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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군관장 항로관제업무 94년부터 교통부로 이관

    대한민국 관할권(통칭 「대구비행정보구역」)내에서 운항되는 모든 민간·군용항공기에 대한 중앙항로관제업무가 94년1월1일부터 국방부에서 교통부로 넘겨진다. 중앙항로관제국(ARTCC)은 최초 미공군이 운영하다 58년에 한국공군이 인수,지금까지 운영해온 대한민국 관할권내 범위안의 상공을 비행하는 모든 항공기에 대한 공중항로교통관제및 비행제공업무등을 수행하는 국내 유일기관으로 지난 77년 국방­교통부간 이관에 합의한 바 있다. 이에따라 국방부와 교통부는 10일 업무이관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본격적 실무작업에 들어갔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미 77년에 이관을 합의한 바 있으나 그간 교통부 정원과 예산확보 곤란 등으로 이관시기를 여러차례 연기해오다 이번에야 성사됐다』고 설명한뒤 『ARTCC의 이관으로 현재 세계민항기구(ICAO)가맹국 대부분이 민간운영하는 업무를 한국은 군에서 관장한다는 국제적 인식을 불식시킴으로써 한국의 항공 관련 국제발언권 강화는 물론 동북아 항공수송 요충지 역할을 하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작업이 추진되는 동안 국방부는 교통부 운영요원에 대한 교육·기술지원은 물론 운영장비 전체의 무상관리전환및 대지·건물등을 무상대여한다.
  • GM경영진 물갈이… 미 자동차업계 파문

    ◎감량경영 실패… 2년간 1백20억불 적자/“스템펠회장 강제퇴진” 이사회 전격 표결/「빅3」 모두 일제차에 고전… 아이아코카도 연말 사임 미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자동차산업의 신화는 허물어지고 마는가.미제 자동차는 끝내 일제의 벽을 넘을 수 없는가. 세계 최대의 자동차메이커인 제네럴 모터스(GM)사가 최근 로버트 스템펠회장을 퇴진시킨데 이어 후임에 프록터 앤드 갬블사의 전회장인 존 스메일씨를 선임,경영진을 대폭 교체한데 따라 GM과 포드·크라이슬러등 이른바 「빅3」을 중심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스템펠회장은 지난 58년 GM에 입사,90년8월 32년만에 최고경영자인 회장에 오른 엔지니어 출신.GM이 종래의 금융통 대신 폰티악이나 시보레공장에서 직접 설계작업에 참여했던 엔지니어 출신을 회장으로 선임한 것은 보다 멋진 차를 만들어 89년 35%까지 떨어진 시장점유율을 80년대 중반의 45%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결의의 표명이었다. ○하루 1천만불 손실 그는 취임후 생산보다 기업매수 등에 한눈을팔아온 종전의 경영방식을 지양하고 좋은차 만들기에 전념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미국 시장에서 활개치는 일본자동차들과의 한판싸움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기침체속에서 그의 의욕이 곧바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다.지난해 12월 스템펠회장은 오는 95년까지 북미주 전역 1백25개 공장 가운데 21개 곳을 폐쇄하고 전의 30%인 7만4천명의 직원을 감원한다는 내용의 대대적인 개편계획을 발표했다.이 파격적인 군살빼기 선언은 매일 1천6백만달러씩의 손실을 보는 GM으로서는 불가피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GM의 조직이 공룡처럼 거대화된데 비해 생산성에서는 일본은 물론 빅3 가운데서도 최하위로 뒤떨어져 있다.완성차의 부실률 또한 일본차보다 크게 높아 판매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감량경영의 대수술만으로 GM을 회생시키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던 것도 사실이다.GM사의 구조적인 비능률과 외부 경제여건의 악화로 빈사상태에 빠진 회사를 되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감량선언은 결과적으로 스템펠의 사임을 재촉하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노조측의 강력한 반발로 심각한 노사갈등이 일어나 오히려 경영이 더욱 나빠졌기 때문이다. ○생산성 빅3중 최하 GM은 스템펠회장 취임후 2년동안 무려 1백20억달러의 적자를 본데 이어 올 3·4분기에도 8억4천5백만달러의 손실을 나타냈다. 스템펠회장의 사임은 외부출신의 이사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그래서 이번 사태를 「쿠데타」로 부르기도 한다.그의 중도하차는 경영부실에 빠진 다른 자동차 업체에도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미국 2위의 자동차 메이커인 포드사는 올 3·4분기에 1억5천8백9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크라이슬러사 또한 재기의 명수 리 아이아코카회장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악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아이아코카회장은 경영압박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올 연말 사임,회장직을 로버트 이튼부회장에게 인계할 예정이다. 일본차와 유럽차로 쏠렸던 미국소비자들의 관심이 최근 미국산 자동차쪽으로 되돌아 오는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빅3은 올 상반기 미국내 자동차 총판매량 6백50만대가운데 71·9%를 차지,88년 이래 처음으로 판매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노조반발 사임 재촉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일본차로부터의 끈질긴 도전을 물리치지 못하고 불황의 터널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오늘날 미국 자동차업계의 현실이다. 이같은 현실을 초래한 원인을 최고경영자으 능력탓보다도 악화되고 있는 외부 경영여건에서 찾는 것이 일반화된 인식이고 보면 올 겨울 또한 미국 자동차업계가 상당한 한파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 동구민주화의 “정신적 지주”/고 두브체크 생애

    ◎68년 47세 나이로 체코공산당 장악/「사회주의 인간화」 표방 개혁 실패로 7일 타계한 알렉산드르 두브체크는 지난 68년 체코 공산당 제1서기로 있으면서 스스로 공산당 체제의 변혁을 위해 자유화운동을 주도했던 동구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슬로바키아 유로베치에서 태어난 두브체크는 18세에 공산당에 입당한뒤 2차대전중에는 반나치 유격전에 참가했으며 58년엔 공산당 정치학교를 졸업하고 68년 47세의 젊은 나이로 공산당 제1서기에 선출됐다.당내 최고실력자가 된 두브체크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사회주의체제에다 자본주의의 자유시장경제원리를 대폭 도입하는 일대 개혁을 시도했다. 두브체크의 이러한 개혁의지는 당시 체코전역에서 일고 있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더욱 부채질해 마침내 「프라하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대대적인 자유화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두브체크가 주도한 이 개혁운동은 68년 8월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군의 전격적인 무력침공에 의해 실패로 끝나게 됐고 결국 두브체크는권좌에서 밀려나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리바에서 20년동안 은둔생활을 해왔다. 지난 89년 동구 공산당의 몰락과 함께 체코에 일어난 「벨벳혁명」에 참여함으로써 그동안의 정치적 공백에서 벗어난 두브체크는 그해말 체코연방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바츨라프 하벨에게 패했으며 그뒤 연방회의 의장으로 활동하다 지난6월 슬로바키아의 사회민주당을 이끌고 총선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시도한 인간적 사회주의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순수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한 그의 개혁의지는 뒷날 동구 자유화를 이루게 된 정신적 기틀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미 GM사 경영 악화/스템펠 회장직 사임

