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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판으로 일어난 한국전쟁

    1964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6·25전쟁을 재조명한 ‘콜디스트 윈터’(정윤미·이은진 옮김, 살림 펴냄)의 한국어판이 나왔다. 핼버스탬은 뉴욕타임스 베트남 특파원이던 1963년부터 방대한 자료 조사, 100차례가 넘는 관계자 인터뷰 등을 진행하며 44년 만인 2007년에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핼버스탬은 ‘한국전쟁은 연이은 오판으로 벌어진 전쟁’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아시아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1950년 1월)을 두고, 소련이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일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오해한 것이 전쟁의 시작이다. 김일성은 한반도에서 자신의 인기를 과신했고, 더글러스 맥아더는 미 육군의 전투력을 과대 평가하면서 중국군을 지나치게 얕잡았다. 책에서 저자는 해리 트루먼, 스탈린, 마오쩌둥 등 전쟁 주역들의 성향과 그들이 저지른 오판을 조목조목 따지는 한편 ‘낙동강 방어선전투’, ‘인천상륙작전’, ‘장진호전투’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책은 출간 당시 “한국전쟁의 밀고 밀리는 전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는 평가를 받았지만, 핼버스탬은 탈고 후 닷새 만에 인터뷰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뜬 뒤였다. 73세까지 취재 열정을 불사른 저널리스트의 집념이 담긴 책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로 충분하다. 4만 8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사설] 첫 한·미 합동 유해발굴 의미 새기길

    내년이면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는다. 화염은 사라졌지만 산화한 호국영령 13만여명의 시신은 아직 수습되지 못했다. 이름 모를 산과 들에 묻혀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희구하고 있다.국가에는 이들 무명용사를 찾기 위한 무한책임이 있다. 국방부는 그제 한국과 미국 양군이 강원도 화천 등지에서 한달 일정으로 사상 첫 합동 유해발굴 작전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와 우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MAKRI)이 의미있는 한 팀을 이뤘다. 2003년 출범한 미 JPAC는 박사급 전문인력 30명을 포함, 18개의 발굴팀과 6개 조사팀 등 440명으로 구성된 지상 최대 전력의 유해발굴 전문조직이다. 참전하는 미국인에게 ‘조국은 결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유해를 되찾아 올 것’이라는 확고부동한 메시지를 준다. 이에 비하면 우리 MAKRI는 보잘것없다. 2007년 창설됐고 청사와 장비를 갖춘 것은 겨우 올 초의 일이다. 군은 지금까지 국군 2229구, 유엔군 12구, 북한군 418구, 중공군 196구 등 모두 2855구를 발굴했다.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74구에 불과하다. 범정부차원에서 유해 발굴사업에 협조키로 결의했다. 내년부터는 2000구 이상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무장지대 발굴에 착수키로 했다.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데이터상으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립 서울현충원 내 MAKRI 청사 휘호석에 새겨진 ‘그들을 조국 품으로’란 문구는 반드시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 마지막 한 구까지.
  • 한·미 실종미군 유해 첫 공동발굴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미국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가 공동으로 6·25전쟁 중 실종된 미군의 공동 유해 발굴작업에 나섰다. 지난해 8월 양국 간 전사자 유해발굴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첫 공동 발굴이다.국방부 관계자는 19일 “주민 제보를 바탕으로 사전조사한 결과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번에 발굴되면 양국간 공동 작업을 통한 첫 미군 유해 발굴이라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고 밝혔다.대상 지역은 강원도 화천. 지난 1951년 미 제9단 예하 7사단과 24사단이 중공군과 격전을 치러 수많은 사상자가 난 곳이다.발굴 개시 후 이미 손가락 뼛조각과 ‘PARKER USA’ 문구가 선명한 만년필, 미군 군복의 단추 등 유품들이 발견됐다. 이로 미뤄 뼛조각이 미군 유해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생산연도가 ‘1944’, ‘1951’이란 숫자가 찍힌 탄피와 탄두도 발견됐다. JPAC는 미국의 힘을, 그리고 국가의 의무를 상기시키는 존재다. 모토는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이다. 조국을 위해 희생된 미군을 찾아내 가족의 품에 돌려 보내는 게 JPAC의 임무다. 소장급을 사령관으로 450명의 전문 인력이 연간 6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가며 활동하고 있다. 세계 어디든 미군이 참전한 곳이면 발굴단이 파견돼 구슬땀을 흘린다. 유해 발굴에 연간 3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한국으로선 아쉬운 부분이다. JPAC 파견팀의 발굴 책임자인 제이 실버스틴 박사는 “양국이 전체적으로 완벽한 팀을 이뤄 진행하는 첫 발굴 작업”이라며 “참전한 미군을 조국으로 되찾아오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매운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법의·인류학자인 그는 2005년 북한에서의 유해 발굴에 참여했고 한국 발굴 작업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 한·미 발굴 대상지는 강원 화천과 양구, 철원, 경기 연천 등 네 곳이다. 순차적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JPAC는 유해 발굴을 위해 법의학, 인류학자, 분석 및 의료담당 등 12명의 전문가를 파견했다. 국방부도 유해발굴감식단 전문요원과 장병 등 26명을 참여시키고 있다.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국보 보러 동아대박물관 오세요”

