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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평화의날’ 기념식 참석전 伊 대통령 스칼파로

    “남북한 주재 대사를 단일화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90년대 이탈리아의 정치개혁 모토인 ‘마니 폴리테(White Hand)’를 주도했던 오스카 루이지 스칼파로(Oscar Luigi Scalfaro) 전 이탈리아 대통령은 19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세계 평화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이같이 말했다. 국제연합(UN) 제정 제19회 평화의 날을 맞아 경희대가 주최한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스칼파로 전 대통령은 “6·25전쟁으로피폐해 있던 한국이 짧은 기간에 보기 드문 번영을 이룬데다 최근의6·15 공동 선언으로 더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쓰레기 더미 위에서 피어난 꽃이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워 주듯,대가를 치르고 일궈낸 평화는 더욱 값지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세기를 흩어져 지낸 남북한의 이산가족 문제 등 숱한 비극을 훌륭히 이겨내고 있는 한국에 대해 경의를 표시하며,남북대화를기꺼이 돕는다는 것이 이탈리아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스칼파로 전 대통령은 92년부터 지난해까지 재임기간 동안 정재계고위인사들의 잇단 뇌물 스캔들로 내각이 4차례나 교체되고 외환위기를 겪는 내환(內患) 속에서 유럽연합(EURO) 동참을 이끌어내는 등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 종신 상원의원인 그는 이날 ‘국제밝은사회평화재단(이사장 趙永植경희학원장)이 주는 세계평화대상을 수상했다.20일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예방한 뒤 22일 출국한다. 송한수기자 onekor@
  • ‘전투경찰’명칭 50년만에 바꾼다

    6·25전쟁 이후 파란만장한 정치사와 운명을 함께해온 ‘전투경찰’이라는 명칭이 50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경찰청은 지난 70년 제정된 전투경찰대설치법 등 관계법령을 고쳐전투경찰이라는 명칭을 시대에 맞게 바꾸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은 다음달 말까지 인터넷 등을 통해 전투경찰의 새 이름을 공모,공청회 등을 통해 최종안을 선정한 뒤 내년에 관계법령을 개정할 방침이다. 전투경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50년 10월.당시 지리산과 태백산,운문산 등지에서 발호하는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전투경찰사령부’가 설치 운용됐다.이후 67년 9월에는 북한의 무력남침도발에 대비한 경찰의 정규전 태세 확립을 위해 전국적으로 23개의전투경찰대가 창설됐다.68년에는 김신조 등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사건을 계기로 대통령 훈령에 따라 일선 경찰서에 ‘5분타격대’가설치됐다. 지금과 같은 전투경찰이 법률에 근거해 운용되기 시작한 것은 전투경찰대설치법이 제정,공포된 70년 12월부터다.이후 전투경찰은 북한의 무력도발 대비보다는 학원과 노동계의 집회·시위 진압에 주로 이용돼 왔다. 이무영(李茂永) 경찰청장은 “전투경찰은 호전적 명칭으로 법집행과 봉사를 기본으로 하는 경찰이념에 맞지 않을 뿐더러 국민들의 거부감을 초래했다”면서 “시대와 사회 환경변화에 따라 명칭을 바꿀 때가 됐다”고 밝혔다. 김경운기자 kkwoon@
  • 이산가족들 ‘생사확인’ 반응

    남북이 연내에 모든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작업을 마치고 서신교환을실시하기로 합의한 14일 이산가족들은 설렘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하는 바람에 헤어진 오빠 리기명씨(70)가 북쪽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기남(寄男·59·서울 송파구 송파동)씨는 “편지 왕래가 곧 자유로워진다니,지난번 상봉 때 후보 100명에서 탈락해 못 만난 오빠의 얼굴을 볼 날도 그만큼 빨라진것 같다”며 기대에 찼다. 북녘에 큰 외삼촌 리길영씨(71)를 둔 박찬운(39·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얼굴도 모르지만 외삼촌과 연락이 닿으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남동생에게 남긴 많은 말들을 전해 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석정(李錫正·64·서울 강동구 천호동)씨도 “어머니가 남동생을그리며 남긴 ‘내가 울어 네가 온다면’이라는 제목의 유고시집을 꼭전해주고 싶다”고 설레는 표정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때 서울에서 오빠 리래성(68)씨를 만난 아나운서 이지연(李知娟·여·52)씨는 “편지로 연락을 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오빠가살아있다는 실감이 날 것 같다”면서 “당장 다가오는 성탄절때 보낼 선물을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홍원상 이동미 윤창수기자 wshong@
  • 전면 개편 추진중인 국가보훈제도 중·장기안