    【디트로이트 AP 연합】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미국 제너럴 모터스사(GM)의 로버트 스템펠(59·사진)회장이 26일 회장직을 사임했다. 스템펠회장은 지난 58년 GM사에 입사,90년 회장에 취임했으나 GM이 지난해 70억달러이상의 손실을 본데 뒤이어 올 3·4분기에도 8억4천5백만달러의 손실을 보았으며,적자 감축을 위한 경비절감으로 노사문제도 겪어 왔기 때문에 이미 사임이 예상되어왔다.
  • “약령시 되살리자” 대구시민축제/약령시보존위 주최 6일간행사 개막

    ◎약재썰기·차시음대회 등 행사 “풍성”/명맥만 유지… 새 도약발판 계기 기대 유서깊은 대구 약령시행사가 11일 개막돼 오는 16일까지 대구시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 일원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달구벌축제·동성로축제·섬유대축제등 제73회 전국체전 시민축제의 행사 가운데 하나로 개설되는 약령시는 약령시보존위원회(위원장 최종대·58·대구한약방대표)가 주최하고 대구시가 후원한다. 약령시 개설은 11일 상오9시쯤 약전골목 입구에서 한명환대구시장·최종대약령시보존위원회위원장·유창록대구시한약협회장 및 각급기관장과 한약재상인 2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방의 원조인 신농씨와 의성 허준선생에 대한 추모제와 약전골목의 발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뒤 개장테이프를 자르면서 시작됐다. 약령시 개설기간동안에는 무료전통차 시음대회와 전국 한약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약재썰기대회등의 갖가지 행사가 열리고 풍기인삼등 각종 한약재 전시회도 마련된다. 특히 5백여m에 이르는 약전골목 거리에는 당귀·천궁·백작약등 2백여종의 한약초분재가 선보여 이름만 얼핏 들었던 한약초의 생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또 행사기간동안 대구시내 각동마다 영세민자녀 3명씩 모두 4백33명을 선정해 한약업계가 마련한 보약 20첩씩을 나눠주기로 했다. 최회장은 『한달전부터 약령시 보존위원회 회원66명이 머리를 맞대고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에 걸맞는 행사를 준비하려 노력했다』고 밝히고 『약령시 개설목적은 한약재를 통한 시민보건증진과 지역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3백35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약령시는 조선조 효종9년(1658년)경상감사 임의백에 의해 개설된뒤,일제때 한민족 전통말살 정책에 따라 폐지되는등 부침을 거듭하다 지난78년 유판학씨(81)에 의해 부활돼,시민축제 행사로 새롭게 전통을 잇고 있다. 약령시라는 명칭은 한약재시장이 대구감영내에 개장돼 영시라 불리다 이 시장이 봄·가을철 두차례 열려 「영」자가 계절을 뜻하는 「영」자로 바뀌었으며 봄철시장을 춘령시,가을철 시장을 추령시라 불렀는데 한약시장이상설화되면서 약령시라고 굳어졌다. 대구 약령시는 전국의 약재상들이 이곳에 몰려 한약재를 사갔으며 일본·중국·동남아등에서도 한약재를 수입해 가는 등 국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한약재시장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2백여개소의 영세한약방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양약에 밀려 고객들까지 발길을 끊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에따라 약령시 보존위원회등 한약재 관련단체들은 약전골목 일대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육성하고 한약학 관련학과를 대학에 설립,후진을 양성하는 등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구시는 약전골목옆에 1천20평 규모의 한약종합회관을 올 연말까지 완공,한약재 도매시장과 한약재 수출입조합·한약재박물관 등을 입주시켜 한약재의 체계적인 유통을 꾀하고 한약관계 명소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에따라 한약관계자와 시민들은 이번 약령시 개설이 전통적인 대구약령시의 중흥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한·소와 국교… 국경문제 관심 가질때”(저자와의 대화)

    ◎「한국국경사연구」 펴낸 영토문제연구모임 토문회 양태진회장/1758년 백두산 정계비 건립 당시 기록 토대/광복후 북한과 중·소간 국경협약문도 수록 『올해는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지 2백80년이 되는 해입니다.그리고 단절됐던 중소와의 외교가 수립된 의미있는 해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우리나라 북방지역의 국경,영토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정책적 대응이 보다 절실한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총무처 정부기록문서관리소 기록관리과장직함으로 영토문제연구학자들의 모임인 토문회를 이끌고 있는 양태진회장(53)이 30년에 걸쳐 천착한 국경·영토연구총서시리즈의 완결판「한국국경사연구」를 최근 펴냈다.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방치되다시피한 북방국경문제를 「한국변경사연구」(1989),「한국영토사연구」(1991)등 일련의 저작활동과 함께 끝맺음하는 저자 집념의 산물로 평가되고 있다. 『국경사연구는 백두산정계비건립에 참가했던 인사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상황을 생생하게 기술한 정계비건립과정을 담았어요.또 토문강을 경계로한 설책에 관해 사실적으로 고증함으로써 동위토문에 대한 한중간 해석상의 차이를 해소하는 자료를 제공하는데 의미를두고 싶습니다』 저자는 특히 두만강하류의 국경 경계표인 토자비가 2번이나 옮겨 세워져 북방영토와 국경상의 손실,민족적 굴욕을가져왔다는 지금까지 국내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공개했다. 또 1800년말부터 청조가 간도지역거주민을 정책적으로 축출해 왔음을 알려주는 비시라는 공고문을 일본의 간도외교관계문서더미를 뒤진끝에 찾아 수록하는 개가를 올렸다.저자는 이에 머물지 않고 현지인들의 국경의식고조와 정계비문 해석및 국경선 설정에 따른 감계담판당시 청측의 억지 논리에 대해 현지답사와 「북여요선」등 역사적 사실을바탕으로 대응하고 있다.이밖에도 광복이후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과 중소간의 국경관할문제관한 협약문,국경침범사건사례등 귀중한 사료도 실었다. 『영토사연구분야에서 가장 중요시하는것이 관천사료입니다.따라서 조선왕조실록 동문휘고 통문관지 증보문헌비고등 각종 관찬문서의 국경,영토관련사항을 발췌,정리 수록함으로써 사료의 정확성과객관화를 기했습니다』 그는 이번 「한국국경사연구」발간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1902년 변계호적안」과 「근세북방국경관련사료초록집」등 2권도 새로 묶어 펴냈다.국제법상 영유권분쟁에 있어 거주민의 수효와 이들의 의사가 상당한 작용을 한다는 점에 눈을 돌렸다.이렇게 열악한 조건속에서도 만주지역에 뿌리를 내린 조선족 변계이주민 5천여명의 호적을 정리 수록하는것은 중요한 일.왜냐하면 영토사연구에 매우 의미심장한 인적상황자료가 된다는 생각에서 이 일에 전념을 쏟았다. 『우리의 북방국경 영토문제는 1백년동안이나 사실상 방치 돼온 셈입니다.최근에야 비로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당사국들과 국교를 맺었지만 이로인한 이해와 갈등은 점증될 것으로 예견할 수가 있죠』 저자는 특히 중국이 최근 새로운 영해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고 소련도 시베리아지역및 두만강하구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했다.이는 18∼19세기에 밀어 닥쳤던 한반도와의 국경,영토분쟁이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는 견해때문이다.
  • 60년대 난립기 거쳐 재벌사주도 시대로/한국증권사 43년의 부침사