    동아대 박물관이 19일 부산시 서구 부민동 부민캠퍼스에 재개관했다.‘동궐도(東闕圖·국보 제249호)’ 등 국보 2점,보물 11점, 부산시지정문화재 11점 등 3만여점을 소장한 동아대 박물관은 국내 대학 박물관 중 가장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가로 576cm, 세로 273cm 크기의 동궐도는 옛 구덕캠퍼스 시절에는 공간부족으로 접힌 채 보관됐는데 새 전시실에서 웅장한 모습을 마음껏 관람객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게 됐다. 동궐도는 조선 순조때 도화서 화원들이 동쪽 궁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 및 궁궐전을 마치 항공촬영을 한 듯 조감도식으로 그린 궁궐배치도로, 오늘날 궁궐복원의 가장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박물관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르네상스양식의 3층 붉은 벽돌로 지어져 경남도청사로 사용됐다. 6·25전쟁 땐 임시수도정부청사로, 그 후 법원과 검찰청사 등으로 쓰였다. 2002년 초 동아대가 샀으며, 그해 9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됐다. 동아대는 2004년 12월 80억원을 투입해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벌여 지난 3월 완공했다.동아대박물관은 외국인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영어·일어·중국어 등 4개 국어로 번역되는 음성안내기를 설치해 놓았다. 박물관 개관은 월~토요일 오전9시30분~오후5시이다. 동아대박물관 류종목 관장은 “동아대박물관은 지하철역과 접근성이 좋아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한편 박물관측은 재개관을 기념해 전시될 유물 800여점 중 ‘명품 100선’을 선정, 도록을 발간했다. 100선에 선정된 유물에는 동궐도 외에 태조 6년(1397) 10월 공신도감에서 왕명을 받아 개국원종공신인 심지백에게 내린 국보 제69호인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券)과 다음달 발행 예정인 5만원권 지폐의 도안으로 들어갈 신사임당 작품 ‘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보물 제595호)들이 포함됐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모닝 브리핑] 6·25이후 납북 민간인 첫 국가유공자 등록

    6·25전쟁 이후 납북된 민간인이 국가유공자로 처음 등록됐다. 국가보훈처는 8일 전쟁 당시 미 극동군 사령부 소속 ‘8280 유격부대’(일명 유격백마부대)에서 활동한 최원모씨를 참전 국가유공자로 인정, 등록했다고 밝혔다.최씨는 1950년 11월 평안북도에 진격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각하자 오산학교 출신들이 주축이 돼 창설된 유격부대에 창설 요원으로 합류해 유격부대의 유일한 동력선인 40t급 ‘북진호’의 함장으로서 보급과 포로 수송, 부대원·민간인 대피 등의 임무를 맡았다. 최씨는 57세 때인 1967년 6월 다른 선원 7명과 함께 연평도 인근에서 조업하다가 납북됐다.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일제 용산 총독관사 방만 무려 30개

    일제 용산 총독관사 방만 무려 30개

    ‘일제시대 고위 관리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일제시대 관사(官舍)는 경비가 삼엄했고 대부분 소실돼 모습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이 최근 발간한 ‘일제시기 건축도면 해제Ⅱ’에는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관사들의 건축도면이 실려 있어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관사 도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용산총독관사. 용산관사는 일제가 우리나라에 지은 3개의 총독관사 중 가장 화려했던 건물로 알려져 있다.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군사령관 재임 시절인 1908년 러·일전쟁 이후 남은 군비로 지었다. 워낙 웅장했던 탓에 막대한 건물 유지비가 들어 총독이 실제 살지 못하고 연회 등에만 이용됐다. 용산관사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고 6·25전쟁 때 소멸되는 바람에 지금껏 내부구조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의 도면 등에 따르면 연건평이 2000㎡(약 606평)에 달하고 방만 30개가 넘는, 관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궁전이었다. 당시 일제 최고 건축가였던 가타야마 도쿠마(片山東熊)가 2층 건물인 이 관사를 네오바로크풍으로 멋스럽게 꾸몄다. 또 정문에서 관사 현관까지는 드넓은 정원을 만들고 잔디와 각종 나무를 심었다.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용산관사 도면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일본에서도 도면에 큰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독 이하 다른 고위 관료들의 관사는 등급별로 규모가 정해져 있었다. 칙임 1~2등급(현 도지사급) 관료들은 100평 이상에 방 8개(거실 2개)인 곳에서 생활했고, 다른 관료들은 등급별로 20~100평의 관사에서 살았다. 대부분의 관사는 서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형태였지만 난방만큼은 우리나라 고유의 온돌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기록원의 자료에 따르면 일제가 1923년까지 우리나라에 지은 관사는 1880호에 달했다. 현재 국가기록원은 당시 관사 도면 1442장을 소장하고 있고 이번에 일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한국 역사속 투사인 ‘어머니’