    정부와 민주당이 4일 당정회의를 통해 전면 개편을 추진중인 국가보훈제도는 중·장기안이다.국가보훈 관련 입법을 한꺼번에 정비하면보상의 형평성 문제 등 혼란이 뒤따를 수 있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이다.당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키로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유공자예우·지원법을 개정,출가한 딸 등에 대한 유족인정 요건을 조정하고 국가유공자의 사립대학 공납금에 대한 국고지원 근거마련 ◆6·25전몰군경 유자녀중 고아 등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해 성년이된 뒤 연금지급이 중단된 9,400여명의 유자녀 전부에 대해 매월 25만원의 생활조정수당 지급◆6·25전쟁 등 무공수훈자중 65세이상 고령자 3만5,900여명에게 월6만2,000원의 영예수당 지급◆6급 상이군경 유족 5,000여명에게 상이군경의 사망원인과 관계없이 연금의 절반인 월 25만원을 지급◆6·25전쟁,베트남전 참전군인 가운데 65세 이상으로서 도시근로자월평균 소득의 65%이하 소득자인 4만명에 대해 매월 10만5,000원의생계보조비 지급◆동티모르 등 국제 분쟁지역 평화유지군 파병군인들도 참전군인등지원법 적용대상에 포함◆독립유공자예우법상 보상대상에서 제외돼온 독립운동공로 건국포장과 대통령표창자에 대해 2001년까지 월 20만∼10만원의 연금 지급◆위헌결정이 난 제대군인에 대한 가산점제 대책으로 군복무를 포함한 국가사회봉사활동 가산제를 도입.▲우선 일반기업체의 응시상한연령을 군복무기간인 3년 범위내에서 연장 ▲초임호봉 확정때 군복무기간을 포함시키도록 권장 ▲공무원 채용시험 합격후 기관배정이나임용추천 점수확정때 만점의 1%를 가산 ▲공무원 경력평정때 군복무기간의 인정범위를 현행 20%에서 50%로 확대하는 등 보완책 마련◆고엽제후유의증환자지원법을 개정,현역병으로 휴전선 인근지역에서 고엽제살포업무에 종사한 사람과 관련 민간인들 보상이지운기자 jj@
  • 뮤지컬 ‘의형제’ 1년6개월 산다

    올초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1,000회 기록을 세운 바 있는 극단 학전이 이번엔 뮤지컬 ‘의형제’로 1년6개월의 장기공연에 도전한다.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1개월까지 비교적 긴 호흡의 공연을 주로해온 학전이지만 기획단계부터 1년이 넘는 장기공연을 계획하기는 이번이 처음.관객호응을 봐가며 조금씩 연장공연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아예 처음부터 공연팀을 4개로 나눠 4∼5개월 단위로 바꿔가며 공연할 예정이다. 98년 초연이후 2년만에 무대에 서는 ‘의형제’는 한날 한시에 태어났으나 서로 엇갈린 운명을 살게되는 쌍둥이 형제의 비극적 삶을 그린 작품.6·25전쟁 이듬해 ‘간난 아줌마네’유복자로 태어난 쌍둥이는 가난때문에 부산 영도다리를 사이에 두고 부잣집 도련님(현민)과빈민촌 천덕꾸러기(무남)로 자라난다.핏줄의 이끌림으로 둘은 의형제를 맺을 만큼 친한 친구사이가 되지만 사회적 환경은 이들을 최연소국회의원과 약물중독 전과자로 갈라놓는다.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쌍둥이 형제의 개인사는 50∼70년대 불행했던우리 근현대사와 맞물리면서 더욱 큰 공감대를 형성한다.찢어진 옷,숯검댕이 얼굴로 피난촌을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무남의 유년시절,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몰래보다 경관에게 끌려나오는 무남과 현민의 사춘기시절 삽화 등은 눈물이 날 만큼 재미있는 추억의 장면들이다.영국 작가 윌리 러셀의 ‘블러드 브라더스’를 토대로 했지만 ‘지하철1호선’‘모스키토’처럼 번안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초연때 무남,현민 역을 맡았던 권형준,김학준을 비롯해 방주란,김윤석,오상원 등이 출연한다.해설자를 겸하는 걸인역에는 영화 ‘춘향뎐’의 남자배우 조승우가 장현성과 함께 더블 캐스팅됐다.학전은 주부들을 위한 수요일 낮 3시 공연을 따로 마련하는 한편 외국인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영문자막을 설치했다.9월1일부터 학전블루소극장(02)763-8233이순녀기자
  • 의용수비대 박영희씨 “독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나라의 수치를 되새기는 것은 다시는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는데 있습니다” 지난 53년 독도의용수비대의 홍일점 대원으로 활약했던 박영희(朴英姬·67·경기도 구리시)씨는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독도수호 결의대회에서 40여년이 지났음에도 변함없는 각오로 이같이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대한민국독도향우회(회장 崔載益)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날을 상기하며 우리나라의 동쪽 땅끝 독도를 지키자는취지로 마련했다. 박씨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제2의 국토침탈 모략’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일본 외교청서와 독도 광업권 허가,독도 16마일부근 광케이블 설치 등 일본이 도전행위를 서슴지 않는 현실에서 독도 수호운동은 민족 자주권에 위한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국민들의관심을 촉구했다. 박씨는 53년 4월 일본이 6·25전쟁의 혼란을 틈타 자민당 국회의원등 주민들을 독도에 상륙시켜 ‘시마네현 소속의 일본 땅’이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꽂은 사건이 일어나자 ‘폭거’로 규정하고 20세의나이에 의용수비대에 합류했다. 이 때의 인연으로 백년가약을 맺은 당시 독도 의용수비대장 홍순칠(洪淳七·86년 작고)씨와의 독도에 얽힌 사랑 얘기는 ‘이 땅이 뉘 땅인데’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독도향우회는 결의대회에서 독도 입도 허가제 폐지와 민족공원 조성,국제해양관광단지 개발 등 주권국으로서의 자존심 회복에 적극 나설것을 정부에 촉구했다.아울러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 독도 관련 학술교류와 단체 통합 등을 제안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국군포로 4명 귀환

