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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원칼럼] 청일전쟁, 6·25 그리고 2011년 한반도

    [이용원칼럼] 청일전쟁, 6·25 그리고 2011년 한반도

    오늘 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훌쩍 성장했기에 양강(G2)의 정상이 만나 세계적인 현안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이목이 집중하는 건 당연하다. 특히 지난해 ‘연평도 포격’ 사태를 겪은 우리 국민으로서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평화적으로 풀어나갈 해법이 제시되는가를 초미의 관심을 갖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미·중 정상회담을 바라보면서 뇌리에서 결코 떨쳐지지 않는 생각이 있다. 지난 백수십년간 우리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19세기 말 이후 한반도에서는 두 차례 큰 전쟁이 벌어졌다.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과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이다. 두 전쟁은 발생 원인부터 전개, 결과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다르지만 한 가지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중국이 직접 파병해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이다. 청일전쟁은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淸)나라와 동아시아의 신흥 강자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었다. 두 나라는 남의 땅 한반도를 무대로 자웅을 겨루었다. 또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는 내전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중국이 총칼을 맞대는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한마디로 정리해 지난 100여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두 차례 전쟁 모두에서 중국은 당사국이었던 것이다. 청일전쟁 때도, 6·25 때도 중국엔 힘든 시기였다.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는 이미 종이호랑이였다. 1830년대와 1850년대에 영국과 두번 맞붙은 아편전쟁에서 철저하게 패했고 그 결과 구미 열강에 강제로 문호를 열어준 반(半)식민지 상태가 되었다. 6·25 참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제 패망 후 장제스군(蔣介石軍)과 4년간 치열한 국공내전을 벌인 끝에 대륙을 통일한 지 불과 1년 만이었다. 국내 사정이 어려운데도 중국이 굳이 군대를 보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른 까닭은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우리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론이지만, 중국은 한반도가 자신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2010년대에 접어든 현재 중국의 입장은 변했을까. 그렇지 않다. 중국은 여러 해 전부터 동북공정을 진행해 만주는 물론 북한 지역까지 중국사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주장해 왔다. 무력으로 점거한 티베트를 대상으로 서남공정을 한 데 이어 동북공정을 추진한 목적은 일종의 연고권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아울러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에 보듯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감싸고 도는 태도에 한치의 변화가 없다. 중국에게, 적어도 북한만큼은 여전히 자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지역일 뿐이다. 중국은 그렇다 치고 그럼 미국은? 미국이 무섭게 따라붙는 경쟁국을 견제한 흔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7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미국 국익과 직결된다.”고 공개 발언한 뒤로 그 해역에서 양국 간에 군사적 긴장은 고조됐다. 이어 연평도 포격 사태 후에는 미국의 항공모함이 서해와 일본 해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코앞에서 ‘군사적 시위’를 한다고 받아들일 법한 상황 전개인 것이다. 게다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는, 이라크 종전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결정 등으로 미 군수산업이 활력을 잃은 상태에서 차기 분쟁지역으로 한반도를 노린다는 불길한 분석마저 나도는 상황이다. 청일전쟁으로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고, 6·25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됐다. 남북 간 군사적 대치에다 미·중 간 패권다툼까지 겹쳐 2011년 한반도에는 암운(暗雲)이 그득하다. 이를 헤치고 우리 민족이 평화와 상생, 통일을 이루는 방법은 단 하나이다. 참고 또 참으며 북쪽과 대화해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일이다. 그것만이 외세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이 살아갈 길이다.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 김구 선생 증손자 김용만 씨 “4대째 나라위한 봉사는 당연”

    김구 선생 증손자 김용만 씨 “4대째 나라위한 봉사는 당연”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된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일본으로부터 나라의 독립을 찾아오는 데 일생을 바쳤다. 하지만 남북한 통일의 꿈은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 김신 前공참총장 지내 그의 둘째 아들 김신(88) 전 공군참모총장은 우리 군의 공군 조종사로 6·25전쟁에 참전해 자유를 지켜냈다. 그는 1960년 8월 38살의 젊은 나이로 제6대 공군참모총장에 올라 우리 공군의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김구 선생의 손자이자 김신 장군의 아들인 김양 국가보훈처장은 6·25전쟁이 끝날 무렵 태어났다. 그는 1979년 9월 공군 중위로 전역했다. 이후 방위산업에 몰두했다가 2005년 상하이 총영사를 시작으로 다시 국가에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다. 2008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돼 우리 나라 독립역사를 쓴 분들과 6·25전쟁에서 자유를 지켜낸 영웅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보훈정책의 최고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김구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61년이 지나 그의 증손자도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길에 오른다. 김 처장의 아들 용만(24)씨가 그 주인공. 용만씨는 29일 공군 장교후보생 125기 임관식에서 소위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용만씨는 올해 5월 미국 조지워싱턴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해 9월 공군 장교후보생으로 입대했다. 공군 교육사령부에서 3개월간의 교육을 끝내고 29일부터 3년간 정보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용만씨가 공군 장교로 임관하게 됨에 따라 할아버지 김신 장군과 아버지 김처장의 뒤를 이어 3대째 공군 장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증조 할아버지 김구 선생과 함께 4대가 모두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셈이다. 진정한 위국헌신(爲國獻身) 명문가의 탄생이다. ●손자 김양 국가보훈처장 역임 방배중학교 2학년 시절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용만씨는 2005년 미국 하와이 주 미드퍼시픽 중고교(Mid-Pacific Institute)를 졸업하며 거의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빈민층 지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최우수 학생 표창장(Outstanding Academic Excellence Awards)을 받기도 했다. 용만 씨는 당시 “대학을 졸업한 뒤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군장교로 복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증조부께서 염원하셨던 민족 통일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19세 청년이 자신이 증조부에게 다짐한 약속을 모두 지킨 셈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큰 어른 김구 선생의 증손자이지만 나라를 위한 봉사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가족들의 생각에 홍보계획조차 잡지 않았다.”고 전했다. 29일 임관식에는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과 김 처장 등 가족들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보훈처-‘안보 희생자’ 보상 강화

