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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지금 가을은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세간의 어려움 때문에 가을의 낭만보다는 싸늘한 인간적 아픔이 살을 파고 든다.올해의 이 길목에서 유난히도 많았던 자살사건 특히 가족단위 집단 자살사건은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심화되어 가는 빈부격차와 극단적인 이기주의,어느 한 곳에도 따뜻하게 발 붙일 수 없는 사회에서 인간이 선택해서는 안 되는 최후의 절망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야만성과 문명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란 원시인이자 야수 야만인이자 우상숭배자이고 동시에 이성과 사랑 정의를 누릴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정의한 적이 있지만 요즘 같아선 오직 야수성만이 지배하는 사회로 비친다.절제되지 않는 일차적인 욕망과 감정이 넘실거리는 사회.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괴로운 사회이지만 한편 먹고 살 만한 사람은 그들대로 욕망의 배출구를 찾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회이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영화 ‘바람난 가족’이나 TV 일일극‘앞집 여자’는 어지러운 이 땅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남편 말고 애인이 필요해.” “아내 말고 여자가 필요해.”라는 말은 얼크러진 우리 사회의 내밀하게 가려진 부분을 잘 들추어주고 있다.아니 어쩌면 남성중심적 가족이라는 억압질서의 허위의식을 강력하게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앞으로 전개되는 21세기는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전통적인 결혼제도나 가족제도까지도 소멸할 것이라는 관련 연구자들의 보고도 있다.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것보다는 비정상인 것이,원칙보다는 변칙이 지배하는 요즘의 사회문화 추세이다.무엇이 올바른 가치의 기준인지조차 헷갈리는 세상이다.이 속에서 참되고 올바른 진정성을 갖는 사랑보다는 비정상적이고 약삭빠른 사랑이 범람한다.혼란과 모순으로 가득찬 삶속에서도 밤하늘의 샛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지난해 5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때 전남 영광에서 올라갔던 75세의 정귀업 할머니.그녀는 23살 때 헤어진 북쪽의 남편을 52년만에 만난 것이다.당시 수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TV에서의 상봉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가시밭길도 그런 가시밭길이 없어라우.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길을 50년 넘게 혼자서 훠이훠이 걸어 왔어라우.눈물을 밥 삼아 살아왔지요.‘눈이 높아 못오나 길을 몰라 못오나’라는 노랫말이 내 삶의 노래가 됐지요.” 상봉하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구절구절 슬픔이 담겨있는 그 자체로서 고도로 집약된 하나의 시 구절이었다.52년간의 세월이 농축된 한편의 연가였다. 정귀업 할머니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시골에 남았다.남편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지만 6·25전쟁으로 행방불명된 것이다.남편 사이에 아이 하나가 있었지만 4살 때 병으로 숨졌다고 한다.그녀는 지금껏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혼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고 돌아온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남편이 살아있다는 그런 믿음의 그늘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그녀라고 해서 젊은 날의 욕망이 없었겠는가.사랑은 믿음 속에서 오래 참고 기다린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우리는 기존의 가치와 도덕,진리마저도 새롭게 해석되고 도전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요즘의 세태 속에서 정귀업 할머니와 같은 사랑의 진정성도 새롭게 도전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쓸쓸한 가을에 다시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정귀업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이다. 신 일 섭 호남대교수 동양사
  • [나의 건강보감] ‘한국승마 산 역사’ 이항진 박사

