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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시민상 수상자 발표(단신패트롤)

    ◇5·18 광주민중항쟁 유족회(회장 윤석봉)는 6일 제2회 5·18 시민상 수상자로 고 김종태씨(80년 사망 당시 22세)와 고 송광영씨(85년 〃27세),이소임씨(38·여)등 3명을 선정,발표했다. 시상식은 오는 18일 상오 5·18 제12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서 있을 예정. 수상자로 선정된 김씨(58년생·부산출신)는 근로자로 생활하던 80년 6월 9일 서울 이화여대 정문앞에서 「노동3권보장」「광주학살원흉처단」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사망했다. 또 송씨(58년생·광주출신)는 서울 경신중을 졸업한후 검정고시를 거쳐 84년 경원대 법학과에 입학,85년 9월 17일 군사독재정권과 광주학살에 항의해 분신,같은해 10월 21일 사망했으며 이씨는 80년 5·18 당시 부상당해 정신장애와 반실불구로 12년간 병상생활을 해온 시동생 정방남씨(32,5·18부상자회원)를 간호해 왔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무력으로 독립쟁취” 만주 항일투쟁 이끌어/한일 합방직후 망명,신흥무관학교 등 설립/독립군단체 통합 주도… 임정국무령도 역임/의병활동·교육자로 평생 구국활동… “광복전 유해 옮기지 마라” 유언도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선생이 선정됐다. 5월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은 1896년 경북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다 한일합방이후인 1911년 만주로 망명,그곳에 한인사회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독립전쟁을 위한 인재양성과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1926년 1월 국무령을 사임한 이 선생은 32년 5월12일 74세의 노령으로 중국 길림성에서 서거했다. 이 선생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되새겨 본다. 1925년 3월23일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은 미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안한 이승만대통령을 탄핵면책하고 국무총리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은식대통령은 임시정부헌법을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개헌하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국무령에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독립운동단체인 한족회와 통군부를 이끌던 이상은선생을 지명했다. 1911년 만주로 이주한 이 선생은 만주에 항일독립운동기지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의식을 고취,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 국무령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온 김좌진·오동진·김동삼 선생들을 국무위원에 임명하고 임시정부가 활발한 무장독립투쟁을 이끌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창조파와 개조파,국내파와 해외파 등으로 나뉘어 임시정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1926년 1월 이 선생은 초대 국무령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조직인 의정부·신민주·참의부의 통협에 심혈을 기울이고 힘썼다. 윤봉길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일본 군국주의 지도자들을 살해한 뒤 12일만인 1932년 5월12일 이 선생은 74세로 만주 길림성 소성자에서 『외세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더욱 면려하여 독립을 관철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노환으로 선거했다. 70평생중 반세기에 걸친 이 선생의 일관된 구국노력은 의병활동·민족계몽운동·독립군지도자·임시정부 정치지도자·교육자·사상가 등 당시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32년 74세로 별세 이 선생의 깊은 학식과 큰 인품은 조국은 되찾겠다는 의지와 정열로 승화되어 민족진영이나 사회주의 진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이 선생은 1858년 11월24일 경북 안동에서 유학자 이승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이 선생은 유학자로서의 학문적인 수업을 쌓다가 1896년 일자 명성왕후를 시해하자 영남지방의 의병에 참가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지방유지들과 합자,가야산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부족과 일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선생은 김동삼 등 동지들과 안동에 대한협회 안동지부를 결성,민족각성과 청소년 교육등 민족자강운동에 헌신했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이 선생은 국내최대의 항일비밀경사 신민회에 가입했다. 신민회는 전국 13개 도의 유지들과 부호들을 규합,만주에 거대한 조선인 자치구를 설립할 목적으로 이민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시영·이회영·이동영·주진수·김창환 등 구한말의 관리와 양반·선비들은 가산을 정리하고 무인지경이던 만주로 이민을 떠났다. 1911년 4월 53세의 이 선생은 52명의 대가족을 인솔하고 만주로 이주했다. 이 선생은 만주의 땅을 매입하여 조선인 촌락을 만들고 학교와 교회를 설립,청년들을 교육시키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동지들과 함께 개척이민의 선두에 섰다. 이 선생은 만주에 도착하자마자 유하현 삼원포에 거류민단조직인 경학사를 설립,사장에 취임했다. 경학사는 1914년 부민단으로 발전되고 신흥학교를 설립,인재를 양성했다. 이 선생은 3·1운동직후에는 한족회를 설립,동포들에게 민족자긍심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한인청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켜 1천여명에게 군사교육을 받게 했다. 이 선생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독립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서로군정서를 설립,총재에 취임했다. 부총재에는 여준,정무청장은 이탁,참모부장은 김동삼,독립군사령관엔 지청천을 임명,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국내 진공작전계획도 세웠다. ○서로군정서 총재 당시 만주에는 3·1운동이후 일제의 탄압과 만행에 시달린 조국의 열혈청년들이 대거 이주해와 2천여명을 무장킬 수 있었다. 이 선생의 서로군정서 조직은 당시 해외독립운동단체중 최대규모였다. 1919년 4월13일 이동영·이시영선생이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이 선생은 『한민족에 두개의 정부가 있을 수 없고 광복운동에는 단결이 가장 큰 선결조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모들을 대동하고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조직으로 들어갔다. 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외교와 내치·재정을 담당하고 만주의 항일무장세력은 단결해서 군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하들을 설득,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활동중인 홍범도·이동주 등과 항일연합전선을 펼 것을 모색했다. ○통군부 확대개편 이선생은 1920년초 북경에서 개최된 조선인 군사통일회에 참가,박용만·신숙 등과 군사기구의 통합방안을 협의하고 22년 6월에는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룬 통군부를 조직했다. 그뒤 이 선생은 통군부를 다시 확대개편하여 17개 독립운동단체로 하여금 통의부를 구성하는 등 독립군의 군세확장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전통깊은 유학자집단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외교나 교육에 치중하지 않고 일생동안 무력항일투쟁만을 주장했다.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와 무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소련 등과 연합해서 독립군을 조직,화력과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1925년 3월 미국에 체류하면서 위임통치를 주장하던 이승만대통령이 탄핵되자 국무령에 취임한 이 선생은 임시정부를 독립군지휘관으로 구성,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이 선생의 구상은 내분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자 26년 1월 국무령직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지도하던 이 선생은 일본이 만주국을 설립한 32년 5월12일 노령으로 별세했다. 『국토를 찾기전에는 내 유해를 고국에 싣고 가지말라』고 한 유언을 남김으로써 이 선생의 유해는 광복된지 45년만인 90년 9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봉환,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증손자인 항회·범회씨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선생의 기념사업회 결성을 준비중이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20년대 독립군총사로 불멸의 업적 석주 이상룡 선생은 70생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였다. 이 선생은 1896년부터 1910년까지 향리에서는 의병의 지도자로서,민족계몽운동가 또 2세교육자로 활동했으며 1911년 만주로 이전해서는 민족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 선생은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교육·산업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이를 동지들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그는 만주의 한인사회에서산업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동포들의 법적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화민죽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등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한인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섰다. 이 선생은 이주한인들의 생업을 위해 벼농사를 적극 권장,지도해 만주에서 쌀을 생산했으며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된뒤 독립군을 조직했다. 그는 경학자·부민단·한족회·군정부·통의부·정의부·혁신의회 등으로 이어지는 항일 민족독립운동단체를 직접 지도해 만주지역의 민족지도자로서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이 선생은 노년에는 김동삼을 위시한 여러 혁명가들을 지도함으로 써 항일대열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23년 해외 항일독립운동단체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해의 국민대표회의에 김동삼을 파견,6개월동안 의장을 활동시켜 항일독립운동의 전략·전술을 수립하게 했다. 유학자로서,의병으로서,때로는 민족의 교육자요 지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던 이 선생은 1932년 5월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그의 혁명가적인 행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귀감이 되어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 서기 2050년/“한반도 벼수확 43% 감소”

