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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득한 한탄강, 발끝에 멈춘 아늑함… 새콤한 메밀꽃, 혀끝에 맴도는 겨울[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아득한 한탄강, 발끝에 멈춘 아늑함… 새콤한 메밀꽃, 혀끝에 맴도는 겨울[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어제는 책 한 권을 읽다가 ‘따뜻한 얼음’이라는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온몸이 찌릿하도록 시렸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글의 결정이 온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겨울은 따뜻하신가요? 한탄강의 얼음장 옆 물윗길을 걷다가, 반세기 넘은 노포의 막국수를 후루룩 비벼 삼키다가 저는 박준 시인이 말한 여름밤 철원의 ‘화기’(火氣)를 떠올립니다. 어떤 그리움은 늘 지구 반대편의 시간에 속한 듯합니다.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강원도 철원에 있습니다. 내륙 깊은 분지라 겨울 추위가 매섭습니다. 산지의 찬 공기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평지로 흘러내립니다. 해발고도가 낮을수록 추워지는 기온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지요. 그런 이유로 이곳의 여름은 ‘밤이 되어도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겠습니다. 박준 시인은 시 ‘메밀국수’를 쓴 그해 더운 여름을 철원에서 보냈나 봅니다. 이 시에는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편지처럼 읽힙니다. 아니 시처럼 쓴 편지입니다. ‘분지의 여름밤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시인이 첫인사를 건넵니다. 그러고는 여름밤 더위를 피해 밥 대신 메밀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동송의 30년 된 막국숫집과 갈말의 60년 된 막국숫집을 두고 그 시차를 생각하다 혼자 즐거워하기도 하고요. 또 막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길, 철원 사람들은 시인에게 자꾸 저녁 안부를 묻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저녁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든지. 그가 그린 귀갓길은 ‘철(鐵)’원이란 글자의 차가운 이미지를 따뜻하게 녹여 냅니다. 저는 지금 막국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박준 시인의 시 한 편에 끌려 이곳에 왔습니다. 늦은 점심이라 군침이 넘어갑니다. 철원에는 막국수 맛집이 여럿입니다. 철원막국수, 내대막국수, 풍전면옥 등이 소문났지요. 시인처럼 동송과 갈말을 두고 고민하다 갈말로 왔습니다. 동송의 30년 된 막국숫집이 몇 해 전 문을 닫은 탓이기도 하고요. 60년 넘은 갈말의 노포는 네모난 마당을 가진 옛집입니다. 다른 계절에는 마당과 입구에 크고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하죠. 막국수를 먹으며 하얀 메밀꽃이 이는 장면을 떠올린 기억이 납니다. 꽃에 기울인 정성이 메밀면인들 다를까요. 그런 까닭으로 이곳의 주인장은 막국수라는 단어가 못내 섭섭할지 모르겠습니다. ●메밀·배추의 시차, 한겨울 막국수의 맛 메밀과 배추의 시차 막국수는 메밀국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지요. 어원에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막 만들어 냈다 해 그리 부른다는 설도 있지요. 이때 막은 ‘마구’와 ‘금방’의 의미가 있어요. 아무렇게 금방 만들어 먹는 국수라고 할까요. 그런 음식이 30년, 60년씩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마구 만든다고 불러도 시차는 거짓이 없습니다. 먹음직스러운 비빔막국수 한 그릇이 식탁 위에 놓입니다. 육수만 담은 양은그릇 하나도 무심히 건네집니다. 비빔과 물을 두고 갈등하던 제 말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시인에게 저녁을 먹었냐 묻던 그해 여름 철원 사람들의 모습이 겹칩니다. 하지만 막국수의 제철은 역시 겨울입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가을 메밀을 수확해 겨울에 국수로 빚어 먹었지요. 이곳의 메밀면은 통메밀과 속메밀을 섞어 거뭇한데 그럼에도 면이 푸석하지 않습니다. 한입 덜어 씹으니 메밀 특유의 식감이 입안에서 헤엄칩니다. 과일로 단맛을 낸 양념장은 매운맛이 불편하지 않아 좋습니다. 겨울 한기가 매콤하게 잊힙니다. 박준 시인은 ‘메밀국수’의 말미에 배추 파종 이야기를 꺼냅니다. 겨울에는 그 배추로 만두소를 만들 것이라 말하지요. 갈말에서 막국수를 드셨다면 동송에서 만두를 맛봐도 좋겠습니다. 동송에는 이북 만두를 맛있게 내는 어랑손만두국과 손만두버섯전골을 잘하는 솔향기가 있습니다. 어랑은 함경도 도시의 지명입니다. 배추가 씩씩하게 씹히지 않아도 맑은 탕을 떠올리게 하는 국물이 좋습니다. 솔향기는 전골에 끓인 김치만두가 맛있지요. 만두피는 옥수숫가루를 넣어 노란색이고요. 시인은 겨울 만두까지는 맛보지 못하고 철원을 떠난 듯합니다. 대신 ‘요즘은 먼 시간을 헤아리고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편지를 갈무리합니다. ●꽁꽁 언 겨울에만 걷는 ‘한탄강 물윗길’ 언 강 위를 걷는 물윗길 철원에는 ‘먼 시간을 헤아려 생각해 보기 좋은’ 여행지가 있습니다. 한탄강 물윗길입니다. 철원과 경기도 연천, 포천에 걸쳐 흐르는 한탄강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입니다. 철원용암대지는 약 54~12만년 전 여러 차례 화산 폭발로 생겨났고요. 까마득한 시간이 타임랩스처럼 흐릅니다. 하지만 물윗길을 완주하는 데는 3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저는 수십만년과 3시간의 시차를 생각하다 시인처럼 혼자 피식 웃고 맙니다. 한탄강 물윗길은 일 년 내내 개방하지는 않습니다. 10월부터 3월까지만 열립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겨울을 고집해요. 강 한가운데 부교를 놓아 만든 물 위 구간 때문일 겁니다. 저는 순담계곡 쪽에서 출발합니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드르니까지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따라 걸었을 테지요. 절벽에 기댄 잔도의 짜릿함을 누리면서요. 하지만 겨울은 강변의 물윗길을 향합니다. 곧장 협곡 사이 부교가 펼쳐집니다. 첫발을 디디자 아득함 속 아늑함으로 인해 안도합니다. 켜켜이 쌓인 좌우의 지층은 세월의 주름처럼 우리를 안위하지요. 부교는 플라스틱 부표들이 모여 다리 길을 만듭니다. 주상절리와 현무암 계곡 사이로 퉁퉁대는 울림을 딛고 나아가죠. 발끝이 닿는 부교 곁에는 ‘얼음’하고 굳은 강입니다. 마치 작은 기적이 일어난 듯 고요히 멈춰 선 시간입니다. ●송대소, 높이 30~40m 주상절리 명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면 고석정까지 걸으세요.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여도 한 시간이면 족하지요. 고석정은 높이 약 15m의 외로운 바위와 정자를 이릅니다. 임꺽정이 은신한 곳으로 알려졌지만 화강암층과 현무암층이 마주하는 지질이 흥미롭습니다. 고석정을 지나 조금 더 걷겠다면 승일교가 다음 목적지입니다. 6·25전쟁 전에 북한이 절반을, 전쟁의 끝 무렵에 미군과 노무단이 나머지 절반을 지어 완성한 다리입니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두 글자를 딴 콘크리트 아치교는 왠지 악수하는 다리 같아 뭉클합니다. 부교 구간의 아름다움은 마당바위 지나 은하수교~태동대교 구간도 뒤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은하수교 위에서 송대소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어요. 송대소는 물윗길 주상절리 명소입니다. 높이가 30~40m에 이르러요. 다각형의 기둥은 절벽에 기대 기이한 형성을 연출해 시선을 끕니다. 물론 물윗길을 걸을 때는 은하수교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거대한 스케일을 선보입니다. 한탄강의 진짜 주인공은 그들이고 우리는 그저 그 물길을 빌려 잠시 다녀갈 뿐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엔 태봉대교 매표소에서 순담계곡 매표소까지 셔틀버스가 오갑니다. 은하수교와 고속정 등을 경유하지요. 참, 물윗길을 걸을 때는 물이나 따뜻한 음료를 꼭 챙겨 가길 권해요. ●소설가 이태준의 편지 쓰는 법 철원의 편지는 박준 시인 이전에 소설가 이태준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그는 ‘한국의 체호프’라 불린 철원 태생의 작가입니다. ‘운문은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서울 수연산방이 그의 집터입니다. 1933년부터 머물며 정지용, 이효석, 이상 등과 구인회 활동을 한 곳이고요. 그는 1943년 다시 철원으로 돌아와 몇 해를 삽니다. ‘서간문강화’(깊은샘)는 그때쯤 출간한 책입니다. 편지 쓰는 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여행 중에 흔히 쓸 편지들’이란 장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는 ‘여행맛을 여러 사람에 보이는 미덕’이라며 ‘감흥이 솟는 만치는 표현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이라고 덧붙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그의 소설 ‘촌띄기’를 따라 걷는 촌뜨기길이 철원에 있었지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철원읍 관전리 철원경찰서(터) 등을 엮은 길이었습니다. 옛 철원경찰서는 노동당사 옆입니다. 그의 고향마을 용담이 멀지 않아요. 지금은 소이산 옆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촌뜨기길의 아쉬움을 달랩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1930년대 옛 철원읍 시가지를 재현한 공원입니다. 철원금융조합, 철원공립보통학교, 관동여관, 철원극장, 철원역 등이 도열합니다. 김남길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도적: 칼의 소리’를 촬영하기도 했다지요. 철원양장점에서는 옛 옷을 입고 무료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철원극장에서는 주말 무성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요. 철원역에서는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다.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은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DMZ)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점점이 사라진 옛 철원 시가지의 흔적이 그곳에 있겠지요.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도, 금강산을 향하던 철길도 그곳에 있었겠지요.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 터도, 6·25전쟁에서 산화한 백마고지의 선령들도 그곳에 잠들었겠습니다. ●느린 편지에 담긴 겨울의 철원 철원군은 6·25전쟁을 거치며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보통 군의 지명은 제일 큰 읍의 지명을 따르지만 철원읍은 민통선 안에 있지요. 그래서 철원군은 동송읍과 갈말읍이 제일 큽니다. 박준 시인이 동송과 갈말 사이 막국숫집을 두고 고민한 것도 그런 연유겠습니다. 아직은 갈 수 없는 먼 북녘의 겨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소이산을 내려옵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을 떠나기 전에는 옛 철원우체국을 발견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옛 집배원 제복과 우편배달용 빨강 자전거와 그 시절 누군가 썼던 엽서가 눈길을 끕니다. 우체국에 왔으니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우편 접수대 앞에는 발송용 엽서와 보관용 엽서가 보입니다. 발송용 엽서는 3개월 후 수신인에게 보내고, 보관용 엽서는 철원우체국이 보관했다 일부를 선정해 ‘느린 우편’ 책자로 제작한다네요. 발송용 엽서를 받아서는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에 답장합니다. 여름에 쓴 철원의 편지(시)를 받고 겨울에 쓰는 편지겠습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다 그의 고향이라서 이태준의 ‘무서록’(청색종이)을 떠올립니다. ‘두서없이 쓴 글’이라는 제목이 좋기도 하고요. 그 가운데 ‘매화’의 한 문장을 빌립니다. ‘겨울이 차다는 것은 우리의 체온이 너무 뜨거운 때문’ 이 편지가 다다를 때쯤은 봄일 테고, 그때의 저는 또 겨울의 철원을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연휴 뒤 ‘헌재의 시간’에 與 “편향성 우려” 공세

