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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나운규(1902~1937)라는 존재와 ‘아리랑’(1926)이라는 영화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무성영화 시기를 대표하는, 아니 한국영화사 전체를 관통해서도 가장 무게 있는 영화인과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필름은 사라졌다. 우리 대부분은 처음 개봉한 지 90년도 훨씬 지난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저 여러 매체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전해들었을 뿐이다. ‘아리랑’은 왜 훌륭한 영화인가.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원로 영화인들의 증언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신화화된 결과가 아닐까.‘아리랑’을 걸작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낸 민족 영화라는 평가 때문이다. 어쩌면 이 관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애초 나운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조선영화도 미국영화처럼 한번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더이상 활동사진에 신기해하는 초창기 관객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활극적 볼거리와 속도감에 열광하는 영화 팬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은 개봉하자마자 조선인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6·25 전쟁 시기까지 수십 차례 반복 상영되며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과연 ‘아리랑’은 어떤 영화였을까.●일본 신파를 극복하다 먼저 1920년대 전반기 조선영화계를 살펴보자. 조선 극영화의 시작은 ‘월하의 맹서’(1923)를 만든 윤백남의 역할이었지만 이후 조선영화를 주도한 감독은 윤백남의 조감독을 맡았던 이경손(1905~1977)이었다. 그는 고대소설을 영화화한 ‘심청전’(1925)으로 감독 데뷔해 이광수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개척자’(1925)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 조선영화 제작은 초창기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춘향전’(1923), ‘장화홍련전’(1924), ‘운영전’(1925) 등 고대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즉 조선 사람이 조선 옷을 입고 활동사진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몰려들던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이경손은 일본영화를 모델로 삼아 상업적인 노선을 모색하는데 일본 신파 ‘곤지키야샤’(金色夜叉)를 번안한 ‘장한몽’(1926), 일본 시대극 영화를 참조한 ‘산채왕’(1926)이 그것이다. 두 영화는 당시 일본 신파소설을 번안하던 조중환과 이경손이 함께 설립한 계림영화협회가 제작했다. 이 시기 조선은 일본 문화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영화 역시 ‘나의 죄’(己が罪)가 원작인 ‘쌍옥루 전후편’(1925), ‘새장 속의 새’(籠の鳥)를 각색한 ‘농중조’(1926) 등 일본 신파의 조선적 번안이 대세였다. 이처럼 연애비극이나 가정비극을 다루는 신파 서사는 식민지 조선영화의 기본적 설정으로 안착하게 된다.나운규의 ‘아리랑’이 특별한 점은 일본 신파영화의 화법을 받아들인 시기에 등장한 영화였지만 그 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리랑’이 어떤 의도로 만든 영화인지는 나운규의 운명 전 해인 1936년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바로 ‘조선영화감독 고심담 아리랑을 만들 때’(‘조선영화’ 제1집)라는 글이다. “그 당시에 조선에 오는 양화(洋畵)를 보면 수(數)로는 서부활극이 전성시대요 또 대작연발시대다. 그리피스의 ‘폭풍의 고아들’(1921)을 보던 관중은 참다 못하여 발을 굴렀고 더글러스의 ‘로빈 후드’(1922)는 조선 관객의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나운규가 미국영화의 “대작연발시대”를 강조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물량 공세, 또 스케일 큰 액션 장면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고, 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의 감식안도 높아져갔다. 관객들의 취향을 포착한 나운규는 ‘아리랑’을 만들기 직전 선배 감독 이경손에게 “화나는데 서양사람 흉내를 내서 한 작품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했고, 어떻게 하면 “하품 나는 조선영화”를 탈피할 수 있을까, 조선영화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아리랑’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서구영화의 창조적 수용 연출의 기회를 잡은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 스타일을 연출 방향으로 잡고, 어떻게 하면 서구식의 활극 장면을 경제적으로 연출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까지 고안해냈다. 대중적 화법인 신파 양식을 기반으로 비극과 활극을 직조한 동시에 조선의 식민지적 상황을 상징과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녹여 민족적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가장 핵심은 ‘아리랑’이 나운규의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이다. 당시 “전 조선영화를 통하여 가장 우수한 장면”(‘동아일보’ 1926년 10월 7일자)으로 기록된 사막 장면은 단연 영화의 압권이다. 한 나그네(나운규)가 여자(신일선)를 취하려는 악마 같은 상인을 살해한 장면은 주인공 영진(나운규)이 여동생 영희(신일선)를 겁탈하려는 지주의 하수인 기호를 환상 속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정확히 반복된다. 광인의 내면세계를 일그러진 세트로 시각화해 보여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같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뿐만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 등 동시기 서구영화의 여러 요소를 포착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또 작품의 인물 구도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지주도 그 하수인도 조선인이라는 설정이지만 돈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자본가 계급의 폭압적 행태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민족영화가 되었고,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사의 신전에 올랐다.●아리랑의 실제 감독은 누구일까 ‘아리랑’ 개봉 당시 이 영화의 감독은 쓰모리 슈이치(한국 이름 김창선)라는 일본인으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의 실제 감독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결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 시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조선영화인의 협업으로 구축되었던 조선영화 제작현장을 감안해야 한다. ‘아리랑’을 제작한 영화사는 일본인 흥행사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인데, 그의 조카 사위 쓰모리 슈이치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현대 영화의 프로듀서 역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조선키네마의 첫 번째 영화 ‘농중조’와 ‘아리랑’ 개봉 당시 감독 크레디트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의 문헌들은 두 영화의 감독으로 각각 조선영화인 이규설과 나운규를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당시 제작 현장에서 일본인이 감독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각본을 쓰고, 무성영화이지만 동작 연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배우들의 조선어 대사 연기를 지도한 것은 조선인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무성영화의 논리상 그들의 입에서 발성되어야 할 대사는 변사의 음성에서 들리게 된다). 다시 ‘아리랑’으로 돌아가면 쓰모리가 설령 크레디트상의 감독직을 맡았더라도 각본을 쓰고 실질적인 연출을 진행한 나운규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나운규는 계속해서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을 통해 ‘풍운아’(1926), ‘야서(들쥐)’(1927), ‘금붕어’(1927)라는 활극멜로드라마를 그의 이름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세워 ‘사랑을 찾아서’(1928) 등 자신의 감독 및 주연작을 이어 나간다. ●조선 무성영화 황금기 이끌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이 이후 조선 무성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언급해야 한다. 먼저 지주와 소작민, 그 사이 희생양이 되는 젊은 여성이라는 계급구도에 기반한 서사와 활극이 더 선명하게 앞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이후 조선영화의 상업적 기준이 된 점이다. 또 일제 치하의 식민지적 현실을 드러내고 저항의 관념을 싣는 수단, 즉 계급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지향하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진영의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카프 진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소설가 심훈의 감독 데뷔작 ‘먼동이 틀 때’(1928)는 단연 ‘아리랑’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의열단장 김원봉, 무장투쟁 ‘공’vs 北정권 참여 ‘과’… 엇갈린 평가

    의열단장 김원봉, 무장투쟁 ‘공’vs 北정권 참여 ‘과’… 엇갈린 평가

    올해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았지만 약산 김원봉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여전히 극명하게 갈린다. 의열단을 조직해 무장투쟁에 앞장선 ‘공’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북한 정권에 참여한 ‘과’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독립유공자 포상을 놓고도 김원봉은 뜨거운 감자다. 독립운동가는 맞지만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는 애꿎은 현실이 70년 분단 역사의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과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김원봉은 현행 법 체계에서는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다. 김원봉이 단순히 사회주의 활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4월 보훈처는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사회주의 활동 경력자)도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수 있도록 선정 기준을 완화했지만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당시 보훈처가 집계한 독립유공자 포상 보류자 2만 4737명에 김원봉도 포함돼 있지만, 최근 재심사 대상에서 제외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지난 1월 국가보훈처 자문기구로 활동한 보훈혁신위원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독립운동을 했다면 독립유공자로 봐야 한다”고 보훈처에 권고했다. 보훈혁신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한 정부만 정통성을 가지고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면서 “6·25전쟁 때 전범 수준의 책임이 없다면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김원봉은 1948년 북한 국가검열상을 거쳐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지만, 1958년쯤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훈처는 보훈혁신위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헌법 가치와 국가 정체성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하고, 국민들의 종합적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수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독립운동가는 반드시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아야 하는가”라면서 “불필요한 좌우 대립의 논란만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독립유공자 포상 기준을 독립운동 공적만 가지고 할 수 있도록 법을 마련해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브루클린다리처럼 걸어서 노들섬… 한강 인도교 104년만에 부활

