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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9)국가기록원 포털 검색결과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9)국가기록원 포털 검색결과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정부가 6월 항쟁을 기리는 첫 기념식을 개최할 예정이지만 정작 6월 항쟁과 관련한 정부 기록물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8일 서울신문이 정부의 모든 기록물을 관리하는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의 ‘국가기록포털(contents.archives.go.kr)’을 검색해 본 결과 ‘6월 항쟁’과 관련한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가기록연구 관련 전문가들은 ‘기록이 없으면 정부도 없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정부의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국가기록포털에는 역대 대통령 재가 문건과 기관별 간행물 등 총 982만 4810건의 국가기록물이 있지만 1987년 6월 항쟁 당시 기록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4·13호헌’과 ‘6·29선언’의 전문조차 없었다. 국가기록포털은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모든 준영구보존 이상 국가기록물을 대상으로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찾아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사이트로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정부수립 후 각종 문서와 도면, 시청각자료 등을 검색해 볼 수 있다. ●박종철열사 정부간행물 고작 10건 검색 결과에 따르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열사에 대한 기록은 시청각기록물 1건과 정부간행물 10건에 불과했다. 시청각기록물은 공보처(현 국정홍보처)가 촬영한 ‘이한기 국무총리 박종철사건 수사결과 관련 담화문발표’ 자료였다. 정부 간행물 중 87년 1월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진 사건에 대한 정부 기록은 없었다.6월 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에 대한 기록도 1건에 불과했다. 이 기록도 2005년 울산시교육청에서 발행한 계간지인 ‘울산교육’의 간단한 언급에 불과했다. ‘4·13호헌조치’도 ‘정관용 총무처장관이 총무처 4급 이상 공무원 부부에 대한 4·13호헌조치에 대한 특강’과 관련한 시청각기록물 8건이 전부였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87년 4월13일 발표한 특별담화 전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87년 당시 전 전 대통령의 기록물도 연설문집 1건이었다. 그나마 시청각기록물은 9048건을 찾을 수 있었다.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 ‘6·29선언’과 관련된 기록물은 단 한건도 없었다.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의원 관련 기록물도 시청각기록물 90건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시위진압을 위해 사용한 최루탄에 대한 기록이나 6월 항쟁 지도부 구실을 했던 국민운동본부(국본)에 관한 기록물도 없었다. ●“관련 자료 이관받지 못했다” 해명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각 기관에서 이관받은 6월 항쟁 관련 자료는 숫자도 워낙 적고 내용도 빈약해서 국가기록포털 특집으로 공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면서 “국가기록포털 ‘이달의 기록’이라는 코너에서 오는 29일쯤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4·13 호헌 담화는 전문을 이관받지 못했고 시국사건 재판기록은 30년이 안 돼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개할 수 없는 상태”라면서 “또 6·29선언 전문은 발표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민정당 대표 신분이기 때문에 정당 기록은 이관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민간연구소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전진한 선임연구원은 “국가기록원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민주화 관련 기록들을 적극적으로 이관·수집 받아 국민들에게 공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국민들이 알고자 하는 기록물을 국가기록포털에서 찾을 수 없다면 국가기록포털의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고 꼬집었다. 이승휘 명지대 기록관리대학원 교수는 “현재 국가기록포털은 일반인이 손쉽게 접근하기 힘든 구조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나마 중앙기관은 국가기록원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시조차 그런 기관이 없다.”면서 “기록관리전문기구가 모든 공공기관에 그물처럼 연결돼 있는 중국처럼 국가기록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10일 정부차원 첫 기념식 ‘6월 민주항쟁’을 기리는 정부 차원의 첫 기념식이 열린다. 정부는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1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민주인사 및 정부, 각계 주요 인사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정부 기념식을 갖는다고 8일 행정자치부가 밝혔다. 정부는 지난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 매년 6월10일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국민이 꽃피울 희망의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기념식에는 1987년 6월10일 태어난 ‘87둥이’ 등이 특별 초청되고, 식전 행사인 ‘다시 부르는 6월의 노래’ 순서에서는 6·10 민주항쟁 당시 대학생이었던 386세대와 그들의 자녀, 경찰관이 함께 나와 노래를 부른다.9일에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전야제가 열리며, 전국 시민축구 축전 등 전국적으로 38개 지역에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정부 기념식과 별도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한국진보연대(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0일 낮 12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6월 항쟁 20주년 계승 범국민 대행진’을 벌인다. 범국민대행진은 6월 항쟁 참가자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자유 발언과 문화 행사를 마친 뒤 서울 광장을 출발해 명동성당까지 행진해 20년전 그날의 감동을 되살릴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던 상황과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 전투경찰 전투모에 꽃을 꽂아주던 여성 등 6월 항쟁을 상징하는 장면들도 재현할 계획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87년생들 ‘87년 6월항쟁’ 만나다

