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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사자 13만명중 7303구 유해 찾았지만…

    전사자 13만명중 7303구 유해 찾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8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독립유공자와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이장하는 일에도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전사자 유해 발굴 및 신원확인 작업에 가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6·25 당시 국군 전사·실종자는 16만 2374명. 이 가운데 2만 9202명은 현충원에 안장됐고, 수습하지 못한 전사자는 1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당국은 남한에 9만여명, 비무장지대 및 북한에 4만여명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2000년 시작됐다. 3년간 진행된 한시사업이었지만, 이후 국가영구사업이 됐고 정식 발굴 및 감식부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07년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유해발굴단)이 창설됐다. 유해발굴단은 지금까지 7303구(5월 31일 현재)의 국군 유해를 발굴했고, 이 가운데 82명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에게 전달했다. 신원확인율이 1.1%에 그친 까닭은 유해발굴단이 확보한 유가족의 유전자 샘플이 2만 4900여명에 불과한 탓이다. 발굴 현장에서 인식표 등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참전한 미군의 경우, 치과 진료기록 등이 잘 보존된 편이라 확인이 쉽지만, 당시 우리 병사들은 의료혜택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유가족이 유전자 샘플을 등록하지 않는다면 신원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2009년 유해발굴단이 시료 채취방식을 혈액뿐 아니라 구강 내 분비물 등으로 확대한 이후 연간 수백명에 불과하던 유족들의 유전자 샘플 채취 건수가 연간 3000~4000건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2009~2011년 연간 1000여구 이상 발굴하면서 속도를 냈지만 지난해에는 993구로 줄었다. 그나마 올해에는 5월 말 현재 307구에 그쳤다. 유해발굴단 배영아 소령은 “사업 초기에는 6·25 당시 접전 지역의 낙엽만 들춰도 유해가 나올 정도였다”면서 “이젠 웬만한 곳은 다 팠고, 인근지역으로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6·25를 경험한 토박이 어르신들의 제보가 중요한데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있다”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어 앞으로 3~5년 이후에는 발굴이든 신원확인이든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해발굴단은 전사자 직계가족과 8촌 이내의 유전자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현장기동팀을 운용하고 있다. 1577-5625로 문의하면 된다. 전국 254곳의 보건소와 18곳의 군병원에서 유전자 시료 채취 및 건강검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유공자 수당·의료비 지역·연령별 제각각

    유공자 수당·의료비 지역·연령별 제각각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참전 유공자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혜택이 지역과 연령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형평성 논란이 거세다. 모두 목숨을 걸고 희생했지만 이에 대한 금전적·의료적 보상은 현재 거주하는 지역과 나이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여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참전 유공자의 명예수당은 자치단체(거주지 기준)에 따라 최대 10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5일 국가보훈처와 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는 2005년 5월 제정된 국가보훈기본법에 근거해 6·25 등 참전 유공자에게 명예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 자치단체 가운데 10개 자치단체는 관련 조례를 제정해 참전 명예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시·도별 참전 명예수당 지원액은 매월 1인당 1만~10만원으로 최고 10배 차이가 났다. 세종시가 1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인천·대전시 각 5만원, 서울시·제주도 각 4만원, 부산·대구·광주·울산시 각 3만원, 경북도 1만원 등이다. 특히 세종시는 명예수당 지원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제한한 다른 시·도의 지원 기준과 달리 모든 참전 유공자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반면 경기·강원·경남·충남·충북·전남·전북도 등 나머지 7개 도는 참전 명예수당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들 도의 시·군·구 대부분은 참전 명예수당으로 매월 1인당 2만~10만원씩을 자체 예산으로 지급하고 있다. 자치단체 간 명예수당 지원 범위도 달랐다. 일부는 6·25전쟁과 월남전 참전 유공자를 포함하는 반면 어떤 곳은 6·25 참전 유공자로 한정하고 있다. 명예수당을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중복 지원하는 곳도 있었다. 경북도와 시·군(3만~5만원), 인천시와 구·군(3만~6만원), 광주시와 서구(2만원) 등이다. 6·25 당시 칠곡 전투에 참가했다는 김영조(83·가명·대구 남구)씨는 “경북에 사는 전우는 매월 6만원을 명예수당으로 받지만 난 그 절반밖에 안 된다”면서 “전장에서 목숨 걸고 고생한 건 마찬가지인데 거주지 자치단체가 다르다고 수당까지 차별을 둬서야 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자치단체마다 참전 수당 지원 기준이 달라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이미 수년 전부터 자치단체들에 참전 수당을 매월 1인당 평균 4만원 수준으로 조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참전 유공자의 의료 혜택도 거주지와 연령별로 차이가 심각하다. 정부는 대상과 나이에 따라 본인부담 진료비의 50~100%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보훈병원과의 접근성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다른 실정이다. 현재 전국에는 310여개의 위탁 병원이 있고, 보훈병원은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5개 지역에만 있다. 보훈병원에서는 참전 유공자의 연령에 상관없이 의료비 60%의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위탁 병원에서는 75세 이상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75세 이하 참전 유공자가 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서울이나 대전 등 대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서울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조선시대 ‘국가유공자’ 후손, 군역 등 면제됐다

