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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화 시대 ‘고용 안정’ 시급 판단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본격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의미와 같다. 2018년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우리나라도 ‘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정년 연장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국회에서 여야가 정년 60세 연장안에 사실상 합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뒤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연장된 만큼 정년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국민들도 큰 이견이 없었으며, 이는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특히 6·25 이후 1955년에서 1963년 사이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50대가 되면서 그들의 대량 퇴직 사태가 예고된 것도 정년 연장을 이뤄내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일단 정부와 노동계는 적잖은 기대감을 내보이고 있다. 고용 안정성을 담보하며 조기 퇴직자 일자리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금 재정과 의료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의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부양 의무 부담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정년 연장이 장밋빛 제도만은 아니다. 넘어야 할 관문도 숱하게 남았다. 사측은 임금피크제를 임금 삭감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고, 노조는 정년연장은 받아들이면서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 여야가 22일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합의 턱밑까지 이르렀음에도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도 도입 이후 노사의 편법 운용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년 연장이 노사 간 갈등을 더욱 키우는 불씨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임금체계가 연공서열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병행하는 취지도 퇴색될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신규 채용이 줄면서 청년 실업 문제가 심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점도 문제다. 고령자 취업 문제가 청년 취업문제와 ‘제로섬 게임’ 관계에 있는 탓에 퇴직자 수가 줄어드는 만큼 신규 취업의 문턱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퇴직 연령이 2~5년 늦어지면서 생길 수 있는 승진 적체 현상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또 고용주의 부담도 더욱 커진다. 초임 저연령 근로자보다 고령 근로자 수가 많아질수록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일정 연차 이상이 되면 임금이 줄어드는 ‘임금피크제’를 병행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일의 효율성도 문제다. ‘젊은 피’ 수혈이 더뎌지면 회사의 연령 구조가 역피라미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업장에서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역동성이 떨어져 기업 조직이 경직화될 수 있다는 게 사회 안팎의 우려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생산성이 낮아진다는 점이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는 사실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이젠 ‘6·25 전쟁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입니다

     각종 법률에서 6·25사변, 6·25전쟁 등으로 섞어서 쓰던 명칭이 ‘6·25전쟁’으로 정리된다.  안전행정부는 16일 “그동안 ‘6·25사변일’로 쓰여 왔지만 이미 각종 관련 법률에서 ‘6·25전쟁’이라는 표현을 함께 쓰고 있는 만큼 혼란을 막고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6·25전쟁일’로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면서 “공고를 통해 입법예고한 뒤 다음 달 27일까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변’과 ‘전쟁’은 비슷한 의미면서도 선전포고 없이 이뤄진 국가 간 충돌이라는 뜻을 지닌 사변이 전쟁의 하위 개념으로 흔히 쓰이고 있다.  안행부는 또한 오는 28일 이순신 장군 탄신을 기념한 ‘충무공 탄신일’을 앞두고 기념일 명칭을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바꾼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충무공 시호를 받은 이들이 여러 명 있어 기념일의 취지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젠 ‘6·25전쟁일’·‘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각종 법률에서 6·25사변, 6·25전쟁 등으로 섞어서 쓰던 명칭이 ‘6·25전쟁’으로 정리된다. 안전행정부는 16일 “그동안 ‘6·25사변일’로 쓰여 왔지만 이미 각종 관련 법률에서 ‘6·25전쟁’이라는 표현을 함께 쓰고 있는 만큼 혼란을 막고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6·25전쟁일’로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면서 “공고를 통해 입법예고한 뒤 다음 달 27일까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행부는 또한 오는 28일 이순신 장군 탄신을 기념한 ‘충무공 탄신일’을 앞두고 기념일 명칭을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바꾼다고 밝혔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美 보스턴 폭탄 테러] 보스턴 마라톤은

    “신성한 스포츠 행사에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인류의 적이죠.” 1950년 제54회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했던 함기용(83) 대한육상경기연맹 고문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개하고 있었다. 함 고문은 16일 “관중이 몰린 결승선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난 걸 보면 누군가 의도한 것이다.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고, 너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보스턴 마라톤은 한국선수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유명하다. 1947년 51회 대회에 출전한 서윤복(90)이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 최고 기록으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6·25전쟁 직전 열린 1950년 대회에서는 함 고문과 송길윤(2000년 작고), 최윤칠(85)이 1~3위를 휩쓸어 한국 마라톤의 위상을 높였다. 황영조(43)와 이봉주(43)는 1994년 98회 대회에서 각각 4위와 11위를 차지했다. 특히 이봉주는 2001년 105회 대회에서 2시간 09분 42초의 기록으로 우승, 함 고문 이후 51년 만에 애국가를 울렸다. 그러나 최근 한국 마라톤이 침체하면서 이번 대회에는 대표 선수를 파견하지 못했다.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보스턴 마라톤은 1897년 처음 열렸고, 올해 117회 대회가 열렸다. 뉴욕, 런던, 로테르담마라톤과 함께 세계 4대 메이저 마라톤 대회로 꼽힌다. 1968년까지는 ‘애국자의 날’(Patriot’s Day)인 4월 19일에 열렸지만, 그 뒤부터 4월 셋째 주 월요일에 열리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은 1997년부터 국제 마라톤대회로는 유일하게 참가자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연령대별 제한시간 안에 풀코스를 주파해야만 출전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때문에 아마추어들은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긴다. 한편 이날 참사로 보스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프로농구(NBA)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경기는 취소됐다. 보스턴과 인디애나의 NBA 경기는 아예 열지 않는 것으로 정해졌고, 보스턴과 오타와의 NHL 경기는 추후 재편성할 예정이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영광의 굴비 굴비의 영광

