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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앞두고 횡재” 3명 중 1명이 조상 땅 찾았다

    “추석 앞두고 횡재” 3명 중 1명이 조상 땅 찾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땅을 찾았다. 추석을 앞두고 횡재한 것 같다.” 6·25전쟁 때 사망한 증조부가 남겨둔 땅이 있었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산조회를 의뢰한 김모(52)씨는 ‘조상 땅 찾기 서비스’로 증조부 명의의 토지 1114㎡를 확인했다. 최근 부동산 열기가 식을 줄 모르면서 조상의 땅을 확인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실제로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땅을 찾았다는 사례가 전국 각지에서 잇따르고 있다. 20일 국토교통부 국가공간정보센터에 따르면 ‘조상 땅 찾기’ 서비스 신청자는 2010년 전국 3만6492명에서 2015년 41만987명, 지난해 50만3549명으로 10년 사이 13.8배나 급증했다. 올해 역시 8월까지 34만9947명이 신청해 연말에는 52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시도 별 신청자는 경기도가 8만7106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6만3224명), 부산(2만4889명), 인천(2만2997명), 경남(2만1592명), 경북(1만8950명), 대구(1만8004명), 충남(1만3799명), 전북(1만3684명), 전남(1만1897명) 등의 순이었다. 실제로 조상 땅을 찾은 후손은 2010년 1만2918명, 2015년 10만257명, 지난해 16만1855명으로 같은 기간 12.5배 늘었다. 이들이 찾은 땅은 2010년 144.59㎢, 2015년 572.32㎢, 지난해 806.17㎢로 10년 사이 5.57배 증가했다. 조상 땅을 찾아 ‘횡재’한 후손은 올해만 11만3496명으로 3명 중 1명 꼴(32.4%)로 조상 땅을 찾은 셈이다. 이들이 찾은 땅은 480.20㎢, 45만5295필지로 조사됐다.신청 자격 및 방법은 ‘조상 땅 찾기’ 서비스는 갑작스러운 사망이나 재산관리 소홀 등으로 유산 상속이 제대로 되지 않아 토지 현황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 지적전산시스템을 활용해 후손에게 땅을 찾아주는 서비스다 토지소유자 본인 또는 사망자의 적법한 재산상속인이라면 신청할 수 있다. 피상속인이 1959년 12월31일 이전 사망했을 경우 호주 승계자가, 1960년 1월1일 이후 사망한 경우 배우자 또는 직계비속이 신청 할 수 있다. 신청인은 후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제적등본 등이 있어야 하며, 2008년 이후 사망자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등을 준비해 가까운 시·군·구청 지적업무과에 신청하면 된다. 대리인이 신청하는 경우에는 상속인 위임장과 위임인 신분증 사본, 대리인의 신분증 사본을 지참해야 한다. 미성년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이 신청할 수 있다. 본인 소유 토지의 지번을 정확히 몰라 각종 재산신고나 관리 등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국가공간정보포털(http://www.nsdi.go.kr)의 ‘열람공간’ 메뉴에 있는 ‘내 토지 찾기 서비스’에 접속해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지난해 8월 5일부터 내년 8월 4일까지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 중이다. 사실상 소유자와 등기상 소유자가 다르거나 미등기인 부동산을 일반법으로 등기하기 어려운 경우, 간편한 절차에 따라 등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적용 범위는 1995년 6월 30일 이전에 매매·증여 교환 등으로 사실상 양도 또는 상속받은 부동산과 소유권보존 등기가 돼 있지 않은 부동산이다. 허위 신청에 의한 피해 사례를 줄이기 위해 종전에 3명이던 보증인을 5명으로 늘렸고, 그중 1명 이상은 법무사나 변호사 자격을 가진 자격보증인으로 위촉하도록 했다. 만약 허위의 방법으로 확인서를 발급받거나 문서를 위조해 보증하게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 ‘취임 100일’ 이준석, “불가역적 정치개혁으로 대선 승리”

    ‘취임 100일’ 이준석, “불가역적 정치개혁으로 대선 승리”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17일 “파부침주의 자세로 불가역적인 정치 개혁을 완성해 대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이 보고 싶어할 만한 영상을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하는 ‘유튜브식 정치’로는 ‘우물 안 개구리’ 밖에 안된다며 이른바 ‘오픈 소스’의 선거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민의힘은 항상 과감한 자세로 정치 개혁을 선도해 나가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이 대표는 “대선 승리 외에는 제가 더 성장하기 위한 다른 정치적인 지향점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정권과 여당의 독주와 오만을 낙동강에서 막아내는 동시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인천에 병력을 상륙시켜야 우리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6·25전쟁 당시를 연상케 하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다. 그는 “‘통합만 하면 이긴다’, ‘내 주변에는 문재인 좋아하는 사람 없다’, ‘여론조사는 조작됐다’, ‘부정선거를 심판하라’와 같은 비과학적인 언어로 선거를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정권 교체는 요원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국민을 바라보면서 당의 노선을 정렬하겠다”며 “중요한 가치와 질서를 대중영합주의와 선동가들 사이에서 굳건하게 지켜내는 것이 보수”라고 부연했다. 그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산업화에 대한 전체주의적 향수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으로 선거에 임하고 싶지 않다”며 “민주당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개혁의 진도를 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30 세대의 확고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한 방법으로 자신의 공약이었던 ‘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을 거론했다. 이 대표는 “지역의 시·도당과 당원협의회도 정당 정치의 핵심인 공직후보자 추천에서 더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한다”며 “폐쇄적인 정당의 운영 속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야망 있는 정치 지망생들이 더 들어올 것이라는 진취적인 기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공유와 참여, 개방이 우리의 언어가 돼야 한다”며 “정책은 여의도 언저리에 있는 정치권과 가까운 고수들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되고, 선거 전략과 홍보물은 정당 가까이에 있는 선거 고문들의 검증 안된 망상이 아닌 지지자들의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용기 목사 조문 행렬… “긍정의 복음, 대한민국 원동력”

    조용기 목사 조문 행렬… “긍정의 복음, 대한민국 원동력”

    “희망과 긍정과 용기의 복음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15일 조용기 목사를 추모하면서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신앙을 전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했다”며 “한국 교회의 거목이요, 세계 교회의 위대한 복음전도자였다”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인 조 목사의 뒤를 이어 2008년 담임목사를 맡은 그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를 설파했던 목사님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고 회고했다. 지난 14일 별세한 조 목사를 추모하는 조문이 이날 오전부터 시작되면서 빈소가 마련된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는 각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소강석 한국교회총연합 대표 등 개신교계 인사들이 조문객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고인을 추모하는 조전에서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큰 위안이었다”며 “목사님이 심어준 희망과 자신감은 한국 경제를 키운 밑거름이 됐다”고 애도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이재명 경기지사는 유족을 위로하고 방명록에 “성전식탁에서 봬온 목사님의 함박웃음을 기억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목사님 하늘나라에서도 기도해 주세요”라고 소망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주님의 빛난 얼굴을 뵙고 영면하시길 빈다”고 추모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큰 지도자를 잃은 슬픔이 너무 크다”며 “천국에서도 국민을 위해 기도해 주옵소서”라고 소망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헌신으로 한국 개신교의 큰 부흥을 이끌어 주신 목사님의 영면을 국민과 함께 기도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등 야권 인사들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홍준표 의원은 “편안하게 가십시오. 하나님 곁으로”란 글을 남겼다. 유승민 전 의원은 “조용기 목사님께서 하느님의 품에서 영면하시길 기도드립니다”라고 애도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폭포 같은 말씀으로 한국 기독교 부흥을 이끄신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을 깊이 기립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방명록에 세로로 자신의 이름 ‘윤석열’을 썼고, 다른 문구는 덧붙이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사로 이어진 목사님의 선한 영향력,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남겼다.
  • 철거 위기 성남 금토지구 정미소·전통가옥 이전 복원

