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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사는 지구촌] (3)유니세프

    “1시간에 28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빈곤으로부터 고통받는 어린이를 도와 주십시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United Nations Children’s Fund)는 ‘차별없는 구호’를 창립정신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어린이가 있는 곳이면 인종과 국적, 이념이나 성별 등에 관계없이 어디든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주는 유엔의 핵심기구다.아프리카 난민촌의 굶주리는 어린이,북한의 영양실조 어린이,남아시아의 어린이 노동자 등 전 세계의 ‘고통받는’모든 어린이들이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지난달 유니세프는 아프리카 수단 바르 엘 가잘 주(州) 내전에 참전 중이던 소년병 2,500명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재활캠프에 수용,기초교육과 직업훈련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했다.지난 8일에는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아프리카사하라사막 이남과 남아시아 지역에서 성행하는 조혼풍속에대해 금지를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가장 눈부신 성과를 올린 분야는 ‘어린이예방접종’이다.매년 전 세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홍역·결핵 등 6대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사업은 연간 300만 어린이의 생명을 구해내고 있다.소말리아와 르완다 내전,북한의홍수피해, 인도 대지진에 이르기까지 긴급사태가 발생한 지역에도 유니세프는 어김없이 함께 하고 있다.난민촌에는 고아보호소를 만들어 음식과 의약품을 제공하고 임시학교에서어린이들을 교육시킨다. 더러운 물 때문에 어린이들이 생명을 잃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지에는 펌프를 설치해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아동문제는 모성(母性)을 떠나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유니세프가 ‘여성문제’에 쏟는 관심도 남다르다.산전산후관리·모유수유운동을 적극 권장하고 최근에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엄마에게서 아기로 전염되는 에이즈 막기 운동’에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니세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6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유럽과 중국의 어린이들을 구호하기 위해 창립됐다.한국에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50년.6·25전쟁을 전후해서 어린이들을 위해 우유와 담요,의류 등 구호물자를 대량 공급했고 93년까지 무려 2,300만달러의 기금을 지원했다.94년에 이르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조직됐다.지난달 방한한 케롤 벨라미 유니세프 총재는 “지난40년간 5세 미만 아동사망률이 한국처럼 크게 줄어든 국가는 없다”며 “이제는 한국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1965년 노벨평화상 수상 ▲79년 ‘세계 아동의 해’ 선포 ▲89년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채택 ▲90년‘어린이를 위한 세계정상회담’ 개최 등은 유니세프의 빛나는 성과다.오는 9월 유엔 총회에서는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 위한 ‘유엔 아동특별총회’를 열 예정이다. 이동미기자 eyes@. * 94년설립 유니세프 한국委.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제는 한국이 나설 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회장 현승종·玄勝鍾)는 94년 1월1일설립된 유니세프의 선진국형 기구다. 1950년 6·25전쟁 이후 구호물품과 기금을 지원받으며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는 나라’로 분류됐던 한국이 경제발전과 더불어 ‘유니세프를 돕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본부를 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목표는 ‘세계어린이 현황과 유니세프의 활동을 알리고 기금을 마련해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돕는 것’.지진과 전쟁이일어난 지역에 기금과 물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 이후 계속 북한에 기금을 지원해왔다.지난달에는 기초의약품 부족이 심각한 평양에 어린이 구충제 230만정(8억7,000만원어치)을 제공했다. 또 유니세프 홍보와 후원금 마련을 위한 각종 출판자료와비디오물 제작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주업무다.영화배우안성기씨와 소설가 박완서씨가 홍보 친선대사를 맡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의 모유수유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홍보담당 김재명(金載名·32)씨는 “어린이의 영양과 정서안정을 위해 국내 모든 병원에 모유수유를 권장,‘아기에게친근한 병원’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세계의 이웃을 돕고 함께 살아가는’ 꿈을 심어주기 위한 다양한 동아리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전국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특별활동으로 운영되는 ‘지구촌클럽’과 대학생들의 자원봉사 연합동아리 ‘Youth Club’등.다른 나라의 문화와 처지를 이해하고 나아가 어려운 개발도상국을 도울 수 있는 성숙한 세계시민 육성을 목표로기금마련 행사와 연합캠프 등을 벌이고 있다. 이동미기자
  • 청와대 홈페이지 ‘역대 대통령’ 등장

    청와대 홈페이지(www.cwd.go.kr)의 ‘역대 대통령’ 코너가 새롭게 단장돼 18일 선을 보였다.‘역대 대통령’ 코너는 이승만(李承晩)·윤보선(尹潽善)·박정희(朴正熙)·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국빈선물 전시관,기념우표 전시관 등 모두 9개의 주메뉴로 구성돼 있다. 이 코너에는 역대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약력,연표,사진자료,육성녹음,동영상자료 등 다양한 자료가 수록돼 있다.아울러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신년사,6·25 전쟁중 부산으로옮겨간 국회 사진,박정희 전대통령의 빈소사진 등 희귀한자료들과 함께 정부조직법 공포 문서,베트남 파병결정 문서등 연대별 주요 관련 자료들도 실려 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50년만에 배달된 父情