    안보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강화된다. 국가보훈처는 22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2011년부터 전몰 및 순직 유족 보상금을 7% 인상하고 중상이자 특별수당을 신설하는 등 안보 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보훈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따르면 전몰 및 순직 유족 보상금은 7% 인상돼 월 100만원이 지급된다. 종전에는 유족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보상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했으나, 내년부터는 전몰 및 순직 유족 보상금이 일반 유족(4% 인상)보다 인상된다. 또 내년부터 상이1급 중상이자에게 매달 9만 4000원(1급 3항)~31만 2000원(1급 1항)의 특별수당이 지급된다. 3인 기준 월 소득이 155만 5500원 이하인 저소득 보훈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생활 수당도 9만~20만원에서 15만~25만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6·25참전 유공자에게 제공되는 참전 명예수당은 월 9만원에서 12만원, 무공 영예수당은 월 15만원에서 18만원으로 각각 인상된다. 생존한 참전 유공자들이 줄어들면서 계속 지급되고 있는 명예 수당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보훈처는 이와 함께 청소년들이 고령의 참전 유공자에게 위문 봉사하는 ‘나라사랑 앞섬이’ 실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청소년 안보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다. 천안함 피격 1주기 추모 행사는 국가 수호 의지를 다지는 차원에서 내년 3월 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된다. 현충일인 6월 6일에는 전국의 국립묘지에서 자원봉사자 등 시민 800명이 참가하는 호국영령 이름 다시 부르기 행사도 열린다. 6월 25일에는 북한의 포격 도발이 있었던 연평도에서 대학생 6·25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출정식이 열린다. 보훈처는 전국의 현충시설을 ‘나라사랑 기림터’로 브랜드화하는 등 호국안보 체험장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 밖에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을 건립하고 유엔참전국 참전 기념 시설 건립을 적극 지원하는 등 이를 활용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알릴 예정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자선단체 비리로 기부 위축돼 안타까워”

    “자선단체 비리로 기부 위축돼 안타까워”

    “TV에서나 보던 유엔 본부 총회장이 눈앞에 펼쳐지니 감개무량하더라고요.” UN본부 무관단이 주는 ‘평화메달’을 받은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 임형주(24)씨의 소회다. 한국인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시상식 뒤 미국 뉴욕에 며칠 더 머무르고 있는 임씨는 9일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솔직히 어깨가 너무 무겁다.”면서도 “미력하나마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했다고 하니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17개국 참전용사에 공연수익 전액 기부 ‘평화메달’은 전 세계 각 분야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세계평화와 인권신장을 위해 힘쓴 인물들에게 주어진다. 미국의 ‘자유메달’과 더불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지난 5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6·25 한국전쟁 60주년 기념공연’을 가졌던 임형주씨는 수익금 전액인 2만 달러(약 2280만원)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7개국 참전용사 후손들의 장학사업을 위해 기부했다. 이 공로 등이 인정돼 평화메달 수상자로 낙점됐다는 후문이다. 임씨는 “평화메달 후보자 명단에 오른 사실은 (카네기홀 공연차) 출국하기 전에 알고 있었지만 기대하지는 않았다.”면서 “출국 직전 유력하다는 얘기를 들어 비행기 안에서 가슴을 졸였다.”고 웃으며 털어놓았다. 임씨의 카네기홀 공연도 ‘최초’란 수식어가 붙었다. 이로써 그는 카네기홀 3개 공연장(아이작 스턴 오라토리움, 웨일 리사이틀홀, 잔켈홀) 무대에 모두 선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그는 “경사가 겹쳤다.”며 쑥스러워했다. 임씨는 평소에도 기부 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 추모 공연 수익금 전액을 각막·장기 기증 캠페인에 내놓았다. 임씨는 “지금껏 내게 항상 좋은 일만 있어 ‘너무 좋은 일이 많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주변에서 걱정하곤 했다.”면서 “이 때문에라도 내가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카네기홀 3개 공연장 모두 선 기록도 “기부자들도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임형주. 참전용사 후손에게 장학금을 기부한 것도 용사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는 재능 기부에도 열심이다. 새해에는 그가 운영하는 비영리 교육기관인 영재교육원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20여명의 학생을 선발,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내년 2월쯤 오디션을 실시할 생각이다. “요즘 일부 자선단체의 비리 때문에 기부가 많이 위축됐다고 들었어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액수가 중요한가요. 단돈 1000원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요.” 그는 13일 귀국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참전 유공자에 15만원 사망위로금

    참전 유공자에 15만원 사망위로금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동작구의회가 6·25 전쟁 및 월남전 참전 유공자들의 사망위로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를 통과시켜 화제다. ‘참전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는 동작구 주민 가운데 6·25 전쟁 및 월남전쟁에 참전한 유공자들이 사망했을 때 사망위로금 15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지급대상은 국가보훈처에 참전유공자로 등록된 사람으로서 관내에 1년 이상 주민등록이 돼 있는 사람이다. 참전유공자 사망 후 1년 이내에 유가족들이 지급 신청하면 된다. 다만 보훈급여금을 받는 사람과 고엽제 후유의증에 따른 수당을 받는 사람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조례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현재 구에 거주 중인 6·25 전쟁 유공자는 1200여명, 월남전 유공자는 8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례안 발의를 주도한 유태철 구의원은 “상이용사나 고엽제 피해자들에게는 보훈처의 지원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참전유공자들에게는 지원이 열악하다.”며 “그들의 희생에 비하면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영정에 화환을 바친다는 심정으로 이 조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참전유공자들이 연로한 가운데 참전후유증 등으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게 유 의원의 설명이다. 그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더욱 고조되는 시기이고, 주민들의 애국심 고취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3선 구의원으로 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5대 구의회에서는 전반기 의회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지역 내 마당발로 불린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사람의 몸과 꽃·나무·자연이 서로 엉기며… ‘나’의 숲은 희망을 꿈꾼다

