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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직신학자 박봉랑 교수 별세

    국내 신학계의 원로인 조직신학자 박봉랑(朴鳳琅) 한신대명예교수가 25일 낮 12시30분쯤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소천했다.83세.일본 도쿄신학대와 한국신학대를 졸업한 뒤미국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고인은 58년 한신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 84년 정년 퇴임 때까지 조직신학중 칼 바르트 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현대신학사조와 한국교회의 신학적 실존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기독교의 비종교화’‘신의 세속화’‘종말론적 신학’ 등의 저서를 남겼다.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됐고 장례식은 27일 오전 9시 서울 한신대 교정에서 한신대학장으로 치러진다.(02)902-3181
  • 문화재 밀매수법·관리실태

    24일 검찰에 적발된 문화재는 대부분 불상 안에 보관된복장(伏藏)유물로 국보급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밀매 문화재는 정상적인 거래가 가능한 것처럼 속이기 위해 ‘문화재 세탁’ 과정까지 거친 것으로 드러났다. ◇주요 문화재=‘해인사 판당고 중수발원문’은 조선 성종 21년(1490년)에 학조대사가 발문을 쓴 국보급 문화재. 이 글에는 세조 4년(1458년) 세조의 명으로 판당고(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곳)가 좁고 낡아서 50간을 새로 지었으며 그뒤 인수대비가 판당고 복구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용비어천가’ 진본 7권은 임진왜란 직후인 조선 선조때 간행한 50질(1질은 10권) 가운데 일부로 현재 국내에 7질만 남아있는 국보급 문화재.‘능엄경 언해본’은 세조 7년(1461년) 석가모니의 분신사리가 발견되자 세조가 기뻐하면서 발간한 것으로 1년 뒤 간경도감에서 교정을 거쳐 목판으로 찍은 보물급 진본.‘묘법연화경’은 불교 천태종의 경전으로 세종 30년(1448년) 안평대군이 쓴 발문이 붙어있다. ◇복장유물 밀매=사찰의 불상 안에 보관돼 있는 복장유물은 승려들조차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손을 대지 않아관리가 허술한 점 때문에 문화재 전문털이범들의 표적이돼왔다. 전문털이범들은 신도를 가장해 불당에 들어간 뒤 불상의등쪽에 있는 뚜껑을 열고 들어가 고문서 및 불경,탱화 등을 훔쳤다.전북 완주의 한 사찰에 있는 5∼6m 높이의 대형 불상에는 2∼3일치 비상식량까지 갖고 들어가 내부에 설치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문화재를 빼낸 뒤 밖에서 망을보는 공범에게 넘기는 수법도 사용됐다. ◇문화재 세탁=지난해 1월 충남 논산 익안대군 영정각에서 도난당한 익안대군 영정은 일본으로 밀반출된 뒤 현지에서 정상구입한 것처럼 위장돼 지난 7월 세관을 통해 반입됐다. ◇복장유물 관리 문제점=복장유물은 일제시대부터 도난당하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바닥날 지경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몇몇 대형 사찰에는 복장유물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종교적 이유로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
  • [공직인맥 열전](46)국방부·군④