    우리 나라에 그보다 오랜 세월을 말과 벗하며 지낸 사람은 없다.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한국 승마의 역사’라고 부른다.그렇다고 그가 ‘명예’자를 앞에 단 마사회의 전직 직원은 아니다.말은 그에게 사실상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승마장 찾아 희수(喜壽)를 넘긴 의학박사 이항진(78·이항진내과의원 원장).일제때 서울대의대의 전신인 경성제대 의예과를 나온 장로급 현역 의사지만 지금도 새벽 여섯시면 어김없이 말등에 몸을 싣는 승마인이다.“하루라도 애마를 못만나면 그날은 하루가 길어요.나 뿐 아니라 그 녀석도 그날은 괜히 심통부리고 까탈을 떨어요.사람과 말이 그렇게 교감하는거죠.” 그가 처음 승마를 접한 건 해방 직전인 1943년 경기중학(지금의 경기고) 시절.특별활동 시간에 승마부를 택한 것이 계기가 됐다.“태평양전쟁때라 학생들도 검도,사격 등 군사훈련을 많이 받았어요.전 그게 싫어 승마를 택했는데,당시 전국을 망라해 승마부가 있었던 곳은 우리 학교와 휘문중,이북의 함남중이 전부였지요.”이렇게 시작된 말과의 인연은 해방 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조선은행(한국은행 전신)에서 일한 이재간씨나 명성황후의 혈족인 민병선씨 등이 승마 애호가였는데,저도 그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일본인들이 군마를 많이 들여놔 말도 그다지 귀하지 않았구요.”민씨는 일제때 올림픽선수로 발탁되기도 했으며,해방후 헬싱키올림픽에도 출전한 우리나라의 승마 개척자이다. ‘말타면 경마잡히고 싶다.’는 옛말처럼 말을 좋아한 그도 ‘내 말’을 갖고 싶었다.그가 처음 ‘내 말’을 가진 것은 48년.비월용(飛越用)으로 ‘송악’이라는 말을 구입해 당시 신설동 경마장에 맡겨뒀다가 그만 6·25전쟁통에 잃어버렸다. ●고교시절 승마 접해… 벌써 60년 군의관으로 전쟁을 마친 그는 종전후 인촌 김성수씨 배려로 지금의 고려대 이공대 자리에 어렵사리 마련한 한국승마구락부에서 다시 승마를 시작했다.“일제때 지금의 동대문운동장 인근에 경성승마구락부가 있었는데,일본 사람들 전용이었거든.그게 얼마나 부럽던지 몰라.그러던 차에 이 구락부가 생겨 우리나라 승마의전통을 이어갈 수가 있었지.그랬다가 74년 한국마사회가 뚝섬에 승마장을 만들었고,이어 과천에 경마장이 건립돼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른거지.나도 74년부터 뚝섬에서 타다가 86년부터는 과천,이후 99년부터 다시 뚝섬에서 말을 타고 있는데,여긴 실내마장이 없어 날궂으면 못타.” 첫 말 ‘송악’을 잃어버린 그는 한동안 사정이 어려워 말을 갖지 못하다 75년에야 마사회가 불하한 경마용 퇴물 ‘슈퍼스타’를 구입했으나 얼마 타지도 못하고 굽에 종양이 생기는 제암(蹄癌)으로 잃고 말았다.지금 가진 말은 영국산 사라브렛종인 ‘위태천’.3살짜리를 구입해 3년간 정을 들이고 있다.말 나이 여섯살은 사람 나이 스물다섯 정도의 한창때로 힘이 넘쳐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흐뭇하다. ●길들이지 않은 말 타다 중상입기도 회갑(回甲)의 세월 60년을 말과 함께 살면서 그가 터득한 깨우침은 말도 정성을 들이면 사람과 생각까지도 나눌 수 있다는 것.“말이 사람을 먼저 알아요.낯선 사람이 타면 복종하지 않고 날뛰어 떨어뜨리거나 짖궂은 장난을 치곤해요.”지금이야 ‘말도사’로 통하지만 말등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회수는 기억조차 할 수 없다.한번은 길들이지 않은 말을 타다가 떨어져 골반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장애물을 넘던 말이 넘어질 때 자칫 고삐를 당겼다가는 300㎏이 넘는 말에 깔려 목숨을 잃기도 한다.수년 전 미국 상무장관이 로데오경기를 하다 숨진 것도 비슷한 경우다.그러나 초보자라도 조교의 가르침만 제대로 따르면 이런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전국승마대회 장애물경기 우승 경력에 12년간 한국학생승마연맹 회장을 연임했는가 하면 40년 역사의 승마클럽 승우회 회장을 20년간이나 맡는 등 말과 관련된 그의 이력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다.말의 얼굴과 굽만 보고도 질(質)과 격(格)을 가려내는 안목을 지닌데다 하루라도 말을 타지 않으면 허벅지에 살이라도 오른 듯 비육지탄(肉之嘆)의 조바심이 일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는 말에 관해 겸손하다.“승마의 첫걸음은 기본에 충실한 것입니다.무작정 타고 호기를 부리기보다 굽을 씻고,털을 빗기면서 정부터들여야지요.그렇게 교감해야 제대로 된 승마가 가능합니다.” 그의 승마예찬도 귀담아 들을 대목.“승마는 남녀 구별이 없고,동물과 더불어 하는 유일한 올림픽 종목이며,경기중에 반드시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점이 그겁니다.한마디로 신사의 스포츠입니다.그런 만큼 승마인은 예절을 먼저 익혀야 하며,건강은 그 뒤에 얻는 것입니다.말등에서 자질구레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것은 물론 심폐기능,소화기능을 향상시킵니다.또 전신운동이면서 평형감각을 높이지요.” ●‘죽 반공기, 메밀국수, 물만두 5개' 소식 지켜 175㎝의 키에 73㎏의 이상적 체격도 승마로 얻은 건강의 증표다.매일 아침 마장을 찾는 규칙성 말고도 아침에 죽 반공기,점심은 메밀국수 한 공기,저녁은 물만두 5개로 해결하는 철저한 소식주의자다.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소식을 시작했지만,말과 함께 하면서 얻은 것은 결코 소량이 아니라면서 웃는 그의 건강이 참 부럽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사진 김명국기자 daunso@ ■이항진 박사의 승마 예찬 승마는 몸의 균형을 잡는 운동이다.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마장마술이 안되기 때문에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 기수의 기본이다.이런 점에 착안,독일에서는 소아마비 어린이들에게 승마를 가르쳐 평형감각을 길러 주기도 한다.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병원에서 이 치료법을 사용했으나 부대비용이 만만찮았던지 슬그머니 사라지고 없다.대신 일본에서는 승마가 몸매를 가꾸는데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들어 승마클럽에 주부를 비롯한 여성 회원이 크게 느는 추세다. 이 박사가 말하는 승마의 운동효과는 많다.“제가 어려서부터 소화불량이 잦았는데 승마를 시작한 뒤로 그게 나았어요.소화기도 튼튼해지고 심폐기능도 향상됩니다.말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 욕심이나 독단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보기와 달리 관절 등 전신운동 효과도 큰 편입니다.” 그러나 운동효과만 생각해 막 덤벼 들었다가는 큰코 다치기 쉽다.이 박사도 60년동안 말을 타면서 세번이나 앰뷸런스에 실려갔다.모두가 낙마로 빚어진 사고다.“낙마를 하는 경우는 대개 조교의 가르침을 소홀히 한 경우고,정상적인 과정을 밟으면 승마처럼 안전한 운동도 드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론 말이 결코 값싼 동물은 아니다.소나 돼지처럼 단순하게 살코기의 무게로 값을 따지지 않고 격(格)을 따지기 때문에 값이 천차만별이다.승마용은 보통 경마장에서 퇴출된 열살을 넘긴 말을 시용하는데,싸게는 1400만∼2400만원에서 3000만∼4000만원씩 하는 것도 있다.얼마전 외국에서는 말 한필이 3000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는데 이는 승마 혹은 경주용이 아니라 새끼를 얻기 위한 종마다. 뚝섬승마클럽 김문식 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가져야 승마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데,가까운 승마클럽엘 가면 정회원의 경우 월 60만원,비회원은 1회에 2만원 정도로 승마를 즐길 수 있다.”며 “승마가 생각처럼 소수계층이 향유하는 특별한 운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 “평양행 설레요”/실향민 부모둔 박명수감독·이종애 새달 7일 평양 통일농구대회 참가

