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6·25
    2026-06-28
    검색기록 지우기
  • C-17
    2026-06-28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343
  • 남북이산상봉/ 속속 드러나는 애타는 사연들

    남북 이산가족들의 서울 상봉 이틀째를 맞은 16일 남과 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숨겨졌던 사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인민예술가 정창모(鄭昶謨·68)씨의 남과 북 가족에는 화가가 둘이나 더 있었다. 이날 정씨를 처음 만난 조카 진규(鎭圭·32·전북 전주시 효자동)씨는 전라북도 미술전에서 입선하는 등 현재 전주에서 활발히 작품활동을 펴고 있다.진규씨는 50년만에 만난 삼촌으로부터 북에 있는 삼촌의 큰아들 성혁씨(34) 역시 화가라는 소식을 들었다.정창모씨는 전통산수화를 주로 그리며 진규씨 역시 현대 수묵화를 그려 화풍도 비슷한 편이다. 또 외증조할아버지인 고(故) 이광렬 화백이 고암 이응로 선생을 가르쳤다는 것도 북에서 온 삼촌으로부터 처음 듣는 집안 내력이었다. ■아직도 까만 머리에 비녀로 쪽을 진 고승남씨(78·강원도 강릉시)는 50년만에 내려온 조카 민병승씨(69)로부터 북에 남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50년을 수절하고 살아온 고씨는 “남편이 재혼했다는 소식에 앞서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면서 “영감이 북에서 재혼해 아들 3형제를 둬 며느리도 둘을 보았다는 말에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의학박사가 돼 돌아온 형 신승선씨(69)를 만난 창선씨(62)는 형의막내아들 귀남씨(24)가 평양교예단원으로 두 번이나 서울을 방문했던사실을 처음 들었다. 형으로부터 널뛰기 묘기를 보인 사람중 하나가 바로 귀남씨였다는사실을 전해들은 창선씨는 “미리 알았으면 조카가 서울에 왔을 때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면서도 “형이 평양의 대형병원외과팀 총책임과장이고 조카는 교예단원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뒤늦게 상봉장을 찾은 황모씨(75)는 북에서 온 동생(68)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말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지난 50년 동안 자식들에게조차 존재를 알리지 않던 동생이었다.황씨는 6·25 당시 북으로 간 동생 때문에 자식들이 냉전시대의 산물인연좌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판단, 동생과의 만남을 포기했었다. 3년 전부터 북에 있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매에 걸렸지만 정작동생을 만날 자신은 없었다. 수없이 망설이던 황씨는 결국 뒤늦게 상봉장을 찾았다. 이창구 김재천기자 window2@
  • ‘83년 이산가족찾기’ 아나운서 李知娟씨

    지난 83년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준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진행했던 이지연(李知娟·여·52))씨도 15일 북에서온 오빠 리래성씨(68)를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언니들과 함께 오빠를 만났으며 어머니가 ‘새언니에게 주라’며 유품으로 남긴 금가락지 5돈을 오빠에게 선물로 줬다.이씨는 “17년전 이산가족 생방송을 하면서 참았던 눈물을 오빠를 만나 흘렸다”고 감동의 순간을 말했다. 이씨는 6.25당시 북한의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오빠가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남산 대한적십자사를 찾아 상봉 신청서에 ‘리점봉’이란 자신의 본명을 적었다. 이씨는 6·25전쟁이 끝난뒤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오빠의 편지가 와 그 주소로 연락을 했으나 ‘그런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은 이후 오빠와 소식이 끊겼다.오빠의 월북 때문에 이씨의 가족들은 60,70년대 경찰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이씨는 50년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빠를 기다리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5월 고향인 군산지법에 실종자 처리신고를 했다.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할 때 남한에서 헤어져 있는 다른 분들의 사연이 너무급해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었다는 이씨는 “죽은 줄로알았던 오빠를 만나뵈니 그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할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특별취재단
  •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눈물이 바다를 이룰때까지…

    서울과 평양에서 마침내 눈물의 큰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흔히 눈물은 슬프고 안타까워 흘리는 것이지만 이번만은 너무나 가슴이 벅차서 흘리는 눈물일 줄이야!우리겨레가 역사적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린적이 과연 몇번이나 될까.반세기 동안 맺히고 맺힌 한과 응어리를 단숨에 확 풀어버리는 순간의 이 뜨거운 것.기쁨에 겨우면 눈물이 절로 난다는데 이산가족의 눈물이야말로 기쁨을 초월한 인간이 누릴수 있는 최상 최고의 경지에서 치솟은 환희의 상징물이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는 꾸준히 이산가족 상봉을 시도해왔다.15년전 KBS가북에서 온 이산가족의 상봉과 결합을 도모하여 눈물의 홍수를 자아낸바 있지만 그때 필자가 쓴 시 ‘바보상자가 나를 울렸다’는 바로 이산가족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었다. 나는 18세 때 고향인 원산을 떠나 혈혈단신 38선을 넘어와 지금 백발이 성성한 칠순에 접어들었지만 부모의 생사와 형제들의 소식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분단의 아픔과 한을 해학과 유머로 얼버무리고있지만 패전국도 아닌 우리가 왜 독일모양 남북으로 갈려야만 했는지그게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 어머니! 부르는 소리를 잊은지 50여년! 그래서 이산가족을 다룬 작품에서 ‘죽는 그날까지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아버지 어머니 부르게 해다오’라고 절규하기도. 몇해전 일본의 시지 ‘시와 사상’이 인권문제 특집을 했을 때 내게도 청탁이 있어 이 작품을 번역해서 보냈더니 권두에 다룬 것을 보고 우리의 이산가족이 세계적인 인권문제로 부상되어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이산가족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의 절규쯤은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있는듯 하지만 이웃나라에서는 꽤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나를 두고 한국의 윤리시즈라고까지 부르고 있지만 율리시즈는 만년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느냐고 그보다 더 혹독한 처지임을 실토한바 있다. 하지만 해방 55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율리시즈 신세는 일단 회복한듯 하다. 남북의 비행기 KAL과 고려항공이 남북을 오가기도 처음 있는 일.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진 오후 4시40분 대동강이 남쪽의 눈물을,그리고 한강이 북쪽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식의 얼굴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채 기진해버린 95세의 할머니,오빠를 부등켜 안고 통곡하는 누이,피는 이데올로기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상봉의 기회를 아직 누리지못하고 있는 이산가족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수목을 합친 것만큼이나 많다.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지만당장에 상봉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부모들의 생사확인이나 가족들의소식만이라도 알았으면 일단 恨은 풀릴 것이다. 6·25 사변전처럼 안부를 전하는 편지 왕래만이라도 될 수 있다면오죽이나 좋을까.겉치레의 효과보다 실속있는 결속이 더 절실하다. 그동안 남북간의 대화를 통한 좋다만 있는 간혹 있었지만 지속성이없었다. 바라건데 이번의 이산가족 상봉이야 말로 남과 북에서 흘린 강물이바다를 이룰 때까지 온 겨레여 울고 또 울자. 김광림 시인·원산출생
  • 남북이산상봉/ 北 국어학자 류렬씨

    “어디보자,내 딸 인자야.돌아가신 네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았구나” “아버지.얼마나 보고 싶었다구요” 북한 국어학자 류렬씨(82)와 딸 인자씨(59·부산시 연제구 연산동)는 부녀를 갈라놓았던 반세기 세월에 대한 원망을 씻어내기라도 하듯서로를 부둥켜 안고 목놓아 울었다. 인자씨는 “아버지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보고 싶을 때면 한장 밖에남지않은 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 TV를 통해 아버지 얼굴을 본 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라며 반세기 동안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를거듭 불렀다. 류씨는 딸에게 “내 일생을 엮은 TV영화가 있는데 봤느냐”면서 북한에서 국어학자로서 유명세를 떨친 자신의 삶에 대해 말했다. 이어 인자씨가 여든을 넘긴 부친의 건강을 걱정하며 “아버지 오래사셔야해요”라고 하자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영양관리하면 아흔살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하더라”며 자신감을 보였다.6·25당시 홍익대 교수로 재직했던 류씨가 딸과 헤어지게 된 것은 1·4후퇴때.외삼촌에게 딸려 딸 인자씨를 피란시킨 후 인민군에 입대,월북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북녘 땅서 딸 만난 김장녀씨

    15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53년 만에 꿈에 그리던 북의 딸 이영월(李永月·56)씨를 만난 김장녀(金長女·79·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씨는 오열로 터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딸을 만난 기쁨도 잠시,아들을비롯해 황해도 수안군 외암리 일가붙이의 대부분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머니 김씨가 친척들의 안부를 묻자 “작은 아버지,막내 외삼촌은 다 돌아가셨으며 오빠는 전쟁통에 죽었다”는 비보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남과 북의 모녀는 다시 한번 끌어안고 목을 놓고 울어야 했다. 김씨가 고향인 외암리에 아들 영화(당시 7세),딸 영월씨(당시 3세)를 놓고 남으로 건너온 것은 해방 직후인 47년.농사를 짓던 김씨 부부는 남쪽이 살기는 낫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이를 친척 집에 맡기고한달된 갓난 딸을 데리고 강원도 춘성군 사북면 지암리에 정착했다. 자리를 잡으면 두 아이를 데려 올 작정으로 틈틈이 편지도 주고 받았다.그러던 중 3년 뒤 6·25 전쟁이 터지면서 혈육의 왕래길은 완전히끊긴 것이다. 김씨는 남에서 4남매를 더 낳아 남과 북에 6남매를 둔 셈. 북의 형영화씨의 사망이 확인됨에 따라 사실상 이씨 집안의 장남이 된 영걸(永杰·44·회사원)씨는 “혹시나 했는데 결국 형과 친척들 대부분이돌아가셔서 뭐라 할 말이 없다”며 울먹였다. 고려호텔에 여장을 푼 김씨의 짐꾸러미에는 살아 있는 것으로 믿었던 큰 아들 영화씨와 며느리,그리고 손주들에게 줄 시계와 금반지 등선물이 가득 했으나 이제 고향의 선산 묘에 바칠 수밖에 없게 됐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남북이산상봉/ 北 최고 인민화가 鄭昶謨씨

