에 담아 실수로라도 그것들을 살상하지 않는 철칙을 어긴 적이 없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바이러스성 간병(肝病)이 번져 야생토끼의 개체수가 줄고 있다며 수의사에게 원인 규명을 의뢰할 만큼 그는 지킬 것은 지키는 사냥꾼이다. 심재억기자
  • 상복터진 관악구 상금 27억원

    관악구가 상복이 터졌다. 관악구(구청장 김희철)는 20일 올 들어 행정자치부와 서울시가 실시한 각종 평가에서 청소·세무·물가관리 등 13개 부문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상금 형식으로 받은 인센티브 사업비만 27억원에 이르는 등 터진 상복에 연일 잔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분야별 수상내역을 보면,행자부가 평가한 올 상반기 지방물가관리 평가에서 최우수구로 선정돼 300만원을 받았다. 서울시의 반부패조사 평가에서는 최우수구로 선정돼 1억 55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 받았다. 주차관리 평가에서 최우수구로 뽑혀 10억 300만원,불법노점상 관리 최우수구로 선정돼 3억원을 각각 받았다. 청소행정 분야에서는 올해까지 무려 6년동안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2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민원행정분야,세무분야 등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4억원을 받기도 했다. 특히 문화관광부의 ‘문화기반시설 관리운영 평가’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그동안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문화분야에서도 우수 행정기관으로 인정받아 기쁨을 더하고 있다. 김희철 구청장은 “주민과 공무원들이 지역사회를 가꾸는 데 다함께 동참한 결과”라며 “상금은 주민숙원사업과 복지사업에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사설] 재난·재해기금 운용 개선해야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연재해와 재난에 대비해 적립하도록 돼 있는 재해대책기금과 재난관리기금을 부실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각 시·도별 기금 관리실태를 보면 재해대책기금의 적립률은 87%이며 재난관리기금은 지난 6년동안 전국적으로 109억여원밖에 집행되지 않는 등 자치단체의 재해·재난 예방활동이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이 때문에 주민 안전교육과 시설물 보강,안전진단 등 예방활동을 강화해 왔다면 태풍으로 인한 피해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자치단체는 재해예방의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다.재해예방활동을 소홀히 한 것은 주민들을 안전하게 돌봐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또 관련법상 반드시 적립하도록 돼 있는 재해·재난 기금의 적립률이 낮고 사용실적마저 저조하다는 사실이 매년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파행적 운용을 사실상 방치해 온 정부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 재해·재난 기금의 적립 및 사용이 저조한 것은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자신들의 임기중 생색이 나지 않는다는이유로 기금의 적립과 사용에 소극적으로 임해왔기 때문이다.평소에는 지방자치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재해가 발생하면 중앙 정부가 도와 주거나 국민성금이 답지할 것이라는 의타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자치단체가 제대로 기금을 적립,사용하도록 강제조치근거를 마련하고,이를 따르지 않는 자치단체에 대해서는 불이익 조치를 취하는 등 자치단체의 안전불감증을 적극 시정해 나가야 한다.또 재해대책기금,재난관리기금,재해구호기금 등으로 나눠진 유사 성격의 기금을 통합하거나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통합적인 재해관리가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자치단체는 기금을 활용,주민 비상대피 훈련,피난체계 구축,피해 조사기법 개발,안전체험관 건립 등 재해예방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정비,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지령 20000호 / 지령 어떻게 이어졌나