    두 시즌 연속 여자프로농구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우리은행의 박명수 감독과 주장 이종애가 설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두둑한 상금과 유럽 여행 등 우승 보너스보다 이들을 더 설레게 하는 것은 다음달 7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통일농구대회.박 감독은 챔프전 우승감독이 통일농구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결정에 따라 평양에 가게 됐고,이종애는 현대 선수 5명에 각 구단의 간판스타 1명씩을 추가한 엔트리에 포함됐다. 평양행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두사람 모두 부모의 고향이 북한이기 때문.박 감독의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 ,어머니는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이다.이종애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정평에서 6·25전쟁 때 피란왔다. 박 감독의 아버지는 우리은행이 지난 11일 우승하자 그날밤 박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우승한 것보다 네가 평양에 가게 된 것이 더 기쁘다.”면서 “짬을 내 해주에 다녀올 수 없는지 알아보라.”며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한편 대회를 주관하는 현대 아산측은 18일 “다음달 2∼4일로 예정됐던 통일농구단의 방북일정이 다음달 6∼9일로 연기됐다.”고 밝혔다.박 감독은 “혹시 취소되는 것은 아닌지 최근 며칠간 조마조마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15년 동안 우리은행에서 코치생활을 한 끝에 감독에 올라 2연속 챔프를 일군 박 감독과 뒤늦게 한국의 간판센터로 자리잡은 주부선수 이종애의 입가에는 요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창구기자 window2@
  • [길섶에서] 3500원의 행복

    신랄하다고 할 만큼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산뜻하고 재치있는 문체로 그려내는 작가 박완서.그의 데뷔작 ‘나목’은 40대 주부의 당당한 공모 당선작이었다는 점과 함께 작가가 6·25전쟁 중 미군부대 초상화부에서 만났던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했다 해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꼭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해 두었던 책을 어느 대형서점 특별 판매장에서 발견하게 되었다.일금 3500원.점심을 간단히 때운 후 부근 소공원 소나무 그늘 아래 책을 펴들고 앉았을 때의 여유로움과 뿌듯함이란. 그러나 꿀같던 행복은 ‘염색한 군복을 비좁은 듯이 입고’‘어리석지 않은 선량함으로 의젓해 보였’던 화가의 첫인상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끝나 버렸다.벤치 옆자리를 직장인 두 명이 비집고 들어와 앉더니 맞춘듯이 담배를 피워 물었기 때문이다.그러고 보니 공원 의자들 위에선 하나같이 봄날 들녘 아지랑이인듯 모락모락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3500원의 투자로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것일까.일어서는 뒤통수가 따가움을 느끼면서도 못내 아쉬운 심기를 감출수가 없었다. 신연숙 논설위원
  • “북녘에 남겨진 가족 못데려온 죄 어쩔꼬”/아흔아홉에 맞는 한가위 김종성 육하학원 이사장

    “내 나이 아흔 아홉,북녘 여섯 식구에게 지은 죄를 어쩔꼬.하늘나라 아내여,둘째가 아비에 앞서 당신 따라 세상을 등진 사실을 알기나 하오?” 김종성(金琮成) 서울 육하학원 이사장은 반세기 동안 응어리진 가족 생각에 마디마디 말이 끊기곤 했다.맨손으로 북에서 내려와 상일여중·고,상일고(현 삼일공고)를 아우르는 명문 사학재단을 일궈내 나름대로 보람된 인생을 살았다고 자위해 보지만 고향 생각은 하루하루 더해만 간다고 되뇌었다.백수(白壽)에 맞는 올 한가위는 그래서 더욱 허전하고 쓸쓸하다. ●아호 ‘육하’(六何)에 담긴 사연 평안북도 박천군 양가면 경의선 영미역 근처에서 삼일백화점을 경영하던 김 이사장은 1949년 북한 탈출을 결심했다.김일성 공산당 정권이 갓 들어서 체제정비에 박차를 가한 시점이었다.제약업계로 사업을 확대하려고 했으나 공장설립 허가는커녕 재산 몰수 위기에 몰렸다.생명의 위협마저 느꼈다. 남북한에 따로 정권이 수립되면서 긴장이 더해져 경계가 삼엄해진 ‘38선’을 뚫을 엄두도 못내고 한밤을 틈타 바닷길로내려왔다.맏아들과 둘째는 1년 전 38선을 통해 안내인에게 돈 몇푼 건네주고 내려보냈다. 온 식구를 모두 월남시키기에는 위험천만이어서 “한 두해만 참고 기다리면 꼭 데리러 오겠다.”며 동갑내기 아내(당시 44세)와 아들 유식(당시 10세),다식(5세),딸 영애(13세),정애(11세),춘자(7세) 5남매는 남겨둬야 했다.“어선을 타고서리 강원도 주문진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건 그해 7월이외다.배꾼 두 사람이 운항했는데 배가 역풍에 휘말려 두어 시간 걸리는 거리를 하룻밤을 꼬박 지새운 끝에 날이 훤히 밝을 무렵 겨우 도착했수다.” 그러나 1∼2년 안으로 가족을 데리러 가겠다던 약속은 전쟁통에 어언 반세기가 흐르기까지 지키지 못한 채 내내 그를 괴롭혔다.이를 안타까이 여긴 주변 사람들이 붙인 아호가 ‘여섯(가족)을 어찌할까.’란 뜻의 육하다. ●명문 교육재단 일구기까지 “지금도 고향에 있는 365m 높이의 칠악산과 물 좋기 이를 데 없는 장수천에서는 눈에 익은 나무와 새,고기들이 자라나고 있갔지요?” 잠시 고향 생각에 잠겨 있던 김 이사장은 남쪽에서의 생활로 얘기가 넘어가자 뚜렷이 기억을 더듬어갔다. 남쪽으로 온 그는 누님이 살던 충북 충주로 달려갔다.맏이 영식(榮植·76),둘째 연식(煉植·작고)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그리고 서울에 있던 친구로부터 1000만원을 빌려 6·25전쟁 발발 한달 전인 50년 5월 부산으로 내려갔다.고무신 사업에 사활을 걸고 공장이 활발한 곳을 찾아간 것.사업체 운영 경험이 많은 데다 평안도 사람 특유의 승부근성은 곧 집을 수십채 장만할 정도의 성공작을 낳았다.그러나 공장을 운영하던 동업자의 부도로 2년여만에 ‘무일푼’으로 돌아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금방이라도 고향에 버려두다시피 한 식구들을 찾아갈 수 있다는 마음에 집 한채 마련할 생각은 아예 않고 돈이 많았는데도 셋방살이를 했는데….결국 그 게 잘못이었시다.” 이런 위기에서도 아이디어는 반짝 빛났다.서울로 올라와 3만원을 빌려 시작한 모험이 또 ‘대박’을 터뜨렸다.전후 새로 만들어야 했던 공무원 배지 공급 계약권을 따낸 덕분에 500만원을 손에 거머쥐었다.하지만 이 돈은 55년 장남을 장가보내고 셋방 얻는 데 모두 들어가는 바람에 다시 빈털터리가 돼 버렸다.재기(再起)의 행복은 전쟁 때 맺은 고무신 장사와의 인연이 가져다 주었다.전국을 누비며 상품생산에 필수인 헌 고무신 모으는 일이 그것이었다.나라의 경제사정이 극도로 어려운 때여서 고무신 수요가 엄청나 사업은 대성공이었고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60년 마포구 신수동에 주유소를 차렸다. “72세이던 77년, 생애에 곡절은 많았지만 사회를 위해 무언가 남길 만한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외다.” 그래서 시작한 새 ‘사업’이 대한민국 제일 가는 교육재단을 설립하는 일이었다.79년 상일여중·고,84년 상일고가 차례로 문을 열어 오늘날의 명문으로 일어섰다. ●내 소원은 누가 뭐래도 북녘 찾아가는 것 언필신행필과(言必信行必果).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의 약속을 어긴 일에 미안한 나머지 ‘약속한 일은 지키고 손을 댄 일은 끝까지 해낸다.’란 뜻으로, 육하의 생활원칙이자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4월 1억원을 주민들에게 써 달라며 내놓았다.이돈은 지난 5일 첫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1년4개월여 동안의 이자 810여만원을 저소득 주민 등 20여명에게 나눠줬다.이 기금 운영을 위해 발족한 육하지원재단은 “구호만 내세울 게 아니라 그야말로 바로 이웃부터 도와야 한다.”는 그의 뜻에 따라 상일동 주민들만을 위해 쓰도록 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아내를 빼고는 아들,딸 넷 모두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들었는데….” 고향생각에 사무친 김 이사장은 몇몇 북한이탈 주민으로부터 이런 소식을 들었다며 2000년 이후 6차례에 걸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방북 신청이 무산된 데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글 송한수기자 oneko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 김우중씨가족, 北형제 상봉 거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측 가족들이 오는 20∼25일 제8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해 북측 가족이 낸 만남 신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7일 “김 전 회장 가족들은 북측의 형 윤중(78)씨의 만남 요청에 대해 김 전 회장 등 가족들이 해외에 체류 중이며 너무 바쁘다는 이유 등을 들어,나머지 가족도 상봉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면서 지난 4일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생사주소확인 회보서에 이같은 상봉 거부 이유를 적어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2001년 5월 외화도피 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로 수년째 외국도피 중이며,교육부 장관을 지낸 형 덕중씨도 해외에 머물고 있다. 앞서 김윤중씨는 지난달 중순 북측 적십자회를 통해 자신의 본적지를 제주도 제주군 애월읍 하귀리로 적시하면서 남측의 아버지 김용하(103),어머니 김평아(102),형 대중(82),동생 관중(72),덕중(70),우중(68),성중(65),영숙(여·64)씨와의 상봉을 신청했다.윤중씨는 가족과 헤어질 당시 서울여자의과대학 병원 의사였으며,아버지 김용하씨는 제주도 지사를 지낸 이듬해 터진 6·25전쟁 와중에 납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남북한 적십자사는 7일 오전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갖고 금강산에서 만날 이산가족 각 100명씩의 명단을 교환했다. 이도운기자 dawn@
  • [씨줄날줄] 미군 PX

