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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백화합 새출발” 15만명 참석 축복/남아공 만델라대통령 취임

    【프리토리아 외신 종합】 흑인인권운동의 기수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이 10일 하오(이하 현지시간) 남아공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 공식취임했다. 만델라대통령은 취임식을 가진 뒤 곧바로 집무에 들어가 3백42년간에 걸친 소수백인통치와 46년간 유지돼온 인종차별정책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다인종민주주의의 실험에 들어갔다. 만델라대통령은 이날 낮12시17분쯤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의 정부청사 유니온빌딩에서 각국 정상들을 비롯한 수천명의 귀빈과 수만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이클 코베트대법원장앞에서 역사적인 취임선서를 했다. 만델라대통령은 이에 앞서 9일 개원한 남아공 최초의 전인종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된 바 있다. 만델라는 이날 취임선서를 통해 『본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직무에 충실하며,공화국에 해가 되는 모든 것에 반대하며,모든 이를 공평하게 대우하며,국가와 모든 국민들의 번영을 위해 헌신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고 밝혔다. 이날 취임식에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대통령,앨 고어 미국부통령,야세르 아라파크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장,에제르 바이즈만 이스라엘대통령등 각국 정상들과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의 종식을 축하하는 수만명의 남아공시민들이 참석했다. ◎“가난과 핍박 해방” 취임사서 약속/선서식 성경,영·아어로 특별주문/고어·아라파트·카스트로등 명사 축하사절로/만델라 대통령 취임식 표정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이 10일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취임함으로써 갈등과 대립을 넘어 화합과 단결을 뿌리내리려는 민주 남아공의 대장정이 시작됐다.이날 만델라의 취임식에는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새로 출범하는 남아공의 앞날에 진심어린 축복을 기꺼이 보냈다.그러나 행사장 주변에는 종족소요등을 우려해 경찰병력이 삼엄한 경비에 들어가는 등 곳곳에 무장병력이 눈에 띄곤 했다. ○…정부청사인 유니온빌딩 대강당에서 진행된 남아공 대통령취임행사에는 앨 고어 미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미대통령부인을 비롯,카스트로 쿠바국가평의회의장,이스라엘의 에제르 바이즈만 대통령,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등 외국사절들이 대거 참석.행사준비위측은 이날 『국내외 귀빈등 모두 15만명이 취임식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교훈” ○…앨 고어 미부통령은 『만델라의 취임은 미국과 새롭고 긴밀한 관계를 열고 이웃 아프리카 지역국들과 세계 여러 나라들에 민주주의의 교훈을 전파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 ○“평화­화합 기원”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은 초록색 군복 차림에 대규모 사절단을 거느리고 입국해 이채.카스트로는 『역사적인 일이다.참석케 돼 매우 기쁘며 만델라 대통령의 전도에 평화와 화합,단결이 있기를 바란다』고 기원. ○…이번 만델라의 취임 선서식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특별히 새롭게 마련된 성경이 사용됐다.1천1백92쪽에 달하는 이 성경은 남아공 성경협회가 마련한 것으로 영어와 아프리칸어로 적혀 있으며 갈색 송아지 가죽으로 된 끈을 달고 테두리에 금박을 입혔다고. ○「유니온」서 거행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유니온빌딩은 식민지로부터 하나의 독립국가로의 탄생을 나타내는「상징」이 됐다고.황토색 사석을 재료로 81년전 지어진 이 건물은 구대영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중의 하나로 남아공의 첫 탄생을 기념한 이래 지난 반세기동안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실시한 백인정부가 들어서 있었기 때문. ○중국·애 수교제의 ○…중국과 이집트는 이번 취임식 참석을 이용해 쌍방간의 외교관계수립에 비중을 두는 느낌.강택민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양국간의 관계수립을 제안,외교관계 수립에 기민성을 발휘.현재 대만과 수교하고 있는 남아공은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선 먼저 대만과 단교를 해야할 처지에 있다. 이집트도 만델라대통령 취임식 당일인 10일 남아공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재개할 계획.이집트는 지난 89년 남아공에 민주화가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 관계정상화를 모색해왔는데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완전 철폐되기를 기다려 외교관계를 재개한다는 방침을 취해왔다. ○축하메시지 쇄도 ○…세계 각국에서 만델라대통령의 취임에 대한 축하메시지가 쇄도하는 가운데 탄자니아는 국민들이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10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 ○“긴밀한 협력 다짐” ○…만델라대통령과 데 클레르크부통령은 각국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서로 상대방의 지도력을 칭찬.클레르크는 『우리는 단결된 정부에서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면서 만델라 당선자에 대한 경의를 표시.클레르크는 이어 지금까지의 정치행로에 후회는 없다면서 『새 남아공은 각각의 면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이 하나의 별이 될 것이다』고 역설. ◎클레르크 부통령/만델라 해금… 흑인단체 인정/백인설득… 전인종 총선 결행 넬슨 만델라가 흑인해방운동의 투사였다면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전남아공 대통령(58)은 흑인들에게 제도적으로 해방의 길을 열어준 「아프리카의 링컨」이라고 할 수 있다. 데 클레르크는 1936년 요하네스버그의 캘빈파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정치명문가로서 증조부와 아버지가 상원의원을 지냈고 삼촌이 총리를 역임했다.36세때인 72년 요하네스버그 남부 베리니깅주에서 국민당후보로 출마,의회선거에서 당선한 이래 체신·노동·교육부장관등을 지냈으며 85년 백인의회의 각료평의회의장을 거쳐 89년2월 국민당 당수에 오른뒤 같은해 9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즉시 각종 악법을 철폐해나갔다.또한 무장투쟁을 외치는 흑인들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90년2월 만델라를 전격 석방하고 모든 흑인정치단체들을 합법화했다. ◎만델라전부인 위니/다혈질 강경파… 국모칭송/테러 연루 “흠”… 92년 이혼 10일 남아공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 취임한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의 전부인 위니 만델라(59)는 남편못지않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1935년 트란스케이에서 태어난 위니는 요하네스버그에서 사회사업공부를 하던중 16살 연상의 만델라를 만나 58년 결혼했다.결혼 4년뒤 흑인인권을 위해 투쟁하던 남편이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자 위니는 ANC내 강경파를 이끌며 비타협적 노선을 견지,「남아공의 국모」로 까지 추앙받았다. 그러나 지난 91년 흑인어린이 4명의 납치 살해를 방조한 협의로 유죄판결을받았으며 92년 만델라와 이혼했다. 지난해 12월 ANC여성연맹위원장에 압도적 지지로 당선,재기에 성공한 위니는 이번 선거에서 전국을 돌며 남편의 지지를 호소했다.그 결과 ANC전국구 31번으로 의원자리는 확보됐다.
  • 남대문시장(외언내언)

    서울특별시 중구 남창동.행정구역으로 이렇게 불리는 남대문시장은 이 나라에서 첫손가락 꼽히는 거대한 시장이다.강만길교수가 지은 「한국상업의 역사」에 따르면 남대문주변에 가게가 들어선것은 1414년,조선조 태종 14년.올해로 개장 5백80돌을 맞았다. 그때 조정에서는 지금의 종로와 동대문 그리고 남대문주변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준 것이다. 당시 남대문근처에는 금위영,어영청에 딸린 곳간,남창이 있어 지방에서 올라온 곡물을 쌓아두었다.따라서 동대문시장이 무명을 파는 면포전,생선을 파는 어물전,종이를 파는 지전따위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일대는 지방에서 곡물을 싣고 올라온 사람들을 상대로 먹거리를 파는 음식시장으로 발달했다.그러다가 일본이 이땅을 강점한 뒤 청과,건어물,육류,생선,일용잡화 등을 파는 본격적인 소비시장이 됐고 이때부터 남대문시장으로 불리게 됐다.그러나 이 시장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을 겪은후 월남한 피난민들이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면서부터였다. 남대문시장은 밀집한 옷가게등 불에 약한 측면이 많아서 1953년,58년,68년,76년에 큰 불이 났고 올들어서도 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이 시장의 면적은 1만2천평쯤.점포는 8천6백여개이나 무허가 노점상까지 합치면 1만개가 넘는다.하루에 드나드는 사람은 35만명에서 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외국관광객도 하루평균 3천여명이 구경을 오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요즈음엔 헝가리,폴란드,루마니아등 동구상인들이 몰려들어 「국제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주식회사는 시장의 국제화와 현대화를 위해 오는 10일부터 12일까지 「개장 5백80돌기념 남대문시장대축제」를 펼친다.뜻깊은 행사이다.이 시장은 가장 한국적인 얼굴들이 모여 가장 한국적인 몸짓으로 살아가는 서민생활의 터전이다.국제화도 좋고 현대화도 좋지만 남대문시장의 존재의의는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빅토리아호 공해로 죽어간다/아프리카 최대규모… 한국면적의 3분의2

