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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바드 駐韓대사 지명 의미

    부시 행정부는 출범 4개월을 갓 지난 시점에서 대한국 공식 외교창구인 주한 대사직을 정식으로 지명했다. 미국의 경우,새 행정부 출범 뒤 주요 우방국 대사 지명 및인준에 통상 6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점에서 이번 주한 대사 발표는 그렇게 늦지도 빠르지도 않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평이다. 허바드 내정자에 대한 한국의 아그레망 절차가 이미 끝난것으로 알려져 그의 서울 부임은 내달중 상원 인준 청문회가 끝나는 대로 빠르면 7월중 이뤄질 전망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허바드 대사 지명자가 정치인 출신이아니라 한반도 정세에 밝은 아시아 전문가이자 한국통의 직업 외교관 출신이라는 점에서 상원 인준에 별 문제가 없을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허바드 차관보의 지명은 부시 새 행정부가 초대 주한 미대사에 정치인 출신이 아닌 직업외교관 출신의 아시아통을 선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불량국가’로 지목,핵 및 미사일개발에 대한 철저한검증 없이 대북협상에 나설 수 없다고 촉구하는 시점에서주한 대사에 실무형 직업외교관을 발탁했다는 사실은 의의가 크다는 설명이다. 허바드 지명자는 특히 지난 94년 로버트 갈루치 핵대사와함께 북·미 제네바 협상에서 약 2년간 실무교섭책임자로일해 왔을 뿐 아니라 북한을 수차례 방문했고 일본,말레이시아,필리핀 등지에서 근무한 아시아 전문가다. 워싱턴 고위 외교소식통은 그의 지명과 관련,“그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그동안 일관되게 다뤄온 실무 책임자였다는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이는 한·미 관계와대북 문제에 있어 부시 행정부가 일관성과 계속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허바드 대사 지명으로 이달말 예정된 제2차 한·미·일 3자 정책협의회는 물론,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한승수장관의 6월초 워싱턴 방문과 뒤이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서울방문 추진 등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허바드 대사 지명과 관련,외교가에서는 과거 주한 미대사가 6·25전쟁이나 4·19의거,5·16혁명,유신, 10·26사태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낸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실무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박찬구기자 ckpark@
  • 다시 불거지는 北核사찰

    미국이 북한의 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내년부터 북한내핵시설을 사찰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한반도 정세에 ‘핵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우려된다. 당연히 북한이 강력히 반발,북·미 관계가 정면 대결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구상=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은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핵투명성 확보에 두고 제네바 합의의 일부 조항을 개정해서라도 내년부터 핵 사찰에 나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94년 체결된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르면 경수로 핵심부품이 북한에 공급되는 시점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특별사찰을 통해 북한의 핵 보유 의혹을 규명하게 돼 있다.현재의 경수로 건설단계를 감안하면 핵심부품 공급시점은 2004년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전까지 핵 의혹을 완전 규명해야 하고,이를 위해내년부터 사찰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미국측 논리다.게다가 2003년 완공을 목표로 한 경수로 건설이 지연된 책임도 북한에 있는 만큼 조속한 핵 사찰이 불가피하다는 게 미국측입장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북한이 요청한 전력 50만㎾ 지원과 송·배전시설 개선을 유인책으로 제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입장=미국의 조기 핵사찰 방침에 쉽사리 응할 리없다.북한은 지난해부터 경수로 건설지연 책임을 물어 미국측에 전력보상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지난 2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우리의 전력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미국의 책임을 강조해 왔다.전력난을 덜어보려는 의도도 있지만 제네바 합의에 대한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핵사찰 공세를 약화시키려는 뜻이 강하다. 특히 지난 16일에는 조선중앙통신 ‘상보’를 통해 “경수로가 2003년까지 완공되지 않고 보상도 이뤄지지 않으면 흑연감속로를 되살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핵개발 재추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양측 입장을 감안할 때 조만간 있을 북·미 협상에서 핵사찰과 전력보상,제네바합의 이행 차질에 대한 책임론을 놓고 양측의 공방이 예상된다. ◇정부의 시각=한 당국자는 23일 “미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조기 핵사찰 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면서도 대북 핵사찰문제가 26∼27일 하와이에서 열릴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의 핵심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정부는 이에 따라 미국의 조기 핵사찰 의지가 동북아정세에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조정·중재한다는 방침이다. 이 당국자는 “제네바 합의가 결코 변경돼서는 안된다”면서 “미국의 구상을 들어본 뒤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남아공의 사례에 비춰 사찰에 앞서 2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면서 “미국의 뜻대로 조기사찰이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 *‘제네바합의’란. 북한이 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뒤로 장기간의 협상 끝에 94년 12월 북·미간에 체결된 합의서다.4개 분야 13개 항목에 걸쳐 북한 핵문제 해결 방안을 담은것으로 이후 북·미 관계의 기본틀이 되고 있다. 첫 분야는 ‘흑연감속로 동결 및 해체,경수로 지원’에 관한 것으로 미국은 2003년까지 2,000㎿급 경수로(2기)를 북한에 제공하고,경수로 1기가 완공될 때까지 대체에너지로중유를 제공하기로 했다.이 합의에 따라 한국·미국·일본이 참여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구성됐다.북한은 흑연감속로 동결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조를 약속했다. 둘째 분야는 ‘북·미 관계 정상화’로 3개월 안에 통신및 금융거래를 포함한 무역 및 투자제한 완화조치를 취하도록 합의했다.연락사무소 개설뿐 아니라 ‘상호 관심사항’의 진전에 따라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한다는 합의도명시돼 있다.북·미 현안인 인권문제,6·25 사망 미군 유해 송환 문제,테러 중단,미사일 수출금지 등이 이 조항과 연결돼 있다. 셋째 분야는 ‘한반도 비핵화’ 부분으로 미국은 핵무기불사용을 보장하는 대신 북한은 비핵화공동선언 이행과 남북대화 착수를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NPT체제 강화’와 관련해 북한은 NPT체제에잔류하는 한편 사실상 특별사찰을 의미하는 IAEA의 안전조치를 이행토록 했다.특히 북·미는 제네바 합의 이듬해인 95년 콸라룸푸르에서 채택한 부속합의서를 통해 IAEA의 특별사찰 시기를 핵 공급국(NSG)들이 정한 주요 핵심부품 반입이전으로 명시했다. 진경호기자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