    “PX에서 온갖 방법으로 유출된 미제물품과 염색한 군복…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지금의 백화점 못지않은 고급상가 구실을 하고 있었다.” 6·25전쟁 기간 미군PX에서 일했던 소설가 박완서씨의 회고다.박씨는 당시 같은 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을 소재로 데뷔작 ‘나목’을 썼다.훗날 최고의 근대화가와 소설가로 우뚝 선 두사람의 이력은 궁핍한 시대 미군PX가 우리 사회의 한 생명줄이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군부대내 매점’을 뜻하는 PX는 ‘POST EXCHANGE'의 약자.1945년 미군과 함께 이 땅에 들어온 PX는 우리의 생활과 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약탈당한 식민경제에 전쟁까지 겹쳐 이렇다 할 국산품이 없던 때 여러 경로로 쏟아져 나온 PX물품은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PX물품이 판을 친 1950년대 전국 120여 PX의 취급품 가운데 60% 정도가 불법 유출됐다고 한다. PX물품의 인기는 1978년 수입자유화조치 이후에도 식지 않았다.오히려 맥주나 양주에서 골프채나 대형TV 등에 이르기까지 불법 반출품목이 다양화,고급화됐다.일부 부유층들은 ‘진짜 미제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과시하려 암시장에서 PX콜라를 산다는 망신스러운 기사가 외신에 실리기도 했다.PX물건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입맛을 미국상품에 길들이는 효과를 거뒀다.가령 PX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커피는 일제시대 국내에서 유행했던 원두커피를 제치고 커피시장을 장악했다. 최근 땅굴을 파고 미군PX에 들어가 맥주와 포도주 6만 2000박스(20억원상당)를 빼돌린 밀수조직이 적발됐다고 한다.기상천외한 수법에다,빼돌린 양도 2.5t 트럭 250대분이나 된다니 혀를 찰 노릇이다.한해 1400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정식 수입하고,1500억달러 어치를 수출하는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PX물품 밀반출이라는 후진적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이래서야 어찌 미국과의 호혜평등을 주장하며 나라의 체통을 지킬 수 있겠는가. 김인철 논설위원
  • 말말말˙˙˙