    “자장면이 싫다.”고 하신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희생의 상징이다. ‘여성보다 강한’ 어머니는 ‘모성을 기반으로 한 투사’의 모습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어머니는 시부모에게 복종하며, 남편에게 충실하고, 자식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자기 희생적 투사’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어머니 수난사’(인물과사상사 펴냄)를 통해 이런 어머니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책 속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틀을 지켜내기 위해 고달픈 삶을 기꺼이 감내하는 애달픈 모습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 변천사와 구조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열녀, 효부, 조강지처로 표현되는 전통사회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현모양처로 변모한다. 본래 남편 중심의 가족제도인 일본에서 번진 ‘양처현모’는 과거급제로 아들을 성공시켜야 비로소 자신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한국사회에서 ‘현모양처’로 어순이 뒤바뀐 것으로 유추된다. ‘뒷바라지형 어머니’는 6·25전쟁 이후 ‘강한 어머니’로 자리잡는다. 전쟁 포화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끔찍한 굶주림을 겪으면서도 아이를 먼저 먹이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런 이미지는 전후 베이비붐 속에서 더욱 굳어져 생계유지도 힘들던 시절에 장려된 다산 정책의 부담과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현대의 어머니는 ‘치맛바람’과 ‘입시전쟁’에 뛰어든 투사다. 아들을 성공시켜 권력을 인정받는 전통사회 가부장제는 “네 아들 무슨 대학에 다니니?”라는 질문에도 기죽지 않고 자존심을 지켜내고픈 현대판 가부장제로 변모한다. 자식을 좋은 집안과 결혼시키고, 성공과 출세를 위해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쏟아붓던 어머니의 가치관은 ‘현모양처’에서 ‘전모양처’(錢母良妻)로 이전됐다. 역사를 거슬러 어머니는 열심히 투쟁하듯 살아 왔지만, 지금의 체제라면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딸도 아들도 아무도 행복하지 않고, 모두 다 자신을 희생자라도 생각할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회적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투사’로서 살아야 하는 ‘어머니들의 수난’이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백날 ‘신자유주의 타도’를 외치는 것보다 당장 어머니들의 육아 부담을 제도적으로 더는 것이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극복책이 될 수 있다.”면서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머니 수난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정윤수의 종횡무진] 대학농구, 이젠 캠퍼스서 보겠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전통의 축구 명문학교였다. 실은 같은 이름을 쓰는 고교가 훨씬 더 명문이었다. 아무튼 같은 재단의 이 중·고교 역사가 1백여 년이 훨씬 넘는 것이었으니 ‘전통’은 자연스러운 칭호였고 ‘명문’이라는 용어 또한 이 학교가 저 구한말에서 식민지 조선을 거쳐 6·25전쟁 이후에도 줄기차게 거둔 성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용어였다.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한 차범근 선수가 당시 모교를 방문했는데 그날 학교 전체 수업과 교내 행정이 완전히 중단된 일이 있었다. 운동장과 복도는 차범근 선수를 보기 위해 몰려든 수백 명의 학생들로 숨 쉴 틈조차 없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팀의 훈련을 위해 일반 학생들은 방과 후 운동장을 거의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큰 대회라도 앞두고 있으면 운동장은 팀의 전유물이 됐고, 나처럼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따로 동네 공터에서 모여야 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수고는 학교와 팀의 성적, 그리고 명예를 위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뛰어난 성적을 자랑하는 중학팀은 물론 언제나 전국대회 우승 후보였던 고교팀의 실전을 좀처럼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대회가 서울 효창구장에서 열렸다 해도 결승에 진출해야 그 현장에 가볼 수 있었다. 대학농구연맹이 전국대회 방식을 ‘홈 앤드 어웨이’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홈 앤드 어웨이’란 각 대학 캠퍼스 안에서 리그 방식으로 대회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웬만한 대학 어디에나 공식 경기를 원만히 치를 만한 체육관 시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실험의 절반, 즉 인프라와 시스템의 요소는 이미 선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왜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일까. 우선 소속 선수들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대학생’으로서 평범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회를 치르기 위해 지방 소도시 모텔에서 합숙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대학 내에서 수업과 훈련, 그리고 대회가 치러지는 것이다. 수업을 듣거나 학내의 일상 문화에 참여하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또 해당 학교의 학생들은 농구 관람을 즐기거나 팀을 응원하는 데 더없이 쾌적하고 용이한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다. 지금 경북 김천에서는 전국대학농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김천에 가까운 대학이라면 몰라도 다른 지역의 학생들이 수업 중에 그곳까지 가서 응원할 리는 만무한 것이다. 캠퍼스 안에서 ‘홈 앤드 어웨이’대회가 열린다면 재학생과 동문 그리고 이웃 주민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스포츠 문화가 생성될 것이다. 캠퍼스를 오가며 응원하다 보면 젊은 팬들의 풋사랑도 영글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측으로서도 이 대회를 상시적으로 방송 중계가 될 수 있도록 시설보완 및 행정편의를 제공한다면 그 많은 홍보 예산을 상당 부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쳇말로 ‘일타삼피!’ 획기적인 발상을 통해 건강하고 의미 있는 실험에 돌입한 연맹 측의 아름다운 선택이 귀한 결실을 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 동네 근처에는 어느 대학이 있더라.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 격동의 50년대… 댄스에 빠진 ‘자유부인’은 쾌락 때문?