    법은 추상같아야 한다거나 힘있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라는말을 종종 듣게 된다.법이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하거나 행정관청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법은 추상같은 것만도 아니고 힘있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는 더욱 아니다.오히려 가진 자의 횡포를 막고 약한 자의 권익을보호하는 것이 법과 정부의 역할이다.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를 운영해 오면서 만난 오씨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6·25 때 참전을 한 오씨는 전쟁 중 부상을 당하여 제대하게 되었다.국가를 위해 싸우다 부상을 당하였지만 사회복귀는 쉽지 않았다.장애자로서의 냉대는 물론이런 저런 일자리를 전전하여야만 했고 나이가 들면서는 그나마 일자리를 얻는 것조차도 힘들었다.여섯 명이나 되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그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고자 하였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담당행정관청에서는 참전한 기록이 없으므로 참전용사라는 사실과 전쟁 중 부상당한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다.전쟁 중 부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전을 증명하라니,국가에서 기록조차도 보관하고 있지 않다니,정말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주위의 권유로 국무총리행정심판위에 행정심판을 청구하게 되었다.행정심판위에서도 증명자료를 찾는것은 쉽지가 않았다.그러나 국방부 등 관계기관에 백방으로수소문을 한 결과,그의 참전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 하나를 가까스로 발견할 수 있었고,그는 마침내 국가유공자로등록될 수 있었다.국가에 대한 원망과 억울한 생각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행정심판을 통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었을 때오씨가 기뻐하던 모습을 보면서 평생 몸담아온 공직에 대하여 보람을 느꼈다.한편으로는 정말 행정심판제도를 공정하게운영하여 답답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행정심판제도는 법원에 의한 정식재판보다 간편하면서도 신속하고 비용이 전혀 들지않는 장점이 있어 행정관청으로부터위법하거나 부당한 처분을 받은 일반국민들, 특히 서민들의권리구제수단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다. 또한 법제처에서는 행정심판상담실을 직접 운영하여 행정심판청구와 관련한 상담을 친절하게 해줌으로써 억울함을 당한 국민들이 변호사 등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쉽게 자신의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을수 있는 기회를 넓혀가고 있다. 아직도 주위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이제는 민주법치국가의 발전에걸맞게 억울한 일을 당하여 정부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행정심판제도가 이같은 사회를 만드는 데보탬이 될 수 있도록 공정한 운영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정수부 법제처장
  • 이명수씨, 물려받은 25억 땅 延大에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랐을 뿐입니다.” 21일 모교인 연세대에 25억원을 호가하는 땅을 기증한 이명수(李明洙·52·76년 응용통계학과 졸)씨는 “요란스럽게 알리고 싶지 않다”며 선행을 애써 숨기려고 했다. 지난해 4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이씨의 어머니 이연희(李燕姬·당시 75)씨는 생전에 자신의 소유한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의 250평(공시지가 9억5,000여만원) 규모의 나대지를 좋은 일에 쓰고 싶다고 되뇌었다.이씨는 “6·25때월남한 뒤 갖은 고생 끝에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학교측이 좋은 일에 써줬으면좋겠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 5·18 21돌기념식 정치권 움직임

    광주민주화운동 21주년 기념식이 열린 광주 5·18묘역은여야가 당사를 이곳으로 옮겨놓은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정치인들로 가득했다.특히 5·18 공식 기념식에 처음 참석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예전과 달리 광주 시민들이 따뜻히 맞아 눈길을 끌었다. 또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과 대학생들의 야유 및 묘역 진입 저지 등이 일절 없었으며,지난해 술판을 벌여 구설수에 올랐던 여야 386의원들도 별도 모임 없이 참배만 했다. ◇여야 지도부 설전=묘역 관리사무소에서 조우한 여야 지도부는 5·18민주유공자법 처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먼저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가 “민주유공자법 처리를 도와달라”고 말하자,이 총재는 “6·25 참전용사 등 다른 유공자들과 한꺼번에 묶어 기본법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받았다. 이에 김 대표가 “그렇게 하면 재정이 엄청나게 필요하다”고 강조하자,이 총재는 “법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화제를 돌렸다.김 대표는 ‘구 정권 인사’라는 이미지를 의식한 때문인지 기념식 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5·18의 진상을 알게 된 것은 13대 국회 청문회때”라고 말했다. ◇이 총재의 호남 민심 잡기=한나라당은 이 총재의 광주방문에 맞춰 민심 잡기를 위해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민주당은 19명의 현역 의원이 광주를 찾은 반면 한나라당은 28명의 의원이 대거 이 총재를 수행했다.특히 이 총재가 광주공항에 도착하자 한나라당 광주·전남 지구당원 50여명이 도열,열렬한 박수로 환영했다. 이 총재는 망월동묘역에서 김 대표와 대화 도중 “임진왜란때 이순신(李舜臣)장군이 왕에게 올렸다는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란 글귀가 공항에 걸려 있더라”고 상기시키기도 했다. 또 기념식이 끝난 뒤 30분 이상 묘역을 일일이 돌며 비석을 어루만지고 시민들과 포옹을 하는 등 친근감을 표시했다. 시민들도 이 총재에게 “오시느라 고생 많았다”고 덕담을 하는 등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였다. 반면 김 대표는 “오늘은 영령들을 추모하러 온 것이지세를 과시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광주 김상연기자carlos@
  • 軍최고참 황태홍씨 40년만에 전역

    육·해·공 3군을 통틀어 현역 최고참인 합참 정보본부 전투정보과 황태홍(黃台洪·58) 준위가 40년 2개월간의 군 생활을 끝내고 이달말 전역한다. 황 준위는 5·16 직전인 지난61년 4월 소년병으로 입대,62년 7월 하사, 24살 때인 67년에상사,71년 7월에는 준위로 각각 진급했다.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42년 8개월간 군생활을하고 지난 93년 전역한 정육진 예비역 준장(94년 1월사망)에이어 두번째 복무기록이다. 황 준위는 군 생활의 대부분을 북한의 군사정보를 수집,분석하는 특수정보분야에서 일했다.73년 육군본부 전투정보과에 배속될 당시 과장(대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3년전 준위 연령정년(55세)으로 군을 떠나야 했지만,능력을높이 산 군 지휘부의 배려로 지금까지 근무할 수 있었다. 황 준위는 “군사정보 분야의 최일선에서 맡은 바 임무를성실히 수행해 왔다고 자부한다”며 “오랜 세월 국가에 충성할 기회를 준 국가와 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조약돌] ‘의료법 개정’의원에 욕설·협박

