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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혜영 “쓸어담기식 포괄조사 불필요하다”

    원혜영 “쓸어담기식 포괄조사 불필요하다”

    열린우리당 과거사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은 원혜영 의원은 24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친북·용공세력’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한 것과 관련,“원론적으로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원칙적인 수용 의사를 밝혔다. 원 의원은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협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마냥 배타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박정희 전 대통령도 남로당 핵심 당원이었는데,조사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과거사 문제를 다뤄나갈 ‘로드맵’에 대해 묻자 “모법으로 ‘과거사 정리를 위한 포괄 기본법’(가칭)을 만들어 조사의 원칙 등을 정리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미 활동이 완료됐거나,상당히 독자적으로 진척된 조직의 활동을 중단시키고,포괄해서 과거사특위로 모두 쓸어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원 의원의 구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포괄적이고,체계적인 과거사 진상규명을 국회에 요청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원 의원은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가 통합적이고 전면적이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는데,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고 소신을 피력했다.그는 “이미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고 전제하면서 “친일문제는 친일진상규명법을 개정함으로써 사실상 광복 이전은 다 끝났고,현대사의 각종 의문사 및 인권침해는 1·2기 의문사진상조사위를 통해 대부분 밝혀져 과거사특위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원 의원은 또 “친일문제는 9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을 통해 독자적으로 진행하고,3기 의문사진상 위원회 발족은 과거사특위 발족과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9월22일 친일진상규명법의 발효를 앞두고 개정안을 제출하는 시기가 과거사특위 발족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으로는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여당이 50∼60년 전의 ‘과거사’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냐는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느껴졌다.그는 그러나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친일을 포함해 유신독재 시절까지 과거사 정리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약 60%가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면서 “이같은 국민적 정서 때문에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의 제안을 무시하고 가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과거사 시대구분에 대해선 “광복 이전 일본 제국주의 강점시대,6·25 한국전쟁을 포함한 광복 이후,5·16군사쿠데타 이후 등 3단계로 나눌 것”이라고 구상을 밝혔다.조사 대상에 대해서는 개개의 사건을 거론하지 않고 “집단적이고,명백히 증거가 있으며 고문 등으로 목숨을 잃었던 사건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빨갱이 사건’이라면 여순반란·인혁당·조봉암 암살 사건 등이 떠오르는데,여순반란 사건을 제외하면 문제가 안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가족들이 탄원해 올 경우 ‘김형욱 실종사건’이나,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도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원 의원은 “과거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속출할 수도 있다.”면서 신기남 전 의장의 낙마를 그 사례로 꼽았다. 그는 “신 전 의장 선친의 친일행적이 사적인 영역에 남아 있다가,신 전 의장도 모르는 사실들이 느닷없이 밝혀져 낙마한 것 아니냐.그런 점에서 신 의장도 피해자다.”고 주장했다.그는 “사석에서 신 의장은 아버지가 공비 토벌대장이었다고 해서 으레 일제쪽 경력이 있겠거니 짐작했는데,정작 본인은 몰랐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원 의원은 “과거사 진상규명은 미래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서 “한·중·일 협력이 중요한 시대지만,일본은 신사참배하고,중국은 고구려사를 왜곡하니까 국민 감정이 악화돼 협력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한나라당 박 대표에 대해선 “유신 때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정치행위에 관련된 부분은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사진 오정식기자 oosing@seoul.co.kr
  • 과거사 조사위원 누가…인선·선임방식 핵심쟁점 될듯

    여야가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기구를 국회 밖 독립기구로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감에 따라 조사위원 구성 및 선임방식이 가장 뜨거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물론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여야 정쟁의 핵심인 조사대상 및 조사범위,정치인 참여 여부 등도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따라서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여야간 이전투구식 정쟁은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회 밖 기구로만 가닥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22일 국회 과거사 특위를 고집하지 않겠다고 말한 배경에는 한나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크게 작용한 인상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300여개 시민단체들이 ‘독립기구화’를 요구해오자 그동안 ‘국회 내 기구’를 주장해온 열린우리당으로선 한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이에 따라 과거사 진상규명은 민간 주도의 독립기구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야가 국회 밖 기구로 방향을 잡으면서 다음 논란거리는 조사위원 선정 및 검증 방식이 될 전망이다.어떤 성향을 가진 조사위원을 선임하느냐에 따라 조사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도 있어 가장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조사기구를 독립기구화하더라도 정치권·시민단체·학계·전문가 등이 두루 참여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내심 진보성향의 학계·전문가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대거 참여시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 같다.반면 한나라당은 학계와 사회적으로 검증받은 사학자와 전문가로 제한해야만 정치적 ‘마녀사냥’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물론 ‘정치인 배제’는 한나라당이 과거사 진상규명을 받아들인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조사위원을 사전 검증하는 문제 역시 여야간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열린우리당은 여야 합의를 통해 조사위원을 선정하자는 입장인 반면,한나라당은 조사위원의 객관성과 중립성 확보를 위해 여야 추천인사를 대상으로 사전 청문회를 열어 자질과 자격을 검증하자는 입장이다. ●친북·용공 포함 놓고도 여야 신경전 한나라당은 6·25전쟁과 분단의 원인제공자였던 친북·용공세력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반면,열린우리당은 친일·유신 진상규명을 희석화하려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은 ▲동학혁명의 역사적 재조명 ▲일제 하의 친일행위자에 대한 역사적인 심판 ▲유신 및 신군부 정권 하의 의문사 및 인권침해 등 13개 항목으로 제한하자는 입장이다.강창일 의원은 친북·용공 포함 여부와 관련,“친북·용공 문제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정권 하에서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심판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를 다시 거론하자는 것은 부관참시”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친북·용공행위를 포함한 근·현대사 전반의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특히 특정사안 및 특정인의 부정적인 면만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공과를 함께 규명함으로써 근·현대사의 명암을 분명히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여옥 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이 현대사의 당당한 주역이라면 친북·용공 행위 조사와 중립적 기구 구성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사설] 포괄적 과거사 규명 합의 서둘러라

    여야는 어제 과거사의 포괄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원칙에 의견을 모았다.과거사 규명에 소극적이었던 한나라당의 태도 변화로 여야 논의의 물꼬가 트인 것을 환영한다.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의 사퇴도 전면적 과거사 규명의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여야는 대화의 불씨를 살려 이번에는 기필코 왜곡된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친일 등 아직 규명되지 못한 역사적 부분과 공권력에 의한 피해를 포괄적 과거사 규명 대상으로 제안했었다.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친북과 6·25전쟁 피해,산업화 공과까지 포함시키자고 밝혔다.친북·용공 활동을 과거사 규명 범주에 넣는 것은 불합리하다.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해왔다.친북 활동은 법에 따라 이미 처벌받았다.새로운 사실이라면 모를까,단죄된 내용을 끄집어내 논란거리로 만들면 자칫 과거사 규명에 ‘물타기’가 될 우려가 있다.산업화 공과 또한 조사대상이 되기에는 모호한 개념이다.여야 협의로 분별력 있는 정리가 필요하다. 과거사 규명 기구에 있어서는 여야가 조금만 열린 자세로 접근하면 합의가 어렵지 않다.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인사들로 과거사규명위원회를 만들자는 데 이의가 없다.열린우리당은 국회 특위와 위원회를 병행 설치하자는 것이고,한나라당은 위원회를 독립기구로 운영하길 희망하고 있다.어느 쪽의 주장이 채택되건,위원회 구성원에서 정치인은 되도록 배제해야 한다.정치인이 위원회를 주도하면 정략이 난무하고,배가 산으로 간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2.1%가 ‘역사적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답변했다.이같은 여론에 부응하면서도,과거사 규명이 연좌제나 과거를 모두 부정하는 광풍으로 번지지 않도록 이끄는 게 정치지도자들의 할 일이다.과거를 딛고,미래로 도약하려면 여야는 과거사 규명 대상·방법을 둘러싼 줄다리기를 빨리 끝내 실질적 조사활동이 시작되도록 해야 한다.
  • 박근혜대표 “친북·용공 포함 과거사 규명”