    ‘오매에도 그리운 내 딸 혜숙이에게’ 북한 공훈화가 황영준(黃榮俊·82·평양시 락낭구역)씨의큰 딸 혜숙씨(54·대전시 대덕구 중리동)는 지난 17일 오전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의 첫줄도 채 읽지 못한채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오열하던 혜숙씨는 “50년 전 한 주일이면 돌아올것 같아 너희 어린 것들 손목 한 번 따뜻이 잡아 주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는 아버지의 따뜻한사랑에 또다시 목놓아 울었다. 아버지 황씨는 6·25 때 서울 용산의 교통부 공무원으로일하다 아내(金仁熙·78)와 2남2녀의 어린 자식에게 말 한마디없이 사라졌다. 황씨는 이당 김은호 화백의 제자로 당시 화신백화점에서개인전시회를 열 정도로 유망한 동양화가였다.건전하고 성실했다는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 혜숙씨는 지금도 모른다. “무정한 이 사람을 기다리며 네 남매를 키우느라 백발이되었을 너의 어머니가 정말 보고 싶고 그리웠다.헤어질 때5살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너의 머리도 희어졌겠구나”라며긴긴 세월 가슴속에 간직해온 그리움을 털어놓은 아버지가그립고 안쓰러울 뿐이다. 어머니 김씨는 큰 오빠 문웅(文雄·60)씨와 함께 30여년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한국에는 혜숙씨만 남아 있다. 혜숙씨는 “97년 서울에서 열린 북한 원로작가전에서 아버지의 그림을 구입해 안방에 걸어 두고 매일같이 아버지를그리며 바라봤다”며 “아버지에게 답장도 보내고,만나 큰절을 올리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北아버지 눈물로 쓴 편지에 끝내 울어버린 남녘 3남매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너희들에게 편지로라도 소식을 전하니 금시라도 너희들을 만난 것 같다.” 인천시 주안2동에 사는 한정구(韓正九·56)씨는 16일 아버지 인기(仁基·84)씨가 보내온 편지를 받는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끝내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뒤 평생을 눈물로 살아온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인기씨는 6·25전쟁 1·4후퇴시 부인 최순례씨와 3남매를 처가인 강화로 먼저 피란보낸 뒤 인천 집에 남아 짐을 꾸리다 인민군에 징집당했다.가장이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최씨는 장사와 공장일을 해가며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만 했다. 72년 최씨가 72세로 사망하자 자식들은 한씨도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고 제사를 함께 지내왔다. 인기씨는 편지에서 자신은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새로 결혼해 5남매를 두고 있으며 기업소 직맹위원장을 지내다 퇴직했다고 밝혔다. 인기씨는 “통일이 되면 마주앉아 몇밤이고 지새우며 못다한 얘기를 나누자”며 자식 상봉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은 채 50년만의 편지를 마무리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발언대] 시위현장 화염병 투척자 끝까지 추적

    우리나라는 6·25동란 후 최대로 어려운 국면이라는 IMF의위기도 온 국민이 장롱 속에 보관하며 애지중지하던 아기 금반지까지 모으는 지혜로 헤쳐왔다. 최근 들어 정부의 기업·금융·공공·노사 등 4대 부문 개혁의 마무리와 관련한 대우자동차 구조조정에 노동계가 반발,사라졌던 화염병이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근로자와 이 지역 치안을 위해 대기 중이던 전·의경 다수가 부상하는 사고장면이 TV에 보도됐다.국민에게 불안감을 주면서 경제회생에 먹구름을 끼게 하는 장면이다. 화염병으로 부상을 당해 경찰병원에 입원한 경찰관 및 전·의경들은 우리의 이웃이요,친구요,동생들이 아닌가.이들이평생 화상의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시위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우자동차·동아건설·한국부동산신탁 등 많은 기업에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104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어려운 경제현실을 우리 모두 직시해야 한다. 국가경제 회생을 위한 제일의 조치로 제시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을 아픔 때문에 회피한다면 그 기업은 물론 나아가 다른기업까지 확산돼 실업자가 증가하는,더 큰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실업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직업훈련 등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이렇게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화염병 사용은 사회불안과 시민의 불편을 가중시킨다.뿐만아니라 국가 신인도 추락으로 외국투자 위축 등을 초래,국가경제 회복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이는 결국 근로자·학생 모두에게 손실로 귀착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화염병 투척은 부상할 경우 개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큰 상처를 줄 수 있다.이 점을 깊이 인식해 어떠한 일이 있더라고 자제해야 할 것이다. 경찰은 경제 및 사회안정을 위해 화염병 투척을 근절한다는 방침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채증장비 보강 등을 통해 화염병 제조·운반·투척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 검거, 처벌할 계획이다. 강 수 창 충북경찰청 경위
  • [대한칼럼] ‘한·미 시각차’ 바로 읽기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그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을 두고 삿대질을 해대는 사람이 적지 않다.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정책을 싸고 양국간에 시각차가 드러난 데 이어 북한이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일방적으로연기하자 더욱 극성이다.이들은 “한·미 공조란 한국의 포용정책에 미국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하고 ‘철저한 검증’을 전제로 하는 대북정책에 한국이 보폭을 맞추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씹어보면 이러한 주장은 과거 냉전시대의상황인식에 순치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사실냉전 시절 우리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중·소 봉쇄전략속에편입돼 있었고 오로지 북한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으면 족했다.1990년대 들어 소련이 해체되면서 탈냉전의 새로운 국제질서는 ‘유일한 세계경찰국가’인 미국을 중심으로 짜여져왔다.이 와중에서도 오직 한반도만은 20세기 이데올로기 대립의 유산을 21세기까지 고스란히 넘겨받아 지금까지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제 우리는민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남과 북이 조심스럽게 접점을 찾고 있다.남쪽과 북쪽 사회의 중심 세대는 어느덧 6·25전쟁이후 세대가 되었다.분단이전 세대를 기준으로 하면 이들은 이념과 체제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자라난그들의 아들세대,손자세대라고 할 수 있다.지금의 북한은‘개방사회의 에티켓’이나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규범’과는 너무나 동떨어지게 살아왔다. 그래서 바깥세계와는 사실상 단절된 ‘은둔의 사회’다.북한은 이데올로기 경쟁면에서나 경제적으로나 분명히 ‘실패한 체제’이긴 하나 이들과 더불어 민족공동체를 건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현실이다.비록 ‘실패한 체제’라 해도 우리에게는 북한 주민과 그 지도층을 분리시킬 지렛대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없다.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차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중국은 그들의 지도이념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개방사회, 시장경제사회로 조심스럽게 편입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식 개방이 중국과 결코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의 실험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개방을 통해 인민의 삶은 개선하지만 자본주의의 독소가들어오는 것은 차단하겠다는 이른바 ‘모기장 논리’를 부르짖는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지향하는 부시 미 행정부의 한반도 시각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가.‘힘을 바탕으로’한 레이건의 세계 전략이 결국 냉전을 종식시켰다는 명제에서 시작하고 있다.전통적으로 군산복합체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돼온 미 공화당정권은 북한을앞으로 상당기간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확산하려는 불량국가’로 각인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미래의 가상 적이 될 가능성이 큰 중국을 사전에 제어하기 위해선 스파링 파트너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부시 행정부가 집요하게추진하고 있는 국가미사일 방어체제(NMD)도 이러한 맥락속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한다.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어차피 대 아시아 경영의 전략적 틀속에서 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될 수밖에 없다.말하자면 남북사이에 이어져 있는 한민족의 정서적 유대나 남북한 주민들이 갖고있는 분단의 한(恨)같은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 수행의 차원에서 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월남전에서 미국이 실패한 이유가운데는 이 같은 정서적 측면을 간과한 점도 있을 것이다.9년동안 베트남국토를 융단폭격했지만 월남은 패망하고 월맹은 무력통일을이뤘다. 미국은 베트남 인민들 속에 흐르고 있는 심리적 연대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서울과 워싱턴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당연히 차이가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현실 인식 위에서 한·미 관계,남북관계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미 공조의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이 경 형 수석논설위원 khlee@
  • 건원 1400주년 국립국악원 기념공연

