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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훈처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 공식브랜드 공개

    보훈처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 공식브랜드 공개

    국가보훈처는 25일 정전 70주년(7월 27일)을 되새기는 브랜드(BI)를 공개하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친다고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정전 70주년’ 사업 브랜드는 슬로건인 ‘위대한 헌신으로 이룬 놀라운 70년’과 ‘놀라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 어메이징, 숫자 ‘70’을 결합했다. 보훈처는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뤄낸 70년 성공의 대한민국 역사를 세계가 공유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다음달 구글과 공동으로 6·25전쟁 콘텐츠 5000여개를 담은 정전 70주년 온라인 플랫폼을 오픈하고, 첫 오프라인 행사도 진행한다. 참전용사와 후손들을 방문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각종 학술회의와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7월에는 유엔군 참전의 날(7월 27일)을 맞아 참전 22개국 정부 대표를 초청해 기념식과 추모식을 열 계획이다. 이를 계기로 보훈부 장관회의 등 참전국과의 유대 강화를 위한 행사도 개최한다. 이와 함께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 70주년(10월 1일)을 기념하는 유엔군사령부 회원국 국방장관회의 등 다양한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 “6·25 전사자 유가족 찾습니다”… 국유단, 탐문활동 개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이 16일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 찾기 탐문활동을 개시했다. 국유단에 따르면 아직 산야에 남겨져 있거나 유해를 찾고도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전사자는 13만명이 넘는다. 신원 확인을 위해 지금까지 유가족 8만 6588명으로부터 유전자(DNA)를 확보했지만 전사자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 국유단은 전사자의 병적기록, 유가족과 관련된 서류 등을 분석해 행정관서 제적정보를 확보한 후 생존해 있는 유가족의 주소지에 직접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할 계획이다. 지난해 1년간 1만 1279명으로부터 확보한 유전자 가운데 탐문을 통한 채취가 8455명으로 74.9%나 된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 신원이 확인되면 포상금 1000만원을 지급한다. 시료 채취를 희망하는 유가족은 국유단 대표번호(1577-5625)로 연락하면 국유단이 방문한다.
  • 용산 전사자 기념비도 오류… 국방부 “확인해 시정”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쟁 ‘추모의 벽’ 미군 전사자 명단에서 대규모 오류가 발견된 것과 관련, 국방부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전사자 기념비 명단을 확인해 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12일 “국가보훈처, 미 국방부 등과 협조해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6·25전쟁 전사자 명단에 관해 오류 유무를 철저히 확인해 적극적으로 시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6·25전쟁 연구자 테드·할 바커 형제는 ‘추모의 벽’에 전사자 500명이 누락되고 6·25와 무관한 245명이 포함됐으며 1015건에 이르는 철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전쟁기념관에 있는 미군 전사자 이름 가운데 1만 9324명이 성이나 이름, 중간이름 등이 잘못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도 내놨다. 지난해 5월 30일 미국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에 열린 한국전쟁 전사자 추념식을 계기로 일반에 처음 공개된 ‘추모의 벽’은 워싱턴DC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에 설립된 기념물로 미군 전사자 4만 3808명의 이름을 새겼다. 반복적인 전사자 명단 오류는 명단 출처인 미국 국방부의 전사자 데이터베이스가 부정확한 것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와 관련, 국가보훈처 역시 “미 국방부와 한국 국방부(육군본부)를 통해 명단의 오류 유무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며 “신속한 확인을 거쳐 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추모의 벽에 새겨진 미군 전사자 명단은 미 국방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며 카투사 명단은 한국 국방부를 통해 공식 확인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용산 전쟁기념관 기념비도 오류 지적에 국방부 “확인해 시정”

    용산 전쟁기념관 기념비도 오류 지적에 국방부 “확인해 시정”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쟁 ‘추모의 벽’ 미군 전사자 명단에서 대규모 오류가 발견된 것과 관련, 국방부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전사자 기념비 명단을 확인해 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12일 “국가보훈처, 미 국방부 등과 협조해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6·25 전쟁 전사자 명단에 관해 오류 유무를 철저히 확인해 적극적으로 시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6·25전쟁 연구자 테드·할 바커 형제는 ‘추모의 벽’에서 전사자 500명이 누락되고 6·25와 무관한 245명이 포함됐으며 1015건에 이르는 철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전쟁기념관에 있는 미군 전사자 이름 가운데 1만 9324명이 성이나 이름, 중간이름 등이 잘못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도 내놨다. 지난해 5월 30일 미국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에 열린 한국전쟁 전사자 추념식을 계기로 일반에 처음 공개된 ‘추모의 벽’은 워싱턴DC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에 설립된 기념물로 미군 전사자 4만 3808명을 새겼다. 반복적인 전사자 명단 오류는 명단 출처인 미국 국방부의 전사자 데이터베이스가 부정확한 것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와 관련, 국가보훈처 역시 “미 국방부와 한국 국방부(육군본부)를 통해 명단의 오류 유무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며 “신속한 확인을 거쳐 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사자 추모의 벽에 새겨진 미군 전사자 명단은 미 국방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며 카투사 명단은 한국 국방부를 통해 공식 확인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 美 국방부 “한국전 추모의 벽 오류 수정 노력”