    연휴 뒤 ‘헌재의 시간’에 與 “편향성 우려” 공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안 등 주요 정치 현안들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이 공세 화력을 높이고 있다. 당장 설 연휴가 끝나면 여야 모두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돼 사전 ‘헌재 흔들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수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28일 논평에서 “헌재에 특정 연구회 출신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는 것에 대해 세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대한민국 헌법 위에 특정한 연구회의 세계관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이 언급한 ‘특정 연구회’는 진보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인권연구회(우리법연구회)로, 국민의힘은 현재 헌법재판관 과반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 헌재의 중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을 보류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편향성을 문제 삼고 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헌법재판관의 편향성 우려가 한계를 넘었다”며 “문 권한대행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성호 민주당 의원과 가깝고 우리법연구회 중 가장 왼쪽에 있다는 커밍아웃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 후보자까지 임명된다면 법원 내 극소수만 회원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마은혁 재판관 등 4명이 된다”며 “헌재에 특정 성향 연구회 소속이 4명이나 됐던 적은 없다. 마 재판관까지 임명된다면 탄핵 재판을 더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문 권한대행이 부산 UN기념공원을 방문한 후 개인 블로그에 남긴 글을 공유하며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목숨을 바친 6·25전쟁 UN참전용사에 대한 모독을 사과하라”며 “헌법재판관에서 즉각 사퇴하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문 권한대행은 당시 “16개국 출신 UN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을까”라며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룬다면 완전한 통일이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라고 적었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해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헌재는 다음 달 3일 마 후보자에 대한 임명 보류가 위헌인지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 설악의 밤엔… ‘청초’한 낭만이 흐른다