    영광의 굴비 굴비의 영광

    젓가락질이 쟀다. 석쇠 위 굴비가 노릇노릇 구워지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성질 급한 누구는 아예 젓가락을 내던지고 양손으로 머리와 꼬리를 붙들고 수박 먹듯 훑었다. 그 맛있는 게걸스러움에 혹했는지 너도나도 개구쟁이마냥 낄낄대며 따라했다. 굴비 한 두름이래야 순식간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영광에서, 그것도 영광굴비였으니 당연했다. 영광스러운 첫인상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은 더 영광스러웠다. 굴비만으로 완전한 영광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 정애임 선생은 “신령 령, 빛 광, 천년의 빛 영광은 지명 그대로 신령스럽고 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라고 운을 뗐다. 장단이라도 맞추려는 듯 겨울 끝자락에 보슬비가 눈처럼 흩날렸고 희끄무레한 안개는 풍경을 수묵담채화로 그려냈다. 신령스러운 빛으로 지명과 딱 들어맞는 정감을 연출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굴비의 영광, 영광의 굴비만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찌뿌드드한 하늘과 으슬으슬한 날씨 탓도 컸다. 그랬으니,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에 들러 직접 굴비를 엮고 한 두름씩 들고 나가 석쇠에 구워 먹을 때의 행복감이 컸을 수밖에…. 새참에 이어 저녁에는 보리굴비, 고추장굴비까지 모조리 맛보고, 다음날 아침에는 조기매운탕도 곁들여 굴비구이를 탐했다. 부드럽고 짭조름한 맛이 먹고 또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어찌됐든 영광은 굴비다. 구태여 ‘어찌됐든’이라고 토를 단 이유는 영광은 굴비로서 완전한 동시에 굴비만으로는 온전히 표현되지 않아서다. 굴비로서 완전한 영광은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이다. 그 명칭의 유래는 고려 16대 국왕 예종(재위 1105~1122년)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딸을 왕비로 들여 권세를 누렸던 이자겸이라는 외척세력가가 있었는데 반란을 모의했다가 적발돼 영광 법성포로 귀양을 오게 된다. 이곳에서 굴비를 맛본 것인데 그 맛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왕에게도 진상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자칫 용서를 빌거나 아부하는 뜻으로 비쳐질까 싶었다. 그래서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굴비屈非라고 써서 올렸다는 이야기인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조기를 말리면 구부러지는데 이 모습을 보고 ‘구비仇非 조기’라고 부르던 게 굴비로 변했다는 설도 있으니 이래저래 사연 많은 굴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굴비가 먹여 살린다는 법성포항 풍경 2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에서는 굴비에 대한 기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직접 엮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체험비는 5,000~7,000원 3 노릇노릇 막 구워낸 영광굴비 맛은 가히 일품이다. 식당에서는 굴비정식 메뉴를 4인이 먹을 수 있는 ‘한 상’ 기준으로 팔기도 한다. 식당에 따라 다르지만 굴비백반은 1인당 1만5,000원선, 굴비정식은 2만5,000원에 판매한다 “법성포에는 파리 한 마리 없어요” 단지 그런 연유 때문에 영광굴비가 유명한 것은 아닌가 보다. 예전에야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산란을 위해 북상하던 조기가 엄청 잡혔다지만 지금은 조기들의 이동경로가 바뀌어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도 영광굴비의 명성에 변함이 없는 이유는, 그만의 맛이 있고 그 맛을 빚어낸 환경이 특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굴비구이를 사이에 두고 겸상한 정기호 영광군수는 영광굴비 자랑과 영광굴비를 만들어낸 법성포 사랑이 대단했다. “옛날부터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많이 잡혀서 굴비 만드는 전통과 역사가 깊어요. 그냥 간을 하고 말리는 것도 아닙니다. 영광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으로 ‘섶간’을 하고 법성포의 천혜의 해풍과 햇빛으로 말려 영광굴비가 탄생하는 것이죠.” 섶간은 영광굴비의 전통적인 염장 방식이다. 다른 곳에서는 염수에 조기를 담가 간을 하지만 영광굴비는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한 마리 한 마리 간을 하고 재웠다가 염도가 낮은 염수에 세척한 뒤 엮어 말린다고 한다. 그냥 염수에 간을 한 굴비를 이곳 사람들은 ‘물굴비’라고 하대하는 이유다. 자랑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법성포는 굴비 생산에 지리적으로나 환경적으로도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췄어요. 신기하게도 법성포에는 파리가 한 마리도 없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물망을 치지 않아도 사시사철 위생적으로 말릴 수 있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법성포 굴비거리를 걸어 보니 파리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수백 수천개의 굴비두름은 그대로 바람과 햇살을 맞고 있었다. 겨울이니 그렇겠거니 싶었다. 쉬이 믿겨지지 않는 ‘파리 전무’의 진실은 언젠가 한여름에 찾아가 확인해 볼 요량이다. 1, 2, 3 영광은 신안과 함께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하다. 영광굴비는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으로 섶간을 한다 바람과 햇살과 천일염이 만들다 대신 영광의 천일염 생산현장은 직접 확인했다. 영광은 신안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일염 생산지다. 16km에 이르는 갯벌과 오뉴월의 따뜻한 햇볕, 4월부터 불어오는 북서풍인 하늬바람이 빚어낸 소금이다. 염산 지역의 영백염전을 비롯해 백서영농조합법인, 황통영농조합법인 등의 대규모 염전이 영광 갯벌 천일염의 명성을 쌓고 있다. 염전 수만 해도 120여 개에 이른다. 도자기판 염전으로 유명한 영백염전에서는 현대화된 시설을 통해 최상의 품질로 태어나는 천일염의 생산과정과 현장을 체험했다. 이 천일염 역시 영광 법성포 굴비의 맛을 빚는 요소 중 하나이니 황금만큼 귀한 소금이다. 비굴해지더라도 먹고 싶고 다시 먹고 싶어서인지 영광굴비는 비싸다. 법성포에서도 한 두름(20마리)에 싸게는 2만원, 비싸게는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시세차익을 노린 가짜 영광굴비가 판을 치는 것도 다 높은 몸값 때문이다. 영광굴비는 조기 중에서도 참조기만을 사용하는데 비슷하게 생긴 부세, 보구치, 수조기, 꼬마민어 등으로 만든 가짜 영광굴비에서부터 중국산 조기로 만든 가짜까지 파다하다. 일반적으로 굴비 머리에 다이아몬드 모양이 있으면 진짜라고 알고 있는데, 유사조기들도 마찬가지여서 위험이 따르는 상식이라고 한다. 어디서 잡혔는지는 진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사실상 확인할 길이 없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가짜에 대처하는 자세 진짜 영광굴비는 어떻게 구별할까? 하도 가짜가 판을 치니 첨단기술까지 동원됐다. 고유인증번호는 물론 생산지와 생산자 정보 등을 담은 QR코드를 부여한 것이다. 대략 10만원 이상의 중고가 제품의 경우 뚜껑을 열면 진품 영광굴비임을 알리는 음성 녹음이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이 알려주는 진품 구별법은 이 진품인증태그를 확인하는 것이다. 특품사업단 건물은 굴비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직접 구매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굴비 엮는 체험도 할 수 있으니 ‘영광굴비투어’의 출발지로 삼아도 좋겠다. 여기서 구입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겠다 싶어 4만원짜리 영광굴비 한 두름을 들고 왔더니 한동안 밥상머리 즐거움이 컸다. 법성포 굴비거리를 걷노라니, 영광 법성포의 바람과 햇볕을 머금고 이곳의 방식대로 탄생한 굴비라면 어디에서 잡혔든, 어떤 조기로 만들어졌든 그 나름의 가치가 있지 않은가 싶었다. 방점은 어디까지나 영광 법성포에 찍혀야 마땅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단, 속이지도 속지도 말아야 하겠지만…. ●영광 볼거리 영광에는 굴비 말고도 다양한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다. 우선 문화관광해설사 정애임 선생이 뗀 운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정신이 살아 있는 신령스러운 빛의 고장 영광’이라는 표현 속에는 영광이 품은 종교적 색채가 묻어 있다. 3대 종교가 깃들여져 있는 곳 다시 법성포다. 영광 법성포는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384년에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뜻한다고 한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는 법성포를 통해 백제불교를 전한 마라난타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다. 석가모니의 출생과 고행까지의 과정을 23개의 원석에 간다라 조각기법으로 음각한 부용루를 비롯해 간다라 유물전시관, 탑원, 4면 대불상이 들어서 있다. 부용루를 거쳐 4면 대불상이 있는 정상까지 오르면 호젓한 경치가 펼쳐진다. 마라난타가 제일 처음 지은 사찰이 바로 ‘불갑사’다. 불佛은 불교를, 갑甲은 처음, 으뜸을 뜻하니 절 이름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불갑사도 불갑사이지만 이곳에서 9월경에 열리는 상사화(꽃무릇)축제도 유명하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잎이 진 뒤에야 꽃이 피니 서로 영원히 만나지 못한 채 사무치게 그리워만 해서다. ‘화엽 불상견 불상초花葉 不相見 相思草’의 한이 서린 꽃이다. 상사화 3대 군락지는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고창 선운사인데 이곳의 규모가 가장 크다. 그래서 9월 상사화 꽃이 피면 불갑사 인근은 그야말로 빨간 융단이 깔린다고 한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 뒤편으로는 숲쟁이꽃동산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도 봄이면 꽃이 만발하고 활엽수림이 싱그러워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1 칠산바다를 따라 조성된 노을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노을전시관이 있다. 바다를 감상하며 노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2 마라난타가 최초로 세운 절인 불갑사. 불갑사 주변은 국내 최대 상사화 군락지여서 9월에는 빨간 융단이 깔린다 3 원전에서 나온 온배수를 활용해 운영되고 있는 에너지아쿠아리움. 기대보다 규모가 크고 수중생물도 다양하다 원자력에서 노을까지 영광은 원불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교조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영산성지를 비롯해 박중빈의 생가 터, 기도를 올렸던 바위 등이 영광에 남아 있다. 기독교 정신도 깃들여져 있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교회 탄압에 맞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신자들이 염산교회에 77명, 야월교회에 65명이나 된다. ‘기독교인순교지’는 이들 순교자들을 기리고 있다. 이 밖에도 원자력 발전의 원리와 안전성 등을 홍보하는 ‘원전홍보전시관’과 원전 온배수로 꾸민 ‘에너지아쿠아리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9번째로 선정된 바 있는 ‘백수해안도로’, 해변을 따라 조성된 ‘노을산책길’과 ‘노을전시관’, ‘불갑저수지 수변공원’, ‘가마미해수욕장’ 등이 굴비 너머의 다채로운 영광을 채색하고 있다. 모든 관광지가 무료입장이니 이 또한 영광의 매력이다. 여행의 피로는 노을전시관 인근에 있는 ‘영광해수온천랜드’에서 칠산 바다를 조망하며 온천욕으로 풀 일이다.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영광군 www.yeonggwang.go.kr travie info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 법성포 내 400여 개 굴비생산업체들로 구성됐다. 영광법성포굴비의 가공, 보관, 유통,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에 한해 전남품질인증마크가 부착된다. 굴비의 생산과정과 요리법을 홍보하고 있으며 엮기 체험과 구매도 가능하다. 주소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1-2 문의 061-356-1657 백제불교최초도래지┃주소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812 문의 061-350-5999 영광해수온천랜드┃주소 전남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764 문의 061-353-9988 불갑사┃주소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8 문의 061-353-8258 에너지 아쿠아리움┃주소 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514 문의 061-357-2405 영광 노을전시관┃주소 전남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764 문의 061-350-560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보수는 되지만 진보는 안 된다?

