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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역은 가을도 봄이 되는 ‘청춘역’입니다…내리실 문은 낭만 오른쪽, 힐링 왼쪽입니다

    이번 역은 가을도 봄이 되는 ‘청춘역’입니다…내리실 문은 낭만 오른쪽, 힐링 왼쪽입니다

    강원도 춘천은 낭만의 도시다. 서정적 호수(의암호), 고불거리는 강(소양강), 강 따라 흐르는 철도(경춘선), 심지어 ‘봄내’라는 이름까지. 온갖 낭만적인 요소는 모두 가졌다.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은 노래 ‘춘천 가는 기차’(1989)에서 지친 일상을 떠나 춘천으로 향하는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무작정, 정말 그리하기 좋은 곳이다. 춘천은. 시간은 30여년도 더 지나 기차는 전철로 바뀌었고 근사한 ITX고속열차도 생겼다. 하지만 구불거리는 북한강도 강촌역도 여전히 꿰고 다니니 추억을 곱씹거나 없었다면 새로 새길 수 있다.책 한 권이 있다면 더욱 근사하다. 이왕이면 춘천에 관한 책이면 좋겠다.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도 좋고 이외수의 책도 어울린다. 김유정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인 소설가 전상국이 쓴 ‘춘천 사는 이야기’나 봄봄의 후편 격인 ‘다시 봄봄’ 등이 좋을 듯하다. 차로 가도 나쁘지 않다. 막혀도 고작 두어 시간이다. 과정도 목적지도 좋으니 만추와 조동이 스치는 계절에 뭔가 로맨틱한 자극이 필요하다면 춘천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곳은 늘 봄처럼 낭만적이니 말이다. 춘천의 춘(春)은 젊음과 낭만을 상징하는 게 맞다. 청춘이라지 않았던가. 차창 밖으로 스미는 나른한 오후 볕에 깜박 잠이 든대도 좋다. 춘천이 종착지다. 철 바퀴가 레일을 지치는 리듬이란 꼭 엄마 뱃속에서 듣던 심장박동이나 이발소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 같아 퍽 잠이 온다. 풍물시장을 들를라 치면 남춘천역이 좋고 바로 소양강을 보고 싶다면 춘천역이 낫다. 춘천낭만시장(중앙시장)에도 가 봐야 한다. 총떡과 막국수 한 그릇에 비로소 여행 온 기분을 낸다. 총떡은 춘천에서 메밀을 얇게 부쳐 고기와 채소를 볶아 넣고 총구처럼 돌돌 말아 낸 전병이다. 매콤새콤하고 구수하니 이곳까지 와서 아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시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육림고개 역시 요즘 핫플레이스로 뜨는 지역이다. 이름의 유래가 된 육림극장이 있었고 값싸고 독특한 물건을 파는 오래된 점포와 식당들이 많았다. 막걸리를 파는 전집부터 신기술로 빛바랜 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관, 주인이 경상도 울진 출신임을 강조하는 미용실 등이 남아 있다. 서양식 레스토랑, 일식 주점, 근사한 카페들도 터주가 떠나버린 빈자리를 메우며 공존의 고갯길을 열어 놓았다. 낭만은 시장 안에도 깃들었다. 중앙시장에는 예의 전통시장 분위기에 매료된 젊은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점포들이 들어왔다. 장바구니 대신 빵을 사도 좋고 차를 마셔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접 부친 전이나 조잔부리를 챙기는 재미가 있다. 시장 옆은 명동이다. 춘천에도 명동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전기가 일찍 들어와 번쩍번쩍한 번화가를 거개 명동(明洞)이라 불렀다. 춘천에서도 유일한 시내가 ‘명동’이다. 이리저리 이어진 명동의 좁은 골목에 닭갈비거리가 버티고 섰다. 오늘날 ‘춘천닭갈비’의 명성을 있게 한 곳이다. 여기서 갈비란 늑골 부위를 이르는 게 아니다. 고기 하면 으레 갈비를 최고로 꼽던 시절에 닭을 썼대서 닭갈비다. 돼지갈비만 못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역 대표 메뉴로서 위상을 단단히 수성하고 있다. 요즘이야 철판에 닭고기와 양배추, 고구마, 당면 등을 넣고 볶아 먹는 형식이 대표적이지만 사실은 연탄불에 닭갈비와 살코기 부위를 구워 먹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 소양강댐이 건설되며 많은 외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여기저기 소문을 낸 것이 전국적 명성을 얻기에 이르렀다. 종류도 다양해져 요즘 춘천에는 숯불닭갈비와 철판닭갈비, 뼈 있는 것, 없는 것 등 다채로운 식문화가 생겨났다.시민들에게나 관광객에게나 춘천의 대표적 낭만 스폿 중 하나는 공지천이다. 이른 아침 운동 코스로도 좋고 야경을 감상하는 저녁 산책 코스로도 딱이다. 공지천을 지나치자면 살짝 커피향이 느껴진다. 6·25전쟁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군 기념탑과 기념관이 이곳에 있어, 예가체프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산 커피 원두 또한 어느 곳보다 춘천에 가장 먼저 상륙했다.이곳엔 1968년 개업, 국내 최초로 로스팅한 원두커피를 팔아 온 집이 있다. ‘이디오피아 벳(집)’이다. 6·25전쟁 참전을 기념해 세운 커피집으로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팔고 있다. 공지천 강물에 반쯤 걸터앉은 이 클래식한 분위기의 커피숍은 커피 마니아들의 순례 코스일 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황제와도 연관 있는 곳이다. 1968년 에티오피아 황제가 춘천 공지천 참전기념탑을 방문한 후 양국 간 문화교류를 위한 ‘이디오피아 벳’이 생겼다. 커피 원두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는 황실에서 사용하는 원두를 이곳에 보내왔고, 덕분에 무려 53년 전에 로스팅 원두커피를 서울도 아닌 춘천에서 마실 수 있게 됐다. 과연 오리지널이다. 맛있고 향기롭다. 창밖으로 보이는 춘천 풍경은 뜨거운 커피를 더욱 맛나게 한다. 6·25전쟁에 에티오피아군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놀랍다. 그저 터키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16개국 중 하나려니 했다.(물론 그중 룩셈부르크와 그리스, 콜롬비아, 태국은 생경하다.)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대에서 선발한 칵뉴 부대가 주인공이다. 현지어로 ‘적을 섬멸한다’는 뜻의 칵뉴부대는 1951년 5월 7일 한국에 도착해 총 253번의 전투를 치렀다. 와중에 전사자 121명에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진 바 없고 단 1명의 포로조차 허용하지 않은 ‘무적의 전승 부대’였다. 중동부전선(철원~양구) 등에서 무패 신화를 세우고 1956년까지 춘천에 주둔했다. 참전 군인 중에는 1960년 도쿄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비킬라 아베베도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스러져 간 고마운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이름이 전사(戰史)와 업적, 유품과 함께 이곳에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 전통 가옥 형태로 지은 한국전참전기념관에 가면 자세한 사연을 확인할 수 있다. 공지천에는 커피 외에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3대가 가업을 이어받은 노포 햄버거집이다. 햄버거가 3대라니. 라모스 버거는 MZ세대 관광객들로부터 춘천의 명물로 손꼽히는 수제버거집이다. 뉴욕치즈의 여신, 소양강버거 등 각각 특색 있는 버거의 맛이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특히 치즈와 블루베리 소스의 조화가 인상적인 줄리엣버거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비대면 로봇 서비스 역시 볼거리로 인기만점이다.춘천 중심부에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의암호가 있다. 강물 위에 우뚝 서 있는 ‘소양강 처녀상’이 랜드마크다. 의암호에는 스카이워크가 두 곳이다. 하나는 소양강 스카이워크, 또 하나는 의암호 스카이워크다. 시내와 가깝고 소양강 처녀상 옆에 자리해 야경이 특히 아름다운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길이 174m의 현수교 모양이다. 투명 바닥 구간만 무려 156m에 이른다. 아찔하니 발바닥이 근질근질 오그라들고 머리는 ‘손오공 머리띠’ 같은 것이라도 씌운 것처럼 저릿저릿하다. 공포의 10m 높이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며 걷는 기분이란 게 꼭 그렇다. 의암호 스카이워크는 좀더 길다. 길이 190m에 이르는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맑은 물을 바라보며 호숫가 바람을 실컷 쐴 수 있다. 의암호를 바라보며 예술과 더불어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KT&G 상상마당도 들러볼 만하다. 유럽의 여느 공원처럼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도심을 둘러봤으니 드라이브 삼아 외곽까지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더할 나위 없다. 춘천댐은 생각보다 넓지만 ‘춘천댐 매운탕골’은 의외로 가깝다. 행정구역은 ‘오월 1리’다. 또다시 봄의 기운을 발견했다. 춘천의 겨울은 습하고 싸늘하다. 뜨거운 쏘가리 매운탕이 절실할 때가 있다. 예닐곱 곳의 매운탕집이 몰려 있다. 송어회나 향어회도 판다. 집집마다 단골을 두고 오랜 시절을 영업해 온 집들이다. 이 중 동춘횟집은 쏘가리나 빠가사리(동자개)와 메기, 잡어 등을 매콤하게 끓여내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매끌한 수제비와 함께 국물을 떠넘기다 밥을 말면 그 맛에 허기와 한기가 사라진다.배가 불룩 나오면 피부를 당기니 눈이 커져 전보다 훨씬 잘 보이는 모양이다. 중도에는 카누 카야킹과 웨이크보드 등 수상 레포츠 시설도 있다. 아이들에게 인기만점 애니메이션박물관과 토이로봇관, 강원도립화목원 등 관광지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니 함께 다녀보기에 딱이다. 이젠 내려가자. 여기도 낭만이 있고 봄이 있다. 남춘천역 인근에 ‘김유정역’이 있다. 원래 ‘신남’역이었는데 ‘봄봄’의 김유정이 살았던 실레 마을이 있던 곳이라 국내 최초로 인명을 딴 역명으로 고쳤다. 역은 2개다. 괄괄한 ITX청춘이 쏜살같이 내달리는 경춘선 역도 있고 지금은 폐역이 된 구 역사가 있다. 김유정역에서 내려 폐철로를 걷다 보면 인형의 집처럼 앙증맞은 김유정역이 나온다. 이 역사(驛舍)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지만 역사(歷史)가 깃들었다. 신문 한 장을 모두 펴기에도 좁은 작은 역사 안에는 옛 열차시간표, 역무원 소품을 비롯해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인근에는 김유정의 삶과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폐병에 걸린 춘천 태생 스물아홉 살 소설가는 운명하기 열흘 전 친구에게 편지를 남겼다. 가난과 병마와 싸우던 그는 소설 번역이라도 하겠다고, 그래서 돈이 생기면 닭도 사고 구렁이도 사서 삶아먹고 어서 나아야겠다고 썼다. 그러나 답장이 닿기 전에 김유정은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그의 작품엔 ‘나’와 ‘점순이’가 자주 등장한다. ‘봄봄’에도 나오고 ‘동백꽃’에도 있다. 주요 명장면을 조각으로 만들어놓았다. 점순이가 아직 키가 작아 시집을 못 보내니 클 때까지 일을 더 시키던 ‘열정 페이’ 봉필 영감(‘봄봄’)도, 괜스레 ‘썸타기 위해’ 애꿎은 닭싸움을 붙이던 또 다른 점순이(‘동백꽃’)도 정원을 지키고 있다. 신남마을 레일파크에 따뜻한 늦가을 볕이 한 가득이다. 책 모양 건물 옆을 지날 제 낙엽이 날고 있다. 분명히 가을인데 봄기운이 돈다. 기이하다. 봄내(춘천)골은. 시인 유안진은 말했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고.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이니까.”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 옛날식 석쇠 닭불고기·뉴욕치즈 여신버거·감자빵… 강추! 춘천 8味■샘밭막국수=숯불닭갈비와 막국수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풍경맛집. 주차장도 널찍하고 실내공간도 넓어 가족단위 방문객에게 적합. ■이디오피아 벳=정통 에티오피아 원두 로스팅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 직접 내리는 드립커피① 한잔에 공지천을 바라보며 쉬어 갈 수 있는 곳. 무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원조숯불닭불고기=옛날식 석쇠 닭불고기(②닭갈비)를 부위별로 맛볼 수 있는 노포. 뼈의 유무와 내장과 살코기, 오돌뼈 등 다양한 부위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예전부터 춘천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한잔 코스로 인기를 이어 오고 있다. 숯불에 올린 신선한 닭고기가 전국 어디서도 쉽게 보기 힘든 맛의 세계를 선사한다. 춘천 아니랄까 봐 곁들이는 된장과 막국수도 전문점 정도는 한다. ■라모스버거=3대가 하는 햄버거 노포. 번부터 패티, 소스까지 수제로 만들어 다양한 테마로 즐길 수 있다. 치즈를 듬뿍 끼얹은 뉴욕치즈의 여신버거③는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팔도실비집=애막골에서 전국 맛을 즐길 수 있는 실내포차. 대구 북성로 불고기부터 서울식 소불고기, 오징어숙회 등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동춘횟집=춘천댐 매운탕골에 위치한 민물고기 매운탕 맛집. 룸과 평상으로 구성돼 여유 있게 한끼 즐길 수 있는 곳. 송어회 등 회와 쏘가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잡어 매운탕이 있다. ■감자밭=감자와 똑같이 생기고 속은 더욱 맛있는 감자빵④을 파는 집. 쫄깃한 겉에 부드럽고 진한 감자맛을 내는 소가 들었다. 실내외 카페 공간이 있어 한숨 쉬어 가기에도 좋다. ■동해막국수=남춘역 앞에서 오래 운영해 온 막국숫집. 메밀 함량 높은 막국수에 감자전, 묵 종류가 있고 춘천식 메밀총떡도 판다.
  • 팝페라 테너 임형주 5년 만의 앨범… “‘잃어버린 시간’ 통해 앞으로 나아가길”