    격동의 50년대… 댄스에 빠진 ‘자유부인’은 쾌락 때문?

    6·25전쟁에서 4·19혁명에 이르는 1950년대는 격동의 혼란기였다. 전쟁의 폐허 복구 과정에서 경제원조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토대가 형성되는 한편으로 반공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로 사회 전반을 통제했다. 무엇보다 ‘자유’와 ‘민주’, ‘실존주의’ 같은 근대 서구화 사상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유교적 전통과 관습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가치관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아프레걸= 전후(戰後)+girl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동국대 출판부 펴냄)는 무정형의 욕구가 사방으로 분출되던 1950년대 문화 현상의 실체와 내면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1950년대는 전근대사회로부터의 탈피를 강력히 추동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자양분으로 작용했고, 격렬한 지각변동을 거치게 된다. 권보드래 동국대 교수를 비롯한 10명의 필진은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 지성적 열망과 퇴폐적 향락이 뒤엉킨 채 공존했던 당대의 문화를 읽는, 나름의 독법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미국 문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복제의 욕구가 놓여 있다. 저자들이 주목한 키워드는 ‘아프레걸(Apres girl)’이다. 전후(戰後)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프레 게르(apres guerre)’에 영어 단어 소녀(girl)를 합성한 이 조어는 향락, 사치, 퇴폐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분방하고 일체의 도덕적인 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구속받기를 잊어 버린 여성들”로 ‘성적 방종’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신상옥 감독의 영화 ‘지옥화’, 이강천 감독의 ‘아름다운 악녀’ 등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육체적 쾌락과 돈에 대한 욕망을 직설적으로 내뿜는다. 1950년대 서울신문에 연재돼 숱한 화제를 뿌렸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남편의 제자와 춤을 추러 다니는 중산층 ‘아프레 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이 아프레 걸들은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아프레 걸을 ‘자유를 갈망하던 사회적 약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테면 ‘자유부인’의 주인공 선영이 댄스나 계, 자모회 같은 영역에 진출하게 된 것은 사회적 요구가 작용한 것인데 그 책임은 오로지 여성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지적한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아프레걸들의 일탈은 쾌락과 욕망을 위한 값싼 방종이 아니라 잃어 버린 자아를 되찾는 과감한 모험이라는 주장이다. ●현모양처 여성상 계몽했던 잡지 ‘여원’도 흥미 아프레걸이 미국의 문물을 소비하고, 댄스와 같은 미국식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당대의 새로운 여성상을 대변한다면, 1950년대 지적 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던 잡지 ‘사상계’는 미국식 합리주의와 실용주의에 기반한 지식 엘리트의 문화를 상징한다. 1950년대 중반 창간된 여성지 ‘여원’을 통해 여성담론의 변화를 읽어 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현모양처 여성상의 계몽을 표방했던 ‘여원’은 짧은 기간이지만 독신여성 같은 다양한 여성 담론을 형성해 냈다. 하지만 곧 농촌여성을 중심으로 한 비도시 하층민 여성이 주 독자층으로 형성되면서 ‘여원’의 편집방향은 대중적 통속화의 길을 걷는다. 2만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발언대]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발언대]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혹독한 일제의 탄압 아래에서 자주독립을 향한 희망의 등불을 높이 든 3·1운동의 가장 커다란 성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로 항일투쟁의 통일적인 구심점을 갖기 위해 국내외에서 여러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중 가장 뚜렷한 것이 4월13일과 23일에 각각 수립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성정부’이다. 한달 전 3월17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 의회정부’가 수립됐다. 같은 해 9월11일 이 세 곳의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통합임시정부로 정비돼 광복에 이르기까지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총본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호와 정치체계에서 광복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주춧돌이 됐다.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통찰한 선열들은 다시 찾을 조국은 물러난 임금이 다시 왕위에 오르는 ‘복벽(?)’이 아닌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제’이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현 헌법의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를 바탕으로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최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우리 국민은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나라사랑 정신으로 굳게 뭉쳐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지금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경제난으로 나라 안팎의 사정이 매우 어렵다. 90년 전 선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조국 광복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임시정부를 세워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이 있도록 했다. 선열들이 보여준 겨레사랑 정신과 이론과 실천을 함께 아울렀던 용기와 지혜를 되새기고, 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의지와 힘을 모아야겠다.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 6일도 ‘엄마’는 무대에 오른다