    진료비를 허위·부당 청구한 의사에 대해 행정처분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추진중인 민주당 김성순(金聖順) 의원과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욕설과 협박으로 가득차는 등 때아닌 수난을 겪고 있다. 한 네티즌은 김성순 의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6·25 때지주와 경찰을 잡아죽인 것처럼 의사를 때려잡고 있다”는 극언을 퍼부었고 다른 네티즌도 ‘독약처방’ ‘동맥절단’ 등을 운운하며 “아프지도,다치지도 말라”고 협박했다. 이에 따라 김 의원측은 지나친 욕설과 비방 내용이 담긴글들을 삭제하고 있다. 김홍신 의원측은 홈페이지에 비방의 글이 빗발치자 지난16일 ‘의료법 제안배경에 대한 설명’이란 글을 통해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김성순 의원의 협조요청에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공직인맥 열전](55)국가보훈처.상

    “교육이 백년대계이고 문화가 천년대계라면 보훈은 만년대계다.” 국민들에게 보훈 업무의 중요성을 설명하거나 강조할때국가보훈처 직원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한·일합방과 6·25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생긴 순국선열및 애국지사,전몰 순직 및 전공상 군경,참전군인,제대군인,월남전 고엽제 피해자,4·19혁명 희생자 등 800만여명에이르는 보훈대상자(본인 및 유족)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고국민들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며 참전 및 제대군인들의 명예와 복리를 증진하는 ‘엄청난’ 업무를 감안하면 과장이아니다. 국가보훈처는 61년 군사원호청으로 발족한 이후 62년 원호처로 승격됐다가 85년 국가보훈처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98년 ‘작은 정부’ 방침에 따라 차관급 부서로 격하됐지만 예산규모나 직원수,기구는 장관 부처에 못지않다.올해세출예산은 1조4,220억원으로 정부 48개 부·처·청 가운데 11위의 규모다.본부는 2관,3국,11과,7담당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5개 지방청과 시·도청 소재지에 20개의 지청이 있다. 아울러650만 회원을 자랑하는 재향군인회를 비롯,광복회와 상이군경회 등 9개 보훈단체 중앙회 및 1,000곳 이상의 전국 지부·지회를 산하 단체로 두고 있다. 육군 중장 출신의 이재달 보훈처장은 보스 기질과 소탈함으로 위 아래로부터 두터운 신임과 신망을 받고 있다.특히 국방부 특명검열단장(중장)때 소신발언을 많이 해 출입기자들의 인기가 높았다.고향인 경기도 파주에서 국회의원(16대)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든 덕분에 정치감각까지 터득했다는 게 본인의 변이다. 김종성 차장은 77년 당시 원호처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한 우물을 판 정통 ‘보훈맨’.99년 최규학 전 처장때 차장에 발탁돼 2인자의 자리에서 모두 3명의 처장을 실무적으로 보좌해왔다.기획관리관 때는 21세기에 대비한 중장기 보훈정책 발전방안을 수립,보훈처의 비전을 제시하고 업무 골격을 가다듬었다.기획예산담당관 때는 당시 이상연처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옮겨갈때 데려갈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다른 국장들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업무의 중심을 잡고 흐름을 주도해 직원들이 보훈처의‘보배’라고서슴없이 말한다. 보훈공무원 재직 35년째를 맞은 임무평 보훈심사위원장은 국가유공자나 보훈지원 대상자가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확정하는 보훈심사위원회를 무리없이 이끌고 있다.한달에 2,000여건을 심사할 정도로 폭주하는 업무량에 시달리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보훈처의 맏형이다.6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김영욱 기획관리관은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 기획예산담당관으로 대통령직인수위에 파견될 정도로 ‘일 잘하는 충청도 양반’이다.차분하고 꼼꼼하면서도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재 정부예산의 1.5%에 불과한 보훈예산을 3%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소신을 펼치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국가안보와 보훈정신

    최근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69주년 기념식과 육탄 10용사 52주기 추도식이 열렸다.매헌 윤봉길 의사는 일제의전승기념일 행사가 열린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일본 군부를 향해 폭탄을 던져 우리 민족의 기개를 만방에 떨쳤고,육탄 10용사는 6·25전쟁 발발 한해 전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포탄을 안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북한군의 도발을 막아냈다. 윤봉길 의사나 육탄 10용사는 비록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행사가 펼쳐지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적 교훈으로남아 있다.이런 점에서 인간이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특히 그날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웅변대회와 미술대회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그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현재에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희생을 뜻하는 영어 새크리파이스(sacrifice)는 ‘신성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숭고하지 않은 희생이 없겠지마는 그 중에서도 국가나 사회를위한 헌신은 공공의 이익과 안녕을 지키기 위한 희생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성스럽다고 할 수 있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기 희생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인류사회는 개선된다고 말한 바 있다.모든 사회와 국가는 참된 가치를 추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분들의 공훈에 힘입어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국가보훈은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고 가신 분들과 그 유가족을 예우하고 타인들의 귀감이 되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애국심을 함양하는 역할을 수행한다.최근 일부 지도층의병역비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공동체를 위해헌신한 분들이 존경받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때 병역의무 등의 국민적 도리를 다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끄러움을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지식정보화·세계화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어느 때보다 국민역량의 결집이 필요한 시기다. 국가보훈은 국민정신과 직결된다.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고 진정으로 존경하는 보훈문화가 확산될 때 국민들로부터 기꺼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자발적애국심이 나타나 국가발전을 위한 국민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역사 속에서도 삼국통일,왕조 건국 등 국가적 에너지가왕성한 시기에는 보훈정신이 살아 있었다.국가보훈처에서는 올해를 ‘보훈문화 확산의 해’로 정해 다양한 정책적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국가발전의 정신적 원동력으로서 우리 사회에 보훈문화가 꽃 피길 기대해 본다. 이재달 국가보훈처장
  • [대한광장] 희망의 傳令 아카시아꽃