    브루클린다리처럼 걸어서 노들섬… 한강 인도교 104년만에 부활

    아치형 구조로 1층은 차도 2층은 보행로 전망데크·백년마당 등 꾸며 2021년 개통 박원순 “걷는 도시 서울로 지역 활력 기대”서울 한강에 ‘한국판 브루클린브리지’가 들어선다. 서울시는 2021년 6월 한강대교 남단 노들섬과 노량진을 잇는 보행자 전용 다리를 개통한다고 20일 밝혔다. 1950년 6·25전쟁 사흘 만에 폭파된 한강 인도교가 1917년 다시 세워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104년 만에 한강에 보행교가 부활하는 셈이다. 총 사업비 300억원이 투입된다. 시는 한강대교 남단(노들섬~노량진)의 아치 구조와 교각을 활용해 기존 차도는 그대로 쓰면서 쌍둥이 다리 사이 공간 6.5m 높이에 너비 10.5m, 길이 500m인 보행교를 새로 놓는다. 모델은 1883년 지어진 세계 최초의 철재 교량인 미국 뉴욕 브루클린브리지다. 맨해튼의 유려한 전경을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는 브루클린브리지처럼 1층은 차도, 2층은 보행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노들섬에서 보행교를 거쳐 노량진 일대까지 한 번에 걸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노량진 방향으로는 내년 초 철거 예정인 노량진 고가차도와 이어지고 노들섬 쪽으로는 자동차전용도로를 건너기 위해 막혔던 노들섬 동서를 잇는 보행육교와 연결된다. 오는 9월 말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여는 노들섬뿐 아니라 용봉정근린공원, 노들나루공원 등 노량진의 역사·자연 자원과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보행교에는 한강 등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데크,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광장인 백년마당, 녹지 휴식공간인 그린데크 등이 조성된다. 호주 시드니의 하버브리지처럼 체험거리가 다양한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것이다. 아치 구조를 만들지 않은 한강대교 북단(노들섬~용산) 구간 연결은 아이디어 공모 등을 통해 2단계로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옛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중 보행로로 바꾼 ‘서울로 7017 공중가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인 ‘광화문 대역사(大役事)’ 등 서울시의 보행 도시 만들기와 같은 맥락이다. 박원순 시장은 “보행교 설치는 ‘걷는 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뉴욕의 브루클린브리지처럼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도시에 보행로는 많을수록 좋지만 보행교로 이어지는 노량진 고가도로 쪽에 교통량이 많고 상업·문화시설이 부족해 사람을 모으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진국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울은 급격한 개발로 한강과 시민 간 관계를 단절시켜 온 도시인데 이번 사업으로 관계를 회복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시에서 모델로 한 해외 사례와는 주변 환경 등 맥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공간의 질을 높이는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독립 향한 무한 도전… 임정, 계란으로 바위 깼다”

    “독립 향한 무한 도전… 임정, 계란으로 바위 깼다”

    세계 초강대국 일제 맞서 나라 되찾아 한반도 최초 국민이 국가 주인 된 사건 저평가된 독립운동가들 전수조사 필요 사라진 임정 문서 반드시 원본 찾아야“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를 깬 기적을 일궜습니다. 세계 정복을 꿈꾸며 세를 넓히던 강대국 일본에게서 나라를 되찾았으니까요.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도 선언했어요. 문재인 정부가 임정의 참뜻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커요.” 임정 연구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한시준(65)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9일 경기 용인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1919년 4월 11일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다음달로 100주년을 맞는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인 임정 설립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추진 중이다. 한 교수가 지적한 대표적 사례는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서훈 등급 상향이다. 정부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 열사의 서훈을 독립장(3등급)에서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높였다. 한 교수는 “이는 철저히 지금 사람들의 잣대로만 판단한 것”이라며 “유공자 전수조사를 통해 저평가된 독립운동가들을 모두 재평가했어야 했다. 유 열사 한 사람만 서훈을 높이는 바람에 다른 독립운동가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 교수는 임정이 생산한 문서 원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정 문서들은 모두 두 차례 사라졌다. 1932년 4월 일본 경찰은 윤봉길(1908~1932) 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감행하자 임정 사무실에서 자료를 압수했다. 이후 만들어진 문서들은 임정 총무과장을 지낸 조남직이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보관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6·25 전쟁 중 유실됐다. 한 교수는 “올해 정부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임정 관련) 기념식과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임정 문서를 찾는 일처럼 정말 중요하고 기본적인 업무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임정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국가의 기본 요소(국민, 주권, 영토)를 갖추지 못했고 활동 기간 내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커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카이로회담(1943)이야말로 임정의 대표적 성과”라고 반박했다. 김구(1876~1949) 등 임정 요인들은 중국의 장제스(1887~1975)가 이 회담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중국 정부가 나서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장제스는 다른 열강의 반대에도 이를 관철시켜 한국 독립의 기틀을 다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임정 100주년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계란으로 바위가 깨질 것으로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요.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조국의 독립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냥 일본에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쉬운 길이었죠. 임정이 추구한 독립정신이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대의를 믿고 도전한 것이었어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그런 노력 끝에 결국 거대한 바위가 무너졌죠. 임정 100주년을 맞는 우리는 이런 정신을 새겨야 합니다.” 글 사진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남북유해공동발굴, 이번주 北 응답이 ‘분수령’

    남북유해공동발굴, 이번주 北 응답이 ‘분수령’

    남북이 다음달부터 시작키로 했던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공동유해발굴이 북미 간 교착국면으로 불투명한 상황인 가운데, 북한이 이번주 내에 응답할지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올해 진행된 남북의 군사적 이행 조치는 지난 1월말 한강하구 해도전달이 유일하다. 따라서 인도적 협력인 공동발굴도 늦어질 경우 군사합의 이행에 대한 속도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방부는 18일부터 ‘2019년 6·25전사자 유해발굴’을 시작한다고 17일 밝혔다. 6·25 한국전쟁 50주년이었던 2000년에 시작해 20년째를 맡는 올해 유해발굴은 400여구를 발굴하는 게 목표다. 오는 11월까지 55개 지역에서 발굴을 하며 사단 및 여단 30여개에서 연인원 10만명의 장병들이 참여한다. 올해 발굴의 핵심은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진행될 남북 공동 발굴이다. 양측은 지난해 9·19 군사분야합의에서 올해 4월 1일부터 공동발굴을 하겠다고 합의했다. 따라서 그간에는 올해 유해발굴 사업이 화살머리고지의 남북 공동발굴로 시작될 거란 전망이 많았다. 실제 국방부도 이날 공개한 ‘55개 유해발굴 지역 지도’에 화살머리고지를 특별히 강조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날 첫 발굴지역으로 경기 파주 및 양평, 강원 화천 등 5곳의 제보지역를 꼽았다. 지역주민 및 참전용사의 증언, 전투기록 등을 감안할 때 유해발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만, 남북 공동발굴을 확신할 수 없는 현재 상황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관계자는 “남측의 발굴 참여 인원 명단을 북한에 보냈는데, 아직 북측에서 통지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다음주에 북한의 통지가 올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지뢰제거장비의 북측 반입에 대해 지난 1월말 대북제재 면제를 받아두었기 때문에 북측이 호응하면 곧바로 발굴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북미 간 교착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자유 왕래 등 군사합의 이행에 전반적으로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우선 이달 중에 남북 장성급 회담 개최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역시 쉽지만은 않다. 일각에서는 북미 간 교착으로 경협 등 남북 관계 진전이 힘든 상황에서,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처럼 군사 분야에서 먼저 선순환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도) 하노이 회담 후 내부적으로 나름대로 리그룹핑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기다리고 있으며 조만간 소식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손혜원, 나경원에 “내 아버지, 당신 같은 정치인이 입에 올릴 분 아니다”