    팝페라 테너 임형주 5년 만의 앨범… “‘잃어버린 시간’ 통해 앞으로 나아가길”

    팝페라 테너 임형주(35)가 5년 만에 팝페라 정규 7집 앨범 ‘로스트 인 타임(Lost In Time·잃어버린 시간 속으로)’을 17일 발매했다. 앞서 지난 12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자선독창회도 열었다. 새 앨범을 통해 임형주는 지금의 코로나19 어려움을 계기로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 선조들의 나라 잃은 설움부터 6·25 전쟁으로 분단된 한민족의 비극과 깊은 슬픔 등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을 돌아봤다. 역사 속에서 소중한 일상의 시간을 잃어버렸던 그 시간들을 꿋꿋하게 이겨낸 한민족의 근성과 DNA를 그 시절 노래로 표현하며 지금의 우리를 위로하고 달랜다는 뜻을 담았다. ‘독립군 애국가‘ 리마스터링 버전을 오프닝곡으로 두고 그가 조직위원회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KBSn 공식 캠페인송이었던 ‘저 벽을 넘어서’를 담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시그널’, ‘슬기로운 의사생활’, ‘결혼작사 이혼작곡’, 영화 ‘파파로티’ 등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한 이상훈이 작곡하고 임형주가 직접 작사한 창작 팝페라 발라드 ‘산정호수의 밤’도 대표 타이틀곡 중 하나다. 앨범에는 또 설문조사에서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군가’로 뽑히기도 했던 ‘푸른 소나무’와 통일을 기원하는 노래 ‘우리의 소원’도 그의 섬세한 목소리로 담았다. ‘우리의 소원’은 북한이주민 가정의 청소년 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 재학생들로 꾸린 하늘꿈학교 합주단이 반주했고 임형주가 설립한 대안유아교육기관 소르고의 어린이 합창단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이 밖에 ‘사의 찬미’, ‘희망가‘,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등 서정적인 감동을 주는 노래들이 수록됐다. 보너스 트랙으로 유튜브 구독자 32만명을 보유한 앙상블 ‘레이어스 클래식’과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테마송으로 함께했던 ‘아리랑’도 만날 수 있다. ‘봉선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등 그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대표곡들도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선보인다. 임형주는 “앨범 속 노래들이 마치 우리에게 ‘우리는 과거에서 지혜를 얻고 현재의 경험으로 미래를 계획해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 남북청년 100여명과 국립현충원 참배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 남북청년 100여명과 국립현충원 참배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남북청년 100여명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묘비 닦기 등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지 의원은 지난해부터 남북청년들과 함께 3·1절, 6·25 한국전쟁, 순국선열의 날 등 호국보훈 국가기념일에 맞춰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지 의원과 남북청년들은 현충탑 참배를 시작으로 묘역에서 묘비 닦기, 잡초 제거 등 봉사활동도 했다. 봉사활동에는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연가를 사용해 참석한 회사원, 봉사단체 등이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새벽에 충북 충주에서 출발해 혼잡한 출근길을 헤치고 시간에 맞춰 도착한 봉사자도 있었다고 의원실은 전했다.봉사활동에 참여한 탈북민 A씨는 “둘도 없는 귀중한 목숨을 바쳐가며 나라를 지킨 희생자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며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순국선열들의 덕분이기에 오늘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지 의원도 “자유대한민국은 순국선열들의 희생으로 지켜지고 세워진 나라다“며 “자유의 가치를 다시금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젊은 청년들과 함께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문화를 확산해 나가겠다”고 했다.
  • “편히 잠드소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8위 영결식

