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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대 ‘나라사랑 감사행사’

    한성대(총장 정주택)는 최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교내 낙산정원에서 ‘나라사랑 감사 행사’를 가졌다고 3일 밝혔다. 이 행사는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해 한성학원을 설립한 고(故) 우촌 김의형 박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 보훈장학대상 학생 및 학부모 100여명과 북부보훈지청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유관 단체장, 국가보훈처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한편 대학은 지난 1998년부터 매년 10여명의 보훈대상자 자녀를 선발해 오고 있다.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궁중무악 재현 현장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궁중무악 재현 현장

    145년 전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가 4차분까지 모두 돌아온 뒤 500년 조선왕조 역사와 예술의 중심축인 궁중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는 7월 이들 도서의 일반 공개에 앞서 각종 공연과 기념행사가 진행 되고 있는 가운데 궁중문화의 핵심으로 기품이 넘치는 궁중무악(宮中舞樂)을 재현하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초여름의 성급한 무더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지난달 29일.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서는 ‘세종조 회례연’(世宗朝 會禮宴)을 재현하기 위한 국립국악원 단원들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통 궁중의상을 차려 입은 연주단원과 무용단원들의 이마에는 비지땀이 흘렀다. ‘회례연’은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 임금과 문무백관이 모여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벌이는 잔치를 일컫는다. ●경복궁 ‘세종조 회례연’… 뙤약볕 1시간 공연 관객 기립박수 휴일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들은 15세기의 품격 높은 궁중무악을 감상하기 위해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근정전 주변에 모여들었다. 뙤약볕 아래서 1시간 넘게 진행된 공연이었지만 도중에 자리를 뜨는 사람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관객들은 수준 높은 공연에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임금이 되는 상상을 하며 공연을 봤다.”는 김정길(53)씨는 “고궁에서 옛 왕조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공연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례·연향·조회·군례악 등 다양한 궁중 행사에 사용되었던 궁중음악은 오늘날 정악(正樂)의 한 장르로 분류된다. 아정하고 고상하며 속되지 않고 바른 음악이란 뜻의 ‘정악’. 국립국악원 이숙희 학예연구관은 “예로부터 유교 문화권에서 악(樂)은 인간의 심성을 바르게 하고 사회를 교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낙이불류(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라 했던가. 신라의 우륵이 제자들의 연주를 듣고 던졌다는 찬사다. ‘즐겁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비통하지 않은 감정의 절제’가 정악의 특징이다. 정악의 연주에는 민속악에서 느끼는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이입은 없지만 그 담담하고 유유한 장단의 흐름 속에서 선현들의 고고한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정재(呈才)로 불리는 궁중무용은 장엄하고 화려하면서도 모든 것이 절제된 가운데 우아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인 춤사위입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심숙경 안무자의 설명이다.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극치다. 그녀의 표현처럼 무용단원의 춤가락은 마치 숨을 고르고 명상의 세계에 잦아드는 과정처럼 현실을 초월한 신비스러운 멋을 느끼게 했다. 실로 공연이 끝난 후 느끼는 상쾌함에 일상의 불필요한 잡념과 찌꺼기들이 씻겨 나간 기분이다. 선조들의 예술 수준이 이처럼 높았단 말인가. ●국내 유일 편종 장인 김현곤씨 “수백 년 전 소리 찾는 일 내 천직” 궁중무악에 사용되는 악기는 ‘악학궤범’(樂學軌範) ‘악기조성청의궤’(樂器造成廳儀軌) 등 고서에 전해지는 방식 그대로 제작된다. 충북 영동의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는 과거로부터 전승되는 악기를 복원하고 오늘날의 무대 공연에 맞는 악기를 개발, 연구하는 곳이다. 김영희 학예연구관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 선생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 거문고 악기인 고산유금(孤山遺琴)과 세종조 편경(編磬)과 짝을 이루는 세종조 편종(編鐘)을 지난해 복원 제작했다.”며 성과를 설명했다. 김현곤(76)씨는 국내 유일의 편종 장인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고향인 전북에서 상경하여 서양 악기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 김씨는 국립국악원에서 망가진 옛 악기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수백 년 전의 정확한 소리를 찾는 일이 저의 천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지난해 악기연구소에서 고증한 ‘악학궤범’에 따른 그림과 치수를 참고하여 세종조 편종을 제작했다. 주물 작업을 마친 종(鐘)의 조율을 하고 있는 그의 손놀림이 현란하다. 마치 옛 악기의 소리뿐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도 함께 되살리려는 듯했다. 진솔하고 고상한 궁중무악은 조선왕조가 성취한 최고급 문화의 결정체이다. 햇살이 풍요로운 6월, 싱그러운 자연과 더불어 선조들의 고고한 감성을 헤아리며 또 하나의 슬기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軍 동료·후배가 본 장도영

    軍 동료·후배가 본 장도영

    장도영 전 육군 참모총장은 우리 군 창설과 6·25 때 많은 공훈을 세웠던 ‘군영’(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장 전 총장과 절친했던 군대 동기 가운데 강영훈(90) 전 국무총리를 1일 오후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만남의 장소’(원로 군인 사랑방)에서 만났다. 강 전 총리가 5·16 때 육사교장으로 있으면서 주저하는 장 전 총장에게 똑바로 행동할 것을 주문했던 일화는 여전히 회자된다. 만남의 장소에는 마침 같은 군영 출신인 황헌친(90) 예비역 준장도 함께 있었다. 이들에게 장 전 총장이 치매 증상을 앓고 있다고 하자 강 전 총리는 “일제 때 학병(學兵)으로 같이 갔고 매우 똑똑한 친구인데 그거 참 안됐다.”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강 전 총리 역시 고령인지라 과거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다. 장 전 총장이 미국으로 가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 그는 “한국보다 널찍한 데서 살고 싶었나 보지 뭐.”라면서 웃어넘겼다. 강 전 총리는 황 장군에게 “미국 왜 갔지?”라고 물었다. 황 장군은 “5·16 정부가 들어서면서 서로(박정희와 장도영) 환영할 인물이 아니었고 미국에서도 장도영을 아까운 사람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냐.”면서 분명한 것은 5·16 정부에서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5·16 당시 6관구사령부 상황실장을 맡았던 김재춘(육사 5기) 전 중앙정보부장은 “군에서 자주 모셨고 두 집안이 서로 오고 갈 만큼 친하게 지냈다.”면서 동생도 미국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장 전 총장의 미국행이 자의 반 타의 반이냐고 묻자 “타의였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6월 독립운동가’ 조병준 선생 ‘6월의 호국인물’ 송태호 하사

