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6·25전쟁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취임식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기강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운전자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수호신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508
  • [오늘 6·25 65주년] 반세기 만에… 노병, 다시 날아오르다

    [오늘 6·25 65주년] 반세기 만에… 노병, 다시 날아오르다

    6·25전쟁 당시 100회 이상 출격한 전투기 조종사 출신 노병이 반세기 만에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그 주인공은 김두만(88) 전 공군참모총장(예비역 대장). 공군은 김 전 총장이 지난 23일 강원 원주 기지에서 후배 조종사 한성우(37) 소령과 함께 국산 경공격기 FA50을 타고 50여분간 충북, 경기 일대 상공을 비행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김 전 총장은 지난 5월 12일 충북 청주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젊은이들도 힘들어하는 중력가속도 내성훈련(G 테스트)을 무사히 마쳤다. 김 전 총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미국제 F51 프로펠러 전투기를 타고 첫 출격한 이래 1952년 1월 11일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 기록을 세웠다. 6·25 전쟁 동안 모두 102회 출격한 그는 이후 전투비행단장, 작전사령관을 거쳐 1971년 참모총장을 마지막으로 군을 떠났다. 이날 비행장구를 착용하고 FA50기 후방석에 탑승한 김 전 총장은 잠시 지난날을 회상했다. 1952년 1월 12일 당시 25세의 편대장(소령)이던 김 전 총장은 평양 동쪽 10㎞ 지점의 승호리 철교를 파괴하기 위해 F51 전투기 6대를 이끌고 출격했다. 북한군의 주요 보급로인 승호리 철교는 앞서 미국 공군이 폭격을 시도했으나 북한의 대공포 공격 때문에 실패했던 곳이었다. 한국 공군은 이날 첫 공격에 실패했으나 사흘 뒤인 1월 15일 북한군의 치열한 대공포화망을 뚫고 450m 고도까지 급강하해 폭탄을 투하하고 철교를 파괴했다. 당시 미 공군은 정찰기가 승호리 철교의 사진을 찍어 올 때까지 한국군의 작전 성공을 믿지 않았다. 1949년 10월 창설된 한국 공군은 1950년 6·25 개전 초기 당시 20대의 연락기만을 보유했고 전투기는 1대도 없었다. 같은 해 7월 미국으로부터 F51 전투기 10대를 지원받아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 공군은 현재 F15K 전투기와 국산 FA50 경공격기를 비롯해 75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은 “당시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현대화된 비행단 시설과 전투기가 자랑스럽다”면서 “최고의 실력을 구비한 정예 조종사가 될 수 있도록 자기 계발에 힘써 달라”고 후배 조종사들에게 당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6·25전쟁 승리 재현한 육군 5군단

    6·25전쟁 승리 재현한 육군 5군단

    육군 5군단 장병들이 6·25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강원 철원군 문혜리 사격장에서 105㎜ 견인포 사격훈련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훈련은 6·25전쟁 당시 주요 전투에서 승리한 5군단 예하 3, 6, 8사단의 전통을 기억하고 계승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철원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공무원 공직가치 교육 강화된다

    공무원 공직가치 교육 강화된다

    6·25전쟁 65주기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공직자 대상 공직가치 교육이 강화된다. 인사혁신처와 중앙공무원교육원은 23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 거듭날 수 있는 공직가치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사처는 공직가치 교육 동영상을 만들어 이달 중 모든 공무원 교육기관에 보급한다. 통일된 공직 가치관 확립을 위한 공직가치 범주별 교육과정·교재도 다음달 중 배포한다. 4급 이하 공무원과 공공기관 차장급 이하 직원을 대상으로 상반기 실시됐던 공직가치 함양과정 교육은 하반기에도 오는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인사처는 갈수록 옅어져 가는 공직가치 강화를 위해 다음달 예정된 국가직 9급 공채시험에 공직가치 분야를 반영하기로 했다. 1인당 면접시간을 현재 30분에서 50분으로 늘려 ‘5분 스피치’를 통해 정신자세를 가늠한다. 헌법가치, 올바른 공직자상, 공정성, 봉사·헌신 등 과제가 주어진다. 예컨대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3가지 덕목과 그 이유를 제시하시오’라는 과제를 꼽을 수 있다. 수험생은 10분에 걸쳐 준비를 마친 뒤 면접위원들 앞에서 5분 이내에 자신의 의견을 경험이나 실제 사례 등을 곁들여 자유롭게 발표하면 된다. 김진수 인사처 인재개발국장은 “공직가치 교육을 더욱 강화해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위국보민형 공무원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흥남철수’ 주역 美 참전용사 증손자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야”