    “편히 잠드소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8위 영결식

    16일 경북 국립영천호국원에서 2021년 6·25 전사자 유해발굴 합동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이번 행사는 낙동강 방어선 일대인 영천, 칠곡, 문경, 의성, 군위에서 수습한 국군 유해 8위에 대한 영결식이다. 육군 50사단은 올해 낙동강 방어선 일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함께 60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해 총 27위의 전사자 유해와 1665점의 유품을 발굴했다. 영천 연합뉴스
  • “73년 만에 명예회복… 여순사건 유족에겐 시간이 없다”

    “73년 만에 명예회복… 여순사건 유족에겐 시간이 없다”

    “죄 없는 민간인이 국가 권력의 폭력 속에 억울하게 잡혀가 스러졌다는 것이 여순사건이 빚은 비극의 본질입니다. 이제라도 나라가 진심 어린 사과로 유족의 한을 풀어 주고 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합니다.” 비극의 고통은 깊고 길었다. 1948년 벌어진 여수·순천 10·19사건은 김규찬(72)씨가 평생 짊어져 온 아픔이자 벗어나고픈 굴레의 시작이었다. 철도승무원이었던 아버지 김영기(당시 23세)씨는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을 열차에 태웠다는 이유로 내란죄에 몰려 정부 진압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 후 불과 한 달 만에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최종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결국 마포형무소(지금의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됐다. 그로부터 73년이 흐른 지난 6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송백현)는 유족 김씨 측의 청구로 열린 재심 재판에서 김영기씨의 내란, 국권문란, 포고령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재심청구인과 유족이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이 고됐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며 “사법부를 비롯한 국가는 이 사건을 통해 불법적인 폭력을 방관하거나 자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평생의 설움과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판결로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난 집안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일으킨 반란을 정부군이 진압하며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진압 과정에서 이 지역에 거주하던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김씨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김영기씨는 여순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 순천역 열차 차장으로 근무하며 아내, 그리고 네 살배기 딸과 함께 덕암리 철도관사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젊은 가장이었다. 아내는 아들 김씨를 임신한 상태였다. 김영기씨가 탄 열차는 전북 익산에서 출발해 순천역에서 정차하던 중 지역 일대를 장악한 14연대의 요구에 객실을 내줬다. 일반 시민도 탄 정기 운행 열차였지만 총부리를 들이미는 군인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그는 관사로 쳐들어온 진압군에게 ‘반란군과 공모해 부역했다´는 내란죄 혐의로 체포됐다.김씨는 “어릴 적 어머니는 아버지가 군인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열차 운행만 했을 뿐인데 영장이나 다른 법적 절차 없이 막무가내로 끌려갔다며 밤마다 우시곤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가 돌이 지난 저를 업고 마포형무소로 아버지를 찾아 면회를 갔는데 아버지 다리가 고문으로 죄다 뒤틀려 찢어진 살 사이로 하얀 무릎뼈와 정강이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더라”며 눈물을 지었다. ‘곧 나갈 테니 집안 장롱에 남겨둔 돈을 얼마간 생계비로 하며 기다리라’던 아버지는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가장이 사라진 김씨 가족은 철도관사에서 쫓겨났다. 어머니는 매일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신문을 받으며 곤욕을 치르다 순천을 떠나 대구에서 멸치 행상을 하며 생활했다. 5살 된 누이는 괴질로 세상을 떴다. 가난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힘들었던 김씨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어머니의 행상을 도와야 했다. ●철도공사 다니며 아버지에 관한 기록 모아 다행히 친척의 도움으로 고교를 겨우 졸업한 김씨는 전교 1등도 할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반란자의 자식´이라는 그림자가 늘 따라다녔다.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해 1차 적성검사와 2차 신체검사, 3차 필기검사까지 통과했지만 신원조회에서 걸렸다. 좌절한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철도학교 홍보 전단이었다. 국비로 교재와 옷, 장학금까지 준다는 말에 끌려 그대로 철도학교에 입학했다. 철도공무원이 되려면 연좌제 해결이 먼저였다. 행방불명된 지 20년이 된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고 호적에서 스스로를 파낸 뒤에야 여순사건의 그림자를 일부나마 벗을 수 있었다. 1971년 철도청을 거쳐 1982년 서울도시철도공사 지하철 계획요원으로 옮긴 그는 2008년 도시철도공사 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38년을 철도공사에 몸담으면서 틈틈이 아버지의 흔적을 좇았다. 아버지가 탔던 서울~여수 전라선 노선을 탈 때면 아버지를 알던 동료 철도공무원을 찾아 증언을 듣고 기록을 모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까지는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공직에 있는 동안 재판에 나섰다가 행여나 자식에게까지도 불이익이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군사정권과 산업화 시기는 진상 규명은커녕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그는 “운명처럼 아버지를 따라 열차 승무원의 길을 걷게 됐지만 한번 불이익을 겪기 시작하니 언제라도 또 그런 일을 겪을까 노심초사하며 살게 됐다”고 회고했다. ●아버지 옛 동료가 당시 상황 증언 ‘운명이려니´ 하고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재심 문제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2001년 여순사건유족연합회가 출범하고 2009년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438명이 군경에게 집단 사살당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유족연합회에 있으면서 우연히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옛 동료는 당시 그가 어떻게 경찰에 끌려갔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군법회의에서 아버지가 무죄를 항변했음에도 확인 절차 없이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도 증언해 줬다. 아버지의 동료인 철도 기관사 장환봉(당시 29세)씨 유족이 재심을 진행 중인 것도 알게 됐다. 김씨는 “장씨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서며 검찰 자료를 통해 진압군에 끌려간 철도원이 66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철도업에 있으면서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아버지를 비롯한 철도원들의 무죄를 입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1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정아)가 장씨의 재심에서 내린 무죄 선고는 한 줄기 빛이었다. 그 길로 국가기록원을 두 달간 뒤져 아버지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순천역 사무소 직원 명부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찾고 본적과 철도관사 주소 등을 대조해 퍼즐 조각을 맞췄다. ●유족 나이 들고 이미 돌아가신 분 많아 그렇게 지난해 5월 12일 법원에 청구한 재심은 8개월 만인 지난 1월 29일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올 5월 첫 공판을 거쳐 마침내 법원은 6월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첫 공판에서 “내란, 국권문란, 포고령 위반 등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나 자료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김씨는 “판결을 듣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아버지의 불명예를 내가 70여년이 지나 노인이 다 돼서야 죽기 전에 씻고 갈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판결 5일 뒤인 지난 6월 29일에는 진상 규명과 희생자 지원을 위한 여순사건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유족 대부분이 나이 들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적지 않아요. 너무 늦기 전에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서야 합니다. 유족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블랙이글스 6·25 참전용사 추모 비행

    블랙이글스 6·25 참전용사 추모 비행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턴 투워드 부산’(부산을 향하여) 행사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참전 국가깃발 상공에서 추모 비행을 하고 있다. ‘턴 투워드 부산’은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1분간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전 세계가 동시에 묵념하는 추모 행사다. 부산 뉴스1
  • 블랙이글스 6·25 참전용사 추모 비행

    블랙이글스 6·25 참전용사 추모 비행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턴 투워드 부산’(부산을 향하여) 행사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참전 국가깃발 상공에서 추모 비행을 하고 있다. ‘턴 투워드 부산’은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1분간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전 세계가 동시에 묵념하는 추모 행사다. 부산 뉴스1
  • 中 영화 ‘장진호’ 시사회에 고위 관료들 대거 참석…충성 경쟁하나?

    中 영화 ‘장진호’ 시사회에 고위 관료들 대거 참석…충성 경쟁하나?

