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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국방’ 대북억제 공감, 방위비분담·전작권은 온도차

    ‘한미 국방’ 대북억제 공감, 방위비분담·전작권은 온도차

    북 신형 ICBM 관련 ‘대북 억제’엔 공감미 국방,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서욱 장관, 전작권 조기 구비 강조했지만미측은 “모든 조건 갖추는 데 시간 걸려”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며 핵전력을 과시한 가운데 한미는 ‘확장억제’를 언급하며 동맹을 강조했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이나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에 대해서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또 이날 예정됐던 양국 국방장관의 공동기자회견이 갑자기 취소됐다. 서욱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14일(현지시간) 미국 알링턴에 있는 국방부에서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을 열었다. 서 장관은 모두 발언에서 “북한이 10월 10일 열병식을 통해 새로운 장거리탄도미사일으로 추정되는 무기를 공개하는 등 한반도 안보환경의 유동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 뒤, 이날 열린 SCM이 “어떤 안보도전에도 변함없이 공고한 한미동맹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에스퍼 장관도 “오늘 미국과 한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할 것”이라며 “우리는 북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이 세계 안보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으로 남아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에스퍼 장관은 “미국은 신남방정책과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지역안보를 위한 한국의 기여가 증대된 것을 환영한다. 우리 두 나라는 함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유지하는데 전념하고 있다”며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또 “우리는 집단 안보 비용을 분담하는 보다 공평한 수단을 찾아야 한다”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 특히 “미국 납세자에게 불공평하게 부담이 가서는 안 된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다른 동맹뿐 아니라 한국도 더 공헌해야 한다는 취지로 압박했다. 이외 서 장관은 이날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하여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빈틈없이 준비하는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지만 에스퍼 장관은 “전작권 전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 온도차를 보였다. 이날 한미 국방장관은 SCM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취소됐다. 미국 측의 요청이었으며 한국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외교를 치적으로 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앞두고 공고한 대북 방어 태세를 강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이날 양국 장관은 SCM에 앞서 워싱턴DC에 있는 6·25전쟁 참전 기념공원을 방문해 헌화 행사를 가졌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다. 또 원인철 합참의장과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제45차 한미 군사위원회(MCM) 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서울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글로벌 In&Out] 북한 ‘유령어선’은 왜 생기나/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글로벌 In&Out] 북한 ‘유령어선’은 왜 생기나/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북한의 수산은 전략적 부문이다. 유엔안보리 제재 대상으로 수산 부문이 전면적 수출금지가 된 이유도 바로 외화벌이의 원천인 업종이기 때문이다. 외화벌이에 있어 중대한 만큼 어부와 수산물 가공자, 수산장사와 무역 등 여러 작업이 있기에 많은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수산물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갈수록 많은 어선이 러시아나 일본으로 표류돼 어부들이 죽거나 어선에서 표류하다가 살아남은 경우가 많아졌다. 2017년에는 100척 이상의 북한 어선이 일본으로 밀려왔다고 한다. 이런 전략적 부문에서 ‘유령어선’이 왜 이렇게 많이 발생했을까? 특히 북한 같은 통제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잡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사람들은 중앙당이 관장하는 사회단체에서 조직생활도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한다. 그리고 사회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성으로부터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북한은 6·25전쟁 휴전 이후 대대적인 사회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매우 통제된 사회다. 특히 소련,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와 중국 톈안먼 사태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다. 그런데 왜 유령어선이 많아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제 문제 해결은 정치적 문제 해결보다 훨씬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경제나 사회 문제보다 정치를 우선시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가 아닌가 싶다. 반란과 쿠데타를 예방하려면 반란세력에 두려움을 줘서 서로 잘 만나지 않게 하거나 관련된 얘기를 꺼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중간중간 숙청의 칼을 꺼내고 감시하는 사람들에게 대가를 주면 감시가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소련이나 중국을 보면 완벽하게 되는 경우도 없고 정보 유입 같은 문제도 있다. 그런데 다른 문제점을 떠나서 이 감시제도를 유지하는 것 자체에 매우 많은 비용이 든다. 많은 요원을 고용하고 보수를 줘야 하므로 인건비와 기회비용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게다가 북한의 지도층은 내부적 위험을 걱정해야 할뿐더러 주변 강대국과 번창하게 살고 있는 남한까지 있어 외부 위협도 상당하다. 감시비용에다가 군사비까지 추가되면 돈벌이가 매우 시급한 사안이 된다. 수산은 매우 귀한 외화의 원천이다. 다각적으로 돈 벌 기회이기도 하다. 2000년대에 들어 처음으로 조업권을 중국에 판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가 돈벌이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업권을 계속 팔아 자국 어선과 중국 어선 간에 경쟁을 시킨 셈이다. 유령어선이 국가 평판의 문제가 되지만 외화벌이가 우선적이다. 그런데 왜 어선들을 감시해서 표류될 수 있는 어선들을 나가지 못하게 하지 않는가? 북한에는 수산 관련 법률이 많고, 어선과 선원 등에 대한 규제 및 규정도 상당하다. 문제는 감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선으로부터 뇌물을 챙기거나, 어선을 운영하는 기관과 개인마저도 감시기구와 결탁관계에 있거나, 감시기구 산하인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것과 같이 북한 외화벌이 사업에서 군대와 보안성, 보위성 등 유력기구들(북한말로 ‘특수기관들’)이 막대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시 일꾼들은 먹고살기 위해 눈을 감아 주면서 나라몫까지 챙겨야 하니 어부의 안전을 먼저 지키겠는가. 지난 30년 동안 북한 당국은 평판 문제가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위조화폐 제작, 아편 밀수 등 여러 금기된 업종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파편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한 기관(당중앙 39호실)에서 수행했다면 쉽게 중단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산 부문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최고지도자가 외화벌이만큼 지속적으로 어부의 안전 문제를 중대한 사안으로 여겼다면 해결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최고지도자로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 文대통령, 15일 만에 또 ‘종전선언’… 野 “대답없는 메아리”

    文대통령, 15일 만에 또 ‘종전선언’… 野 “대답없는 메아리”

