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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때 전사 중국군 유해 20구 28일 인도

    6·25 때 전사 중국군 유해 20구 28일 인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팀원들이 26일 인천 계양구 17사단에 마련된 ‘중국군 유해 임시 안치소’에서 6·25전쟁 중 전사한 중국군 유해를 입관하고 있다. 이날 입관된 유해 20구는 오는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에 인도될 예정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시민의 정치 참여가 왜 중요할까”… 초등 교과서에 ‘촛불집회’ 실린다

    “시민의 정치 참여가 왜 중요할까”… 초등 교과서에 ‘촛불집회’ 실린다

    박종철·이한열 사건도 추가 내년부터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공부할 사회 교과서에 촛불집회 모습이 실릴 전망이다.교육부는 26일 새로 편찬 중인 초등 사회 6-1 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을 공개했다. 현장 검토본은 확정된 교과서를 발행하기 전 학교 현장 등에서 검토할 목적으로 펴낸 책을 말한다.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 발전’ 관련 서술 분량이 10쪽에서 12쪽으로 일부 증가하는 과정에서 대학생 박종철 사망 사건이나 이한열 사망 이후의 추모 행렬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됐고, 평화적인 공동체 문제 해결과 시민 참여의 방법으로 최근의 촛불집회 사례가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현장 검토본은 2015년 개정 고시 이후 편찬기관 선정을 거쳐 2016년 8월부터 10개월간 집필됐고, 지난해 말까지 심의를 거쳤다. 현장 평가 등을 거쳐 수정·감수된 뒤 올해 12월에는 새 사회 교과서의 최종본이 나온다. 새 교과서는 단원 일부가 재배치되며 6·25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과 경제의 변화’ 주제를 2개 대단원으로 나눠 서술한다. 자유민주주의 부분을 보면 2009 개정본에서 4·19 혁명(3쪽), 5·16 군사정변(4쪽), 5·18 민주화운동(2쪽), 전두환 정부의 등장과 6월 민주항쟁(1쪽)으로 구성됐던 내용이 이번 2015 개정본에서는 4·19 혁명(6쪽), 5·16 군사정변과 5·18 민주화운동(3쪽). 6월 민주항쟁과 6·29 선언 등의 민주화 노력(3쪽)으로 바뀐다. 특히 현장 검토본에서는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 사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을까요?’, ‘시민의 정치 참여 활동이 우리 사회 발전에 왜 중요할까요?’, ‘일상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올바른 태도가 왜 필요할까요?’라는 학습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또 “1987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경찰에 끌려갔던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관련 사진을 넣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공동체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의 시민 참여에 대해 공부해보자는 취지에서 촛불집회 사진을 실었다”면서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질 높은 사회 교과서를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서울포토] 6·25전쟁 중국군 유해 입관

    [서울포토] 6·25전쟁 중국군 유해 입관

    6.25 전쟁 중 전사한 중국군 유해 입관식이 26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 17사단에 마련된 ‘중국군 유해 임시 안치소’에서 열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팀원들이 주요 격전지에서 발굴된 유해를 입관하고 있다. 이날 입관된 유해 20구는 오는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에 인도될 예정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서울포토] 6·25전쟁 중국군 유해 중국 송환 준비

    [서울포토] 6·25전쟁 중국군 유해 중국 송환 준비

    6.25 전쟁 중 전사한 중국군 유해 입관식이 26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 17사단에 마련된 ‘중국군 유해 임시 안치소’에서 열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팀원들이 주요 격전지에서 발굴된 유해를 입관하고 있다. 이날 입관된 유해 20구는 오는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에 인도될 예정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李 총리 “확실한 안보 없이 평화 없다… 서해 굳건히 지켜야”

    李 총리 “확실한 안보 없이 평화 없다… 서해 굳건히 지켜야”

    “연평해전·천안함 우리측 큰 희생 남겨…남북대화 통해 비핵화·평화 정착 기대”조국을 지키려다가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제3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이 23일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이날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이낙연 총리는 “한반도에 평화가 뿌리내리면 서해 북방한계선 남북 수역은 남북 교류협력과 민족 공동번영의 보고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면서 “우리는 서해를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서해는 6·25 전쟁 이후 북한이 가장 자주, 가장 크게 도발해 온 곳”이라면서 “평화를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음에도 서해의 긴장을 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1953년 정전협정도,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도, 1998년 시작된 햇볕정책과 2000년·2007년 남북 정상회담도 서해의 평화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연평해전은 우리가 승리했지만 큰 희생을 남겼다”면서 “특히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2010년 이맘때 천안함 46명의 장병이 순식간에 바다로 잠겼다. 그들을 찾으러 간 한주호 준위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천안함 피격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그해 11월에는 북한이 연평도 민간인들에 포탄을 쏟아부어 아군의 희생이 생겼다”고 언급했다. 최근 남북 간 대화 기류가 형성되는 것을 두고 이 총리는 “최고위급 연쇄 대화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끌어내기를 바란다”면서 “다시는 무력충돌도, 통절한 희생도 없는 평화의 서해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희망만으로 국가안보를 느슨하게 할 순 없다”면서 “우리는 변함없이 서해를 지켜야 하고, 또 그럴 것이다. 확실한 안보 없이는 평화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정부는 잘 알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참전용사 증언 듣는 유해발굴감식단