    ◎기상연구소,「58년뒤 기후시나리오」 발표/온실효과로 평균기온 3.5∼4도나 높아져/제주선 바나나 자라고 대관령서 벼농사/CO□증가가 원인… 2모작지역 늘지만 생장부실 초래 온실효과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해 전지구적 차원의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것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예측한 첫 시나리오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기상청 기상연구소가 91년 특정연구개발사업으로 수행,최근 과학기술처에 낸 연구결과에 따르면 화석연료사용량이 지금처럼 매년 2%씩 증가,현재와 같은 속도로 온실효과가 계속되면 2050년 우리나라는 벼수확량이 무려 34∼43%나 감소돼 현재의 기술로는 농사를 짓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또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섭씨3.5∼4.0도 높아져 제주도에서는 열대작물이 자라고 대관령 산간지대에서도 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며 중부이남지역에서는 2모작도 가능해지는등 격심한 기후변화를 겪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예측은 미국 항공우주국 고다드기후연구소(GISS)의 대기순환모델에 의거,2050년한반도의 기후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같은 변화가 우리의 농업기후자원과 벼의 생산성에 미치게 될 영향을 지난20년간 축적된 각종 농사통계와 기상자료를 이용,분석한 결과 산출된것으로 국내에서도 대책이 시급함을 경고하고 있다. 먼저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농도가 6백30ppm이 되는 2050년 우리나라의 기후시나리오를 보면 연평균 기온상승은 섭씨3.5∼4.0도로 추정되며 지역적으로는 남쪽보다 북쪽이,계절별로는 여름·가을 보다 봄과 겨울에 더많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강수량도 동남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0∼20%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계절별로는 봄에 약15% 증가하고 여름에는 약 1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난화의 진행에 따라 작물기간과 유효적산온도 등 농업기후자원은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일평균기온이 섭씨15도를 넘어 노지에서 작물을 재배할수 있는 일수를 나타내는 「작물기간」은 예년기후에서는 제주도는 1백90일,중부지방은 1백50일 기간이다.그러나 대기중 이산화탄소농도가 2배 되는 시점에서는 제주도가 2백40일,중부가 1백80일로 전체적으로 30∼50일 연장될 것으로 예측됐다.특히 해발 8백20m에 있는 대관령의 경우 작물기간이 1백50일정도까지 길어져 현재의 중북부지방 평지와 비슷한 기후여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평균기온 섭씨10도 이상인 날의 일평균기온을 연중합산한 유효적산온도는 벼농사 가능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유효적산온도 섭씨2천5백도를 나타내는 등치선은 벼농사의 북한계선,섭씨5천도 등치선은 벼 이기작 북한계선으로 간주된다.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우리나라는 제주도가 섭씨5천도에서 섭씨6천5백도로,중북부지방이 섭씨3천5백도에서 섭씨4천7백50도로 유효적산온도가 크게 증가,중남부지방 이하 지역에서는 벼의 2모작이 가능해질뿐만 아니라 대관령 정도의 산간지대에까지 벼를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또 제주도에서는 노지에서도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작물을 재배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후 온난화는 벼의 발육속도를 빠르게 함으로써 영양생장기간과 등숙기간을 크게 단축시켜 대폭적인 수확량 감소를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즉 현재의 벼재배 기술수준과 7·8·9월 평균기온의 차이에 따른 수확량 변화를 변수로 이용한 수확량 예측에서는 최저 34(전남)∼최고 43%(강원)의 감수가 예상됐으며 수도생장 모의실험 결과에서는 37%의 감수가 예측된것. 연구에 참가한 농업진흥청 작물시험장 신진철박사는 『이산화탄소 증가는 광합성촉진효과 등 일시적 이점은 있지만 벼농사에는 치명적 영향을 주는 것이 이번연구로 확인됐다』면서 『우리나라도 배출규제 등 원천적인 온실가스 대책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비한 벼육종 등 다각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직 정년퇴임 현정준씨(인터뷰)

    ◎“우주연구에 정년 없지요”/강사로 새출발… 저술활동도 열심 국내 첫 천문학과교수인 현정준(65·천문학과)씨가 지난 2월말로 정년퇴임,서울대강사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 58년 서울대에 우주와 기상에 관련한 국내 첫 학과인 천문기상학과가 생기면서 천문학강의를 시작,국내최초의 천문학교수가 된 그는 33년간의 천문학과 교수생활을 마치고 이제 신입생대상의 1주당 3시간짜리 교양과목인 「인간과 우주」를 강의하며 학자의 노년을 설계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천문학과 관련한 국내서적은 고사하고 영어원서조차 구하기 어려웠을 때였지요.57년 소련(지금의 독립국연합)의 세계최초 인공위성 스프트니크호 발사성공에 따라 우주공간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은 전세계를 압도했습니다.바로 그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다음해 서울대에 국내 최초로 천문기상학과가 생기게 됐지요』그러나 당시만 해도 마땅한 전공자가 없어 지질학과의 정창희교수(현 서울대명예교수)가 임시학과장을 맡고 천문에 대해서는 현교수가,기상에 대해서는 당시 기상청에 근무하던 김성삼씨가 각각 맡아 가르치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이제 소백산천문대엔 24인치짜리 반사망원경이,대덕표준과학연구원 천문대엔지름14m규모의 전파망원경이 설치돼 있고 93년초 우주의 3분의 1을 탐색할 수 있는 지름1.8m짜리 광학망원경이 설치될 예정입니다.또 몇몇 대학들도 기초적인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장비는 갖추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천문학을 전공하고 외국유학경력을 지닌 제1세대학자군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등 이제서야 국내 천문학계는 출발점에 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달력제작등 농경생활과 항해술등 인류생존을 위해 문명의 발달과 함께 성장해온 천문학은 이제 물질과 우주의 기원및 원리를 밝히는 프런티어학문으로서 발전해 가고 있다.『천문학연구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날로 세분되어 가고 있읍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외부의 은하나 별이 보내오는 전파를 포착,분석해서 지구밖의 모습을 밝히려는 전파천문학이 가장 활기를 띠며 중심분야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있습니다』 현교수는 『지난 40여년동안 일도 못하고 세월만 보내온 것 같아 쑥스럽다』며 한편『강의부담에서 벗어나 책도 쓰고 우주론에 대한 공부도 더 할 참』이라고 말한다.(현교수는 대우학술총서의 하나가 될 「현대물리적 우주론」을 쓰고 있다) 서울대 천문학과(학과장 윤홍식)에서는 지난주에 현교수를 명예교수로 대학당국에 추천,다음학기이전에 명예교수로 추대될 전망이다.
  • 3·24총선결과의 정치사적 의미/긴급대담