    문재인(얼굴) 대통령은 8일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한미)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 이후 15일 만에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물꼬를 트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군에 의한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국민 분노가 들끓는 데다 미국 대선 전 ‘옥토버 서프라이즈’도 물 건너간 터라 보수 야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교류를 위한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화상(사전녹화) 연례만찬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만이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과 2019년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실질적 진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화를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면서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고 제도화할 때 (한미)동맹은 더욱 위대해질 것”이라며 “한반도가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동조사 제안에 북측이 묵묵부답인 데다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의 입국이 공개되는 등 남북 관계는 유엔총회 때보다 냉각됐다. 그럼에도 거듭 종전선언 의지를 밝힌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상황에서 확고한 평화 의지를 드러내 긴장 고조를 막고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연설 장소가 미국 내 ‘지한파’ 인사들이 참여하는 코리아소사이어티란 점에서 11월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 조야(朝野)에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공감대를 끌어내려는 의도도 읽힌다. 그러나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은 논평에서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은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라며 “공허한 외침 대신 국민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답을 해 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비핵화는 실종된 지 오래고, 국민이 총살당하고 불태워져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종전선언과 가짜 평화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종전선언은 평화와 뗄 수 없는 개념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지도자가 평화와 종전선언을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6·25 중국군 유해 117구 송환

    6·25 중국군 유해 117구 송환

    2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제7차 중국군 유해 인도식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영현봉송병들이 중국군에게 유해를 인도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숨진 중국군 유해 117구를 송환했다. 한중 양국은 2014년 한국에서 발굴된 중국군 유해를 송환하기로 합의했으며, 지금껏 여섯 차례에 걸쳐 총 599구를 인도했다. 국방부 제공
  • 국방부, 6·25전쟁 중국군 유해 117구 27일 송환

    6·25 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전사한 중국군 유해 117구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국방부는 23일 “중국군 유해 송환을 위한 제7차 중국군 유해 인도식 행사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오는 27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도식은 박재민 차관과 창정궈 중국 퇴역군인사무부 부부장이 각각 양국 대표로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이번에 중국으로 돌아가는 유해는 국방부가 지난해 3월부터 12월 사이 발굴한 117구다. 이 중에는 강원 철원 화살머리고지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견된 유해 103구와 유품 1368점이 포함됐다. 117구의 유해는 2014년 437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성과다. 2018년 남북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에 따라 지난해부터 DMZ에서 유해 발굴이 가능해지면서 다수의 중국군 유해가 발견됐다. 1953년 6·25 전쟁 화살머리고지 전투 당시 중국군은 약 3000명이 전사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국은 국제법과 인도주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매년 유해 인도식을 실시해 왔다. 국방부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99구의 중국군 유해를 송환했다. 이번 인도식은 코로나19 상황에도 전사자 유해를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기 위해 추진됐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이에 앞서 26일에는 유해에 대한 입관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국방부는 한중 양국 간 신뢰를 증진하고 미래 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한반도와 역내 평화 증진을 위한 협력과 공조의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정경두 “광복군, 국군의 정신적 뿌리… 본연 임무에 전념하겠다”

    정경두 “광복군, 국군의 정신적 뿌리… 본연 임무에 전념하겠다”

    “광복군, 위대한 정신 계승”광복군, 1940년 9월 中충칭서 창설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17일 “한국광복군은 1948년 창설된 우리 국군의 정신적 뿌리”라면서 “위대한 정신을 계승하고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더욱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창군 제80주년 기념식에서 서면으로 보낸 축사를 통해 “광복군은 조국의 광복에 크게 기여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장관은 “우리 군은 광복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광복군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하고, 6·25전쟁 당시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희생과 헌신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이었던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광복군은 국군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복군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중국 독립 전선에서 중국군과 협동해 항일전을 전개했다. 영국군과 연합해 인도·미얀마 작전에도 참여했다.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공동으로 특수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 작전도 추진했지만, 일제의 항복으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광복군동지회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에는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독립운동가 후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광복군 선언문 낭독, 한국광복군동지회장의 기념사, 독립군가 합창,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끈 팔미도 등대 사적 됐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끈 팔미도 등대 사적 됐다

    1903년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 됐다. 문화재청은 15일 “팔미도 등대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함대를 인천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인도해 6·25전쟁의 국면을 바꾸는 데 기여한 역사적,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사적 지정일인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 70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아울러 ‘독립신문 상해판’과 ‘대구 동인초등학교 강당’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독립신문 상해판은 1919년 8월 창간부터 1926년 11월 폐간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국한문으로 발행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다. 국제 정세, 임시정부 활동상, 국내외 독립운동 동향 등을 담고 있다. 전체 198호 중 창간호와 마지막 호를 포함해 총 170개로 구성돼 있다. 기존 독립신문 상해판(국가등록문화재 제510호)과 더불어 학술연구·전시·교육 측면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다.1935∼1937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중구의 동인초등학교 강당은 근대기 도시 공간 구조와 변화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강당 건물로서 필요한 층고 확보를 위해 이중 경사 지붕 건축 기법을 사용한 것도 특징적이다. 문화재청은 등록 예고한 2건에 대해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김수규 서울시의원, 원격교육 교원 연수 진행하는 서울 장평초등학교 격려 방문

    김수규 서울시의원, 원격교육 교원 연수 진행하는 서울 장평초등학교 격려 방문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김수규 위원(동대문4,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9일 ‘학습자 소통을 위한 쌍방향 원격수업 연수’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 장평초등학교(교장 윤은옥)를 방문해 교직원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노고를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다. ‘학습자 소통을 위한 쌍방향 원격수업 연수’는 학급 단위에서의 소통으로 시작하는 수업 혁신과 코로나19 극복을 목표로 교사의 원격수업 주도 능력을 신장하고, 학생과 학부모 요구에 부응하는 원격교육 모델을 구축하고자 서울 장평초등학교가 진행한 교원 연수 프로그램이다. 쌍방향 원격교육의 경우 질의응답이나 출석 확인 등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이 즉각적으로 이뤄질 수 있으나 접속지연과 오류로 인한 문제, 스마트기기 활용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교육 현장에서 운영에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를 위해 대상별로 6차에 나눠 진행된 연수를 통해 원격수업 플랫폼 활용부터 수업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사례들에 대한 공유, 교육 콘텐츠 활용 및 지적재산권 대응 방안 등에 대한 교원 간의 심도 있는 학습과 논의가 전개됐다. 이 날 김 의원은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의 준비 상황을 안내받고, 원격수업 내실화를 위한 교원 대상의 교육·연수를 참관했다. 연수에 참여한 교원들은 원격수업 진행에 있어 무선 인프라 구축 및 교육복지 대상 가구 등을 위한 지원 확대 필요성, 양질의 교수·학습을 위한 통신비와 각종 기술적 지원에 대해 건의했고, 김 의원은 이를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교육연수를 참관한 김 의원은 “6·25전쟁에도 천막 학교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왔듯이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교직원들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원격교육으로 교육현장이 유지되고 있다”며 “많은 불안과 어려움 속에서도 학생의 건강권과 학습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주시는 장평초등학교 교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격려했다. 이어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불가한 교육현장에서 학력 격차 확대와 학생의 정서 문제 등에 있어 여러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교육위원회 소속 시의원으로서 원격교육 내실화와 교육공동체의 안전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주 올해 10월 ‘유등·개천예술제·드라마페스티벌‘ 축제 전면 취소