    철거 위기 성남 금토지구 정미소·전통가옥 이전 복원

    경기 성남시는 LH와 협력해 철거 위기에 놓인 금토공공주택지구(제3판교테크노밸리)의 정미소와 전통가옥 2채를 이전 복원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대상 건물은 외동정미소(86㎡)와 나주임씨 가옥(131㎡),안동권씨 가옥(114㎡) 등으로 이전·복원 비용 12억원은 두 기관이 분담하기로 했다. 외동정미소는 6·25전쟁 이전에 건축돼 1995년 폐업했으며 솟은 지붕의 특징적 외관과 옛 정미소의 내부 구조를 간직하고 있어 농촌 마을의 산업 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외동정미소의 주인집인 나주임씨 가옥은 전형적인 경기지역의 농가로 청석 돌기와를 얹어 1968년 지어졌다. 바깥채는 외양간 등 100년 이상 된 농가주택의 생활문화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마을 서당으로 쓰인 안동권씨 가옥은 ‘ㅁ’자형 농가주택으로 공식적으로 1894년 등록됐지만,그 이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00년 이상 된 우물이 있으며 가옥의 기둥에는 6·25전쟁 때 총탄흔이 남아 있다. 시 관계자는 “마을주민과 시가 3개 전통 건축물의 보전을 LH에 요청해 이전·복원을 합의했다”며 “개발과 보존의 공존이라는 도시개발의 선진사례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외동정미소와 전통가옥 2채는 내년 1월 해체된 뒤 2024년 금토공공주택지구내 문화공원으로 이전해 옛 모습을 갖추게 된다.
  • “中·日은 해상 패권 추진 노골화…한국도 해경 권한·위상 키워야”

    “中·日은 해상 패권 추진 노골화…한국도 해경 권한·위상 키워야”

    인접국 해양 무력 증강에 긴장감 고조광역 감시망·무인기 활용한 경비 전환“중국은 우리와 해상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경을 군대화하고, 일본은 해상보안청을 국가안보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위상을 강화하는 등 한반도 주변 해상에서 패권 강화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도 이에 걸맞게 해경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제68회 해양경찰의 날(10일)을 하루 앞둔 9일 김홍희(53) 해양경찰청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하면서 “우리 해양경찰은 해양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6·25전쟁 휴전 이후 1953년 경비정 6척과 경찰관 600여명으로 창설된 ‘해양경찰대’는 68년 동안 역할이 커지면서 1만 3000여명의 경력과 350여척의 함정을 보유한 세계 일류의 해양경찰로 거듭났다. 김 청장은 중국과 일본의 해양경찰 강화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중국은 2018년 해경을 전투경찰인 인민무장대로 이관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해경법을 제정해 주목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법에는 해상 관할권에 관한 범위 규정이 없으면서, 관할권 내에서 무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며 “이는 언제든 서해상에서 긴장이 고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 청장은 “일본은 2016년 각료회의에서 해상보안 강화지침을 결정한 데 이어, 2018년에는 해양상황능력 강화 대응지침을 수립하고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청장은 “해경은 이러한 중국의 공세적 동진(東進)과 일본의 전략적 서진(西進)으로부터 해양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바다 공간 전반을 통합 관리하는 경비체계로 전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시간 광역 해양감시망(MDA)과 무인기, 초소형 인공위성 등을 활용한 유·무인 복합체계 구축 등 미래형 해양 경비체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어 그는 “우리 해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국과 일본이 우리 바다를 넘보지 못하도록 경계를 강화할 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해상 안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책꽂이]

    [책꽂이]

    황현산 전위와 고전(황현산 지음, 김인환 외 10인 엮음, 수류산방 펴냄) 불문학자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의 3주기를 맞아 그가 생전에 시민을 대상으로 남긴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 강의를 지인과 제자들이 엮었다.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등이 어떻게 우리 문학계에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648쪽. 2만 9000원.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읽기(박철 지음, 세창미디어 펴냄) 국내 최초로 스페인 고전 ‘돈키호테’를 완역한 박철 전 한국외대 총장이 작가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문학 세계와 소설의 의미를 독자들이 알기 쉽게 펼쳐 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귀족들의 세습 제도를 비판하고, 남녀평등을 외치며 인간의 자유와 명예를 수호하는 유토피아를 그렸다. 220쪽. 9000원.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최규화 지음, 산지니 펴냄) 포항 사투리로 자신의 생애를 풀어 가는 1929년생 김두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자 출신 손자가 기록했다. 일제강점기 수탈에서 6·25전쟁으로 군대에 끌려간 남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은 딸 등 참혹한 현대사를 견뎌 낸 가족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240쪽. 1만 6000원.이전 세계의 연대기(존 맥피 지음, 김정은 옮김, 글항아리 펴냄) ‘미국 논픽션의 대가’로 꼽히는 존 맥피 작가가 지리학자들과 미국을 횡단하며 쓴 지구 지질학에 대한 보고서를 엮었다. 1999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이 책은 뉴욕 센트럴파크의 운모, 샌앤드레이어스 단층 등 다양한 지질의 변화 과정을 산문을 감상하듯 보여 준다. 960쪽. 4만 9000원.슬로다운(대니 돌링 지음, 김필규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 영국 지리학자인 저자가 지난 160여년간 인류의 급속한 발전상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발전 속도는 예전보다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마트폰이 혁신적이라도 전화, 컴퓨터가 처음 출현했을 때와 비교하면 소소할 뿐이다. 대신 인류는 더욱 평화로운 세상에 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568쪽. 2만 9000원.57번 버스(대슈카 슬레이터 지음, 김충선 옮김, 돌베개 펴냄) 미국 저널리스트의 시각으로 2013년 11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벌어진 ‘혐오 범죄’를 집중 조명했다. 57번 버스 안에서 흑인 소년 리처드가 백인 성소수자 소년 사샤의 다리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리처드는 성인범으로 기소되나, 저자는 사법 당국의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364쪽. 1만 5000원.
  • “조선반도 해방시켰다면…” ‘중공군 미화’ 영화 결국 상영 포기