    ◎5·16후 60개사 성업… 「파동」 이후 몰락/70년대 대기업 참여… 현 31개사 건재 1949년 대한증권을 처음으로 출발한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올해현재 31개로 늘어났다.최근 증권시장의 개방과 삼성그룹의 증권업진출로 증권업계는 또 한차례 인수·합병의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우리나라 증권사들의 43년 부심사는 한마디로 시대상과 경제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했다. ○49년 「대한」 첫 출범 지난 50∼60년대에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증권사중 10여개사는 대부분 70년대를 전후해 금융계진출을 노리고 있던 재벌그룹으로 넘어갔다.지난해 증권업에 진출한 6개사를 제외한 기존25개사가운데 처음부터 증권사를 갖고 있던 재벌그룹은 럭키김성그룹(럭키증권,전국제증권)대림그룹(서울증권)한진그룹(한진투자증권)에 불과하다.그룹소속이 아닌채 처음부터 증권사로 출발,주인이 바뀌지 않은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증권사는 한양증권이 유일하다. 또한 50∼60년대에 모습을 드러낸 증권사중 30여개사는 인수나 합병이 되지도 못한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60년을 전후한 증권파동으로 증권사들의 공신력이 떨어진가운데 투자자들도 발길을 돌린데다 잇따른 휴장으로 경영난에 직면한 증권사들이 스스로 문을 닫았다.또한 내외·대창증권등 4개사는 지난58년 투기적인 채권거래로 하여 일어난 1·16국채파동으로 2월에 허가가 취소되어 사라지는등 허가취소도 많았다. 이에따라 5·16후 정부의 주식시장 육성정책및 62년5월 증권파동때까지의 이상적·변칙적인 붐으로 그해 8월에는 증권사가 60개사에 이르렀으나 그후 자진폐쇄및 허가취소에 따라 계속 줄어들게 됐다. 또 삼성그룹이 3백억원의 프리미엄으로 국제증권을,최종현선경그룹회장이 지난해말 56억원의 프리미엄으로 태평양증권(현선경증권)을 인수했지만,70년대까지는 보통 프리미엄없이 증권사를 인수했다. 그때까지는 요즘처럼 증권사의 인기가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또한 인수는 양쪽의 이해가 맞아 대체로 이루어 진 것이지만 외부의 힘에 의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49년11월 처음으로 생긴 대한증권은 대주주가 네번이나 바뀌었다.증권업협회 초대회장을지내는등 초창기 증권계에 기여한 송대순씨가 지난 47년에 생긴 증권구락부를 발전적으로 해체한뒤 세운 대한증권은 72년10월 신일기업으로 넘어갔다.그뒤 라이프건설이 중동특수에 따른 호황으로 80년10월 다시 인수했으며,지난 85년 2월에는 서울신탁은행으로 대주주가 또다시 바뀌었다. 현대그룹은 지난 77년11월 국일증권을 인수했으며,대우그룹(대우실업)은 73년9월 동양증권(현재의 동양증권과는 다름)을 사들였다.그뒤 대우증권으로 이름을 바꾼뒤 83년12월 당시 최대의 증권사인 삼보증권을 흡수했다. ○현대,77년 국일인수 효성그룹은 지난 83년 9월 계열 효성증권을 프리미엄 20억원을 받고 쌍용그룹(쌍용양회)에 넘겼다.효성그룹이 증권사를 넘기게 된 것은 당시 부동산을 계속 사들이다 그룹 해체위기를 맞아 자구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통설로 되어있다. 한신증권의 대주주가 바뀐 것은 좀 특이하다.5개시중은행이 공동 출자한 한신증권은 지난 82년 3월 공개입찰을 통해 동원산업으로 넘어갔다.당시 공개입찰에는 동원산업외에 태평양화학과 미륭건설이 참여했었다.동원산업은 71억2천만원의 입찰가를 제안,태평양화학의 71억1천7백50만원,미륭건설 71억1천2백50만원을 제치고 한신증권(당시 자본금 50억원)을 인수하게 됐다. ○삼성진출… 변혁예고 한신증권의 인수에 실패한 태평양화학은 그해 7월 동방증권을 프리미엄 없이 30억원에 인수했으나 지난해말 선경그룹으로 태평양증권을 다시 넘겨주었다. 국제증권을 인수,오랜 숙원을 풀게된 삼성그룹은 과거에도 증권사를 갖고 있었다.삼성그룹은 고리병철회장이 지난 71년 동남(현보람)증권주식의 40%를 갖고 있는등 제일모직 제일제당 동방생명 이창희씨등이 거의 1백%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당시 삼성그룹은 보험사들이 출자한 대보증권의 대주주이기도 했다.삼성그룹은 대보증권의 대주주였기 때문에 동남증권을 73년 9월 두산·코오롱그룹등에 넘겨주었으나 그뒤 대보증권은 럭키증권에 합병됐었다. 대신증권은 지난 75년 4월 양재봉회장이 중보(전삼락)증권을 인수한 것이며,고려증권은 현재의 오너가 78년 대아(전태창)증권을 인수한 것이다.이밖에신영증권은 71년 7월,유화증권은 63년,신흥증권은 69년 10월,건설증권은 68년 2월 현재의 오너에게 넘어갔으며,한국투자증권은 경방(73년 10월),한국투금(80년 1월)을 거쳐 지난해 3월 장기신용은행이 인수했다.또한 신한은행은 지난 85년 5월 동화증권(현신한)을 인수했으며 한일은행은 85년 10월 한흥증권(현한일)을 인수하는등 은행의 증권업 진출도 두드러지고 있다. 증권업계는 삼성그룹의 진출로 앞으로 또한차례 증권사들의 흡수·합병 바람이 세찰것으로 보고있다.
  • 서울 「장안 골 편사놀이」 등 14개 첫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오늘 구미서 개막/이북5도 등 19개 시도서 25팀 참가/사진공모전·무용경연대회도 개최 우리 민속 최대의 잔치인 제3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23일부터 25일까지 3일동안 경상북도 구미에서 열린다. 「신명과 화합의 큰 잔치」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대회는 문화부가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특히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첨단산업도시인 구미시가 유치하여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의 모범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민속예술의 기량을 겨루는 경연부문에 이북 4도를 포함한 전국 19개 시 도에서 20개팀 1천5백88명이 참가한다. 또 지난해 대통령상을 받은 여수 영당풍어굿을 비롯,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안동 차전놀이등 5개종목에 7백52명이 참가해 시연하는등 이번 대회는 모두 25개 종목에 2천3백4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제전이 된다. 올해는 특히 20개의 경연종목가운데 서울의 민속놀이 장만 골 편사놀이등 14개가 새로 발굴되어 첫선을보이는 종목이어서 더욱 의미있는 대회가 될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회는 경연과 시연의 구분없이 마당종목은 23일과 25일 구미시민운동장에서 무대종목은 24일 금오공대체육관에서 진행된다. 한편 대회개막에 앞서 22일 하오7시부터 시청에서 구미역까지의 2·5㎞구간에서 축등행렬이 펼쳐졌으며 금오산잔디밭에서는 대회참가자들이 모두 초청된 가운데 경축리셉션이 열렸다.또 하오7시50분부터는 금오산과 신평,인동등 3곳에서 쏘아올린 6백여개의 불꽃이 20여분동안 밤하늘을 수놓아 시민들을 즐겁게 했다. 구미시는 대회기간중 3도미술교류전과 전국사진공모전,전국무용경연대회등 9개의 문화행사로 이루어진 92구미예술제도 열며 특히 향토음식과 특산물을 선보이는 풍물시장을 열어 독특한 향토색을 참가자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는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을 발굴해 이를 전승·발전시키기 위해 19 58년 건국10주년기념행사의 하나로 처음열렸다.이 대회는 지금까지 33회를 맞는동안 각지방의 새로운 고유민속 2백95개를 발굴하는성과를 거두었으며 이가운데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등 34개종목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정선아리랑등 20개종목은 시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대회의 종합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수상단체에게는 1천만원,종합우수상인 국무총리상에는 6백만원,부문별우수상인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한 5개단체에게는 각각 2백5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개인연기상인 경북지사상수상자 3명에게도 1백만원씩이 주어진다. 이번 대회에 출연하는 종목은 별표와 같다. ◇경연종목(20개) ▲장안 골 편사놀이(서울 민속놀이) ▲부산 영산재(부산 민속무용) ▲날뫼 북춤(대구 민속무용) ▲인천 소금밭 일놀이(인천 민속놀이) ▲광산 들노래(광주 민요) ▲도안동 농요(대전 민요) ▲포천 메나리(경기 민요) ▲화천 나무꾼 농목장치기(강원 민속놀이) ▲영동 길쌈노래(충북 민요) ▲부여 용정리 호상놀이(충남 민속놀이) ▲임실 삼계고전상여노리(전북 민속놀이) ▲고흥농악(전남 농악) ▲금릉빗내농악(경북 농악) ▲예천 공처농요(경북 민요) ▲밀양법흥상원놀이(경남 민속놀이) ▲화반놀이(제주 민속놀이) ▲해주 검무(황해 민속무용) ▲평양 검무(평남 민속무용) ▲성황부군도당굿(평북 민속놀이) ▲북청 돈돌날이(함남 민요) ◇시연종목(5개) ▲안동 차전놀이(경북 민속놀이) ▲여수 영당풍어굿(전남 민속놀이) ▲청도 차산농악(경북 농악)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경북 민속극) ▲익산 삼기농요(전북 민속놀이)
  • 평양의 추석은 “단순한 휴일”