    참전용사 증언 듣는 유해발굴감식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2일 경남 창원 리베라 컨벤션에서 개최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설명회 및 참전용사 증언 청취회’에서 6·25 참전용사에게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국방부 제공
  • 청와대 “남북종전선언, 순차적으로 볼 때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청와대 “남북종전선언, 순차적으로 볼 때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청와대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북미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 ‘6·25전쟁의 종전’을 선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순차적으로 보면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라고 여지를 뒀다.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일련의 과정들에 따른 정치권과 언론 등의) 해석일뿐”이라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21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 참석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은 회담 자체가 세계사적인 일”이라고 자평한 뒤 “진전상황에 따라서는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회담들과 앞으로 이어질 회담들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 핵과 평화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아울러 문 대통령이 시사한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선 “북미관계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남·북·미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고 하면 경제적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고 한미는 그 부분에 대한 개입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모든 부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남·북·미가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북·미 3국 정상회담 가능”

    “남·북·미 3국 정상회담 가능”

    “남북 정상회담 합의 국회 비준 정권 바뀌더라도 영속적 추진” 靑, 29일 남북 고위급회담 제안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진전 상황에 따라서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국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를 논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지난 두 차례(2000·2007년)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사항을 다 담아 국회 비준을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 관계를 영속적으로 이어 가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이같이 말한 뒤 “이번 회담들과 앞으로 이어질 회담들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 핵과 평화 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서 북·미 정상회담은 회담 자체가 세계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장소에 따라 더욱 극적인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극적 장면이 연출될 수 있는 장소로는 판문점이 우선 꼽힌다. 판문점은 1953년 6·25전쟁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정전협정’이 북·미 간에 체결된 상징적 장소다. 이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린다면 자연스럽게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3국 정상이 모여 종전 선언 등 ‘역사적 장면’을 연출하려면 의제 조율 등의 실무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별도로 날짜를 잡아 남·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좀더 무게가 실린다. 정상회담 합의문의 국회 비준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07년 10·4선언은 국민 지지를 받았고 세계가 극찬했으며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지지 결의가 나왔지만, 그 결과는 어땠는가”라며 “정상회담의 합의가 이행되려면 국가 재정도 투입되는 만큼 반드시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간섭하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와대는 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 대표단 등을 협의하기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을 오는 29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자고 이날 북측에 제안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서고 청와대, 국가정보원에서 1명씩 보낸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순직자 유자녀 위해 써달라” 90세 노병의 기부

    “순직자 유자녀 위해 써달라” 90세 노병의 기부

    6·25전쟁에 참전하는 등 해군과 평생을 함께해 온 해군 원로가 해군 전사자와 순직자 유자녀를 위해 써 달라며 거금을 쾌척했다. 예비역 해군 대령인 최영섭(왼쪽·90·해사 3기) 해양소년단 고문이 주인공이다. 해군은 19일 “최 고문이 ‘바다사랑 해군장학재단’에 3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최 고문은 이날 후배인 엄현성(오른쪽) 해군참모총장에게 기부금을 건네면서 “노병의 미의(微意·작은 성의)를 받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 고문은 백두산함 승조원으로 6·25전쟁 첫 번째 해전인 대한해협 해전에 참가해 병력 600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침투하던 북한 수송선을 격침하는 등 복무기간 중 혁혁한 공을 세웠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최 고문의 둘째 아들이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대한민국 1호 ‘환경 공시’ 출신… 숲 지킴이로 살어리랏다

    대한민국 1호 ‘환경 공시’ 출신… 숲 지킴이로 살어리랏다

    “어린 시절 소나무를 베러 몰래 선산에 들어온 나무꾼들을 감시하려고 온종일 산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렇게 ‘숲 전도사’가 된 것 같습니다.”세계숲보전협회 최신철(79) 상임회장은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협회 사무실에서 숲 보전을 위한 일과 한평생 인연을 맺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을 꺼냈다. 경남 사천의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고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선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땔감이 부족하던 시절이어서 당시 전국의 산은 불법 벌목으로 벌거숭이가 됐다. 남의 선산도 가릴 것 없이 아무 곳이나 무단으로 들어가 벌목해 가던 게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 시절 선산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산과 더불어 살던 운이 이날까지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공해 문제가 점차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는 미래에는 환경 문제가 큰 과제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당시 국내 대학에는 없던 환경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78년 국내 최초 환경담당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보건사회부 아래 있던 환경위생국이 1980년 환경청으로 승격했는데 당시 그는 일본의 환경법 등을 번역해 참고자료를 만드는 등 실무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1991년 환경에 관심이 많은 주변 사람들과 시민단체 사랑의녹색운동본부를 만들었다. 여러 민간 환경단체가 있었지만 정부나 기업의 후원 없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깨끗한 단체를 키워 보겠다는 뜻을 담았다. 그가 30년 가까이 환경운동에 힘을 쏟으며 가장 뿌듯했던 일은 2013년 세계 숲의 날이 생긴 일이다. 그는 2006년 유엔환경계획(UNEP)에 세계 숲의 날을 만들어 줄 것을 건의하는 등 지정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와 같은 사람들의 염원이 닿았는지 유엔은 매년 3월 21일을 세계 숲의 날로 지정했다. 그는 “유엔이 세계 숲의 날을 지정한 것은 지구의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열대우림이 매년 1500만㏊씩 사라지고 사막화가 계속되면서 해수면 상승과 생태계 교란 등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림청에 등록된 비영리단체인 세계숲보전협회는 21일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전국의 숲과 환경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6회 세계 숲의 날 기념행사를 연다. 국립산림과학원 김경민 박사가 ‘북한 황폐산림, 그리고 내일’이란 주제로 기념강연회도 진행한다. 평생 숲과 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그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 “미래에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벌거숭이산에 나무를 심는 일에 앞장서 푸르른 금수강산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글 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복권 이야기