    ‘6월 독립운동가’ 조병준 선생 ‘6월의 호국인물’ 송태호 하사

    국가보훈처는 31일 서간도와 내몽골 등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조병준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출생한 선생은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장 유인석의 의거에 호응해 평북 창성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10년 경술국치 후 다시 의병을 일으켜 창성의 일본 헌병대를 습격했으나 일제의 병력이 증강되는 바람에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중국 만주로 망명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유하현 삼원보에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고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지방행정 조직인 연통제 평북독판부 독판에 선임됐으며, 이듬해 임정 직할기관인 광복군 참리부장을 거쳐 1923년에는 통의부 통의부장이 됐으나 곧 사임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마련해 지원한 이주 자금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주선으로 내몽골에 농지 60만평을 임차해 배달농장과 배달학교, 대종교 수광시교당을 설립했다. 의민부를 설립해 배달농장의 수익금으로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제공했다. 선생은 1931년 10월 2일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와 함께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경기도 연천의 ‘니키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운 송태호 육군 하사를 ‘6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송 하사는 1951년 6월 육군에 자원 입대해 1사단 15연대 수색중대 1소대에서 복무했다. 1952년 10월 6일 새벽 중공군이 북쪽 임진강 지류의 요충지인 니키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포격을 시작하자 송 하사가 소속된 15연대는 전진 거점인 니키고지 방어에 나섰다.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을 막기 위해 결사대를 편성했다. 결사대에 자원한 송 하사는 3명의 결사대원과 함께 수류탄을 던지며 동굴 입구로 돌진했으나 중공군이 설치한 다이너마이트가 폭파하며 흙더미에 파묻혔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차린 송 하사는 흙더미를 파헤치고 나와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곧이어 아군 중대가 역습을 가해 적을 격퇴했다. 이후 송 하사는 휴전협정을 불과 한 달여 앞둔 1953년 6월 12일 서부전선의 이름 없는 고지에서 전사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설] 군인 70명이나 종북카페 회원이라니…

    영관급 장교를 포함한 현역 군인 70여명이 종북(從北)카페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에 회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일부는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위해 ‘님에게 바치는 시’라는 충성맹세문을 작성하는가 하면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천안함 사건은 날조”라고 강변하는 등 거침없는 반(反)국가 행태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과 북한 군 전력을 비교하면서 “전쟁이 나면 우리 군이 필패”라는 글을 올린 이도 있다. 이른바 종북세력이 군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활개 치고 있는 양상이니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다. 현재 국군기무사령부에서 내사 중인 만큼 카페에 올린 글의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다. 일부 장교들은 “좌파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가입했다.”거나 “누군가가 개인정보를 도용했다.”는 식의 해명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에게 섣불리 이적 혐의를 들씌울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을 엄연히 적(敵)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현역 군인 신분으로 종북카페에 가입해 활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책임을 면치 못하리라고 본다. 나라의 정신을 갉아먹는 좀비 행태를 결코 그냥 봐 넘길 수 없다. 법적 처벌과 별개로 가장 엄한 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종북카페 활동에 대해 한 군인은 “고교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의 소개를 받아 호기심에 가입했다.”고 했다. 전교조의 실체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6·25를 조국해방전쟁으로 묘사하고 북한에서는 쌍꺼플 수술도 무료라고 미화하는 집단이 바로 전교조다. 군은 장병들의 무차별 종북사이트 접속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외부 이념집단과의 연계 가능성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군이 민(民)만큼도 국가안보의식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철갑으로 무장한들 안보의식이 없다면 결코 강한 군대가 될 수 없다.
  • [씨줄날줄] SOFA/박홍기 논설위원