    ◎안병만 외대부총장·정치학/이용필 서울대교수·정치학/“국민은 새정치질서를 원했다”/국민·무소속 대거 등장… 여야 모두가 패자/영·호남 독식 사라져 지역감정 타파 기대/「견제와 균형」 뿌리내릴땐 민주화 촉진 계기될것/통일등 국가 중대사 맡을 새국회,대립보다 국익우선 협력을 특별한 쟁점이나 이슈없이 치러졌던 14대총선이 당초 예상을 뒤엎고 여당의 과반수의석 확보 실패로 판가름났다.신생정당 국민당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는가 하면 민주당이 서울지역에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무소속후보가 대거 당선되는등 갖가지 이변이 속출했다.앞으로 14대 국회는 차기정권을 창출할 대통령선거를 치러야하고 민주화·경제·통일등 국가적 과제를 해결해야할 책임을 떠맡게 됐다.이번 총선결과의 정치사적 의미,이같은 결과를 도출해낸 민의의 소재와 14대국회의 정치·경제적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외국어대 안병만부총장(정치학),서울대 이용필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짚어본다. ▲안병만부총장=투표율은 선거의 특징을 말하는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이번 14대 총선투표율 71.9%는 역대 총선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인데도 그 결과는 전혀 딴판으로 나타났습니다.「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다」는 통념을 깨뜨린거지요. 주원인은 정치불신,정치소외현상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그런데 투표율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여소야대라는 기현상을 만들어낸 것은 「관심있는 공중」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도저촌고」의 기본 특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서울등 대도시의 투표율은 예전보다 다소 높아진 반면 농촌지역의 투표율이 떨어진게 그 좋은 증거입니다. ▲이용필교수=투표율로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는 근거자료로 삼는데는 동감입니다.그러나 이번 선거는 투표율 못지않게 두가지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하나는 당초 국민들이 생각한 것처럼 신생정당인 국민당이 여당표를 잠식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참여를 게을리하지 않은 중산층,이른바 「수익계층」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국민당이 여당표를 크게 잠식한 것은 「여당과 반대되는 당」이라는 이미지보다 성향이 비슷하다는 점이 더 강하게 작용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이 점이 향후 정국변화의 주요 변수가 될 것입니다. 또 양당 구조속에서 제3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국민당과 무소속의 대거 등장은 기존 양당에 대한 국민의 불만표출로 보입니다.사회가 다원화하고 점차 복잡해지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앞으로 국민당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당정치가 「3당제」 또는 「다당제」로 갈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가름할 것입니다. ▲안부총장=이번 총선결과를 분석해보면 여러가지 함축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우선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여구도를 깨뜨렸으며 민자당의석으로서는 과반수인 50%에 못미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습니다.반면 민주당은 기대이상으로 선전,서울지역에서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확보했고 수도권지역에서도 많은 당선자를 내 「지역당」이라는 오명을 어느정도 씻게 됐습니다. ○다당제 정착에 큰 관심 기존 양당구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국민당의 약진은 우리 정치사에 충격을 주었습니다.국민당의 향후 거취가 주목됩니다. 이번 선거는 지난 13대때 조성된 지역감정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지만 민자당의 아성인 대구·경남지역과 민주당의 전북지역에서 다른 당선자를 배출,인물과 정당이 우선시되는 경향을 낳아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주었습니다. ▲이교수=그점은 동감입니다.안교수가 앞서 지적했듯이 민자당의 공화계가 지지기반인 충청권에서 의외로 부진했으나 민정계가 전북에서 2석을 확보했습니다.영남지역에서도 국민당과 무소속후보들이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지역감정으로 얼룩진 우리의 정치사에 변화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부총장=이번 총선결과로 미루어 볼때 앞으로의 정국은 13대처럼 민자당 마음대로 운영되지는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여당의 의도대로 정국이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국불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견제와 균형,타협과 관용이 우리 정치권의 대명제로 등장하게 돼 결과적으론 민주화를 더욱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또 이번 선거가 예전과는 달리 대통령선거에 앞서 치러졌고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계산에도 불구,민자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향후 민자당내 대권구도문제에 많은 갈등을 야기시킬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특정인의 대권주자 부상에도 예상치 못할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큰 편입니다. ▲이교수=총선결과를 각 당은 겸허하게 수용,정당정치를 활성화하고 당내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우리의 경우 정당정치가 잘 안되는 이유는 정치인들의 의식수준이 낮은 탓도 있지만 당내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데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민자당도 이제는 각계파의 지분이나 주장하는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되고 민주당도 이익만을 추구하는 당내 불협화음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밀실정치로 각 계파의 지도자들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지도자들의 개인의견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수준낮은 정치행태가 계속되는한 정당정치가 궤도에 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이런 정당을 누가 민주주의 정당이라고 여겨 표를 주겠습니까.인물을 내세우는 무소속이 대거 등장한 것도 이때문입니다. 국민당도 마찬가지입니다.선거운동과정에서 보였던 것처럼 대표 한사람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국민당은 또 재벌당이라는 이미지와 정경유착의 의혹을 깨끗이 씻는데도 노력해 확고부동한 제3당의 위치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4대 국회의 원구성이 이뤄지면 여야할것없이 무소속 의원들을 영입하려는 노력이 있을 겁니다. 민중당이 국회진출은 실패했으나 제도권 진입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도 과거에는 볼수 없었던 상황으로 우리 정치사에 기록될 중요한 변화입니다. ○정경유착 의혹씻어야 ▲안부총장=역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양당구도로 이끌어왔습니다.58년,71년,78년,85년의 총선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87년 13대 총선때부터 두드러진 이유는 없으나 다당제로 가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또다시 거대여당이 만들어진다해도 계속 다당제쪽으로가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정치적인 맥락에서 고찰하면 우리의 선거는 상당히 민주화에 공헌하면서 정착되어가고 있습니다.많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식수준도 몰라보게 높아졌습니다. 이는 독재나 군부출현이라는 돌발적인 사태발생의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정치발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교수=국민의 의사는 표에만 있는게 아닙니다.이면에 또다른 의미가 담겨있다고 봅니다.표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뿐 모든것을 다 표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의 당선자들은 국민의 지역갈등해소 열망을 파악,이를 치유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여소야대의 결과를 놓고볼 때 국민의 뜻은 우선적으로 거기에 있다고 보아야합니다.우리 정치사의 격동기를 살펴보면 그때마다 국민이 보여준 슬기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이제부터라도 국민의 정서와 의식의 흐름을 겸허하게 청취해야 하는 노력들이 있어야겠습니다.이것은 14대 국회의원들의 소임이며 의무입니다. ○지역아닌 국민대표로 또 민주화완결,경제발전,통일문제등 국가중대사를어느 한당에만 맡기지 말고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한 계파나 집단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머지는 지켜보거나 비방이나 하는 그런 상태가 더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공유상태로의 전환」­이는 14대 국회의원들이 기필코 개척해야 할 새로운 정치영역입니다. ▲안부총장=같은 생각입니다.이런 점에서 14대국회와 의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주문하고 싶은 점이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당과 지역을 배경으로 당선됐지만 국회란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입니다.개개인이 소중한 일꾼들입니다.과거처럼 당이나 지도자가 시키는대로 획일적으로 간다면 곤란합니다.개개인의 정견이나 주장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할 것입니다.한 여론기관의 조사를 보면 의원 개개인은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이 보수니까 보수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이래가지고는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함은 물론 욕구불만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단체장선거 쟁점될듯 둘째,통일을 주도하는 국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생각합니다.14대 국회는 통일을 얼마나 빨리 이루느냐는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새의원들은 이번 국회가 「통일국회」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접근했으면 합니다. 셋째,당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인데 이제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당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됩니다.사당이나 붕당의 형태를 가지고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함은 물론 시대의 욕구에도 결코 부응할 수 없습니다.국회에서 지도자의 목소리만이 아닌 당의 목소리,의원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 자리잡아갔으면 합니다. 넷째,14대 국회는 국민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 국민들이 아직까지 정치소외 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국민의 참여로 변화를 유도하는 국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교수=14대 국회는 여러모로 대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우리사회를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국민을 잘살게 하는 대권」창출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제3당 출현과 무소속 의원의 연합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습니다.건전한 타협정치가 뿌리내려지지 않으면 21세기를 헤쳐나가야 할 국가적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선 가장 가까운 당면과제로 기초·광역단체장선거실시 여부가 큰 쟁점으로 대두되리라 봅니다. 영국의 철학자 JS밀은 국회의원에 출마한뒤 지역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한 바 있습니다.『이 지역이나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라 한다면 난 국회의원을 안하겠다.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게 지역구는 절차상의 선거구일뿐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은 전국민을 대표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안이한 자세에서 탈피,항상 대국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로 국정에 임해주길 바랍니다.
  • 미개봉 예술영화 많이 선보인다

    ◎한국영상자료원·인켈 아트홀등서 팬 초대/“상업성 없다”외면한 국내외수작 소개/새 예술체험 「시네마테크」로 자리잡아 한국영상자료원을 비롯,코아시네마라이브러리,인켈아트홀 등이 시네마테크로 자리잡으면서 체계적인 수작영화감상기회를 잇따라 제공하고 있다. 이에따라 지난날의 명화는 물론 그동안 상업주의에 의해 제대로 빛을 보지못했던 국내외 예술영화들이 대거 선보이게 된다. 시네마테크란 고전영화나 기존 극장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문제작및 실험작을 상영,고급영화팬들의 감상욕구를 풀어줌과 동시에 영화인들에게 새로운 영화관을 제시하는 영화운동의 거점을 뜻한다. 한마디로 극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넓고 깊은 예술체험의 장을 제공하는 것으로 좋은영화에 목말라 했던 관객및 영화광들로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자료및 감상위주의 성격을 띤 코아시네마라이브러리는 16일부터 27일까지 3월의 영화로 외화 「지지」 「워터프론트」 「악마의 손길」 「사이코」 등과 한국영화 「장마」 「을화」등 모두 6편을상영한다. 「지지」(16일)는 58년 빈센트 미넬리가 연출한 고급 매춘부소재의 뮤지컬이며 「워터프론트」(18일)는 53년 엘리아 카잔감독이 뉴욕의 한 부두의 살해사건을 통해 도덕적 삶의 회복을 그린 역작이다. 「악마의 손길」(24일)은 오손 웰스가 「시민 케인」이후 연출한 대표작으로 범죄에 연루된 신혼부부의 얘기를 소재로한 작품이며 「사이코」(25일)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심리물로 다룬 앨프리드 히치콕의 전형적인 공포영화다. 또 「장마」(20일)는 79년 유현목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6·25동란시 한가정의 비극적인 모습을 통해 당시 첨예하게 대립된 남북한의 이데올로기문제를 다룬 작품이며 「을화」(27일)는 변장호감독의 역작으로 무당 을화를 통해 전통과 근대화과정에서 파생되는 의식의 충돌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인켈아트홀은 세계영화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역할을 해낸 감독들의 대표작을 하루 3편씩 소개한다. 「세계작가전」이란 이름으로 소개중인 인켈아트홀의 영화는 14일에 존 포드의 「수색자」 「리버티 발렌스를 쏜 사나이」 「황야의 결투」를,16일에는 리들리 스코트의 「텔마와 루이스」,조엘 코엔의 「바튼 핑크」,구로자와 아키라의 「8월의 광시곡」으로 프로를 짜놓았다. 이중 「바튼 핑크」는 91년도 칸영화제 대상수상작으로 호텔에서 벌어지는 하룻동안의 사건을 극화한 뛰어난 영상의 작품이며 「8월의 광시곡」은 2차대전중 원폭과 관련된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한 화제작이다. 또 「텔마와 루이스」는 살인사건에 휘말린 두여인의 심정적 변화의 모습을,「수색자」는 인디언에게 납치된 조카딸을 찾아 나선 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인디언의 시각에서 다룬 영화이다. 「바튼 핑크」 「텔마와 루이스」 「8월의 광시곡」은 16일에 이어 23일과 30일에도 상영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사상 문예물이 가장 풍성하게 제작됐던 60년대의 영화를 묶어 「60년대 문예영화감상회」와 「독일 애니메이션 영화감상회」를 매주 수·목·금요일 하오2시 이 자료원에서 갖고있다. 「60년대 문예영화감상회」의 작품은 유현목감독의 「막차로 온 손님」(18일),김수용감독의 「안개」(25일),최하원감독의 「독짓는 늙은이」(26일),김수영감독의 「까치소리」(27일)로 수준높은 문학작품을 깊고 섬세한 터치로 영상화한 수작들이다. 「독일 애니메이션영화 감상회」는 오는 19∼21일까지 3일간 마련되는데 주로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감각과 테크닉이 돋보이는 「브라보 파파 2040」등 12편이 소개된다.
  • 외언내언