    [그때의 사회면] 복권 이야기

    지난해 복권 총판매액은 4조 1538억 2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복권, 인쇄 복권, 전자 복권 판매액을 더한 금액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1947년 12월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라고 한다. 복권 발행으로 모은 경비 8만 달러로 선수단은 이듬해 제16회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후 6·25 전쟁 중이었던 1951년 7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애국복권이 발매됐다. 전쟁 이재민을 구호하려는 목적으로 부산 국제시장 등 판매소 10곳에서 발매했는데 팔기도 전에 군중이 몰려 “새치기 말라”고 소리치는 등 대혼잡을 빚었다. 이에 질서를 잡느라 교통순경까지 출동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951년 7월 12일자). 1차 애국복권은 4회에 걸쳐 발행됐다. 처음엔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복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 팔리지 않았다. 워낙 삶이 궁핍하던 때라 떨어지면 적은 돈이라도 날린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사행행위라는 부정적 인식이 존재했다. 복권 인기가 떨어지자 당국은 복권을 사자는 가두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부산극장에서 밴드와 무용수, 가수들을 불러 놓고 추첨 행사를 거창하게 열기도 했다. 복권 당첨자는 실명과 함께 사연이 신문에 소개됐다. 3회 당첨자는 7명의 가족을 거느린 30대 철공소 직원 박모씨였다. 1등 당첨금은 1000만원으로 복권값의 1만배였다. 지금 돈 가치로는 수천만원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서울로 환도한 뒤에는 1956년 2차로 애국복권을 발행했지만 역시 인기를 얻지 못했다. 복권 판매가 지지부진하자 당국은 공무원들 봉급에서 강제로 복권판매금을 떼는가 하면 동사무소로 복권 판매를 할당해 비난을 샀다. 게다가 복권 부정 사건도 발생했다. 발행 기관인 조흥은행 직원들이 복권 수만 장을 횡령한 것이다. 발매 부진과 부정 사건의 여파로 2차 애국복권은 1956년 말까지만 발행했다. 1959년 1월 단 한 차례 더 발매해 총 10회 발행됐다. 애국복권은 액면가 100환의 추첨식 말고도 200환의 개봉식과 100환의 피봉식도 발행됐다. 즉석복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는 극장복권이라고 있었다. 5·16 이후 군사정부가 탈세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극장 입장권을 복권화한 것인데 입장권의 절반을 추첨을 통해 복권 형식으로 운용한 것이다. 1970년대까지 극장복권은 남아 있었는데 극장 입장권을 사면 괄호 안에 복권이라고 쓰인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명실상부한 복권의 발행은 1969년 주택복권으로 재개됐다. 처음에 주택복권 한 장 가격은 100원이었고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그러나 주택복권 역시 판매가 부진해 발행액의 70%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다. 정부는 9회차부터 당첨금을 500만원으로 올려 판매를 늘려 나갔다. 사진은 여러 종류의 애국복권.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나태주의 풀꽃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태주의 풀꽃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사고를 크게 치면서 봄이 왔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일들이 드러나기도 했고 전혀 뜻밖의 일들이 터지기도 해서 평범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정신이 어찔어찔할 정도다. 이게 다 우리들의 과거 삶의 찌꺼기들이다. 굳이 양성평등이라든지 여성인권까지 들먹일 일도 없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좀더 충분했으면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다. ‘나’만 극대화하고 ‘너’를 극소화한 탓이다. 애당초 생명에 대한 소중성이 전제돼야 했다. 실로 모든 생명체는 귀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 인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우리가 그것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했다. 남녀 관계도 그러하고 세대 관계도 그러하고 상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 신뢰와 상호 존중의 바탕 위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이어야만 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거대 담론 속에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광복 이후 국가 건설이라는 급선무가 있었고, 6·25 전쟁 이후엔 전쟁 복구란 대명제가 있었고, 절대 빈곤 아래서 산업화와 근대화 문제가 시급했다. 거기다가 민주화 과제, 남북 분단의 문제까지 풀어야 할 지상명제였다. 그렇다 보니 개개인의 인권이나 개성은 자주 무시되거나 말살돼야만 했다. 모든 삶의 기초는 개인에게 있는데도 거대 담론이 세력을 발휘하는 상황 아래서는 개인의 욕구와 특성을 제대로 발현시키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굴절돼 온 개인의 삶을 되찾고 싶은 강한 욕구가 요즘 사람들에게서 분출되고 있음을 본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똑똑해진 것이다. 단독자를 찾아가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 살면서 그 소속감에서 위로를 받으려 했고 안전을 보장 받으려 했다. 인맥이라든지 이념이나 단체 같은 사회적 연결구조 안에서 만족감을 얻으며 살았다. 그러나 최근 그러한 그물망들이 많이 느슨해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더욱 외로워지고 불안해지고 소외감, 박탈감이 높아진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SNS의 발달이 한몫 거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2017년 촛불집회 이후 더욱 그러하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집단이나 특수 이념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보통의 생활인들이다. 누군가의 권유로 모인 사람들이 아닌 자발적 참여자들이다. 이 점이 놀라운 것이다. 모래알처럼 분리돼 있지만 뜻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힘을 갖는다는 것. 내면의 눈을 뜬 한 사람 한 사람. 이들은 외부적 힘이나 작용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는 개개인이다. 오직 스스로의 의지나 느낌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방향을 정하는 그들은 개개인이면서 집단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현상을 살필 때 그런 변화의 조짐은 가히 혁명적이다. 쓰나미를 보는 듯 어지럽고 두렵기조차 하다. 한국인들의 정신적 특성이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설. 여기서 독창성도 나오고 예술적 성과도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 우리는 지나치게 성급한 경향이 있고 지나치게 정서적인 경향이 있어 보인다. 조금은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지 않나 싶다. 다수의 사람들이 흥분 상태이고 분노에 차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다른 쪽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하나의 단서에 투사하여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성장통인지도 모르고 더 좋은 세상을 향하는 고갯마루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 한다. 우리가 넘어진 사람이라면 넘어진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야 하고 우리 옆에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부축해서 함께 먼 길을 떠나야 한다. 와, 봄이 왔다. 모진 겨울을 이기고 올해도 기어이 봄이 왔다. 봄은 우리더러 상처를 이겨 꽃을 피우라 하고 다시 한번 새롭게 눈을 뜨고 길을 가라고 속삭여 준다.
  • [단독] “北 유전자원 보존, 남북협력 첫 단추… 북방농업硏 설립 검토”