    “춘희야,남희야.이게 얼마 만이냐.정녕 50년 만이냐”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로 활동중인 정창모(鄭昶謨·68·만수대창작사인민예술가)씨는 15일 여동생 춘희(61)·남희(53)씨를 만나는 순간두 동생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오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감싸 안고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비벼댔다.50년전 다정했던 오누이로돌아간 것처럼. 정씨는 여동생 춘희씨가 “어머니는 오빠를 잃은 고통에 하루도 마음 편히 사신 날이 없었다”며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문갑과 화분을 건네자 얼굴을 감싸쥐며 오열했다. 정씨는 “50년 세월이….50년 세월이….원망스럽다”면서 반세기의생이별을 한탄하면서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더란 말이냐.아들이이렇게 왔는데”라며 눈물을 감출 줄 몰랐다. 정씨는 6·25전쟁 당시 전주북중(현 전주고) 5학년때 의용군에 입대,월북했으며 평양미술대학 졸업후 공훈예술가를 거쳐 89년 인민예술가 반열에 올랐다.정씨는 현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과 국가작품심의위원 등을 맡고있다.정씨의 76년 작품 ‘비봉폭포의 가을’은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인 금수산의사당에 걸려있다. 정씨의 작품은 북한작가로는 처음으로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된다. 황수정기자 sjh@
  • 언론사 사장단 訪北 7박8일/ 金위원장 대화록-3

    ◆김 위원장 지금 이 탕은 대동강에서 잡은 숭어탕입니다.수령님이제일 좋아하는 민물 음식입니다.한강에 숭어가 잡히나요?◆방북단 한강 물이 맑아지면서 숭어가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 우리 군대가 (6·25)전쟁 때 낙동강까지 갔었는데 집집마다 동아리에 막걸리가 있어서 두세 사발씩 먹고 비리비리 하는 바람에 전쟁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정주영 영감이 막걸리를 30가지나보내와서 조금씩 조금씩 먹어봤는데 그 가운데 아주 맛 좋은 게 있어서 ‘이게 제일 맛있더라’고 알려주니까 정회장이 ‘포천 막걸리’라고 대답하면서 어떻게 알아냈느냐며 깜짝 놀랍디다. 의사가 술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그만 먹고 포도주를 먹습니다.그런데 이태리는 우리가 포도주 원조라고 하고 그리스도 스페인도 우리가 포도주 원조라고 하는데,역시 포도주는 프랑스 산이 최곱디다. (김 국방위원장이 일어서서 포도주 잔을 들고 각 테이블에 앉은 언론사 사장들과 일일이 포도주 잔을 부딪치고 홀 전체를 한 바퀴 돌았다)◆김 위원장 (스테이크가 나오자)이 고기가 하늘소 고기입니다.당나귀라고 부르던 것을 주석님이 기분 나쁘다고 하늘소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장명수 사장,남쪽에 남존여비가 있습니까?◆방북단 네,약간 있습니다.(웃음)북에도 남존여비가 있습니까?◆김 위원장 많이 있지요.남녀평등이란 말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남존여비가 있다고 봐야죠.봉건유교사상을 얘기하면 중국보다 한국이셉니다.유교 본토인 중국보다 중국이 유교사상을 수출한 나라에서 오히려 위세가 더 강합니다. ◆김 위원장 남측이 먼저 착공하세요.그러면 즉시 우리도 착공하겠습니다.상급회담에서 착공 날짜를 빨리 합의하십시오.내가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국정원장에게도 말했는데 날짜가 합의만 되면 우리는38선 분계선 2개 사단 3만5,000명을 빼내서 즉시 착공하겠습니다. (오후 2시에 간부 한 사람이 김 국방위원장에게 다가와 회의시간이됐다고 보고하자….)◆김 위원장 회의는 내가 가는 순간 하라고 하시오.남측과의 사업이회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방북단 금년 안에 서울을 방문하시겠나요?◆김 위원장언론사 사장들이 톱 뉴스만 빼 갈려고 그러는구만….나는 이번 가을에 러시아를 갑니다.푸틴이 간절히 원해서….블라디보스톡 주지사가 푸틴 대통령과 중국 대통령,또 나를 초청해서 큰 미팅을하고 꼭 연설 한 마디씩만 해 달라고 해서 가겠다고 약속을 해 줬습니다.그런데 이 주지사가 푸틴 대통령에게 일본에 대해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푸틴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톡에서일본에게 큰 소리를 치고 나서 9월에 일본을 그냥 갈 수 있겠느냐고얘기했죠.일개 주지사보다 사실 러시아 대통령 초청이 더 중요합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서울을 가야 합니다.국방위원회와 외무성이 토론 중인데 아직 보고를 못 받았습니다. 남한과의 광케이블이 결정되면 1초도 안 돼서 남쪽에 알릴 것을 알려줄 수 있게 됩니다.푸틴 대통령이 한국에 가죠?가을에 가나요?◆방북단 서울에서 평양 올때 북경에 갔다가 다시 돌아 왔는데 무엇때문에 돈 더 들이고 시간 더 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까?곧바로 올수 있도록 할 수 없겠습니까?◆김위원장 직항로 문제는 정부 내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고 군부가문제인데,군대 문제는 내가 말해야 직항로가 열리게 돼 있습니다. 큰 대표단은 직항로로 곧바로 오십시오.남북 모두가 휘발유를 사서쓰는데 무엇 때문에 멀리 돌아서 다니면서 중국에게 돈 써 가며 굽신거리나. 직항로를 하면 비행기에서 특수카메라로 다 사진을 찍는다고 군부에서 반대를 하더라고.그래서 내가 그게 무슨 소리인가.이미 인공위성이 다 우리 사진을 찍고 있는데 비행기 타고 찍는다는 게 문제될 게있는가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직접 다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에너지도 없는 나라에서 남측이나 북측이나 모두 휘발유를 사서 쓰는데 무엇 때문에 서해로 나가서 돌아가지고 서울과 평양을 다닐 필요가 있습니까.무엇 때문에 우리가 돈을 주고 멀리 돌아다니고 중국에 아쉬운 소리 해 가면서 돈을 주나요. (박 장관에게)가수 이미자 김연자 이런 사람을 좀 데리고 오세요.내가 초면에 쑥스러워 이 사람들과 뭐라고 인사를 하나.구면인 박 장관이 함께 있어야지.남측 가수가 평양에 오면 내가 목란관에서 시연을보고 평가한 뒤 큰 극장에서 인민들에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방북단 남측의 주필과 논설위원 등을 북한에 올 수 있게 초청해주세요. ◆김 위원장 남북언론 간에 합의문을 만들었는데 무슨 초청이 필요합니까.이제는 초청은 필요하지 않습니다.오고 싶으면 언제나 오라고하십시오. ◆방북단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십니까. ◆김 위원장 나는 생활을 사무실에 앉아서 우울하게 보내지 않습니다.인민 속에 들어가 노래하며 즐겁게 함께 보냅니다.간부들을 만나면틀거리를 합니다.간부들을 보면 신경질 나요.이 사람들은 고정된 틀속에서 잘 변화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거의 지방에서 인민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수영도 하고 말도 일주일에 한두 번 탑니다.시속 60㎞까지 달립니다.11살부터 하루 약 8㎞ 이상씩 40∼60㎞ 시속으로 말을 타 왔습니다.남측에서 경마하는사람을 보내주면 내가 함께 타 보겠습니다. 수면시간은 하루 4시간 정도 입니다.나는 조직비서 생활을 20년 해왔습니다.나는 모든 업무보고를 새벽3시까지 받아 반응을 다 종합해서 주석님께 보고를 드리고 나면 새벽 4시가 됐었습니다.이런 조직비서 생활을 20년간 해 와서 그게 버릇이 됐습니다.새벽 3시까지 종합보고 준비를 해 왔지요. ◆방북단 춘향전과 비천무 등 네 가지 영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김 위원장 비천무가 뭡니까.중국에서 촬영한 것인가요?내가 영화본 소감을 광케이블을 통해서 1주일 내에 보내겠습니다.내가 정치가가 되지 않았으면 영화 애호가나 평론가나 제작자가 됐을 겁니다. ◆방북단 통일 시기는 언제쯤 될까요. ◆김 위원장 그건 내가 맘 먹을 탓입니다.적절한 시기라고 말할 수있지요.이런 표현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김 위원장 현대에게 개성 관광단지와 공업단지를 꾸밀 수 있도록개성을 줬는데 이건 6·15 선언 선물입니다.그래서 서울 관광객들을개성까지 끌어들여야겠습니다.공업단지도 해주보다 개성에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관광 공업단지가 생기면 이것저것 보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겠느냐’…이렇게 얘기를 해 줬더니 정몽헌이 입이 찢어져 갔습니다.현대는 맨 먼저 우리와 거래를 했고,또 영감님이1,500마리 소도 가지고 왔는데 성의를 무시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온 김에 부지를 보고 가라고 했더니 보고 갔습니다.현대에 특혜를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북남 관계를 제일 먼저 뚫고 소도 아버지가 가져왔는데…. 개성에는 고적들이 많습니다.고려 왕건과 관련된 것도 그렇고 선죽교도 있고,박연폭포도 있습니다.서울서 오기도 쉽습니다.거기가 거기죠. ◆방북단 남북한에서 백두산과 한라산 관광을 100명씩 교차관광으로하면 어떻겠습니까?백두산에 있는 지리학자가 한라산 백록담을 꼭 보고 싶다고 그럽디다.그 학자는 노력영웅이라고 하던데요…. ◆김 위원장 그럼 99명을 우리가 선택할테니 1명은 박 장관이 선택해서 100명을 연내에 교차관광 시킵시다.여러분들은 천지의 일출을 보셨지요.나는 한라산 일출을 보고 싶습니다.남측은 백두산 관광,북측은 한라산 관광을 하되 북조선 언론인단이 한라산을 봐야죠.상징적으로 남측은 백두산을,북측은 한라산을 관광하는 의미가 큽니다.◆김 위원장 나는 원래 사람을 만날 때는 어디에서든 만납니다.비행기에서도 만나고 배에서도 만납니다.정몽헌회장이 원산에 배를 타고와서 내가 배에 가서 만났지요.배에서 불고기도 구워 먹었는데 몽헌회장이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한우 고기 맛이 좋다고 했는데 검증(검역) 하려면 한 40일 걸릴 겁니다.9월에 한우 고기를 먹어보자고 했습니다.나는 언론인 대표들을 만나기 위해서 어제 밤 1시에 평양에 돌아왔습니다. 금강산에 있는 절들이 다 부서졌습니다.정몽헌이가 내금강 관광권을달라고 요구를 해 와서 절을 다시 잘 지어주면 내금강까지 연장해 준다고 했지요. ◆김 위원장 내가 민족이 다같이 힘을 합쳐 나가야지 그런 복잡한 얘기들은 갈아치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북남 합의를 모두가 힘을 합쳐이행하면 되지 무슨 단체들을 두고 친자식과 의붓자식이 따로 있다고하면 안됩니다.그러면 통일이 안됩니다.내가 다 같이 가야 된다고 강력히 이야기하고,이 얘기 저 얘기 나오는 그런 행사는 하지 말라고했더니 이번에는 행사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지요.◆김 위원장 판문점은 50년 산물인데 개성 공업단지도 조성이 잘 되고 하면 우리가 새로 길을 내야 합니다.판문점은 50년도 산물로 열강의 각축의 상징인데 판문점은 그대로 남겨놓고 새로운 길을 경의선따라 내야 합니다.몽헌이한테 이런 이야기했더니 또 입이 찢어지더라고요. 조선 문제는 민족끼리 동조해서 새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경의선 철길 따라 개성에 새 길이 나는 의미가 있는데 언론도 여기에 동참해 주세요.50년대 산물인 판문점을 고립시켜야 합니다.그리고 금강산과 설악산 관광을 연결하는 것은 이천공오년(2005년)에 할 일입니다. ◆방북단 만화영화와 컴퓨터 온라인 게임은 국제적 수준입니다.공동으로 중국에 진출하면 돈을 많이 벌 수가 있습니다. ◆김 위원장 북남이 함께 영화나 제작물을 만들면 남쪽이 50 가져가고 북측이 50을 가져가고,돈이 다 우리 땅에 떨어집니다.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다른 나라와 만들어야 합니까. ◆김 위원장 박정희 평가는 후세들이 해야지 동참자들이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 때 그 환경에서는 유신이고 뭐고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소위 민주화도 무정부적 민주화가 돼서는 곤란합니다. ◆방북단 미국과의 수교는 언제쯤 될까요. ◆김 위원장 내 말 떨어지면 내일이라도 미국과 수교합니다.미국이테러국가 고깔을 우리에게 덮어 씌우고 있는데 이것만 벗겨주면 그냥수교합니다. 그런데 일본과의 수교 문제는 복잡합니다.과거 문제도 있고,청산해야 할 문제도 있지요.일본이 부당한 해명을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명치유신 때부터 따져야지요.일본은 일제 36년을 우리에게 보상해야 합니다.나는 자존심 꺾이면서 일본과 수교는 절대로 안 합니다. 작은 나라일수록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영사 대사 관계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주권국가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김 위원장 내 힘은 군력에서 나옵니다.내 힘의 원천으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첫째가 모두가 일심단결하는 일이고 두번째가 군력입니다. 외국과 잘 되어도 군력이 있어야 하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내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다른 나라와 친해도군력을 가져가야 합니다. 정리 진경호 박찬구기자 jade@
  • 언론사 사장단 訪北 7박8일/ 金위원장 대화록-1