    진주 올해 10월 ‘유등·개천예술제·드라마페스티벌‘ 축제 전면 취소

    경남 진주시는 올해 10월 열릴 예정이던 남강유등축제·개천예술제·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등 3개 축제를 모두 취소한다고 1일 밝혔다. 10월 축제를 주관하는 개천예술제제전위원회, 진주남강유등축제제전위원회,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조직위원회 등 3개 단체는 지난달 31일 긴급 총회을 열고 논의를 해 축제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시는 긴급 총회에 참석한 위원들 대다수가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올해 10월 축제 전면 취소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과 무증상 감염자 비율이 증가하는 데다 대규모 행사와 축제는 연기 또는 취소하라는 정부의 강력한 권고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는 지난해 10월 축제가 전국에서 155만여명이 방문하는 등 전국 규모 행사로 열린 점으로 미뤄볼때 올해 축제기간은 추석연휴까지 겹쳐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면 코로나19 확산이 우려되는 현실이 축제 취소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시는 거리두기 1단계 상황을 전제로 10월 축제를 대폭 축소하되 대규모 밀집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소규모 행사를 지역 곳곳에 분산 개최할 계획이었다. 풍물시장, 부교, 음식코너, 체험행사 등 관람객 밀집이 예상되는 행사는 전면 취소하고 온라인 요소를 대폭 확대하면서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안전과 방역대책도 철저히 마련하는 등 만전을 다해 축제를 준비했지만 결국 전면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시는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 지역 거점별 유등전시와 소규모 문화예술 공연, 온라인 공연 등 다양한 축제 콘텐츠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주 10월 축제는 2009년 신종 플루 확산 당시 전면 취소되거나 축소 개최됐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개천예술제는 1950년 6·25전쟁과 1979년 10·26 사태 때 전면 취소된 바 있다. 진주시 관계자는 “진주의 가을을 상징하는 10월 축제가 전면 취소돼 지역경제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2021년 진주 10월 축제가 더욱 새롭고 변화된 모습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서울시 ‘6·25 격전 상흔지’ 50곳 발굴

    서울시 ‘6·25 격전 상흔지’ 50곳 발굴

    서울시가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6·25전쟁 격전 상흔지’ 50곳을 발굴하고 표석이나 안내표지판을 설치한다고 31일 밝혔다. 시민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도시개발 등으로 사라져가는 서울시내의 격전 상흔지를 발굴하고 안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시는 우선 1차로 이날 3곳에 안내표지판 설치를 완료했다. 한강방어선 노량진 전투지(사육신묘공원), 한강방어선 흑석동 전투지(효사정공원), 함준호 대령 전사지(강북구 우이동 연경빌라) 등이다. 시는 2022년까지 나머지 안내표지판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또 이번에 발굴한 50곳을 안보 관광 프로그램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갈준선 서울시 비상기획관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고 도시개발 등 으로 사라져가는 서울시내 6·25전쟁 격전 상흔지를 지금이라도 발굴해 보전하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국방부 “백선엽, 군·한미동맹 발전에 공헌…파묘 근거 없어”

    국방부 “백선엽, 군·한미동맹 발전에 공헌…파묘 근거 없어”

    국방부가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한 여권의 파묘 주장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6일 미래통합당 김도읍 의원실에 따르면 국방부는 최근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친일행적 등 고인의 과거행적을 사유로 파묘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 사실만으로 파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공적 미화 주장에 대해서도 “백 장군은 6·25전쟁 다부동 전투를 비롯한 다수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켰으며,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으로 육군참모총장을 2회 역임하는 등 군과 한미동맹의 발전에 공헌한 것이 사실”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무공훈장을 받아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 해당해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라고 적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친일파 파묘법’(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내놨고, 김원웅 광복회장은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서울대교구 최고령 최익철 신부 선종

    서울대교구 최고령 최익철 신부 선종

    천주교 서울대교구 최고령 사제이자 `우표 수집가´로 유명한 최익철 신부가 지난 22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98세. 황해도 안악군에서 태어난 최 신부는 1950년 11월 사제품을 받아 황해도 사리원 본당 주임에 임명됐으나 6·25전쟁이 터져 부산으로 피난해 ‘무보수 촉탄 문관’ 신분으로 일종의 군종사목을 했다. 1953년 성신고 교사로 재직했고 1955년부터 8년간 벨기에 루뱅대에서 공부한 뒤 귀국해 이문동, 가회동 본당주임과 여의도성모병원 원목을 지냈다. 이후 금호동, 오류동, 해방촌 본당주임을 거쳐 1998년 원로사목 사제가 됐다. 최 신부는 세계 각국 천주교 우표 수집가로 소문난 사제다. 지난 5월 마지막 저서인 `천주교 우표 도감´을 비롯해 ‘우표로 보는 교황전’ 등 관련 서적 50여권을 펴냈으며 2017년에는 수집 우표 10만장을 모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어릴 적 청각장애를 겪어 ‘보청기 신부님’으로도 유명한 고인은 우표 전시와 저서 판매 수익금으로 청각장애 어린이와 청소년 수백 명에게 보청기를 전달하기도 했다. 장례미사는 24일 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 관광과 연계 육성… 市 승격 대비 전력”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 관광과 연계 육성… 市 승격 대비 전력”

