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6·25전쟁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경계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중처벌법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재신청서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北 제재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590
  • [자치단체장 25시] 4·19 효시, 근현대사 품은 강북… “경전철 타고 오세요”

    [자치단체장 25시] 4·19 효시, 근현대사 품은 강북… “경전철 타고 오세요”

    “2017년에는 강북구가 명실공히 서울 동북권의 중심지로 거듭날 겁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21일 구청장실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 ‘경전철 개통’ 등 주요 사업이 마무리되는 올해를 강북구의 ‘터닝포인트’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지역 내 가장 큰 기업은 음식점”이라고 박 구청장이 자조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취약했던 강북구가 양 날개를 장착하고 힘찬 날갯짓에 들어간 것이다. 두 사업은 2010년 박 구청장이 민선 5기 취임 직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구민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이다. 그만큼 박 구청장 개인에게도 의미가 크다.‘역사문화관광벨트’는 북한산둘레길 2코스인 ‘순례길’을 따라 자연환경(북한산 국립공원, 북서울 꿈의숲 등)과 문화유산(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 묘역, 국립 4·19 민주묘지, 3·1운동의 발상지인 봉황각과 분청사기 가마터)을 아울러 강북구만의 역사문화자원으로 특화시킨 것이다. 부지가 수유동과 우이동 일대 48만㎡에 이른다.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강북구였기에 가능한 프로젝트다. 박 구청장은 “광화문, 경복궁, 창경궁 등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들은 어디까지나 왕조나 지배층 양반의 문화”라며 “이와 달리 강북구는 오늘날 민주주의 발전 및 경제 번영을 이뤄 낸 근현대사의 백성문화가 오롯이 녹아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특히 박 구청장은 지난해 근현대사기념관 개관을 ‘일대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어린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최적지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념관은 동학농민운동부터 항일의병전쟁, 3·1운동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전쟁,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지난해 10월 박 구청장은 직접 문화해설사를 자청하며 지역 내 학교 교감 37명을 상대로 직접 ‘기념관 세일즈’를 하기도 했다. 박 구청장은 “오는 4월부터 지역 내 13개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생들은 필수 체험코스로 근현대사기념관을 방문하도록 교육청과 협의를 끝냈다”면서 “근현대사를 외우지 말고 이해하면 재밌는 과목이 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강북구가 전국 초·중·고등학생이 근현대사를 배우는 수학여행지, 대학생을 비롯한 세계 청년들이 민주주의를 체득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올해 강북구는 ‘도시농원 체험장’과 ‘예술인촌’의 조성에 나서 역사문화관광도시를 향한 세부 일정에도 더욱 박차를 가한다. 2019년 완공이 목표인 진달래도시 농업체험장도 기본 설계 및 도시관리계획 결정용역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가 직접 추진키로 한 우이동 가족캠핑장은 기반시설 등 전체 사업의 70% 정도가 진척됐다. ‘역사문화관광도시’ 강북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4·19혁명이다. 지난해 5월에는 사단법인 ‘4·19혁명 유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세계기록유산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를 거쳐 7~8월쯤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에 신청한 4·19 기록물은 총 1450건에 이른다. 1960년 학생과 시민들의 항거활동과 그 이후 이뤄진 부정선거, 피해자 보상, 책임자 처벌 등과 관련된 문건들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등 모두 13건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박 구청장은 “4·19는 독재정권을 비폭력저항으로 붕괴시킨 학생혁명의 효시로서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면서 “올해로 5회째를 맞는 4·19혁명 국민문화제도 양적 성장보다 내실에 치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북구 우이동과 동대문구 신설동을 연결하는 경전철 우이~신설선(11.4㎞)의 개통도 올해 7월 말쯤 이뤄진다. 2009년 9월 착공한 이후 약 8년 만이다. 그동안 우이~신설선은 서울시와 민간사업자가 갈등을 빚으며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현재는 공정률이 90%를 넘어서 전 구간 무인 시운전 중에 있다. 소요시간이 기존 50분에서 20분으로 30분가량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 구청장은 “지하철 4호선을 제외하면 주로 버스에 의존했던 대중교통체계가 경전철 개통으로 확대된다. ‘교통혁명’이라고 명명하고 싶다”며 “경전철이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를 지나기 때문에 역사문화관광벨트와 북한산의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경전철 개통은 강북구의 전체적인 역세권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구청장은 “지금까지 동북선의 중심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미아사거리역 개발만 생각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4호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전철이 (개통)되면 강북 지역 8개 역사 주변도 권역 개발을 위한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해 삼양로 일대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강북구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경전철역 주변의 상권 활성화를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역세권별로 특색 있는 개발을 하려는 강북구의 노력이다. 강북구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오는 9월쯤 북한산에서 ‘산악인 축제’도 개최할 예정이다. 산악인 축제는 구의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북한산과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를 등정한 엄홍길 대장이 있어 가능한 축제다. 박 구청장과 엄 대장은 매년 중학생들과 ‘청소년 희망원정대’를 꾸려 태백산을 오르고 있다. 두 사람은 여기서 나아가 산악인들의 대표 축제를 강북구에서 열어 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박 구청장은 지난해 한 사업 중에 ‘청소년 유해업소 근절운동’을 최고로 꼽았다. 일반음식점 영업신고를 한 뒤 퇴폐주점처럼 영업을 하는 이른바 ‘빨간집’ 없애기에 주력해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70곳 중 100곳이 업종을 바꾸거나 문을 닫았다. 특히 이들 업소가 세가 저렴한 학교 주변 일반 주택가 골목까지 침투한 게 문제였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로부터 반경 200m는 상대정화구역으로 교육상 위생, 유해업종은 들어설 수 없다. 당연히 학부모의 우려도 뒤따랐다. 박 구청장은 “구와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강북경찰서 등 3개 유관기관이 공동 협력해 해결해 나가기로 하고 1주일에 한두 차례씩 강력한 합동단속을 벌였다”면서 “내후년인 2019년에는 강북구에서 유해업소가 완전히 없어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박 구청장은 3선 도전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주변에서 (3선에 도전하라는) 권유가 많다. 주요 사업을 마무리 지으라는 얘기를 많이 하신다. 청취하고 있다”면서 “어떠한 정책이 자리잡으려면 두 번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세 번 정도 (구청장을 역임) 해야 하지 않나. 그래야 역사문화 관광이라는 어젠다가 강북구민들한테 정착될 것으로 본다”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 구청장은 19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를 주축으로 결성돼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서울시의원을 두 번 지냈고 2010년 59.31%라는 높은 득표율로 민선 5기 구청장에 당선됐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공동변소·연탄가게·솜틀집… 고단한 시절 멈춘 곳