    방북 언론사 대표단은 12일 낮 12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평양시 중구 목란관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초청 오찬을 가졌다.오찬에는 북측에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의장 겸 노동당 과학교육 비서,김용순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정하철 선전선동부 부장,김양건국제부장,강능수 문화상,최칠남 로동신문 책임 주필(사장),차승수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 등 당·정·언론계 고위인사 30여명이 참석했다.남측에서는 차일석(車一錫) 대한매일 사장과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최학래(崔鶴來) 한국신문협회 회장,박권상(朴權相) 한국방송협회 회장 등 방북 대표단 56명 전원이 참석했다.오찬에 앞서신문협회와 방송협회 회장단은 김 위원장과 접견실에서 20분간 환담했다.접견실 환담과 오찬 대화내용을 소개한다.평양 현지에서의 기록은 오찬에 참석한 4명의 사장들이 맡아 정리했다. ◆김 위원장 통일문제는 지금까지 양측 모두에 문제가 있었습니다.북남 공히 과거 정권 탓입니다.체제유지를 위해 양측 정부가 통일 문제를 모두 이용해 왔습니다.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뤄진 6·15 선언 이후 많이 달라졌습니다.남측 언론 비판도 그렇고,야당 비판은 강하지만….남측은 관료가 그렇게 힘이 있는 것 같지 않더군요. 남북장관급회담 1,2차에서는 인사하는 수준 정도로 하고 3차부터는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여 나가겠습니다.남측 언론사 사장 대표단이 100명 정도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50명이 왔습니다.우리 언론사 사장 숫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언론사 숫자 면에서 남측이 언론의 형 역할을 해 줘야겠습니다. ◆방북단 북한 교향악단 오는 문제가 당초 8월 7일에 와서 14,15일공연하기로 돼 있는데 갑자기 8월 18일로 바뀌었습니다. ◆김 위원장 8월 15일 가서 공연하도록 하세요. ◆정하철 선전선동부장 네,보내겠습니다. ◆방북단 그렇게 갑자기 보내면 우리측이 준비가 곤란합니다. ◆김 위원장 남측이 불가능하면 어쩔 수 없지요.우리가 관료적입니다. ◆방북단 서울 답방은 언제쯤 하시겠습니까. ◆김 위원장 적절한 시기에 답방하겠습니다.빨리 해야 될 텐데…. ◆방북단 남북 정상을 시드니 올림픽에 초청할 경우 시드니에 가시겠습니까. ◆김 위원장 시드니에 가서 배우 노릇 하는 것 보다 서울을 먼저 가야죠.김 대통령한테 빚을 져서 서울을 먼저 가야 합니다.언론사 사장들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고,또 김 대통령 신의를 봐서라도 가서 만나야죠. ◆방북단 2박3일 방문으로는 제주까지 가실 수 없습니다.4박5일로 오세요. ◆김 위원장 내가 4박5일간 서울을 간다면 간부들이 반대를 합니다. ◆방북단 그럼 간부들 못나오게 해 놓고 새총으로 빨간 신호등을 쏘면서 나오시면 되겠군요. ◆김 위원장 그럼 잘 맞는 고무총 준비를 해 둬야겠구만. ◆방북단 국방위원장의 시조인 전주 김씨 묘가 잘 보존돼 있습니다. 화진포는 옛날 북한 땅이었는데 6·25동란 이후 남쪽 땅이 됐습니다. 개성과 화진포를 바꾸면 어떻겠습니까?◆김 위원장 안됩니다.북측에서는 본(本)은 이조 말기에 모두 팔아먹어버렸습니다.본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그래도 아직까지 양반에관한 생각들을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남쪽에 가서 그곳에 갈 수 있으면 시조 묘를 참배하겠습니다. ◆김 위원장 남측 언론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내가 남측 TV를 보기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 3주 전부터 입니다.그리고 남측 신문은 죽 보다가 8년 전부터 눈이 나빠져 지금은 잘 안봅니다.남쪽 신문 활자 크기는 얼마요?‘로동신문’은 폰트가 얼마인가?‘로동신문’과 비교해서 더 작습니까?◆방북단 아닙니다.‘로동신문’보다 활자 크기가 2배나 됩니다. ◆김 위원장 KBS는 섭섭한 게 많지만 이젠 나무라지도 않겠습니다.과거에는 관영방송이니 그랬을 것입니다.그런데 6·15 선언 이후 많이달라졌습니다.과거에는 본의 아니게 그랬을 것입니다.TV는 화면으로딱딱 잡아서 보여주는 것이라서 거짓말은 안됩니다.그런데 남측 보도로는 내가 와인만 한 잔 먹어도 술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과장을많이 합니다.외국 간에는 상호주의를 하지만 민족 간에는 무슨 상호주의가 필요하겠습니까.남측에는 이제 고용 언론이 없지 않습니까.이제 고용 언론은 안됩니다. 북조선 언론도 한라산 해돋이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보도 경쟁에서 북측 언론이 질 수 있으나 정확성에 관해서는 남측 언론 못지 않습니다.우리가 훨씬 정확합니다. TV는 나는 KBS만 봅니다.박 대통령 서거 3주 전에 TV를 보기 시작했는데 당시는 흑백이었습니다.남측 텔레비전은 NTSC방식인데 북조선은그렇지 않습니다.PAL방식을 쓰고 있는데 사실 색깔이 좀 떨어집디다. 서울신문 3,4 면인가…연재소설이 나는데 죽 봐 왔습니다.재미있습디다.지금도 연재합니까? 남측 방송의 보도 속도가 NHK보다 빠릅디다.행사할 때 보면 내가 수표(사인)한 직후 금방 방송되더군요. 여기 온 46개 언론사가 이번에 북조선에 와서 본 것을 똑같은 기사로 써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맥을 짚어 봐야 할 것 아닙니까. 보는 그대로 써 주면 됩니다.우리를 과찬할 필요도 없고 깎아내릴 필요도 없습니다.통일에 이바지하려면 통일에 동참해야 합니다.MBC도 10년 전에 김연자가 출연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김세레나도 봤고,허준 프로도 봤지요. 남측 TV대담을 내가 보는데 KBS가 어떨 때 보면 북남관계 일이 있자마자 금새 사람들을 모아놓고,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찬성이냐 반대냐 라고 얘기들을 하는데 내가 보면 북조선 실정 전혀 모르고 책만 보고 딴 소리를 하더군요.데려오시오.쭉 데려와서 이런 사람들이 북조선을 보게 해야 합니다.북에 뿔난 놈들 없으니 와서 봐야지요. ◆김 위원장 광고가 없어서 KBS TV를 내가 아주 좋아합니다.NHK도 광고가 없어서 좋고,국제정치도 잘 다루고 있고 프로그램을 점잖게 보내 보수적이어서 내가 좋아합니다. 그러나 중국 CC TV와 러시아 TV들은 관영인지 아닌지 매우 혼탁스럽습니다.국가소리를 내는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광고를 하지 않고 말이지요.나는 NHK와 BBC를 존중합니다. ◆김 위원장 판문점 연락사무소로 매일 신문을 넣어주십시오.우리가신문을 일본을 통해 돌아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까?우린 서로가 같은민족인데 얼마나 좋습니까.신문도 연락사무소를 통해서 다 읽었으면좋겠습니다.그게 어려우면 납본용으로 판문점을 통해 보내주세요. 우리는 달러가 없어 돈 내고는 못봐요.그냥 주기 어려우면 사장이본 뒤에 손 때 묻은 것을 보내 주세요.남측에서는 대외로 나가는 신문은 얼마나 됩니까?◆방북단 별로 많지 않습니다.그러나 교포들이 많은 미국에서는 이쪽제호로 현지에서 신문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코리아 타임스와 코리아헤럴드 같은 영자지는 해외에 많이 나갑니다. ◆김 위원장 대북관련 기사는 내가 다 봅니다.경제관계는 안 읽어도우리측 기사는 모두 읽습니다.그런데 여기 오신 46개 언론사 관련 기사를 다 보려면 일주일이나 걸려야 되겠지요. 나는 언론사를 위해서 일부러 잘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있는 그대로 보여야 합니다.이산 가족들이 고향 방문까지 하고 가족들을 만납니다.그리고 우리가 쌀이 모자란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는 주제에 그대로 보여줘야지 숨길 것 없어요.숨기면 오히려 의심을받습니다.우리는 같은 민족 아닙니까.진짜 한 민족입니다. 6·25는 (우리가) 열강에 희생된 것입니다.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왜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열강들이 부추겨 우리 민족을 희생하게 된 겁니다.이제 계산은 그만하고 덮어 놓을 것은 덮어 놓고 통일이라는 큰대업에 서서 인민들을 위해 선구자 역할을 언론이 해 줘야 합니다.
  • 집중취재/ 남북교류 특별법 제정 시급