    6·25전쟁 당시 전쟁포로로 억류돼 북한에서 거주하던 강모씨(70)등 국군포로 4명이 지난 7월 귀환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5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강씨를 비롯,김모(71),허모(68),김모씨(71) 등 4명은 올해 초 북한을 탈출,제3국에 체류하다가 지난 7월 귀환했다. 이로써 지난 94년 조창호(趙昌浩)씨 이후 귀환한 국군포로는 모두 15명으로 늘어났다. 전남 영광 출신의 강씨는 51년 국군 3사단에 입대,53년 금화지구 전투에서 포로가 돼 함경남도 단천 검덕광산 광부와 경비원 등으로 일했다. 충북 청원 출신의 김씨는 49년 8사단에 입대한 뒤 50년 횡성전투에서 포로가 돼 평양 승호구역에서 공원으로 일했다.경남 진양 출신의허씨는 52년 수도사단에 입대,53년 김화지구 전투에서 포로가 돼 함경북도 아오지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다.또 다른 김씨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이들은 모두 전사자로 처리돼 국립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돼 있다. 노주석기자 joo@
  • 金泳三전대통령 주장 “현 對北정책은 헌법 4조 위배”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25일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개념을 규정한 헌법 제4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상도동 자택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남북한 관계의 진전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면서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의 서울방문을 거론하기 전에 6·25전쟁 도발의 시인과 사과,KAL기 폭파·아웅산 테러사건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합의사항 가운데 ‘남한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부분은 1국가 2체제를 인정한다는 의미로서 헌법을 위반한 통일접근 태도”라고 지적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9월의 호국인물/ 한신 육군대장

    전쟁기념관은 25일 6·25전쟁 중 경북 안강·기계전투에서 이름을떨친 한신(韓信·1922∼1996) 육군 대장을 ‘9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함남 영흥에서 태어난 한 장군은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중앙대에서 수학했으며,1946년 12월 육군사관학교 2기로 임관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수도사단 1연대장을 맡아 의정부전투를 시작으로한강 방어선,진천,안강·기계,대관령전투를 비롯해 38선 북진작전 등격전지를 누비며 지휘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전쟁 이후 수도사단장,6군단장,1군사령관 등 주요 직위를 역임하며‘잘 먹이고,잘 입히고,잘 재우는’ 사병복지를 구현했다.합참의장재직시 국군 현대화 계획을 입안하여 자주 국방의 기초를 세웠다. 오늘 죽어도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의 ‘일일 일생(一日 一生)’을좌우명으로 군 발전을 위해 헌신,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 등 군관계자와 군인들이 존경하는 군인 중 한명으로 꼽힌다.생전에 태극·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유족으로는 부인 김길자(金吉子.75)여사와 정숙(貞淑·53),경숙(慶淑·49) 자매가 있다. 노주석기자 joo@
  • 인천 차이나타운 ‘재건’