    ◎산업폐기물·농약으로 갈수록 오염 아프리카 최대의 호수 빅토리아호가 공해로 죽음의 호수가 되고 있다.지구상에서 북미의 슈피리어호 다음으로 큰 빅토리아호수는 면적이 6만9천4백85㎦로 남한 면적의 3분의 2 나되며 나일강의 수원지이다.호수가 육지와 면해있는 길이는 3천4백40㎞에 달하며 우간다·탄자니아·케냐등 3국에 연해있다.1858년 영국의 탐험가가 발견,당시 여왕의 이름을 붙인 이 호수는 잉어와 농어등의 보고로 이곳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들은 맨살로 떠서 유럽이나 아랍제국에 팔려 갔으나 최근 호수의 산소가 줄어 고기가 잡히지않아 연안 국가들의 어민들이 큰 타격을 받고았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빅토리아호수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는 4백여종이나 되었으며 호수주변 마을은 어업으로 번창했다.빅토리아호수가 균형을 잃고 죽음의 호수가 되기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이다.영국계의 공장과 농장이 들어서면서 유독산업폐기물및 비료·농약성분이 흘러들면서부터 빅토리아 호수는 처녀지의 평화로움을 잃게 됐다.1940년 이 되자 농약과 비료에포함된 질소와 인의 과다 유입은 호수의 플랑크톤 구조를 크게 악화시켰다.1960년이 되자 사태는 더욱 악화 되어 호수의 규조류 플랑크톤이 무수규산의 결핍으로 줄게 되었다.호수의 생태계가 파괴되자 다이어톰이라는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느게라는 물고기가 줄어들기시작,80년대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호수안의 산소가 부족하자 물고기들이 호수가로 몰려나와 한동안 고기 낚기는 좋았으나 호수 깊은 곳에서는 큰 고기들이 죽어가고 있었다.빅토리아호수가 죽음의 호수로 변하고 있는 이유는 기상이변도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기의 빅토리아호수는 호수표면에는 따뜻한 물과 그 밑으로는 찬물이 흘러 바람이 불면 호수위의 산소가 밑의 찬 물로 들어가게 되는데 최근의 이상고온은 물의 대류 현상이 일지않아 산소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호수 주변국가들은 죽어가는 호수를 살려 고기가 살수 있는 물을 만들자는 캠페인을 펴나 대부분 가난한 나라들이어서 자금을 마련할 길이없어 선진국들의 도움만 고대하고 있다.
  • 동서양 넘나든 화풍 고암 유작전

    ◎29일부터 호암갤러리… “이응로화백 5주기맞아 동백림사건 사실상 해금”/58∼89년 파리체류때 작품 104점 골라/수묵∼문자추상∼군상 기법변천 한눈에 사군자와 수묵추상,콜라주 그리고 문자추상등 동양화와 서양화의 독특한 접목을 시도한 고암 이응로화백이 타계한지도 벌써 5년째다. 고 이화백은 서구에서 동양화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킨 장본인으로 작품속에서 꾸준히 새로움을 갈구했던 실험성 짙은 작가. 그러나 예술세계가 다양했던만큼이나 개인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아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2년간의 옥살이와 국내 화랑들로부터의 배척,그리고 입국거부등 예술가로서의 명암을 함께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호암갤러리가 고암 5주기를 맞아 오는 29일부터 6월19일까지 마련하는 추모전시회는 이화백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다양한 작품세계를 연결하는 보기드문 자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화백의 실질적인 해금」의 의미로도 간주되는 이번 전시회는 소개되는 작품이 그의 프랑스체류 전기간을 함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58년 도불에서부터 89년 타계할때까지 30년간 남긴 작품중 미발표작 1백4점만을 골라 선보이는데 대부분 이화백이 생전에 공개하지 말 것을 당부했던 것들이다. 작품들은 현재 파리근교에 설립중인 이화백기념관 소유로 등록된만큼 판매가 불가능해 이번 자리는 오직 국내 관람객을 위한 「전시」차원에서 열리게 된다. 파리시대 결산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만큼 전시작품들은 파리시절 그가 집착한 모든 기법과 화풍을 파노라마처럼 형상화하고 있다. 이화백의 화풍은 기법에선 동서양화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잃지않으면서도 끈질기게 동양화의 기본 분위기를 잃지 않는게 특징이다. 사군자로 시작한 고암은 수묵추상쪽에 관심을 보이다가 58년 도불직후부터 동양의 회화관을 서양 현대미술에 접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우선 수묵추상에서 종이를 이용한 콜라주로 변화한 것으로 처음 나타나는데 이후 화면이 평면화되면서 기호가 독립돼 나타나는 문자추상 시리즈에 이어 붓과 수묵을 이용한 「군상」연작,그리고 초기의 동양화에 가까워진말기작품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전시 작품들은 이 가운데 전통수묵에서 수묵추상으로 전환한후 시도했던 부조적인 형상의 콜라주에서 중국의 갑골문자를 연상시키는 초기 문자추상과 여기서 더욱 도식화된 후기 문자추상,그리고 그후의 군상시리즈로 발전돼가는 그의 작품궤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합리적이고 온화한 「화의 정치가」/새 일총리 내정 하타 쓰토무

    ◎오자와와 신생당 창당… 정치 개혁/69년 입문한 9선… 내각요직 역임 「미스터 정치개혁」.일본의 하타 쓰토무(우전자)신임총리(58)의 별명이다.그만큼 개혁의지가 강한 정치지도자다. 그는 원래 가네마루 신(김환신)전자민당부총재가 총애하여 「난세의 오자와,평시의 하타」라고 했을 만큼 보수본류의 유망주로 간주되었으나,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만은 큰 열의를 보여 보수진영 사람치고는 별난 존재였다. 그는 자민당 선거제도조사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미스터 개혁」이란 별명을 얻는다.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정권 시절 정치개혁법안이 폐기되어 개혁이 좌절되자 당시 대장상(재무장관)을 그만두고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전자민당 간사장과 함께 「정치개혁의 기수」로서 보수 아성인 자민당을 탈당,신생당을 창당했다. 그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정권 탄생때도 총리후보로 거론됐었다.그러나 정치동지이자 오랜 친구인 오자와 신생당 대표간사의 호소카와 총리 옹립으로 부총리겸 외상에 취임했다.호소카와정권 시절 그는 외상직에 전념하며 당은 오자와에 맡겨 당수로서의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지난 20일 보도된 요미우리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61%가 이미 이때 그를 총리 적임자라고 응답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총리 진출에 대해서는 상당한 국민적 합의가 되어 있었다. 「하타 총리」의 출현은 바로 정치 스타의 출현을 뜻하기도 한다.정치인의 개성적 이미지가 별로 먹히지 않던 일본 정치무대가 바뀐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정치개혁,쌀시장개방등 중요한 국면에서 오자와가 「악역」을 맡는 바람에 「선인」의 이미지가 강하다.그러나 이미지 뿐만은 아니다.실제로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격이며,서민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정치가다.그는 지난 68년 정치에 입문하며 『평범한 시민감각을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훌륭한 정치』라고 강조했다.58년 성성대학을 졸업한 그는 10년간 버스회사에 근무하며 「역사산보 버스여행」등을 기획,직접 가이드역을 맡는등 평범한 샐러리맨을 경험했다. 그는 지난 69년 부친의 뒤를 이어 당선된 2세의원으로 9선이다.오자와,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전자민당 간사장등과 함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전총리의 직계.그는 농수산상 2회,대장상·외상등을 역임,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일본의 관료들은 「그렇게 좋은 각료는 없다」고 평가한다. 그의 온화한 성품과 조정능력을 배경으로하는 「화의 정치」가 심각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연립여당의 균열을 어느 정도 회복시킬지 주목된다.그의 외상시절 「하타외교」라고 불릴만한 독특한 컬러는 없었다.적도 없지만 그만큼 자기의 색깔도 특별히 드러내지 않는다는 평이다. 그는 미국상원의원들과 정기적으로 두나라 관계에 대해 의견교환을 하는등 워싱턴과의 대화 통로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한국에는 별로 지인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호소카와 전총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과거사를 솔직히 반성하여야 한다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 백제의 신화/무왕때부터 “왕은 용의 아들”(백제를 다시본다:11)