    6일도 ‘엄마’는 무대에 오른다

    강부자 주연의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이 불러일으킨 무대 위 ‘엄마 신드롬’의 바통을 중견 배우 박정자와 손숙이 이어받는다. 박정자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손숙은 ‘어머니’를 각각 공연한다. 무대에 올릴 때마다 수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려온 두 여배우의 대표 레퍼토리다. ‘엄마는’은 1991년 초연 이후 10만 관객을 동원했고, ‘어머니’도 1999년 초연때 부터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희생형 엄마’와 자식의 갈등 지난달 24일 개막한 ‘엄마는’(드니즈 살렘 작, 임영웅 연출)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방식을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딸의 이야기다. 엄마와 같이 사는 게 불편하다며 집을 나간 딸은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때늦은 후회를 한다. 나이 오십에 처음으로 휴가를 떠나 바다를 보고와선 아이처럼 즐거워하던 엄마,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면서도 결국 자식에게 져주는 엄마의 모습이 이어질 때마다 객석엔 작은 파장이 일었다. 초연 때 실제 나이가 50세였던 박정자는 18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변함없는 열정으로 열연을 펼친다. 딸이 떠난 빈 집에서 홀로 딸의 생일을 챙기며 독백하는 장면은 가슴을 적신다. 딸로 출연한 서은경의 안정적인 연기도 인상적이다. 극단 산울림 창단 40주년 기념작으로, 5월10일까지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된다. (02)334-5915. ●억척스런 촌 아낙네의 삶 이달 25일 막을 올리는 손숙의 ‘어머니’(이윤택 작·연출)는 한국인 특유의 어머니상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정동극장 초연 당시 손숙이 “앞으로 20년간 이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는데 올해가 꼭 그 절반이 되는 해다. 극중 어머니는 일제 징용과 6·25전쟁 등 험난한 근현대사의 와중에 혹독한 시집살이, 그리고 자식의 죽음를 겪으며 가족을 건사하는 억척스러운 인물이다. 갸날픈 몸매에 세련된 이미지의 손숙이지만 이 작품에선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대단한 입심을 자랑하는 촌 아낙네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죽은 아들을 회상하면서 오열을 터트리는 대목은 가슴 절절하다. 5월24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02)6005-6731.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도착하지 않은 삶(최영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시인의 네 번째 신작시집이다. ‘돼지들에게’ 이후 4년 만이다. 중견 시인이 예민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일상의 모습들이 볼 만하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 데뷔 때부터 즐겨 그린 소재인 혁명과 사랑에 대한 노래는 다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여전히 시니컬한 듯 발랄한 비유들이 눈에 띈다. 60여편의 시와 일본 시인 사가와 아키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7500원. ●피안에 지다(이한준 지음, 시우출판 펴냄) 서울대를 46년 만에 졸업해 화제가 됐던 지은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주인공 철준이 겪는 이산의 아픔과 월북자 가족의 고통을 그린다. 철준이 사형수로 복역하는 등 고난의 길을 걷다 결국 목회자로서 북한에서 순교한다는 내용이 주된 서사다. 분단의 질곡을 종교적 구원으로 풀어보고자 한 지은이의 의도가 돋보인다. 5부작, 전체 10권 완결. 각권 1만원. ●발차기(이상권 지음, 시공사 펴냄) 소설의 주인공인 고등학교 2학년 경희가 임신한 뒤 몇 달 동안 겪는 복잡한 심경의 변화와 그를 통해 한 뼘 더 성숙해지는 이야기다. 생태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주로 써온 이상권이 텃밭을 가꾸고 닭을 키우며 익힌 생명의 신비, 생명의 소중함을 때로는 가슴 졸이며, 때로는 당당하게 자신의 처지를 개척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통해 보여 준다. 8000원.
  • ‘비운의 기업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 별세