    6·25전쟁 중 미군과 중국군 간에 벌어진 가장 치열한 전투였던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중국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지난 10일 홍콩에서 시사회를 열었다고 중국 신문망이 11일 보도했다. 특히 이날 홍콩 시사회에는 첸마오보 홍콩 재무장관과 루신닝 홍콩 중국연합판공부주임 등 다수의 고위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됐다. 당시 시사회에 참석했던 첸마오보 홍콩 재무장관은 영화 장진호를 가리켜 “항미원조 이야기를 다룬 장진호 전투는 다수의 영화에서 재현됐다”면서 “영화 속 격렬했던 전쟁 장면은 중국 인민군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적인 기개를 보여준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깊은 상념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무대에 오른 루신닝 홍콩 중국연합판공부주임은 “장진호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수작”이라면서 “그저 전설처럼 전해지기만 했었던 전쟁 속 영웅들의 활약들이 영화 곳곳에 세심하게 녹아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오는 2035년을 목표로 운영 중인 제14차 5개년 계획’ 덕분에 장진호 공동 연출에 홍콩인 감독 서극과 단테 람 등 홍콩 출신 예술가들이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홍콩의 영화인들과 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해 더 많은 예술 창작품을 완성하고 중국에 대한 애국심을 고양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사회장에는 이들 전인대 단야오종 상무위원과 홍콩입법회의 판쉬리타이 주석, 특별자치구 정부규제 및 내부 사무국 쩡거웨이 국장, 홍콩특별행정구 보안국 덩빙창 국장, 홍콩중국공동경무연락부 천펑 부장 등 정계 고위 관리들이 대거 참석해 화제를 이어갔다.한편, 지난 9월 30일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 개봉됐던 영화 장진호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 선전부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제작된 영화로 알려져 있다. 중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인 13억 위안(약 2300억 원)이 투입되면서 제작 당시부터 큰 화제가 됐다. 이 작품은 개봉 40일 만에 약 56억 위안(약 1조 300억 원)의 수익을 거둔데 이어 중국 역대 영화 흥행 순위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중국 영화 ‘니하오, 리환잉’이 거둔 올해 최고의 글로벌 박스 오피스 수입 기록 54억 1300만 위안을 크게 넘어선 수준이다. 1위는 지난 2017년 개봉됐던 ‘특수부대 전랑2’가 56억 9000만 위안의 수익을 올린 바 있다. 10일 기준 장진호를 관람한 관객 수는 무려 1억 1800만 명으로 집계됐다. 장진호는 후속작인 2편 ‘장진호: 수문교’ 제작에 돌입 완성된 포스터가 공개된 바 있다. 후속작 ‘장진호:수문교’는 중공군이 신흥리와 하갈우리 전투 이후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골자로 제작 중이다. 장진호를 연출했던 천카이거와 홍콩감독 서극, 단테람 등 3인이 공동 연출하고 1편에서 형제로 출연했던 주연 배우들이 대거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766억 기부한 이수영 회장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5억’”

    766억 기부한 이수영 회장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5억’”

    ‘카이스트에 766억 기부’ 이 회장‘통장잔고’ 묻는 질문에“마이너스 통장 한도 5억” 카이스트에 766억원을 기부한 수백억 자산가 이수영(85) 광원산업 회장이 자신만의 투자 비법을 소개했다. 또 통장 잔고를 솔직하게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은 9일 방송된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와카남’에 출연해 사업 철학에 대해 언급했다. 이 회장은 “사업에는 비밀이 필요하다. 나의 움직임을 몰라야 한다”며 “눈여겨 본 땅이 있다면 주소부터 물어보라. 소유주와 주소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정보를 다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진 만큼만 투자해야 한다. 빚내서 어떻게 하나”라며 “(돈 벌고 싶으면) 낭비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출연진들이 통장 잔고를 궁금해하자 이 회장은 “마이너스”라고 답했다. 그는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 5억이다. 마이너스 5억 통장이 있어서 돈이 필요할 때 그 통장에서 빼서 쓰면 된다”고 밝혔다. 이날 이수영 회장은 최근 매매한 충남 당진의 6800여 평에 달하는 텃밭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얼마에 텃밭을 샀냐’는 물음에 “평당 16만 원에 싸게 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먹거리 좋고, 기후 좋고, 수도권이랑 가까워서 샀다. 또 여기 경전철이 들어온다”고 덧붙였다.“766억원 기부, 대한민국을 세계에 드높이는 데 쓰이길” 1936년생인 이 회장은 이수영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후 서울신문·현대경제일보(現 한국경제신문)·서울경제신문 등을 거치며 기자로 활동했다. 17년 간 기자로 일한 그는 1971년 목장을 설립해 축산업을 시작했고, 1988년 여의도백화점 5층을 인수해 부동산 전문기업인 광원산업을 창업했다. 기자 시절 안양에 당시 10원 정도 하는 땅 5000평을 사 돼지 두 마리와 암컷 한우 세 마리로 시작한 일은 ‘광원목장’이라는 이름 아래 돼지 1000마리와 젖소 10마리로 규모를 늘렸다. ‘기부왕’으로 불리는 이 회장은 총 90억원 상당의 미국 부동산과 676억원 상당의 국내 부동산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이 회장은 “오랫동안 가까운 자리에서 카이스트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발전은 물론, 인류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드높이는 데 기부금이 쓰이길 바란다”고 했다.이 회장은 지난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서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연설을 듣고 ‘우리나라에 과학자의 필요성, 과학 발전과 국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내 마음을 흔들었다”며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는 아직 배출하지 못했다”고 기부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은 통 큰 기부가 시작된 계기를 설명하면서는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나는 일제강점기에서 컸다. 나라 없는 슬픔과 6·25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며 “사람들이 너무 굶어서 배고픈 사람들의 몸이 부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가 음식을 하면 그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게 내 마음속에 싹이 됐다”고 말했다.
  • 6.25 유엔 참전용사 추모...‘ 턴투워드 부산’ 행사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한 전 세계의 동시 묵념 및 추모 행사인‘ 턴투워드 부산’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가 11일 오전 10시 30분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다. 턴투워드 부산은 11월 11일 11시에 1분간 묵념 행사를 통해 6·25전쟁에 참전한 22개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사다.1분간 부산 시내 전역에서 추모 사이렌이 울린다.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 씨가 2007년 처음 제안했다.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은 지난해 3월 ‘유엔 참전용사의 명예선양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이날 국방부 유해발굴감시단이 발굴한 무명 영국군 3명의 유해가 유엔기념공원 영국군 묘역에 안장된다. 감식결과 유해는 영국군 제29여단 글로스터대대 소속으로 참전용사인 것으로 추정됐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다.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사령부가 조성했고 1955년 11월 한국 국회는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 기증했다. 1951∼1954년에는 유엔군 전사자 약 1만1천 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었고 이후 7개국 용사 유해가 조국으로 이장되면서 현재 11개국 2천311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이날 행사에는 김부겸 국무총리와 박형준 부산시장,마르타 루시아 라미레스 콜롬비아 부통령,마이크 프리어 영국 국제통상부 부장관,황기철 보훈처장,각국 주한 외교사절과 이 참전용사 19명과 가족 등 40여명이 참석한다.
  • 당신들의 희생 기억합니다… 유엔 참전 용사 2년 만에 방한