    美 국방부 “한국전 추모의 벽 오류 수정 노력”

    미국 역사학자 할 바커(75)가 워싱턴DC 내셔널몰의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새겨진 6·25전쟁 미군 전사자 명단에 오탈자가 많고 전사자 명단이 부정확하다고 지적한 서울신문 인터뷰 기사와 관련해 미 국방부가 “유감스러운 실수”라는 입장을 밝혔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의 소리(VOA) 방송 질의에 “그러한 실수들을 바로잡기 위해 내무부와 협력하고 있다”며 “우리는 국방부의 한국전쟁 전사자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이름들이 추모의 벽에 있다는 것도 안다”고 답했다. 또 “각 군은 (추모의 벽 설치 준비를 위해) 한국전 전사자 명단에 있는 모든 이름을 공식적인 군사 기록과 대조해 정확성을 검토했다”면서도 “흔하지는 않으나 공식 기록 자체에 오류가 있어 (정확한) 검토가 어려웠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투에서 생긴 게 아니라) 냉전의 희생자로 분류했던 전사자들을 한국전 전사자로 재분류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도 어려웠다”며 “추모의 벽 명단에 이름이 누락됐거나 철자 오류 등을 발견한 가족이나 시민들은 국방부에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시민단체 ‘한국전쟁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바커는 추모의 벽 각인 명단에 오자만 1015개였고, 6·25전쟁과 무관한 245명이 포함된 반면 반드시 각인돼야 할 500여명의 전사자들이 빠졌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완공된 추모의 벽에는 미국 국방부와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KWVMF)이 작성한 미군 전사자 3만 6634명과 한국군 카투사 전사자 717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반쪽 된 ‘여순사건 특별법’ 피해 신고 부진

    반쪽 된 ‘여순사건 특별법’ 피해 신고 부진

    여순사건 특별법에 따른 신고 접수일이 오는 20일로 임박하지만 피해 신고 접수가 25% 수준에 그쳐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대승적 합의로 무려 73년 만에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지난해 1월 21일부터 접수가 시작됐다. 신고 기간은 1년간이지만 사건 당시의 목격자들과 유족들이 대부분 사망해 접수 부진이 예상되면서 수차례 대안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4일 여순10·19범국민연대에 따르면 여순사건으로 형무소에 구속 중 6·25전쟁으로 곧바로 총살당하거나 보도연맹으로 학살된 사람까지 희생자가 2만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 3일 현재 접수된 신고 건수는 5066건에 머물렀다. 여순10·19범국민연대 등은 “좌익과 우익, 군대와 경찰 간 극심한 대립으로 민간인 학살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희생자 파악 등에 어려움이 많은 만큼 신고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며 “제주 4·3과 같이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반드시 기한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주 4·3처럼 여순사건도 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최소한 6개월 연장과 조사 인력 보강, 직권 조사 확대 등이 하루빨리 추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경필 여순10·19범국민연대 사무처장은 “제주 4·3 희생자가 3만명이었지만 1만 4000여건이 접수돼 절반 수준을 보인 것처럼 여순사건도 최소한 9000건은 신청돼야 한다”며 “아직도 신고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아 더 적극적인 조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여순사건위원회는 지난해 두 차례 희생자 155명과 유족 906명을 여순사건 희생자와 유족으로 결정했다.
  • 호국영령 편히 잠드소서...6·25전쟁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 열려

    호국영령 편히 잠드소서...6·25전쟁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 열려

    6·25전쟁에서 산화했던 호국영령 8인이 영면에 들었다. 육군은 20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을 엄수했다. 대전현충원에는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현재 기준 병장), 고 송병선·편귀만 하사(현재 기준 상병), 고 장기수·정준언 일병 등 다섯 용사가 안장됐다. 고 양범석·윤의생·강농원 일병 유해는 유족 요청에 따라 서울현충원에 모셨다. 이들 8명은 유해 발굴 후 유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를 거쳐 신원이 확인됐다. 고 김용일 이등중사와 편귀만 하사는 9사단 소속으로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전투 당시 같은 참호에서 전사했다. 고 송병선 하사는 7사단 소속으로 강원 평창군 평창지구(하진부리 부근) 전투에서, 고 정준언 일병은 9사단 소속으로 강원 춘천시 춘천지구 전투에서, 고 양범석 일병은 8사단 소속으로 춘천시 노전평 전투에서 각각 전사했다. 유해 5구가 안장된 대전현충원 합동안장식은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렸다. 유족 및 국방부·보훈단체 관계자, 장병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현충원에서도 김규하 수도방위사령관 주관으로 합동안장식이 열려 호국영웅 3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 6·25전몰군경자녀수당 자녀 간 협의 없으면 균등분할지급으로 변경