    오늘의 일본을 움직이는 것은 누구인가.국왕도 총리도 의회도 아니다.경제는 재벌,정부는 관료,정치는 자민당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하면 자민당을 움직이는것은 누구인가.최다 의석의 다케시타(죽하)파이며 그 다케시타파를 움직이는것은 「늙은 너구리」요 「현대판 요괴」란 별명을 지닌 금년 78세의 가네마루 신(김환신)씨.◆자민당 부총재요 다케시타파의 회장이 그의 공식 직함.야마나시(산이)현 양조장집 아들로 태어났으며 도쿄 농대출신.58년 43세때 훗날 사돈이 되는 다케시타 노보루 전총리와 함께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이후 12선을 기록하고 있다.『돈(김)도 있고 생김새와 성격이 둥글둥글(환)하고 신의(신)도 있다』는 것이 초기의 이미지.◆일본정치 보수본류이자 다케시타파 전신인 다나카파 소속으로 건설상·방위청장관·당총무회장·간사장을 역임했다.다나카와 다케시타등이 정치스캔들로 무력화되면서 절대적인 오늘의 실력자로 부상,총리를 만드는 「킹 메이커」의 소리도 들으며 일본정치를 떡 주무르듯 한다.◆그가 우리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90년9월 평양방문때.김일성과 회담을 갖고 「조선은 하나」며 「전후 45년의 배상도 하겠다」는 등 파격적인 공동선언을 발표해 안팎의 파문을 일으키면서부터.김일성을 훌륭한 지도자로 극찬하며 회담때는 감격의 눈물까지 흘려 충격과 핀잔을 동시에 사기도.◆그후 서울에 와 우리 대통령에게 해명하고 사과해 파문은 수습되었으나 그가 일본 월간지 「세카이」(세계)4월호 대담에서 다시 마각을 드러내 일본의 신뢰성에 먹칠.북한과 적극적 수교추진 조건으로 부총재직을 수락했으며 작년 밀사로 보낸 신고(신오·차남이자 비서)씨를 통해 「핵개발 없다」는 김의 확약도 받았으니 모든 것 덮어두고 수교를 추진하겠다는 것.11일에는 69억달러의 보상을 수락했다는 보도도.하겠다면 어쩔수 없겠으나 한미등과의 관계도 일본정치 주무르듯은 안된다는 것도 알아야 할것.
  • “모택동은 「그룹섹스」즐겼다”(해외화제)

    ◎중국 전문가 솔즈베리 저서 밝혀/비밀경찰통해 포르노 서적·젊은 여인 조달/수면제 상습복용… 통요일밤엔 댄스파티도 모택동전중공당주석은 외부세력에 알려진 그의 화려한 혁명·정치경력과는 달리 꽤나 복잡하고 난잡한 사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그는 중국 고대의 포르노서적 수집에 열을 올렸고 젊은 여인들과 그룹섹스를 즐겼는가 하면 잠자리에 들땐 많은 양의 수면제를 복용했으나 하루 4시간이상 잠을 자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지에서 명기자로 이름을 떨쳤던 헤리슨 솔즈베리씨가 최근 간행된 그의 저서에서 밝혔다.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29일 솔즈베리의 저서 「새로운 황제들,모·등시대의 중국」의 내용을 발췌,소개하면서 모의 섹스생활은 포르노수집과는 달리 동료지도자들에게 숨기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솔즈베리는 모의 전령이었던 호요방 전총서기를 비롯,양상곤국가주석,조자양전총서기등 수많은 중국지도자들과 모의 비서·경호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모의 침대는 북경의 보통아파트 방들보다 훨씬 컸으며 그 위에서2∼3명 혹은 그 이상의 젊은 여인들과 그룹섹스를 즐겼다』고 적고 있다. 모의 채홍사역은 58년부터 비밀경찰 총책을 맡아온 강생.그는 모에게 각종 포르노 서적과 젊고 예쁜 여인들을 조달해 왔다는 것이다. 모는 14세기 원나라때 황제들이 「14명의 천상의 악마들」이란 무용단을 만들어 손님들을 접대했던 것을 본떠 「토요일밤의 댄스파티」를 즐겼다고 밝혔다.여기에 동원되는 여인들은 시중에서 마구잡이로 모으는게 아니라 비밀유지를 위해 모두 외교부 여성근로자들중에서 선발했다.쓸만한 여인은 우선 외교부로 취직시킨다음 선발하는 것이다. 이밖에 모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지도자들은 30년대중반 장정때 생겨난 버릇으로 수면제나 아편류의 마약을 상습복용했다고 솔즈베리는 밝혔다.그래서 문화혁명때 우파간부들을 고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로부터 수면제를 빼앗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책 저술을 위해 지난 84년 1만3천㎞의 장정루트를 모두 답사하기까지한 솔즈베리는 이같은 수면제 과용이 중국지도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으며 모가 현실에 맞지않는 꿈같은 환상속에 살아온 것도 수면제 때문인것 같다고 말했다.
  • 미 메이시백화점 파산 신청(해외경제)

    ◎1백33년 역사의 미 유통업계 대명사/매출격감·확장경영 실패… 은행관리로 미국백화점의 대명사로 불리며,풍요한 미국자본주의의 표상이었던 메이시백화점이 지난 27일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1백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시사는 지난 80년대 블락스 I,매그닌과 2개 백화점을 인수하는등 무리한 확장정책으로 40억달러의 빚을 떠안게됨에 따라 경영위기에 직면해왔다. 게다가 지난 90년 7월부터 불어닥친 미국경제의 침체로 매출이 줄어들어 메이시사의 어려움은 가중됐다.실업의 확산과 세금으로 미국인들의 소비는 전반적으로 줄어들어 지난해 크리스마스기간동안 메이시사의 매출은 지난 90년보다 3%정도 줄어들었다. 메이시백화점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해 납품업자들로부터 납품을 거절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며 지난 24일 이 회사의 제2대주주인 로런스 티시 CBS회장이 10억달러를 재투자한다는 자구계획을 제시했으나 주요채권자인 프루덴셜 보험사가 이를 거절,연방파산법 11조의 적용을 받는 파산보호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메이시백화점은파산법 적용에 따라 경영상태가 회복될때까지 채권자들로부터 보호받는 한편 납품업자들에게 지불한 대금을 은행에서 융자받을 수 있게 됐다. 필켈슈타인 메이시백화점 사장은 파산신청과 관련,『메이시의 장래를 위해서는 파산보호신청이 가장 적당한 해결방안』이라고 밝혔으나 파산보호신청으로 메이시백화점의 이미지는 심한 타격을 입게됐다. 메이시백화점은 전국에 1백44개의 백화점 점포와 1백7개의 특수점포를 포함,모두 2백51개의 점포가 있다.연간 매출고는 4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매년 11월 뉴욕의 추수감사절행사를 지원하는 메이시백화점은 지난 1947년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34번가의 기적」으로 더욱 유명하며,미국의 어린이들은 이 영화로 인해 산타클로스가 흰 수염을 한 것으로 믿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미국인들은 메이시백화점의 선물을 최상의 선물로 생각할 정도로 메이시백화점은 미국인들의 체면을 대변하는 백화점으로 유명하다. 메이시백화점은 지난 1858년 10월28일 로랜드 후세이 메이시가 맨해턴 14가에 33평규모로 종업원도 없이 직물류와 문방구류를 판매하면서 출발했다. 그뒤 메이시에게 오지그릇과 유리제품을 납품하던 나단과 아이사이더 스트라우스형제가 지난 1877년 메이시가 세상을 떠난뒤 인수,현 뉴욕의 본점으로 가게를 옮기게 됐다. 아이사이더 스트라우스부부는 지난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으로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 11억대 히로뽕 밀조단 적발/부산 유흥가등에 공급… 5명 구속