    [명인·명물을 찾아서] 공동변소·연탄가게·솜틀집… 고단한 시절 멈춘 곳

    온 나라가 잘살아 보겠다며 땀 흘렸던 1960~1970년대. 굶주린 배를 부여잡기 일쑤였던 그 시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은 혹독했다. 지금은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며 한잔 술에 호기롭게 말하지만 당시는 춥고 황량하기만 했다. 한편으론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리움과 추억으로 회자된다. ‘달동네’는 도시 빈민들의 상징적인 주거 공간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들은 값싼 주거지인 동시에 생존의 공동체였다.달동네란 이름은 마을이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 해서 붙여졌다. 혹은 고단한 삶 때문에 달을 바라보며 출퇴근했기에 그리 불렸다는 말도 나온다. 지금은 대개 재개발로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인천에 지난 시절 달동네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곳이 있어 찾아갔다. 인천 동구 송현동에 위치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1960~1970년대 달동네 사람들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체험 중심 박물관이다. 수도국산(水道局山)은 동구 동인천역 뒤에 있는 산이다.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이 인천 중구 지역을 차지하자 그곳에 살던 조선인들이 수도국산으로 쫓겨나면서 산자락 주거지가 탄생했다. 그 후 6·25전쟁 피란민과 산업화 시기 실업자들이 몰려들어 18만 1500㎡ 규모인 동네에 3000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시작했다. 수도국산 박물관은 과거의 흔적과 기억을 모아 실제 달동네 터 꼭대기에 2005년 10월 건립됐다. 박물관을 향해 언덕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정상에선 인천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여 과거와 현재를 데자뷔하는 듯하다. 박물관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이 층으로 나뉘어 있다. 관람 순서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제1전시실은 990㎡ 규모로 영화 세트장처럼 과거 달동네 모습을 실감 나게 재현한 공간이다. 어두컴컴한 실내 공간 안에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연탄가게, 구멍가게, 이발소, 솜틀집 등이 자리한다. 구멍가게에는 예전에 인기를 끌던 과자와 음료수가 진열돼 있고 솜틀집에서는 마네킹이 솜을 틀고 있다. 여럿이 사용했던 공동구역의 공동수도와 공동변소는 금방이라도 악취가 올라올 것처럼 현실감 있게 묘사해 놓았다. 달동네는 여러 가구가 수도나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줄을 서서 물을 길었고, 아침저녁으론 화장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게 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달동네는 이웃관계가 지속되는 공동체였다. 옆집 담벼락이 우리 집 담벼락이기도 했고 TV가 있는 집으로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곳 전시실에는 그런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 낸 가정집의 모습도 보인다. 좁은 쪽방 안에는 진짜 사람처럼 마네킹들이 TV 앞에 모여 김일의 레슬링을 관람하고 앉아 있다. 흑백 TV에서는 김일의 실제 레슬링 경기 영상이 재생돼 현실감을 더해 준다. “이야 김일이다, 김일!” 지난 15일 전시장을 관람하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발길을 멈추고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마치 생중계를 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다가 경기가 끝나자 웃음을 머금으며 발길을 돌렸다. 아마 예전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함께 온 손자는 이런 광경이 어리둥절한 눈치다. 요즘 아이들은 달동네 생활상에 공감하기 힘들겠지만 다양한 체험을 통해 그 시절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실 내 곳곳에는 물지게 체험, 연탄불 갈아보기, 주사위 놀이 등 체험코너가 마련돼 있다. 또한 골목에 놓여 있는 터치스크린 컴퓨터를 누르면 전문 작가들이 촬영한 달동네 모습부터 실제 달동네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잠시나마 부모의 삶을 느끼게 해 세대 간을 이어 주는 장소다. 2층 제2전시실로 올라가면 추억 어린 상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상점들은 실제로 인천을 대표했던 가게를 본떠서 재현해 놓았다. 가장 먼저 1971년부터 영업했던 ‘우리사진관’이 있다. 사진관 안에는 1970~1980년대에 촬영한 사진들이 비치돼 있고 옛 교복과 교련복을 직접 입어볼 수 있다. 그 옆은 ‘미담다방’이다. 미담다방은 동인천역 축현파출소 옆에 있었던 다방으로 1960년대부터 인천의 명소였다.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옛 다방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푹신한 다방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고 한쪽에는 LP 판이 빼곡한 뮤직박스가 있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다방 앞에는 인천 토박이라면 대개 들어본 바 있는 ‘송림양장점’과 ‘창영문구’가 자리잡고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달동네박물관의 11번째 기획 특별전인 ‘추억 속 우리집에 가다’를 오는 5월 28일까지 개최한다. 특별전은 지역 주민들이 기증한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았기에 의미를 더한다. 실제 살림살이로 쓰던 드레스 재봉틀부터 타자기, 라디오, 선풍기 등이 오랜 세월을 간직한 채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는 1950년대부터 동구 금곡동 배다리에 위치했던 ‘20세기 약방’에 관한 자료를 기증받아 마련된 공간도 있다. 박물관 관람의 종착점은 ‘추억의 구멍가게’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옛 과자와 기념품, 만화책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관람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5~12세) 500원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사드 갈등에도… 새달 중국군 유해 20여구 송환

    한국과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과 상관없이 다음달 22일 6·25전쟁 당시 숨진 중국군 유해 20여구와 유품을 중국에 송환하기로 했다. 한·중 양국은 15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중국군 유해 송환 실무회의를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 국방부는 “양측이 3월 20일 공동으로 유해 입관식을 진행키로 하고 22일 20여구의 유해를 인도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양국은 향후 발굴되는 중국군 유해와 유품도 인도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송환키로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중국 측은 우리의 유해 발굴 노력에 감사를 표명했으며, 양측 모두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올해 제4차 중국군 유해 송환을 추진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측에서 장학명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이, 중국 측에서 리구이광(李桂廣) 민정부(국가보훈처 격) 부국장이 각각 대표로 참석했다. 양국은 사드 배치 갈등과 인도주의적 차원의 유해 송환은 별개라는 원칙 속에서 유해 송환에 합의했다. 중국군 유해 송환은 매년 1월 말∼2월 초 실무회의를 거쳐 청명절(올해 4월 4일) 전에 인도가 이뤄지는 일정으로 3년간 진행됐다. 첫해인 2014년 437구, 2015년 68구, 지난해 36구 등 지금까지 총 541구의 유해와 유품을 송환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사드 갈등에도… 새달 중국군 유해 20여구 송환

    한국과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과 상관없이 다음달 22일 6·25전쟁 당시 숨진 중국군 유해 20여구와 유품을 중국에 송환하기로 했다. 한·중 양국은 15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중국군 유해 송환 실무회의를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 국방부는 “양측이 3월 20일 공동으로 유해 입관식을 진행키로 하고 22일 20여구의 유해를 인도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양국은 향후 발굴되는 중국군 유해와 유품도 인도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송환키로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중국 측은 우리의 유해 발굴 노력에 감사를 표명했으며, 양측 모두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올해 제4차 중국군 유해 송환을 추진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측에서 장학명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이, 중국 측에서 리구이광(李桂廣) 민정부(국가보훈처 격) 부국장이 각각 대표로 참석했다. 양국은 사드 배치 갈등과 인도주의적 차원의 유해 송환은 별개라는 원칙 속에서 유해 송환에 합의했다. 중국군 유해 송환은 매년 1월 말∼2월 초 실무회의를 거쳐 청명절(올해 4월 4일) 전에 인도가 이뤄지는 일정으로 3년간 진행됐다. 2013년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화답하면서 시작됐다. 첫해인 2014년 437구, 2015년 68구, 지난해 36구 등 지금까지 총 541구의 유해와 유품을 송환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80대 해외 노병들, 한국 젊은이들 깜짝 방문에 ‘감격’

    80대 해외 노병들, 한국 젊은이들 깜짝 방문에 ‘감격’