    6·25전몰군경자녀수당 자녀 간 협의 없으면 균등분할지급으로 변경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개정 법률에 따라 자녀들끼리 합의가 안되면 연장자에게 주던 6·25전몰군경 자녀수당이 내년부터는 모든 자녀에게 균등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뀐다고 19일 밝혔다. 6·25전몰군경 자녀수당은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순직한 사람의 자녀에게 매월 지급하는 수당이다. 자녀가 2명 이상이면 상호 협의가 된 사람 1명에게 지급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연장자 한 명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25일 헌법재판소가 합리적 이유가 없어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하면서 법이 개정됐다. 보훈처는 법률 개정과 분할 지급 도입으로 내년부터는 수당을 받지 못하던 1만 1000여명이 수당을 나눠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분할지급은 주소지 관할 보훈(지)청에서 신청할 수 있다. 개정 국가유공자법은 수급권 이전 제한 폐지도 포함했다. 지금은 수당을 받을 권리가 다른 자녀에게 이전되지 않는 까닭에 수당을 받던 자녀가 사망하면 다른 자녀에게 수당이 지급되지 않지만 내년부터는 수급권자가 이미 사망해 수당을 받지 못하던 다른 자녀 4000여명도 수당을 받을 수 있고, 모든 자녀가 사망할 때까지 수당을 받게 된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이번 법률 개정으로 수당 지급 대상자가 현재 2만 8000명에서 4만 3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며 “앞으로도 합리적인 보상금과 수당 지급방안을 마련하는 등 국가유공자 예우와 지원이 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미자, 보훈처 감사패 받는다… 유공자 예우 공로

    이미자, 보훈처 감사패 받는다… 유공자 예우 공로

    국가유공자 예우에 앞장선 가수 이미자씨가 국가보훈처 감사패를 받는다. 보훈처는 1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회의실에서 이씨에게 ‘일류보훈 동행’ 감사패를 수여한다고 18일 밝혔다. 이씨는 이달 초 6·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용사, 천안함 유가족 등을 초청해 특별 감사 공연을 하는 등 호국영웅과 가족을 위로했으며, 공연 출연료와 전화 자동응답시스템으로 모금한 수익금 전액을 국가유공자 복지 증진에 사용해 달라며 기부하기로 했다. 베트남전 파견 국군을 위한 최초 위문공연, 파독 광부·간호사 파견 50주년 기념 독일 현지 위문공연을 하는 등 가수 인생 60년에 걸쳐 조국에 헌신한 이들에게 달려가 노래로 희망과 위안을 선사했다. 감사패 수여식에서는 베트남전 위문공연과 참전용사 위로 모습이 담긴 영상을 상영하고, 트로트 신동으로 유명한 김유하 어린이가 이씨의 ‘노래는 나의 인생’을 헌정곡으로 부른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시대의 애환을 노래로 함께하며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고, 특히 국가를 위해 희생·헌신한 영웅들을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류보훈’에 동행해 주신 이미자 선생님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 국민가수 이미자 보훈처 감사패 받는다… 국가유공자 예우 앞장

    국민가수 이미자 보훈처 감사패 받는다… 국가유공자 예우 앞장

    국가유공자 예우에 앞장선 가수 이미자(사진)씨가 국가보훈처 감사패를 받는다. 보훈처는 1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회의실에서 이씨에게 ‘일류보훈 동행’ 감사패를 수여한다고 18일 밝혔다. 이씨는 이달 초 6·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용사, 천안함 유가족 등을 초청해 특별 감사 공연을 하는 등 호국영웅과 가족을 위로했으며, 공연 출연료와 전화 자동응답시스템으로 모금한 수익금 전액을 국가유공자 복지 증진에 사용해 달라며 기부하기로 했다. 베트남전 파견 국군을 위한 최초 위문공연, 파독 광부·간호사 파견 50주년 기념 독일 현지 위문공연을 하는 등 가수 인생 60년에 걸쳐 조국에 헌신한 이들에게 달려가 노래로 희망과 위안을 선사했다. 감사패 수여식에서는 베트남전 위문공연과 참전용사 위로 모습이 담긴 영상을 상영하고, 트로트 신동으로 유명한 김유하 어린이가 이씨의 ‘노래는 나의 인생’을 헌정곡으로 부른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시대의 애환을 노래로 함께하며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고, 특히 국가를 위해 희생·헌신한 영웅들을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류보훈’에 동행해 주신 이미자 선생님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 ‘월드컵 4강’ 모로코에도 6·25 참전용사들 있다

    2022 카타르월드컵 4강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모로코에도 6·25 참전용사들이 있다. 국가보훈처는 윤종진 차장 등 대표단을 모로코로 보내 참전용사들을 위문하고 보훈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고 15일 밝혔다. 보훈처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참전용사 발굴 등 보훈을 매개로 한 양국 우호 관계 조성에 나설 방침이다. 모로코 참전용사들이 있다는 것은 지난달 주모로코대사관에서 모로코인 8명, 모로코인으로 추정되는 16명 등 24명을 확인하고 이들의 생사를 파악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알려졌다. 모로코는 프랑스 보호령이었기 때문에 모로코 참전용사들은 모두 프랑스군 소속으로 유엔군에 참여했다. 대표단은 6·25전쟁 당시 모로코인들을 프랑스군 소속으로 참전시키는 결정을 내렸던 무함마드 5세가 묻힌 영묘를 찾아 헌화하고, 무스타파 키티리 모로코 보훈청장에게 감사패도 전달한다. 윤 차장은 “올해는 한국과 모로코가 외교관계 수립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모로코 참전용사·유가족의 생존을 확인하면 한국 방문 행사와 후손 지원, 참전시설 건립 등 다양한 국제 보훈사업으로 한국과 모로코가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세계유산 등재 첫발

