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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장지수 前해군참모총장 별세

    전 해군 참모총장 장지수 예비역 대장이 25일 오후 6시쯤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6·25당시 공주함장으로 참전한 고인은 해군사관학교장, 국가 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한국함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1969년에는 제 9대 해군 참모총장직을 맡아 초창기 해군 발전에 기여했다. 을지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동성훈장 등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1972년 전역 후에는 산업포장, 대통령표창 등을 수여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김우정씨와 아들 재윤·재호씨, 딸 재희씨 등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영안실(031-787-1510)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28일 오전 11시 분당 서울대병원 영결식장에서 치러진다.
  • 노대통령 “보도연맹사건은 현대사 비극”

    노무현 대통령은 24일 울산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영상메시지를 보내 과거 국가권력의 불법행위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과했다. 개별 과거사에 대해 노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것은 2003년 10월 제주 4·3사건 이후 두번째이며, 과거 국가권력의 불법행위에 대한 포괄적 사과는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으로, 좌우 대립의 혼란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도연맹에 가입되었고 6·25 전쟁 속에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면서 “유가족은 연좌제의 굴레에서 고통받으며 수십년을 지내야만 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해 당시 국가 권력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아울러 지난날 국가 권력의 잘못으로 희생된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8월 군·경에 의해 407명이 집단 총살된 사건으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로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①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표정을 하고 산다.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행복한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해서일까? 따지고 보면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내 자신 옆에 붙어 있다. 큰 일로 인해서 행복해진다는 것은 극히 어렵고, 아주 작은 일로부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행복했다는 사실을 아주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주 시시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크게 행복하게 만들었던 일들을 모아본다. 1. 해바라기 100개 1969년인가, 1970년인가에 제작된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Sunflower)”를 나는 개봉하자마자 일본 동경에서 봤다. 구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10년 후쯤 개봉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비토리오 데시카라는 거장감독이 연출을 했고, 영원한 배우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출연하는 매우 서정적인 영화였다. 우크라이나에 피어있는 수십만 송이의 해바라기를 보면서 나는 숨이 멎었다. 이상하게도 한 개 두 개 있을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은 꽃인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이 피어 있으니까 큰 감동을 주었다. 다른 꽃들과 달라서 모두가 한쪽(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해바라기를 향일화(向日花)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영화는 2005년에 중국에서, 2006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상영이 되었다. 그리고 모두 다 큰 사랑을 받았다. 해바라기-수십만 송이는 아니더라도 100송이만 심어놓고 봤으면 좋겠다. 2. 마늘빵 두 개 자장면이 중국음식이 아니라 한국음식으로 인식되듯이, 피자도 이탈리아 음식이 아니라 미국음식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내 입에는 이탈리아 음식이 잘 맞는다. 그래서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식당에 가끔 간다. 주로 파스타를 시켜먹는데, 국수도 좋거니와, 그보다 더 맛있는 것은 마늘빵(Garlic Bread)이다. 중국식당에서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잘해야 맛있는 식당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내 생각). 그렇다면 이탈리아 음식은 마늘빵과 파스타를 잘해야 좋은 식당이 아닐까? 그 마늘빵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집은 마늘을 너무 많이 바르고, 어떤 집은 그 반대고, 어떤 집은 너무 바싹 구웠고, 어떤 집은 그 반대고, 어떤 집은 빵이 너무 두껍고, 어떤 집은 그 반대고... 그러고 보니까 식당 해 먹기도 쉽지 않겠군. 아무튼 와인 석 잔에 잘 구워진 마늘빵 두 개는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3.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00년, 미국 남부지역인 조지아주의 한 가정에 예쁜 딸이 태어난다. 이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등교거부의 이유는 수학공부가 싫고, 특히 수학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부모들은 며칠 동안 딸을 설득해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밤 12시께, 어머니는 어린 딸을 마차에 태워서 30분 정도를 달려갔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더니 어머니는 딸에게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을 자세히 보라고 말했다. “이제 다 봤니? 그럼 가자!” 딸을 데리고 마차를 달려서 다시 30분 정도 되는 마을에 당도했다. 이곳은 불에 타지 않고 건강한 모습의 큰 집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어머니는 역시 딸에게 행복하게 잘 사는 마을을 구경시켰다. 그리고 마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아침 어린 딸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한참 잠 잘 시간에 자기를 데리고 폐허가 된 마을과 잘 사는 마을을 구경시키고 아무 설명도 없이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왜 그러셨어요?”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니? 그렇다면 내가 설명해주마. 먼저 찾아간 폐허마을은 자체적으로 힘이 없어서 남북전장 때 북군의 침략을 받고 불에 타버린 곳이다. 나중에 본 곳은 스스로 자체방어를 잘 해서 피해를 보지 않고 잘 살고 있단다. 네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마라. 그러나 네 자체 힘을 기르지 않으면 폐허마을처럼 살 수 밖에 없단다. 결정은 네가 해라.”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이 어린 딸은 그 날부터 열심히 학교에 다녔고, 훗날 신문기자 생활을 하게 된다. 몇 년간의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이 여인은 6년 반에 걸쳐 대하소설을 완성한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설책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큰 감동을 주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가 그 소설이고, 이 작가가 바로 마가렛 미첼이다. 나는 이 소설과 영화에서 큰 감동을 받았는데, 그것보다도 “어머니와 딸”이야기가 더욱 큰 교훈을 주기 때문에 이 소설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4. 밀짚모자 여름철 이것보다 더 시원한 모자는 없다. 시원한 것뿐만 아니라 보기에 모양도 멋있다. 밀짚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점점 없어지는 것이 아쉽다. 6·25전쟁 이후 밀짚모자 테두리는 영락없이 영화필름으로 둘러져 있었다. 그 바람에 영화필름이 아주 많이 없어졌던 것이다. 전에는 밀짚모자가 헐값이었다. 하지만 21세기 지금은 귀한 존재가 되어 있다. 사람도 나이 들면서 귀한 존재가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 글 정홍택 상명대학교 석좌교수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고학7년에 매머드·홀차린 학생사장

    고학7년에 매머드·홀차린 학생사장

    22살짜리 대학생이자 병아리 총각「스타」인 한정환(韓貞煥)이「매머드」술집을 차리고 사장님이 되었다. 고(高)1 때부터 시작한「아르바이트」수입이 대학 졸업반에 이르는 7년동안에 불어나서 약 5백만원짜리 자본주로 성장한것. 경희대(慶熙大) 신문방송학과 4년생, 응원단장, 신인배우의 세가지 얼굴로 이제는 사장님이 된 엉뚱한 젊은이의 치부론을 들어보면. 배우보다 돈에 관심더 커 졸업까지 1천만원 목표 「선데이 서울」독자중에는 한정환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것 같다. 그는 70년 8월2일자「선데이 서울」(제96호)에 한번 소개 됐었다. 그때 기사 제목이『해운대의 빨간지붕대학생 주점』. 대학생4명이 해운대 바닷가에 술집을 차리고 여름방학「아르바이트」를 했던 얘기다. 그 대학생 4명중 한 사람이 바로 한정환. 자기들이 지은 술집에서 술심부름을 하던 이 젊은이가 갑자기 사장이 됐다고 나타났다. 그가 차린 술집은 충무로 번화가에 있는「도원」이란 맥주「홀」. 좌석이 3백개 쯤 되고 무대시설이 돼있는 요즘 유행의「매머드」맥주집이다. 종업원이 40명(남자10·여자30)」이니까 어엿한사장님. 실제로 그집 종업원들의 입에서는「사장님」소리가 어색치 않게 튀어나왔다. 작년 여름 해운대 폭양에 그을었던 새까만 얼굴이 제법 환하게 틔어있다. 강렬한 눈모습과 얼굴 윤곽이 신인 배우답게 미남. 그는 70년4월 정진우(鄭鎭宇)감독에 의해『연인들아 벌판으로 가자』란 영화의 주연배우 모집에 뽑힌 이력을 갖고있다. 그런데 작년여름 해운대에 술집을 차렸을때 한정환은 자신이 신인배우란 사실을 구태여 밝히려 들지 않았었다. 햇볕에 그을어서 허물이 벗겨진 그의 얼굴이 신인배우의 그것이라고는 그때 기자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어쨌든 한정환은 배우보다 돈쪽에 더 관심이 큰것 같다. 맥주집을 차린 근본 목표가『내년 졸업때까지 1천만원을 확보하는거』라고 그는 서슴지 않고 말한다. 자본금은?『한 5백만원쯤 들었어요. 가지고있는거 다 털어 넣었죠. 7년만의 결실입니다』 그는 이 5백만원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얻어졌다고 밝혔다. 학생의 힘으로, 학업을 계속하면서 모은 돈으로는 놀랄만큼 많은 액수다. ”야채 장사서 술장사까지 거의 안해본 장사 없어요” 『솔직이 말해서 안해본 장사가 없읍니다. 야채장사, 얼음장사, 솜사탕장사, 술장사, 그리고 한때는 공장의 경비원 노릇도 해봤죠』맨처음 해본게 야채장사. 고등학교(인창(仁昌))1학년때란다. 그는 어머니가 주는 교통비를 저축해서「리어카」한대를 사가지고 여름방학동안 야채장사를 했단다. 아버지는 6·25때 괴뢰군한테 피살됐고 어머니등에 업혀 남하했다는 그는 이모집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다. 학자금은 이모집에서 궁색하지않게 대주었지만 이들 모자가 독립할 수 있는 형편은 못되었다고. 여름방학동안 최초의「아르바이트」에서 그는 돈버는 재미를 맛본것 같다. 그는 학교를 주간에서 야간으로 옮기고 낮에는 돈벌이를 했다. 주로 야채, 과일장사. 그래서 번 돈은 어머니를 통해서 계를 들어 늘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무렵 한정환의 손에는 이미 50여만원의 자본금이 들어왔다고. 술장사는 대학1학년때부터 했다. 1학년때는 수원(水原)에 동업으로 대폿집을 냈고 그해 여름방학은 대천(大川)해수욕장에서 통술집을 벌였다. 2학년, 3학년 여름방학은 해운대해수욕장. ”안쓰면 돈벌고 푼돈 깔보면 큰돈 못벌죠” 작년 여름 해운대서의 그는『실컷 놀고 돈버는 재미』를 역설했었다. 해수욕장에 놀러와서 돈만 쓰고 가는 학생들을 그는 한심하다는 말투로 공격했었다. 『처음 내려갈때 27만5천원을 들여서 장사를 시작했죠. 4명이 한달동안 벌어서 쓰고 남은 돈이 75만원이더군요』 비가 잦고 전염병이 유행하여 해수욕장 최대의 불경기였다는 작년 여름에도 그는 거뜬히 30여만원의 이득을 올린 것이다. -돈버는 비결이라도? 한정환은 이물음에『안쓰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물은 단단한 땅에 굅니다. 푼돈이라고 깔보면 큰돈 모일날이 없어요』 그래서 자신은 친구들에게『장아찌』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씩 웃는다. 술장사를 하면서도 자신은 술 한잔 마시지않고 담배는 물론「코피」도 별로 사먹지 않는단다. 『4, 5명이 다방에 가면 대표로 한잔만 마시죠. 돈은 물론 마신 사람이 내고』 -그래도 친구가 있는지? 그는 친구와 돈과는 전혀 상관없는거라고 말했다.『친구 많아요. 가난한집 친구에서부터 재벌·고관의 아들들까지 가리지 않고 사귑니다. 처음엔「장아찌」라고 이상하게 보지만 사귀고 나면 모두 내 의견에 찬성합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처음엔 돈 아까운줄 모르고 쓰기만 하던 친구도 나와 사귀고 나면 뭔가 돈벌이 궁리를 합니다. 내 친구중에는 졸업하기전에 기업체 하나씩 차리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돈과 실속만 찾는 이 학생이 영화배우를 지망했다는 것은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 그런데 그의 말은『나라고 꿈이 없겠어요? 돈도 벌고 꿈도 살려야죠』 그러면서『꿈을 살리기위해 돈을 번다고 말할수도 있다』는 것. 그의 꿈은 영화제작·감독」을 겸할수있는 연기자가 되는것. 그리고 한국에 자동차공장을 세우는것. 이 두가지를『앞으로 10년안에 꼭 이뤄 놓겠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돈도 벌고 꿈도 키워가며 10년내 자동차 공장세워 그가 차린 술집은 주로 젊은층을 끌기에 알맞게 꾸며져있다. 술장사하면서 남의 술집엔 안가봤다는 그는 장사를 벌이기전에야 명동·무교동일대의 술집을 모조리 훑어봤다한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젊은층의 술집 출입이 굉장히 많다』는 점. 그는 자기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을 고객으로해서 자기 실속을 차려볼 심산이다. 학교에서는 대학신문의 기자, 응원단장을 하면서 대학생활도『비교적 실속있게 한편』. -「히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국「히피」는 뭔가 생각이 있는것 같아요. 그런데 이쪽은 공연히 흉내만 내는것같아요』 -「해피·스모크」는? 『그런거 해볼 여가가 없어요』 -머리는 왜 길렀죠? 『이건 영화에 출연하려니까 어쩔수 없어요. 생각같아서는 박박 깎아버렸으면 좋겠지만- 이 대학생 술집사장은 곧『연인들아 벌판으로 가자』『신부는 방년18세』에 출연할예정. [선데이서울 71년 5월 2일호 제4권 17호 통권 제 134호]
  • 새해 달라지는 것들

