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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입양 수출 강국/박정현 논설위원

    러시아는 올해부터 러시아 아동들의 미국 입양을 법으로 금지했다. 러시아의 조치는 아동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양국 간 외교분쟁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나왔다. 미국이 러시아인 인권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피살사건에 연루된 관련자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자 러시아는 입양금지로 맞대응한 것이다. 러시아 고아 46명이 오기를 기다리던 미국인 부부들의 희망은 좌절됐다. 러시아는 아동 입양을 미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 무기로 사용한 셈이다. 미국에 입양된 러시아 아동은 모두 4만 5000명으로 지난해에만 970명이 입양됐다. 러시아의 미국 입양 아동은 중국 2589명, 에티오피아 1727명에 이어 세번째다. 해외 입양이 까다로워지는 게 국제적인 추세인 모양이다. ‘아동 수출 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도 아동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 입양을 제한하고 있다. 6·25전쟁이 끝난 뒤 1955년 해리 홀트 부부에 의해 시작된 우리나라 해외 입양의 역사는 1980년대 한 해 9000명으로 피크를 이뤘다. 2000년대에도 1000명을 넘었지만 2007년 해외입양쿼터제를 도입한 뒤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미국 입양은 지난해에는 734명으로 러시아에 이어 네번째다. 우리나라는 작년 8월부터 해외 입양을 까다롭게 한 입양특례법을 시행하고 있다. 해외 입양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헤이그 국제아동 입양협약’ 가입도 추진 중이다. 전체 해외입양자가 16만명이 넘는 나라로서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특례법은 입양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입양 전에 먼저 출생신고를 하도록 했다. 출생정보와 관련한 입양아동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다. 입양아동이 성장한 뒤 친부모를 찾으려 해도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는 등 안타까운 사정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막상 법이 시행되자 한 달 평균 60명을 넘던 해외 입양은 절반으로 줄었다. 입양을 보내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호적에 아이를 올려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미혼모들이 공개 해외 입양을 꺼리기 때문이다. 대신에 종교단체 등에 몰래 아이를 갖다 버리는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한 달 새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엊그제 1면에 생후 18개월 된 한국계 입양아 ‘해나’의 사진과 함께 입양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미국 가정에서 입양을 하기가 한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영문도 모른 채 해외로 떠나는 ‘슬픈 어린이’들을 방치한 채 국격을 논할 수는 없다.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을 생각해 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부고] 김윤호 前 합참의장 별세

    제18대 합참의장을 지낸 김윤호 예비역 육군 대장이 지난 12일 오후 6시 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84세. 고인은 1950년 7월 육군사관학교 10기생으로 임관해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제9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 제1야전군사령관, 합참의장 등을 지낸 뒤 예편해 대한석탄공사 및 한국가스공사 이사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끈 12·12 사태 때는 신군부 세력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15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영결식을, 오후 3시 30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합참장으로 안장식을 치른다. 유족은 부인 정필영 여사와 아들 수창·수홍씨, 딸 수진·수영씨.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다. (02)2072-2091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슈&이슈] “역사 재조명·전시 축제 등 3개 분야 8개 사업 추진중”

    [이슈&이슈] “역사 재조명·전시 축제 등 3개 분야 8개 사업 추진중”

    “부산직할시 승격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맹언(59) 부산직할시50년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은 13일 “올해는 부산의 지난 50년을 돌이켜 보고 부산가치의 계승과 발전을 통해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뜻깊은 해”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학술행사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맹원 추진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어떤 행사들이 준비돼 있나. -부산발전 중심 가치 발견사업 등 3개 분야 8개 사업을 추진한다. 현재 계획 중인 기념사업은 과거 50년의 부산발전 과정 및 역사를 재조명하는 사업과 부산의 성장발전에 동력이 된 중심 가치를 발견해 선언하는 사업,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시 축제 사업, 미래도약 100년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사업 등 다양하게 추진하며 시민들과 함께하도록 꾸미고 있다. 부산스토리를 담은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부산의 대표 브랜드 공연 상품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부산은 어떤 도시인가. -부산은 우리 오랜 역사에서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뿐만 아니라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관문이었다. 또한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귀국선을 타고 온 동포와 피란민의 안식처로서 우리나라 현대사의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품 안이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국가 경제를 일으킨 수산과 공업의 전초기지로서 부산에서 출발한 산업화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초석이 됐다. 과거 원조를 받던 도시에서 지금은 원조를 주는 도시로 발전했다. →추진위 역할은. -위원회에서는 기념사업을 주관하고 행사의 주최로서 사업추진 방향 결정과 운영 등 기념사업에 관여한다. 기념사업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부산이 미래라는 시간에 당당히 맞서는 도전 정신과 세계라는 더 넓은 공간을 마음껏 누빌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데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앞으로 부산이 나아갈 방향은. -새 정부 출범 함께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발전 전략을 가다듬어 해양수도 부산의 가치를 세계에 펼쳐 나가야 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DB를 열다] 수레꾼 모여들던 광교/손성진 국장