    지난해 이맘때쯤 육·해·공 3군본부가 위치한 충남 계룡대에서 3군 총장과 국방부 출입기자단의 간담회가 열렸다. 길형보 육군총장(육사 22기·평남 맹산),이수용 해군총장(해사 20기·나주·전역),이억수 공군총장(공사 14기·원주) 등 3군 참모총장과 참모차장,부장,기무부대장 등 수뇌부대부분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수용 해군총장이 사회자를 자임하고 나섰다.군 서열상 육군총장이 마이크를 먼저 잡아왔던 관례에 비춰 파격적인 일이었다.3군 총장이 합석하면 통상 육군총장이 중앙,해군이 오른쪽,공군이 왼쪽에 앉는다.이 총장은 은근한 목소리로 “‘극비사항’ 한가지를 알려주겠다”고 운을 뗐다. 이총장은 “현재 3군 총장은 3군 사관학교 입교 연도(58년)가 같은 동기생이어서 호흡이 잘 맞는다”면서 “우리끼리 모이는 사석에서는 육군총장을 ‘땅총’,해군총장을 ‘물총’,공군총장은 ‘새총’이라는 은어로 호칭한다”고 털어놓는 등 유창한 화술과 보스기질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이 전 총장은 업무추진력과 원만한 대인관계 등으로 해군출신첫 합참의장감으로 손꼽혔지만 지난 3월말 임기만료로 군복을 벗었다.군 관계자들은 “참모총장의 임기가 10월말로 끝나는 육·공군과는 달리 해군은 임기가 3월에 끝나기 때문에 창군 이래 장관,합참의장을 1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에 반해 공군은 3명의 국방장관(김정열·주영복·이양호)과 1명의 합참의장(이양호)을 배출했다.‘소군(小軍)의 설움’면에서 해군보다는 처지가 좀 나은 편이다.여기서 대군(大軍)은 육군을 일컬는다. 공군의 인적 구성은 공사,학군,사관후보생,조종 간부후보생 등으로 이뤄져 있다.장군 58명중 52명이 공사를 나온 조종사 출신이다.방공포,보급,시설 등 나머지 주특기에서도장군이 배출되지만 ‘가물에 콩 나듯’ 한다.정훈,법무,의무는 아예 장군을 내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차기 참모총장으로 거론되던 이기현 전 작전사령관(공사 13기·레바논대사·여수)이 ‘낙마’한 것은 전형적인 ‘호남 역차별’ 케이스로 회자됐다.때문에 ‘억수로’ 관운이 좋다는 얘기를 들은 이억수 현 총장이 취임했다.이총장은 비행시간 3,557시간을 기록한 ‘보라매(조종사)’ 출신으로 차세대 전투기사업 등을 추진하는데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군 역대 총장 26명중 호남출신은 장지량(9대·사관후보생 2기·나주)·옥만호씨(12대·〃 8기·무안) 등 2명뿐으로 나머지는 TK와 PK출신이 독차지했다.차기 총장을 바라볼 수 있는 중장급(참모차장,공사교장,공군작전사령관,합참차장)에 호남출신은 없다.단 천기광 공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공사18기),김명립 합참 인사군수부장(공사19기),장희천연합사 정보참모부장(공사19기),차종권 공군본부 감찰감(공사20기) 등 호남출신 4명이 소장급에서 선두권을 이루고 있다. 해군과 해병대는 73년 ‘경제적 군 운영’이라는 명분에따라 통합됐지만 해병대는 사실상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97년 당시 전도봉(간부후보 35기·거제) 사령관 시절 독립,분리 움직임이 구체화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병대사령관은 군 서열상 중장서열 1위다.3군을 통틀어 8명의 대장 다음 서열이다.해사를 졸업하는 생도 160여명중평균 15명 정도가해병대로 배속된다. 해군 영관급 장교의 90% 이상이 해사출신이다.나머지는 부산 해양대·부경대(옛 수산대)·제주대 출신의 학군출신과사관후보생으로 채워진다.해군(해병대 포함) 역시 장군 70여명중 중장급 이상에 호남출신은 1명도 없지만 오승열 해군본부 기획관리부장(해사24기·남원)과 한인호 군수사령관(해사26기·광주)이 소장급에서 앞서나간다. 해군의 인맥은 지역색보다 병과를 통해 주로 형성된다.항해병과가 압도적이며 기관병과가 뒤를 잇는다.장군 70여명중 50여명을 차지하는 항해병과 출신들은 전투함 함장(대령)과 전투전단장(준장)을 거쳐 함대사령관(소장)에 오른다. 중장급 자리는 작전사령관,참모차장,해사교장,합참의 본부장 등 4자리다.4명의 중장 중 참모총장이 배출되며 통상 작전사령관이 총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노주석기자 joo@
  • 은희경 신작 장편 ‘마이너리그’