    조선시대 전쟁 공신들의 후손에 대한 보훈정책을 보여주는 고문서가 공개됐다. 경상대 한문학과 허권수 교수는 5일 “정구룡 장군의 13대손 정봉영(65)씨가 선조 때부터 보관한 ‘정사은 소지(所志)’에 이같이 기록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내용을 확인하려고 최근 허 교수에게 문서 해석을 부탁했다. 정구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왜군 토벌대장 정기룡 장군의 좌막(佐幕·무관 벼슬)을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경상우도 의령, 함양, 진주, 사천 등지에서 왜적을 격파해 신임을 얻었다. 이듬해엔 거창에서 대승을 거뒀다. 고령·성주·합천·초계·의령 등을 탈환하고 경주·울산을 수복할 때도 선봉에 섰다. 정구룡 장군은 36세이던 1598년 10월 왜군을 토벌하고 돌아가다가 매복해 있던 적군의 조총을 맞고 별세했다. ‘평생 충의충용을 위해 살아온 충신’이란 장계를 받은 조정은 ‘호조판서’ 추증과 선무원종(무공훈장급) 1등 녹훈을 내렸다. 장군의 자손들은 ‘전쟁 공신의 후손을 예우한다’는 호국보훈 정책으로 부역·군역·조세·대동미 등 각종 신역을 면제받았다. 그러나 장군 사후 242년에 8세손 정사은이 양자를 들이자 함안군수가 양자에게 신역을 부과했다. 정사은은 신역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진정서 ‘소지’를 군수에게 냈으나 거부됐다. 1842년 정사은의 진정서를 받은 암행어사는 군수에게 즉각 면제를 지시했다. 이후 정구룡 장군의 후손들은 1910년까지 312년에 걸쳐 정부의 각종 신역을 면제받았다. 정씨는 “전쟁공신의 후손을 대우하는 정책이 조선을 519년간 존속하게 한 힘인 것 같다”며 “대한민국 정부도 6·25 참전자 등에 대한 보훈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돌아온 노병

    돌아온 노병

    6·25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퇴역 군인들이 28일 경기 양주시 25사단 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6·25전쟁 ‘네바다 전초’ 전투 상기행사에서 지프를 타고 열병하고 있다. ‘네바다 전초’ 전투는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3월 26~30일 경기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지역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남하하는 중공군 제120사단과 격돌한 전투다. 당시 중공군 사상자는 1300여명에 달했고, 미군도 118명이 전사하고 801명이 다쳤다. 행사에는 미군 참전용사와 가족 70여명이 초청됐다. 양주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불교·개신교 등 종단 지도자 -외교사절 부인들 손잡고 고성 DMZ서 한반도평화 기원 노래 부른다