    ◎88년 차례 허용했으나 “유명무실”/식량난으로 평시음식 준비 고작 북한주민들에게도 추석은 즐거운 명절이다.그러나 북한에서의 추석은 정작 다례와 전통 미풍양속의 계승보다는 하루를 쉴 수 있다는 휴무일과 여행의 하루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추석날만큼은 여행증명서없이 시·군 경계지역을 벗어나 조상의 묘소를 찾아 다례를 지내고 출가한 자식과 가까운 친·인척을 찾아볼 수 있고 각종 노역에서 해방되어 하루를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시와 6·25전쟁후 본격화된 「사회주의 개혁」으로 북한 전역에서 사라졌던 추석은 지난 88년 민속명절날로 공휴일화됐고 주민들의 제사행위 역시 이때부터 허용됐다. 그러나 이같은 제사인정에도 불구하고 문중수준의 다례는 가족주의·종파주의를 조장하고 김일성 유일사상에 배치된다 하여 아직도 철저히 금지되고 있다. 북한에선 제례시 햇곡식 햇과일로 제물을 따로 준비하거나 전통의식에 따라 음식을 선별하여 차리지 않는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햇곡식을 준비할 수도 없거니와 사과 배 등 제례용 햇과일은 외화획득원으로 거의 전량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 여유있는 주민들은 평시에 먹던 음식에서 조금씩 절약하여 준비한 재료를 이용,떡·지짐이·생선과 약간의 나물을 제물로 올리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과자·사탕­삶은 돼지고기­몇마리의 명태를 제단에 올린다. 그러나 이같은 북한당국의 추석제례허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북한주민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다례를 지내지 못하고 있다.지난 58년부터 시작된 주민성분 조사사업과 주민강제이주정책 실시로 많은 주민들이 고향을 등졌기 때문. 이로 인해 북한내에선 무연고 아닌 무연고 묘소가 늘어났으며 70년대 이후 추진돼온 「새땅찾기」와 「다락밭 조성」사업으로 수많은 이들 묘소가 불도저에 밀려 농토화되는 수난을 당했다.【내외】
  • “장선거 연기는 통치행위/사법심사 대상 될 수 없다”

    ◎헌법소원관련,법무장관 답변 김기춘법무부장관이 지자제 단체장선거 연기와 관련,헌법소원사건에 관해 피청구인인 대통령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피청구인의 답변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체장 선거일자의 지정 또는 연기에 관한 문제는 정치·경제적 상황,행정조직변환에 대한 수용태세,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등을 감안해 결정해야 할 주요 국가정책적인 문제로서 이른바 「통치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 우리나라 선진외국의 학설·판례등은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심사가 부적절하므로 이런 경우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선거와 달리 그 선거시기가 헌법에 명시돼있지 않으므로 헌법위반여부가 논의될수 없어 자치단체장 선거연기와 관련된 본건 청구인들의 청구는 원칙적으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수 없다. 대통령의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연기 조치는 1년에 4대선거 실시로 인해 우리사회에 생산력감퇴,인력난가중,물가상승등 경제적 피해가 예상되고 민선실시로 인해 급진적인 행정조직 변환으로크나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프랑스에서는 지방의회구성 후 1백82년,일본은 58년뒤에 단체장선거를 실시하는 등 선진외국도 충분한 지방의회 경험축적후 실시했다. 지난 1월10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같이 14대 국회가 개원되자마자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려 했으나 국회의 원구성이 늦어져 6월6일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케 된 것이며,그후 오로지 국회자체의 사정 때문에 공전되면서 법률이 개정되지 않은 점에 대해 대통령에게 그 책임이 있다할 수 없다. 또한 문제가 된 지방자치법의 부칙은 그 기관도 과후에 선거가 실시되어도 그 선거의 효력이 무효가 될 수 없으므로 훈시규정에 불과해 동 규정의 불준수가 곧바로 위헌상태가 초래된다고 할 수 없다.
  • 부산신발업체 삼화/공장일부 21일 폐쇄