    국립국악원이 개원 50주년을 맞았다.국악원이 문을 연 것은1951년 4월10일.6·25 피난 시절 부산 용두산 아래 한 초등학교 분교에 간판을 달았다. 음악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의 역사는 그러나 훨씬 거슬러 올라가,7세기 신라시대 음성서(陰聲署)가 효시라고 한다.올해를 건원(建元) 1400주년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다. 고려시대에는 대악서(大樂署)와 전악서(典樂署),조선시대에는 전악서·아악서(雅樂署)·장악원(掌樂院)으로 전성기를누렸다.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해방이후에는 구황궁(舊皇宮)아악부로 명맥을 이었다. 이렇듯 ‘개원 50주년,건원 1400주년’을 맞은 국악원이 4월10일부터 5월18일까지 다양한 기념공연을 펼친다. ●궁중연례악 ‘왕조의 꿈,태평서곡’은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무대작품으로 재현하는 것.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바탕으로 한영우 서울대교수가 고증,송혜진 국악원 학예연구관이 구성을 맡는 학구적인 무대이다.다음달 10∼15일 예악당과 로비·광장을 모두 활용한다. ●민속악제전‘흥과 신명,그 생명의 바람’은 19·20일 예악당 무대에 오른다.민속악의 명창·명인이 대거 출연하여민속악이 가진 신명 뿐 아니라,그 음악적 깊이를 보여준다. ●불교예술의 미(美) ‘영산재’는 26·27일 공연된다.영산재는 악·가·무 일체라는 전통예술의 특징을 집약적으로보여주는 불교의식.국악원과 영산재보존회가 힘을 모아 처음으로 무대작품화를 시도한다. ●어린이 무용극 ‘콩쥐랑 팥쥐랑’은 5월 4·5일,악·가·무 ‘사철가’는 10·11일 각각 무대에 올려진다.‘사철가’는 남원의 국립민속국악원이 역량을 선보이는 자리가 될것으로 기대된다.기념공연은 17·18일 제52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로 마무리된다. 예악당에서 대형무대가 꾸며지는동안 소극장격인 우면당에서는 ‘우리시대 명인의 무대’가 4월 한달동안 펼쳐진다. 매주 화·목요일 열리는 기존의 판소리 한마당을 ‘업그레이드’시켜 명인·명창의 축하무대로 구성한다. 한편 공식 기념행사에 앞서 14·15일 오후7시30분 진도군민속예술단이 삼별초 항쟁을 다룬 ‘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있었네’를 예악당에서 공연한다. 국립남도국악원이 2004년까지 진도에 세워지게 된 것을 축하하는 뜻도 담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한국 첫 창작오페라 ‘견우직녀’원본 발견