    “젊은 날 한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게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십대 젊은이들이 여든을 훌쩍 넘긴 6·25 전쟁 해외 참전용사들의 심금을 울렸다. 13일 부경대학교에 따르면 유엔서포터즈 학생 13명이 최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3개국을 찾아 6·25 전쟁 참전용사들을 직접 만나 감사를 전하는 특별한 해외봉사활동을 펼쳤다. 부경대 유엔서포터즈는 6·25 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세계평화 수호를 위해 활동하는 평화봉사단이다. 이들은 지난 2일 네덜란드 아르헴 군부대를 찾아 톰 차생라이거(88) 등 참전용사 6명을 만나 미리 준비해 간 감사편지를 낭독하고 감사패를 전달했다. 네덜란드는 6·25전쟁에 5320명을 파병했다. 차생라이거는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젊은이가 먼 길을 찾아올 줄 몰랐다. 이렇게 아직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예슬(23·정치외교학과 3학년) 학생은 “막연하기만 했던 참전용사들을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들어보니 이렇게 먼 곳에서 우리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와줬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맙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부경대생들과 참전용사들은 ‘아리랑’을 함께 부르고 6·25 전쟁 참전 기념박물관과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겼다.이어 부경대생들은 지난 7일에는 룩셈부르크 한국 참전 용사회에서 엘리 크르즈로프(85) 등 참전용사 3명을 만나 고마움을 전했다. 크르즈로프는 학생들에게 “6·25 전쟁에 참전하기 전에는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지만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면서 “전쟁 이후에 한국을 네 번 찾았는데, 방문할 때마다 엄청나게 발전해 놀랍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부경대생들은 지난 1일부터 9일간 해외봉사활동을 펼쳤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단독][스포츠&스토리] 스님이 뛴다 아이들 웃다

    [단독][스포츠&스토리] 스님이 뛴다 아이들 웃다

    “스님, 왜 달리시는지….”사람들은 늘 묻는다. 스님은 오늘도 답을 들려준다. “달리면서 몸과 마음, 이웃을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수행입니다.” ‘탁발 마라토너’로 알려진 진오(속세 나이 54) 스님을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만났다. 승려의 걸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잰걸음에 얼굴엔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런데 3시간여 동안 입에 올린 불교 용어라곤 ‘백팔배’와 ‘수행’뿐이었다. 경북 구미에서 20년째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을 돌보는 사회복지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주민상담센터, 외국인쉼터, 가정폭력피해 이주여성 보호시설, 북한이탈주민 청소년 그룹홈, 다문화 모자원 등 다섯 기관을 운영하느라 바쁘다. 오는 15일 캄보디아로 ‘희망 마라톤’을 떠나기 전에 서울 지인들과 만난다고 해서 인연이 닿았다. 승적은 사형인 도법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전북 남원 실상사에 뒀다. 경북 문경 태생이며 1980년 10월 법주사에서 출가한 뒤 이듬해 동국대 선학과에 입학했고 법명을 지어 준 송월주 큰스님이 1997년 조계종 개혁에 나섰을 때 사형과 함께 큰스님을 보필했다. 불교 공부를 허투루 한 게 아니란 얘기다. “사형은 걷는 스님, 사제는 ‘달리는 스님’으로 자신을 브랜드화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캄보디아에선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부터 수도 프놈펜까지 330㎞를 달린다. 스님은 농으로 “앙코르와트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잖아요”라고 되물었다. 시엠레아프에서 200㎞쯤 떨어진 마을에 화장실이 거의 지어져 벽화를 그려 넣는 작업도 한단다. 70대부터 고교를 갓 졸업한 막내까지 팀을 이뤄 4명은 뛰고 4명은 뛰는 이들을 돕는다. 길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한 자루에 190원인 연필과 회충약 2000알, 지우개, 축구공 등을 건넬 계획이다. “정말 한국에선 190원이란 돈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없는데 거기선 돼요. 처음엔 아이들이 외국인이라고 경계하다가 슬금슬금 따라오죠. 그러면 무릎을 꿇고 아이들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요. 그러다 연필이나 이런 걸 건네면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없어요.” 처음 캄보디아나 베트남의 시골길을 뛸 땐 공안에 숱하게 걸렸다. 왜 뛰느냐고, 머리를 왜 밀었느냐고 캐물었다. 달리는 템포가 끊기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에서 어렵게 지내는 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거나 6·25전쟁 때 파병해 준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그제야 길을 열어 줬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요, 자기들끼리 연락하는지 다음 마을에 가면 환영한다고 손을 흔들어요. 그리고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람들, 은혜 하나는 반드시 갚아요. 한 번은 환승할 때 짐이 늦게 나와 귀국 비행기를 놓쳤는데 제가 도움을 줬던 이주노동자에게 전화했더니 항공사에 전화해 잠도 재워 주고 다른 비행기를 공짜로 탑승할 수 있게 해 주더군요.” 스님이 달리면 ㎞당 100원씩 회원들이 적립한다. 그렇게 모인 돈으로 베트남의 학교와 유치원 30곳에 화장실을 지었다. “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머리 한쪽이 함몰된 채 살아온 베트남 이주노동자 토안 때문이었어요. 그의 뇌수술을 도운 인연으로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찾았는데 화장실이 없어서 아주…”라고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올해 다섯 곳을 더 지을 참이다. “결혼하고 딸까지 낳은 토안에게 제가 이름을 지으라며 가르쳐 준 네 단어 ‘대한, 민국, 경북, 구미’를 까먹었는지 ‘김치’라고 지었대요. 언젠가 그 아이가 한국으로 시집 오지 않을까 싶어요. 허허허.”달리는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러너스 하이’와 참선이 궤를 같이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마라톤 10㎞는 백팔배, 하프마라톤은 삼백배, 42.195㎞ 풀코스는 천팔십배, 마지막 100㎞는 삼천배, 이처럼 땀과 번뇌가 뒤섞이면서 차츰 고요함을 얻는 과정을 거칩니다.” 잘 뛰려면 잘 먹어야겠다 싶은지 사람들은 또 묻는단다. “내일모레 뛰려면 단백질을 보충해야죠”라고. 면역체계가 약해져 필요하다 싶을 때만 고기를 든다고 답했다. 요즘 매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정도 헬스장에서 근력운동 등에 매달린다. 매월 한 번씩 5~7일 동안 탁발 마라톤을 한다. 1986년 군법사로 임관했는데 이듬해 교통사고로 왼쪽 눈을 잃었다. 1999년 금오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하는 일로 무리했는지 2011년엔 간염 판정을 받았다.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권유로 몸이 좋아지라고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뛰다 보니 마음이 들여다보였고, 이웃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송월주 큰스님이 “명색이 스님인데 팬티 차림으로 뛰면 되겠나”라고 말씀하신 데다 종단 눈치도 있고 해서 얼마 전 ‘마라톤 승복’을 만들어 입고 달린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 더 많은 화장실을 짓는 게 꿈이다. “큰스님은 캄보디아에서만 우물을 2300곳 넘게 팠는데 난 이제 시작”이라며 웃었다. 달리기를 배울 무렵부터 도움을 줬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돈을 모으려고만 하지 말고 마음을 얻으라”고 조언한 것에 감명을 받았다. “지치고 졸리고 배고프고 춥고 힘들지만 그런 육체적 고통보다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은 게 더 큰 잘못이란 점을 죽비로 맞은 듯 깨우쳤어요. 이제 모금을 넘어 서로 돕는 인연의 매개체 역할을 하자며 마음을 세우고 있죠.”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대 이어 나라 지키는 새내기 조종사