    인기 여성작가 중의 한 명인 은희경의 신작 장편 ‘마이너리그’(창작과비평사)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3년전 일간지에 연재된 중편을 그간 장편으로새로이 고쳐쓴 것이다.3년전이면 59년생의 작가가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로 등단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이다.이같은 시간표 체크는 이 신작의 모체인 중편이 여성작가로서는 드물게 부드러운 감정 같은 것에 싹 등을 돌리고,등단 연조에 비해 노숙한 냉소를 내내 띠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해 보인다.작가는 그저 생각없이 작품을 장편으로연장 개작한 것이 아니라 여성적 감정에 빠지지 않고 냉소의 비틀린 웃음기를 끝까지 유지한 점이 아까워 공을 들여고친 모양이다. 무엇에 대한 자신의 냉소가 이 작가에게소중해 보였던 것일까. ‘마이너리그’는 ‘이류’ 남성들의 인생 이야기다.일류,메이저 대열에 끼지 못한 인생이란 의미에서,마이너란 말이 들어가 있지만 다수파,우리의 일반적 삶을 지칭한다고할 수 있다.소설의 네 인물들은 중편 연재 당시 만 마흔이되는 58년생 개띠 남자들이다. 만 마흔에자신의 삶이 메이저라고 확신하는 남자는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네 남자들은 고교시절 동창생으로 문제아 그룹을 형성한뒤 이후 25년간 끊어지지 않는 연결과 연관을 맺는다.문제아 그룹이라지만 어떤 깊이있는 친연성에서가 아니라 이류 인생의 네 싹으로 단단히 묶여졌다고 볼 수 있다.예쁘고 똑똑한 여학생을 서로 좋아하나 ‘이류적인’ 우스운모양새로 끝나는데 더 큰 사회,역사와 관련에서도 이류적이기는 마찬가지다.마흔살 대한민국 남자의 알리바이 항목채점에서 빠짐없이 이류 성적인 것이다. 70년대의 유신시대와 80년대의 독재·민주화시대 등을 완전히 자각없는 비주류로 보내며,이후 시대에서 패거리주의,학벌주의 등 야비하고 비천한 사회풍조의 희생자이지만 또 스스로 천민자본주의의 이류 동조자로서 끝없이 뭔가를 시도하나 그럴듯한 성공은 결코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마흔살에 이들은 이류의 실패한 카피라이터, 엉터리 사진작가,직장만 뻔질나게 바꾸는 바람둥이, 예쁜 여학생을 차지했으나 속에 든 것 없이 살다 이역만리 타국에서비명횡사하는 이력들이다.이 주인공들은 이처럼 다른 대부분의 소설에서처럼 성공하지 못하지만 작가가 그 원인을사회나 역사 탓만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 남다르다.사회나 역사가 좀 더 선진적으로 펼쳐졌더라면 마흔살 대한민국 남자는 대부분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겠지만 다른 소설들처럼 이런 사실에 질질 짜거나 분노의 고함을 지르지 않는다.주인공 자체가 이류로서,애초부터 한계가 있는 것이다.작가는 세태와 삶을 분석적으로 살필 줄 아는작중화자를 포함해 소설의 네 남자들에게 정을 다 주지 않는다.그래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는데 “남자에 대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고 여자를 미화하지도 않는다”는 작가의책 머리말과 어울린다. 경쾌한 필치 속에 의미있고 재미있는 희화처럼 잘 넘어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냉소하고 싶었던 것일까.메이저에 끼지 못한 마흔살 한국 남자들은 분명 아니다. 그런 남자들을 양산한 한국의 이류적 세태,그리고 많은 남자들의 이류적 품성들이 냉소의 대상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한국의 슈바이처’ 仁術 접다

    “죽는 날까지 환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슈바이처’ 문창모(文昌模·94)박사가 만 70년동안 입어온 의사 가운을 벗었다. ‘최고령 국회의원’ ‘진료활동을 펴고 있는 최고령 의사’ 등의 숱한 기록과 함께 의료계 및 교육·정치·종교·사회사업분야에서 거목으로 존경받고 있는 문 박사는 지난 24일 진료를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별도의 은퇴식은 없다.다만 오는 31일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은퇴 예배’로 대신할 계획이다. 평안북도 선천 출생으로 지난 31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70년동안 의사의 길을 걸어온 문 박사는 58년 연세대 원주기독병원의 전신인 원주 연합기독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강원도 원주에 정착했다.64년 원주시 학성동에서 문이비인후과를 개원한 이후 매일 아침 6시30분부터 37년동안 한자리에서 인술을 펴왔다. 