    ◎건국신화 없어 고구려·신라에 열등감/권위회복·단결위해 「용 설화」 만들어/능산리 금동용봉향로의 태자상 장식이 그 증거 우리나라 상고사중 한민족 중심인 단군조선,부여와 고구려에는 각기 고유하면서도 서로 맥이 통하는 신화가 있다.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인 설화에는 신화,전설과 민담이 포함된다.어떤 학자는 신화를 건국,씨족,마을과 무속의 네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한국의 신화에서는 신격을 타고난 인물이 범상을 벗어나 과업을 성취하거나 주인공의 원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출생­성장­혼인­즉위­죽음의 통과의례에 대한 과정을 다룬 건국신화나 시조신화를 으뜸으로 쳐왔다.왕권을 신성화하고 있는 한국의 건국신화는 신화에서 벗어나 역사화된 것으로,그리고 전설이 역사적 믿음을 이념으로 삼은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이다.신화는 민족적인 범위에서 전승된다고 한다.국가창건신화의 경우 국가가 바로 증거물에 해당하며,만일 신화에서 이와같은 증거물이 없다면 전승은 중지되거나 민담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 「삼국유사」권제1기이 제2에 의하면,왕검조선은 상제인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지상(신단수아래 신시)에 내려와 3.7일을 굴에서 지낸후 여자가 된 웅녀와 결혼해서 난 단군왕검이 아사달에서 나라를 엶으로써 생겨난다.그 해가 요제 즉위후 50년 경인년(실제는 정사)으로 기원전 2333년(동국통감에 의해 당고 무진년)에 해당한다.그는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일컫고 이어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1천5백년을 다스리다가,주 무왕(호왕) 기묘년(기원전 1122년)에 기자조선이 들어서매 장당경으로 옮기고 후일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다.그의 나이는 1천9백8세였다 한다.최근 그의 무덤(소위 단군릉)이 평양근교 강동군 대박산기슭에서 발굴되었다고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으나 무덤의 위치,연대,묘의 구조와 출토 유물 등에서 여러가지 모순점을 보인다. 북부여의 경우 해모수가 하늘에서 다섯마리의 용을 타고 내려옴으로써 나라가 이루어진다.그 해가 전한 선제 신작 3년으로 기원전 59년에 해당한다.그의 가계는 해부부(가엽원으로 도읍을 옮겨 동부여라함)­김왜(하늘이 점지한 개구리같은 어린이로,해부루의 수양아들이며 태자임)­대소에게로 세습된다.삼국유사 권1 동부여조에 의하면 이 나라는 왕망 15년,기원후 22년(고구려 3대 대무신왕5년)에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부여는 346년 연왕 모용황에게 망하고,실제 고구려에 투항하는 494년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왕(주몽,성은 고)의 개국설화에는 대개 세가지가 전한다.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그는 북부여의 건국자인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사이에 알로서 태어났는데(난생),그 해가 한 신작4년,기원전 58년이다.그리고 그는 해모수의 아들인 해부루와는 이모형제가 된다.그가 금와의 태자인 대소와 사이가 좋지 않아 졸본주(졸본부여,홀본 골성)로 가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규보의 「동국리상국집」동명왕편에 의하면,그 해가 한 원제 12년으로,기원전 37년(최근 북한 학자들은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277년으로 잡고 있으며 그 이전단계를 「구려」로 보고 있다)이며 그의 나이 21세 때이다.그리고 기원전 19년에는 그가 부여에 있을때 예씨부인으로부터 얻은 아들로서,자기집 일곱모의 소나무 기둥 아래(칠령칠곡의 소나무위에 선 기둥)에서 부러진 칼을 찾아 온 유이(기원전 19∼기원후 18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백제의 건국자는 주몽의 셋째 아들인 온조(기원전 18∼기원후 28년)이다.그는 아버지인 주몽을 찾아 부여에서 내려온 유리왕자(고구려의 제2대왕)존재에 신분의 위협을 느껴 한 성제 홍가 3년(기원전 18년) 형인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하북위례성(현 중랑천근처이며 온조왕 14년,기원전 5년에 옮긴 하남위례성은 강동구에 위치한 몽촌토성으로 추정됨)에 도읍을 정하고,형인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근거를 삼는다.이들 형제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의 아들로 되어 있으나,삼국사기 백제본기 별전(권23)에는 북부여의 둘째왕인 해부루의 서자인 우대의 아들로 나와 있다.이는 그의 어머니인 서소노가 처음 우태의 부인이었다가 나중 주몽에게 개가하기 때문이다. 이들 신화에서는조지훈과 이동환을 비롯한 이 관계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국조탄생설화,이주개국형,난생설화,개탁국가,중서자립국과 이모형제들이 공통된다.다시 말하여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는 같은 맥이나 한핏줄을 이루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최근 북한에서 이러한 맥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고 정당화시키는데 이용하고 있다.그러나 백제의 건국자인 온조는 천손인 해모수,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의 신화적인 요소와,알에서 태어난 주몽의 탄생과 같은 난생설화가 없이 처음부터 주몽­서소노­우태라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태어난다.그래서 백제에는 부여나 고구려다운 건국신화나 시조신화가 없다.이것이 백제가 어버이 나라인 고구려에 항상 열등의식을 지녀온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점은 온조왕 원년에 동명왕묘를 세운 것이나,백제 13대 근초고왕(346∼375년)이 371년 평양으로 쳐들어가 고구려 16대 고국원왕(331∼371년)을 사살하지만 평양을 백제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한성으로 되돌아 오는 점 등에서 이해된다. ○왕권 신성화 애써 그래서 백제의 왕실은 고구려왕실에 대한 열등감의 극복과 아울러 왕실의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애를 써왔다.그것이 전설적인 신화보다는 용이 왕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왕권의 탄생설화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 중국과 한국에서 용은 물(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경사회를 상징하는 왕이다.최근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뚜껑과 몸체에 표현된 도교와 불교적 문양과 용봉(또는 주작과 현무),연화문 가운데의 태자상의 장식등이 그러한 증거로 보여진다.이것은 후일 신화가 없어도 될 것 같은 고려나 조선도 「제왕운기」나 「용비어천가」를 만들어 건국의 정신적,이념적 틀을 꾸준히 보완해 나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농경사회의 수신… 왕권 상징/부여 절터에서 용무늬 벽돌 출토/용의 의미 백제는 신화나 설화의 자료가 사실상 희박하다.특히 건국신화는 없다.우리 신화의 원전격이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의 경우 고구려,신라,가락의 건국신화만을 다루었다.그러면서 신라 중심의 호국,인문신화에 치중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건국신화 말고는 무왕(?∼641년)과 관련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용이 등장하는 설화다.그 어머니가 서울 남쪽 못가에다 집을 짓고 살았는데,못 속의 용과 관계한 이후에 낳은 아들이 무왕이라는 것이다.용을 모티브로 한 숱한 「삼국유사」기록 가운데 하나인 이 무왕과 용에 대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용은 대체로 호교의 상징 내지는 호국의 상징으로 나타난다.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면 무왕은 호교와 호국 두 요소에 바로 연결된다.전북 익산 금마에 미륵사를 창건했고 부소산성과 마주하는 백마강 건너 울성산성 근처에 호국사찰 왕흥사를 완공시켰다.그는 금강 언덕의 바위에서 예불한 다음 배를 타고 건너가 법회에 친히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추풍령을 넘어 낙동강 유역까지 진출,신라를 위협했다.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 가장 막강한 군주로 문화를 꽃피우는 가운데 영토를 관리하는데도 주력했다.이렇게 보면위대하고 훌륭한 존재와 비교되는 용은 왕권이나 왕위를 상징할 수도 있다.그래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용과 무왕의 연관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연말 사비시대 백제의 고토인 부여 능산리 출토품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용은 왕권을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뚜렷한 신화가 없는 백제가 사비시대에 창조한 신화적 요소가 용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그렇다면 용에는 백제인들의 융합을 위한 신성성이 내포된다.이는 역사와 관련을 가지면서 민족의 단합을 꾀하는 신화구성 원칙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 주점:하(서울 6백년 만상:26)