    부산시가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의 역할과 피란민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근대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부산시는 최근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위원회가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대상 유산은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였던 경무대(현 임시수도 대통령기념관), 임시수도 정부청사였던 임시중앙청(현 동아대 박물관),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부산항 제1부두 등 9곳이다. 시는 2015년부터 이들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2017년 문화재청이 피란 생활상을 반영하는 유산 추가와 종합 보존·관리계획 수립을 요구하면서 조건부 잠정목록에 선정했다. 이후 시는 전문가와 유산을 연구하며 가치를 조명하고 경무대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를 국가문화재로,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를 시 문화재로 지정 또는 등록하면서 보존 기반을 만들었다. 시는 2028년 등재를 목표로 연구보완과 보존·관리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우리나라 도심지 근대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첫 시도로 외면받았던 국내 근대유산을 후세까지 보전하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월드컵 4강 이변 모로코에 6·25 참전용사들 있다...보훈처 대표단 보내 위문

    월드컵 4강 이변 모로코에 6·25 참전용사들 있다...보훈처 대표단 보내 위문

    2022 카타르월드컵 4강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모로코에도 6·25 참전용사들이 있다. 국가보훈처는 윤종진 차장 등 대표단을 모로코로 보내 참전용사들을 위문하고 보훈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고 15일 밝혔다. 보훈처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참전용사 발굴 등 보훈을 매개로 한 양국 우호 관계 조성에 나설 방침이다. 모로코 참전용사들이 있다는 것은 지난달 주모로코대사관에서 모로코인 8명, 모로코인으로 추정되는 16명 등 24명을 확인하고 이들의 생사를 파악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알려졌다. 모로코는 프랑스 보호령이었기 때문에 모로코 참전용사들은 모두 프랑스군 소속으로 유엔군에 참여했다. 대표단은 6·25전쟁 당시 모로코인들을 프랑스군 소속으로 참전시키는 결정을 내렸던 무함마드 5세가 묻힌 영묘를 찾아 헌화하고, 무스타파 키티리 모로코 보훈청장에게 감사패도 전달한다. 이 밖에 모로코 정부가 발간하는 ‘6·25 참전용사 발굴 책자’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고, 모로코 참전용사 발굴과 관련한 협조 유지를 위해 바히자 시무 왕립기록원장도 접견한다. 윤 차장은 “올해는 한국과 모로코가 외교관계 수립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모로코 참전용사·유가족의 생존을 확인하면 한국 방문 행사와 후손 지원, 참전시설 건립 등 다양한 국제 보훈사업으로 한국과 모로코가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단은 모로코 방문에 앞서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동맹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한다. 이어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국전참전비에 헌화하고, 한국에 파병된 프랑스군을 지휘했던 랄프 몽클라르 장군 묘지에 참배할 예정이다.
  • 방탄소년단(BTS) 진 품은 5사단은 어떤 곳…중부전선 최전방 ‘메이커 부대’

    방탄소년단(BTS) 진 품은 5사단은 어떤 곳…중부전선 최전방 ‘메이커 부대’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본명 김석진)이 군입대를 하면서 육군 제5보병사단도 덩달아 전 세계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사이에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진은 경기도 연천군 5사단 신병교육대에 지난 13일 입소했으며, 5주 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자대배치될 예정이다. 14일 육군에 따르면 5사단은 강원 철원군에서 경기 동두천시와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3번국도 방어를 핵심임무로 하는 육군 제5군단 예하 부대다. 중부전선 최전방을 지키다 보니 근무 여건이 열악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사단 문양은 숫자 5를 형상화한 열쇠 모양이어서 부대 별칭도 ‘열쇠 부대’이지만 장병들끼리는 휠체어를 닮았다고 해서 ‘휠체어 부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례 구호는 ‘단결’이다. 5사단은 1948년 제5여단으로 창설됐으며 이듬해 정식 사단으로 승격했다. 초대 사단장은 옛 러시아제국 육군 장교를 지냈던 김상겸 대령이었다. 제1사단(전진부대), 제2사단(노도부대), 제3사단(백골부대), 제6사단(청성부대), 제7사단(칠성부대), 제8사단(오뚜기부대), 제9사단(백마부대), 수도기계화사단(맹호부대) 등과 함께 1950년 이전 창설돼 6·25전쟁에서도 활약했으며 주로 최전방에 배치돼 있는 이른바 ‘메이커 부대’ 가운데 하나다. 6·25전쟁 당시 1951년 강원 양구군 일대 피의 능선 전투와 가칠봉 전투, 1952년 동해안 고성지구 전투, 1953년 양구 삼각봉지구 전투와 화천 백암산 전투 등에서 맹활약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다 보니 5사단을 거친 유명 인사도 적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 태권도를 창시한 최홍희 대한태권도협회 초대 회장, 채명신 전 베트남 파병 한국군사령관 등이 역대 사단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 전 대통령이 사단장으로 근무할 당시 그를 보좌한 연대장이 훗날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배우 변요한과 가수 비도 5사단에서 복무했다. 5사단은 현재 수색·전차·공병대대 등 사단 직할대와 함께 제27·35·36보병여단, 포병여단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27·36여단은 교대로 일반전초(GOP) 경계근무를 맡는 최전방 부대이고, 35여단은 GOP에 투입되지 않고 27·36여단을 후방에서 받쳐주는 예비부대다. 민간인들에게 개방하는 열쇠 전망대도 5사단이 관할한다.
  • 대법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 국가배상 청구소송 가능”