    새해 달라지는 것들

    새해 1월1일부터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공급되는 주택을 지역우선공급으로 분양받으려면 해당 지역에 1년이상 거주해야 한다. 또 종합소득세를 매기는 데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 구간이 상향조정돼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의 세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서민층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3월까지 3개월간 난방용 유류제품에 30% 탄력세율도 적용된다. 새해부터 달라지는 각종 제도를 알아본다. ■ 세제 ▲소득세 과표구간이 1200만원 이하 8%,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 17%,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26%,8800만원 초과 35% 등으로 상향 조정된다. ▲교육비 소득공제가 방과후 학교 수업료, 급식비, 교과서 구입비 등으로 확대된다. ▲저출산대책의 일환으로 자녀를 출산·입양한 당해 연도에 출산·입양 자녀 1인당 200만원을 추가공제해 준다. ▲자영업자 과표양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성실 사업자에 대해 의료비와 교육비 공제가 허용된다. ▲현재 5000원 이상 거래시에만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주고 있지만 7월부터는 기준 금액이 폐지된다. ▲개인의 지정기부금 공제한도가 현행 소득금액의 10%에서 20%로 확대되고, 기부금 공제대상 인적범위에 거주자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이 지출한 금액도 포함된다. ▲현재 주택 보유기간이 3∼5년이면 양도차익의 10%,5∼10년이면 30%,15년 이상이면 45%를 과표에서 제외해주는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 제도가 각각 10%,45%인 최저·최고 공제한도를 유지하는 대신 3년 보유자에게 10%를 공제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보유 기간이 1년 늘 때마다 3% 포인트씩 공제율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바뀐다. ▲중소기업 가업상속 공제한도가 현행 1억원에서 내년부터는 최대 30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총 급여액의 20%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20%를 공제해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일몰이 2009년까지 연장된다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간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 프로판 및 가정용 LPG, 취사·난방용 액화천연가스(LNG) 등 난방용 유류 제품에 30% 탄력세율이 적용돼 가격이 인하된다. ■ 금융 ▲내년 4월부터 인터넷뱅킹 및 텔레뱅킹 등 전자금융거래 때 1∼3등급 보안 등급에 따라 이체한도를 차등화한다. ▲콜금리 목표제가 폐지돼 3월부터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금리를 기준으로 한 한은 기준금리제가 도입된다. ▲3월부터 콜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금리가 급등 또는 급락할 때 한국은행이 채권 등을 담보로 잡고 시중은행에 단기 자금을 빌려주거나 잉여자금을 받아주는 제도가 시행된다. ▲4월부터 은행 창구에서 자동차보험과 생명보험 등 보장성 보험 상품을 팔 수 있게 된다. 국회에서 시행시기 등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유동적이다. ▲1월부터 이륜차 무사고 운전자도 보험료 할인 혜택을 받게 된다. ▲8월부터 생명보험 또는 손해보험사에 보험설계사가 다른 업권의 상품을 팔 수 있게 된다. ▲1월부터 은행의 자본 적정성을 평가하는 국제적 기준인 BIS제도를 새롭게 개편해 은행에 내재해 있는 각종 리스크를 보다 정밀하게 평가·관리하게 된다. ▲금융회사 및 전자금융보조업자(VAN사업자) 등이 자동화기기의 설치 및 운영시 준수해야 할 안전성 기준을 4월부터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명시할 예정이다. ▲상장법인의 재무건전성 및 투명성 제고 등으로 직접규제를 폐지하고 시장규율로 전환하게 된다. ▲기업의 해외거래소 선택권은 자율에 맡기되 복수상장을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부실공시 등에 대해서는 엄중제재한다. ▲2월부터 전자금융거래 약관 변경 때 전국 일간신문에 공고하는 의무를 없애고 금융회사와 전자금융업자가 약관변경에 대해 통지를 했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한다. ▲증권회사와 채권매매전문중개회사는 장외 거래되는 모든 채권거래에 대한 호가정보를 협회에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협회는 실시간으로 공시한다. ■ 부동산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되는 주택을 지역우선공급으로 분양받기 위해서는 해당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앞으로 사업승인을 받는 공동주택은 사업계획 승인 단계뿐 아니라 사용검사 단계에서도 건설교통부장관이 고시하는 기준에 적합하도록 소음 측정을 실시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6층 이상에서는 실내 소음도를 측정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6층 이상에서도 실내 소음을 측정해 45㏈ 미만이 돼야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재건축·재개발 조합 설립을 위한 주민의 동의 요건이 5분의4(80%) 이상에서 4분의3(75%) 이상으로 완화된다. ▲4월부터 150가구 이상인 주상복합아파트도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 관리를 맡겨야 한다. 입주자 대표회의도 구성해야 하며 관리규약 마련, 관리현황 공개, 장기 수선 계획 수립, 장기 수선 충당금 적립 등도 해야 한다. ▲30여년간 유지돼 온 일반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의 업무영역 구분이 사라진다. 이에 따라 일반건설업체가 전문건설업을, 전문건설업체가 일반건설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건설업체가 아닌 작업반장 등이 하도급 업체로부터 공사 일부를 도급받는 시공참여자 제도가 폐지돼 불법 다단계, 임금 체불문제 등이 사라질 전망이다. ■ 교통 ▲하이패스 이용차량의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제가 내년 말까지 1년 연장된다. 할인율은 5%이다. ▲1000㏄ 미만의 자동차도 고속도로 통행료를 50% 할인받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800㏄ 미만에만 할인 혜택이 주어졌다. ■ 교육 ▲5월부터 교육관련 기관의 각종 정보를 공개하는 정보공시제가 전면 시행된다. 초·중·고교는 학교규정, 교육과정 운영, 학생변동 사항 등을, 대학은 신입생 충원율, 취업률, 교수 1인당 논문수, 대입전형계획,1인당 장학금 등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 ▲새해부터 학교 밖에서도 학교기업을 설립할 수 있고 사업종목도 대폭 확대된다. 금지업종도 현재 102개 업종에서 담배소매업, 유흥주점업, 여관업 등 19개로 줄어든다. ▲하반기 실시되는 초·중등 교원 임용시험부터 전형절차가 3단계로 강화되고 논술과 면접 비중이 높아진다. 중등 영어교사 임용시험은 필기시험에 영어 듣기평가를 포함하며 중등 외국어교사 응시자들은 논술·면접, 수업능력 평가를 해당 외국어로 치러야 한다. ■ 노동 ▲차별시정제도가 7월부터 상시 100인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다. ▲7월부터 주5일 근무제가 20인 이상으로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철도·항공·전기·병원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필수공익사업은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되는 대신 파업 중 핵심업무에는 정상가동이 가능한 필수인력을 남겨둬야 한다. 아울러 파업시 파업참가자의 50% 범위내에서 대체근로가 가능해진다. ■ 환경 ▲1월부터 인원수 100인(연면적 430㎡) 이상의 국공립 보육시설과 인원수 200인(연면적 860㎡) 이상의 민간 보육시설이 실내공기질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 ▲체력단련장업, 체육도장, 무도학원업, 무도장업, 음악교습학원, 음악교습소, 유흥주점, 단란주점, 노래연습장 등 9개 업종의 신규사업장이 ‘소음·진동규제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이들 사업장 영업자는 오전 5∼7시·오후 7∼10시 45㏈ 이상, 오전 7시∼오후 6시 50㏈ 이상, 오후 10시∼오전 5시 40㏈ 이상이면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1월부터 알칼리망간전지, 망간전지, 니켈수소전지 등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건전지도 생산자책임 재활용(EPR) 의무대상 품목에 포함된다. 생산자는 해당 제품에 대해 출고량 대비 일정 비율을 재활용할 의무가 생긴다. ■ 법무 ▲20세 이상 국민은 각 법원 재판부에서 무작위로 배심원으로 선정할 경우 형사재판 배심원으로 선정돼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형량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하면 2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호주제 폐지에 따라 호적부 대신 ‘국적 및 가족관계 등록부’를 1월부터 사용한다. 본적 대신 ‘국적 및 가족관계 등록준거지’를 도입해 준거지 변경이 자유로워지며 기존 호적등본과 달리 목적별로 다양해진 증명서를 발급받아 사용할 수 있다. ▲상반기 중 질서위반행위 규제법안이 시행되면서 고액·상습 체납자는 관허사업을 제한받고 금융기관에 신용정보가 제공돼 금융거래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체납이 심하면 30일 이내 범위에서 감치(監置)될 수 있다. ▲미성년 자녀 양육 문제를 합의하지 않으면 협의이혼이 불가능해진다. 자녀 면접교섭권이 신설돼 자녀가 스스로 이혼한 부모를 만나겠다고 요구할 수 있고 배우자 한쪽이 이혼하면서 재산을 나눠주지 않으려 빼돌리거나 처분하면 상대방이 취소할 수 있다. ▲1월부터 사건 관계인이 아닌 일반인도 권리구제와 학술연구, 공익목적 등을 위해 확정된 재판의 소송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사생활 보호가 필요한 가사소송 사건은 ‘이해관계’를 소명한 제3자만이 기록 열람을 할 수 있다. ▲7월쯤부터 소년법 적용 연령을 ‘12세 이상 20세 미만’에서 ‘10세 이상 19세 미만’으로 조정하고 보호처분 내용도 사회봉사명령·수강명령 확대,1개월 이내 소년원 송치(쇼크구금), 보호자 교육 등으로 다양화한다. ▲2월부터 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10년간 사진, 상세주소 등 신상정보가 등록된다. 형 집행 종료 후 청소년의 법정대리인, 청소년관련교육기관 등의 장은 5년간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 ▲10월28일부터 성폭력 재범 방지를 위해 위치추적제도가 시행돼 해당 사범은 전자팔찌를 착용하고 휴대용 위치추적장치를 휴대하는 등 24시간 위치를 추적당하게 된다. ▲어음·수표의 실물을 제시하는 것 외에 어음·수표의 추심을 위임받은 은행과 교환소 간 기재사항에 대한 전자정보를 송수신하는 것도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된다. ▲1월과 8월부터 상업등기법 및 비송사건절차법 개정안이 시행돼 국민 편의를 위해 등기 열람 및 교부 청구, 등기 신청 등 상업등기 업무를 전산 처리하게 된다. 