    설악의 밤엔… ‘청초’한 낭만이 흐른다

    ‘별과 설악을 노래한 시인’이라 불렸던 이가 있다. 강원 고성이 낳고 속초가 기른 이성선(1941~2001)이 바로 그다. 그가 속초의 풍경을 두고 남긴 표현이 있다. “속초가 속초일 수 있는 것은 청초와 영랑, 두 개의 맑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청초호와 영랑호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표현이다. 이번 여정에선 두 개의 맑은 눈동자 가운데 청초호를 주로 둘러본다. 산책하기 좋고, 주변에 ‘핫플’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밤드리 노닐기는 더 좋다. 야경 명소라 상찬해도 좋을 만큼 화사한데, 뜻밖에 찾는 이는 적어 적요하다. 여기에 강렬한 설경으로 겨울의 진수를 선사하는 설악산, 아기자기한 상도문 돌담마을과 아바이마을 등을 돌다 보면 여름내 속을 끓였던 ‘속초앓이’는 저만큼 사라진다. 청초호는 석호(潟湖)다. 석호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에 형성된 호수를 뜻한다. 좁고 긴 사주(砂洲)에 의해 동해와 격리됐다. 둘레는 5㎞ 남짓. 예전엔 영랑호보다 컸다고 한다. 예부터 속초의 아름다운 경관을 ‘소야(所野·속초의 옛 이름) 8경’이라 불렀는데 이 가운데 ‘청호마경’(靑湖磨鏡)이 바로 청초호의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호수가 깨끗하고 맑아 마치 갈고 닦은(磨) 거울(鏡)처럼 빛난다는 뜻이다. 이 일대를 일컫는 지명인 ‘청호동’은 이 표현에서 비롯됐다. 청초호는 이런저런 개발 사업에 휘둘리면서 옛 모습을 잃어 갔다. 1987년 시작된 청초호 개발사업으로 청초호의 규모가 3분의1가량 축소됐다. 1999년엔 이 일대에서 강원국제관광엑스포가 열리면서 자연 석호의 외형을 완전히 잃어 일반 호수처럼 변했다. ●저물녘 환상적 풍경의 ‘청초호길’ 속초를 여행하는 이들 가운데 부러 청초호를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인접한 아바이마을이나 속초 해변, 엑스포 타워 등 명소들을 들를 때 스쳐 지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청초호는 자체로 멋들어진 여행지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채로운 풍경을 내어 준다. 청초호에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속초사잇길’ 가운데 7코스 ‘청초호길’이다. 거리는 6㎞ 정도. 오르막은 전혀 없는 평탄한 길이다. 관광 약자들도 어렵지 않게 돌아볼 만하다. 엑스포 타워, 칠성조선소, 갯배, 아바이마을 등 속초의 ‘힙스터’들이 자주 찾는 공간들도 여럿 매달렸다. 특히 저물녘 풍경이 빼어나다. 속초시청 누리집 표현을 빌리면 “매우 환상적”이다. 들머리는 엑스포 타워다. 높이 73.4m로, 전망대와 아이맥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주제관 등 볼거리가 많다. 예전엔 이 일대에 조선소가 많아 ‘조선소 동네’라고 불렸다고 한다. 속초 최고의 ‘핫플’로 떠오른 칠성조선소는 당시 흔적이 남은 것이다. 칠성조선소는 북한 함경남도 원산의 한 조선소에서 근무한 피란민이 세웠다고 한다. 1952년부터 속초와 인근 지역 어민들이 사용한 수많은 나무배(목선)를 건조해 왔다. 하지만 철,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으로 만든 배가 상용화되면서 목선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조선소 역시 선박 건조보다는 수리로 명맥을 이어 오다 결국 2017년 문을 닫았다. 조선소는 현재 박물관과 책 다방,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카페 창문으로 보이는 속초 바다 풍경이 빼어나 늘 인산인해다. 호숫가 북쪽, 청룡과 황룡의 전설을 모티브로 세운 조형물 앞엔 해상보행교가 있다. 길이 75m의 다리가 호수 중심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 다리 끝에 있는 정자는 청초정이다. 정자 난간에 기대면 주변 호수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담긴다. 야경이 특히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다. ●엑스포 타워 등 주변엔 ‘핫플’ 가득 호수 동쪽 끝자락은 저 유명한 아바이마을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무렵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대거 정착하면서 조성된 마을이다. 마을 앞은 청호해변이다. 고운 모래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방파제가 감싼 바다는 잔잔하다. 수심도 얕다. 속초의 다른 해변에 견줘 청호해변은 늘 적요하다. 찬찬히 산책하기 좋고 ‘인증샷’을 남길 만한 곳도 여럿이다. 아바이마을 들머리에 있는 설악대교는 풍경 전망대로 손색없다. 한쪽으로는 청초호와 설악산이, 다른 한쪽으로는 짙푸른 동해가 내려다보인다. 설악대교엔 독특하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걷는 게 불편한 이들은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된다. 설악대교를 넘어서면 요트 계류장이다. 여기서 맞는 풍경이 장쾌하다. 호수 너머로 눈 덮인 설악산이 걸개그림처럼 펼쳐진다. 짙푸른 호수 위엔 설악산이 담겼다. 그야말로 ‘청호마경’이다. 청초호와 쌍벽을 이루는 영랑호는 장사동에 있다. 둘레는 7.8㎞. 호숫가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속초 8경 가운데 하나인 범바위, 영랑정 등 볼거리가 많다. 큰고니 등 호수 위를 유영하는 철새들의 모습도 고즈넉하다. 청초호와 이웃한 속초해수욕장은 속초를 대표하는 해변이다. 대관람차인 ‘속초 아이’, 인증샷 성지인 ‘폴링 인 러브-키스’ 조형물 등 볼거리와 놀거리가 빼곡하다. ‘폴링 인 러브-키스’ 조형물은 수천 개의 파이프를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이 모티브다. 액자 프레임, 붉은 대게 조형물 등 포토존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밤에 해변을 찾는 이도 많다. 곳곳에 경관조명이 설치돼 퍽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속초까지 와서 설악산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꼭 정상에 서야 맛이랴. 들머리인 설악동까지만 가도 된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빼어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풍경은 ‘타이밍’이다. 이른 아침, 조금만 서두르면 평소 보기 어려운 그림 같은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설악동 쪽에서 보는 저항령 일대의 새벽 풍경이 아주 일품이다. 케이블카를 타도 좋겠다. 권금성에 오르면 좀더 웅숭깊은 설악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들머리의 절집 신흥사는 필수 방문 코스다. 일주문을 지나면 통일대불청동좌상이 여행객을 맞는다. 높이 14.6m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대불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불자들의 정성을 모아 제작했다. 제작 기간만 10년에 달하고 제작에 사용된 청동은 108t에 이른다. 지름이 13m인 좌대엔 108 나한상이 조각돼 있다. 통일대불 내부에 법당도 있다. 대불 뒤로 돌면 몸속 법당으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아기자기한 추억 담긴 상도문돌담마을 설악산 자락 아래 상도문마을은 속초에 속했지만 속초 같지 않은 마을이다. 속초 하면 대개 바닷가 마을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이 마을은 약간 다르다. 속초에선 드물게 논농사를 지으며 살고, 습속도 갯마을보다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 가깝다. 상도문마을은 500년 역사를 넘나드는 전통 마을이다. 외부엔 돌담마을로 널리 알려졌다. 마을 골목 담장은 모두 둥글고 매끈한 돌담이다. 여느 시골 마을 담벼락처럼 흙이 섞이지 않아 생경하다. 수박만큼 큰 돌은 마을 옆을 흐르는 쌍천에서 가져왔다. 담장 위에 올린 돌에는 참새, 강아지, 고양이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른바 ‘스톤 아트’다. 돌담 곳곳엔 시를 적은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마을 주변 아홉 굽이의 빼어난 경관을 노래한 시인데, 이 마을 출신의 성리학자 매곡 오윤환(1872~1946)이 지은 ‘구곡가’를 모티브로 삼았다. 속초 8경의 하나인 학무정과 송림쉼터의 솔숲, 물레방아와 디딜방아 등도 추억의 포토존으로 손색없다. [여행수첩] ▶도치알탕이 제철 음식이다. 말랑말랑한 살과 오도독 씹히는 알을 묵은김치와 함께 끓여 내 시원하다. 영랑호 인근 포장마차촌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골뱅이무침, 도루묵구이, 간장새우장 등 별미를 곁들여 내는 집도 많다. 복성식당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 생선조림이 주메뉴다. 열기, 임연수어 등 현지에서 나는 생선들을 말린 뒤 맛깔나게 졸여 낸다. 속초항 인근에 있다. ▶영금정도 근래 야경 명소로 이름이 높아졌다. 원래 해맞이 정자로 유명했는데 뭍과 정자를 잇는 보도교에 경관 조명을 설치하면서 야경을 보러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 참기름·들기름 등 농특산 가공품 호응[고향사랑 기부제]

    참기름·들기름 등 농특산 가공품 호응[고향사랑 기부제]

    강원 화천군은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을 40여개 품목으로 구성했다. 답례품 중 농축산물은 물빛누리쌀, 한우, 표고버섯, 잣 등이고 가공품으로는 잔대진액, 가시오갈피진액, 참기름·들기름, 발효식초, 와인소금, 블루베리잼 등이 있다. 주류로는 블루베리 와인과 증류소주가 있다. 증류소주는 쌀, 누룩, 효모를 자연 압착한 뒤 장기간 숙성하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맛과 향이 깊다. 알코올 도수는 25도와 40도다. 산천어파크골프장과 백암산케이블카, 아쿠아리조트, 평화의댐 오토캠핑장, 만산동 국민여가캠핑장 등 관광지 이용권도 답례품에 포함됐다. 산천어파크골프장은 대한파크골프협회가 인증한 공식 규격의 18홀 2개 구장으로 이뤄졌고 총길이는 1.5㎞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굽이쳐 흐르는 북한강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능선이 어우러진 천혜의 풍광을 자랑한다. 백암산케이블카는 해발 1178m의 백암산 정상까지 오른다. 길이는 2.12㎞이고 이동시간은 15분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동안 6·25전쟁 당시 고지전이 치열하게 전개된 금성전투의 현장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원시림을 관찰할 수 있다. 정상에서는 평화의댐과 북한의 금강산댐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유영애 군 세외수입담당은 “우리 지역에서 생산한 농특산물과 가공품이 답례품의 다수를 이룬다”며 “연중 공모를 통해 신규 답례품을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 “내 집 밑에 매장된 유산 막막했는데… 국가 지원 덕에 부담 덜었어요”

    “내 집 밑에 매장된 유산 막막했는데… 국가 지원 덕에 부담 덜었어요”