    6월만 되면 어디선가 피끓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호헌 철폐”,“독재 타도”를 부르짖던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방송가는 다양한 ‘6·10항쟁 특집’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KBS가 가장 다채롭고 풍성하다. 주말인 9∼10일 오후 8시에는 ‘KBS스페셜’로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가른 스무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1987년 6월10일부터 29일까지 과연 무엇이 수십만명의 시민을 매일같이 바리케이드 앞에 서게 했던 것일까. 또 그 열망들은 20년이 지난 오늘 얼마나 성숙하게 자리잡았을까. ‘미디어 포커스’도 9일과 16일 오후 10시30분 제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는 데 동원된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을 되돌아보는 ‘제1편: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 와 ‘제2편:하늘이 내린 대통령’을 차례로 방송한다. 또 9일 밤 10시50분 ‘특집 콘서트 7080’과 10일 오후 5시50분 ‘특집 열린 음악회’도 1980년대를 기억하는 문화인들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밖에 10일 오후 11시10분 ‘6월 항쟁 20주년 대토론’에서는 함세웅, 신영복, 최장집, 조희연, 김호기 등 당시 항거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학자들로부터 의미와 과제 등을 들어본다.SBS는 10일 오전 6시50분부터 ‘6·10민주항쟁 20주년특집-나의 6월 이야기’를 1,2부에 걸쳐서 방송한다. EBS는 기성세대의 중심이 된 386세대와 갓 성년이 된 1987년생들로부터 민주항쟁의 의미를 들어보고, 그들의 인식 차이를 엿보는 시간을 마련했다.‘시사, 세상에 말 걸다’는 8일 오후 10시50분에 6월 항쟁 당시 역사의 현장에서 선봉 노래패 역할을 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만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어 대한민국 민주화와 동갑내기이지만 ‘운동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노찾사’ 노래에 공감하지 못하는 1987년생 대학생들도 만난다. 케이블 히스토리채널의 ‘역사 특강, 숨은 그림 찾기’는 9일 오후 6시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에서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고문치사사건 이후 민주화 열망이 본격적으로 타오르는 과정을 들여다본다.MBC ‘100분 토론’은 7일 오후 11시5분 서울광장에서 ‘1987년 6월 그리고 오늘’이라는 주제로 특집 생방송을 진행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시론] ‘6·10항쟁’ 성찰과 실천/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시론] ‘6·10항쟁’ 성찰과 실천/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6월 민주항쟁이 벌써 스무돌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4·13 호헌발언을 거쳐 6·10 대투쟁,6·29선언,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가 12월16일 대통령선거에서 예기치 못한 결말로 일단락된 6월 민주항쟁. 그후 20년동안 한국사회는 ‘1987년 체제’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6월 민주항쟁이 이룬 것과 남긴 것들을 축으로 하여 움직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민주화라고 부르든 분단체제의 변동이라고 부르든 한국사회가 이를 계기로 결정적인 질적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질적 변화를 ‘시민민주혁명의 성취’라고 불러도 좋다.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악조건에서도 남한의 시민계급은 비약적 경제성장으로 독자적인 물적 토대를 구축해 왔고 마침내 6월 민주항쟁과 그후 ‘민주정권’들의 실천을 통해 상부구조로서의 민주적 정치제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분단체제의 탈냉전화와 연성화에도 영향을 미쳐 이제는 통일, 혹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오랜 과제 역시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표면적 성취에 눈이 어두워 그 이면에서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군사독재의 오랜 사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도취하고 만족해 질적 변화의 본질을 올바로 꿰뚫어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었던 시민민주혁명은 우리의 오랜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세계사적 변화의 한반도적 부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1970년대를 휩쓴 오일쇼크에 의해 순조로운 확장을 저지당한 세계자본주의가 마련한 돌파구는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국가중심적 경제체제를 붕괴시키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무한대로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지구적 관철이었다. 이에 따라 전세계의 ‘민족주의적’ 보호경제는 연쇄적으로 붕괴되었으며 보호경제를 지탱했던 정치적 권위주의 역시 전세계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것이 중남미의 민주화 도미노이고,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군사독재체제의 붕괴와 민주화 역시 그러한 세계사적 외압의 작용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높은 파고 앞에서 심각한 동요를 겪고 있다.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역대 민주정부는 한편으로는 시민민주혁명을 추진해온 ‘민주화권력’이었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권력’이기도 했다.20년 전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주의가 단지 대통령 직선제나 하는 형식적 민주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과 연대와 사랑을 실천하는 본질적이고 전면적인 민주주의였다면 지금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승자독식의 개인주의와 경쟁주의, 야만적 시장주의의 무한한 확장과 사회적 양극화는 우리가 갈망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배반이자 모욕이 아닐 수 없다. 6월 민주항쟁 20년, 올해는 기념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명실상부한 국가기념일 대우를 받게 된다고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혁명기념일은 곧 혁명의 무덤이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흥청망청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어긋난 혁명의 행로를 다시 돌이키는 전면적 성찰과 실천에 다시 불을 지피는 일이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 6·10 민주항쟁 ‘큰 뜻’ 받든다

    6·10 민주항쟁 ‘큰 뜻’ 받든다

    ‘20년전 그날의 뜻을 되새긴다.’ 6·10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과 토론회, 전시회, 공연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표 참조)가 열린다. 이번 6·10 민주항쟁 행사는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다. 오는 9일에는 한국 YMCA 전국연맹이 주관해 임진각, 해남 땅끝마을, 제주 등 전국 각지를 잇는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국민대행진 행사도 펼친다.