    ‘흥남철수’ 주역 美 참전용사 증손자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야”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을 주도한 에드워드 포니 미 해군 대령의 증손자가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유지해 온 남북 대결주의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포니 대령의 증손자인 벤 포니(28)는 23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유엔 참전 용사 후손들이 본 남북한 통일 전망’ 세미나에서 “증조부는 전쟁 중에도 인도주의 철학을 추구했다. 남북 교역이나 방북이 금지된 지금은 그나마 있던 인도주의적 교류도 사실상 끊긴 상태”라며 5·24 조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피력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전쟁기념재단이 포니를 비롯한 9개국 6·25 참전 용사 후손 14명을 초청해 이뤄졌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김호연 前 빙그레 회장 ‘밴 플리트 상’

    김호연 前 빙그레 회장 ‘밴 플리트 상’

    빙그레가 자사 최대 주주인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이 한국과 미국 간 상호 이해와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2015 밴 플리트 상’을 수상했다고 23일 밝혔다. 밴 플리트 상은 6·25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기 위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1992년 제정한 상이다. 매년 한·미 관계 발전에 공로가 큰 인물이나 기관에 수여된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는 김 전 회장을 대신해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수상했다. 이 상의 역대 주요 수상자로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있다.
  • 한국전쟁 65주년, 격전의 현장과 고난의 상흔 재조명