    지령(紙齡) 2만호는 1904년 7월18일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때의 지령 1651호와 1945년 11월23일부터 1998년 11월10일까지의 서울신문 지령 16851호,그 후의 대한매일 지령을 합한 것이다.대한매일은 대한매일신보 창간 당시의 정신을 되찾고자 1998년 11월10일자로 서울신문을 종간하고 그 다음날자로 재창간하면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합해 18503호로 시작했다. 대한매일의 지령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우여 곡절이 많았다.그러나 신문의 역사성과 계속성을 고려할 때,일제에 맞서 독립정신과 민족정기를 고취했던 최초의 민족지인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지령을 재검토해 현재에 이르렀다.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은 ‘권1,권2,권3’의 이름으로 시기별로 구분됐다.‘권1’은 1904년 7월18일 창간호부터 이듬해 1월2일까지로 138호이다.이어 이틀 휴간후 1월5일부터 새로 1호를 시작,3월9일까지 52호를 발행하고 다시 휴간에 들어갔다.이 시기는 ‘권2’로 분류된다. 이후 5개월을 다시 휴간한 뒤 같은해 8월11일 다시 1호로 복간했으며 1910년 8월29일 한일합병으로 강제 폐간당할 때까지 1461호를 더 발행했다.‘권3’의 시기다.6년동안 발행한 대한매일신보는 ‘권1’‘권2’‘권3’을 합해 총지령 1651호를 기록했다. 대한매일 지령 회복에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한일합병으로 강제폐간된 뒤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발간,1945년 11월10일 미군정청에 의해 정간될 때까지의 지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였다. 그러나 1945년 11월23일 서울신문을 창간하면서 매일신보의 시설과 사옥,일부 사원들을 흡수했다 하더라도,시대와 역사와 발행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총독부 기관지의 지령을 합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또한 서울신문의 지령은 받아들이되 그 영욕을 인정해 재창간의 정신으로 거듭나기로 했다. 그 전에는 전혀 다른 신문임에도 불구하고 지령을 승계했다.한일합병 후 1910년 8월30일 매일신보 첫호를 내면서 대한매일신보 ‘권3’ 지령인 1461호에 이어 1462호로 했다.광복 후에도 서울신문 첫호를 내면서 매일신보 지령을 승계해 13738호로 했다.양자 모두 ‘권1,권2’ 시기는 뚜렷한 이유없이 제외했다.다행히 59년 3월23일,서울신문은 구 지령을 버리고 45년 11월23일 서울신문 첫호를 1호로 기산해 이날자의 지령을 4477호로 되돌렸다. 대한매일은 이제 민영화 2년째를 맞아 공익을 앞세우고 국민에게 밝은 꿈과 희망을 주는 신문으로 재도약하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결혼생활 꼬일땐 툭 털어놓자”

    남편이 가정생활을 시시콜콜 털어놓는다는 것은 금기시됐던 일 가운데 하나다.‘수신제가(修身齊家)…’라 했던가.“제 가정 하나 제대로 못 다스리면서…”라는 말은 남편들에게 ‘복잡한’ 집안일을 선뜻 남에게 고백하는 것을 막아왔다. 그러나 이젠,문제가 생기면 상담소나 정신과를 찾는다.심지어 방송에 출연,전국을 향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도 낯설지 않은 시대다.부부생활도 배워야 잘 한다는데…. ●상담소 찾는 남편들 “도대체 여자를 모르겠어요.나는 열심히 가족들 벌어먹였는데,나와는 더이상 못 살겠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내가 외도를 한 것도 아니고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주위에서 성공한 직장인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는 강경식(가명·51)씨는 아내의 이혼요구에 ‘황당하다.’고 했다.“나는 바깥 일 열심히 했고,가정은 아내에게 맡겼는데 이제 아내는 나와 이야기도 하기 싫답니다.도대체 나와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겁니다.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요?” 강씨의 아내 김영진(가명·47)씨가 냉담해진 것은 2년 전.“이제와서 생각하니 ‘이야기 좀 하자.’는 아내의 말을 번번이 무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부부 사이에 무슨 이야기를 해요.제가 성실하고,한눈 팔지 않으면 됐지.그런데 연애하던 때도 아니고 도대체 부부 사이에 무슨 이야기할 게 그리 많답디까?”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김순옥(성균관대 교수)소장은 “2∼3년 전부터 남편들이 상담을 원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있고 길게 말하지 않는 남자들이 2∼3시간씩 속마음을 털어놓는다.”고 말했다.‘돈 벌어다주면 된다.’고만 생각했던 남편들이 ‘결혼의 위기’를 맞으면서 결혼생활의 문제점을 체크하고,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더욱이 20∼30대 부부의 경우,이혼의사는 일반적으로 여성이 더 높기 때문에 남성들은 ‘왜?’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전문상담가를 찾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대부분 의사소통이 없었던 부부관계가 문제다.