    [단독] “北 유전자원 보존, 남북협력 첫 단추… 북방농업硏 설립 검토”

    라승용 농촌진흥청장은 18일 남북 관계 개선에 따른 협력 방안에 대해 “북한의 토종 종자 등 유전자원 보존 문제가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라 청장은 이날 전북혁신도시 청사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 후 11·16 총리회담에서 ‘유전자원 저장고 건설 등을 금년 중에 착수한다’고 합의했다.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 북측이 먼저 (유전자원센터 건립) 이행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라 청장은 또 “1991년부터 28년째 북한의 곡물 생산량에 대한 추적 연구를 진행해 왔다”면서 “체계적인 농업 기술 연구와 이전을 위해서는 ‘북방농업연구소’(가칭) 건립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졸, 9급 출신으로 정무직(차관급)까지 오른 라 청장은 40여년의 공직 생활 동안 농업 연구라는 한 우물을 팠다. 다음은 일문일답.→북한 유전자원에 왜 관심을 갖나. -자원 전쟁 시대다. 북한은 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랭지역 고유의 유전자원이 소실될 우려가 있다. 해외 종자를 쓰다 보면 토종 종자에 대한 유실 우려도 커진다. 내한성이 뛰어난 우리 밀이 없어졌듯 유전자원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복 보존 시스템(2007년 수원, 2014년 전주)을 갖췄다. →2007년 유전자원센터 건립 당시 해외로 유출된 토종 유전자원 4422점을 돌려받았다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가져간 유전자원, 6·25 전쟁 이후 ‘미스김라일락’(한국 토종 식물인 털개회나무 종자를 개량) 등 미국이 가져간 유전자원 등을 돌려받았다. 독일에서는 북한의 재래배추 종자 등을 가져오는 성과도 있었다. 북한 유전자원의 일부는 냉전 당시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으로 넘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방농업연구소는 왜 필요한가. -농진청 안에 ‘남북기술협력지원단’이 설치돼 있지만 서류상의 조직에 그치고 있다. 품종 하나 만드는 데만 12~15년이 걸린다. 미리 준비해야 허둥대지 않는다.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통일 비용이 적게 든다. →2007년 이전의 남북 교류 방식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민간 주도로 이뤄져 지원이 중복되고 체계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농기계를 지원한 현장에 가 보니 그냥 서 있었다. 무리해서 운행하다 고장난 것이었다. 들키면 혼날까 봐 깨끗하게 닦은 뒤 세워 놓은 것이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져야 국가 자원에 대한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할 수 있다. →북한에 직접 다녀온 경험은. -2004년부터 2007년 사이에 4~5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다. 첫 방북은 2004년 금강산 외곽 북고성 지역에 시범 농장을 운영하면서다. 북한의 주체 농법과 우리 농법을 비교해 보자는 취지였다. 실제 수확량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남측 농업 기술의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왜 적용이 안 되나. -(주체 농법이라는) 체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시 액비(축산 분뇨) 지원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산량을 올리는 것보다 토양 유기물 함량을 높이는 게 더 시급하다. 북한의 토양은 우리나라 1960년대 수준이다. 볏짚을 땔감으로 쓰다 보니 토양에 유기물 성분이 거의 없다. →북한 농업의 현주소를 평가한다면. -최근 사유 경작을 일부 인정하면서 생산성이 나아진 측면도 있지만 큰 변화는 없다. 북한 전체적으로 비료는 40만t 정도가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곡물 필요량은 550만t가량인데 생산량은 470만~480만t 수준이다. →최근 10여년 동안 남북 교류가 단절됐는데 어떻게 북한의 식량 사정을 알 수 있나. -북한의 곡물 생산량에 대한 추정 연구는 1991년부터 28년째 진행해 왔다. 북한과 위도나 기후 환경 등이 유사한 강원 철원·평창·진부와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중국 옌벤 등지에서 작물 실험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추정 연구의 정확성은 얼마나. -북한의 통계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2007년 북한 농업성 국장을 만났을 때 감자 생산량을 묻자 포켓 수첩을 꺼내 보는 걸 슬쩍 봤는데 우리 추정치와 실제 생산량이 거의 맞아떨어졌다. 추정 연구는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배 정보, 기상 상황, 실험 데이터를 종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농업 기술 수준을 평가한다면. -세계 5위 수준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다. 공적개발원조(ODA)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추진하는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이 대표적이다. 돈이 아니라 기술력으로 현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현재 20개국에서 KOPIA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가나에 센터를 추가로 지을 예정이며 아제르바이잔 등 13개국에서도 센터 건립을 요청한 상태다. →KOPIA와 별개로 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도 주도하고 있는데. -국제기구로 승격될 가능성이 있다. 농업 분야의 공동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의 4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해당 국가에서는 장관들이 직접 나서 협의체에 참여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록펠러재단 등 민간에서도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주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나눔 플러스] 프랜차이즈 역량 살려 장학·문화사업 등 ‘사랑경영’ 활발