    【부산=이기철기자】 부산지검 강력부 정동민검사는 27일 히로뽕 밀매조직 「영조파」두목 정영조씨(58·서울 송파구 잠실2동 주공아파트 232동 103호)와 부산지역 공급책 김동수(42·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위반등 전과13범·부산진구 전포4도 201의6),이영하씨(50·〃전과21범·동래구 거제3동 503의 20)등 공급책 4명등 모두 5명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공급책 김의일씨(43·충북 청주시 사창동 221의1)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두목 정씨는 지난 58년 경북 K대 화학과를 졸업,79년까지 무역회사인 서울 삼요물산 대표이사로 있다가 지난 87년 당시 거주지인 대구시 남구 봉덕3동 1395 자택에서 히로뽕 3백50g(시가 11억6천5백만원 상당)을 밀조,보관해오면서 지난해 6월부터 10월사이 김씨 등 공급책들에게 15차례에 걸쳐 모두 2백45g을 4천30만원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그 불가피성(자치단체장 선거 연기/그 결단에 부쳐:2)

    ◎돈·과열이 몰고올 사회혼란 불보듯/풀릴돈 최대 20조… 물가잡기 힘들어/지역주의 노골화… 남북문제 대처도 어렵게 노태우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자치단체장 선거연기를 밝힌 것은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점과 더불어 남북관계 측면까지를 고려한 결정이다. 금년 모든 정치일정을 예정대로 이행할 경우 사상 유례없는 선거의 연중화와 정치과열현상이 벌어지리란 것은 불문가지였다. 이는 지난 87년 대통령선거때의 혼란과 지역분열 등을 능가,나라를 지역공화국으로 양분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낳아왔다. 특히 올해는 정부이양준비기이다. 잇단 선거와 민선단체장으로 인해 초래될 행정의 혼란과 비능률은 통치권을 약화시켜 원만한 정부이양에 뜻밖의 암초로 등장할 가능성마저 있다. 전체적 선거일정에도 문제점이 많다. 금년 4차례 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한다면 오는 95년 두차례 지방의회선거,96년 총선과 단체장 등 3차례 선거를 치르는 것처럼 1년에 2∼3차례나 선거를 치러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폐단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때 금년 4대 선거 강행실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는 분석까지 대두한다. 각 연구기관이 추정한 4대 선거비용은 최저 3조원에서 최대 20조원까지로 계산되고 있다. 연간 총통화평균액이 70조원 정도인 것과 비교할때 가히 엄청난 금액이다. 이같은 자금이 비생산적인 선거현장에 뿌려짐으로써 야기될 부작용은 생산자금부족,과소비현상,물가상승,산업인력부족,부동산투기 발생 등 모두 열거키 어려울만큼 많다. 경제기획원 국토개발연구원 등이 추계한바에 따르면 4대 선거실시 경우 선거로 인한 물가상승이 3.5%,제조업이탈 산업인력이 80만명 등이며 이들 현상으로 인한 GNP손실은 무려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더해 인·허가권을 가진 단체장을 뽑는 선거는 기업인들에게 국회의원선거보다 더 정치자금 제공의 압력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선거의 연중화는 사회기강해이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켜 사회전반에 걸쳐 무질서·불법·범죄행위의 만연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선거분위기에 편승한 노사분규 재연도 우려되고 있으며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과지역이기주의를 노골화시켜 국민화합을 결정적으로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잦은 선거로 인한 국론분열과 국력소모는 남북관계 진전에의 효율적 대처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금년은 남북 정상회담개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점쳐지는 등 남북관계 개선의 일대 분기점이 되리란 예상이다. 무엇보다 국론의 통일과 국력의 결집이 요구되는 시점인데 4대 선거실시로 정치·경제·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게 일반적 생각이다. 지난해 지방의회를 구성한지 1년만에 단체장선거까지 실시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건전한 발전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지방의회조차 정착되지 못한 형편에서 곧 단체장직선을 한다는 것은 지방행정뿐 아니라 주민생활 전반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는 지방의회구성후 1백82년만에 단체장을 간선했고 일본은 지방의회를 구성한 뒤 58년만에 단체장 직선을 실시했다. 국민여론도 단체장선거 연기에 대단히 긍정적이다. 한국 갤럽조사연구소가 대통령 연두회견직후 조사한바에 의하면 단체장선거 연기에 찬성하는 비율이 59.3%에 달했다. 반대는 24.5%에 불과했다. 민자당은 이러한 여론의 호응도에 힘입어 『단체장선거 연기를 14대 총선공약으로 내걸고 국민 심판을 받겠다』고 나서고 있다. 절대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 13대 국회에서 지방자치법을 고쳐 단체장선거를 연기하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총선이라는 검증절차를 거쳐 14대 국회에서 법개정절차를 밟음으로써 명분도 쌓고 야당의 「위법」 공세에도 정면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라 분석된다. 일단 지방의회는 구성했으므로 6·29선언에서 약속했던 지방자치시대 개막은 이뤄진 셈이며 단체장선거 연기에 따른 일부 지역적 불만은 행정체제의 분권화로 충분히 보상해줄 수 있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시각이다. 야당측의 「총선·대권의 행정·관권선거기도」 주장에 대해서는 『행정·관권선거는 우리 국민 정치수준상 불가능하며 오히려 단체장직선시 호남·비호남구도가 명확해져 야당에 유리할 수 있었다』고 반박한다. 총선을 거쳐 14대 국회가 구성되면 구체적 연기일정이 나오겠지만 지방선거를 총선 등 국가선거 중간에 넣는다든지,합리적 일정조정이 있어야할 것이다.
  • 새 주한교황청 대사/부라이티스 대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신임 주한 교황청대사에 조반니 부라이티스 대주교를 30일 임명했다고 가톨릭 서울교구가 발표했다. 1933년 런던에서 리투아니아계 부모로부터 출생한 신임 교황대사는 58년 사제로 서품된후 첫 임지로 한국에서 근무한바 있고 81년 대주교로 서품돼 중앙아프리카 콩고및 차드주재 교황사절을 지낸데 이어 지난 87년부터 이란주재 교황대사로 근무해 왔다.
  • 변칙 증여와 세법 보완(사설)