    2000년 2월 9일 미군이 독극물을 한강에 무단 방류한 이른바 ‘맥팔랜드 사건’이 터졌다. 서울 한복판인 용산 미8군기지의 영안실 부소장 앨버트 맥팔랜드가 한국인 군무원을 시켜 주검 방부처리용 독극물 포르말린 475㎖짜리 480병을 싱크대에 버린 사건이다. 독극물은 한강으로 흘러들어갔다. 맥팔랜드는 2003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주한미군의 환경오염에 따른 첫 처벌로 기록됐다. 이 사건은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소재가 됐다. 2002년 6월 13일 오전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로에서 ‘미선·효순 사건’이 발생했다. 미2사단 공병대 장갑차가 친구 생일에 가던 중2년생 심미선과 신효순양을 치어 숨지게 한 것이다. 가해자 미군 2명은 미군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미군의 오만한 자세는 ‘촛불 집회’의 도화선이 됐다. 두 사건은 2000년대 들어 국민들에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에 대한 인식을 크게 일깨워준 대표적인 사례다. SOFA는 1966년 7월 9일 한국 외무장관과 미국 국무장관 간의 조인에 따라 이듬해 2월 9일 발효됐다. 6·25전쟁 당시 대전에서 체결한 ‘주한 미군의 관할권에 관한 한·미 협정’의 대체 협정이다. SOFA는 1991년과 2001년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쳐 미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한 독소조항이 다소 수정됐다. 이에 따라 올 4월엔 노부부를 마구 때리고 부인을 성폭행하려 한 미군을 인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정부지법이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계속 구금권’을 행사한 두번째 사례다. 미군이 주둔하는 80여개국과 미국 사이에 맺은 SOFA는 주둔군의 성격이나 당사국 간의 관계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요즘 SOFA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주한 미군이 1978년 캠프 캐럴 안에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독극물인 고엽제를 대량 매립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부터다. 1991년 이후 20년 동안 주한미군은 기름 유출, 불법매립 등 47건의 환경 범죄를 저지르고도 피해 복구 및 보상에 소극적이다.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만 오염 정화 책임이 있다는 SOFA 규정에 근거해서다. 때문에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이고 실효성있게 고쳐 주한미군 스스로 오염을 방지하고 제거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SOFA 개정 목소리는 반미 정서가 아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에서 출발하고 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29일 방러 고르바초프 만나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가 오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7박 8일간 러시아를 방문한다.  김 전 대통령 측은 23일 “김 전 대통령은 1989년 6월 2일 한국 정치인 최초로 옛 소련(러시아)을 방문해 한∙러 수교(1990년 9월 30일)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소장 티타렌코)에서 김 대통령의 최초 방소 일자에 맞춰 초청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방러 기간 동안 극동문제연구소와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에서 특별 강연을 한다. 또 한∙러 수교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을 만나고, 수교 당시 큰 역할을 했던 이그나텐코 이타르타스통신 사장과 오찬을 함께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옐친 전 대통령 묘소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여사 묘소도 참배할 예정이다. 옐친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김 전 대통령의 러시아 공식 방문 중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핵심이던 조(朝·북한)·소(蘇) 조약 폐기와 대북 무기부품 공급 중단을 약속했고, 김일성의 남침을 증명하는 6·25전쟁 관련 문서를 김 대통령에게 넘겨줬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공공성 외면한 경쟁체제 동의 안해…혁명?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게 낫다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개인적인 문제보다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양극화와 저출산 등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자유시장경제 위협 요소를 정치가 제거해야 한다. →언제까지 정치를 하고 싶은가. -재선은 하고 싶다. 많이 떨어져 봐서 초조함은 없다. 다만 재선을 한다면 강물을 거스르는 한 마리 연어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보수가 신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본다. →재선이 가능하다고 보나. -내년 총선이 정당 대결 투표로 가면 힘들다. 능력 있는 국회의원은 살려 놓자는 기류가 형성된다면 기대해 볼 수 있다.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중도 실용론자다. 자유민주주를 강조하는 게 보수이고,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게 진보라면 보수에 가깝다. 하지만 공공성을 외면한 채 개인의 경쟁만 강조하는 보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나. -아내 덕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투옥·낙선 등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지만 아내는 “당신은 공공적 인간”이라며 배려해 줬다(김 의원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는 고졸의 구로공단 노동자 출신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의 신념이 변했나. -운동할 때는 혁명을 꿈꿨다. 하지만 정치는 긍정적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다. 작은 한 걸음이 선명하기만 한 정체보다 낫다. →어떤 정치를 꿈꾸나 -정치 축제를 벌이고 싶다. 6·25 참전 용사, 구로공단 여공들, 중동의 건설 노동자, 민주화 투사들이 모두 어우러지는 축제 말이다. →정치적 스승은 누구인가. -정치인의 길로 인도한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을 존경한다. 장기표 선배님은 나의 경직된 사고를 깨웠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선 한국 경제를 보는 안목과 지식을 배웠다. 요즘은 안철수 교수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지 않았나. -한 분을 택했으면 아마 3선 의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제정구 전 의원의 가르침대로 지역 정치·보스 정치를 깨기 위해 민중당에 참여했다. →한나라당과 잘 맞는다고 보나.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바꿔 나가면 된다. 한나라당을 개혁하는 게 정치 개혁의 지름길이다. →한나라당을 얼마나 변화시켰다고 생각하나. -이제 시작이다. 건강한 보수는 항상 변방에 있었다. 진보와 대화할 수 있는 건강한 보수가 힘을 얻어야 한다. →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관료들에게 막힌 장벽을 뚫는 정치를 하고 싶다. 좋은 대통령을 만나 내가 설계한 공정한 시장경제를 실현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정책위 부의장으로서 뭘 할 수 있나. -국민이 진짜 믿을 수 있는 서민 정책을 만들고 싶다. 일자리 창출과 복지사각지대를 줄이는 예산을 짜고 싶다. →한나라당의 쇄신이 가능하다고 보나. -원내대표 경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변화를 이끌 리더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전당대회 투표 인원을 20만명 이상으로 늘려 줄 세우기를 차단하면 당 중심 세력 교체가 가능하다. →쇄신파들이 당권 투쟁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치는 권력을 누가 수임받느냐를 놓고 벌이는 경합이다. 당권 투쟁은 당연한 현상이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편협한 비난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실명소설 ‘명동시대’ 펴낸 안도섭 시인

    [저자와 차 한잔] 실명소설 ‘명동시대’ 펴낸 안도섭 시인

    작가들은 대체로 실명(實名)소설 쓰기를 꺼린다. 자칫 실존 인물의 과대한 평가나 평가 절하의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격랑의 회오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편린들을 담은 문학 작품이 희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역사의 엇갈리는 평가와 여전히 진행 중인 그 후유증, 그리고 문학작품으로 평가될 실존 인물들의 입장…. 1958년 조선일보와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나란히 시가 당선돼 등단한 안도섭(78) 시인이 낸 ‘명동시대’(글누림 펴냄)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서울 명동을 배경으로 100명이 넘는 문인, 예술인을 실명으로 등장시켜 해방 전후의 문단 이야기를 담은 첫 소설이란 점에서 문단 안팎의 관심을 적지않게 모으고 있다. “일제의 억압·사슬에서 벗어난 해방,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 민족상잔의 6·25전쟁과 분단…. 우리는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결정적 문학 소재들을 태산같이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문학으로 끌어들인 실명의 작품이 드문 것은 비극적인 역사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 출간에 맞춰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난 저자 안도섭 시인은 우리 문단·문인들의 태만과 직무유기를 먼저 꼬집었다. “누군가는 실제 겪었던 일을 증언해야 하고 그 증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 명동은 해방정국과 좌우 대립, 전쟁 포화로 인한 폐허 속에서도 숱한 문인들이 모여 사랑을 노래하고 예술을 부르짖었던 문인들의 단골 아지트. ‘명동시대’는 바로 그 문화 특구를 겨냥해 그 속에서 부대끼며 죽고 살았던 문인들의 숨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낸다. ‘명동신사’ 박인환, ‘명동백작’ 이봉구 등 당대를 풍미했던 문인·예술인의 공개되지 않은 면모와 열정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명소설은 허구에 바탕하지만 실존 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 팩트(사실)를 크게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저자 안도섭 시인도 그 위험과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터. “직접 교류하고 겪었던 당사자들의 증언을 거듭거듭 확인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일일이 발품을 팔아 정리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자가 ‘명동시대’에서 말하려는 궁극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가파르고 험악한 격동의 시대에 가난한 문인들이 명동을 드나들며 술잔을 기울인 것은 치열한 예술혼의 공감이고 그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끈끈한 우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자가 등단한 1950년대 후반만 해도 활동 문인이 넉넉잡아 200명 정도였던 데 비해 지금은 시인만 1만∼2만명에 달할 만큼 수적인 확산을 이루었다는 우리 문단. “양적 팽창이 꼭 질적 저하를 부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명동시대’를 살았던 문인·예술인들의 예술혼과 끈끈한 유대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고 봐야지요.” 결국 저자는 사라진 ‘명동시대’가 공간의 실종을 넘어선 정신과 영혼의 쇠퇴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글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고엽제 매립 파장] 주한 미8군 “필요하다면 추가 조사”