    불교·개신교 등 종단 지도자 -외교사절 부인들 손잡고 고성 DMZ서 한반도평화 기원 노래 부른다

    종교계 지도자들과 주한 외교사절 부인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23일 국제평화축제조직위원회와 원불교 평양교구에 따르면 25∼26일 강원도 고성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세계평화 생태탐방 축제’가 강원도 주최로 열린다. 국내 각 종단 지도자와 주한 외교사절 부인들이 한반도 평화 기원을 위해 DMZ에서 모이기는 처음이어서 종교계 안팎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번 행사는 몇몇 종교 지도자와 서울국제여성협회(SIWA) 관계자들이 6·25전쟁 정전 60년을 기념해 3년여의 준비를 거쳐 성사시킨 축제. 한반도 평화와 DMZ 생태계 복원을 우선 겨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9년부터 주한 외교대사와 노벨문학상 수상자, 문화예술인, 글로벌기업 관계자 등 1000여명에게 한반도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서신을 보내 왔으며, 지난해 5월에는 강원 양구와 백담사 일원에서 예비행사를 가진 바 있다. 특히 주한 외교사절 부인과 외국기업 임직원 부인 등으로 구성된 친목 봉사단체인 SIWA가 최근 급속히 악화된 남북관계를 의식해 적극 동참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테리 하트만 SIWA 회장은 “이념은 달라도 남북의 젊은 병사들은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모두 똑같이 소중한 아들”이라며 “분단 때문에 늘 긴장감이 감도는 전방에서 청춘을 보내야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행사는 단순한 선언 차원에 머물지 않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절절한 염원을 담은 체험과 봉사, 종교행사로 진행될 예정. 먼저 주한외교사절과 주한외국기업 임직원 부인 40여명이 25일 오후 2시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갖는다. ‘아리랑’ ‘고향의 봄’ ‘그리운 금강산’ 등을 합창하는 음악공연을 펼치며 직접 밥차를 끌고 가 DMZ 철책 근무를 서는 수색대대 병사들을 위해 고기를 굽고 밥을 퍼주는 배식 봉사를 한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병사들에게는 육류와 도시락 등 위문품도 전달할 예정이다. 행사 참가자들은 둘째 날인 26일, 주변에 6·25전쟁 당시 군 지휘 본부 막사와 파괴된 유적들의 흔적이 널려 있는 건봉사에서 다도와 참선 등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며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체험하고 평화를 염원하게 된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각 종단 지도자들이 25일 갖는 평화기원 행사도 주목되는 프로그램. 종교 지도자들은 이날 행사에 앞서 미리 배포한 ‘평화선언문’을 통해 “핵무장과 이에 대응한 최첨단 무기의 끊임없는 대결의 끝은 어디냐”고 물은 뒤 “남북의 지도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국제평화축제 조직위 김대선(원불교 평양교구장) 상임집행위원장은 “종교 지도자들과 세계 어머니들의 평화를 위한 기도와 노랫소리가 남북 간에 막힌 산길 물길을 열고, 결국 사람 길도 열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정 총리 ‘물정상회의’ 세일즈 외교