    대법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 국가배상 청구소송 가능”

    국군이 6·25전쟁 당시인 1951년 경남 거창군에서 지역주민 수백명을 학살한 이른바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4일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 A씨 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씨 등은 1996년 제정된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거창사건 사망자 및 유족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2005년 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는 거창사건법에 의해 사망자 및 유족 결정이 이뤄진 피해자는 진실규명 신청대상에서 제외해 진실규명 결정이 별도로 이뤄지진 않았다. 과거사정리위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사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지만 입법이 이뤄지지 못한 채 2010년 6월 활동을 종료했다. A씨 등은 이후 2017년 2월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의 위자료 청구권은 과거사정리위가 활동을 종료한 날부터 이미 3년이 지나 시효로 소멸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과거사정리법상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등에서의 국가배상 청구권은 장기소멸시효 적용이 배제된다며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헌재 위헌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장기소멸시효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 잘못이 있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거창사건법에 의해 사망자 및 유족결정이 이뤄진 피해자는 과거사정리위에 의한 진실규명 결정이 별도로 이뤄지지 않았으나 과거사정리법상 한국전쟁 전후 시기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 김정은, 이달말 전원회의 소집… 새 대남·대미전략 촉각

    김정은, 이달말 전원회의 소집… 새 대남·대미전략 촉각

    북한이 내년 국정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이달 하순 열 예정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원회의 연설을 통해 새로운 대남·대미 전략 노선을 밝힐지 관심이 모인다.  노동신문은 1일 김 위원장 주재로 당 중앙위원회 8기 11차 정치국회의가 전날 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열렸고 12월 하순 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전원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올해에 대해 “사상 초유의 역경”이라면서도 “나라의 국위와 국광이 새로운 경지로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내년에 대해 “공화국 창건 75돌과 조국해방전쟁(6·25전쟁) 승리 70돌이 되는 역사적인 해인 동시에 5개년 계획 완수의 결정적 담보를 구축해야 하는 중요한 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은 통상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를 통해 새해 대내외 정책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2020년 이후 당 전원회의와 당 대회 연설로 신년사를 대신해 왔다.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대남·대미 정책, 국방력 강화 방안 등에 어떤 메시지를 낼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회의를 소집하며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과 정전 70주년을 언급한 것을 감안하면 내부 결속을 위해서라도 대결구도를 부각하려 할 수 있다. 올해 1월 1일 공개된 지난해 말 전원회의 연설에서는 대남·대미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당 전원회의에서는 중국, 러시아의 움직임을 포함한 국제 정세에 대한 평가와 함께 대남·대미 관련 입장 표명, 군사력 강화 방안 등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전망”이라며 “올해 내내 남측과 미국을 향해 초강경 대응을 강조해 온 김 위원장이 더 강화된 입장을 내거나 핵무기 고도화에 대한 진일보한 입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지난달 28~29일 남한을 겨냥한 시위성 비행에 투입된 공군 비행사들에 대해 승진인사를 단행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북한이 지난달 4일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해 벌인 시위성 비행 작전에는 5개 사단 20여개 연대에서 705명의 비행사가 투입됐다. 김광혁 항공 및 반항공군사령관에게는 ‘공화국 영웅’ 칭호가 부여됐다.  
  • 북한, 이달 하순 당 전원회의 소집…“사상 초유 역경에도 국위 상승”

    북한, 이달 하순 당 전원회의 소집…“사상 초유 역경에도 국위 상승”

