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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盧대통령 ‘訪日 발언’ 파문 / 이번엔 공산당 논쟁

    노무현 대통령이 방일(訪日) 마지막날인 지난 9일 일본 국회연설을 마친 뒤 정계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공산당 허용 시사’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있다. 아직도 ‘레드 콤플렉스’가 심각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언급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 대통령은 “한국에서도 서유럽이나 일본처럼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원론적으로만 보면,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서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처럼 공산당도 제도권내로 편입돼 합법적인 테두리내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이 60년 가까이 대치하는 상황에서,특히 한국전을 경험한 현실에서 그러한 발언은 노 대통령의 본의와는 다르게 해석될 소지도 많다. 그렇지 않아도 노 대통령의 노선에 대해 곱지 않게 보는 층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 더 그렇다.6·25를 보름 앞두고 나온 노 대통령의 발언은 그래서 정계는 물론,사회적인 파장이 작지 않을 것 같다. 노 대통령이 공산당 대표와 환담하면서 ‘립 서비스’ 차원에서 듣기 좋은 말을 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측의 해명이다. 하지만 이번 ‘공산당 관련’발언은 노 대통령의 잦은 말 실수에 또하나 추가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는 “노 대통령의 말은 외교적인 수사로 보인다.”면서 “탈(脫)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을 강조한 발언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우리사회에서 지나친 이데올로기 논쟁을 피해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 같다.”고 노 대통령을 변호했다.하지만 민주당내에서도 노 대통령의 말은 부적절한 것으로,불필요한 논쟁만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이 노 대통령의 방일을 놓고,‘등신 외교’라고 말해,호기를 맞았는데,하루 아침에 전세가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분석하는 청와대와 민주당 관계자들도 있다. 헌법 8조 1항에는 ‘정당의 설립은 자유’라고 돼 있다.하지만 4항에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해산된다.’로 돼 있다. 이와 관련,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당명이 문제가 아니라,당헌·당규·정강정책 등이 현행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정당 설립은 원칙적으로 자유지만,누가 보더라도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보는 경우에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당헌·당규 등의 내용에 따라,설립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광복직후인 45년 8월 조선공산당이 설립된 게 당명에 ‘공산당’이 들어간 유일한 사례다.이 당은 그러나 46년 2월 미군정이 정당 설립을 받기 전에 없어졌다. 곽태헌기자 tiger@
  • 안보없이 경제발전 어려워 韓美관계 더욱 공고히 해야 / 다음달 27일로 정전협정 50주년 맞는 백선엽 장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83세의 백선엽(白善燁) 장군은 지금도 ‘전우∼’의 노랫말을 정확히 외운다.만주군 활동,빨치산 토벌대장,6·25때 낙동강 다부동 전선 사수와 평양 최선봉 입성,살아 있는 전설의 백전노장 등등.파란과 곡절의 세월만큼 뒤따르는 수식어도 많다. 노(老)장군은 매년 이맘때면 회한과 상념에 빠져든다.숱한 아비규환이 담긴 흑백필름이 어김없이 그의 뇌리속을 때린다.먼저 간 전우의 얼굴이 생각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슴을 쥐어짜는 통한을 뼛속 깊이 느껴보기도 한다.때론 국립묘지로 달려가 동료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보기도 한다. 노장군에게 이유를 묻자 “너희들은 잘몰라.산자의 몫을 망각해서는 안되지.”라고 알듯말듯 말꼬리를 흐린다. 다음달 27일이면 6·25전쟁 정전협정 50주년을 맞는다.핑계삼아 노장군에게 정중히 인터뷰를 요청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뜰에서 만났다.시계바늘을 50여년 전으로 돌렸다. ●잊지 못할 요정 래봉장 51년 7월10일 오전 10시.개성의 99칸 한옥 요정인 래봉장(來鳳莊).정전협정을 위한 첫 테이블이 마련됐다.미 극동군해군사령관 조이 제독(중장)이 남측 수석 대표,백선엽 소장이 한국측 대표로 참석했다.북측에서는 남일 조선인민군참모장과 이상조 조선인민군전선사령부 참모장,덩화(鄧華)조선인민지원군 부사령관 등이 참석했다.적과의 첫 만남,서로 총부리를 겨눈 대치상황 때문인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첫 대사는 “회담은 하되 전투는 계속된다.”는 조이 제독의 말이었다. “래봉장은 99칸의 기와집이었어.일부는 파괴돼 있었고 멀쩡한 칸은 공산군 간부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더군.서로 싸움질하다가 만났기 때문에 으르렁대는 냉랭한 분위기였지.북측은 북쪽에,남측은 남쪽 테이블에 앉았는데 말이야,북쪽 테이블이 남쪽보다 약간 높았어.신경이 쓰이더군.그래서 아군측 테이블 깃발의 높이를 약간 높이 세웠더니 그들도 금방 높이더군….” 이후 회담에는 백선엽,이형근 소장에 이어 육군참모차장 유재흥 소장 등 5명의 한국군 대표들이 차례로 참석했다.회담 장소도 개성 래봉장에서 판문점으로 옮겨졌다. 백 장군은 “당시 회담에 참석해 보니 남일 수석대표는 중공군의 눈치를 자주 봤다.”면서 “모택동이 회담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주은래가 물밑 외교작전을 펼쳤다.”고 회고했다. ●아이젠하워와 담판 승부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백 장군은 미국을 방문했다.51년 제5순양함대 사령관으로서 함포사격을 지원했던 미 해군성 전략기획국장 알레이 버크 제독을 만났다.버크 제독과는 래봉장 휴전회담 대표였던 인연도 있었다.그는 백 장군에게 “아이젠하워의 휴전 방침은 이미 굳어졌다.아무리 이승만 대통령이 반대해도 안된다.”고 여러차례 귀띔했다.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어떤 보장을 얻어 내지 못한다면 한국의 장래는 위태롭다고까지 했다. 내친 김에 백 장군은 이튿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단독 면담했다.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나의 선거 공약”이라고 말했다.백 장군은 “그렇다면 안보와 경제발전을 담보하는 획기적인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그러자아이젠하워는 월터 스미스 국무차관을 만나 협의해 보라고 대답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렇게 해서 출발했지.그러나 미국은 휴전 이전에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 공산군측이 휴전협상을 결렬시킬 것을 우려했어.귀국후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이같은 분위기를 전달했더니 매우 흡족해하셨지.그해 6월25일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인 월터 로버트슨이 한국에 특사로 파견돼 한·미방위조약에 대한 세부 사항을 이승만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협의하게 됐지.” ●“주한미군 철수주장은 언어도단” 최근 일부에서 제기하는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대해 노장군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 뒤 “어찌 안보보장없이 경제발전이 가능하고 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노장군은 또 “요즘처럼 어려울수록 한·미동맹관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면서 “부시 정부는 자국의 청년들이 해외에서 더이상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그는 또 미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는 철수 전단계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발생한 북한어선의 NLL 침범에 대해서도 “북한의 저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데 꽃게니 뭐니 운운하고 있다.”면서 굳건한 한·미동맹은 북한의 핵무장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노장군은 1920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평양사범,만주군관학교,군사영어학교,1사단장,군단장,육군참모총장,한국군 최초의 육군대장을 지낸 전쟁 영웅이다. 노장군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운동,강연,외부인 접견 등 어느것 하나 마다하지 않는다.주한미군 관계자들과 만나도 통역없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며 기억력도 뛰어나다. 최근에 노장군을 상징하는 몇몇 행사가 있었다.지난 5월6일 ‘백선엽장군 리더십상’을 주한미군에서 제정했다.5월18일 노장군은 메릴랜드 한국분교에서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내가 5년전 6·25전쟁 50주년기념사업회위원장을 맡아 지금까지 많은 일을 했지.다음달 27일 전쟁기념관으로 와.27m높이의 한국전쟁기념탑 준공식이 있을 거야.건강? 특별한 거 없어.일찍 자고,웃으며 사는 거야.마누라 해주는 밥 잘 먹고….” 김문기자 km@
  • 기고 / 애국선열 나라사랑 정신 미래밝힐 등불