    바야흐로 전국의 산과 들에는 향긋한 아카시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신록의 5월이 온 것이다. 아카시아꽃은 보는 이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한때 농림행정을 맡았던 나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의미와 사연이 있다. 지난해 5월 이맘쯤 때마침 부슬비가 내리던 홍릉의 임업연구원 숲 속에서는 산림청 소속 전국의 헬기 조종사와 정비사 가족들을 위로하는 조촐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얀 장막 안에서 속삭이듯 흘러나오는 노영심의 연가와피아노 선율이 지난 봄 내내 강원도 등 전국을 휩쓸던 엄청난 산불을 진화하느라 애간장이 녹을 대로 녹은 조종사와정비사,그 가족들의 메마른 가슴들을 촉촉히 적셔 주었다. 장막 위의 큰 느티나무엔 ‘아카시아꽃이 피었습니다’라는 현수막이 한가로이 너울거리고,노영심의 잔잔한 속삭임은 산불 진화 관계자들 모두의 가슴을 한없이 평화롭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들에게 제공된 저녁식사는 ‘돈가스(포크 커틀릿)’,60여년 만에 처음 겪은 서해안 지역의 구제역 파동이 동해안의 산불과 동시에 발생해 우리나라 주력 수출 축산물이었던돼지고기의 수출 길이 막혀 있을 때였다.선물도 산불이 발생했던 지방 곳곳에서 보내온 돼지고기 세트,동해안 수산물,곶감,잣 등으로 마련됐다. 산불이 미친 듯이 동해안지역을 강타하던 어느날,경찰 헬기를 빌려 타고 현장을 방문하여 공중에서 지켜볼 기회가있었다.필자의 눈 앞에서 초속 20m의 강풍인데도 아랑곳않고 육중한 산불 진화용 헬기에 커다란 물탱크를 달고 깎아지른 불타는 산 정상을 향해 불 속을 뛰어들어 물을 퍼붓자마자 화염을 뚫고 수직으로 상승하는 산림청과 육군 헬기조종사들의 목숨을 건 곡예를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나는 온통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그 순간 나도 모르게 지상의 산림청 간부에게 “아카시아꽃이 피면 조종사와 정비사 가족들을 위한 위로 잔치를 열어 드리겠다”는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그때의 약속을 지킨 행사였다.우리 국민의 공동 재산인 산림을 지키느라 목숨을 걸고 있는 이들의노고와 산림 감시원들의 애타는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그리고 아카시아꽃이 피면 산불도 멎고구제역 바이러스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을까.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면 나무 밑의 풀과 관목이 부쩍 자라나 어지간한 불씨에도 산불이 나지 않는다.이때쯤에는 지상 온도가 24도 이상으로 올라가 구제역 바이러스들이 죽어간다.그래서 아카시아꽃은 농업인들에게는 희망의 전령사(傳令使)인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평생 소비하는 종이와 목재 등의 수요량은 18㎥,30년생 소나무로 환산하면 237그루라고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평생 숨쉬면서 쏟아내는 탄산가스를 없애고 필요 산소량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약 565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말하자면 국민 1인의 생존과 생활을 온전하게 유지하려면 800여 그루의 나무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전국 643만㏊의 산림이 가져다주는 혜택은 대기정화 기능 이외에도 수원(水源) 함양,토사 유출 방지,야생조수 보호,산림 휴양 기능 등 우리가 깨닫지 못한 공익적 기능이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연간 50조원(GNP의 9.7%)어치나 된다.국민 1인당 연간 106만원의 혜택을 입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과 6·25전쟁 이후 황폐화한 우리나라 산림을 이만큼 가꾸기 위해 50년에 걸쳐 민·관에 의한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지난해보다는 덜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봄가뭄에 맞춰 산불이 전국에서 적잖이 일어났다. 선진국과는달리 산불 발생의 약 85%가 자연발화 때문이 아니라 등산객들이 무심히 버린 담배꽁초나 논불 놓기,군(軍) 실화 등인위적 실수로 인해 일어난다고 한다. 평생 한 그루 나무도제대로 심고 가꾸지 않은 사람일수록 ‘산림을 공짜로 즐기면서 불까지 내고 있는 현상’이 언제나 그쳐질 것인가. 그러면서 우리는 아카시아꽃이 피기만 기다리고 있다. 김성훈 중앙대 교수
  • 해방전 평양 지적도 원본 발견

    평양시의 해방 전 토지 구획실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지적도 원본이 모두 발견됐다. 서울시는 최근 부산에 있는 정부문서 임시 보관창고에서 6·25 이후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평양시 지적도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일제가 1910년부터 9년 동안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토지조사때의 측량 결과를 토대로 제작한 이 지적도는 198장의타블로이드 규격으로 6·25 이전까지 서울의 중앙 정부문서보관소에 보관 중이었으나 이후 전쟁의 와중에서 없어진 것을 최근 서울시가 경북 청도의 서울시 문서보존기록소 등에수소문한 끝에 확인한 것. 해방 전의 평양 지적도가 발견됨에 따라 해방후 북한이 단행한 토지개혁 이전의 평양시 일대 토지구획과 도시계획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평양 지적도가 모두 발견됨에 따라 다음주중 부산현지로 지적분야 전문 전산팀을 파견, 이 지적도를 모두 디지털화해 CD롬으로 제작하기로 했다.시 관계자는 “지적 전산작업이 마무리되면 연말로 예상되는 경평 축구대회 또는서울·평양간 중요 교류사업때 이 CD롬을 평양측에 전달할계획”이라고 밝혔다. 심재억기자 jeshim@
  • 한국전 상징 조형물 선정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안에 설치할 6·25전쟁 상징조형물에 대한 현상공모를 실시해 신한철씨(43·인하대 미대강사)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전쟁기념관 광장 중앙에 37m 높이로 세워지는 주 조형물은 상무정신을 상징하는 청동검과 생명수를 형상화했다.주변의 병사와 어린이상은 분단의 극복을 의미하며 청동검신에는 전후 50년사가 부조로 새겨진다. 새 조형물은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거쳐 올 10월쯤 건립 공사에 들어가 휴전 50주년이 되는 2003년 7월27일 전쟁기념관의 새로운 명물로 태어난다. 노주석기자 joo@
  • ‘시장경제와 그 적들’요지