    북한이 내년 국정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이달 하순 열 예정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원회의 연설을 통해 새로운 대남·대미 전략 노선을 밝힐지 관심이 모인다. 노동신문은 1일 김 위원장 주재로 당 중앙위원회 8기 11차 정치국회의가 전날 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열렸고 12월 하순 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전원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올해에 대해 “사상 초유의 역경”이라면서도 “나라의 국위와 국광이 새로운 경지로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내년에 대해 “공화국 창건 75돌과 조국해방전쟁(6·25전쟁) 승리 70돌이 되는 역사적인 해인 동시에 5개년 계획 완수의 결정적 담보를 구축해야 하는 중요한 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북한은 통상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를 통해 새해 대내외 정책 방향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2020년 이후 당 전원회의와 당 대회 연설로 신년사를 대신해왔다.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대남·대미 정책, 국방력 강화 방안 등에 어떤 메시지를 낼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회의를 소집하며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과 정전 70주년을 언급한 것을 감안하면 내부 결속을 위해서라도 대결구도를 부각하려 할 수 있다. 올해 1월 1일 공개된 지난해 말 전원회의 연설에서는 대남·대미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당 전원회의에서는 중국, 러시아의 움직임을 포함한 국제 정세에 대한 평가와 함께 대남 대미 관련 입장 표명, 군사력 강화 방안 등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전망”이라며 “올해 내내 남측과 미국을 향해 초강경 대응을 강조해온 김 위원장이 더 강화된 입장을 내거나 핵무기 고도화에 대한 진일보한 입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지난달 28~29일 남한을 겨냥한 시위성 비행에 투입된 공군 비행사들에 대해 승진인사를 단행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북한이 지난달 4일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해 벌인 시위성 비행 작전에는 5개 사단 20여개 연대에서 705명의 비행사가 투입됐다. 김광혁 항공 및 반항공군사령관에게는 ‘공화국 영웅’ 칭호가 부여됐다.
  • [정재정의 독사만평] 망우역사문화공원과 근현대사 탐방/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의 독사만평] 망우역사문화공원과 근현대사 탐방/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요즘 나라 안팎이 혼란하면 국립현충원이나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특별히 누구를 참배한다기보다는 파란만장한 근현대를 살다 간 분들과 교감하면서 대한민국 역사를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동작동 국립묘지’나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린 때는 들르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새 이름에 걸맞게 묘역이 잘 정비돼 탐방하기 쉽다. 경관이 수려하고 분위기도 고즈넉해 산책과 사색까지 즐길 수 있다. 늦가을 햇살이 가물거리던 11월 초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돌아봤다. 흩날리는 낙엽을 맞으며 묘역을 거닐다가 글로만 접하던 분들의 묘소를 만나 묵념에 잠기니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는 느낌이었다. 필자는 1998년에 ‘서울 근현대 역사기행’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망우묘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가족이나 지인 단위로 역사문화 현장을 답사하는 바람이 불었다. 필자는 그 대상이 주로 전근대 유적유물에 편중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우리의 역사문화 의식이 근현대로까지 확장되기를 바라며 책을 펴냈다. ‘서울 근현대 역사기행’은 처음으로 묘역을 역사 기행의 장소로 크게 다루었다. ‘민족 민주 영령들의 성지’라는 큰 제목 아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택 효창공원’, ‘국가 정통성의 뿌리 동작동 국립묘지’, ‘망우리 공원묘지’, ‘청담동 도산공원’, ‘수유리 4·19혁명 국립묘지’라는 장을 설정해 묘역의 내력과 안장된 주요 인사를 소개했다. 서울의 묘역을 근현대사 탐방의 주제로 삼은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망우산은 높이가 282m에 불과하지만 1933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의 가장 큰 공동묘역이었다. 최성기에는 약 4만 7700기가 들어섰는데 필자가 책을 쓸 때는 2만 8000기로 줄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 보니 7000기가량만 남아 있었다. 일제는 4대문 밖 이태원, 신사리(응암동), 미아리, 수철리(금호동)에 공동묘지를 조성했는데 이곳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1933년 망우리 일대 52만평에 묘역을 조성하고 기왕의 공동묘지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해방 후에도 망우묘역은 선산 없는 서울시민의 유택이 됐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묘지는 더욱 늘어 추석에는 전국 각처에서 몰려온 성묘객으로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서울시는 1973년을 끝으로 ‘망우리 공동묘지’를 폐장하고 기존 묘지도 이장을 권고했다. 그리고 1977년 묘역의 이름을 ‘망우묘지공원’으로 바꿨다. 1997년에는 독립운동가와 문화예술인 15인 묘지 근처에 ‘어록’과 ‘추모비’를 세웠다. 나아가 이듬해 아예 ‘묘지’를 떼고 이름을 ‘망우리공원’으로 바꿨다. 문화재청은 2012년에 한용운, 2017년에 오세창·문일평·방정환·유상규·오기만·서광조·서동일·오재영 등 독립유공자 묘지를 국가지정등록문화재로 선정했다. 이로써 망우묘역이 휴식과 현창의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망우묘역은 지난해부터 중랑구가 관리하고 있다. 중랑구는 묘역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탐방과 산책의 장소로 개편했다. 올해 4월 1일에는 묘역 입구에 ‘중랑망우공간’이라는 우아하고 쾌적한 건물을 신축·개관해 전시·교육·홍보 시설로 활용 중이다. 묘역 이름도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교체했다. 광장 벽에는 안장된 역사 인물 50여명의 사진과 약력을 부착했다. 계용묵·박인환·지석영·장덕수·조봉암·이중섭·이영민·차중락 등 저명한 문화인·정치인도 들어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역사와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평안한 공간이다. 그리고 서울시와 구리시 및 한강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다사다난한 올해를 마감하는 요즘 망우역사문화공원에 가서 각자가 기리고 싶은 역사 인물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잠시나마 근심을 잊었으면 좋겠다.