    ◎“퇴폐대명사” 룸살롱 70년대 등장/맥주 도입후 충무로 비어 홀 한때 각광/요정·기생집,카페·호프집에 밀려 뒷전 서울의 샐러리맨들은 오늘도 퇴근길에 생맥주집에 들러 잔을 기울이며 그날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직장 상사와 선배를 안주삼아 씹기도(?)하고 높은 물가고,집세 걱정,자녀교육문제등을 화제로 매정한 「서울살이」를 한탄하기도 한다. 맥주는 1913년 일본에서 서울로 처음 수입됐다.수입된 양은 35만7천ℓ로 기록돼 있다.일본의 맥주는 「기린」과 「삿포로」2종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모두 병에 담고 궤짝에 24병씩 넣기는 오늘날과 마찬가지였다.1934년에는 소화기린 맥주회사와 조선맥주 회사가 동시에 영등포에 생겼다.그뒤 소화기린은 「동양맥주」가 돼 OB를 팔게 됐고,조선맥주는 「크라운」으로 변신하게 된다. 맥주는 당시 조선호텔에서도 팔았지만 거기는 정장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수가 없었다.충무로의 「비어 홀」은 여름철에 맥주꾼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날씨탓으로 저고리를 입기가 쉽지 않아 부담없이 찾을수 있기 때문이다.이 집에는 단골손님이 먹는 잔을 개인별로 맡았다가 임자가 오면 그 잔을 내놓았다.그 잔이라는 것이 유리 또는 도자기로 된 「쩍(조끼)」인데,주당들은 자기 잔이 그 집에 보관돼 있다는 것을 은근히 뽐냈다. 정도이래 우리나라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던 서울은 「멋과 향락」의 문화도 그 시대에 따라 늘 새로운 유행을 이끌어 왔다.기생이 호스티스로 불리게 된 오랜 세월 속에서 서울의 세태가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서울시내에 등록된 식음접객업소는 모두 9만6천1백40여개소에 이른다.이 가운데 유흥접객업소는 1천5백90개소로 전성기를 이루던 지난 80년대말에 비해 20%가량 줄어들었다. 이들 유흥업소를 업태별로 나누면 카바레·나이트클럽등 무도유흥업소가 2백30개소,룸살롱 6백50개소,요정 52개소,극장식 식당 30개소 등이다.이곳에 근무하는 종사자는 모두 6만여명으로 어림되고 있으며 이중 여자가 전체의 70%에 이른다. 일제때 권세 높은 벼슬아치와 졸부들이 드나들던 요정은 광복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장소로 애용돼 왔으며 이는 70년대초까지 이어져 왔다.당시 요정은 지금의 강남 룸살롱에 가까웠고 이곳에서는 기생의 역할이 매우 컸다. 5·16혁명때만 해도 고급 비밀요정이라는 것이 서울 도처에 있었다.종로구 청진동 235번지에 있던 장원은 가장 대표적인 비밀요정으로 손꼽혔다.단아한 분위기 속의 이 요정은 정·관·재계의 인사들이 단골로 드나들면서 한때는 요정정치와 밀실상담의 대명사로 불렸다.장원이 문을 연 것은 자유당 말기인 58년 9월.90년 8월 문을 닫기까지 30여년을 넘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근대사 이후 1세기 가깝게 화제를 뿌려온 기생집·요정은 어느덧 강남개발 붐을 타고 급증한 룸살롱·카페와 생맥주집등에 밀려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다. 50·60년대까지만 해도 명동·종로등 도심 일부에만 있던 이들 유흥업소들은 70년대이후 압구정동·방배동등 강남일대는 물론 신촌·혜화동등 대학가까지 파고들며 서울의 새로운 주점 풍속도를 그려가고 있다.
  • “왜왕 무는 백제의 무령왕”/원광대 소진철교수논문「상표문」서 주장

    ◎개로왕의 아들로 20년간 왜국 통치후 환국/무가 송 순제에 보낸 「상표문」 보면 사실 입증/“천황계라는 일측 통설은 근거없는 억지 주장” 백제 무령왕은 10대의 어린나이에 「무」라는 이름으로 위왕의 자리에 오른뒤 적어도 20년동안 위국을 다스렸으며 그뒤 환국해 백제왕에 즉위했다는 연구가 나왔다.소진철원광대교수(정치사상)는 이같은 연구결과를 15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한일문화교류기금주최로 열리는 「제30차 한일문화강좌」에서 발표한다. 소교수는 「김석명문을 통해서 본 백제 무령왕의 세계」라는 주제로 두편의 논문을 발표할 예정.그는 이가운데 「위왕 무의 상표문(478년)을 보고」에서 「왜왕 무」를 비롯한 5세기 「위오왕」이 천황계라는 일본측 「통설」을 『합리적인 근거나 이론의 제기가 없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전면 반박하고 『무가 송 순제에게 보낸 「상표문」으로 볼때 무는 무령왕』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측은 무를 「일본서기」에 나오는 웅략천황으로 비정한다.소교수는 그러나 「서기」에 웅략은 458년에 즉위했다고적혔으나 이 해는 무의 선왕인 흥의 즉위보다 앞서는등 일본측의 이른바 「통설」은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무가 직접 써 송 순제에게 478년 보낸 「상표문」은 위기에 처한 백제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것.소교수는 「상표문」을 쓴 사람은 백제의 불운이 곧 자신의 불운으로 이어지는 백제와의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고 추정했다.그는 이어 「상표문」에는 「자신의 부형이 갑자기 죽었고…이제 망부의 유지에 따라 적(고구려)의 강토를 무찌르겠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무렵 왜나 백제에서 있었던 왕과 왕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백제 개로왕의 비참한 최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의하면 475년 겨울 고구려대군의 7일간에 걸친 공세로 창례성이 무너지고 개로왕과 대비,그리고 왕자가 아차성에서 무참히 살해됐다.무가 「상표문」에서 말한 「아버지와 형의 죽음」은 바로 개로왕과 왕자의 비참한 최후를 말한다는 것.무는 바로 개로왕의 아들로 뒤에 무령왕이 된 사마군이라는 주장이다.「송서」에 의하면 송 순제는 478년에 무가 자청한 「안동대장군·위국왕」,20년후인 502년에는 양 무제가 「정동대장군·위국왕」이라는 관호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이는 무의 왜왕 재위가 적어도 20년이상 지속되었다는 증거로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각각 501년 및 502년으로 적힌 사마왕,즉 무령왕의 백제환국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 소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또 사마왕이 461년 「각라도」에서 탄생하고 502년 환국전까지 왜국에 있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도 사마왕이 위왕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소교수는 사마왕이 523년 서거한뒤 갖게 된 무령왕이라는 시호도 기골이 장대하고 성품이 인자해 붙여진 무라는 왜왕 재위시절의 이름과 521년 양제로부터 제수된 「녕동대장군·백제왕」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소교수는 이날 함께 발표한 「칠지도 명문의 새로운 해석」에서도 백제왕이 하사한 「칠지도」(일본 나라현 석상신궁소장)를 받은 후왕 「위왕 지」 역시 무를 비롯한 「위오왕」의 자손,즉 백제왕의후손으로 해석하고 있다.
  • 프로야구 개막(외언내언)