    보수는 되지만 진보는 안 된다?

    ‘보수 단체의 도로 점용은 되고 진보 단체는 안 된다?’ 서울 중구청이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농성장을 철거한 가운데 구청의 행정 집행이 ‘이중 잣대’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구청 측은 쌍용차 해고자들이 인도를 장기간 불법 점용했다는 이유로 천막 등을 강제 철거했다. 반면 불과 400여m 떨어진 길 건너편에선 보수단체가 2년 가까이 인도를 점유한 채 홍보전을 벌이고 있지만 강제적 행정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12일 중구청 등에 따르면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인도에는 6·25전쟁 관련 전시물 100여장이 약 30~40m가량 늘어서 있다. 한 보수단체가 2011년 6월부터 6·25전쟁에 대해 알리고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겠다며 설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구청이 쌍용차 농성장에 한 것처럼 도로법만 엄격히 따지면 해당 선전물 설치는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도로법 38조, 45조에 따르면 도로에는 장애물을 쌓아 놓을 수 없고 점용하려면 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해당 단체는 관할 경찰서에 선전전 신고만 했을 뿐 구청의 도로 점용 허가는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쌍용차 노조의 경우 도로 점용 허가는 받지 않았으나 관할 경찰서에 집회용품 등 집회 신고를 했다. 하지만 구청 측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이 아닌 도로법 위반 사항”이라며 농성장을 강제 철거했다. 중구청은 쌍용차 농성장의 철거 이유 중 하나로 “천막 등이 통행에 방해된다는 민원을 여러 번 접수받았다”고 밝혔지만 6·25전쟁 전시물에 대해서도 같은 민원이 수차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법 적용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중구청 관계자는 “도로법상 6·25전쟁 홍보물도 불법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홍보물의 취지가 좋고 해당 단체는 구청의 지적에 버스 정류장 앞 홍보물을 일부 거두는 등 계도에도 잘 따랐다. 그래서 강제 철거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北 미사일 발사 임박] “北, 미사일 쏠 순 있어도 전면전은 못 일으킬 것”

    지난해까지 한국으로 입국한 북한 이탈 주민은 총 2만 4614명. 탈북자들은 고조되는 북한의 위협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체감온도는 달랐지만 탈북자 대부분은 체제 강화를 위한 김정은의 의도된 ‘액션’일 뿐 전쟁 가능성은 낮다고 입을 모았다. 최청하(56) 숭의동지회 사무국장은 “미사일을 쏠 수는 있어도 전면전은 절대 없을 것”이라면서 “전쟁을 하려면 넉넉한 무기와 공고한 우방국이 필수인데 6·25전쟁 때 북한을 도와줬던 중국, 소련 등 지원국이 지금은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최 국장은 “미국과 회담 자리를 만들기 위한 벼랑 끝 액션에 불과하다”면서 “한국이 그 도발에 수긍하고 지원한다면 북한 정권이 연장되는 건 물론이고, 나쁜 버릇을 영영 못 고친다”고 강경한 대응을 촉구했다. 7년 전 탈북한 서학철(54)씨도 “허무맹랑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절대로 한국·미국·일본 본토에 미사일을 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내부적으로 김정은 정권을 안정화시키고, 외부적으로 북한 체제의 강건함을 과시하기 위한 액션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북한 주민들은 핵, 미사일이 있으면 제국주의자(한·미·일)들이 건드리지 못한다고 안심한다”고도 덧붙였다. 전면전은 없지만, 위협은 더욱 고조될 거라고 내다보는 탈북자도 있었다. 북한에서 19년간 장교로 복무했던 김성민(51)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미사일을 쏠 확률은 아주 높고, 추가 핵실험까지 예상된다”면서 “과거 김정일은 계산된 대남 도발을 했는데, 김정은은 국정 경험도 없고 어린 혈기가 겹쳐 극한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확산시키는 게 목표인 만큼 한국이 강경하게 받아치면 결국 스스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대평(43)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은 “무력 충돌보다는 오히려 인터넷 사이버테러나 도시 시설 폭발 등의 테러를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을 하기엔 북한군의 여력이나 자금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건 내부 체제를 다지기 위한 식상한 수법인데, 북한은 미국·한국과의 관계를 냉각시켜야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탈북자들은 심리적 어려움도 토로했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려 무던히 애를 써도 전쟁위협이 고조될 때면 여전히 이방인으로 느껴진다는 것. 통일교육 전문강사인 김혁(31)씨는 “대놓고 나를 비난하지는 않지만 일부러 들으란 듯 ‘빨갱이’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더라”면서 “탈북자와 북한 지도층을 동일시하며 이상한 질문을 해대는 건 불쾌하다”고 전했다. 회사원 박모(40)씨는 “초등학생 딸아이가 따돌림을 받지 않을지 걱정돼 담임 선생님한테 탈북자 출신임을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면서 “한국에 정착한 지 5년이 넘었는데도 전쟁 얘기가 불거질 때면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강모(31)씨는 “탈북자들끼리는 만나도 별로 북한 얘기를 안 한다”면서 “북한이 싫어서 나왔는데 한국에서도 섞이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불행하지 않냐”고 밝혔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DB를 열다] 1963년 서울 불광동 ICA 주택