    한국전쟁 65주년, 격전의 현장과 고난의 상흔 재조명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KBS 1TV가 격전의 현장과 고난의 상흔을 조명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연달아 방송한다. 24일 밤 11시 40분에 방송되는 ‘더 콘서트’는 전쟁 소재 영화 속 클래식 음악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전한다. 피아니스트 최희연은 2차 대전 배경의 영화 ‘피아니스트’와 ‘잉글리시 페이션트’에 담긴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1악장’으로 전쟁의 아픔을 들려줄 예정이다.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은 한국전쟁의 상잔을 노래한 ‘비목’과 월남전을 다룬 영화 ‘디어 헌터’의 삽입곡 ‘카바티나’에 가사를 붙인 ‘히 워즈 뷰티풀’로 조국을 위해 스러져간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로한다. 25일 오전 10시 40분에는 ‘이산가족찾기 방송 32주년 특별생방송-만남의 강은 흐른다’를 80분간 생방송한다. 1983년 방송된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감동을 재조명하기 위해 이산가족의 사연 판이 세워진 KBS 본관 앞의 당시 모습을 재현한다. 25일 오후 7시 30분에 방송되는 ‘한국인의 밥상’은 민간인 통제선 너머 비무장지대 안 마을에서 황무지를 일군 사람들이 차려낸 상차림을 소개하는 ‘DMZ 로드-2부’를 방송한다. 25일과 26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KBS 다큐1’은 6·25전쟁 당시 큰 성과를 올린 전투기 ’무스탕‘과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을 통해 치열했던 격전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25일 밤 11시 40분에 방송되는 ‘국제시장의 장사치기들’은 부산 국제시장을 무대로 전쟁의 역경을 기적처럼 이겨내고 억척 상인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민초들의 고난과 극복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열린세상] 6·25사변과 6·25전쟁/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6·25사변과 6·25전쟁/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내일은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산화하려고 기습 남침한 6·25전쟁 발발 65년째 되는 날이다. 6·25전쟁은 오랫동안 6·25사변 또는 6·25동란으로 불렀다.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된 대한민국 영토의 북쪽을 불법 점거해 섬멸돼야 할 무장 단체인 북한이 변란을 일으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영토에 관한 헌법 제3조 규정에 충실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되면서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돼 6·25사변도 국가 간의 무력 충돌을 뜻하는 6·25전쟁으로 바뀌게 됐다. 이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의 효력을 존중하는 헌법 제6조에 충실한 개념이다. 그 후 6·25와 관련된 법령을 개정할 때마다 용어를 고쳐 나가다 2년 전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마지막으로 6·25사변이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3조가 개정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법적 지위를 설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3조는 남북 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주권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으나 대내적으로는 민족 내부거래 관계로 본다는 뜻이다. 헌법 제4조에서 지향하는 평화적 통일의 과제를 이루기 전까지는 그런 잠정적 상황을 상당 기간 지속할 수밖에 없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1953년 정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1129일 동안의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우방국의 손길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3대 세습을 이룬 김씨 조선 왕조 치하에서 힘들게 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투부대를 파견한 미국 등 16개국, 의료지원을 한 인도 등 5개국, 물자와 재정 지원을 한 아르헨티나 등 39개국의 도움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극동아시아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이념 전쟁에 정예 군대를 직접 보내 도와준 모든 나라에 대해서는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후손들에게라도 보은하는 것이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당연한 책무라 할 수 있다.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것은 그 안의 모든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다. 한자어인 ‘나라 국(國)’을 파자(破字)해 보면 성벽 곧 국경을 뜻하는 바깥 네모 안에 있는 ‘혹 혹(或)’ 자의 위쪽에는 ‘창 과(戈)’가 있고 그 아래에는 땅과 바다를 뜻하는 짧은 선( )과 그 위에 ‘입 구(口)’가 있다. 전쟁 무기인 창은 군대 즉 국방력을 가진 정부를 상징한다. 그 밑에 ‘사람 인(人)’ 자 대신 ‘입 구(口)’로 쓴 것은 나라 안에는 사람만 아니라 입을 가진 모든 생명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입은 음식이 들어가는 통로뿐만 아니라 말하는 지체이므로 헌법상 기본권인 생존권과 자유권을 포함한다. 결국 나라 국(國)에는 정부, 국민, 영토의 세 가지 필수 구성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국민과 영토를 보호하는 것이다. 정부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빈손으로 할 수는 없다. 사람과 돈이라는 자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부담할 몫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에는 정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과 함께 정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할 의무도 규정돼 있다. 현행 헌법 제2장에는 그 내용이 자세히 열거돼 있다. 27개 조문에 걸쳐 있는 기본권 조항에 비하면 의무에 대한 사항은 병역, 납세, 교육, 근로, 재산권 행사 등 네댓 개에 불과하다. 조문 수가 적다고 해서 가볍게 여길 것은 아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필수적 의무로 헌법에서 직접 정한 것 말고도 ‘국가보훈 기본법’ 제6조(국민의 책무)가 ‘모든 국민은 희생·공헌자의 공훈과 나라 사랑 정신을 존중하고 선양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에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처럼 개별 법률에서 명시한 의무가 수십 개나 된다. 그러나 국민의 의무는 권리에 비해 관심이 적은 것 같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 가기 전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 선열과 호국 영령들에게 감사하면서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국민의 의무를 다시금 생각해 보면 좋겠다.
  • 6·25 전사자 신원 확인 쉽게 징병검사서 유족 DNA 채취

    군 당국이 6·25전쟁 당시 전사한 유해의 신원을 더 빨리 확인하기 위해 유가족으로 확인된 징병검사 대상자들의 DNA 시료를 채취하기로 했다. 6·25 참전자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기 위해 당시 전투 상황에 대한 생존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영상과 녹취로 남기는 작업도 실시한다. 국방부는 22일 “이달 중순부터 징병검사 대상자들에게 시료 채취 대상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설문지를 이메일로 발송해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인지 확인하고 있다”면서 “병무청과 협업을 통해 유가족의 DNA 시료를 징병검사장에서 채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은 그동안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장병 가운데 전사자 유가족으로 확인된 이들만을 대상으로 DNA 시료를 채취했다. 하지만 대상자들의 무관심으로 채취율이 점차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2000년부터 국군 전사자 유해 8477구를 발견했지만,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07구에 불과하다. 아울러 국방부는 6·25 참전용사를 직접 방문해 증언을 녹취와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도 실시한다고 밝혔다. 전국 각지에 묻힌 전사자의 유해가 12만여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고령이 된 참전자들이 매년 줄고 있어 소재지 파악이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나 죽거든… 한국전쟁 영웅 남편처럼 부산에 묻어 주오”

    “나 죽거든… 한국전쟁 영웅 남편처럼 부산에 묻어 주오”