    박근혜대표 “친북·용공 포함 과거사 규명”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부친의 친일행적 파문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절차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전제로 과거사 진상규명 수용의사를 밝힘으로써 정치권의 과거사 진상규명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다만 한나라당은 진상규명 과거사에 ‘친북·용공 활동’을 포함하고,위원회도 별도 독립기구로 구성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열린우리당은 특위를 국회내 자문기구로 설치하고 규명 대상도 친일행위와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협의과정에서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의 성격과 과거사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9일 상임운영위에서 “과거사 규명은 포괄적이고 대폭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국회 특위가 아닌 중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기구로 과거사조사위를 구성할 것을 여권에 역제의했다. 박 대표는 “6·25전쟁에서 누가 나라를 지켜냈는지,4·19혁명이 일어나도록 한,부패하고 무능한 사람은 누구였는지,5·16 이후 산업화 과정의 공과는 무엇인지,냉전시대에 누가 안보를 지켜냈고 위협했는지 등도 공정하게 가려야 한다.”고 말해 친북활동과 용공활동도 조사대상에 넣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신경쓰지 말고,아무 부담도 갖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그러나 열린우리당 과거사 태스크포스팀 단장인 원혜영 의원은 “이미 조봉암 선생 가족 같은 분들은 빨갱이로 몰려 반세기 동안 불이익을 받았고,(과거)정권에 의해 이 부분은 밝혀질 만큼 밝혀졌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갑수 부대변인도 논평에서 “박 대표의 주장은 ‘친북·용공 색깔론’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날 원내수석부대표 회담에서 과거사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공감했으나,국회내에 특위를 설치하자는 우리당의 제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정치성을 배제한 중립적 기구를 국회 밖에 둬야 한다며 반대,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기고] 고대사 ‘열쇠’ 러시아에 있다/박종효 전 모스크바대 객원교수·사학자

    우리나라와 러시아연방이 수교한 지도 벌써 15년이 되어간다.그간 러시아는 구 소련 공산제국의 와해로 정치·경제 블록이 파괴되어 심각한 후유증을 경험했다.그러나 이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택한 그곳은 나날이 변신하여 간다.우리와는 교역량도 증가해,전자제품 등 공산품의 수출이 급증하고 해산물과 광산물 등이 수입돼 국내에 큰 소비시장을 형성해 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러시아는 친밀한 관계였다.러·일 전쟁에 간도 관리사인 이범윤의 부대는 러시아군과 동맹해 함경도에서 일본에 대항했다.그후에는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우리 독립운동이 최초로 시작돼 활발히 전개됐다.물론 소련 제국주의 시대에는 6·25전쟁과 그뒤로 지속된 냉전으로 적대적 관계가 오래 이어졌으나 수교 후에는 극동에서 동반자로 부상하였다. 현 러시아 연방정부는 남북한을 대단히 중요시한다.북한은 직접 접경한 국가로서,한국은 경제협력국으로서이다.특히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중국·일본에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반면 한국인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러시아 거주 고려인이 근면하여 쌀·양파·수박 등의 재배로 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우리와는 직접적인 무력충돌이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파트너가 되기를 바라는 까닭은 일본·중국과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가 결정적인 캐스팅보트 노릇을 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 역사로 편입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도 해외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12월23일 모스크바국립대학·국립 동방연구소·국립 극동연구소의 한국사 학자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갖고 고구려 역사는 엄연한 한국사임을 확인했으며 중국의 대국주의적 부활을 경고하고 한국을 지지했다.그리고 바로 그 성명서를 유럽 전 학계에 보냈다.중국은 고구려사 문제에서 미국·일본 등의 사료보다는 러시아측 사료와 주장을 두려워한다. 일전에 한국·중국·일본 3국이 고구려사를 함께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우리 인접국은 일본·중국만이 아니다.러시아가 있다.이 국가들과 몽골이 갖고 있는 사료가 우리 고대사를 확실하게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그리고 놀랍게도 그 사료의 대부분이 러시아 각종 문서보관소에 보존되어 있다.따라서 한국·중국·일본·몽골의 학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러시아 국립 동방문제연구소나 극동문제연구소 등과 밀접한 협력을 해야 한다. 또 러시아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북한관계의 진귀한 사료들이 엄청나게 소장되어 있으나 미국과 일본 사료에만 매달려 역사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잃고 편향적인 연구에 만족하고 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우리 정부기관은 러시아의 20여 국립 문서보관소가 소장한 한국관련 문서에 관해서도 어떤 문서가 어느 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한국사를 모르는 러시아인에게 가끔 수집을 의뢰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같은 정부기관의 연구태도는 전형적인 후진국 형으로,비록 고구려사 왜곡이 중국의 대국주의적 횡포라고 하더라도 그 이면의 계획을 모르기에 더욱 당황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더이상 우리에게 적성국가가 아니며 북한의 정책을 지지하지도 않는다.우리가 계속 미국·일본·중국에 편중한 연구와 외교로 간다면 앞으로 중국과는 물론 북한과도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러시아의 도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제 러시아연방과 정치·경제적인 우호관계뿐만 아니라 실질적 문화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아울러 러시아의 방대한 한국관계 사료를 심층 연구해 미·일 편향성에서 탈피하고 사실에 입각한,객관성을 갖춘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울 때라고 본다.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 객원교수·사학자
  • [씨줄날줄] 赤旗歌/손성진 논설위원

    KBS 1TV ‘미디어포커스’가 북한의 혁명 찬양가인 ‘적기가(赤旗歌)’를 내보내 사과하는 해프닝을 벌였다.외주제작업체의 실수로 넘기기에는 너무 어이없는 일이다. ‘적기가’를 실제 들어보면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의문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민경찬 교수가 ‘미디어 오늘’에 실은 글을 보면 풀린다.민 교수가 설명한 대로 적기가는 중학생 때쯤 불렀던 이라는 ‘소나무’와 리듬이 흡사하다.‘소나무’는 현행 중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전나무’라는 원제목으로 수록된 독일 민요다. 어떻게 이 노래가 북한의 혁명가요가 됐을까.민 교수에 따르면 ‘전나무’를 영국에서 ‘레드 플래그(The Red Flag)’라는 노동가요로 고쳐서 불렀으며 이것을 일본인이 ‘아카하타노 우타(赤旗の歌)’라는 민중혁명가로 번안해서 불렀다고 한다.가사는 1889년 영국의 사회주의자인 짐 코넬이 만들었다.이후 이 노래는 대표적인 공산혁명 투쟁가가 돼 세계에 보급됐다.1945년 8월 선거에서 노동당이 대승했을 때 영국 하원에서 불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 노래가 일본을 거쳐서 북한 지역과 만주에 유포된 것은 1930년대로 빨치산들이 ‘레드 플래그’를 옮긴 ‘아카하타노 우타’의 가사를 그대로 번역해 불렀다.광복 이후 좌우가 충돌했던 남쪽에서도 널리 불려졌지만 정부 수립 이후 금지곡이 됐다.북한에서는 6·25전쟁 때 인민군의 군가로 사용되다 지금은 혁명과 투쟁의식을 고취시키는 최고의 선동가요가 됐다. 한국 영화 최초로 1000만명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영화 실미도에서도 ‘적기가’가 두번 나온다.주인공 인찬이 강간하던 동료를 죽이고,버스 속에서 자폭하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됐다.북한의 혁명가를 공영방송이 이라크 파병과 관련된 프로그램에서 내보낸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잘못된 일이다.이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북한군의 군화에 짓밟혔던 세대에겐 다시 듣기 싫은,비극을 품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산 오르記]횡성 발교산