    *상속-경협등 법적분쟁땐 속수무책.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교류 확대에 따라 가족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을보완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8·15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간 화해분위기를 달구고 남북 교류의 활성화를 가져와 이산가족간의 중혼(重婚)과 상속문제,북한의부동산 문제와 남북 문화·경제교류 확대에 따른 이중계약·지적재산권 등 법적 분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 주민의 대한민국 법률 적용이나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가능성도 예상돼 법적 문제해결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가족법과 관련해서는 ▲고령 이산가족의 중혼인정 여부와 효력 범위 ▲북한주민의 호적취득 여부와 절차 ▲북한 상속인의 상속권 인정여부와 상속대상과 범위 등이 주요 대상이다. 남북교류 증가에 따른 경협이나 관광 등을 통해 남북이 법률상의 갈등을 빚을 개연성도 있다.남쪽의 개인이나 회사가 북한 법정에서 재판받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북한법 전문가들은▲투자보장협정 ▲2중과세 방지제도 ▲결제제도 ▲지적재산권제도 ▲상사 등 민사분쟁 해결제도 ▲기업가들의 안전보장 제도 등에 대한법적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 지난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따른 통일정국에 대비,대통령령으로 ‘특수법령과’를 신설했다.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나타난 법률문제 등 외국사례연구와 남북한 법령을 비교하며‘통일법’을 준비해 오고 있다.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도 지난 94년부터 통일에 대비한 사법정책을 마련하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따라 예상되는 법적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북한법과 사법정책에 대한 연구작업을 계속해왔다. 법률 전문가들은 “법무부와 대법원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가족법과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연구를 이제는 공론화해 공감대를 모아 나가야할 때”라면서 “남북 이산가족과 경협과 관련해 예상치 못했던 법적 문제가 대두될 수 있으므로 ‘이산가족특별법’ 등 특별법 제정이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종락기자 jrlee@. *외국의 사례. 중국과 대만은 이미 70년대부터 통일에 대비,법적인 문제를 정비해왔다. 이들 국가는 우선 중혼문제에 대해 87년 ‘중혼에 있어서는 후혼(後婚)이 유효하고 부부가 각기 재혼한 경우에도 중혼한 날로부터 옛 혼인관계가 소멸한다’고 규정했다. 대만은 이 법이 적용되기 시작한 87년 11월1일 이전에 중혼 또는 사실혼 관계가 있어도 간통죄 처벌을 면해주고 있다. 또 상속문제에 관해서도 대만과 중국은 ‘대륙지구와 대만지구 인민 관계법’에 따라 양국민이 동등한 권한을 갖도록 했다. 중국은 상속재산이 중국에 있는 경우 대만거주 상속인은 본인과 대리인을 통해 상속에 참여할 수 있으며 분쟁이 발생하면 중국 인민법원에 제소할 수 있게 했다. 대만은 ‘대만지구와 대륙지구 주민관계 조례’를 통해 훨씬 상세하게 상속문제를 규정하고 있다.중국 주민의 상속권을 인정하되 상속개시 2년이내에 서면으로 상속의사를 표시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상속권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중국인이 대만내 재산을 상속할 경우에도 총액은 200만 대만달러를 초과할 수 없으며 부동산 상속은 불가능하다. 역시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재산권에 대해 ‘동독지역의 토지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주에게 반환하고 예외적으로 금전보상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막대한 보상비용으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종락기자. *남북 가족법 어떻게 다르나. 남북한 가족법은 남녀평등과 일부일처제,중혼(重婚) 금지 등 기본원칙에 큰 차이는 없다.그러나 남한은 개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반면,북한은 집단주의 원칙과 혁명적 이념에 기초하고있어 상속·이혼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혼과 이혼=남한은 금치산자(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어 법원으로부터 금치산 선고를 받은 자)도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를 얻어 결혼할수 있지만 북한은 정신장애자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북한은 또 법적으로 만혼(晩婚)을 장려하고 있다.중혼의 경우 남한은 전혼(前婚)이 해소되면 후혼(後婚)을 인정하지만 북한은 극단적 일부일처제를강조,전혼이 해소되더라도 후혼은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남한은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을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경솔한 이혼’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고 있다. ◆부모자녀 관계=결혼외 자녀에 대해 남한은 부모의 인지(認知)절차를 거쳐야 결혼중 자녀와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는 반면 북한은 결혼외 자녀도 결혼중 자녀와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계부·계모나 양부·양모와 법적 관계를 맺더라도 친부모와의 관계가 소멸되지 않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새 부모와 관계가 성립되면 친부모와의 관계가 소멸된다. ◆가족과 상속=북한은 지난 55년 호주·호적제도를 폐지하고 남한과다른 신분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남한은 피상속인의 재산 일체를 상속대상으로,채무도 포괄승계(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 승계)가원칙이다.반면 북한은 사실상 소비재에 한정된 개별재산만이 상속대상에 포함되며 채무의 한정승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 *사법정책담당관 韓勝판사. “세밀한 부분까지 말할 수 없지만 남북관계의 진척 여부에 따라 호적 등 다양한 법적 쟁점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법부 차원에서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남북한 사법체계의 통합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 한승(韓勝·사시 27회) 판사는 “이산가족의재결합이 현실화하면 복잡한 가족법적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미 형성된 가족관계의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면서 이산가족 본인들의 의사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 판사는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라 야기될 가족법적 문제는 크게호적상의 문제,중혼(重婚)관계,상속관계,부모자녀관계가 있다”면서“이 가운데 특히 중혼관계와 상속관계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어지기 전 맺었던 전혼(前婚)의 인정 여부,전혼에서 태어난 2세들의 입적문제,북한 또는 남한 가족들에 대한 상속 가능 여부 등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케이스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 이들이 재결합하지 않은 시점에서 무엇이라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차분히 준비하면서 법적 문제를 대비해야겠지요” 그러면서도 한판사는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른 가족법적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정부의 ‘정책적 결정’에 따라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전망했다. 대법원은 지난 90년대초부터 관련 학계,검찰 등과 함께 ‘특수제도연구위원회’를 구성,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사법통합 방안 등을 연구해왔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소송사례와 예상 쟁점.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이산가족의 거리는 한층 가까와졌지만 중혼(重婚)이나 상속,부동산 등 법적 문제들이 현실화돼 이들의 ‘완전한 만남’을 방해하고 있다.이로 인한 소송도 잇따라 관련 법규 정비가 시급한 실정이다. ◆북의 가족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북에 아내와 두 자녀를 남겨둔 채 6·25때 월남,자수성가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S씨(지난달 사망·당시 86세)는 지난 5월 “북에 남은 가족에게 물려줄 재산30억원을 남에서 재혼한 뒤 얻은 자식들이 가로챘다”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했다. 실향민 2세인 Y씨도 지난 2일 “어머니가 북에 있는 큰 형 몫으로 남겨둔 재산을 막내 동생이 가로챘다”며 막내 동생을 상대로 상속등기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살아있는 내 가족,호적에 올려달라=8·15 이산가족 북측 상봉자 명단을 통해 북에 있는 동생의 생존을 확인한 김재환씨(70)는 지난달 27일 “죽은 줄 알고 사망신고했던 동생의 호적을 되살려 달라”며 서울가정법원에 호적정정 신청을 냈다. 호적상에 사망이나 실종선고된 월북 가족의 생존이 확인된 경우,각각 ‘호적정정 신청’과 ‘실종선고 취소신청’을 통해 회복이 가능하다. ◆관련 법 정비 시급=남에서 재혼한 사람이 북에 두고 온 아내의 호적을 되살리려면 현행 민법이 금지하고 있는 중혼에 해당된다.남북가족간 재산 상속이나 증여의 경우 남북을 넘나드는 재산반출·반입을 해야하지만 이에 대한 관련법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북한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문제도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법조계 관계자들은“이산가족의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행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록기자
  • 언론사 사장단 방북7박8일/ 김위원장 대화록-2