    월북작곡가 안기영(安基永·1900∼1980)이 작곡한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 ‘견우직녀’원본이 발견됐다.1937년 라미라가극단이 초연한 ‘견우직녀’의 악보는,당시 라미라와 쌍벽을 이룬 반도가극단의 악장 박구씨의 아들 박경삼교수(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가 최근 발굴했다. 박교수는 9일 “집 다락에서 악보를 찾았다”면서 “내년월드컵 직전에 이 오페라를 남북합작으로 제작하고자 정부당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견우직녀’는 서양적 화성에 민요적 선율을 결합한 전체4막 2시간짜리 향토가극(한국적 오페라)으로,구전으로만 존재가 알려져왔다.따라서 국내 음악계는 그동안 37년 나온 이 작품을 제쳐놓고 50년에 발표된 현제명의 ‘춘향전’을 첫창작 오페라로 인정해 왔다. 안기영은 이화여대 교가와 가곡 ‘그리운 강남’등을 지은작곡자이자 국내 첫 테너가수지만 6·25직전 월북한 탓에 음악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학과교수는 “‘견우직녀’가 북한 혁명가극운동의 원류가 돼 ‘꽃파는 처녀’‘피바다’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안다”면서 “한국 오페라사를 연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견우직녀’에 직접 출연한 적이 있는 원로 음악평론가 박용구씨도자신의 글에서 “현제명 작곡의 ‘춘향전’보다 시기적으로앞설 뿐만 아니라 작품수준도 월등하다”고 ‘견우직녀’를극찬한 바 있다. 안기영은 월북후 평양국립음악학교(현 평양음악무용대학)교수와 국립예술극장 창작부장등을 지냈으며 그가 데리고간 딸 남식씨(65)는 피아니스트로서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남한에서는 외손녀인 소프라노 김영미씨(예술종합학교 교수)가활동하고 있다. 허윤주기자 rara@
  • [데스크 시각] 대결과 양보

    냉전은 진정 끝났는가.동·서독이 하나가 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대응 기구였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무너졌다. 그런 의미에서 냉전은 끝났다.그러나 냉전의 관행과 냉전식편가르기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화제가 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의 이중 스파이사건은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의 첩보전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는 옛 소련 시절부터 시작해 지난달체포되기까지 15년간 이중첩자 노릇을 해왔다.그가 넘겨준정보들로 인해 러시아 내 미국 스파이망이 회복 불능의 수준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미국 영국을 비롯한 나토 주축국들과 러시아 중국북한 등은 각종 국제적 이슈들에 어김없이 서로 반대편에 선다.이라크 길들이기,코소보 공습이 그 대표적인 예다.국가미사일방어망(NMD)을 둘러싼 편가르기도 마찬가지다.영국과 일본 호주가 미국의 입장에 적극 찬동하고,서유럽국들이 묵시적 찬성을 하고 있다.러시아 중국 북한은 그 반대편이다.옛모습 그대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암묵적 동의를 표했지만 NMD에 대한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중립’이다.그러나 이 입장을 정리하기까지의 과정은 외교 미숙을 드러낸 실패작이다.1972년미·소간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은 서로 상대의 공격력을 무력화하는 방어망은 안 만들겠다는 일종의신사협정이다.NMD 추진에 ABM 개정은 필수다.따라서 ‘ABM개정을 반대했지 NMD를 반대한 건 아니다’는 식의 우리 정부 해명은 삼단논법에도 맞지 않는 난센스였다. 그것이 만의 하나 동맹관계인 미국에서 러시아로 ‘말을 갈아 타기 위한’ 신호였다면 그 타이밍과 정책 결정 과정 역시 문제다.정책의 당위성에 대해 좀더 충분한 토의와 국민적합의가 선행됐어야 했다. 수면 아래서는 냉전식 편가르기가계속되는데 앞서서 어느 한쪽의 손을 표나게 들어줄 필요는없다. 냉전의 잔영은 우리 마음 속에도 있다.중동평화가 이루어지기 힘든 요인 중 하나는 이스라엘 지도층 다수가 반세기 전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당시 10대 전후의 어린이였던 이들은 지금도 생존에대해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이들에게 타협은곧 생존권의 포기다. 6·25는 ‘우리 민족의 아우슈비츠’다.6·25에 가족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같은 강박관념을 안고산다.세월이 약이 돼 잊고 살 만큼은 됐지만 조그마한 자극이라도 있으면 이 상처는 금방 도진다.그런 점에서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은 6·25전쟁에 책임이 없다’는 황태연(黃台淵)교수의 말은 그의 속뜻이 어디에 있었던 간에 사려깊지못했다. 올 봄 우리의 최대 이슈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될 것이다.김 위원장의 답방에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하지만 사과하면서까지 그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우리는 안다.어느 한쪽이 양보를 해야 하는데 양보는 조금이라도 더 가진 쪽에서 하는 게 순리다.그건 남쪽이다. 답방의 전제조건을 따지는 건 중요하다.하지만 그의 답방이우리 주위는 물론 세계 무대에 남아 있는 유·무형의 냉전잔재들을 걷어낼 큰 전기가 되도록 지혜를 모으는 게 더욱더현명하다는 생각이다.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기 동 국제팀장yeekd@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나라 사랑-시대를 초월한 민족정신