회사 이전 때도 관할 등기소간 전산정보 송부·통지로 등기 절차를 간소화한다. ▲1월부터 비전문취업 등 단순노무 외국인력으로 5년 이상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 중 일정 기술·기능자격을 보유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소득을 받고 있는 외국인에게 거주자격을 부여한다. ■보건복지 ▲국민연금 보험료 부과기준으로 쓰이던 표준소득월액 등급체계(45등급)가 폐지되고 가입자의 실제소득에 따라 연금보험료가 부과, 징수된다. ▲출산·군복무 등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행위에 대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추가 인정된다. 가입자가 입양을 포함해 둘째 자녀 출산시 12개월을, 셋째 이상이면 18개월을 인정받는다. 현역병·공익근무요원은 군복무기간 중 6개월을 인정받는다. ▲국민연금 수급자에게 지급된 급여 중 120만원 이하의 경우 압류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된다. ▲평균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이 40년 동안 가입할 경우 국민연금 급여율이 현재 평균소득액의 60%에서 50%로 인하된다. ▲입원환자 식대의 본인부담률이 현행 20%에서 50%로 높아진다.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던 6세 미만 입원아동도 신생아를 제외하고 본인부담금 10%를 내야 한다. ▲건강보험 가입자나 피부양자 사망시 장제비로 25만원을 지급하던 제도가 폐지된다. ▲자유업이던 결혼중개업이 6월부터 국내 결혼중개업은 신고제로, 국제결혼중개업은 등록제로 전환된다. ▲고용·교육·사법·행정절차·참정권·복지시설·건강권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가 4월11일부터 시행된다. ▲65세 이상 전체 노인의 60%(약 301만명)를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 전체 평균소득월액의 최대 5%(2008년 최대 8만 4000원)를 매달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 제도가 시행된다. ▲4월부터 요양기관이 직접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환자의 의료비를 청구하게 된다. ▲사회복지사1급국가시험 관리기관이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 변경되고 시험일자도 3월에서 2월로 앞당겨진다. ▲건강보험료가 6.4% 인상된다. ■통신 ▲1월1일부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요금이 한건당 30원에서 20원으로 내려간다. 또 3월27일부터는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 규제가 풀린다. 그동안 금지됐던 18개월 미만 가입자에게도 이동통신사업자가 단말기 보조금을 줄 수 있다. ▲상반기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시내전화번호를 그대로 인터넷전화에서 사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인터넷전화를 사용하려면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전화용 전화번호를 따로 부여 받아 사용해야 했다. ■경찰 ▲전의경 제도 폐지 방침에 따라 전의경을 대체할 경찰관 부대가 7월부터 순차적으로 창설된다. 새해 배치되는 전의경 대체 인원은 1407명이다. ▲충남 천안동부경찰서, 경남 김해서부경찰서, 경기 화성서부경찰서 등 경찰서 3개가 신설되면서 전국 경찰서 수가 241개로 늘어나게 된다. ■지방 ▲거제도와 부속섬인 가조도를 연결하는 가조연륙교가 연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6월부터 국내 최초로 통영 앞바다에서 참다랑어 시험양식을 시작한다. 참다랑어 양식기술은 현재 일본, 호주 등 극소수 국가만 갖고 있다. ▲1월 전주와 완주군 경계 일대 1014만 9000㎡ 부지에서 혁신도시 공사가 시작된다.2012년 완공되면 한국토지공사 등 13개 중앙공공기관과 한국농촌진흥청이 이전한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일반버스와 지하철에만 적용됐던 ‘수도권 통합요금제’가 좌석(광역)버스까지 확대시행된다. ▲부산 영도다리 확장·복원 공사가 7월부터 시작되며 2010년 말 준공 예정이다. ■국방·병무·보훈 ▲현역병과 공익근무요원 중 행정관서요원의 복무기간이 1월부터 8년 5개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단축돼 최종적으로 각각 6개월,4개월씩 줄어든다. ▲유급지원병제가 2000명을 대상으로 시범운영된다.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뒤 6∼18개월 연장복무하는 유형과 입대하면서부터 3년간 복무하는 유형 등 2가지 유형이다. 이후 해마다 2000∼3000명씩 점차 늘려 2020년 이후에는 4만명(전투·기술분야 1만명, 첨단장비 운용 전문병 3만명) 선을 유지할 계획이다. ▲권역별로 지정된 10개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항공기와 궤도차량, 유도무기 등 군 관련 특수학과를 운용, 군과 산업체에 필요한 기술인력 500명을 시범 양성한다. ▲군 내부에서 발생하는 법정 전염병에 대한 신고업무가 10월부터 전산화된다. ▲수의사관 후보생 선발시 신체등위(50%)와 수의과대학 예과 1·2학년 성적(50%)만 반영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는 반영하지 않는다. ▲국방대는 박사과정을 신설하고 대위 이상 군인 및 5급 이상 공무원과 국방분야 관련 기관 직원 등을 대상으로 군사전략학, 운영분석학, 전산정보학, 무기체계학, 국방관리 등 5개 전공을 운영한다. ▲특정직 공무원인 군인의 연가가 일반직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1년에 21일 시행되고 반일 단위로 연가를 낼 수 있으며 연가일수는 실제 복무한 개월수에 비례해 허가된다. ▲현역병 입영대상자 중 자녀를 둔 기혼자는 본인이 희망하면 집에서 출·퇴근하는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다. ▲매월 지급되는 국가유공자 보상금이 월 27만 5000∼367만 7000원으로 5∼7% 인상되고, 고엽제 후유증 수당도 월 29만 1000∼60만원으로 5% 오른다.6·25 전몰군경 자녀수당은 월 51만 8000∼58만 6000원으로, 참전명예수당도 월 7만원에서 8만원으로 각각 인상된다. ■과학기술 ▲오프라인으로 신청했던 핵물질 및 원자력전용 품목에 대한 수출입 허가 등을 온라인(www.NEPS.go.kr)으로 신청받아 처리결과를 통보해준다. ▲4월부터 미래유망 융합기술 연구자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지원하기 위해 연구비 5000만∼7000만원을 지원한다. 또 융합기술 분야에서 신진연구원 50% 이상이 참여하도록 의무화한다. ■문화 ▲단순 저작권 침해자가 과도한 고소·고발로 피해를 보지 않게 일정한 저작권 교육을 받으면 기소를 미뤄주는 제도가 시범실시된다. ▲대학로 등에 밀집한 공연장들이 공동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온라인 발권시스템 등을 구축·확대할 예정이다. ▲옛 명동 국립극장을 리모델링한 가칭 명동 예술극장이 10월 개관한다. 재개관되는 옛 명동 국립극장은 극예술 중심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이르면 5월부터 서울과 백두산간 직항로를 이용한 백두산 관광이 시작된다. ▲문화재청이 주관하던 문화재수리기술자·기능자자격시험이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 이관되며 시험은 하반기 중 치러질 예정이다. ■여성 ▲6월부터 가족친화인증제가 도입돼 모범적인 제도를 도입·시행한 기업 등에 3년간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우수기업 포상이나 재정지원에서 우대한다. ▲급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을 때 정부가 양성한 돌보미가 집으로 찾아가 아이를 돌봐주는 사업이 38개 지역에서 65개 지역으로 확대된다. ▲만 12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결혼이민자에게 도우미가 주2회 찾아가 자녀 학습지도 방법 등을 알려주는‘아동양육 지원 서비스’와 ‘한글 교육 서비스’ 등이 확대 실시된다. ■농림 ▲농지, 축산 현황 등 농가들의 경영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된다. ▲시장, 군수는 개에 대한 등록제를 시행할 수 있다. 동물학대 행위에 대한 벌금 상한도 2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크게 높아진다. ▲쇠고기이력추적제가 12월부터 전국 모든 한우와 육우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소비자들은 구입 시점에 쇠고기의 지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인삼류도 제품의 용기나 포장에 원산지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원산지표시 규정을 위반하거나 연근(年根)을 속이면 영업정지, 벌금 등의 벌칙이 부과된다. 또 쌀 포장용기에 등급 대신 ‘품위’와 단백질 함량, 품종 순도 등 외관상 구분이 어려운 ‘품질’ 정보를 표시하도록 권장한다. ▲8월3일부터 농업유전자원을 분양하거나 국외로 반출할 경우 반드시 농업유전자원연구소 등에 승인 또는 신고해야 한다. ■해양 ▲2월부터 2670여개에 이르는 무인도서가 절대보전, 준(準)보전, 이용가능, 개발가능 등 4가지 유형으로 구분, 관리된다. ▲2월부터 해양심층수의 개발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해양심층수 개발과 제조에 대한 인허가, 수질관리 등이 시작된다. ▲6월부터 10만㎡이상의 공유수면을 매립할 경우 해양부 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하는 등 공유수면 매립에 대한 관리가 강화된다. 또 공유수면을 불법매립할 경우 처벌기준이 1년 이하 징역,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하 징역,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된다. ▲해양경찰청장은 해양오염의 사전예방 또는 방제에 관한 국가 긴급 방제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1개의 선박투자회사가 여러 척의 선박을 확보할 수 있고, 최소 존립기간도 3년으로 단축돼 탄력적 투자가 가능해진다. ▲수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자는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을 공표해야 한다. ■서울시 ▲시립미술관·역사박물관의 무료관람 대상이 현재 12세 이하에서 19세 이하로 확대되며 ‘다둥이 행복카드’ 소지자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설과 추석, 매월 넷째주 일요일, 하이서울페스티벌 기간에도 무료관람할 수 있다. ▲4월부터 여권발급 업무가 25개 전 구청으로 확대한다. ▲3월3일부터 여성일자리 창출과 보육서비스 향상을 위해 30∼50대 여성 유휴인력을 활용하는 공공보육시설 보육도우미제가 도입된다. ▲지역특성에 맞춘 노점관리를 위해 자치구마다 한 곳씩 노점시범거리를 조성하며 도시미관과 품격 등에 따라 노점규격과 영업시간 등을 정한다. ■행정 ▲분실 등의 사유로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신청할 경우 가까운 읍·면·동 어디서나 가능하며 수령지를 민원인이 선택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 폐쇄회로(CC)TV를 설치할 때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안내판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카메라의 임의 조작 및 녹음기능 사용이 금지된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인터넷 공간 등에 올라 있는 개인정보에 대한 삭제청구권이 신설되고 개인정보침해사실 신고제도 도입된다. ▲광고주의 책임 강화를 위해 허가 및 신고 대상 옥외광고물의 허가번호, 제작자명 등을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하며 불법 광고물 철거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 해당기관에서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 “남편 살아 있다면 보약 맘껏 달여줄텐데…”