    [DB를 열다] 1963년 서울 불광동 ICA 주택

    6·25전쟁으로 많은 집이 파괴되어 주택난이 심각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대한주택영단이 중심이 되어 공영주택들을 공급했다. 대한주택영단의 전신은 1941년 창립된 조선주택영단인데 주택영단에서 지은 집은 ‘영단주택’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영단주택이 지금도 서울 문래동과 인천 용현동 등에 남아 있다. 영단주택 외에도 공영주택들은 자금의 출처나 주택의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었다. 재건주택, 부흥주택, 시영주택, 난민주택, 도시 A형 등이다. 이런 주택들은 도심보다는 변두리 지역에 많이 지어졌다. 예산 부족으로 외자를 도입해서 공영주택을 건설한 사례가 있다. 미국이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AID(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차관으로 지은 AID 아파트도 그중의 하나다. 1972년부터 1981년 사이에 서울 영동·구반포·도화동, 부산 해운대 등 여러 곳에 이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미국 국제협조처인 ICA(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의 자금을 지원받아 원하는 사람들에게 융자해주어 지은 주택(ICA 주택)도 외자로 지은 주택의 하나다. 화장실도 집 안으로 들이고 부엌도 입식으로 바꾼, 당시로서는 현대식 주택이었다. 사진은 서울 불광동에 지어진 ICA 주택으로 불광동 개발의 시발이 되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25년차 시인, 신인 소설가 되다

    25년차 시인, 신인 소설가 되다

    “무척 작고 보잘 것 없는 몸이었지요. 그런 작은 몸 안에 저런 쇠막대를 품고 살아오시다니, ‘얼마나 무거웠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시’에 담을 수 있었다면 그랬겠지만, 소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5년차 시인인 원재훈(52). 그는 4년 전 국가유공자인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했다. 유골을 수습하다 검게 그을린 다리뼈 부근에서 쇠막대 7개가 나왔다. 말굽의 편자처럼 평생 몸에 간직했던 쇠막대의 존재는 그제서야 작가에게 드러났다. 황해도 개성 출신인 아버지는 6·25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조각난 뼈들을 잇기 위해 의료용 쇠막대를 박고 평생을 살았다. 회한이 물밀듯 몰려왔다. 한평생 인생이란 짐을 허리에 지고 터벅터벅 걸어왔을 아버지의 삶이 떠올라서다. 쇠막대 7개는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 쉰 고개를 넘었지만 장편소설을 쓰기는 처음이다. 작가는 “2003년 마지막 시집 ‘딸기’를 출간한 뒤 도무지 시가 써지지 않았다. 6년 전부터 가끔씩 이런저런 소설을 썼지만 문학을 접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고 말했다. 2년여동안 구상하고 다시 1년여간 집필했다. 지난달 출간된 소설 ‘망치’(작가세계 펴냄)는 이런 담금질을 거쳤다.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이란 부제가 붙었다. 1, 3부는 아들이 떠올린 아버지 이야기다. 화자 상원은 출가한 스님이다. 두 집 살림을 꾸린 아버지 탓에 생업전선으로 등떠밀린 어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자랐다. 상원은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삶에 회의를 느껴 출가한다. 이때 들려온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머리에는 망치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화장터에서 아버지의 다리뼈에 박힌 쇠막대를 발견한다. 2부의 화자는 상원의 어머니. 잘생긴 은행원이었던 남편을 의지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뒤로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노쇠한 남편은 병석에 누워 돌아왔다. 어느 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뜬 작은 처에게 망가진 휴대전화에 대고 “만나자”고 속삭이는 소릴 듣고 눈이 뒤집힌다. 망치로 휴대전화를 부수다보니 남편의 숨도 멎어 있었다. 10년 뒤, 상원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소에서 이복동생 상민과 재회한다. 잔혹했던 가족사도 치유받는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전적 소설은 아니다”면서 “독자들이 ‘스스로 힐링이 된다’고 말 할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오늘의 눈] 서해5도민에게 배워라/김학준 메트로부 차장급

    [오늘의 눈] 서해5도민에게 배워라/김학준 메트로부 차장급

    북한의 도발로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나라 최북단 백령도나 연평도를 찾는 보도진들이 접하는 것은 언론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다. 자신들은 불안해하지도 않고, 불안하다고 기자들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도 막상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는 기자를 믿지 못할 존재처럼 여기는 정서가 형성돼 있다. 부당한 취급이라고 탓할 일만은 아니다. 자업자득이다. 기자들이 “분위기가 평상시 같으면 기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 실정을 과장 보도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뻔한 얘기는 의미가 없다”는 데스크의 종용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서해5도발 기사는 실제 사정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10년이 넘게 되풀이돼 온 일이다. 이런 원죄(?)가 있어서인지 백령·연평도에서 주민들을 인터뷰하기란 쉽지 않다. 운 좋게 한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는 주민을 만나면 다른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도 한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 대신 ‘평소와 다름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제1, 2연평해전, 대청해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연평도 피격 당시에는 주민들이 많이 놀라기는 했지만 전원이 다시 돌아와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들은 알고 있다. 현재 북한이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섬 주민들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생계와 자식 학비를 대는 일이다. 한 주민은 “설사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불안·초조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처하는 당국의 태도가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북한이 위협의 강도를 높일 때마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폭탄으로 대응하고 있다. 오죽하면 ‘치킨게임’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거친 말이 연쇄 반응하면서 오가다 보면 행동으로 옮겨질 수도 있다. 말에는 최면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압박하는 상대에게 일일이 대꾸하는 것은 또 다른 억지의 빌미가 된다. 때로는 무시하는 게 오히려 상대의 처신을 어렵게 한다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체제 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처해 손해를 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북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약자로 비춰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국방력은 약하지 않고 국제정세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계속되는 전쟁 위협에도 주말 나들이객이 줄을 잇고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는 등 국민 대다수가 동요하지 않는 것을 두고 안보불감증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평소 무책임하게 ‘전쟁 불사론’을 외쳐온 보수주의자들의 궤변이다. 6·25전쟁에서 활약한 백선엽 장군은 “실제 전쟁터에서 용감한 병사는 평소 용감한 척 떠들어대던 병사가 아니라 말 없던 병사들이었다”고 말했다. 당국자들에게 권한다. 서해5도민을 위로한답시고 가서 말의 성찬을 늘어놓고 사진이나 찍지 말고 그들의 배짱부터 배워라. kimhj@seoul.co.kr
  • KBS ‘정권 편향 다큐 기획’ 싸고 노사 대립 팽팽