    한국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호주 여성이 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은 지금까지 한국과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올윈 그린(92)은 지난 21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국전쟁 호주 참전용사를 기리기 위한 행사에 올해도 어김없이 참석했다. 그린의 남편은 1950년 9월 말 호주군 지휘관으로 참전했다가 그해 11월 31세의 나이로 숨진 찰리 그린 중령이다. 그린 중령은 연천·박천전투 등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앞서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해 북아프리카와 그리스 등에서 전과를 세워 호주에서는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 결혼 7년 만인 27세 때 남편을 잃은 그린은 당시 세 살이던 외동딸을 홀로 키웠다. 남편을 잃은 뒤에 남편의 전기를 쓰거나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과 함께 전몰 호주 장병을 추모하는 대형 자수를 새기는 등 남편을 기리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린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크다. 시드니의 한국 기관이나 민간단체들이 초청하면 만사를 제쳐 놓고 꼬박꼬박 참석한다. 이미 5차례 한국을 방문한 그린은 오는 11월 다시 한국을 찾는다. 남편 그린 중령이 ‘이달(11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남편이 묻힌 부산 유엔묘지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그린은 자신이 숨지면 부산의 남편 묘지에 합장되길 원한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고 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국방부, 6·25전쟁 참전 언론인 명패 헌액

    국방부, 6·25전쟁 참전 언론인 명패 헌액

    한민구(오른쪽 네 번째) 국방부 장관이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신청사 브리핑실에서 6·25전쟁 65주년을 맞아 참전 언론인 35명과 종군기자 43명 등 총 78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헌액하는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 김은구 대한언론인회장, 김병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박기병 6·25참전언론인회장, 한 장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 김문경 국방부 출입기자 대표,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인천상륙작전 성공 하고도…맥아더 해임된 결정적 이유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하고도…맥아더 해임된 결정적 이유는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 한다. 16개국에서 전투부대를 파견한 국제전이었던 이 전쟁은 결코 잊지 못할 전쟁임에도 정치, 이념적 시선에 따라 판이하게 평가된다. 우리 민족에겐 여전히 상흔이 씻기지 않는 최대의 비극이다. 6·25전쟁 발발일을 즈음해 관련 서적들이 봇물을 이룬다. 논란이 분분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아 주목된다. 이 가운데 ‘맥아더’(플래닛 미디어), ‘6·25전쟁과 미국’(청미디어)은 한국전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와 미국 수뇌부 동향을 집중 분석했다. 미국의 전쟁전문가 리처드 B 프랭크가 쓴 맥아더 평전 ‘맥아더’는 당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의 진짜 얼굴이 도드라진다. 책 속의 맥아더는 ‘최고의 업적과 최악의 실패가 공존하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한국전쟁은 특히 그에겐 ‘최고 영광과 최악 수모를 함께 안겨 준 사건’이다. ‘5000대1 확률’의 도박 같은 인천상륙을 감행, 전세를 역전시키고도 중공군 개입을 불렀다. 합동참모본부 명령과 반대로 국경 근처까지 돌진해 중국을 자극한 것이다. 맥아더는 제3차 세계대전 확산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을 공개 비난하고 맞서 해임됐다. 책에서 그 해임 사건은 “너무나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국가 정책에서 벗어나 해임당한 것이며 적절한 조치였다”고 평가된다.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군 731부대장이 전후 전범재판서 무죄받는 조건으로 미국에 실험자료를 건넨 거래에 맥아더가 개입됐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언론인 출신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의 ‘6·25전쟁과 미국’도 맥아더 행적을 촘촘하게 추적하고 있다. 트루먼 대통령, 애치슨 국무장관과 비교한 맥아더의 전쟁 수행 과정이 도드라진다. 트루먼 행정부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군사력으로 방어할 대상 국가에서 제외한 한국에 지상군까지 파병하기로 결정한 과정이 명쾌하다. 당초 38선 이북으로의 북한군 격퇴를 목적으로 했던 유엔군 작전 목표를 북진통일로 바꾼 과정, 북한 완전 점령을 눈앞에 둔 크리스마스 공세가 중공군 개입으로 참패한 원인도 흥미롭다. 맥아더 해임을 놓고는 “맥아더의 아시아 중시주의에 대한 트루먼과 애치슨의 유럽 중시주의의 승리”라고 잘라 말한다. 트루먼, 애치슨이 전략적으로 유럽을 중시하고 한반도에 깊게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 한 반면 맥아더는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한반도를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 차이가 6·25전쟁 당시 한반도에 대한 미국 정책에 혼선을 불렀다고 본다. 전쟁 전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을 빼는 애치슨 발언이나 트루먼이 1951년 4월 맥아더를 해임하고 휴전으로 나아간 것도 유럽 중심주의 때문이다. 반면 맥아더는 공산주의 척결을 위해 북진 당시 평양∼원산 라인에서 방어선을 치고 중국 참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무시한 채 압록강까지 진격해 패했다는 주장이다.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의 긴밀한 협력이 있었다면 맥아더 해임 사태가 없었을 것이며 6·25전쟁도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6·25전쟁 당시 외국 군대의 개입 배경과 전쟁 실상을 추적한 책들도 눈길을 끈다.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책미래 펴냄)은 영국군과 오스트레일리아 지상군을 조명하고 있다. 영국인 저널리스트 앤드루 새먼이 50여명의 생존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책에서 저자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한다. “한국전쟁은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치른 전쟁 중 가장 인명 피해가 크고 잔인했다. 그럼에도 당시는 물론 지금도 영국인들은 그 전쟁을 모르고 있다.” 전쟁에서 영국군은 포클랜드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전사자를 모두 합친 수(783명)보다도 더 많은 1087명이 전사했다. 영국 제27여단과 41코만도 부대, 그리고 왕립오스트레일리아연대의 참전기를 통해 전황이 가장 격렬했던 1950년 마지막 몇 개월의 최전선 상황이 생생하다. 특히 불과 1주일 전에 출발 명령을 받아 무기나 보급품도 제대로 없는 상태로 파병된 영국군의 부산 방어선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 작전 수행 등 극적인 순간들이 소개된다. 박실 전 의원이 쓴 ‘6·25전쟁과 중공군’(청미디어 펴냄)은 1990년대 이후 풀리기 시작한 공산권 공문서·자료를 통해 전쟁 시기 중공군의 움직임을 집중 추적했다. 북한 인민군의 주력이 된 팔로군의 조선인들, 전쟁을 앞두고 김일성이 40여 차례나 스탈린을 조른 이야기, 마오쩌둥의 아들까지 참전한 배경, 마오쩌둥의 지구전 방침, 38선 경계를 둘러싼 줄다리기 과정이 실감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독자의 소리] 호국보훈의 달, 참전 용사들이 운다/진진화 예비역 육군 대령