    중국인 관광객의 입국 러시를 계기로 인천의 화교촌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우리나라가 중국인 해외여행 자유화국가에 포함되고 제주도 무사증입국이 시행되면서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오자 국내 최초의 차이나타운이자 ‘자장면’의 고향인 인천시 중구 선린동 화교촌이 긴 침체에서 벗어나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인천역 앞 횡단보도를 지나 작은 언덕을 오르면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붉은 바탕에 흰 글씨의 간판들,적색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허름한 중국식 건물들.각종 반점(飯店)과 옛 청나라대사관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1890년대에 멈춘 듯 서있다. 인천시 중구 선린동 25번지 일대 화교촌.1883년 제물포항의 개항과더불어 형성된 이곳 화교촌은 당시 1만여명의 화교와 숱한 내국인들이 모여들던 개항기 최대의 번화가였다. 자장면이 처음으로 개발된 곳도 여기다.화교촌은 각종 중화요리 뿐아니라 한약재·도자기 등 중국 물품과 설탕·유리·물감 등 각종 서양 물건이 거래되는 구한말과 일제시대 최고의 백화점이었다.‘비단장수 왕서방’도 한켠에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을 거쳐 60년대 화교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심화되면서 화교들은 동남아 등으로 하나둘씩 떠나 지금은 자장면집 예닐곱이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하지만 아직도 중국한의원,중국문화사,화교학교,화교협회사무실,쿵후도장 등이 남아 ‘한국 속의 중국’을 실감케 하고 있다.옛 청국대사관 건물에 들어선 화교학교는 아직도머물고 있는 화교 170여명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화교촌에 재기의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다. 인천시는 최근 국제관광도시로의 도약을 선언하며 최우선 과제로 화교촌 활성화를 약속했다.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중화경제권의 교통요충지가 될 인천국제공항 바로 옆에 있는 화교촌이 ‘관광인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북경·상해시,산동성 등 9개 시와 성에 한해 단체관광 형태로 시행되던 중국인 관광이 지난 6월부터 완전 자유화된 것도 화교촌 재건을 더욱 부추겼다. 인천시의 개발 계획은 기존의 화교촌 뿐 아니라 인근의 자유공원과신포시장 일대까지포함하는 광역화사업이다.다만 기존의 화교촌은가능한 원형을 유지하고 심하게 낡은 건물만 부분적으로 개량한다는방침이다. 대신 화교촌 인근의 신포동 재래시장 일대를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전문 상가지역으로 새로 개발하고,화교촌 및 국제여객터미널 주변에대규모 중국음식점 및 숙박시설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여기에 상가및 마작방·노래방 등 유흥시설을 설치해 먹거리·놀거리·살거리를갖춘 복합공간으로 꾸민다는 구상이다. 이밖에 자유공원과 연안부두,월미도 등 주변의 관광명소와 연계한관광상품을 개발하고,자유공원∼배다리간을 ‘중국인 관광특구’로지정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아울러 기존의 화교촌에 내년까지 중국거리를 상징하는 기념물과 중국식 가로등 50개를 설치하고 진입로에는 칼라 콘크리트 포장을 하는 등 기반시설을 늘여 활성화를 꾀할 방침이다. 또 주차공간을 늘이고 인천국제공항·인천항과 화교촌간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도 운영할 계획이다. 시는 차이나타운 개발사업에 동남아의 화교자본을 적극 유치하기로 하고 국내 주재화교인협회와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중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21세기 중국은 세계 4위의 관광객 송출국이 될것”이라며 “미국 뉴욕의 차이나타운 등에 못지 않은 화교촌을 조성,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국민 모두가 찾는 명소로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hjkim@. *장의량 인천화교협회 사무장 인터뷰. “생색내기식 개발은 화교뿐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에게도,한·중 두나라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천시 화교협회 장의량(張義亮·60) 사무장은 인천시의 차이나타운 개발계획이 전시행정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장씨는 “당장의 필요에 급급해 무작정 개발에 착수하기에 앞서 화교촌에 남아 있는 화교들의 실상을 먼저 파악할 것”을 당부했다. 170여명의 화교 중 극히 일부가 중국음식점 등을 운영하며 화교촌의 명맥을 잇고있는 현실을 인정한 뒤 화교촌의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60년대 이후 화교촌 일대에 내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현재 60%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점차 생활기반을 잃고 있는 화교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게 장씨의 주장이다. 장씨는 “한때 수천명에 이르던 화교들이 당국의 불합리한 정책에실망해 상당수 떠나갔다”면서 “생계수단이 불확실한 화교들을 위해 화교촌을 활성화하되 가능한 원형을 보존하는 개발방식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시나 중구가 중국인 관광객을 확보한다는 목적에 집착,‘화교없는 화교촌’을 개발해서는 안된다”면서 “화교들과 충분한협의를 거쳐 합리적인 개발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 윤영자 할머니 “비전향 장기수도 고향 간다는데…”