    사람의 몸과 꽃·나무·자연이 서로 엉기며… ‘나’의 숲은 희망을 꿈꾼다

    소설가 박완서가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각처럼 내 살갗을 저미는 것 같았다.’라고 평했던 김훈(52)의 문장이 신작 ‘내 젊은 날의 숲’(문학동네 펴냄)에서는 훨씬 누그러진 느낌이다. 주인공인 화자가 1인칭 여성이어서일까. 디자인회사에 다니는 미혼인 ‘나’(조연주)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다. 하위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그 작은 직권으로 성병에 걸린 접객업소 여종업원을 협박하거나 검진증을 팔아먹는다. 단속정보를 미리 빼돌려 영업정지 처분을 막아주거나 풀어주면서 벌어온 돈으로 미술대학 디자인과에 합격해 서울에 올라온 연주에게 방 두칸짜리 아파트를 구해준다. 4년간에 걸친 등록금, 미술 재료비, 용돈 그리고 첫 직장에 취직했을 때 출퇴근용으로 쓰라고 소형 자동차도 마련해준다. 6급 지방 공무원인 아버지가 뇌물죄로 구속 수감되면서 더 이상 이 세상과 부딪치거나 비비적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연주는 편안해한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사직한 연주는 계약직 공무원 공채 선발과정을 거쳐 최북단 민간인 통제선 안 국립 수목원의 세밀화가로 채용된다. 민통선 검문소에서 연주는 김민수 중위를 처음 만난다. 연주가 수목원에서 패랭이꽃, 목련, 작약꽃, 서어나무, 겨울눈 등의 세밀화를 수채화로 그리는 동안 아버지는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일곱달 만에 뇌일혈 발작으로 세상을 뜬다. 김 중위의 부탁으로 정전 50주년 기념 전사자 유해발굴단이 찾아낸 뼈 그림도 그린다. 수목원의 예산 부족으로 재계약이 되지 않은 연주는 서울로 돌아온다. 연주의 핸드백에는 제대하고 건설회사에 취직한 김 중위의 명함 한장만이 들어 있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번도 ‘사랑’이나 ‘희망’ 같은 단어들을 써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내 젊은 날의 숲’에서도 김 중위는 연주에게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는 고백조차 없이 자신의 개인사를 술술 말한 뒤 뼛조각 이야기를 하고 명함을 건넨다. 주인공이 수목원에서 일하는 화가인 만큼 소설에는 사람의 몸과 꽃, 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 서로 엉기어 드는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하지만 미술학원 원장의 자살이나 공무원의 비리 구조, 연주 아버지의 병세, 유해발굴단의 작업을 묘사할 때는 잠시 소설 주인공이 화가에서 사회부 기자로 바뀐 듯한 착각이 든다. 6·25전쟁에 참전한 병사의 편지와 삐라의 내용은 자세하게 인용한 출처를 밝혀놓았다. 최근 작가들이 소설에 다른 책이나 기사의 내용을 인용했다가 표절로 곤욕을 치른 사례가 있어 무심하게 보아 넘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단편 ‘언니의 폐경’을 제외하면 여성 주인공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일이 흔치 않은 김훈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은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라는 작가의 희망이 담겨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잿더미서 일군 나라… G20 주최국 감격”

    “잿더미서 일군 나라… G20 주최국 감격”