    6·25전쟁 당시 계급이나 군번 없이 비군인 신분(학도병, 유격군, 노무자 등)으로 참전한 분들이 대략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현역병과 동일하게 전투 현장으로 가거나 향토방위대 등으로 참전했다. 수많은 사람이 전사하거나 부상하는 등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정부는 이분들을 위해 2002년 ‘참전유공자예우법’을 제정해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 주고 있다. 국방부는 비군인 신분으로 참전한 분들에게 심의를 거쳐 ‘참전사실확인서’를 발급해 주고 있으나 현재까지 참전 사실 확인을 인정받은 사람은 3만여명에 불과하다. 국방부에서 참전 사실 확인을 받는다는 게 ‘하늘에 별 따기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이유는 당시 참전했다는 징용장, 증명서 등 객관적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 없는 분들은 같이 참전했던 인우보증인을 세워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대부분 80세가 넘은 고령인 데다 당시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같이 참전한 분들이 대부분 사망해 인우보증서를 받는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국방부는 당시 참전 관련 기록과 정부의 객관적인 자료, 유족(신청자)이 제출한 자료, 기존에 인정받았던 사례 등을 좀 더 전향적으로 검토해 아직 참전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최소한의 명예회복이 가능하도록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이분들의 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속히 국방부 심의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참전 사실 확인을 받도록 도와야 한다. 진진화 예비역 육군 대령
  • ‘報恩의 선물’

    ‘報恩의 선물’