    강릉 초당동 일대의 복합 유적지유산 301점 발굴 비용만 2억 넘어“국민 불편 덜고 조사 공공성 강화” “매장 유산(유물) 발굴 비용을 알 수 없어 막막했는데 국비 지원이 가능해 천만다행이었죠.” 강원 강릉 초당동에 사는 최종수(56)씨는 2022년 부모님과 어릴 때 살던 낡은 집을 신축하려다 난관에 부딪혔다. 앞서 신축하던 옆집에서 유산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발굴 조사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파 보기 전까진 얼마나 들지 가늠하기도 어려워 최씨는 낙담했다. 그렇다고 집을 수선해 사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6·25전쟁 이후 지어진 집은 웃풍이 심하고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최씨는 “주변에서 발굴 비용만 수억원이 들 수도 있다고 해서 처음엔 신축을 포기하고 밭으로 쓸 생각이었다”고 돌이켰다. 그런 그에게 희망이 생긴 건 소규모 공사 땐 발굴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국가유산청의 국비 지원 발굴 조사 사업은 민간 건설 공사와 관련한 매장 유산 조사를 국가가 지원해 경제 부담을 줄여 주고 매장 유산을 효과적으로 보호·관리하기 위해 2004년 도입된 제도다. 2010년 30억원이던 지원 예산은 지난해 242억원까지 늘었다. 올해는 198억원으로 예산이 줄었으나 정밀 조사 개별 상한액은 지난해 1억 5000만원에서 올해 3억원으로 올랐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는 ‘매장 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발굴된 매장 유산에 대한 현지 보존이나 이전 보존 조치에 따른 비용도 지원된다. 성토(흙쌓기), 잔디 심기, 매장 유산 이전, 안내판 제작 등을 위한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초당동 일대는 모래가 퇴적돼 형성된 사구 지역으로 신석기, 청동기, 철기, 삼국 시대에 이르는 주거지와 고분 유적이 함께 분포하는 복합 유적지다. 삼국 시대 동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영동지역과 신라의 관계 등 강릉 지역의 지정학적 위상과 관련한 학술적, 문화재적 연구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12월 사적으로 지정됐다. 최씨의 집터에선 원삼국 시대 주거지, 삼국 시대 목곽묘(나무덧널무덤), 석곽묘(돌덧널무덤), 옹관묘(항아리무덤)와 삼국 시대 토기, 금동귀걸이 등 유산 301점이 출토됐다. 발굴 비용만 2억 6000여만원이 들었지만 모두 국비로 지원됐다. 유산 이전 조치 뒤 집을 신축한 최씨는 “부모님이 새집을 보고 정말 기뻐하셨다”며 “해당 사업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형도 국가유산청 사무관은 “발굴 조사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들다 보니 개인에게는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비 지원 사업은 발굴 조사에 대한 국민의 불편한 시선을 없애고 조사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정부 “생포된 북한 병사, 희망하면 한국으로”

    정부 “생포된 북한 병사, 희망하면 한국으로”

    우크라이나에 생포된 북한 병사가 희망할 경우 한국 송환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 병사도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 볼 수 있는 만큼, 한국행을 희망한다면 우크라이나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북한 땅과 주민도 한국에 포함된다. 지난 1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에 억류된 우크라이나군을 인도하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생포한 북한군을 석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포로로 잡은 북한군 2명에 대한 심문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국으로의 귀순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국가정보원은 전날 “본인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며 “귀순 의사를 밝힐 경우 우크라이나 측과 협의하겠다”라고 했다. 전쟁포로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국제법인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전쟁 종료 후 포로 전원은 바로 석방 및 본국으로 송환돼야 한다.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의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의 의사를 존중해 이들을 대만, 스웨덴 등 제3국으로 보냈던 전례를 고려하면, 이번에도 관계국 간 협상에 따라 제네바 협약과는 무관하게 북한군 포로를 한국 등으로 데려올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 김장환 목사 ‘50년 인연’ 카터 前대통령 마지막 길 배웅했다

    김장환 목사 ‘50년 인연’ 카터 前대통령 마지막 길 배웅했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91) 목사가 대한민국 대표 자격으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민간 외교의 표상’으로서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았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이던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10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국장은 현지시간으로 9일 워싱턴DC의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버락 오바마·조지 W 부시·빌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전현직 대통령 5명이 집결한 가운데 치러졌다. 유가족의 뜻에 따라 현지 주재 공관장 외에 카터 전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인사들만 장례식에 초청된 가운데 한국에서는 김 목사가 명단에 포함됐다. 제이슨 카터 전 조지아주 상원의원이 조부인 카터 전 대통령의 병환이 깊어졌을 때부터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일이 생길 경우 꼭 와줬으면 한다’고 알렸고, 우리 외교부 또한 공식 요청한 끝에 김 목사가 한국 대표로 장례식에 참석했다. 6·25전쟁 당시 미군 하우스보이로 일했던 김 목사는 미군 상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70년대 초반 카터 전 대통령이 조지아주 주지사였을 때부터 인연을 이어 왔다. 침례교 목사와 침례교 집사로 같은 교단이라는 점이 가교가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이 39대 미국 대통령 신분으로 1979년 방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의 의전을 맡았던 김 목사는 물밑에서 위기의 한미 관계를 개선하는 데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카터 전 대통령 별세 직후 녹음한 특별 대담에서 “미국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매우 겸손했으며 일평생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하며 “카터가 떠나기 전 ‘이제 아내와 하나님 곁으로 간다’며 즐겁고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고 애도했다. 이번 장례식에선 트럼프 당선인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트럼프 1기’ 때 핵심 측근이었던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와 인연이 깊어 트럼프 당선인과의 접촉 여부에 촉각이 쏠렸다. 원래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적 기반은 미국 남부의 기독교 백인이고 그 중심에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가 있다고 한다. ‘미국 개신교계 대부’였던 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남인 프랭클린 목사가 현재 대표다. 김 목사는 197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 대회’에서 통역을 맡아 널리 이름을 알렸으며 2023년 프랭클린 목사를 초청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50주년 기념 대회를 열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러한 인맥을 바탕으로 2016년 말 당시 미국의 45대 대통령 당선을 확정한 트럼프 당선인과 한국 탄핵 국면에서 유력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통화를 주선한 것을 비롯해 이후 정상회담 성사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대신 김 목사는 이번 장례식에서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 부부 등을 만나 안부를 나눴다. 2022년 3월 펜스 전 부통령의 방한 때 김 목사는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조찬 면담을 주선하고 배석해 통역하기도 했다. 11일 귀국한 김 목사는 오는 20일 열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 6ㆍ25 전사자 신원 확인 이재성씨 대통령 표창