    당신들의 희생 기억합니다… 유엔 참전 용사 2년 만에 방한

    국가보훈처는 오는 11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맞아 7개국 유엔군 참전 용사와 가족 40여명이 5박6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8일 밝혔다. 방한한 참전용사 중에는 유엔기념공원이 있는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국제추모행사를 최초로 제안한 공로 등으로 우리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빈센트 커트니 캐나다 참전용사도 포함됐다. 백마고지 전투 등에서 중박격포 단대장으로 활약한 공로로 2016년 태극 무공훈장을 받은 레이몽 요제프 얀 베르 벨기에 참전용사, 1951년 4월 미 해병 1사단 화기소대 일원으로 참전해 펀치볼 전투에서 총상으로 후송됐던 윌리엄 헤일 미국 참전용사 등도 방한했다. 이들은 9일 전쟁기념관 방문을 시작으로 10일 부산으로 이동해 유엔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에 참석한다. 11일에는 보훈처 주관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를 진행한다. ‘국제추모의 날’은 6·25전쟁에 참전해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한 유엔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념하고 추모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날 황기철 보훈처장이 참가자 등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한다. 12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오후에는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다. 유엔참전용사와 가족들의 초청 방한 행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중단됐다가 2년 만에 재개됐다. 1975년부터 민간단체 주관으로 시작, 2010년 6·25전쟁 60주년을 계기로 보훈처에서 주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3만 3000여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 [열린세상] 임영웅도 좋지만, 인문문화 영웅도 살피자/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열린세상] 임영웅도 좋지만, 인문문화 영웅도 살피자/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요즘 국내의 막장 정치판과는 다르게 한류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져 있으니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한국이 전 세계로부터 세계적인 문화국으로 숭앙받고 있는 줄로 착각마저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외국인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반적인 추세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노래와 춤을 잘하고 드라마를 잘 만든다고 해서 한국을 문화적인 선진국으로 인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의 지성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인색할 것이라 본다. 어떤 나라가 문화적으로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가릴 때 우리는 그 나라가 노래나 춤, 드라마 그리고 스포츠를 잘하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나라가 사상(종교)이나 역사·문학 같은 인문학, 그리고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가지고 판단한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은 특히 인문학이 턱없이 약하다. 이 분야에서는 도무지 세계에 내놓을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인이 그동안 인문학을 백안시했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인문학에 대해 아주 기이한 태도를 보였다. 인문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취직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죽이기 바빴던 것에 반해 사회에서는 인문학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니 말이다. 아니, 대학에서 인문학이 죽어 가는데 어떻게 사회에서 인문학이 살아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이 인문문화적으로 미천한 나라로 비칠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혹시 외국의 지성들이 한국인을 두고 ‘당신들은 노래와 춤, 드라마밖에 잘하는 것이 없지 않으냐’고 힐문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때 한국인은 적절하게 응대하지 못하지 않을까. 그건 자국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단한 인문문화를 갖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자인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과 한국인의 대단한 기록 정신을 보여 주는 ‘고려대장경’과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과 같은 세계사적인 서책을 갖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니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이 유물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른다. 내가 거론하고자 하는 것은 유물 자체가 아니라 유물들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경위다. 이것들은 종이 아니면 나무로 돼 있어 불에 취약하다. 따라서 전란이 나면 다 없어지기 마련인데 이것들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것은 우리에게 문화 영웅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해례본’을 구입해 끝까지 지킨 전형필, 6·25 때 미군의 해인사 폭격 명령에 목숨을 걸고 ‘대장경’을 지킨 김영환 대령, 임진왜란 때 단 한 질밖에 남지 않은 ‘실록’을 사수한 손의와 안흥록, ‘직지’를 발견하고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것을 사력을 다해 증명한 박병선이 바로 우리의 영웅이다. 나는 최근에 박병선을 중심으로 이분들에 관한 책을 냈다. 그런데 이 책을 쓰면서 크게 놀랐던 것은 이분들에 관한 연구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 분개하며 어이가 없어 시쳇말로 ‘멘붕’이 됐다. 이 책에서 나는 박병선을 주로 다뤘는데 그가 ‘직지’(그리고 ‘조선왕조의궤’)를 발견하고 그것이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를 추적했다. 그런데 문서 자료가 별로 없어 박병선의 강연이나 인터뷰를 모아 쓸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분은 사정이 더 열악했다. 전문적인 연구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 ‘한국인들 정말 큰일 났구나. 이런 문화 영웅들을 이렇게 홀대하다니’ 하면서 자탄 어린 푸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자고로 조상을 돌보지 않는 민족은 흥할 수 없는데, 이분들은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영웅들 아닌가. 트로트의 임영웅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인에게 진정한 영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야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 ‘우리는 연예만 능한 민족이 아니라 높은 인문문화를 갖고 있다’고 외칠 수 있다.
  • 옥천 발길마다 ‘정종’ 한 모금의 시… 그 맛 꿈엔들 잊힐 리야

    옥천 발길마다 ‘정종’ 한 모금의 시… 그 맛 꿈엔들 잊힐 리야

    매일 역에서 기차에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를 싣는 시인이 있다. 비유가 아닌 실제로 그는 고향인 충북 옥천과 대전, 신탄진을 비롯해 경부선 라인 그 어디쯤을 오가며 일을 한다. 옥천에서 먼저 살다 간 선배 정지용의 시를 사랑해 첫 시집의 권두시에 정지용의 동시 ‘딸레’를 오마주한 시인 송진권의 이야기다.그에게 ‘옥천’과 ‘정지용’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직업 정신이 투철한 대답이 돌아왔다. 경부선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유달리 산세가 뾰족하고 험난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 옥천을 중심으로 경부선 라인을 따라서 이원, 지탄, 삼계, 영동, 황간, 추풍령에서 나물을 뜯은 어미들이 대전으로 가서 그것을 팔아 돈을 삼은 고장이라는 대답이었다. 철로에서 내려와 차를 타고 읍내를 벗어나면 어디에서나 금강의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는 지리적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정지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척 많아서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그의 시집의 권두시 ‘딸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의 말들 사이로 언뜻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는 황소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어린 누이가 성근 별빛 사이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산나물 잔뜩 짊어진 고향의 어미들을 싣는 기차의 마음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사는 곳, 아니 그보다 더 먼저 ‘흙에서 자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향수에 젖은 시인이 살던 곳, 그곳이 바로 옥천이다. 정지용은 1902년 6월 20일 옥천에서 태어났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7세인 1918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정지용은 매우 우수한 학업 성적과 빼어난 시 창작 재능 덕분에 주변 학생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때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이태준과 학교 선후배로 교류했다.휘문고보를 졸업한 정지용은 일본의 도시샤대 영문과에 진학한다. 휘문고보에서 장학금을 지원해 준 덕분이었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휘문고보의 교사로 재직하며 그 인연을 이어 간다. 정지용이 고향을 떠나던 시기는 일제의 억압으로 농촌 붕괴가 시작되던 때와 맞물린다. 1918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되면서 농민들은 농토를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경부선은 일제의 조선 착취의 혈맥이 됐으며,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의 빈민으로 스미거나 연해주로 가 버렸다. 고향을 잃은 설움은 곧 나라를 잃은 설움으로 병치돼 시인 정지용의 가슴에 맺혀 있었을 터.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는 이른바 휘문사태의 주동자가 돼 무기정학에 처해졌으나 곧 다시 입교됐다. 이해에 자신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소설인 ‘삼인’을 ‘서광’지에 발표한다. 고향인 옥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것이다. 그 이후에 쓴 시인 ‘향수’는 정지용의 지극한 고향 사랑을 보여 준다. 정지용은 구인회를 창립했으며 일제 탄압에 저항하는 의미로 모더니즘 시를 썼다. 1941년엔 시집 ‘백록담’을 출간했다. ‘백록담’은 후에 청록파 시인들(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에게 영향을 줬다고 알려지는데, 실제로 정지용이 그들을 문단에 데뷔시킨 주인공이다. 정지용은 계속해서 문예지 심사를 통해 윤동주와 이상을 발굴하기도 했다. 매우 활발하게 시작 활동을 하던 중 일제와 미국이 전쟁을 시작한 1942년에 절필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1945년 8·15 광복 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의 교수로 재직했다. 이때 워낙에 ‘정종’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정지용이라는 이름을 빠르게 발음하면 ‘정종’이 돼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이 ‘정종’이 됐다고 한다.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문학분과 위원장이 됐으나 본의가 아니었던 터라 그에 관한 활동은 하지 않았다. 좌우 대립이 더욱 극렬해진 1950년 이후에는 월북을 선택한 동료 문인들과는 달리 전향을 선택해 보도연맹에 가입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정지용은 정치보위부로 끌려간다. 이후에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됐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됐다. 납북인가, 월북인가 하는 행로의 문제와 그의 사인을 두고 여러 설들이 분분하지만 그중에 가장 믿음직한 말은 ‘납북되던 중 소요산 부근에서 폭격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것이다. 다만 2001년에 북한에 있던 셋째 아들과 남한에 있던 첫째 아들의 상봉으로 북한에서 통용되는 정지용의 사인이 전해졌다. 북으로 가던 중에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정지용은 9월 25일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따로 확인한 바 없다.남한에 있던 가족들의 활발한 정지용 복권 활동으로 1988년 해금 조치된 이후에 ‘지용회’가 세워졌고, 옥천에 정지용 문학관이 개관했다. 그 이전까지는 친북인사로 규정되는 바람에 교과서에 시가 실리지 못했으며, 시인의 이름을 적는 난에 ‘정X용’, 혹은 이름이 새카맣게 지워지거나 무명씨로 각인된 채 독자들에게 ‘비밀스럽게’ 읽혔다. 매우 탁월한 시어를 구사해 고향과 조국 그리고 모더니즘을 한데로 아울렀다는 평을 받는 정지용의 시들은 독특한 줄글식 산문시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시인의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가 아닌 대상 혹은 배경 묘사들이 탁월했다는 평을 받는다.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답게 이미지를 중시했으며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주로 썼다. 그리하여 정지용은 전통적인 순수시와 모더니즘 시를 병합해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문학평론가 최동호)했다고 평가받는다.정지용의 동시 ‘딸레’에 송 시인이 살을 붙이고 구전과 판소리의 음률에 맞춰 재해석한 시 ‘딸레’다. 송 시인의 말에 따르면 정지용의 많은 시편이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이어서 고향에 대한 것들은 초기 시 몇 편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지용의 동시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자랐던 정서가 듬뿍 담겨 있다고 했다. 당시의 입말과 풍습,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그리움 같은 것들에 대해. 어쩌면 옥천은 정지용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그리움이 금강처럼 흐르고 있는 곳이 아닐까. 단순히 경부선 철로에 놓인 수많은 역 중의 하나가 아닌, 누군가의 사무친 고향인 것이다. ‘향수’의 시이자 노래의 한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일까.기차 위의 시인 송진권에게 정지용의 시들을 배경으로 한 옥천의 시(詩) 지도를 그려 주십사 부탁을 해 봤다. 그는 ‘향수’는 옥천의 어지간한 식당마다 액자와 벽화 등에 쓰여 있고, 정지용의 시비 또한 옥천역과 공원 등지에 놓여 있으니 그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라고 권했다. 또한 옥천과 그 주변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유하고 있어 그것을 찾아보는 간이역 투어도 좋으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친 그가 며칠 후에 보내온 옥천의 시 지도는 이와 같았다. 이것으로 이번 호를 갈음하고자 한다. 이번 가을 여행의 목적지는 옥천과 금강 곁의 정지용 문학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송진권 시인이 추천하는 옥천의 詩와 간이역 투어 옥천역(지용 시비, 오래된 플라타너스)→이원역(구미, 구장터의 묘목시장들)→지탄역(금강변에 세워진 작은 역.)→심천역(근대문화유산, 1980년대풍의 시가지)→각계역(창고 같은 건물 한 채가 전부. 주민들이 희사해 만든 역), 영동, 황간, 추풍령역.
  • 130년 전 모습 찾은 ‘향원정’…’청운의 꿈’ 품은 고종의 시름 묻어나