동기는 달라도 결국은 부부간의 대화 부재가 문제의 핵심임을 확인하곤 한다.많은 부부들이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이 알아주기만을 바라고,‘이해해주지 않았다.’,‘무시했다.’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고 지적했다.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 “나는 이야기했다.당신이 못 알아들었을 뿐”이라고 말하거나,“화 안내면 그게 애정표현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병원 방문한 30대 여성 48평 아파트에 사는 전성자(가명·39·경기 고양시 일산구)씨는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파출부 일을 하고 있다.맵짠 살림솜씨는 진작부터 소문났던 터라 입소문이 나면서 여느 사람보다 1만∼2만원씩 더 받으면서 일한다.‘파출부’라는 어감이 좀 싫긴 하지만 외국어 고교를 목표로 하는 큰아들(중3)과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딸(중1)의 뒷바라지에 큰 도움이 된다.그런데 낮에는 남의 집일,밤에는 자신의 집일을 하느라 몸이 피곤할 대로 피곤하기 때문에 그는 가끔 남편에게 위로받고 싶었다.하지만 아내가 파출부일을 한다는 것에 자존심 상한 남편은 “당신이 좋아서 하는 일,내 탓은 하지 마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곤 했다.결혼 16년동안 동창회는커녕 변변한 옷 한 벌없이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게 후회스럽다는 전씨는 “희생하고 살아온 내 인생이 허무하다.”고 한숨을 내리 쉬었다.우울증이 깊어간다고 했다. ●KBS ‘아침마당’생방송 스튜디오 한 부부가 공개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다.아이 둘 딸린 연상녀와 결혼한 연하남 부부는 결혼 12년째.평소 아이들에게 자상하고,얌전한 남편 정의복(45·택시기사)씨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15일씩 내리 ‘술독에 빠져' 지낸다.“나는 아버지로서 잘 해왔지만 요즘 보면 제 엄마와 이야기할 뿐,내가 집에 들어가면 모두 입을 닫는다.나는 외롭다.술마시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아내 이명자(47)씨는 “남편이 밥 한 끼 먹지 않고 술만 마시는 것을 보면 괜히 재혼했다는 생각이 들고 후회하게 된다.그동안 아이들에게 잘 해준 것은 알지만,회사에 들어갔다가도 한 달을 채우지 않고 나오는 술꾼 남편에게는 질렸다.”고 말했다. 상담을 담당한 정신과전문의 송수식 박사는 “혹시 ‘남의 아이만 키웠기 때문에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냐?”고 물으며 남편의 속마음을 열어보였다.그리고 “나는 매일 술을 마시지않으니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남편에게 알코올중독임을 진단,치료받을 것을 권했다. 생방송이 끝난 후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상담은 이어졌다.“당장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으니 시원하다.”는 부부의 얼굴은 방송 시작 전보다 많이 펴져보였다. KBS TV의 ‘아침마당­부부탐구’는 시작한 지 11년째,지금도 매주 10건 정도 꾸준히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담당연출자 김정수PD는 “자신을 열어보이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렵게 출연을 결정하고도 마지막 순간에 ‘못 나오겠다’고 물러서는 사람들도 있다.하지만 출연자 중 70% 쯤은 방송에 출연한 뒤 좋은 쪽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원만한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사람들 가운데 상담소나 정신과를 찾기 어려운 저소득층은 기꺼이 방송을 택한다.”고 말했다. ●왜 부부들은 상담을 원하는가 정의복-이명자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몰라서 방송에 나왔다.”고 말했다.또 69세의 할아버지는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황혼이혼을 원하는 할머니(65)의 마음을 열기위해 “박사님에게 진단을 받아보자.”고 방송상담을 신청하기도 했다. 늘어나는 이혼.이제 더이상 이혼은 남의 일이 아니다.그래서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을 느낀 부부들이 ‘이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상담을 원한다는 것이다. ●부부문제,어긋난 대화에서 시작된다 송수식 박사는 ‘부부생활도 배워야 잘 한다.’는 책을 통해 부부 문제의 핵심을 밝힌다.“사람이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달라서 엉뚱하게 처음 의도하는 것과 달리 서로 감정을 상하게 된다.부부싸움은 어처구니없게도 이렇게 ‘어긋나는 대화’에서 비롯되기 일쑤다.” 