    만물이 성장을 거듭하고,녹음이 푸름을 더해 가는 6월이다.선열들의 위국헌신 정신이 빛을 발하는 호국·보훈의 달이기도 하다. 자연이 가을의 풍요로운 열매를 맺기 위해 여름의 따가운 햇볕과 지루한 장마를 이겨 내듯이 국가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와 발전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자원봉사자,일제 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던 독립지사,6·25전쟁 때는 하나뿐인 몸을 바친 호국용사가 있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고귀하지 않은 희생이 없겠지마는 그 중에서도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은 개인과 가족의 이익보다는 타인과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고 존경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단단한 결속을 보이는 가족일수록 그 이면에는구성원 누군가의 숨은 헌신이 있기 마련이다.그러한 희생에 대해 가족 모두 진심으로 감사해 할 때 가족의 사랑은 더욱 커질 것이다. 국민의 화합과 단결도 이와 다르지 않다.어려움에 처한 대한민국을 지켜 낸 분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최대한의 예우를 함으로써 국민의 공동체 의식을 높여 나갈 수 있는 것이다.국가유공자에 대한 응분의 보상과 사회적 예우를 통해 국민적 일체감을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공동체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일,바로 여기에 보훈의 참뜻이 있다. 보훈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국가존립은 보장되지 않는다.국가보훈의 중요성은 선진국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미국 등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들은 보훈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국가유공자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는 실로 대단하다. 심지어 수도(首都) 자체를 보훈시설물 위주로 설계할 정도이다.이들에게 보훈은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며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발전 수준에 비해 국가보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정부에서는 지난 5월 전문 여론조사기관과 공동으로 국민의 보훈의식을 조사한 바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5.6%가 국가유공자가 국가발전에 기여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분들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는 대답은 38.2%에 불과했다.호국·보훈의식도 47.8%가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고 답변한 반면,좋아졌다는 의견은 19.6%에 그쳤다.이처럼 갈수록 호국·보훈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정부에서는 미래지향적인 보훈정책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호국보훈정책 중장기 발전계획’을 마련하는 등 보훈문화를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이에 못지않게 국민적 관심과 성원도 절실하다.보훈가족에 대한 보다 많은 감사와 존경,국가유공자의 희생을 되새겨 보고 우리가 터 잡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역사는 선조들이 영위해 온 삶의 거울이자 앞으로 우리가 꾸려 나가야 할 미래의 살아있는 교과서라는 말이 있다.동서고금을 통해역사의 교훈을 소중하게 여긴 민족은 ‘위기와 도전’을 오히려 ‘기회와 희망’으로 전환시켜 국가발전의 계기로 삼아 왔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단순히 잊혀져 가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밝혀 줄 수 있는 기본가치로 자리매김하는 일,오늘날 우리에게 부여된 책무가 아닌가 싶다. 안주섭 국가보훈처장
  • 서해 NLL ‘꽃게 어장’ 남북공동어로구역 제안

    꽃게잡이 철이면 되풀이되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갈등의 해소책으로 남북 공동어로수역이 거론되고 있다. 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은 3일 성명을 내고 꽃게철만이라도 NLL 부근에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도 이날 참여연대와 평화군축센터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꽃게잡이 남북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나 전문가들은 4일 “북한은 6·25 전쟁 이후 줄곧 NLL 자체를 인정해 오지 않고 있다.”며 “서해상에서 남북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우리측이 공동어로수역 지정을 제안한다고 하더라도 북측이 이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또 꽃게가 집중 서식하고 있는 백령도와 연평도 사이 해역은 현재 NLL 아래쪽에 위치한 남측 해역인 만큼,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할 경우 우리 어민에게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도 쉽게 추진할 수 없다. 김상연기자 carlos@
  • 관광공사 선정 ‘6월에 가볼만한 곳’