    우리 조상들은 6·25전쟁이 한창일 때도 판잣집에서 공부를 계속했으며 세계 어느나라도 학생을 학교에 안 보내는 나라는 없다.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최근 등교거부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전북 부안군을 찾아 학생들의 수업이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 [길섶에서] 사곶 해변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에는 ‘사곶 천연비행장’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너비 300m,길이 3㎞의 곧게 뻗은 백사장이 세립질 규조토로 이뤄져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이 곳은 실제로 6·25전쟁 때 미군 비행기가 이착륙했다.이런 지형은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안과 함께 세계에서 단 2곳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이 곳에 들러 안타까운 현장을 보게 되었다.편평하던 백사장에 층이 생기고 지반이 점점 약해져 어떤 부분은 비행기는 고사하고 자동차도 못 지나다닐 정도였던 것이다.원인은 간척사업의 일환으로 쌓은 길이 820m의 제방이 물길을 막아 바다쪽에서 섬쪽 포구로 조류를 따라 왕복하던 개흙이 해변으로 밀려들어 백사장을 훼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국은 뒤늦게 이 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지만 이미 자연을 거슬러 버린 마당에 무슨 뾰족한 대안이 있을 수 있겠는가.더욱이 당국은 주변에 새 항만 건설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다.사곶 해변은 개발논리의 반면교사 교육장이 되고 말 모양이다. 신연숙 논설위원
  • 기고 / ‘광복의 달’ 국민정신 바로 세워야

    8월이 오면,우리 대한민국의 시련과 극복,그리고 광복의 감격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된다.올해는 광복 쉰여덟 돌이다.‘평화는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58년 전 광복의 그날! 일제 강점이라는 암흑 속에서 고난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벅찬 기쁨을 함께 나눈 날이다. 돌이켜 보면 20세기 초 우리는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빼앗겨 더할 수 없는 시련을 감수해야만 했다.그러나 국권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났고,그 양상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3·1독립운동,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이 이어졌다.또한 중국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국가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이러한 선열들의 50여년에 걸친 길고도 험난한 항일구국운동은 마침내 광복의 환희를 안겨 주었다. 지금도 고난의 시기에 천신만고의 파란과 형극의 길을 걸으며,오로지 대한의 광복을 위해 위국헌신한 선열들의 애국혼이 8월의 산하에 서리는 듯하다.횃불을 높이 들고 겨레의 등불이 되었던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세월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우리들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정신이 없는 민족은 살아 남을 수 없으며,국가의 흥망성쇠는 나라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정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계 역사를 보면 한때 위세를 크게 떨쳤던 나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사랑의 호국정신이 살아 있었기에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고서도 그때마다 슬기롭게 대처하여 반만년의 유구한 맥을 오늘날까지 이어 올 수 있었다. 이러한 국민적 저력은 6·25전쟁이 남긴 폐허,IMF경제위기 등 광복 후 반세기가 넘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왔다. 우리는 이러한 선열들의 위국헌신 정신을 나라사랑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적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보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보훈이야말로 우리 근현대사의 시대정신이었던 독립정신과 호국정신,그리고 민주정의 정신을 나라사랑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국가공동체 유지·발전의 기본 분야이다. 참여정부에서는 지난 달 호국보훈정책 중장기 발전 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국가보훈정책이 원칙과 철학에 입각한 국가기본정책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국가보훈기본법의 제정과 국가보훈처의 위상 강화를 통해 보훈정책의 추진 기반을 공고히 할 계획이다.그리하여 보훈가족의 명예로운 삶을 보장하고 보훈을 통해 역동적인 국민적 에너지를 창출해 나가고자 한다. 오늘의 보람된 삶은 내일의 역사를 아름답게 창조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21세기 선진 대한민국을 이룩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책무이다. 우리 선열들이 피땀 흘려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루어 냈듯이,희망찬 번영의 터전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더 나아가 통일이라는 완전 광복의 의지를 다져보는 광복절이 되었으면 한다. 안 주 섭 국가보훈처장
  • 방일영 前 조선일보 회장 별세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의 부친인 우초(愚礎) 방일영(方一榮) 전 조선일보 회장이 8일 오전 2시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 평안북도 박천 출신인 고인은 조선일보가 폐간된 지 2년 뒤인 1943년 4월 당시 사장이던 할아버지 계초(啓礎) 방응모(方應謨)의 비서로 조선일보에 입사한 뒤 조선일보사를 56년간 이끌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 경영인의 한 사람이다.고인은 한국전쟁 때 납북된 방응모 회장의 뒤를 이어 1953년 사장에 취임,지난 93년 회장직을 물러날 때까지 조선일보를 한국 굴지의 신문으로 자리매김시켰다.회장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다가 99년 지병으로 은퇴했다. 6·25전쟁 중 30살의 젊은 나이로 사장 자리에 앉은 고인은 사옥이 불타는 등 열악한 상황에서 스스로 윤전기를 손질하고 사채를 얻으러 다니는 등 회사 재건에 박차를 가했으며 이후 탁월한 경영능력과 인력관리를 통해 조선일보의 성장을 일궜다. 고인은 1963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이사장,1969년 아시아신문재단(PFA) 부이사장,1976년 IPI한국위원장 등을 역임했다.또 방일영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도 힘써 82년과 99년 각각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한편으로는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해 조선일보를 키웠으며,코리아나호텔 설립에 특혜 의혹을 받았다는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유족은 장남인 방 사장과 차남 용훈(勇勳)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 5남 1녀.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 7시,장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가릉동 선산.(02)760-2091∼2(서울대병원),(02)724-5110(조선일보사). 이종수기자 vielee@
  • 停戰 50년 동맹 50년 / (하)정전협정과 방위조약