여자는 문제가 생기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감정표현을 ‘말’로 전달하려고 한다.금방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하고 싶어하고,말을 들어줄 상대를 물색한다.대부분 남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바라고 말을 꺼낸다.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아내의 이야기를듣고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남자는 문제가 생기면 이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모색한다.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수원대 최규련 교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부부대화법’이란 책에서 “아내들은 남편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나누거나 이해받지 못해서 불만을 가진다.반면 남편들은 아내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이 무엇인가 해줘야 하고 해결방법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그 결과 아내의 감정을 인정해주려고 하기보다 대응하는 반응을 보이게되고 아내들은 더욱더 과도한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허남주기자 hhj@
  • 창간99주년 특집2 지방분권시대 / 일본의 지방분권

    |도쿄 황성기특파원|반란이었다.‘지방은 있으나 자치는 없던’ 풍토에 도쿄 스기나미(杉)구는 반역의 깃발을 들었다. ‘주민 네트워크 법안’에 용감하게 반기를 든 스기나미 구에 일본 열도의 눈길이 쏠렸지만 처음은 “일개 구청의 반란이 성공할까.” 하는 회의적 시선뿐이었다.그러나 마뜩찮던 반응은 이내 공감으로 바뀌었다.갈채도 쏟아졌다.주민을 위한다면 반란도 해야 한다는 전례를 만들어 낸 스기나미구는 지방분권,지방자치의 새 지평을 연 자치단체가 됐다. ●주민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질 때까지 스기나미의 반란은 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 법안이 일본 국회에서 통과된 1999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주민 네트워크는 한국의 주민등록제,미국의 사회보장번호와 비슷한 제도이다.개인에게 11자리의 고유 숫자를 부여하고 구청이나 국가기관이 개인 정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반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과연 주민정보가 지켜질 수 있을까,국가는 사유재산 같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것인가.” 이듬해 6월 야마다 히로시 구청장은 의회에 출석,2002년 8월5일 시행될 예정이던 전국적인 주민 네트워크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전국 지자체 중에서는 처음이었다. 법률을 제정하면 군소리 없이 시행하는 지자체의 ‘순종 체질’을 당연시하던 중앙 정부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개 구청의 ‘반역’이었다.언론이 스기나미구의 반란을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주민 네트워크에 결함은 없는지,프라이버시는 지켜질 수 있는가.”하는 논쟁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중앙 정부의 주민 네트워크 가동 1개월 전인 지난해 7월 스기나미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네트워크 참여를 묻는 앙케트 조사를 실시했다.대학교수 등으로 전문가회의도 구성했다.2764명이 참가한 앙케트 조사에서는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71.2%)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전문가 회의도 “개인정보의 유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 참여하면 위험하다.”는 부정적인 보고서를 냈다. “당시 네트워크에 참가할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국회에 상정만 됐을 뿐 통과되지 않아 작년 8월의1차 가동 때에는 전면 불참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스기나미구 세누마 쓰토무 구민계장) 이런 우려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지난 4월 방위청이 지난 36년동안 자위대원 선발 때 지자체에 등록된 개인정보를 제공받아 참고해 온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스기나미구의 반란에는 전국 수천개 지자체 중 구니타치시 등 4곳이 동참했다.