    KBS ‘정권 편향 다큐 기획’ 싸고 노사 대립 팽팽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통폐합이 노사 갈등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KBS는 18개월 만의 대대적인 봄 개편에서 기존의 ‘역사스페셜’ ‘환경스페셜’ ‘과학스페셜’ ‘스페셜’ 등 4개의 다큐 프로그램을 없앴다. 대신 지난 4일 ‘KBS 파노라마’와 ‘다큐극장’ 신설을 발표했다. KBS PD들은 신설될 ‘다큐극장’의 정치 성향을 놓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에 사측은 재협상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신설된 ‘다큐극장’의 기획 의도는 6·25전쟁 이후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밤 8시에 방영될 프로그램의 제작은 KBS 내부의 다큐국이 아닌 외주 제작사들에서 맡았다. KBS의 한 다큐국 PD는 “담당 본부장이 ‘KBS PD들을 못 믿겠다’는 사내 최고위층의 발언을 전했는데 그것이 제작 능력인지, 사상적인 부분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공개한 한 외주 제작사의 초기 기획안에는 ‘10월 유신’ ‘새마을운동’ ‘육영수 여사 피습’ 등의 아이템이 포함돼 있었으나 이후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KBS PD들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KBS가 ‘청와대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KBS 측은 “외주 제작사를 선별할 때부터 공정한 평가를 거쳤고 걱정할 만한 내용을 다루지도 않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다큐극장’에 참여한 외주 제작사들에 대한 선정 시비도 불거졌다. KBS 노조에 따르면 최종 선정된 두 곳의 외주사 가운데 한 곳은 2005년 KBS ‘수요기획’에서 허위 내용 방송과 관련해 퇴출된 외주사를 운영했던 전모씨가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전씨는 KBS에 글을 보내 “자진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KBS는 해당 외주사에게 ‘다큐극장’ 1, 3편의 제작을 그대로 맡겼다. KBS의 한 PD는 “‘다큐극장’의 애초 기획안에 담긴 ‘유신’ 관련 부분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강압적인 자원 분배가 필요했고 철권이 요구됐다’는 식의 표현이 들어 있다”면서 “이런 프로그램이 어떻게 비정치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다큐극장’ 신설은 물론 기획과 편성, 아이템 선정까지 국장과 부장 등 간부들이 실무진을 배제하고 결정해 정권 편향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KBS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백선엽 장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친일파, 독재자 미화 논란에 휩싸인 전력이 있다. KBS PD협회는 비대위를 구성해 사측과 협의해 왔다. ▲‘다큐극장’의 제작 주체를 KBS 다큐국으로 변경하고 ▲방송 시점을 6월 이후로 늦추며 ▲형식 등을 바꿀 수 있다는 6개 안에 대해 의견 접근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 4일 봄 개편 설명회 직전 ‘애초 안대로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내부의 반발 기류가 완강하자 사측은 다시 재협상 카드를 내밀었다. 홍진표 KBS PD협회장은 “다큐국이 참여해 외주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인하우스’ 방식을 논의 중”이라며 “사측이 앞서 합의를 번복했던 만큼 성사를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큐를 둘러싼 KBS 노사 간 갈등은 지난 1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 초 대표적인 4대 다큐멘터리 코너가 통폐합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15년차 이상의 다큐국 중견 PD 20여명은 1월 말 경기 수원의 연수원에서 워크숍을 열고 ‘다큐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했다. 과학다큐를 맡았던 김현기 PD는 “당시 논의에서 ‘‘역사스페셜’을 강화하되 현대사는 다루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을 배분해 통합과 분화의 투트랙을 추구한다’, ‘기존 4대 다큐의 브랜드를 강화하되 중장기 프로그램도 내놓는다’는 의견이 도출됐다”고 설명했다. 외주 제작을 담당하는 김성수 KBS 국장은 “‘다큐극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통해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인 세대 간 소통 부재와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비롯됐다”며 “‘그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 ‘시간의 징검다리’ 같은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정파를 비호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세대 간 갈등을 푸는 것은 KBS의 공적 책무”라고 덧붙였다. KBS ‘다큐극장’은 오는 27일 ‘88서울올림픽’, 다음 달 4일 ‘파독 광부, 간호사 50년’ 등을 다룬다. 다음 달 18일에는 ‘서울의 봄, 5·18’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한편, KBS는 앞서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고성국 정치평론가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의원의 처남인 최양오씨를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내정했다가 라디오 PD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모두 아나운서로 진행자를 교체한 상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환갑 맞은 SK그룹 ‘조용한 기념식’

    환갑 맞은 SK그룹 ‘조용한 기념식’

    수출 600억 달러, 고용 8만명의 재계 3위 기업. 8일 환갑을 맞는 SK그룹의 현재 위상이다. 섬유, 석유화학, 이동통신 등을 주력 사업으로 키워 국내 산업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 왔기에 성대한 ‘환갑잔치’가 당연시되지만 축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구속 중인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 부회장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이날 오전 경기 용인 SK아카데미에서 조용한 기념식을 연다. 비공개 행사로, 오후 공판에 출석하는 최 부회장을 비롯해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최신원 SKC 회장 등 고위 관계자와 원로들이 참석한다. SK의 역사는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이 1953년 4월 8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원시 권선구 평동 4번지 일대를 매입해 선경직물을 세우고 16대의 직기를 돌리면서 시작됐다. 이후 최종현 회장이 1973년 선경석유를 설립한 뒤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4271억원에 인수해 그룹 사업의 3대축을 세웠다. 1976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SK는 국내 성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최태원 회장 주도로 글로벌 공략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2004년 수출 100억 달러, 2005년 200억 달러를 돌파하고 지난해에는 수출 600억 달러를 넘어섰다. SK 관계자는 “한 갑자(甲子)를 돌았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는 것”이라며 “따로 또 같이 3.0의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SK그룹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김창근 의장은 창립 60주년에 맞춰 발간된 사사(社史)를 통해 “지난 60년은 국민의 의(衣)생활을 바꾸고 산업화시대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에너지를 만들어 왔다”면서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기술(IT) 강국을 선도해 왔다”고 회고했다. 이어 “앞으로의 명제는 행복과 국제화에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도 60년사 기념사에서 “SK의 도전·열정의 원천과 목적은 행복에 있다”며 “구성원 모두가 언제나 사회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기업시민으로서 해 나갈 역할을 찾기 위해 힘쓰자”고 당부했다. 한편 최 회장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참 매운 역사구나, 그 옛날 ‘시월드’

    “며느리 하나 죽는 거는 논둑 하나 무너진 거밖에 안 된다. 큰 소 한 마리 죽는 거보다 몬하다.” (김남규. 1929년생. 포항) “각시를 닛 얻었어. 애기꺼징 낳고. 집이 들어앉아, 다섯 달두 살다, 여섯 달두 살다, 가거덩.” (정소덕. 1931년생. 진도) “화장실에. 옛날에. 짚토매 이런 거 갖다 놓잖아. 그거 훌 깔고. 거기서 낳았어. 우리 큰딸을.” (지용자. 1928년생. 강릉) ‘시집살이 이야기 집성 1’(박이정 출판사)에 채록된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6·25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어 1970년대 한강의 기적과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눈물이 찔끔 난다. 지난해 여자 대통령이 탄생한 나라지만,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사는 일은 맵고 짜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축복하는 프랑스적 감성을 떠올리면 더 서글퍼진다. 며느리 목숨을 큰 소 한 마리보다 못하게 취급하더니 울꺽 화가 올라오고, 산모사망률이 그리 높을 수밖에 없었음을 지용자 할머니 구술에서 깨달을 수밖에 없다. 바람난 남편과 씨앗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 정소덕 할머니는 어떤가. 요즘 같으면 이혼하고 여자에게도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개명한 세월이 아닌가. 오랫동안 구비문학 연구를 해 온 신동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비롯한 24명의 연구자가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모두 109명의 구술 자료를 담았다. 제주 4·3 사건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도 포함됐고, 사연의 유형에 따라 총 10권으로 나눴다.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이 따로 없다. 신동흔 교수는 “역사학자들이 특정한 관점과 목적의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구술을 받는 것과 달리 국문학자들의 구술정리는 문학적인 접근”이라며 “할머니들이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이야기, 즉 사실은 물론 과장과 허구, 주관적 감정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모두 기록했다”고 했다. 이런 작업의 의의에 대해 신 교수는 “한 사람의 생애는 하나의 우주다”고 말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지슬과 욱일승천기/박찬구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지슬과 욱일승천기/박찬구 정치부장