    손혜원, 나경원에 “내 아버지, 당신 같은 정치인이 입에 올릴 분 아니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자신의 부친을 언급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아버지는) 당신 같은 이기적인 정치인이 함부로 입에 올릴 그런 분이 아니다”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손혜원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 “제 아버지 손용우 독립지사께서는 고향 양평 선배인 몽양 여운형선생을 따라 일찌기 서울로 올라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져 독립운동하신 분으로 1940~1941년 사이 1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복역하신 분”이라면서 가족사를 소개했다. 손혜원 의원에 따르면 그의 부친은 출소 뒤에도 여운형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속 했고, 1947년 7월 여운형 선생이 암살된 뒤 크게 절망하고는 박헌영이 세운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는 1947년 후반 마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북에 갔다가 한달 만에 돌아오신 이후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간곡한 설득으로 1948년 5월 큰오빠 출산과 함께 전향했다”면서 “6·25전쟁 직후 남로당원들은 모두 월북했지만 아버지는 갓 태어난 둘째 오빠 등 온 식구들과 함께 모두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가 신청한 4번의 독립유공자 신청 서류에는 아버지의 전향 사실에 대한 당시 경찰청장과 정보과 형사의 증언, 그리고 친필로 남겨놓은 진정서도 함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손혜원 의원은 “나경원 의원께 경고한다. 무슨 전략인지 또는 열등감인지 말끝마다 ‘손혜원’을 외치며 계속 떠들어대는 것은 당신 자유다”라면서도 “그러나 내 아버지를 당신 입에 올리는 일은 삼가달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자랑스러운 분이다”라면서 “고작 1년 남짓 몸 담았던 남로당 경력으로 평생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자신의 독립운동 경력은 무시되고 폄하된 채 자신이 청춘을 바쳐 지키려던 조국으로부터 온갖 불이익을 당하며 억울한 생을 사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밖에 모르는 당신 같은 이기적 정치인이 함부로 입에 올릴 그런 분이 아니다”라면서 “부디 조심하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앞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해방 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할 것”이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손혜원 의원의 부친을 언급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15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손혜원 의원의 부친이 6번인가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다가 떨어졌는데 이번에 손혜원 의원이 전화로 접수했더니 (독립유공자가) 됐다는 것 아닌가”라면서 “그 분이 조선공산당 활동을 했고, 해방 이후에도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방해한 활동을 한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정상에 야외공연장 만든다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정상에 야외공연장 만든다

    한강하구 일대를 조망하는 경기 김포시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정상에 야외공연장이 조성된다. 경기도는 최근 김포시가 ‘DMZ 일원 소규모 야외 공연예술장 조성사업’ 대상지에 선정됐다고 15일 밝혔다. 김포 애기봉은 평화의 상징성이 크고 부지를 확보하고 관람객을 유치하는 데 유리해 공연장 활용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야외공연장 조성 사업비 10억원 전액을 도비로 확보했다. 올해 설계에 들어간 뒤 내년 공연무대와 대기실·관람계단을 설치하고 주변을 정비할 계획이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북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야외 공연예술장이다. 6·25전쟁이나 광복절 등 기념음악회와 ‘평화의 종’ 타종은 물론 민간 주도로 다양한 행사가 열릴 전망이다. 올 연말 개장 예정인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 야외 공연무대까지 추가 조성되며 전망대와 함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시는 지난 연말 ‘애기봉 생태탐방로와 북한디지털 체험관 조성’ 사업에서도 도비 45억원을 확보한 바 있다. 시는 도비에 시비를 더해 지그재그 길과 소주제정원, 휴게시설, 흔들다리, 스카이워크, 북한 디지털 체험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해당사업은 2021년 6월까지 준공될 예정이다. 정하영 시장은 “애기봉의 역사성과 지리적 이점, 볼거리, 체험거리와 함께 한강하구 일대 문수산에서 김포국제조각공원과 시암리습지 등을 평화생태관광벨트로 엮어 미래 김포의 100년 먹거리를 창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보훈무용예술협회 김포시 지부 공식 출범

    보훈무용예술협회 김포시 지부 공식 출범

    사단법인 보훈무용예술협회 경기 김포시 지부가 공식 출범한다. 15일 보훈무용예술협회에 따르면 정하영 김포시장을 비롯한 내외빈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포시민회관에서 오후 6시30분 개최된다. 보훈무용예술협회는 2002년 출범한 협회로 전국에 10개 지부를 둔 대한민국 무용예술을 대표하는 협회다. 그동안 김포시 지부를 유치하기 위해 힘쓰고 10여년간 김포시문화예술단을 이끌어 온 김혜숙(44) 단장이 지난 1월 지부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김포시 지부 회원은 120명으로, 앞으로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김포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무용예술협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범식은 중고등부의 방송댄스를 시작으로 한국창작무용과 김두관·홍철호 의원의 축사가 이어진다. 축하공연으로 한국창작무용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양태옥류의 한국민속무용, 진도북놀이 등 다양한 공연이 마련돼 있다. 이날 김 신임 지부장은 정하영 시장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김 지부장은 김포시민 40명에게 한발걷기부터 가르쳐 스텝 20명과 천안흥타령춤 축제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하는 등 김포의 무용 위상을 드높였다. 김 지부장은 국립 전통예술고등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무용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전수자로, 김포시 문화예술단 예술총감독과 사단법인 보훈무용예술협회 김포시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다. 사단법인 보훈무용예술협회는 전국에 10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5000명 이상 회원을 가진 대형단체다. 주요 행사로는 3·1절을 비롯해 현충일과 6·25, 광복절, 제헌절 기념공연, 전국단위 콩쿠르 등이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보훈무용예술협회 김포시 지부 출범

    보훈무용예술협회 김포시 지부 출범

    사단법인 보훈무용예술협회 경기 김포시 지부가 공식 출범했다. 보훈무용예술협회는 지난 15일 오후 김포시민회관에서 홍철호 국회의원을 비롯한 내외빈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훈무용예술협회 김포시지부 창립식을 개최됐다고 16일 밝혔다. 보훈무용예술협회는 2002년 출범한 협회로 전국에 10개 지부를 둔 대한민국 무용예술을 대표하는 협회다. 그동안 김포시 지부를 유치하기 위해 힘쓰고 10여년간 김포시문화예술단을 이끌어 온 김혜숙(44) 단장이 지난 1월 지부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김포시 지부 회원은 120명으로, 앞으로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김포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무용예술협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범식은 중고등부의 방송댄스를 시작으로 한국창작무용과 홍철호 의원 등 축사가 이어졌다. 축하공연으로 한국창작무용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양태옥류의 한국민속무용, 진도북놀이 등 다양한 공연이 마련됐다. 이날 김 신임 지부장은 정하영 김포시장상을 수상했다. 문화예술의 불모지인 김포에서 후진양성과 무용예술 발전을 이끌어온 김 지부장은 “전국 규모 보훈무용예술협회 김포시 지부가 발족해 지역의 무용예술 수준과 관심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며 “아울러 앞으로 김포시 시립무용단을 창설하는 데도 좋은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 지부장은 김포시민 40명에게 한발걷기부터 가르쳐 스텝 20명과 천안흥타령춤 축제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하는 등 김포의 무용 위상을 드높였다. 김 지부장은 국립 전통예술고등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무용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전수자로, 김포시 문화예술단 예술총감독과 사단법인 보훈무용예술협회 김포시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다. 류영수 보훈무용예술협회 이사장 대리인은 축사에서 “보훈무용협회 김포시 지부의 발전을 위해서 협회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김포시 지부가 크게 발전할 가능성에 주목하며 수도권 무용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해 줄 것을 주문했다. 사단법인 보훈무용예술협회는 전국에 10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5000명 이상 회원을 가진 대형단체다. 주요 행사로는 3·1절을 비롯해 현충일과 6·25, 광복절, 제헌절 기념공연, 전국단위 콩쿠르 등이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평화를 준비하는 지자체 “철책 걷어내고 희망을 심겠다”

    평화를 준비하는 지자체 “철책 걷어내고 희망을 심겠다”