    북한 핵위기 속에 27일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을 맞는다.극대화된 위기는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 것일까.다시 움트기 시작한 북핵 문제 해결 분위기를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정착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통념을 뒤엎는 논리와 실증 자료로 ‘한국전쟁’에 대한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소장학자 박명림 교수는 사실상 사문화된 정전협정을 새로운 평화협정·체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작전지휘권 회복 등 한·미 방위조약의 손질도 필요하다고 밝혔다.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는 ‘북한의 고립없는 봉쇄정책’을 제안했다.정전협상 당시 유엔군 통역장교였던 원일한 박사도 평화체제의 조속한 정착을 기원했다. ■박명림교수가 제시한 방향 ●평화협정 초안 마련할 때 ‘한국전쟁’전문가로서 50년 전 체결된 정전협정의 의미는. -한반도가 분단관리체제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평화와 전쟁의 중간상태이다.승자 없이 맺어진 협정은 이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균형을 잡아준 냉전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승리를 유보한 가운데,정전의 조건을 교환했지만 향후 평화를 위한 조건을 담지 않았다. 정전협정은 엄청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정전체제가 규정해놓은 비무장지대(DMZ)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대가,가장 오랫동안 대치해온 사실상의 MMZ(Most Militarized Zone)이다.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전쟁의 수백배에 달하는 폭력의 교환이 일어날 수 있다. 평화협정에는 무엇이 담겨야 하나. -정전협정 50년을 대체할,향후 미래 100년,200년의 민족 평화를 담보할 구상을 협정에 담아야 한다. 전쟁의 완전한 종식선언을 담아야 한다.병력과 무기증강을 포함한 일체의 군비확장을 금지,남북 대치의 논리에서 민족 전체의 공동안보와 협력안보로 대체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다음은 전후 청산이다.미귀환 국군포로,이산가족 등 인적 청산 문제를 짚어야 한다.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거론되겠지만,주한미군 철수가 한반도 평화보장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평화공존을 공식화하면서 막연한 상태로 놓아둔 통일 담론도 구체화해 한반도 미래의 그림을 민족앞에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과제와 전략은. -한반도 평화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제안을 통해 시민사회로부터 의회로,의회로부터 정부로,그리고 북한과 유엔 및 미국·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 연결되는 다층 다면의 해법을 시도해야 한다.평화 연결고리의 형성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평화협정 당사자로 한국을 배제하고 있는데. -북한 김일성 주석도 74년 3월까진 한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하자고 했다.한국은 분명한 당사자다.꾸준히 이야기해야 한다.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실패한 이유는 남한이 배제된 채 핵위기를 봉합하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했으면 달라졌을 것이다.동시에 한반도 분단과 평화는 국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보장이 없어선 안된다.남북한 당사자간 평화협정 체결에 국제사회가 이를 보장하는 이중적 어프로치가 필요하다.위기가 클수록 이후 구축해낼 평화체제는 안정적이다. ●한·미 동맹관계와 방위조약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전협정과,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한 한·미동맹은 한국전쟁의 쌍생아이다.남북 적대 상태의 완화와 한·미동맹 구조의 완화는 맞물려 있다.이것의 전략적 지점을 잡아야 한다. 먼저,작전지휘권 환수를 추진해야 한다.북한이 우리를 당사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논리는 작전지휘권 없는 군대와 평화협정을 체결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주한미군 주둔과 다른 문제다.미국과 우리의 국익을 적절히 조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지휘권 환수는 당사자 역할뿐 아니라 대미 외교적 자주권,주권 국가의 위상과도 관련된다.안보와 평화에 독자적 비전과 전망,구상을 갖지 못하면 미래는 어둡다.그러나 현 단계에서 북한과의 군사대결이 첨예하기 때문에 안보 불안에서 초래되는 경제악화 등이 문제가 된다.따라서 작전지휘권 문제는 남북한 갈등의 완화 정도와 맞물려 들어가야 한다.자주성을 확보하면서 남북한이 평화체제를 위한 합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안보 자주 없이 평화체제의 구축이 없고,평화체제 구축 없이 안보자주는 없다. 북한 정권의 신뢰성을 문제삼는 시각도강하다. -한반도 분단 50년 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지난 김대중 정권 때 남한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강성대국론이 만난 사실이다.햇볕정책 추진을 밝힌 같은 해 북한은 강성대국 군사제일주의로 나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왔다.이제는 대북 대화에서 북한의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핵 등 대량살상무기,인권문제 등을 지적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핵심을 빼고 이야기하면 남북한 갈등 해소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다.반전 평화운동과 반핵 및 북한 개혁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양분화돼 있는 시민사회의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인권과 반핵은 원래 진보파의 논리다.움직이는 중용을 잡아야 한다.친미·반미 논쟁보다 우리 공동체의 이익,발전에 어떤 것이 이익이냐로 봐야 한다.이념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중국 외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념과 실용주의를 분리하는 것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박명림교수는 누구 박명림 교수는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와 일본의 와다 하루키 등 외국학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한국전쟁 연구를 우리 식의 문제의식과탈이념적으로 분석,평화대안을 제시한 학자다. 북한 인민군 내부문서와 미 육군 극비문서 등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 분석한 ‘한국 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한국 1950-전쟁과 평화’(2002)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그는 한국전쟁을 남북 갈등과 세계 냉전구조가 겹쳐진 ‘내전적 국제전’으로 규정,계급갈등으로 보는 커밍스의 수정주의론을 뒤집었다는 국내외 평가를 얻었다. ‘한국전쟁 발발과 기원’으로 월봉저작상을 받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으로 영문판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일어·중국어·독어로도 번역될 예정이다. ▲40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박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및 북한실장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협동연구학자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2002년∼) ■커밍스교수 제안 한국전쟁의 수정주의적 연구로 널리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5일 “지난 71∼72년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개선에서 채택한 정책인 ‘고립 없는 봉쇄정책’과 같은 방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제안했다. 커밍스 교수는 이날 학술단체협의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로’ 주제의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강연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대화와 출구 없는 무조건적인 대북 봉쇄정책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전쟁을 종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위험하고 실패한 북한 고립을 고착시켜 왔다.”면서 “한반도의 전철을 밟는다면 이라크 역시 세동강 나고 5년 뒤 내전이 발발해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커밍스 교수는 지난 2001년 출범 당시의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기술을 수입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나,우라늄 농축시설건설 증거를 확보한 지난해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커밍스 교수는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10월 켈리 특사의 방북 때 북한과 대결하기 위해 비로소 이 사실을 거론,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심각한 위기로 만들어 (북·미)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 버렸다.”고 말했다. ■정전협정 지켜본 원일한박사 “6·25전쟁이 끝난 뒤에도 정전상태가 50년이나 계속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1951년 7월10일 개성에서 열린 첫 정전협상부터 53년 7월 협정서명 직전까지 유엔군 협상단의 수석통역장교로 활동한 원일한(86·미국명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현 연세대 이사) 박사는 “당시에는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3개월 뒤면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아무런 결실도 맺을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정전체제의 극복과 관련,원 박사는 “원칙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대립하기보다는 자꾸 북한에 외부 사람들을 들여보내야 북한 사회가 변한다는 것이다. 원 박사는 그러나 북한이 한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갖고 있는 한 분단의 극복은 쉽지 않을 것 이라고 우려했다.원 박사는 “내 기억으로 북한이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입으로 말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딱 한번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특히 젊은이들의 반미 감정에 대해 원 박사는 “주체성 또는 강한 독립정신의 발현”이라고 해석했다.원 박사는 그러나 “독립감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냉정하고 논리적인 판단력을 결여하면 감성적으로 흐르기 쉽다.”고 경계했다.원 박사는 또 “나의 처가인 호주는 현재 미국과 가장 절친한 나라이지만,호주 사람들조차 미·호주 관계는 불공평하다고 말한다.”면서 “현재 미국이 워낙 큰 나라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미국과의 관계는 불평등하다고 느끼게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 “전쟁범죄 재발 않도록 공정 재판”르완다 ICTR 비상임재판관 박선기 변호사