    [나눔 플러스] 프랜차이즈 역량 살려 장학·문화사업 등 ‘사랑경영’ 활발

    지난달 22일 (재)본월드미션(이사장 최복이) 사무실에는 감격의 눈물이 넘쳐흘렀다. 최 이사장의 저서 ‘우리들의 영업비밀, 섬김경영’이 본격 출간되자마자 그동안의 인생 노정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일까? 본죽에서 시작해 (사)본사랑재단과 (재)본월드미션까지 걸어왔던, 그리고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몸소 실천해왔던 최 이사장의 스토리를 담아보았다.→신간 발행 축하드립니다. -아직은 시집 몇 권과 ‘7전 8기 무릎경영’, 그리고 최근에 출판한 섬김경영에 대한 책 밖에 안 나왔는데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쓰고 싶습니다. 책 자체도 섬김이 될 수 있도록 책 섬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미자립 교회에도 같이 보내드렸고 방송을 통해서 원하는 분들에게도 선물했습니다. 직원과 가맹점, 그리고 선교사님들께도 보내드렸는데 많은 분이 제 부족한 책을 보고 위로를 받으셨다 하니 너무나 기쁘고 뿌듯합니다. 일일이 여러 곳에 찾아가서 강의할 수는 없다 보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책들이 대신 곳곳에서 밀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뭔가 모를 맑음이 느껴집니다. 마치 순수한 마음 가득 담은 시인처럼 말이죠. -13년 전 ‘고독한 날의 사색’으로 첫 시집을 냈을 때가 떠오르는군요. 아팠던 마음을 그 시집에 한껏 녹였던 것 같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며 눈물 없이 갈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죠. 당시 사업이 너무도 안 풀려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했습니다. 호떡 장사도 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그래도 돈이 부족해 여기저기 눈치 봐가면서 돈 끌어다 쓰고 그렇게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면서 ‘고난’이라는 주제에 대해 묵상하며 ‘시’라는 형태로 마음을 조금씩 차분히 정리해나갔죠. 특히 앞으로 살아야 할 남은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 →하지만 순수하게 시로서만 고난을 이겨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최근 성공의 요소로 7전 8기 무릎경영을 꼽으셨는데. -무릎은 크게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하잖아요.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릎을 꿇음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에게 덕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7전 8기는 말 그대로 수많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가치경영’을 천명하셨는데, 이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요. -저의 경영철학을 묻는 분들에게 저는 가치경영이라고 합니다. 가치경영은 아까 말씀드렸던 섬김경영, 나눔경영, 무릎경영의 다른 말이기도 하죠. 이 세 가지 경영철학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사랑경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과 성경이 가르쳐준 사랑의 가치는 경영에서도 반드시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나눔은 제 정신적 가치이자 핵심입니다. 기업의 설립 이념 또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성경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서 뽑았죠. →그렇다면 사랑을 중심으로 한 가치경영의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 본월드미션에는 6대 핵심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경쟁보다 협력 ▲성공보다 사명 ▲나보다 우리 ▲계약보다 약속 ▲이윤보다 가치 ▲빨리보다 멀리입니다. 저는 이러한 가치를 실현해내는 것을 경영모델로 삼고 사명 포트폴리오를 그리면서 매일 조금씩 실행하고 있습니다. 본월드미션을 통해서 전 세계 2만 7000여 선교사님들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사명이 땅 끝까지 전파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명과 가치를 이루는 일이 우리 기업과 저의 존재 이유입니다.→방금 선교사들을 언급하셨는데, 본월드미션이 선교사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하다 우리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쟁고아 사진전을 하고 있었어요.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니 돈도 없고 잘 곳도 갈 곳도 없이 사진하고 비행기 티켓만 가지고 온 거예요. 선교사님 임시 숙소로 제 어머니의 방 한 칸을 내드리고 사진전 후원도 해줬습니다. 한 달여 일정을 마치고 여전히 아픈 허리를 움켜쥐며 다시 선교지로 향하는 선교사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이분들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하고 2013년 9월 본월드미션을 정식으로 발족시켰습니다. →본격적으로 선교의 디딤돌을 놓은 셈이군요.-이 땅의 크리스천들은 누구나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복음의 은혜에 빚진 나라죠. 일제 강점기와 6·25 등 고난으로 점철된 시대를 겪었으면서도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당시 선진국의 선교사들이 우리의 교육, 의료, 경제 등 많은 부분에서 발판이 돼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마땅히 우리도 소외된 나라에 가서 교육과 선한 영향력을 미쳐 복된 나라로 바뀌어 갈 수 있도록 돕고 이끌어줘야 은혜를 갚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기업의 의무를 수행하고 훈련되고 준비된 책임을 다하는 거룩한 부담을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월드미션이 선교사님들의 발을 닦고 필요를 채워주며 협력하는 일을 맡고 있는 것이죠.→그렇다면 본월드미션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복음과 사랑의 통로가 되기를 희망하며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안식년을 맞거나 한국에 잠깐 귀국한 선교사님들의 숙소와 치유 상담을 제공합니다. 