    1982년 3월27일 하오2시24분,서울 동대문구장.2만7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힘차게 던진 시구가 MBC 유승안포수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주심의 손이 번쩍 올라갔고 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한국의 프로야구가 출범의 고동을 울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한것은 1869년,일본은 1936년.미국은 한세기가 훨씬 넘었고 일본도 58년이나 됐다.한국은 12년.초창기에는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해서 지금은 제1의 인기프로스포츠로 자리를 굳혔다.지난해 4백87만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올해의 관중동원 목표는 5백만명. 올시즌의 한국프로야구가 9일 전국의 4개 구장에서 일제히 개막되어 6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한다.오는9월9일까지 총 5백4게임이 치러지는데 한팀당 경기수는 1백26게임.7월14일까지 상반기 리그를 끝내고 7월22일부터 후반기리그에 들어간다.미국 프로야구는 지난4일 개막됐고 일본은 한국과 같은날 플레이볼된다. 올시즌에도 어느팀이 우승하고 어느팀이 돌풍을 일으킬지,또 어느선수가 MVP(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차지하고 신인왕에 오를 루키는 과연 누구일지등이 관심의 표적.그뿐만이 아니다.「통산 6천호 홈런」 「1천5백 탈삼진」 「8백 타점」의 주인공들이 탄생,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또 올해는 미국프로야구 LA다저스팀에 스카우트된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프로스포츠는 경기만 치른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다.완벽한 팬서비스,현대적인 시설,선수들의 파인플레이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프로야구의 현주소는 어떤가.경기내용은 제쳐놓고라도 팬서비스가 부실하고 시설도 보잘것 없다.출범 13년째를 맞고 있는 한국프로야구가 자성하고 개선해야할 대목들이다.
  • 쓸만한 유전 찾아내기 잇따라 실패(현장/세계경제)

    ◎“국제유가 멀지않아 오름세로”/미 메이저,아·남미 탐사서 돈만 날려/「북해러시」 이후 대형유전 개발 전무/“매장량 77%” OPEC위력 부활 불보듯 장기 하락국면에 묶여있는 국제 석유가가 유전탐사의 잦은 「실패」에 편승,상승반전 한다는 예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5년내 최저수준 세계 각지의 탐사를 통해 쓸만하다고 판정되는 새 유전이 갈수록 드물어짐에 따라 국제원유의 수급상황이 지금과는 아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현재 1배럴당 12∼14달러대로 5년래 최저수준인 유가는 반대로 인상가도를 달리게 되며 따라서 빛바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위세와 영화가 부활된다는 전망이다. OPEC가입 13개 산유국들은 유가가 10달러 아래로까지 폭락할 가능성이 대두된 가운데서도 지난 주말의 각료회의에서 현 2천4백50만배럴인 1일 총 산유량을 감축하는데 실패했다.비OPEC분을 포함해 날마다 6천만배럴씩 뿜어올려지는 원유중 1백만배럴 이상이 과잉 공급량이다.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유가의 추가 하락은 뻔해 보인다.그러나 유전탐사의 실패율 증가,즉 『새 유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면 유가의 인하가 아니라 인상이 필연적 대세로 여겨진다. 미국 석유회사 모빌(93년 매출액 6백억달러)의 최고경영층은 2년전 페루에서 흔히 「코끼리」란 은어로 통하는 초대형 유전 후보지를 물색해 냈다.환경주의자들과 기나긴 실랑이를 벌이고 궁벽한 오지에 거대한 탐사장비를 이동시키는등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결국 「헛」유정으로 밝혀지고 말았다. ○「코끼리급」 기대난 『유전탐사에 관한 고전적인 예』라고 루치오 노토 모빌회장은 회고한다. 『3천5백만달러를 쏟아넣은 다음에야 쓸모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실패담들은 석유업계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다.석유회사들이 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지에 돈과 공을 다들여 시추공을 수다하게 뚫었으나 스트라이크는 드물었다.미국의 아르코사(매출액 2백억달러)는 93년 한햇동안 알래스카에서만 13개의 유정을 시추하는데 1억6천3백만달러를 썼다.결과는 미약한 발굴획득에 그쳤다.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은 콜롬비아에 코끼리급 후보지를 찾아내 흥분했지만 그 유전도 금방 바닥이 나고 말았다.대형 유전은 지난 60년대 말경 유럽대륙 위의 북해에서 발견된 후 감감 무소식이다. 『그후에도 많은 유전이 발견되긴 했으나 모두 대어급에서 벗어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추정 매장량 1백30억배럴의 북해유전이나 1백억배럴 상당의 알래스카 프루도 베이 유전에는 아주 못 미쳤다. 이에따라 사업상 유전탐사 활동을 중단할수가 없는 석유회사들은 그들의 비상한 노력을 이미 대량으로 석유가 발굴된 북해등 기존지역으로 되돌렸다.또 구소련 국가들과 중국·베트남·베네수엘라 등에 대형유전이 파묻혀 있으리라는 오래된 추정이 새삼스럽게 부각되고있다. 새롭게 발굴되는 유전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최근의 상황은 결국 유가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원유의 과잉생산이 유가를 하락 일변도로 몰아가고 OPEC의 가격결정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가운데서도 많은 국가들의 경제가 되살아나 세계는 또다시 석유에 목말라 하는 모습을 노출한다.그런데 OPEC만이수요 증가에 답할 거대 매장량을 품에 안고있다. ○한때 비중 30% 급락 알래스카와 북해유전에서 석유가 넘쳐나온 80년대에 OPEC는 수세에 몰려 50%이상이던 전세계 산유량 비중이 85년 30%까지 급락했다.그 이후 OPEC의 비중은 43%에 고정되어 있는데,새 유전의 추가가 어려워진 시점에서 최신 추정치로 전세계 석유매장량의 77%인 7천7백억배럴이 OPEC 회원국 영토안에 파묻혀 있는 사실은 주목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OPEC는 현재 산유량의 10%인 2백50만배럴 정도는 당장이라도 더 뿜어올릴 수 있다.반면 다른 대형유전지역의 생산량은 감소세에 놓여있다.미국의 국내 산유 능력은 계속 떨어져 지난해에는 58년이후 최저 수준인 1일 6백90만배럴로 격감했다. 『근본적인 여건이 OPEC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석유 수요는 지난 4년간 엇비슷했지만 올들어 경기회복이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올해 석유 수요는 3.5∼4% 증가할 전망인데 2%만 증가하더라도 1백50만배럴이 날마다 추가 생산되어야 한다. ○북해일대 눈돌려 이처럼 과잉분을 말끔히 소화할 가능성은 커진 반면 석유회사들의 탐사활동이 북해등 기존지역으로 이동됨에 따라 OPEC의 산유비중을 잘라먹을 만큼 거대한 신규 유전이 발견될 확률은 한층 적어졌다.81년부터 87년사이에 미국의 대형 석유업체 18개사가 시추장소에서 손을 털고 철수했다.엑손사(매출액 1천1백억달러)는 80년대에 소말리아·말리·탄자니아·모잠비크·차드·나이지리아·모로코 등지에서 광범위한 탐사활동을 펼쳤다가 차드·나이지리아만 빼고 모두 철수했다.로열 더치 쉘그룹도 다마가스카르와 과테말라에서 북해로 옮겼다. 뿐만 아니라 성공률이 저조한 유전탐사에 대한 투자 자체가 소극화 돼 80년대 1백50억달러에 이르렀던 미대형 석유업체들의 연 탐사경비가 60억달러로 급감했다.이 또한 유가의 상승반전을 예측케 하는 현상인 것이다.
  • 「상공의 날」 포상자 공적사항