    1951년 4월 6·25전쟁 상황을 들은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자기의 근위병들을 부추겼다. “지구촌 평화를 위해 한국군을 도와야 한다”고 외쳤다. 지구 반대편에 붙은, 이름도 낯선 나라를 지키려다 목숨을 바쳐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 대륙 최강국으로 이끈 황실의 위엄에 힘입은 것이다. 황제로부터 ‘카그뉴’(격파하라)란 부대명을 하사받은 뒤 6037명이 한국 땅을 밟아 전쟁에 나섰다. 이들은 그해 6월 18일 미군 7사단 32연대 소속 대대로 배속됐다. 이후 강원 철원·화천 지구에서 253차례나 격전을 벌여 사상자만 658명(전사자 122명, 부상자 536명)을 기록했으나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던 부대로 유명하다.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고 외친 황제의 당부를 되새겼기 때문이다. 64년 전 인연이 끈끈하게 이어져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의미를 더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뒷받침하는 가운데 국가보훈처와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우리나라를 도우려 희생한 에티오피아 참전자 후손들을 위해 갖가지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강원 화천군에 자리한 육군 3개 사단에선 부사관과 장교들이 달마다 모은 300여만원과 자체적으로 적립한 200여만원을 모아 에티오피아에 장학금으로 보내고 있다. 현지로 따지면 경찰관 평균 월급에 해당하는 큰돈이어서 생활비에 보태고도 남는다고 한다. 화천군은 또 2009년부터 해마다 에티오피아 참전자 후손인 대학생 4명을 선발해 국내 체재비 및 생활비를 거들며 의욕을 북돋고 있다. 오는 25일엔 6·25 발발 65주년을 기념해 현지 장학생 4명을 초청해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되돌아보게 해 자긍심도 심어줄 생각이다. 현지 점검을 위해 에티오피아를 오가고 있는 화천군 신광태 기획총괄계장은 “언제든 우리나라 또한 그러한 처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도왔던 나라로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朴대통령 “나라·국민 위한 희생은 아무나 못 하는 일”

    박근혜 대통령은 5일 청와대로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누구나 말로는 나라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어도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나라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숭고한 일”이라면서 “늘 강조해 왔듯이 국가유공자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6·25전쟁 때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웅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다. 또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의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 안전을 위해 노력하신 수많은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나라 안팎으로 많은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함께 힘을 모아 변화와 혁신의 길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국가혁신과 4대 부문 구조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우리 사회의 적폐를 해소하고 경제 재도약의 토대를 쌓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뉴스 플러스-정치·사회]

    여군 등 참전유공자 2320명 발굴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여군으로 참전했으나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한 16명을 새로 발굴했다고 5일 밝혔다. 6·25전쟁에 참전한 여군 출신 기존 국가유공자는 1788명이나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6·25 참전유공자 발굴 사업에서 여군을 유공자로 등록한 사례는 올해가 처음이다. 보훈처는 이들을 포함해 올해 6·25 참전 유공자 2320명을 새로 발굴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발굴 사업을 통해 유공자로 등록된 사람은 모두 5120명으로 집계됐다. 합수단 軍 비리 현역장성 첫 구속 방위사업 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5일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과 관련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고 행사한 혐의로 박모(57) 해군 소장을 구속했다. 합수단 출범 이후 현역 장성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소장은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부하들을 시켜 ‘와일드캣’이 해군이 요구하는 작전 성능을 충족하는 것처럼 시험평가결과서를 허위 작성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태아 시신 택배’ 발송한 생모 체포 태아의 시신을 택배로 배달시킨 장본인은 생모 A(35)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 나주경찰서는 5일 여아 시신을 상자에 담아 나주에 사는 어머니에게 택배로 보낸 혐의(사체유기)로 A씨를 긴급 체포했다. A씨는 지난달 28일 자택에서 홀로 낳은 아이를 숨지게 한 뒤 지난 3일까지 함께 지내다가 어머니에게 택배로 부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에게 영아살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 [호국 보훈의 6월 함께하는 자치구] 강동, 유공자 표창·위문금 전달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서울 강동구가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추모·위문 행사를 펼친다고 2일 밝혔다. 구는 오는 5일 오전 11시 30분부터 둔촌동 강동보훈회관에서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미망인회, 무공수훈자회 등 11개 보훈단체장과 간담회를 갖는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모범 국가유공자 18명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7일 오전 10시에는 둔촌동 중앙보훈병원을 찾아 입원 중인 국가유공자를 격려하고 위문금 70만원을 전한다.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기념해 29일 10시 보훈회관 대강당에서는 안보 결의대회를 연다. 국회의원과 구의원, 보훈단체장 등 1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90세가 넘은 참전 용사들에게 구에서 직접 제작한 청려장(靑藜杖)을 전달한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DMZ 자전거 타고 통일 꿈 다진다