    6월은 본격적 더위와 함께 연두색 나뭇잎이 진초록으로 바뀌는 계절.성급한 이들은 벌써 계곡이나 바다로 물놀이에 나선다.이 달은 또 현충일(6일)과 6·25가 끼어 있는 ‘호국의 달’로 아픈 역사의 현장도 나들이를 겸해 한 번쯤 찾아볼 만하다.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6월에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한다. ●섬강 일대(강원 횡성) 서울에서 2시간만 가면 산과 계곡,호수와 자연휴양림이 어우러진 횡성의 섬강 일대에 닿는다.횡성이란 지명도 섬강이 동에서 서로 가로지른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횡성 나들이는 섬강을 따라 4번 군도를 달리는 드라이브로 시작한다.한쪽에 섬강이,다른 한쪽엔 논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길 양편으로 산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그만이다.드라이브 코스가 끝날 무렵 횡성댐이 나온다.댐 주변엔 물홍보관과 함께 수림공원이 조성돼 있다. 횡성호 주변을 드라이브한 뒤엔 등산이나 계곡 트레킹을 하면 된다.추동리 병지방계곡이 좋다.어답산 서북부 준평야지대에 형성된 이 계곡은 맑은 계곡물과 울창한숲이 시원하다. 등산을 하고 싶으면 어답산(789m)에 오르면 된다.신라 박혁거세가 태기산의 태기왕을 뒤쫓다가 이 산에 들렀다고 해 붙여진 이름.어답산 정상에 서면 그림처럼 펼쳐진 횡성호와 삼거리 저수지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중앙고속도로 횡성IC에서 빠져 횡성읍내를 지나면 4번 군도를 탈 수 있다.횡성군청 관광경제과(033-340-2544). ●농가에서의 하룻밤(충남 청양) 청양은 고추와 칠갑산으로 유명한 곳.시골 인심이 후한 이곳에는 천년 고찰을 자랑하는 장곡사와 정혜사,최익현의 영정을 모신 모덕사가 있다. 장곡사는 칠갑산(561m)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통일신라시대 보조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괘불(국보 300호) 등 문화재와,다른 사찰에선 보기 힘든 2개의 대웅전,즉 상·하 대웅전을 갖고 있다.장곡사를 둘러보고 나면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하거나 휴양림에서 쉬어가면 된다. 칠갑산 주변으로 개곡리 마을,까치네 마을 등 산간마을이 정겹게 자리잡고 있다.이곳에선 민박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냇가에서멱도 감고,다슬기와 송사리도 잡으며 동심을 느껴볼 수 있다. 천안-논산 고속도로 남공주IC에서 빠져 36번 국도를 타고 정산을 거쳐 청양으로 가는 코스가 빠르다.문의 청양군 문화관광과(041-940-2224). ●다부동 전적지(경북 칠곡) 다부동은 한국전쟁 때 ‘철의 삼각지’와 함께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북한군 2만 4000여명,국군 1만여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이곳엔 독특한 탱크 모양의 다부동 전적비와 기념관,시인 조지훈이 1950년 8월의 치열한 공방전을 끝낸 후 참상의 현장을 찾아 지었다는 ‘다부원에서’ 시비가 있다. 또 유학산 전투지역 탐방로,왜관지구 전적비,밀려오는 적군을 막기 위해 끊겼던 비운의 ‘호국의 다리’ 등이 스러져간 호국 영령의 뜻을 기리고 어린 자녀들에겐 의미 있는 체험학습의 현장이 될 만하다. 여유가 있다면 도개온천과 가산산성,기성동 3층 석탑,파계사·동화사가 있는 팔공산도립공원도 들러볼 만하다.다부동 전적지는 중앙고속도로 다부IC를 빠져 나오자마자 나오며,경부고속도로 왜관IC에선 20분쯤 걸린다.칠곡군청 문화공보과(054-979-6061). 임창용기자 sdargon@
  • “옛 전우여 철원서 만납시다”금성지구 전투 50주년 행사

    “노병들이여,철원에서 다시 만나자.”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 중부전선에서 치열한 금성지구 전투를 벌였던 70대 노병들이 5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된다. 육군 승리부대는 4,5일 이틀동안 화천군 상서면 말고개와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서 휴전회담 직전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금성지구 전투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는다. 이 자리에는 생존이 확인된 금성지구 전투 참전자 660명 가운데 고령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가능한 참전자 200명이 참석,옛 전우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정전협정 이후 비무장지대(DMZ)가 된 당시의 전투현장을 둘러본다. 기념행사에는 6·25 5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장 백선엽 예비역 대장,육군쌍용부대장,승리부대장,화천군수 등 4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철원 조한종기자 bell21@
  • 박영규·앙미경씨, 보훈처 홍보대사

    국가보훈처(처장 안주섭)는 30일 탤런트 박영규·양미경씨를 ‘보훈처 나라사랑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박씨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의 플러스플러스 복권 홍보모델로 활동한 경력이 있고,양씨는 아버지가 6·25 전상군경이고 숙부 2명은 베트남전과 군 작전 중 부상한 국가유공자다.
  • ‘호국·보훈의 달’ 다양한 행사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국민 화합을 다지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6월을 추모,감사,화합·단결의 기간으로 열흘씩 나눠 기간별 특색에 맞는 행사를 펼치기로 했다.우선 추모기간(1∼10일)에는 국립묘지,현충탑 참배 범국민 운동을 벌이고,제48회 현충일 중앙추념식을 ‘국민화합 추모 대제전’으로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거행하기로 했다. 또 대전 국립현충원과 각 지역 현충·충혼탑 및 전국의 초·중·고교에서는 지자체나 학교별로 실정에 맞는 현충일 추념식을 갖도록 할 예정이다. 감사기간(11∼20일)에는 국가유공자 포상,전적지 순례,글짓기 대회 등의 문화행사를 열고,화합과 단결기간(21∼30일)에는 6·25전쟁 53주년 기념식과 통일기원 자전거 달리기 대회,웅변대회,참전용사 위로잔치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6월의 호국인물’ 윤길병대위

    전쟁기념관(관장 박익순)은 6·25전쟁 당시 강원도 인제 812고지 전투의 영웅 윤길병(尹吉炳·1931.1.19∼1953.6.6) 육군 대위를 ‘6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경북 경주 출신의 윤 대위는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경주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51년 1월 육군소위로 임관,6사단 2연대에서 소대장,중대선임 장교로 복무하며 사창리와 용문산 전투 등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다. 53년 1월 대위 진급 뒤 12사단으로 전속된 그는 같은 해 6월 12사단 37연대 3대대 10중대장으로 인제군 서화 북방 812고지 방어전투에 참가,1개 대대 병력의 북한군과 5일간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진지를 사수했다.
  • 保·革진영 새달 ‘100만 시위’ 맞대결/相生의 ‘톨레랑스’ 어디에