    세계경제는 무역전쟁 중이다.승자만 사는 시장을 세계화라고도 한다.이 와중에 우리는 고전적인 전쟁이 진행 중에 있으니 50년 전에 치렀던 6·25전쟁의 망령이다. 지금 한국은 여러 국면에서 좌익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고있는 중이다. 노동계는 ‘민노총’이라는 노동단체가 힘을 쓰고 있다.어느 기업도 근로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교육계에는 ‘전교조’라는 노조가 용인되어 있으며 교육제도는 국가제도화돼 누구도 학교 선택권이 없다. 사학교육제도에 관해서는 재단이사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대신 교사,학부모,그리고 시민대표가 교장을 임명하도록 법을개정하려 하고 있다.사립학교인데도 정부가 허가해야만 교사를 채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 또 교장 임명권 등 운영권까지도 위원회에 넘기려 한다. 재벌개혁에 이르러서는 정부와 시민단체가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가급적 기업의 대주주를 억압하고 사외이사나 소액주주 권한을 확대하려 시도하고 있다.상호지급보증을 줄이고 부채비율을 낮추라 하고 또 계속 감시 감독하기 위해 재벌의연결 재무제표를 작성케 하고 있다.그래도 기업은 다른 부문보다는 아직 형편이 나은지 모른다. 최근에는 언론계에도 바람이 불고 있다.소위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이라는 3대 중앙지를 탄압하기 위해 무가지발행을 제한하고 구독료를 심사하고 언론사 주인에 대한 출자제한도 도모한다고 한다. 지난 수년 동안 참여연대는 소액주주운동을 통해서 대주주및 재벌 오너의 전횡을 견제하는 데 성공하였다.그러나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소액주주 권익을 위한 것도 아니고 대상기업의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그들의 목적은 ‘민(民)에 의한 자본의 통제’라는 무시무시한 목표가숨어있다고 한다.따라서 소액주주를 위한 운동은 만일 성공한다면 그때가 바로 그 운동을 중지해야 하는,그리고 바로본색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된다는 것이다.그들의 주장이다. 참여연대는 그동안 의약분업과 의료보험 재정통합,그리고국민연금과 관련하여 민중의 혜택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알고 있다.그런데 이들 정책이 파탄지경에 이르자그 원인을 이상한 데로 돌리려고 난리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항을 일별해 볼 때 지금 정부는 참여연대,전교조,민노총 등과 합세하여 한국사회를 국정파탄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소위 ‘민중’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이 개혁일지 몰라도 분명 자본주의의 근간을 침식하는 체제 변혁적인 것이다.이러다가는 경제가 파탄나고정치가 정지되며 도덕이 소멸할 것이 분명하다.어찌하다가우리가 좌경화의 길로 들어섰는가.지금이라도 국정파탄을 규탄하는 국민궐기가 필요하다.좌익(左翼)이 더 이상 국정을농단치 못하게 우익(右翼)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 [사설] 한 극우론자의 망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주요 대기업이 회원사로 설립 자금을출연한 자유기업원의 원장이 정부의 개혁조치를 두고 좌경화 운운하고 나서 충격을 주고 있다.한발 더 나아가 국민 궐기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힘들다. 민병균(閔炳均) 원장 명의로 언론계 등에 전달된 ‘시장경제와 그 적들’이란 e메일 내용은 마치 격문과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자유기업원이 아무리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구소라고해도,이번 문건 내용은 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198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양모 교수가 발표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글을 다시 보는 것 같다.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고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물론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한국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열린 사회’이다.당연히 민 원장도 의견 개진의 자유를갖는다.그렇지만 그의 주장은 너무 극단적이고 무리한 내용을 담고 있어 몇몇 대목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민 원장은 우선 “지금 정부가 참여연대와 전교조,민노총등과합세하여 한국사회를 국정파탄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무슨 근거에서 말한 얘기인가.그는 또 한국을 좌경화가 진행중인 나라로 규정한 뒤 좌익의 지속적인공격속에 50여년 전에 치렀던 6·25전쟁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참으로 해괴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더욱이“지금이라도 국정파탄을 규탄하는 국민 궐기가 필요하며 좌익이 더이상 국정을 농단치 못하게 우익은 잠에서 깨어나야한다”고 촉구한 대목에서는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책임있는 연구소 대표가 국가사회를 멋대로 좌익과 우익으로 나눠 대결을 선동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민 원장은 특히 사외이사 등 재벌개혁과 소액주주 권리운동,공정거래위원회의 언론사 조사를 두고 좌익의 공격이라고매도했다.반면 재벌의 횡포나 사학재단의 비리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그러나 사외이사나 소액주주 권리운동,불공정거래 조사는 미국 등 자본주의 선진국의 제도를 도입한것이다.그의 주장대로라면 선진국들은 대주주를 억압하기 위해 사외이사를 도입하고소액주주 운동을 지원하는 셈이다. 참여연대 등의 소액주주 운동 목표가 ‘민(民)에 의한 자본통제’라는 주장도 자기중심적인 해석이다. 온국민이 기업·금융구조조정 작업에 힘을 모아야 하는 시점에 이처럼 각계에 e메일을 보내 대결을 부추기는 저의가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문제의 문건이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인지,아니면 연구소의 소신을 피력한 것인지에 대해 민 원장은 분명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하루 아침에 좌익으로 매도당한 많은 국민들은 그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다.
  • “”정부 개혁 자본주의 저해”” e메일 파문

    현 정부가 일부 진보적인 노동단체,시민단체와 추진하고있는 개혁은 자본주의 체제를 저해하는 것이며,더 이상 좌경화되지 않기 위해선 우익이 나서야 한다는 e메일이 자유기업원 민병균(閔炳均·60)원장 명의로 언론사 등에 발송돼 파문이 일고 있다. 자유기업원은 대기업과 전경련이 출자해 설립한 연구소로시장경제와 자유기업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민 원장은 ‘시장경제와 그 적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세계화,디지털화 시대에 우리나라는 여러 국면에서 좌익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고 있으며,6·25전쟁과 같은 구 시대의 전쟁을 소리없이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 원장은 “지금 정부는 참여연대,전교조,민노총 등과 합세해 한국사회를 국정파탄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분명하다”며 “소위 ‘민중’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이 개혁일지 몰라도,이는 분명 자본주의의 근간을 침식하는 체제 변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우리가 어찌하다좌경화의 길로 들어섰는가”라고 반문한 뒤 “지금이라도국정파탄을 규탄하는 국민궐기가 필요하며 좌익이더 이상국정을 농단치 못하게 우익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고강조했다. 민 원장은 또 “(정부가) 조선·중앙·동아 등 3대 중앙지를 탄압하기 위해 무가지 발행을 제한하고 구독료를 심사하며,영업방식을 규제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특히“참여연대가 벌이고 있는 소액주주 운동에는 ‘민’(民)에 의한 ‘자본의 통제’라는 무시무시한 목표가 숨어있다고 한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 부산 영도다리 철거-보존 ‘뜨거운 논란’