    ‘비운의 기업인’이었던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29일 오후 별세했다. 88세. 스포츠 운동화 ‘프로스펙스’로 잘 알려진 국제그룹은 한때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으나 5공화국 시절인 1985년 공중분해됐다. 당시 그룹이 전격해체된 표면적 이유는 부실기업 인수와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부채비율 급증이었다. 하지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양 전 회장이 당시 일해재단 모금에 적극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제그룹이 재계 7위임에도 마지못해 3개월짜리 어음으로 10억원을 헌금으로 상납했다.”거나 “폭설로 청와대 만찬에 늦게 참석해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한 세미나에서 “경제정책가들은 국제그룹의 경우처럼 기업인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일군 기업을 일거에 분해시키는 일을 다시는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양 전 회장은 5공화국이 끝나고 헌법소원을 냈고 1993년 헌법재판소는 국제그룹 해체가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지만 잃어버린 회사를 되찾지는 못했다. 그는 1940년대 부산에 차린 고무신 공장을 토대로 ‘왕자표 신발’ 등을 만들기 시작했고, 6·25전쟁 와중에는 군수품 생산에 손을 대서 큰돈을 모았다. 이후 성창섬유·국제상선·신동제지·동해투자금융 등을 잇따라 창업하고 동서증권·동우산업·조광무역·국제토건·국제종합엔지니어링·원풍산업 등을 인수하며 ‘재벌’ 반열에 올랐다. 고인은 1998년 부산도시가스 사외이사 취임 후 외부활동을 자제해 왔고, 그동안 노환에 따른 폐렴 증상으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끝내 영면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양희원 ICC대표와 사위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 이현엽 충남대 교수, 왕정홍 감사원 행정지원실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4월1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 (02)3010-2631.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집안일 도와주는 최 중위 친손녀 같아”

    “집안일 도와주는 최 중위 친손녀 같아”

    강원 화천군 산골마을의 육군 여군장교와 6·25전쟁 참전용사의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육군 이기자부대 신병교육대대에서 근무하는 최미경(사진 가운데·26·여) 중위와 화천군 사내면 6·25참전용사 안문흠(왼쪽·84·사창리) 회장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해 설 명절부터 1년여 동안 가족과 다름없는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07년 6월 이기자부대로 부임한 최 중위는 지난해 설 연휴 기간 출근길에 우연히 ‘6·25 참전용사 회장’ 명패가 붙어 있는 주택을 발견했다. 육사 생도(63기) 시절 신문기자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호국인물’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최 중위는 퇴근 길에 작은 선물을 들고 안씨 집을 방문했고,따뜻한 저녁식사를 차려준 이 할아버지 부부와 인연을 맺게 됐다. 최 중위는 틈틈이 설거지 등 집안일을 도와 주면서 가족 같은 사이로 발전했다. 안 할아버지는 “부대 일 때문에 바쁜데도 때마다 찾아와 우리를 위해 말동무가 돼주는 최 중위가 친손녀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백선엽씨 첫 명예원수 추대 검토… 일제 만주군 장교 전력 논란

    정부가 한국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89) 예비역 대장을 ‘명예원수(元帥)’로 추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23일 “내년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백선엽 장군을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미 양국의 예비역 장성들 간에 의견이 나오고 있어 검토하는 건 사실”이라면서 “(명예원수 추대는) 현행 규정들을 고쳐야 하고 국민 여론도 감안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현 ‘예비역 진급 및 장교 임용에 관한 규정’에는 명예진급 상한선은 예비역 대령까지로 정한 규정과 군인사법 제27조는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한다.”고 한 법령이 개정돼야 한다. 원수는 국방부 장관 추천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창군 이래 원수는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백 장군은 한국전 때 사단장 등을 거쳐 32세 최연소 나이로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북진 때는 평양에 처음 입성한 전쟁영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한 과거 전력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가사문학 테마마을로 가꿔주세요”

    “가사문학 테마마을로 가꿔주세요”