    대 이어 나라 지키는 새내기 조종사

    9일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고등비행교육을 수료한 6·25전쟁 참전용사의 외손자 최정규(왼쪽) 대위와 공군 준위인 아버지를 뒤이어 조종사가 된 이태권 중위가 T50 항공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 연합뉴스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인류의 문화적 재화, 전쟁에서 구해라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인류의 문화적 재화, 전쟁에서 구해라

    전쟁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닌 모양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배상과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약탈당한 문화재와 예술품 반환 문제도 그렇고. 최근 법원 판결로 난감한 지경에 빠진 충남 서산 부석사 불상도 고려시대에 빼앗기고 그것을 다시 훔치는 방식으로 되찾아와 소유권을 두고 일본과 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전후 독일로부터 약탈 문화재를 반환받은 프랑스는 여전히 자신들이 약탈해 온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문화재, 일테면 한국의 직지나 외규장각 의궤는 반환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도 독일도 영국도 일본도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1889~1945)는 유럽의 문화재와 미술품들을 모아 린츠에 총통박물관을 세울 욕심으로 닥치는 대로 새로운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약탈에 열을 올렸다. 또 실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그림을 그리는 112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의 그림을 퇴폐미술이라 낙인 찍어 압수해 팔아서 전쟁 비용으로 충당하거나 불에 태우기도 했다. 전쟁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 삶의 흔적인 문화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비인간적이며 처참한 전쟁 중에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삶의 기록인 문화재, 미술품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1943년 출범한 모뉴먼츠 맨(MFAA)이 그것이다. 문화예술계 전문가로 구성된 13개국에서 모인 350~400명의 인원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문화재와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와 협력하는 한편 그 스스로가 전장에 나가 문화재들을 지키고 회수하는 일에 나섰다. 이 부대는 유럽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겨울 하버드대 포그미술관의 폴 색스 부관장이 “박물관과 미술관은 평화 시에도 지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또한 전쟁 시에는 그 존재가 두 배로 중요해진다. 전쟁이 일어나면 하찮고 사소한 것은 떨어져 나가고 궁극적이며 지속적인 가치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인류의 예술사, 미술의 역사를 지켜 나갈 ‘특수 기술자’들을 선발해 군에 보내자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출범했다. 이들은 약 500만점의 약탈 예술품을 되찾아 전후에 되돌려 주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벨기에 브루게의 노트르담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작 ‘성모자상’과 겐트의 성바보성당의 반에이크 형제가 그린 ‘겐트 제단화’ 등이 있다. 히틀러는 약탈해 온 문화재들을 1000여곳의 장소에 숨겨 놓았었다. 그리고 패전이 임박하면서 소위 네로 명령을 내려 모든 것을 없애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영화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2014)은 바로 이런 위기상황에서 MFAA의 활약상 중 특히 알타우제 광산과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이들 작품을 찾아 탈출(?)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는 멋지고 바른 말 잘하는 개념배우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제작, 각본에 주연까지 맡은 영화다. 실존하는 모뉴먼츠 맨 8명이 등장하는 영화의 출연진은 실로 호화판이다. 조지 클루니는 미술사학자인 지휘자로 분해 전직 미술관장인 그레인저(맷 데이먼), 건축가 캠벨(빌 머리), 화상인 클레르몽(장 뒤자르댕)을 이끈다. 여기에 히틀러가 약탈한 예술품들이 숨겨진 장소에 대한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클레어 시몬 역을 ‘엘레강스의 교과서’ 케이트 블란쳇이 맡아 그 매력을 최대한 발산한다. 또한 조각가 윌터 가필드로 존 굿맨이 등장하고, 예술품 감정가 프레스톤 셰비츠역에 밥 발라반, 예술 애호가인 도널드 제프리스 중위에 휴 보네빌 등 쟁쟁한 스타들이 출연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로버트 M 에드셀(1956~ )이 쓴 같은 이름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구출되는 조각 ‘성모자상’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겐트의 제단화’는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한다. 인류의 고귀한 문화적 자산인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이 전쟁으로 파손됐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이 그림은 물감에 최초로 기름을 타 사용한 플랑드르의 화가 반에이크 형제의 대표작인 ‘겐트의 제단화’다. 현재 성바보성당에 걸려 있는 작품으로 구원의 신비라는 주제를 다룬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표작이다. 제단화는 예배 때는 열어 놓고 평소에는 닫아 두는 접이식 그림으로 2단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그림의 일부인 ‘어린 양에 대한 경배’ 속 인물 하나하나가 매우 세밀하게 묘사돼 있고 화면의 중심에 양이 배치돼 글을 모르는 당시 사람들에게 성경의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성모자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그의 생전에 유일하게 이탈리아 밖으로 나온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브루게의 부유한 상인이 약 4000플로핀에 구입해서 1506년 교회에 기증한 작품으로, 마리아가 예수를 붙잡거나 그를 보지 않고 아래를 응시하는 도상이다. 이는 제단용으로 제작된 것임을 암시한다. 마돈나와 예수는 그의 피에타상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옷 주름은 매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어 성모의 인자함과 그윽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성모자상은 나폴레옹과 나치에 약탈당했으나 모뉴먼츠 맨들의 활약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후 1972년 작품을 해치려는 시도가 있은 뒤 방탄유리에 싸여 약 4.5m 밖에서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이들이 구해낸 예술품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렘브란트의 ‘자화상’, 베르메르의 ‘천문학자’ 등 수없이 많다. 이렇게 전쟁 중에 문화유산, 예술품을 보존한 모뉴먼츠 맨들은 한국에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던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김영환이나 덕수궁에서 인민군들이 빠져나오길 기다렸다가 공격을 해서 덕수궁을 지킨 제임스 헤밀턴 딜 등이 그들이다. 최근 영국에서 시리아 등지의 문화재가 전쟁의 혼란 속에서 파괴되고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모뉴먼츠 맨 부대가 창설됐다고 한다. 전쟁도 인간이 벌이고, 그 희생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 오영수 문학, 클래식 선율 타고 부활

    오영수 문학, 클래식 선율 타고 부활

    11일 울산 문학관서 시 낭송도 소설 ‘아찌야’ 라디오극으로 변신울산 오영수문학관이 울산 출신 소설가 난계 오영수(1909~1979) 선생 탄생 108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처음 연다. 오영수문학관은 오는 11일 문학관 난계홀과 문화사랑방에서 ‘포성이 멎은 자리, 꽃들은 피고 지고’를 주제로 클래식 연주와 시 낭송이 어우러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8일 발혔다. 행사는 울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울산재능시낭송협회, 난계사랑문학회의 재능기부로 꾸민다. 울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김종규의 지휘로 파헬벨의 ‘캐논변주곡’에 이어 비발디 ‘사계’ 가운데 겨울 2, 3악장을 연주한다. 그사이 난계사랑문학회 이수정 총무가 오영수 선생의 소설 ‘아찌야’를 라디오극으로 옮긴다. 또 울산재능시낭송협회 우진숙 회장이 유치환 시인의 시 ‘출생기’를 낭송하고 조윤숙 직전 회장이 1948년 염주용 시인이 부산에서 발행한 문예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오영수 선생의 시 ‘호마’(胡馬)를 낭송한다. 울주필 단원들이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들려주는 사이 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유치환 선생의 시 ‘깃발’, ‘바위’, ‘세월’,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등을 낭송한다. 기념행사는 생전에 ‘내게 종교나 신이 있다면 고향과 자연일 것’이라고 한 오영수 선생이 즐겨 부른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오케스트라 선율로 함께 감상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연옥 오영수문학관 관장은 “11일은 오영수 선생이 탄생한 지 108주년이 되는 날이며 이틀 뒤인 13일은 유치환 선생 50주기”라며 “조선 청년문학가협회 경남지부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을 뿐 아니라 6·25전쟁이 치열하던 때 동부전선을 함께 종군하면서 생사를 함께한 사이이기도 해 두 분의 문학 혼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쥐잡기· 파리잡기/손성진 논설실장