    [고엽제 매립 파장] 주한 미8군 “필요하다면 추가 조사”

    주한 미8군사령부는 19일 30여년 전 경북 칠곡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로 쓰이는 독성 물질을 묻었다는 전직 주한미군의 증언과 관련,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프 부치카우스키 주한미8군 공보관(중령)은 입장자료를 통해 “KPHO 뉴스를 통해 전반적인 의혹에 대해 알게 됐다.”면서 “지금부터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이전 자료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후조치와 이 문제에 대한 신중을 기하기 위해 환경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면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지를 결정할 것이며 미 육군은 건강과 환경의 가능성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캠프 캐럴은 주한미군 군수지원단이 주축으로, 1960년 5월에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일대에 약 3.2㎢의 규모로 조성됐다. 특히 캠프캐럴이 있는 지역은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전선이 구축됐던 곳인데, 왜관 지역은 왜관지구전투를 통해 낙동강을 가운데 두고 55일 동안 치열한 접전을 벌였을 정도로 지리적, 전략적으로 주요 거점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캐나다 첫 한국계 상원의원 “한국은 희망의 상징”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캐나다 첫 한국계 상원의원 “한국은 희망의 상징”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19일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 개막식을 한국 속담으로 시작했다. 박 의장은 오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모인 세계 입법부 수장들에게 “여럿이 힘을 합치면 쉽게 풀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각국의 공조를 강조했다. ●국회 ‘중앙홀’에 모인 의회 수장들 앞서 오전 8시 30분 개막식을 앞두고 박 의장은 8시부터 국회의사당 내 정현문 앞에서 각국 의회 정상들을 직접 맞았다. 의회 정상들은 레드카펫을 따라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말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몸싸움을 벌였던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공식 회의장이 마련됐다. 푸른색으로 장식된 회의장에는 정중앙의 대형 테이블에 각국 의회 대표들의 자리가 놓여졌다. 원형 테이블 안쪽 바닥에는 태극을 형상화한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엠블럼이 새겨졌고, 회의는 9개국 언어로 동시통역됐다. 회의가 열리는 국회 본청 주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철통 보안·경비가 펼쳐졌다. 국회 외곽 및 경내 경비를 위해 회의 기간 4500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된다. 의장단의 근접 경호는 서울·부산·경기·울산 등 지방경찰청에서 파견한 외빈경호팀이 맡았다. 회의에 참석한 25개 의장단은 서울 하얏트·롯데·신라·프라자 등 4개의 지정호텔에 묵는다. 호텔에서 국회로 이동할 때는 현대차가 무상 제공한 ‘에쿠스 VS 380’을 이용했다. 캐나다 최초 한국계 상원의원인 연아 마틴 의원은 회의 도중 “한국 태생으로 캐나다 대표로 한국에 와 감회가 새롭다.”면서 “한국은 희망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마틴 의원은 “1972년 떠난 한국을 와보니 많이 달라졌다.”면서 “최근 캐나다 6·25 참전용사와도 한국을 방문했는데 세계가 함께하고 국민 의지가 모였을 때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목도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고 덧붙였다. ●각국 입법 수장들의 ‘한류’ 체험 회의에 참석한 의장단은 국회 내 전통 한옥인 ‘사랑재’에서 공식 오찬을 가졌다. 전복 잡채와 인삼닭죽, 삼색전, 한우 갈비구이, 떡, 한과 등의 메뉴에 복분자주를 곁들여 올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천일염이 선물로 전달됐다. 사랑재에서는 한복을 입은 직원들이 음식을 날랐고 가야금 앙상블그룹의 가야금 연주가 고즈넉하게 울려퍼졌다. 박 의장은 “한옥에서 한식을 먹으며 한류에 듬뿍 젖어달라.”면서 “또 불어오는 봄바람과 함께 한류의 바람을 세계로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의장의 건배제의로 참석자들은 한국어로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부딪혔다. 저녁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국회의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환영 만찬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대한민국은 전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첫 나라가 됐다.”면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한국형 개발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회의에 참석한 의장들의 부인들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의장 부인들은 오전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에서 전통 자수 작품을 둘러보며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어 직접 수를 놓는 체험시간도 가졌다. 오후에는 한남동 리움박물관에서 고미술품을 감상한 뒤 국회의장공관으로 이동해 전통 가정 문화를 체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北, 12개국 18만명 납치”

    “北, 12개국 18만명 납치”

    북한이 6·25 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모두 12개국에서 18만여명을 납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의 비정부기구(NGO)인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12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발표한 ‘북한의 외국인 납치 범죄’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 등을 제안했다. HRNK가 밝힌 납북자에는 6·25 전쟁 때 납북된 한국인 8만 2000여명과 일본에서 북송사업으로 건너간 조총련 동포 9만 3000여명도 포함돼 있다. 납북자 국적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레바논, 네덜란드, 루마니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요르단, 태국 등이다. HRNK는 외국인 납북자 거주지와 일본 항공기 요도호 납치범들의 거주지라며 평양 외곽과 대동강변 인근의 인공위성 사진들도 공개했다. 이 사진들은 구글어스를 통한 것으로, 그동안 인공위성 사진 판독을 통해 북한의 비공개 시설을 공개해온 미국의 위성사진 전문가 커티스 멜빈이 분석, 제공한 것이다. 이 가운데 평양 동북부의 동북리 초대소 일대를 담은 사진에는 한국인과 일본인 납북자 등의 거주지 3곳과 유치원, 경찰서, 김일성 동상 등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요도호 납치범 등의 거주지인 ‘일본혁명마을’의 위치가 표시된, 평양 동쪽의 대동강변 사진도 공개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북한 공작원에게 일본어 등을 가르쳤다는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의 인공위성 사진도 공개됐다. 외국인 납치 피해자는 이 대학에서 일본어나 유럽 언어 등을 가르치도록 강요받았다고 HRNK는 전했다. 척 다운스 HRNK 사무총장은 북한에서 탈출한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회고록 등을 참조한 결과 이 같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HRNK는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과 양자 협상을 벌이는 것은 물론 피해 국가나 관심 국가들이 국제적 연대를 구성해 납북자의 생사 확인과 가족 재상봉, 송환, 유해 인도 등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는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와 함께 납북 피해자들이 평양 주재 외국대사관에 망명을 시도하면 이들을 적극 보호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출신인 리처드 앨런 HRNK 공동의장은 북한의 외국인 납치 행위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의한 조직적인 시도였다.”면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범죄 중 하나”라고 규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MB “韓 반도체·자동차 - 佛 소재 결합땐 최강” 코리아 세일즈