    “조선반도 해방시켰다면…” ‘중공군 미화’ 영화 결국 상영 포기

    황희 장관 “수입사에서 등급분류 포기”“중공군 미화가 역사 왜곡 아니냐” 논란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승전을 다뤄 비난을 받았던 중국 영화 ‘1953 금성대전투’의 국내 상영이 결국 취소됐다. 황희 장관은 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입사 측에서) 등급분류를 포기해서 상영이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영화물등급위원회는 등급분류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분류를 한 것이고, 비디오물로 분류가 나왔는데 당사자(수입사)가 부담스러웠는지 모르겠지만 철회를 했다”라고 부연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영화 수입사 위즈더필름은 ‘1953 금성대전투’의 등급 분류 취하 신청을 했다. 취하 신청은 별도의 절차 없이 받아들여지며, 이에 따라 해당 영화는 국내 배급이 불가능해진다. ●“수입사가 부담스러웠는지 철회” 영화는 6·25 막바지인 1953년 7월 강원도에서 벌어진 ‘금성전투’를 배경으로 했다. 중국 개봉명은 ‘금강천’이다. 당시 미군은 금강천 일대를 끊임없이 폭격했는데, 중공군이 굴하지 않고 나무다리를 지켜 전투 병력을 목적지까지 이동시킨다는 내용이다. 영화에는 중공군과 다리를 폭격하는 미군만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배우가 “우리가 항미원조 전쟁에서 완벽히 승리해 조선반도를 해방시켰다면 (남북한) 인민들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라는 섬뜩한 대사를 하는 등 철저히 중국 중심의 전쟁 시각을 보여줘 큰 논란이 됐다.금성전투 당시 국군은 중공군 2만 7000여명을 사살하고 3만 800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으나, 결국 공세에 밀려 4㎞를 후퇴하고 193㎢의 땅을 잃었다. 그 과정에 1700여명이 사망하고 7000여명이 부상했으며 4000여명이 실종됐다. 실종인원 상당수는 포로가 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한으로 끌려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앞서 위즈덤필름은 해당 영화를 비디오물로 등급 분류 신청을 했고, 지난달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영화의 경우 극장 개봉을 위해선 영화로, VOD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제공을 위해서는 비디오물로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 ●당시 국군 4000명 실종…北으로 끌려가 향군 등 군 단체와 야권에서는 “중공군 침략을 미화하는 조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황 장관은 앞서 이날 오전 회의에서 상영 허가의 적절성을 지적하는 문체위원들의 질의에 “영등위의 판정 기준에 대해서는 정부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처지”라며 난색을 보였다.그러다 ‘중공군 미화가 역사 왜곡이 아니냐’,‘버젓이 국내 상영을 할 수 있느냐’ 등 김승수·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지적이 잇따르자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이병훈 민주당 의원이 ‘청소년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자, “최근에 특히 MZ세대들의 중국에 대한 정서라든가 국내 정서는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굴욕 외교’ 논란 ‘1953 금성 대전투’ 직접 보니

    ‘굴욕 외교’ 논란 ‘1953 금성 대전투’ 직접 보니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심의를 거쳐 중국의 관점으로 만든 한국전쟁 영화 ‘1953 금성 대전투’(원제 진강촨)에 ‘15세 이상 관람‘ 등급을 적용해 ‘굴욕외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야당과 재향군인회 등을 중심으로 “6·25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과 중공군의 개입을 미화했다. 국군과 유엔군을 능멸하는 것”이라며 상영 허가 취소를 요구했다. 영화는 오는 16일부터 인터넷(IP)TV로 방영할 예정이었지만, 수입사가 8일 등급 분류를 취하해 상영을 포기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중국 전역에서 ‘항미원조 전쟁’(6·25) 70주년(10월 25일)에 맞춰 개봉됐다. 당시 기자는 베이징의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중국 애국주의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랑’(늑대전사) 시리즈에서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우징(47)이 출연한다. 그때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고지도자로는 20년 만에 한국전 70주년 행사에서 직접 연설을 하는 등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중국 문화계도 이에 발맞춰 한국전쟁 관련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쏟아냈다. ‘1953 금성 대전투’도 이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포화 속으로’(2010)나 ‘봉오동 전투’(2019)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4억 위안(약 680억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다. 도시 전광판 광고를 도배하다시피 해 중국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영화는 6·25 막바지인 1953년 7월 강원도에 자리잡은 북한강의 지류 진강촨(금강천)에서 벌어진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미군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이 지역을 끊임없이 폭격했다. 중국 인민지원군은 이때마다 떼죽음을 당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병력 이동용 나무다리를 끝까지 복구했다. 결국 엄청난 희생을 치러내며 금강천의 마지막 다리를 지켜 전투 병력을 목적지까지 이동시켰다. 중국이 군사력 열세에도 미국에 지지 않고 한국전쟁을 이끈 것은 이름 없는 자국 군인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중국 당국이 공무원과 학생들에게 애국주의 영화 관람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던 때였지만, 100여명을 수용하는 극장에는 10명 정도만 앉아 있었다.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짜임새가 탄탄했고 연출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부 여성 관객은 영화에 큰 감동을 받은 듯 내내 눈물을 흘렸다. 진강촨은 유명 예매 서비스 ‘메이투안’에서도 평점 9.4점(10점 만점)으로 1위를 기록하는 등 중국 내 평가가 좋았다. 특이하게도 이 영화에는 한국군이나 북한군은 나오지 않는다. 오직 인민지원군과 미군만 등장한다. 이 영화가 철저히 미국을 겨냥해 반미의식을 고취하려고 만들었음을 보여 준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의 끊임없는 압박으로 미중 갈등이 극에 달한 때였다. 제작사가 이 영화를 기획한 지 3개월여만에 촬영을 마치고 개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갈등이 없었다면 ‘1953 금성 대전투’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1950년 남한과 북한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자 중국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던 미국이 이를 핑계로 한반도에 상륙했다. 미군이 중국 본토인 만주 지역까지 공습하는 등 대륙 침략 야욕을 드러내자 한국전 참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 중국의 설명이다. 중국군은 북한의 요청으로 그해 10월 19일 압록강을 넘었다. 엿새 뒤인 25일 한국군에 첫 승리를 거뒀는데, 이를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는다’는 항미원조 기념일로 정했다. 6·25를 보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인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국전쟁을 ‘미중 대결’로만 해석하려는 시각도 담겨 있다. 영화의 배경인 ‘금성전투’는 1953년 6~7월 강원 화천군과 철원군 일대 영토를 두고 국군과 유엔군 40만명이 중국군에 맞서 싸운 전투다. 국군 1701명이 전사하고 4136명이 실종됐으며 754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국내에서는 193㎢의 영토를 북한에 빼앗겨 ‘뼈아픈 전투’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중국군은 대표적인 승전 사례로 선전한다. 영화 속에서 미군은 ‘남의 나라 전쟁’에서 하루 빨리 빠져 나오기만을 바라는 비겁한 존재로 묘사된다. 친구(북한)를 위해서 목숨을 건 중국군과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 영화 마지막에 우징이 “우리가 항미원조 전쟁에서 완벽히 승리해 조선반도를 해방시켰다면 (남북한) 인민들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할 때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가난했던 1950년대 미국과의 전쟁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신냉전 상황에서 중국 인민들의 반미 정서와 투지를 키우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중공군 활약 다룬 영화 상영에 중국 “한국군에 아픈 기억”