    [산 오르記]횡성 발교산

    발교산(髮校山·998m)은 강원도 횡성군의 오지인 청일면 봉명리에 있는 산이다.수리봉,대학산과 함께 산군을 이루고 홍천군과 횡성군 사이를 남북으로 길게 가르는 산줄기에 솟아있다. 발교산의 들머리가 되는 봉명리 안구접이 마을은 횡성에서 홍천군 서석으로 이어진 19번 도로가 포장되기 전엔 접근하기가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섬강의 최상류가 흐르는 봉명리로 들어가는 농로 같은 길이 있다.19번 도로에서 볼 때는 마을이나 계곡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더덕 밭과 농협 창고를 지나면 봉명교 부근에서 절경을 만난다.이후로 봉명리 끝 마을인 안구접이까지 5km 구간이 청정 하천을 이룬다.마을회관이 있는 골말 까지만 포장이 되었을 뿐 안구접이 마을은 아직 비포장 상태다. 둘러봐야 온통 산만 보이는 이 골짜기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간직한 6·25때도 전쟁을 몰랐다고 할 정도의 오지다.‘구접이’라는 이름도 이 마을을 산이 아홉 겹이나 둘러싸고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안구접이’는 안쪽에 있다고 뜻일 테고.발교산 산행들머리가 되는 절골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20여분 오르니 찻길이 오솔길로 바뀐다.전나무가 빼곡한 사이로 하늘은 빼꼼하다.한 때는 화전민이 살았던 듯,곳곳에 돌무덤이 있다. 갈림길에서 능선 길을 버리고 계곡 길로 10여분 오르자 봉명폭포(鳳鳴暴布)가 나온다.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 폭포는 ‘물소리가 봉황의 울음소리와 같다.’는 아름다운 봉명폭포다.상,하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하단의 폭포는 높이 50m의 수직 벽을 이루어 엄청난 수량을 물보라와 함께 내리쏟는다.하단폭을 지나 100m 정도 비탈길을 돌아 오르면 상단의 폭포다.상단폭포 높이도 50m 정도.남성미를 뽐내는 하폭과 달리 와폭을 이룬 상단폭포는 여성미를 자랑한다. 폭포 주변에선 선득한 한기가 느껴진다.싱그러운 낙엽송 숲을 지나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이곳에도 화전민이 산 흔적이 있다. “70년 대 초까지만 해도 여기에 사람들이 살았어요.울진·삼척 공비 사건 후에 화전민들을 모두 이주시키고 조림을 했지요.” 동행한 김길래씨의 말이다. 물기 있는 계곡이 끝나는 곳에 삼거리가 나온다.왼쪽으로 접어들어 조금 오르면 능선을 타게 된다.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룬 것을 보니 봄철 산행지로도 아주 좋을 듯 하다.산길의 경사가 더욱 급해진다.숨을 헐떡거리며 50여 분 정도 올라가자 두어 평되는 공터에 닿는다.횡성 한우 마스코트가 있고 ‘발교산 998m’ 안내판이 있는 정상이다.정상에서의 조망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그래도 나무 몇 그루를 베어놓아 북으로 수리봉,동으로 운무산·봉복산 정도가 보이고 남쪽과 서쪽은 참나무 사이로 허공만 보일 뿐이다. 정상에서 올라온 길로 100m 내려가면 ‘수리봉 하산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다.능선을 따라 30분 정도 비탈길을 내려가면 안부에 닿는다.여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10분 정도 더 가면 올라올 때 만났던 삼거리다. 절골 입구에서 봉명폭포를 거쳐 정상을 오른 후 다시 절골로 하산하는 코스는 네 시간 정도 걸린다. ●볼거리·먹을거리 국사랑(033-344-1234)은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하는 곳으로 5500평의 유리 온실에서 수정벌을 이용한 양액 재배로 고품질의 위생적인 토마토를 일년 내내 생산한다.속실리 19번 도로변에 있다. 횡성 우(牛)시장의 명성은 높다.정식 명칭은 횡성 가축 경매시장으로 횡성 축산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규모가 크며 거래도 활발하다.특별히 소를 팔고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우시장만의 독특한 손짓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풍경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광경이 될 것이다.횡성 장날은 1일과 6일,우시장도 함께 열린다. 속실리 청일관광농원(033-342-5230)의 식당에서 유기농 채소를 쓰는 쌈밥과 더덕구이를 먹을 수 있다.야영장도 갖추고 있고 농사체험을 할 수 있다.청일면사무소 소재지의 솔이네 숯불갈비(033-342-5007)의 횡성 한우갈비와 막국수가 맛있다. ●가는 길 횡성에서 19번 도로로 갑천,청일을 차례로 지나 춘당리 춘당초등학교를 오른쪽으로 끼고 농로 같은 길로 들어서면 봉명교가 나온다.여기부터 구접이 마을로 불리는 봉명리다.골말 마을회관까지 포장길이고 이후는 비포장이다.횡성에서 28km 거리.횡성읍내에서 안구접이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네 번,오전 9시56분,11시14분,오후4시40분,7시15분 운행된다. 산학문학인 안재홍
  • “선친문제·親日규명은 별개”

    부산을 방문 중인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16일 ‘선친이 일본군 헌병이었다.’는 신동아 보도에 대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 치하에서 군 생활을 한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다.”고 시인했다.다음은 일문일답. 보도 내용을 확인해 달라. -선친은 일제시대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한 것으로 들었다.이후 광복을 맞아 경찰 창설 때 들어간 것으로 안다.굳이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다.세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광복 후에는 경찰에 입문,6·25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천왕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지리산 주변 내전을 종식시켰는데,그 과정에서 주민들로부터 칭송이 높았고 그 지역에 가면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도 남아 있다. 일제에서 경찰생활을 했다는 논란도 있었는데 왜 그때 안 밝혔나. -경찰은 분명히 아니다.그래서 측근들이 이를 부인했던 것이고,군 경력은 언젠가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선친 문제와 친일 진상규명은 별개다.조사 대상이 된다면 얼마든지 응할 용의가 있다. 야당의 공세가 예상되는데. -언젠가 더 정치적으로 진출하게 되면 자연히 밝혀지리라 생각했다.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독립투사와 유족들에게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은 지금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김희선 의원같이 독립투사 자손으로 태어났으면 자랑스러웠겠지만 그렇다고 아버님을 매도할 수 있겠나.나름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친의 계급이 뭐였는지 알고 있었나. -그것도 모른다. 부산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서울광장] 과거의 반성과 화해/손성진 논설위원