매 학기 선교사 자녀 50~60명을 선발해 장학금 지원도 하고 있죠. 또한 선교사가 꿈이라면 선교사 자녀들은 꿈 너머 꿈, 즉 또 하나의 미래 소망이기에 다니엘 MK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사역자들과 차세대 영적 리더들을 위한 캠프, 로뎀나무 캠프, 다니엘 MK 캠프, 사모동행 캠프를 통해 선교활동을 돕고 있죠. 더불어 공항과 전철역에서 되도록 가까운 화곡동(20칸), 염창동(10칸), 신촌(6칸)에 선교사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 300분 가까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해외 사업으로는 원더풀 스토리(어린이 그림성경 보급) 사업과 신학교 지원 및 본웨이브 공연(문화선교사업) 등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해외 관련 부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선교매장에 대한 이야기를 문득 들었는데, 해외매장 진출은 한류입니까. 아니면 비즈니스 선교가 목적입니까. -‘비즈니스 선교’입니다. 저희 기업이 가지고 있는 핵심 역량이 프랜차이즈 역량이잖아요. 시스템, 브랜드, 운영 노하우, 물질, 사람들을 종합한 버전으로 선교사님들에게 선교매장을 내어 드리는 것이에요. 그 매장이 그 지역의 1등 교회가 되는 거죠. 작은 미션센터처럼 돼서 비자문제, 생계문제, 일자리문제를 동시에 해결합니다. 또한 선교사님들이 찾아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오게 되잖아요.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선교 모델’을 만들어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정말 독특하고 누가 하기도 어려운데 집중적으로 속 깊은 편지를 또 펼쳐주세요. 어려운 점도 이야기해주시고요. -선교사님들에게 가장 따뜻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한민국 땅에서 멀리 떠나있다 오랜만에 도착하면 먼저 가족 친척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찾아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눈치가 보여 그분들은 결국 찜질방을 전전하시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저희 본월드미션에 미리 예약하고 오면 그래도 내 집만큼은 아닐지라도 일단 거할 집이 있는 것이잖아요. 집에 들어가면 라면 한 개, 쌀 한 봉지, 단무지, 그리고 물이 비치돼있어요. 들어오는 순간 배고픔을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너무 감동이라고 눈물을 철철 쏟는데요.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선교사들을 도울 수 있으니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교사님들의 마음을 제가 알죠. 오지에서 도착해 오갈 데도 없는 상황에서 방 하나 겨우 구해서 왔는데, 기진맥진한 상태서 막 물 사러 가고 그러려면 힘들잖아요. 들어가자마자 기본적인 것들만 준비해놓았을 뿐인데, 이에 감동한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선교사들의 대모역할을 하실 것인지요. 여성으로서 꿈도 있을 것 같은데요. 또한 재단을 어떻게든 키워서 후대로 이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의 구상을 해보신다면. -이 본월드미션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이 재단을 이끌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하는 것은 맡겨준 사명인 섬김을 잘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 살고 있을 때 나그네와도 같은 삶을 살잖아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저를 보낼 때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거든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이 땅에 보낸 목적대로 사는 것이 섬김이고 사랑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제게 원하셨기 때문에 특히 사랑의 대상을 선교사라고 하셨으니 그분들의 발을 닦고 힘닿는 대로 돕고 협력하고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는 날 “하나님 시킨 일, 제가 잘했습니다. 부족했지만 열심히 했어요, 아버지”라 당당히 고하며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저의 꿈이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처음 신앙 가졌을 때를 회상해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까? 수많은 어려움에 자살까지 시도하려고 했던 저를 구해준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이 물음에 저는 처음에 신학 공부를 할까 생각해봤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밀알’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목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저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선한 가치를 맺기를 하나님께서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섬기고 희생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가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시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에너지 공급통로로 쓰이는 것이 제 밀알사명이 됐죠. 남의 발을 닦아주는 사명, 여전히 어렵지만 제 인생 전부를 걸 만한 사명이기에 이 세상 떠날 때 가장 값진 인생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고 믿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 그리고 영혼을 다해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명이 기업을 통해 꾸준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능력자이신 진정한 CEO 하나님께서는 제 꿈 이상으로 부족한 저를 넘치도록 채워줬습니다. 저도 나눠주고 베풀고 유익을 주는 선한 부자의 사명, 밀알이 되는 사명을 잘 해내고 싶습니다. 노승선 객원기자 nss@seoul.co.kr
  • 마포, 오늘 보훈회관 개관