    “남편 살아 있다면 보약 맘껏 달여줄텐데…”

    “남편이 지금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좋아하던 한약 맘껏 달여 줄 텐데.” 시종 밝은 표정이던 박춘(74)씨 얼굴에 잠시 그늘이 졌다. 최근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의사 자격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최고령 합격이다.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당시 언론인(합동통신 조사부장)으론 유일하게 체포·구속됐던 남편 정도영(1999년 작고)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이다. 유독 한약을 좋아했던 남편 생각에 박춘씨는 종종 말을 끊었다.21일 오후 그를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만났다. ●군홧발에 짓밟힌 인생 “저와 제 가족은 박정희 정권 군홧발에 짓밟힌 인생을 살았어요.” ‘군홧발에 짓밟힌 인생’은 남편에겐 억울한 옥살이와 잔인한 고문 흔적을, 아들 3명에겐 연좌제의 설움을, 박춘씨 자신에겐 모진 생활고를 안겼고 공부에의 열망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의 최고령 한의사 자격 획득은 가족의 삶에 들러붙어 지워지지 않던 군홧발 자국, 그 마지막 흔적까지 털어낸 ‘멋들어진 복수’인 셈이다. 남편은 현대사의 격랑에 온통 휘감겨 살았다. 남편의 두 형님은 6·25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사망했고, 아버지는 화병으로 피를 토하고 눈을 감았다. 남편은 출소해서도 자신과 무관한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여관을 전전해야 했다. 그의 집은 도예종(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시인 김지하 등이 몸을 피하는 도피처였고, 리영희·안병직(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찾아와 시대를 논하는 사랑방이었다. 박춘씨는 “아버지대로 족한 시대의 멍에가 아들들에게까지 물려질까봐 북적이는 집안 분위기가 늘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박춘씨가 한의사 시험에 도전한 건 남편 사망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면서부터다. 각각 한국전력과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아버지 ‘과거’ 때문에 불합격처리된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절망하고 떠나간 곳이 미국이었다. 최근 고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을 현 시점에 맞게 재조명하는 작업에 고심하고 있는 둘째아들 정건화 한신대 교수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며 미국행을 권했다. ●마지막 소원은 ‘고전 의학서적 대중화´ 그는 원래부터 공부에 욕심이 많았다. 인혁당 사건이 일어나기 전 세 아이를 키우며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고, 한학의 대가 임창순 선생에게 한문을 배웠으며,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문서 번역일을 하기도 했다.2000년 사우스 베일로 대학 한의학과에 최고령 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80년대생 학생들과 공부하며 생소한 약 이름과 혈자리를 익히느라 씨름했다. “한문만 잘 하면 한의학을 쉽게 할 줄 알았는데 오판이었어요. 들어 보지도 못한 23개 서양의학 과목을 공부하며 오기로 버텼어요. 그동안 폐렴만 세 번 걸렸습니다.” 고령의 나이지만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서관을 지켰고,2003년 졸업 후 두 차례의 낙방 끝에 올 10월 최종 합격했다. 그는 “남편 영혼이 훨훨 날아와 시험을 도와 주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박춘씨의 마지막 소망은 ‘고전 의학서적 대중화’다.“오랜 옛날부터 축적돼온 한의학 고전 문헌을 번역해 후배들이 좀더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그는 활짝 웃었다.70대 중반의 나이라곤 믿기지 않는 에너지를 뿜어내며, 그는 현재 박사 논문을 집필중이다. 글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이명박 시대-당선자 가족들] 당선자 친인척

    대선을 사흘 앞둔 16일 밤 11시쯤. 이명박 당선자가 황급하게 당사 기자실을 찾았다. 그리고는 ‘이명박 특검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설득해 이뤄진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그에게 ‘상득이 형’은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라는 게 주변 설명이다. 이 부의장은 17대 국회 초반부터 당내 인맥을 꾸준히 관리해 왔다. 영남권 의원을 자주 만나 구애했다. 오로지 동생을 위해서다. 이 당선자가 원외이면서도 당내 기반을 차근차근 넓혀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5선 관록으로 선거 기간에 불거진 복잡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선 것도 이 부의장이었다. 이 부의장 위로는 ‘도곡동땅’ 논란으로 유명해진 큰형 이상은씨가 있다. 그는 이 당선자의 처남 김재정씨와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다스를 공동 설립했다. 다스를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금전거래 덕에 이 당선자는 차명재산 의혹도 샀다. 검찰이 “도곡동땅 중 이상은씨 몫은 제3자 차명의혹이 있다.”고 했지만 실소유주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당선자 손위 누나와 남동생은 6·25전쟁 때 미군 폭격에 숨졌다. 부인 김윤옥 여사쪽으론 바로 아래 남동생 김재정씨가 유명세를 치렀다. 그가 이 당선자의 차명재산을 관리했고, 전국에 땅투기를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검찰 조사도 받았다. 이 때문에 김 여사는 요즘도 동생 얘기만 나오면 휠체어를 탄 채 검찰에 출두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친다고 한다. 혈육과 별도로 혼사로 정·재계의 유명 가문과 연이 닿아 있다. 막내딸을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친조카와 결혼시키면서 재벌가와 친사돈 인연을 맺었다. 여기에다 작은 형 이상득 부의장을 통해서는 LG가와도 통한다. 이 부의장의 맏딸 성은씨가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 아들인 구본천씨와 결혼하면서다. 구 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작은아버지이다. 특히 당선자의 셋째사위를 고리로 SK그룹은 물론,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과도 인척으로 묶일 수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아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셋째아들 재만씨와 동서지간이다. 또 조 회장의 동서인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를 사위로 맞았다. 여기에다 노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가 SK 최태원 회장과 부부의 연을 맺었기에 당선자도 몇 다리 건너면 자연스레 이들과 인척이 되는 셈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산불’ 공연예술무대 휩쓸다