    정 총리 ‘물정상회의’ 세일즈 외교

    태국 방문 사흘째인 정홍원 국무총리가 21일 방콕에서 태국 물 관리 사업 국제입찰위원장을 맡고 있는 쁠롯쁘라솝 태국 부총리를 만나 한국 기업들의 사업 참여 검토를 요청하고 태국의 물 관리 시설을 돌아보는 등 일정 마지막 날까지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아시아·태평양 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19일부터 태국을 방문 중인 정 총리는 쁠롯쁘라솝 부총리와의 면담에서 물 관리 사업에 한국 기업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고 한국의 기술력이 접목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임을 강조했다고 대표단이 전해 왔다. 태국 정부는 다음 달 초 11조 4000억원 규모의 통합 물 관리 시스템 구축 사업의 낙찰자를 발표할 계획이며 한국수자원공사 등 한국 기업 컨소시엄이 참여해 중국 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 총리는 지난 19일 치앙마이 르메르디안호텔에서 가진 총리회담에서 태국 물 관리 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한국 기업에 태국 정부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해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의 화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총리회담에서 정 총리는 태국 정부가 방콕∼파타야 등 4개 노선에서 추진 중인 30조원 규모의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참여도 잉락 총리 등에게 당부했다. 정 총리는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태국의 6·25전쟁 참전 용사들과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한 뒤 귀국길에 올라 22일 오전 서울에 도착한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朴대통령 방미] “美의원들, 朴대통령 대북정책 신뢰 느껴” 호평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회의 영어 연설을 직접 지켜본 국내외 인사들은 연설 내용 등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억양이 밋밋했다”는 등의 지적도 있지만 40차례의 박수가 이어졌듯 연설 내용과 스타일 등에 대한 호평이 잇따랐다. 닉 잰 헤리티지재단 아시아·태평양 담당 공보국장은 “내용과 영어 발음 모두 좋았다”면서 “특히 ‘비무장지대(DMZ) 안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한 부분이 창의적이고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연설을 성사시킨 스티브 이스라엘 민주당 하원의원은 “북한의 도발에 보상을 거듭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한 대목이 아주 좋았다”면서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고 재미 한인단체인 한미공공정책위원회(KAPAC)의 이철우 회장이 전했다. 취재석에서 연설을 지켜본 한 홍콩 기자는 “연설에서 6·25전쟁 참전 용사와 의원들을 차례로 호명해 기립박수를 유도한 것은 미국 대통령의 연설 스타일로, 미국 의원들에게 호소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식 연설을 연구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는 또 “한국어 대신 영어로 연설한 것도 메시지 전달 효과를 높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연설 억양에 강약(强弱)이 실리지 않아 밋밋했다”면서 “좀 더 감정을 실어 연설했다면 호소력이 더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영심 전 의원은 “1970년대 말 ‘박동선 사건’으로 한·미 관계가 최악이었을 때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국인은 의사당 출입이 금지돼 발길을 돌린 기억이 있다”면서 “그런데 당시 대통령의 딸이 오늘 의회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연설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연설이 어땠느냐’고 묻자 “좋았다”고 답했다.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방미 성과 평가’ 세미나에서 에이브러햄 김 한미경제연구소(KEI) 부소장이 농담조로 “박 대통령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보다 영어를 더 잘했다”고 치켜세우자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영어 연설 연습을 많이 한 것 같다.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한편 박 대통령이 연설을 끝내고 연단을 내려오자 일부 미국 의원들은 사인을 요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韓·美 정상회담] “환갑은 새로운 주기의 시작… 21세기 전략 동맹으로 진화”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저녁(현지시간) 한·미 동맹을 ‘21세기 전략 동맹’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3대 비전을 제시했다.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내 중앙정원인 ‘코고드 코트야드’에서 미국의 6·25전쟁 참전 용사, 주한 미군 근무자, 정·재계 인사 등 50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연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만찬’ 행사에서다. 박 대통령은 “한국에서 60주년은 지혜와 성숙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주기의 시작을 의미한다”면서 “이제 한·미 동맹은 공동의 가치와 신뢰를 바탕으로 인류를 위한 21세기 전략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21세기 한·미 간 전략 동맹의 3대 비전으로 ▲자유롭고 통일된 한반도를 향한 주춧돌 ▲평화와 번영을 함께 모색해 나가는 동북아 협력의 기둥 ▲지구촌 이웃들을 위한 평화와 번영의 지붕을 꼽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한국 문화를 통해 세계의 행복에 기여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자신의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인 문화 융성을 통해 ‘행복한 지구촌’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념 만찬이 열린 ‘코고드 코트야드’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씨의 탄생 기념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박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백남준,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신지하씨와 한류의 중심인 K팝 등을 소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를 하고 “중국이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변화가 있는 데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며 “저도 사실은 중국이 좀 더 할 수 있다고, (북한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韓·美 정상회담] 朴대통령, 한국전 참전 의원 거명하며 감사… 의원들 기립박수

    [韓·美 정상회담] 朴대통령, 한국전 참전 의원 거명하며 감사… 의원들 기립박수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 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미 포토맥 강변의 한국전쟁 기념공원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이 비문을 인용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미 의사당에서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과 더불어 동맹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6·25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8위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이면에 미국의 도움이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박 대통령이 의사당에 입장할 때와 연설을 할 때 여러 차례에 걸쳐 상·하원 의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이틀 전 찾은 한국전쟁 기념공원에서 읽은 비문을 인용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친 참전용사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존 코니어스 의원 등 합동연설을 듣고 있던 상·하원 의원 중 참전용사 4명의 실명을 일일이 거명하며 거듭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의원들의 실명이 거론될 때마다 상·하원 의원들은 모두 열띤 기립박수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1953년 6·25전쟁의 총성이 멈추었을 당시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의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무역규모 8위의 국가로 성장했다”며 “그런 성취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한국인들은 독일의 광산에서, 월남의 정글에서, 열사의 중동 사막에서 많은 땀을 흘려야 했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소개했다. 박 대통령은 “저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존경스럽고 그 국민들의 대통령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운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특히 미국은 가장 가깝고 좋은 친구였다. 미국의 우정에 깊이 감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의 60년을 웅변하는 한 가족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며 3대가 차례로 한국전쟁 참전과 주한미군 복무 등을 한 데이비드 모건 중령 일가를 소개하면서 “3대가 함께 한국의 안보를 지켜낸 모건 가족은 한·미 동맹 60년의 산증인”이라고 치하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전날 정상회담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비취 장식이 된 은제 사진 액자를,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에게는 전통 나전칠기로 만든 반상기 세트와 한국 요리 책자를 선물했다. 워싱턴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韓·美 정상회담] 52년이 빚은 차이