    [DB를 열다] 수레꾼 모여들던 광교/손성진 국장

    지금부터 60년 전 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서울 청계천 광교 근처의 풍경이다. 청계천은 1958년부터 1961년 사이에 복개되었다가 2003년부터 복구공사를 시작해 콘크리트를 걷어냈다. 사진은 복개하기 전의 모습이다. 옛 조흥은행 본점 앞, 현재의 광교 교차로 자리인 광교 일대는 당시에는 수레꾼들이 모여들던 상권의 중심이었다. 사진에도 약방, 음식점, 당구장 등 업소들의 간판이 보인다. 광교의 원래 이름은 대광통교로 광통방에 있는 큰 다리라는 뜻이다. 광교는 복개 공사를 하면서 석축을 창덕궁으로 옮겨 방치하는 등 파괴되었으나 청계천을 복구하면서 파묻혀 있던 구조물들을 발굴하고 석축을 옮겨다 복원했다. 복원된 새 광통교는 차량 흐름을 막지 않기 위해 원래 자리에서 청계천 상류 쪽으로 155m 위치에 세워져 있다. 1410년(조선 태종 10년)에 세워진 광교는 길이 13m, 폭 15m로 크고 튼튼한 돌다리였다. 광교에는 숨겨진 역사가 있다.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총애했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묘인 정릉에 있던 12개의 병풍석을 옮겨다 광교의 석축으로 사용했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강씨 소생의 방석 등 아들 2명을 죽이고 실권을 쥔 태종은 중구 정동에 있던 강씨의 묘도 현재의 정릉으로 이장하고 석물을 훼손한 것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연탄불 쬐는 아이들

    [DB를 열다] 연탄불 쬐는 아이들

    1961년 12월 21일 서울 어느 동네 어귀의 모습이다. 조무래기들이 온기가 남아 있는 연탄재에 언 손을 녹이고 있다. 털 외투를 입었거나 털모자를 쓴 녀석도 보인다. 골목에서 놀다가 누군가 연탄재를 내놓자 우르르 모여들었을 것이다. 연탄은 아직 서민층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는 거의 모든 가정에서 쓰는 연료였다. 타고 남은 연탄재는 눈길 미끄럼 방지용으로도 유익하게 쓰였다. 도시가스 보급으로 1990년대 들어 탄광들은 거의 다 폐쇄되었다. 남아 있는 탄광은 강원도의 두 곳뿐이다. 이제 석탄도 부족해 수입해서 쓰고 있다. 연탄은 뚫린 구멍의 수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19공탄, 22공탄, 23공탄, 25공탄, 31공탄, 32공탄, 49공탄 등이다. 구멍의 수는 크기와 제조 공장에 따라 다르다. 구멍 수가 많으면 불이 잘 붙고 화력도 세다. 19공탄은 6·25전쟁 후 생산됐다. 구공탄(九孔炭)이라는 이름은 십구공탄에서 십자를 떼고 부른 데서 나왔다. 가정용 연탄의 주종인 22공탄은 ‘㈜삼천리E&E’로 이름을 바꿔 하루 35만장을 찍고 있는 ‘삼천리연탄’에서 1965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구공탄은 연탄의 대명사처럼 되어 22공탄도 구멍 수와 상관없이 구공탄으로 불린다. 사진 속의 큰 연탄은 업소용인 49공탄으로 보인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기고] 에너지 안보는 국가 존립의 근간/양명승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위원

    [기고] 에너지 안보는 국가 존립의 근간/양명승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위원

    ‘기름 한 방울은 피 한 방울’이라는 문구로 에너지 절약을 홍보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에너지의 소중함을 잊은 것 같다. 국내 에너지 자립도는 3%에 불과하다. 해마다 에너지 수입에 자동차·조선·반도체 수출 금액에 맞먹는 120조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원자력의 유용성에 착안, 1959년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원자력연구원을 설립했다. 1979년 미국 TMI 원전사고로 세계 원자력계가 방황할 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원자력기술 국산화를 위한 계기로 활용했다. 현재 세계 5위의 원자력발전 국가로 성장했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요르단에 한국 고유의 발전로 및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할 정도다. 석유발전의 경우, 수입원료 가격이 전체 발전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0%가 넘는 반면에 원자력발전은 수입원료 비중이 10%에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원자력은 준국산에너지로 간주될 수 있다. 에너지 자급률을 20%까지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이 사고위험을 안고 있다면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특히 방사성 사고는 눈과 코로는 위험성을 보고 느낄 수 없다. 사고가 발생하면 넓은 면적이 장기간에 걸쳐 피해를 받으므로 공학적인 안전성 설명에도 불구, 심정적인 안심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적인 안전성 향상 연구개발과 병행, 안전보증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접근을 시도했다. 예를 들면 공공기관에서 원자력발전 부문을 운영하게 함으로써 이윤추구보다 안전에 비중을 뒀고, 부품은 품질보증시스템이 갖추어진 시설에서 공급받아 가격보다 품질을 따졌다. 우수한 인력 육성을 위해 인력관리제도 경력의 지속성을 고려했다.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정전사고 은폐 시도, 품질 검증서를 위조한 부품의 사용과 납품 비리는 원자력 안전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칫 지금까지 추진한 원자력 정책과 제도가 폐쇄적인 원자력 마피아를 길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낳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새 정부는 원자력의 완벽한 안전보증을 위한 제도적인 개선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 현재 수립 중인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서 에너지 안보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을 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의 활용 증대에도 불구, 원자력이 주요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데 의문을 가진 전문가는 없다. 그러나 지속성장이 가능한 원자력을 위해서는 현재 발전소마다 쌓여 있는 사용 후 핵 연료의 관리 정책의 결정이 시급하다. 국내적으로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를 위한 국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요구되며, 국제적으로는 핵비확산체제와 연계돼 있는 만큼 다각적인 외교적 접근이 필요하다.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는 국가의 생존을 위한 기본 전제임을 세계 전쟁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원자력의 역할을 직시하고 이상론보다는 전략적인 접근을 통한 최적의 에너지 정책 수립을 기대한다.
  • [박근혜 정부-대한민국의 과제(3)] 참여정부 때 평화협정 직전까지 갔다가 MB정부 들어 단절