    6ㆍ25 전사자 신원 확인 이재성씨 대통령 표창

    경복궁 낙서복원 정소영 총리 표창KF-21 전력화 정태일 근정포장 주인을 잃은 군용 수통. 흙이나 부식 화합물로 덮여 있던 표면에는 탄흔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9개나 뚫려 있었다. 수통의 주인은 1953년 7월 13일 화살머리고지 전투 중 전사한 일등중사 임병호. 그의 나이는 고작 23세였다. 이재성(52)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학예연구사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임 중사의 수통을 비롯한 1300여점의 6·25전쟁 전사자 유품에 대한 보존 처리를 담당하며 8명의 신원 정보를 복원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런 공로를 높이 평가받은 이 연구사가 ‘제10회 대한민국 공무원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고 국가유산청이 2일 밝혔다. 그동안 많은 문화유산을 보존 처리해 온 이 연구사였지만 유품 관련 작업은 의미가 남달랐다. 흙이 잔뜩 묻은 숟가락에서 희미하게 남겨진 ‘오얏 리(李)’ 자를 발견하고 철모에서 부대 마크를 찾는 등 전사자의 신원을 복원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의 손을 거쳐 보존 처리된 유품들은 2023년 10월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 특별전시 ‘다시 부르는, 이름’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 연구사는 “1000년 전 유물은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 알기 어려운 것들이 많지만, 6·25전쟁 전사자 유품의 경우 그 가족이 우리 이웃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가까이 와닿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23년 12월 ‘스프레이 낙서 테러’로 훼손된 경복궁 담장을 복구하는 현장 책임자였던 정소영(50) 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방위사업청도 고난이도 비행 제어 기술을 독자 개발해 한국형 전투기(KF-21) 전력화에 이바지한 정태일(56) 수석전문관과 국내 레이저 무기 개발을 이끈 이상윤(45) 전문관이 각각 근정포장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국내 최초로 재난심리전담반을 꾸린 심민영(49)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이 홍조근정훈장, 텔레그램 마약방 잠입 수사로 마약 사범 68명을 검거하고 15명을 구속한 최순신(49) 천안동남경찰서 경위와 재난에 더 취약한 장애인을 위한 대피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한 신민규(48) 인천검단소방서 소방경이 각각 옥조근정훈장을 받는 등 33개 기관 55명(훈장 3명, 포장 9명, 대통령 표창 21명, 국무총리 표창 22명)이 대공상을 받았다.
  • ‘6·25 영웅’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 영웅’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쟁 당시 ‘734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오두용 하사의 유해가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30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 따르면 오 하사의 유해는 지난 10월 강원 철원군 근남면 적근산 일대에서 발굴됐다. 유해 인근에서 인식표도 발굴돼 오 하사의 신원을 발굴 40일 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 유해와 인식표가 함께 발견된 것은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 245명 중 42명(17%)뿐이다. 국유단은 병적 자료를 통해 오 하사의 본적지가 경남 고성군인 것을 확인하고 고인의 여동생 오점순(89)씨와 친·외조카를 찾아내 유전자 시료 분석을 통해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1931년 고성에서 태어난 오 하사는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11월 19세 나이로 부산 제2훈련소에 입대했다. 이후 육군 2사단 17연대에 배치돼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과 ‘청계산·백운산 진격전’에 이어 1951년 8월 734고지 전투에 참전해 중공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당시 국군은 철원군 근남면 적근산과 김화읍을 연결하는 중부전선의 주요 지역인 734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중공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국유단은 이날 오 하사의 고향에 위치한 유가족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가졌다. 오 하사의 동생 오씨는 국유단의 연락을 받기 전날 밤 꿈에서 어린 시절 고향 집에 들어오는 오빠를 마주했다고 한다. 오씨는 “오빠 생각에 한없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유 없는 눈물과 통곡이 나왔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오 하사와 함께 입대한 작은형 고 오재용씨는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채 귀향한 뒤 상이군인으로 지내다 33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 ‘한국 피아노 선구자’ 한동일 피아니스트 별세

    ‘한국 피아노 선구자’ 한동일 피아니스트 별세

    한국인 최초 해외 콩쿠르 우승의 기록을 남긴 1세대 글로벌 피아니스트 한동일이 지난 29일 세상을 떠났다. 83세. 고인은 우리나라 ‘음악 신동 1호’로 불린 연주자로 그의 연주를 듣고 감명한 주한미군 사령관의 도움을 받아 6·25전쟁 직후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65년에는 리벤트리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한국인 최초 국제 콩쿠르 우승이었다. 194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교회 찬양대 지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 노래를 들으면 바로 피아노로 옮겨 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고인은 미국 인디애나 음대에서 1969년 가을부터 학생을 가르쳤고, 이후 37년 동안 텍사스 주립대, 일리노이 주립대, 보스턴 음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201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으며, 울산대·순천대에서 석좌교수 등을 지내며 최근까지도 연주 활동을 이어 왔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고인에 대해 “우리나라를 소위 피아노 강국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에 있어서 가장 선구자적 역할을 하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1월 1일 마련될 예정이다.
  • 74년 만에 고향으로…호국영웅 고 오두용 하사 경남 고성 귀환

    74년 만에 고향으로…호국영웅 고 오두용 하사 경남 고성 귀환

    1950년 한국전쟁 중 조국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한 호국영웅이 7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경남 고성군은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노력 끝에 신원이 확인된 고 오두용 하사 유해를 고향인 고성으로 모셨다고 30일 밝혔다. 군은 이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주관으로 ‘호국 영웅 귀환 행사’가 고성읍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고 설명했다.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난 오두용 하사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1월 30일 입대했고 이듬해 8월 3일 강원도 철원에서 전사했다. 그의 유해는 올해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철원 지역에서 발굴됐다. 유가족 유전자 정보(DNA)와 대조 작업을 거쳐 신원이 확인됐다. 귀환 행사는 유해를 모신 차량이 마을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유가족과 국방부, 고성군, 주민 등이 고인 귀환을 맞았다. 신원확인통지서와 함께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전달됐고 헌화, 경례 등도 이어졌다. 유가족은 “긴 기다림 끝에 고인을 고향으로 모시게 되어 기쁘다”며 “가족 곁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상근 고성군수는“호국영웅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며 조국을 지켜내신 호국영웅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예우에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김형재 서울시의원, 청소년이 뽑은 ‘대한민국 청소년 희망대상’ 수상

    김형재 서울시의원, 청소년이 뽑은 ‘대한민국 청소년 희망대상’ 수상

    서울특별시의회 김형재 의원(국민의힘, 강남2)이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한국청소년재단(이사장 김병후) 주최 ‘제9회 대한민국 청소년희망대상’시상식에서 광역의원 부문상을 수상했다. 201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9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청소년희망대상은 청소년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법률·조례 제정 및 관련 정책과 사업을 펼친 국회의원·기초자치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을 발굴·선정해 시상한다.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등이 후원했다. 이날 시상식을 주관한 한국청소년재단은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20일까지 1차 심의위원회를 거쳐 전국 청소년 1,359명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서 청소년특별회의·청소년참여위원회·전국청소년운영위원회 대표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청소년들은 김형재 의원을 비롯해 선정된 23명의 부문별 수상자에게 직접 상패를 시상했다. 김 의원은 전국의 청소년들로부터 지난 2년간 초·중·고 학생 대상 통일안보교육이 확대·실시될 수 있도록 노력해온 점을 높이 평가받아 수상의 영예를 얻게 됐다. 실제로 김 의원은 서울시의회 본회의 시정질문에서 조희연 전 교육감에게 초·중·고 학생 대상 통일안보교육을 실시할 것을 2차례나 요청한 바 있다. 이어 2023년 10월 교육감에게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서울시교육청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동 조례안은 2023년 11월에 의결됐다. 이후 교육청은 김 의원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2023 학교로 찾아가는 통일버스’ 운영계획을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학교로 찾아가는 통일버스’ 사업이란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분단의 아픔을 직접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통일안보현장 체험학습 장소를 선택해(서해수호관 및 천안함전시관, 강화도 안보전적지 등) 현장체험학습 버스와 통일안보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업으로 ▲2023년 50팀, 1200명이 참여했고 ▲2024년 올해에도 120팀, 3100명 규모로 사업이 진행됐다. 김 의원은 “6·25전쟁을 남침이 아니라 북침으로 잘못 알고 있는 학생들이 아직도 많다는 오늘날의 교육 현실이 안타까워 청소년들로 하여금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시키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렇게 뜻깊은 상을 받게 되어 무척이나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수상은 청소년들이 직접 수상 후보자들의 실적을 하나하나 평가해 직접 수상자를 선정했다는 점에서 그 어느 상보다도 의미가 값진 것 같다. 더 열심히 해달라는 의미로 알고 앞으로도 미래세대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입법 및 정책 마련에 계속 노력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 MZ세대 변화에 쫄았나… 北 “사상 교육 소홀히 말아야”

    MZ세대 변화에 쫄았나… 北 “사상 교육 소홀히 말아야”

    북한이 제국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며 청년 세대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조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피맺힌 과거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라는 기사에서 “제국주의와 착취계급의 압제와 학정을 받아보지 못한 새 세대들이 그 피비린 행적과 악마와 같은 존재를 한시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대를 이어 계속되는 반제계급투쟁의 첫째가는 과제”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제 ‘착취’나 ‘전쟁’은 예술 작품에서나 보아온 세대들이 혁명의 주력을 이루고 있다면서 이들이 일제강점기와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계급적 각성이 무뎌지면 부르주아 반동사상에 물젖게 된다”면서 “세대가 바뀌어도 계급교양 사업을 한시도 늦출 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제국주의자들과 계급적 원수들의 야수성과 악랄성, 잔인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중앙계급교양관과 신천계급교양관 등 계급교양 거점들에 대한 참관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하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문은 이날 별도 기사에서도 6·25전쟁 시기 기록이 남아있다는 신천계급교양관을 소개하며 미국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이 이처럼 젊은 세대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조한 것은 상대적으로 체제 수호에 관심이 덜하고 외부 문물에 열려있는 청년들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탈북 청년들은 유튜브 등을 통해 요즘 북한 청년들이 과거 세대보다 자유분방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은 청년층이 남한과 서구 문화에 노출돼 사상이 이완되지 않도록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 등을 잇달아 제정하며 통제의 고삐를 죄어왔다. 그러나 젊은 세대로부터 이는 변화를 다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내부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그만큼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문성호 서울시의원 “국군포로 진상규명·명예 회복에 관한 법률 제정 촉구 건의안 만장일치 가결”