    “철거냐,보존이냐”국내에서 하나뿐인 도개교(跳開橋:큰배가 다닐 수 있도록 위로 열리는 구조로 된 다리) 방식인부산영도다리의 철거문제를 놓고 부산시와 부산지역 문화·시민단체간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부산시는 일제때 건설된 영도다리가 너무 낡아 교량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됐다며다리를 철거한 뒤 새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있다.반면 지역문화계를 비롯 시민단체 등은 6·25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고 최근에는 장안의 화제를 몰고온영화 ‘친구’의 촬영 무대가 된 영도다리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들은 시민공청회를 여는 등 영도다리 살리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펴고 있다. [부산시 입장] 건설된지 67년 된 영도다리는 그동안 지속적인 보수정비에도 불구,교량의 노후화로 안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97년에 실시한 정밀안전진단 결과 하부구조의 설계하중이 3등교 수준인 DB-13.5(16.2t)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통과하중은 더욱 낮아 8t에 불과한 상태다.현재 시내버스를 제외한 8t이상 차량은통행이 제한돼 있으며98년부터는 철제 받침대로 근근히 버티어 오고 있다. 유지 보수비용도 만만찮다.시는 올해에만도 1억2,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균열을 보수하거나 이음매를 정비하는 등98년부터 매년 수억원의 보수비용을 들이고 있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도 선박 대형화 추세에 발맞춰 선박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교량높이와 교각간격을 기존보다높고 넓게 설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영도다리를 헐고 새로 건설하는 게 최선이라고 결론지었다.안영기(安永璂) 부산시 도로계획과장은 “영도다리를 보존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했지만 철거말고는 달리 해결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문화계 입장] 영도다리 뿐만아니라 건축물은 그 시대의 역사와 애환을 간직한 산 증거물이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연결고리로 이를 보존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부산시의 철거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특히 6·25전쟁으로 뿔뿔히 헤어진 피난민들이 영도다리에서 만날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다리난간에다 부모형제를 찾는 애타는 글귀를 붙여놓는 등 만남의 다리이자 만날 희망을 전해주던 영도다리는 역사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따라서 이만한 내력을 지닌 다리를 개발논리를 앞세워 철거하려는 것은 역사를 고스란히 후대에게 물려줘야 할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문화단체가 시작한 보존 움직임은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영도다리 현장에서 열린 현장시민공청회에는시만단체 관계자,교수,전문가,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으며 존폐여부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향토시인 최영철씨는 “도심의 평지공원이 없는 부산에서영도다리는 가꾸고 보존하기에 따라 바다에 떠 있는 작원공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도개교 방식을 복원하면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로를 넓히지 않고도 교통문제를 해결한 선진국 도시의 예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며 남포동에 짓는 제2롯데월드로 인해 늘어나게 될 교통량은 다른 다리를 놓든지 해저터널을뚫으면 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김기묘 부산시 여성단체협의회장도 “부산 시민들은 영도다리가 차량통해이 금지된 해상문화공간으로 남을 것으로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부산 명물 영도다리란. 영도구와 중구를 잇는 주요 간선도로로 현재 하루 교통량이4만2,000대에 달한다. 영도다리는 1931년 착공,당시 공사비 700만8,000원을 들여1934년 개통된 부산 최초의 연륙교.길이가 214.63m이며,도개식(跳開式)으로 거대한 다리를 하루에 2번씩 하늘로 들어올려 관광명물이 됐다. 개통 당시의 공식 이름은 부산대교.부산방향으로 31.3m를들어 올려 1,000t급의 기선이 지나가도록 건설됐으며 당시공사기술로서는 매우 어렵고 큰 공사였다.또 영도다리 가설공사는 시작부터 한인(韓人)들의 수난이 점철됐다고 전해진다.당시 산이었던 영선초등학교 자리의 산을 깎아 영도다리호안매립공사를 하면서 산이 무너져 노무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 6·25전쟁때 생활고에 쪼들린 피난민 등이 투신자살,한많은 생을 마감한 장소로도 유명했다.당시 자살자가 속출하자 경찰관이 배치돼 감시를 하기도 했다. 교통량이 늘어나자 66년 9월 1일부터 다리를 고정시키고 현재의 부산대교가 80년 1월 30일 개통됨에 따라 이름도 영도대교로 바뀌었다.
  • 5. 18 아니고 5·18 입니다

    ‘5.18’이 아니고 ‘5·18’입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21주년을 맞아 시내 곳곳에 내걸린각종 플래카드,도로 이정표,각급 학교 학습자료,일부 언론의 ‘5·18관련기사’ 등 상당수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는 3일 역사적 사건인 5·18이 아무런 의미도 없고 단순한 수량적 표기에 불과한 ‘5.18’로 표기되고 있어‘5·18’로 바로잡는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각급 언론사 등에 배포했다. 시는 중국의 5·4운동,미국의 7·4독립기념일 등처럼 역사적 사건은 국제적 관행과 한글맞춤법에 따라 ‘가운뎃점(·)’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현행 한글맞춤법은 상용부호 표기법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날에는 가운뎃점을 사용한다’는 원칙을세우고 있다.이에 따라 3·1운동,8·15해방,6·25전쟁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5월의 호국인물 백재덕

    전쟁기념관은 6·25전쟁때 강원도 금성지구 전투에서 큰공을 세운 백재덕(白載德) 이등상사를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백 이등상사는 192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전쟁 발발후인 50년 9월 입대,최일선에서 활약했다.특히 53년 5월국군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3분대장으로 강원도 금성 샛별고지에서 야간 매복작전중 적 3개 중대의 공격징후를 미리 발견하고 분대원을 독려해 적과 맞섰다. 백 이등상사는 휴전 이듬해 육군 이등상사로 예편,88년 63세로 타계했으며,유족으로는 장남 영배(英培·50)씨를 비롯,영근(英根·46)·영만(英萬·44)·광자(廣子·53)씨 등 3남 3녀를 뒀다. 노주석기자 joo@
  •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민속연 제작 배무삼씨