    MB “韓 반도체·자동차 - 佛 소재 결합땐 최강” 코리아 세일즈

    이명박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오전 파리 개선문의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면서 프랑스 공식방문 첫 일정을 시작했다. 개선문에는 2004년 프랑스의 6·25 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이 설치돼 있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에는 혈맹관계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이어 프랑스 경제인연합회 본부에서 열린 한·프랑스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적극적인 ‘코리아 세일즈’에 나섰다. 간담회에는 아레바, 알스톰 등 프랑스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정만원 SK 부회장 등 양국 기업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양국의 경제 규모와 경제 협력의 잠재력에 비해 그간의 교역과 투자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서 “여러분들이 더 노력해 주신다면 5년 이내에 양국 교역이 지금의 2~3배로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는 기초 소재·항공우주·방위산업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한국은 반도체·자동차·조선·정보통신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 “서로의 강점을 결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에는 엘리제궁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겸 오찬을 함께 했다. 두 정상은 오는 11월 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로 채택된 ‘에너지와 식량 가격 안정’에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회담에서 파리 남부의 시테 위니베르시테(국제학생기숙사촌)에 한국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고, 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프랑스 정부가 제공하는 한국관 건립 부지는 6000㎡ 정도이며,우리 정부가 건축비를 들여 200실 규모의 한국유학생 전용 ‘한국관’이 지어질 계획이다. 한편 김윤옥 여사는 양국 정상이 회담하는 동안 모델 출신인 프랑스 대통령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와 별도로 환담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이 대통령은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잇따라 접견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파리 7대학을 방문해 예술·문학·철학·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7대학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한국학과를 설립한 곳으로, 이 대학 벵상 베르제 총장은 프랑스 지식인을 중심으로 협회를 결성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타당성을 역설해 왔다. 이 대통령은 학위수락 연설에서 “이 학위가 개인에게 주는 마음의 선물이자 프랑스가 대한민국에 보내는 깊은 이해와 신뢰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따뜻한 형제애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부고] 옥만호 전 공군참모총장 별세

    [부고] 옥만호 전 공군참모총장 별세

    ‘6·25전쟁 100회 출격 조종사’로 1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옥만호 예비역 대장이 13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1927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50년 공군 사관후보생 8기로 임관한 옥 전 총장은 공군 제10전투비행단장, 공군대학 총장 및 공군사관학교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6·25전쟁 때 적의 핵심 병참선 차단을 위한 ‘승리호 철교 폭파작전’에 출격, 편대를 지휘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거뒀다. 참모총장 시절에는 ‘RF5A’와 ‘T41’를 도입해 항공력 강화에 힘썼고, 은퇴 뒤에는 사재를 헌정해 전남 무안군에 청소년들을 위한 ‘호담 항공우주전시관’을 열었다. 금성충무 무공훈장·대통령 수장·대통령 공로표창·보국훈장 통일장·미 공로훈장 등 여러 훈·포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용호 여사와 아들 철(H.I.S. 고문)·열(사업)씨, 딸 행녀·유미·수미씨, 사위 양해범(사업)·나영철(현대건설 부장)씨가 있다. 안장식은 16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서 공군장으로 거행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02)3010-2230.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이대통령 “北 권력이양해도 김정일 대표성 계속될 것”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만일 북한의 권력 이양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표성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발행된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과의 회견에서 “북한은 권력세습이 3대로 이어지는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안정성을 원하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와) 대화 용의를 보일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대화의지가 진정한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북한에 그들이 저지른 도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북한이 솔직한지를 지켜볼 것”이라면서 “그렇게 된다면 이들의 대화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아랍 국가의 연쇄적인 민주화 혁명을 뜻하는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북한 사회는 많이 차단돼 있고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에 중동 혁명이 당분간은 적어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북한도 재스민 혁명과 같은 움직임을 거역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 행위에 대해서 이 대통령은 “과거 우리는 이런 도발을 묵인해 왔지만, 앞으로는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원전 안전 문제와 관련,“원전의 안전성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며, 한국은 안전성에서 최고이며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베를린 도린트호텔에서 독일 통일 주역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치렀고 그래서 치유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면서 “그러나 대한민국에 있어서 통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과제이고 그런 통일을 위해서는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나와 통일] (13) 조계종 혜경스님