    ◎급탑/김준형 (주)행남사 회장/국내 도자기기술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려 지난 42년 우리나라 첫 도자기 업체인 행남사를 설립,국내 도자기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도자기 업계의 산 증인.전통 사기그릇에서 본 차이나,세라믹스 자기,초정 자기 등 도자기 전문 생산체제를 갖췄다. 지난 86년에는 업계 처음으로 기술연구소를 세워 매년 매출액의 5%를 연구개발비로 쏟을 만큼 기술개발에 정성을 다했다.38건의 소재 및 도자기 기술을 개발했으며 실용신안 및 의장등록도 11건이나 된다.93년 현재 42개 품목의 우수 디자인 마크를 획득했다. 제품의 고급화에 전력,도자기의 여왕이라는 본 차이나를 자체 개발한 뒤 최고의 강도와 백색 투광도를 자랑하는 「울트라 파인」이란 초정 자기를 선보여 격찬을 받았다.프랑스 베어나도사 등과 함께 태국 왕실에 전용 식기를 공급하고 있다.베네수엘라에 6백만달러,인도에 4백만달러의 플랜트수출도 했다.5분 일찍 일하고 5분 늦게 퇴근하는 등 5.5 운동을 전개,20% 이상 생산성을 높였다. ◎은탑/이순국 온양팔프 회장/법정관리기업 인수 정상화 지난 77년 온양팔프를 설립,83년에 기업을 공개했다.경영 부실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신호제지,대화제지,일성제지 등을 조기 정상화시켰다. 지난 87년 부설연구소를 세워 일본에서 수입되던 난연벽지,과실재배용지 등 고부가가치상품을 잇따라 개발,연간 3백40억원의 수입대체효과를 올렸다.개인 주식 30억원을 출연,종업원 집단지주제를 실시하고 자유복장제 등을 도입해 사내화합을 다졌다.부채비율 1백31%,차입금 의존도 38% 등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매년 30억원 이상의 당기 순이익을 내고 있다. ◎동탑/장주일 삼성전자 부사장/통신산업발전 견인차 역할 지난 58년 체신부에 투신,35년간 국가기간 통신망 발전에 이바지해 통신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견인차역할을 했다.영동전신전화국장 재직시 전자식 교환기를 첫 설치했으며 삼성전자로 옮긴 뒤 지난 80년에는 전자교환기의 국산화 개발에 성공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용 전화기,최소형 무선전화기 등을 잇따라 개발했다.
  • 원자력법 실정맞게 고친다/과기처/개발법·안전법 등 6개법 분리

    과학기술처는 현재의 방대한 원자력법을 6개 별도의 법으로 분리하는 한편 원자력 기술기준을 바꾸고 원자력위원회를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원자력법을 개정키로 했다. 과기처는 최근 관계자회의를 열고 원자력법령정비 추진팀(팀장 홍재희원자력실장)을 구성키로 하는 한편 원자력법을 원자력기본법·원자력이용개발촉진법·원자력안전법·방사성 방호에 관한 법률 등 별도의 법을 마련키로 하고 개정작업에 들어갔다. 과기처 관계자는 미국의 기술기준을 준용하고 있는 원자력법을 우리 체제에 맞는 법으로 만들기 위해 법령개정 작업을 추진해왔다며 이미 고시된 29개중 중·저준위 방사선 폐기물 처분시설의 설계기준과 생산업 허가와 관련한 기술적능력 및 품질보증 계획에 대한 기준등 중요한 부분등을 법 개정에 반영해 원자력법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기처는 이밖에 원자력법에 미비한 부분인 산업기술기준에 대해 원자력학회등에 의뢰해 개발한 기준을 96년쯤에 적용할 수있도록 포함시킬 계획이다. 현재의 원자력법은 지난 1958년3월 제정된이래지난 86년까지 10차례 개정됐다.
  • 신상옥/2월의 영화감독에 선정

    ◎영상자료원 「한국감독 집중탐구의 해」 행사 일정 마련/지옥화·내시 등 9편상영… 「작가세계」 조명 한국영상자료원(이사장 최무룡)이 올해를 「한국영화감독 집중탐구의 해」로 결정,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해온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한다. 이는 최근 영화 애호가들은 물론 관객들도 배우보다는 감독을 보고 볼 영화를 선정하는등 그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또한 감독은 각본대로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자유로운 창작정신을 가진 「작가」라는 「작가주의」 입장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진작부터 「작가주의」가 표방되고 특정 감독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좋은영화보기 운동을 펼쳐온 영상자료원에서도 지금까지는 시대별,주제별,장르별로 영화를 상영해왔을 뿐이다. 첫 테이프를 끊는 2월은 60∼70년대 우리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신상옥감독 주간이다.3월에는 유현목,4월 김수용,5월 이만희,6월 임권택,7월 이장호감독의영화가 상영된다.또 8월에는 김호선 배창호,9월 정지영 장길수,10월 박철수 곽지균,11월 장선우 박광수 신승수,12월 이명세 강우석 김의석 박종원 곽재용감독주간이 마련되는등 중반기부터는 주로 70년대 이후에 활동해온 감독들의 작품이 상영된다. 신감독은 52년 「악녀」로 데뷔한 뒤 신상옥 프로덕션을 설립,사극·전쟁영화·코미디·멜로물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로 흥행에 성공하는등 우리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의 한사람으로 꼽혀왔다. 신감독주간에 상영될 작품과 일정은 ▲2일 「지옥화」(58년작 김학 최은희) ▲3일 「동심초」(59년 최은희 김진규) ▲4일 「성춘향」(61년 최은희 김진규) ▲16일 「연산군」(61년 신영균 이민자) ▲17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61년 김진규 최은희) ▲18일 「벙어리 삼룡이」 (64년 김진규 최은희) ▲23일 「꿈」 (64년 신영균 김혜정) ▲24일 「여자의 일생」(68년 최은희 남궁원) ▲25일 「내시」(68년 신성일 윤정희).상영시간은 하오4시이며 2만원의 연회비를 내면 연중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문의 521­3147∼9.
  • 공개행정 실천 본격화/정부,외교문서 첫 공개 안팎