  • “너흰 병기로 싸우나 우리는 義로 싸운다” 곡창 연백평야 중심 연안성 혈전 사수[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너흰 병기로 싸우나 우리는 義로 싸운다” 곡창 연백평야 중심 연안성 혈전 사수[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1592년 4월 14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5월 3일 한성을 점령했지만, 선조가 북쪽으로 몽진하면서 전선은 크게 확장됐다. 평안도까지 북상한 왜군은 뜻하지 않게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군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도성 이북의 가장 큰 곡창인 연백평야를 차지하는 것이 왜군에게는 절실한 과제였다. 하지만 황해도 초토사 이정암이 이끈 의병이 연백평야의 중심인 연안성을 사수하면서 왜군의 조선 침략 구상은 크게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황해도 연안은 최근 강화도를 잇는 연륙교가 세워진 교동도에서 지척이다. 6·25전쟁으로 연안읍에서 피란 나온 주민들이 세웠다는 교동도 망향대에서 바다 건너 연백평야는 불과 3㎞ 거리다. 망향대에서는 멀리 연안읍의 진산인 비봉산이 눈에 들어온다. 인터넷 위성사진의 연안시가지는 이제 잿빛 건물만 빽빽할 뿐 고지도에 나타난 연안읍성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몸집 가냘픈 전형적인 문관 연안성 방어전을 이끈 사류재(四留齋) 이정암(李廷·1541~1600)은 1561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전형적인 문관이다. 1587년 동래부사에 임명되자 스스로 서생(書生)이어서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익히지 않았다며 부임을 사양하기도 했다. 왜적이 침입하면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는 동래에 자신처럼 문약(文弱)한 부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을 5년이나 남겨 둔 시점이었지만, 그만큼 왜침의 분위기가 이미 고조돼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일화다. 이정암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1593년 1월 30일자 선조실록에 담긴 사관(史官)의 평가에 잘 드러나 있다. 이정암은 키와 몸집이 작고 가냘퍼 옷의 무게도 이기지 못할 듯하지만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 과감하며 정교하고 민첩하여 일을 처리함에 있어 누구의 말에도 동요되지 않았고 시세에 따라 오고가지 않았기에 언제나 시류에 영합하는 이들에게는 배척받았다는 것이다. 이정암과 연안의 인연은 1572년 그가 연안부사에 임명되면서 시작됐다. 그는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펼쳤지만 송사 처리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이정암이 연안부사로 재임한 기간에 쌓은 신뢰는 훗날 왜적이 온 나라를 휩쓸자 황해도 의병을 이끌어 줄 리더로 지역민들이 그를 떠올리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란 초기 이정암의 행적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먼저 내세우는 당대의 일반적인 우국충정(憂國衷情)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윤색되지 않은 이정암의 전쟁 대응 과정은 ‘서정일록’(西征日錄)이라는 그의 전쟁일기가 남아 있어 자세히 알 수 있다. ‘서정일록’은 광해군이 세자에 책봉된 1592년 4월 28일부터 같은 해 10월 7일까지 156일 동안 쓰여졌다. 이정암은 정3품 당상관인 이조 참의였다. 4월 29일자에는 도순변사 신립이 충주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라 전체가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적었다. 이튿날에 새벽에는 선조가 세자인 광해군과 돈의문을 나와 평양을 향해 떠났고 백관 대다수는 호종하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종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늙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이 걱정돼 호종하지 않은 것이었다. 5월 1일 이정암은 가족을 이끌고 개성 풍덕으로 향한다. 이정암은 5월 2일 승지 신잡과 마주쳤다. 신잡은 선조의 명을 받아 도성의 형세를 살피러 가는 길이었다. 이정암은 신잡으로부터 동생 이정형이 개성유수에 제수된 사실을 알게 됐다. 5월 3일 그는 임금이 머물고 있는 개성 행재소에 도착했다. 이때 개성유수 이정형은 선조에게 형 이정암이 이미 벼슬이 떨어졌으니 자신과 함께 임진강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하지만 이정암은 이후에도 한동안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다. 5월 19일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자 이정암은 배를 구해 바닷길로 피란할 방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6월 들어 이정암의 가족은 바다가 가까운 연안부로 옮겼다. 7월 21일 생원 박춘영이 찾아와 의병을 일으키려는데 주장이 돼 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이정암은 노모를 모시고 피란 갈 계책을 세웠다면서 거절했다. 그럼에도 주변 지역 의병의 요청은 이어졌고 결국 이정암은 가족을 배에 태워 강화도로 보낸 뒤 7월 26일 의병 창의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광해군이 초토사에 제수 해서지역 의병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분조(分朝)를 이끌고 있던 광해군은 이정암을 황해도 초토사에 제수한다. 이정암은 8월 4일자 ‘서정일록’에 ‘나의 본뜻은 단지 연안·배천 등의 의사들과 의병을 모아 난리를 틈타 날뛰는 도적떼나 막자는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중임을 받고 보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선조수정실록은 연안성 주변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적병은 해서의 주군(州郡)을 나누어 점거하고 있었는데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가 주민들을 유인하니 반민(叛民)이 다투어 붙좇았다. 감사와 수령은 모두 바닷가나 산속으로 숨어버리고 연안 부사도 도망했다. 정암은 전에 연안 부사로 있으면서 인애하는 덕을 폈으므로 이때 아전과 주민이 듣고 와서 모였다.’ 왜군은 전투에 앞서 이정암에게 사신을 보내 ‘작은 성으로 대군(大軍)을 이길 수 없으니 항복하라’고 했다. 그러자 이정암은 ‘너희는 병기로 싸우나 우리는 의(義)로 싸운다’는 글을 써서 사신에게 주었다. 당시 연안성에 들어간 의병은 1000명 미만, 왜군은 3000~4000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안성방어전의 전말은 백사 이항복이 지은 연성대첩비(延城大捷碑) 비문에 자세히 담겼다. 1608년 세워진 연성대첩비는 북한의 보존급(준국보급) 문화재다. 전투는 의병의 기세를 꺾으려는 왜적의 심리전으로 시작됐다. ‘28일 해가 기울었을 때, 왜적이 세 겹으로 성을 포위했다. 이윽고 한 적수(賊帥)가 성 밖을 두루 살피고 성루에 접근해 지나가는데 그 모습이 매우 화려했다. 이때 문장(門將) 장응기가 화살 한 발을 쏘아 그의 가슴을 관통시켜 죽이자, 적의 사기가 몹시 떨어져 감히 함부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자 이정암은 좌우를 둘러보며 ‘이것은 적이 패할 징조’라고 말했다고 선조수정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9월 1일 왜적이 성벽을 기어 개미처럼 떼를 지어 오르는 것을 본 이정암이 쌓아 둔 짚더미에 앉아서 아들 이준에게 “성이 함락되거든 분신 자결해야 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감읍해 모두 힘을 합쳐 함께 싸웠다. 이렇게 4일 동안을 싸우다 보니 왜적 또한 사상자가 절반을 넘었다. 이에 사기가 크게 떨어진 왜적은 이튿날 아침 시신을 모두 불태운 뒤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옥천 의병장 조헌과 육전 최초의 승리인 양주 해유령 전투를 이끌었음에도 도망자로 지목돼 참수된 신각의 일화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591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옥천으로 돌아간 조헌은 당시 평안감사 권징과 연안부사 신각에게 글을 보내어 참호를 깊이 파고 성을 수리해 전쟁 준비를 미리 하도록 했다. 권징은 그 글을 보고 ‘황해도·평안도에 왜적이 올 리가 있겠는가’ 하고 웃어넘겼다고 한다. 반면 신각은 무기를 정비하고 성안으로 봇물을 끌어들여 큰 못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연안성방어전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조선의 안시성 싸움’ 연안성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이정암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정암의 장계에는 “단지 어느 날 성이 포위당하고 어느 날 풀고 떠났다고만 했을 뿐 다른 말이 없었다”고 한다. 광해군은 연성대첩을 두고 “고구려의 안시성주(安市城主) 외에는 일찍이 듣지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연안성전투를 ‘조선의 안시성 싸움’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비변사는 이순신의 한산대첩 예에 따라 이정암에게 상을 내릴 것을 선조에게 주청하기도 했다. 이정암의 장계에 조정에서는 “전쟁에 이기는 것도 쉽지 않지만 공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암은 선무공신 2등으로 월천부원군에 추봉됐고 좌의정에 추증됐다. 무덤은 황해도 개풍군에 있다고 한다. 남쪽에는 고양시 사리현동 벽제초등학교 앞에 ‘사류재사우’가 남아 있다. 글·사진 문화재위원회 위원
  • 백마고지에서 인식표와 함께 발굴한 전사자 유해 유족 품으로