    휴전선 중동부전선을 마주하는 강원 평화(접경)지역 자치단체들이 남북교류협력시대를 앞두고 희망에 부풀었다. 인구 2만 4000~4만 8000명의 작은 자치단체들이지만 남북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꿈꾸며 저마다 다양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강원 자치단체장들이 꿈꾸고 바라는 평화지역은 어떤 것인지 만나 보자. 순서는 지자체 가나다순.■이경일 고성군수 금강산 관문… 관광 재개 준비, 육로 이어 해로도 개방 기대감 금강산 관광길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지만 희망의 불씨는 이어지고 있다. 고성군은 금강산 육로관광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 육로관광과 더불어 바닷길로 이어지는 해금강 바다 금강산길도 열리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가칭 ‘고성군 남북교류협력위원회’라는 민관 추진위원회도 만들었다. 지금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염두에 두고 숙박시설과 음식점, 판매점, 안내표지판에 대한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화진포 등 금강산 관문지역의 DMZ 관광거점에 대한 차질 없는 준비에 나선다. 관광버스 투어가 아닌 체류형 관광 투어를 개발, 지역 주민의 실질적인 소득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 이를 위해 DMZ 일대 통일전망대와 건봉사를 아우르는 약 40㎞ 구간에 둘레길을 만들 계획이다. 통일전망대, 금강산전망대, 829GP, 노무현벙커, 건봉사, DMZ박물관을 엮어 한반도 평화관광 상징화 사업을 추진한다. 분단의 아픔과 희생의 역사 공간을 평화를 염원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킬 계획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군 생활하던 22사단 건봉산 부대 벙커(노무현벙커)를 관광 명소화하고, 829GP 문화재 등록 및 홍보 마케팅을 추진하며 남북 정상이 합의한 동해관광특구의 거점이자 ‘2018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고성 DMZ를 알리는 다양한 국제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 바다와 육지를 잇는 평화의 길은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될 것이다. ■조인묵 양구군수 국도 31호선 복원 용역 물꼬…접경지지원특별법 개정 촉구미수복 분단지역으로 남은 양구군은 어느 지역보다 남북 교류가 절실하다. 그래서 앞으로 전개될 남북교류 협력사업 추진을 위해 ‘양구군 남북 교류·협력 조례’를 제정하고, 전문가들과 협약, 농업·체육·경제·문화·학술 분야의 교류 협력 사업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 금강산 가는 길로 이용됐던 국도 31호선 복원을 위해 국토교통부에서 용역도 추진 중이다. 또 전통문화인 양구백자와 양구 백토를 기반으로 북한 지역 백토와 합토해 통일백자 제조, 남북 도예마을 특구 조성 등을 계획하며 통일시대 변화된 양구를 꿈꾸고 있다. 당장은 군부대와 주민 간 상생협력이 절실하다. 군부대는 다양한 노력으로 실질적인 주민들 생활 안정에 나서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보다 근원적으로 군사 분야의 여러 가지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 아직 국제 및 대북 정세 등 해소되지 못한 여건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평화(접경)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사업 등에 예산이 배분돼 지역 주민들의 생활 안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또 접경지역의 열악한 현실을 감안한 특화발전지구 지정으로 지역에서 꼭 필요한 특화발전지구에 적합한 사업들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접경지역지원특별법 개정을 촉구한다. 수십년간 고통을 감내해 온 접경지역이 남북평화의 미래를 선도하고, 평화의 중심지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중앙정부(행정안전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최상기 인제군수 평화지 발전 45개 사업 추진… ‘사통팔달’ 남북평화路 고대인제군은 민족의 영산인 설악을 품고 있다. 금강에서 설악으로 이어지다 끊어진 백두대간 혈맥을 다시 이어야 한다. 백두대간에 의지해 삶을 영위하는 7500만명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세계 평화의 상징성을 지닌 성지로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국권상실과 식민통치, 분단, 동족상잔 비극과 독재정권 폭압 등으로 이어진 한반도 근현대사의 질곡을 끊어야 한다. 이젠 평화와 통일이란 주춧돌 위에 한반도 역사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인제군은 접경지역을 평화지역으로 바꾸기 위한 평화지역 발전사업 종합추진 계획을 세웠다. 정주여건 개선, 소득창출 연계, 평화시대 준비, 지역주민 주도 등 4개의 전략과제 아래 45개 핵심 사업을 추진한다. 이 중 핵심은 남북평화도로다. 백두대간을 통한 민족정기 소통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소통은 왕래를 기본으로 하고 왕래는 도로에 의지하는 까닭이다. 남북평화도로는 인제IC에서 동서고속화 철도 원통역을 경유해서 인제군 평화지역인 서화를 지나 북강원도 금강군을 비롯한 내금강에 이르는 육로다. 완성되면 동서를 연결하는 동서고속화 철도와 평화누리길이 교차되면서 남북으로 오가는 주요 통로가 된다. 이 같은 사업이 이뤄지려면 우선 인제군민들의 뜻과 힘이 모아져야 한다. 더불어 중앙정부와 강원도의 협조도 절실하다. 금강과 설악을 잇는 통일의 동맥 중심에 있는 인제군은 평화시대가 주는 시대적 사명에 모든 역량을 모아 나갈 것이다. ■이현종 철원군수 사람·물류 잇는 경원선 복원…대륙 철도의 진정한 완성을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아쉬움에도 철원군은 평화의 길을 갈망하며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을 것이다.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두 정상의 만남은 평화에 한 걸음 다가서는 의미 있는 행보였다. 남북 분단으로 행정구역의 9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직간접적 피해를 인내하며 평화를 갈망했던 우리 군의 입장에서 아쉬움은 컸다. 다만 평화 이슈의 불씨는 계속돼야 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철원은 실질적으로 남북을 잇는 교통 요충지로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소가 선결 과제이지만 평화 이슈를 남북 경제협력의 선제 대응으로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다.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은 1914년 개통했지만 6·25전쟁으로 접경구간이 파괴됐다.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연결되면 기차를 타고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고 시베리아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물류와 사람을 연결하는 대륙철도의 진정한 완성이 바로 경원선 복원이다. 이미 철원에는 남북교류를 위한 상징적인 문이 열렸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화살머리고지에 남북을 잇는 전술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무장지대(DMZ) 내 도로가 연결된 곳은 철원이 유일하다. 한반도 중앙 철원에서 남북을 잇는 도로가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남다르다. 이처럼 평화 이슈는 철원에 많은 변화를 예고한다. 철원은 평화지대 중심지를 꿈꾸며 모든 역량을 모아 나갈 것이다. ■최문순 화천군수 병력 감축·부대 이전 후폭풍…상권 침체 극복할 지원 절실지상작전사령부 창설을 계기로 국방개혁 2.0이 시작됐다. 2만 6000명의 화천군에는 무려 3만명 이상의 장병이 주둔하지만 대규모 병력 감축과 부대 이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방개혁에 따라 사내면에 주둔하는 27사단이 해체될 전망이다. 험준한 산속에 있는 사내면 지역은 장병들이 떠나면 상권도 침체된다. 군민 사이에서는 변화에 대한 기대만큼 걱정도 크다. 언제 얼마의 장병이 지역을 떠날지, 부대 이전 후 남는 땅은 또 어떻게 활용될지, 군사시설 보호구역 규제는 또 어떻게 될지, 국방개혁 후폭풍에 대한 정부 차원의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주민들은 속만 탄다. 최근 국방부가 대규모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했다. 여의도 면적의 116배에 달하는 3억 3699㎡가 보호구역에서 풀렸다. 화천군은 전체 21개 시·군 중 가장 많은 1억 9698㎡가 해제됐다. 하지만 80% 이상이 보전산지 등 중복 규제로 활용이 어렵다. 백암산 평화생태특구, 평화누리자전거길 등은 이번 해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숙원이던 민간인통제선 북상 및 제한보호구역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변화에 대한 최선의 대안이 마땅치 않다면 변화에 적응할 기반 마련이 차선이다. 차선책이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효용을 지니면 그 충격은 최소화된다. 차선책마저도 모호한 선언에 그친다면, 평화지역이라 불리는 접경지역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시대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쇠락할지도 모른다.
  • 철길 뚫어 교통오지 탈출… 관광자원 살려 남북거점지 도약