    “잿더미에서 일군 나라예요. 20대 강국 안에 든 것도 우리세대로서는 기적처럼 느껴지는데, 주최국이라니 감격스럽습니다.” G20 정상회의 최고령 자원봉사자인 최재원(80)옹은 11일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옹은 이달 8일부터 지하철 2호선 을지로 4가 전철역에서 하루 4시간씩 외국인들을 상대로 노선 및 관광지·유적지를 안내하고 있다. ●“콘사이스 씹어먹으며 영어 공부” 그는 자원봉사자 지원 동기에 대해 “국제적인 행사가 열리지만 내가 별로 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내가 유일하게 잘하고 좋아하는 게 영어라서 지원했다. 거창하게 의미부여 할 것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겠다.”고 말했다. 최옹이 영어를 처음 접한 건 1948년. 62년째 영어를 쓰고 있다. 요즘도 매일 영어단어를 외우는 ‘영어 마니아’다. 2007년 8월부터는 집 주변에 있는 노원정보도서관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화·목요일) 무료로 영어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내가 아마 콘사이스(영어사전)를 씹어먹으면서 공부한 첫 세대일 것”이라면서 껄껄 웃었다.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그의 영어는 더욱 깊어졌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그는 육군 사병으로 입대, 1957년 제대했다. 제대할 때쯤 28사단에서 근무하다 당시 동두천에 주둔해 있던 미군 간부들의 눈에 띄어 제대한 직후 행정서기로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언어·문화 등의 차이로 미군과 국군의 다툼이 심했지만, 통역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초를 서면서 영어단어를 중얼거리다 고참한테 ‘빠따’를 맞을 만큼 영어를 좋아했던 그가 돋보였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1982년까지 미 8군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 그 뒤 영어실력을 살려 주로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02년 퇴직, 부인과 함께 서울 월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노동계 등 일부 시민단체가 G20반대 시위를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해야 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옹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같이 살아가는 게 선진국 아니겠느냐.”면서도 “이번 회담이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실무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돈·재능 자꾸 써야 썩지 않아” 또 G20에서 잘사는 나라가 못사는 나라를 돕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문제가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는 “가끔 TV를 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 등 못사는 나라에 가서 우물도 파 주고 하는데 참 흐믓하다.”면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로 변해 기쁘고 뿌듯하다.”고 말하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또 “강대국이 강대국인 데에는 이런 활발한 기부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돈이건 재능이건 자꾸 써야 썩지 않고 생겨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참전용사들 불굴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참전용사들 불굴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곳곳에서 파란 눈의 이국인들이 한반도를 찾아 얼굴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특히 그해 겨울 영하 40℃의 혹한 속에 개마고원 일대에서 치러진 미 해병 1사단의 장진호 전투는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미 해병 1사단은 7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이 겹겹이 에워싼 죽음의 협곡지대를 유엔 공군의 항공근접지원 아래 돌파하면서 중공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중공군은 그날의 피해로 함흥 지역 진출이 2주간 늦어졌다. 덕분에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참전과 혹독한 추위로 어려움에 처했던 국군 1군단과 미 10군단 장병 10만여명은 큰 피해 없이 흥남항에서 해상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에 대한 기념행사가 10일 열렸다. 국방부가 주관한 6·25전쟁 60주년 행사 중 마지막 행사로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다. 국방부와 한·미 연합사가 함께 준비한 행사에는 장진호 전투의 기억을 생생히 가지고 있는 파란 눈의 참전용사를 비롯해 2000여명의 한국과 미국인들이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장광일 국방정책실장이 대독한 기념행사 축전에서 “그들은 불굴의 정신을 가진 참군인이었고 자유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밝혔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서울광장] ‘공룡 이웃’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법/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공룡 이웃’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법/구본영 수석논설위원

    마침내 용은 잠에서 깨어난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사뭇 놀랍다. 올들어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 세계 2위로 솟아올랐다. 사상 최대인 관람객 7300만명의 상하이엑스포도 거뜬히 치러냈다. 어디 그뿐인가. 드넓은 품으로 전세계에 상품과 자본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480개가 진출했다니, 중국이야말로 현대판 엘도라도(黃鄕)가 아닌가 싶다. 개혁·개방 30여년 만에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중국의 용틀임은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환율전쟁을 불사할 결기를 보였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희토류 수출 금지란 비장의 카드로 일본의 얼도 반쯤 빼놓았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엊그제 영향력 세계 1위 인물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꼽았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나선 이래 중국의 외교기조는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하지만 “칼날의 빛을 감춘 채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라.”던 덩의 유지는 벌써 잊은 것인가. 후진타오-원자바오 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뜻)를 표방하더니 슬슬 ‘화평’이라는 접두어를 뺀 채 ‘중화굴기’(中華堀起)를 전면에 내거는 인상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중국의 외교기조는 이제 ‘돌돌핍인’( 逼人·기세등등하다는 뜻)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되살아난 중화의 위용에 화들짝 놀랐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국제적 대북 제재 분위기가 중국이 제동을 걸자 슬그머니 가라앉을 때부터 말이다. 지난 8월엔 ‘주체의 나라’라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은의 세자책봉을 받으려고 병든 몸을 이끌고 방중길에 올랐다. 얼마 전엔 5세대 최고지도자 자리를 예약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6·25 참전이 정의로웠다고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새삼 제기된다. 우리는 중국과 반만년 역사를 통해 때로는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사대교린정책’이란 수사와 함께 굴신(屈身)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쩌랴. ‘공룡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지정학적 숙명이라면. 이미 한·중은 모든 분야에서 서로 외면하려야 할 수 없는 처지다. 굳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외교 레토릭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우리와 중국과의 교역규모는 일본·미국과의 교역액을 합한 것보다 크다. 중국 내 외국인 학생 중 한국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한국 내 중국 유학생도 마찬가지 비중이다. 까닭에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위협이자 기회이다. 위협적 요소를 줄이고 호혜적 요인을 늘리기는 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따지고 보면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더 풍요로웠던 때가 최근 수십년간 말고 얼마나 더 있었던가. 중국보다 산업화에 앞섰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했던 ‘좋은 시절’(벨에포크)이 나른한 한여름의 짤막한 낮잠처럼 끝나서야 될 말인가. 글로벌 슈퍼파워로 떠오른 중국과 동렬에서 공존하려면 그들의 ‘분리통치’에 휘둘릴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촉발한 ‘한반도의 평화 훼방꾼’ 논란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유다. 시진핑 부주석 측이 그런 비외교적 언사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분단상황에서 외세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는 일은 애당초 삼가야 했다. 수·당과 어깨를 겨뤘던 고구려의 패망도 국력의 열세를 떠나 당시 실권자 연개소문 아들들의 분열이 결정타였다. 때마침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았다. 우리가 산업화와 정보화에 한발 앞섰다는 자만심에 빠질 게 아니라 경제력에다 기초과학과 문화를 결합한 스마트파워에서 중국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할 때다. 이제 ‘어둠 속에서 칼을 가는’ 일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한다. kby7@seoul.co.kr
  • [시론] 중국도 스마트 외교를 배워라/김승채 서울평화상 기획·연구실장 고려대 겸임교수