    ‘지슬’을 보는 내내 참담하고, 쓰렸다. 소설가 윤대녕이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에서, 도륙된 4·3의 혼령을 찾아 나서던 장면이 스쳤다. 잔인하고 처참한 4월, 잔상은 길었다. 소극장의 불이 켜졌다. 20대, 30대 관람객이 주섬주섬 일어섰다. 손수건으로 눈을 훔치는 젊은 여성, 충격 받은 듯 날 선 눈빛의 20대 청년, 앞열과 뒷열의 태반이었다. 의외였다. 어찌 보면 ‘빨갱이 시대’, 우리 현대사의 암운은 그들의 짐이 아닐 터였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 현대사의 상흔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에 나치 거수경례를 합성한 대학생들의 사진이 인터넷에 나돈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안쓰러움을 넘어 섬뜩했다. 의도했든, 우연이었든, 무엇이 그들을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광기에 몰입하게 했을까. 사레 들린 듯 낯설고 소름이 돋았다. 때로는 결기로, 때로는 광기로 현대사를 독해하는 비슷한 또래의 얼굴들이 오래도록 겹쳤다. 개인과 집단의 취향이나 편향에 따라 근현대사를 달리 해석한다고 해서, 해묵은 시시비비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파주 어느 출판사의 실장이 전하길, 20대 직원에게 6·25전쟁이 언제 있었던 일이냐고 농 삼아 물었더니, 그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1970년대 아닌가요” 그랬단다. 역사 서적을 전문으로 펴내는 출판사라니 낭패감은 더했다. 어디서부터일까, 길어야 100년 안팎을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젊은 세대에게 방치된 것이. 물론 근현대사는 민감한 현재진행형이다. 친일과 좌우대립, 동족상잔, 쿠데타, 독재, 유신…. 그 뿌리가 생생히 이어지고 있고, 그 직계가 여전히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대선도 현대사 논쟁으로 요동을 치지 않았던가. 연좌니 부관참시니, 새삼 거론하지는 않으려 한다. 꺼림칙한 건, 그러한 연유로 자라나는 세대가 역사의 몰가치성과 망각에 빠지는 건 아닌지, 치부를 감추고 오욕을 덮기 위해 제도적으로 자라나는 세대에게서 역사를 떼어놓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11월 치르는 2014학년도 대학 수능부터는 2005~2013학년도의 7차 교육과정 때 채택된 ‘국사’와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한국사’ 하나로 합쳐친다. 탐구영역 선택과목도 3개에서 2개로 줄었다. 지난해까지는 ‘한국 근현대사’ 과목의 선택률이 사회탐구 영역 11개 과목 가운데 세번째 정도 됐다는 게 교육 현장의 전언이다. 하지만 올해 수능부터는 선택과목 수가 줄어든 데다 한국사 전체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역사 과목이 홀대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중국 동북공정의 이론적 근거는 일제의 식민사관이다. 한민족의 활동 영역을 한반도 내로 축소시켜 민족 정기를 말살하려 한 식민사관을 빌미로 중국이 우리 조상의 북방 영토를 넘보고 있다. 역사는 영토이며, 자산이고, 정신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에서 우선 배울 것이 언론에서 떠드는 중견기업 육성이나 선진 정치, 국가 발전 모델은 아닌 듯하다. 가까운 역사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그들의 인문학적 깊이와 통찰을 새겨야 한다. ‘창조’든 ‘혁신’이든 과거를 덮고 역사를 경시해서야 한바탕 소동에 허공의 모래성 아니겠는가. ckpark@seoul.co.kr
  • 4월의 독립운동가 김붕준

    4월의 독립운동가 김붕준

    국가보훈처는 29일 김붕준(1888~1950)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919년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군무부 서기와 참사, 국무원 비서장 등을 역임했다. 1939년 임시의정원 15대 의장을 맡아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에 힘썼다. 1944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임되고 1945년 신한민주당을 창당하는 등 조국 광복에 헌신했다. 광복 후 신탁통치반대와 통일민족국가 건설운동에 전념하다가 1950년 6·25 전쟁 때 납북돼 전란 속에서 타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기리어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인도적 지원·교류 통해 北 비핵화 유도

    인도적 지원·교류 통해 北 비핵화 유도

    박근혜 정부의 ‘선(先) 남북 간 신뢰 구축, 후(後) 비핵화’로 상징되는 대북·외교 기조 변화는 이명박 정부 당시 대북 정책 등에 대한 비판이 대폭 반영된 궤도 수정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협력을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하며 동력을 상실한 비핵화 협상을 견인한다는 구상이다. 27일 외교부와 통일부의 이례적인 합동 업무보고로 윤곽을 드러낸 박근혜 정부의 대북·외교 기조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신뢰를 전면에 포진시키며,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두 개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 북핵과 남북관계를 직접 연계시킴으로써 북핵과 남북관계 모두 악화시킨 데 대한 학습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새 정부는 북핵 사태와 남북관계를 연계하지 않고 신뢰 프로세스에 포함된 각종 유도책으로 북측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전략을 세웠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 한국이 주도적으로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 변화를 위한 노력을 상황에 구속돼서 수동적으로 하지는 않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 인도적 문제와 순수한 사회경제 교류라는 ‘낮은 수준’의 신뢰부터 구축한다는 방안이라는 점에서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이후 가동된 ‘5·24’ 대북 제재 조치의 무조건 해제는 검토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외교부는 ‘대화와 압박’이라는 기존 투트랙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분간은 북한 3차 핵실험 등에 대한 유엔 결의 2094호 등 대북 제재 이행에 외교력을 집중하면서 국제적 공조를 통해 2008년 이후 중단된 6자회담의 추동력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비핵화에는 결코 쉼표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북 압박의 핵심 지렛대로는 미국 및 중국과의 외교 공조가 꼽힌다. 한·미 동맹은 21세기에 맞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심화하는 수순으로 가고, 한·중 관계는 현재의 차관급 전략대화의 급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 정치·안보 협력의 파트너로 발전시킨다는 복안이다. 북한이 존재를 공식 부인해 온 국군 포로와 납북자 송환의 단초가 마련될지도 주목된다. 통일부는 현금과 물자 등의 대가 지불을 통해 국군 포로, 납북자를 송환하는 프라이카우프 방식을 업무보고에 포함했다. 이는 미국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에서 이미 활용된 방식이다. 1996년 이후 북한에서 이뤄진 미군 유해 발굴 작업에서는 시신 1구에 9만여 달러(약 1억원)의 비용이 북측에 지원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0월 당시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프라이카우프 방식에 대한 양해각서에 서명했지만 최종 합의는 불발됐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 대가성 현물을 준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지만 인도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는 별개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남북관계의 유연성 확보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별’들의 마지막 봉사

    군사시설보호구역과 군 협의 업무가 많은 접경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장성 출신을 안보정책자문관으로 잇따라 채용하고 있다. 경기 양주시는 21일 각종 군 협의 업무를 자문해 줄 관군협력관에 지난 1월 말 예편한 손기화 전 육군 65사단장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사무관(5급) 대우 계약직이지만 현삼식 양주시장은 손 협력관을 예우해 시장 접견실을 집무실로 내줬다. 이같이 군과의 협의가 많은 접경지역 지자체 가운데 양주시처럼 군 장성 출신을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한 곳은 경기도, 김포시, 파주시, 포천시 등 확인된 곳만 5개에 이른다. 도는 2006년 10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예비역 장성 4명을 안보정책자문관으로 임용해 을지연습 및 군 관련 업무 협의 때 교량 역할을 맡기고 있다. 파주시는 2010년 10월 투자진흥과 군관협력팀에 예비역 소장 출신의 군사정책자문관 1명을 배치, 각종 군 협의 업무에서 조언을 받고 있다. 포천시는 2010년 12월부터 총무국에 3년 계약직의 군협력관을 두고 있으며, 김포시는 지난해 10월부터 행정과 소속으로 5급 상당의 안보자문관을 배치했다. 채용된 자문관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 사단장 출신이라 지역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해당 지자체가 산업단지 조성이나 대학·종합병원 유치 때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국책 또는 시책사업과 관련한 대형 시설의 입지 가능 여부를 사전 심사할 경우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 가장 큰 쟁점은 군 작전계획에 지장을 주느냐인데, 이들 자문관이 간단히 가부를 판단해 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군부대와 협의 때 윤활유 역할을 한다. 실제 시 면적의 91%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인 파주시에서는 군사정책자문관 역할이 두드러진다. 곡릉천 등 대형 하천에 30~40년 전 설치된 대전차 장애물인 용치가 물 흐름을 방해해 집중호우 때 제방 붕괴나 농경지 침수 등의 피해를 입혀 왔으나 관할 군부대 반대로 철거를 못 해왔다. 그러나 자문관이 2011년 용치를 대체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 관철시켰다. 파주LCD기숙사 신축, 적성산업단지 조성, 영태리 훈련장 이전 등 군 작전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각종 숙원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자문관들은 보통 매주 20~24시간 근무하며 2000만원대 낮은 연봉을 받고 있으면서도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종기 파주시 군사정책자문관은 “파주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하다 보니 제2의 고향이 됐다. 현역 때 군인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 못하는 게 늘 안타까웠다. 마침 집도 파주에서 가까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뭔가 역할을 더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직급 등 대우에 상관없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명채 파주 투자진흥과장은 “학식과 덕망이 높고 공사가 분명해 군 협의 업무뿐 아니라 6·25 전적지 조사 및 서적 발간 등 기타 업무에도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지방행정의 달인] 행정달인 18인 릴레이 인터뷰 ④