    [그때의 사회면] 쥐잡기· 파리잡기/손성진 논설실장

    양식을 축내고 병균을 옮기는 쥐와 파리 따위를 몰아내는 것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책이었다. 번식력이 왕성한 쥐의 개체 수가 급증하자 정부는 전 국민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쥐를 잡는 쥐잡기 행사를 해마다 펼쳤다.기사에 따르면 1947년 12월 서울시가 초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쥐잡기 운동을 펼쳐 1등에게 당시 돈으로 상금 5만원을 주었다고 돼 있다. 1948년에 같은 방식으로 서울에서 잡은 쥐가 1만 604마리였다. 6·25전쟁 후 지자체별로 실시되던 쥐잡기 행사는 1962년에 쥐잡기용 국가 예산 8억 2000만환이 책정돼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대됐다. 쥐덫도 보급하고 고양이를 기르자는 캠페인도 벌였다.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이런 구호 아래 1970년대부터는 1년에 수차례 ‘쥐잡기 D데이’를 정해 같은 시간에 일제히 쥐약을 놓았다. 그러잖아도 식량이 부족한 판에 쥐가 먹어 치우는 곡식은 한 해 약 300만 섬으로 곡식 생산량의 10%에 근접했다. 잡아도 잡아도 계속 늘어나 쥐의 개체 수는 인구의 세 배를 유지했다. “쥐는 가족계획이 없다. 쥐 한쌍은 1년 만에 1250마리로 불어난다”고 설명하며 정부는 쥐잡기를 독려했다. 쥐약은 공짜로 지급했다. 1970년에는 1월과 5월 두 차례 ‘D데이’에 잡은 쥐가 무려 7400만 마리. 1972년은 ‘길조’의 동물이라는 쥐띠 해였지만 쥐잡기는 멈출 수 없었다. 학생들은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쥐의 꼬리를 잘라 학교에 가져가 ‘실적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경기 과천에는 쥐 가죽으로 코트, 골프채, 장갑, 가방, 핸들 커버를 만드는 공장이 있어 수출도 했다고 한다. 쥐를 많이 잡은 지자체와 개인은 상을 받았다. 쥐는 어느 정도 소탕되었지만 부작용도 많았다. 영리한 ‘양상군자’(梁上君子)가 먹지 않은 쥐약을, 풀어놓고 키우던 개나 닭, 토끼 등 아까운 가축이 먹어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쥐약을 주워 먹은 아이가 죽는 일도 발생했다. 파리잡기 운동도 펼쳐졌다. 서울시는 1955년 5월 학생들에게 파리를 잡아 작은 성냥갑에 넣어 오도록 해 5만 5000갑을 거두었다. 한 갑에 120마리가량 들어가니 300만 마리를 잡은 셈이라고 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파리 잡아 오기’는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등장했다. 학생을 동원한 파리잡기는 1970년대 말까지 이어지다 사라졌다. 전국적인 쥐잡기는 1989년부터 없어졌고 지자체별로 간헐적으로 시행되던 쥐잡기는 1998년에야 완전히 사라졌다. 사라졌던 쥐잡기 운동이 최근 부활했다. 쥐가 조류인플루엔자(AI)를 퍼뜨리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도 약 600만 마리의 쥐로 몸살을 앓고 있어 ‘쥐잡기 운동’에 나섰다니 쥐는 지금도 동서고금의 골칫거리인 셈이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얼어붙은 50대 소비심리…7년 9개월 만에 최악

    얼어붙은 50대 소비심리…7년 9개월 만에 최악

    한국 경제에서 50대 중년층의 소비 활력이 크게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월 50대 가구주의 소비지출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96으로 작년 12월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작년 10월 105에서 11월 100으로 떨어진 이후 석 달 연속 내려갔고, 2009년 4월 96을 기록한 이후 7년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지출전망 CSI는 6개월 후 가구의 소비지출 규모가 현재보다 늘거나 줄 것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비슷할 것으로 보는지 물어본 결과다.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소비지출이 줄어들 것으로 응답한 가구가 더 많다는 뜻이다. 50대의 소비심리는 60대의 94나 70세 이상의 95 등 고령층과 비슷할 정도로 움츠러든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40세 미만의 젊은층(20∼30대)은 112, 40대는 108로 50대보다 각각 10포인트 넘게 높았다. 특히 최근 1년간 50대 중년층의 하락세는 두드러진다. 50대의 소비지출전망 CSI는 작년 1월보다 7포인트나 떨어지면서 전체 연령대에서 하락 폭이 가장 컸다. 20∼30대 젊은층의 소비지출전망CSI는 1년 전보다 1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고 40대의 경우 3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60대(97→94)와 70대(97→95)도 하락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50대 중년층은 비교적 소비를 많이 해왔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정체된 소득과 부채 증가 등의 이유로 경제적 여유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로 이해할 수 있다. 50대의 상당수는 6·25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에 속한다. 직장에서 조기 은퇴를 하고 식당, 부동산임대업 등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도 많지만 성공하기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갑을 크게 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공적연금 확충 등으로 중년층을 경제·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은은 작년 10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소비성향 하락은 노후에 대한 불확실성에 주로 기인해 60대보다 40∼50대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며 “공적연금 확대 등으로 이런 불확실성이 해소될 경우 소비성향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적진서 맨손으로 폭탄 투하 6·25 영웅의 ‘항공 징비록’

    적진서 맨손으로 폭탄 투하 6·25 영웅의 ‘항공 징비록’

    11대 참모총장 공군사·근현대사 생생하게 기록 공군의 전설이자 11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두만 예비역 대장의 평전 ‘항공 징비록’ 출판기념회가 25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열렸다. ‘항공 징비록’은 6·25전쟁 100회 출격, 맨손 폭탄 투하 등 살아 있는 전쟁 영웅 김 장군의 삶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공군사를 풍부한 자료와 함께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김 장군은 6·25전쟁 발발 당시 우리 공군에 단 한 대의 전투기도 없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T6 훈련기로 출격, 적진에 맨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며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 이후 1950년 10월 여의도기지 작전, 1951년 8월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1951년 10월 대한민국 공군 단독 출격작전,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 차단작전 등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춘천전투 영웅’ 軍이 만든 신화였나