    [서울광장] 과거의 반성과 화해/손성진 논설위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유신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 화해하고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김 전 대통령은 유신의 최대 피해자 아닌가.박 대표가 아버지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했지만 먼저 화해의 손짓을 한 쪽은 사실 김 전 대통령이었다.재임중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위한 예산을 책정한 것이다.사후 20년 동안 잠잠하던 박정희의 공과(功過)에 대한 시비가 촉발된 것은 그때였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거쳐 앞으로 나아간다.대결과 화해의 반복으로 발전하는 것이다.이런 변증법적 절차로 역사가 진보하려면 진정한 반성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어제가 없이 내일이 찾아올 수 없듯 과거가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진정한 반성이 없으면 대립에서 벗어날 수 없고 화해도 없다.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때 역사는 정체되고 만다.6·25전쟁에 개입해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막은 최대의 적이었던 중국이 지금은 수교와 화해로 최대의 교역국이 됐다.그러나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함으로써 한·중 관계를 뒷걸음질치게 만들고 있다.일본은 어떤가.제국주의의 망령을 버리지 못하는 일본의 반성없는 태도로 한국과 일본은 수십년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감정적 대립 상황에 놓여 있다.그것은 양국의 동반자적 관계를 해쳐서 상호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더 먼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볼 후세에 올바른 과거를 정립해서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친일 문제가 그렇고 박정희와 유신이 그렇다.과거의 진실은 여전히 부정되고 있다.박정희는 일본군 소속이 아니라 만주군이었다는 한나라당 김모 의원의 주장은 해괴하다.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던 박정희는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라는 여덟글자를 혈서로 써내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진충보국이란 물론 일본국왕에 대한 충성다짐이다.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한 그는 이렇게 선서를 했다.“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죽겠습니다.”나구모 주이치 당시 일본 육사교장은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면에서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답다고 박정희를 평가했다.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을 했던 박정희는 더 일본인다워지려고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다시 이름을 바꾼다.(최상천의 ‘알몸 박정희’)만주군 제8단에 배치된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작전에 들어간다고만 하면 ‘요오시(좋다),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소리쳤다고 한다.(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만주군은 일본의 군대였고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일본군 장교였다.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자란 박정희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정말 일본인인양 착각했는지 모른다. 박정희의 경제적 치적은 무시될 수 없다.그러나 실정(失政)과 과오가 묻혀서는 안 된다.경제 업적에 대한 평가도 양면적이다.개발독재의 폐해는 아직도 앙금이 남아 발목을 잡고 있다.정경유착,빈부격차,경제력 집중 등 독버섯 같은 요소들은 개발독재의 산물이다.치적만 부각하는 박정희 기념관을,그것도 국가 예산으로 건립하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잘못도 함께 보여주는 ‘박정희 역사관’을 만든다면 모를까.역사를 오도할 수 있는 기념관 건립보다는 참모습을 규명해서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친일 경력의 왜곡이 시도되듯 시간이 흐르면 협박,사생활 추적,세무조사,고문,날조 등 그가 동원한 온갖 불법수단도 부정되고 미화될 것이다.지금도 막걸리를 마시며 농민들과 담소하는 박정희의 웃는 모습만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은가.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與 “반민특위 계승” 野 “정치술수” 공방전

    與 “반민특위 계승” 野 “정치술수” 공방전

    ■ 與 “반민특위 계승” 열린우리당,정확하게는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이 과거사 진상규명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15일 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신호탄’이 됐고,열린우리당은 16일 출발선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됐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당 지도부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56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반민특위는 친일파 청산을 위해 1948년 10월 구성됐다가 이듬해 이승만 정권에 포진한 친일세력들에 의해 와해된 기구다. 기념식에서 신 의장은 “과거사 처리는 한 당의 힘만으로는 안되고 전 국민적 사업이 돼야 한다.”며 국회 과거사 진상규명 특위 구성을 야4당에 공식 제안했다. 신 의장은 “반민특위가 친일세력에 의해 좌절되면서 ‘친일은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은 3대가 가난하다.’는 말이 생겼다.”며 “반민특위의 정신을 계승해 제대로 된 친일진상규명법을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일본·중국의 과거사 왜곡에 대해서도 “(그냥 먹고사는데 급급했던 우리의)자업자득이 아닌가 생각한다.외국과 싸우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의 자세를 다짐해 봐야 한다.”며 “온 국민이 역사주권을 찾으려면 우리의 어두웠던 과거의 진상부터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문희상 의원은 “17대 국회는 개혁민주세력이 과반수를 얻은,현대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과거사를 청산할 책임과 의무가 이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또 “대통령에게 자꾸 정체성 시비를 거는 집단이 있는데 이는 대통령을 빨갱이로 몰려는 속셈”이라며 “그것 때문에 그들이 집권하지 못했고,그런 주장은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한나라당을 맹비난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당정분리와 재정권·공천권 포기,정경유착 근절 등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를 다 포기했고,이 때문에 세상이 바뀌었다.”며 “누가 뭐래도 (노 대통령이) 민주주의 창시자로 남는다는 확신을 갖고 우리만이 (과거청산을)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열린우리당은 과거사 진상규명특위를 국회의장 산하의 자문기구로 하고 명칭은 ‘진실과 화해·미래위원회’로 한다는 방침이다.이를 위해 원내대표 밑에 ‘과거사진상규명 통합입법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단장에 원혜영 의원을 선임했다. 17일에는 고위 당정회의를 소집,국회 과거사 특위 구성을 위한 구체적 후속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진경호 김준석기자 jade@seoul.co.kr ■ 野 “정치술수” 포문 한나라당은 16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던진 3가지 공개질의 가운데 “과거사를 6·25를 전후한 친북·빨치산 행위까지 포함할 것인가.”라고 언급,노 대통령을 직접 압박하며 역공에 나섰다.그러면서 노 대통령의 국회 과거사 진상규명특위 구성 제안과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의 과거사 진상규명 동조 움직임 등에 대해 “민생은 팽개치고 이번에는 과거사에 올인하느냐.” 며 강력해 반발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상임운영위에서 “과거사특위 제안은 야당과 야당 지도자를 겨냥한 비열한 정치적 술수”라며 “대통령이 경축사의 반 이상을 과거사 들추기에 할애한 것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대립시키는 일이기에 당에서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규택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국내 과거사에만 너무 집착한다.”며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령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지금 필요한 것은 민생 경제를 살리는 특위이지 과거사 들추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경제살리기에 매달려도 시원찮을 판에 박물관장도 아닌데 과거와 씨름할 때냐.”며 “대상과 기준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반대하면 ‘그럼 하지 말자는 거냐.’는 식으로 나올 것인데 그런 식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김영선 최고위원은 “현재와 미래의 행정부 업무를 진두 지휘해야 할 대통령이 역사의 끈을 붙들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임태희 대변인은 “이같은 입장을 모아 세 가지 공개 질의를 당론으로 모았다.”며 ▲민생경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국정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 ▲역사 재조명에 공감,친일진상규명법·의문사진상규명법에 동의했는데도 다시 과거사를 확대하자고 하는데 도대체 그 범위와 대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의문사 진상규명위에서도 장준하선생 사인을 규명하지 못했는데 진상 규명이 과연 국회가 할 사안인가 등 내용을 소개했다. 반면 일부 의원들은 수용 혹은 조건부 수용론을 제시하기도 했다.이재오 의원은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것은 정치적 오해를 살 우려가 있어 적절치 않다.”면서도 “한나라당도 과거사만 나오면 거부할 게 아니라 당당하게 특위 구성에 참여해야 하고 조사과정에서 정략적 의도가 드러나면 문제를 제기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오을 의원은 “왜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수세적이어야 하느냐.”며 “중립적 인사로 특위를 구성하는 조건을 전제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주인 없는 땅 여의도의 25배