    DMZ 자전거 타고 통일 꿈 다진다

    강원 철원읍 홍원리에 자리한 월정리역은 경원선 최북단이다. 남방한계선(군사분계선에서 남쪽 2㎞ 거리에 동서로 그은 선. 남·북방한계선 사이 4㎞가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DMZ))에 근접했다는 이야기다. 광복 열흘째이던 1945년 8월 25일 서울과 원산을 잇던 철로는 끊겼다. 1914년 8월부터 222㎞를 달리던 열차도 멈췄다. 31년 만이다. 그나마 반쪽으로 운행했던 철로마저 6·25전쟁 탓에 발목이 잡혔다. 월정리역엔 마지막 기적을 울린 객차를 세워 뒀다. 옆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적힌 팻말이 걸렸다. 현재 서울 용산에서 철원읍 대마리 백마고지역까지 95㎞만 운행되고 있다. 백마고지 또한 뼈아픈 역사를 품었다. 해발에 따라 ‘395고지’라고도 부른다. 전쟁 때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흰말이 누운 듯한 모양을 한 데서 유래했다. 분단 직전까지 운행됐던 백마고지역∼군사분계선 11.7㎞를 복원하는 공사가 오는 8월 첫 삽을 뜬다. 2017년 하반기엔 철마가 다시 달리게 되는 것이다. 철원읍 관전리 ‘노동당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북한 땅이었던 1946년 말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지은 러시아식 3층 건물이다. 전쟁 참화로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4년 ‘발해를 꿈꾸며’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이어서 꽤 유명해졌다. 분단 70돌을 맞아 DMZ를 자전거로 달리며 통일 의지를 다질 시간이 마련된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남경필 경기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자전거 동호인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DMZ 평화누리길 자전거 퍼레이드’ 행사가 오는 30일 오전 9시에 열린다. 경기 연천공설운동장을 출발해 백마고지역, 월정리역을 거쳐 노동당사를 반환점으로 돌아오는 62㎞ 코스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3000t급 차기 기뢰부설함 ‘남포함’ 진수

    3000t급 차기 기뢰부설함 ‘남포함’ 진수

    해군이 27일 차기 기뢰부설함인 3000t급 ‘남포함’의 진수식이 백승주 국방부 차관, 김진형 해군 군수사령관,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렸다고 밝혔다. 남포함은 해군이 1996년 진수한 2500t급 원산함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서 건조된 기뢰부설함이다. 남포함 함명은 6·25전쟁 중 해군이 참가해 기뢰 제거 작전을 벌인 평안남도 남포의 지명에서 비롯됐다. 해군은 6·25전쟁 동안 총 3462차례 기뢰 제거 작전에 출동해 1012개의 기뢰를 제거했다. 남포함은 길이 114m, 폭 17m, 높이 28m 규모로 120명의 승조원이 탑승해 최대 시속 23노트로 순항할 수 있다. 남포함은 평시에 장병 교육 훈련을 지원하며 전시에는 핵심 해역을 보호하는 보호 기뢰를 부설하고 기뢰전 전대의 기함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자동 기뢰부설체계와 선체 고정 음탐기, 레이더 등 주요 장비의 90%를 국산화했다. 해군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연합국의 무관 10명을 초청해 진수식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진수된 남포함은 내년 10월쯤 해군에 인도돼 5개월간 전력화 과정을 거친 후 2017년 4월쯤 작전 배치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특파원 칼럼]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과 달라야 한다/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과 달라야 한다/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또 한 명의 6·25전쟁 참전 미군 용사가 65년 만에 돌아와 묻혔다. 1950년 12월 북한 장진호 전투에 육군 하사로 참전했다가 행방불명된 프랜시스 노벨이 주인공이다. 그는 1954년 유해 인도 후 60년 만인 지난해 신원이 확인돼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날 안장식을 접한 기자는 한국전 참전 미군 용사 중 7852명의 신원이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한·미 동맹을 말할 때 ‘혈맹’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수많은 미군이 피를 흘리며 함께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한국전 참전 노병들과 전직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들은 한·미 동맹의 상징적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특별한 한·미 동맹이 최근 시험대에 올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로 미·일이 신(新)밀월 관계를 과시하는데 한·미 동맹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미·일 동맹 강화는 곧 한·미 동맹 약화라는 ‘제로섬’적 시각이 작용한다. 게다가 한·일 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최악인데 중·일은 정상회담 등 접촉을 계속하면서 한국만 왕따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미·중은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갈등을 지속해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른바 한국 외교의 총체적 위기론이다. 과연 그럴까. 이 같은 패배주의적 시각은 한·미 동맹의 실체와 한국의 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중국 견제용으로 보이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펼치는 미국에 막대한 자금과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일본은 최고의 파트너일 수 있겠지만, 아베 총리는 이번 방미에서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를 외면하면서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리더십을 보여 주지 못했다. 한국 대통령이 여섯 차례 했던 미 의회 합동연설의 기회를 처음으로 잡았던 아베 총리의 방미가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일까. 중국·북한과의 관계 등 지정학적 중요성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미국의 파트너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대폭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동북아 린치핀(핵심축)을 넘어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윤병세 외교장관, 안호영 주미대사 등이 “한·미 동맹은 빛 샐 틈이 없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아무리 입을 모아 외쳐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새달 방미가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미·일 동맹이 아니라 한·미 동맹만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에서 한국의 역할을 통해 한·미의 경제적 이익도 확대할 수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 물론 한국전 참전 용사들과 그들 가족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chaplin7@seoul.co.kr
  • “한국 발전 원동력은 교육” “창조적 문제해결 역량 키워야”