    철길 뚫어 교통오지 탈출… 관광자원 살려 남북거점지 도약

    남북교류시대를 앞두고 강원 평화(접경)지역 지자체마다 평화시대 교두보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개발에 밀렸던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청사진에서부터 주민들과 군 장병들에게 희망을 주는 문화행사까지 다양한 준비에 바쁘다.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어 남북한 교류시대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주민들도 험준한 산악과 최전방 군사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벗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적극적이다. 강원도와 휴전선을 맞댄 고성·인제·양구·화천·철원 등 5개 평화지역 지자체들이 준비하는 남북교류협력시대 청사진들을 12일 들여다봤다.“지뢰 지대와 첨예한 군사 대치 지역으로 아무도 갈 수 없었던 땅이 평화시대를 맞아 상전벽해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남북 화해와 교류시대를 꿈꾸며 강원도 평화지역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선 열악한 SOC 관철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철길과 도로가 뚫려야 남북교류시대 허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장 춘천~화천~양구~인제~속초(고성)를 잇는 동서고속화전철 조기 개통과 강릉~제진 간 동해선 철길(104.6㎞), 철원 백마고지~월정역 간 경원선 철길 복원(11.7㎞)을 바라고 있다. 강원연구원 관계자는 “2년 전 정부에서 사업 추진이 확정된 동서고속전철이 완공되면 서울에서 춘천을 경유해 화천과 양구, 인제, 속초(고성)로 이어지며 전방지역 발전에 기폭제 역할이 기대된다”며 “당장은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지만 본격적인 남북교류시대가 열리면 탄력을 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교통 오지로 남은 전방 곳곳까지 고속도로와 국도 건설에 대한 희망도 살리고 있다. 강원도는 춘천~철원 간 중앙고속도로 연장(63㎞)과 속초~고성 간 동해고속도로 연장(16.6㎞), 포천~철원을 잇는 고속도로(25.3㎞) 건설을 남북교류시대를 여는 과제로 정부와 협의 중이다. 양구 월운리~북강원도 금강을 잇는 국도 31호선(우선 군사분계선까지 11.5㎞)과 경기 연천~철원 월정리를 잇는 국도 3호선(13.8㎞) 건설에 집중하고 있다. 평화지역 지자체들이 남북교류시대를 내다보며 추진하는 청사진도 다양하다. 금강산 관광길이 막힌 지 11년째를 맞은 고성군은 육지와 바다를 아울러 알찬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다. 동해안 최북단인 현내면 사천리 일대(제진역 인근)에 동해선 철길과 연계한 물류환승단지 조성을 정부에 요청했다. 남북 철길이 열리고 시베리아 철길과 연계되면 러시아와 유럽으로 가는 동해안 최대 물류기지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제진역 주변 사천리 일대에 호텔과 면회소, 면세점 특산품 판매장 등이 있는 남북교류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건립도 제안했다. 9·19 남북공동선언에서 발표된 원산~강릉(245㎞)의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에서 화진포를 거점으로 한 고성을 홍콩 방식의 특별지구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김가현 고성군 남북교류팀장은 “산불과 관련한 남북산림협력센터 설치와 평화 백두대간 트레일 조성,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정, 남북 수산협력 거점화, 남북평화잼버리공원 조성 사업 등을 남북교류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서 교통 오지로 남은 철원군도 다양한 교류사업을 준비 중이다. 백마고지 인근인 철원읍 대마리·중세리 일대 330만㎡(3000억원 규모)에 철원평화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한다. 이미 기본계획 수립을 거쳐 2014년 국회에서 법률안 발의까지 마치고 지난해 9월에는 강원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와 공동업무협약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철원읍 풍천리 일대에는 태봉국 철원성(내성 7.7㎞, 외성 12.5㎞) 남북 공동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정광민 철원군 평화지역발전과장은 “역사와 문화의 최우선 교류 분야로 추진하면서 ‘태봉국 테마파크’ 조성과 연계해 관광자원화할 계획”이라면서 “지뢰 제거 작업을 끝낸 화살머리고지 일대는 세계 남북 평화지역 추모공원과 둘레길을 조성한다는 복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남북교류협력 조례’를 공포한 양구군의 행보도 발빠르다. 우선 남북협력 농업생산 전초기지를 추진하고 나섰다. 북위 38도에 있고 평균 해발 600~700m 고산지에 있다는 이점을 앞세워 감자, 옥수수 등 북한 지역 날씨에 적응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작물시험 재배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복안이다. 현재 해안면 통일농업시험장에 연구시범포를 설치하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인근 친환경 유기질 비료 생산업체와 협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북한 주민들을 끌어들여 해결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양구 특산품인 수박, 멜론, 사과와 시래기 농사를 대규모로 지으며 일손이 부족한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복안이다. 철책선 안쪽 문등리의 자원을 조사, 개발하겠다는 ‘민통선 북방마을 복원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서정혁 양구군 기획조정실 주무관은 “조선시대 백자 원료로 유명했던 양구 백토와 북한 해주, 봉산, 회령 등에서 나는 북한산 백토를 합토해 통일도자기를 만드는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화천군은 남북협력사업과 화천생태평화특구 조성 추진을 위해 민간인통제선 조정에 적극적이다. 현행 10㎞ 이내를 5㎞ 이내로 줄이고, 제한보호구역도 25㎞에서 15㎞로 줄여야 각종 사업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2006년 특구로 지정된 화천 평화생태지역은 백암산 로프웨이(2.12㎞)와 전망대, 생태관찰학습원 등이 추진되고 있다. 화천~평화의댐~금강산 수로 관광루트 개발사업도 올해까지 평화의댐(23㎞)까지 잇는 유람선과 DMZ 주변 관광자원을 연계해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남북교류사업이 본격화되면 평화의댐에서 금강산댐까지(35㎞) 2단계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최인한 화천군 기획계장은 “도로와 자전거길을 잇는 DMZ 순환 둘레길을 만들고 노후된 안동철교 재가설과 안동철교~양의대 하천습지~오작교 구간(4㎞) 생태학습지도를 만든다”고 말했다. 인제군은 내설악~금강산을 연계해 남북 관광특구와 DMZ 평화생명특구 개발로 남북교류의 대동맥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동서고속화철도 원통역을 잇는 23㎞ 구간 대체 노선의 신설을 바라고 있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연간 20만~30만명의 내금강 관광객이 찾는 새로운 평화관광 벨트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 백담사와 장안사, 표충사 등 북측 금강산 고찰들과의 불교문화 교류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더불어 6·25전쟁 이전 가전리~금강산 35㎞의 옛 금강산 가는 길을 복원하면 남북 공동 발전과 함께 민족 동질성 회복, 정신문화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명규 인제군 평화지역발전담당은 “이 밖에 서화면 천도리 평화지역발전사업을 비롯해 원통에 군 장병과 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복합커뮤니티 건립사업, 북한 금강군과 연계한 내수면 어류 복원연구사업, 북한 금강군 산림복원을 위한 양묘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북한 산림 복원으로 발생하는 임산물은 다시 인제 지역 주민들의 소득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네덜란드 6·25 참전용사 부산 유엔묘지서 영면

    네덜란드 6·25 참전용사 부산 유엔묘지서 영면

    네덜란드 출신 6·25 전쟁 참전용사가 전우들이 묻혀있는 한국 땅에 잠들었다. 부산보훈청은 12일 오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윌렘 코넬리스 드바우즈르 씨 유해 안장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안장식에는 유가족을 대표해 한국을 찾은 페트루스 파울루스 개랑드수 곰믈스(73) 네덜란드 참전용사협회장과 네덜란드 참전용사 2명,네덜란드 국립국군묘지재단 대표단,주한네덜란드대사,국가보훈처차장 등 60여명이 참석했다.로디 엠브레흐츠 주한네덜란드 대사는 “그의 마지막 안식처로 그를 모시고 왔다”면서 “자신이 지켜낸 한국 땅에서 영원히 안식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의지”라고 전했다. 안장식에는 고인의 업적을 참석자와 함께 기리는 시간이 마련됐다. 흰 천으로 싸인 고인의 유해가 땅속에 묻히고 네덜란드에서 온 참전용사들이 전우를 향해 마지막 경례를 올렸다. 고인을 추모하는 육군 의장대 조총 발사와 애도가,진혼 나팔이 유엔 기념공원을 울렸다. 고인은 1952년 7월 6·25 전쟁 참전을 결심한 후 이듬해 2월 네덜란드 반 호이츠 연대 소속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1953년 정전협정체결을 몇 시간 앞둔 새벽,드바우즈르 씨를 포함한 10명의 네덜란드 병사들은 금화산 지역 ‘철의 삼각지대’ 인근으로 정찰을 갔다가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으로 5명이 숨지고,드바우즈르 씨를 포함한 5명이 다쳤다. 드바우즈르 씨는 두 다리를 잃었으며 아들 1명과 양아들 1명을 슬하에 두고 가정을 이뤘지만,장애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5명의 전사자는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있다. 고인은 6·25전쟁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엔종군기장’과,네덜란드 국방부의 ‘자유와 정의 십자훈장’을 받았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북한군 묘지를 관광지로 개발, 어떻게 생각하세요