    [지방행정의 달인] 행정달인 18인 릴레이 인터뷰 ④

    ‘제3회 지방행정의 달인’ 릴레이 인터뷰 4회째다. 전남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정연권 농촌지도관은 눈으로만 즐기는 야생화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켰고, 충남 부여군 고도문화사업소 이계영 문화재관리팀장은 국내 최고의 연꽃 단지를 만들어 냈다. 또 부산 동구 건축과 현지영 주무관과 인천 남구 최영호 팀장은 각 지역에서 낡은 도심을 다시 찾고 싶은 거리로 만들어 낸 ‘도시 디자인의 달인’들이다. ■ 정연권 전남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관 토종 야생화 향수·나물로 혁신 지역 성장동력으로 들판의 꽃박사 “지난해에는 탈락했는데 기어이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를 의미하는 달인에 선정됐습니다. 그 어떤 훈장이나 상보다 훨씬 값어치 있고 큰 영광입니다.” 전남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정연권(55) 농촌지도관은 ‘야생화를 실생활에 접목시킨 꽃 박사’로 불린다.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야생화를 꽃꽂이 소재, 분화용, 생태조경용, 향수, 압화, 신소재, 나물 등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연 200억원의 소득과 생산유발 효과를 창출하는 등 구례군 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시켰다. 꽃과 잎을 눌러서 말린 그림인 압화 예술인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압화대전’도 기획, 농촌지역을 세계에 알리는 마케팅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2002년 최초로 압화 공모전을 열고 각종 문화행사를 추진, 도농문화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정 지도관은 2008년부터 일본·타이완·프랑스 등 7개국의 압화 예술인이 참여하는 문화행사로 공모전을 격상시켰다. 상도 대통령상으로 격상시켜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대회로 성장시켰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 개량꽃 일색에 실망한 정 지도관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야생화를 선보이겠다고 결심했다. 이때부터 지리산 야생화 1526종 등 4596종에 대한 생태와 서식 조사, 재배 가능 여부와 시장성 등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리산 자생화 분화재배 기술을 개발, 대량 증식과 판로를 개척한 그는 이후 옥잠화, 원추리 천연향을 추출해 노고단 향수를 개발한 데 이어 녹차향수 등 천연향을 상품화했다. 정 지도관은 순천대·광주교대 등 대학에 출강, 연구하고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과 야생화의 중요성과 우수성을 알리는 등 후진 양성에도 헌신하고 있다. 30여년 야생화를 연구, 야생화를 구례의 대표 산업으로 발돋움시킨 정 지도관은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며, 저탄소 녹색성장과 자연 생태 환경보전의 소재 산업으로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야생화를 식용 소재로 활용해 지리산 10대 나물을 생산하는 등 장수힐링산업으로 육성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남은 공직 기간 4년 동안 노하우를 전수해 주변이 야생화 천지가 되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구례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이계영 충남 부여군 고도문화사업소 문화재관리팀장 황무지 궁남지에 1000만송이 연꽃 200만명 발길 모은 천생 연꽃애비 이계영(56·행정 7급) 충남 부여군 고도문화사업소 문화재관리팀장은 지역에서 ‘연(蓮)꽃애비’, ‘연의 남자’로 불린다. 이 팀장은 잊혀진 백제 유적인 궁남지를 전국 최고의 연꽃단지로 조성해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한편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주역이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으로 경주 안압지와 일본의 인공정원 등에 영향을 준 데다 서동요의 근원지였지만 하루 방문객이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잊혀진 사적이었다. 1990년 부여군 기능직 공무원(방호원)에 합격, 사적지 관리사무소에 배치되면서 문화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공휴일에도 출근해 일을 찾아 처리하는 성실성과 향토문화 및 문화재를 공부해 문화 해설사로 활동한 점 등을 인정받아 96년 문화재 전문요원(별정직)으로 전환했다. 문화재 전문요원이 되어서는 주경야독으로 문화재 관리자 교육을 이수하며 전문 역량을 키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그에게 전직의 기회가 주어졌고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2001년 행정 9급으로 새 출발했다. 이 팀장은 “임명장을 받는 날 고향이자 능력을 인정해 준 부여를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회고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궁남지였다. 궁남지는 발굴 후 복원하지 않아 10년 이상 방치되다 보니 무단 경작지로 전락해 있었다. 공공근로사업과 연계해 주변 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자연스럽게 백제와 불교를 조화시켰고 그 매개체로 ‘연’을 생각해 냈다. 초기 1만 6000여㎡로 시작한 연꽃단지는 현재 40만㎡로 확대돼 50여종, 1000만 송이가 만개하는 전국의 명소가 됐다. 연꽃축제는 사적지 관리소 주관으로 2002년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자 다음 해부터 지자체 축제로 이관되면서 규모가 커졌다. 서동연꽃축제로 열린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축제기간 방문객이 236만여명에 이른다. 지역경제 파급효과만 630억원으로 평가됐다. 궁남지가 부여의 필수 방문 코스로 부상하고 2007년에는 군화(郡花)가 개나리에서 연꽃으로 바뀌게 됐다. 이 팀장은 “연못의 연도 사랑을 받은 만큼 큰다. 하루하루를 ‘농부의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여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현지영 부산 동구 건축과 주무관 이동 텃밭 된 물탱크 무지갯빛 교각 단장 돈 아닌 아이디어로 도시디자인의 여왕 부산 동구 건축과 현지영(41·시설7급) 주무관은 ‘도시디자인 달인’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의 손길만 가면 칙칙한 건물이 어느새 화사한 새 생명으로 탄생한다. 원도심인 동구 산복도로 일대는 6·25전쟁 피란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우후죽순으로 판자촌이 들어서다 보니 도심미관 등이 다른 구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져 있었다. 자연스레 도심미관 개선 및 환경개선이 구 현안으로 떠올랐다. 동구는 도심경관개선 사업추진을 위해 2010년에 도시경관계를 만들었다. 도심환경개선 사업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했다. 때마침 좌천동 고지대 아파트 일대가 ‘2011년 부산시 행복마을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시로부터 예산 1억 5000만원과 자성대교차로 환경개선비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현 주무관은 우선 동구의 관문인 자성대교차로와 좌천 산복도로 고지대의 칙칙한 회색빛 아파트에 산뜻한 무지개색 옷을 입히기로 했다. 지금은 언덕마을 아파트 13개 동이 무지개 숲으로 곱게 단장돼 명물로 거듭났다. 이와 함께 자성대교차로도 무지갯빛 교각으로 탈바꿈시켜 도심 미관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노력이 좋은 결실을 얻자 이번에는 황폐되고 방치돼 있던 동네 우물터 재복원 사업에 나섰다. 현장 조사 결과 초량동과 수정동에 각각 7개, 범일동에 6개, 좌천동에 5개 등 곳곳에 있었으며 25개 우물 중 14개의 형태가 보존돼 있었다. 이 가운데 5개는 지금도 주민들이 빨래터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처음엔 일부 주민들이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며 못마땅해했으나 이들을 설득했다. 부산YWCA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면서 ‘우리 동네 우물 지킴이단’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방치된 옛 우물을 찾아내 복원해 주민 어울림터로 만들었다. 이렇게 새롭게 탄생한 우물이 무려 34곳이다. 또 수도 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 집집마다 옥상에 설치된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물탱크가 이제는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변하자 이를 재활용, 옥상이동텃밭으로 변신시켰으며 산복도로 계단에는 야외 카페를 조성해 활력을 불어넣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최영호 인천 남구 건축과 팀장 구도심 건축민원 도면 전자화로 숨통 예산 절감도 척척 도시 재생 ‘도사’ ‘목공예, 벽화, 빈집, 나무….’ 인천 남구 건축과 최영호(49·시설 6급) 팀장이 요즘 적은 메모 내용이다. 최 팀장은 늘 이렇게 이면지와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도시재생 분야 지방행정의 달인에 선정된 최 팀장은 모든 공을 메모로 돌렸다. 2007년 5월 당시 인천시 경제자유구역청에서 남구로 인사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최 팀장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른바 구도심으로 불리는 남구는 부평구와 함께 인천시 건축직 공무원들이 가장 꺼리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낙후된 지역이라 안전사고가 많고, 민원건수도 다른 구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새 근무지로의 첫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지만, 최 팀장은 남구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냈다. 그의 첫 작품은 ‘건축심의 전자화 도입’이었다. “2010년 고시원과 같은 도시형 생활주택이 남구 내 대학 주변에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건축심의를 위해 종이도면을 직접 들고 다니는 등 수작업으로는 도저히 업무를 감당할 수 없었지요.” 건축심의는 인터넷으로 접수되는 건축허가와 달리 도면 제출부터 심의 준비, 재심의 등이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최 팀장이 찾은 해결책은 건축도면을 전자파일로 접수하는 것이었다. 그는 전산화 작업을 오후 3시 이후 공간이 비는 전산교육장에서 했다. 노트북 등 기자재를 살 필요가 없어 비용은 줄이고 효율은 높이는 방법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회의도 대폭 줄었고 2011년 10월 이후 2년간 구 예산도 3억 5000만원을 절감했다. 시도 올해부터 건축심의를 전자화하도록 하는 등 그의 아이디어는 인천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 최 팀장은 남구에 필요한 새로운 건축 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찾았다. 해안매립지역의 건축물 기울어짐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건축사에게 지질조사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지질조사서는 건축사들이 법적으로 제출하지 않는 서류였지만, 새 지침을 마련해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실제 건물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지반이 단단한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최 팀장은 “남구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난감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적극적으로 행정을 펼치니 구도심을 바꿀 수 있는 많은 방법이 보였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사설] 미·중의 대북 기류변화 선용할 외교전략 짜야