    군 조사 “훈장 적합” 결론냈지만 전공 조작 등 증언에 논란 계속 전투 군인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상한 ‘참 군인’의 표상. 6·25전쟁 발발 초기 이른바 ‘춘천전투’에서 단기필마로 육탄 돌격해 혁혁한 전과를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도 은성무공훈장을 수상한 6·25전쟁의 영웅. 지금까지도 군 정신교육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고 심일(1923~1951) 소령이다.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전쟁영웅이었던 그의 공적에 의문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월남전쟁 당시 사이공 현지 주재대사관의 공사를 지낸 예비역 준장 이대용씨는 지난해 6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공적이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육탄 돌격은커녕 대전차포를 적에게 넘긴 채 도망갔고 그의 상관이 전공을 조작, 훈장을 상신함으로써 거짓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육군의 1차조사에서는 이씨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방부는 본부와 육군에 정밀조사를 지시했고, 전쟁사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공적확인위원회’가 구성돼 4개월 남짓 생존자 증언 등 진실 수집에 나섰다. 위원회는 24일 공청회를 열어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50년 6월25~26일 강원도 춘천지역 제6사단은 북한군 공격을 3일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춘천 전투’는 그 사흘간 6사단 7연대와 19연대가 필사적으로 춘천을 사수한 방어전투다. 당시 6사단 7연대 3대대가 패퇴하자 대전차포중대의 제2소대를 투입해 저지했는데 당시 소대장이 심 중위였다. 심 중위는 소대원들과 함께 대전차포 2문으로 북한군을 저지했지만 여의치 않자 1~2㎞ 후방인 옥산포로 후퇴해 기회를 엿보다 화염병과 수류탄으로 적 자주포 2대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씨 등은 당시 옥산포 지역에서는 다른 부대가 격전 중이었고, 북한군 자주포는 뚜껑을 열 수 없어 화염병 공격 등은 불가능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의혹을 제기했다. 위원회는 공청회에서 일부 의혹에도 불구하고 심 소령의 공적은 6사단특별명령, 미 은성무공훈장 추천서 등 각종 서류나 생존자 증언 등으로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결론에 대해 군 안팎의 일부 인사들은 여전히 의도적인 ‘영웅 만들기’라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아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태국 바다 지킬 최신 호위함 거제서 진수

    태국 바다 지킬 최신 호위함 거제서 진수

    테스트 뒤 내년 태국 해군 인도 대우조선해양은 23일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에서 태국 해군으로부터 수주한 3650t급 최신예 호위함(프리깃) 진수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진수된 태국 수출 호위함은 대우조선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DSME-DW 3000F급 최첨단 호위함으로 길이 122.5m, 폭 14.4m 크기다. 최고 30노트 속력으로 운항할 수 있다. 신형 레이더와 소나 등 최첨단 전투체계와 수직 발사관, 함대지 미사일 등 최신 무기체계를 장착해 우수한 대공·대함·대잠 작전능력을 갖췄다. 호위함은 마무리 의장공사와 운항테스트 등 전력화 시험을 거쳐 2018년 건조를 마치고 태국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2013년 계약 당시 수주금액이 5000억원으로 태국 국방계약 역사상 최대 금액이다. 동남아 최강 군사대국으로 알려진 태국은 최근 주변국들의 해군력 증강에 따른 영유권 분쟁에 대비하고 해양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오래돼 낡은 함정을 현대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이번 호위함을 건조하면서 국내 주요 방위산업체 기자재를 적용해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을 꾀했다고 밝혔다. 진수식에는 나 아리니치 태국 해군참모총장과 랑사릿 사타야누꾼 호위함 운영위원장, 사란 짜른수완 주한 태국대사, 오원진 방위사업청 방산진흥국장, 박영식 해군 준장,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 등 태국·한국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나 아리니치 해군참모총장은 “태국 해군의 요구사항이 적절히 반영된 최신예 맞춤형 호위함은 기존 호위함들과 함께 원활한 작전 수행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성립 사장은 “최고 수준의 태국 호위함을 완벽하게 건조해 6·25전쟁 당시 한국군을 도운 우방국 태국의 해군전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며 “대우조선에서 건조한 군함이 전 세계 대양을 누비며 활약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6·25 호국 영웅’ 故조영환 하사 귀환

    ‘6·25 호국 영웅’ 故조영환 하사 귀환

    올해 첫 ‘호국영웅 귀환행사’가 6·25전쟁에서 전사한 고 조영환 하사 유족의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열렸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들이 17일 고인의 딸 조규순(오른쪽 맨 앞)씨 등 가족들에게 고인의 유품, 신원확인통지서,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 시 관을 덮은 태극기 등을 전달한 뒤 경례하고 있다. 1950년 8월 수도사단 17연대에 배속돼 참전한 고인은 경북 포항 일대에서 북한군 12사단과 치열한 교전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 [글로벌 인사이트] “인생은 도전”… 잘나가던 그들, 모험을 꿈꾸다