    ◆김 위원장 우리는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 로켓을 개발 중에 있는데미국은 자꾸 자기들과 전쟁한다고 우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우리는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로켓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로켓 한 발에 2∼3억달러가 들어가는데 미국이 우리 위성을 대신 쏴 주면 푸틴 대통령에게 우리가 개발을 안 하겠다고 얘기 했습니다.클린턴 정부가 얼마있으면 끝나는데 미국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할 지…. 과학기술과 첨단기술을 위해서 이런 얘기를 서로 웃으면서 그냥 웃는 얘기로 푸틴 대통령한테 한 것인데 푸틴 대통령이 아무 소리도 안하더니 내 얘기를 꽉 잡아 쥐고 그랬습니다. 농사 지어야 쌀을 먹는 것 아닙니까?로켓 연구해서 몇 억 달러씩 나오는데 그거 안 할 수 있습니까?위성 발사는 과학 목적으로 하는데 1년에 두세번 하면 한 9억 달러 들어갑니다.우리처럼 작은 나라에서 1년에 2발씩 쏘면 이건 비경제적입니다.수리남과 이란에 로켓을 판매하고 있습니다.로켓을 개발해서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어 2,3 발로 미국을 공격하면 우리가 미국을 이깁니까?그런데도 미국은 이것으로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미국이 골머리 아프겠지.우리한테 돈 주기는 싫고,과학자 연구는 막아야 하겠고,골치 되게 아플 겁니다. ◆방북단 푸틴 대통령에 친서를 줘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인가에서 보도를 했는데…. ◆김 위원장 왜곡 과장된 것입니다.나는 푸틴 대통령에게 친서 전달한 바 없습니다. ◆김 위원장 로켓 개발 조상은 소련입니다.러시아가 로켓 원조 국가인데 미국이 NMD다 뭐다 해서 소련을 제쳐놓고 우리만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합니다.이게 말이 됩니까?푸틴 대통령은 당연히 반대지요.푸틴이 서울 가게 돼 있는데,서울 가면 잘 물어보세요. 남측 언론이 나를 정신분열증 환자라고까지 했지요.미사일 문제는내가 만든 것입니다.나라가 작을수록 자존심을 굳게 세우고 열강 대국에 맞서야 합니다.북남 합쳐봤자 인구가 1억도 안 되는데 그럴수록명예를 중히 해야지요.대국에 비굴하거나 아첨하면 절대 안됩니다.남쪽의 경제 기술과 북쪽의 정신을 합작하면 강대국이 됩니다. 일본을이기고 36년간의 못 받은 보상도 받을 것은 받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큰 나라들을 찾아 다니나요.내가 평양에 앉아 있어도 여러 열강에서 나를 찾아 오지요. ◆김 위원장 노동당 규약도 고정 불변의 것은 아닙니다.언제든 바꿀수 있습니다.김 대통령이 북조선에 와서 ‘당 대회를 언제 하느냐’고 물어 ‘가을쯤 할 생각’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김 대통령이 ‘당 대회를 열면 할 일이 많겠습니다’라고 얘기해서 그렇다고 답변했습니다.그런데 준비했던 당 대회가 남북정세가 급히 바뀌어 모든 걸다시 준비하게 됐습니다. ◆방북단 규약을 개정한다면 남쪽의 보안법 개정과 연계시켜 정상회담 때 말씀하셨습니까?◆김 위원장 아닙니다.보안법은 남조선 문제입니다.과거에도 규약은고쳤으나 45년도에 만들어진 강령은 안 바꿨습니다.그런데 이 강령은해방 직후 40년대 것이어서 과격적·전투적 표현이 많이 있습니다. 당 간부들 가운데는 주석님과 함께 일하신 분들도 많고 연로한 분들도 많습니다.그래서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강령을 바꾸면 이 자리에있는 많은 사람들도 숱하게 물러나게 됩니다.그래서 강령을 바꾸면내가 숙청한다고 그럴 것입니다.남조선 국가보안법은 그건 남조선 법이고,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김 위원장 저마다 다들 간다고 야단입니다.남쪽에도 숨어있는 사람까지 치면 이산가족 숫자가 굉장할 것입니다.이곳에도 숨어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위원장(본인)이 남쪽에 간다고 하니 이젠 너도나도 가겠다고 나타납니다.여러분들은 사장단으로 60명 정도 와서 오늘 이 자리에 우리는 30명을 참석시켰습니다.이것은 인구 비례로 한 것이오. 전금진 동지,와서 사장들한테 술을 권하시오.언론사가 잘 써 줘야지,상급회담 아무리 잘 해도 소용없어요. ◆전금진 잘 부탁합니다. ◆김 위원장 청탁하지 마시오.언론이 알아서 써야….이산가족 문제는준비없이 갑자기 하면,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비극적 역사로끝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 버릴 수 있습니다.우리는 50년 간 서로가지워 버릴 일이 있는 처지입니다.50년도에 6·25가 일어났고, 지워버릴 역사가 있습니다.너무 인간적이고 동포애만 가지고 강조하면 안됩니다. 올해는 9월,10월 매달 한 번씩 하고,내년에 종합 검토해서 사업을 해나갑시다. 내년에는 이산가족들이 집에까지 갈 수 있게 해 보겠습니다.
  • 남쪽 7남매의 북 큰형맞이

    “누님이 지은 모시적삼 입고 고향서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꼬…” 50년만에 서울에서 만날 큰 형 권중국(權重國·70)씨를 맞을 준비를 한 13일 중호(重浩·56·서울 광진구 노유동)씨의 32평짜리 집은 7남매가 모여 선물 보따리를 꾸리느라 마치 잔칫집처럼 북적거렸다.서울에 사는 조카와 일가 친척 등 20여명이 하루 종일 집안을 가득 메웠다. 고향 경북 영주에 사는 순희(順姬·76·여),계희(桂姬·74·여),차희(且姬·66·여),중후(重厚·62),춘례(春禮·59·여)씨도 새벽 3시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중호씨 집 근처에 사는 막내 중수(重守·50·광진구 중곡동)씨까지 7남매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50년만에 만날 형 얘기로 꽃을 피웠다. 지난 49년 결혼해 신접 살림을 차리고 있던 중국씨는 이듬해 6·25가 나자 고향에서 인민군으로 징집돼 가족과 헤어지게 됐다.10년동안 수절하던 형수는 형제들의 권유로 개가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떴다. 7남매는 형님이 어떻게 변했을까,시누이는 어떤 여자일까 등 정담을 나누면서 선물 가방에 가족사진첩,목걸이,시계,오리털잠바,내의,양말 등을 정성스레 담았다.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남동생 중후씨가 “형님 환갑이 지난 10년전부터 형님 제사를 지내왔다”면서 “3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조금만 더 사셨으면 꿈에도 못 잊던 큰아들을 만날 수 있으셨을 텐데…”라고 말하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둘째 계희씨는 “50년만에 만나는 동생에게 내 손으로 지은 옷을 입히고 싶었다”며 손수 만든 하얀 모시적삼을 어루만졌다.계희씨는 “이 옷을 입고 부모님 산소에 술이라도 한 잔 따라야 할 텐데…”라면서 “형제가 50년 동안 갈라져 산 것도 억울한데 왜 고향에도 못 가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국씨가 고향에서 손수 베껴 만든 소학(小學)책까지 꼼꼼히 챙기던 7남매는 “조카 부부와 손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인데 50년 동안쌓인 이산의 한을 어떻게 선물보따리 하나로 풀 수 있겠느냐”면서도 “뭐 하나라도 더 보낼 것이 없는지 챙겨봐야 하겠다”면서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한편 평양으로 가족을 만나러 갈 실향민과 서울로 오는 가족을 맞을 남쪽 가족 모두는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면서 짧은 여름밤을 하얗게새웠다. 전영우기자 ywchun@. *방북탈락 이산가족-실향민들 추가상봉 소식에 '환호'. “우리도 갈 수 있다니 정말이냐” “정말 고향 방문이 가능하냐”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방북 언론사 사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산가족상봉이 9,10월에도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는 소식이 알려진 13일 밤 ‘8.15 방북단’에서 탈락한 이산가족들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일 안에 북의 가족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8.15 상봉 명단’에 포함됐으나 109세의 노모를 만나는 장이윤(張二允·72)씨에게 순위를 양보했던 우원형(65·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장옹에게 양보할 때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로부터 ‘다음번 이산가족상봉에는 1명이 가더라도 최우선적으로 포함시키겠다’는 말을들었는데 이처럼 빨리 갈 수 있게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기뻐했다. 6·25때 고향 충남 청양에서 의용군으로 징집돼 소식이 끊긴 셋째형 이상두씨(68)의 생존사실을 이번 명단 교환 때 확인한 상기(相起·60·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씨는 “탈락 소식을 들었을 때 누이와 남동생과 함께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서로 위로했지만 섭섭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면서 “다음번에형을 꼭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다려야겠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황해도 평산군이 고향인 정순용(鄭順溶·61·여·강원도 춘천시 동면)씨는 “최종 명단에서 탈락해 절망했는데 한가닥 희망을 가지게돼 기쁘기 그지 없다”면서 “북한에서 우리 네자매를 특히 귀여워해 주신 고모와 삼촌에게 남쪽에서 태어난 손아래 여동생 3명을 꼭 소개시키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예 처음부터 명단에 들지 못했던 실향민들도 추가적인 이산가족상봉 소식을 반겼다. 부인 장정희(張貞姬·71·서울 양천구 신월동)씨는 이번에 최종명단에 들어 북으로 두 명의 여동생을 만나러 가지만 자신은 명단에서 탈락한 평양 출신 김학구(金學九·82)씨는 “북에 살아 있는 일흔다섯살이 됐을 누이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갖게 돼 정말 기쁘다”면서 “심장이 안 좋지만 꼭 건강을 회복해 고향땅을 밟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고희를 맞은 이종권씨(70·인천시 남동구 구월동)는 “친지끼리 모여 고향 황해도 해주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면서 “고향에서 한번 더 고희연을 갖고 싶다”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전영우기자
  • [사설] 느닷없는 反美 시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9일 “정부가 급진세력의 무분별한 반미운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왔다.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노근리·매향리 등 미군관련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데도 정부가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이 총재의 느닷없는 ‘반미’시비에 먼저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노근리 문제는 6·25전쟁 당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에 대해 ‘진상을 밝히라’는 국민적 요구와 관련된 문제다.매향리 사격장 문제도 미공군의 사격훈련으로 이 지역 주민들이 입고 있는 엄청난 피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인도주의와 생존권에 기초한 이같은 국민적 노력을 어떻게 반미운동으로 왜곡해서 매도할 수 있는가.정부가 반미운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미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반미’는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한 사실을 이 총재도 알고 있을 것이다. SOFA 개정 문제도 그렇다.우리 주권을 침해할 정도로 턱없이 불평등한 기존협정의 내용을 “이제는 독일이나 일본 수준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게 국민의 요구다.이같은 국민의 열망에 따라 국회도 이 협정의 개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놓지 않았는가. 주한 미군이 우리 안보에 결정적인 요소라는 사실때문에 미군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것인가. 주한미군의 존재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자’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알 만한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지난 6월 평양회담에서 주한 미군의 존재와관련, 김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을 설복(說服)한 사실을 이 총재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총재는 “정부의 급진적인 통일정책이 계층적 이념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김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킴으로써 통일로 가는 노둣돌을 놓고 있을 뿐이다.통일은 먼 훗날의 일이다.김 대통령도 “통일과 관련,다음 정권의 몫을 남겨 놓겠다”고공언한 바 있다.남북관계의 개선은 민족의 이름으로 환영해야 할 일이지 결코 발목 잡을 일이 아니다.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부총재도 “민족화해에야당도 동참해야 한다”며 야당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는 마당이 아닌가. 이 총재가 느닷없이 대정부 공세를 펼치는 까닭은 이해가 간다.이산가족 상봉으로 상징되는 ‘눈물정국’에서 주도권 상실에 대한 위기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그러나 책임있는 지도자라면 정부와 국민,남과 북,한국과 미국간에갈등을 증폭시키는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
  • 반세기만에 띄우는 편지/ 상봉단에 못든 北오빠께