    차범석(1924∼2006)의 희곡 ‘산불’이 처음 연극무대에 오른 것은 1962년이다. 이진순이 연출을 맡아 국립극단이 현재 문화예술공간으로 되살리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명동의 옛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 6·25전쟁의 막바지에 소백산맥 기슭의 산골마을에서 빨치산 남자와 젊은 과부 둘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짚어낸 ‘산불’은 이후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무대에 가장 자주 오르는 작품이 됐다. ‘산불’은 1967년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다.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영균과 주증녀·도금봉·황정순이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김수용 감독은 1978년 신성일과 선우용녀·전계현을 기용해 다시 ‘산불’을 찍었다. ‘산불’은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다. 정회갑이 작곡한 오페라 ‘산불’은 1998년 국립오페라단이 초연했다. 올해는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은 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산불’을 각색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가 신시뮤지컬컴퍼니에 의해 지난 7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랐다. 그런 ‘산불’이 이번에는 다시 창극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국립창극단이 21일부터 3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산불’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장르에 미쳤다는 점에서 국립창극단의 공연은 이 작품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데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산불’은 한국문화예술사에서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장르로 구현되는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선구적 작품이자, 대표적 작품으로 기록해도 좋을 것 같다. 창극 ‘산불’은 안숙선 명창이 작창하고, 국립창극단의 국가브랜드 ‘청’과 ‘장기전’의 창극본을 맡는 등 창작판소리 분야에서 특출난 공력을 쌓아가고 있는 박성환이 연출한다. 박성환은 “창극이 재래의 유희성과 오락성에 그치지 않고 시대적 담론과 보편적인 감성을 전통적 노래와 서사로 표현하고자 한다.”면서 “대중성 높은 ‘산불’을 우수한 창극 어법에 대입하여 ‘창극 산불’이 명실상부하게 공연장르에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빨치산 규복은 우지용과 객원으로 참여하는 남원시립국악단의 임현빈, 젊은 과부 점례는 김지숙과 박애리, 점례와 규복을 ‘공유’하는 사월은 허애선이 맡는다. 점례의 시어머니 양씨에는 김경숙과 김금미, 양씨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는 사월의 시어머니 최씨에는 유수정이 캐스팅됐다. 안무는 김호동, 지휘는 조용수.2만∼3만원. 평일은 오후 7시30분, 토요일은 오후 4시·7시30분, 일요일은 오후 4시, 월요일 공연은 없다.(02)2280-4115∼6.서동철 문화전문기자dcsuh@seoul.co.kr
  • [씨줄날줄] 통일신발/황성기 논설위원

    부산이 신발산업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계기는 6·25전쟁이었다. 포화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인 데다 항구가 있어 천연고무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전시 수요를 등에 업고 신발공장이 부산에 자리잡는다. 해방 전 경성고무라는 초기 신발 공장을 갖추었던 군산은 전쟁 이후 생산기지를 부산에 넘긴다.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부산의 신발산업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의 기술과 생산 설비들을 이전받으면서 수출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일본이 경험했던 경쟁력 하락에 따른 퇴출의 길을 한국도 80년대 들어 걷는다. 산업합리화 업종 지정을 전후로 부산의 대표적인 신발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생산 기지를 중국이나 동남아로 옮겼다.‘신발산업의 메카’라는 부산의 명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했다. 회생의 돌파구가 개성공단이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 부산의 삼덕통상이 승부수를 던진다. 개성에서 신발을 생산한 것은 2005년 5월. 대부분은 유명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OEM)으로 완제품이나 반제품으로 생산되는 것들이다. 딱히 ‘통일신발’이란 브랜드가 있는 게 아니어서 국내에서 개성산 완제품 통일신발을 사 신으려면 이들 OEM 제품을 골라야 한다. 삼덕통상 자체 브랜드로 나가는 신발은 개성산 부품 일부로 제조한 것이다. 수출용 통일신발은 관세문제 때문에 개성산 소재나 반제품을 부산에서 가공해 완제품으로 만든 뒤 해외로 나간다. 경의선 화물열차가 그제부터 상시로 남북을 오가고 있다. 통일신발 완제품과 반제품이 경기도 의왕역과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컨테이너 화물차가 통일신발을 날랐다. 철도라면 운송비를 20∼3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원가가 줄어 통일신발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냄비에 이어 시계, 신발, 의류 등 개성산 물건이 우리 생활에 자리잡고 있다. 남북경협의 열매가 풍성해지는 만큼 한반도의 평화공존도 단단해질 것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남북철도 56년만에 정기운행

    남북철도 56년만에 정기운행

    경의선 문산∼봉동(개성공단 입구)을 오가는 화물열차가 11일 운행을 개시, 남북철도 정기운행시대를 활짝 연다.1951년 6·25전쟁으로 경의선 철도운행이 중단된 지 56년 만이며,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 중 최초로 실행되는 사업이다. ●1일 1회, 운행시간 편도 20분 정기 화물열차는 토·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회 왕복한다. 남북의 물량집하와 열차 조성(컨테이너 구성)은 각각 오봉역과 판문역에서 이뤄지며 운행구간은 도라산∼판문역간 7.3㎞. 매일 오전 9시 도라산역을 출발,9시20분 판문역에 도착하고 북측에서는 오후 2시 판문역을 떠나 2시20분 도라산역에 도달한다.11일 오전 7시 문산역에서 첫 운행하는 열차는 8시20분쯤 군사분계선(MDL)을 관통하게 된다. 열차는 기관차 1량과 컨테이너 화차 10량, 차장차(차장 등 탑승) 등 12량으로 구성된다. 도라산∼판문역간 운행속도는 군사합의에 따라 20∼60㎞로 제한됐다. ●물동량 확보가 관건 화물 수송은 현대아산의 개성공단 건설용 원자재와 부자재, 공단 입주업체 생산품 등이 대상이다. 개통 초기 물동량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화물열차 운행시 물류비가 대폭 절감돼 개성공단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대북지원물자 및 남북경협물자의 수송이 철도를 통한다면 운행 횟수도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개성공단 입주업체가 육로 대신 철도를 이용할 경우 수도권 목적지까지 수송비용을 33만원 정도 절감할 수 있다.”면서 “문산까지 운행하는 열차를 판문역까지 연장하는 방식이어서 비용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태안 기름유출 피해 확산] “평생 굴 까며 살았는데…”

    [태안 기름유출 피해 확산] “평생 굴 까며 살았는데…”

    “이젠 꼼짝없이 굶게 생겼어.” 굴까기 품팔이로 겨울 한철을 나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김순애(75) 할머니. 김 할머니는 “이런 난리가 어디가 있겄어.”라는 말을 연방 토해 냈다. ●하루종일 굴 까야 2만~3만원 기름 범벅이 된 검은 바닷가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김 할머니는 겨울 들어 남의 굴양식장에서 하루 종일 굴을 까주고 2만∼3만원을 벌었다. 굴 1㎏을 까주면 8000원 가운데 3분의 1이 할머니 몫으로 10㎏은 고되게 까야 버는 돈이다. 그래도 그것은 김 할머니에게 수입의 전부다. “한번에 기름 세 도라무(드럼)를 넣는데 50만원이 금세 깨진다.”고 말했다. 두번은 넣어야 긴 겨울을 난다고 했다. 전화료와 전기세, 보험료로 한달에 10만원이 들어가고 쌀과 가스 등 여기저기 들어가는 돈이 상당하다. 김 할머니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당장 저러니 막막하게 생겼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막노동도 못한다. 관절염을 앓은 지 10년째이다. 김 할머니는 “갯바탕(갯벌)에 가 자연산 굴을 까면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다리가 아파 갖다 놓은 굴만 깔 줄 알지. 그래서 남의 굴만 까줘.”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25년 전 할아버지를 병으로 먼저 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3남3녀의 자식을 두었지만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모두 출가했다. “할아버지가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 한번 못 가 봤다.”며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기름값 없어 냉골에서 잘판 김 할머니는 황해도 옹진이 고향으로 6·25전쟁때 남편과 함께 피란을 와 이곳에 정착했다. 아무 것도 못 가져온 부부는 처음 산속에 집을 짓고 남의 농사를 지며 살았다. 산속은 아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터도 남의 땅이다. “아들 셋은 경기가 그래서 모두 실직하고 딸들도 별스럽지가 않아.” 김 할머니는 자식들이 자기 먹고 살기도 바빠 보태 달라고 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더이상 자식 얘기를 하지 않았다. 굴은 이웃들과 어울리는 재미도 주었다. 이웃들은 가끔 잡은 생선을 나눠 줬고 김 할머니는 이걸로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미리 따다 놓은 굴을 다 까면 곧 김 할머니는 유일한 생계수단을 잃는다. 김 할머니는 “올 겨울 기름값으로 100만원이 들어갈 텐데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며 “보일러를 끄고 사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한숨을 쉬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황석영·佛 르 클레지오 대담 “전쟁 경험 바탕 작품세계 서로 공감”

    황석영·佛 르 클레지오 대담 “전쟁 경험 바탕 작품세계 서로 공감”