    우리나라 재벌들이 변칙적인 상속과 증여를 통해서 부의 세습화를 이루어 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현대그룹의 세금추징 불복선언을 계기로 이 문제가 다시 클로즈업 된 것에 불과하다.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어제 있었던 정책토론회에서 『재벌의 소유분산및 변칙증여에 대해서 철저히 과세하겠다』고 밝혔다.최부총리의 다짐에는 그동안 상속및 증여에 대한 과세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재벌들의 부의 세습화수법은 다양하고 특히 87년이후 재테크 과정에서 변칙적인 수법이 한층더 기세를 부려왔다.첫째 수법은 기업주가 주식값이 낮을 때 주식을 자녀들에게 증여했다가 재산재평가를 실시하여 재평가차익이 발생했을 때 무상주를 나누어 주거나 재평가적립금을 자본에 전입시켜 자녀들의 주가를 높여 주는 것이다.현행법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어 재벌들이 자주 이용하고 있는 부의 세습화 방법이다. 둘째로는 대주주가 기업내 자기주식을 포기(감자)하는 대신 군소 주주인 자녀들의 주식가치를 그만큼 높여 주는경우이다.지난해 상속세법이 개정되어 올해 부터는 감자에 대해 과세를 하게되어 있다.그러나 지난해 이전에 이루어진 감자는 법적으로 과세가 불가능하다. 셋째 비공개법인의 주식대금 불입은 액면대로 하게 마련인데 그 주식은 시장에서 매매되지 않기 때문에 시가보다 싸다.따라서 사전에 주식을 자녀들에게 싼 값으로 증여하고 그뒤에 기업을 공개하는 경우이다.이밖에 대주주가 회사임원을 개입시켜 주식을 시가보다 싼 값으로 자녀에게 전매케 하거나 시가보다 비싸게 인수케 하는 가장행위 등이 있다.정주영 명예회장 일가의 변칙증여도 이같은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현행 상속·증여등 관련 세법의 미비로 이러한 누수현상이 발생한 것이다.물론 불공정합병과 불균형 감자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과세근거가 마련되었지만 아직도 보완할 점이 적지 않다.먼저 주가의 물타기조작에 악용되어온 재산재평가법의 폐지내지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이 법은 지난 58년 1년 시한부로 도입된 것인데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유지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또 모든 자본거래로 인하여 재산적 가치가 이전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에는 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개발되어야 하고 재산재평가적립금을 자본에 전입시키는 경우 이를 배당으로 간주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관련 세제를 현행 열거주의 방식에서 포괄주의로 전환,세법에 열거되지 않은 경우라도 무상증여로 간주될 때는 증여세를,유상증여인 경우에는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세법의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이같은 관련 세법의 보강을 통해서 부의 세습화는 기필코 차단해야 한다.이번 재벌그룹사건을 조세정의 구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북,내년부터 원자탄 본격 생산단계

    ◎평양의 핵개발 수준은/핵물리학자 3백명… 80차례 고폭실험/히로시마 투하 20㏏급 연13개 제조가능 노태우대통령의 한반도비핵화선언으로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이제 명분과 구실을 잃게됐다. 북한의 핵무기보유는 한국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뿐아니라 동북아안보정세는 물론 기존의 미국·소련·영국·프랑스·중국등 5대 핵보유국의 세계전략에도 큰 변화를 주게된다. 이때문에 북한의 핵사찰을 놓고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회의에서 최우선 의제가 되고 안전협정가입을 결의문으로 채택하고 있다. 북한은 1956년 2월 모스크바에서 「조소연합핵연구소조직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58년에는 핵기술개발을 위해 물리학자와 기술자를 파견했으며 59년에는 소련과 「원자력의 평화적이용에 관한 의정서」를 체결했다. 64년 2월에는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65년에 소련으로부터 제1원자로를 도입설치하고 7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핵폭탄제조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재미핵물리학자 경원하씨의 입국으로 3백여명이상의 핵물리학자와 1천여명이상의핵기술자를 확보했다. 북한은 64년 철저한 비밀속에 북한전역에 대한 우라늄조사를 실시한 결과 함흥·웅기·해금강일대에서 양질의 우라늄광을 발견했다. 북한의 우라늄매장량은 2천6백만t으로 추정되며 연간 가채량도 4백만㎏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우라늄의 농도는 0.5∼0.8%이어서 정련과정을 거쳐 바로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재처리시설을 갖추면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 북한이 65년에 도입한 제1원자로는 순수·실험용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고 있으나 87년에 프랑스의 G­1원자로를 모방하여 자체개발한 제2원자로와 프랑스의 G­2를 모방한 출력2백메가와트의 제3원자로는 그 용도 및 능력면에서 문제가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출력30메가와트의 제2원자로는 87년부터 가동되었기 때문에 핵연료재처리를 한다면 연간 7∼8㎏의 플루토늄은 추출할 수 있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20㏏급원자탄 2∼3개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이다. 92년에 완공된 제3원자로의 발전용량은 2백38메가와트로 연간 플루토늄 54∼60㎏을 추출할 수 있어 20㏏ 핵무기 10여발 이상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미국의 정찰위성 KH2와 프랑스의 위성이 촬영한 사진분석에 따르면 녕변의 핵연료재처리시설은 1∼2년뒤에 완공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최근 귀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소규모의 핵연료재처리시설 시험가동을 끝내고 본격적인 공장을 건설하고 있어 플루토늄이 이미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순도의 플루토늄을 확보한뒤 핵폭탄을 제조하기는 비교적 간단하다는 것이 핵물리학자들의 견해이다. 40년대초 최초의 핵폭탄이 제조된뒤 40여년이 지나는 동안 핵폭탄제조기술은 1백20여가지나 개발되었는데 그중에는 이공계대학원생수준이면 될 기술도 있고 포도주제조기술정도만 있으면 가능한것도 있다는게 과학자들의 얘기다. 북한은 70년대초부터 미맨해턴계획의 뇌관을 설계했던 히긴스 보뎀박사등 원폭제조과학자들과 접촉,핵폭탄뇌관기술은 이미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연료의 확보,원자로의 가동,핵연료의 재처리,핵폭탄의 제조기술등을 모두 갖추고 85년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이후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다. 영변지역의 핵시설에는 대공화기망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으며 83년이후 지금까지 80여회의 고폭실험(high explosive)을 실시,핵기술을 마스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남북한의 군사균형을 깨뜨리고 긴장을 고조시켜 전쟁위협을 증대시키게 된다. 미국의 핵문제전문가 레너드 스텍터시는 『북한이 핵무기개발 문턱에 들어섬으로써 한국정부는 선제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가질수 있으며 이로인해 전면전의 위험성을 크게 증대시킬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 전국민속경연 개막/여수서/21개팀 사흘간 겨뤄

    【여수=서동철기자】 「신명의 큰잔치」제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의 개막식이 16일 상오 10시 전라남도 여수시 진남경기장에서 허만일 문화부차관과 정한숙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백형조 전남지사,박일출 여수시장을 비롯,대회참가자와 시민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문화부가 주최하고 전라남도와 여수시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대회는 경연종목에 21개팀 1천7백85명,시연종목에 6개팀 5백93명이 참가하는등 지난 58년 시작된뒤 가장 큰 규모로 18일까지 3일동안 치러진다.
  • 상품거래 관계에 「비용개념」 첫 도입

    ◎노벨경제학상 수상/코스교수의 업적/경제현상을 재산권 측면서 분석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미국 시카코대의 로널드 코스 명예교수(81)는 상품의 생산과 수송뿐만 아니라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재산권의 개념을 도입,경제제도의 체계적인 분석을 가능하게 한 제도경제학파의 창시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시장의 완전성을 전제로 출발하는 전통적 미시경제학이론은 계약의 체결·이행·조직관리등의 과정에 발생하는 제반비용을 도외시 하고 있어 현실 경제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경제자원이 갖고 있는 총효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거래비용을 분석해낸 공로로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특히 경제현상을 재화와 이를 생산해내는데 필요한 자본·노동등의 생산수단이라는 측면에서만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화와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즉 재산권의 측면에서 새로운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분석의 정확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재산권을 그 내용에 따라 소유권과 이용권,그리고 계약에 의한 제한적 처분권등으로 구분하고 이같은 재산권개념을 기초로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 과정과 경제제도를 분석했다. 30∼40년대에는 주로 기업이론분야를 연구했으나 당시에는 세계 경제학계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70년대 이후 그의 이론이 경영학 분야의 다국적 이론과 내부화 이론등에 접목되면서 제도경제학파의 시조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연세대 정갑영교수(경제학)는 『코스교수는 전통적으로 시장실패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며 시장의 자율조정기능,즉 경제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이를 해결함으로써 시장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에 서있다』면서 『정부의 시장개입 보다는 시장기능을 중시하는 시카고학파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51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팔로대(51∼58년)·시카고대 교수(58∼64년)·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77년)등을 지냈으며 주요 저서로는 「독점에 관한 연구」·「법과 경제」등이 있다.
  • 「5.18보상」 잡음 없게 완벽 처리”(이런 공무원)