    우리의 근현대사 100여년은 격변의 시기였으며,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사회를 주도하는 시대정신이 있었다.개화기자주적 근대화의 좌절로 인한 국권상실기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한 선구자적 민족정신이 시대적 과업이었고,이 때 나타난 것이 의병정신과 독립정신이었다.그리고 6·25전쟁의 시기에는 공산주의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는 자유수호정신이 표출되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와 국가재건을 추진하던 근대화시기에는 일사불란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효율성과 진취적 개척정신이 중시되었으며 기술·기능중심의 산업화 마인드가강조되었다.80년대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민주와 인권정신이 살아 있었으며,90년대 이후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경제시대로 접어들면서 무한경쟁의 지식정보화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과거와 상충되는 것이 아니며 모두 국난극복 정신이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발현된 이러한 시대정신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성장과 풍요를 가능케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현재우리의 시대적 소명은 민족공동체의 삶을 복원하고,이를 통해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국가간 무한경쟁의 상황에서 남북한간의 화해·협력과 민족역량의 결집은 시대적 대세이다.분열과 갈등에서 사회통합과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절실한 과제이다. 앨빈 토플러(A.Toffler)는 농업사회,산업사회에 이은 지식정보화사회의 도래로 급격한 사회변화가 수반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후기산업사회는 자원기반경제에서 지식기반경제로,물질위주경제에서 정신위주경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새로운 패러다임은 단기적이고 물질적인 개발전략이아니라 지속가능하고 내실있는 발전전략의 모색이어야 하며,그것은 바로 건전한 국민정신을 형성하는 올바른 시대정신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의 바탕은 바로 민족사에 면면히 이어 온 국난극복정신과 공동체의식의 회복이라고 생각된다.민족발전의 동인(動因)으로서 독립정신과 자유수호정신 등 국난극복정신을 현재에 되살려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세계주의는 민족주체성의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수난과 이를 극복했던 노력의 역사,즉 도전과 응전의 역동성을 국가적 어려움에서 다시 발현시키기 위한 열린 이념이다.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끊임없는 대화이며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민족사에 흐르는 공동체의식이나 애국정신이 이 시대의 국민정신으로 자리잡을 때 부강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유배 국가보훈처장
  • 황온순할머니, 자식 4명과 전쟁기념관 방문

    ‘전쟁 고아의 어머니’ 황온순(黃溫順·101) 할머니가 6일모처럼만의 나들이를 했다. 황 할머니는 이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이강훈(61) 한국 안경협회 회장 등 자신의 손으로 기른 4명의 전쟁고아 출신 인사들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특별기획전시장을 찾았다. 만남은 전쟁기념관이 주선했다.전쟁의 참상과 전쟁고아들의아픔을 알리는 6·25 전쟁 당시의 보도사진 가운데 황 할머니의 사진도 포함돼 있으니 ‘한번 구경 오시라’고 요청한것이다. 황 할머니는 급히 연락이 닿은 이 회장과 신현성(58·전 청룡부대 주임상사)·황병진(53·장안사 스님)·곽해오씨(59)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당시를 회고하면서 사진전을 돌아봤다.행사내내 말은 별로 없었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한국보육원장,휘경학원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황 할머니는 6·25당시 미 공군 리셀 브레이즈델 목사가 1,000여명의 전쟁고아를 서울에서 제주로 이송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의 부탁에 따라 이들을 인계받아 직접 양육한 주인공. 브레이즈델 목사와는 지난 1월 26일 50년만에 재회했었다. 기념관에 걸린 한장의 사진속에는 두 사람이 만날 당시의 감격적인 순간도 담겨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 황태연교수 민주당직 사퇴

    북한의 ‘과거사 사과’ 발언으로 파문을 빚은 동국대 황태연(黃台淵) 교수가 28일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비상근부소장직에서 물러났다. 황 교수는 “내 발언의 진의를 왜곡한 자민련과 모 언론사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며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6·25,KAL기 폭파사건 등이) 재판을 통해 잘잘못이 가려져야 하고 사과는 그 다음 순서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 내 발언의 취지”라며 “학자적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김영환(金榮煥)대변인은 “황 교수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에서 연구소 부소장을 맡을 수 없다는 의사를 전해 와 당 총재와 김중권(金重權)대표의 재가를 얻어 이를 수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춘규기자 taein@
  • 3월의 호국인물 김금성 공군준장

    전쟁기념관은 ‘3월의 호국인물’로 김금성(金錦成) 공군준장을 선정,발표했다. 27년 11월 충북 충주군에서 태어난 김 장군은 6·25전쟁이한창이던 1950년 10월 공군소위로 임관,제1전투비행단 정찰대에서 L형 연락기로 정찰 및 연락,전단살포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51년 평양근교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송림제철소 폭격작전,동부전선 351고지 근접항공지원 작전 등에 참가해 눈부시게 활약했다. 전투비행대대장 등 주요 직책을 수행하면서도 전투조종사중 두번째로 많은 193회의 출격기록을 세웠다.작전중 8차례나 적의 대공포에 맞았지만 위기를 극복해 조종사들의 표상으로 존경을 받았다. 6·25전쟁후 공사 생도대장,비행전대장 등을 역임하며 공군발전에 기여했으나 61년 9월 제10전투비행단장 재직 당시 불의의 비행사고로 순직했다. 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과 미국 수훈비행 적십자훈장을 받았다.유족으로는 차남인 김경언(43)씨가 있다.전쟁기념관은3월 2일 호국추모실에서 유족들과 공군 관계자 등이 참석한가운데 헌양행사를 개최한다.
  • [사설] 황교수 발언이 남긴 것