    “남은 임기 2년 동안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지겠습니다.” 백선기 경북 칠곡군수는 연휴를 앞둔 지난 14일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9년여간 ‘칠곡(왜관)=미군부대’라는 부정적인 지역 이미지를 ‘칠곡=호국평화 도시’로 탈바꿈시켰으며, 앞으로 칠곡이 대한민국 제일의 호국평화 도시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또 백 시장은 “6·25전쟁 최대 격전지로서 절체절명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칠곡군의 정체성과 도시브랜드 ‘호국평화의 도시’ 가치를 한층 높여 도시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면서 “앞으로도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 개최와 6·25전쟁 아프리카 유일의 참전국인 에티오피아에 제2칠곡평화마을을 조성하는 등 호국·평화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민선 5기에서 민선 7기까지 오면서 칠곡군에서 3선 연임을 하는 최초의 군수가 된 백 군수는 나눔과 배려 문화의 정착, 관광산업 육성을 통한 도시경쟁력 강화, 생활기반 시설과 도시인프라 구축 등 시 승격 대비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다음은 백 시장과의 일문일답. ●“낙동강세계평화 문화 대축전 무산 아쉬워” -칠곡군이 올해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자치단체로서는 이례적이다. “칠곡은 6·25전쟁 당시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최후의 보루다. 이런 자랑스러운 호국평화의 도시에서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참전용사의 희생과 용기를 기리는 사업을 벌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더욱이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추진해 큰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칠곡군의 대표 축제인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이 취소돼 매우 아쉽다.” -특히 기념사업 가운데 ‘호국 영웅 초청 사업’과 ‘에티오피아 6037 캠페인’이 눈길을 끌었다. 먼저 호국 영웅 초청 사업을 소개하면. “지난 6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국 영웅 8명을 초청해 배지를 달아 주고 희생과 헌신에 감사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비롯해 조석희(6·25전쟁)·권기형(제2연평해전)·전준영(천안함 폭침)·권준환(연평도 포격)·하재헌(DMZ 수색작전)·이길수(월남전)·강문호(이라크 파병)씨다. 칠곡군은 청소년과의 호국을 주제로 한 대화 시간을 마련했으며, 6·25전쟁 낙동강전투에서 순국한 호국영령들에게 헌화하고 묵념했다.”-에티오피아 6037 캠페인은 뭔가. “6·25전쟁 때 에티오피아 젊은이 6037명이 참전해 122명이 전사하고 500여명이 상처를 입었다. 이들의 희생이 대한민국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이 코로나19 기승에도 마스크가 없어 스카프와 수건, 목도리 등으로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매우 가슴이 아팠다. 제가 6037명의 헌신에 결초보은하는 의미로 ‘6037 캠페인’을 주창했고 여기에 주민들이 적극 참여했다. 지난 6월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을 방문해 마스크 3만장 및 손소독제 250병 등 코로나19 방역물품과 손편지 700여통을 전달했다.” -그동안 자연재해 및 내전으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된 에티오피아 지원 사업도 꾸준히 펼쳐 왔는데. “2014년부터 에티오피아 티조 지역을 ‘칠곡평화마을’이라 명명한 뒤 환경개선 및 주민 소득증대 지원사업을 해 왔다. 초등학교 2곳 신축, 식수 저장소 4기 및 식수대 11기 건설, 새마을회관 건립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칠곡군은 2016년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지방자치 정책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앞으로도 에티오피아에 칠곡평화마을을 추가 조성하는 등 지원을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다.” -호국과 평화를 테마로 한 관광인프라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지역 정체성 확립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호국과 관련한 지역의 다양한 인프라와 스토리를 연계해 관광산업화하는 데 집중하겠다. 특히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U자형 칠곡관광벨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겠다. 이 사업은 칠곡 왜관읍에 자리한 ‘호국의 다리’를 중심으로 좌우 낙동강변으로 이어지는 자연·생태·호국과 평화·역사, 문화·예술 관람과 체험을 한곳에서 할 수 있는 매머드급 복합관광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전체 면적은 약 3㎢, 총사업비는 2000억원가량이다. 이와 함께 대구·구미·김천 사이에 있는 지역의 장점을 살리고 체험관광 특화로 관광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겠다.”-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지금까지 6·25전쟁 당시 공산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폭파했던 ‘호국의 다리’를 중심으로 호국평화기념관과 칠곡보 생태공원·오토캠핑장·야외물놀이장, 꿀벌나라 테마공원, 사계절 눈썰매장 등 호국평화관광벨트 조성 사업을 추진했으며 2022년까지 한미 우정의 공원, 호국문화체험테마공원. 애국동산 다목적광장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평소 호국과 보훈을 유달리 강조하는데. “정부는 6월을 ‘호국 보훈의 달’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호국과 보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어느 한쪽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나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희생정신, 보훈가족의 나라사랑 정신이 자꾸만 잊혀 가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만큼 호국정신 함양과 안보의식 고취가 중요하다. 호국영령들의 숨결이 깃든 역사의 현장인 칠곡군은 앞으로 현충일을 365일 생활해 일상의 보훈 문화를 확립하고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겠다.” ●재정건전성 확보로 대규모 사업·복지 큰 도움 -칠곡군의 발 빠른 재정 건전성 확보가 원활한 군정 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11년 군수 취임 당시 칠곡군의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은 21.1%로 전국 82개 군 가운데 1위였다. 군 평균인 5.8%보다 무려 3.6배나 높았다. 이 때문에 군은 전국 1위의 채무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군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겨 줬다. 채무 굴레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군수부터 허리띠를 졸라맸다. 관사 매각을 시작으로 고질 체납세 징수, 낭비성 예산 감축, 행사 경비 절감, 선심성 보조금 관리 강화 등을 통해 부채 상환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 자산을 매각하거나 꼭 필요한 사업 등을 없애 무리하게 빚을 청산하는 식의 쉬운 길은 선택하지 않았다. 마침내 2018년 1월 재정 파탄 위기를 극복하고 ‘채무 제로 시대’를 선포했다. 재정건전성이 확보되면서 각종 대규모 사업의 원활한 추진과 복지 및 코로나19 예산의 급격한 증가에도 잘 극복하고 있다.” 칠곡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백선기 군수는 백선기(65) 칠곡군수는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군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고향인 칠곡 약목면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경북도 감사계장, 자치행정과장과 청도군 부군수까지 36년 동안의 공직을 거쳤다. 덕분에 지방행정에 정통해 ‘지방자치 행정의 달인’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난 6월 경북도시장군수협의회장에 선출된 그는 높은 청렴성과 도덕성, 추진력을 두루 겸비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2011년 10·26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처음 군수에 당선된 뒤 내리 3번 당선됐다.
  • 가족 품에 돌아온 6·25 국군 전사자