    문성호 서울시의원 “국군포로 진상규명·명예 회복에 관한 법률 제정 촉구 건의안 만장일치 가결”

    서울시의회 문성호 의원(국민의힘, 서대문2)이 직접 발의한 ‘6·25전쟁 국군포로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서울시의회 제327회 6차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81명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고, 국군포로가 억류지에서 받은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의 취지와 필요성을 여야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대한민국 국회에 전하게 됐다. 문 의원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넘은 지금, 정전협정 후 대한민국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는 약 8000명에 불과하고, 약 6만여명의 국군포로는 아직도 귀환하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추정하는 수일 뿐”이라고 제안하게 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문 의원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국군포로에 관해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로 필요한 바를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송환되거나 귀환한 용사들에 대한 지원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 북한 억류지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은 피해 등에 대한 진상규명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 의원은 “현재 우리가 아는 정보는 40년 동안이나 억류되어 온갖 고생 속에 목숨을 건 탈북으로 귀환한 조창호 소위(1994년)와 장무환 일병(1998년) 등 생사를 넘어 전해온 증언이 전부인 상황이다.”며 국군포로에 대한 국가적 무관심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또한 문 의원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던 그분들에게 마땅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하나, 현재 국군포로의 정확한 규모는 물론이고 그 후손들의 실태도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를 보완하고자 필요로 하는 정보는 민간차원에서 한계가 있고, 타국과의 협조 및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기에 국무총리 소속의 직속 기구를 두어 적극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법적 근거 마련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끝으로 문 의원은 “본 법률안은 지난 2021년 6월 24일, 당시 조태용 국회의원 등 29인이 발의하여 제390회 국회 임시회 국방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안타깝게도 2024년 5월 29일 제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며 폐기되고 말았다. 이번 제22대 국회는 이를 반드시 제정하여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목숨 바친 그 충정에 보답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여야 할 것 없이 만장일치로 힘을 보태줘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선배 동료 서울시의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북한군 죽으면 러시아 묘지로…‘영웅’ 대접도” 北, 체제 선전 활용하나

    “북한군 죽으면 러시아 묘지로…‘영웅’ 대접도” 北, 체제 선전 활용하나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사망하면 북한 당국이 현지에 ‘북한지원군묘’를 조성하고 체제 선전에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고재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11일 발표한 ‘최근 북한의 장의법 개정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라는 제목의 이슈브리프를 통해 최근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개최하고 지난해 3월 채택한 ‘장의법’을 수정·보충한 사실을 조명했다. 고 연구위원은 ‘장의법’ 전문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시기적으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북한군 사망자 장례에 대비한 법적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일반적으로 북한군의 장례는 해당 부대장의 주도하에 가족의 참여 없이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후 부대 소재지에 있는 북한군 공동묘지에 안치하고 가족에게 사망통지서를 보낸다. 다만 자살자나 범죄자의 경우는 장례 없이 부대 뒷산에 관 없이 매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이외의 지역에서 사망한 북한군의 유해는 정치적 중요성을 고려해 대내 선전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게 고 위원의 분석이다. 북한은 경기 파주시에 있는 북한군묘지의 유해는 70여년 동안 인수하지 않은 반면 베트남 참전 북한군 유해와 ‘강릉 무장침투공비’의 유해는 인수해 대내 선전용으로 활용했다. 고 연구위원은 “북한군의 유해를 대내 정치 선전용으로 활용하기는 김정은도 마찬가지”라며 “따라서 러시아 파병 북한군이 사망할 경우 러시아 현지에서 장례를 치르고 현지에 북한지원군묘를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또한 일부는 영웅으로 칭하고 유해를 송환해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6·25전쟁참전열사묘에 안치할 것으로 봤다. 고 연구위원은 “현재 파병 북한군의 수가 약 1만 2000여명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고 내년까지 북한군 파병 인원을 총합 5만~10만명으로 가정할 경우 최소 사망자 약 1000명 이상, 부상자 2000여명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전투 중 사망자 가족들과 부상자인 영예군인들은 원호사업 규정에 따라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과거 베트남에 북한군묘지를 풍수를 보고 선정했던 것처럼 러시아에서 풍수 좋은 곳에 공동묘지 형태의 북한지원군묘를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이 ‘6.25전쟁참전열사묘’의 묘주는 노동당이라고 밝혔듯이 러시아 파병 북한군은 죽어서도 노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 선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어린 자식 두고 떠났던 6·25 참전용사, 7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어린 자식 두고 떠났던 6·25 참전용사, 7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조국 수호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호국영웅 두 명의 신원이 70여 년 만에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05년과 2011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안병오 일병과 안희문 하사로 확인했다”면서 “서울 서대문구와 경기 부천에 있는 유가족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열었다”고 13일 밝혔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44명이 됐다. 1922년 3월 경기도 광주 출생의 안 일병은 29살의 늦은 나이에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아내와 세 아이를 남겨둔 채 1951년 1월 31일에 입대했다. 국군 제5사단에 배치된 안 일병은 1951년 5월 16~18일 소양강 방어선을 구축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했던 ‘어론리 전투’에 참전했다가 입대 반년도 안 된 시점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2005년 4월 강원 춘천시 만천리 일대에서 발굴됐다. 아버지가 입대했을 당시 1살이었던 안난순(74)씨는 2009년 시료를 채취했으나 당시 기술로는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 2019년 한 번 더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고 지난 3월 과거 발굴 유해 유전자를 재분석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부녀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26년 2월 경북 문경 출생의 안 하사는 결혼 후 농사를 지으며 생업을 이어가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아내와 뱃속의 아들을 남겨둔 채 자진 입대했다. 이후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춘천 내평리 지역에서 방어선 구축 중에 적을 저지하다 입대 한 달 만인 1950년 12월 26일 전사했다. 국유단은 2011년 5월 강원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 일대에서 전문 발굴 병력과 함께 유해발굴을 하던 중 개인호 안에 누운 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의 유해를 발굴했다. 국유단은 안 하사의 병적자료에서 경북 문경이 본적지임을 파악한 뒤 고인의 친조카 안도현(77)씨와 증손자 안태일(45)씨를 찾아 유전자 시료 채취 및 정밀 분석을 거쳐 가족 관계임을 확인했다. 안난순씨는 “젊은 나이에 혼자 3남매 키우느라 고생만 하신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버지 유해를 찾았으니 현충원에 엄마 유해와 합장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안도현씨는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삼촌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좋지 않았다. 국립묘지에 꼭 안장해드리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6·25전쟁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시료 채취에는 전사자 친·외가 포함 8촌까지 참여할 수 있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 신원이 확인될 경우 포상금 1000만원이 지급된다. 유전자 시료 채취 등 관련 문의는 국유단 대표전화(☎1577-5625)나 홈페이지(https://www.withcountry.mil.kr/mbshome/mbs/withcountry/)를 통해서 할 수 있다.
  • 이름 없는 220명의 6·25 용사들 ‘합동봉안식’ 개최