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지자체의 반란을 용인하지 않다가 여론이 움직이고 이들 지자체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주민이 참가·불참가를 선택하는 절충형을 도입하는 양보를 하게 된다. 그로부터 1년 뒤,스기나미구는 주민 네크워크 2차 시행(8월25일)을 앞둔 지난달 4일 중대결심을 내린다.야마다 구청장은 “네트워크 참가를 희망하는 주민은 선택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한다.”며 전면 불참가에서 부분적 참가라는 절충형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국회가 개인정보보호 관련 5개 법안을 통과시켜 정보유출의 위험성이 줄어들고,정보유출시 벌칙이 제정됐다는 점,상당수 주민은 반대하고 있지만 네크워크에 참가할 경우 여러가지 행정편의를 누릴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새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의 주민이 참가를 원하고 있다는 ‘민의’도 배려됐다. 구는 조만간 주민들에게 주민 네트워크에 선택방식을 취하겠다는 통지서를 보낼 예정이다.“참가·불참가 희망자를 구분한 뒤 참가 희망자의 개인정보만 입력해 이르면 연내에 중앙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불참을 원하는 주민은 종전대로 일일이 손으로 주민표를 작성해 구가 관리하게 된다.”(세누마 계장) 스기나미구는 절충형 방식을 도입하는 한편 아직 미완성의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개인 정보를 부정하게 이용하는 구청 직원에 대한 벌칙을 정하는 동시에 주민 네트워크를 감시할 제3자 기관을 설치하기로 했다.특히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 중앙 서버와의 접속을 끊기로 결정했다. ●‘구의 헌법’ 제정하기도 지난 5월1월부터 국가로 치면 헌법에 해당되는 ‘스기나미구 자치 기본조례’가 시행됐다. 조례는 “구민·사업자의 권리와 의무,구정 운영의 기본원칙,구민·사업자의 구정 참여와 협동에 관한 기본을 규정해 지자체의 자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주민투표 제도의 도입은 획기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18세 이상의 주민의 50분의1 이상의 서명에 의해 주민투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영주 외국인도 서명과 투표에 참가할 수 있게 한 점이 특징이다.현행 일본 지방자치법이 주민의 직접청구권을 ‘20세 이상의 일본 국적의 주민’만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대조적이다. 스기나미구 기획과의 구사카베 히토시 과장대리는 “지방의 일은 지방이 결정한다는 지방분권의 흐름 속에 스기나미 주민들의 구정 참여 의욕이 다른 지자체보다 높은 점이 ‘스기나미 헌법’을 탄생시킨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marry01@ ■야마다 히로시 스기나미 구청장 |도쿄 황성기특파원| 도쿄도 스기나미(杉)구의 야마다 히로시 구청장은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에 참다운 지방자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지방분권에 비판적 견해의 소유자.“미국,유럽을 쫓아가기 위해 국가가 제작한 설계도를 충실히 집행하는 지방과 주민은 통치받는 입장이었을 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1세기는 다르다.”는 생각.“정신의 풍부함,다양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시대에 들어선 일본에서는 앞으로는 주민의 참가와 의견,자치를 중시하는 지방정부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그런 맥락에서 그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는 행정과 집행을 강조한 국가의 무책임한 주민 네트워크 실시에 반기를 들었고,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주민 네크워크에 부분참가키로 방침을 바꾼 이유는. -주민 네크워크의 위험성을 보완하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국회에서 제정됐다.어느 정도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판단했다.행정 서비스도 인터넷 세계와 같다.들어가는 것도,나오는 것도 자유로운 방식이어야 한다.제도의 편리함 때문에 참가하고 싶은 주민이 있는가 하면 그까짓 불편은 참겠다고 참가하지 않는 주민도 있다. 구청장 본인은 주민 네트워크에 참가하는가. -참가하지 않는다.스기나미 구민 60%가 불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일단 국가와의 교섭에서 선택방식을 인증받으면 주민 네트워크 제도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다시 벌일 계획이다. 구 ‘헌법’을 만든 것은. -이제 지방이 국가에 의존할 수 없는 시대이다.