    중공군 활약 다룬 영화 상영에 중국 “한국군에 아픈 기억”

    중국에서 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가 한국전쟁에 대한 영화 ‘1953 금성대전투’(중국명 ‘금강천’·영어제목 ‘희생’)의 한국 상영을 결정했다면서, 이 영화가 한국군에게 아픈 기억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해풍시사평론은 7일 영화 ‘금강천’이 한국에서 주문형 비디오로 상영될 수 있게 됐다면서 이에 대해 한국 네티즌들의 의논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0일 영상물등급위원회는 6·25전쟁 당시 북한을 도운 중공군을 영웅시한 ‘1953 금성 대전투’에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부여해 국내 상영을 허가했다. 영화 수입사는 이 영화를 극장 개봉이 아니라 온라인 동영상으로 서비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평론은 “이 영화는 한국전쟁 제5차 전투의 마지막 단계에서 비롯된 전투 장면을 담고있다”면서 한국에서는 이 전투를 금성전투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금성전투는 1953년 6월부터 7월까지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지역에서 한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공방전을 가리킨다. 중국 평론은 한국군은 이 전투에서 압도적인 수의 중국군에 패배하고 193㎢에 가까운 영토를 잃었다고 지적했다.군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영화 개봉 결정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대중 굴종 외교가 이젠 6·25전쟁까지 미쳤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라고 성토했다. 이어 금성전투는 사실 우리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역사라고 밝혔다. 신 의원은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인해 남쪽으로 밀렸던 국군은 빼앗긴 지역 일부를 회복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약 4㎞정도 후퇴된 상태로 휴전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특히 중공군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전사자 1700여명, 부상자 7500여명, 4000여명의 미귀환 포로를 남긴 국군의 뼈아픈 상처이자 슬픈 역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철저하게 중국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이자, 북한의 침략을 미화하는 이런 황당무계한 영화를 허가하다니 기가차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또 방영 2회 만에 역사 왜곡이란 비난때문에 방송이 중단된 SBS 역사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조선사는 왜곡하면 안되고, 6·25전쟁은 왜곡해도 된다는 것이냐고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물었다. ‘1953 금성대전투’는 제작비 4억 위안(약 720억원)이 투입된 대작으로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개봉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중일전쟁을 다룬 영화 ‘팔백’의 관호, 공상과학영화 ‘유랑지구’의 곽범 등 세 명의 감독이 공동연출했다. 중국 애국주의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을 기록한 ‘전랑2’의 오경이 주연을 맡았다.
  • 日 왕궁에 폭탄 던진 의열단 ‘김지섭 옥중편지’ 문화재 된다

    日 왕궁에 폭탄 던진 의열단 ‘김지섭 옥중편지’ 문화재 된다

    일제강점기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1884~1928)의 옥중 편지가 문화재가 된다.문화재청은 항일 독립투사 김지섭이 1924년 1월 5일 도쿄 왕궁 입구의 이중교에 수류탄 세 발을 던지고 투옥된 후 동생 김희섭과 부인 권석희에게 보낸 편지 4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6일 밝혔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 3건에는 판결 언도일을 앞둔 상황에서도 의연한 태도로 동지의 안부를 묻고,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을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아내에게 보낸 한글 편지에는 일본 면회를 오려는 아내를 만류하는 절절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다. 문화재청은 “강력한 의열 투쟁에 나섰던 항일 투사 김지섭의 진솔한 내면 세계와 인간상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의열단은 1919년 조직된 무장운동 단체로, 항일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지섭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문화재청은 아울러 ‘한성미술품제작소 은제 공예품’(이화문 합)과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정문’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한성미술품제작소는 대한제국 황실의 후원 아래 ‘조선의 고유한 미술품 제작’을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조선 왕실 전통 문양과 대한제국의 상징인 이화문이 새겨져 있고, 전통공예가 주물과 압축 기법 등 근대적인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대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정문’은 6·25전쟁 당시 제주도에 설립한 육군 제1훈련소(강병대)의 정문 기둥이다. 이미 문화재로 등록된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와 함께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다.
  • 일본 왕궁에 폭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 옥중 편지 문화재 된다

    일본 왕궁에 폭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 옥중 편지 문화재 된다

    일제 강점기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1884~1928)의 옥중 편지가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항일독립투사 김지섭이 1924년 1월 5일 도쿄 왕궁 입구의 이중교에 수류탄 3발을 던지고 투옥된 후 동생과 부인에게 보낸 편지 4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예고한다고 6일 밝혔다. 동생 김희섭에게 보낸 편지 3건에는 판결 언도일을 앞둔 상황에서도 의연한 태도로 동지의 안부를 묻고,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을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아내인 권석희에게 보낸 유일한 한글 편지에는 일본까지 면회를 오려는 아내를 만류하는 절절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다.문화재청은 “강력한 의열 투쟁에 나섰던 항일 투사 김지섭의 진솔한 내면세계와 인간상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의열단은 1919년 조직된 무장운동 단체로, 항일독립 사상을 고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지섭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문화재청은 아울러 ‘한성미술품제작소 은제 공예품(이화문 합)’과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정문’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한성미술품제작소 은제 공예품(이화문 합)’은 대한제국 황실의 후원아래 ‘조선의 고유한 미술품 제작’을 목적으로 설립된 한성미술품제작소(1908~1913)의 공예품이다. 조선 왕실의 전통 문양과 대한제국의 상징인 이화문이 새겨져 있고, 전통공예가 주물과 압축 기법 등 근대적인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대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수량도 희소해 근대 공예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성미술품제작소는 이후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조선미술품제작소로 명칭이 바뀌어 운영됐다.‘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정문’은 6·25전쟁 당시 제주도에 설립한 육군 제1훈련소(강병대)의 정문 기둥이다. 이미 등록된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와 함께 6·25전쟁 관련 유산으로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다. 기둥 축조에 사용된 제주 현무암과 조개껍질 등의 건축 재료는 지역적인 특성도 잘 드러내고 있다. 문화재청은 등록 예고 기간을 거쳐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와 연계해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다.
  • 드라마로 봤는데… ‘군대 다큐’네