    【부산】 부산의 대표적 신발업체인 (주)삼화 범일공장(대표 김영주·부산진구 범천동 1290)이 폐쇄된다. 15일 삼화측에 따르면 『수출물량감소등에 따른 계속된 경영악화로 현재 범일공장을 축소,오는 21일쯤부터 일부분을 금사공장으로 옮길 방침』이라고 밝혔다. 회사측은 현재 종업원 2천5백명 6개라인의 범일공장 대신 금사공장에 종업원 1천여명에 3개 라인을 가동키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 58년 고 김지태씨가 인수한뒤 부산신발업체의 대명사로 불리어지기도 한 (주)삼화는 그동안 누적돼온 적자로 은행관리를 받아오다 최근 경영악화로 법정관리까지 신청해놓고 있다.
  • 외교생활 35년… 한·중수교 교섭 주역/장정연 초대 주한중국대사

    ◎북한대사 거친 한반도문제 전문가 외교관생활 35년동안 북한대사관과 중국외교부 아주사(아주국)에서만 번갈아 근무한 한반도문제 전문가.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당·정 고위층의 신뢰가 두터우며 겸손하고 말수가 적은 외교관으로 정평이 나있다. 34년 북경태생으로 58년 북경대 조선어학과를 졸업한뒤 곧바로 외교부에 들어가 63년부터 69년까지 3등서기관,76년부터 81년까지 1등서기관,86년부터 89년까지 참사관등을 지냈으며 해외공관은 북한대사관에서만 3차례 근무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제3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각료회의때 전기침외교부장을 수행,방한했었고 한중수교교섭과정에서 중요한 정책결정에 깊숙이 간여했다. 배가의 공사및 외교부 아주사 조선처 1등서기관인 부인 담정과는 북경대 조선어학과 동기동창.슬하에 자녀 1명을 두고 있다.
  • 역경 딛고 민주화·개혁기수 40년

    ◎「거산」의 정치역정… 집권당총재가 되기까지/25세에 국회입문… 9선에 야총재 4번 역임/한때 연금 등 핍박… “구국일념” 3당통합 결행/대학땐 학생운동 몰두… 「6·25」 나자 의용대 지원도 「정치 거산」김영삼총재는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당의 제1인자이다.신장 1백68㎝,체중 66㎏,아담한 체구,미소띤 동안의 그는 어떤 역정을 거쳐 이 자리에 섰는가.65년동안 살아오면서 40년간을 민주화투쟁과 정치개혁의 일선에서 기수역할을 해온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9선의원에 야당총재를 4차례나 역임하고 다시 집권당총재로 선출된 그의 진기한 기록은 앞으로 찾기어려울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로 꼽힌다.그의 연륜과 불굴의 정치역정을 조감해보면 그가 왜 오늘 이자리에 섰으며 또한 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유복한 어린시절 ▷출생◁ 김총재는 1927년12월20일(음력)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씨(82·마산거주)는 당시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씨(60년작고)는 대가집며느리답게 손도 컸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령김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총재는 여동생만 다섯을 둔 외아들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김총재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정치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된것으로 보인다.어머니 박씨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김총재식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수영·축구에 소질 ▷성장◁ 아호가 거산인 김총재는 거제 장목소학교를 거쳐 통영중학교에 진학하고 45년해방과 함께 부산에 있던 경남중학교(6년제)3학년에 편입했다.43년4월에 입학한 통영중학시절 김총재는 민족의식이 강하고 수영과 씨름을 잘하는 학생으로 동창생들에게 기억되고있다.김총재가 당시 한국인학생들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처분을 받은 일은 아직도 주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44년 전근하는 교장의 이삿짐을 나르면서 곡물자루에 구멍을 내고 잡동사니를 채워넣은 사건으로 영삼학생은 통영경찰서 고등계에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이다.해방이 되던해 11월 영삼군은 경남중으로 전학했다.학업성적은 중상정도였으며 문학과 역사과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정치학수업 열심 ▷대학시절◁ 김총재는 47년9월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김총재가 철학과를 지망하게 된것은 당시 모교인 경남중 안용백교장의 영향이 컸던것으로 알려져있다.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인 안교장이 학생들에게 윤리교육을 통해 많은 교훈을 주었으며 김총재의 학과선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했다.철학과 동기생은 김총재와 이한조씨(서강대 명예교수)등 모두 7명.그들은 김총재가 대학시절 철학과수업보다는 웅변부에 가입하는등 학생활동에 열성적이었다고 기억한다.당시 정치학과에 다녔던 이규원씨(현대문예사대표)는 영삼학생이 정치학과 수업에 열심히 나왔고 웅변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치학과에 다니던 손도심씨(작고·전서울신문사장)와 「순학회」라는 우익단체를 만들어 낭산 김준연,창랑 장택상씨등을 초빙해 강연회도 갖는 등 학생운동에도 열심이었다.김총재는 51년5월 서울대를 졸업했는데 졸업논문제목은 「칸트에 관한 소고」였다. ▷군대시절◁ 김총재는 전쟁이 한창이던 50년10월 「대한학도의용대」에 들어감으로써 군생활을 시작했다.「군번은 E135」.그러나 전투병으로 전쟁에 참가한것이 아니라 후방 정훈교육요원으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대북방송담당으로 일했다.김총재는 이시절을 매일 1시간동안 직접 원고를 써서 군가를 섞어가며 대북방송을 했는데 날마다 다른말을 하려니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대북방송을 맡은지 8개월쯤 지난후 김총재는 당시 장택상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에 발탁되면서 군생활도 마감했다.김총재는 80년봄과 87년 대선에서 군복무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김총재의 복무사실에 대해서는 당시 김상구씨(유도회총본부회장)등 학도의용대관계자들이 확인해주고 있다. ○거제서 최연소 당선 ▷정치입문◁ 창랑 장택상과의 만남은 일찌감치 정치에의 꿈을 키워오던 김총재에게 현실정치입문의 계기가 됐다.서울대2학년때 정부수립기념 웅변대회에서창랑과 인연을 맺은 김총재는 50년 5월 경북 칠곡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창랑의 지원유세를 하면서 현실정치를 몸에 익혔다.이후 51년 학도의용대 복무중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수업을 받았다.장택상씨가 총리가 되면서 인사담당비서관도 지냈다.53년 창랑이 총리직을 사임하자 김총재는 다음해 5월 실시될 3대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거제로 돌아왔다.무소속출마를 준비중이던 김영삼은 선거 열흘전 유력한 무소속후보를 찾던 자유당의 눈에 띄어 정당공천을 받게 됐다. 첫 선거결과 김영삼후보는 총2만7백70표를 얻어 차점자인 1만4천1백10표의 서순영씨(작고)를 누르고 만25년6개월의 나이로 금배지를 달았다. ○사사오입에 반대 ▷야당시절◁ 사사오입개헌에 반대해 자유당을 탈당한 김영삼청년의원은 당시 야당인 민국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가입함으로써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30여년 야당인이 된다.55년9월 민주당이 창당되자 김영삼은 중앙당청년부장겸 경남도당부위원장을 맡았다.당내에서는 선이 굵은 조병옥박사의 계보인 구파로 분류됐다.김총재는 이때 56년·60년 2차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조박사를 쫓아 다니며 승부사의 정치감각을 익혔다고 한다.3대의원시절 김영삼의원은 대구매일피습사건·김창용특무대장암살사건 등의 진상규명에 뛰어난 활약을 했다.58년 4대총선에서 민주당후보였던 김영삼은 부산서갑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당시 선거는 자유당말기로 선거부정의 공방이 치열했으며 김영삼후보는 선거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진행도중 4·19를 맞게된다. 4·19이후 5대 7·29총선에서 부산서갑에 다시 출마해 차점자를 무려 3배이상 표차로 제치고 원내에 복귀했다. 이후 김총재는 정치규제에 묶였던 11,12대를 제외하고 내리 9선에 달하는 헌정사상 최고다선을 기록했다. 김영삼의원의 활약은 5·16이후 구성된 6대국회부터 두드러졌다.김영삼의원은 제1야당의 대변인으로서 한일협정서명,공화당창당과 관련한 4대의혹사건,월남파병문제등 굵직굵직한 정치쟁점에 능숙히 대처함으로써 위상이 높아졌다. ○대선 낙선,좌절도 74년과 79년 신민당총재에 두차례 선출됐고 87년 통일민주당 총재와 13대 대통령후보에 이르기까지 줄곧 야당의 정상을 지켜온 그였지만 이기간중 두차례 2년간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총재직정지가처분및 의원직제명,정치활동규제등 핍박은 그를 불굴의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 야권대통령후보 단일화 실패로 대통령선거에 낙선하고 이후 88년 4월총선에서는 제2야당으로 전락하는 좌절의 시기도 겪었다. ▷3당통합◁ 김총재는 90년 1월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으로 당시 노태우민정당총재·김종필공화당총재와 3당통합을 결행,오늘날에 이르렀다. 89년 당시 민주당총재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해 미수교국과의 초당외교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90년 3당합당후 민자당대표로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하는등 정당외교사의 새지평을 열었다. 민자당출범후 2년반여동안 계파간 갈등속에서도 꾸준히 여권2인자의 자리를 지켜 드디어 대통령후보경선을 치렀고 총재에 선출됐다. ▷가족관계·사생활◁ 김총재는 51년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혜영(39·연대 도서관학과졸)·혜경(37·이대 음대졸)·은철(36·한대 열공학과졸)·현철(33·고대 사학과졸)·혜숙씨(31·이대 음대대학원졸)등 2남3녀를 두고 있다. 25년째 상도동 인근 산에 올라 4㎞씩 조깅으로 건강을 다지고 있으며 술은 마주앙 1∼2잔 정도며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과거 양주2병에 하루 서너갑씩 담배를 피우기도 했으나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과감히 끊어버렸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현재 충현교회 장로이다. 좌우명은 「대도무문」으로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의 붓글씨를 써넣어 구운 도자기를 선물하기도 한다.
  • 만간요법 개발 등 동의학연구 활발(오늘의 북한)