    북한군 묘지를 관광지로 개발, 어떻게 생각하세요

    국방부, 부지 교환 조건 묘역이관 협약 관리권은 파주시로… 토지 규모는 미정 상이군경회 “혈세로 조성… 사과 먼저” 道 “남북화해시대 역사교육의 장으로”경기도와 파주시가 6·25전쟁 전후 수습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공동묘지’를 관광지로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 감정에 맞지 않다’는 지적과 ‘평화와 화해의 시기에 의미 있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관계자는 6일 “아무리 남북화해시대라지만 우리 부모·형제를 죽인 북한군들의 묘를 혈세를 들여 관광지로 만들려는 것은 국민 감정상 너무 이르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희중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파주지부장도 “북한은 천안함 폭침 등 무려 8만여건의 대남 도발과 50여만건에 달하는 휴전협정을 위반했다”면서 “북한의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군 묘지에는 전후 남한으로 침투했다가 사살된 무장간첩들 묘도 있다”며 목소리 높였다.북한군 묘역 부지와 경기도 부지를 맞교환하기로 한 방식에 대해서도 부정적 여론이 있다. 묘지 관리비를 부담하는 데다 교환 부지까지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북한군 묘역 이관은 국방부에서 먼저 제안했는데 같은 값의 대토를 국방부에 제공하는 것은 ‘불리한 협약’이라는 지적이다. 북한군 묘역은 6099㎡에 이르며 인접한 군부대를 포함해 3만 7000㎡나 돼 수억원대 대토를 넘겨줘야 한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북한군 묘지를 접경지역 발전을 위한 평화와 화해의 공간으로 조성해 나갈 것이며,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관련 법규·규정에 따라 시설 관리전환 및 부지교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이번 북한군 묘지 이관을 통해 평화 협력시대를 주도하는 데 뜻깊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 관계자는 “국립묘지를 제외한 묘지 관리권은 지방자치단체에 있어 유지 관리는 북한군 묘지의 관광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파주시가 하게 될 것”이라면서 “아직 토지 교환 규모 등이 확정되지 않아 정확한 예산은 추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6·25전쟁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1억원을 들여 오는 8월 ‘북한군 묘지 기념공간 기본계획’을 수립해 안내판 및 화장실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파주 적성면 답곡리에 있는 북한군 묘지는 국방부가 1996년 조성, 관리해 오고 있다. 2014년 중국군 유해 송환 후 최근 북한군 묘지로 이름을 바꿨으며 843구가 매장돼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DMZ 관광·北과 농업 협력생산… 양구, 남북교류 전초기지로”

    “DMZ 관광·北과 농업 협력생산… 양구, 남북교류 전초기지로”

    인구 2만 4000여명, 면적 706.55㎢의 초미니 자치단체 강원 양구군이 남북교류시대의 전초기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지만 언젠가는 교류협력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대학 등과 협력해 비무장지대(DMZ) 평화 생태관광 활성화, 내금강 육로관광, 통일 도자기 제조, 트레킹 코스 개발, 숲치유마을 조성 등 다양한 남북협력사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특히 북한과 기후 여건이 비슷한 장점을 살려 북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남북협력농업생산전초기지’를 추진 중이다. 또 철책선 안쪽에 있어 민간인 접근이 어려운 문등리의 역사와 문화자료를 조사 발굴하는 ‘민통선 북방 마을 복원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양구군 남북교류협력 조례’까지 제정했다. 4일 조인묵(60) 양구군수를 만나 남북교류협력시대를 겨냥한 양구군의 청사진을 들었다.북한과 마주하며 중동부전선 험준한 산속에 있는 양구군은 수십년 동안 군사지역으로 자리잡았다. 6·25전쟁 때는 스탈린고지 등 북한의 주요 군사지역과 마주하며 도솔산 전투 등 치열한 고지전을 펼쳤고, 금강산 1만 2000봉 가운데 마지막 봉우리인 가칠봉(해발 1242m)을 간직한 곳이다. 이런 양구군이 최근 남북교류협력시대를 내다보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각종 규제와 군사지역으로 남아 겪는 설움을 해결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내금강 육로관광, 농업전초기지, 도예마을 조성 등 다양한 시책을 기획하며 남북교류시대 역할을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조 군수는 “평화(접경)지역으로 2~3중의 각종 규제와 도심지 헬기부대 증설 등 각종 군사시설로 주민들이 고통을 겪으며 어려움이 많았는데 남북이 교류협력을 추진하면서 양구군도 새로운 희망의 돌파구 마련에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체육의 고장’ 명성답게 당장 하반기 중 남북클럽친선역도경기대회와 지도자 세미나를 추진한다. 조 군수가 한국실업역도연맹 회장이고, 오는 9~11월 대전에서 동아시아역도대회에 북한 측이 참가하는 기회를 맞아 성사가 가능할 전망이다. 남북협력 농업생산 전초기지도 추진한다. 한반도 정중앙의 양구군이 북위 38도에 있고, 평균 해발 600~700m 고산지에 있어 감자, 옥수수 등 북한지역 날씨에 적응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작물을 시험 생산하며 대량 생산의 길을 틀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해안면이 있는 통일농업시험장에 연구시범포를 설치하면 언제든 가능하다. 인근 친환경 유기질 비료 생산업체 2곳과 협력하면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아울러 농업에 필요한 일손을 북한주민들을 끌어들여 해결하는 방안도 조심스레 구상 중이다. 큰 일교차로 과일 당도가 높아 전국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수박, 멜론, 사과와 시래기 농사를 대규모로 지으며 일손이 부족한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복안에서다. ‘민통선 북방마을 복원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철책선 안쪽에 있어 지금은 갈 수 없는 수입면 문등리의 자원을 조사,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곳에는 유리질의 광물로 알루미늄 제조 용제로 쓰이거나 렌즈의 원자재로 사용되는 형석 광산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의 자원과 역사, 문화적 가치를 남북이 공동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종국에는 남북 공동 북방마을로 복원시키겠다는 취지다. 조선시대 백자 원료로 유명했던 양구 백토와 북한 해주, 봉산, 회령 등에서 나는 북한산 백토를 합토해 통일도자기를 만드는 사업도 구상한다. 금강산 가는 길(국도 31번) 복원사업도 펼친다. 양구 동면 월운리~북한 금강 청송을 잇는 길로 군사 남방한계선까지 11.5㎞ 구간을 개설할 계획이다. 최근 남양주~춘천 간 제2경춘국도 건설이 구체화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내금강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원주지방국토관리청과 협의하고 있다. 오는 17일쯤 용역 결과가 나와 사업이 구체화되면 남북 육로 연결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최동호 기획조정실 기획담당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남북교류협력위원회를 구성하고 기금 조성에 나섰다”면서 “지난달 제정한 ‘양구군 남북교류협력 조례’에 의해 사업 추진 명분과 근거까지 마련했다”고 말했다. 안보관광지도 새롭게 단장된다. 30년 이상 된 해안면 펀치볼지대의 을지전망대가 새로 지어지고, 제4땅굴~을지전망대를 잇는 곤돌라 하늘길 조성사업도 추진된다.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전쟁의 상흔이 남은 펀치볼지구를 새롭고 특색 있는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복안에서다. 국비 등 20억원을 들여 내년까지 추진하는 을지전망대 신축사업은 산림청이 소유한 부지 이용을 협의 중이다. 제4땅굴~을지전망대 간 ‘금강산 가는 펀치볼 하늘길’ 곤돌라(1~1.6㎞) 사업은 2024년까지 국비 등 290억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하늘길이 열리면 평소에는 안보체험관광지로, 겨울철 결빙기에는 군사시설 보급품 공급에 이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조 군수는 “남북 화해시대를 맞아 대학, 관계 기관들과 평화지역 교류협력을 위한 다양한 업무협약을 맺고 차근차근 준비에 나서고 있다”며 “치열한 남북 대치 시대를 겪어 온 양구군이 화해와 협력의 전초기지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양구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조인묵 양구군수는 7급 공무원 출신 행정요직 잔뼈 굵어 양구군에서 7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내무부 기획예산담당관, 행정안전부 자치행정과, 대통령 직속 지방행정체제개편지원단, 정선부군수, 강원도 인재개발원장, 녹색국장,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청 행정개발본부장, 강원테크노파크 정책협력관을 거쳐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해 양구군수에 당선됐다. 강원대 농학과를 나와 고려대 행정학 석사와 숭실대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금강산 보이는 을지전망대… 2052m 제4땅굴도 가 볼까

    금강산 보이는 을지전망대… 2052m 제4땅굴도 가 볼까

    도솔산전투 등 6·25전쟁의 치열했던 격전지 양구군에는 상흔을 간직한 안보관광지가 있다. 을지전망대를 비롯해 제4땅굴, 전쟁기념관 등이다. ●을지전망대 가칠봉 능선 해발 1049m의 DMZ 철책선 안에 세워진 안보관광지다. 날씨가 좋은 날 1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비로봉과 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 등 금강산의 5개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북쪽으로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남쪽 해안면 펀치볼 지형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제4땅굴1990년 양구읍 동북방 26㎞ 지점으로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2㎞ 떨어진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됐다. 땅굴 규모는 높이 1.7m, 길이 2052m에 이른다. 관광을 위해 투명유리로 덮은 20인승 전동차가 운행하며 땅굴 내부를 볼 수 있다. 입구에는 땅굴 발견 당시 내부를 수색하다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를 밟고 죽은 군견을 기리는 묘와 충견비가 세워져 있다. ●전쟁기념관 6·25전쟁 때 양구지역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도솔산, 대우산, 피의능선, 백석산, 펀치볼, 가칠봉, 단장의능선, 924고지,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 9개의 전투를 망라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양구지역의 전투장면을 재현해 놓은 디오라마와 동영상, 슬라이드 영상은 물론 전쟁 발발부터 휴전협정까지의 설명과 전사자 명단, 참전 군인들의 유품 등도 전시됐다. 양구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파주 ‘북한군 묘지’ 경기도 이관...평화 화해 공간 조성