    가족 품에 돌아온 6·25 국군 전사자

    6·25전쟁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다 산화한 국군 전사자 유해 2구가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국방부는 12일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유해 1구와 6·25전쟁 70주년 기념행사 때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으로부터 봉환된 유해 1구 등 전사자 2명의 신원이 추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배석래(왼쪽) 이등중사와 김학제(오른쪽) 일병이다. 배 이등중사는 6·25 당시 국군 2사단 31연대 소속으로 1953년 7월 11일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는 정전협정 체결을 불과 2주가량 앞둔 시점에서 전사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 일병은 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카투사) 미7사단 31연대 소속으로 1950년 11~12월 북진하던 가운데 장진호에서 중국군과의 교전 중 전사했다. 김 일병의 희생으로 당시 중국군 7개 사단에 포위됐던 아군은 돌파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해 발굴 시 탄약, 대검, 인식표, 전투화 등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유품도 다수 발견됐다. 유해의 신원은 유가족의 유전자정보(DNA) 대조 검사를 통해 확인했다. 국방부는 신원이 확인된 2명의 전사자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호국영웅 귀환행사와 국립현충원 안장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총 151명이다. 이 중 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8명, 올해 DPAA로부터 봉환된 국군 유해 가운데 8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군복 등록문화재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와 대한제국의 서양식 군복 유물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902년 발행된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와 대한제국 대원수(황제)가 착용했다고 전해지는 상복, 장관급인 참장의 예복과 상복 등 근대 서양식 군복 9종을 문화재로 등록예고했다고 12일 밝혔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1년 군악대 지휘자로 초빙돼 온 독일 음악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이듬해 7월 1일 완성해 그해 8월 15일 애국가로 공포됐다. 국가에서 제정한 첫 애국가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로 금지곡이 됐다. 육군박물관에 있는 대한제국 군복 9종은 영관급인 부령, 위관급인 부위·정위의 예복과 상복까지 병과별로 다양하게 남아 있고 상의의 의령장(衣領章), 수장(袖章)의 줄 개수와 다른 색의 천을 붙이는 방법으로 계급과 병과를 구별해 당시 군복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청은 아울러 안동의병 이긍연(1847~1925)의 을미의병 활동 전모와 의병 70~80명의 이름을 기록한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1959년 건립해 6·25전쟁 이후 건축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강원도 동해 북평성당도 문화재로 등록예고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서양식 군복 문화재 된다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서양식 군복 문화재 된다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와 대한제국의 서양식 군복 유물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902년 발행된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와 대한제국 대원수(황제)가 착용했다고 전해지는 상복, 장관급인 참장의 예복과 상복 등 근대 서양식 군복 9종을 문화재로 등록예고했다고 12일 밝혔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1년 군악대 지휘자로 초빙돼 온 독일 음악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이듬해 7월 1일 완성해 그해 8월 15일 애국가로 공포됐다. 국가에서 제정한 첫 애국가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로 금지곡이 됐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한 ‘대한제국 애국가’ 유물은 관악합주용 총보와 한글 및 독일어로 번역한 가사, 제작 경위를 밝히는 민영환(1861~1905)의 서문이 실려 있다. 문화재청은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주권을 지키려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외교 노력을 담고 있어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육군박물관에 있는 대한제국 군복 9종은 영관급인 부령, 위관급인 부위·정위의 예복과 상복까지 병과별로 다양하게 남아 있고 상의의 의령장(衣領章), 수장(袖章)의 줄 개수와 다른 색의 천을 붙이는 방법으로 계급과 병과를 구별해 당시 군복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청은 아울러 안동의병 이긍연(1847~1925)의 을미의병 활동 전모와 의병 70~80명의 이름을 기록한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1959년 건립해 6·25전쟁 이후 건축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강원도 동해 북평성당도 문화재로 등록예고했다. 30일간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를 확정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자유·저항의 대학로… 치열했던 ‘청춘들의 행진’

    자유·저항의 대학로… 치열했던 ‘청춘들의 행진’