    ◎광주직할시/정일삼 환경녹지국장/이의 한건 없이 관련자 99% 수령/89년 대홍수 복구등 힘든일 앞장 공직자들이 자기 직무에 충실한 것은 결코 자랑일 수 없다.「공복」이란 말처럼 그들은 「국민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에 국민이 맡긴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이들이 가끔 돋보이는 인물로 떠오르는 것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 가운데서 특히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광주직할시 환경녹지국장 정일삼씨(53)는 광주시청에서 「공직자 표상」으로 불릴만큼 상사나 동료,후배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명문대 학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고시출신도 아닌 그가 이만큼 인정을 받게 된것은 공직생활 30년동안을 한결같이 법과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주어진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해 낸 「성실성」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부청장에 전격 기용 그래서인지 어려운 일거리가 생기면 윗사람들은 항상 그에게 맡기려고 한다. 지난 89년 광주·전남지역을 휩쓴 대홍수 때에도 그랬다. 당시 최인기광주시장(현내무부차관)이 하남공단관리소장이던 그를 그해 7월31일자로 수해지역인 광산구청 부청장으로 전격 기용한 것도 엄청난 피해를 빨리 복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성실성이 가장 돋보인 업무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보상처리이다. 지난해 7월 국회에서 「광주관련법」이 통과되자 관련자 심사등 보상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국장은 그해 10월25일 광주시 지원협의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헝크러진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일처리를 위해서는 그가 꼭 필요했었다는게 이효계광주시장의 말이다. 보상업무는 예상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었다. 10년 세월이 지난 「5·18관련자」에 대한 보상대상여부 심사 자체도 어려운데다 보상금 지급을 위한 상이등급 판정까지 해야했다. 더구나 이 업무는 「역사의 진실 규명」이라는 차원에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어서 광주시로서는 한치의 하자도 없이 일 처리를 해야했다. 그는 「5·18관련자」라고 신고한 2천6백90명에 대해 일일이 사실조사에 들어갔다. 우선 사망 1백90명,행방불명 1백45명,상이후 사망 72명,상이 2천2백12명,기타 62명(신고자 가운데 9명은 신고 취하)에 대해 신고내용을 토대로 관련자료를 확인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한사람에 대해 적어도 2∼3회 실시됐고 의심쩍은 부분은 4∼5회씩 조사를 했다. ○상하간서 신임돈독 직원들과 같이 밤샘을 하는 날들이 계속됐다.그래서 주위에선 그를 「올빼미 국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국가적인 문제여서 관련자의 진위를 분명히 해야하는 것이 제1의 목표였습니다』정국장은 당시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보상금을 노려 5·18과 아무런 관련없는 사람이 끼어들 소지가 많았고 또 일부에서는 웬만하면 관련자로 인정해 주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여론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것은 역사」라며 옥석을 확실하게 가려내겠다고 말했죠』 그 결과 대상자 2천6백81명중 2천2백55명이 관련자로 인정받았고 4백26명(사망 22,행방불명 1백7,상이 2백96,기타 1명)은 제외됐다. 『밤샘을 하도 여러날 했더니 모두가 저의 건강을 걱정해 주더군요.눈물이 날정도로 고마웠어요.그러나 일부 관련자들로부터는 인격모독을 당하는 일도,협박을 받는 일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사명감은 사실에 입각한 진위판정을 이끌어 냈다. 28명이 각하(12명),미검진(16명)등의 사유로 다시 제외되고 2천2백27명이 보상금 지급대상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러나 이 업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관련상이자로 인정된 1천9백89명에 대한 개인별 장애등급 판정 또한 큰 일거리였다. 외과·내과등 과목별로 전문의가 7회씩 검진,보상금 지급액수를 결정하는 기본자료를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관련자 심사와 등급판정이 모두 끝난 지난해 12월12일부터 보상금 지급이 시작된 이후 이의제기 한번 없었다는 사실은 정국장이 법과 사실에 입각,80년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얼마나 철저하게 처리했는가를 보여준다. 보상업무도 순조롭게 진행돼 현재 총대상자의 99.7%인 2천2백21명에게 보상금 1천4백21억여원이 지급돼 관련자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에 크게 보탬이 되고 있다.보상금을 타가지 않은 6명은사망자가 고아였거나,유족간에 수령권분쟁이 발생한 것등이어서 사실상 보상업무는 마무리됐다는 평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그의 완벽주의,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해 맨나중에 퇴근하는 그는 국가와 사회,나아가 주민들에게 「바른 것은 바르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것이다. 전남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에서 태어난 그는 58년 조선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때문에 2학년때 중퇴했다. 『그후 몇차례 사법고시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62년7월 광주시 지방9급 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공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62년 공직생활 첫발 그후 두차례 특별승진시험을 거쳐 승진을 거듭했으며 기획능력이 뛰어난 모범공무원으로 인정받아 각종 표창을 6차례 받았다. 지난 7월 광주시 기구개편에 따라 신설된 환경녹지국장에 취임,요즘 도시행정에서 가장 어렵다는 청소·환경·녹지등의 업무를 맡았다. 정국장은 첫 사업으로 지난 7일 무등산에 꿩을 방사하는등 자연보호에 앞장서 뜻있는 시민들의 찬사를 받았다. 수재랄 것도 없이 그저 평범한 공무원인 그는 우리시대의 보통사람이면서도 가장 올바르게 일을 처리하는 뛰어난 공직자임에 틀림없다.
  • “건강 사회 가꾸기 앞장” 김효남씨(이런 공무원)

    ◎서울시 가정상담소 수석 상담원/청소년 선도·가정문제와 “씨름 20년”/하루 30차례 문제아 상담등 바쁜 나날/사례집 발간 계획… “관련분야 도움 기대” 남을 동정하기는 쉽다.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한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좀처럼 흔하지 않다. 서울시 가정상담소의 수석상담원 김효남씨(53·여)는 20여년 동안 그런 힘든 일을 해왔다. 결혼까지 할틈이 없을 정도로 그 일에 온 몸을 다 바쳤다.그러고도 얻은 것이라고는 별정직 6급이란 직급뿐이다.빤한 공무원 봉급이라 집값이 비싼 서울에는 발도 부치지 못하고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주공아파트에서 산다.그러면서도 그는 오늘도 주어진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가족들끼리 오해와 불신으로 허물어져가는 문제 가정의 결함을 찾아내고 그 해소책을 강구하는 것이 김씨의 일이다.날마다 30여 차례의 전화상담을 하고 상담소로 직접 찾아온 5∼6가족들과 만나야 한다.그들의 문제 하나하나가 김씨에게는 자기 것처럼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3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와 어머니,그리고 6남매 사이에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얌전하고 공부도 잘 했지만 무엇보다 남달리 동정심이 많았다. 5학년 때 가을 어느날 친구들과 학교 놀이터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게 논 일이 있다. 이때 같이 놀던 친구 하나가 미끄럼틀을 타다 그만 다리를 다쳤다.친구는 그러나 피를 흘리면서도 『엄마한테 혼난다』면서 울기만 했다.집에 가기가 무섭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그 친구를 업고 2㎞쯤 떨어진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애의 부모님들이 깜짝 놀라며 「고맙다」고 칭찬을 했죠.아마 그때 처음으로 남을 돕는 기쁨을 느꼈을 겁니다』 ◎법관의 꿈 버리고 출발 강릉여고를 졸업한 김씨는 58년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법관이 돼 청소년·가정문제를 다루는 것이 그때까지의 희망이었다. 대학을 마치고는 일단 고향에 돌아가 공부를 계속했다.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를 만나러 집에 왔던 강릉시장이 『시청에서 부녀상담원을 모집하니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다음날 시청에 찾아간 것이 김씨의 「운명」을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사회사업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당시에는 대학에 사회사업학과가 있는 줄도 몰랐죠』 강릉에서 1년동안 임시직 공무원인 상담원으로 일한 김씨는 69년 서울시 부녀상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씨가 서울에서 처음 맡은 일은 농촌에서 무작정 상경한 가출소녀들을 윤락가로부터 보호,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서울역에 나간 첫날 통금이 다돼 도착한 막차에서 보따리를 하나씩 든 앳된 여자애들이 예닐곱명씩 짝을 지어 몰려나오는 것을 보고는 어찌할바를 몰라 아찔했습니다』 그때만해도 어린 소녀들이 순간적인 충동과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서울에 올라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가정문제 시대상 반영 그러나 밤을새워 설득하고 차비를 줘 고향으로 돌려보냈던 순이가 서울역에 또 나타났을때 김씨는 생각을 고쳐먹어야했다.순이의 가출원인이 스스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부녀자 개인과의 상담보다 가족 전체가 함께 하는 가족상담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 정부에서도 가정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서울시에 처음으로 가정상담소를 설치했고 김씨는 이곳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우리사회의 가정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가정문제는 시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 김씨는 설명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시민이 늘어갔고 아내의 부정을 한탄하는 남자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자녀의 자폐증·도박등을 호소하는 부모도 생겼다. 가정문제가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져 가는 것이다.김씨 스스로에게도 혼란이 다가왔다. 10년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고 외로움도 느끼게 됐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기쁨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어요.마음속으로 방황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죠』 ◎대학원서 체계적 공부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려 서점을 자주 찾았고 이곳저곳을 뒤적이다 테레사수녀의 생을 담은 책을 발견했다. 책장을 넘기며 『훌륭한 분이다.그러나 나도 지금 그정도의 일은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다 서점을 나와 육교에 오르던 순간 그녀는 다시 한번 깨우침을 얻게 된다.때에 절어 시커먼 손이 동냥을 요구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순간적으로 절망감이 엄습해 왔습니다.도저히 그 검은 손을 어루만져줄 수는 없었던거죠.곧이어 지금까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일해왔는가 하는 회의에 빠졌어요.다음순간 스스로가 부끄럽고 원망스러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이 김씨에게는 또한번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다음날부터 스스로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 적극적으로 상담에 나섰다. 체계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지식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숭실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가족치료법」등을 공부해 상담에 활용했다. 이제는 상담을 통해 가정의 평화를 되찾은 이들이 소식을 전할 때 그 무엇보다 뿌듯한 삶의 보람을 느낀다는 김씨다. 그녀는 각 대학과 공공기관에 나가 강연도 하고 사회사업가 모임에도 참석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상담에 반영하곤 한다. 요즘들어 설레는 마음으로 삶의 작은 결실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의 상담기록을 틈틈이 정리,곧 자료집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나오는 가정상담사례집이어서 벌써부터 학계의 기대도 크다. 『담당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변해 사회사업의 기본계획 조차 없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라면서도 『그러나 상담을 하다보면 우리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끈끈한 정이 남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 조총련계 김종한씨,부모등 일가 5명과 내한