    [박근혜 정부-대한민국의 과제(3)] 참여정부 때 평화협정 직전까지 갔다가 MB정부 들어 단절

    2013년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다. 이와 맞물려 박근혜 차기 정부가 지난 5년간 경색된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주목된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공동선언 존중을 조건으로 차기 정부에 관계 개선 의지를 타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국가 안보적 과제를 이뤄내야 할 시험대에 서게 됐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판문점 휴전협정 조인식장에서 유엔군 수석대표 해리슨 미 육군 중장 일행과 북한군 수석대표 남일 일행이 전문 5조 63항의 정전협정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3년 이상 끌어온 6·25 전쟁이 끝났다. 이 회담은 1951년 7월부터 협정체결까지 2년 이상 걸려 역사상 가장 긴 휴전회담으로 평가된다.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이는 아직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1954년 4월 군사 활동 중지에 그친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 유엔 참전 16개국과 한국·북한·소련·중국이 참가한 가운데 우리 측은 유엔 감시하의 남북한 자유선거 등 통일 방안을 제시했고, 북 측은 외국군 철수 및 감군을 선결과제로 요구했으나 87일간의 회담은 평행선을 그은 채 막을 내렸다. 정전협정 체결 19년 만인 1972년 남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합의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원칙은 이후 남북 간 모든 합의의 기본 지침이 됐으나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면서 흐지부지됐다. 1992년 노태우 정부 당시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남북 불가침 조항을 담고 정전상태를 항구적 평화 상태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명시했으나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사실상 힘을 잃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구체적 합의를 담지는 못했으나 남북관계를 대결에서 화해와 공존관계로 바꾼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2005년 9월 19일 4차 북핵문제를 위한 6자 회담에서 당사국들은 9·19 공동성명을 통해 비핵화를 위한 기본 원칙에 합의했다. 당시 관련 당사국들이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하고 그동안 한국을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던 북한이 입장 변화를 보인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문제가 양 정상 간에 논의됐으나 현재는 남북관계 단절로 맥이 끊긴 상태다. 새해에도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평화체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공약에 평화협정 체결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평화체제 전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는 “북한이 주장하는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은 남북 간의 평화체제라기보다는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해 주한미군을 철수하게 하는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라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북핵 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평화체제만 만든다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므로 남북 간 신뢰 구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엔사가 정전을 관리하는 체제가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으로 바뀌는 만큼 남북관계의 재설정이 중요하다”면서 “완전한 평화협정으로 가기는 어려워도 평화체제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한반도 군비통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는 북한을 고려하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재래식 군비 감축은 풀 수 있는 문제”라면서“군사 훈련 상호 통지 등 신뢰를 쌓아 평화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정전협정 60주년 맞는 한반도] 한·미동맹 60주년 조언

    [정전협정 60주년 맞는 한반도] 한·미동맹 60주년 조언

    한·미동맹 체제는 6·25전쟁 정전 뒤인 1953년 10월 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출범해 이후 60년 동안 우리나라 외교 및 안보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6·25전쟁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시작된 한·미동맹은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 단계를 거쳐 현재는 포괄적인 전략동맹으로 자리매김했다. 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주둔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됐고, 정전협정과 1954년 군사 및 경제 원조에 관한 합의의사록 등을 통해 한·미동맹은 전쟁 재발 방지와 경제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미동맹의 위기는 미국이 닉슨 독트린에 따라 1971년 주한미군 2만명을 철수시키며 촉발됐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을 독자 추진하면서 한·미 갈등은 심화됐다. 유신 체제도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카터 정부의 철군 계획이 1978년 중단되면서 한·미 양국은 연합사령부를 출범시켰다. 한·미동맹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출범으로 공고해졌고, 1994년에는 한국이 평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으면서 상호 동반자 관계로 변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인한 반미 감정,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등한 동맹’ 기조가 맞물리며 우리의 자주적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이런 기류에서 양국은 주한미군 기지 통폐합,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 등의 현안에 합의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미 양국은 2009년 동맹미래비전을 체결하며 포괄적 전략 가치 동맹으로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다음달 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와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모두 한·미동맹 강화를 공언하고 있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국익이 우선 배려되는 식으로, 일반적인 국제 전략에서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배려하는 식으로 한·미동맹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DB를 열다] 사라져 간 판잣집/손성진 국장