    13일 서울 마포구 신수로에 보훈회관이 개관한다. 12일 구에 따르면 2014년 보훈회관 신축 계획을 수립한 지 3년 만인 지난해 12월 준공이 완료됐다. 연면적 1161.64㎡(약 351평),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다. 37억 90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층별로 체력단련실, 나눔공간, 보훈단체 사무실, 회의실·식당, 강당 등으로 구성됐다.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특수임무유공자회, 광복회, 6·25참전유공자회, 고엽제전우회, 무공수훈자회, 월남전참전자회 등 9개 보훈단체가 입주한다. 구는 이날 오후 3시 30분 보훈회관 주차장에서 1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관식을 열 예정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김정은·트럼프 5월 ‘비핵화 담판’

    김정은·트럼프 5월 ‘비핵화 담판’

    김정은 “빠른 시일 내에 만나고 싶다” 트럼프 “비핵화 위해 5월까지 만나자” 성사 땐 정전협정 뒤 첫 북미 정상회담 회담 장소로 중립지역 판문점 거론 文대통령 “한반도 비핵화·평화 현실로”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오는 5월 정상회담에 나선다. 예정대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6·25전쟁 정전협정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게 된다. 대미 특사로서 워싱턴DC를 찾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 위원장과 오는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의 초청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시기를 못박으며 전격적으로 회담을 수락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안에 속전속결로 반응하면서 정 실장에게 성명을 직접 발표하라는 ‘깜짝 제안’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김 위원장의 초청 수락 소식을 전하면서 “회담 날짜와 장소는 추후에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에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큰 진전’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김 위원장이 한국 대표단과 단지 동결이 아니라 비핵화를 이야기했다”고 남겼다.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로 남북한 중립지대이자 냉전의 상징인 판문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9일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두 분(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이 만난다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설 것”이라면서 “5월 회동은 훗날 한반도의 평화를 이뤄낼 역사적 이정표”라며 환영했다. 문 대통령은 또 평창패럴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 행사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회동은 비핵화 의제가 중점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북·미 간 탐색적 대화를 건너뛰고 바로 비핵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까지 남은 두 달여간 실무 접촉에서 ‘비핵화’의 범위 설정을 두고 북·미가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 포기를 대가로 한반도에 미국의 핵우산 제거와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관은 “북·미 첫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에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쌓여 있다”면서 “북·미가 서로 얼마나 양보하고 타협을 하느냐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 성사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서울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의용이 든 ‘北 히든카드’는 탐색대화 아닌 즉각 특사교환?

    정의용이 든 ‘北 히든카드’는 탐색대화 아닌 즉각 특사교환?