    문화재라 하면 으레 건축물이나 도자기 같은 것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서울미래유산은 그 폭이 좀더 넓다. 문화재로 지정되거나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가운데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 영화도 한 카테고리다. 대표적인 것으로 1975년 개봉한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 있다. 소설가 최인호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비판적 사고를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불안과 좌절, 비애, 상실감 등 우울한 자화상을 묘사한 영화다. 1970년대 서울 대학가와 그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영화로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이 됐다.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1회 ‘서울의 영화-바보들의 행진’을 준비하면서 이 영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했다. 젊음과 낭만의 거리라 불리는 대학로가 좋은 사례 중 하나일 듯싶었다. 혜화동로터리에서 이화사거리까지 1㎞ 남짓한 도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학로는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은 공연을 볼 때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봤음 직한 젊은이들의 공간이다. 한복판에 있는 마로니에공원을 거닐다 보면 여유롭게 거리공연을 펼치는 악사에서부터 비보잉을 하는 댄서들까지, 자유로운 분위기에 누구나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물론 원래부터 이곳이 대학로라 불린 것은 아니고 공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이 지역의 근대는 식민지와 함께 왔다. 애초 이곳의 터줏대감은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들어선 경성제국대학이었다. 의학부와 법문학부, 대학본부가 마로니에공원 일대에 있었고 거기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학교 격인 예과가 청량리에 있었다. 이후 서울대가 이곳에 들어선 것은 광복 뒤인 1946년이었다. 법대와 문리대, 의대 등이 마로니에공원과 주변 서울사대부속 초·중교 자리에 자리잡았다.당시 풍경은 어땠을까.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과 ‘왜 불러’ 등이 영화 전편에 흐르면서 무기한 휴강과 입대, 장발 단속 등 10월 유신의 풍속도가 리얼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보다 차가웠다. ‘왜 불러’뿐만 아니라 극 중 영철의 테마곡인 ‘고래사냥’이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곧잘 불리면서, 두 노래는 결국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감독 자신은 현실과 타협한 영화라고 자조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렇기에 더 역설적으로 당시를 이해하는 텍스트가 돼 주기도 한다. 실제로 개봉 당시 서울 관객 15만명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던 영화에 삽입된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한 박정희 정권은 서울대를 아예 관악산으로 이전해 버린다. 대학로 시절 서울대 주변이 유신체제 반대 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등 학생운동의 중심이 되다 보니 동숭동, 용두동, 종암동, 공릉동 등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던 단과대들을 당시만 해도 변두리이자 정문과 후문만 봉쇄하면 시위대의 시내 진출을 막을 수 있던 관악산 골프장 터로 몰아넣듯 옮겨버린 것이다. 영화 개봉연도와 같은 1975년의 일이었다.대학로의 변화는 1980년대 들어 더욱 극적으로 펼쳐진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는 각종 공안사건을 조작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반대 움직임을 억제하려 했다. 대표적인 게 1982년 벌어진 ‘학림사건’이었다. 학생운동가들이 학생단체를 조직해 사회주의 폭력혁명으로 정권을 붕괴시키려 했다는 사건이었다. 마로니에공원 맞은편에 있는 학림다방에서 첫 모임을 열었다 해서, 또 ‘숲’(林)처럼 무성한 ‘학’(學)생운동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해서 학림사건이라 불렸다. 1985년부터는 이곳의 분위기가 질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의 현장이란 인식이 강했던 이 일대에 정부가 ‘문화예술의 거리’를 조성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 곳곳에 있던 문화예술단체와 공연장, 소극장 등을 유치함으로써 자유와 저항의 공간에 낭만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 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의 청년들이 그리고 시민사회가 영화의 분위기처럼 순응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칠 줄 모르는 민주화운동은 끝내 독재를 종식시키고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냈다. 당시 피해자들도 2010년 열린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두환 정권에 의한 조작 사건이라는 결론과 함께. 학림다방은 그런 한국 현대 정치사의 현장이었기에, 나아가 훗날 문학으로 명성을 얻은 이청준이나 김승옥, 황지우, 김지하 등의 단골집이었다. 김민기 등 음악인들의 주요 거처이기도 했다. 학림다방도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됐다. ‘서울대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고도 불렸던 학림다방 입구에 걸려 있는 서울미래유산 동판이 흘러간 옛이야기를 담담하게 증언해 주는 듯싶다. 대학로는 내막을 모르면 그저 로맨틱해 보이기만 하는 문화 예술의 공간이자 맛집들이 즐비한 소비공간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는 그 안의 내력이나 사건들 사이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서 있는 아르코미술관과 아르코예술극장, 그리고 옛 샘터 사옥이자 현 공공그라운드 빌딩 또한 생각할 지점을 던져 준다. 적벽돌 외장이 인상적인 이 건물들은 모두 ‘한국 건축의 풍운아’라 불렸던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들이다. 서울대 건축과를 다니다가 6·25전쟁 때 일본 도쿄예대 건축과에 유학해 막 대학원을 수료한 김수근은 이승만 정권 말기인 1959년 29세의 나이로 새 국회의사당 건축설계안 현상공모에서 1등을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작품 가운데 한국인에게 익숙한 게 한둘이 아니다. 잠실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을 비롯해 남산 타워호텔과 자유센터, 세운상가, 워커힐호텔, 옛 국립부여박물관과 청주 및 진주박물관 등이 있다. 단순히 건축 설계만 한 게 아니라 국내 잡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월간 ‘SPACE(공간)’를 창간하고 다양한 예술인들을 후원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197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르네상스의 예술 후원가라 평가받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 빗대 ‘서울의 로렌초 메디치’라 평하기도 했다. 그에게도 밝은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나선형 계단을 설치해 방향 감각을 상실케 하고 피조사자가 투신할 수 없게끔 창문 폭을 15㎝ 정도로 좁게 하는 등 전적으로 고문에 적합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그 건물 말이다. 아르코 미술관과 예술극장, 그리고 옛 샘터 사옥은 겉으로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모던함을 유지해 오는 훌륭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인간 내면의 복잡다단한 면에 대해 성찰하게끔 유도하는 경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이번 그랜드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는 서울대병원이었다. 1907년에 건립된 옛 대한의원은 광복 뒤 경성의전과 통폐합돼 현재 서울대 의대로 바뀌어 있고 그 병원은 서울미래유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1922년 의학 실험에 희생된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겠다며 설치한 ‘실험동물공양탑’은 이번 투어의 압권 중 하나였다. 말 못하는 짐승을 위해서도 공양탑을 세웠던 이들의 마음을 자비롭다고 해야 할까. 서울 대학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적이 있다. 2008년 말 한국방송통신대학 맞은편에 위치한 한 건물을 철거하면서 14구의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석 달에 걸쳐 정밀분석한 결과 유골의 주인공이 14명이 아니라 28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젖먹이의 유골도 3구나 됐다. 과연 그 뼈들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왜 그곳에 집단으로 묻힌 걸까. 해답은 ‘그 땅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의전 해부학교실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더더욱 실험동물공양탑은 의외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실험동물의 목숨도 함부로 하지 않던 이들이 정작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인종적이며 체질적인 차이를 조사하는 등 몰인권적인 우생학과 인종론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연구도 진행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보여 주는 이미지가 묘사 대상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우리가 맞닥뜨리는 여러 사안들도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다가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또 반대로 호기심과 지속적인 문제의식을 견지한다면 묘사된 풍경 너머의 맥락을 이해하는 길에 가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바보들의 행진’은 언뜻 보면 명랑한 청춘극 같지만 자세히 보면 비극보다 더 진한 슬픔을 자아내는 영화이고 일견 로맨틱해 보이는 대학로이지만 그 속엔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던 이들의 정열이 녹아 있다. 글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12회 돈의문 주변 ●출발일시 : 8월 15일 오전 10시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잔망스런 소녀와 마주칠 듯… 순수한 서정이 숨쉬는 ‘소설의 땅’

    잔망스런 소녀와 마주칠 듯… 순수한 서정이 숨쉬는 ‘소설의 땅’