    ‘민주항쟁의 달’이자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한반도가 또 한번 보·혁 대립의 격랑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6월 중 ‘100만 시위’를 각각 준비하면서 벌써부터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보수적 경향으로 돌아서면서 진보-보수 진영은 대정부 투쟁 수위에 혼선을 겪고 있다.그러나 상대를 향한 적대감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다.양측이 모두 자제하지 않을 경우 최근 국가기강 해이 등과 맞물려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시각차도 확연해 외교적 파장도 우려된다.‘톨레랑스’의 정신으로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풍토 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00만 대 100만의 세대결 새달 13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여중생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 시청광장을 비롯한 전국에서 촛불 대행진을 계획하고 있다.이에 맞서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와 종교단체 역시 일주일 뒤인 21일 같은 장소에서 ‘반핵·반김(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및 6·25,6·29(서해교전) 전몰자 추모대회’를 기획 중이다.양측 모두 100만명 참가를 공언하고 있다. ▶관련기사 4·5면 범대위측은 ‘100만 촛불대행진’을 위해 10만명 준비위원을 모집하고 있으며,25일 현재 3만 2000여명이 등록했다고 밝혔다.‘사대 굴욕외교 노무현 정권 규탄’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요구’ 등이 대회 슬로건으로 준비되고 있다. 보수측에서는 한국자유총연맹·재향군인회·성우회를 비롯한 114개 단체와 순복음교회·광림교회 등 5개 대형교회가 합동으로 21일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결의도 할 예정이다. ●극단적 태도가 문제 지난달 19일 서울 시내에서는 보수·진보단체의 젊은이들이 주최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반핵·반김 자유통일 4·19청년대회'와 ‘4·19반전평화 청소년 행동의 날' 행사였다.각각의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입에서 ‘빨갱이’-‘미국의 주구’란 극단적 용어와 고함,삿대질이 오갔다. 진관 스님은 “이 국토에 양키만 없으면,통일이 된다면우리에겐 노숙자 없지.”라는 시구로 범대위 사이트의 네티즌들에게 촛불 대행진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반면,보수진영 단체들은 김정일 정권을 ‘적이자 악’이라고 보는 자세에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톨레랑스란 ●프랑스의 필립 사시에가 지은 ‘왜 톨레랑스(tolrance)인가.’라는 책이 번역돼 나오면서 인용되기 시작했다.‘톨레랑스’(관용)란 상대방이 내 생각과 다를 때,그의 생각을 뜯어 고치기 위해 강제와 폭력을 동원하는 대신 차이를 용인하는 태도를 말한다.저자에 따르면 진리의 이름으로도 오류를 무찌르려 해서는 안된다.그러면 세상은 순식간에 피바다에 빠지기 십상이다.다만 톨레랑스의 사회를 위협하는 앵톨레랑스(불관용)까지 관용해서는 안된다는 것.
  • 한국인 아내·프랑스인 남편 함께 노래한 ‘아리랑’

    최근 대하소설 ‘아리랑’이 프랑스어로 완역된 것은 두가지 면에서 뜻깊다.유럽에서 한국 대하소설이 완역된 것이 처음이란 것과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한·일 관계의 진실을 알릴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주인공은 7년 동안 휴가 한번 가지 못하고 번역에 매달린 전 파리7대학 교수 조르주 지겔메이어(65)와 한국인 부인 변정원(53)씨.작가 조정래도 “방대한 분량에다 사투리도 많아 아주 힘든 작업을 꼼꼼히 마쳐 원작을 쓰는 것 못지않은 중요한 일을 했다.”며 사의를 표했다.그들이 묵고 있는 서울 플라자 호텔을 찾아 ‘아리랑’ 번역에 얽힌 얘기와 그들의 삶을 들어보았다. “24년 전 외국인과의 결혼을 고심 끝에 허락하신 어머니가 ‘한국과 프랑스를 위해 좋은 다리가 되라.’고 당부하셨는데 ‘아리랑’ 완역으로 보답한 심정입니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마뜩찮게 바라보던 시절,오빠들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할 때 지겔메이어를 만나보고 ‘사람이 진국’이라며 결혼을 허락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恨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말이 유창한 지겔메이어는 “이 번역으로 36년 동안 나치 탄압 못지않은 수탈을 당했던 한국인의 생활상과 ‘한(恨)’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한국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선물로 받은 ‘아리랑’을 보고 감동한 변씨가 번역에 착수한 것은 96년.그해에 조정래씨,해냄출판사와 논의한 뒤 프랑스의 아르마탕 출판사와 계약까지 마쳤다.부인이 1차로 번역하고,남편이 재번역하는 등 부창부수(夫唱婦隨)하면서 7년을 내리 ‘아리랑 곡조’에 젖어 살았다. 이들의 결혼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74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오른 변씨는 생면부지의 땅에 도착한 뒤 지겔메이어에게 편지를 보냈다.고교 시절 그에게 불어 그룹과외를 받은 기억을 더듬어 이름만으로 수소문해 주소를 알아낸 것.그러나 지겔메이어는 2년 뒤에야 그 편지를 받았다.편지를 받은 부모가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 아들에게 깜빡 잊고 전해주지 못한 것이다. ●과외교사와 학생… 결혼도 극적으로 2년 뒤 서랍에서 편지를 발견한 지겔메이어는 ‘한번 만나자.’고 아주 늦은 답장을 보냈다.이후 1년 정도 연정을 키워오다 지겔메이어의 청혼으로 79년 10월 결혼했다. “66년부터 73년까지 경북 문경에서 사제로 활동하며 받은 한국 이미지가 너무 좋아 프랑스 여성과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정원은 호기심 많고 매사에 열심이어서 한 여성이 아니라 ‘한국 이미지’와 겹쳐 보였습니다.”(지겔메이어) “서양이 오히려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었어요.특히 ‘한국은 가톨릭의 가르침 없어도 인간답게 잘 살고 있다.’고 평가하는 겸손하고 순박한 모습에 감동받았죠.”(변정원) 지겔메이어의 한국 생활 7년은 삶의 전환기였다.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모습은 신에 귀의한 자신의 선택을 흔들었다.그는 귀국한 뒤 사제생활을 접고 속세로 돌아왔다.한국을 더 배우고자 파리7대학에서 ‘일본 강점기 시대의 한국 경제사’를 주제로 박사과정(DEA) 학위를 받고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그는 당시 경험한 인상적인 일화를 들려주었다. “수업시간에 백제시대 과학자·기술자가 일본에 건너가 문물을 전했다고 강의하자 일본인 학생 몇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요.일본이 침략했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그들이 받은 교육과 정반대여서 그랬나봐요.” 이런 기억이 있는 그에게 ‘아리랑’은 한·일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깨달음을 주었다.“신라시대 불교부터 6·25까지 공부한 그였지만 일제 강점기는 빠져 있었다.”는 그는 “작품을 읽은 뒤 일본의 만행이 나치보다 더 심했다는 걸 알았다.”며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일본이 먼저 사과하고 한국이 받아들여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아리랑’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잊어서는 안될 민족의 상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꼽는 ‘아리랑’의 또 하나의 미덕은 한민족의 특성과 개성을 잘 그려냈다는 것이다.“계절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동화되어 사는 모습,비록 못살더라도 이웃과 궂은 일을 함께하는 정겨움 등은 서양인이 배울 점”이라고 평가했다.소나무를 이용하는 세시풍속에 대한 것만 2쪽이나 나올 정도로 한국 농경문화를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한국인들 소중한 전통 쉽게 잊는 듯 이래저래 이들 부부의 ‘한국 사랑’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지난 2000년 2월 영화감독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가 파리의 ‘시테 유니베르시테르(국제대학생기숙사촌)’ 등에서 상영될 때는 프랑스어 자막을 무료로 번역해주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30여년 전 한국의 모습을 잘 아는 벽안의 이방인이 현대의 한국에 던진 메시지는 얼굴을 확 달아오르게 했다.“한국 문화가 너무 빨리 바뀐다.바뀌는 건 좋은데 머리에 물들이기 등 서양문화의 겉모습만 흉내내는 것 같다.그러면서 소중한 전통문화를 너무 쉽게 망각하는 건 아닌지….또 하나의 의문은 친일파 문제다.한국은,프랑스에서 나치 협력자에게 ‘반인류범죄’를 적용해 엄벌에 처한 것처럼 왜 친일파를 응징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글·사진 이종수기자 vielee@
  • [화제의 사이트] www.bukmaru.com