    한국 가사문학의 산실인 전남 담양군 송강(松江) 정철(1536~1593)의 유적지에 ‘생태·문화마을’이 조성된다. 23일 자연환경국민신탁에 따르면 송강의 16대손 정구선(70)·홍혜미(64) 부부는 담양군 남면 지곡리 지실 마을 일대 4만㎡를 국민신탁에 내놓기로 했다. ●‘계당’·임야 등 20억원대… 경관 수려 정씨 부부가 신탁한 재산은 6·25전쟁 때 소실된 송강의 고택과 송강의 4남인 홍명이 1616년 지어 편액한 ‘계당(溪堂)’, 음식점, 임야 등이 포함됐다. 20억원대에 이른다. 이곳은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송강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계당이 있는 만수동 계곡은 수려한 경관과 함께 송강이 만년에 머물며 ‘만수명산로(萬壽名山路)’로 부르던 옛길로 유명하다. 정씨 부부는 지난해 계당에 보관해 온 고문서 등 4100여점을 전남대 등에 위탁한 데 이어 또다시 문중 재산을 신탁했다. 정씨는 “400년 넘게 간직한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것도 모자라 투기꾼까지 주변에 들어오는 현실이 안타까워 개인의 재산이 아닌 공유의 재산으로 온전하게 보존하고 싶었다.”며 “가사문학 테마마을을 조성해 모든 사람이 머물고 두루 둘러보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택 복원… 생태·문화마을로 국민신탁은 정씨의 뜻대로 소실된 고택을 복원해 가칭 송강 문학의 집으로 꾸미고 자연경관이 뛰어난 임야를 보존해 생태·문화마을로 만들기로 했다. 국민신탁은 또 문화유산 국민신탁과 함께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등 인근 누정(亭)을 소유한 문중으로부터 신탁을 유도해 이 일대를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살아 있는 문화 벨트로 조성할 방침이다. 국민신탁은 24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정씨와 신탁계약식, 프로젝트 구상 발표회를 열고 27일에는 이만의 장관 등 환경부 관계자를 초청해 현지를 답사할 예정이다. 담양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열린세상] 기로에 선 한국 민주주의/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열린세상] 기로에 선 한국 민주주의/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국의 민주주의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몇 번에 걸친 수평적 정권교체를 거쳤지만 민주적 제도의 정착과 민주적 시민의식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안정된 민주주의 발전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이미 150여년 전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민주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인류의 보편적 대세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의 미래도 민주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실패는 독재보다도 더 큰 위험을 가져올 것이라고 토크빌은 경고한 바 있다. 그의 예언은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등장으로 입증된 바 있다. 우리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하고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 한국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부푼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요체인 정당정치 정착은 여전히 진통을 겪는다. 3김이 일선에서 물러나면 정책과 이념에 기초한 정당정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간다. 과거 여당 시절 특정 법안을 지지하던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야당이 되자 똑같은 사안을 두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두한다. 현재 여당도 뚜렷한 이유없이 반대에서 찬성으로 바뀐 경우가 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태는 정당의 연속성과 정당정치 안정에 크게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민주주의 교육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국회에서는 폭력과 주먹다짐이 난무한다. 국회에서 진지한 토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단순화한 정치 이슈를 중심으로 포퓰리즘이 횡행한다. 조직화하지 못한 침묵하는 소수에게는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떼지어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에게 겁먹고 굴복하는 의회정치는 과거 독일 나치의 등장에서 보는 것처럼 민주주의의 존재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할 것이다. 법치 훼손이 국회를 넘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인다. 토크빌은 권력을 비정상적으로 행사하고 불법적 지배에 무기력하게 복종함으로써 스스로 타락해 가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 민주주의에 위기가 심화하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모든 권위는 하나둘씩 무너지고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 권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호도된 여론에의 맹신과 인터넷 포퓰리즘이다. 6·25전쟁과 근대화를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평등의식이 성장하면서 평등화가 가속화했다. 이러한 평등의식은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이념이 아니라 집단주의적 욕구와 연결되어 왜곡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는 노력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 공천 과정을 보면 여전히 매우 실망스럽다. 주요 정당이 계파간 안배라든지 구정치인 복귀의 장으로서 보궐선거를 이용하려 한다. 보궐 선거는 새로운 제도를 시험해 보는 좋은 기회이다. 개방형 예비선거 제도를 통해서 후보를 뽑는 풀뿌리형 민주주의의 정착 노력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가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겠다는 정치지도자들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더이상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랑아 민주주의’처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의 ‘억압에 의한 안정’이 ‘법치에 의한 안정’으로 바뀌도록 포퓰리즘에 편승하지 말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엄격하게 시행해 나가야 한다. 또 건전한 민주시민 정신을 가진 국민 없는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참신한 정치인들이 법치에 기초한 다양한 민주주의 발전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자 적극 노력해야 할 때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 6·25 실화 창작 오페라로