    전국적으로 임자없는 땅이 서울 여의도 면적의 25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땅은 정부가 주인 없는 토지로 공고한 뒤 6개월 안에 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국유 재산으로 편입된다.정부는 다음달부터 순차적으로 현장 실태조사를 실시해 권리 관계를 확인한 뒤 무주 부동산으로 일반에 공고할 예정이다. 재정경제부는 15일 전국의 무주(無主) 부동산이 5만 5207필지,2억 1649만 9000㎡로 여의도 면적(840만㎡)의 25.7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주인없는 땅은 일제 강점기와 6·25 등을 거치면서 토지대장이 없어졌거나 토지대장의 소유자가 불분명해 미등기상태인 토지를 말한다. 개중에는 혼란기에 땅 주인이 중국으로 이주했거나 북한으로 끌려간 경우도 있고,사망 또는 실종됐는데 땅이 제 때에 상속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무주 부동산 대부분은 등기도 없이 무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본이 강점했던 토지와 함께 무주부동산에 대해 2006년까지 관련 절차를 밟아 국유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통일염원 ‘DMZ 마라톤’ 열린다

    통일염원 ‘DMZ 마라톤’ 열린다

    평화통일의 염원을 다지기 위한 DMZ 마라톤대회가 올해부터 중부전선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지역에서 잇따라 열린다. 강원도 양구군은 오는 29일 방산면 민통선 지역에서 2004청정양구 DMZ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방산면 백석산 전투기념관을 출발해 수입천 상류 금강산 가던 길을 돌아오는 하프 코스와 10㎞,5㎞에 걸쳐 진행된다. 또 철원 태봉제위원회도 다음달 19일 황금빛 철원평야를 질주하는 제1회 DMZ평화마라톤을 개최한다. 코스는 민통선 철의 삼각 전망대를 출발해 노동당사 등의 6·25전쟁 유적지를 지나는 하프 코스와 10㎞와 5㎞로 나눠 진행되며,올해는 참가자들의 준비기간 등을 고려해 풀코스는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아테네서 지화자! 얼쑤!

    ‘문화예술도 금메달 딴다.’ 아테네올림픽 현장에 ‘대한민국 25번째 종목의 국가대표’가 뜬다.‘신들의 땅’ 그리스 각지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릴 ‘2004아테네올림픽 대한민국 문화사절단(단장 고정균 한국사회문화연구소장)’이 그들.사절단은 올림픽의 열기가 절정을 이룰 오는 20∼26일 아테네와 고린도 현지에서 ‘AURA(아우라) KOREA’라는 주제로 판소리,가야금병창,살풀이춤 등의 국악공연과 전통혼례 등 생활문화를 선보인다. 모두 53명으로 짜여진 사절단은 가야금의 강정숙,대금의 원장현 등 걸출한 인간문화재들의 참여로 무게를 더하고 있다.여기에 영산예술단,중앙타악연희단,가야금 병창보존회 등 국제무대 경험이 풍부한 전통예술단체까지 가세,세 차례의 실내외 공연으로 수준 높은 한국의 전통 공연을 헬레니즘의 산실인 그리스에 널리 펼치게 된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오는 22일 아크로폴리스 유적지 바로 아래의 도라 스트라투 야외극장에서 펼쳐질 그리스 전통무용단과의 합동공연.사절단은 이를 통해 ‘올림픽을 통한 동·서 문화의 화합’을 유감없이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일에는 6·25전쟁 참전용사 200여명을 초청해 아테네 신타그마광장의 무명용사비 앞에서 진혼제도 지낼 예정이다.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곳에서 사절단은 전통 궁중의상을 차려입고 고려시대의 헌다례의식을 재현하게 된다.한편 사절단은 한반도기가 그려진 응원복 300벌을 북한응원단에 전달할 계획이어서 남북 합동응원에 대한 기대도 높이고 있다.사절단은 오는 18일 아테네로 떠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씨줄날줄] 완장문화/이기동 논설위원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권력의 허황함에 빠져드는 인간의 나약한 과시욕을 풍자한 작품이다.땅투기로 떼돈을 번 졸부의 눈에 들어 저수지 감시원 완장을 얻어 차고 거들먹거리는 주인공과,그를 손가락질하는 동네주민들의 관계는 바로 희화화된 우리 인생의 자화상이다.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일부 언론을 ‘완장문화’로 지칭하고 이들과의 전의를 드러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또 한바탕 소동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당선자 시절부터 되풀이해온 ‘조폭언론’운운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언이라 미루어 짐작은 간다.노 대통령은 나아가 자신이 지금 “완장문화에 도전하고 있으며,군림문화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행정수도에 반대하는 언론들을 가리켜 “정부청사 가까운 곳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들”로 규정한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완장은 권력의 하수인들이나 차는 것이다.나치 치하 유럽국가들에서는 나치 완장을 찬 부역자들이 있었고,아프리카에서 백인 노예상들을 도와 노예사냥에 나선 것도 완장 찬 흑인들이었다.우리는 6·25전쟁통에 붉은 완장 찬 머슴들이 주인가족을 처형하고,한편에선 완장 찬 보도연맹원들이 좌익인사들을 쥐잡듯 했던 모습을 보았다.우리 역사에서 완장은 무상한 권력에 기생하는 인간의 순응주의를 상징한다. 설마 노 대통령이 이런 부정적 어의를 알면서 완장언론이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니었으리라.노 대통령은 거대 언론은 권력이고 자신은 그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공격당하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분류에 줄곧 집착해왔다.그 언론권력을 조폭언론이라 부르다,이번에는 완장문화로 새롭게 지칭한 셈이다.완장이 권력이라면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우리 체제에서 제일 큰 완장 찬 사람은 대통령이다.그밖에 완장 찬 세력을 굳이 꼽자면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와 정부,친여 인터넷 매체,방송,노동계,법조 등에 포진한 친여 인사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언론은,왜 지금처럼 개혁대상이 됐는지 스스로 쉼없이 자문하고 반성해야 한다.하지만 백보를 양보해도,대통령이 언론을 완장문화로 부른 것은 부적절했다.대통령도 비판 없는 언론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언론의 권력비판은 소설 ‘완장’의 주인공처럼 손바닥만한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것이 언론의 사명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기고] 잊지말자! 군대해산의 교훈/이동희 前서울산업대 총장·예비역준장·명예논설위원