    “그리운 오빠께.50년을 기다려 왔는데 500일인들 더 못 기다리겠습니까.저의 남매가 양보해 다른 이산가족이 먼저 재회의 기쁨을 누린 것이라고 여기면 돌아가신 부모님도 마음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안종순(安鍾順·65·여·서울 강남구 청담동)씨는 친오빠인 종국씨(70)가순위에 밀려 이번 8·15서울방문단에 들지 못하자 11일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접고 다음을 기약하며 오빠에게 글로써 이산의 아픔을 달랜다.곁에서동생 종점씨(鍾点·56·송파구 방이동)도 거들었다. 안씨는 “50년만에 오빠의 얼굴을 보게 될 줄 알았던 저와 동생도 크게 실망했지만 나이가 많은 오빠가 혹시 낙심해 쓰러지지나 않을까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안씨는 ‘곧 만나게 될테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라는 위로의말로 오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다. 안씨는 지난 달 28일 13살때 헤어진 오빠가 북한에서 자신과 동생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여겼다.동생과 함께 대한적십자사로달려가 상봉신청을 한 뒤 설레고 초조한 마음으로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지난 8일 오빠가 최종 100명의 방문단에 들지 못했다는 통보를 받고 하늘이 꺼지는 듯 했다. 적십자사 직원의 소매를 붙잡고 신청은 제대로 됐는지,생사 여부는 확인됐는지 등을 묻고 또 물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안씨는 북측이 내려보낸오빠의 흑백 얼굴사진을 쓰다듬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안씨는 “복사된 사진이라 얼굴이 뚜렷치는 않았지만 윤곽은 영락없는 젊은시절 아버지의 얼굴었다”며 그러나 “혹시 북에서 유명 인사가 아니라 이번방문단에 끼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저린다”고 말했다. 오빠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여름 부모님과 3남매가 살던 경기도용인까지 인민군이 들이 닥쳤을 때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안씨는 “오는 15일 북한에서 손님들이 오면 그분들을 통해 편지를 전할 수있기를 빌 뿐”이라고 말했다. 안씨의 편지는 “다음 이산가족 상봉때는 반드시 만날수 있으니 그때까지몸 건강하세요.”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D-3/ 미리본 서울 단체상봉

    “오마니…”“여보…”“오빠…” 오는 15일 오후 4시쯤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1,900평 규모의 컨벤션홀은600여명이 한꺼번에 터뜨리는 울부짖음과 함께 감격의 ‘눈물 바다’를 이루게 된다.북에서 온 8·15 서울 방문 이산가족 100명과 그들의 남쪽 가족 500명은 단체상봉 장소인 이곳에서 반세기 만에 처음 그리운 얼굴을 서로 어루만질 수 있다. 가로·세로 각 81m의 바닥 넓이에 높이 17.5m의 장대한 컨벤션홀은 가족들600여명 외에도 상봉보조 요원 100명과 취재진,정부지원 요원 등 모두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정부는 컨벤션홀 중앙을 십자가 모양으로 갈라 포토라인을 설치하기 때문에상봉 구역은 대충 4개 구역으로 나뉘어진다.구역마다 테이블이 25개씩 총 100개가 설치된다.방문단 1명당 테이블 1개와 의자 6개가 배치된다. 방문단을 만날 남쪽 가족 500명은 상봉 시각 전까지 컨벤션홀에 미리 들어와 방문단의 입장을 기다리게 된다.테이블당 남쪽 가족 5명이 기다리는 셈이다. 상봉 시각이 되면 사방에 설치된 6개의 문에서 동시에 방문단이 입장한다. 전부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기 때문에 상봉 보조요원이 1명씩 따라붙어 지정된 테이블로 방문 이산가족을 데려간다. 상봉 과정에서 노인들이 충격으로 실신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컨벤션홀 안팎에는 의료진과 구급차가 대기하게 된다. 김상연기자 carlos@. *민간지원요원으로 평양行 이호철씨. “비록 정식 상봉단 일원은 아니지만 이번 방북길에 50년 전에 헤어졌던 누이동생과 남동생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의 민간지원 요원으로 뽑혀 평양에 가게 된 함남원산 출신의 소설가 이호철씨(68)는 가족상봉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조금의외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 찬’ 답변을 한다.사연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 싶으면서도 그의 확신에는 객관적이기 앞서 50년 동안의 기대가 잔뜩 묻어 있다. 6·25가 터진 해 17살의 몸으로 가족없이 단 혼자 남으로 내려왔던 이씨는지난 98년 모 언론사 취재주선으로 방북,평양과 백두산을 둘러보았다.고향원산에는 가보지 못했는데 당시방북직전 중국 옌볜(延邊)을 통해 네 살 아래 남동생,열 살 아래의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만을 전해 받았다.“평양에 갔을 때 그쪽 적십자 요원 등 여러 사람들과 친해 놓았다.이번에 그들이내 사정을 모른 체할 리 없을 것”이란 것이 소설가 이씨의 ‘확신’의 근거다. 원산고급중학(고교) 3학년때 내려온 이씨는 월남민을 다룬 수많은 소설을썼고 민주화투쟁에 나섰던 70년대 유신시절에는 당국의 조작으로 문인간첩단사건에 얽혀 수형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김재영기자 kjykjy@. *의료지원요원 故 장기려박사 아들 가용씨. ‘한국의 슈바이처’ 고 장기려(張起呂) 박사의 뒤를 이어 ‘참 의료’를실현하고 있는 아들 장가용 박사(서울대 의과대학 해부학과)가 꿈에 그리던어머니 김봉숙(金鳳淑) 여사를 만나기 위해 8·15때 평양으로 떠난다. 남측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100명의 의료지원요원으로 포함돼 방북하는 그는선친이 녹음한 어머니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꺼내 듣는 게 일과 가운데 하나가 돼 버렸다. 미국에 사는 친척을 통해 북한의 가족과 편지를 교환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고대하던 부친은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여보,통일될 때까지죽지말고 살아 주오”라고 되뇌면서 95년 86세로 눈을 감았다. 6·25전쟁은 그의 가족을 졸지에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아버지 장박사는어머니와 5남매를 평양에 둔 채 차남인 자신만을 데리고 잠시 남하했다가 생이별 했다.아버지는 영세민을 위한 무료진료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독신으로 살았다. 평북 용천 출신인 아버지는 경성의전(현 서울대의대)을 졸업하고 당시 최고의 명의로 일컬어졌던 백인제(白麟濟) 교수의 수제자로 외과의사의 길을 걸었다.40년부터 5년간 평양에서 기홀병원,김일성대학병원의 외과과장을 지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방송사 ‘이산상봉·광복절’ 특집프로 다채