    “르 클레지오씨를 몇번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성격이나 살아온 곳은 너무 이질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두사람은 토박이의 반대 개념에 해당하는 같은 외방인인 만큼 진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황석영) “황석영씨의 소설은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어떻게 소설을 써왔는지, 왜 이런 문제에 집착하게 됐는지…. 아마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르 클레지오) ●등단도 1960년대로 비슷 한국문학과 프랑스문학의 대표 작가가 마주앉았다.3일 이화여대 국제교육원에서 열린 ‘황석영(64)과 장 마리 구스타브 르 클레지오(67·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초빙교수)와의 공개 대담’행사가 그것이다. 두 작가는 서로의 작품세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한국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황석영은 1962년 사상계에 ‘입석부근’이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장길산’‘무기의 그늘’ 등을 발표, 주목받았다. 아프리카에서 근무한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르 클레지오는 1963년 첫소설 ‘조서(調書)’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단했다.‘열병’‘홍수’‘물질적 황홀’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아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독일전쟁 겪은 나와 비슷한 경험” 이들 두 작가는 아무래도 어릴 때의 ‘전쟁’이라는 유사한 경험이 인연의 끈으로 작용하면서 서로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한 사이로 발전한 것 같다. 황석영은 “르 클레지오씨를 등단도 1960년대로 비슷하고 나보다 세살 위라 형이라고 부른다.”며 “특히 1960∼70년대 르 클레지오의 작품세계의 사변적 변화에 공감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난민의식 공유 이에 르 클레지오는 “황석영씨가 어릴때 6·25전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으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것이, 독일과의 전쟁을 겪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갖게 된 것이 서로 친밀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두 작가는 대담 도중 대표작인 ‘바리데기’와 ‘아프리카인’을 각자의 모국어로 낭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황석영은 르 클레지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낸 ‘아프리카인’에 대해 “아버지의 초상이 자세히 나오는데,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며 “이는 아무래도 르 클레지오씨의 아버지가 아프리카인도, 유럽인도 아니듯이 나 또한 중국 창춘(長春)에서 태어나 평양을 거쳐 서울 영등포에 정착하는 등 난민(難民)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길섶에서] 다이어리/함혜리 논설위원

    내년도 서울신문 다이어리를 받았다. 문득 10여년 전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고집불통인지라 식구들에게 그다지 인기는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 주오대에 유학을 하신 인텔리로 6·25 전후로 원주·횡성·영월 군수를 지내셨다. 대쪽 같은 성질 탓에 일찍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칩거하기엔 아까운 분이었다. 한문 실력과 한자 붓글씨 솜씨는 탁월했다. 특히 당신 자신에게 매우 철저했다. 수십년을 하루에 두 끼만 드시고, 냉수마찰과 건포 마사지를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영어로 일기를 쓰셨다. 대학노트를 사용하던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부터인가 서울신문 다이어리의 애용자가 됐다. 연말에 다이어리가 나오면 즉시 할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종이질이 좋은 데다 칸이 넓어 일기쓰기에 안성맞춤”이라며 고마워하셨다. 연말연초면 여기저기서 다이어리를 받는다. 어떤 것은 사용하지도 않은 채 책상 서랍에서 일년을 보낸다. 영어 일기는 아니더라도 내년에는 나도 다이어리에 일기를 적어 보련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부고] ‘수난이대’ 소설가 하근찬씨 별세

    [부고] ‘수난이대’ 소설가 하근찬씨 별세

    ‘수난이대’를 쓴 소설가 하근찬씨가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76세.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수난이대’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창작집 ‘낙뢰’(1957)를 비롯해 ‘나룻배 이야기’(1959) ‘왕릉과 주둔군’(1963) ‘일본도’(1977) ‘흰종이 수염’(1977), 장편 ‘야호’(1971) ‘월례소전’(1978) ‘검은 자화상’(1995) 등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농촌을 소재로 형성됐다. 그 농촌이 폐쇄된 자연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연관된 현실인 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특히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소설에 허위의식과 관념적 유희가 유행하던 1950년대 후반, 무지하고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고나와 문학의 본령을 새삼 일깨웠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수난이대’.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겪는 두 세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주목받았다. 한국문학상(1970)과 조연현문학상(1983), 요산문학상(1984), 유주현문학상(1989), 보관문화훈장(1998)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종순씨와 아들 승일·승윤씨, 딸 승희씨 등이 있다. 빈소는 경기도 안양시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8일 오후 2시, 장지는 충북 음성군 진달래공원묘지.(031)384-1248.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종로 밤의 여왕「민마담」이 잡혔는데…

    종로 밤의 여왕「민마담」이 잡혔는데…

    종로의「민(閔)마담」을 모르면 서울에선「플레이·보이」자격이 없다는 얘기가 있다. 종로3가의 사창가 초창기부터 포주「콜걸」여두목으로 20여년「윤락행위」의 알선에 진력(?)해온「베일」속의 여성. 지난 19일 아침, 드디어 종로서 형사들에 쫓기어 하필이면 냄새퀴퀴한 변소구멍을 통해 도망치려다 본모습을 드러냈는데-. 종로선「박쥐왕」으로 통해「춘희(椿姬)」처럼 기구한길 걷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시민으로부터 모종의 정보가 들어온건 지난 18일 저녁. 내용인즉 서울시내 시민회관 근처 당주(唐珠)동 45의 9호 가옥에 가면 윤락행위하는「콜걸」과 그 왕초「민마담」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민마담」- 전화를 받고 있던 당직자의 귀가 번쩍 띄었다. 「민마담」이라면 종로경찰서 민완형사들이 어이없게도 망신당한 일이있는 여성이었다. 지난 69년 7월. 종로경찰서는 희대(?)의 포주『민마담을 잡아라』하는 특별명령으로 부산을 떨었다. 서린(瑞麟)동 모처에 은닉하며「콜걸」조직을 이용, 떼돈을 벌고 있다는「베일」속의 여성. 종로서는 1가파출소에 10명의 기동경찰을 집결시켜「민마담」이 있다는 집을 덮쳤다. 그러나 걸린 것은 10명의「콜걸」뿐.「민마담」은 경찰을 조롱하며 날렵하게 몸을 날려 타는 일에 있어서는 선수임을 과시, 지붕을 타고 이웃집으로 건너 뛰어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다. 결국 잡아들인 창녀는 1주 구류처분이나 5천원 벌금부과로 그치고 말아「콜걸조직」은 끝내 비밀속에 파묻혀 버렸다. 「민마담」의 본명은 최영자(39).「박쥐왕」이라는 별명으로도 통했다. 그녀는「박쥐왕」이라는 별명에 부끄럽지 않을만큼 종로일대에서 뜨르르 명성을 날렸다. 『사내들은 모두 내 사위들이야』 이렇게 호언장담하며 밤의 홍등가(紅燈街)를 주름잡았던 미모의 여인. 법률적으로는 아직까지도「미혼」으로 돼있고, 신장 160cm의 날씬한 몸매와 만만찮은 미모를 자랑한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다고 고백하는 민마담은 6·25동란 당시 다니던 모대학을 중퇴하고 생활문제 해결을 위해 본의아닌「콜걸」생활로 들어갔다. 가족은 사변통에 모두 흩어져 풍지박산. 그녀는 혈혈단신으로 서울 종로바닥 일대에서 억센 사내들 틈에 끼여「라트라비아타」의 주인공「춘희」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갔다. 『내주제에 무슨 사랑 비슷한 것도 있을 수 있었나요?』 허탈스럽게 뇌까리는「민마담」은 그러나 두번쯤「진짜 사랑」에 빠져 살림도 차린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창가 초창기 부터 활약 멋을 아는 순정파 이기도 「민마담」은 멋을 아는 여자였다고 그를 아는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의. 비록 몸은 사창가에 담았지만「돈벌레」는 아니었다는 것. 정을 주고 싶은 남자라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고 전한다. 어쨌든 종로3가에 사창가가 번창하기 이전부터 그녀는 창녀, 포주로서 이름을 드날렸고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는 것. 그러나 경찰조서에서 그녀는 당주동집 전셋돈 2백만원이 전재산이라고 밝히고 그밖의 재산은 일체 함구. 68년 9월 종3철폐령이 발효된 이후 그녀는 서린동으로 옮겨 기왕 거느리고 있던「콜걸」중에서 잔류 희망자만 데리고 영업을 계속했다. 인원이 모자라면「바」「나이트·클럽」등에 들어가「호스테스」로 일하고 있는 옛부하들을 동원, 고객들에게 배급해 주었다고 밝혔다. 69년7월, 경찰이 냄새를 맡고 덮치자 지붕을 타고 도망쳐 지금의 당주동으로 옮겨, 궤멸된「콜걸」조직을 재편성하고 영업을 계속했다. 여기선 신촌·용산·명동·무교동·청진동등 각지여관에 줄을 대어「콜걸」을 공급 했다. 그만큼 영업지역이 넓어진 것. 따라서 경찰은「민마담」이 거느리고 있는 조직이 서울에선 가장 큰「콜걸」조직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18일 저녁의 정보로「민마담」의 소재를 확인한 경찰은 용의주도하게 작전계획을 세웠다. 69연도처럼 도망을 치지못하게 하기 위해선 밤보다는 낮을, 낮가운데서도 아침을 택했다. 왜냐하면「콜걸」들이 각 여관으로 출장나가 장사를 하고 모여서 수금·배당을 하는 것이 아침시간인 때문.「콜걸」의 체포는 물론 수금하는 현장까지 덮칠 수 있어 공소유지를 위한 증거보완도 충분할 수가 있었다. 19일 아침 8시께. 형사들은 당주동 현장으로 갔다. 그러나 45번지의 9호라는 가옥은 근처에 눈씻고 보아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 골목 일대를 이잡듯이 뒤진결과 막다른 곳에 있는 45의9호 가옥을 찾아냈다. 1조는 행길에서 감시하고 다른 1조는 대문과 변소를 막는한편 공격조는 대문을 두드렸다. 한참후 잘잘 신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구세요?』하고 물어왔다. 『네. 동사무소에서 호구조사 나왔읍니다』 상대방은 더 물어 보지도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웬만한 콜걸은 환히 알아 반반한 애 몽땅 손아귀에 「민마담」이 누구냐고 묻자 갑자기 방안에서 후다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방안에 있던 여자들이 문을 열어 제치고 토끼처럼 뛰기 시작한것. 당황한 형사들은 우선 잡기 쉬운 여자들부터 잡았다. 『민마담이 누구냐?』고 묻자 잡힌 6명의「콜걸」들은「민마담」이 벌써 도망쳤다고 대답했다. 낭패한 공격조가 뒤를 돌아다 보는 순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1조가 여자 1명의 덜미를 잡고 들어왔다. 『웬 여자가 변소 구멍으로 대가릴 디밀고 나오잖아. 나올때까지 기다렸지. 어깨가 걸려 잘 나오지 않길래 둘이서 도와드렸지 뭐야』 지붕을 타고 줄행랑 쳤고 이번에는 변소 밑 구멍으로 빠져 줄행랑 치려다가 운이 다했던 모양인지 결국 그녀는 20여년만에 제모습을 경찰들 앞에 내보인 것이다. 바로「민마담」-. 「민마담」의 영업방법은 이러했다.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서「콜걸」을 공급받기도 했고 연줄을 통해 지면이 있는애들을 조직으로 삼았다. 워낙 20년동안 사창가에서「터줏대감」노릇을 해온 그녀인지라 웬만한 창녀는 모두 알고 지내는 처지. 「종3」이 철폐된 이후부터는 당주동의 집처럼 밖에서 찾기도 어렵고, 은밀한 집을 전세내어 전화를 가설한다. 이번 사용했던 전화는 73국의 7598번. 일대 각 여관「보이」들과의 연락은 모두 전화로만 통했다. 경찰은 이번 제보가 익명의 시민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흥미있는 추리를 했다. 『대개 이런 경우 동업자들이 고자질하기 마련입니다. 어쩌다가 경찰에 들통이난 포주가 홧김에「너도 맛좀 봐라」하면서 동업자를 일러 바치거든요. 그러니까 사창조직은 영원히 비밀에 묻혀질 수가 없어요. 어는 땐가는 들통이 나는데 시기가 문제일 따름이죠. 참 의리없는 세계라 할 수 있죠』 [선데이서울 71년 3월 28일호 제4권 12호 통권 제 129호]
  • 국립고궁박물관 전관 28일 개관