    [글로벌 인사이트] “인생은 도전”… 잘나가던 그들, 모험을 꿈꾸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붉은 닭의 해’인 정유년, 미국 워싱턴에서 일하는 한인 30대 여성 두 명을 각각 만났다. 마침 새해를 맞아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게 된 이들이다. 워싱턴DC 의료컨설턴트에서 닷컴벤처 사업가로 변신한 송경민씨와 미 의회 보좌관 직을 떠나 전 세계 24개국을 돌며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록 사업에 나선 한나 김씨가 주인공이다. 올해 모두 34세가 되는 그들은 “삶에 대한 열정 없이는 단 하루도 무의미하다”며 “주변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변에서 모두 부러워하는 안정적 직장을 뒤로하고, 앞날을 알 수 없는 모험을 시작하는 그들의 특별한 도전기를 12일(현지시간) 들어봤다. ■창업 CEO 된 의료 전문가 닷컴벤처 사업가 변신 송경민씨 “의료전문가가 왜 엉뚱하게 닷컴벤처를 차리냐구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제 인생이니까요.” 워싱턴DC에 있는 보건정책컨설팅사 ‘에이밸리어헬스’에서 잘나가던 컨설턴트 송경민(34)씨는 요즘 밤낮없이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의료 분야에 몸담은 지 15년 만에 사업가로 변신, ‘업종 변경’을 시도하는 중이다. 그것도 의료 관련 사업이 아니라 미국 내 3000만명이 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특화된 물물 교환 및 정보 사이트를 운영하는 벤처 창업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미국판 ‘중고나라’ 성격으로, 특히 이동이 잦은 대학 관계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살림살이와 책 등을 사고팔고, 학업과 생활에 유용한 인턴·아르바이트 등 각종 정보과 조언을 나눌 수 있는 사이트를 올해 상반기 중 오픈할 예정이다. 왜 대학생 대상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일까. 그는 “2011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대학원에 유학을 와서 보건학과 경영학(MBA)을 복수전공했는데, 2년 동안 여기저기서 인턴을 하고 방학 때 기숙사에서 나와야 해서 이사를 여섯 번이나 다녔다”며 “유학생 등 친구들이 귀국할 때 가구 등을 빨리 처리하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학생들끼리 안심하고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MBA 동창과 함께 지난해부터 이 같은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잘 몰랐던 컴퓨터 프로그래밍부터 체계적으로 배워 직접 사이트를 만들고 있으며, 상반기 중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모교인 존스홉킨스대 등 동부 대학 학생회 등과 손잡고 학생들의 직접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사이트의 유용성 여부가 검증되면 벤처캐피탈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등 구체적 펀딩 및 마케팅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는 “비슷한 서비스를 준비하는 회사들이 있지만 제휴 대학을 넓히는 등 대학생 온라인 장터의 ‘넘버 원’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고액 연봉의 컨설턴트를 관두고 경쟁이 치열한 벤처 창업에 뛰어든 그를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인생 자체가 변화를 위한 도전의 연속이었다”며 “변화에 끌려가기보다 변화를 주도하자는 것이 삶의 모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대 출신’으로도 평범하지 않았다. 2008년 의대 졸업반 때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인턴 활동을 했으며, 보건정책에 관심을 갖게 돼 졸업 후 남들과 달리 인턴·레지던트의 길로 가지 않고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서 예방접종관리 책임연구원으로 2년간 근무했다. 이어 보건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 뒤 임상이 아닌 정책을 하려면 리더십 등 경영을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MBA까지 전공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백신을 개발하는 제약회사 ‘머크’에서 일하면서 제약과 정책을 접목시켰고, 2013년 워싱턴 보건정책컨설팅사로 옮겨 ‘오바마케어’ 등 미국의 보건정책을 컨설팅하는 등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계속 도전해 왔다. 최근에는 미국 영주권도 받았다. 그는 “시대가 급변해 인공지능(AI)이 의사 등 많은 직업의 일을 대체할 텐데, 기술 발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도전해 변화를 이끌어가고 싶다”며 “기술과 서비스를 바탕으로 한 벤처 창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통해 후배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해 주는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평화 메신저 된 의원 보좌관 한국전 참전용사 기록 한나 김씨 “저 멀리 떠나요, 그것도 오랫동안. 더 보람 있는 일을 하려구요.” 지난해 11월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 하원 건물에서 열린 대표적 ‘지한파’ 찰스 랭걸 민주당 하원의원 은퇴식에서 만난 한나 김(34) 랭걸 의원실 비서실장 겸 공보국장은 랭걸 의원을 떠나보낸 뒤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 랭걸 의원을 지난 7년간 보좌하면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일 제정, 재미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 등 한국 관련 굵직한 법안 통과 실무를 주도해 온 그는 워싱턴에서 벗어나 한국전 참전국들을 직접 방문해 참전용사들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구체적 계획이 궁금했다. 오는 19일 ‘먼 여행’을 떠난다는 그를 최근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다시 만났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 랭걸 의원실에서 활동하기 전부터 6·25전쟁과 남북 분단 상황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인 6·25전쟁에서 희생한, 이제는 고령인 참전용사들이 없었다면 한반도의 평화도, 내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이 그가 2008년 참전용사들을 예우하고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모임 ‘리멤버727’을 조직한 계기였다. ‘727’은 1953년 6·25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날로, 미국에 휴전일을 제대로 알리자는 의도도 작용했다. 그는 해마다 7월 27일이면 참전용사 등 수백명과 함께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 모여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그런 그가 이 모든 활동을 당분간 내려놓기로 했다. 80대 고령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인 랭걸 의원의 바쁜 보좌관이자 민주당 공보국장협의회 의장, 리멤버727 대표로 워싱턴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던 그다. 그는 “한국전 참전국 21개국과 러시아, 일본, 중국 등 모두 24개국을 4개월 동안 돌며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등을 방문하고, 각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하려고 한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아직도 휴전 상태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듯 통일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에서 보좌관 등으로 계속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 온 ‘참전용사 기록 프로젝트’를 위해 사비를 털어 19일 캐나다를 시작으로 5월 8일 부산 유엔기념공원 방문까지 4개월 동안 배낭을 메고 6개 대륙에 걸쳐 16만㎞를 걸어다닐 예정이다. 부족한 자금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지금까지 1만 달러(약 1200만원) 가까이 모았다. 그는 또 각국 현지 한인회 등에 참전용사들과의 만남을 위한 통역 및 현지 촛불 집회 등을 위한 도움을 부탁하고 있다. 그는 “참전국 21개국 외 러시아와 일본, 중국 방문은 화해를 위한 것”이라며 “중국 선양에 있는 한국전 관련 기념관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6·25전쟁과 한반도 분단은 뼈아픈 역사이지만 이들 국가와의 화해도 통일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인 2세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메신저가 되겠다는 그는 “젊은 세대가 통일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조여옥 대위, 복장 규정 위반까지…가짜 ‘약장’ 패용 ‘논란’

    조여옥 대위, 복장 규정 위반까지…가짜 ‘약장’ 패용 ‘논란’

    조여옥 대위가 청문회 당일 육군 복제 규정을 위반한 가짜 ‘약장(略裝)’을 패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조 대위는 지난 22일 열린 ‘최순실 국조특위’ 5차 청문회에 증인신분으로 출석했다. 현역 육군 장교인 조 대위는 당시 정복차림으로 청문회장에 등장했다.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조 대위의 정복 왼쪽 가슴엔 총 3개의 약장이 달려있었다. 적십자회비를 내는 국군 간부라면 누구나 패용 가능한 적십자기장을 제외한 나머지 2개는 조 대위가 패용이 불가능한 약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는 건군 50주년 장이고 다른 하나는 6·25전쟁 40주년 장이다. 건군 50주년장은 1998년 8월15일 기준으로 10년 이상 복무한 군인과 군무원에게 패용자격이 주어진다. 6·25전쟁 40주년 장은 1990년 6월25일 기준으로 장기하사(일반하사) 이상 현역군인으로 복무한 간부만이 패용가능하다. 조 대위는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 후 2011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기 때문에 두 가지 약장 모두 패용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그러나 조 대위는 해당 약장을 청문회장에 입장할 때까지 패용했다. 이같은 사실이 생방송 중계카메라에 잡히자 육군에서는 조 대위에게 정복에서 부적절한 약장을 떼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대위는 이후 청문회 도중에 문제의 약장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조 대위가 분명히 패용해서는 안되는 약장을 달았던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어떤 이유로 약장을 패용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약장은 기념 표식 등을 요약해서 옷에 부착하는 휘장을 의미한다. 일종의 명예의 표시로 제복에 달린 약장을 통해 군인의 이력과 경력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국민추천포상을 통한 희망 찾기/한창섭 행정자치부 의정관

    [In&Out] 국민추천포상을 통한 희망 찾기/한창섭 행정자치부 의정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여느 해 같으면 지난 1년을 차분히 돌아보고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며 다가올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하느라 분주할 때이지만, 요즘 왠지 사람들의 어깨가 처져 보인다. ‘기부 한파’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자되는 걸 보니 어려운 이웃에 대한 나눔의 손길도 예전만 못한 듯하다. 행정자치부는 연말연시를 맞이해 부서별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필자도 얼마 전 직원들과 함께 주말을 이용해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백사마을에서 연탄 배달 봉사를 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의 실천은 간헐적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며 생활 그 자체에 나눔과 봉사의 정신이 배어 있어야 함을 안다. 우리 부의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들이 바로 생활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한 주인공들이 아닌가 싶다. 2011년부터 시작된 ‘국민추천포상’은 국민들이 직접 주위의 훌륭한 이웃들을 추천하고 정부가 포상하는 제도다. 흔히 훈장이나 포장은 지위가 높고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사람들만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국민추천포상은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난다. 금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선행을 실천해 온 분들이 추천됐는데, 남녀노소와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전국 곳곳에 숨은 공로자들이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행자부는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엄정한 심사를 했으며, 그 결과 일흔여섯 분의 자랑스러운 이웃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비록 금년에는 수상자로 선정되지 못했지만 그동안 이웃과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분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번에 수상하게 된 일흔여섯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목이 많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6·25전쟁으로 남편이 전사한 뒤 온갖 고생을 해 가며 모은 전 재산 12억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하신 박수년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질곡 많은 현대사를 헤쳐 온 우리 부모님 세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안겨 준 조시운씨에게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고 2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시한부 환자들의 손발이 돼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헌신적으로 호스피스 봉사를 해 온 손정자씨는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이 밖에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다. 예로부터 “인품이 훌륭한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말이 있듯이,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들의 숭고한 삶의 향기가 국민들 가슴속 깊이 스며들어 우리 사회를 밝히는 희망의 메신저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희망은 멀리 있지 않다. 2016년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들처럼 희망의 빛은 우리 주위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행자부는 앞으로도 그 빛나는 희망들을 찾아내고 전파하는 일에 노력할 것이다. 국민들께서도 일상생활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희망을 전해 온 숨은 이웃들을 적극 추천해 주시기를 바란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에는 또 어떤 숨은 공로자들이 국민추천포상을 받을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내 이웃 작은 등불] “6·25 잊지 마세요”… 사진전에 담는 참전용사의 희망