문 박사는 특히 결핵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고 70년대 육영수여사를 설득해 원주에 나환자촌을 건설하는 등 사회사업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지난해 의사들의 의약분업 관련 파업시위때는 ‘의사의 길은 환자들과함께 하는 것’이라며 병원 문을 열고 환자들을 돌봤다. 문 박사는 “걷기가 불편하고 손놀림도 둔해져 자칫 환자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며 자식들이 만류해 그만두게 됐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문 박사는 96년 출간한 ‘천리마 꼬리에 붙은 쉬파리’라는 제목의 자서전 서문에서 “의사가 된지 66년,나이가 아흔이 된 지금도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8∼9시까지일한다.나는 별무취미로 도무지 재미가 없는 사람이지만이런 진료생활을 축복이라고 여긴다”고 ‘후회없는 삶’을 담담히 표현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
  • [이사람] 여성원로과학자 신영애박사

    국내 생명과학계가 미국과 교류를 시도할 때나 거꾸로 미국 과학계가 한국 사정을 알고자 할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통하는 길이 있다.재미 원로 여성과학자 신영애박사(辛英愛·69)를 만나는 것이다. 미국립보건원(N I H)에서 35년간 연구원과 과학행정가로활동해 온 신박사는 워싱턴D.C.주변 과학계는 물론 정계,관계에 촘촘한 그물망을 갖고 있는 마당발. 그가 미국생활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펼치기 위해 한국에왔다.공직을 은퇴하고 고국의 젊은 과학도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경험을 나누고자 영구 귀국한 것이다. 한발 먼저 들어와 서울 청담동에 빌라를 마련해 놓고 그를기다린 남편은 “노인네가 은퇴까지 하고 한국에 와선 뭘그리 바쁘게 돌아다니느냐”며 제발 편하게 좀 살자고 충고를 한다.하지만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국제협력실상임자문관이라는 공식 직책에 연세대,서울대,이대에서강의까지 맡은 그는 “바쁘게 사는 건 내 천성”이라며 슬쩍 빠져나간다. 6·25전쟁 통에 도미해 대학을 졸업한후 2년 간격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생활 2년만에 종신연구원직을따내며 과학행정가로 자리잡기까지는 그의 이런 천성이 큰몫을 했다. 대학원때부터 ‘뻔뻔한’ 성격에 조직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는 동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 교수나 디렉터를 대리하는 일이 많았고 외부 회의에 자주 참석하게 되면서 뛰어난 대인관계 수완을 발휘해 마침내 행정쪽으로 방향전환을 권유받기에 이른다.그가 마지막 10년동안 맡았던 연구평가담당관은 국내외에서 들어온 각종 연구지원신청과제에 대해 적절한 관련전문가를 찾아내고 평가단을 구성해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막강한 자리다.자연히신진 연구자들을 키워주기도 하고 실력있는 전문가를 사귈수도 있어 광범한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또한 연방예산을 사용하기 위한 의회 설득작업을 통해서는 관계와 정계 인사들과도 빈번한 접촉을 갖게 돼 인맥 구성은 더욱다양해진다.신박사는 이곳서 쌓은 연구관리 노하우를 모국에 아낌없이 전수하는 한편 타고난 근면함,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미간 교량역을 도맡아 왔다.워싱턴D.C에서 정례적으로 열리는 한미과학기술포럼은 그의 역할이 숨겨진 대표적 사례. 지난 학기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시작한 ‘과학커뮤니케이션’강의는 그가 귀국후 가장 즐겁게 몰두하고있는 분야다.“NIH는 연간 80%의 연구비가 외부에 개방돼있다.한국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구비를 따낼수 있다.나의 목표는 유망한 고국의 과학도들에게 NIH 평가자들을 설득할수 있는 의사소통기술을 가르쳐맘껏 연구를 펼칠수 있게 하는 것이다”과학자들끼리,혹은 과학자와 대중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수 있도록 글쓰기, 발표력 등을 훈련하는 이 분야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사실 과학자들은 어렵고 폐쇄적인 전문용어로 대중들을 소외시켜 왔다.