    국립고궁박물관 전관 28일 개관

    국립고궁박물관이 3개 층 12개 전시실로 전시공간을 늘려 28일 전관 개관한다. 앞서 고궁박물관은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8월15일 경복궁 남서쪽의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서 1개 층 5개 전시실로 문을 열었다. 고궁박물관은 전관 개관으로 기존의 ▲제왕기록실 ▲국가의례실 ▲궁궐건축실 ▲과학문화실 ▲왕실생활실 말고도 ▲탄생교육실 ▲왕실문예실 ▲대한제국실 ▲어차(御車) ▲궁중회화실 ▲궁중음악실 ▲어가의장(御駕儀仗)실 ▲자격루실이 새롭게 선보이게 된다. 상설 전시품도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과 보물 7건을 포함해 기존의 500여점에서 900여점으로 크게 늘어난다. 전관 개관으로 조선 왕조의 역사와 조선 왕실의 예술과 문화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조선왕실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보물 23건 등 모두 31건 71점의 초상화와 관련 유물이 출품되는 ‘화폭에 담긴 영혼-초상’특별전도 갖는다. 영조의 세자 시절을 그린 보물 제1491호 연잉군 초상은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불에 탄 자국이 선명하다. 한편 고궁박물관은 전관 개관을 기념해 12월 말까지 무료로 개방하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무료입장권을 받으면 오전 9시와 11시, 오후 1시와 3시에 각각 1500명씩 4차례에 걸쳐 모두 6000명 한도에서 관람할 수 있다.(02)3701-7631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고창 월림사건’ 진실규명 결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6·25전쟁 시기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인 ‘고창 월림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20일 제59차 전원위원회)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고창 월림사건’은 1951년 5월10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전북경찰국 제18전투경찰대대 제3중대가 죽림마을 주민 89명을 집단 총살한 사건이자, 김씨와 천씨 양 성씨 간 갈등과 이념 대립이 빚은 참극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결혼생활 13년동안 가출 27번 한 아내

    결혼생활 13년동안 가출 27번 한 아내

    한해 두차례씩 26번 집을 나간 가출「챔피언」의 아내를 13년동안 남의 힘도 빌지않고 매번 찾아낸 남편이 있다. 여기 또다시 가출광 아내는 27번째 가출을 단행(?), 남편을 애태우고 있는데 결혼 13년에 숨바꼭질 27번으로 세월을 보낸 어느 중년부부의 얘기. 뛰어난 미모 명석한 두뇌…한해 두번씩 정기적 증발(蒸發) 화제의 주인공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G여관 주인 장혜곤(張惠坤)씨(49)와 그의 아내 박유하(朴榴夏)여인(36). 이들 부부가 결혼한 것은 지금부터 13년전. 13년동안 한해에 꼭 두차례씩 그러니까 26번이나 집을 나간 가출광 아내를 책하기보다 주위의 주소까지 받아가며 가출광아내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집념으로 남의 힘도 빌지 않고 전국 방방 곡곡을 뒤져가며 26번을 모두 찾아낸 탐색「챔피언」남편 장혜곤씨. 이 탐색「챔피언」인 장씨도 지난 3월 15일 27번째로 집을 나간 아내의 가출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 그냥 쓰러져 눕고 말았다. 『아무래도 병적인 것만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좋아요. 마음만 잡고 돌아와 준다면 기꺼이 맞아들일 생각입니다』 아내를 찾기에 지쳐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이마의 주름살이 많은 남편 장씨의 하소연이다. 매사에 집념이 아주 강한 장씨는 고향이 평북 의주(義州). 해방과 더불어 홀로 남하, 자수성가 해야겠다는 굳은 신념아래 맨 주먹으로 일을 했다. 평소 익혀온 토목측량기술과 양조기술로 여러업체를 전전, 꽤 많은 돈을 모았다. 모은 돈으로는 관광객이 들끊는 백제의 고도 부여에 제일 규모가 큰 숙박시설을 갖추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생활을 누려오던 장씨가 박여인과 결혼한 것은 지금부터 13년전인 58년 이른봄이다. 이때 장씨의 나이 36세, 박여인은 23세였다. 이 결혼은 장씨에겐 세번째 결혼. 첫부인은 43년 이북에서 사별했고 6·25동란 이듬해 김(金)모여인과 재혼했다. 김여인의 몸에선 3남매를 얻었다. 세번째 아내인 박여인은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부산H여고를 졸업, 23세 때 부여S다방「레지」로 직업전선에 나섰던 여인. 예쁜 얼굴과 명석한 두뇌, 수완이 좋아 다방을 찾는 손님들은 모두가 박여인을 보고 호감을 가졌다. 다방에서 일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여성이라고 손님들의 칭찬을 받았다. 장씨도 이런 손님중의 한사람. 「저런 아가씨를 여관종업원으로 있게 하면 수완이 좋아 영업이 잘 될 것 아니냐?」고 마음먹은 장씨는 박여인을 설득, 여관종업원으로 데려왔다. 여기서부터 단란했던 장씨의 가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주위의 비웃음도 “나몰라” 나가면 데려오기 26차례 부인 김여인과의 불화가 잦고 급기야는 종업원인 박여인과의 관계에 까지 색안경을 쓰고 불만을 품은 김여인은 자진해서 이혼해 버렸다. 김여인과의 이혼으로 안방주인이 된 박여인은 결혼해서 5개월이 채 못된 53년전 7월 여관에서 모은 돈을 가지고 첫번째로 자취를 감췄다. 남편 장씨는 경찰에 가출신고를 내고 신문광고,「라디오」등을 통해 박여인을 찾아나섰다. 장씨는 손수 집을 나서 박여인의 친척 혹은 각처의 직업소개소를 찾아 수소문도 했다. 이때 논산 S소개소에서 박여인이 전주(全州)시내 모 다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말을 들은 남편 장씨는 전주시내 다방이란 곳을 전부 뒤져서 H다방에서 비로소 박여인을 찾았다. 꾸중에 앞서『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다짐한 남편 장씨는 그 길로 박여인을 집에 데려왔다.남편을 따라 집에 돌아온 박여인은 다시는 집을 나가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맹세까지했다. 이렇게해서 이들 부부는 즐거운 나날을 보내 넉달이 지났다. 59년 3월 이른 봄. 또다시 박여인은 첫번째 집을 나갈 때처럼 돈을 한뭉치 안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장씨는 주위사람들로부터 비웃음도 많이 샀다. 『세상에 여자가 그 여자 하나냐? 집을 나간 여편네를 무엇때문에 찾으려 하느냐?』등등 귀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남편의 속마음을 모르는듯 박여인은 한해 두번씩 꼬박꼬박 집을 나갔고 남편 장씨 역시 꼬박꼬박 같은 방법으로 다방가에서 찾아내곤 했다. 아기를 낳으면 마음을 잡을까 하고 10번째로 찾았을 땐 유달리 박여인의 거동을 살펴 64년봄 딸(지금 8살)을 낳았다. 딸아이가 돌이 가까와오자 박여인은 또 자취를 감춰버렸다. 숨바꼭질「술레비용(費用)」자그마치 2천(千)만원 남편 장씨는 이때가 박여인과의 결혼생활중 가장 오래 있은 때였다고 말한다. 꼭 20개월을 같이 살았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이 어린아이들의 술레잡기처럼 변해 이들 부부는 몸을 감추고 다시찾고 또 감추고 또 다시 찾았다. 『지금까지 경찰에 가출신고를 낸 것은 아마 국내에서 최고기록일 겁니다. 그사람 때문에 없어진 돈을 따지면 2천만원이 넘습니다. 보통사람같으면 벌써 알거지가 되었지요. 남들은 그사람이 성적인 매력이 있어 찾는다고들 합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버려진 사람을 새로운 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 정신병원에도 보내 요양도 시켜봤읍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읍니다』 26번째 집을 나간 작년 2월에는 서울에서 김모씨(40)와 간통한 사실까지 드러나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까지 되었었다. 물론 남편 장씨의 마지막 수단인 고발로 형무소신세까지 지게 된 것. 박여인의 수감생활을 보다 못한 장씨는 그길로 상경, 고소를 취하, 박여인을 출감시켰다. 작년2월 박여인이 출감하던날 남편 장씨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용돈까지 주어『부디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아다오』석별의 행복을 나누고 아주 헤어졌다. 그뒤 몇 달이 지난 작년 여름. 난데없이 박여인으로부터 엽서가 날아왔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참회하기위해 대구 C교에 입교 강습을 받고 있으니 면회를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고 자주 면회를 갔읍니다. 이제 정말 그 사람은 새 사람이 된 것으로 알았읍니다. 딸 아이도 같이 엄마인 박여인을 자주 만났읍니다. 6개월의 강습소 생활을 끝내고 주위의 이목도 있고 해서 우선 가까운 인근 논산 H동에 전셋방을 얻어 지금까지 생활을 같이 했읍니다』 오늘이나 내일 박여인을 논산집에 데려가려고 마음먹었던 장씨의 뜻은 지난 3월 15일 27번재 가출로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 장씨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한 박여인은 과연 가출증 환자일까? [선데이서울 71년 3월 28일호 제4권 12호 통권 제 129호]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7) 전남 구례군 토지면 농평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7) 전남 구례군 토지면 농평마을