    ◎“팔순 아버지 망향한 58년만에 풀었어요”/“국적 북한이지만 여기가 고향”/부인은 민단계… 분단 고통 체감/“예산에 선친묘소 터 잡을 계획” 『처음으로 고국땅을 밟으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나 조총련계로 한국과는 등진 채 살아왔던 김종한씨(45·사업·일본 병고현 삼전시 산전 100의1)는 9일 추석을 앞두고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단과 함께 가족 5명을 데리고 내한,첫 소감을 말했다. 김씨와 함께 온 가족들은 지난 33년 일본으로 건너간뒤 58년만에 고국을 찾은 아버지 김우만씨(83)와 어머니 박순남씨(69)외에 처음 고국에 온 부인 심미지자씨(41)와누나 2명등 모두 6명. 10년전부터 모국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는 그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고향인 충남 예산에 묘소를 정할 예정』이라면서 『바쁘게 살다보니 매년 기회를 놓쳤으나 이번이 아니면 영원히 고향을 못찾을 것같아 만사제쳐놓고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묻는 질문에 『처음 대하니 잘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여기가 고향땅인 것만은 분명해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총련계이기 때문에 북한국적을 갖고 있는 그는 민단계로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부인 심씨와 함께 살고 있어 같은 민족이면서도 민단계와 조총련계로 갈라져 사는 재일동포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안고 살고 있기도 하다. 국적이 북한으로 돼 있지만 그다지 친북적이 아니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전에는 한국에 오는 것이 다소 껄끄러운 점도 있었으나 이제는 남북간의 교류도 활발해져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모국방문길에 나선 조총련계 동포들은 지난75년 4월부터 시작된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사업」에 따라 조국을 방문한 동포들로 이날부터 오는 11일까지 3차례에 걸쳐 모두 8백여명이 모국을 찾게 된다. 이번 방문단은 앞으로 3박4일동안의 일정으로 민속촌·경주등지의 국내관광과 포항·울산등지의 산업시찰을 마친 뒤 각자 고향을 찾아 성묘와 친지방문을 하게된다. 이번 방문을 후원한 「모국방문 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제 동포들의 모국방문도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그동안 같은 민족이면서도 이념을 달리한 조총련에 소속돼 있어 아직 마음을 완전히 열지는 않았으나 이번 방문을 계기로 나이어린 교포3,4세들도 조국을 새롭게 인식하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공산주의 되살리려는 「반개혁 쿠데타」”

    ◎6년5개월 권좌 왜 무너졌나/「바깥에 굽실…」 고르비행태에 보수 반발/민족문제·군축협상등 강경선회 할듯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휴가를 즐기던 19일 새벽(현지시간) 갑자기 실각당한 배경에는 소련군부와 비밀경찰 KGB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이날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발표한 야나예프연방부통령,파블로프연방총리,바클라노프연방방위위원회 제1부의장 등이 모두 군부의 지원을 받는 보수파라는 점,그리고 이날 구성된 국가비상위원회에 크류치코프 KGB의장과 야조프국방장관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설득력이 있다. 소련군부와 KGB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운 84년 무렵부터 그 위치가 흔들려 왔지만 지난 7월말 소련 공산당이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포함하는 새 강령을 채택한 데 이어 20일 새 연방조약이 체결되면 군과 KGB의 활동영역이 크게 축소되는 등 지금까지 누려온 정치적 위치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으로 코너에 몰리게 된다. 소련 군부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 이후 ▲소련군의 동유럽으로부터의 잇다른 철군▲지난해 11월 파리에서 조인된 CFE(유럽재래식무기) 감축협정에 따른 병력감축▲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민족분규에 따른 국내 치안불안 등에 불만을 품어 왔다. 더욱이 새 공산당 강령안과 새 연방조약이 체결될 것이 확실시되던 올해 들어서 소련 군부는 노골적으로 반개혁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들은 이러한 불만을 간헐적으로 터뜨려 왔는데 지난달 23일에는 현역 국방차관등 12명이 보수적 신문인 소비에츠카야 로시야지에 게재된 공동성명에서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바깥에 굽실거리는」 지도자를 축출하기 위해 단결하자고 호소,최악의 경우 쿠데타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시사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실패로 끝난 보수파인 파블로프총리의 비상대권 요구도 군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고 검은 대령으로 알려진 알크스니스대령 등도 인민회의 등을 통해 군부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해 왔다. KGB도 개혁 이후 최대의 피해자라고 불릴 만큼 몰락의 기로에 서 왔으며 외국인 감시와 종교탄압 반체제인사 감시를 일삼아오던 일부 기구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지금까지 소련 역사를 통해 지도자가 실각하는 경우­말렌코프,흐루시초프등­ 공산당 정치국을 통해 이루어졌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날 군부의 움직임은 공산권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또 야나예프의 이름으로 발표된 포고령은 이번 정변이 헌법 127조 7항에 따라 이뤄진 조치라고는 하지만 전례없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비상위원회를 조직한 것으로 보아 이는 공산당이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KGB와 군의 직접적 개입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음을 보여준다. 1917년 노동자 농민 소비에트와 함께 병영 소비에트를 조직,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고 혁명 후에는 서방의 간섭과 반혁명세력의 준동을 무력으로 제압해 공산 소련의 기초를 다져온 소련군부는 혁명수호 최후의 보루라는 자부심이 흔들린 적이 없다. 소련 군부와 KGB는 이처럼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무력의 전위에 서 오면서도 무력을 통한 직접적인 정치개입은 자제해왔는데고르바초프의 개혁이 미국에 대한 굴욕적 외교와 공산주의 원칙을 포기하는 데 이른 것으로 여겨지자 공산주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직접 개입하는 최후의 선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KGB와 소련 군부는 개혁파의 도전과 정책 수행의 직접적 책임에 노출되면서 개혁과 민족문제,그리고 미국과의 군축협상에서 공산주의 원칙을 반영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소련지도자 재임연표 ▲레닌=1917.10∼1922.3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 수립. ▲스탈린=1922.3∼1953.3 5차례의 5개년계획추진.대규모 숙청등 전체주의 체제 구축. ▲흐루시초프=1953.3∼1964.10 초기 말렌코프 등과 집단지도체제 구축.56년 스탈린 비판.58년 1인집권 확립했으나 64년 보수파 브레즈네프에 의해 축출됨. ▲브레즈네프=1964.10∼1982.11 체코 「프라하의 봄」을 무력진압하는 한편 미국과는 데탕트 추구. ▲안드로포프=1982.11∼1984.2 KGB의장출신으로 처음 권력장악.군부의 지지 업고 부패추방과 경제개혁을추구했으나 실효 못거두고 사망. ▲체르넨코=1984.2∼1985.3 소련 역사상 최단명 지도자.대내정책과 미국에 대한 정책에서 강경노선 취함. ▲고르바초프=1985.3∼1991.8 혁명2세대로 처음 최고권력 장악.실용적 개혁정책을 추구했으나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권좌에서 축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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