    [시론] 중국도 스마트 외교를 배워라/김승채 서울평화상 기획·연구실장 고려대 겸임교수

    중국 차기 최고지도자로서 입지를 굳힌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지난달 24일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참전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서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뒤 이어 중국 정부도 “중국 정부의 정론 (定論)”이라고 못박고 나섰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학자들을 동원해 한국전쟁과 중국 인민의용군이 참전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은 다르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인정과 지원 아래 이뤄진 김일성의 남침이라는 사실은 옛 소련 등에서 비밀해제된 다양한 문건을 통해 이미 규명된 것이다. 중국의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는 한국전쟁에 대해 “6·25전쟁이 발발했고 미 제국주의가 침략했다.”는 표현으로 남침인지 북침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평화·안전을 위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막으려 북한을 지원하고 입장을 두둔하는 것은 현실정치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국이 강대국으로 신뢰를 얻으려면 최소한 한국전쟁이 남침이었음을 인정하고, 한국전 개입은 1949년 건국한 신생 중국이 자국 보호를 위한 부득이한 결정이었다는 정도까지는 인정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면서 정작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 시대에 걸맞은 국격을 갖춘 나라라고 인정할 것인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지각 있는 사람으로 강한 감정 절제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 시진핑 부주석이 격에 맞지 않게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주변국들의 감정에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뒤에 국격 있는 중국을 만드는 데 앞장설 최고 지도자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2위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계층·지역·세대 간 불균형과 민족문제, 정치개혁 문제 등 내부 모순이 고조되는 와중에 외부 모순까지 만들려고 하는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하드 파워는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최근 중국은 소프트 파워까지 증대시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다자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공자학원 등을 세워 유교문화 등 중국의 전통 문화를 적극 홍보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중심, 미국 표준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항하는 중국적 가치와 규범을 세계 표준으로 하려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전파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결합하여 권위를 증대시키는 21세기의 종합국력인 스마트 파워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군사력과 경제력은 막대한 달러 자산과 전세계가 군침을 흘리는 거대한 소비시장,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공장으로 충족될 수 있다. 그러나 공자상을 세우고, 중국 전통 가치를 선양하고, 중국어를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중국의 가치와 문화가 우월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다. 보편적인 행동 규범, 올바른 역사인식에 근거한 외교활동이 충족되어야 한다. 중국은 이미 평화로운 발전(和平發展), 조화로운 세계(和諧世界), 대국책임론이라는 훌륭한 말들을 만들어 냈다. 이 수려한 언어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실천해 보여야 한다. 이미 30년 전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지도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코 패권을 가지려 하지 마라. 나서지 마라.(決不當頭)” 그의 말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행동 방침이 돼 왔다. 그것이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뿌리이다. 중국 지도부는 역사와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고, 국격을 갖춘 중국, 친해지고 싶은 중국을 만드는 길이다.
  • 60년만에 아버지 만난 아들 “지금껏 제사 지내왔는데…”

    60년만에 아버지 만난 아들 “지금껏 제사 지내왔는데…”

    “지난 60년간 하루도 너를 잊지 않았다.”(북측 90세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지금껏 제사도 지내 왔어요.”(남측 61세 아들) 지난 3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행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슬프고도 감격스러운 가족 드라마였다. 60년간 헤어져 있던 남북 이산가족 533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하지 못한 날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북측 가족 97명과 남측 436명은 3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 이어 환영만찬을 함께 하며 분단의 아픔을 달랬다. 이어 31일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과 점심식사를 한 뒤 2차 단체상봉을 하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지난 60년간 만나지 못했거나 생전 처음 만나는 상황의 어색함도 잠시, 이들은 어느새 한 가족, 한 민족으로 묶여 있었다. 2차 단체상봉에서는 북측 사촌동생 김은숙(83)씨를 만나러 온 남측 김운한(88)씨가 서로 다른 가족으로 참가한 북측 김재국(83)씨를 어릴 적 고향에서 헤어진 8촌 동생으로 알아차리고 상봉하는 극적 인연을 보여 줬다. 특히 6·25전쟁 참전 전사자로 처리돼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난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렀다. 북측 최고령이기도 한 리종렬(90)씨는 전쟁 통에 입대 당시 생후 100일 된 갓난아기였던 아들 민관(61)씨를 만나 감격을 더했다. 당시 리씨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아들 이름을 지어 주고 떠났고, 민관씨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한테 받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 민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믿고 이산가족 상봉에 신경 쓰지 않다가 북측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준 덕분에 상봉을 이뤘다.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던 리씨는 10여분이 지나서야 진정된 듯 “민관아, 지난 60년간 하루도 너를 잊지 않았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리씨가 북한에서 재혼해 얻은 아들 명국(55)씨도 함께 나와 남측 이복형을 처음 만났다. 역시 국군 출신인 리원직(77)씨는 남측 누나 운조(83)씨와 동생 원술(72)씨 등으로부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경북 선산이 고향인 리씨는 6·25전쟁 때 청도로 피란을 갔다가 국군에 징집된 후 소식이 끊겼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스무살 때 군대에 갔다가 전사자로 통보된 윤태영(79)씨는 남측 동생 4명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다가 막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자 애통해했다. 형의 전사 통보를 받았으나 그의 사망 날짜를 정확히 몰랐던 동생들은 9월 9일을 기일로 정해 형의 제사를 지내 왔다. 면사무소 사환으로 일하다 전쟁이 터져 국군에 자원입대했다는 방영원(81)씨는 형수 이이순(88)씨를 만나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의 소식을 듣고 애통해했다. 방씨는 또 누나 순필(94)씨가 한달 전부터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이번에 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남북 이산가족 중 최고령인 김례정(96)씨는 북측 딸 우정혜(71)씨를 만나자 “꿈에만 보던 너를 어떻게…. 너를 만나려고 내가 지금까지 살았나 보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혜씨는 “저는 잘 있습니다.”라며 어머니를 품에 안은 뒤 가족사진과 훈·포장 20여개를 꺼내 보여 줬다. 단체상봉 때 치매로 북측 여동생 전순식(79)씨를 알아보지 못했던 남측 전순심(84)씨는 밤새 잠시 정신이 맑아져 순식씨의 이름을 불렀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남북 가족들이 정성껏 마련한 선물도 눈길을 끌었다. 북측 오빠 정기형(79)씨에게 남측의 세 여동생 기영(72)·기옥(62)·기연(58)씨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떡·미역 등으로 미리 차린 생일상 앞에서 절을 올렸다. 여동생들이 내민 선물은 털신과 가죽신 등 신발 4켤레. 오빠가 60년 전 아버지를 대신해 인민군의 짐꾼으로 따라나섰다가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동네 사람에게 전해 들은 기억이 사무쳤기 때문이다. 북측 작은아버지 윤재설(80)씨를 만난 남측 윤상호(50)씨는 재설씨의 북측 아들인 수공예 전문가 윤호(46)씨가 골뱅이를 재료로 만든 꽃병과 남측 고향집 모습을 담은 목공예를 받았다. 상호씨는 “얼굴도 보지 못한 사촌인데 정성 어린 선물을 받으니 감동적”이라고 화답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상봉 테이블마다 폴라로이드(즉석) 사진기로 가족사진을 2장씩 찍어 제공했다.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인화할 곳이 없어 가족들이 안타까워하자 마련한 것이다. 김미경기자·금강산공동취재단 chaplin7@seoul.co.kr
  • ‘전사처리’ 국군출신 4명 극적 상봉