    지리산 주능선 서쪽에 치우친 삼도봉(1499m)은 전남·전북·경남이 만난 곳이라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삼도봉 북쪽이 전북 남원이고, 서남쪽은 전남 구례, 동남쪽은 각각 경남 하동이 된다. 삼도봉 남쪽, 그러니까 전남과 경남을 가르는 도경계 능선을 따르면 불무장등(1446m)∼황장산(942.1m)을 거쳐 19번 국도로 떨어지는 색다른 산행이 가능하다. 현재는 반달가슴곰 보호 등의 이유로 비법정탐방로가 되었지만, 반달곰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몇해 전만 해도 삼도봉에서 19번 국도를 오가는 종주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능선의 반 토막 산행만 원한다면 꼭 농평마을엘 들러야 한다. 농평∼불무장등∼삼도봉이 약 4시간, 농평∼황장산∼화개가 5시간 30분쯤 걸린다. 농평은 도로가 갈 수 있는 가장 끝, 삼도봉에서 뻗은 능선과 고작 10여 분 떨어진 산중의 산마을이다. 풍수지리설 ‘노호농골(老號弄骨)의 대지 근처에 평평한 곳’이라 해서 농평이라 부른다.1950년대엔 270명쯤 살았지만 지리산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6·25전쟁 때 불에 탔고, 무장공비 침입에 대비한 독가촌 철거 때도 동네를 비운 적이 있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650m에서 803m까지 자료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데, 만약 800m가 넘는다면 ‘하늘아래 첫동네’는 바로 이곳 차지가 되는 셈이다. 언젠가 가을, 농평마을 이강율(50)씨 댁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었다. 이미 보름이 지났는데도 지리산 능선에 걸린 둥그런 달은 푸른빛이었다. 자정을 넘긴 어스름 시골길에 까치발을 서면 손끝에 걸릴 듯한 별 세 개, 산너머까지 길게 이어진 구름, 바스락대는 풀벌레 소리, 등 뒤로 파도처럼 걸린 남도의 산자락…. 오래 된 산악인들에게 농평의 민박집이라곤 이 댁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강율씨 댁에 다시 들른 건 꼭 7년 만인 모양이다. 이씨는 주로 구례나 하동으로 일을 다니며 생계를 잇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땐 본가인 농평을 비롯, 구례로 순천으로, 소위 세 집 살림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1남 2녀 모두 올곧게 자라 다행이다. “50년을 살아서인지 밖에선 못 살 것 같아요. 읍에만 나가도 답답합니다.” 농평 태생 이씨는 그렇다 쳐도 멀리 경상도 진주에서 시집 온 아내 이순자(49)씨에겐 지금도 아찔한 기억이 있다. 둘째가 급체를 했는데 추석인데다 (그때만 해도 길이 좋지 않은) 산골이어서 택시도 오지 못했다. 아들의 열 손가락을 따고 1시간 남짓 거리를 무조건 내달렸다. 실제 구례군 자료에 따르면 ‘매우 높은 산간오지로 전 농가가 영세성을 면치 못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농평은 도시다. 이젠 집집마다 차도 있고, 도로가 뚫려 구례를 나가는 일이 예전만큼 어렵지 않기 때문. 물론 지금도 대중교통은 전혀 없다. 겨울 폭설엔 간혹 길이 끊기기도 하지만 주민들 스스로 제설작업에 열심인데다 남향을 안고 있어 며칠씩 고립되는 일은 드물다. “언제부터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3대는 살았지요. 선산도 이 곳에 있고요.” 6·25전쟁 등을 거치며 수난을 겪었던 터라 사람이 수시로 들고 나고 했을 것이다. 이제는 원주민 여섯 집, 외지에서 들어온 집이 3가구다. 외지인의 출현이 익숙한 건 아니지만 땅이란 것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몇 번씩 주인을 달리하며 새 집들을 그 위에 짓는다. 변화와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자연과 사람, 원주민과 외지인의 훈훈한 조화가 마을 중심에 꽃을 피운다. # 교통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도 하동을 거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부산쪽에서 올 경우 하동군 화개면까지 간 다음 화개에서 택시로 농평을 가는 것이 좋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글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30·끝)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30·끝)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산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다. 일찍이 퇴계선생이 노래한 36개 봉우리 외에 각종 기암괴석과 수십개에 이르는 동굴로도 유명한 산.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청량산이다.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는 청량산이 보이는 데서 오른쪽으로 낙동강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경계를 이룬 곳이다. 산 뒤 북쪽에 마을이 있어 북곡리라 불렀다. 서너 아름의 한그루 고목이 북곡리의 오랜 역사를 넌지시 알려준다. 마을입구에서 바라본 청량산은 황홀하다. 해마다 수많은 산꾼들이 다투어 찾아간다는 청량산. 그 빼어난 산세가 손에 닿을 듯 눈앞에 펼쳐진다. “금강산의 일부를 떼어다 청량산 한 줄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전설에 걸맞을 만큼 조각한 듯한 수려한 산세에 흠뻑 취해 정신을 놓고 있을 즈음…. 마치 병풍속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오듯 단풍계곡사이에서 지게를 짊어진 노부부가 나타났다. 땔감을 진 부부는 70줄의 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젊은이 못지않은 혈색이다. 마을까지 길안내를 자청하는 권혁재(70)씨를 따라 낙엽의 융단을 밟으며 20여분을 걸었다. 큰 재를 넘어가는 골이라 하여 ‘한티마을’로도 불리는 곳.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항상 촛불과 호롱불이 준비되어 있는 아담한 집 한 채. 내부는 주인을 닮아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멧돼지 가족들이 한꺼번에 무리지어 앞마당에 왔다 갈 때가 종종 있심다.” 새벽에 소피를 보러 나왔다가 감나무밑에서 조그만 플래시 불빛 같은 멧돼지 눈과 두눈이 마주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손전등으로 두어번 껐다 켰다 했더이만 고개를 돌리고 슬며시 도망가삐대.” 20여년전까지만 해도 7가구가 모여 살았던 이곳엔 현재 집터와 논밭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고 권씨 부부가 사는 집이 유일하다. 집 앞에는 한티약수라 부르는 샘물이 있다. “옛날에 문둥병이가 이 물을 먹고 나았다지요.” 옻독이나 어지간한 피부병, 웬만한 속앓이에 특효란다.‘만병통치약’이다.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권씨도 한때는 도회지 생활을 했단다. 건강이 안 좋아져서 다시 고향으로 왔다.“약수만 마시고서 속병을 고쳤심다.” 모시고 사는 노모(97)가 아직도 설거지를 손수 할 정도로 근력이 좋은 것은 모두 ‘물’ 때문이라며 약수자랑이 끝이 없다. 물 한잔을 얻어 마신 후 1년의 반을 얼어있다는 ‘얼음달폭포’로 향했다. 산이 깊어서 응달이 많은 탓이다. 이곳을 가자면 본 마을인 ‘윗뒤실’을 거쳐야 한다. 마을에 북두칠성의 형상을 한 ‘칠성바위’와 ‘말 바위’가 있어 ‘두실’이라 하다가 훗날 ‘뒤실’로 바뀌었단다. 마을길 외딴 농가 뒤로 수렛길이 이어진다.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산길에는 계절에 걸맞지 않은 야생화가 빼곡하게 피어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뒤돌아보는 남쪽에는 청량산의 멋진 산세가 늦가을 빛에 눈부시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뭉게뭉게 일어난다. 윗뒤실 마을에서 12대째 살고 있는 박주원(68)씨.“밀양박씨 청재공(淸齊公)파 후손이 400여년전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하자 의주에서 자결을 했지요.” 그 후손들이 몸을 피해 이곳 봉화땅으로 와서 첫 입주자가 되었단다. “겨울에는 눈길에 막혀 한달 내내 옴싹을 몬해요.” 산골마을의 겨우살이 준비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쁜 듯했다. 고랭지의 청정지역. 특히 밤낮의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과수에는 천혜의 조건이다.6·25전쟁이 나기 전만 해도 대추농사가 잘돼서 부자동네 소릴 들으며 80가구나 살았던 곳이다. “청량산전투에서 국군과 공비들이 사흘 낮밤으로 전투를 벌여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아잉교.” 그후 하나둘 고향을 떠나서 현재는 20명의 주민만이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진태(81)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뇨에 좋다는 야콘 농사를 하고 있다.“이제는 마… 나이를 묵어서 팔러가는기 더 힘든기라.” 그래도 이방인에게 대접할 것이 없다며 미안해한다.“우리 야콘 좀 잡숴봐요.” 부인인 김점례(78)할머니가 건네주는 야콘조각을 한입 베어 물었다. 상큼한 ‘봉화인심’이 묻어 나오는 듯하다. 자연의 넉넉한 인심이다. 마음이 절로 구부러져서 무욕(無慾)이 되는 곳. 그리움, 정다움, 순박함을 간직한 산골마을. 보듬고 껴안고 어루만지며 지켜야 할 우리네 ‘삶의 원형´을 만날 수가 있었다. 사진·글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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