    ◎“낙후양의 보완”… 약초재배 권장/탈모엔 피부 붉어질때까지 솔잎 자극/설사땐 약쑥·식초 달여 식전에 한술씩 북한은 현대의료기술의 낙후와 기초및 전문치료약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로 동의학(한의학)을 중점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80년「인민보건법」을 공포한 후 국가 보건정책차원에서 동의학의 연구와 보급을 추진하면서 전국 곳곳에 재배단지를 조성, 동약의 원료인 약초공급의 원활화를 꾀하고 있다.또 「동약처방집」「동약연구자료집」「조선동약총서」와 같은 동의학 연구 저서를 발간하는 등 동의학의 과학화와 이론체계 수립에도 힘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북한 동의학발전의 견인차 역할은 동의학 육성방침에 따라 지난 58년 「조선의학과학원」산하 「동의학연구소」로 설치된 뒤 87년 독립기구로 승격한 「조선동의과학원」이 맡고 있다. 임상실험실 외과연구실 부인과연구실 민간요법연구실 등을 갖춘 이 과학원은 지난 89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전통의학협동연구센터」로 선정됐으며 지난 90년에는 「전자식 동의진단 치료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조선동의과학원」활동 가운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총 4만6천여건에 이르는 전래 민간요법의 수집·정리사업과 연구다. 북한은 이 민간요법을 각 대학병원과 도·군병원에 설치돼 있는 동의과에서 임상 활용하는 한편 인민들의 의료서비스난 해결을 위해 계속적인 개발과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는 민간요법 가운데 대표적인 몇가지를 소개한다. □감기치료 ▲마늘을 한번에 2∼3g씩 하루 2∼4회 식후에 먹는다.▲파밑부분 60g과 생강10g을 함께 찧어서 끓는 물에 풀어 넣은 후 그 김을 입과 코로 들이마신다. ▲큰 배(이)에 10여군데의 구멍을 뚫고 껍질을 벗긴 마늘을 한쪽씩 넣은 뒤 이를 물에 적신 종이로 잘 싸서 불에 구워 먹는다. ▲언 사과 2개의 즙을 내어 마신다.▲술 한잔에 달걀 한개를 풀어 먹은 후 땀을 낸다.▲코가 막힐 때는 팥죽 한사발에 메밀쌀 70g과 파뿌리 3개를 넣고 1시간 정도 달여 한번에 다 먹은 후 더운 방에서 땀을 내면 좋다.메밀쌀대신 입쌀이나 좁쌀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악성감기로 열이 날때는 물1백㎖정도에 적당량의 간장을 타서 끓이다가 계란 1개를 넣어 먹는다. □탈모증치료 ▲솔잎으로 만든 솔을 이용,수시로 머리카락이 빠진 부분을 피부가 붉어질 때까지 자극한다.▲마늘이나 생강을 찧어 그 즙을 탈모 부위에 자주 바른다.천에 묻혀 문지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콩팥염치료 ▲옥수수 수염을 일정량의 물에 달인후 그 물을 한번에 1백∼1백50㎖씩 하루 세번 먹으면 소변보기가 한결 쉬워진다.▲만성콩팥염일 경우 같은 양의 옥수수 수염과 딸기의 뿌리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절반 정도로 줄때까지 달인 후 깨끗한 천으로 걸러 한번에 1백㎖씩 하루 3번 식전에 먹는다. □이질·배앓이 ▲배가 차고 설사할 때 약쑥 1백g에 5%식초 5㎖와 물 2백㎖를 넣고 달인 후 하루 세번 식사전에 한숟가락씩 먹는다. ▲1백g씩의 약쑥과 검은 콩을 각각 불에 볶아 빻은 다음 밀가루로 반죽,무게 22g씩의 알약으로 만들어 하루 세번 8∼10알씩 먹는다. ▲임신중인 환자는 생계란이나 삶은 계란 2∼3개를 한번에 먹는다.▲만성적인 이질에는 개뼈를 흰재가 되도록 불에 태워 식전에 5g씩 더운 물 또는 미음에 타서 먹는다.▲파에 소금을 조금 넣어 찧은 것을 약천으로 싸서 따뜻하게 데운 후 배를 찜질한다. □타박상치료 돌이나 몽둥이에 맞아 피부밑에 어혈이 지거나 붓고 아픈 경우엔 감자 생강 솔잎등이 이용된다. ▲생감자를 찧어 환부에 붙이는데 이때 생감자속의 솔라닌성분이 염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한다.▲생강 1백g에 겨자 10∼15g을 섞어 찧은 다음 환부에 붙이고 헝겊으로 싸맨다. ▲된장을 두툼하게 바르고 싸맨다.다쳐서 벗겨져 피나 체액이 고여 몹시 부어 올랐을 때 바르면 피부 밖으로 스며나온 체액들이 흡수되면서 붓기가 가라앉는다.▲고춧가루와 약한 불에 녹인 바셀린을 1대5의 비율로 섞어 무른 고약이 되게 한다.이 고약을 하루 한번 또는 이틀에 한번 다친 곳에 바른다. □기관지염치료 기관지염증으로 심한 가래 기침 열이 나는 경우 ▲봄·가을에 캔 말린 은시호(대나물)뿌리30g, 도라지1백g, 살구씨30g, 아편껍질열매15g을 함께 빻아 알약으로 만든 후 한번에 4g씩 하루 세번 먹으면 염증이 가라앉고 가래가 줄어든다. ▲도라지 20g과 율무쌀 30g을 물에 달여 하루 3번 마신다.율무쌀이 없을 때는 도라지를 잘게 썰어 물 0.5ℓ에 일주일 동안 담가 뒀다가 짜서 한번에 0.1∼0.2ℓ씩 하루 2∼3번 마신다.
  • 청량리 민자역사 내년 착공/철도청(단신패트롤)