    드라마로 봤는데… ‘군대 다큐’네

    “드라마를 봤을 뿐인데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총 300여분 분량의 6부작 군대 드라마에 ‘과몰입’을 호소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7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 ‘D.P.’ 때문이다. 군대를 통해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을 던진 드라마는 공개 이후 국내 ‘오늘의 톱10’ 1위를 유지 중이다.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일본 등에서도 상위권으로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군대 통한 구조적 폭력 생생하게 비판 ‘D.P.’는 탈영병을 찾는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조를 지칭한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이유 없는 갈굼과 폭언, 폭행이 반복되는 군대의 일상을 펼쳐 놓는다. 별일 없는 듯 군대의 시간은 흘러가지만 탈영병이 발생하고, 그를 잡을 DP조가 출동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뚝뚝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이병 안준호(정해인 분)와 능글맞은 선임 한호열(구교환 분)은 이탈한 군인들을 쫓으며 군대 내 부조리를 자각한다. ‘D.P.’가 몰입감을 높이는 이유는 현실적인 군 묘사 덕분이다. 군필자들 사이에서 ‘극사실주의’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김보통 작가가 DP로 복무한 경험을 살린 원작 웹툰 ‘D.P.개의 날’의 생생함에, 제작진들의 경험이 결합됐다. 한준희 감독은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스태프 대다수가 군필이고 각자 겪은 일들이 있다 보니 특별히 군대에 대한 취재를 더 할 필요는 없었다”며 “극 중 호열이 군병원에 입원하는 장면에는 제 경험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 구교환의 매니저 등 스태프들 중에 DP 출신이 있었던 점도 리얼리티를 높였다.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들은 현실 비판의 강도를 높인다. 2014년 집단 구타로 사망에 이른 ‘윤일병 사건’, GOP 연대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드라마가 과장이 아님을 강조한다. 배우 정해인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다 보니 연기하는 데 부담이 매우 컸다”며 “픽션이지만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었기에 결코 가볍게 다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한준희 감독 “시즌2 가능성도 염두” 군대를 통해 사회 전반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도 공감을 넓혔다.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군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뿐 아니라, 군대식 질서와 문화도 뿌리 깊은 탓이다. “6·25 때 쓰던 수통도 안 바뀌는데 군대가 바뀌겠냐”,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내뱉은 인물들은 방관자들도 비극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한 감독은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그 속의 감정과 관계는 보편적이고 응축적”이라며 “군대는 분명 좋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방관한 적이 없는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고민하는 마음으로 연출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몰입을 높인다. 로맨스의 주인공에서 변신한 정해인과 ‘대세’로 떠오른 구교환, 탈영병 조석봉을 연기한 배우 조현철 외에도 수많은 조연이 활약한다. 다만 안준호와 한호열이 보여 주는 버디 무비의 관계성은 익숙한 만큼 전형적이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대사 등 장치도 과한 부분이 있다. 시즌2가 나올 가능성은 높다. 한 감독은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김 작가와 초기 단계의 메모를 주고받고 있다”며 “후속 시즌을 한다면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해인도 “극 중에서 병장을 달 때까지 나왔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 대법 “20년 이상 도로 사용, 무단점유 증거 없으면 나라 땅”

    대법 “20년 이상 도로 사용, 무단점유 증거 없으면 나라 땅”

    국가가 20년 넘게 점유해 도로로 사용한 땅이라면 국가가 무단 점유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국가 소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 말소 등기 소송을 제기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이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2019년 이씨는 경기 파주시의 125㎡ 규모 도로가 자신이 상속받은 땅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913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작성된 토지조사부에 따르면 해당 토지는 이씨의 증조부 소유로 기록돼 있다. 6·25 전쟁으로 멸실됐다가 1961년 복구된 토지대장에도 소유자는 이씨의 증조부로 기록됐다. 하지만 1978년 토지대장상 소유자명은 이씨의 증조부에서 ‘소유자 미복구’로 정정됐고, 1996년 6월 다시 국가 명의로 바뀌었다. 이에 이씨는 토지대장을 변경한 근거가 정부에 남아있지 않은 만큼 토지대장 변경은 당시 공무원의 착오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1심과 2심은 이씨의 주장을 인정해 국가에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말소하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국가가 해당 토지를 20년 이상 점유하고 있었던 점에 주목했다. 민법 245조에 따르면 20년간 소유 의사를 갖고 분쟁 없이 부동산을 점유하면 등기를 통해 소유권을 갖게 된다.
  • 감염병 기록물 통해 일상회복 희망...국가기록원 기획전

    감염병 기록물 통해 일상회복 희망...국가기록원 기획전

    ‘갑자기 괴질이 발생해 구토와 설사와 가슴이 막혀 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다 잠깐 사이 사망한 사람이 1000여명이나 됐습니다.’ 1821년(순조 21년) 8월 평양감사 김이교가 조정에 쓴 보고서 한 토막이다. ‘의약도 소용없고 구제할 방법도 없으니 눈앞의 광경이 매우 참담합니다’라는 표현을 통해 당시 조선 사람들로선 듣도 보도 못한 신종 감염병이었던 콜레라에 느꼈을 절망감과 공포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각종 기록을 모은 조선왕조실록에는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사례를 보고하고 대책을 논의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조선시대부터 최근까지 약 600년에 걸쳐 감염병을 극복해온 역사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서울역사박물관과 공동으로 2일부터 11월 7일까지 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 여는 ‘다시 일상을 꿈꾸며’ 기획전를 연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자는 취지다. 전시회에서는 1424년 세종실록부터 지난해 열린 ‘기록 사랑 공모전’에 당선된 포스터까지, 감염병 극복의 노력을 담은 100여점의 기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기록물을 통해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등 역사의 현장에서 스페인독감, 천연두,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감염병과 싸우며 일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마스크 쓰기, 학교의 임시 휴업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한 거리두기 조치가 과거에는 어떻게 시행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인류는 수많은 역병과 자연재해, 전쟁의 역사와 더불어 전진해 왔다”며 “이번 전시는 역경과 고통을 희망으로 엮어낸 조상들과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최재희 국가기록원장은 “과거 우리가 감염병을 이겨냈던 경험으로 이번 위기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느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go.kr)를 통한 온라인 사전예약(1회당 100명·총 3회)과 현장접수(1회당 200명·총 3회)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archives.go.kr)를 통해 온라인 전시도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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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 ◇과장급 전보△교류협력실 남북접경협력과장 김인호△교류협력실 교류지원과장 이혜옥△정세분석국 경제사회분석과장 송희경△인도협력국 국립 6·25납북자기념관팀장 박상헌△국립통일교육원 교육연수과장 이종현△국립통일교육원 운영관리과장 백동룡△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교육훈련과장 조성묘 ■행정안전부 ◇국장급 전보△지역발전정책관 김명선 ■산업통상자원부 ◇과장급 전보△국가기술표준원 산업표준혁신과장 오유천△국가기술표준원 제품시장관리과장 고재강 ■새만금개발청 ◇4급 승진△신재생에너지기반과 홍수환△기반시설과 강창선△기반시설과 박주환 ◇4급 전보△신재생에너지기반과장 우종하△산업진흥과장 양건식 ■국민건강보험공단 △징수상임이사 김선옥 ■한국관광공사 ◇전보·보직 변경△뉴욕지사장 박재석△방콕지사장 이상우△관광기업육성팀장 박윤숙△MICE기획팀장 이영근△기획조정팀장 고봉길◇파견△울산관광재단 조홍준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 최우성△저널리즘책무실장 권태호△편집국 신문총괄 석진환△편집국 콘텐츠총괄 정은주△편집국 디지털미디어부문장 송호진△편집국 이슈부문장 이주현△이노베이션랩 준비팀장 고경태 ■한국일보 △디지털전략부장 김주성△DB콘텐츠팀장 김지오 ■이투데이 △종합편집부장 장대명△IT중소기업부장 직무대행 조남호△종합편집부 차장 김재영
  • [책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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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장민지 지음, 서해문집 펴냄) 미디어 전문가인 저자가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한 여성 청년 12명이 생각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를 묶었다. ‘따뜻하고 친밀한 공간’으로서 집은 여성을 억압하는 편향적 성격이 있다고 분석하고, 보수적인 집과 가족에게서 벗어나길 원하는 여성 청년들의 열망을 기록했다. 284쪽. 1만 8000원.글자 속의 우주(한동훈 지음, 호밀밭 펴냄) 서체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노포 간판부터 여러 상품 브랜드까지 곳곳에서 눈에 띄는 글자의 내력과 의미를 짚었다. 기아자동차 ‘프라이드’의 로고나 도쿄올림픽 공식 엠블럼 등 다채로운 글자 모양들이 저자의 눈을 통해 우리 사회와 시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436쪽. 2만 5000원.분노란 무엇인가(바버라 로젠와인 지음, 석기용 옮김, 타인의사유 펴냄) 역사학자인 저자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현대 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지배하는 분노의 의미를 12가지 담론으로 엮었다. 분노를 피해야 한다는 주장과 분노의 긍정적 영향을 인정하는 견해, 분노를 인간의 본능으로 보는 시각 등 3가지 관점에서 정리한다. 284쪽. 1만 5000원.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생태학자이자 초현실주의 화가인 저자가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한 축인 초현실주의 사조를 쉽게 설명했다.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등 전통과 관습에 맞섰던 예술가 32명의 인간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그림을 곁들여 소개한다. 424쪽. 2만 2000원.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김택곤 지음, 맥스미디어 펴냄) 방송 기자 출신인 저자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를 20여년간 취재해 발굴한 비밀문서를 토대로 해방 이후 6·25전쟁까지의 현대사를 재조명했다. 광복군의 험난한 귀국길과 좌우합작 실패 등 중요한 고비들을 미국 정부의 시각에서 생생하게 보여 준다. 752쪽. 3만 5000원.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김혜나 지음, 은행나무 펴냄) 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김혜나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정크’ 등 작품으로 20대의 고민을 치열하게 담았던 작가는 30대 여성의 불안과 격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주인공 ‘메이’는 요가 수련을 위해 인도 여행을 떠나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308쪽. 1만 4000원.
  • “아픔을 함께 합니다” 아프간인 위로 현수막 걸린 인재개발원