    중국의 국가 지도자들은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NPC)에서 연설을 한 전례가 없다. 베테랑 기자들의 모임인 NPC에서 쏟아질 공격적인 질문 공세에 시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 자리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처했다. 1961년 11월 첫 미국 방문에서다. 43세 때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실내에서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사람을 대하던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잘못 읽어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두 차례나 해야 할만큼 긴장했다. 그럼에도 그는 ‘후진국의 군사 정변’에 우호적일 리 없는 미국 기자들에게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길은 그 당시 NPC에 서는 것 말고는 없었다. 52년 뒤 그의 딸은 굳이 그런 자리를 통해 알려야 할 필요가 없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워싱턴을 찾았다. 미국 공중파TV CBS가 찾아와 인터뷰를 하며 한국 대통령의 입국을 전국에 알리고, 상·하원에서 동시 연설을 할 만큼의 위상을 갖게 됐다. CBS방송은 6일(현지시간) ‘이브닝 뉴스’를 통해 박 대통령의 방미 사실과 인터뷰 내용을 리포트 형식으로 보도하면서 “박 대통령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외국의 민항기와 군용기를 번갈아 타며 네 번의 기착 끝에 워싱턴에 입성했지만 딸은 전용기 편으로 13시간30분 만에 뉴욕에 도착했다.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파병을 제안하면서 차관을 제공해 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을 차갑게 거절했다. 딸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들을 이끌고 미국을 찾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사절단에 삼성·LG 등 재계 거물이 포함된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보잉사 등 7개 미국 기업들은 3억 8000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뉴욕에서는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악수했다. 이 자리에서 “유엔의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 성장한 만큼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십수명의 한국직원들과 사진도 찍었다. 미국에는 별도로 6·25 참전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6·25 참전용사 위해 보금자리 수리”

    “6·25 참전용사 위해 보금자리 수리”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사장 이종정)은 7일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서 ‘나라사랑 행복한 집 제830호 준공식’을 열었다. 군위군의 첫 번째 행복한 집 주인공은 20세의 젊은 나이로 6·25에 참전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박평식(87) 씨다. 지난 4월부터 지붕 개량과 화장실 신축, 담장 교체, 주방가구 및 문·창호류 교체, 외벽단열공사, 도배·장판 시공 등 낡아서 사용이 불편했던 시설들을 모두 고쳤다. 2900만원의 사업비는 삼성, 육군본부, 한국전기안전공사, 대구지방보훈청, 군위군청이 후원했다. ‘나라사랑 행복한 집’ 사업은 고령으로 불편을 겪는 국가유공자를 대상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거환경을 개선해주고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동교동계 거목 ‘사무라이’ 김영배 전 국회부의장

    동교동계 원로로 6선 의원을 지낸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이 2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군사정부와 여당에 대한 의연한 태도와 짙은 눈썹 등으로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1987년 당시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무렵 신민당에서 당론에 반대하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한 이철승·이택희 두 사람의 제명을 앞장서 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1932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영등포공고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연합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1979년 10대 국회에 당선된 뒤 11대를 제외하고 서울에서만 6선을 기록하면서 입지전적인 정치인으로 불렸다.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김대중 후보 진영에 합류하면서부터 동교동계 거목으로 성장했다. 15대 국회에서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고,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후보 확정 이후 탄탄대로였던 그의 정치인생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단일화협회 소속으로 탈당했으며, 국민경선을 사기극이라고 폄하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03년 1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그해 3월 의원직을 사퇴했다. 고인은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일석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장학사업에 힘써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창례 씨와 장남 종수(재현인텍스 소장), 장녀 혜경(주식회사 설악 대표이사), 사위 팽헌수(한국마리나협회 수석자문위원)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이대 목동병원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6시30분. 6·25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한 고인은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된다. (02)2650-2743.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6·25 참전 아일랜드 전사자 추모비 제막식

    6·25 참전 아일랜드 전사자 추모비 제막식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참전 아일랜드 전사자 추모비 제막식에 박승춘(왼쪽 두번째) 국가보훈처장과 아일랜드 참전 용사들이 참석해 추모비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아일랜드인들은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군 소속으로 참전했고, 특히 영국군 예하부대 소속이었던 아일랜드계 병사들은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한 ‘해피밸리 전투’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 추모비는 전쟁기념관 정문에 위치한 6·25전쟁 상징 조형물 아래 조경지역에 설치됐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25년차 시인, 신인 소설가 되다