    ◎국익 침해 등 우려 40여건은 제외/한·일 국교회담 문건은 내년 공개 지난 48년 정부수립이후 59년까지 우리 정부가 만들거나 접수한 외교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유럽등 선진국들은 이미 19세기부터 일정 시점이 지난 외교문서를 공개해왔다.「외교백서」「외교청서」등의 이름으로 강대국의 외교문서가 집대성 되어 발간되면 세계적인 관심을 끌곤 한다.이웃 일본은 지난 75년부터 외교문서를 공개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80년대 들어 외교문서를 공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으나 워낙 보안을 중시하던 시절이라 시행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공개행정을 천명한 문민정부가 출범한 뒤 외교문서의 공개를 위한 법령제정에 착수,지난해 7월 「외교문서보존및 공개에 관한 규칙」이 제정·발효됐다. 이 규칙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는 공개하도록 규정했다.때문에 올해는 64년까지의 문서가 공개되어야 하나 한꺼번에 공개작업을 하려니 양이 방대해 1차로 59년까지의 문서를 공개하기로 했다.나머지 60년에서 64년까지의 외교문서는 연말쯤 공개할 방침이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의 양은 모두 4백25권의 책자로 정리되었다.한권마다 2백쪽 남짓 되므로 모두 9천쪽에 이르는 분량이다.50년대 외교문서는 전쟁통에 유실된 것이 많았으며 연말쯤 공개예정인 60∼64년분은 8백권에 이른다는 것이다. 공개된 문서 가운데 이제까지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뒤엎을만한 내용은 없다고 외무부측은 밝혔다. 외교문서 공개규칙에 의해 국가이익 혹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는 40여건은 공개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또 일반의 관심이 큰 한국·일본 국교수립회담(52∼65년)관련 문건은 일본정부와의 사전협의를 거쳐 내년에 공개할 방침이다. 그렇다고 이번 외교문서공개의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한미상호방위조약,제네바정치회담등 민감한 정치사건의 결과는 알려졌지만 그 과정까지 자세히 전해주는 문건은 없었다.우리가 맺은 조약,연관된 국제적 사건을 둘러싸고 정상 사이에 오간 서한및 주재관에 대한 훈령등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학계·언론계 뿐 아니라 외교사에관심있는 일반에게는 이번에 공개된 자료가 외교막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에 틀림없다.게다가 비공개로 분류된 문서라 하더라도 학술연구등 공익을 목적으로 열람을 원한다면 외교문서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허용될 수 있다. 공개 외교문서에 대한 일반열람은 31일부터 가능하다.서울 서초동에 있는 외교안보연구원 외교문서열람실을 방문,소정의 수수료(대체로 한쪽에 1백원)만 내면 마이크로필름판독기를 통해 원하는 외교문서를 열람·복사할 수 있다. 공개된 주요 외교문서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승만대통령의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앞 친서(56년)및 비망록(57년) ▲제네바정치회담(54년) ▲백림사태조서(58년)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일람(51∼59년) ▲인도에 송환된 반공포로 관계철(53∼57년) ▲한국전쟁 피납치인명부관계(54∼59년) ▲유엔총회 한국문제결의문(47∼58년) ▲국군통수권이양에 관한 이승만대통령의 각서및 맥아더유엔군총사령관의 회한(50년) ▲한미간 상호방위조약(54년)▲한미간 재정및 재산에 관한 제협정(50년) ▲한미간 사법공조문제(51년) ▲한일어업협정안(52∼56년) ▲유엔군사령부의 해상방위봉쇄선(클라크선)설정및 폐지(53년) ▲동독및 헝가리 북한 유학생의 독일 망명처리문제(57∼59년)
  • 신임 주미 러대사에 보론초프 유엔 대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신임 주미러시아대사로 유리 보론초프(65)현유엔대사가 내정됐다고 이즈베스티야지가 14일 보도했다. 주미대사직은 블라디미르 무린대사가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하원에 진출,현재 공석중이다. 보론초프대사는 55∼58년 주유엔,66∼77년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한 직업외교관으로 주인도·프랑스 대사를 거쳐 90년 유엔대표부 대사로 부임했다.
  • 「갑술경장」의 기운/안공혁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굄돌)

    으레 원단에는 지난해의 다사다난을 거울삼아 저마다의 소망을 담은 일년지계를 호기있게 세우곤 한다.하지만 지척의 시계조차 트이지 않는 이 시대의 불확실성 앞에서는 마음가짐만 사뭇 신중해질 뿐,거친 밑그림이나마 선뜻 그려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이럴 때는 온고지신의 혜안을 부릅뜨고 금세기의 개띠 해에 있었던 여러 시행착오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넘어가는 것도 상계일 수 있겠다. 당장 금세기 첫 개띠 해인 1910년에 경술국치라는 쓰라린 상처를 더듬게 된다.더욱이 UR협상안 발효를 단 일년 앞둔 지금,선진열강의 치열한 개국공세를 맞아 당시의 상황이 재현되는듯 하여 격세지감이 무색하기만 하다.1934년 갑술년에는 전 인류를 공포와 도탄에 빠트렸던 2차세계대전의 주범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했으며,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맞은 1946년 병술년에는 그 자신이 개띠인 영국의 명재상 윈스턴 처칠이 소련권과 서방세계 사이에 「철의 장막」이 가로막혀 있다는 연설을 통해 지란했던 냉전시대의 도래를 세계만방에 알렸다. 이어 1958년 무술년에주한미군의 핵무기도입 발표 공개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위기를 고조시키는등 금세기 중반까지 개띠 해의 세계는 대립과 반목의 역사로 얼룩져 있다.여기에 1970년 경술년에 이 땅에 새 농촌을 건설하겠다는 농촌근대화 10개년계획이 발표된 것과 아울러,1982년 임술년에는 미국산 쌀 도입에 따른 뇌물수수설에 연루되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일도 있었다. 물론 개띠 해라고 좋은 일이 없었을까만은,주로 암울했던 과거의 궤적을 좇아봄으로써 새해의 액땜을 대신하고자 한다.부디 이번 개띠해만큼은 지난날처럼 위로부터 강요되는 일방적 개혁이 아니라,밑으로부터의 자생적 신바람이 위로 부터의 건강한 개혁 의지와 보기좋게 어우러져 진정한 「갑술경장」의 기운이 온 나라를 휩쓰는 호시절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보탠다.
  • 수돗물 불신… 환경정책 대전환 예고/낙동강물 발암물질 검출 파문

    ◎국내 정수시설론 처리못해/공단폐수 단속 소홀도 한몫 낙동강오염사고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낙동강 수계의 경북 논공·경남 칠서등 4개 정수장에서 발암성물질인 벤젠화합물과 유해물질인 톨루엔이 검출됨으로써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환경처는 현재의 분석상황으로는 인체에 유해한 수준에는 못미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들 물질을 대량흡입하면 백혈병등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온다. 또 벤젠등과 같은 유독물질은 활성탄을 이용해 흡착처리하거나 오존으로 처리하는 수 밖에 없으나 우리나라 정수장은 이같은 고도정수처리시설이 없는 실정이어서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 물질이 검출됨으로써 이번 낙동강 오염사고는 공장폐수등 오염배출업소의 무단방류에 의해 빚어졌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검출된 유독물질은 염색·합성수지및 제약·화학용제등 주로 공업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물질이다. 낙동강이 갈수기에 오염되는 것은 대구등 상류지역에 비색염색공단등 오염유발업소들이 있기 때문이다.공해배출업소들에있어 신년 연휴는 폐수등을 몰래 버릴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다.하수처리장등 환경기초시설근무자들이 연휴 분위기에 젖어 근무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또 올해의 경우 배출업소 지도·단속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들이 사정분위기에 얼어붙어 몸사리기에만 급급,지도·단속을 거의 하지 않은 것도 무단방류를 부채질한 요인으로 풀이된다.겨울철 낙동강 유속은 초당 0.1m로 대구에서 흘려보낸 폐수가 부산까지 도달하는데는 6일가량 걸린다. 국립환경연구원이 정수장에서 물을 채수한 시기는 11일로 유량·속도를 감안하면 무단방출시기는 6일전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정초 연휴를 틈타 업소들이 지도·단속의 눈길이 느슨한 틈을 타 무단방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가 말하는 오염실태/벤젠/백혈병·암 유발/톨루엔/위궤양 생길수도/“수은·카드뮴 함유 가능성도 크다” 낙동강 수돗물에서 벤젠·톨루엔등의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정부의 발표를 접한 국내 환경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 벤젠과 톨루엔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환각성 유독물로 분류돼 있다. 벤젠은 제약·화학·염색공장에서 용제로 쓰이는 휘발성이 강한 물질로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프고 메스꺼움을 느끼는 부작용이 있으며 다량 흡입하면 백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여자의 경우 생리불순과 기형아를 낳을 가능성도 크다.톨루엔은 본드냄새를 풍기는 환각성 유독물질로 제약회사나 화학공장에서 원료를 녹이는 용제로 쓰이며,흡입하면 현기증과 두통을 일으킨다. 한양대의대 김윤신교수(환경의학)는 『벤젠이나 톨루엔등이 들어 있는 물을 마셨다고해서 당장 급성중독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암을 유발하는등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올수 있다』고 경고했다.김교수는 또 『수돗물에서 벤젠·톨루엔이 나온 것은 그 오염원이 산업체의 폐수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며 이 경우에 수은이나 카드뮴등의 중금속도 함유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일본에서는 지난 58년 수은이 함유된 수돗물을 마신 사람들에게서 뼈가 구부러지고 2세 기형아가 나오는 이른바 「미나마타병」환자가 나온뒤 지금까지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등 이 병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또 카드뮴이 든 음용수를 마신 경우 온 몸이 이유없이 쑤시고 뼈가 삭는등의 증세를 보이는 「이타이이타이병」이 유발되기도 한다. 김교수는 『수은이나 카드뮴이 함유된 물은 끓여서 먹는다고 이들 물질이 분해되는 것이 아니다』며 낙동강수돗물을 음용수로 이용하려면 더 많은 역학조사를 시행,수은이나 카드뮴의 함유여부를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상은박사(환경공학)는 『벤젠이나 톨루엔은 그 자체로는 카드뮴이나 수은과는 달리 체내에 축적돼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으나 수돗물의 소독과정에서 주입되는 염소와 결합하면 소량으로도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 한국고대사 2천점 그림으로 엮어/김산호저 「대쥬신제국사」 화제