    파주 ‘북한군 묘지’ 경기도 이관...평화 화해 공간 조성

    6·25 전쟁 중 전사한 북한군을 안장한 경기 파주시 소재 북한군 묘역 관리 권한이 국방부에서 경기도로 이관된다. 경기도는 이곳을 평화와 화해의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경기도와 국방부는 4일 국방부 청사에서 이화영 도 평화부지사,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에 따라 그동안 북한군 묘지를 관리해 온 국방부는 관련 법규 및 제반 절차에 따라 북한군 묘지의 토지 소유권을 경기도로 이관하고, 그에 상응하는 토지를 경기도로부터 받게 된다. 관리권을 이관받은 경기도는 북한군 묘지를 접경지역 발전을 위한 평화공원 등 평화와 화해의 공간으로 조성해 활용할 계획이며, 국방부도 이를 위해 필요한 사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국방부와 경기도는 앞으로 관련 법규·규정에 따라 시설 관리전환 및 부지교환 절차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 5천900여㎡ 규모로 조성된 북한군 묘지는 국방부가 제네바 협약(적군의 사체 존중)에 따라 1996년 조성 관리해 왔으며, 현재 북한군 유해 843구가 안장돼 있다. 당초 ‘북한군·중국군 묘지’라는 명칭으로 관리돼 온 이 묘지에는 중국군 유해도 안장돼 있었으나 2014년 중국으로 송환된 이후 ‘북한군 묘지’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날 업무 협약식에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경기도는 이번 북한군 묘지 이관을 통해 남북평화 협력 시대를 주도하는데 매우 뜻깊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이번 협약이 한반도 평화 및 제네바 협약에 명시된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민간 차원에서 북한군 묘지를 체계적이고 단정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20회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송성환 어머니·친형 인터뷰 일시: 1999년 2월 15일 장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271-5 장간란 씨 자택 대담: 장간란(전사학생 송성환 어머니) 송종환(전사학생 송성환 친형) 이경종(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송성환은 전쟁 중에 전사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와 친형의 인터뷰로 대신합니다.친동생 송성환에게 부모·집 지키라고 당부 6·25사변 때 나(송성환의 친형 송종환)는 철도공무원으로 철도국에 다녔다. 1950년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우리 인천이 또다시 북한괴뢰군에 점령당할 위기에 몰리자, 그해 12월 초에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소집통지서가 나한테 왔다. 1950년 12월 17일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에 모인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과 같이 남하하였다. 나는 남하하는 전날 밤 내 동생 성환이에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 모시고 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하루 50㎞씩 걸어 국민방위군 수용소 도착 1950년 12월 17일 날 나는 인천에서부터 걸어서 내려가서 이듬해 1951년 1월 3일이 되어서야 경상남도 통영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때 하루에 120리(약 50㎞) 길을 걸었을 때도 있었는데 내려가는 도중에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때 굶거나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문경새재도 걸어서 넘어갔으며, 고생고생하며 경상남도 통영에 도착하였다. 그때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까 그곳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제3 수용소였으며 그곳이 마지막 집결지였다. 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친동생 송성환 만나 그때 막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도착하였는데 “형”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까 거기에는 생각지도 않게 내 동생 송성환이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고 물으니까 동생 성환이가 “형이 인천에서 내려간 이튿날 친구들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하여 여기 통영까지 오게 되었는데 와서 보니까 인천에서 떠난 국민방위군(제2국민병)이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형님이 이곳에 오지 않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때 이러한 내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성환이는 자기가 갖고 있던 양담배 채스타 한 갑과 끼고 있던 은반지를 내게 빼 주면서 “형, 나는 아직 쓸 돈이 남아 있으니까 염려 말고 이것 받아요. 우리들은 곧 부산에 있는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들어가니까 형 몸조심하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친동생 송성환이 준 은반지 팔아 밥 사 먹어 그때 나도 동생에게 “군에 입대하더라도 몸조심하고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 내 동생이 준 은반지를 팔아서 허기를 달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통영 방위군 제3 수용소(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3월까지 수용되어 있다가 제주도로 건너가 육군 제1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받고 060 군번을 받고 육군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육군 보충대를 거처 강원도 전투지역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5사단장은 민기식 준장이었다. 그때 내가 간 전투부대가 5사단 27연대 2대대였다. 이때 3대대에는 인천학도의용대로 인천에서부터 같이 온 내 아우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그때 우리 5사단이 속해 있는 군단이 포위되면서 후퇴할 때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다. 인제 전투에서 당한 손 부상으로 명예제대 그때 포위당해 매일 걸어서 후퇴하는데 며칠 몇 밤을 잠을 못 자고 후퇴만 하니까 그때는 ‘잠 한번 실컷 잤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다. 그때 내가 인제 전투에서 손에 부상 당해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인데 며칠을 후퇴하면서 전투하느라 씻지를 못해 손을 치료해야 하는데 손에 때가 많이 묻어 있어 간호사한테 손 내밀기를 주저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 해 1951년 10월에 그 부상으로 인하여 나는 상이 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친동생 송성환의 전사 사실 뒤늦게 알아 이렇게 제대를 하여 인천 집에 돌아와 보니까 내 동생 성환이의 전사통지서가 와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생 전사통지서를 받으신 우리 아버지께서 낙담하시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속이 상하셨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전사한 동생 때문에 한이 되시어 상심하시다가 동생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2년 뒤 44세의 젊은 나이에 그만 세상을 하직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5사단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거의 같은 날에 동생은 전사하고 나는 부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제대한 후에야 알게 되었으며 제대하기 전 5사단에 있을 때 내 동생 친구들은 동생이 전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한테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송성환 어머니 “전사 아들 생각 때마다 눈물” 우리 성환이는 6년제 공립 인천공업중학교 3학년이었던, 사변 나던 해(1950년) 겨울 집을 떠날 때 전쟁에 나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떠났어…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는데 전쟁놀이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시늉을 할 때는 쓰러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면서 쓰러지곤 하였는데 끝내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전사했어. 49년 전에 전사한 아들이지만, 그 전사한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요.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21회 계속 ■ 참전기 20회를 마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중학교 3학년 16살에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전사한 아들을 49년간 그리워하면서 슬퍼한 어머님의 눈물이 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문소영 칼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세계 평화