    25년차 시인, 신인 소설가 되다

    “무척 작고 보잘 것 없는 몸이었지요. 그런 작은 몸 안에 저런 쇠막대를 품고 살아오시다니, ‘얼마나 무거웠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시’에 담을 수 있었다면 그랬겠지만, 소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5년차 시인인 원재훈(52). 그는 4년 전 국가유공자인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했다. 유골을 수습하다 검게 그을린 다리뼈 부근에서 쇠막대 7개가 나왔다. 말굽의 편자처럼 평생 몸에 간직했던 쇠막대의 존재는 그제서야 작가에게 드러났다. 황해도 개성 출신인 아버지는 6·25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조각난 뼈들을 잇기 위해 의료용 쇠막대를 박고 평생을 살았다. 회한이 물밀듯 몰려왔다. 한평생 인생이란 짐을 허리에 지고 터벅터벅 걸어왔을 아버지의 삶이 떠올라서다. 쇠막대 7개는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 쉰 고개를 넘었지만 장편소설을 쓰기는 처음이다. 작가는 “2003년 마지막 시집 ‘딸기’를 출간한 뒤 도무지 시가 써지지 않았다. 6년 전부터 가끔씩 이런저런 소설을 썼지만 문학을 접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고 말했다. 2년여동안 구상하고 다시 1년여간 집필했다. 지난달 출간된 소설 ‘망치’(작가세계 펴냄)는 이런 담금질을 거쳤다.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이란 부제가 붙었다. 1, 3부는 아들이 떠올린 아버지 이야기다. 화자 상원은 출가한 스님이다. 두 집 살림을 꾸린 아버지 탓에 생업전선으로 등떠밀린 어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자랐다. 상원은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삶에 회의를 느껴 출가한다. 이때 들려온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머리에는 망치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화장터에서 아버지의 다리뼈에 박힌 쇠막대를 발견한다. 2부의 화자는 상원의 어머니. 잘생긴 은행원이었던 남편을 의지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뒤로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노쇠한 남편은 병석에 누워 돌아왔다. 어느 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뜬 작은 처에게 망가진 휴대전화에 대고 “만나자”고 속삭이는 소릴 듣고 눈이 뒤집힌다. 망치로 휴대전화를 부수다보니 남편의 숨도 멎어 있었다. 10년 뒤, 상원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소에서 이복동생 상민과 재회한다. 잔혹했던 가족사도 치유받는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전적 소설은 아니다”면서 “독자들이 ‘스스로 힐링이 된다’고 말 할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전쟁 상처 치유·평화 기원 ‘佛心 대장정’

    전쟁 상처 치유·평화 기원 ‘佛心 대장정’

    불교계에서 2011년부터 추진해 온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한반도평화대회’가 오는 2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학술 세미나를 시작으로 오는 9월 말까지 7개월간 장정에 들어간다. 한반도 평화대회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북한 간 새로운 관계 조성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불교적 성격의 행사. 지난 20일 대회 운영위원회가 밝힌 관련 행사만도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모두 14개가 열릴 예정이다. 한반도평화대회의 가장 큰 의미는 역시 전쟁 상흔의 치유와 해원이다. 운영위도 대회와 관련해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전쟁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의 천도와 살아남은 자들의 해원을 기원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말마따나 서울 현충원 참배를 비롯해 평화기원 수륙재, 6·25전사자 위문위령법회, 한국전 희생자를 위한 위령수륙재 등 크고 작은 위령제, 천도재가 대회 기간 중 줄곧 이어진다. 한국전쟁 중 사망한 북한 군인과 주민들의 고통 해소 차원에서 통일부와 협의를 거쳐 8월 중 금강산 신계사에서 천도재를 추진하는 한편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을 평화대회에 초청할 계획도 세워 놓았다. 행사의 대부분이 부산 지역에 집중된 건 역시 6·25 전쟁 중 이 지역의 특수성과 범어사의 위상 때문이다. 1950년 범어사에는 순국 전몰장병 영현 안치소가 설치돼, 전선에서 사망한 장병들의 영가가 봉안됐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국립현충원이 설립된 뒤부터는 위령제를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유엔총회가 국제연합기념묘지로 지정한 유일한 곳인 유엔기념공원도 부산에 있다. 그런 때문인지 평화대회 운영위원회의 상임운영위원장을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이 맡은 것을 비롯해 범어사·통도사가 핵심 실무를 담당한다. 평화대회의 다른 의미는 통일염원 확산과 지구촌 평화실현을 위한 담론의 장 마련이다. 27일 있을 평화기원 세미나와 정전60주년한반도평화 및 남북통일기원대법회(4월 통도사), 한국전쟁 참전국 대사 리셉션(4월 서울 사찰), 각 종교 성직자들이 패널로 참여하는 한반도평화대회 세미나(7월 범어사), 범어사와 서울 잠실에서 두 차례 있을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 초청 평화걷기가 모두 그런 차원의 행사들이다. 평화대회의 클라이맥스는 9월 27일 부산 월드컵경기장에서 봉행되는 ‘한반도 평화대법회’. 이날 법회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초청해 평화기금을 전달하고 평화선언문을 채택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반 총장은 평화대회에 직접 참석하거나 영상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법회 전후에 반 총장과 아웅산 수치, 넬슨 만델라, 틱낫한 스님 등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서명이 담긴 평화선언문이 공개될 예정이다. 불교계는 이와 관련해 9월 9일부터 30일까지 부산 유엔광장거리 및 시내에 ‘평화의 등’ 5만개를 달아 평화대법회를 장엄할 계획이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은인이 날 찾는다니…미국 아버지, 나 여기 있어요”