    “아픔을 함께 합니다” 아프간인 위로 현수막 걸린 인재개발원

    “아픔을 함께 합니다, 편하게 지내다 가세요. 여러분을 사랑하는 진천군민 일동” 아프가니스탄인 378명이 머물 충북 진천군 덕산읍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정문 앞에 26일 오전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등이 제작한 격려 현수막이 걸렸다. 일부 주민들이 불법현수막 민원을 제기해 잠시 철거되는 소동을 빚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프간인을 품기로 한 진천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이날 ‘여러분의 아픔을 함께합니다. 머무는 동안 편하게 지내다 가시길 바랍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한국어, 영어, 아프가니스탄어 등 3개국어로 만들어진 이 현수막에는 태극기와 아프가니스탄 국기도 새겨졌다. 전날 진천지역 주민들은 코로나19 확산 등이 불안하지만 이들의 입소를 막지 않기로 결정했다. 박윤진 덕산읍 이장단협의회장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의 체류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6·25전쟁 당시 우리 국민들도 고통받았던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도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의 한국입국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인류애를 발휘해 손을 내밀어준 정부와 진천군민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어려움을 딛고 국내로 오신 현지인 분들을 환영하고, 이제 불안과 공포를 내려놓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진천중앙교회는 “대한민국과 진천은 아프간 협력자들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게시했다. 철거소동은 이날 오후 덕산읍행정복지센터에 불법현수막 민원이 제기되면서 벌어졌다. 군은 아프간인 수용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이 문제를 삼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군은 적법한 장소 등을 찾아 현수막을 다시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진천군은 아프간인과 인재개발원 인근 주민들을 위해 대응반과 종합상황실을 운영키로 했다. 종합상황실은 인재개발원 주변 방역을 관리하고 각지에서 전달될수 있는 격려물품 등을 모아 아프간인들에게 전달하게 된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 1월 중국 우한교민 진천 수용 때 처럼 이번에도 전국에서 위로물품이 도착할 것으로 예상돼 준비하고 있다”며 “아프간인들이 즐겨먹을수 있는 음식을 후원하는 방법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인들은 27일부터 6주에서 8주 사이 인재개발원에 머물 예정이다. 정부는 인재개발원 외곽을 경찰 1개 기동대가 24시간 순찰하고 기숙사 내부는 법무부 요원 14명이 관리하기로 했다.
  • “아직 친일파 재산 15만여 필지… 환수법 늦출 일인가”

    “아직 친일파 재산 15만여 필지… 환수법 늦출 일인가”

    여의도 면적 1.7배 1390억 규모 필지 환수토지대장·등기부등본 등 하나하나 확인자손·소유주 협박 욕설에 직원들 곤욕도“광복절 이슈 아닌 국가 차원서 정리 필요”“친일파 및 일본인 재산 환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송명근 조달청 차세대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구축추진단 통합추진팀장은 2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적극적인 재산 환수를 강조했다. 광복절 이슈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정리가 필요한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정부가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 등 부동산 공부와 일본인 명부를 기초로 파악한 재산만 5만 2000여필지, 지난해까지 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는 부동산이 10만 4000여필지에 달하는 등 일제 잔재가 여전하다.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5년간 조달청 국유재산기획과에서 일본인 귀속재산 환수를 총괄했던 송 팀장은 “소명의식이 없다면 수행하기 어려운 직무”라고 자평했다. 일본인 귀속재산 업무가 기획재정부에서 조달청으로 이관된 것은 2012년이다. 올해 7월 현재 귀속재산으로 의심되는 1만여 필지 중 여의도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490만㎡(6163필지)를 환수했다. 공시지가 기준 1390억원에 달한다.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는 혼란 속에서 문서가 사라지자 불법 명의 변경이 속출했다. 조달청이 토지대장과 등기부대장, 제적등본 등을 확인하고 증언을 확보해 땅 환수에 나서자 자손과 땅 소유자들이 반발했다. 송 팀장은 “2016년 한 해 75건을 비롯해 지난해까지 200여건의 은닉재산 환수소송을 제기했다”고 소개했다. 갈등과 민원이 심하다 보니 직원들이 버티지 못했다. 여성 공무원은 협박과 욕설 등을 견디지 못해 부서 이동을 요청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창씨개명과 이름이 3자 이하인 일본인 명의가 조사에서 빠지는 혼란을 빚기도 했다. 광복 75년인 지난해 변화가 생겼다. 해마다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 문제가 거론되자 전 부처가 참여해 일본인뿐 아니라 일본식 명의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됐다. 일본인 재산 환수는 2006~2010년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기반이 됐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멈춰 섰다. 송 팀장은 “친일파가 숨겨둔 재산 신고 및 처리를 맡을 기관조차 없다”며 “일본인 명의 재산 국유화와 공적장부 이름 정비는 지적 주권 회복이자 국유재산을 늘릴 수 있는 실효적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 100년 전을 곱씹다… 짜장면·호텔도 다 ‘최초’