    1907년 8월1일 오전11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됐다.우리 국민은 8·15 광복은 경축해 왔으나 8·1 치욕의 그날은 잊고 있다.조선왕조 519년 27대를 유지해 온 우리 군대가 하루아침에 없어진 것이다.20세기 초 세계 열강이 ‘근대적·배타적 군사주권 국가’로 식민지를 넓혀나갈 때 우리 군대는 강제해산됐다.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1907년 7월19일 고종 황제께서 일본 이토 히로부미의 사주를 받은 이완용·송병준 내각의 강요로 순종에게 양위 소칙을 발표했다.20여일이 지나 군대가 해산된 그날 서울 동대문밖 훈련원에 맨손 훈련을 한다고 병사들을 집합시켜 놓고 갑자기 군부협판 한진창이 순종의 ‘군대해산 소칙’을 낭독하였다.놀란 병사들이 주위를 살펴 보니 이미 일본 헌병들이 중무장한 채 둘러싸 있었다.그 자리에서 계급장을 떼고 약간의 돈푼을 나눠준 뒤 해산시켰다.길거리로 나오면서 온백성과 함께 통곡하고 수치스러운 돈을 던져버렸다.이같은 내용은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지낸 역사학자 백암 박은식 선생의 저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처절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막힌 소식을 들은 황실근위부대 제1대대장 박승환 참령(參領)은 격분하여 자결,순국하였다.“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 이것이 그분의 비통한 유언이었다.대대장의 자결로 격분한 병사들이 무기고를 열어 총을 들고 남대문 밖 일본군 주둔지를 공격했으나 기다렸다는 듯 일본군이 일제사격하여 78명이 전사했다.부대는 해산되어 국내외로 의병이 되어 흩어졌다.군대가 없어지니 주권이 무너지고,주권이 무너지니 국가가 망했다.나라가 망하니 그 민족 그 국가의 문화가 살아남지를 못한다. 2년후 창경궁은 동물원이 되었다.세종이 즉위하고 어전회의를 하던 문정전(文政殿)이 사자와 호랑이의 울이 되었다.군대가 없으니 이토의 마음대로였다.1909년 10월26일 그는 안중근 의병중장이 쏜 세발의 총탄을 맞고 하얼빈 역두에서 사살됐다.그러나 1910년엔 아무런 저항 없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당당한 군대를 갖고 있다.1945년 광복과 더불어 창건한 민주군대로서 6·25 이념전쟁의 주역으로 싸우면서 이 나라를 부흥시켰다.그리고 막강한 주권국가로서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과연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인가.19세기적 비운이 닥쳐올 것인가? 결코 아니다.우리는 피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이제는 군사력을 갖춘 주체적인 국가가 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군대의 존재양식과 군대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물론 우리 군대에도 공과가 엄연히 있다.특히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운동하던 세대가 군을 보는 시각은 심각하다.그렇다고 오늘의 군대를 주관적으로 통제하여 정치적으로 예속시키면 군은 하루아침에 무력화되고 만다.그래서 군대는 ‘객관적 통제’로,군령을 강화시켜,선진국다운 군대 기능을 고양시켜야 할 것이다.군대를 새삼 존중하고 사랑해야 군대해산의 교훈이 사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남북간에 휴전상태에 있다.강력한 선군정치를 표방하는 군사주권을 배경으로 아직도 ‘총부리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그는 서해안에서 도전과 선전,통신협정을 이용하여 한국군을 무력화하려고 한다.그 교신 한건으로 결국은 우리 국방장관이 교체되고 3성장군이 전역했다.그렇게 객관적 전투사항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니 그 눈치를 봐야 하는 군대에 무슨 전투력이 있을까? 군대의 사기는 죽기 마련이다.남북화해 시대에 국방비를 깎아 결식아동을 돕자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낭만적인 발상도 경계해야 한다.강한 군대의 존재만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밀고 나가게 하기 때문이다.군대해산의 날을 돌이켜보고 강한 군대와 국방정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동희 前서울산업대 총장·예비역준장·명예논설위원
  • [기고] 해외입양, 이젠 그만!/김성이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

    지난 5일부터 4일간 서울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는 세계한인입양대회가 열렸다.전 세계 15개국에 입양 간 430여명이 함께 조국의 정을 나눈 자리였다.이 자리에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동적인 축사를 했다.“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하지만 망설였습니다.과연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여러분이 감당했던 고뇌와 상처를 짐작하기에 쉽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그래도 말해야겠습니다….여러분,사랑합니다!” 이 말에,참석한 입양인들은 “엄마,아빠 이해해요….사랑해요!”라고 화답하였다. 지금까지의 해외입양 총인원은 약 20여만명으로 추정된다.많았을 때는 한 해에 7000∼8000명이나 해외에 입양되었고 최근에는 연간 2000명 정도를 해외에 입양시키고 있다.해외입양은 6·25전쟁 이후 급증한 고아들의 문제를 경제적으로 허약했던 그 당시 정부가 책임질 수 없어 해외로 내보낸 데서부터 비롯되었다.이제 우리가 먹고 살만하게 된 지금,아직까지도 우리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야 하는지를 재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번 입양대회에서는 이미 입양된 우리 자녀들을 위한 입양인 상호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인 입양인 네트워크 구축이 제안되었으며 구체적인 사후관리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해외 입양인은 모국과 그들이 자란 나라를 연결하는 핵심인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국가를 위해서도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제는 해외입양을 계속할 것인가를 본질적으로 생각할 때이다.해외 입양기관의 장으로 오랫동안 일하셨던 분이 퇴직하는 자리에서 주변에서 큰일을 하셨다고 말씀드리자 “본인은 죄인이다.”라고 흐느낀 적이 있다.낯도 설고,물도 선 이국땅에 안 떨어지겠다는 어린 아이들을 떼어놓고 돌아설 때 그 아이들의 눈에 맺히는 눈물 방울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고 고백하면서 정말 내가 아이들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다고 후회하였다. 해외입양은 개인적 차원에서 상처를 주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국가적으로도 문제가 된다.얼마 전 외국에 가서 한국의 발전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그 이야기를 듣던 한 외국인이 “그렇게 나라가 발전되었으면 왜 지금까지 아이들을 해외에 입양시키고 있느냐?”고 반문했다.그 옆에 있던 다른 외국인들이 ‘자기들의 아이들을 다른 나라에 키워주길 부탁하는 나라’보다 ‘다른 나라 아이들을 받아들여 키우는 나라가 더 위대한 나라이며 훌륭한 국민’이라고 평가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이처럼 해외입양은 국가적 차원에서 국력의 문제이며,국가 주체성의 문제이다. 해외입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입양에 대한 인식전환 운동이 필요하다.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혈연중심 사회로,입양은 같은 집안의 피를 받은 아이들만 하고,부득이하여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를 입양하였을 경우에는 숨기는 문화였다.이러한 문화속에서는 국내입양이 확산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최근 일부 종교단체들이 펼치는,혈연관계를 초월한 국내입양문화개혁 캠페인에 국민 모두가 참여하여 입양에 대한 인식개선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개선 운동에 앞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우선 시행해야 될 일도 많다.첫째,정부는 국내입양으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보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예를 들면 입양하기는 힘드나 아이들을 돌볼 마음을 가지고 있는 가정을 선정하여 정부가 양육비와 교육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둔다면 어렵지 않게 해외입양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정부는 미혼모나 편모,편부가 자녀들을 키울 수 있는 양육지원제도를 만들어 고아 발생을 예방해야 한다.최근에 버려지는 아이들은 미혼모의 자녀나 해체가정의 자녀들이 많다.미혼모나 편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지원제도를 강화하여 이들이 자녀를 상실하는 아픔을 갖지 않게 하며 사회적 부담도 감소시키는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셋째,정부는 지금 곧 해외입양을 중단해야 한다.금년은 해외입양을 시작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언제까지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 속에 갇혀 국가 위신을 추락시킬 것인가? 이제 더 이상 해외 입양아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하고 두려워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김성이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
  • [우리동네 이야기] 미아동