    오는 15일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55주년 광복절을 맞아 각 방송사마다 풍성한 특집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산가족 상봉 KBS,MBC,SBS는 14∼18일 수시로 뉴스특보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생중계한다. 생방송 외에 KBS는 15∼17일 특별 기획 ‘북녘땅 고향은 지금’을 마련했다.송도원 해수욕장,성불사,함흥냉면 등 조선중앙TV가 촬영한 원산,사리원,함흥의 명승지와 별미 등을 소개하고 각 지역 출신 실향민을 초대해 이야기를나눈다.또 이산가족 상봉을 총정리하는 ‘이산가족 교환방문 3박4일의 표정’(18일 밤10시)을 방송한다. MBC는 가수 현미와 코미디언 남보원이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과 누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과정을 동행 취재한 ‘현미 남보원의 이산가족 상봉’(14일밤11시5분)을 방송한다. 또 남북의 대중문화와 유행,패션 등의 비교를 통해 남북한 생활상의 변화를살펴보는 ‘서울 50년,평양 50년’(16일 오후7시25분),상봉을 앞둔 이산가족의 기쁨과 설렘을 담은 ‘그후 50년 어머니,내일 뵙겠습니다’(14일오후5시45분)를 내보낸다. SBS는 월북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조명한 ‘묻혀진 반세기의 그리움-월북가족’(12일 밤10시50분),남북 이산가족들의 눈물겨운 사연과 뒷얘기를 듣는 ‘반세기 만의 망향가’(14일 밤12시5분)등을 방송한다. ■55주년 광복절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세 편의 다큐멘터리가 눈에 띈다.KBS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이끌어냈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의완결편인 ‘종군위안부 7년간의 기록-숨결’(13일 오후8시)과 미국 PBS가 제작한 한국인 종군위안부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침묵의 소리’(14일 밤11시30분)를 준비했다. EBS는 서울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을 통해우리나라의 뼈아픈 현대사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어느 일본군 위안부의 잃어버린 55년’(15일 오후8시)을 방영한다. 이밖에 KBS는 백범의 통일관을 알아 보는 ‘발굴 스티코프의 비밀수첩,김구는 왜 북으로 갔나’(12일 오후8시),연해주에 사는 한민족의 모습을 담은 ‘연해주에서 만난 4개국 한민족’(15일 오전11시)를 방송한다. MBC는 20여년 동안 한국 정치범을 도운 일본 가즈꼬 여사의 이야기를 다룬‘가즈꼬 여사는 70에 한국을 보았다-한·일 인권의 가교’(14일 오전11시5분),일제 당시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던 ‘선감원’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고발한 드라마 ‘선감도’(15일 밤10시5분)를 방영한다. EBS는 일본 오사카시에서 일고 있는 재일 민족학급의 풀뿌리 민족운동을 소개한 ‘섬나라 속의 섬-재일 민족학급’(14일 오후8시),흥사단 국토탐험대어린이들과 중국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본 어린이 다큐멘터리 ‘특집 난할 수 있어요’(15일 오후5시50분)등을 준비했다. ■라디오 특집 KBS 1라디오는 15일 오전 7시15분 ‘안녕하십니까 김종찬입니다’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의미와 문제점,앞으로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본다.EBS는 6·25때 헤어진 어머니에게 50년간 매일 편지를 써온 이창남씨의 사연 등을 다룬 ‘만남’(14일 오전11시)을 방송한다. 장택동기자
  • 류미영 北단장은 독립투사 딸

    북측 8·15이산가족 서울 방문단 단장인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은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류동열 장군(1880.3.26∼1950. 10.18)의 외동딸로 알려졌다. 류 위원장의 장남인 최건국씨(58)는 9일 연합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어머니는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류동열 장군의 외동딸”이라고 밝혔다. 류 장군은 평안북도 영변 출생으로 1907년 중국에 가 항일운동을 하다 체포돼 10년형을 언도받고 수형생활을 했다.출옥후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1939년엔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활동했다.8·15광복 이후 서울로 돌아와 미군정 통위부장(현 국방부장관)을지내며 남한 국방군 창설에 참여했다가 정부수립후 사임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같은 해 10월 병으로 사망했다. 북한은 90년 그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으며 현재 묘는 평양 교외 신미리에 있는 애국열사릉에 있다. 김상연기자
  • 반세기만에 띄우는 편지/ 장두현씨가 돌아가신 어버이께

    “한가위날,음식을 앞에 놓고 50년 세월을 아버님 어머님께 봉양 못한 죄 때문에 한숨짓고 울부짖습니다.…어머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소리치지만 대답이 없으시군요.…살아 생전 뵙지 못하더라도 이 불효자를 용서하시고 부디 만수무강 하소서.” 오는 15일 동생들을 찾아 북한을 방문하는 장두현(張斗顯·74·경기도 화성군 장안면)씨는 9일 지난해 추석명절 때 쓴 편지 등 북한의 부모님 묘소에바칠 30여통의 편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명절 때만 되면 전해지지 못할 줄알면서도 ‘부모님 보약 다리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편지들이다. 장씨는 지난 80년 추석부터 부모님이 나이가 많아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 부디 살아 계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장씨는 “행여 아내나 자식들이 괜한 짓한다고 핀잔이라도 줄까봐 한번 쓴편지는 남몰래 혼자서만 다시 읽고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고 말했다.그리고는 10년 동안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 방문을 신청하면서 그렇게도 그리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동생 6명만이 살아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씨의 고향은 평안남도 용강군 귀성면 별옥리.19살 때인 46년 어머니의 뜻에 따라 고향을 떠나 개성에서 공립사범학교를 졸업했고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그만 6·25전쟁이 나고 말았다. 공부하러 떠나는 아들을 진남포역에서 배웅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돼 돌아오라”는 당부가 마지막으로 들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장씨는 고향의 가족들을 데려 오기 위해 육군 장교가 돼 참전하기도 했고,나이가 들어서는 북의 부모를 만날 때까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술과 담배를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 쓴 편지에서는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향한 애타는 그리움을이렇게 적었다. “철 따라 피고지는 진달래는 무려 53번이나 피고 졌습니다.…남과 북이 엇갈린 155마일 휴전선 녹슨 철조망 밑에도 진달래가 피고지건만 한 많은 세월 속에 두고온 푸른 산하가 그리워서 울면서 잔뼈가 굵었고 50년 세월 속에늙었으나 해마다 쓰고 또 쓰는 편지는 전달할 길이 없구나.”장씨는 “비록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묘소 앞에 그동안 쓴 편지를 내놓고 못다한 불효를용서해 달라고 빌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D-6/ 상봉 앞둔 이산가족 표정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씩의 명단이 확정 발표된 8일 이산가족들은 앞으로 1주일이면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아울러 가족회의를 열어 남북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등 기대에 들뜬 하루를 보냈다. ●북한으로 갈 사람들 동생 김병선씨(57)를 만날 꿈에 부풀어 있는 병서씨(炳瑞·73·의정부시 목양동)는 “처음에 400명 안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만해도 최종 100명의 명단에 들어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고향 친구 20명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몬했다. 그는 “수염에 고드름이 생길 정도로 추웠던 고향에 있을 동생과 조카에게두툼한 내의를 꼭 선물로 주고 싶다”며 들떠 있었다. 여동생 임복선씨(72) 등 4남매를 만나러 갈 황해도 신계군 타지면 석교리출신 덕선(德善·76·여·서울 송파구 신천동)씨는 “함께 방북을 신청했다가 최종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남편(이윤원·80)이 손을 꼭 잡으면서 ‘잘다녀오라’고 축하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북한가족을 만날 사람들 맏아들 안순환씨(65)를 애타게 기다리다 지난달 30일 위암으로 서울중앙병원에 입원한 이덕만(87·여·경기 하남시초일동)씨는 “아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여행도 다녀야 하고 흰쌀밥도 지어줘야 하는데…”라면서 “하늘 땅 만큼 보고 싶은 내 아들,금쪽같은 내 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식사를 많이 해야겠다”고 눈시울을 붉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어머니 이씨를 간호하고 있는 작은 아들 민환씨(58)는 “아마도이번 상봉이 어머님 생전에 마지막 큰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눈물을 쏟았다. 계관시인 오영재씨(64)를 만날 동생 형재씨(62·서울시립대전산통계학과 교수)는 “어머님은 생전에 ‘영재도 없는데 뭐가 좋다고 사진을 찍겠냐’며한사코 사진기 앞에 서지 않으셨다”면서 “5년만 더 사셨더라면 꿈에도 그리던 형과 사진도 찍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대한적십자사 서울 중구 남산동 적십자사는 아침 일찍부터 ‘명단이 몇시에 발표되는지’를 묻는 전화가 쇄도했다.‘정말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려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이산가족찾기 신청접수처’ 자원봉사자 김혜영(金慧泳·19)양은 “북측방문자 명단이 방송으로 발표된 오후 1시부터 이산가족들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면서 “한 할아버지는 북에 있는 가족이 이번 방문자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말없이 전화를 끊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에서 큰 형 김현석(金顯碩·65)씨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적십자사를찾은 현기(顯機·61·서울 성북구 종암동),현광(顯光·47·서울 광진구 중곡동)씨 형제는 “8일 적십자사에서 나눠준 안내문에는 이번 상봉에 남측 가족을 5명으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북에 계신 형님이 찾는 가족은 8명인데 5명 밖에 못 만난다고 하니 가족들끼리 회의를 해 3명을 추려낼 생각을 하니걱정”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아산시 100세 趙媛鎬씨. “죽은 줄 알고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둘째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는데막상 어머니는 이를 모르고 계십니다” 이번 광복절에 상봉이 이뤄지는 이산가족 가운데 남한의 최고령인 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조원호(趙媛鎬·100·여)씨.할머니의 셋째 아들 이종덕(李種德·63)씨는 치매에 걸려 북한의 둘째 아들을 만나는 줄 모르는 어머니를 안타까워했다. 남으로 어머니를 찾아오게 될 둘째 아들 종필씨(69)가 실종된 것은 한국전쟁 때.고향인 명암리를 떠나 대전시 중구 대흥동 4촌누나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종필씨가 6·25가 터지자 갑자기 실종됐다.그는 당시 대전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었다.비슷한 시기에 큰아들 종우씨도 실종됐다.온천국민학교 교사로 결혼해 남매를 둔 아들이었다.두 아들 모두 북한의 의용군으로 끌려 간 듯했다.읍사무소에 다니는 남편과 4남2녀의 자녀를 둔 조씨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단란했던 가정이 풍비박산되자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로 화를 풀었고 57년결국 지병을 얻어 세상을 등졌다. 종덕씨는 “아들들이 실종된 후 어머니는 실종된 자식들 얘기를 한번도 안꺼냈다”며 “그 속이 얼마나 새까맣게 타셨겠느냐”고 눈물을 떨궜다. 조씨는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도 자녀들과 도란도란 살았던 옛추억 속에서살고싶다는 듯 20년 전 치매에 걸려 기억을 모두 지웠다. 종덕씨는 “선물로 한복 등을 준비했다”며 “어머니가 아직도 소식이 없는 큰 형도 만나고 병도 고쳐 평생 소원처럼 한집에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산 이천열기자 sky@
  •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D-6/ 남북 방문단 차이점