    100년 전을 곱씹다… 짜장면·호텔도 다 ‘최초’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면 저절로 호기심이 생긴다. 그래서 인류는 최초 타이틀을 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도 오르고 남극도 갔다. 관광산업에서도 ‘최초’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무엇이든 최초가 있다면 많이들 찾아가서 보기 때문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개항을 통해 가장 많은 ‘대한민국 최초’ 타이틀을 보유한 도시가 있다. 서구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개항도시 인천(당시 제물포)이다.인천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서해와 한강이 만나는 곳에 백제 비류가 ‘최초’로 도읍한 미추홀(인천의 옛 지명)은, 한반도에서 신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당시의 ‘미래도시’였다. 그곳이 현재의 인천 중구 개항지다.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인천은 또 하나의 ‘미래도시’를 세웠다. 연수구 송도국제도시다. 이곳은 외세가 아닌 대한민국이 주도해 미래를 펼치는 곳이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이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인근에 조성 중인 송도국제도시는 미래를 투영하는 듯한 첨단 건축물과 도시 인프라 속에 다양한 콘텐츠를 채워 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중구 개항장과 연수구 송도국제도시는 서로 이어져 있다. ●‘최초’가 열린 1883년 제물포 … 거대한 박물관이 되다 1883년 인천이 개항했다. 일본과 청나라, 서구 열강의 사람과 물자가 밀려들어 오는 ‘개항장’이 됐다. 당시 조선에선 신문물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외교관들의 사교 모임이 열렸던 제물포 구락부 건물(유형문화재 제17호), 인천개항박물관(구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구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 중구생활사전시관(구 대불호텔) 등 근대식 건물이 지금도 중구청 앞 개항장 문화거리를 차지하고 있다.아랫길로는 항만 창고를 개조한 인천아트플랫폼, 인천역 쪽 건너편으론 차이나타운이 있으며 답동성당과 내리교회, 내동성당 등 국내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종교시설도 그대로 남아 있다. 개항장 시절부터 물자를 교류하던 신포시장까지 걸어서 한 번에 돌아보기 좋다. 이 일대는 온통 ‘최초’투성이다. 그것도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과 밀접한 것들이다. 이곳을 걷다 보면 온갖 최초들과 마주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갈 수 있다.차이나타운. 온통 붉은색 간판을 내건 중국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최초의 짜장면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중국 산둥에서 건너온 화교 1세대가 고안했다. 개항장 부두 노동자를 칭하는 ‘쿠리’(苦力)들이 부둣가에서 싸고 푸짐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을 볶아 국수에 얹어 준 음식이다. 이후 청나라 조계지에 짜장면을 파는 식당이 많이 생겨났다. 1905년 개업한 산동회관은 공화춘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83년 폐업했으며 그 건물은 현재 차이나타운 짜장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차이나타운에서 개항장 거리로 내려오면 최초의 호텔 대불호텔이 나온다. 1888년 일본인 해운업자 호리 리키타로가 인천항 앞에 서양식으로 지었다. 3층 양옥건물에 다다미방 240개, 침대방 11개를 갖췄다. 당시 숙박료는 1원 50전~2원 50전으로 주변 일본 여관의 고급객실 숙박요금 1원에 비해 훨씬 비쌌다. 현재는 역사전시관으로 쓰고 있다. 철도가 처음 놓인 곳도 인천이다. 제물포와 서울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1899년 9월 18일 완공됐다.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시작한 사업을 일본 경인철도합자회사가 양도받아 진행했다. 최초 운임은 상급좌석 기준 1원 50전으로 대불호텔 기본 숙박요금과 같았다(자고 가는 게 나았을 듯).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시속 20㎞로 1시간 40분 걸렸다. 야구와 축구 경기도 인천을 통해 들어왔다. 야구는 1904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면도날이 아니다)에 의해 도입됐다는 것이 공식 기록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본인 학생에 의해 인천 창영초등학교(구 인천공립보통학교)에서 야구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창영초는 메이저리거 류현진의 모교이기도 하다. 축구는 개항 전인 1882년 8월 영국 군함 플라잉피스호 수병들이 제물포에 상륙해 축구경기를 했다는 공식기록이 남아 있다.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은 1888년 만들어졌다. 훗날 맥아더 장군 동상이 들어서게 되는데, 2016년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역을 맡은 리암 니슨과 꼭 닮아 화제가 됐다. 자유공원에서 내려오면 1895년에 지어진 최초의 극장 애관극장이 있다. 원래 이름은 협률사. 1920년대 애관극장으로 바꿨다가 6·25 때 소실되고 1960년에 현재 모습인 2층 극장전용관으로 새로 지었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등대도 팔미도 등대가 최초, 담배 공장도 동양연초회사가 최초다. 담배 공장이 있으니 성냥도 필요하다. 성냥 공장도 1917년 문을 연 인천 조선인촌회사가 최초다. “인천의 성냥공장~”으로 시작하는 ‘불량한’ 구전가요도 이 때문에 나왔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 없으면 못 마십니다”로 유명한 코미디언 고 서영춘의 만담. 왜 인천이고 사이다인가. 최초의 사이다 공장인 인천탄산수제조소가 1905년 일본인 히라야마 마쓰타로에 의해 신흥동에 생겨난 까닭이다. 생산품은 ‘별표(星印) 사이다’였고 꽤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실제 볼 수 있는 건축물도 많지만 없어진 것은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박물관 역시 국내 최초 공립박물관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최초의 전신국, 전화국, 기상대 등이 들어와 쇄국하던 조선에 선진 문물을 알렸다. 해외 이민의 역사도 인천에서 출발했다. 하와이 파인애플 통조림 회사의 창업자 돌(Dole)이 대한제국에 이민을 요청한 이후 1902년 12월 22일 최초의 이민선 갤릭호가 한인 101명을 싣고 제물포항에서 출발했다. 공식 해외 이민 1호다. 하와이 교포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피땀 흘려 돈을 모았다. 이 돈을 독립자금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고국에 공과대학을 세우라고 성금도 냈다. 그리해서 생겨난 학교가 인하대학교다.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땄다. 월미도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당시 이민의 자료를 볼 수 있다. 