    [DB를 열다] 사라져 간 판잣집/손성진 국장

    1962년의 봄날, 서울의 어느 동네에서 판잣집을 철거하는 현장이다. 철거반원들이 금방 다녀갔는지 한쪽에서는 판자를 나르고 있고 솥단지와 항아리, 소쿠리 같은 살림 도구들이 땅바닥에 뒹굴다시피 하고 있다. 판잣집은 흔히 ‘하코방’으로도 불렸다. 하코는 궤짝 또는 상자라는 뜻의 일본어다. 판잣집은 6·25전쟁 후 집을 잃은 사람들과 피란민들의 보금자리였다. 남인수의 대중가요 ‘이별의 부산정거장’에는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라는 대목이 나온다. 지방민들의 상경으로 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판잣집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는 판잣집으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서울의 용산 해방촌, 금호동 등지에 판잣집이 많았고 청계천 하류 쪽으로도 판자촌이 길게 띠를 이루고 형성되어 있었다. 판자촌은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대형 화재가 자주 발생했다. 이에 대통령까지 나서 판잣집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1960년대에 판잣집 정비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인 사람은 김현옥(1926~1997) 당시 서울시장이었다. 그는 판잣집을 철거해 철거민들을 시외로 이주시키거나 서민아파트를 단기간에 많이 지어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달라지는 복지 내용

    내년부터 대학등록금 부담은 줄어들고 저소득층 사회보장 혜택은 늘어난다. 군 사병 월급의 인상 폭은 당초 정부안(15% 인상)보다 늘어나 20%로 조정됐다. 정부는 내년도 국가장학금 지원 예산으로 2조 2500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예산 대비 5000억원이 늘어난 금액이었다. 여야는 여기에 5250억원을 추가로 얹어 관련 예산을 2조 7750억원으로 늘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관계자는 31일 “우리나라의 전체 대학교 등록금 14조원을 기준으로 2조 7750억원이면 소득하위 70%에 대해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명목등록금이 일률적으로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소득계층별로 지원액이 차등화되는 방식이 도입된다. 부모와 학생 본인의 소득을 합쳐 소득하위 1∼2분위 학생에게는 등록금이 전액 면제된다. 3∼4분위는 등록금의 70%, 5∼7분위는 50%, 8분위는 25%를 각각 감면받는다.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9∼10분위에 대해선 학자금대출(ICL) 자격을 부여한다. 국가장학금 금리도 연 3.9%에서 2.9%로 1% 포인트 인하된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사회보험료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장도 늘어난다. 여야는 월급여가 130만원 이하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보험·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 부담을 절반으로 낮추기 위해 1400억원을 증액하기로 했다. 또 6·25전쟁 참전용사 명예수당도 현재 월 12만원에서 15만∼16만원으로 오른다. 정부는 참전명예수당을 12만원에서 14만원으로 2만원 올리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여야는 400억원을 추가로 늘려 인상 폭을 확대했다. 군 사병월급은 20%가량 인상된다. 정부는 사병월급을 상병기준으로 9만 7500원에서 11만 2100원으로 늘리는 등 15% 인상안을 마련했지만,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인상 폭이 늘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씨줄날줄] 50대의 삶/육철수 논설위원

    시성(詩聖) 두보는 늙도록 변변한 벼슬조차 못하자 인생이 조급했던 모양이다. 그는 50세에 쓴 ‘야망’(野望)이란 시에서 ‘젊던 몸 서서히 늙으니 병만 남아, 작은 티끌만큼도 나라에 보답하지 못하네’(惟將遲暮供多病, 未有涓埃答聖朝)라고 한탄했다. 두보가 살던 1300년 전에 나이 오십은 ‘머리털이 세어 쑥과 같다.’는 ‘애년’(艾年)이 어울릴 법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회한과 여생에 대한 불안을 지금과 비교하기란 무리일 터. 하지만 ‘100세 시대 대한민국’ 50대의 처지도 두보보다 별반 낫지 않은 것 같다. 직장인 사이에 벌써 10년 전부터 회자됐던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놈)란 유행어가 여전히 유효하니까. 50대는 마음 놓고 밥벌이 하기도 쉽지 않은데,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니 더 서글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도시지역 50대의 여가생활 실태를 알아봤단다. 그런데 절반이 ‘종교모임’에 가는 게 여가의 전부였다. 스포츠·야외활동은 4명 중 1명, 문화활동은 5명 중 2명꼴이었다. 여행은 10명 중 1명이 겨우 즐길 뿐이라고 한다. 전문가의 분석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6·25전쟁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여가가 생겨도 놀고 즐길 줄 모른다나? 한마디로 유년시절의 여가경력(leisure career)이 빈천하고 부모 봉양, 자식 뒷바라지로 자기만의 삶의 질을 챙기지 못했다는 얘기다. 구구절절 맞는 말 같은데 어째 좀 듣기 거북하다. 그래도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무명 작가의 글(50대의 삶은 아름답다)은 새로운 의욕을 불어넣는다. 그는 50대를 ‘한들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나이’라면서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강하고 부지런한 나이’, ‘인생을 크게 펼쳐 볼 나이’, ‘상처받기엔 시간이 아까운 나이’, ‘과거를 후회하기엔 살아온 세월이 아까운 나이’라고 했다. 또 ‘앞에는 희망이 있고 뒤에는 젊음이 있다.’며 멋진 인생을 맘껏 펼쳐보라고 용기를 준다. 서정주 시인도 ‘50대는 연애를 시작할 나이’라고 하지 않았나. 50세 남자의 기대여명(life expectancy)은 29.9년, 여자는 35.5년이다. 90세까지 살아남을 확률도 남자 16%, 여자 34%란다. 꿈을 접기엔 너무 이른 나이 아닌가. 이번 대선에서도 90% 투표율로 나라를 들었다 놓은 50대다.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옳고 그름도 분별하니(知非), 몸만 튼튼하면 창창한 나이다(春秋鼎盛). 이제 인생의 짐일랑 가볍게 줄이면서 즐기는 법도 좀 배워두자.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최장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 문화재 된다