    [우리동네 이야기] 미아동

    ‘미아리’는 대중가요 가사나 6·25전쟁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이런 이미지를 훌훌 벗고 균형발전촉진지구,뉴타운 건설 등으로 서울 강북지역을 대표하는 ‘새 미아리’가 부상하고 있다. 흔히 ‘미아리’라고 불리는 지역은 행정구역상 미아 1∼9동에 이르는 4.41㎢로 강북구 전체 면적 23.61㎢의 18%에 이른다.인구는 강북구 전체 36만 3447명의 40%인 16만 2654명. ‘미아동(彌阿洞)’이란 이름은 되너미고개(돈암현)를 미아리고개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미아 7동에 위치한 불당(佛堂)골 미아사(彌阿寺)에서 유래되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여하간 ‘미아리’는 한자뜻 그대로 언덕에서 쉬어간다는 마을인 만큼 마을이름과 고개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미아동은 북으로 수유동,동으로 번동과 닿아있다.그리고 산능선을 경계로 성북구의 정릉동과 인접하고 있다.또 남쪽은 길음동ㆍ상월곡동과 도봉로를 경계로 삼고 있다.삼양로와 도봉로가 미아동의 남북을 관통하고 있다. 그 중 북으로 뻗어있는 국도 도봉로는 6·25전쟁과 관계가 깊다.6·25 당시 도로는 현재와 같이 확장되고 포장되지는 않았지만 서울의 유일한 북쪽 외곽도로였다.따라서 미아동과 미아리고개는 6·25때 서울의 최후 방어선이었다. 이 일대는 관공서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성북교육청,서울북부보훈지청,강북전화국,도봉세무서 등이 있으며,교육기관으로는 영훈중·고등학교,신일중·고등학교,창문여자중·고등학교,성암여자중학교ㆍ정보산업고와 7개의 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은 교통의 요충지이자 강북구의 관문이지만 개발이나 발전과는 거리가 멀었다.그러나 미아6ㆍ7동과 미아삼거리역 일대가 지난해 뉴타운 및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 쾌적하고 편리한 신주거중심도시로의 재탄생을 앞두고 있다. 미아6ㆍ7동의 미아뉴타운 18만 7000평은 쾌적하고 편리한 인간친화적 공간과 복합문화시설,학교 등을 갖추는 신주거 중심도시 ‘래오미아’로 개발될 계획이다.미아삼거리역 균형발전촉진지구 4만 9000여평은 대형쇼핑센터,업무단지 등이 형성될 균형발전촉진지구와 연계해 자족형 복합도시로 발전시킬 계획이다.미아1동에 삼각산고등학교,솔샘중학교가 2007년에 개교할 예정이어서 교육의 질도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가장 난제였던 교통문제도 오패산길 개설과 솔샘길 확장 등 도로개설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올 연말쯤에는 ‘미아·삼양선 지하경전철 계획’이 발표될 예정이어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고 있다. ‘한(恨) 많은 미아리고개’는 말끔히 사라지고 ‘쾌적한 미아동’이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이경형칼럼] 역사 되쓰기

    [이경형칼럼] 역사 되쓰기

    역사는 흔히들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영원한 승자는 없다.그래서 역사는 스스로 그 정직성을 나타내는 힘이 있다고 한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과거사 규명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역사의 진실은 규명되어야 하고,왜곡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과거에 눈 감으면 현재의 장님이 된다.”는 바이츠제커 독일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과거를 제대로 밝히고 평가하는 것은 오늘의 좌표를 돌아보게 하고 내일의 지향점을 찾게 해준다. 여권은 일제하 친일 행위,6·25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희생,각종 의문사를 포함한 과거사의 포괄적인 진상 규명을 주장하고 있다.반면 야당은 민생이 캄캄한데 과거만 캐려든다면서 여권의 정체성이 뭐냐고 공박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는 그것대로 우선적으로 해야겠지만,과거의 진실을 되찾는 작업을 무조건 덮어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문제는 과거의 진실을 어떻게 찾고,어떤 잣대로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가지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과학적,실증적으로 과거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정치권은 입법의 기본틀만 짜고,구체적인 사실 규명은 해당 분야 전문가나 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여권이 특정 사건 규명 기구를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만 구성하려 한다면 과거사 규명은커녕 엉뚱한 이념 논쟁만 확산시킬 것이다. 둘째,정략적 접근은 배제해야 한다.이 같은 주문은 ‘살을 베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과 마찬가지로 정치권 현실을 도외시한 말로 들릴지 모르나 그래도 최대한 노력은 해야 한다. 여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군 소위 시절을 캐고,조선일보 사주나 동아일보 창업자의 행적을 추적하려드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적 기반을 흔들고,현 정권에 비판적인 두 신문을 흠집내고자 하는 정략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청년 박정희가 실제 무슨 일을 했으며,입만 열면 민족지라고 말하는 두 신문의 설립 주역들이 과연 친일 행위를 한 적이 없는지,짚고는 넘어가야 한다.비록 산업화의 공이 크고,일제 아래서 민족 언론으로서 역할을 했다 해도 그들의 ‘굴절’부분까지 덮어두거나 미화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셋째,포괄적 과거사 규명은 정직한 역사를 되찾는 데 목표를 둬야지 감정적이고 급진적인 ‘역사 바로 세우기’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의 하나로 일제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을 헐어냈다. YS는 회고록에서 “야당 의원 시절,일본의 한 의원 집에 초청받아 갔을 때,그가 중앙청을 배경으로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이 응접실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저 건물을 반드시 허물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당시 일제 식민 역사뿐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수도 서울 수복의 역사가 담긴 중앙청 건물을 헐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다른 곳에 옮겨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하자는 의견이 비등했다.그러나 YS의 이러한 ‘결의’때문인지 그 같은 여론은 빛을 보지 못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서만 남을 수 없다.역사를 패자 혹은 민초(民草)의 눈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은 필요하다.권력이 살아있을 때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가 정답일지라도 ‘성공했던 쿠데타도 반드시 처벌된다.’는 것은 이미 교훈으로 돼있다.그래서 역사는 두려운 것이다. 편집제작 이사 khlee@seoul.co.kr
  • 한숨짓는 ‘民生’…헌신짝 된 ‘相生’

    한숨짓는 ‘民生’…헌신짝 된 ‘相生’