이후에도 쫄면과 닭 강정 등 인천에서 최초로 탄생해 전국으로 퍼진 문화가 많다. 개항장 지역은 인천의 원도심으로 1970년대부터 다양한 먹자골목이 위치했다. 차이나타운 이외에도 밴댕이 골목, 신포국제시장 먹거리 골목이 있으며 물텀뱅(아귀) 골목과 동인천 삼치거리도 멀지 않다. 개항장 거리엔 고풍스러운 근대 석조건물과 왜식 목조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이 중에는 구 우선주식회사 건물처럼 커피숍과 베이커리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 쉬어가기 좋다. 커피의 역사 역시 인천에서 시작됐음을 알고 나면 기분이 달라진다. 100여년 전 인천, 커피잔을 기울이는 개화기 신사라도 된 기분이다.(그는 친일파였을까?)고풍스러운 전동차량을 타고 근대역사 전문해설사와 함께 개항장 거리를 한 바퀴 도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있다. 1인 1만 5000원(30분). 인근 월미도의 ‘그 무서운’ 놀이기구 바이킹과 디스코팡팡도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아이콘이며 이곳을 두루 잇는 바다열차 모노레일도 타볼 만하다.●다리 하나 건너면 송도… SF 영화 한 장면을 마주하다 개항장이 있는 중구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송도국제도시다. 전체 면적은 약 53.4㎢로 서울 여의도의 16배 크기다. 도시 외관부터 첨단의 느낌이다. 통유리 건물이 직육면체가 아닌 각각 다른 형태로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프로토스(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외계인 종족)를 납치해 설계를 맡겼는지, 미래지향적 건물 일색이다. 빙과류 ‘더위사냥’처럼 시원하게 생긴 마천루(포스코타워)를 비롯해 USB 메모리처럼 생긴 건물도 줄줄이 서 있다. 그렇다고 마냥 차가운 철골의 도회적 분위기만은 아니다. 녹지도 많다. 곳곳에 푸른 잔디며 정원이다. 도심에는 실개천도 흐르고 작은 호수도 있다. 센트럴파크 위에선 보트를 띄우고 유유자적 도심의 낭만을 즐긴다. 코마린 보트하우스 선착장이 동서 양쪽에 하나씩 있다. 원래는 투명보트, 파티보트 등 6종을 대여했지만, 방역수칙이 강화된 요즘은 구름처럼 생긴 구루미 보트, 문 보트라 불리는 초승달 모양 보트만 탈 수 있다. 은은히 보트 아래를 비추며 시시각각 색이 바뀌는 불빛이 특징인 문 보트(3인 3만 8000원)는 야간에 더욱 인기다. 사실 실제 타는 이들보다 바깥 산책로에 있는 이들에게 더 좋은 사진을 제공한다. 대신 탑승객들은 수면 위로 깔리는 시원한 초가을 바람을 맞으며 사방으로 펼쳐지는 송도국제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푸른 밤하늘이 머리 위를 덮으면 하나둘 불을 밝히는 첨단 미래도시의 가로등이 물 위로 비친다. 해외 도시여행을 떠나온 듯한 낯선 풍경에 잠깐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다. ■100년 뒤를 엿보다… 마천루·낭만도 다 ‘최신’미래 그리는 또 하나의 인천 송동송도는 과거 유원지로 유명했다. 지명도 송도가 아닌 옥련리였는데 일제강점기던 1937년 일본 자본이 해양유원지로 개발하며 이름을 ‘송도’라 바꿨다. 조수간만의 차를 없애고 해수욕장 수질을 유지하고자 수문을 달았다. 수인선 개통과 함께 송도역이 생기고 유원지로서 인기도 올랐다. 1970~1990년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이름은 해수욕장이지만 호수라 해도 될 정도로 잔잔해 여름이면 많은 이들이 몰렸다. 관광호텔도 생기고 유명 식당 등 인근 편의시설도 많았다. 송도국제도시가 조성되면서 송도유원지는 결국 2011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폐장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중고차 수출단지로 활용되고 있다. 거대 도시 송도 곳곳에 쇼핑단지도 먹거리촌도 잘 조성돼 있다. 외형을 근사하게 잘 지어 놓으니 콘텐츠가 저절로 찾아와 공백을 메우는 셈이다. 130여년 전 작은 어촌 제물포가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미래를 지지하는 중심도시로 변모했다. 아스라한 과거와는 달리 급작스러웠던 개항, 개화기 당시 인천으로 물밀듯 들어온 첨단 신문물과 문화는 당장 대한민국 근대화와 현대화의 길을 밝히는 탐조등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같은 공간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바다 건너 월곶에서 바라본 송도국제도시가 하늘에 그리는 미려한 윤곽 속에서 새로운 개화(開花)의 서막을 볼 수 있었다. ●‘맛’있는 도시… 중구와 송도의 탐미(耽味) 코스 의외로 인천은 냉면 본향이다. 본래 황해도 출신이 많이 살았던 인천. 서양 공관이 있던 조계지에서 자투리 고기를 구해 냉면 육수와 꾸미(고기붙이)로 썼더니 ‘인천 냉면 맛있다’고 입소문이 났다. 자전거로 신작로를 달려 서울까지 냉면을 배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경인면옥은 평양 출신 사장이 1947년 개업해 3대째 이어 오는 노포로 인천 냉면의 본류를 자부한다. 메밀을 쓴 평양식 냉면(1만원)이다. 사곶냉면은 황해도 식에 섬 특유의 문화가 섞여든 냉면(8000원)이다. 백령도 사곶에서 탈출(?)한 냉면으로, 돼지뼈를 우린 육수에 메밀 면을 말아 낸다. 독특하게 까나리 액젓을 한 방울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화평동 냉면골목도 빼놓을 수 없다. ‘세숫대야 냉면’이란 별명이 말해 주듯 가게마다 커다란 사발에 가득 담긴 냉면(6000원)이 정말 푸짐하다. 한참을 먹어도 줄지 않는다. 물론 맛이 없었다면 벌써 없어졌다.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와 챙겨 먹는 ‘서울 손님’도 많다.하얀백년짜장을 파는 만다복은 차이나타운의 인기 음식점이다. 춘장을 쓰지 않고 볶아 낸 고기양념장을 면발에 비벼 먹는 방식이다. 졸깃한 면발과 오이채에 짭조름한 고기볶음을 듬뿍 올리고 다진 마늘을 곁들여 비비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느낌의 백년짜장(7000원)이 완성된다. 100년 전 초창기 짜장면 방식이라고 한다.송도유원지 시절부터 유명했던 ‘송도갈비’는 수원왕갈비, 포천 이동갈비와 함께 ‘수도권 3대 갈비’라 불린다. 그리 달지 않고 간장과 과일만으로 재워 낸 양념소갈비를 숯불에 올리면 간장이 타들어 가며 구수하고 달큼한 불향을 내는데 이게 입에 짝짝 붙는다. 부드러운 한우 갈비를 잘 숙성 양념해 저렴하게 파니 예전 유원지 시절처럼 가족외식 코스로 딱이다.미추홀타워 별관에 위치한 한식당 ‘참예그리나’는 정갈한 메뉴에 하나하나 정성 깃든 찬을 내는 집이다. 한정식 상차림이 기본인 보리굴비 특선(1만 7000원)과 불고기정식(1만 6000원) 등이 유명하고 저녁상에선 한우차돌전복삼합이나 유황삼겹전복삼합 등 삼합류를 많이들 찾는다.송도 바다쏭은 한옥과 모던한 건물을 조합한 독특한 외관의 카페다.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내부와 탁 트인 전망창이 좋은 곳이다. 에스프레소(6000원)와 에그타르트, 크루아상 등 다양한 수제 빵이 맛있어 잠시 휴식을 즐기기에 좋다. 송도갈비 옆에 있다.
  • 한·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의 만남

    한·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의 만남

    2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우리나라와 콜롬비아의 6·25전쟁 참전용사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번 만남은 이반 두케 마르케스 콜롬비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이뤄졌다. 양국 국방부는 이날 보훈 정책에 대한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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