    최장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 문화재 된다

    김성환(80)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 원화(原畵)가 문화재로 등록된다. 근대 만화에 대한 문화재 등록이 추진되기는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20일 고바우 영감 원화를 비롯해 김용환(1912~1998)의 ‘토끼와 원숭이’ 단행본, 김종래(1927~2001)의 ‘엄마 찾아 삼만리’ 원화 등 근대 만화 작품 3건의 원화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밝혔다. 고바우 영감은 1950년 이후 ‘사병만화’ ‘만화신문’ ‘월간희망’ 등지에 실리기 시작해 1955년 2월 1일 이후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의 일간지를 거치면서 모두 1만 4139회가 연재된 한국 최장수 시사만화다. 문화재청은 이런 연재물 중 작가 자신이 소장한 6496매와 동아일보가 소장한 4247매를 합친 1만 743매의 원화에 대해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원화는 최고급 양지에 묵으로 그렸으며 철장(綴裝), 낱장, 병풍 등의 형태로 보관 중이다. 문화재청은 이 만화가 “우리나라 최장수 연재 시사만화로 작품과 캐릭터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현대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등록 예고 이유를 밝혔다. ●最古 단행본 ‘토끼와 원숭이’ ‘토끼와 원숭이’는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1966)의 원작을 토대로 김용환이 그린 만화다. 1946년 5월 1일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간행한 단행본으로, “토끼와 원숭이 등 동물들을 등장시켜 자주 독립 국가에 대한 염원을 해방 전후의 정치 상황에 대한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냈으며 일제의 부당한 침략 행위와 식민통치를 고발했다.”고 문화재청은 평가했다. 이 만화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내 만화 단행본으로, 올해 5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경매를 통해 입수했다. ●최초 베스트셀러 ‘엄마 찾아 삼만리’ ‘엄마 찾아 삼만리’ 원화는 김종래가 1958년에 발표한 고전 사극 만화의 원그림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소년 금준이가 노비로 팔려 나간 엄마를 찾아다니는 사모곡이다. 6·25전쟁 전후의 피폐한 사회상과 부패상을 조선시대에 빗대 고발한 작품으로, 1958년 초판 간행 이후 저자가 약 세 차례에 걸쳐 수정한 흔적이 있다고 문화재청은 말했다. 1964년까지 10쇄가 출간된 국내 최초의 베스트셀러 만화다. 원래 상권 220매와 하권 224매로 총 444매였지만 하권 1매가 망실돼 이번에 443매가 문화재 등록이 예고됐다. 2010년 유족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기증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축제로 불야성… “박통 이어 경제기적 재현을…”

    축제로 불야성… “박통 이어 경제기적 재현을…”

    “박근혜 대통령 만세” 19일 오후 대구 중구 삼덕3가 경로당.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자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했다. 삼덕3가는 박 당선자의 생가(生家)가 있었던 곳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6·25전쟁 중 대구 계산성당에서 결혼한 뒤 이곳에서 신혼생활을 하면서 1952년 박 당선자를 낳았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차장으로 근무했으며 이듬해 서울로 올라가 박 당선자는 1년쯤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박 당선자의 생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복합쇼핑몰이 자리잡고 있다. 이날 개표방송을 보기 위해 삼덕3가 경로당에 모인 주민 30여명은 밤늦게까지 TV 앞에서 “박근혜”를 응원하다 마침내 박 후보의 당선이 최종 결정되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경로당에 비치되어 있는 장구와 꽹과리, 징을 치며 자축했다. 엄일태(81) 삼덕3가 노인회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 박근혜”를 외쳤고 주민들도 일제히 한목소리로 따라했다. 엄씨는 “박 당선자가 이곳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주민 모두는 생가가 있었다는 자체 만으로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모두가 편안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로당 최고령자인 안종숙(90) 할머니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느냐. 노인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 주민들은 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상모동은 19일 밤새도록 장구, 꽹과리 소리가 울려퍼지며 불야성을 이뤘다. 주민 500여명은 오후 6시부터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의 생가 앞 주차장에 설치된 120인치 스크린을 통해 개표 결과를 지켜봤다. 또 마을 경로당에도 주민 20여명이 모여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후 6시 방송3사의 출구조사 발표에서 박 후보가 근소한 차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자 주민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주민들은 “드디어 해냈다. 장하다, 박근혜”라며 고함을 질렀다.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상모동 이봉원(55) 주민회장은 “박 대통령에 이은 또 한번의 큰 경사다. 박 후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제 기적을 재현해 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TV에서 ‘박 후보 당선 확실’을 보도한 오후 9시 무렵부터는 북, 장구, 꽹과리 등을 치고 폭죽을 터뜨리면서 축제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개표 상황을 지켜보다 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얼싸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박 후보는 매년 11월 14일 상모동에서 열리는 박 전 대통령 탄신제에 참석했으나 올해는 선거를 의식해 참석하지 않았다. 마을 뒷산에는 박 대통령의 조부모 및 부모 산소가 있다. 상모동에는 200여 가구 주민 600여명이 살고 있으며, 청장년층이 함께 어우러져 소통이 잘되고 효심이 깊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대구 한찬규·구미 김상화기자 cghan@seoul.co.kr
  • 6·25 전사자 유해 993위 서울현충원 봉안