    130년 전 모습 찾은 ‘향원정’…’청운의 꿈’ 품은 고종의 시름 묻어나

    조선 왕조 법궁인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자리 잡은 ‘향원정’(香遠亭)은 향원지(香遠池)로 불리는 연못 한가운데 지은 육각 2층 정자다. ‘향원’(香遠)은 북송 시대 중국 학자 주돈(1017∼1073)이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따온 말로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이다. 26대 임금 고종(재위 1863~1907)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건청궁(乾淸宮)을 지을 당시 왕과 왕비의 휴식 공간으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향원정으로 향하는 다리 ‘취향교’(醉香橋)가 파괴되고 건물이 기울어지는 등 역사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야 했다.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3년간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5일 공개한 향원정 일대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이 심화하던 19세기 말 향원정에서 시름을 달랜 고종과 민비(명성황후) 당시의 모습을 충실하게 재현했다.●건물 기울어 3년간 공사…말뚝 799개 박고 온돌도 찾아 2012년 보물로 지정된 향원정 보수 공사는 건물이 전반적으로 기울고 목재 접합부와 기단 등이 헐거워졌다는 진단에 따라 시작됐다. 2017년 5월 설계 용역을 추진하면서 향원지 주변에 가림막을 설치했고, 2018년 11월 작업에 들어가 3년 만에 마무리됐다.궁능유적본부는 향원정을 완전히 해체한 뒤 다시 조립했고, 섬 둘레에 있는 석축(石築)을 정비했다. 나무 부재는 10∼20%를 교체했으며, 건물 하부 지반을 보강하고자 말뚝 799개를 박았다. 궁능유적본부는 발굴조사를 통해 1층에 있던 도넛 형 온돌도 찾아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향원정 구들의 구체적인 형태와 연도(煙道·연기가 나가는 통로)의 위치 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온돌은 보통 밭고랑이나 부챗살 모양으로 고래(구들 밑으로 난 연기가 통하는 길)를 설치하는데, 향원정은 가장자리를 따라 고래를 둬 난방이 바깥쪽을 중심으로 이뤄졌음이 드러났다. 또 현존하는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활용해 향원지 외부와 연결된 낮은 굴뚝을 복원했고,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연못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는 모습을 확인했다.●취향교는 흰색 목제다리로 본래 위치로 옮겨 취향교는 옛 사진에 나타난 모습을 되찾았다. 이전에는 돌기둥에 평평한 나무를 얹은 평평한 다리였다면, 복원을 통해 아치형 나무다리로 바꿨다. 흰색으로 칠한 나무는 얼핏 보면 철제 구조물 같아 보인다. 이에 대해 정현정 궁능유적본부 주무관은 “흰색 나무가 낯설어 보일 수 있으나, 고종 때도 건축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다양한 방식의 재료들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길이 32m, 폭 165㎝의 다리인 취향교는 원래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건너갈 수 있게 향원정 북쪽에 세워졌다. 이후 1953년 재건립 됐지만, 관람 편의를 위해 향원정 북쪽의 본래 위치가 아닌 남쪽에 지었었다. 이번 공사를 통해 다리 위치를 북쪽으로 옮기면서 68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향원정 건립시기는 1885년으로 추정 이번 복원 공사를 통해 향원정과 취향교의 건립 시기도 알게 됐다. 1887년(고종 24년) 승정원일기에 ‘향원정’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면서 건립 연대를 1887년 이전으로 추정해왔는데, 목재 연륜 연대 조사를 통해 1881년과 1884년 두 차례에 걸쳐 벌채된 목재가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향원정 건립시기를 1885년으로 추정하고 있다.궁능유적본부는 향원정의 6개 기둥 중 동남쪽 방향 주춧돌을 조사한 결과 주춧돌을 받치는 초반석의 균열로 가라앉는다는 것을 확인해 건물 기울어짐의 근본원인을 찾아냈다. 정 주무관은 “호수 위에 만든 인공섬 위쪽까지 지반을 보강하는 장치가 부족했던 탓”이라며 “이번에는 야구방망이보다 조금 더 두꺼운 정도의 나무 말뚝 799개를 박아 지반을 다졌다”고 설명했다. 6개 기둥 아래쪽에는 6m짜리 긴 말뚝 150개를 섬 바닥까지 닿게 박아넣고, 건물 주위에는 1.8m 혹은 2.7m짜리 짧은 말뚝을 649개 꽂아 토양이 조금 더 빡빡해지고 단단해지도록 했다.●푸른색 능화지로 1층 천장 도배…‘청운의 꿈’ 상징 향원지 일대의 옛 사진을 분석해 훼손된 절병통(지붕 중심에 세우는 항아리 모양의 장식기와), 창호, 능화지, 외부 난간대 등도 복원했다. 일제 시대에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친 향원정 내부의 지지목을 떼어낸 자리에선 향원정 건립 당시 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청의 원형이 발견됐다. 2층 천장에는 봉황 무늬가 가득하다.건립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내부에 발라져 있던 겹겹의 창호지 맨 아래에서는 왕실 건물에만 사용되는 ‘능화지’(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양을 밀랍으로 눌러 새긴 한지)를 볼 수 있다. 강성찬 중요무형문화재 배첩장(전통 도배, 장판 등 기술 보유 장인) 이수자가 찍어낸 능화지 수백 장으로 천장과 기둥 등 벽지를 발랐다.강 이수자는 “능화지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것으로 밀랍이 함유돼 있어 벌레가 오지 않고, 항산화·항습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여러 문화재 복원 현장을 가봤지만 향원정은 고증을 많이 한 뒤 전통방식으로 오롯이 복원해 의미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천장을 바른 푸른색 능화지에 대해 강 이수자는 “옛 양반가에서는 청운(靑雲)의 꿈을 품는다는 것을 중시해 자제들의 방에 종종 푸른색 능화지를 사용했었다”면서 “벽에 붙인 흰색 능화지가 문양을 내기는 더 힘들다”고 덧붙였다.●내년 4월부터 내부 특별관람 형태로 공개 궁능유적본부는 건립 당시에 칠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청의 안료를 추가로 조사하고, 내년 4월부터 내부를 특별관람 형태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향원지 수위는 30∼40㎝ 정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내년 봄이 지나면 홍련과 백련이 피어 화려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영국군 무명용사 3인, 70년 만에 전우 곁으로