    답답하다.경제는 극심한 내수 침체 속에 고(高)유가·고물가·주가폭락이라는 3중고에 허덕이며 도무지 회생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머리를 맞대고 타개책을 모색해야 할 정치권은 그럼에도 과거사와 국가정체성 논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여야 모두 경제회생에 당력을 쏟겠다는 다짐을 되뇌지만 말뿐이다.진정한 경제 위기의 원인은 눈과 귀를 닫은 채 입만 열어 놓은 정치권이라는 지적만 높아간다. ■ 경제는… 우리 경제가 갈수록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는 ‘신호’가 동시다발로 나타나고 있다. 주가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금리는 정책수단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환율도 수출 떠받치기에 바쁘다.한마디로 금융지표가 엉망이다.여기다 물가는 올해 목표치인 3%대를 훌쩍 넘어 4%를 넘보고 있고,연일 치솟는 유가,원자재가격 등 대외 여건도 경기회복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여파로 경제 주체인 개인과 기업들의 한숨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부동산대출 등 260조원을 넘는 은행권 가계부채로 서민·중산층들의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지고,기업은 투자는커녕 일할 의욕마저 잃고 있다.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기업의 체감경기도 3개월째 연속 하락해 ‘수출동력’이 멈추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깊어가는 서민·중산층 주름살 서민은 물론 자영업자들도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지난 6월말까지 최근 1년간 중소기업의 업종별 연체율 현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경기에 가장 민감한 숙박·음식업종이 지난 6월말 현재 6.4%로 지난해 6월말의 0.5%에 비해 불과 1년 만에 무려 13배로 급등했다.나머지 중소기업 업종도 같은 기간 연체율이 부동산·임대업은 0.9%에서 2.9%,도소매업은 8.1%에서 9.8%,건설업은 1.9%에서 3.5%,제조업은 4.0%에서 5.0% 등으로 상승했다. 가계 부실도 심상찮다.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분석도 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가계의 자산과 부채,저축률,실업률 등을 토대로 가계부실지수를 산출한 결과,올 1·4분기 127.9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에는 123.5였다. 지난 3월말 현재 가계 금융부채 잔액은 535조 5000억원으로 연간 이자 부담액은 33조 1000억원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전에 10% 초반에 머물던 근로자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상환 비율이 올 1·4분기에는 25.9%로 상승해 소득의 4분의 1 이상을 부채 상환에 쓰고 있다.문병식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년 부양비 지출 증가,계층별 소득의 양극화현상 심화,임시·일용직 증가 등 고용의 질 악화,주택담보대출 상환과 신용불량자문제 등으로 인해 가계의 소비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내수부진,기업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내수부진의 여파로 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생산활동에 대한 체감경기가 악화되고 있다.3일 한국은행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이를 여실히 반영한다. 한국은행이 2485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7월 기업경기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 업황 BSI는 70으로 6월의 78보다 8포인트 떨어져 3개월 연속 하락했다.지난해 8월의 67 이후 11개월 만에 최저치다.특히 내수기업의 업황BSI가 75에서 69로 6포인트 떨어진데 비해 수출기업의 업황 BSI는 85에서 74로 11포인트 급락해 내수기업의 하락폭을 크게 웃돌았다.전경련도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월 BSI가 86.4로 지난 6월 이후 3개월 연속 기준치(100)를 밑돈 것으로 조사됐다. 내수침체 장기화와 함께 고유가,원자재가격 상승,하반기 수출둔화 우려 등 국내외적인 악재가 겹치면서 향후 경기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병철 김경두기자 bcjoo@seoul.co.kr ■ 정치는… 여야는 3일에도 과거사 청산과 국가 정체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이어갔다.여야 대표간에 상생과 민생정치를 표방하며 약속한 ‘5·3협약’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입으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쟁을 중단하자.”고 외치면서도 서로에게 쉼 없이 주먹질을 해대는 형국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정체성 논란 중단을 촉구하면서도 내부 회의에서는 박근혜 대표를 공격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한나라당 역시 “경제 위기의 본질은 집권세력의 모호한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민주노동당 등 야4당 공조를 통해 ‘카드대란 국정조사’를 추진키로 하는 등 본격적인 여당 옥죄기에 나섰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오전 기획자문위 회의에서 “한나라당은 정체성 위기가 경제난의 원인이라고 비약하며 공세를 펴고 있다.”면서 “난데없는 정체성 논란은 색깔론의 연장일 뿐”이라고 공격했다.그러면서 “유신체제는 5·16보다 상위의 헌정질서 유린행위”라고 덧붙였다. 문희상 의원은 “송두율씨 재판과 북방한계선(NLL) 문제,의문사진상조사위 문제를 갖고 정체성 논란을 제기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공격했다.장영달 의원은 “정부 수립 후 6·25전쟁과 박정희 쿠데타,12·12사태 등 세차례의 정체성 위기가 있었으나 박 대표는 유신독재를 구국의 선택이라고 했다.”고 비난했다. 김한길 의원은 “박 대표가 퍼스트레이디를 할 때 긴급조치로 감옥에 있는 아버님 면회가면서 세월을 까먹었다.”고 가세했다.민병두 의원은 “한나라당이야말로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김희선 의원은 친일반민족진상규명법 문제를 들어 “(박 대표의 반발은)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라고 비꼬았다. 이에 맞서 박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다.”면서 “헌법을 지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국가 정체성 수호를 거듭 강조했다.또 “내가 정체성 얘기만 꺼내면 여당에선 하루종일 아버지 얘기만 한다.”며 “(한나라당은)국가적인 문제를 얘기하는데 여당은 항상 개인적인 얘기만 한다.”고 반박했다.앞서 CBS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왜 개인문제만 공격하고 (국가정체성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입장 표명을 거듭 요구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여당이 국내에서는 과거사를 청산하겠다고 하면서 왜 일본 앞에서는 과거사 문제가 국내용이라며 비굴하게 구는 것인지 국민은 알고 싶어한다.”며 “이 정권은 국가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은 엄청난 잘못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공방은 다음 주 열린우리당의 ‘진실·화해·미래위원회’ 추진 구상이 윤곽을 드러내면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이 기구는 사실상 여권의 ‘3공 청산’작업으로 전개될 전망이어서 박 대표를 비롯해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불거졌던 ‘노 대통령 3대 의혹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당내특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또 민주노동당·민주당·자민련 등과 카드대란 국정조사를 비롯해 예결특위의 상임위 전환,기금관리기본법 개정,경제 위기 진단 대국민토론회 개최 등을 추진키로 합의하는 등 대여(對與) 야4당 공조에 나섰다. 진경호 전광삼기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白骨兵團 /손성진 논설위원

    ‘적진 800리의 혈투’에는 최초의 유격부대 ‘백골병단’의 6·25 참전 실화가 담겨있다.이 책을 엮은 전인식씨는 작전참모로 참전했으며 종전후 전우회장을 맡아 백골병단의 명예를 찾기 위해 애써왔다.부대가 창설된 것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박해진 1951년 1월초 1·4후퇴 무렵이었다.대원들은 대구에서 단 3주간 교육을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중사∼대위의 계급이 주어졌지만 정식 군번은 없었다. 그해 1월30일 인민군 복장에 2주일분의 미숫가루와 고추장만 갖고 혹한의 영월 전선에 투입된 대원들은 대관령 너머 적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작전을 벌였다.폭설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대원들이 백골병단이란 이름으로 재정비된 것은 1951년 2월20일 강원도 명주 퇴곡리에서였다.사령관은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을 지낸 당시 채명신 중령이었다.대원들은 2월28일 인민군 군관 등 3명을 생포하고 1급 기밀문서를 노획하는 첫 전과를 올렸다.이 정보는 인민군 제69여단을 격멸하는데 크게 기여했다.3월10일부터 이들은 강원도 인제에 진출,최대의 전과를 거두었다.필례마을을 정찰하던 대원들은 인민군 중장이자 빨치산 총사령관인 길원팔의 은거지를 찾아내 길을 포함해 군관 13명을 체포했다.그러나 인제 군량밭과 설악산 백담사에서 연이어 벌인 전투에서 100명 넘는 전우를 잃었다. 최대의 비극은 인제 단목령에서 일어났다.고개로 행군하다 인민군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많은 대원들이 총탄에 맞아 숨졌고 단목령으로 뿔뿔이 피신한 대원들은 영하 30도의 추위에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이곳에서만 120명이 희생됐다.악전고투 끝에 1951년 4월2일 강릉으로 귀환했을 때 살아남은 병력은 647명중 283명밖에 되지 않았다.그러나 돌아온 이들에게는 무공훈장은 고사하고 보급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전씨 등 생존대원들이 동분서주한 끝에 1990년에야 전적비를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 세울 수 있었지만 공식적인 보상은 얻어내지 못했다. 백골병단이 해체된 지 53년만에 국방부가 대원들에게 병적을 주고 1000여만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키로 했다고 한다.늦게나마 그들의 공을 인정함으로써 아직도 유해를 확인하지 못한 대원 303명을 비롯한 영령들의 넋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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