    백마고지에서 인식표와 함께 발굴한 전사자 유해 유족 품으로

    6·25전쟁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참전용사의 유해가 인식표와 함께 발굴돼 유족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7월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김용일 이등중사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신원확인 통보 행사인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이날 경기 부천시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고인은 충북 괴산군에서 6남 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가 막내딸 출생 한 달 만인 1952년 3월 육군에 입대했다. 친손자 김정덕씨는 “아버지가 세 살 때 할아버지가 입대하셔서 아버지도 기억에는 없으셨지만, 할아버지를 매우 보고 싶어 하셨다”며 “손자인 제가 장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김 이등중사 유해는 참호에서 웅크린 자세로 가슴 부위에 팔을 모은 모습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됐다. 머리뼈 위에는 철모, 발뼈에는 전투화 밑창, 정강이뼈에는 고무링이 남아 있었고 고인의 이름이 선명히 새겨진 인식표도 찾을 수 있었다. 친손자의 유전자와 비교해 가족관계도 확인했다. 고인의 유해는 지난 21일 신원 확인 소식이 전해졌던 고 편귀만 하사와 같은 참호에서 70년 동안 함께 있다가 발굴되면서 연속으로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김 이등중사와 편 하사는 국군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1952년 10월 6∼15일 벌어졌던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국유단은 유해 신원 확인에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며 전화(1577-5625) 및 인근 보건소·보훈병원·군병원 등으로 연락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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