    “집단학살·강간 등 전쟁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아프리카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비상임재판관으로 선출된 박선기(사진·49) 변호사는 17일 “6·25전쟁을 통해 전쟁의 잔혹성을 경험한 민족으로서 ‘군사적 필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범법행위를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ICTR는 94년 르완다 내전에서 발생한 대량학살 및 국제인도법 위반자를 처벌하기 위해 유엔이 설립한 국제재판소. 한국인이 국제형사재판 분야에 진출한 것은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권오곤 옛 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에 이어 세번째다. 박 변호사는 임기 4년의 비상임재판관 18명중 한명으로 지난달 선출됐다.아프리카 탄자니아 수도 아루샤에 위치한 재판소에서 내년부터 2년 정도 활동하게 된다. 박 변호사는 이같은 국제활동 외에 국내에서 미군 병사의 변론을 맡고 있다. 그는 “미군도 부모·형제를 떠나 이국땅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라면서 “대한민국 국민과 동일하게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어 “최근 촛불시위 등으로 미군이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태”라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한·미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법대를 졸업한 박 변호사는 78년 군법무관으로 임용된 뒤 육군 법무감과 병무비리 합동수사본부장 등을 거쳤다. 8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변호사시험에 합격,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맥아더 대선후보 막으려 아이젠하워에 출마부탁”/ 트루먼 前대통령 일기공개

    |워싱턴 연합|6·25전쟁중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해임했던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 재직시절에 맥아더가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부통령후보가 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을 대선에 출마시키는 것을 검토했던 사실이 10일 밝혀졌다. 미 국립문서보관소는 이날 이 내용이 담겨져 있는 트루먼 전 대통령의 일기를 공개했다. 일기에 따르면 트루먼은 1947년 7월25일 아이젠하워 당시 육군 참모총장과 “맥아더와 그의 우월성 콤플렉스에 대한 토론”을 나누던 중 그같은 제의를 했다. 트루먼은 일기에 “맥아더가 공화당 전당대회가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기 직전 로마의 개선식을 연출하며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다.”며 “나는 만약 그(맥아더)가 그렇게 한다면 아이젠하워는 민주당 대통령후보지명에 나서는 것을 발표해야 하며 나는 기꺼이 부통령이 되겠다.”고 썼다. 그는 또 “(이 경우)나는 이 커다란 흰 감옥 즉 백악관에서 나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英, 한국전 정전 50주년 기념행사

    |런던 연합|영국이 오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을 앞두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한 왕실 인사들과 1000여명의 참전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9일 성대한 기념행사를 가졌다.영국 육·해·공군과 한국전쟁 참전용사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이날 행사는 참전용사 열병식 및 시가행진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기념예배 등 2부로 나눠 진행됐다.정전협정이 조인된 오전 10시를 기해 전국 각지에서 온 1000여명의 참전용사들은 런던 시내 왕실 근위대 연병장에서 열병식을 시작했으며 500여명의 친지,가족이 뒤따르는 가운데 500여m 떨어진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행진을 벌였다. 열병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이 참석해 ‘노병’들을 위로했으며 행사장 상공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골동품 항공기들인 해군의 ‘파이어플라이’와 육군의 ‘오스터’가 굉음을 내며 기념비행했다. 영국은 한국전쟁에 육·해·공군을 합해 8만 1084명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이 가운데 1135명이 숨지고 1060명이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 韓·캐나다 보훈정책 의견교환

    안주섭(安周燮) 국가보훈처장은 9일 드니 코모 주한 캐나다 대사를 접견,양국 수교 40주년과 6·25전쟁 휴전 5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훈정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 넝마주이로라도 살아야만 했다

    만주 아리랑 류연산 지음 /돌베개펴냄 고대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은 광활한 만주대륙을 “눈마저 떡가루였다는 전설이 생겨날 만치 ‘세계의 낙토’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주에서부터 독립운동과 광복,중국해방전쟁과 6·25전쟁,문화대혁명,그리고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 만주를 무대로 펼쳐진 우리민족의 역사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지난 92년 한·중수교 이후 역사적 실체로서의 만주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고 남한 작가들의 답사기가 이어졌다.하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외부자의 시선으로 흘깃 보고 그린 인상기이거나,고구려·발해가 정복했던 잃어버린 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업에 머물렀다. ‘만주 아리랑’(류연산 지음,돌베개 펴냄)은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포3세 작가가 일만리 만주 땅을 샅샅이 훑어 잊혀진 땅,만주를 충실히 기록한 책이다.대표적인 이주로였던 회령~게사처(삼합산)~지신~용정에 이르는 험로를 따라 최초 이주민의 발자취를 따라간 저자는,강인한 개척정신으로 만주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삶의 터전을 가꾼 개척민들의 역사를 복원해내고 있다. 만주의 전설적인 벼농사 대부로 통하는 황룡세,김약연(명동학교 설립자) 등이 중국의 한족 대지주의 땅을 사서 한반도 형국의 마을로 만든 명동촌이며,굶주림과 학정을 피해 만주로 온 이주민들이 한인(漢人) 지주의 소작인으로 노예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도 끝내 천년 묵은 옥토를 개간하여 용정에 도시를 건설한 예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망국의 설움을 안고 만주로 왔던 이주민들은 1945년 광복이 되자 귀향의 물결을 타고 다시 한반도로 향했다.그러나 땀흘려 일한 한해 농사의 수확을 눈앞에 두고 차마 고향으로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이들이 바로 지금의 200만 중국 조선족의 그루터기가 됐으며,이후 한국전쟁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 파란 많은 중국 현대사의 거친 파도에 휩쓸린다.문화대혁명 때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우파로 몰려 15년형을 선고받은 조선족 지식인 오재근의 증언은,조선족이 중국 현대사를 헤치면서 겪은 고난의 역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또 가곡 ‘선구자’(윤해영 작사,조두남 작곡)의 창작경위와 연대가 잘못 알려졌음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흔히 ‘선구자’는 만주 독립운동가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1932년작 노래로 알려져 있으나,저자는 조두남 윤해영과 만주시절 함께 음악활동을 한 김종화의 증언을 통해 ‘선구자’는 만주에서 항일운동이 침체기에 접어든 1944년에 창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 넝마주이로 생계를 연명하고 있는 김규식 장군의 딸과 외손들,그리고 일생동안 김좌진 장군의 딸임을 숨겨온 김산조 여사의 가난에 찌든 삶은 반쪽 역사에 가려진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의 고난에 찬 인생을 그대로 보여준다.9800원. 김성호기자 kimus@
  • “나환자는 유령같은 존재”/ 신작 ‘유령의 자서전’ 펴낸 늦깎이 작가 유영국