    남북한간의 ‘과거사’ 발언 파문을 빚은 황태연(黃台淵)동국대교수가 28일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의 부소장직을사퇴한 가운데 야당이 이를 빌미로 현 정부의 정체성까지 거론하고 나섰다.황교수는 그저께 국회의원 조찬모임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25전쟁 당시 8세로 침략범죄용의자가 아니므로 법적 책임이 없고 북한정권 계승자로서 도의적 책임만 있다”“KAL기 폭파사건은 현실적으로 김위원장의 지시 여부를 조사할 수 없고 그 성격도 법적 절차를 통해소추할 국제법적 사안”이라고 말했다.황교수의 전체적인 발언 기조는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는 일단 비켜가는 것이 좋다는 취지다.다만 발언과정에서 ‘무책임→사과유보’‘사과→법적 책임 희석 또는 면죄’의 논리를 전개한 것은 너무 비약했거나 일반적인 국민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다. 황교수의 언급은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것이었다.그러나 그가 비록 민주당 산하 연구소의 부소장 직책을 가졌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학자로서견해를 피력한 것이다.야당과 일부언론이 이를 여권의 인식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고 본다.자칫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보수·진보 이념간의 갈등을 부추겨 국민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국론을 분열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이나 KAL기 폭파사건 등 남북한간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와 법적 처리는 언젠가 이뤄져야 할 문제다.그러나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여기에 이르는 중요한 과정의 하나가 김위원장의 답방이다.따라서 ‘사과’를 답방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일의 선후를 그르치는 것이다.냉전시대 남북간에 일어났던 과거사 문제는 남북관계를 개선,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정리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남북간 적대적 관계가 이제 간신히 녹기 시작한 단계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황태연 발언’양보없는 한판

    여야는 28일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장인 황태연(黃台淵) 동국대 교수가 전날 6·25와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선(先)사과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 서울답방의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말한 데 대해 공방을 계속했지만,점차 차분함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특히 황 교수는 이날 비상근 부소장직을 전격 사퇴,파문 확산을 차단했다.그러나 한나라당은 ‘색깔론’ 카드를 꺼내“정권의 이념적 정체성을 밝히라”고 몰아세웠다.그러나 한나라당의 기류는 ‘오전 강경,오후 잠잠’이었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오전 ‘이제 김대중(金大中) 정권은 그 정체를 밝혀야 한다’는 성명을 필두로 국회 본회의 5분 발언,브리핑 등을 통해 파상공세를 폈다.그는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몽땅 갖다 바쳐 공산화시키려 하는것 아닌가”라는 의구심까지 제기했다.그러면서 ‘주적’개념 논란,대학 구내 인공기 게양 사건 등을 거론하며 이른바‘색깔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개혁파 의원 등 당 일각에서 민감하게 대응해서는안된다고 제동을 걸면서 공세가 오후들어서 무디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민주당은 황 교수 발언이 당과는 무관한 학자 개인의의견으로 돌출발언에 지나지 않고,또 발언내용이 왜곡 전달됐다며 한나라당의 비난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황 교수 역시 기자에게 “사과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우선 재판을 통해 잘잘못이 가려져야 하고 사과는 그다음 순서라는 걸 강조한 것”이라며 야당과 일부 언론보도에 대한 소송불사 방침을 밝혔다. 김영환(金榮煥) 민주당 대변인과 황 교수를 초청한 국회 ‘21세기 동북아평화포럼’도 각각 성명서를 내고 “황 교수에 대한 무지한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전날 한나라당과 함께 황 교수를 비난한 자민련은 별다른언급이 없었다. 이춘규 박찬구기자 taein@
  • ‘남북 과거사’ 후폭풍 政街 강타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비상임 부소장인 동국대 황태연(黃台淵) 교수의 남북 ‘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한나라당이 이 발언을 빌미로 민주당에 간접공세를 펴고 있으며,민주당은 방어 중이지만 내부에서조차“지나쳤다”는 지적이 이는 등 곤혹스런 분위기다. 황 교수는 27일 강연 말미에 문제의 발언을 했다.A4용지 8장 분량의 준비된 원고였다.파장은 즉각 나타났다. 김정일 위원장이 ‘6·25와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해군 참모총장 출신인 민주당유삼남(柳三男) 의원이 “김정일 뿐만 아니라 김일성 이후세습된 북한정권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논지를 반박했다. 자민련 조희욱(曺喜旭) 의원 등도 “듣기 거북하다”며 반발하자 황 교수는 “사과는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논지를 펴며 강연을 마쳤지만 파문은 이후 크게 번졌다. 민주당은 즉각 김영환(金榮煥) 대변인 등이 나서 “당과는상관 없는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라고 선을 그었다.그러나한나라당은 황 교수의 발언을‘망언’이라고 비난했다.또황 교수가 민주당 부설 연구소 부소장인 점을 들어 민주당과연결지었다. 정작 당사자인 황 교수는 파문이 확산된 뒤에도 “한나라당이 사과 주장을 하지만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사과를 요구할 수 있겠나.오히려 묵인하는 꼴이될 수 있다”면서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 개인소신임을 굽히지 않았다.또 “내 주장이 (사과를 요구한) 한나라당 주장보다 더 강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종락기자 jr lee@
  • 국군포로 北생존 확인돼도 유족연금 지급중단 않기로