    올해는 6·25 종전 50년이 되는 해다.긴 세월이 흘렀지만 800여만명에 이르는 실향민과 가족의 그리움은 여전하다.‘북마루’(www.bukmaru.com)는 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면서 아픔을 달래주는 인터넷 사이트.지난 2월 문을 열었다. 북마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코너는 ‘꿈에 본 내고향’.평양,개성,정주 등 북한 지역의 3D 동영상과 묘향산 등 북한 23개 지역의 위성사진을 제공하고 있다.실향민 1세대에게는 향수를 달래주고 2,3세대에게는 가보지 못한 부모님 고향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취지다.단계적으로 북한 전역으로 대상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혼란스러웠던 해방 정국과 전쟁시기에 헤어진 가족이나 친구 등을 찾는 ‘보고싶은 얼굴’ 코너도 눈길을 끈다.찾고 싶은 사람의 이름,사연,고향 등을 올려 만남을 주선하는 곳이다. ‘북한방문기’에서는 유홍준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윤병로 성균관대 국문과 명예교수 등의 방북기를 해당 지역의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한명숙 환경부장관,가수 이문세,‘농구황제’ 허재 등 유명한 실향민 1,2세대를 지역별로 소개하는 ‘내고향 사람들’ 역시 흥미를 끄는 코너다. ‘북마루’ 김태원(42) 사장은 “평북 정주에 두고 온 가족을 평생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며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면서 “앞으로 북한 향우회나 동창회 등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북마루를 실향민 전문 커뮤니티 사이트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
  • “5·18, 희망의 씨앗돼야 한풀이식 행사 의미없어”/ 5·18 동지회 상임의장 김준태 시인