  • 5월 21일은 ‘부부의 날’

    민주화 운동의 대명사인 ‘6월 항쟁’이 국가 지정 기념일로 등재됐다. 정부는 24일 국무회의를 열어 민주항쟁 기념일인 6월10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의결했다. 6월 항쟁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일었던 민주화 시위를 일컫는다.지금까지는 시민단체 차원에서 6월 항쟁 기념행사가 열렸다. 법정기념일로 제정되면 위상에 변화가 있지만, 정부의 별도 지원은 없다. 정부는 또 ‘부부의 날’(5월21일),‘세계 한인의 날’(10월5일)도 법정기념일로 추가 제정했다. 여성가족부의 요청으로 제정된 부부의 날은 부부 관계의 개인적·사회적 중요성을 인식시키자는 취지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서 하나(1)되는 날이란 뜻에서 5월21일로 지정했다.세계 한인의 날은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의 유럽순방 당시 그리스 동포 간담회에서 건의된 내용으로, 재외동포의 권익 신장을 위해 외교통상부가 제정 건의했다. 이로써 법정기념일은 이날 추가 제정된 3개를 비롯해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는 40개,‘입양의 날’ 등 개별법에 의한 8개 등 모두 48개가 됐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靑, 탄핵3주년 즈음 개헌안 발의”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소추안 가결 3주년인 다음달 12일에 즈음해 개헌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이어 5공 정권이 호헌조치를 내린 날짜인 4월13일과 헌법재판소가 3년 전 탄핵소추안을 기각시킨 5월14일,6·10민주항쟁 기념일인 6월10일 등을 주요 기점으로 개헌 찬성 여론 조성과 개헌 관철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3·12→4·13→5·14→6·10으로 이어지는 ‘개헌 벨트’를 형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권 소식통은 23일 “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시점은 3월12일로 시작되는 다음달 셋째주가 될 것”이라며 “이는 ‘탄핵 역풍’을 여론에 상기시켜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4·13,5·14,6·10 등 역사상 주요 고비가 된 날짜들이 향후 개헌안 처리 일정과 겹치는 점도 발의 시점을 3월12일로 잡은 것과 연관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다음달 12일쯤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회는 60일이내에 의결해야 한다.‘발의 후 60일’은 절묘하게도 3년 전 헌재의 탄핵소추안 기각으로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한 5월14일과 일치한다. 앞서 노 대통령은 4월13일쯤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과거 4·13 호헌조치와 대비, 이번 개헌의 ‘정(正)방향성’을 강조함으로써 찬성 여론 확산을 노린다는 복안이다. 만약 노 대통령의 ‘희망’대로 개헌안이 5월14일 이전에 국회를 통과한다면 30일 이내에, 즉 6월10일쯤 국민투표에 부치게 된다. 이는 마침 1987년 4·13 호헌조치에 반발한 국민들의 저항이 일어난 날짜로, 당시 그 결과로 직선제 개헌안이 채택됐었다. 물론 현재로선 개헌안이 재적 의원 3분의2의 지지를 얻어 국회를 통과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여권 관계자는 “현행 국민투표법상 일단 개헌안이 발의되면 대통령을 포함한 공무원은 개헌 운동을 할 수 없고,‘공’은 여론과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며 “따라서 대통령은 주요 고비마다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답변하는 형식으로 개헌에 관한 의견을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 개헌, 국민 합의가 먼저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대선 정국을 정략적으로 흔들겠다는 의도가 없다면 연임제는 논의할 만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대다수 국가들이 대통령 연임제나 중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단임제는 일부 정치후진국에서 보이는 제도로서 대부분의 학자들도 4년 연임제로 개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의 대통령 단임제는 군부 쿠데타에 이은 장기집권의 폐해를 되풀이 말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다.1987년 6·10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뤄질 때 단임제가 채택되었다. 이후 네 명의 단임제 대통령이 탄생했고, 민주정치 역시 큰 발전을 이룩했다. 이제는 특정 권력자가 장기집권을 노릴 여건은 사라졌다고 본다. 때문에 1회 연임제를 도입해 대통령을 중간평가하고, 책임정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 노 대통령의 제안에 여당과 일부 군소야당은 긍정 반응을 보였으나 가장 중요한 상대인 한나라당이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의 반대는 내용이 아니라 개헌 시기에 관한 것이다. 한나라당 주요 대선주자들도 4년 연임제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대선이 가까운 시점에 개헌 논의에 불이 붙으면 정계개편 등으로 유리한 판세가 흐트러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개헌 문제를 대선 공약에 걸어 다음 정권에서 추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과 여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배경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매끄럽게 개헌이 성사되면 앞서가는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원포인트 개헌 수용 여부에 대해 내부 토론을 다시 해보길 바란다. 청와대측은 오는 2,3월쯤 연임제 개헌안을 발의해 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에는 개헌을 끝내겠다는 일정을 밝혔다. 연임제 개헌의 당위성은 있지만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밀어붙여선 안된다.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고 한나라당이 동의하는 상황에서 발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 국회의석 분포상 한나라당이 끝내 반대하면 개헌 의결정족수인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낼 수 없다. 결과가 뻔한데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서너달 동안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개헌 공방으로 시끄러울 것이다. 