    이름 없는 220명의 6·25 용사들 ‘합동봉안식’ 개최

    국방부는 1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올해 발굴된 6·25 전사자 221구 유해 가운데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무명용사 220구에 대한 합동봉안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김선호 국방부 차관(장관 직무대행),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육·해·공군과 해병대, 경찰청, 재향군인회 주요 인사, 유해발굴에 직접 참여했던 장병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유해발굴 사업경과 보고,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추모사, 영현 봉송 순으로 진행됐다. 올해 유해 발굴은 지난 3월부터 12월 초까지 강원 철원·인제, 경북 영천·칠곡 등 6·25전쟁 격전지였던 35개 지역에서 이뤄졌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과 전국 각지의 30개 사·여단급 부대 장병들이 산악지형과 악천후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해 221구의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1구는 1951년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 강원도 인제에서 벌어진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박갑성 하사로 신원이 확인되기도 했다. 국유단은 지난 10일 유족에게 유해와 유품을 전달했다.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220구는 합동봉안식 이후 국유단 신원확인센터 내 유해보관소에 모실 예정이다. 유해보관소 내 임시 안치된 유해들은 유가족 유전자 비교·분석 등 신원확인 과정을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2000년 6·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현재까지 수습한 국군 전사자 유해는 총 1만 2000여구이고 245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6·25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많은 참전용사가 전국의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들어 계신다”며 “정부는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준 영웅들이 계셨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의 덕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부산국제영화제 성공 요인은 ‘정치 중립’… 지원하되 간섭 배제”[서동철의 노변정담]

    “부산국제영화제 성공 요인은 ‘정치 중립’… 지원하되 간섭 배제”[서동철의 노변정담]

    문공부 재직 때 예술의전당 건립영진공 사장 맡고 ‘K영화 알리기’국제영화제 대표단·포상 제도화난관 뚫고 남양주에 종합촬영소‘피란 추억’ 부산서 또다른 인생길창립 주도했던 국제영화제 성공모든 영화 선정에 일절 관여 안 해감독 데뷔… ‘칸’서 인생다큐 상영도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우리 영화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편으로 영화는 K팝이나 K드라마처럼 K라는 접두사가 붙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는 데 김 전 위원장이 선구적 역할을 했음은 이렇듯 자명하다. 그는 지금 경기 광주시 분원리에 살고 있다. 그림 같은 팔당호수의 품에 안긴 아름다운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그릇을 만들어 공급한 사옹원 분원이 있었던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창밖 호수 너머 다산 정약용이 살던 마재가 멀리 바라보이는 자택 서재에서 그를 만났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이지만 필자에게는 여전히 대표적 문화관료로 인상지어져 있다. 문화부 출입기자 시절 차관으로 부임한 그를 처음 만났고 이후에도 소통할 기회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공직 이력 가운데 하나가 예술의전당 사장이다. 1992년 2월 24일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에 올랐지만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 20일 문화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술의전당은 문화공보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기획에 참여하고 부지 선정과 설계자 선정 과정도 주도했어요. 서울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만들려면 상징적인 복합 문화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부지로 가장 먼저 물망에 오른 곳은 지금의 대법원 자리였어요. 하지만 군 정보사령부 부지와 정부 땅을 교환하고 착공하면 올림픽 전까지 완공이 불가능했어요. 결국 지금의 예술의전당 자리를 1안으로,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선 옛 서울고등학교 터를 2안으로 보고했지요.” 그는 사장에 취임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곧바로 예술의전당에서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까지 지하로 연결하는 계획을 세웠다.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예술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추진력을 생각하면 사장 재직 기간이 조금만 길었어도 현실화됐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세계적 위상 K콘텐츠’ 선구적 역할 김 전 위원장이 차관으로 부임한 이후 출입기자들과 가졌던 첫 번째 저녁 자리가 기억이 난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밥을 사는 사람은 술을 받을 때 “조금만 달라”고 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달랐다. 20명 남짓한 출입기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예외 없이 술잔을 채워 주고 다시 가득 받았다. 그것도 한 순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마치고 떠날 때는 많은 신문이 ‘술로 영화제를 성공시켰다’거나 ‘술로 세계 영화계를 제패했다’는 기사를 실은 것을 알지 않느냐”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문공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우고 퇴직한 1988년 4월 영화진흥공사 사장이 됐다. 당장 영화감독협회에서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영화계 인사들의 반응은 싸늘한 것을 넘어 살벌할 지경이었다. “그럴 만도 했어요. 1973년 영화진흥공사 창설 이후 제 이전에 다섯 분의 사장이 거쳐 갔는데 초대 김재연 사장을 제외하곤 모두 예비역 장성 출신이었습니다. 제가 주무 부처에서 일했다고는 해도 영화인은 아니었으니 반대는 당연했을 겁니다.” 이때 “영화판에서 살아남으려면 영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화인들을 만났다. 4월 4일 사장에 취임했는데 5월 16일에는 벌써 문공부 장관에게 영화진흥계획을 보고할 수 있었다. 영화계의 원로 및 중진뿐 아니라 젊은 감독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크고 작은 영화계 행사에 반드시 참석했고 얼굴을 몰라도 영화인의 경조사는 아무리 멀어도 찾아갔다. 영화진흥공사 사장에 임명됐을 때까지는 영화를 즐겨 보지 않았다고 한다.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영화에 빠져들었고 조금씩 ‘준영화인’으로 발전해 나갔다. ●강수연 등 해외영화제 여우주연상 토대 “영화인들을 만나면서 우리 영화의 해외 진출과 종합촬영소 건립이 영화 발전에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사장 임기 중 이 두 가지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우리 영화를 해외에 알리고자 중요한 국제영화제에 대표단을 구성해 참여했어요. 이것이 몬트리올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신혜수와 강수연이 각각 여우주연상을 받는 토대가 됐습니다.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면 제작사에 보상금을 주고 당사자에게는 훈장과 포장을 주는 것도 제도화했어요.” 종합촬영소 건립에도 착수했다. 1983년 3월부터 틈나는 대로 서울 사방 100리의 국유지와 경기도유지를 찾아다녔다. 4월 24일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김원 건축가와 남양주군 조안면 삼봉리를 돌아보고 촬영소 자리로 확정할 수 있었다. 상수도 보호구역이어서 난관에 봉착했지만 돌파했다. 그는 “오기와 집념,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이 남양주 촬영소”라고 했다. 종합촬영소 건립 과정에도 그의 술 실력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촬영소가 들어설 조안면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자 마을회관에서 건립 계획을 설명하고 저녁을 냈는데 100명 남짓한 참석자들과 소주 한 잔씩을 주고받았다. 최소한 100잔의 소주를 마신 꼴이다.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주당’이었지만 우리 나이로 70세를 맞이한 2006년 1월 1일 술을 완전히 끊었다. 술 실력이 막강했던 만큼 단숨에 끊은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술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그때 술을 끊은 것이 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웃었다. 이제 종합촬영소는 영화진흥공사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진흥위원회의 부산 이전과 함께 기장에 다시 세워지고 있다. 실내 스튜디오 3개동과 오픈 스튜디오, 제작지원 시설이 갖춰진 국내 유일의 종합촬영 시설은 2026년 9월 완공된다. 김 위원장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광산을 했고, 풍수에 밝은 한학자였던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름을 ‘동쪽의 호랑이’라고 짓고는 채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직후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는데 종로구 충신동 언덕은 비가 오면 축대가 무너지고 물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원남동으로 이사하고는 재동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300명을 뽑는 경기중학교에 100명이 합격했다고 한다.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이 터졌고 가족은 부산으로 피란했다. ●부산서 피란 생활… 모판 메고 행상도 “부산에선 봉래동의 피란민수용소에서 지냈는데 국제시장에서 오징어를 사서 광복동, 남포동, 부산시청 앞을 뛰어다니며 팔았어요. 모판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행상도 했어요. 양담배와 미제 과자, 라이터 같은 물건을 받아다가 팔았습니다. 어느 날 보수동에 좌판을 펼쳐 놓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선배가 용두산공원에 경기중학교 분교가 생겼다고 알려 줘 학교를 다시 다녔지요.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피란 생활을 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에게 부산은 ‘애환의 도시’였다. 서울에 돌아온 가족은 청량리 초가에 한 칸 방을 얻어 살았다. 서울대 법과대학을 다녔는데 왜 고시를 보지 않았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지만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에 도전하는 것은 가정 형편도 그렇거니와 공부할 여유가 없으니 자신도 없었다. 1961년 9월 졸업을 앞두고 일자리가 급했던 그는 공보부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누구나 겪은 피란살이였지만 부산의 4년은 비록 어떤 난관에 부닥칠지라도 혼자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처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이런 추억이 담긴 부산에서, 부산을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지요. 이때부터 인생 행로가 관료에서 영화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할 수 있지요. 부산에서 명실상부한 영화인이 된 것입니다.” ●관료서 영화인으로 완전히 탈바꿈 김 전 위원장이 창립을 주도한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9월 13일 제1회 행사의 막이 올랐고 이후 엄청난 성공을 이어 간 것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개막 행사가 끝난 뒤 해운대 조선비치호텔에서 미포에 이르는 포장마차는 국내외 영화인들이 모두 점령하다시피 했다. 그는 해운대 포장마차의 비치파라솔을 모래사장으로 옮겨 외국의 주요 영화인을 대접했는데 술값이 80만원이 나왔다. 신용카드로 계산하려 했지만 포장마차 주인은 “카드받는 포장마차 봤느냐”며 거절했다. 그는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현금 80만원 들고 다니는 것 봤느냐”고 버텼다. 결국 주인이 어디선가 카드 결제기를 들고 와 소동은 끝났다. 이 스토리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을 거듭하면서 해운대 포장마차촌 일대의 전설로 남았다고 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성공으로 이끈 요인을 묻자 그는 뜻밖에 ‘정치적 중립’이라고 했다. 자신의 신념은 간단명료했는데 첫째는 개폐막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화의 선정을 프로그래머에게 맡기고 집행위원장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둘째는 장관이나 정치인이 무대에 올라가거나 연설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했다. 대통령선거 때 각 당 유력 후보들이 개막식에 참석해도 인사를 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지원은 하되 간섭을 배제한다는 원칙을 관철했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2012년 영화 심사 과정을 담은 단편영화 ‘주리’를 연출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주리’는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후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선 그의 영화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가 상영되기도 했다. 배우로는 1998년 이재용 감독의 ‘정사’와 2004년 프랑스 클레르 드니 감독의 ‘개입자’(Intruder)에 조선소 사장 역할로 출연했다. ‘영원한 현역 영화인’으로 대접받는 그의 서재 한켠에는 영화감상실이 있다. 그는 요즘 이 공간에서 마을 주민들을 위한 영화상영모임을 종종 갖는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도 참여했다니 누구라도, 아무리 먼 곳에서도 찾아가고 싶은 영화 모임일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이 주민이 되면서 도자기 마을 분원이 영화가 있는 현대적 문화 마을로 발전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듯싶다. ■ 김동호 전 위원장은 1937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61년 공보부에 들어간 이후 문화공보부 문화·보도·공보·국제교류국장과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했다. 영화진흥공사 사장, 예술의전당 사장, 문화부 차관, 공연윤리위원장, 문화융성위원장을 역임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창설해 17년 동안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1997년 로테르담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시작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을 비롯해 30차례 이상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빙됐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객원교수와 첨단영상대학원 연구교수로 활동했고 2012년에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신설해 초대 원장으로 재직했다. 황조근정훈장과 은관문화훈장, 프랑스 정부의 예술문학훈장 기사장과 최고영예훈장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를 받았고 유네스코 펠리니상을 수상했다.
  • [사설] 김정은 “러 영토 평정 지지”… 깊어지는 북러 불법 거래