    ‘이제 5·18은 무덤이 아닙니다.둥근 씨앗입니다.배달겨레 씨종자입니다.’ 시인 김준태(55)씨가 올해로 23돌을 맞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바친 헌시의 일부이다.이 시에서처럼 그는 5·18을 항상 ‘희망’으로 노래한다. ‘아아,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중략)…(‘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중에서) 그가 5·18을 주제로 쓴 시는 500여편에 달한다.‘5월 시인’이란 별명이 항상 그를 따른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통일을 꿈꾸는 색주가’ ‘아아 광주여,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등이 그것들이다. 지금도 난립한 5·18단체의 통합을 위해 ‘5·18민주유공자항쟁동지회’ 상임의장직을 떠맡고 있다.5·18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시인인지도 모른다. ●‘건준' 참여로 총살당한 아버지 그의 시 정신과 이력은 우리나라 역사와 이데올로기적 대립에서 잉태된 듯싶다.일제 때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의 탄광노무자로 징용됐다. 아버지는 남태평양 남양군도에 끌려갔다.천신만고 끝에 전장을 탈출한 아버지가 6·25전쟁 와중에 여운형이 이끌던 ‘건국준비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고향의 한 산골짜기에서 총살형을 당했다.당시 시인의 나이는 3살.6·25를 거쳐 군복무 시절 직접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는 80년대는 5월 항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그의 시와 삶의 여정에는 전쟁과 대립에 대한 증오와 평화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 그는 대학시절인 스무살 때 고(故) 조태일 시인이 주관하던 시전문지 ‘시인’을 통해 김지하 등과 나란히 등단했다. 20대 당시 그의 시를 관통하던 주제는 ‘고향’ ‘대지’(흙)였다.시집 ‘참깨를 털면서’는 70년 개발독재시대 이농현상과 땅,고향에 대한 사랑과 감정 등을 비판적 시각으로 담아낸 초기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80년 초 광주의 전남고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재직 중 5·18을 맞는다.그의 운명은 평범한 교사에서 ‘저항시인’ ‘참여시인’으로 바뀐다. ●평범한 교사에서 저항시인으로 살벌한 군부독재 시절 그는 ‘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란 107행짜리 장편 시를 발표한다.이 시가 80년 5·18 항쟁기간 중 ‘전남매일’ 1면에 실리면서 ‘필화’를 겪게 된다.이 시는 원문이 외신을 탔고 ‘민중 선동혐의’로 계엄당국의 수배조치가 내려졌다.해당 신문사는 폐간되고 만다.그 역시 사랑하는 제자들을 뒤로한 채 한달여 동안 잠적했다.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는 그는 잠시 집을 방문했다가 주변에 잠복 중이던 보안사 요원에게 붙잡혔다.한달여 동안 각종 고문과 협박 등으로 교육청이 아닌 보안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교단을 떠난다. ‘현실을 외면하는 문학은 살아 있는 문학이 아니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시내 학원 강사로 전전하는 동안에도 역사와 민주와 통일을 노래한 시들을 쏟아냈다.지금까지 시집 12권과 산문,평론,5·18항쟁 창작 오페라,콩트 등 모두 23권을 펴냈다. ‘역사는 소금 뿌린 생선이 아니라 펄펄 살아 뛰는 생선’이란 그의 지론처럼 역사와 통일,민족문제 등에 천착한 시기였다.시대정신을 외면하고는 시를 쓸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3년여 학원강사 생활을 마친그는 전남 영암의 한 중학교를 거쳐 광주과학고로 전입했으나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고 ‘자리만 지키는 교사’ 생활이 이어졌다. 교단을 영원히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는 88년 신생 지방지였던 전남일보 문화부장으로 입사한다.그는 언론인으로서 5·18의 원인과 경과·결과 등을 총괄하는 ‘광주·전남 현대사’를 기획,일부 왜곡된 5월정신을 바로 잡는다.1944∼1961년의 이 지역 항쟁사 등을 담아냈다. ●“史草는 사관이 아닌 기자가 기록” ‘오늘날의 사초(史草)는 사관이 아닌 기자가 기록한다.’는 그는 광주매일로 자리를 옮겨 ‘정사 5·18팀’을 만든다.프랑스,미국,베트남 등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혁명현장 등을 돌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뒤 5·18 특집 시리즈를 내고 그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IMF위기 때 잘려나가는 동료 기자들을 보고 스스로 언론 현장을 떠난 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지금은 조선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쓰는 것과 가르치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그는 5·18을 통해 ‘출세’를노리는 일부 인사들과 다르게 살아왔다.그래서 금기시되곤 했던 5월단체 등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5·18기념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그는 “언제까지 한을 붙들고 살풀이하는 식의 행사가 되풀이돼야 하느냐.”고 반문한다.추모제도 없애고 시민 누구나가 하나되는 공동체 축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 이정표를 만든 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한 그는 ‘5월정신이 남남(극우-진보) 및 남북화해와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앞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강연과 집필활동에 열중할 것이라고 다짐한다.‘우리 후세에게 좋은 세상,전쟁과 갈등이 없는 나라를 물려주는 게 꿈’이란다. 글·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 ‘6·25 수용소 발언’ 지나친 굴욕외교”/ 盧 방미修辭 ‘오버’ 논란

    “53년전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정치범수용소에 갔을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정치권과 사이버 공간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박 의장,“변화 폭 커 어리둥절” 박관용 국회의장은 14일 기자들과 만나 “(방미 전과) 변화의 폭이 너무 커 보는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한다.”면서 “양국 대통령의 인간적 신뢰를 쌓는 데는 도움이 되겠으나 미국이 한국을 평가하는 것은 한국의 정책 내용과 기용한 사람들의 성분 및 내역 등이지 대통령의 말 몇 마디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도 “국내에서는 듣지 못했던 견해들을 마구 피력함으로써 국민들이 더욱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면서 “과공비례(過恭非禮)의 우를 범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김 총장은 “지나치게 눈에 띄는 과장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박희태 대표-유인태 수석 설전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날 박희태 신임 대표에게 축하인사하기 위해 한나라당사를 찾았다.박 대표는 노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대통령이 이번에 미국에대해 말씀하시는 게 많이 바뀌었다.스스로 노력을 했는지 몰라도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이에 유 수석은 “대통령도 야당시절 때와 대통령이 돼서는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며 “갔다 오면 지지층이 확 바뀌지 않을까 걱정” “한나라당 지지세력이 대통령 지지층으로 바뀔 것 같다.”고 응수했다.박 대표는 “노 대통령이 진작 미국을 많이 가봤으면 초반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받았다. ●네티즌도 시끌 네티즌들도 시끄러웠다.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비판하자 게시판이 후끈 달아올랐다.“북한이 가장 민감해 하는 ‘체제’ 문제를 건드렸다,지나친 굴욕외교다.한나라당과 코드가 맞으면 탈당하라.”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그러나 “대통령의 현실외교에 과민 반응이다,좀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많았다. 박정경기자 olive@
  • “이제는 노사모만 사랑하지 않을것 “他國위해 희생… 美는 좋은나라”/ 盧대통령 ‘변신’