    영국군 무명용사 3인, 70년 만에 전우 곁으로

    유엔참전용사 국내 발굴 후 안장은 첫 사례2016~2017년 파주 인근 부분유해 발굴6·25전쟁에서 전사한 영국군 무명용사 3구의 유해가 70년 만에 안장된다. 비록 신원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유엔참전용사의 유해가 국내에서 발굴된 뒤 안장된 건 처음이다. 국가보훈처는 오는 11일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맞아 무명용사 3구의 유해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한다고 4일 밝혔다. 이번에 안장되는 3구는 2016~2017년 경기 파주 마지리와 마산리 인근에서 부분유해로 각각 발굴됐다. 한미 공동감식 결과, 이들은 영국군 제29여단 글로스터대대 소속으로 1951년 4월 발생한 설마리전투와 파평산전투에서 혈전을 벌이다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설마리전투는 1951년 4월 22∼25일 설마리 계곡에서 글로스터대대 800여명이 중국군 3개 사단 4만 2000명의 남하를 막으려 사력을 다한 전투다. 이들은 유엔기념공원 영국군 묘역에 묻혀 꼭 70년 만에 전우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안장식은 ‘부산을 향하여’라는 표어 아래 유엔사령부에 근무하는 영국군 장병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해 운구를 시작으로 하관, 허토, 헌화, 묵념 순으로 진행한다. 안장식 이후 유엔군 전사·실종자 4만 896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명비 앞에서 국제 추모식이 이어진다. 오전 11시 정각에 맞춰 부산시 전역에 추모 사이렌과 함께 1분간 묵념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추모식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감사를 담은 영상 메시지를 밝힐 예정이다. 추모식을 처음 제안한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씨가 ‘전우에게 바치는 시’를 낭독하고,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유엔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억하는 추모 비행을 펼친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다.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사령부가 조성했다. 현재 11개국 2311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2015년 5월 프랑스 참전용사 레몽 베르나르씨를 시작으로 6·25전쟁 참전 후 생존해 귀국했다가 숨을 거둔 뒤 유지에 따라 이곳으로 돌아와 묻힌 참전용사 13명도 있다.
  • 새벽 ‘비밀의 정원’ 안개랑 속닥속닥… 70만 자작나무랑 도란도란

    새벽 ‘비밀의 정원’ 안개랑 속닥속닥… 70만 자작나무랑 도란도란

    불가피하게 오대산 일대를 ‘패싱’한 단풍 로드는 한계령에서 ‘U’ 자로 꺾여 인제 땅으로 접어든다. 이맘때 인제의 ‘핫플’은 갑둔리 ‘비밀의 정원’이다. 산자락이 감싸고 있는 분지 위에 침엽수와 활엽수, 동글동글한 관목들이 어울려 자라고 있다. 숲 가운데는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S라인’의 흙길도 있다.‘비밀의 정원’은 들어갈 수 없다. 과학화 전투 훈련장이라 출입이 매우 엄격하게 통제된다. 갈 수 없는 곳이라 더 비밀스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비밀의 정원’은 가을과 겨울이 ‘성수기’다.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서리꽃 핀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이 일대는 새벽에 찾아야 비밀스런 느낌이 난다. 새벽에 핀 안개가 ‘비밀의 정원’을 포근하게 감싼 모습이 무척 서정적이다. 동틀 무렵이면 안개가 해의 붉은 기운을 여기저기로 실어나른다. 지난밤, 동글동글한 관목 위로 서리라도 내렸다면 풍경은 한결 더 몽환적으로 변한다. 다만 함정도 있다. 사진 촬영 명소라는 점이다. 새벽녘이면 이 일대가 사진작가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조성한 목재 데크는 발 디딜 공간조차 없이 빼곡하다. ‘성수기’엔 매일 새벽 이런 풍경이 연출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증샷 찍겠다고 묵직한 카메라 장비 사이로 파고들기란 쉽지 않다. 일반 관광객을 위해 카메라 장비 반입을 제한하는 관람대를 따로 조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비밀스런 시간은 무척 짧다. 해가 떠오르고 안개가 사라지면 사진작가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풍경 역시 다소 김빠진 모습으로 변한다. ‘골든타임’을 지나 찾아온 관광객들도 대부분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서기 마련이다. 갑둔리 비밀의 정원은 역시 새벽 풍경이 ‘갑’이다. 갑둔리 인근에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 있다. 새하얀 수피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다. 주차장에서 자작나무숲까지 1시간 30분 정도 올라야 하지만 길이 잘 닦여 많이 힘들지는 않다. 숲에 들면 70여만 그루에 달하는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낸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훑고 지날 때면 나뭇잎 비비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속삭이는’ 숲이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8㎞ 정도 되짚어 나오면 인제38대교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나라를 둘로 갈라 놓은 ‘38선’ 상에 놓인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38공원이다. 다양한 조각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1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 크지 않은 공원이지만 당시의 아픔을 되새기며 쉬어 가도 좋겠다. 이웃한 홍천에선 예술로 가득한 가을을 캐낼 수 있다. 38개국의 작가들이 참여한 ‘2021국제트리엔날레’ 행사가 홍천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폐막일(7일)이 바짝 다가오긴 했지만, 설치미술 작품 등 전시작 상당수가 폐막 이후에도 그대로 남기 때문에 둘러보고 사진 찍는 것엔 별문제가 없다.행사 장소는 읍내 홍천미술관과 중앙시장, 결운리의 옛 탄약정비공장, 와동리의 와동분교 등이다. 각각의 전시 장소는 저마다 테마와 성격이 다르다. 모두 둘러볼 여건이 안 된다면 거리가 가까운 옛 탄약정비공장과 와동분교는 꼭 묶어서 돌아보길 권한다. 탄약정비공장은 옛 제11기계화보병사단이 실제 사용했던 공간이다. ‘재생’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1973년 준공 당시부터 놓여 있던 폭발 방호벽, 컨베이어벨트와 탄약도장용 회전기계 등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했다. 16m 높이의 로켓 모양 키네틱 아트, 임옥상 작가의 ‘평화의 나무’ 등 공장 안팎에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와동분교는 생태 위주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으로도 쓰이게 될 ‘건축형 카페 파빌리온’, 여러 미술 장르가 맞물린 에코 아트 ‘식물 파빌리온’ 등이 전시 중이다. 두 동의 옛 교실에는 회화, 영상, 설치 등 국내외 작가들의 생태미술 작품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입장료 5000원을 내면 모든 전시 공간을 다 둘러볼 수 있다. 게다가 5000원은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준다. 홍천 중앙시장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다.
  • “‘한미 주적 아니다’ 김정은 발언, 북한군 위상 약화 보여준 것”

    “‘한미 주적 아니다’ 김정은 발언, 북한군 위상 약화 보여준 것”

    국가안보전략연 ‘北 주적개념의 변화 배경과 전망’ 6·25세대 지나고 군 구성원 변화 “3만여명 탈북…南, 동경의 대상” “핵, 절대무기 아닌 정치적 수단”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한미가 주적(主敵)이 아니라고 한 발언은 북한군의 위상 변화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세대 교체로 북한 내부에서도 이제는 한미에 적대감을 가진 세대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김정은 집권 이후 체제의 중심이 군에서 당으로 이동하면서 군사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뀐 것이다.고재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일 발표한 ‘북한 주적개념의 변화 배경과 전망’ 보고서에서 “북한군의 위상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지 않았더라면 주적개념의 변화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주적 개념 변화의 중요한 배경으로 북한군의 위상 변화를 꼽았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11일 ‘국방발전전람회’ 개막 기념연설에서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에 대해 주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한미연합훈련을 북침 연습으로 규정하고 위협이라고 주장해 왔던 만큼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군의 ‘실질적인 주적 개념’을 수정했다는 의미다. 그 배경으로 보고서는 북한사회 및 북한군을 구성하는 세대가 변했다는 점을 꼽으며 “북한 현실에서 미국이나 한국을 주적으로 삼는 것이 비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50년 6·25전쟁 때 한국군과 미군을 적으로 삼아 싸웠던 세대가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뿐더러 지난해 기준 남한으로 간 3만 3000여명의 탈북민 수는 북한의 현 세대가 남한을 주적이 아닌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이 ‘주적’ 개념 수정과 함께 “평화를 위한 그 어떤 대외적인 우리의 노력이 절대로 자위권 포기는 아니다”라고 한 것은 오히려 한미 협상에 우려를 가진 특정 세력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며 “유화적 제스처 수준을 넘어 한미와의 협상을 희구하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군을 앞세워 정치를 했던 김정일 시대와 달리 군이 약화하고 당이 군을 통제하는 김정은 체제에서는 “핵을 정치협상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당 관료가 핵을 절대무기로 인식하는 군부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고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극단적인 ‘벼랑끝 전술’ 대신 대남 유화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으며, 북측이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이중기준 및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더라도 한미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 대박 터진 중국 애국영화 ‘장진호’ 수입 1조 돌파…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 [이슈픽]