    어렸을적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싶은 마음으로 누구나 한번쯤 날려봤을 연(鳶).옛날엔 정월 대보름날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이란 글을 써서 연줄을 끊어 하늘높이 날려보내곤 했다. 연은 1,300여년 전인 신라 진덕여왕 원년(서기 647년)에김유신 장군이 비담과 염종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이후 고려말 최영 장군,세종대왕때 남이 장군,임진왜란때이순신 장군이 화공법이나 작전지시 수단으로 사용하다가영조대왕(1724년)때 궁중놀이인 연날리기를 민중에게 장려하면서 민간에 파고 들어갔다. 이런 내력을 지닌 연이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아직도 고집스레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부산민속연보존회 이사장 배무삼(裵武三·58)씨.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지금도 방 한칸을 작업장삼아 한지를 손질,문양을 그려넣고 대나무를 다듬어 붙여 명주실로 병잡기(무게중심잡기)를 하고 있다.하루 많이 만들면방패연으로 4∼5개. 그가 연과 인연을 맺은 것은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가 주최한 부산국제친선연날리기대회에 출전한 74년.연만드는손재주를 당시 보존협회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계기였다. 그는 동구 초량동 집에서 동래구 온천동 보존협회까지 틈만 나면 걸어가 연만드는 법과 띄우는 법을 배웠다. 당시엔 동래가 민속연 만들기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6·25 전쟁으로 전국 피란민들이 모이면서 제작기법이 한단계높아졌기 때문.연 제작법과 날리기대회의 규칙 등도 이때전국적으로 표준화됐다. 연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배씨는 87년 부산공동어시장을그만뒀다.“돈도 되지 않는 일을 한다”는 부인(53)의 만류도 뿌리쳤다.이후 연날리기대회도 별로 없고 연을 찾는사람도 없어 입에 풀칠조차 어렵게 됐다. 배씨가 제작한 방패연은 1만4,000원,가오리연 7,000원,얼레 1만5,000∼5만원이다. 그럼에도 평생 배운 기술을 묵히기 아깝고 연을 널리 보급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 아직 계속하고 있다.94년엔 부산민속연보존회도 만들었다.연 전시 박물관과 함께 항상 연을 날릴수 있는 공간확보가 여생의 꿈. “연은 단순한 듯하지만 자유자재로 조종이 가능한 비행물체이기 때문에정교한 과학”이라고 강조하는 배씨는 94년 부산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으나 보류됐다.연락처 (051)554-6475. 글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8)풀무원 원경선 원장