    “은인이 날 찾는다니…미국 아버지, 나 여기 있어요”

    60년 전 화상을 입은 한국인 소녀의 치료를 도운 미군 6·25 참전용사가 극적으로 자신이 찾던 소녀와 재회하게 됐다.<서울신문 1월 30일자 27면> 국가보훈처는 19일 미국 애리조나주에 거주하는 참전용사 리처드 캐드월러더(82)씨가 60년 동안 그리워하던 ‘화상 소녀’가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호곡2리에 거주하는 김연순(72)씨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캐드월러더씨는 1953년 12월 경기 수원 미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중 심한 화상을 입고 어머니와 함께 부대를 찾아온 당시 12세의 김씨가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왔고 헬기를 이용해 부산의 미군 병원으로 후송하도록 주선했다. 그는 지난 1월 말 이 같은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훈처에 보내 이 소녀를 찾기 희망한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본지 등 국내언론에 이 사연이 알려진 이후 3주간 1953년 당시 캐드월러더씨 부대 인근인 경기 화성시 매향리 주변에 살던 주민의 최초 제보를 바탕으로 현장 방문조사와 면담에 나섰다. 8일에는 당시 캐드월러드씨와 김씨 모녀의 통역을 맡던 백완기(74)씨가 김씨의 사진을 확인했고 김씨에게 캐드월러더씨의 질문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 17일 ‘화상 소녀’가 김씨임을 최종 확인했다. 김씨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 세 살 먹은 조카가 등잔불을 넘어뜨려 손과 턱, 목을 데었다”면서 “당시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어머니의 조카가 부대로 갈 것을 제의했고 어머니가 미군들에게 딸을 살려달라고 울며 사정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캐드월러더씨의 도움으로 부산 미군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곧바로 다시 서울 청량리의 위생병원으로 옮겨 석 달간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당시 그분을 ‘미국 아버지’라고 불렀다”면서 “미군부대로 가서 그런지 우리 가족이 병원비 부담을 하지 않았고 모든 편의를 제공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캐드월러더씨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씨는 “미국 아버지는 청량리 병원에 입원한 동안에도 꾸준히 사람을 시켜 과자를 보내주는 등 관심을 보여준 분”이라면서 “내가 은인을 찾아야 도리인데 은인이 나를 찾는다니…”라고 말을 흐렸다. 60년간 얼굴에 난 작은 흉터를 보면서 미국 아버지를 잊은 적 없다는 김씨는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소식에 들떠서 잠을 못 이룬다”면서 “직접 만나면 아버지라고 다시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3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냈으나 자식들과 손자들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행사의 일원으로 다음 달 중 캐드월러더씨 부부를 초청, 김씨와의 만남을 주선할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가평高 직접 지은 美 참전용사 61년 만에 찾아와 졸업식 참석