    ◎“배달민족이 6천여년전 동아시아 지배”/민족사흐름 신·불·말쥬신계로 세갈래 분석/3개어로 번역… 도쿄세계도서전시회 출품 한국고대사를 2천여점의 동양화·유화등으로 그려서 만화처럼 엮어낸 책이 나왔다.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초까지 공상과학만화 「라이파이」로 큰 인기를 끈 김산호씨(54)가 최근 펴낸 「대쥬신제국사(대조선제국사)」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아주 독특한 작품이다(동아출판사 간). 우선 이 책에 서술된 우리민족의 고대사는 그동안 배워온 것과는 달리 중국·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지역을 지배한 위대한 역사로 표현됐다. 지은이 김씨는 우리 배달민족이 지금으로부터 6천여년전 중국의 산동반도이북과 만주·한반도를 포함한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동이주이라고 불리던 우리민족은 큰활(대궁)을 쓰는 기마민족으로 대단군을 천자로 모셔 종교·정치적으로 통일됐다. 따라서 기동력과 단합된 힘으로 농경민족인 중국인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고 풀이한다. 김씨는 우리민족사의 흐름을 세갈래로 본다. 신쥬신(진조선)계는 숙신∼말갈∼대진국(발해)∼여진∼김나라로 이어져내려왔으며 불쥬신(변조선)계는 동호∼거란∼요나라로 계승돼 북중국을 지배했다. 또 말쥬신(마조선)계는 가우리(고구려)∼후금(주신)∼대청제국을 잇따라 건국했으며 그 일부가 한반도에서 백제·신라를,다른 일부는 일본열도로 건너가 일본을 각각 건설했다는 것. 김씨는「쥬신」이란 우리민족을 일컫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조선」 「숙신」 「주신」등이라고 보고 있다. 이같은 파격적인 고대사해석 말고도 이 책은 그 형태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방식을 택했다. 만화나 극화처럼 그림으로 줄거리를 이어가되 장면장면을 만화적인 선이 아닌 유화·동양화등 정통회화로 구성했다. 따라서 장면 하나하나가 기록화라고 할 수 있을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맛을 준다. 「대쥬신제국사」는 모두 3권으로 구성됐으며 책의 특성을 살리느라 가로 30.5㎝,세로 25㎝의 큰 판형에 종이도 아트지를 사용했다. 김씨와 출판사측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출판용어로는 이처럼 새로운 형태의 책을 부를만한 게 없어 고심 끝에 「회화극본」이라는 새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 이 책은 오는 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제2회 「도쿄세계도서전시회」에 초청받아 출품될 예정이며 현재 영어·일어·중국어등 3개 국어로 번역되고 있다. □저자 김산호씨(인터뷰) ◎“소수민족 설움 맛본뒤 고대사 관심”/작품구상한 후 7년만에 완성 김산호씨는 18세 때인 지난 58년 국내 최초의 공상과학만화인 「라이파이」를 발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만화가다.67년 미국으로 건너가 「샤이언 키드」 「유령이야기」 「여자흡혈귀」시리즈등 3백여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재미 만화가로서 한국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국생활을 하면서 소수민족으로서 많은 설움을 당했다.지난 82년 일시 귀국했다가 김성호씨의 논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우연히 읽어보고는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신채호선생의 「조선상고사」,일본역사책인 「일본서기」등 한국·중국·일본의 역사서 80여권을 공부했다.만주지방도 여러차례 답사했다. ­작품을 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 ▲작품을 구상한 뒤 작업을 하는 데만 7년이 걸렸다.다행히 대학에서 동양화·서양화를 모두 배워 장면의 성격에 따라 유화·동양화·일본화등의 기법을 두루 사용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 책이 영어·일어·중국어로 번역돼 각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 이석용씨 손해보험협회장(새의자)

    ◎“자동차 보험료율 적정선으로 조정” 『자동차 보험요율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소비자를 위해서도 요율을 적정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지요』 지난 74년 손해보험협회장이 상근제로 된 이후 최근 처음으로 보험업계 출신 회장이 된 이석용씨(61)의 포부이다. 『자동차 보험료 문제는 합리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올바른 논리로 정부를 설득시킬 생각입니다.개혁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 아닙니까.문민정부가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자동차 보험료 현실화 문제도 잘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체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 부문에서 1조5천억원의 적자가 쌓여있을 정도로 자동차 보험문제로 시달리고 있다.그동안 경제기획원 등에서 자동차 보험료 인상을 반대한데다 자동차 사고에 따른 보험금 지급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 보험사들도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면 생명보험사처럼 장기 보험상품을 개발해야 합니다.장기보험 상품개발을 위해 업계 공동노력이 물론 필요하지요』 손해보험과 생명보험 등 보험업계에서만 외길 35년을 보낸순수보험인의 처방이다. 보험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므로 보험사들은 사람을 양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외야에서는 우수한 판매사원을,내야에서는 우수한 관리자를 양성하는 등 인재육성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건의,반영되도록 협회가 주관하는 정책 토론회를 활성화하는데 힘쓰겠숩니다.인재양성,상품다양화,서비스개선에 노력하면 업계의 앞날도 밝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업계에서는 평사원으로 출발,평생을 바친 보험인이기에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회장은 동국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지난 58년 8월 보험월보 편집을 맡으면서 보험과 인연을 맺었다.60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 입사한뒤 삼성생명 전무,삼성화재(구 안국화재) 전무,한국자동차보험 부사장,동부애트나생명 사장,태평양생명 사장을 거쳤다.김정옥여사(60)와의 사이에 3남1녀를 두고 있으며 골프(핸디10)와 바둑을 즐긴다.
  • 북한 한의학/“남한보다 수준 높다”

    ◎경희대 안덕균교수,과총토론서 발표/동서의학 잡목,장단점 상호보완/동의과학원 설립·용어도 한글화 남한의 한의학은 북한보다 학문적인 연구와 임상·약재관리·교과서등에서 뒤져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한의학연구개발을위한 국가적인 정책적 배려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같은 주장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성락정)주최로 8일 서울 타워호텔에서 열린 「북한의 과학기술과 교류정책」토론회에서 경희대 한의과대학 안덕균교수가 제기해 주목을 받고있다. 안교수는 「남북한 한의학의 비교연구」발표에서 북한에서는 동의학을 민족주체의학 승화시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치료의학으로 개발하기 위해 동의과학원을 설립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를하며 용어의 완전 한글화,고전의 국역으로 한의서의 완전한 출판과 약재관리의 중앙집중화를 통한 품질관리를 엄격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에는 59년 개성의학전문학교에 동의과가 처음 신설된 이후 6개의 동의학부에서 매년 5백명의 한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일반의사들이 한의학을 학설이 정립되지 않은 의학으로 받아들이면서 이해가 없고 상호 반목하는데 비해 북한에서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접목시켜 양쪽의 장단점을 상호보완한 의학이 발전되고 있다』고 비교했다. 한국에는 내년에 국립한의학연구소가 설립될 예정이나 북한은 지난58년 동의학연구소를 두고 고전번역과 임상연구·약제개발등을 추진하고 있다.한국에서는 전체인구의 6%만이 한방진료를 이용하고 있으나 북한에는 이·면단위까지 전국에 4천8백51개의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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