    ◎지상 12층… 1,500억 들여 96년 완공 ◇철도청은 19일 현재의 청량리역사를 민자를 유치,새로 짓기로 확정했다.내년에 착공,96년 완공예정인 청량리민자역사는 서울·청량리역사주식회사가 1천5백억원을 들여 지하3층 지상12층(연건평 3만8천9백50평)의 최신종합건물로 역무시설·백화점·판매시설·대규모 주차장등이 들어서게 된다. 새 민자역사가 완공되면 현재 2백30평인 대합실이 1천7백50평으로 늘어나고 역앞 슬램가 2백80평과 철도부지 7백30평등 1천10평이 재개발되어 광장으로 개설된다. 현 청량리역사는 지난 58년 일평균 이용객 5천4백명을 기준으로 건립된것인데 건물이 낡고 협소해 승객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있다.
  • 일 추리소설 대가 마쓰모토 별세/서민적 삶 소재 「점과 선」대표작

    ◎시대·정치물등 폭넓은 창작활동 일본의 인기 추리소설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송본청장)가 지난 4일 지병인 간암으로 숨졌다.향년 82세. 그는 추리소설에서 시작,시대소설,정치소설,논픽션,고대사,현대사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해오며 많은 독자를 확보해왔다. 지난 50년 주간조일의 현상모집에 「서향찰」이 입선하면서 등단한 그는 52년 「어떤 소창일기전」으로 개천상을 수상했다.대표작은 58년 발표된 「점과 선」이라는 추리소설. 그의 작품은 통상적인 추리소설과 달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서민적인 삶을 소재로 현대사회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미,일본소설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국민은감사 안창식씨

    정부는 5일 국민은행 신임감사에 안창식 전국세청 국세조세국장(56·사진)을 임명했다. 광주출신의 안감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뒤 58년 재무부 근무를 시작으로 주일한국대사관 재무관·광주지방국세청장 등을 지냈다.
  • 학술원상 응용과학부문 지제근교수(인터뷰)