    대박 터진 중국 애국영화 ‘장진호’ 수입 1조 돌파…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 [이슈픽]

    한국전쟁 미화 中활약상…1억 1600만 관람투자 대비 5배 규모…제작비 2300억 최대속편 ‘장진호: 수문교’도 촬영 마치고 개봉수순항미원조 영화 ‘압록강을 건너다’도 곧 개봉“항미원조 영화, 애국심 고취·내부 결집 강화”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한국전쟁(6·25전쟁)에서 북한을 도운 중국의 활약상을 그린 중국의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가 올해 글로벌 박스오피스 수입 1위에 올랐다고 1일 신경보가 보도했다. 장진호는 투자 대비 5배의 수익인 1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 흥행 수입도 바라보고 있다. 미중 신냉전 기류 속에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다룬 영화를 쏟아내고 있다. 항미원조 전쟁은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뜻으로 중국이 자국군이 참전한 한국전쟁을 일컫는 말이다. “장진호 대대적 승리, 영웅 정신” 신경보에 따르면 장진호 영화관 입장 수입이 이날 55억 위안(약 1조원)을 돌파했다. 중국 영화 ‘니하오, 리환잉’이 거둔 올해 최고 글로벌 박스 오피스 수입 기록(54억 1300만 위안)을 넘어선 규모다. 중국에선 장진호가 2017년 개봉된 ‘특수부대 전랑(戰狼) 2’(56억 9000만 위안·2017년 개봉)을 제치고 중국 역대 흥행 영화 1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지금까지 장진호를 본 관람객이 1억 1600만명에 이른다. 중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13억 위안·약 2300억원)가 투입된 작품이다. 미군과 중공군이 격렬하게 싸운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지난 국경절 연휴 직전인 지난 9월 30일 개봉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미군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 중국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에 포위됐다가 17일 만에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전투로, 6·25전쟁 중 미군과 중국군 간의 최대 격전으로 꼽힌다. 중국은 장진호 전투를 대대적인 승리라고 내세운다. 앞서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영화 장진호에 대해 “중국 병사들의 희생과 영웅 정신을 그렸다”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국을 퇴각시킨 인민지원군이 얼마나 용감했는지 보여준다”고 전했었다. 중국은 미중 대립 구도 속에 항미원조 정신을 부각해 애국심을 고취하고 내부를 결집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영화의 속편 ‘장진호: 수문교’도 대부분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중공군이 신흥리와 하갈우리의 전투 이후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이다. 영화 포스터는 중공군 병사들이 장진호 저수지를 향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장진호에서 형제로 출연했던 우징과 이양첸시를 비롯한 주요 배우들이 그대로 나온다. 장진호와 마찬가지로 ‘패왕별희’의 천카이거와 홍콩 감독 서극, 단테 람 등 3명이 공동 연출했다.중국 공산당 “한국전쟁 참전은역사적 결단에 따른 위대한 승리”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영화 ‘압록강을 건너다’도 곧 개봉할 예정이다. 이 영화는 중국 관영 CCTV가 지난해 연말부터 방영했던 동명의 40부작 드라마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중국에서는 항미원조 전쟁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가 많지 않았으나 미국 트럼프 정부 이후 미·중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하자 ‘금강천’, ‘장진호’ 등 관련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반미 정서와 애국주의를 고취시키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항미원조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당시 금강산의 금강천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영화 ‘금강천’이 11억 위안 넘는 입장 수입을 벌어들였다. 주북한 중국대사 장진호 전사자 묘지에 헌화 앞서 주북한 중국대사와 대사관 관계자들은 장진호 전투 전사자 묘지를 찾아 헌화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관영 환구시보에 따르면 “리진쥔(李進軍) 주북한 중국 대사와 대사관 관계자들이 23일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읍을 찾아 인민지원군(6·25 참전 중국군에 대한 중국 측 호칭) 열사릉에 헌화했다”고 전했다. 이 행사는 중국군 6·25 전쟁 참전 71주년 기념일(10월25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최근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을 맞아 당의 역사와 가치관을 담아 펴낸 문건에서 한국전쟁 참전을 “역사적 결단에 따른 위대한 승리”로 규정했다. 공산당은 “미 제국주의의 난폭한 도발에 맞서 전쟁으로 전쟁을 멈추고, 무력으로 전쟁을 멈춤으로써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를 거뒀다”면서 “패권주의가 민심을 얻을 수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 백마고지서 26점 유해 발굴...음료병 활용한 화염병도

    백마고지서 26점 유해 발굴...음료병 활용한 화염병도

    강원 철원군 DMZ 백마고지 유해발굴화살머리고지에 비해 진지 깊게 파여26점 모두 부분유해, 참혹한 상황 반영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 일대에서 26점의 유해와 5132점의 전사자 유품을 발굴했다고 국방부는 28일 밝혔다. 발굴된 유해들은 현장감식 결과, 다수가 국군 전사자 유해로 추정됐다. 정확한 신원은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에서 정밀감식과 DNA 분석 등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강원 철원의 무명 395고지로 불렸던 백마고지는 6·25전쟁 당시 중부전선의 중요 전투지였다. 국군 9사단은 3배가 넘는 중국군에 맞서 열흘 동안 12차례의 공격와 방어전투를 수행했고 많은 전사자들이 발생했다. 유해발굴을 통해 백마고지 지역 개인호, 교통호 등의 진지들이 화살머리고지 지역에 비해 2배 이상 깊은 것으로 확인됐다. 화살머리고지 지역의 경우 최대 60㎝의 깊이에서 유해, 유품들이 발굴된 반면, 백마고지에서는 약 1.5m 깊이에서 발굴됐다. 백마고지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과정에서 기존 진지보다 더 깊게 파고 들어간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현재 수습된 26점의 유해는 모두 부분유해 형태로 당시 다량의 포탄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유품 다수는 우리 국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대부분은 탄약류(4980여점, 97%)다. 특이 유품으로 음료병을 활용한 화염병도 발굴됐다. 국방부는 다음달 중순 9명의 백마고지 전투 참전용사들 대상으로 현장 증언을 청취한다는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남북공동유해발굴에 북측이 호응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언제든 남북공동유해발굴을 개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사]

    ■서울신문 ◇미디어전략실△실장 이경숙 ◇독자서비스국△국장 한준규 ◇논설위원실△논설위원 김성수 ◇편집국△수석부국장 이순녀△부국장 김은정 김상연△부국장 겸 디지털미디어센터장 김태균△부국장 겸 산업부장 박상숙△부국장 겸 편집1부장 김진성△정치부장 안동환△국제부장 주현진△경제부장 김미경△사회정책부장 최여경△사회부장 이제훈△사회2부장 이창구△문화부장 홍지민△체육부장 김경두△사진부 전문기자 안주영△사진부장 도준석△비주얼뉴스부 선임기자 길종만△비주얼뉴스부장 이다현△나우뉴스부장 유영규△웹제작부 기술위원 임천택△웹제작부장 권성안△디지털비즈니스부장 정영진 ■국방부 ◇과장급△6·25 비정규군 보상지원단(파견) 오춘화 ■고용노동부 ◇개방형 직위 임용△산업안전보건정책관 김철희 ■국토교통부 ◇과장급 전보△도시경제과장 신광호△건축정책과장 이진철△부동산평가과장 이랑△항공교통과장 정창석△수도권광역급행철도과장 안재혁 ■해양수산부 ◇과장·팀장급 전보△해사산업기술과장 이창용△인천지방해양수산청 항만정비과장 지윤식△중앙해양안전심판원 조사관 양진영△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 수석조사관 남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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