대선정국이 더욱 혼미해지고 민생경제가 표류할까 두렵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려면 올해 개헌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예에서 보듯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시한을 정해 개헌을 몰아붙여 나라를 어지럽게 해선 안된다. 비록 8개월여의 차이가 나지만 2012년에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주기를 일치시킬 기회는 있다. 한나라당 설득에 최선을 다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다음 정권에 넘긴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개헌발의에 이어 선거구제 개편을 건 임기단축 등으로 정국을 뒤흔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야당의 의구심을 노 대통령 스스로 풀어줘야 한다. 정쟁 격화를 막기 위해 개헌 논의를 청와대가 주도하지 말고 국회에 맡기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정치인이 아닌 중립적 전문가들로 국회에 위원회를 구성해 바람직한 개헌 방향을 모색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 도중에 여야 합의가 되어 개헌이 조기에 성사되면 좋고, 안 되면 다음 정권이 개헌을 추진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기고] 임기말 노대통령의 참임무/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헌법학

    5년 단임 한국대통령들의 시작과 끝이 이상하리만큼 똑같다. 취임하자마자 모두 다 정치적 힘을 갖기 위해 비상한 괴력을 발휘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 야합을 통해 거대 집권여당 민자당을 만들었고, 김영삼 대통령은 정당 친위쿠데타를 통해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변경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은 의원영입과 자민련과의 연대를 통해 인위적인 의회 과반을 확보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창당과 더불어 제17대 총선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모두 성공했다. 그러나 이렇게 권력을 이륙시켰지만 연착륙에는 모두 실패했다. 5년 단임 대통령 맏형인 노태우 대통령은 3당합당 후 김영삼 대통령의 샌드백이 되었고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당의 후예이자 한나라당의 원조들에게 화형식을 당했다. 노벨평화상에 빛나는 김대중 대통령은 범보수세력들에 휩싸여 국내정치의 제전에 희생양이 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도 내년에 영락없이 같이했던 권력으로부터 치받히고 각종 정치세력의 샌드백이 될 터이다.1987년 6·10민주항쟁 끝에 쟁취한 현행 헌법에서 등장한 한국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모자란 인물이었나. 우리가 무능한 대통령을 골라 뽑았는가. 영웅탄생을 예감케 하는 2007년의 차기 대통령도 지금의 헌법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돌이켜보건대 5년 단임 대통령들은 세기전환적 북방정책과 군사정권의 후진정치적 족적 궤멸, 남북정상회담,IMF극복과 IT강국의 길 그리고 온 국민이 그토록 바라던 과업이던 ‘불치의 한국병’인 비민주적 정당정치와 정경유착의 검은 정치자금의 뿌리를 발본색원했다. 그런데 이러한 대통령들이 그 무엇때문에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가. 이제 그 근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5년마다 반복되는 책임정치 살상과 사회적 자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선 한국민주주의가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위정자들이 유럽에서 꽃을 피운 대화와 타협의 합의민주주의와 내각제를 시도하고 동경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는 합의보다는 결과에 승복하는 미국형 승복민주주의가 더 적합해 보인다. 미국은 결선투표가 없어도 과반수 득표자의 대통령이 나오게 함으로써 권력의 권위를 인정받게 한다. 반면에 유럽풍의 사회적 대타협과 비례대표제가 우리사회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는지 깊이 성찰할 문제다. 현행 헌법에 남아있는 국무총리 국회동의와 국무위원 해임건의와 같은 내각제 흔적도 상호견제와 합의민주주의를 강화하기보다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임무를 약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대통령 흔들기를 이미 한국민주주의의 기본법칙으로 정착시켰다. 대통령에게 민생에만 전념하라는 것은 가정 주부에게 밥만 하라는 주문과 똑같다. 주부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한국대통령이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할 만한 새 헌법이 한국사회에 필요하다.2003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차가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차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자신의 참 임무가 현행 헌법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를 실천하겠다는 뜻 아닌가.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같이할 정치세력을 남기는데 연연하다 아무런 재미도 못 봤다. 임기 말 노 대통령은 자신과 함께할 정치세력보다는 국민이 같이하는 정책과 제도를 남기길 당부한다. 그 으뜸이 개헌을 시도하는 것이다. 내년 12월19일은 대통령도 뽑고, 그 대통령이 일 잘하게 하는 헌법도 바꾸는 날이 되어야 한다. 이 큰 일은 ‘노무현’ 말고는 아무도 엄두도 못 낸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헌법학
  • [뉴스플러스] 함세웅 “盧대통령 예수로 모셔야”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7년 6·10민주항쟁 17주년을 하루 앞둔 9일 함세웅 신부 등 관련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 하면서 “17년이 지난 일이지만 6월항쟁은 지금도 우리 가슴에 살아 있다.”며 “어려움과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6월항쟁의 감동을 되살리며 극복했다.”고 말했다.당시 부산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활동한 노 대통령은 “여러분 중 TV에서 저를 따갑게 질책하신 분들도 있다.”면서 “저분들도 나를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느꼈다.”고 털어놨다. 함 신부는 이 자리에서 최근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 복귀를 예수 부활에 비유한 것을 들어 “그 말을 듣고 우리 예수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6·10항쟁 기념일 지정 추진, 송석찬·이규택등 의원21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돼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을 이끌어낸 ‘6·10 민주항쟁’의 뜻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6월10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는 입법이 추진된다. 민주당 송석찬(宋錫贊) 의원이 4일 국회에 제출한 ‘6·10 민주화운동 기념일 법’엔 당시 6·10 항쟁에 참여했던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 등 의원 21명이 서명했다. 김재천기자