    6·25 실화 창작 오페라로

    6·25전쟁 60주년을 앞두고 전쟁 당시 실존인물의 감동적인 실화를 다룬 오페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퍼펙트(Perfect) 27’이 24일부터 27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된다. ‘내 잔이’는 6·25전쟁 당시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오페라. 1983년에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 정연희(73)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1950년 전도사로 활동하던 27살 맹의순은 인민군으로 오해받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보내져 이곳에서 인민군과 중공군 환자를 돌보다 죽음을 맞는다. 맹의순의 친구들과 포로수용소 환자들의 증언, 편지들을 통해 그의 헌신이 세상에 알려졌고 정 작가가 6개월간 집필한 끝에 소설로 출간됐다. ●제작 5년만에 빛본 창작 오페라 13일 서울 프라자호텔 오팔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수길(예울음악무대 대표) 총감독은 “창작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것은 어려움이 많다. 제작비 문제도 그렇고, 공연장 섭외도 어려웠는데 드디어 이렇게 빛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페라 제작을 구상한 것은 5년 전. 맹의순의 친구였던 종교음악작곡가 박재훈 목사가 그의 삶을 기리기 위해 오페라 제작을 의뢰했고, 박 목사의 제자인 박영근 한양대 교수에게 작곡을 권유했다. 음악 작업은 이미 3년 전에 마무리됐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창작오페라인 탓에 무대에 올리기까지 난관이 계속되며 이제야 관객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 함남 함흥 출신으로 북한에 계신 어머니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떠나보낸 박 총감독이라 6·25전쟁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6·25전쟁은 60년 전,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인데 점점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이 오페라에서 그 아픈 이야기를 더듬어보고, 한편으로는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갖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관객에게 종교를 넘어선 감동 줄 것” ‘내 잔이’는 70여명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모두 200여명이 무대에 오르는 대작이다. 연출은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해 ‘바보 선언’, ‘바람 불어 좋은 날’, ‘공포의 외인구단’ 등을 만든 이장호(64) 감독이 맡았다. 1999년 오페라 ‘황진이’ 이후 10년만에 연출을 하게 된 이 감독은 전공을 살려 영상미를 덧댈 계획이다. 전쟁, 피란, 맹의순의 죽음 등 중요 장면 곳곳에 영상을 보여주며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전도사의 이야기라 종교적인 배경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아픈 역사’와 ‘인간애’가 더욱 부각돼 종교와 관계없이 감동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 오페라는 청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편안한 음악이 특징”이라고 소개한 박 총감독은 “특히 맹의순이 마지막에 부르는 아리아 ‘내 잔이’와 주인공의 마음을 돌이키게 되는 소년병사의 노래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내 잔이’는 성남아트센터에 이어 6월에는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극작가 김수경이 극본을 썼다. 맹의순 역에 테너 이동현과 나승서가, 맹의순의 연인인 간호장교 유정인 역에 소프라노 박정원과 유미숙이 열연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사미인곡(KBS1 오후 7시30분) 29살 나이에 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이석주씨를 만나본다. 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 3년, 푸른 눈의 사제가 한국 땅을 밟았다. ‘제주도 근대화의 선구자’라 불리는 맥그린치 신부. 제주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려는 제주 사람 맥그린치 신부도 만나본다. ●대결! 노래가 좋다<소녀시대 특집>(KBS2 오후 8시55분) 태연, 수영, 유리, 써니는 ‘트로트소녀’. 티파니, 제시카, 효연, 서현은 ‘댄스소녀’. ‘대결! 노래가 좋다’가 새봄을 맞아 상큼발랄한 이미지의 소녀시대 특집을 마련한다. 소녀시대는 멤버 전원이 도전자로 나서 각각 트로트소녀 VS 댄스소녀로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펼친다. ●돌아온 일지매(MBC 오후 9시55분) 월희와의 혼인을 약속한 일지매는 달이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또한 벼슬아치들의 악행 때문에 매일 밤 집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날 위험에 처한 양반가의 아씨를 구해 주게 된 일지매는 월희의 집에 아씨를 부탁하고, 두 여자는 일지매를 사이에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카인과 아벨(SBS 오후 9시55분) 초인이 중국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서연은 급히 선우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외교부 직원이 건넨 여권과 초인의 가방을 연 서연은 카메라의 전원을 켜다가 영지와 함께 있는 초인의 사진을 보게 된다. 한편, 중국노동자 숙소 앞에서 장사를 하던 영지는 보위부 대원을 피해 도망을 친다.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단속의 어려움 탓에 밀렵꾼이 자주 출현하는 도서지역, 밀렵꾼을 소탕하기 위해 광주지부 대원들이 섬 지역 밀렵단속에 나섰다.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무선 안테나까지 제거한다. 단속 사실이 알려지면 일순간 소문이 퍼지는 섬지역의 특성상 대원들은 민박집에서 해가 질 때까지 작전회의를 하며 대기 중이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세계 금융위기로 독일 실업자가 한 달 새 40만 명이나 급증했다. 특히 경기불황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곳은 독일 대표 산업 자동차 분야다. 세계적인 명차를 생산하는 다임러 벤츠가 직원 5만 명을 대상으로 조업단축에 들어갔고, 폴크스바겐도 당초 3월 예정이었던 조업단축을 앞당겨 시행하고 있다.
  • 팔순 이한구옹 63년만에 서울대 졸업장 받아

    팔순 이한구옹 63년만에 서울대 졸업장 받아

    “죽기 전에 졸업장 한번 만져 보고 싶었는데 이제 여한이 없어요.” 26일 열리는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63년 만에 졸업장을 받는 이한구(82)옹. 이옹은 서울대 개교 이래 최고령 졸업생이다. 이옹은 1946년 이 학교 사범대 영어과에 입학했던 ‘개교둥이’였다. 4학년 1학기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전쟁이 터지는 통에 학교를 잠시 떠나 있다가 모교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58년이 걸렸다. 1945년 경성사범학교 보통과를 졸업한 이옹은 서울대가 개교한 이듬해 사범대 영어과에 입학했다. 그는 1948년 문리대 독어독문학과로 편입하고 유학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졸업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4학년 1학기 때 6·25 전쟁이 터졌다. 휴전 후에도 피아노 부속품, 책, 독일영화를 수출입하는 무역상으로 입에 풀칠하느라 독일 유학의 꿈은 가슴 속에 접어야만 했다. 1959년 결혼해 가정을 꾸린 뒤엔 학교로 돌아가고픈 소망마저 물거품이 됐다. 인문대는 26일 오전 11시 교수회의실에서 이옹에게 졸업증서와 함께 독문과에서 준비한 감사패를 수여하기로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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