    황순원 생전 자주 찾던 ‘소나기’ 의 배경작가 유년시절 보낸 평양과 빼닮아 설립소설 배경의 지명 이용한 산책코스 눈길 일제 민족성 말살 정책 꿋꿋하게 이겨내우리말 소설의 순수성 지킨 문학혼 정수국내 첫 문학관 AR 등 실감 콘텐츠 사업촘촘한 버드나무 뿌리 사이에 첫사랑이 있다. 소나기처럼 삽시간에 왔다가 비구름이 바람에 흩어지듯이 떠나거나 사라져버린 무방비의 사랑이다. 비 갠 자리의 흔적이 나무뿌리 사이로 오롯하게 새겨지는 고장, 경기도 양평. 이 지명은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양근군은 버드나무의 뿌리, 지평은 날카롭게 벼리는 숫돌과 공평할 평자가 만난 글자다.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니! 그렇다면 흡사 버드나무 뿌리가 비 맞은 숫돌을 감싸쥔 형상을 소설에서는 사랑이라 부른 것일까.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1953년 작품인 소설 ‘소나기’ 이야기다. 한국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발표한 소설이자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독자들에게 첫사랑의 풋풋하고도 아련한 이미지로 굳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소나기처럼 스치듯 지나갔지만 강렬하게 남은 빗방울의 흔적만으로도 일생을 회고할 수 있는 사랑이자 소설의 배경이 된 고장에 다녀왔다. 어른들 눈에 ‘여간 잔망스럽지 않다’던 소녀의 흔적과 그를 기억하는 소년의 애틋함이 새겨진 소설 속의 ‘조약돌’ 혹은 지평의 숫돌은 지금 버드나무 뿌리 어디쯤 닿아 있을까 생각하면서.●황순원 문학적 지류는 평양과 양평의 모든 길 평남 대동군 재경면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수학한 황순원 선생의 고향 대신에 소설의 배경이자 선생이 즐겨 찾은 양평에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 들어선 것은 2003년 일이다. 양평군 지원과 선생이 혼신을 다해 제자들을 길러 냈던 경희대의 결연으로 이곳에 테마공원이 조성된 것이다.‘유년의 내 고향을 빼닮았다’며 찾은 곳에 온전히 그의 소설로만 탄생한 마을이라니. 선생의 제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황순원문학촌장은 ‘선생의 문학적 지류는 평양과 양평 사이에 있는 모든 길’이라 회고했다. 양평과 평양은 단순한 지명 자체를 벗어나 남과 북을 가로지르고,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인간애가 펼쳐지는 삶의 길이자 소설의 땅인 셈이다. 단편소설 ‘소나기’가 수록된 소설집 ‘학’에 실린 동명 소설에는 이념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인간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던 교과서 속 소설은 시대의 모진 칼날 속에서도 소설의 명맥과 한글 문장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선생의 고투가 새겨진 산물이다. 서슬 퍼런 일본의 한글 말살 정책에도 우리말로 쓴 소설의 순수성을 지켜 내려던 선생의 문학혼이 빛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소설사가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관하여 김종회 문학촌장은 다시 이렇게 소회했다. “세상의 명리에 타협하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세상과 절연하지도 않으셨으며, 있을 자리와 할 말, 물러설 때와 취해야 할 행위에 망설임도 구김살도 없으셨던, 삶과 글의 양면에 걸쳐 뜻깊고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고 떠난 작가셨습니다.” 그 엄혹하고도 핍진했던 시대에 어찌하여 ‘첫사랑’이었던 걸까. ‘소나기’가 발표된 시기인 1953년은 특히나 6·25전쟁이 막바지였던 때가 아닌가. 전란의 여파로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사람이 사람됨을 잃을 수밖에 없던 시대에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피어난 첫사랑의 이야기라니. 이는 선생이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 대한 서정적 표현이자 사랑’을 말하고자 함이었다고 후대는 평가하고 있다. “소설이 정말로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냐”고 당돌하게 물어오던 제자에게 선생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답한 우문현답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해서 아직도 회자되는 중이다.●매시 정각마다 분수쇼… 소설 속 주인공 된 듯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이념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은 작가의 ‘사랑’ 이야기가 오늘날 홀연히 피어난 공간이 바로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다. 이곳은 황순원문학관을 비롯해 황순원 묘역, 수숫단 오솔길, 고향의 숲, 해와 달의 숲, 들꽃마을, 학의 숲, 송아지 들판, 너와 나만의 길, 목넘이 고개, 징검다리 등으로 꾸려져 있다. 이 소나기 마을을 에두르는 산책코스는 선생의 소설에 나오는 배경지에서 이름한 것들이다. 오솔길을 걷다 매 시각 정시가 되면, 소나기 광장에 난데없는 분수쇼가 펼쳐지는 모습 또한 빠트릴 수 없는 볼거리이자 온몸을 흠뻑 적실 수 있는 문학촌 체험 중의 백미다. 이 또한 그곳을 찾은 연인들의 사랑을 위한 장치인 것일까. 문학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설의 흔적을 종합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 모든 첫사랑의 흔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다 보면 광장에서 분수에 몸이 젖듯이 마음도 사랑에 젖어가고, 또 소설의 한 대목처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 마을에 온 연인들의 사랑은 꼭 이루어진다는 말도 떠돈다고 한다.“선생님, 사랑이 뭘까요?” 또 “첫사랑은 뭘까요?” 소녀가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지듯 질문을 하고 나면 돌아오는 대답은 물론 없겠지만 그 질문의 자리에 내 스스로 찾아낸 대답이 스며들겠지. 이쯤 해서 첫사랑의 정의를 ‘첫 번째 한 사랑’보다는 ‘그녀 혹은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랑이 첫 번째’라 말하면 어떨까. 왜 이리도 ‘첫사랑’에 마음을 두느냐 질문한다면 나는 지금 ‘첫사랑의 마을’에 다녀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소나기 마을의 테마가 ‘첫사랑’인 까닭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잠시 공사가 중단됐지만, 개관 10주년을 넘긴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은 지금 대대적인 탈바꿈을 앞두고 있다. 바로 ‘실감콘텐츠 사업’이다. 실감 콘텐츠는 사용자에게 가상 환경에서 현실 같은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각, 청각, 촉각, 운동감각 등의 모든 감각 정보를 전달해 가상체험(AR)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의 영화화나 드라마화는 익숙하지만 가상 체험은 익숙하지 않은 독자와 방문자들에게 ‘실제 소설 속으로 들어간 듯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스토리)가 나에게 다가와 다시 한번 ‘텔링’되는 순간. 전국 문학관 중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사업이다. 마치 지금 현실의 이 순간에 저 공간으로 들어서면, 소년과 소녀가 사랑이 사랑인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책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니, 어떤 느낌일까. 조만간 그 시스템이 완성되면 다시 한번 소나기 마을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늘어버렸다. 소설 한 편이 한 마을을 조성했고, 그 마을 속에서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문학의 외연이 문장과 미학을 넘어선 것을 대변한다. 작품 속의 문장들이 ‘현재’와 ‘스토리 텔링’을 넘어서서 ‘현실’이 된 순간이라면 1950년대와 2020년을 잇는 일쯤은 너끈히 해내고도 남을 것이다. 1950년대의 소설 속의 문장이 2020년으로 스며와 새로운 목소리와 물리적인 몸체를 갖는 공간에서라면 ‘첫사랑’을 더 궁금해해도 되겠다. 떠나간 이들,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을 마음껏 불러내어 못내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을 성 싶다. ‘소나기’ 증강현실을 넘어서면 소나기 마을 뒤편에 ‘첫사랑 테마 로드’가 펼쳐질 예정이라고도 했다. 첫사랑의 산실인 이곳에서 세계 문학 속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마지막으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 주요 테마로 준비되고 있다.●첨단 과학 통해 다시 노작가 모습 만나게 되길 AR 속에서 ‘소나기’의 첫사랑과 만나고 나오면 ‘별’의 목동과 어린 왕자의 우주적인 사랑 그리고 톰 소여가 모험을 떠나던 도중에 만난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열리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증강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분수에서 물을 쏘듯이 내게 다가오면 가랑비와 소낙비에 옷이 젖듯이 내 마음도 젖어들 수밖에 없을 터이다. 바라건데 그 현실 속에서는 첫사랑뿐만 아니라 황순원 선생의 모습도 만나뵐 수 있길. 소년과 소녀를 넌지시 바라보는 마을의 인자한 할아버지의 형상에서부터 현실의 풍파를 날카롭게 그려내되 사람의 됨됨이를 끝내 잃지 않으려는 모습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밤이 깊도록 원고를 써내려 가는 노작가의 뒷모습으로라도 선생을 만난다면 어떨까. 선생께 언제까지라도 ‘당돌한 질문’을 건네고 싶은 제자의 바람과 독자들의 ‘첫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소나기 마을’은 또 어떤 모습으로 현실을 비추게 될까 궁금해지는 지점이다.한 편의 소설이 시대와 손잡고 만들어낸 가장 최신의 시스템 속에서 사람의 제일 오래된 마음인 ‘사랑’ 이야기가 버드나무 뿌리 안에서부터 툭 불거져 나와 우리에게 손짓하는 마을. 자,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증강현실이든 1950년대의 사랑이든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이곳을 다녀온 나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게 되고야 말았다. 당신에게도 오늘은 첫 번째 사랑의 감정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를! 첫사랑에 관해서라면 조금 더 잔망스러워져도 괜찮겠다. 소나기처럼. 소설가 이은선
  • 유럽진출 1호·월북… 화가 배운성을 만나다