  • 김대통령 6·10항쟁 관련자 초청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2일 시인 고은씨,박형규 목사,고 박종철군 아버지 박정기씨,고 이한열군의 어머니 배은심씨 등 6·10 민주항쟁 관련자 34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면서 당시 의미를 되새겼다. 김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는 지난 역사를 바로잡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설치하고 언론과 노동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이어 “월드컵 대회를 통해 보여준 우리 국민의 성숙한 민주시민 의식과 응원문화는 우리 대표팀의 선전과 함께 세계로부터 큰 찬사를 받고 있다.”면서 “이번 월드컵대회가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세계 평화와 화합에도 기여한 대회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대회가 끝날 때까지 모두 합심노력하자.”고 말했다. 오풍연기자
  • [김삼웅 칼럼] 해 저물기전 민주의열사 묘역 착수를

    아직 ‘수준 미달’의 분야도 적지 않지만 우리가 자부할수 있는 것은 짧은 기간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성취를 든다.많은 희생과 미해결의 과제를 남기면서 두 가지 목표를향해 치열하게 살아 왔다. 전근대에서 근대로,다시 탈근대라는 동시적이고 비동시적인 발전과정을 겪으며 경제는 여전히 전근대 또는 근대적인빈곤지대와 낙후성을 남기고 민주화 역시 사각지대와 망각부문을 방치하고 있다.최근 정부는 국가 인권위원회를 발족시켰다.그러나 행자부와 다툼으로 직제와 요원 선발도 하지못한 채 파행적인 출범식을 가졌다.문을 여는 첫 날부터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억울한 소시민들이 인권위를 찾았다. 인권위의 조속한 체제정비가 요구된다. 지난해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구성돼 독재정권과 싸운 사람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에노력하고 있다.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적절한 보상도 받게 된다.그러나 활동이 지지부진하고 제주 4·3사건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비슷한 처지다.일부 위원회는 내부 갈등까지 겪으면서 역사적 소임이 표류되고 있다. 총체적인 ‘민주화 사업’의 부진 속에서도 특히 민주화의‘정국공신(靖國功臣)’이라 할 의열사들에 대해서는 정부나 사회가 제대로 예우는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명예회복과 적절한 보상책이 논의되고 있지 않느냐고 할지모르지만 ‘살아남은 자’들에 비하면 지극히 홀대한 편이다.할복·투신·분신·고문사·의문사 등 온 몸을 불태우면서 민주제단에 산화한 의열사와 그래도 살아 남은 사람들과는 비중이 같을 수 없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와 유가협등은 ‘민주화기념사업’으로 10가지를 선정한다. ①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민주열사 등 민주화운동 유공자를 안치하는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조성 사업’②민주화운동 기념관,민주주의 센터,민주화운동자료관 및 연구소 건립의 ‘민주공원조성사업’③민주화운동 일지,민주화운동단체,민주화운동 사건정리 등 ‘민주화운동자료총서 발간’④민주화운동 사적지에 푯말·동상 등 다양한 기념조형물 설치 등 ‘민주화운동 사적지발굴’⑤민주항쟁의 시발점이 되는 6월10일의 ‘6·10항쟁 국가기념일 제정’⑥민주화운동 관련 만화·비디오·영상자료 등 ‘교육자료 개발및 출판’⑦민주주의 학술논문상 제정·민주백일장 등 ‘민주화운동의 정신 선양사업’⑧민주화운동 ‘교과서 역사기술 및 기존 역사기술 정정작업’⑨기념전시회·민주역사기념제·시위문화제·마라톤대회 등 ‘추모제와 기획행사 개최’⑩민주화운동 연구소 및 시민교육,아시아 민주운동 지원사업 등 ‘민주시민 교육과 국제활동 전개’ 등이다.이중에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 조성사업은 정부가 추진하고나머지는 ‘명예활동 및 보상심의위’에서 맡기로 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희생자 묘역 조성이다. 그동안 민주 공원추진위원회는 남산 옛 안기부 터와 서울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당국과 협의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배제되고 대안으로 용산가족공원과 효창공원이제시됐다. 유가족협의회나 민주 진영에서는 역사성과 상징성이 높고 시민 접근이 용이한 두 곳 중에서 선정되기를 바란다. 공청회도 거쳤다. 우리는 독립지사와 6·25호국영령을 국립묘소에 모시고 4·19민주희생자는 4·19묘소,5·18광주항쟁 희생자는 광주민주묘역에 모셨다.당연히 군사독재와 싸우다 희생된 의열사를 모시는 민주묘역도 조성해야 한다. 그런데 웬 일인지 정부와 서울시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는 열심이면서 의열사묘역 조성에는 딴청을 부린다. 여야 정당에서 활동하는 민주화운동 출신 정치인들도 비슷한 모습이다.사회 전반의 보수화 기류 탓인지,기득권에 안주한 까닭인지 가신 영령들과 유가족들에게는 보통 서운한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를 이만큼 자유와 권리를 누리게 한‘민주화 정국공신’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 이 해가 저물기 전에 민주묘역 공사를 착수해야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김대통령 “6·10 민주항쟁이 민주화 길 열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8일 낮 지난 87년 6·10 민주항쟁관련자 41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면서 당시를 회고했다.김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이 주역들과 자리를 같이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김 대통령은 민주항쟁의 의미부터 규정했다.“6·10항쟁은 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큰 길을 연,민주화의 큰 획을그은 사건이었다”면서 “맨손의 국민의 힘이 군부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 대통령은 또 6·10 항쟁과 4·19 혁명의 닮은 점으로 ▲비폭력·평화투쟁 ▲민주 세력 대동단결 ▲전 국민으로 승화 ▲항쟁이 끝난 뒤 무보복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권인숙(權仁淑)양 성고문 사건,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 사건,이한열(李韓烈)군 죽음 등을 거론하며 가슴아파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씨줄날줄] 대공분실 위령제