    [문소영 칼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세계 평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자 언론은 ‘6·25전쟁 이후 백두혈통의 첫 남한 방문’이라고 자주 표현했다. 전쟁 중이었으니 남한에 온 사람은 김일성이겠지, 남한 땅 어디어디를 밟았을까 궁금했다. 외교안보담당 기자들에게 출처를 물었더니 이런 보도자료를 낸 부처도 출처는 모른다고 했단다. 직접 출처를 찾고자 한국전쟁을 다룬 책들을 읽기로 했다. 미국 탐사보도 기자 출신인 데이비트 핼버스탬이 쓴 1082쪽의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를 지난해 봄 샅샅이 읽은 이유다. 부제가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였는데, ‘남침에 의한 골육상잔’이라는 상투적 이해를 훌쩍 뛰어넘는 외교안보 교재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맡은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이 ‘전쟁영웅’ 맥아더 유엔군 최고사령관과 벌이는 파워게임, 매카시 의원의 선동으로 시작된 반공의 광기 속에서 장제스의 중국 본토 수복을 도와야 한다는 친중 언론과 미국 국무부의 갈등 격화, 한국전쟁이 미국의 대중 관계에 미친 악영향 등 미국 정계와 외교 문제 전반이 수록돼 있다. 기대했던 북한군의 전투 동선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전장은 미군이 많이 전사한 운산·장전호 전투가 중심이었다. 9월 인천상륙작전에 고무돼 오만해진 맥아더 전쟁지휘부는 겨우 2주 훈련으로 한국에 파견된 솜털 보송보송한 20대의 미군들을 여름 군복 차림으로 평안북도까지 내몰았다가 10월 말 추위와 공포 속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속절없이 전사하도록 노출시켰다. 이 20대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 지낼 기대에 잔뜩 부풀었는데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국방비와 해외 파병을 10분의1 수준으로 가파르게 축소하던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 발발로 그 정책을 포기해야 했으니, 미국 의회의 동의도 없이 참전을 단독으로 결정한 그에게도 한국전쟁은 뼈아픈 전쟁이었고, 대만을 도울 기회를 잃었다는 격렬한 언론의 비판에도 직면했다. 그 책에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뿐 아니라 하노이에서도 미군 유해 송환에 미국 정부가 그렇게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만한 대목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3만 4000명 정도다. 한국전쟁은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잊을 수도, 잊어도 안 되는 전쟁이지만, 미군이나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한 군인이나 북한을 도운 중공군조차도 영광도 명예도 없는 ‘잊힌 전쟁’에 불과했다. 남한 측의 피해가 막대하다고 해서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미국, 프랑스, 터키, 독일 등에서 참전한 젊은 군인들의 희생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지 않았다. 김일성의 남한에서의 행보 추적은 결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8년 펴낸 6·25전쟁사 4권 223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1950년 7월에 충주 수안보 인근까지 내려와 낙동강 전선을 어서 돌파하라고 독려했다’는 요지였다. 그 출처는 전쟁기념사업회의 ‘한국전쟁사´(1992) 3권 250쪽이었다. 공식 문서가 출처인 셈이다. 이것 외에도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이 쓴 회고록에도 ‘서울을 거쳐 충북 수안보까지 내려왔다’고 돼 있다고 했다. 북한군 사령관이던 김책은 항일 동지로, 백두혈통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발표가 있었을 때 평양공동취재단 등에서 ‘북측 최고지도자의 서울 방문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표현을 바꾸었다. 살짝 달라진 것이지만, ‘6·25전쟁 이후 백두혈통의 첫 방문’과 같은 표현이 무의식적으로 유발하는 적개심과 분노, 경계심과 근심 등은 완화된 듯했다. 올봄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한다면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역사적 발걸음은 시작되는 것이다. 2017년 내내 한반도는 ‘제2의 한국전쟁’을 우려하며 불안에 시달렸다. 1년 2개월 뒤인 현재 하노이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실시간으로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다. 평양과 워싱턴에 북미가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두 나라가 종전을 선언하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더 안전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노딜’이라는 주장이나 ‘한국이 빠진 종전선언은 동의할 수 없다’는 발언은 비상식적이다. 더는 반공으로 세력을 키우고 생존할 수 없다. 그런 관성으로 버텨 온 진영이 한반도 냉전이 해체되는 새로운 시대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 북미, 北지역 유해 공동발굴 합의 가능성

    북한과 미국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 지역에 묻힌 6·25전쟁 미군 전사자 공동 유해발굴에 합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27일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군 유해송환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미가 공동 유해발굴에 합의하면 2005년 이후 14년 만에 유해발굴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주요 격전지였던 함경남도 장진읍과 신흥리, 평안북도 운산군과 구장읍, 계천시 등지에서 공동 유해발굴을 진행하며 모두 229구의 미군 유해를 수습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군 유해송환에 합의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제재 완화와 맞물려 유해송환 문제를 더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며 “유해송환 문제는 제재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은 1990~2007년 미군 유해발굴 비용으로 북한에 유해 1구당 5만 691달러 등 총 2200만 달러를 지불한 바 있다. 북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동 유해발굴에 합의하면 미국 장비의 대북 반입과 미 정부의 발굴비용 지불 등을 위한 대북 제재 예외 인정도 무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결단·중재·협상’ 케미 통했다…北 경제·북미관계 훈풍

    ‘결단·중재·협상’ 케미 통했다…北 경제·북미관계 훈풍

    ■김정은, 체제 불안 감수한 통 큰 결정…남북경협 속도 실질적 성과땐 경제 총력 노선 박차 2차회담 이후 서울 답방 가능성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그 결과에 따라 북한이 목표로 하는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의 명운이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집권 후 최장 공백에 따른 불안과 위험을 감수하고 66시간에 걸친 ‘열차 행군’을 강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내년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이자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인 만큼 올해 안으로 대북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 경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에 두 지도자가 다시 마주 앉기까지의 8개월의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비핵화 협상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김 위원장의 통 큰 결단과 비핵화를 향한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 앤드루 김 전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을 통해 공개된 “내 아이들이 평생 핵을 지고 이고 사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도 간절함이 묻어 있다. 북한 국내 정치 측면에서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재 완화와 관련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다면 김 위원장은 향후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와 개방을 반대하는 내부 세력에 본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설득하려면 경제적인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4월 핵·경제 병진노선을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2017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을 -3.5%로 추정했다. 1997년(-6.5%)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내 판단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느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약속한 ‘서울 답방’도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철도, 도로, 사회간접자본(SOC) 등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속도가 붙어 북한 경제에 숨통을 터줄 수도 있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는 ‘조건 없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협상에 진전을 내지 못하면 김 위원장이 천명한 ‘경제 총력’ 노선이 내부적으로 동력을 잃을 여지도 있다. 김 위원장이 올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한 만큼 북미 관계가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문재인, 고비마다 ‘촉진자’ 역할…新한반도체제 날개 제재 완화·경협 화두로 막판 중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주도 의지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여 만에 북미 정상이 27일 마주 앉기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가슴 졸이는 순간이 많았다. 북미 대화가 마찰음을 빚을 때마다 국내 보수진영과 미국의 일부 정치권·전문가 그룹에서 ‘비핵화 회의론’이 불거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 2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여전히 남북 관계·북미 관계 개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발목을 잡으려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고비마다 ‘대북 제재 완화 필요’, ‘교황 방북’, ‘김정은 연내 답방’, ‘남북경협’ 등 화두를 던져 북미 대화의 막힌 ‘혈’을 뚫으려 했다. 지난해 8월 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에 이어 11월 미국 중간선거까지 맞물리면서 북미 대화의 소강 국면이 장기화됐다. 문 대통령은 9월 평양 정상회담 이후 일주일 만에 미국 뉴욕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담은 김 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를 전했다. 10월 유럽 순방 때는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라면 유엔 제재 완화를 통해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설익은 구상’이라고 보수진영은 비판했지만 하노이선언에 대북 제재의 일부 완화가 포함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하노이 회담이 임박하자 ‘촉진자’로 나섰다.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부터 경협 사업까지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며 대북 제재 일부 완화를 제안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의 행보는 ‘신한반도체제 구상’에 맞춰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북한의 경제개방 상황을 상정하고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이며 “역사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주도해 나가겠다고 했다. 하노이선언에서 북미가 ‘종전’을 어떤 형태로 담아내든 1953년 이후 66년간 지속된 지구상 마지막 냉전체제가 실질적으로 종식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종전선언은 필연적으로 남·북·미·중 등 6·25전쟁에 참전한 4자를 비롯해 다자가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체제 논의로 이어질 전망이다. 우리가 물꼬를 튼 국제질서 변화를 적극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청와대는 ‘포스트 북미 회담’ 행보와 직결된 신한반도 체제 구상의 디테일을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절 기념사를 통해 밝히겠다고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트럼프, 양면술로 북핵 해결 ‘전진’…노벨평화상 기대 승부사적 기질로 대북 회유·압박‘빅딜’ 성공땐 새 북미관계 수립 “내가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달성을 위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밝힌 이 원칙은 그가 어떤 생각으로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지난 8개월간 미국 내 강경파의 회의론을 뚫고 북핵 해결에 박차를 가해 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트럼프의 목표는 미국 전직 대통령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중동정책을 뒤엎고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는 등 파격적인 외교정책을 펴 왔지만 이는 오바마의 흔적을 지운 것뿐이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작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를 마련한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외교 성과를 낸 첫 사례를 만들 수 있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 전에 ‘내가 오바마보다 낫다’고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합의로 노벨평화상이라도 받는다면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뮬러 특검 리스크를 한번에 뒤엎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를 잡고자 승부사적 기질을 발동해 말 그대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왔다. 지난해 8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돌연 취소하고 추가 대북 제재 조치까지 내놓으며 북한을 압박해 협상의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미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북한 비핵화 회의론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제동을 걸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미공개 북한 미사일 기지 관련 보고서를 내고 뉴욕타임스가 곧바로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의 미사일 기지는 거대한 기만이라고 보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김 위원장을 향해 “남은 합의를 마저 이행하면 바라는 것을 이뤄 주겠다”며 ‘회유와 압박’의 양면술을 폈다. 그의 행보와 미국의 정치적 일정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이번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사찰과 검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 동결을 약속받고 양국 간 연락사무소를 징검다리 삼아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이란 대형 이벤트를 연 것 자체에 ‘빅딜’에 합의할 것이란 자신감이 깔렸다. 북미 관계 개선은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지정학적으로 이점을 가져올 수도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역사에 남을 지도자’ 트럼프 대통령의 꿈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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