    유럽진출 1호·월북… 화가 배운성을 만나다

    등록문화재 ‘가족도’ 등 작품 한자리에2001년 48점 첫 공개 이후 19년 만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는 1909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한 고희동(1886~1965)이지만 서양화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유학하고, 현지 화단에서 활동한 1호 화가는 배운성(1901~1978)이다. 1922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40년 귀국 전까지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파리 ‘살롱 도톤느’ 등 여러 공모전에 입상했고, 수차례 개인전도 열었다. 귀국 후엔 홍익대 미술대 초대학장, 경주예술학교 명예학장으로 추대되며 한국 미술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6·25전쟁 직후 월북하면서 그에 대한 기록과 연구는 자취를 감췄다. 1988년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해금 조치 이후에도 배운성의 작품이 공개된 건 전무했다. 그러다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배운성이 유럽 체류 시절 완성한 작품 48점이 한꺼번에 공개됐다. 불문학자인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이 파리에 유학하던 1997~98년 골동품상에게 두 차례에 걸쳐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가 그해 귀국하면서 들여온 것이다. 한옥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는 듯한 대가족의 모습을 그린 ‘가족도’, 이국적인 외모의 여인을 그린 ‘화가의 아내’ 등 인물의 초상과 한국 전통민속을 그린 그림들은 동양적인 선과 서양 기법을 조화시킨 그의 초기 작품세계를 엿보게 했다.19년 만에 그의 작품 48점을 한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종로구 홍지동 웅갤러리·본갤러리·아트아리가 합심해 ‘배운성 전 1901-1978: 근대를 열다’를 기획했다. 작품 판매가 주업인 상업화랑에서 열리지만 순수하게 관람객 감상을 위한 전시다. “작품을 뿔뿔이 흩어지게 할 순 없다”(전창곤 원장)는 소장자의 신념과 “1년에 한 달 정도는 대중을 위한 전시를 하고 싶다”(최웅철 웅갤러리 대표)는 화랑주의 결단이 맞아떨어졌다. 한국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근대미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당대 주거와 복식 등을 생생하게 묘사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가족도’에는 화가 자신의 모습도 담겨 있다. 맨 왼쪽 수줍은 듯 다소곳하게 서 있는 젊은 남자가 배운성이다. 그림 속 가족은 가난 때문에 그가 열다섯 살에 서생으로 들어간 서울 갑부 백인기의 가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일본을 거쳐 독일로 떠난 것도 백인기의 아들 백명곤의 유학길에 동행한 것이었다. 남의 집 더부살이에서 유럽 진출 1호 화가로 명성을 떨치고, 이어 월북 화가로 금기시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배운성을 돌아보는 기회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입장료 3000원.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6·25 수복지역 무주부동산 권리화 추진

    6·25전쟁 이후 수복지역 내 무주부동산에 대한 권리화가 추진된다. 조달청은 4일 ‘펀치볼’ 마을인 강원 양구 해안면 일대 3400여 필지(960만여㎡)에 대해 국유화 작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펀치볼 마을은 양구에서 북동쪽으로 22㎞ 지점으로 해발 400∼500m의 고지대 분지다. 국유화 작업은 5일 시행되는 개정 ‘수복지역 내 소유자 미복구 토지의 복구등록과 보존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른 것이다. 양구 해안면은 6·25 이후 수복지역으로, 정부는 지난 1956년과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정책 이주를 시행하면서 이주민에게 토지 분배 및 경작권 부여를 약속했다. 이후 특별조치법 제정(1983년) 등으로 사유화 또는 국유화했지만 토지대장 소실 등으로 소유자 복구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일부가 현재까지 주인이 없는 ‘무주지’로 남아 있다. 무주지 대부분은 과수원과 밭 등 경작지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국유지·무주지 경작자 간 대부금 역차별, 무주부동산 경작권 불법 매매, 경작지 재산권 인정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정책 이주에 따라 50년 이상 경작지에 대해 소유권을 부여해달라는 주장이다. 정부 각 부처는 2018년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특별조치법 개정을 통한 국유화 추진 근거를 마련했다. 국유화된 토지는 기획재정부가 해당 지역 주민에게 매각·대부를 추진할 예정이다. 경작기간과 정책 이주 여부 등을 반영해 차등 매각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달청 조사 결과 수복지역 내 무주부동산은 2만여 필지로 조사됐으며, 부처 간 협력을 통해 국유화에 약 4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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