    1987년 1월14일 오전 11시20분.서울 남영동 경찰청 대공분실 509호실에서 수사를 받던 한 청년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중이던 선배를 숨겨주고 연계활동을 했다는혐의로 신림동 하숙집에서 잠자다 경찰에 연행된 뒤 4시간여 만이었다. 다음날 경찰은 청년의 죽음 사실을 짤막하게 발표했다.“조사 경찰관이 책상을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 서울대생 박종철(朴鍾哲·언어학과3)씨가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지는순간이었다. 물고문으로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4개월이 더 지난 다음이었다.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성명에 이은 일부 언론의 끈질긴 추적의 결과였다.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 박씨의 죽음은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정통성 없는 5공 정권의 뿌리를 흔드는 신호탄이었다.당황한 전두환(全斗煥)정권은 ‘박종철열사 국민추도회’와 ‘고문추방 대행진’을봉쇄하는 데만 10만명에 가까운 전투경찰을 동원해야 했다. 당시 각종 집회의 열기는 지켜보는 이의 숨마저 가쁘게 할 만큼 후끈했다.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으로 연결됐다.“종철아,잘 가거래이.아부지는 할 말이 없대이.”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며 흐느끼던 아버지의 모습은 민주화운동의 뒤쪽에 서 있던 이들에게도 가슴 저미는 아픔을 안겼다. 박씨의 위령제가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다. 14주기를 이틀 앞둔 12일 아버지와 어머니·스님 등 3명이 참석해 박씨의 넋을 위로한다고 한다.‘인권수사의 교육장’으로 보존하고 있는 509호실을 유족들이 직접 둘러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고문 20여분 만에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물고문 욕조를 살펴보게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세상 돌아가는 데 어둡던’ 말단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뒤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로 나왔다.지금은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아들을 떠올리며 민주화운동을 하다 의문사한 이들의 가족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민주화의 밀알이 되기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바쳤던 유명·무명 인사들의 노력에 부끄럽지 않게 우리는 이 시대를가꿔 나가고 있는 것일까. 박씨의 14주기를 맞아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최태환 논설위원 yunjae@
  • [대한시론] 새 정치질서 창출을 위해

    시민단체들의 낙천 낙선운동의 합법성과 정당성 여부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고 이 운동이 몰고 올 파급효과에 관하여도 견해가 분분하다.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정치변혁운동’의 성격을 띤 이러한 움직임은 환경이 크게 변했는데도 제도권 정치가 이에 부응하는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다.제도권 정치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지 못했으므로 제도권 밖에서 일어나는 변혁운동은 비록 실정법에 어긋날지라도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장외의 변혁운동이 모두 정당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경우에 따라서 집단이기주의의 과격한 표현일 수도 있고,사회가 넓게 수용한 가치와 이념에서 벗어날수 있기 때문이다.어디까지나 변혁운동의 정당성은 역사적 흐름에 부합하는 가치를 추구한 것이어야 한다. 제1공화국의 권위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4·19 학생혁명,신군부 등장에 저항했던 5·18 광주민주항쟁,그리고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던 6·10 국민대회는 모두 순수하게 민주정치를 추구한 운동이었으므로그 정당성을부인할수 없다.총선연대의 낙천 낙선운동도 합법성 여부에 관한 철학적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 민주정치의 확장을 목표한 것이므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각 부문이 크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만은 답보상태에 머물렀다.낡은 중앙집권적 정당구조,지역감정 조장,정당간 소모적 대립,무책임한 의혹제기나 폭로 등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고착된 구조와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정치불신과 냉소주의가 만연해 있다. 그렇다면 정치변화를 향한 국민들의 기대와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정당들의 독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정당구조와 인적 구성,정당간 세력분포,정치문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기본적으로 수도권 외의각 지역이 다분히 특정 정당에 독점되어 있고,전국적으로는 기존 정당에 과점되어 있는 정치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정치시장이 독과점 체제라면 소비자인 유권자는 제한된 선택을 할 수밖에없다.따라서 공급자인 정당은 정치의 품질개선이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낡은 기성정치인의 퇴출운동은 독과점 시장의 문제중 일부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듯하나 선거법 불복종운동으로 전개될 경우 정치적 파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아래로부터의 변혁운동의 한계점을 근거하여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현재 전개중인 낙천 낙선운동은 여기에 투입하는 비용에 비하여 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리라 전망된다.우리 정치는 변해야 하고 정치개혁은 정당구조와 행태,그리고 정치시장의 구조와 환경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그러나 소수를 대상으로 한 낙선운동은 정치개혁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않는다. 반면에 낙선운동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고,사실에 근거하지 않은의혹이나 음모설에 정치권 전체가 휘말릴 수 있으며,정당의 지역주의가 강화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또한 불복종 운동의 합법성 여부가 정치쟁점으로부각되면서 공권력의 행사가 뒤따른다면 양심수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결국 정치불안이 조장되고,정치민주화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들은 한국 정치개혁의 내용을 모색하고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정치권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안정적인 개혁을추구하는 방법으로 보인다.시민단체 활동이 정책의 문제나 대안제시에 초점을 맞출 때 민주주의는 공고화된다. 현재 전개중인 정치변혁운동은 아직도 정치의 틀과 절차가 제도화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에 근거한 정치질서의 창출이당면 과제임을 우리 모두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류승남 국민대 교수 .행정학