    6·25 전사자 유해 993위 서울현충원 봉안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통해 수습된 국군 전사자에 대한 합동봉안식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주관으로 열렸다. 봉안식은 김 총리를 비롯해 김관진 국방부 장관, 박승춘 보훈처장, 각 군 참모총장, 7개 보훈단체 대표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 발굴 사업 추진 경과 보고,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영현 봉송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에 봉안된 전사자 유해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해병대의 35개 사단급 부대가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경북 칠곡, 강원 철원, 양구 등 전국 62개 지역에서 발굴한 1045구의 유해 가운데 국군전사자로 확인된 993위다. 합동봉안식 후 올해 발굴된 국군전사자 유해는 유해발굴단 중앙감식소(유해보관실)에 일정 기간 보관된다. 이 기간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 유전자(DNA)와의 비교 과정을 거쳐 신원을 확인하게 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커버스토리] 1000원 흥정 넘치는 인정 ‘소통’ 1번지

    [커버스토리] 1000원 흥정 넘치는 인정 ‘소통’ 1번지

    지난 6일 찾은 충남 공주시 공산성. 유유히 흐르는 금강에 둘러싸인 산성은 전날 내린 눈이 쌓여 하얗게 변했다. 매서운 강바람이 몰아쳤고 잎을 떨궈낸 산성의 나무들은 바람에 간간이 흔들리다 얼어붙은 듯 꼼짝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 아래에 장이 섰다. 코끝이 시린 날씨였지만 산성장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양손에 비닐봉투를 바리바리 들고 시장통을 바쁘게 오가는 인파로 동장군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여기 나오면 재미있어. 사람들 얼굴 보며 웃고, 말 한마디 건네고 웃고.” 30여년간 산성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정애(70) 할머니는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세상 물정 모르지.”라며 활짝 웃었다. 공주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인 정안에 사는 김 할머니 옆에는 손수 가꾼 토란, 호박 등이 놓여 있었다. ●할인점·SSM 골목상권 점령 시대서 ‘명맥’ 유지 대형 할인점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농어촌 골목까지 점령한 시대에 ‘5일장’이란 말이 등잔불처럼 희미해지고 있지만 농어촌 주민에게는 여전히 인정을 나누고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소통의 장소다. 고드름 추위에 갖고 나온 푸성귀들이 금세 얼었지만 김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정담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 할머니는 “장날 때마다 저 친구를 만나. 저 집 신랑도 종종 와 점심을 사 주기도 하고.”라고 은근히 자랑했다. 둘은 얼마 후 바로 옆 정육점에서 콩 자루 무게를 쟀다. 친구가 김 할머니 콩을 샀다. “1000원 빼 줄게. 차비 혀.”, “고마워.” 둘이 나누는 말이 정겹다. ●농촌 주민 세상물정 알아가는 창구로 봉황동 손기채(76) 할아버지는 “친구들 만나 술 마시려고 나왔어. 장날 아니면 장터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라며 피식 웃었다. 더러 젊은 주부도 보였다. 아이를 둘러업고 가던 윤모(29)씨는 “내가 원하는 만큼, 1000원어치도 살 수 있어 좋다. 흥정도 할 수 있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은 손님이 평소의 3분의1밖에 안 됐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농촌 주민들이 장터에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게 상인들 얘기다. 장터에는 동태 등 생선 좌판이 늘어섰고 산 가물치도 물 채운 고무대야에서 몸을 꼬았다. 80대 할머니는 “이웃이 장에 가자고 해서 따라 왔어. 나오니까 기분이 좋아.”라며 직접 기른 콩나물을 시루째 갖고 왔다. 노인 10여명은 나무 난로를 피우고 둘러앉아 윷놀이를 했다. 대선 선거운동 차량의 확성기 소리가 고막을 찌른다. 빨간색, 노란색 옷을 입은 운동원들은 물건을 사 주며 지지를 부탁했고 장터 할머니들은 “○○○? 알았어.”를 연발했다. 좌판에서 순대를 파는 할머니는 “사람들은 옛날처럼 다 착해. 장터는 많이 변했지.”라고 했다. 장터 분위기를 달구던 국밥집과 뻥튀기 장수는 보이지 않았다. 철공소, 포목점, 국수집도 사라졌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 같은 장돌뱅이도 이젠 찾기 어렵다. 해방 후 이곳에 5일장이 서면 논산, 강경의 황포돛배들이 금강 물길을 타고 올라와 생선을 한짐 풀어 놓았다. 공주 시내 제민천 둑에 조기 등이 지천이었다.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장터가 통째로 날아갔지만 민초들이 하나둘 난전을 펴 또다시 5일장이 열렸다. 그러나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대부분 노인이다. 윤여헌(85) 전 공주향토문화연구회장은 “5일장도 점차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글 사진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흰 석고에 금박 배꽃장식 알현실… ‘황제 품격’ 은은히