    [내 이웃 작은 등불] “6·25 잊지 마세요”… 사진전에 담는 참전용사의 희망

    “올해 3월 한국에서 6·25전쟁 참전용사의 영정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참전용사들이 한 분이라도 더 건강할 때 빨리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념의 문제를 떠나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겪었고, 그 후유증과 평생 싸운 사람들이 있다는 걸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사진작가 김승우(28)씨는 “아직 영정 사진 프로젝트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본지 보도<4월 26일자 29면>가 나간 이후에도, 김씨는 참전용사들을 찾아 나섰고 총 37명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8월에는 이들을 한 명씩 다시 찾아 완성된 영정 사진을 전달했다. “영정 사진을 드리러 찾아뵜더니 ‘사진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전시가 이뤄져서 6·25전쟁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지금은 새해에 사진전을 열 계획으로 이제껏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용으로 재보정하고 있다. 군복무 때 찍은 사진까지 총 57개의 작품을 선보일 생각이다. 김씨는 미국 뉴욕대에서 사진을 공부하다 2010년부터 사진병으로 군대에서 복무했다. 2011년 6·25전쟁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참전용사 19명의 영정 사진을 찍었고, 이 경험이 프로젝트의 계기가 됐다. “전역 후에 대학을 졸업하러 미국에 갔는데 미국에서도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으로 불리더라구요. 한국전쟁에 참여한 군인들도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씨는 촬영을 위해 만난 참전용사 대부분이 ‘나만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수십년간 시달려 왔다고 했다. “가슴이 아팠죠. 트라우마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니 이분들은 치료도 받지 못했어요. 그래도 미국의 6·25전쟁 참전용사는 미국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의식주에는 큰 불편이 없었는데 한국의 참전용사는 대부분이 빈곤층이었어요. 안타까웠습니다.”그의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50여명의 기부자 때문에 가능했다. 김씨는 지난 10월 기부자에게 에코백, 엽서 등 기념품을 만들어 전달했다.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다’라며 주소도 알려주지 않는 기부자들도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응원의 마음을 모아 도전하는 단계였다면 새해는 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김일수 樂山樂水]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는 이유

    [김일수 樂山樂水]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는 이유

    광장의 촛불에서 서정 깊은 시적 영감을 얻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처럼 지난한 일에 속해 보인다. 군중 속에 집합한 촛불은 저녁이 찾아온 뒤 초옥 어두운 방을 밝히던 목가적 이미지의 촛불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라고 노래했던 신석정 시인의 촛불을, 광장을 붉게 물들인 채 용암처럼 들끓는 저 거대한 몸체의 촛불과 비교하는 것은 마치 가녀린 한국 어머니의 촛불과 파리 68혁명에서 놀아먹던 음녀의 촛불을 비교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내가 12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며 일어났던 광장 촛불에 대해서나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괴담으로 촉발됐던 수개월에 걸친 광장 촛불에 거부감을 표했듯이, 최근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야기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반의 촛불 군중집회에 대해서도 불안한 눈으로 항거하고자 하는 이유는 매한가지다. 평온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평범한 시민의 일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이리’ 세상처럼 불안하다. 네 살에 6·25전쟁 소식을 접했고, 휴전이 체결되던 해 4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중학생 때 매일 아침마다 쏟아지는 혁명정부포고령을 들으며 학교를 다녔던 우리 또래의 기성세대라면 불안한 현실에 대한 염려의 깊이가 남다르리라 생각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갈망했고 쟁취했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공동체와 함께하는 자유, 가치질서로부터 벗어난 무분별한 자유가 아니라 항시 가치와 질서로 회귀하는 자유를 의미했다. 안전을 불사를 위험이 있어 보이는 자유보다는 차라리 안전 속에서 제한된 자유의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그것을 기꺼이 선택할 줄 알았다. 얼굴 없는 군중의 촛불 속에서는 그런 절제가 언제든지 깨어질 위험이 높다. 이 시기 대선주자 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문재인이 언론인들 앞에서 헌법재판소가 탄핵기각 결정을 내리면 혁명으로 이어질 거라 공언한 것은 섬뜩한 말이지만, 매우 개연성 높은 현실적 위험을 실토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화법을 통해 헌재를 압박하거나 촛불민심을 끌고 갈 심산이었다면 고의이건 부주의이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할 도리가 아니다. 그런 말 한마디가 혹시 촛불을 광기로 몰고 가 공동체의 질서를 송두리째 불살라 버리기라도 한다면, 호전적인 북녘 지도자들밖에 어디 달리 좋아할 얼굴이 또 있겠는가. 또한 반면으로 그런 가벼운 입놀림에 놀아날 광장의 촛불 군중이라면 그건 어두운 방 한구석을 밝히는 작은 촛불 하나의 가치만도 실은 못한 것 아닐까. 어쨌거나 주사위는 이제 던져졌고 막중한 과제는 헌재의 손으로 넘어갔다.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는 비교적 방대하다. 아홉 가지 사유 중 헌법위배가 5가지, 법률위반이 4가지지만, 행위유형별로 보면 헌법위배 13가지, 법률위반 8가지 등 21가지 유형이다. 법률적인 의미 외에 정치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사안들이다. 박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해당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탄핵 기각을 구하는 답변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변론 절차에서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제 본격적인 채비를 갖춘 특검과 아직 진행 중인 국회국정조사특위의 활동에 비춰 볼 때 헌재의 심리대상이 된 사안들에 대한 진실규명이 마음먹은 대로 그리 빨리 매듭지어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조기 대선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야당과 이른바 잠룡들로서는 경우에 따라 예상이 뒤틀리고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때가 큰 그릇과 소인배가 확연히 드러날 결정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자기이익을 위해 촛불민심을 빙자해 헌재에 외적 압력을 넣는다든지 정치적인 편법으로 퇴진운동에 불을 붙이고자 하는 무리는 소인배다. 거기에 장래를 맡길 수 없다. 이때 촛불은 민주시민의 품격 있는 정서는커녕 공동체가 쌓아온 민주적 성숙도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물건으로 변질될 것이 뻔하다. 내 개인의 서정적 고향인 촛불이 광풍에 밀려나 꺼져가는 것도 가슴 아픈데, 순수하게 타오르던 광장의 촛불이 타락한 정치적 술수에 휘말려 화마로 변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내가 촛불 하나 켜 놓고 기도하는 이유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