    [나와 통일] (13) 조계종 혜경스님

    지난 4일 조계종은 북한의 조선불교도 연맹과 금강산 신계사에서 어린이 구충제 10만정 등 지원물품을 전달하고 공동 참배를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남북의 불교도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3년 만이다. 10여명의 방북단을 이끌고 신계사를 다녀온 혜경 스님은 “불교문화에서 남북이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면서 “이번 방북이 남북관계 변화에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계사 방문이 얼마 만인가. -지난해 가을에 다녀오고 7개월 만이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에는 스님들이 금강산 온정리에 상주하고 있었다. 5·24 조치 이후에는 아예 북에서도 신계사에 아무도 보내지 않는 모양이다. →신계사는 조계종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신계사는 신라시대(519년)에 지어진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이다. 6·25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진 것을 2004년 조계종과 현대아산,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대웅전을 복원했다. 완전 복원된 것은 2007년으로 한창 공동관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을 때 금강산 관광이 중단돼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남북이 공동법회를 연 것은 3년 만이다. -원래는 공동법회를 하고 싶어했는데 통일부에서 승인이 안 났다. 스님들이 예불하고 은공하는 것은 일상인데 이걸 왜 못하게 하는지…. 그래서 그냥 ‘남북불자들의 신계사 공동참배’라고 했다. →최근에서야 인도적 지원이 재개됐는데. -통일이 만약 우리의 지상과제라면 통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같은 민족이고 형제이지 않은가. 일본에는 지진 피해가 났을 때 정치적 사안과 인도적 지원은 별개라고 해서 지원하지 않았나. 왜 북한에는 이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식구부터 챙기는 게 인지상정인데 영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남북관계에서 불교계의 역할은 무엇인가. -전통문화 측면에서 남과 북이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도 보물급 사찰이 있고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문화의 동질성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방북을 하고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부처님 말씀 중에 “모든 존재가 나와 한몸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듯 돌보는 게 잘사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신계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5시간 동안 이걸 생각하니 참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이 원망스러웠다. →정부나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올해 총무원 집행부의 공식 슬로건이 소통이다. 우리 현실은 남남갈등이 심각하다. 정치인은 더 소통이 안 되고 있다. 불교의 목표가 부처님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듯, 정치의 목표는 정치인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념이 다르더라도 나를 비롯한 이웃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이번 방북이 계기가 돼서 정부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남북관계 변화에 작은 씨앗이 됐으면 한다. →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통일은 반드시 돼야 한다. 이번에 갔을 때 솔잎혹파리인지 재선충인지 몰라도 신계사 주변 소나무들이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 소나무는 우리 할아버지와 친구다. 두 세대만 올라가면 남북이 어디 있고, 정치적 이념이 어디 있나. 하루빨리 그렇게 (하나가)돼야 한다. →남북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계절로는 봄이 왔는데, 아직 우리 가슴엔 봄이 먼 것 같다. 계절의 봄은 환경이 만들지만 가슴의 봄은 우리의 생각과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도들이 가슴에 진달래, 개나리를 피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기획] 최고경영자=①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씨