    △ 풀무원 원경선 원장의 생명·평화·전도운동. “신 김치 먹고 살래?안 먹고 죽을래?” 이 질문은 원경선원장이 인류에게 던지는 양자택일의 메시지다.여기서 신김치는 무공해,그리고 정직한 재래식 식품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다. ●산성체질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현대인의 삶이 구조적으로 신김치와 거리가 멉니다. 그게 본말의 전도 아니오? 모두 부와 편리를 추구 하지만생명을 무시한 부와 편리는 결국 위기를 맞이했거든. ●어떤 위기인가요?세계 인구가 60억인 지금도 기아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몇억입니다.유엔 통계에 의하면 30년 후면 80억이 된다고 해요. 그 때 가면 어떻게 되지요.얼마 전에 전경련 환경위원회의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는데 그 때 대놓고 그랬어요.“당신들 공장 자꾸 짓지 말라”고.6·25 때 내가 직접 겪었어요. 쌀 한말 하고 피아노 한 대 하고 맞바꿔요.먹거리가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식량위기가 오면 공산품 먹고 살 수 있나요.지구 환경 감시기구인 ‘월드워치’가 ‘21세기는 기아의세기’라고 경고했어요.예사로 들을 얘기가 아닙니다. ●처음 장만 할 때 밤잠을 설치던 논을 묵히고 있는 것이농촌 실정입니다.경작지를 늘리려면 농업인구가 늘어야 하고 그래 봐야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농업인구가 늘면 우선 실업문제가 해결됩니다.그러면 농촌문제 해결됩니다.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땅의 생명력이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땅이 생명력을 잃는 것은 문제이긴 합니다.사람을 흙으로빚었으니 말입니다. 1994년 덴마크에서 열린 어떤 국제회의 발표인데 정상적인 남자의 정자수가 1억 내지 1억3천만 마리인데 항공사 직원은 5천만 마리,공무원은 7천만 마리라는 겁니다.이는 뭘 말하느냐.항공사 승무원이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거든요.또 1996년 일본 데이교 대학에서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정자수가 40대,30대,20대로 내려 올수록 적다는 겁니다.현대 문명에 많이 접한 사람일수록 정자 수가 적다는건데 바꿔 말하면 화학비료와 농약에 더 많이 노출됐다는말이고,맛있는 음식 즉 가공식품을 더 많이 먹었다는 말이지요.또 있어요.1998년도에 나온 ‘도둑 맞은 미래’라는책에 보면 플로리다주 늪지대 독수리의 80%가 사라지고 악어는 아예 전멸했다는 거요.알아 봤더니 합성세제 등으로인한 환경호르몬 영향이라는 거요.이쯤 됐으면 뭔가 삶의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각성이 올만도 하지요?●미국인들이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사료로 들어가는 곡물이면 제3세계 1억 인구가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료가 있습니다.식량의 절대량 보다 분배 문제에 초점을 맞춘 자료지요. 일리 있어요.세계적으로 비만이 원인이 된 성인병 환자와기아에 허덕이는 사람 숫자가 공교롭게 비슷하다는 통계도있지요.교회 주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는대목이 있어요.이는 무슨 말이냐.쌓아 놓지 말라는 뜻입니다.그런데 잔뜩 쌓아 놓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사람들이 많아요.그러면 가만히 앉아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면 될까요? 그것도 안돼요.일해야 합니다.생명이 본시부단히 움직이는 건데 가만히 있으면 죽음이오.운동하는 것은 삶인데 그게 바로 노동이 아닌가요? 아무도 쌓아 놓지 않고 아무도 놀지 않고,그러면 해결 됩니다. ●옛날 어른들이 “벼가 주인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는말을 하더군요.벼 자라는 것이 새끼 크는 것처럼 재미가 나야 진짜 농사꾼이 된 거라는 말도 하고요.꼭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농사도 체질에 맞아야지 아무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귀농자들이 고비를 못 넘겨 실패하는데 어떤 일이나고비는 있어요.아까 말대로 아침 나절에 돌아 볼 때 다르고 저녁 나절에 돌아 보면 또달라요.그러다 보면 힘든 줄 모르고 애착이 가죠.애착이 가니까 정성이 들어 가고.옛날 어떤 사람이 똑 같이 농사를 짖는데 소출이 많아,그 비결을물었더니 ‘나는 하얀 새를 본다.그런데 그 하얀 새는 꼭두새벽에만 나온다’고 하더래요.어떤 일이나 같아요. ●‘벌레도 같이 살아야 한다’든가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해야 한다’는 윤리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고 생산성도높여야 하는 지금의 농촌 현실에 별로 설득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 농약,비료 안쓰고 화학비료 대신 퇴비 쓰면 감자는 세배,화본과(禾本科)는 50%까지 더 나와요.물론 과학영농을해야지요.그리고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해 볼까요.우리풀무원은 항상 들어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아이들 세계에서는 새로 이사온 아이가 있으면 텃세를 하지요?그런데 풀무원에서는 그게 거꾸로 돼요.새로 온 아이들이기왕에 있던 아이들을 휘둘러러요.왜냐,사납고 거칠거든.그원인을 살펴 봤더니 음식이 원인이라.딴 데서 온 아이는 산성체질이라 조급하고 공격적인 반면 이곳에 오래 산 아이들은 온순하고 평화적이거든.대부분 성인병이 고지방, 고단백질에서 오는 식원병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어요. 미상원 영양특위 맥거번 위원장은 ‘사회문제를 환경이 아닌 영양에서 찾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일이 있습니다. 결손가정 아이보다 산성체질의 아이에게서 문제아가 더 많더라는 것이지요.대표적인 예가 백미와 현미의 차이입니다.현미를 먹으면 체질이 바뀌고 가벼운 노이로제까지 해결됩니다. 식품이 신체는 물론 정신건강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위험 하니까 미생물과 잡초를 멸종 시키는 농법은 안된다” 차원을 넘어 유기농 식품이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논리로 확대되는 군요. 맞아요.지금 우리가 흙 1그램에 미생물이 5천만 내지1억마리가 있는데 이것을 죽이면 안된다고 하잖아요? 요새는그 말에 많이들 공감 합니다.그런데 흙 속의 미생물 죽이면안된다고 하면서 사람은 마구 살상해도 괸찮은가. 군대라는게 그거 아니오. 군대가 말이요,연원을 따져보면 청동기 시대에 처음 생긴거라.먹고 쓰고 남는 것을 창고에 쌓아 두고그것을 지키기 위해 생긴 것이거든. 예수님 말씀대로 자기곳간에 쌓지 않고 하늘 곳간(이웃)에 쌓으면 지킬 필요가없겠지,거기다 현대의 가공식품이 사람을 공격적이고 조급하게 만들어요. ●원장님의 생명운동이 건강한 농업에서 평화운동으로 바뀐셈이군요. 내 일생은 오직 전도요.처음 풀무원을 시작할 때는 오갈데 없는 사람들 데려다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고 2단계는 생명있는 농산물 생산과 유통,그리고 마지막에는 평화운동이라.이것이 생명운동의 귀결이라 보는데 사실은 시종일관 전도라고 보면 됩니다. 대담 김재성 논설위원. △원경선 원장▲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 ▲16세 누에치기로 농사 시작 ▲1938년 지명희 여사와 혼인 ▲1955년 경기도 부천에서풀무원 시작 ▲1976년 경기도 양주군으로 풀무원 이전, 유기농 시작 ▲1960년 거창고등학교 재단이사장(현재) ▲1992년 녹색인상 1955년 글로벌 500인상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현재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 이사장,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 *55년 자립 신앙공동체로 출발한 '풀무원 농장'. 원경선(元敬善) 원장은 1955년 경기도 부천에서 ‘풀무원’농장을 시작했다. 가난하고,병들고,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자립의 길을 마련해주기 위한 신앙 공동체였다. [누구든지일하면 먹을 수 있다.다만 쌓아 두지는 못한다. 열심히 일하면 쌓을 수 있다.그러나 자기 곳간이 아닌 하늘에 쌓아야한다.이웃을 위해 베푸는 것이 바로 하늘에 쌓는 것이다]원경선 원장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풀무원 농장의청지기 정신이다. 풀무원이라는 이름은 버려진 쇳 조각들을 모아 유용한 도구로 만들듯 생명을 풀무질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그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는 전쟁고아,행려병자,알코올 중독자,전과자 등 무수한 ‘버려진 돌’들이 모여 들었다.그중에 더러는 다시 태어나는 담금질을 견디지 못해 뛰쳐 나갔지만 대부분은 나름대로 요긴한 ‘모퉁이 돌’이 되어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풀무원이 문을 연 50년대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하면 허기를 면하느냐가문제였으므로 너나 없이 질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증산(增産)만이 살 길’이었다.자연히 농사는 농약과비료에 의존했고 풀무원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러나 정직을일생의 신조로 삼고 살아온 원경선 원장에게 이 농법은 맞지 않았다.농약과 화학 비료 때문에 땅이 죽고 땅 속의 미생물이 죽고 결국 사람도 죽는다는 생태계 이치는 차치하고먹어서 해로운 것을 생산한다는 것은 정직이라는 그의 신조가 허락치 않았다.그래서 그는 유기농법을 시작했다.네사람분의 사료를 먹여 한 사람이 먹을수 있는 계란이나 우유를 생산할 뿐이라는 로마 클럽의 보고서를 읽은 후 양계장도 폐쇄했다. 1976년 4월,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옥정리로 농장을 이전한풀무원은 그 안에 ‘한삶회’라는 생활 공동체를 결성했다. 생태계 이치가 그러하듯 사람 사회도 서로 도와가며 힘을합쳐야 보람이 있고 신명이 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아울러생명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농법으로 정직한 농산물을 생산하자는 취지의 ‘정농회’(正農會)도 만들었다.그리고 바른 농사법을 널리 펴는 데 힘을 쏟았다. 풀무원 농장에서는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배운 사람과못 배운 사람 구별이 없다.다만 정직한 사람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그래서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보장된다. ‘㈜풀무원 식품’은 20년 전에 풀무원 정신을 바탕으로 시작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보급하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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