  • 총선연대, 국민주권의 날 행사 안팎·향후 행보

    비리·부패정치인을 공천과 선거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시민·사회단체들의활동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총선연대는 30일 서울 등 전국 5개 도시에서 열린 ‘제1차 시민행동 국민주권 선언의 날’ 행사에서 발표한 ‘유권자 행동 선언문’에서 “민주항쟁의자랑스런 역사를 계승해 부패정치,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시민 선거혁명의 대장정을 선언한다”고 밝혔다.총선연대의 활동을 4·19시민혁명,5·18민중항쟁,6·10시민항쟁의 연속선상에 자리매김해 시민의 힘으로 ‘음모론’ 등 정치권의 반발을 이겨내고 정치개혁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총선연대는 이날 장외집회에 이어 31일에는 상임공동대표단과 상임공동집행위원장단의 연석회의를 열어 ‘문제의원’ 명단 및 2차 공천반대 인사 발표일정,전국 순회 등 지역조직 정비,시민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방안 등 향후운동 계획을 확정한다.경실련 등 총선연대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단체와의 공조문제 등도 논의한다. 총선연대는 66명의 명단에는 빠졌지만 자격에 문제가 있는 의원들의명단은이번주 안에,2차 공천반대 인사명단은 설을 전후해 발표할 예정이다. 2차 공천반대 인사는 현역 의원을 제외한 출마 예정자가 대상이다. 총선연대 박원순(朴元淳)상임집행위원장은 “2차 공천반대 인사 선정에서도1차와 마찬가지로 부정부패가 주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출마 예상자들이 재직 당시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가 선정 기준에 추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선연대가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낙천·낙선운동을 본격화한 데 이어 경실련도 1일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지지하기로 밝힘에 따라 시민·사회단체의 정치개혁 활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특히 경실련의 가세는 총선연대의 활동에 새로운 기폭제가 됨은 물론 시민단체들 사이에 공조의 틀을 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 이석연(李石淵)사무총장은 “정보 공개운동을 계속하면서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도 지지를 보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6·10항쟁 기념 ‘민주대합창’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낸 6월 민주항쟁 12주년인 10일 음악회와 기념식 등각종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6월 민주항쟁 12주년 행사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대한매일신보사가 후원한민주항쟁기념 음악회인 ‘민주대합창 1999’가 저녁 7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각계 인사와 시민 1만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행사에는 민주화운동에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유가협과 민가협 회원들과 김중배(金重培) 참여연대 공동대표,이창복(李昌馥) 전국연합 상임의장,문익환(文益煥)목사 부인 박용길(朴容吉)장로 등이 참석했다. 신동호·김은주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열린 음악회에서는 안치환,꽃다지,양희은,김경호,윤도현밴드 등 가수들과 바리톤 고성현씨 등이 ‘임을 위한 행진곡’,‘마른 잎 다시 살아나’,‘상록수’,‘늙은 군인의 노래’ 등 80년대 민중들이 불렀던 운동·노동가요를 참석자들과 함께 불렀으며 음악회는 M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6·10항쟁기념 ‘610人선언’발표

    지난 87년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낸 6·10민주항쟁 12주년 기념행사들이 9일부터 13일까지 잇따라 열린다. 연세대 학생 100여명은 9일 교내 민주광장에서 ‘이한열(李韓烈)열사 12주기 추모제’를 가졌다. 6월 민주항쟁 12주년 행사추진위원회(위원장 金祥根)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 입구에서 ‘꿈과 희망의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하는 각계 610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잘못된 역사 청산 ▲민주화 희생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철저한 민주개혁 ▲부정부패 척결 대책수립 ▲독립된 국가인권기구 설치 ▲양심수 석방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 ▲국민 기본생활권 보장 ▲남북화해와 공존 지향 등을 요구했다.선언에는 김중배(金重培)참여연대 공동대표,최영도(崔永道)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이창복(李昌馥)전국연합 상임의장,권영길(權永吉)국민승리21 대표,유종성(柳鍾星)경실련 사무총장,이갑용(李甲用)민주노총위원장,변형윤(邊衡尹)서울대 명예교수,백기완(白基玩)전국연합 고문 등 각계 인사 742명이 서명했다. 대한성공회 서울대교구 성당에서는 10일 오후 6시 항쟁에 참여했던 300여명이 모여 ‘6월 민주항쟁 12주년 기념의 밤’을 개최한다.이어 오후 7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는 6월 민주항쟁 기념 대규모 음악회 ‘민주대합창 1999’가 열린다.대한매일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돌아보고새 천년에 이뤄내야 할 민주주의를 다 함께 되새기는 자리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6·10항쟁 12주년 기념 ‘민주대합창’ 울려퍼진다