    [기획] 최고경영자=①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씨

      “기업(企業)이야 말로 종합예술(綜合藝術)입니다 ” 영감(靈感)으로 시(詩)를 쓰듯 일한다는 만년(萬年) 문학(文學)소년  KAL 하나만으로도 지난 해 2백50억원의 현찰을 벌어들인「매머드」기업 한진(韓進). 그 한진(韓進)의 창업주이자 총수(總帥)인 조중훈(趙重勳·53·서울 서대문구 부암동 164)씨는 자신을 장사꾼이라기보다는 차라리「만년 문학소년」으로 보고 있다.『인생이 곧 예술』이며『기업이야말로 종합예술』이라는 조(趙)씨는 그래서『시인이 영감으로 시를 쓰듯』자신은 기업인으로 기업을 이끌어 나간다고 했다.  한진(韓進)「그룹」의 모체인 한진(韓進)상사는 1945년에 세워졌지만 한진이 우리나라 재계에 제1인자에 떠오른 것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69년부터 였다. 69년 3월 적자에 허덕이던 KAL을 한진(韓進)이 인수하면서부터『현찰 동원능력 국내 1위』의 한진은 명실공히 한국 제1위의 재벌이 된 것. 45년 창업에서 69년「랭킹」제 1위에 오르기까지 24년이 걸렸다. 짧다면 너무 짧고 길다면 인생의 절반이다.  조(趙)씨 자신은『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란 서정주(徐廷柱)씨의 시를 인용, 이 24년을 표현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 서리가 내리고 모진 비바람이 불었듯, 오늘의 한진(韓進)을 있게 하기 위한 24년이었죠. 예를 하나 들까요? 』  조(趙)씨는 6·25동란 후 군납업을 하던 시절을 이야기 했다.  지금 살고있는 서울 세검정(종로구 부암·홍지·신영·평창동을 일컬음)의 집은 당시 조(趙)씨의 별장. 조(趙)씨는 한국에 와 있던 미군 수송관들이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꼭 세검정 별장에 초대, 송별「파티」를 열어 주곤 했다. 조(趙)씨의 부인은 손수 마련한 선물을 선사했다.  몇년 뒤 월남전(越南戰)이 터졌다. 군납과 용역을 위해 한진(韓進)이 월남(越南)에 달려갔을때 상대해야 했던 미군 수송관들은 거의가 몇년 전 한국에 있었던, 그래서 조(趙)씨의 세검정 별장에 초대되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흔히들 한진(韓進)을「월남전(越南戰) 재벌」이 되기까지엔 이런 정성들이 밑거름이 되어 준 것.  『월남전을 내다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단순한 우정과 고마움의 표시였죠. 그리고 또 한사람에 대한 일종의 투자였고. 미 국방성이 아무리 방대하다지만 수송장교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언제 어디서건 다시 만나게 마련이죠』  이「언제 어디서」가 조(趙)씨에겐 월남전(越南戰)으로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것이다.  현재 한진(韓進)「그룹」에 들어있는 산하 업체는 모두 7개. 이 중 인하(仁荷)대학을 제외한 6개 업체가 모두 육(陸)·해(海)·공(空)의 운수사업체 뿐이다. 조(趙)씨가 즐겨부르듯 한진(韓進)은「수송백화점」인 셈.  고속「버스」관광·육상수송을 도맡고 있는 한진(韓進)상사를 비롯, 내년 5월부턴「점보」화 할 KAL, 한국(韓國)공항, 한일(韓逸)개발과, 바다를 누비는 대진(大進)해운과 동양(東洋)화재해상보험 등이 수송백화점 한진(韓進)을 떠받치고 있는 6개의 큰 기둥이다.  『남이 창안한 기업은 절대 좇아가지 않는다는 게 제「모토」입니다. 결국 망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내가 아는 사업만 한다는 게 나의 사업철학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잘 아는 수송사업에 전심전력 달라붙는 거죠』  한국 제일의 재벌이 된 조중훈(趙重勳)씨지만 젋은 시절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바이론」에 미치고 「괴테」와 함께 고뇌하고 사색했단다.「아꾸다가와」의 소설도 젊은 날의 조(趙)씨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 중의 하나.  『20대엔 여인에, 30대엔 일에 미쳐야 하고,40대엔 보람을 찾아 국가·민족 등을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하는 조(趙)씨의 말 속엔 아직도 문학청년의 체취가 남아 있다. 이 때문인지 조(趙)씨의 경영철학도『사업이야 말로 종합예술』이란 것.  『기업도 훌륭한 예술작품과 같이 균형과 조화, 개성과 창의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과 이 창의력을 밀고 나가는 끈기죠.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시인이 영감으로 시를 쓰듯 기업인에게도 기업인의 육감이 있습니다. 이 육감을 놓치지 안기 위해선 모든 일을 바로 보고 맑은 정신을 지키고 있어야죠』  시인과 같은 영감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일단 시작하면 끈기있게 달라 붙는다는 경영철학을 조(趙)씨는 기회있을 때마다 남들에게 들려준다. 여기에「플러스·알파」는「타이밍」. 말하자면 시운(時運)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긴데 조(趙)씨는『시운(時運)이 뒤따를 것을 기대하지 말고 시운을 내다볼 수 있는 예지가 필요하다』는 것.  조(趙)씨는 자신을 가리켜『인생에 3번 있다는 기회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잡았기에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한진(韓進) 산하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종업원수는 모두 6천여명.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조(趙)씨 자신이 반드시 이력서를 들추어 보고 면접을 한다.  이따금 새벽이면 인천(仁川)부두나 김포(金浦)공항 등 일선 사업장을 느닷없이 기습, 종업원들을 독려하는 등 조(趙)사장의 인사관리는 사뭇 철저하다.『사람이 곧 재산입니다. 최고경영자는 자기 식구들의 인화(人和)를 도모할 능력이 있어야죠.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쓰느냐가 그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죠. 자기 기업에 맞는 사람을 골라 내고 조직체에 맞추는 작업이 바로 최고경영자의 할 일이죠 』  『사장학의 첫발은 자기 종업원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일단 약점이 보이면 그 경영자는 파멸입니다. 약점 있는 사람이 약점 없는 부하를 요구할 수 없지 않습니까?』  조(趙)씨는『경영의 밑바탕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며 지식 』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지난 71년을 『한진(韓進) 지식투자의 해』로 삼아 여러가지 사원 자질 향상을 위한「세미나」, 일선 실무자의 해외파견 교육 등을 실시했다.  「인화(人和)」를 앞세우는 조(趙)씨의 인사관리 원칙은 우선 한진(韓進) 경영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조(趙)씨 4형제의 인화(人和)로부터 시작된다.「4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재산이 조금만 모이면 재산싸움을 벌이는 것이 상례. 하지만 조(趙)씨 4형제는 아직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자랑이다.  맏형이자 한일(韓逸)개발의 사장인 조중렬(趙重烈)씨는 KAL「빌딩」안에서 젊은 사원들에게 흔히 『인자한 아버지』로 존경받는다. 업무를 캐고 따지기 보다는『수고하는군』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던지기 일쑤다.  둘째이자 한진(韓進)「그룹」의 회장인 중훈(重勳)씨는 KAL 사장을 겸임, 대한항공의 육성에 거의 전력을 쏟고 있다. 대외적인 업무는 중훈(重勳)씨가 전담.  세째(셋째)인 중건(重建)씨는 한국공항의 사장이자 KAL의 부사장. 실질적으로 한진(韓進)의 안살림을 도맡고 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둘째 형과는 달리 미국(美國) 유학까지 마친「인텔리」라 「컴퓨터」가 무색할 정도로 냉철하고 판단력이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막내인 중식(重植)씨 역시 미국(美國)서 건축학을 전공한「엔지니어」. KAL「빌딩」건설의 공사 총감독이었으며 현재 한일개발의 상무로 아직은「견습 경영자」의 위치에 있다.  『무뚝뚝하면서도 인간미가 있다』는 평을 듣는 중훈(重勳)씨는 자수성가한 사람답게『무지하게 부지런한』사람.  『나이가 들어 그런지 새벽녘까지 철학서적이나 문학서적을 읽죠. 이상하게도 이런 책을 읽으면 사업「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8시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이죠. 대신 밤 10시면 꼭 자리에 듭니다』  13년 전부터 술은 아예 끊어버렸단다. 그 대신 단 5초도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쉬질 못하는 성미다. 1주일에 한번쯤「골프」를 치는 게 유일한「레크리에이션」.  요즘은 몸이 77kg으로 불어나 목하「다이어트」중. 기름진 음식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식후에는 과일을 꼭 먹는다. 시인과 같은 영감으로 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일단 사업을 시작하면 철저하도록 치밀하다는 것이 조(趙)씨를 아는 주위사람들의 말이다. 조(趙)씨의 이「친밀함」은 평소에도 자주 드러나는데 가령 비서실이나 응접실 문지방이나 유리창에 먼지가 조금만 끼어 있어도 당장 발견해 낸다.  또 지저분한 것을 싫어해 책상 위의 서루도 언제나 깔끔히 정리되어 있어야만 적성이 풀리는 철저하게 결백한 성품.  또 맏형 중열(重烈)씨가 모시고 있는 노모(老母)님에겐 여행 떠나기 전이나 여행에서 돌아오면 꼭 문안드리기를 잊지 않는 효자이기도.  부인 김정일(金貞一·50) 여사와의 사이에 4남1녀를 두고 있다.  오늘의 한진(韓進)이 있기까지 내조를 아끼지 않은 김(金)여사는 한마디로 현모양처(賢母良妻)형. 지금은 가정부를 한 사람 두고 있지만 70년까지는 단 한 사람의 고용원도 두지 않고 손수 식사를 마련하고 집안청소를 도맡아 해왔다.  지금도 반찬만은 손수 마련한다는 게 김(金)여사의 신조.  이따금(가능한 한 손님을 집으로 오게 하지 않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지금도 차를 내오고 과일을 깎아 내는 일만은 가정부를 시키지 않고 직접 한다.  『창의력이 없는 젋음은 무능입니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라면 틀림없이 성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잠들기 전에 그날 하루를 반성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 제1의 재벌 조중훈(趙重勳)씨가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소박한 격려이다. <昌>    @조중훈(趙重勳)씨 약력  ▲1920년 2월11일=경기도 인천(仁川)시 항(港)동 4가 3에서 탄생  ▲67년 9월=고대(高大) 경영대학원 졸업  ▲45년 11월=한진상사 설립  ▲61년 1월=한국(韓國)공항 창립  ▲61년 6월=한진(韓進)관광 설립  ▲62년 1월=경기도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조합 이사장  ▲65년 1월=한국용역군납조합 이사장  ▲65년 10월=서울와사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67년 2월=한국LPG공업협회 이사장  ▲67년 6월=대진해운 대표이사  ▲67년 9월=동양화재해상보험 이사회장  ▲68년 2월=한국공항주식회사 대표이사  ▲68년 5월=한(韓)-월(越) 재단이사  ▲68년 8월=인하(仁荷)학원 이사장  ▲68년 9월=한일개발주식회사 대표이사  ▲68년 12월=한국원면창고 대표이사  ▲69년 3월=대한항공 인수, 대표이사  ▲70년 7월=「말라가시」공화국 명예총영사  -----------------------------------------  ▲67년 11월=은탑산업훈장(73호)  ▲68년 11월=금탑산업훈장(33호), 대통령 표창창  ▲69년 11월=댜통령표창 우승기(외화획득 최고)  ▲70년 11월=대통령표창 우승기(군납부문 최고) [선데이서울 73년 1월1일 제6권 1호 통권 제22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사설] 이슬람 보복테러 차분·정교하게 대비해야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주에 파견된 한국 지방재건팀(PRT)의 차리카 기지가 그제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시설·장비 손상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들어 이미 여섯번째 공격을 받은 데다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에 사살된 직후 일어난 일이어서 우리로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군인을 비롯한 일반 국민이 이슬람권의 보복테러 대상으로 지목됐을 수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과 이슬람권은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에 있다. 멀리는 6·25 당시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해 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대한민국을 도왔다. 이후 1970년대에는 중동에서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우리 기업이 대거 참여해 상생의 협력관계를 만들었다. 그 뒤로도 축구를 비롯한 체육 부문에서 활발히 교류했고, 지난 몇 년 새에는 중동과 동남아·중앙아시아 일대 이슬람권에 한류 붐이 이는 등 이슬람권은 지구촌에서 우리에게 다정한 이웃이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와 이슬람권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우리나라는 본의 아니게 이슬람권의 대척점에 서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면서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돼 참살됐고, 아프간에서 샘물교회 신자들이 탈레반에게 집단 납치돼 피살자가 발생하는 등 비극이 되풀이된 것이다. 이 사건들에서 특정종교가 빌미가 됐다는 사실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슬람권과 척질 까닭이 하등 없지만 국제적인 세력 판도에서 부득이 대립관계로 치부될 개연성은 있다. 따라서 국내의 이슬람 신자들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등 이슬람 국가·국민과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당장은 현실적인 보복테러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이에는 철저히 대비하되 조용히 진행하여야 한다. 우리는 반(反) 이슬람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슬람권과 관련된 외교정책에는 더욱 정교한 판단을 내려 한국과 이슬람권의 관계가 불필요하게 악화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주한미군 해외훈련 일상화될 것”