    북한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 변화하고 있다는 요지의 그제 버락 오마바 미 대통령 발언은 여러모로 유의미하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이에 따른 유엔의 고강도 제재가 시작된 시점에, 미국의 정상이, 외교적으로 ‘불편한 나라’인 중국의 대외 전략에 대해, 미 행정부 참모 회의도 아니고 전국 네트워크의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말한 것이다. 중국의 적극적인 대북 제재 동참을 촉구하는 압박일 수도 있겠으나, 일정한 교감 내지 중국의 양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중국이 가타부타 토를 달지 않고 있는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안 2094호를 흔쾌히 지지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이를 발빠르게 이행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과의 수출입 통로인 다롄항과 단둥에서의 검역·세관 업무를 강화했는가 하면 중국 내 북한계좌를 동결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를 혈맹이 아닌 통상적 국가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중국 내 여론도 높아가고 있다. 수위가 어떠하든 중국의 기류 변화는 대북 제재의 틀에서 일단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변화의 지향점이다. 북한이 더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는 터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한사코 어깃장을 놔 중국의 대외적 입지만 좁힐 바엔 미국과 보조를 맞춤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외교적 지분’을 계속 반분(半分)해 나가려는 원려가 담긴 것은 아닌지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이는 항차 북한의 급변사태가 닥쳤을 때 휴전선 이북 지역 통치 문제와 직결된다. 6·25전쟁 이후 미·중 두 열강에 의해 분단이 고착화된 역사가 언제 어떤 형태로 재연될지 경각심을 늦춰선 안 될 일이다. 미국의 대북전략 변화도 따져봐야 한다. 3차 핵실험 이후 미 행정부가 사실상 북핵 폐기를 포기하고 북핵 관리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이 갈수록 고개를 들고 있다. 자칫 미·중의 묵인 아래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북의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는 게 전부여선 안 된다. 북에 관해 미·중이 거리를 좁힐수록 우리의 치밀한 외교전략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국익을 지킨다. 외교안보 당국은 5월에 있을 한·미, 한·중 정상회담을 1차 목표로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확고히 해나갈 외교전략 수립에 만전을 기하라.
  • 대한민국 진보의 씨앗 뿌린 조봉암의 삶

    1959년 7월 31일. ‘사법 살인’이라 불리는 조봉암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시신을 받으러 갔더니 형무소 측은 각서를 쓰라고 했다. “인수 하루 만에 매장하고 조문받지 않고 묘비를 세우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장례를 그리 치르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하자 형무소 측 답은 이랬다. “국법에 따라 처형된 형사자이므로 조선총독부령 제120호를 적용한다.” 이 법령은 혹시 독립 만세 시위라도 벌어질까 봐 “일제가 순국한 독립투사의 공개 장례를 금지하고 묘비조차 세우지 못하게 했던 규정”이었다. 식민지의 법령을 적용하다니, 한국의 나라 꼴이 우습다. ‘조봉암 평전’(이원규 지음, 한길사 펴냄)은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건국과 부국의 역사’ 깃발이 휘날리는 시대에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승만과 처음부터 악연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봉암의 언변에 이승만은 탄복하기도 했고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입각시키기도 했다. 남한의 공산화를 막고 이후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받는 토지 개혁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관계가 틀어진 것은 이승만의 권력욕 때문이었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국회부의장이었던 조봉암은 국회에 남아 나라의 서류들부터 피난시키는 데 열중하느라 가족을 챙기지 못해 부인 김조이 여사가 납북됐다. 반면 북진통일 반공주의자 이승만은 독려 방송을 틀어 놓고 수원으로 몰래 도주했다. 거기다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의 악재가 연이어 터지자 이승만은 대통령 재선을 위해 그 유명한 사사오입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조봉암은 이때 발췌개헌안에 찬성했다. 대체 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판국에 국내의 정치적 대립이 계속된다면 원조를 끊고 유엔군이 신탁통치하겠다고 미국이 통보해서다. 어떻게 얻은 독립이던가. 권력에 눈먼 이승만은 양보할 리 없으니 자기가 물러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 결심한 것이 독자 정당 결성과 대선 출마였다. 이승만은 엄청난 부정 선거를 동원해 당선됐다. 당선된 이승만은 감히 ‘국부’의 코털을 건드린 자를 살려두지 않았다. 저자는 충실한 문헌 조사와 현지 답사, 유족 및 친인척, 생존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조봉암을 입체적으로 복원했다. 독립운동을 위해 공산주의로 기울었던 민족주의자들의 초상, 국내파 공산주의자 박헌영과의 협력과 갈등 관계, 공산주의와 결별하는 과정, 정치 행보에 발목 잡히기도 했던 여자 문제, 일제 말 국방성금을 둘러싼 친일 행위 논란의 진실, 토지 개혁을 입안하는 과정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2만 2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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