    ‘전사처리’ 국군출신 4명 극적 상봉

    지난 30일부터 1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행사에 참가한 북측 상봉신청자 가운데 6·25전쟁에 참전한 뒤 전사자로 처리됐던 국군 출신 4명이 포함돼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도 북측 상봉신청자에 국군 출신 1명이 포함됐으나 이번처럼 다수가 포함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500여명으로 파악된 국군포로 현황을 재정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북측은 이들을 국군포로라고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31일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앞서 교환한 북측 상봉신청자 97명 중에는 1957년 정부에 의해 전사처리됐던 리종렬(90)·리원직(77)·윤태영(79)·방영원(81)씨 등 국군 출신 4명이 포함됐다. 이는 북측이 알려온 것이 아니라 통일부와 국방부가 병적기록부 등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이들은 30일 열린 첫 단체상봉에 모습을 나타냈고, 이들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측 가족들과 극적으로 재회했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과의 상봉에서 국군포로 여부에 대해 함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국군포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국군포로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민감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가했던 국군 출신 1명도 남측이 그를 ‘국군포로’라고 보도한 것에 대해 반발, 남북 간 껄끄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이들의 지위에 대해 남측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 처리할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사자로 처리된 국군포로의 생존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남측으로 귀환하지 않는 한 전사자라는 법적 지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족들이 원하면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지위는 상봉 행사 이후 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국방부가 정리하게 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이번 국군 출신 4명의 생존 확인을 계기로 국군포로 현황을 추가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더라도 북측의 협조를 얻기 어려워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간 국군포로에 대한 입장 차가 크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적십자회담 등에서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오이석기자 chaplin7@seoul.co.kr
  • 고민에 빠진 외교부

    지난 열흘 동안 한국 외교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발언을 해명하고 반박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급부상하는 강대국의 차기 지도자와 좋은 관계를 가꿔 나가려 애면글면해온 ‘정성’이 무색하게도 초장부터 자꾸만 삐걱거리자 난감한 표정이다. 정작 외교부의 고민은 이제부터다. 기대와 달리 시진핑의 성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보다 권위주의적임을 보여 주는 단면이 이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 시진핑이 ‘정의로운 전쟁’ 발언을 했던 지난 25일 6·25 참전 기념행사에서 후진타오는 참전군인들에게 “동지들은 당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커다란 공헌을 했다.” 는 정도의 말만 했다. 알고보면 시진핑은 후진타오는 물론 장쩌민 전 주석보다 군 경력이 화려할 만큼 친군(親軍)적인 인물이다. 시진핑은 또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밀어붙이던 시기에 중·고 교육을 받아 근본주의적 공산주의 사상에 깊숙이 물들어 있을 개연성이 있다. 여기에 날로 커지는 몸집으로 미국과 2강 체제를 구축한 데서 오는 자신감이 우월감으로 전환될 경우 상대국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외교가 남발될 수도 있다. 실제 시진핑은 지난해 2월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서방 외국인들이 중국의 일에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면서 간섭한다.”라는 원색적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이 차세대 지도자라고 해서 미래지향적이고 개혁적일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큰 오판이 될 수 있다.”면서 “매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 6·25 참전 정의롭다는 중국의 자가당착