    |워싱턴 곽태헌특파원|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방문 중에도 연일 직설적이고 솔직한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뉴욕을 거쳐 워싱턴에 도착한 노 대통령의 언급 자체만을 보면 대미관(對美觀)의 상당한 변화가 느껴진다. ●“반미시위자 설득하겠다.” 노 대통령은 미국 방문 사흘째인 13일 오후(한국시간 14일 오전) 워싱턴 캐피털 힐튼호텔에서 열린 재미동포 간담회에서 “대통령 선거 때에는 저를 지지하지 않다가도 오늘 와주신 분들께는 더 감사를 드린다.”면서 “선거때에는 노사모만 사랑했지만 이제는 모두 다함께 사랑하겠다.”고 말했다.큰 박수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이날 참석자는 700여명이었다.노 대통령이 입장하자 노사모의 회원들로 보이는 교포 50∼60명은 노란손수건을 흔들며 ‘노무현’을 연호했다. 노 대통령은 촛불시위와 관련된 반미시위에도 언급했다.노 대통령은 “촛불시위에 참석한 젊은이들이 겪었던 일들을 잘 이해한다.”며 “(하지만 젊은이들이)그런 일로 미국을 비난해서 여러분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돌아가서 각별히 잘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지지층에 대한 애정이 유별났다.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논란이 분분할 때에도 노 대통령은 “보수파보다도 나를 지지하는 계층을 설득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시민단체나 젊은층 등에 대해 이라크 파병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는 노력을 ‘포기’한 느낌까지 줄 정도였다.그랬던 노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계기로,보다 적극적 자세로 변한 것이다. ●“미국은 정말 좋은 나라” 노 대통령은 동포간담회가 끝난 직후 우드로 윌슨 센터와 국제전략문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한 만찬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한국과 미국이 반미감정을 치유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느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대해 “미국에 대해 다소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 중 나를 지지한 사람들이 있는데,그들을 설득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렇게 된 것은 미국의 힘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노 대통령은 “미국에 와서 보니까 오기 전에는 안 보였던 미국의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는 “미국에 올 때 머리로 호감을 가졌으나 와서 이틀이 지나면서 마음으로 호감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에 찬사도 보냈다.동포간담회에서 “알링턴 국립묘지와 6·25 참전 기념비를 다녀왔다.”면서 “미국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로,정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변신은 무죄(?) 노 대통령은 첫 미국방문을 통해,미국인들이 갖고 있던 의구심을 ‘화끈하게’ 해소해 주자는 방침을 세운 것 같다.한국내 반미 세력들을 설득하는 게 노 대통령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도 아이러니다.노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한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으로서 국익을 생각,달라질 수 있다.”고 ‘변신’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tiger@
  • 편집자에게/ 6·25 양민학살 규명 균형감각 찾아야

    -‘한국전 정전50년 양민학살 재조명’기사(대한매일 5월6일자 12·13면)를 읽고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됐지만 ‘양민학살’ 문제가 최근 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추진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도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대전 산내사건,경남 산청 외공리사건,전주형무소사건 등이 언론에 보도돼 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최근의 보도들은 우익이 좌익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새로운 방향의 색깔논쟁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한국전쟁은 한 민족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뉘어 서로를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민족적 비극이었다. 그러나 우익이 좌익을 처형한 문제점만 부각시키고 좌익이 우익을 살해한 사건은 묻혀버릴 경우 이데올로기의 혼돈을 가져온다.차제에 좌익인사가 우익인사들을 살해한 억울한 사건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언론은 양민학살사건을 편향된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좌익이 퇴각하면서 우익인사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도 재조명해 보도에 균형감각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차종윤 전라북도재향군인회 사무처장
  • 韓國戰 정전 50년 양민학살 재조명