    정부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돼 전사자로 처리된 국군포로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될 경우 유족연금지급을 중단키로 한 방침을 바꿔 이를 중장기 과제로 넘기는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27일 “형평성 차원에서 생존 사실이 확인된 국군포로에 대해서는 유족연금 지급중단을 검토했으나,반대 여론이 거세 중장기 과제로 넘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황태연씨 ‘사과’ 관련 발언 논란

    동국대 황태연(黃台淵)교수는 27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앞선 ‘과거사 사과’와 관련, “김위원장은 유아시절 발발한 6·25 전쟁에 책임이 없으므로 침략범죄 용의자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비상근 부소장인 황 교수는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21세기 동북아평화포럼’ 조찬토론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그 영향’이라는주제의 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21세기 동북아평화포럼’은 동북아문제를 연구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임이다. 황교수는 6·25뿐 아니라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에 대해서도 “대한항공기 폭파를 지휘했다는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김 위원장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이해될 소지가 있는 발언을 했다. 황 교수는 그러나 “침략전쟁,여객기 납치,테러 등은 ‘사과’의 사안이 아니라,때가 되면 인류의 보편적 법체계와 절차에 따라 동서독 국경 총격사건과 같이 기계적으로 소추하게 될 국제사법 사안”이라고 국제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입장을 밝혔다. 나아가 “국제법상의 반인도적 범죄를 ‘사과’받자는 야당의 주장은 ‘사과하면 사면해주자’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장광근(張光根) 수석부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6·25 전쟁이김 위원장의 유아시절에 발생해 책임이 없다는 등의 발언이현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 묻는다”고 따졌다. 자민련 유운영(柳云永) 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정부는이런 망언의 재발을 방지하고 국민적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마땅히 취해야 한다”면서 황교수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이같은 반박에 대해 황 교수는 “북한관계는 짜증이 나지만짜증이 난다고 해서 대북관계에서 소소하게 따지다가는 큰틀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이종락기자 jrlee@
  • [김삼웅 칼럼] 현대사의 순교자들

    헤겔이 “세계의 역사는 자유의식의 진보과정이다”라고 했을 때 압제에 시달리던 수많은 사람이 냉소했다. “인간의역사는 학대받는 자의 승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고 타고르가 설파했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사람들은 오히려 사마천의 “천도는 공평해서 언제나 선인편을 든다고 말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백이숙제는 선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면서도 굶어죽지 않았는가. 안연(顔淵)은공자 문하 제1의 호학자라고 불리면서 먹는 것도 부족하였고젊어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 하늘(역사)이 선인에게 보답하는 방식인가. 도척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해치고난폭방자한 수천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천수를다하였다. 이는 대체 무슨 까닭인가”라는 말에 공감했다. 조선시대 기득세력은 ‘벽이숭정(闢異崇正)’을 지배논리로써먹었다. 이단을 배격하고 정학(正學)을 높인다는 이 논거는 정통유학 이외의 모든 학문을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얼마나 많은 선비학자가 희생됐는지는 묻지 말자. 어둠이 채 걷히기 전에 고정희는 ‘망월리비명’을 썼다. “한 세대 긋고 지난 업보가 어디/망월리에 잠든 넋뿐이랴만/한 세대가 쌓아올린 어둠의 낟가리에/불쏘시개 되어 하늘 툭 틔우고/황산벌 숯가마로 묻힌 저들이/오늘은 가는달 붙잡고 묻는구나/내 죄값을 달에게 묻는구나.” 어찌 망월리나 황산벌뿐이랴. 서대문형무소, 안기부지하실,남영동독방,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고 불구가 되고 골병이 들었던가. 그리고 정의와 역사를 원망했던가. 군사정권 치하에서 300여명이 암살·옥사·고문사·옥고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분신·투신·자결 등으로 산화했다. 폭력정치에 희생된 4·19와 5·18 희생자를 포함시키면 800여명에 이른다. 잘못된 정치가 빚은 6·25전쟁의 와중에 민간인 수십만명도 학살당했다. 우리 현대사는 굽이마다 이른바 특정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이 국민의 희생과역사왜곡의 가해세력이 되어온 것이다. 국민은 긴 날들을 ‘가는 달 붙잡고’한탄하면서 힙겹게 살았다. 그리고 역사를 원망하고 하늘을 저주하는 사람이 늘었다. ‘자유의식의 진보’나 ‘학대받는 자의 승리’는 언어의 유희일 뿐이었다. 그러나 누가 역사앞에 오만한가. 우리는 친일파들이 설땅을 잃어가고 독재자와 하수인들이 단죄되고 심판받는 것을 보았다. 이승만이 쫓겨나고 박정희가 암살되고 전·노씨가 수감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군사독재를 미화하고 남북화해협력에 발목을 잡아온 족벌언론이 ‘안티’의 대명사가 되고있음도 지켜본다. 반면에 ‘죄값을’ 달에게나 물어야 했던 현대사의 순교자들이 역사앞에 복권되는 모습도 지켜본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구성된 것을 필두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제주4·3진상규명위원회가 날개를 펴고,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활동이 민주화운동으로 결정된 데 이어, 80년대 신군부 집권시절 30여명이 옥고를 치르고 500여명의 해직노동자가 발생한 원풍모방사건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5공시절 서울·부산·광주의 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도 ‘반미’의 딱지를 떼고 역시 민주화운동으로규정되었다. 때맞추어 ‘민족일보’사건에 대한진상규명의요구가 터져나오고 사법살인의 희생자 진보당사건도 재조명이 기대된다. 그동안 뒤틀린 폭력정치의 희생물이 되었던사건들이 하나씩 밝은 하늘 아래 진상을 밝히고 있는 것은 역사의 승리다. 비록 아직도 어둠의 역사를 지키려는 검은 손길이 수구의커튼을 움켜쥐고 반격을 노리지만 시시각각 밝아오는 정의의태양이 어찌 손바닥으로 가려지겠는가. 밖에서도 정의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일본의 우익 교과서에 대한 검정통과가 굳혀져가는 때에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R)이 최근 주관한회의에서 “식민지정책과 노예제도의 책임을 지고 희생자에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테헤란선언을 채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죄지은 자에 벌을 주고 공세운 사람에 상 주는 것은 만고의진리다. 그래야 질서가 잡히고 정의가 선다. 화해나 용서는그 다음의 문제다. 상벌이 뒤바뀌어도 안되지만 사적인 온정주의로 공적인 범죄의 용서도 안된다. 비록 더디게 ‘학대받는 자의 승리’가 가능하더라도 우리는 역사의 법칙을 믿는다. 현대사의 순교자들에게 명예와 영광있으라!■김삼웅 주필 kimsu@
  • [기고] 잊혀진 이상향 ‘힌드 나가르’