    부모 형제를 두고 월남한 할머니가 남쪽에서 얻은 아들마저 납북돼‘이중(二重)이산’의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기간 내내 TV를 아예 끄고 살았어.북에 두고온가족과 북에 끌려간 큰아들 생각에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윤영자(尹英子·69·대구시 동구 백안동)할머니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 소중한 피붙이와 두번이나 찢어지는 생이별을 겪었다. 윤 할머니는 해방되던 해인 45년 14살때 홀몸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며 북의 부모·여동생과 헤어졌고,남쪽에서 얻은 큰아들은 그가 15살무렵인 68년 오징어배를 탔다가 북한에 피랍돼 30년이 넘도록 소식이끊겼다. 일제의 압제,그리고 해방,남북분단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의 고난은할머니의 삶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황해도 평산군이 고향인 할머니는 지난 45년 봄 일제의 ‘근로정신대’징용을 피해 아버지 고향인 전라도 쪽으로 도망갔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 우여곡절을 겪던 끝에 6·25전쟁에 휘말렸다. 할머니는 “해방되는 해 집을 떠날때 ‘언니,언니’하며 울던 하나뿐인 여동생만 생각하면 지금도 밥술을 뜨다가도 목이 멘다”고 회고한다. 혈혈단신으로 월남,부산항 도착후 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만난 남편과 결혼,두 아들을 낳았지만 할머니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불행했던 결혼생활 끝에 남편과 별거,혼자 서울로 올라와 온갖 궂은 일을 하던중 68년 7월10일 큰아들의 납북은 청천벽력이었다. 술주정으로 뱃일을 자주 못나가는 아버지 대신 당시 열다섯 어린나이로 부산에서 오징어배 ‘가나다호’를 타야했던 큰아들 박종업씨(47)는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북한에 피랍됐다. 지난 82년 남편과 사별하고,작은 아들도 몇년전 결혼시켜 홀로 사는할머니는 “비전향 장기수들도 고향을 찾아간다는데 먹고 살려다 일이 잘못돼 납북된 아들놈은 왜 내려오질 못하는 거여…”라며 울먹였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사설] 비전향장기수 조용히 떠나야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가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비전향 장기수 가족과 전향자 가운데 북송을 희망하는 사람을 북으로 함께 보내달라고주장하고 나왔다.한마디로 말해서 이들의 주장은 너무도 터무니가 없는 주장이다. 비전향 장기수 62명의 송환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인도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에 의해 이뤄지는일이다. 지금 국내에서는 장기수 송환과 관련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송환하라는 요구가 드높은 실정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이들의 북송을 국군포로나 납북자 송환과 직접 연계하지 않는것을 양해하고 있다.이들의 송환이 남북 화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기대와 함께,이들이 30년 혹은 40년 넘게 감옥생활을 한 고령의 노인층이라는 사실도 작용했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비전향 장기수 북송은 그들의 권리가 아니라 정부의 배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또한 ‘비전향 장기수’는 문자 그대로 전향을 하지 않은 장기수를 말한다.그 가족이나 전향자는당연히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그리고 개념규정과 그 적용은 정부당국이 하는 것이지 송환추진위가 하는 게 아니다.장기수들은 무리한 주장을 하지 말고 조용히 떠나기 바란다.무리한 주장은 남북관계 개선에 걸림돌만 될 뿐이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이 이뤄지는 마당에 이제는 정부가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문제를 북측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은 21일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29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장관급회담에서 의제 중 하나로 다룰 것이며,최선을 다해 성과를 얻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다룬다는 종전의 방침을 바꿔 장관급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북한이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데다 6·25전쟁 후 북한에 잔류한 국군포로의 경우 대개 북측에서 가정을 이룬 ‘생활정착형’이다.하지만 납북자의 경우는 대부분 타의에 의해 북한에 남아있다.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남송(南送)’의사 여부는 국제적십자 등을 통해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비전향 장기수들을 ‘특수 이산가족’으로 분류해서 송환하는만큼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해서도 같은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정부는 이들의 송환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북한을 설득하는 한편 국제여론 조성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이 문제는 지난한 문제인만큼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또한 이 문제를 정쟁거리로 삼는 일이있어서도 안된다.
  • 北·日 손 덥석잡기는 힘들듯

    22일부터 도쿄(東京)에서 속개되는 북한·일본 10차 수교회담은 6월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속한 한반도 해빙 무드 속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양측 모두 수교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으나 속마음 만큼 서로의 손을덥석 잡기는 어려운 상황 속에 회담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평행선 달리는 양측 주장=수교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북측이 요구하는 과거청산과 일본측의 일본인 납치의혹 해결이다. 북측은 과거청산 없이는 수교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지난 12일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일제 36년을 보상해야 한다.자존심 꺾이면서 일본과 수교는 안한다”고 말했다.북측은 일제 강점 36년과 6·25전쟁 때 미군을 지원한 점을 들어 사과와 보상·배상의 과거청산을요구하고 있다. 단호하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한반도 식민지배가 적법절차에 따른합병이라고 주장하는 등 기본 입장이 9차회담 때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일본은 납치의혹을 과거청산과 더불어 우선적으로 해결한뒤 수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요미우리(讀賣)는 19일자에서 정부 소식통을 인용,“북한이 요구하는 과거청산의 우선처리 등에는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수교까지는 시간 걸릴 듯=9차회담과,지난 7월 방콕에서의 사상 첫북·일 외무장관 회담,이번 10차회담은 탐색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로 입장을 충분히 전달한 뒤 11차 때부터 양보와 절충의 본격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외무상은 지난 9일 “수교협상 타결 전이라도 북한을 국가로 승인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일본 정부의 대북 자세가 유연해지고 있는 점은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납치의혹 해결에 북측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명분을 제공하면일본이 주저하는 과거청산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급진전될 공산이 크다.여기에는 북측에 건네질 배상금이 드러나지 않는 ‘쟁점’이 될수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사설] 지금은 실컷 울 때다