국가에 헌법이 있듯,지자체에도 의사결정,주민참가 시스템과 주민의 권리·의무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의 지방자치를 다른 선진국과 비교한다면. -일본에 지방자치는 없었다.선거로 뽑힌 시장이나 의회는 있어도 모든 것이 국가의 손발에 불과했다.그러나 1990년대부터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국가의 설계도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그것은 1인당 GNP에서 일본이 미국을 앞지른 시기와 거의 비슷하다.지방이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야마다 구청장은 도쿄생.45세.교토대 법학부 졸업후 일본의 새 세대 리더를 양성하는 마쓰시타 정경숙(2기)을 거쳐 도쿄도 의원을 지냈다.1993년 중의원 당선후 재선에 실패하고 1999년 구청장에 당선. ■日의 ‘삼위일체 개혁’ |도쿄 황성기특파원| ‘3위일체 개혁’은 최근 일본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보조금 삭감,지방교부세 손질,세원 이양 등 국가,지방간 돈에 관한 3가지를 동시에 근본적으로 개혁한다는 뜻이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내건 ‘작은 정부,지방 분권’이란 슬로건의 실천 방안인 셈이다.지자체들은 “진정한 지방분권,자치를 위해서는 중앙 정부가 주는 돈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지난달 26일 ‘3위 일체 개혁안’을 내놓았다.개혁안은 ▲지방 보조금을 2006년도부터 4조엔 삭감하고 ▲의무적 경비를 제외한 삭감액의 80%를 지방에 세원으로 넘기며 ▲지방교부세는 총액으로 억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정부의 2003년도 예산 가운데 소득세,법인세,소비세 등 국세는 41조 8000억엔,고정자산세 등 지방세는 32조엔이다.지자체들은 최소한의 지방자립을 위해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1대1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초점은 세원 이양.지방은 소득세,소비세 등 기간세를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소득세 일부를 줄여 지방세인 주민세를 늘리고 현행 소비세 중20%에 불과한 지방분을 절반으로 늘려달라는 것이 지자체들의 소망이다.그러나 중앙정부의 세수확보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재무성은 난색을 표시하고 있어 3위일체 개혁이 시작 전부터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 빛으로 스러져간 ‘광주의 어머니’/ 인권운동 대모 조아라 여사 타계… 향년 92세

    광주 인권운동의 대모로 불려온 조아라(曺亞羅·92) 광주YWCA 명예회장이 8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조 회장은 1912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일제 때인 1931년 광주 수피아여고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다 1945년 광주YWCA와 인연을 맺은 뒤 26년동안 총무를 맡았다.73년부터 82년까지 9년동안 이 단체 회장으로 일하면서 여성들의 법적·사회적 권익향상에 몰두했으며,83년부터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광복 전에 일제의 폭압정치에 항거하다 광주학생운동과 신사참배 거부 조종자로 몰려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를 만들고 문을 닫았던 광주YWCA를 재건하는 데 힘을 쏟았다.또 전쟁고아를 돌보는 성빈여사를 개원했고 52년에는 3년제 야간중학교인 호남여숙을 설립했다.또 소외받은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계명여사를 세우기도 했다. 조 회장은 지난 80년 현대사의 비극인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수습대책위원으로 일했고 이 일로 투옥돼 6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했다.이후 구속자와 부상자를 돌보면서‘광주의 어머니’로 불렸다.지난 87년부터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사업추진회 고문을 맡았고 92년에는 처음으로 열린 남·북 여성들의 간담회에 남측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광주시민대상(1988년),제2회 정일형 자유민주상(1998년),제35회 YWCA전국대회 대상(2003년)을 받았다.유족으로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큰 아들 이학인씨와 전주 예수병원 의사인 작은 아들 학송씨 등이 있다. 장례는 민주사회장(5일장)으로 치러지며,빈소는 광주 북구 중흥동 무등장례식장과 광주YWCA에 마련됐다.발인 12일 오전 10시,장지는 5·18 광주 국립묘지.(062)524-3511.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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