    ◎“태아성장을 연구 기준표 만들었죠”/“인권형태학 경시풍조 안타까워”/18년간 1800례 관찰… 「기형학」도 개척 /학술원 기초과학부문 주충조교수(이 대한민국 학술원(회장 서돈각)은 지난달 31일 정기총회를 열고 제37회 학술원상 수상자로 자연기초과학 부문에는 연세대 이과대 생화학과 주충로교수를,자연응용과학 부문엔 서울대의대 병리학과 지제근교수를 각각 선정해 발표했다. 『학문하는 사람으로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학술원상을 받게 돼 영광입니다.학술원상은 나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학술원상 자연응용과학 부문 수상자 지제근교수(54).우리나라 태아발생학 및 선천성 기형학의 「개척자」이다. 이번 상을 받게 된「사람 태아의 형태발달에 관한 연구」는 지난 76년부터 18년동안 서울대의대 병리학교실에서 임신8주까지의 초기·중기·말기의 사람 배아 1백20례와 임신9주에서 38주까지의 태아 1천7백례를 대상으로 각 장기조직의 계측,육안및 조직학적 소견을 관찰,각 장기조직의 발생과정을 기관별이나 태령별로 분석했다.이어 개개의 장기조직 발생의 종적인 특성과 시기별 횡적발생을 연관시켜 인체발달의 형태학적 지견을 집대성한 것으로 한권의 도보와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체질인류학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며 『특히 배아및 태아의 재태기간이나 체중에 따른 각 장기의 정상중량 등을 표시함으로써 앞으로 한국인의 정상및 이상발달의 진단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이번 연구가 태아의 성장표를 수치화했으므로 임신주수를 정확하게 알수 있는 것은 물론 태아의 크기·무게등 각 장기의 정상여부를 조기에 알아낼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의학자들사이에는 분자생물학등 첨단의술이 도입되면서 인체의 형태학적 연구를「한물간 분야」로 경시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그는 『아직도 이 형태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만큼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배아및 태아의 형태발달」등 8권의 저서를 비롯,7백4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그는『이제까지 확보한 1천8백례 이상의 자료중 선천성기형 부문도 많이 포함돼 있으므로 이를 토대로 각 장기별 선천성기형 분야를 종합 정리하는 것이 우선 목표』라며『그 이후에는 전공한 소아및 신경병리학중 신경병리쪽으로 정진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학술원상 기초과학부문 주충노교수/“인삼약효 우수성 과학적으로 입증”/“연구분위기 조성에 도움됐으면”/영서 박사학위 받고 귀국… 후진 양성 『학술원상이란 공부하는 학자들에게는 가장 보람있는 상이라 기쁜 마음이 한량없습니다.수상자로 손색이 없는지 가늠하기 어려우나 후배 학자들의 연구 분위기 조성에 좋은 참고가 됐으면 합니다』 학술원상 자연기초과학 부문 수상자 주충노교수(62).지난 58년 서울대화학과및 대학원을 졸업,63년 영국 리버풀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한양대 화학과,연세대 생화학과에 재직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것과 함께 지난 30여년간 고려인삼의 추출성분인 사포닌을 연구해온「인삼박사」이다. 『30여년전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연구재원·환경등 모든 부문에서 열악한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경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예부터 약효가 뛰어난 고려인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인삼에 대해 약효의 우수성만 알려졌지 과학적 설명이 되지 않아 이를 근본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하고자 노력한 것이 연구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인삼 사포닌이 모든 효소를 활성화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도출해낸 그는 이 사포닌이 에탄올 섭취로 생성되는 유해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재빨리 없앰으로써 알코올 성분을 희석시킨다고 밝혔다 주교수는 사포닌이 몸속에서 몸에 유해한 아세트알데히드를 생성케 하는 알코올 산화를 촉진해 주므로 알코올이 간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여줌으로써 알코올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을 분석해 낸바 있다. 더욱이 그는 고콜레스테롤혈증과 관계있는 저밀도지단백(LDL)수용체에 관한 연구도 병행,사포닌의 투여로 콜레스테롤 대사를 촉진함으로써 간에서의 콜레스테롤 농도가 크게 떨어지므로 LDL수용체의 부족으로 인한 고콜레스테롤혈증을 개선하는 효과도 구명했다. 지금까지 인삼 사포닌의 연구를종합정리해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싶다는 주교수는『선진 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것은 결국 뒤쫓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며『과학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대로 과학의 수준을 높이고 노하우를 축적할수 있는 박사과정을 국내에서 이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 벽산건설 어떤 회사인가

    ◎58년 설립… 벽산그룹 주력업체/3천억대 매출… 도급순위 18위 벽산건설은 50년대 단성사와 반도극장(지금의 피카디리)을 운영해 부를 축적한 김인득 벽산그룹명예회장(77)이 58년에 설립한 건설회사로 그룹의 주력업체. 올해 국내도급순위 18위의 종합건설업체로 설립당시 이름은 한국건업이었다.70년대중반 해외건설에 주력하다 85년 해외에서 완전히 손을 뗀뒤 주로 국내공사와 아파트 분양사업에 주력해왔다. 지난88년 정우계열 5개사를 인수,합병해 주목을 받았고 최근에는 신도시일원과 부산·대전등지에서 높은 영업신장세를 보여왔다.홍은동·수유리재개발사업(도급액 4백77억원)과 반월신도시3공구사업(2백87억원) 국제스노우밸리콘도(2백82억원)등이 벽산이 추진해온 주요사업들이다. 이같은 신장세에 힘입어 국내공사 도급순위가 91년도 19위(도급한도액 1천7백68억원)에서 올해 18위(도급한도액 2천8백33억원)로 뛰어올랐다.지난해 3천3백30억원의 매출액을 올려 54·1%의 신장세를 보였다. 사장은 김명예회장의 3남인 희근씨(46). 김명예회장은 62년 한국스레트공업을 인수,농가지붕개량붐을 타고 일약 재벌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스레트공업은 벽산그룹을 건자재중심 그룹으로 성장시킨 모체가 됐다.지난해 용산구 동자동에 새사옥을 지은뒤 9월 김인득회장이 그룹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장남인 김희철씨(55)가 승계했다.
  • “생필품공장 연20∼30일 가동”/귀순 김영성씨 일문일답

    ◎젊은세대 정치에 무관심… 50대이상 “함구”/월남자가족 출간추방… 「이산재회」 걸림돌 ­귀순동기는. 『58년 맏형이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당했고 1·4후퇴때 두 형이 월남했다는 사실이 70년대초 밝혀져 그때부터 불이익을 받아왔다.그후 체코유학동기생들의 도움으로 재기,89년 55세에 후보당원이 되기는 했으나 크게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중 동독파견근무이후 동구권몰락의 엄청난 변혁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개방밖에 살길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이로인해 베를린 대표단장으로 부터 질책과 감시를 받아왔다.귀국하면 큰형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을 두려워하게됐고 이때문에 탈출을 결심했다』 ­북한의 건축기술수준과 평양과 지방의 차이는.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괜찮았으나 65년이후 설계전문교수들이 성분불량으로 숙청된 이후부터 설계원 처우가 낮아 인재고갈상태에 있다. 만수대혁명박물관등 기념비적인 건물과 살림집들과 건축설비나 자재등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만 그나마 거의 모든 건설이 평양에 집중되고 있다.때문에 남포·원산 등 일부 지방도시를 제외하고는 지방의 건축물들은 60년대 지어진 「성냥곽같은」조립식 주택들이 고작이다』 ­김정일비서도 50년대말 동독 항공군관학교에 유학했다고 하는데. 『김정일이 한때 모스크바대학으로부터 유학제의를 받았으나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서만 공부하겠소」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그가 외국유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북한주민들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새세대들은 아예 정치에 무관심하다.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반면 50세이상의 나이많은 사람들은 최근 상황이 나빠지고 있음을 의식해 아예 의사표시를 하지않는다』 ­월남가족이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대우와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월남자의 가족으로 자기 고향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그들은 모두 산간오지로 추방당했다.때문에 이산가족의 명단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월남자의 가족은 최저생활계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최근 일본이나 미국에 가족을 둔 사람은 이들의 방문을 「구원의 천사처럼」기대하고 있다.단번에 집이 새로 생기고 잘하면 평양으로 이주시켜 주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경제실상은. 『현재 완전 가동중인 공장은 금광이나 시멘트공장 군수공장등 외화벌이용 공장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청진의 경우 ▲청진제강소 5∼6년전부터 가동완전중지 ▲김책제철소 4개 대형용광로중 1개만 가동 ▲청진화학섬유공장 20% 가동 ▲생필품공장 김부자생일선물공급시 20∼30일정도 가동등이 최근 나타난 엄연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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