    한국전쟁이 끝난지 50년이 지났는데도 몸서리쳐지는 아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당시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최근 유골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보상,명예회복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경남 산청 외공리사건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에서는 3년 전부터 매년 4월5일 위령제가 열린다. 소정골에서 양민들이 학살됐다는 소문은 2000년 5월 14일 사실로 확인됐다.진주와 산청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장서 현장에서 250여구의 유골과 유품을 발굴했다. ●통비(通匪)로 몰린 마을주민 떼죽음 당시 발굴작업을 지켜본 참석자들은 설마하다 쏟아져 나오는 유골을 보며 치를 떨었다.굴삭기가 땅을 1m쯤 파내려가자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다수 있었다.발굴단은 당초 6기의 무덤을 모두 발굴키로 했으나 1기에서 엄청난 유골이 나오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발굴된 유골만 수습해 합장하고 작업을 중단했다. 발굴작업을 주도했던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김영이 사무국장은 “뒤엉켜 있는 유골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유골이 나와 작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전 당시 거창·함양에서 양민들이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낮에는 태극기를 게양하고,밤에는 인공기를 꽂는 상황이었지만 국군들은 양민들을 통비(通匪)로 몰아 무차별 처형했다.당시 열한살이었던 강복석(63·진주시 상봉서동)씨도 “학살현장에서 2시간 정도 총소리가 들렸고,골짜기에서 나온 군인들이 삽과 곡괭이를 강물에 씻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이곳에서의 학살은 사건발생 10년만에 신문보도로 드러났지만 이듬해 일어난 5·16쿠데타로 다시 어둠속에 묻혔다. ●유골 쏟아져 작업중단 외공리 대책위는 누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난 3월 개혁당 김원웅 의원을 통해 국회에 청원도 했다.외공리 대책위 서봉석 실행위원장은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반인륜적인범죄”라며 “한국전이 끝난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이 안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산청 이정규 기자 jeong@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사건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廢)코발트광산 인근 대원골에서 최근 한국전쟁 직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의 두개골·치아 등 25점의 유골과 신발밑창 등 다량의 유류품이 발견됐다.2000년 3월 폐쇄된 코발트광산 입구 및 갱도 속에서 한국전쟁 당시 처형된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데 이은 것이다. ●70년대 초 정부가 갱도 입구 폐쇄 경산 폐 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의 희생자는 35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 대부분은 대구형무소 수감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사건이 터진 것은 50년 8월 중순쯤.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북측에 가담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전국적으로 대량 학살이 저질러질 때였다. 학살은 군경이 이들을 폐광산 위 수직갱도 주변으로 끌고가 총살하거나 산 채로 수직갱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알려졌다.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모(73)씨는 “사건 후 폐광산 주변 계곡에서 흘러 나온 물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고 악취도 심해 농사를 짓지 못할 지경이었다.”며 “그러다 70년대 초에 와서 정부가 갱입구를 시멘트나 흙,철망으로 막아 버렸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95년 평산동청년회 등이 중장비를 동원,광산 입구를 파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그러나 이후 5년여간 방치돼오다 ‘경산시민모임 민간인학살대책위(위원장 장명수·47)’가 구성되면서 본격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2000년 첫 확인… 본격 진상조사 경산시의회도 지난해 말 ‘경산 민간인학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학살현장 확인 등 조사활동을 벌인 뒤 관련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유족과 시민모임대책위는 2000년부터 매년 7월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경산유족회 이태준(66·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 공동대표는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문제를 제쳐 두고라도 50여년간 구천을 헤메고 있을 원혼을 달래려면 정부 차원의인도적인 진상규명과 유골 수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 ■대전 산내사건 대전 ‘산내학살사건’의 희생자는 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 4·3사건 관련자 300명,여순반란 및 보도연맹사건 관련자 3000여명에다 민간인들도 상당수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이 터진 것은 1950년 7월 초에서 중순 사이.북한 인민군이 내려오고 있다는 말에 군경이 대전 동구 산내동(당시 충남 대덕군 산내면 골령골) 계곡에 이들을 모아놓고 2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학살을 저질렀다. 첫번째 학살은 7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이뤄졌다.대전형무소 수감자 3000여명을 트럭으로 이곳에 실어온 뒤 총살했다.2차 학살은 17일 같은 곳에서 있었다.이 때 여성 등 민간인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美국립문서보관소 관련자료 나와 지난해 4월 발굴된 영국 데일리 워커지 앨런 위닝턴 기자의 증언록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는 “학살 직후 현장엔 6개 구덩이에 7000여명이 묻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그는 “인민군이 금강을 돌파하자 이날 새벽 남아 있던 대전형무소와 인근 교도소 정치범 등을 트럭 1대에 100명씩 모두 37대에 태워 옮긴 뒤 학살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관심으로 바깥에 알려졌다.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사건으로 군경에 의한 학살사건이 공론화되자 이 단체는 99년 10월 ‘산내학살사건 민간조사단’을 구성하고 진상조사에 나섰다.같은 해 12월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가 나왔다.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비밀문서가 해제된 뒤 탐라대 이도영 교수가 아버지를 잃은 4·3사건 관련자료를 뒤지다 이를 발견한 것이다. ●“최고 상층부서 지시” 기록 비밀문서에는 “사흘간 대전형무소 수감자 1800명이 산내에서 학살됐다.”며 “이는 최고 상층부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그러나 위닝턴 기자는 증언록에서 “미군의 지시로 일어난 학살사건 중 하나다.”고 밝혀 누구의 지시로 학살사건이 이뤄졌는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유가족과 대전참여연대는 2000년부터 매년 7월8일 희생자들의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특별법청원 박재욱의원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추진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전후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관심도 탄력을 받고 있다.개혁당 김원웅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안 2건이 계류돼 있고,경북 경산 등 전국적으로 15곳에 이르는 사건의 특별법 제정 청원이 24건이나 된다. 지난 해와 올해 두 차례 입법청원을 낸 한나라당 박재욱(사진·경북 경산·청도) 의원과의 일문일답. 청원서를 내게 된 배경은. -경산에 코발트 광산이 있었는데 6·25 직후에 3500명 가량이 갱도에서 처형됐다.규모로는 전국에서 제일 클 것이다.3∼4년 전부터 유족과 지역주민들의 제기로 진상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해 경산시의회 등에서 청원이 올라왔다.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다.피해보상까지 해주면 좋지만 현재로선 기념식과 위령탑 건립을 바라고 있다. 사실 이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당시에는 법도 없었고 재판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민이 상당수 무고하게 희생됐을 것으로 본다. 최근 예결위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요구했는데. -행정자치부는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서류나 증거물이 미비하다며 국회나 기타 신뢰성 있는 조사기관이 진상조사를 실시하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예산 문제다.조사가 시작되면 아마 전국적으로 피해 신고가 봇물처럼 올라올 것이다.일개 부처에서 손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국회 차원의 조사 활동은. -곧 시작할 것이다.공청회도 해야 한다. 박정경기자 olive@
  • 北 ‘인민생활 국채’ 해방후 처음 발행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북한은 지난 1일부터 ‘인민생활 국채’를 발행,전국적으로 매매를 시작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4일 노동신문을 인용,보도했다. 북한이 국채를 발행한 것은 광복 직후부터 6·25전쟁 시기 이후 처음이고,자본주의 경제운영 방식 도입 계획 여부와 관련,주목되고 있다. oilman@
  • ‘육탄 10용사’ 오늘 54주기 추도식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5월 북한군에 빼앗긴 개성 송악산고지 탈환 전투에서 산화한 특공대원 10명의 살신보국 정신을 기리는 추도식이 2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 통일공원 충용탑에서 열린다.육탄 10용사 기념사업회(회장 윤종언) 주관으로 열리는 추도식에는 안주섭 국가보훈처장,이상훈 재향군인회장,참전군인 등 1500여명이 참석한다.
  • 민주당 추천 신임 인권위원 황태연교수 / “이념편향” 국회표결서 부결

    국회는 29일 본회의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신임 위원으로 민주당이 추천한 황태연(사진) 동국대 교수를 찬성 79,반대 117,기권 1표로 부결시켰다.이는 국회 정보위가 최근 ‘부적절’ 의견을 냈음에도 고영구 국정원장이 임명된 데 대해 한나라당이 황 교수도 이념편향성이 있다며 임명을 거부하기로 당론을 모았기 때문이다. 또 국가인권위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것도 표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황 교수의 인권위원 선출이 부결됨에 따라 고 원장 임명을 둘러싼 한나라당과 청와대,민주당간 정국 대치가 심화되면서 이념 논쟁도 불붙을 듯하다. ●황 교수는 누구인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적 지식인 그룹의 대표적인 인물.‘DJ맨'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평소 언행에 거침이 없어 ‘국민의 정부' 당시 여권 내에서도 다소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민주당 구주류 인사들과의 친분으로 인권위원에 추천됐다는 후문이다.1980년대 그가 출간한 헤겔,막스,하버마스 등 좌파 지식인관련 연구서적들은 학생 운동권에서 두루 읽혔다. 1997년 대선 때는 국민회의 대선기획본부장 특별기획보좌팀장을 맡아 ‘DJP 연합'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DJ 대통령 당선 뒤엔 “국민회의의 전국 정당화를 위해선 ‘민주블록'을 형성해야 한다.”며 한나라당 민주계 및 재야 개혁파와의 연대를 주창하기도 했다. 2001년 2월 ‘21세기 동북아포럼' 국회 강연에서 한 6·25전쟁과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으며,앞서 1999년 9월엔 “기존 재벌왕조들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재벌해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정경기자 o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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