    흰 석고에 금박 배꽃장식 알현실… ‘황제 품격’ 은은히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려다가 1910년 이후 ‘덕수궁 이태왕’(고종황제)의 거처로 전락했던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석조전(동관) 복원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3년 말 개관을 목표로 진행하는 덕수궁 석조전 복원공사의 75%가 진행된 3일 현재 복원상황을 언론에 공개했다. 모두 130억원이 투여될 복원공사는 1~3층, 옥상까지 훼손된 곳을 복원해 최대한 원형을 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옛날 기념사진과 신문 등의 보도사진, 일본 하마마쓰 시립도서관에서 찾은 평면도를 참고했다. 현재까지의 진척 상황을 보면 구조체는 모두 복원했고, 내부 실내장식만 남겨놓은 상태다. 흰 석고로 마감한 벽 상단을 쭉 돌아가며 금박을 물린 황금빛 배꽃으로 장식했고, 노란색 벽지를 바른 것처럼 보이는 벽은 손바닥으로 살짝 훑으면 보드라운 융기를 느낄 수 있는 모직천이 발라져 있었다. 이런 사치스러움은 황제의 품격을 드러내는 방식인 모양이다. 존재하지만 확인되지 않았던 3층 목욕탕과 화장실은 평면도에서 찾아 복원했다. 공사를 맡은 선혜종합건축 강석목 이사는 “천장이나 장식용 기둥의 소재가 나무인지, 돌인지 사진으로는 파악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일본 아카사카궁이나 영친왕 도쿄 저택 등을 참고해 보니 이미 20세기 초에는 나무나 돌 대신 석고를 많이 사용해 이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거실과 접견실의 벽난로는 고스란히 복원했지만, 건물 속을 관통해야 하는 연통 복원은 건물의 안전을 위해 포기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처소와 사무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같은 해에 영국 출신 총세무사 존 맥리비 브라운에게 석조전 영건(營建)을 발의했다. 1899년 영국인 존 레지널드 하딩의 설계로 1900년 공사에 들어가 1910년 완공됐다. 당시 구조체 공사는 일본이 담당하고 내부장식은 영국인 로벨이 했다. 석조전은 로코코 양식과 네오클래식 양식이 뒤섞인 것으로 화려하면서 우아하다. 석조전의 변형은 한국의 역사와 괘를 같이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 뒤 석조전은 훼손되기 시작했는데, 1933년 왕궁미술관으로 전용되면서 주요 내부장식과 구획, 창호가 변경됐고, 이때 굴뚝이 철거됐다. 1938년에 이왕가미술관으로 전용되는 과정에서 금박 장식이 훼손됐다. 1945년 해방 직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장소와 유엔한국위원단 사무실 등으로 사용됐다. 1950년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방화로 내부가 소실되고 구조체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다. 1954년 육군공병단이 복구한 석조전은 1955년 국립박물관으로,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각각 사용됐다. 2005년 덕수궁관리소 등으로 활용되면서 더 많이 훼손됐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힘입어 2008년 복원이 확정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훼손된 대한제국 황궁의 모습을 건립 당시의 모습대로 되살리고,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석조전을 가칭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복원되는 석조전은 1층에는 수장고, 전시실, 사무실이, 2층에는 홀, 알현실, 대식장, 소식당, 귀빈대기실, 전시실이, 3층에는 황제와 황후의 거실과 침실, 홀, 전시실이 자리 잡는다. 옥상에는 굴뚝과 장식물을 복원한다. 복원이 완료되면 현재 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고종황제의 침대 등 유물이 석조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거창 양민학살’ 유족에 국가배상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고법 민사6부(부장 신광렬)는 25일 거창사건 희생자의 유족 박모(79·여)씨와 아들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억 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2008년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를 이유로 다른 유족 300여명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원심을 확정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거창사건은 6·25전쟁 때인 1951년 2월 9일부터 사흘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무장공비 소탕에 나선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이 14세 이하 어린이 385명을 포함한 양민 719명을 사살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거창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이라며 “피고가 적극적으로 피해회복 조처를 하기는커녕 시효소멸 주장 등을 통해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국격에도 걸맞지 않다.”고 밝혔다. 또 2005년 제정된 과거사정리기본법은 국가가 거창사건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밝혔거나 적어도 그런 태도를 보여 원고들이 그렇게 믿게 했다고 지적했다. 6·25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유사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인 ‘문경사건’과 ‘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 피해자들은 이미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았거나 머지않은 장래에 받게 되는데 거창사건 유족에게만 달리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거창사건 피해자에 대한 배상액을 본인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와 자녀 5000만원, 형제·자매 1000만원으로 각각 정했다. 이번 소송의 배상규모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원고가 배상액 일부만 청구했기 때문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발언대] 국가안전보장 없이 평화 없다/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발언대] 국가안전보장 없이 평화 없다/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2년 전 오늘 오후 2시 34분, 170여발의 포탄이 연평도에 무차별적으로 떨어졌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거주하는 영토에 북한이 기습공격을 가했다. 반인도적인 도발이다. 쏟아지는 포탄들, 눈앞에서 내리치는 공포 앞에서 해병 장병들은 흔들림 없이 목숨을 바쳐 싸웠다. 휴가를 떠나던 발길을 돌려 포연 속을 가로지르던 고 서정우 하사,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 나가 전투 준비를 하던 고 문광욱 일병…. 이들의 죽음 앞에 우리나라의 안보상황이 안전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들의 희생과 헌신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우리나라 영토는 단 한뼘도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6·25전쟁의 교훈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장병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목숨을 바치면서 지켜낸 대한민국을 잘 지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지키고 유지하는 일은 군인들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온 국민이 호국의식과 나라사랑정신으로 하나가 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안보는 공기와도 같다. 공기는 몇 초만 없어도 생명을 위협받지만, 우리는 흔히 공기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국가안보 역시 단 몇 초만 무너져도 우리가 몇 십년간 이룩한 기적의 성과물을 앗아갈 수도 있다. 국가의 존립 위에 비로소 성장과 발전을 논할 수 있다. 튼튼한 안보만이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안보 여건은 더 나아졌는지 성찰해 볼 시점이다. 연평도 도발 2주기 추모식은 우리의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다시는 꽃다운 나이의 대한의 아들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북한의 그 어떤 도발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안보에는 그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슬픔을 넘어 조국수호의 결연한 의지를 다짐해 본다.
  • [사설] 연평도 포격 2주년… 대선에 끼어드는 北