    8 ·15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관련,8일 공개된 남측의 평양 방문단 100명과북측의 서울 방문단 100명의 면면은 몇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남은 일반시민,북은 유명 인사 주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북측 100명 상당수가 고학력 ‘인텔리’ 출신인 데 반해 우리측 100명은 대부분 평범한 일반시민이라는 것.그것은 애초에 양측이 방문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우리측은 무작위 컴퓨터 추첨으로 ‘형평성’에 무게를 둔 반면 북측은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성공한 남쪽 인텔리 출신’으로 후보자를선별한 인상이 짙다. 실제 이번에 서울에 오는 북측 이산가족들은 한국전쟁 당시 10·20대였던 60대(71명)와 70대(26명)가 대부분이다.이념적 혼란기였던 당시 ‘좌익’으로흘렀던 청년 학생들이 주류라는 얘기다.방문단에는 특히 조진용씨(69 ·서울법대) 등 월북 당시 명문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사람이 6명이나 포함돼 있다. 반면 우리측 평양 방문단은 70대(65명)와 80대(20명)가 대부분이고 90세 이상도 3명이 포함돼 있는 등 북측에 비해 고령자들로 구성됐다. ■남은 가족관계,북은 유명인 우선 안배 우리측은 북쪽에 직계가족(부모,배우자,자녀)이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39명 전원을 방북단에 포함시키는 등가족관계를 최우선시했다. 반면 북측은 남쪽에 직계가족이 살아 있는 것으로확인된 31명 중 27명만 서울 방문단에 포함시켰다. 남쪽에 부모가 살아 있는21명은 전부 방문단에 포함됐지만, 아내가 살아 있는 1명과 자녀가 생존해있는 3명은 탈락했다. 북측이 우리와 달리 ‘유명세’ 등 다각적인 요소를 고려한 때문으로 풀이된다.실제 ‘비날론 박사’로 유명한 화학자 이승기씨의 부인 황의분씨의 경우 남쪽 상봉 대상이 비교적 ‘먼 친척’인 올케임에도 불구하고 직계가족생존자들을 제치고 방문단에 선정됐다.황씨는 방문단 중 최고령이다. 반면 최연소자는 북한 예술계 박사 1호인 김옥배씨(62·여)로 서울에서 어머니 홍순길씨(88) 등을 만나게 된다. 김상연기자 carlos@. *北측 유명인사들. 북한이 통보해온 방문단 최종 명단에는 북한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학자와 예술인들이 다수 끼여있다.원로 국어학자인 류렬(82),김일성종합대학 수학박사인 조주경(68)씨를 비롯,북한 미술계에서 조선화(동양화의 일종)의 거장으로 불리는 정창모(68)씨,북한의 최고 시인으로 추앙받는 오영재(64)씨등이 눈길을 끈다. ■류렬 북한 국어학계의 ‘기념비’로 불리는 ‘세나라 시기 리두(吏讀)에대한 연구’를 83년 집필했다.경남 산청이 고향인 그는 6·25 당시 고려대강사로 있다가 의용군에 참가,월북했다.현재 북한 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에근무하고 있다. ■조주경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았다.경북 영양이 고향인 그는 서울대 문리대를 중퇴한 뒤 6·25 당시 의용군으로 참여,영천전투에서 왼팔을 잃었다. ‘해석 수학’ 등 50여권의 교과서와 참고서를 집필하고 80여건의 과학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영관 북한 방직기술의 대가이자 공훈 과학자다.전북 장수군 출신으로 경공업 방직분원 방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조선지식인대회’ 등 각종 대회에 대표로 활약,과학적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정창모 만수대창작사 조선화 창장단 화가다.인물화,풍경화,정물화 등 조선화 각 장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76년 김일성 주석이 집무실로 사용했던 금수산의사당 기념 촬영대에비치된 ‘비봉폭포의 가을’을 완성,극찬을 받았다.77년 공훈예술가,88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오영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분과위원회 소속이다.수백편의 시와 수십권의 시집을 출간했다.대표작으로 시집 ‘대동강’과 ‘영원히 당과 함께’ 등이 있다.평양 주체사상탑의 비문에 새겨진 ‘오 주체 사상탑이여’를지은 장본인이다. ■박섭 서울에서 극단 ‘신향’의 배우로 활동하다 월북,현재 북한 최고의영화 더빙 전문 성우이자 인민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최종 명단 탈락 후보 명단에 있던 어문학계 권위자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인 김영황(69),김책공업종합대학 강좌장 하재경(65),한덕수 평양경공업대학강좌장 김봉회(68),김책공업종합대학 교수 고천식씨(66) 등은 최종 명단에서빠진 것으로 확인됐다.고음 독창가수인 김점순씨(67),평양 직물도매소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는 홍응표씨(64)도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오일만기자 oilman@. *북쪽 남편 ‘望婦南行'.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에는 50여년 전 헤어진 남쪽의 아내를 찾는 북한 남편들이 4명이나 된다.50여년 동안 가슴 속에 묻어뒀던 애절한 ‘망부(望婦)’의 한이 이번 8·15 상봉을 통해 씻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북 장수군 출생인 조용관씨(78)는 전주시 병원 간호사였던 아내 김부선씨(78)와 맏아들 경제씨(53)를 상봉한다.조씨는 헤어질 당시 전북 임실군 섬진강발전소 건설사업소의 노동자였다. 경북 안동군 풍산면 매곡동 출신의 리복연씨(일명 리승철·73)도 인천시 부평동에서 헤어진 아내 이춘자씨(72)와 장남 지걸(53),차남 호걸씨(50)를 만나는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충북 중원군 양성면 능암리 출신의 김희영씨(72)는 서울 동대문구 이천상사에서 일하다 헤어진 아내 정춘자씨(72)와 아들 상교씨(53)와 50여년 만에 상봉한다. 강원 울진이 고향인 최필순씨(77)는 아내 주정연씨(70)를 찾았으나 주씨가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대신 헤어질 당시 한살배기로서 이름도 몰랐던 맏아들 최중선씨(52)와 극적으로 상봉,50년 비원을 이루게 됐다. 반면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에 올랐던 신용대씨(81)는 최종 명단에서탈락,주위를 안타깝게 했다.경기도 안양공업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신씨는 서울 종로거리의 여자옷 상점에서 일했던 아내 이순인씨(79)와 아들 문제씨(50)를 찾았었다. 오일만기자. *이승기박사 부인 서울 온다. 북측 방문단에는 북한이 주체섬유로 부르는 ‘비날론’을 개발한 대표적 화학자 이승기(96년 2월 사망)박사의 부인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경북 김천이 고향인 황의분(84)씨는 북측 방문단의 최고령으로 이번 방문에서 서울에 사는 올케 강순악(86)씨와 조카 황옥연(52) 황보연(68) 황청정(60) 윤탁씨(57) 등을 만날 예정이다.이 박사 일가는 북한에서 ‘과학자 집안’으로 우대받고 있는 명가.이승기 박사는 전남 담양 출생으로 일본 유학 중이던 지난 39년 화학섬유의 일종인 비날론을 발명,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학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6·25때 월북,지난 61년부터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장을 맡았다.이 박사는 북한에서 ‘비날론 박사’로불리며 북한 화학 분야를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아들인 이종과 김일성종합대학 촉매과학실장은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전국과학자 기술자대회’에서 “우리 일가 중에 35명의 박사·학자·연구사가 나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일만기자
  • 반세기만에 띄우는 편지/ 서울 오는 형님께

    “그립고 그리운 형님,아버지께서는 기다리다 지쳐 지병을 얻어 33년전 세상을 뜨셨습니다…”.“형님,저는 50년 전 서울 왕십리에서 형님과 저와 자취하며 학교 다니던 그 때 6·25 한국동란으로 헤어져… (중략) …차제 상봉의 소식을 접하니 꿈인지 생시인지…”. 죽은줄만 알았던 형님에게 드리기 위해 50년만에 쓰는 동생의 편지 첫 머리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린다.그리고 당시를 회상하며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리움에 보냈는지를 적어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 권영택(權寧宅·70·서울 구로구 오류동)씨는 8일 낮 6남매의 큰 형 영규(權寧珪·75)씨가 오는 15일 서울로 오게 됐다는 전화에 연방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다가 갑자기 펜을 들어 형님께드리는 편지를 써 내려갔다. 지난 50년 당시 서울대생이었던 존경하는 형님에게 드리는 편지여서인지 한자를 섞어가며 한자 한자 또박 또박 써 내려갔다. “옛날 중학교 시험을 볼때 잘 모르는 수학문제,다정스럽게 알기쉽게 가르쳐 주셨고….” 어린 시절 다정했던 형님 생각이 뇌리를 스쳐가자 편지를 써내려 가던 영택씨는 “형님은 경북 김천고를 수석으로 졸업,지난 50년 당시 서울대 공과대토목공학과에 다니면서 왕십리에 자리잡은 백남공고 교사를 하던 수재였다”면서 “또 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장남이기도 했다”고 회상하며잠시 쓰던 펜을 놓고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이때 막내 동생 영길(寧吉·59)씨의 전화를 받고 감격에 겨운 듯 “그래,그래,응응”하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영규씨는 “사람은 포부를 크게 가져야 하니 발전을 위해 진학하라”면서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큰댁이 있던 충북 옥천에서 초등학교 촉탁교사로 일하던 3남 영택씨를 서울로 불러 왕십리에서 함께 자취를 하며 국립 체신고교에 입학하도록 했다. 6·25가 끝난 뒤 둘째 형 영주(寧周)씨마저 행방불명되자 고향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아버지 태정(泰晶·67년 작고)옹은 “그눔아가 있어야 집안을 다건질 긴데”하시며 지난 67년 돌아가실 때까지 형님 얘기를 하셨다. 영택씨는 편지를 쓰다가 “부모님과 둘째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살아남은 4남매가 다시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꿈만 같다”면서 “모스크바와 동독에서유학까지 하고 김일성종합대와 함흥공대 교수를 지낸 자랑스런 형님을 집으로 모셔 좋아하셨던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상봉의 순간을 그려보기도 했다. “형님께서는 동생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셨습니다…(중략)…할 말씀 많으나펜이 떨려 무슨 말을 적을지 생각이 안 납니다.상봉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형님의 얼굴을 그리며 편지를 쓰던 영택씨는 “할 말은 많은데 흥분해서인지 손이 떨려 더 이상 못 쓰겠다”면서 또박또박적은 2장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우리집 대들보인 장남을 6·25가 데려가 버렸다고 늘 말해 왔습니다.형님을 만난다니이것이 생시 맞습니까.”라며 영택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