    “‘힌드 나가르’(Hind Nagar)를 찾아라” 인도의 힌두어로 ‘힌두인의 이상향’이라는 뜻을 가진 이것은 불과 47년전한반도의 허리 장단벌 비무장지대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도시의 이름이다. 인구 3만명.10여개국 젊은 군인들이 7개월간 형체도 없는‘이데올로기’라는 괴물과 혈투를 벌인 곳이다.2만3,000명의 6·25전쟁 송환거부 포로들과 그들의 관리를 위해 파견된6,000명의 인도군관리부대(CFI),중립국송환위원회(NNRC)위원국인 인도·스웨덴·스위스·체코·폴란드의 대표단,정전당사국으로 옵서버 자격인 미국·한국·중국·북한 대표들이그 시민들이다. 휴전협정때까지 자국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은 중공군이 1만4,702명으로 가장 많았다.다음은 북한군 7,890명,한국군 335명,미군 23명,영국군 1명이었다.이들에게 다시 한 번 진정한의사를 물어보고 귀향을 설득해 보자는 유엔군측의 인도적인 처사에서 남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던 포로들을 한자리에모았고,그 관리를 맡은 인도군에 의해 도시 이름이 붙여진것이다. 유엔군(주로 미군)이 막대한비용을 들여 건설한 이 텐트도시는 장단역과 판문점 사이의 통정리·송곡리·팔산리에 걸쳐 전체 면적은 7.9㎢로 포로막사·인도군막사·설득장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포로막사는 500명을 수용하는 컴파운드(compound)와 8∼10개의 컴파운드가 모여서 된 엔클로저(enclosure)로 구분돼,전체는 7개의 엔클로저로 구성되었다.컴파운드와 컴파운드,엔클로저와 엔클로저 사이에는 철책과 완충지대,그리고 높은 감시망루들이 세워졌다. 한개의 컴파운드는 가로세로 10m×5m 크기로 30명씩 수용하는 텐트 17개와 취사장 텐트,목욕탕 텐트,운동장으로 구성됐다. 각 텐트는 지상 20㎝ 높이에 나무 침상을 깔았고 난방시설에전기와 온수도 공급되었다.미군을 기준으로 한 가히 호텔급이었다.설득장은 16개의 설득텐트와,250명과 25명을 수용할수 있는 대소형 대기텐트로 돼 있었다. 3만명의 시민을 먹여살리기 위한 각종 부대시설도 많았다. 식수공급을 위해 50만 갤런의 주탱크와 3,000 갤런의 보조탱크,임진강물을 끌어오기 위한 31㎞의 수도관도 설치되었다. 전력공급을 위해 12개 발전소에서 24대의 발전기가 가동되었다.식품 피복 등의 공급을 위해 장단역에서 직접 철길이 연결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앙공급창고가 건설되었다. 마지막까지 귀향을 포기하고 제3국을 택한 포로는 북한군 86명,한국군 2명으로 모두 88명.그들은 6·25전쟁의 마지막포로로 1954년 2월23일 인도군을 철수시키는 유엔군 함정을타고 인천항을 떠났다.6·25전쟁의 실질적인 종결인 셈이다. 그 47주년인 요즘 경의선 복원공사가 한창이다.구 장단역근처의 벌판에는 아직도 이 ‘힌드 나가르’의 잔해가 남아있을는지 모른다. 불과 47년이 흘렀고 그 거대한 규모를 생각할 때 많은 잔해들이 그대로 있지 않을까.경의선 복원과 함께 이 도시의 일부만이라도 복원해야 한다.그래서 우리 민족이 그토록 피흘리며 싸워야 했던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밝히는 교육의장으로 삼아야 한다.이는 남과 북이 함께 해야 할 과제다. ■라 윤 도 건양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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