    남북으로 헤어진 지 50년 만에 이뤄지는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의감격을 국내 신문들은 “서울도 울고 평양도 울었다”고 묘사했다.하나같이 1면 통단 제목으로….이산가족이 아니라도 이 기막힌 상봉 장면을 지켜 본 국민들이면 누군들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한반도를온통 눈물의 바다로 만들고 있는 2000년의 8월을 뭉뚱그려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그것은 ‘눈물’이라는 단 한마디일 것이다.‘감격의 눈물’일 수도 ‘통한의 눈물’일 수도 있다.핵심은 눈물에 있다. 전세계 주요 외신들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을긴급 또는 주요뉴스로 다루고 있다.프랑스의 한 TV는 헤어진 가족들이 50년 만에야 만나는 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한국의 분단 과정과 6·25전쟁,그리고 그 이후 지속돼 오고 있는 분단의 역사를 설명했다고 한다.게다가 저명한어느 석학은 “통일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충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잘 안다.통일이 감성적으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지난한 과업이라는 사실 말이다.그럼에도 지금 당장은 민족성원 모두가 실컷 울 때다.그리고 내일이면 너무도 짧은 만남 끝에 또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이 억장 무너지는 현실 앞에 다시 눈물바다가 예고돼 있는 마당이다.일단 실컷 울자.그리고 나서 무엇이 오늘우리가 이렇게 울도록 만들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1945년 제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외세가 우리민족에게 분단을 강요한 것은사실이다.하지만 그같은 외세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것은 우리민족의 과오가 아닌지.해방공간에서 민족분단을 자초했거나 이를 받아들인 세대들을 비판하기 앞서,분단 속에 살아온 우리 스스로도 냉전적 사고에 안주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같은 반성을 통해 뒤늦게나마 민족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된다. 외신들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이산가족들이 한국전쟁 이후 50년이라는 분단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한반도에 화해의 새 시대가 열렸다”,“이번 사건은 아시아 전체에 엄청난의미를 갖는다”라며 저마다 논평을 하고 있다.그냥 해보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다.이제야말로 남과 북이 분단 극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가까스로 움트기 시작한 화해의 싹을 키워냄으로써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그 기초 위에서 통일로 가는 멀고도 어려운 길에 우리 모두 발벗고 나서자.오늘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통해 한층 강고해진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 남북이산상봉/ 총겨눴던 주영관·영훈 형제

    “50년만에 만났는데 3박4일이라니 너무도 짧습니다” 16일 오전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형 주영관(72),동생 영인(54)씨 등 형제들을 다시 만난 영훈씨는 반갑게 이들의 두 손을 꼭 잡았다.6·25전쟁 당시 형 영관씨는 국군 장교로,영훈씨는 인민군으로 총부리를 마주했던 동족상잔 비극의 주인공들이다.그러나 이제 그들은마음껏 부둥켜 안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훈씨는 “원래 서울 사람이라 서울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이에 영관씨는 “동생을 만나고 난 뒤 밤새 울다가 웃다가 했다”고 말하며 다시 한번 손을 부여잡았다. 이들 형제는 가족 사진 앨범을 펼쳐 한사람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영우기자
  • 남북이산상봉/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북에서 오신 동포 여러분,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6일 북측 상봉단이 묵고 있는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는 북에 있는 가족을 찾는 이산가족들이 몰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들은 가족의 이름을 쓴 피켓을 들고 북측 방문단이 볼 수 있도록호텔앞을 서성거렸다. 방북을 신청했으나 이번 방북단에 끼지 못한 김상일씨(71·경기 부천시 오정구 원미동)는 이날 오전 10시쯤 몸에 가족들 이름이 적힌피켓을 두른 채 호텔을 찾았다. 피켓에는 ‘평양에서 오신 동포 여러분,기자 여러분.평남 남포시 하대두리 제현소 공사사택 7호에 살던 이 사람들을 모르시나요’라는글과 함께 북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형제,누이 동생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김씨는 “평양 동포와 기자들이 묵고 있는 이곳에 오면 내 소식이나마 가족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죽기 전에 꼭 만나 가족들에게 사죄해야 하는데 소식조차 모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지난 48년 집을 떠나 혼자 공부하러 서울에 내려왔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가족들과생이별을 하게 됐다. 북에 오빠를 둔 어머니를 대신,이곳을 찾은 이완재씨(46·충북 충주시 문화동)도 ‘생사를 알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호텔 현관문을오갔다. 이씨는 “어머니가 이산가족 상봉 방송을 보며 눈물로 지새우고 계시다”면서 “어머니께 고향 사람들 소식이라도 전해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또 남측 상봉단이 머무는 서울 올림픽파크텔에도 이산가족들이 찾아와 북측 상봉단에 가족의 소식을 대신 물어봐 줄 것을부탁했다. 6·25전쟁으로 헤어진 남편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아온 권오중씨(68·여·서울 노원구 월계동)는 이날 서울 올림픽파크텔을 서성이며 “북측 상봉단에 서울공대를 다니던 남편 이동현씨(71)를 아는지 물어봐 주세요”라며 애원했다. 권씨는 18세인 50년 1월 서울 공대에 갓 입학한 경북 문경의 이씨와결혼,닷새를 함께 보내다 이씨가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간 뒤 전쟁이터지면서 소식이 끊겼다. 조현석기자 hyun68@
  • 남북이산상봉/ 北 최고 인민화가 鄭昶謨씨