    북한이 연평도 민간인 거주지역에 무차별 포격을 가한 지 23일로 2년이 된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에 대한 직접 도발을 자행해 고귀한 인명을 잃게 하고 주민의 생활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연평도 주민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연평도를 포함한 서북도서는 평화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5∼8월 서해안 북한 측 초도에서 대규모 상륙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북방한계선(NLL) 이남 서북도서 기습공격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 군의 서북도서 전력증강 계획이 차질 없이 이뤄져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북한의 해안포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스파이크 미사일 도입이 내년으로 연기되는 등 차질을 빚어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우리 대통령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 산하 대남혁명 전위기구를 통해 국내 종북세력에 ‘반(反)새누리당 투쟁’을 부추기는 격문을 하달하는 등 대남 선전·선동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그제 국무회의에서 지적했듯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며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응 의지와 안보태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북한은 우리가 개혁·개방을 촉구한 점 등을 거론하며 대선 개입은 “응당한 단죄”라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선거 때마다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철지난 상투적 수법이지만 자계(自戒)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북한은 대선정국에 편승한 무모한 도발로 남북관계의 파국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NLL 사수 의지를 밝히는 등 안보문제를 무겁게 여기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보다 구체적이고 확고한 비전을 제시해 국민의 안보불안감을 불식시켜 주기 바란다.
  • 북녘까지 10.6㎞… 남북철도 기적소리 들린다

    북녘까지 10.6㎞… 남북철도 기적소리 들린다

    6·25전쟁 이후 끊겼던 경원선 신탄리~철원(백마고지역) 구간 열차가 60년 만에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철원군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일 철원읍 대마리 백마고지역 광장에서 경원선 신탄리~철원(백마고지역) 5.6㎞ 단선 개통식을 갖고 운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열차는 상·하행선 하루 아홉 차례 운행하며 막차는 상행선 오후 8시 52분, 하행선 오후 7시 50분이다. 요금은 신탄리역과 동일하다. 경기도 동두천에서 하루 34회 신탄리역까지 운행하는 통근열차가 철원(백마고지역)까지 하루 18회 연장 운행된다. 운행 시간은 7분 정도다. 이 구간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2007년 12월 착공, 477억원을 들여 5년 만에 공사를 끝냈다. 이번 복원철도 개통은 6·25전쟁 이후 60여년 만에 민통선 철원 지역까지 기차가 들어간다는 의미와 더불어 남북철도 연결의 초석 마련과 함께 수도권 접근성 향상으로 교통비 부담 감소, 철새 및 안보 관광객 증가 등으로 인한 지역발전 및 경기활성화 등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경원선은 1914년 8월 개통 이후 용산∼원산 구간 223.7㎞를 운행하며 한반도 중앙부 물자 수송에 큰 역할을 했으나 6·25전쟁으로 현재 비무장지대(DMZ) 주변 31㎞ 구간 중 남측 구간(신탄리~군사분계선) 16.2㎞, 북측 구간 14.8㎞가 끊어져 운행되지 못하는 상태인 가운데 남측 구간은 이번 신탄리~철원 5.6㎞ 구간 개통으로 10.6㎞ 구간만 미개통 구간으로 남게 됐다. 정호조 철원군수는 “경원선 신탄리~철원 구간 5.6㎞ 개통은 남북교류 시대 대비 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수도권 주민들의 철원 방문 증가 등으로 인한 지역발전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원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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