    중국의 6·25 참전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미화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발언이 일파만파다. 중국 외교부는 그제 “이는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시 부주석을 옹호하고 나섰다. 한국 내 부정적 여론과 “6·25는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우리 측의 우회적 문제 제기에 대한 대응이었다. 양국 간 이런 무익한 논란이 종식되려면 중국 측이 한국전을 둘러싼 역사적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 부주석의 발언은 지난 25일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개전 60주년 좌담회에서 나왔다.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는다)’란 표현 자체가 마오쩌뚱 시대 중국의 한국전 참전을 아전인수로 합리화한 논리다. 6·25가 김일성이 마오와 옛소련 스탈린의 승인하에 감행한 남침임은 객관적 사료로 이미 입증됐다. 그런 엄연한 사실에 눈감은 채 참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일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려는 꼴이다. “60년 전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가 중국 인민들에게 강제한 것”이라는 시 부주석의 언급도 자가당착이긴 마찬가지다. 남침 후 유엔의 개입으로 세가 불리해진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만 국경을 넘었다는 진실을 외면했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한국전 발발 후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남침이라고 결의한 뒤 유엔군을 파견했다. 그럼에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된 중국이 새삼 남침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스스로를 냉전의 올무로 묶는 자승자박이다. 2년 뒤의 5세대 최고지도자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중국이 주요 2개국(G2)의 위상에 걸맞은 지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냉전적 혈맹 의식에 갇혀 북을 무조건 싸고돌 게 아니라 정확한 사실(史實)을 기반으로 남북 간 공정한 평화 중재역을 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베이징 어느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마오와 김일성의 대화록 등 외교문서부터 들여다보기 바란다. 정부도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진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물렁하게만 대응하다가는 훗날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외교노선에 대해 분명한 팩트를 토대로 당당한 목소리를 낼 때 양국 관계는 장기적으로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 中학계 “6·25참전은 마오쩌둥의 오판”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항미원조(抗美援朝·한국전쟁의 중국명)전쟁 발언과 한국·미국의 강력 반박, 중국 정부의 시 부주석 옹호 등 한반도 주변이 60년 전의 역사 논란으로 뜨겁다. 중국 측은 항미원조 전쟁에 대해 ‘1950년 10월, 조국의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맞서 지원군을 보내 조국과 사회주의 진영을 지켜낸 전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6·25전쟁의 발발에 대해 1992년 한·중 수교 이전 북한의 북침설을 따랐던 중국은 이후 비밀해제된 옛 소련 외교문서 등을 통해 남침의 증거가 잇따라 나오자 ‘내전’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해 왔다. 문제는 중국의 참전 이유에 대한 인식이다. 중국 인터넷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은 ▲미국 등 연합군이 38선을 넘어 북한을 침략, 북·중 국경으로 진격하며 중국의 단둥지역을 폭격하는 등 신중국의 안전을 위협한 데다 ▲미군 7함대가 타이완해협에 진입, 중국의 통일전쟁에 무력으로 간섭했고 ▲북한의 참전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중국 내 학계에서는 비밀해제된 옛 소련 등의 외교문서 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당시 참전 결정을 내린 마오쩌둥의 오판과 참전의 정당성 결여 등을 지적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산혁명 반동세력의 위협 등 국내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마오쩌둥이 국가 밖의 전쟁을 필요로 했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은 바 있다. “미군의 참전으로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는 중국 측 주장과 달리 “혁명의 동력을 지속시키면서 중국의 국제지위를 높이겠다.”는 마오쩌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참전의 결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전쟁 전문가인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종신교수는 마오쩌둥이 유엔의 휴전 제안을 뿌리치고 전쟁을 지속해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선 교수는 “중국군 희생자의 절대 다수가 유엔의 휴전 제의 이후에 발생했다.”며 “중국군의 힘을 너무 과시한 것은 마오쩌둥 주석의 가장 큰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선 교수는 “결과적으로 중국이 참전의 최초 목표를 억지로라도 달성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많은 불필요한 대가를 치렀다.”며 항미원조전쟁을 사실상 ‘실패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시진핑 6·25 발언은 한국민 모독 중국측에 해명과 사과 요구해야”

    “시진핑 6·25 발언은 한국민 모독 중국측에 해명과 사과 요구해야”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2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6·25 전쟁 참전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한 데 대해 “한국과 한국민을 무시하고 모독한 발언”이라며 “중국 측에 해명과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 적화침략 전쟁에 300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고 전국이 초토화되다시피 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통일에 결정적 영향력을 가진 나라의 차세대 지도자가 좁은 역사 인식과 모택동(毛澤東)주의적 사고에 집착해 있다면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대중외교를 더욱 강화해야 하지만 대접은 하되 따질 것은 따져야 대접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찰떡궁합 3남… 불협화음 장남] 김정일과 공안부대 보위부 시찰… 김정은 선군 행보

    [찰떡궁합 3남… 불협화음 장남] 김정일과 공안부대 보위부 시찰… 김정은 선군 행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얼굴)이 김 위원장과 함께 국가안전보위부 지휘부를 현지지도하고 전투기술 훈련상황을 지켜봤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밝혔다. 지난달 말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공식화된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 보도는 지난 5일 미사일 부대로 알려진 인민군 제851군부대의 포사격 훈련 참관에 이어 두 번째다. 통신은 “김정일 동지께서 인민군 제10215군부대 지휘부를 시찰해 부대의 임무수행 방식을 이해한 다음 군인들의 훈련을 보셨다.”며 “훈련 결과에 큰 만족을 표시하고 부대의 전투력을 일층 강화하기 위한 과업들을 제시하셨다.”고 밝혔다. 통신이 언급한 제10215군부대는 인민보안부과 함께 북의 양대 공안기관으로 꼽히는 국가안전보위부의 대외명칭이다. 김 위원장과 김정은의 보위부 시찰은 후계 정착을 위해 내부 반발을 통제하는 최일선 기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정은을 비난하는 얘기가 나돌아 보위부가 검열과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며 “김 위원장 부자의 보위부 시찰은 후계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알보다 식량”이라고 언급했다는 김정은의 행보는 여전히 선군정치에 머물러 있다. 김 위원장과 김정은은 25일 중국군의 6·25참전 60주년 기념일을 맞아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군중대회에 참석하고 궈보슝(郭伯雄)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단장으로 하는 군사대표단을 만났다고 중앙통신이 전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찰떡궁합 3남… 불협화음 장남] “北·中우의 세대 이어 계승돼야”…김정일 세습 행보