    “춘희야,남희야.이게 얼마 만이냐.정녕 50년 만이냐”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로 활동중인 정창모(鄭昶謨·68·만수대창작사인민예술가)씨는 15일 여동생 춘희(61)·남희(53)씨를 만나는 순간두 동생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오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감싸 안고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비벼댔다.50년전 다정했던 오누이로돌아간 것처럼. 정씨는 여동생 춘희씨가 “어머니는 오빠를 잃은 고통에 하루도 마음 편히 사신 날이 없었다”며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문갑과 화분을 건네자 얼굴을 감싸쥐며 오열했다. 정씨는 “50년 세월이….50년 세월이….원망스럽다”면서 반세기의생이별을 한탄하면서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더란 말이냐.아들이이렇게 왔는데”라며 눈물을 감출 줄 몰랐다. 정씨는 6·25전쟁 당시 전주북중(현 전주고) 5학년때 의용군에 입대,월북했으며 평양미술대학 졸업후 공훈예술가를 거쳐 89년 인민예술가 반열에 올랐다.정씨는 현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과 국가작품심의위원 등을 맡고있다.정씨의 76년 작품 ‘비봉폭포의 가을’은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인 금수산의사당에 걸려있다. 정씨의 작품은 북한작가로는 처음으로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된다. 황수정기자 sjh@
  • ‘83년 이산가족찾기’ 아나운서 李知娟씨

    지난 83년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준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진행했던 이지연(李知娟·여·52))씨도 15일 북에서온 오빠 리래성씨(68)를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언니들과 함께 오빠를 만났으며 어머니가 ‘새언니에게 주라’며 유품으로 남긴 금가락지 5돈을 오빠에게 선물로 줬다.이씨는 “17년전 이산가족 생방송을 하면서 참았던 눈물을 오빠를 만나 흘렸다”고 감동의 순간을 말했다. 이씨는 6.25당시 북한의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오빠가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남산 대한적십자사를 찾아 상봉 신청서에 ‘리점봉’이란 자신의 본명을 적었다. 이씨는 6·25전쟁이 끝난뒤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오빠의 편지가 와 그 주소로 연락을 했으나 ‘그런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은 이후 오빠와 소식이 끊겼다.오빠의 월북 때문에 이씨의 가족들은 60,70년대 경찰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이씨는 50년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빠를 기다리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5월 고향인 군산지법에 실종자 처리신고를 했다.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할 때 남한에서 헤어져 있는 다른 분들의 사연이 너무급해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었다는 이씨는 “죽은 줄로알았던 오빠를 만나뵈니 그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할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특별취재단
  •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D-3/ 미리본 서울 단체상봉