    “주한미군 해외훈련 일상화될 것”

    “(국방개혁을 통한) 변화는 한·미동맹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존 D 존슨 미 8군사령관(중장)이 20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하텔하우스에서 가진 국방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군의 국방개혁과 관련, “한국군이 지휘구조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 안건에 관해서는 현재 토의가 진행 중이며 결정된 사항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미관계를 더욱 강하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존슨 사령관은 이어 “미군은 오는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국군이 미 공군과 해군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할 것”이라면서 “(군의 변화는) 6·25전쟁 이후 (한·미가)함께 겪어 왔던 변화로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주한미군의 전투능력 강화를 위해 해외 훈련이 일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8군은 지난해와 올해 필리핀과 태국에서 다국적군이 모여 실시한 훈련에 참가한 바 있다. 최근 북한의 동향을 묻는 질문에 존슨 사령관은 “지금 한국과 미국 군의 정보공유가 잘 되고 있고 역사적으로 어느 때보다 강력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정보 수집 능력을 어떻게 향상시킬지 계속 고민하고 있으며, 현재 특별히 이상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군 전력에 대해서는 “한국에 전개하도록 계획된 증원부대 규모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한국군 중심으로)지휘구조만 바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8군사령부가 군수·행정 기능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유사시 미 국방부에 전력 증원을 요청했지만 지금은 그 기능이 태평양군사령부로 이관돼 사령부에 직접 요청하면 된다.”면서 “유사시 지원 병력과 장비의 전개가 더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존슨 사령관은 또 주한미군 병력 유지와 관련해 “그간 특기가 있는 장병을 이라크로 파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들이 전개됐을 때 같은 능력을 갖춘 인력이 한국에 들어와 인력 공백은 없었다. 한·미 간 합의된 주한미군 2만 8500명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주한미군이 해외 훈련에 참가할 때 한반도 위기 발생 시 즉시 복귀할 수 있는 이동수단을 확보해 놓는다.”면서 “미 8군 병력은 한국에서의 임무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 배석한 미 8군사령부 참모장인 도널드 잭슨 대령은 “(미8군은)미 태평양군사령부와 태평양육군사령부가 주관하는 훈련에 참가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한국 내 작전지원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김일성 생일날 대북전단 30만장 살포… 진보단체와 충돌 없어

    탈북자단체와 보수단체가 각각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태양절)인 1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대북 전단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전단 살포를 반대하며 대립했던 주민단체와의 충돌은 없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20여개 탈북자단체 회원 10여명은 오전 6시쯤 대북 전단 20만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 보냈다. 전단에는 3대 세습 등의 북한 체제를 비난하고 리비아 사태 등 중동의 민주화 열풍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탈북자단체는 전단과 함께 1달러짜리 지폐 1000장을 풍선에 넣어 띄웠다.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회원 4~5명도 이날 전단 9만장을 대형 풍선 9개에 매달아 날려 보냈다. ‘북 동포에게 보내는 1달러 담은 자유편지’라는 제목의 전단은 6·25 전쟁의 피해상과 함께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의 실상을 주민들에게 알리면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양말 300켤레를 풍선에 함께 넣어 보냈다. 이 단체의 최우원 대표는 “풍향이 좋지 않아 보내지 못한 전단 1만장은 특정 일에 임진각에서 가까운 제3의 장소에서 날려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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