    맥매스터·폼페이오 사전접촉 트럼프와 펜스 만나 대화 설득8일부터 2박 4일간 미국에 머무르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부·국방부·중앙정보국(CIA) 수장들을 고루 만나 특사단의 성과를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이 북·미 대화 문턱을 낮출 수 있도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파격적 대화 의지를 오롯이 전달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실장은 8일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기자들에게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성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며 “아직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할 단계까지 와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북·미 대화를 위해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등 구체적 제안을 했을 거라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 너무 앞서 간다는 의중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북측이 은밀하게 미국에 전할 메시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북에 억류된 미국인 3명 석방, 6·25전쟁에서 실종된 북한 내 미군 유해 발굴 재개, 북한의 대미 특사 파견,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복귀 등을 꼽는다. 하지만 이번 방미 일정에서 이런 세세한 조건이 언급되더라도 김 위원장의 북·미 대화 의지를 강조하는 수단이라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에 전달할 북한의 메시지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기보다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진정성과 의지를 전달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은 미국에서 우선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고위 안보·정보당국자를 만날 계획이다. 이들은 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정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8일(현지시간) 북·미 관계 관련 부처 장관 3명과 ‘2+3’ 형태로 회동할 예정이다. 미측 대표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포함될 것으로 예측된다. 김 위원장의 대화 의지를 토대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나 주변국 정세 등을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이튿날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크지만 세부 일정은 미국 측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 실장과 서 원장을 먼저 만난 미 정보당국의 사전 보고에 따라, 최고위급과의 만남은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을 묻고 답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며 “북한은 북·미 간 탐색적 대화보다 막 바로 특사 교환 등 고위급 만남을 갖자는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 내에선 북·미 대화에 대한 신중론이 많은 상황이어서 북·미 대화가 조심스레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후] 美 가는 특사단… ‘김정은 비공개 제안’에 북미 대화 달렸다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후] 美 가는 특사단… ‘김정은 비공개 제안’에 북미 대화 달렸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8일 미국으로 건너가 방북 결과물을 미국에 설명키로 하면서 ‘북한의 비공개 제안’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특사단이 지난 6일 발표한 6개 항의 보도문만으로 북·미 대화가 시작될 여건이 조성됐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사실상 비공개 제안에 따라 북·미 대화의 시기나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정 실장 등이) 내일 출발한다. (미국서 돌아온 뒤) 정 실장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서 원장이 일본을 찾는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사단 일원이었던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동행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비핵화에 대한 뜻을 전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이달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대북 특사 파견에 대해 설명했다. 따라서 지난달에 남·북·미 실무 선에서 포괄적 조율을 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러 가는 게 아니라 협조를 구하러 가는 것”이라며 “따라서 미국에 전달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비공개 제안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의 석방이나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북한 내 미군 유해 발굴을 재개토록 하는 내용이 들었을 수 있다”며 “북한의 미국 특사 파견,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영변 핵 단지 복귀 등이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선순환을 강조해 온 정부의 입장을 감안할 때 남북 정상회담 전 북·미 간 접촉으로 핵 문제 논의가 진전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핵화에 대한 진전 없이 정상회담에 나서는 것은 남북이 미국을 압박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문 대통령에게 부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차 남북정상회담(10월)이 열린 2007년에도 이전부터 물밑 협상을 벌여 오던 크리스토퍼 힐 당시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그해 1월 2박 3일간 독일 베를린에서 양자 회동을 했다. 이는 부시 정부가 협상 없이 북한을 패배시킨다는 기존의 입장을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미국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기본 입장 외에 아직 세부적 전략을 준비하지 못해 정상회담 전에 고위급회담은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한국 특사단이 북의 전언을 통해 탐색적 대화 단계를 뛰어넘은 북·미 고위급회담을 바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며 “하지만 미국 내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정상회담 전에 실무접촉을 하고 이후 고위급회담으로 북·미 공동 코뮈니케까지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같은 해 10월 조명록 당시 북한 인민군 차수가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공식적으로 6·25전쟁을 종식시킨다는 ‘조·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두차례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평화 분위기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깨졌다. 북·미 간 깊은 골을 감안할 때 정상회담 전에 북·미 간의 비핵화 논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북한의 생각을 직접 확인하는 초기 대화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6·25 유해발굴 재개… 500위 목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6일 재개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날 전남 광양에서 육군 31사단의 개토식을 시작으로 올해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개토식은 ‘땅의 문을 연다’는 뜻으로 유해발굴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올해 발굴 사업은 6·25전쟁 주요 격전지였던 전국 82개 지역에서 진행된다. 참가 병력은 사단과 여단급 33개 부대 10만여명에 이른다. 한 해 동안 전사자 유해 500위(位)를 발굴해 신원확인 작업을 거쳐 10위 이상의 유해를 유가족 품으로 돌려준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신원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목표는 3000여명이다. 국방부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국군 9800여위를 비롯해 1만1000위 이상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에는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도 포함돼 있다. 중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는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중국 측에 송환됐다. 지금까지 국군 전사자 유해 9800여위를 발굴했지만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28위에 불과하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차라리 죽은 것으로 생각해라…” 청년 법정의 ‘출가’ 편지

    가족 등진 죄책감… 번뇌 고스란히 살뜰하면서도 단호한 ‘인간 법정’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할머니, 작은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너희들을 배반하였다. 출가가 나로서는 어떤 연유에서일지라도 집안에 대해서는 배반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일생 동안을 중노릇 할 것은 아니다. 얼마간의 수도를 쌓은 뒤엔 다시 세상에 나아가 살 것이다. 그동안만은 죄인이다.” (1956년 3월 21일)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전남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청년 박재철은 출가를 결심하고 홀연히 길을 떠났다. 가족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작은아버지 집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죽마고우인 사촌동생에게만 이 사실을 편지로 알렸다. 사촌동생에게 틈틈이 보낸 스님의 편지에는 가족을 등진 자신에 대한 질책과 떨칠 수 없는 죄책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책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책읽는섬)는 법정 스님(1932~2010)이 출가한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아홉 살 아래 사촌동생 박성직씨에게 보낸 편지 50여통을 엮은 것이다. 2011년 ‘마음하는 아우야’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가 법정 스님 입적 8주기(3월 11일)에 맞춰 법정 스님이 그간 쓴 에세이 중 일부를 더해 재출간했다. 스님은 성직에게 자기 대신 어머니의 아들 노릇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 그런가 하면 가족들이 묻거든 그저 멀리 일본 같은 데로 떠났다고, 차라리 죽은 것으로 생각하라는 부분에서는 그의 단호함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의 안부는 살뜰히 챙겼다. 편지는 가족과 고향을 등진 아픔에서 성직에게 전하는 인생의 가르침에 대한 글로 바뀌어 간다. 스님은 몸과 정신 건강에 해로운 술을 마시지 말고, 책과 친구는 가려서 접하고, 불행은 두고두고 마음속에서 인생의 문을 열어주는 귀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출가하기 전에 지은 소설의 위치를 알려주며 몰래 읽어 보라고 귀띔할 만큼 동생에 대한 스님의 각별한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한편 오는 11일 법정 스님 입적 8주기를 맞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는 추모법회와 음악회 등 그를 기억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입적일에는 ‘법정 스님을 그리는 맑고 향기로운 음악회’가 열리고 13일 추모 법회도 봉행될 예정이다. 다음달에는 법정 스님의 수행처 사진 공모전이,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제2회 무소유 어린이 글짓기 대회’도 열린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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