    “오마니…”“여보…”“오빠…” 오는 15일 오후 4시쯤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1,900평 규모의 컨벤션홀은600여명이 한꺼번에 터뜨리는 울부짖음과 함께 감격의 ‘눈물 바다’를 이루게 된다.북에서 온 8·15 서울 방문 이산가족 100명과 그들의 남쪽 가족 500명은 단체상봉 장소인 이곳에서 반세기 만에 처음 그리운 얼굴을 서로 어루만질 수 있다. 가로·세로 각 81m의 바닥 넓이에 높이 17.5m의 장대한 컨벤션홀은 가족들600여명 외에도 상봉보조 요원 100명과 취재진,정부지원 요원 등 모두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정부는 컨벤션홀 중앙을 십자가 모양으로 갈라 포토라인을 설치하기 때문에상봉 구역은 대충 4개 구역으로 나뉘어진다.구역마다 테이블이 25개씩 총 100개가 설치된다.방문단 1명당 테이블 1개와 의자 6개가 배치된다. 방문단을 만날 남쪽 가족 500명은 상봉 시각 전까지 컨벤션홀에 미리 들어와 방문단의 입장을 기다리게 된다.테이블당 남쪽 가족 5명이 기다리는 셈이다. 상봉 시각이 되면 사방에 설치된 6개의 문에서 동시에 방문단이 입장한다. 전부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기 때문에 상봉 보조요원이 1명씩 따라붙어 지정된 테이블로 방문 이산가족을 데려간다. 상봉 과정에서 노인들이 충격으로 실신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컨벤션홀 안팎에는 의료진과 구급차가 대기하게 된다. 김상연기자 carlos@. *민간지원요원으로 평양行 이호철씨. “비록 정식 상봉단 일원은 아니지만 이번 방북길에 50년 전에 헤어졌던 누이동생과 남동생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의 민간지원 요원으로 뽑혀 평양에 가게 된 함남원산 출신의 소설가 이호철씨(68)는 가족상봉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조금의외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 찬’ 답변을 한다.사연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 싶으면서도 그의 확신에는 객관적이기 앞서 50년 동안의 기대가 잔뜩 묻어 있다. 6·25가 터진 해 17살의 몸으로 가족없이 단 혼자 남으로 내려왔던 이씨는지난 98년 모 언론사 취재주선으로 방북,평양과 백두산을 둘러보았다.고향원산에는 가보지 못했는데 당시방북직전 중국 옌볜(延邊)을 통해 네 살 아래 남동생,열 살 아래의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만을 전해 받았다.“평양에 갔을 때 그쪽 적십자 요원 등 여러 사람들과 친해 놓았다.이번에 그들이내 사정을 모른 체할 리 없을 것”이란 것이 소설가 이씨의 ‘확신’의 근거다. 원산고급중학(고교) 3학년때 내려온 이씨는 월남민을 다룬 수많은 소설을썼고 민주화투쟁에 나섰던 70년대 유신시절에는 당국의 조작으로 문인간첩단사건에 얽혀 수형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김재영기자 kjykjy@. *의료지원요원 故 장기려박사 아들 가용씨. ‘한국의 슈바이처’ 고 장기려(張起呂) 박사의 뒤를 이어 ‘참 의료’를실현하고 있는 아들 장가용 박사(서울대 의과대학 해부학과)가 꿈에 그리던어머니 김봉숙(金鳳淑) 여사를 만나기 위해 8·15때 평양으로 떠난다. 남측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100명의 의료지원요원으로 포함돼 방북하는 그는선친이 녹음한 어머니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꺼내 듣는 게 일과 가운데 하나가 돼 버렸다. 미국에 사는 친척을 통해 북한의 가족과 편지를 교환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고대하던 부친은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여보,통일될 때까지죽지말고 살아 주오”라고 되뇌면서 95년 86세로 눈을 감았다. 6·25전쟁은 그의 가족을 졸지에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아버지 장박사는어머니와 5남매를 평양에 둔 채 차남인 자신만을 데리고 잠시 남하했다가 생이별 했다.아버지는 영세민을 위한 무료진료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독신으로 살았다. 평북 용천 출신인 아버지는 경성의전(현 서울대의대)을 졸업하고 당시 최고의 명의로 일컬어졌던 백인제(白麟濟) 교수의 수제자로 외과의사의 길을 걸었다.40년부터 5년간 평양에서 기홀병원,김일성대학병원의 외과과장을 지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사설] 느닷없는 反美 시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9일 “정부가 급진세력의 무분별한 반미운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왔다.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노근리·매향리 등 미군관련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데도 정부가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이 총재의 느닷없는 ‘반미’시비에 먼저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노근리 문제는 6·25전쟁 당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에 대해 ‘진상을 밝히라’는 국민적 요구와 관련된 문제다.매향리 사격장 문제도 미공군의 사격훈련으로 이 지역 주민들이 입고 있는 엄청난 피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인도주의와 생존권에 기초한 이같은 국민적 노력을 어떻게 반미운동으로 왜곡해서 매도할 수 있는가.정부가 반미운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미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반미’는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한 사실을 이 총재도 알고 있을 것이다. SOFA 개정 문제도 그렇다.우리 주권을 침해할 정도로 턱없이 불평등한 기존협정의 내용을 “이제는 독일이나 일본 수준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게 국민의 요구다.이같은 국민의 열망에 따라 국회도 이 협정의 개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놓지 않았는가. 주한 미군이 우리 안보에 결정적인 요소라는 사실때문에 미군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것인가. 주한미군의 존재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자’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알 만한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지난 6월 평양회담에서 주한 미군의 존재와관련, 김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을 설복(說服)한 사실을 이 총재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총재는 “정부의 급진적인 통일정책이 계층적 이념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김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킴으로써 통일로 가는 노둣돌을 놓고 있을 뿐이다.통일은 먼 훗날의 일이다.김 대통령도 “통일과 관련,다음 정권의 몫을 남겨 놓겠다”고공언한 바 있다.남북관계의 개선은 민족의 이름으로 환영해야 할 일이지 결코 발목 잡을 일이 아니다.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부총재도 “민족화해에야당도 동참해야 한다”며 야당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는 마당이 아닌가. 이 총재가 느닷없이 대정부 공세를 펼치는 까닭은 이해가 간다.이산가족 상봉으로 상징되는 ‘눈물정국’에서 주도권 상실에 대한 위기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그러나 책임있는 지도자라면 정부와 국민,남과 북,한국과 미국간에갈등을 증폭시키는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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