    6·10민주항쟁 12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음악회 ‘민주대합창 1999’가 10일 오후 7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 추진준비위원회’(공동대표 김상근)가 주관하고 대한매일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돌아보고,새 세기에 이뤄내야할 민주주의를 다함께 그려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이날 행사는 신동호·김은주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MBC가 특별 생중계한다. 해마다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행사가 있었지만 이처럼 국민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준비한 것은 이번이 처음.그간 일부 계층에서만 진행돼온 민주화운동기념행사가 국민축제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것으로 평가된다. 행사는 부천시립합창단,리틀엔젤스합창단,MBC예술단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과 가수 안치환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해 시인 안도현이기념시를 낭송하는 순서로 이어진다.바리톤 고성현과 부천시립합창단이 ‘광야에서’‘상록수’를 새롭게 편곡해 부르고,양희은은 ‘늙은 군인의 노래’‘밤뱃놀이’를 국악인 조주선과 함께 부른다. 이어 로커 김경호의 열정적인 무대가 뒤따르고,윤도현 밴드와 이정열이 한때 금지곡이었던 ‘고래사냥’과 ‘사노라면’을 열창한다.폐막 때는 출연진과관객이 한마음으로 ‘그날이 오면’을 합창한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이한열군과 박종철군의 부모,김상근 공동대표가무대에 나와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6·10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민주화 소망을 들어보는 순서도 마련된다.행사 총책임을 맡은 양재원씨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은 일부 민주인사를 영웅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 이름없이 민주화를 열망해온 많은 이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순녀기자
  • [김삼웅 칼럼] 민주열사들을 잊지말자

    피와 땀과 눈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투쟁의 나무를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것은 가신 임들이 흘리고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우리곁에 없는 김남주시인이 암울한 시대에 쓴 ‘전사2’의 중간 부분이다. 이 시에는 다음의 내용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은/투쟁의 초기단계에서 죽어갔다/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어떤 사람은/승리의 막바지 단계에서 죽어갔다/이름도 없이 얼굴도없이/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쥐도 모르게 새도모르게 죽어갔다/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모레(10일)는 6·10민주항쟁의 날이다. 녹음방초의 어간에 다시 6월항쟁의 날을 맞는다. 우리는 흔히 해방후 친일파 척결을 하지 못하고 독립지사들을 홀대해온 것을 두고 애국심이 부족한 이승만정권과 친일세력의 발호로 치부한다. 그리고 왜곡된 역사와 그 시대 사람들을 원망한다.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들그러면서 막상 우리는 지금 군사독재 청산과 민주열사들에 대한 추모와 대접을 소흘히 한다. 후세로부터 비판받고 원망들을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세 리잘(Jose Ri Zal)을 기억할 것이다.스페인 관리들에 의해 최초의 아시아 민족주의자로서 기록된 인물, 젊은 의사이자 작가·시인이면서 필리핀 독립운동가,1861년 35세로 스페인 정부군에 의해 총살된 사람, 지금 필리핀에서는 그가 사망한 12월 30일을 법정공휴일로 기념한다. 필리핀 독립운동은 리잘의 처형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리잘은 형장에서유언을 남겼다.“나는 조국의 밝은 새벽을 보지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밝은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들을 잊지 말아달라.” 적당한 강우량과 이상고온 현상으로 올 6월의 신록은 여느해보다 짙고 싱그럽다. 이좋은 계절을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밤사이에 스러져간’이들이다. 그들의죽음을 잊은채 우리는 찬란한 녹음과 햇볕을 즐긴다. 지금 국회에는‘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된 이래 동면상태이고 바로‘민의의 전당’건너편에서는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자식과 형제 남편을 잃은 유가협과 추모연대 회원들이 200일도 넘는,기약없는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또 의문사 관련 회원들이‘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제정’을 요구하며 국민회의당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새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던 세력이고,국민회의에는 수많은‘민주인사’들이 포진한 상태이고, 자민련은 그런 인식을 공유하는 ‘공동여당’이며, 한나라당에도 상당수의‘민주인사’들이 참여해 있다.그런데도 이 법안이 긴 잠에서 깨어날줄을 모르는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민주화 참여의원들 각성을 최근 국민회의 관계자는 이 법률안을 철회하거나 심의를 보류하는 대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하기로 했다한다.‘유공자’를‘관련자’로 바꾸고 5·18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 했던 것처럼 특별법 형식으로 일시 보상금을 주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겠다는것이다. 그 이유는 일부 보훈단체와 자민련, 한나라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라 한다. 보훈단체의 경우 형평성의 이유등을 들어 반대한다 치고,자민련과 한나라당의 반대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 국민회의의 소극적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국시’인 민주주의를 지키다가 희생된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예우를 하자는데 반대할 명분이 무엇이란 말인가.‘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대로 ‘민주화운동하면 3대가 망하는’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국회의원 특히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의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주필 kim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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