    “정부 주도의 강력한 정책 추진과 우수한 교원,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풍토가 한국 교육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핵심 이유입니다.” 인천 송도에서 열리고 있는 ‘2015 세계교육포럼’에서 각국의 교육 전문가들이 한국의 성공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포럼 둘째 날인 20일 주최국인 한국이 개최한 ‘한국교육 전체회의’ 섹션에서는 고속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소개됐다. 백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은 이날 강연을 통해 한국 발전의 핵심으로 교육에 대한 투자와 이에 따른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꼽았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10년도 안 된 1959년 초등학교 무상교육이 시작됐고, 25년 뒤인 1985년에는 중학교까지 무상교육이 확대됐습니다. 또한 1965년 701개에 불과했던 고등학교가 현재 2300여개에 이릅니다.” ●세계은행 부총재 “교육의 위대한 힘 확인” 백 원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수학 1위, 읽기 1~2위, 과학 2~4위의 높은 학업 성취도를 달성할 정도로 우수한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끌었다”고 했다. 1955년 불과 69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2만 8000달러에 이르고 있다. 백 원장은 “교육재정을 확보한 국가 주도의 강력한 정책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라면서 “지나친 사교육 등 한국 교육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을 중시하는 사회풍토가 한국의 교육을 키운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강연에 참석한 키스 한센 세계은행 부총재는 “전쟁을 극복하고 농경국가에서 하이테크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경제성장을 통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게 만드는 교육의 위대한 힘을 확인할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면서 “전쟁이 끝나자마자 초등교육의 보편화에 나선 것이 주효했으며, 극빈층을 줄이기 위한 이런 노력은 세계은행의 갈 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외른 하우그스타 노르웨이 교육부 차관은 “눈부신 기술 진보의 시대에 인간의 창조성과 리더십을 발현하는 것이 중요하며, 한국도 성공하는 방법이나 문제해결의 역량을 키우는 데 역점을 두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한국의 사례는 자원의 많고 적음보다 그 자원을 어디에 투자하는지의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서 “한국이 앞으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취업·출산 등 한국 청년들 어두운 면 논의도” 한국의 교육에 대해 “반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시민사회단체인 ‘평화교육 프로젝트 모모’의 문아영씨는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취업도 하지 못하고 출산도 기피하는 어두운 면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식 세션 주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의 수전 호프굿 회장 등은 포럼 동안 장외에서 “교사들이 해고됐다는 이유로 교원 노조의 조합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세계의 보편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라면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판정 등에 항의하기도 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