    [찰떡궁합 3남… 불협화음 장남] “北·中우의 세대 이어 계승돼야”…김정일 세습 행보

    김정일(얼굴) 북한 국방위원장은 피로 맺은 북한과 중국의 우호관계가 다음 세대에도 계승돼야 한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5일 6·25 참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위급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한 궈보슝(郭伯雄)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만나 “조·중 우의는 세대를 이어 계승돼야 하며 이 바통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것은 우리 어깨에 걸린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은 조·중 우의의 중요한 상징”이라면서 “우리는 지원군이 선혈로써 우리의 정의로운 투쟁을 지원하고, 마오안잉(마오쩌둥 전 주석의 아들) 동지를 비롯한 많은 지원군 장병들이 고귀한 생명을 바친 것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 인민과 군대가 참전 60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것은 양국 우의의 공고한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면서 “양국 군이 양국 관계 발전에 적극적 역할을 발휘해 주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통신은 또 김 위원장과 궈 부주석이 지원군 참전의 역사적 공헌을 높이 평가한 뒤 양국 및 양군관계, 국제 및 지역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한편 김 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은 지난 9일 저우융캉(周永康)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면담에 배석한 데 이어 이날 두 번째로 외교무대에 모습을 나타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시진핑 “항미원조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

    시진핑 “항미원조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

    올 들어 부쩍 접촉면과 이해도가 넓어진 북한과 중국이 중국 군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 기념일인 25일 ‘피로 맺어진’ 혈맹관계를 대대적으로 과시했다. 북한에서 열린 행사에는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에 이어 15일 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계자인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함께 참석했다. ●후진타오, 참전 노병들과 일일이 악수 중국도 이날 최근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에 선임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쉬차이허우(徐才厚)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군 최고위급 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한국전쟁의 중국명) 출국 작전 60주년 좌담회’를 열어 참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군 통수권자인 후진타오 주석은 좌담회 시작 전 참전 노병 대표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당과 정부는 당신들의 공훈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위로한 뒤 인민대회당을 떠났다. 국무원과 중앙군사위를 대표해 연설한 시 부주석은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며 “중·조(중·북) 양국 인민과 군대가 단결함으로써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중국 인민은 양국 인민과 군대가 흘린 피로써 맺어진 위대한 우정을 잊어본 적이 없으며 조선 정부와 인민의 관심 또한 잊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시 부주석은 “60년 전에 발생한 전쟁은 제국주의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었다.”고 참전의 당위성을 강조한 뒤 “영웅적인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 인민, 군대와 더불어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장비 등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60년 전의 전략적 용기는 존경받을 만하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우리는 60년 전 항미원조 전쟁 때 희생당한 10만여명의 인민지원군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면서 “두려움 없이 그런(참전) 전략적 결정을 내린 정부에 대해서도 경의를 보낸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마오쩌둥 전 주석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의 활약상을 묘사한 34부작 드라마 ‘마오안잉’을 지난 20일부터 방영 중인 중국중앙방송(CCTV)은 이날 오후 뉴스채널을 통해 참전 60주년 관련 프로그램을 대거 송출하기도 했다. ●北-中, 대형 가극공연 등 잇따라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군중대회에는 김 위원장 부자와 함께 궈보슝(郭伯雄)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중국 측 대표단이 나란히 참석했다. 보고자로 나선 북한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조·중(북·중) 친선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불패의 친선”이라면서 “두 나라 당과 정부, 인민들의 의지와 염원에 따라 전통적인 조·중 친선은 영구불변할 것이며 대를 이어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궈 부주석도 “우리 사이의 친선은 중·조 두 나라 인민과 군대가 피로써 맺은 것이고, 오늘의 평화는 중·조 두 나라 인민과 군대의 거대한 희생으로 얻은 것”이라며 “전통적인 중·조 친선은 반드시 대대로 전할 것이고, 부단히 깊어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최근 일주일 동안 북한과 중국은 경축연회, 대형 가극공연, 각종 전시회 등을 잇달아 열어 중국 군의 참전 60주년을 기념하면서 혈맹관계를 과시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주중 북한대사 6개월 만에 전격교체

    북한의 최병관 주중 대사가 부임 6개월 만에 전격 교체됐다. 후임자는 지재룡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이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 방문, 중국 고위인사 접견 때 수행 또는 배석해온 중국 및 러시아통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24일 “최 대사가 23일 고려항공 편으로 평양에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후임 대사가 중국 군의 6·25 참전 기념행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식 부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부임한 최 대사가 6개월 만에 전격 교체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주창준 전 대사는 1988년부터 12년간, 최 대사의 전임자였던 최진수 전 대사는 2000년부터 10년간 베이징에서 근무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최 대사의 자격에 대한 중국 측의 불만, 부실한 임무능력, 건강이상 등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자격 논란은 차관급 이상을 대사로 파견하는 양국의 ‘관행’에 비춰 최 대사가 외무성 영사국장으로 알려진 탓에 빚어졌다. 나중에 부상급(차관급)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중국 측의 불만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지난 5월 김 위원장 방중 때 중국 최고지도부와의 ‘홍루몽’ 공동관람 불발 등 일련의 외교임무 수행 ‘실수’ 때문에 교체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북·중 관계가 전례 없는 밀월관계인 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직접 북한대사관을 찾아 노동당 창건 65주년 행사에 참석하는 등 외교적 성과도 많기 때문에 교체 배경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한편 지 신임대사가 정통 노동당 인사라는 점에서 양국이 ‘노동당 대 공산당’ 교류를 확대,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읽힌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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