    가평高 직접 지은 美 참전용사 61년 만에 찾아와 졸업식 참석

    6·25전쟁 당시 천막에서 공부하던 150여명의 학생들에게 학교를 지어 준 미군 참전 용사 5명이 61년 만에 손수 지은 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다. 국가보훈처는 5일 미 제40보병사단 출신 참전 용사 5명이 7일로 예정된 경기 가평군 가평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6일 방한한다고 밝혔다. 참전 용사인 존 커티스(85), 클라런스 마이어(88) 등 5명이 미 40사단 현역 장병들과 함께 모은 장학금 1000달러를 전달한다. 가평고와 미 40사단의 인연은 195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가평에 주둔하던 미 40사단장 조지프 클리랜드(1902~1975) 장군은 가평에서 뜻밖의 광경을 목격한다. 포성이 울리는 전쟁터에 천막을 치고 열심히 공부하던 150여명의 한국 아이들을 발견한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에게 감명받은 클리랜드 장군은 부대로 돌아가 이 이야기를 전했고 1만 5000여명의 사단 장병들은 기꺼이 2달러씩 돈을 모아 순식간에 2만여 달러를 만들었다. 미 40사단 공병부대가 가평읍 대곡리에 마련된 부지에 건물을 짓고 주민과 학생들도 학교가 생긴다는 기쁨에 벽돌을 날라 1952년 8월 교실 10개와 강당 1개를 완성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임진강 아이스하키 재현

    임진강 아이스하키 재현

    6·25전쟁 정전 60주년 및 한국·캐나다 수교 50주년을 맞아 3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임진강 아이스하키 재현 행사’에서 캐나다 아마추어팀 회원들이 서로 편을 짜 친선 경기를 하고 있다(아래 사진). 이 행사는 전쟁 중인 1952~53년 캐나다 참전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임진강에서 열렸던 아이스하키 경기(위 사진)를 재현한 것이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화상서 구한 한국 소녀, 찾아주세요”

    “화상서 구한 한국 소녀, 찾아주세요”

    6·25 전쟁 직후 부상당한 한국인 10대 소녀의 치료를 도운 미군 참전용사가 60년이 지나 소녀 찾기에 나섰다. 국가보훈처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거주하는 리처드 캐드월러더(82)가 1953년 연말 자신의 도움으로 미군부대에서 화상 치료를 받은 무명의 한국 소녀를 찾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29일 밝혔다. 1953년 5월부터 1년간 수원 미 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통신병으로 근무한 그는 편지에서 경기 화성시 매향리 부근에 살던 10~12세가량의 한국인 소녀가 3도 전신화상을 입고 어머니와 함께 8㎞ 떨어진 미군 막사까지 겨울바람을 가르며 걸어왔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캐드월러더는 “소녀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집에서 불을 피우다가 휘발유 통이 터지는 바람에 화상을 입었다”면서 “턱에서부터 허리까지 신체 전면부에 상처를 입었고 이웃 주민이 치료한다면서 검은색 타르 같은 물질을 화상 부위에 발라 놓아 그대로 방치하면 감염으로 사망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캐드월러더에 따르면 당시 부대 군의관은 2시간 이상 걸려 소녀를 치료했고 이후 6주간 소녀와 어머니는 치료를 받기 위해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부대를 방문했다. 하지만 감염 부위를 완전히 치료하고 흉터를 최소화하려면 더 나은 치료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 육군이동외과병원(MASH) 소속 헬기 3대가 부대에 도착했다. 캐드월러더는 이 소녀를 부산에 있는 미군 군병원 화상병동에 보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부대장에게 요청해 특별 승인을 얻어냈다. 그는 헬기 이륙시간에 맞추기 위해 한국인 통역과 지프차를 타고 무작정 진흙탕 도로를 달려 소녀의 집을 찾아냈고 겨우 시간에 맞춰 소녀를 헬기로 후송했다. 그는 “당시 한국 민간인이 헬기로 후송돼 치료를 받는 일은 흔치 않았다”면서 “딸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자 했던 한국인 어머니에게 큰 존경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캐드월러더의 소망에 따라 ‘화상소녀 찾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현재 70대로 추정되는 이 소녀를 찾게 되면 캐드월러더와 감격의 재회를 주선할 예정이다. 제보전화는 1577-0606.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부고] 김윤호 前 합참의장 별세

    제18대 합참의장을 지낸 김윤호 예비역 육군 대장이 지난 12일 오후 6시 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84세. 고인은 1950년 7월 육군사관학교 10기생으로 임관해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제9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 제1야전군사령관, 합참의장 등을 지낸 뒤 예편해 대한석탄공사 및 한국가스공사 이사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끈 12·12 사태 때는 신군부 세력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15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영결식을, 오후 3시 30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합참장으로 안장식을 치른다. 유족은 부인 정필영 여사와 아들 수창·수홍씨, 딸 수진·수영씨.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다. (02)2072-2091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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