    [사설] 김정은 “러 영토 평정 지지”… 깊어지는 북러 불법 거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조기 종식”을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정부의 출범을 목전에 두고 한 치라도 영토를 더 확보하고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이 갑작스레 북한을 방문한 목적이 무기와 병력의 추가 지원 요청이라는 사실은 말할 나위도 없다. 불법적인 거래의 대가로 북한이 받을 핵·미사일 기술과 신형 무기는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으니 남의 일이 아니다. 김정은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정을 수호하려는 러시아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완정(完整)은 분리됐던 땅을 다시 찾아 국토를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김일성이 1949년 신년사에서 “국토 완정”을 선언하고 남침 준비를 시작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정은은 지난 3월 6·25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한 탱크부대를 찾아 “남조선 영토 완정”을 독려했다. 북한은 러우 전쟁을 ‘새로운 침략 전쟁의 전초전’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그동안은 북러 군사적 밀착에 상대적으로 중국의 소외감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전폭기와 전투기 6대가 동해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면서 그 기대도 깨졌다. 독도 주변에서는 긴급 발진한 한국과 일본 전투기가 중러 군용기와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이 빚어졌다. 중국은 전투기에 그치지 않고 해군 함정도 동해에 진입시켰다. 북러에 중국이 더해진 협공으로 위협은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 차기 대통령은 내년 1월 20일 취임한다. 그때까지 우리 정부가 과감하게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을 펴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트럼프 취임 이후를 대비하는 주도면밀한 안보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편으로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자주국방 노력에는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고도 50~60㎞의 적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L-SAM을 독자 개발해 1단계 다층방어망을 완성한 것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 “중공군 막다 전사”…이순신만큼 용감했던 스물셋 청년,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중공군 막다 전사”…이순신만큼 용감했던 스물셋 청년,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1952년 10월 6일. 강원도 철원 서북방 12㎞ 지점인 백마고지(395고지)에서 중공군과 국군의 전투가 시작됐다. 백마고지는 고암산과 효성산이 교차해 남쪽으로 흐르는 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야산으로 철원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이자 물자 보급로로서 국군에게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당시 국군 제9사단 제30연대는 다음날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네 차례나 막아냈다. 이후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망한 국군은 총 504명. 이들이 목숨 걸고 백마고지를 지킨 덕에 중공군은 8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고 결국 물러나야 했다. 백마고지를 지키다 사망한 수많은 청년 중 하나가 바로 이성덕 중위(당시 소위)다. 국가보훈부는 이 중위를 ‘2024년 1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929년 1월생인 이 중위는 육군갑종사관후보생 제9기로 1952년 1월 5일 육군소위로 임관해 국군 제9사단 제30연대 제3대대에 배속돼 제11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이 중위는 당시 중공군이 백마고지로 남하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북쪽 전초진지인 ‘화랑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은 화랑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켰으나 이 중위가 소속된 11중대는 중공군의 거듭된 공격을 거푸 막아냈다. 중공군이 10월 7일 다시 공격에 나섰고 탄약과 식수조차 부족한 상태로 고지를 사수하던 11중대는 결국 포위됐다. 이 중위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소대원들을 독려해 적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고 전사했다. 그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이 중위가 지키다 사망한 화랑고지는 한때 중공군에 내줬으나 10월 15일 제29연대가 화랑고지 선상의 전초진지를 확보하면서 전투에서 승리하는 발판이 됐다. 많은 청춘이 스러져간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활약한 이 중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소위→중위)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1952년)과 화랑무공훈장(1954년)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가보훈부는 이번에 그를 12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국가보훈부는 이와 함께 세 명의 외국인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발표했다. 주인공은 아일랜드 선교사인 패트릭 도슨,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어거스틴 스위니. 우리 민족에게 일제의 패망을 정확히 예언하고 독립의 희망을 전한 공로다. 아일랜드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인 세 사람은 1930년대 내한해 제주도에서 활동했다.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중반 일제의 침략전쟁이 절정에 달하고 일제가 언론을 통제하고 승전만을 과장 보도할 때 세 사람은 “중일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일본은 물자 부족으로 패전한다”, “미국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의 승산은 없다” 등 정확한 상황을 한국인들에게 전했다. 진실을 말했음에도 세 사람은 유언비어 유포와 불경 혐의로 1941년 12월 체포됐다. 10개월 후인 1942년 10월 도슨은 ‘육군형법 및 해군형법 위반 및 불경죄’로 징역 2년 6개월, 라이언과 스위니는 ‘육군형법 및 해군형법’ 위반으로 금고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전한 소식은 진실이 됐고 일본은 1945년 8월 항복했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세 사람도 자유의 몸이 됐다. 광복 후에도 한국을 도왔던 이들은 각각 1989년(도슨), 1971년(라이언), 1980년(스위니) 선종했다. 정부도 이들이 베푼 선의를 잊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1999년 도슨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라이언과 스위니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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