    “75년 소록도 하늘과 바다의 쪽빛이 준 시린 기억을 잊을 수 없었죠.그곳에 배어있는 한센병환자(나환자)의 눈물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삼종형이 나환자인 사연도 맞물려 91년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늦깎이 소설가’란 말이 자신을 위한 것인냥 59세가 된 지난 2000년,국제신문사 제정 1억원 고료 제1회 국제문학상을 거머쥐면서 화려하게 등단한 유영국.그가 새로 낸 장편 ‘유령의 자서전’(실천문학사)은 3권짜리 첫 장편 ‘만월까지’와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갑오경장에서 6·25전쟁 직후까지 다양한 민중들의 한 많은 삶을 판소리의 사설가락으로 걸죽하게 그렸던 그가,이번엔 한센병환자를 소재로 인간의 원초적 비극성에 눈을 돌렸다. “제목속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었다.”는 그는 “한센병환자는 호적에 사망·행방불명자로 처리된 채 현실에 살고 있는 잊혀진 존재 즉 ‘유령’이며,주인공 김노인의 삶이나 정치가로 출세하기 위해 아버지 존재를 부인하는 아들 정산도 모두 유령이고,나아가 겉치레만 신경쓰는 현대인 모두가 유령일수도 있다.”고 말한다. 작품은 김노인이 회고하는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액자소설(소설 속의 소설)과,작가인 ‘나’가 그의 자서전을 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엇갈리게 배치해 속도감있게 읽힌다.자신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싶은 심정과,아들 등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그대로 묻어두고 싶은 상반된 심정에 시달리는 김노인의 자화상은 작가가 취재 도중 건진 실화에 바탕한 것이다.“95년 초고를 탈고했는데 자료가 빈약하고 감상적 유희에 머문 것 같아 4번이나 개작했다.”며 창작에 쏟은 애정을 들려준다. 소록도를 발이 닳도록 드나들며 발로 뛰어 쓴 작품이어서일까.한센병을 다룬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비교해달라고 하자 “주제가 다르다.”면서 “나환자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밀도에서는 추종을 불허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그 이면엔 등단은 늦었지만 30년의 교직생활에 라디오드라마 작가,비교문학연구 등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에서 우려낸 글솜씨에 대한 자부심도 어려 있다. “내세울 만한 학연·지연이 없어 문단과 담쌓고 지낸다.”는 그는 자신의 오랜(?) 습작기를 도연명의 ‘無弦琴’,즉 현이 없이,즐기듯 비파를 타는 것에 비유했다.주위에서 ‘문단의 들개’라고 불리는 그답게,젊은 작가들의 작품경향에 막힘없는 직언을 쏟아냈다.“언어를 너무 무시합니다.또 자아도취의 흔적인 독백투나 격한 표현을 위한 도치법을 남발해 관념이 앞서 안타깝습니다.” 글 이종수기자 사진 안주영기자
  • 평생모은 연금 6000만원 장학금으로 / 간호장교 출신 김명희할머니 “참전용사 후손위해 써달라”

    간호장교 출신의 70대 독신 할머니가 평생 모은 수천만원의 군인연금을 6·25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장학금으로 쾌척했다. 미국 뉴욕에 살고있는 김명희(79)씨는 4일 재향군인회를 찾아 6·25 참전용사 직계 후손들의 장학금으로 사용해 달라며 6000만원을 전달했다. 이 돈은 21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1969년 대령으로 예편한 김씨가 군인연금을 한푼도 쓰지 않고 적립한 돈으로 당시 군인연금은 한 달에 약 3만 9000원(현재는 월 약 160만원)이었다.그는 여군 출신 중 최초의 군인연금 수혜자다. 북한 신의주 출신인 김씨는 해방 전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 47년 귀국해 48년 간호장교 2기생으로 입대,50∼53년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69년 10월 제11대 간호병과장을 끝으로 군문을 떠났다. 김씨는 “지난 72년 미국으로 이민간 이후 ‘조국이 주는 돈을 함부로 쓸수 없다.’는 생각에 꼬박꼬박 모아왔다.”면서 “6·25 참전용사 후손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서초구는 ‘장군의 마을’

    서울 서초구가 6·25전쟁 발발 53주년을 맞아 지난 24일 마련한 ‘시국간담회’에 관내 거주 예비역 장성 60명이 참석,이곳이 ‘장군 동네’임을 실감케 했다. 조남호 서초구청장은 이날 행사를 위해 서초·방배·반포동 등 관내 거주 예비역 장성 151명에게 일일이 초청장을 보냈다.간담회에는 박희도·나중배·한주석·조남풍·이광학씨 등 예비역 대장 5명을 비롯해 중장 6명,소장 26명,준장 23명 등 6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송한수기자 one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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