그러나 이는 오직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과학자의 사명에 어긋나며 실제로 국민과 정책결정자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더 이상 과학의 존립기반마저 위협받을 상황에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훈련이 필수적이라는게 그의 소신이다.영어로 진행되는 이 강의는 반응이 좋아 출강 요청이쇄도하고 있다. 그는 미국대학 경제학교수로서 역시 은퇴한 남편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자녀들은 프린스턴 스탠포드 다트머스등 명문대와 예일등 대학원을 나와 법률 금융분야에서활동한다. 일과 결혼,가족을 모두 성공시킨 비결은 무엇이었을까.“남들이 안할 때 일찍 시작해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그는 그래도 한가지만 들어달라고 하자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가능성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가 귀국함으로 해서 미국의 유용한 한 거점을 잃어버리게 된 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그러나 그는 “NIH는 은퇴한 나에게 국제협력국 상임과학자문관 직책을 주며방까지 마련해 주었다”며 “언제든 내역할이 필요한 때면 달려가겠다”고 말한다.나아가 미국의 친구들을 국내에끌어들여 합동강의를 꾸밀 계획도 갖고 있다고 들려 주었다.과학계의 맏누이 같은 그에게 칠순 나이로는 믿기지 않는 에너지가 느껴져왔다. 신연숙편집위원 yshin@. *신영애 박사는. ■32년 서울출생(본명 임영애,‘신’은 남편의 성)■53년 도미■56년 미국 머서대(조지아 메이컨 소재)졸업(화학전공)/58년 오하이오주립대(콜럼버스 소재)석사(무기화학전공)/60년 〃박사■61∼63년 일리노이대·65∼67 미국립보건원(NIH)산하 노인학연구센터 박사후과정■67∼89년 NIH 노인학연구센터 분자세포생물학연구실 무기생화학부 연구원■89∼91년 NIH 노화연구소 분자세포생물학 프로그램관리담당관/일반의학연구소 질환세포및 분자기초 프로그램 담당관/당뇨 소화 및 신장질환연구소 신진대사질환연구프로그램 담당관■91∼99년 〃 구강및 두개안면연구소 연구평가담당관■99년12월31일자로 NIH은퇴■2000년 5월 영구귀국■∼현재 과기부 산하 과학기술정책평가원 국제협력국 상임자문관/NIH 포가티국제센터 국제협력국 상임과학자문관/한국과학기술원·이화여대등 출강. * NIH와 한국인 과학자들. 미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메릴랜드주 베데스타 소재)은 미국정부 산하기관이지만 인류건강증진을 위한 의학연구의 세계적 메카라 할 만하다.연구영역만도 미국인들에 많은 심장병에서부터 AIDS,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전(全)지구적이며 새로운 지식의 싹이 보이는 곳이면 국적,소속,신분,연령을 불문하고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유명하다. 이같은 사실은 연간 203억달러(2001년기준)의 예산 중 자체 연구소에서 쓰는 돈은 10%에 불과한 반면 일반 대학및민간연구소,외국기관에 지원하는 연구비는 82%나 되는 것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나머지 8%는 행정비용).국립암연구소등 26개의 산하 연구소와 센터에 4.000명의 박사급연구진을 포함한 1만5,6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지만 NIH밖에서 연구에 참여하는 인원은 2,000개 연구소,5만명에이른다. 지난 2월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것을 비롯, 22년 사이 미국내 심장병사망율을 36% 감소시키고 5년간 암환자생존율을 60% 증가시켰으며 90년도 세계최초로 유전자치료를 실시하는등 연구성과도 눈부시다. 이곳에서 연구를 하거나 연구비를 지원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97명이나 될 정도다. 외국인들에 대한 문호도 활짝 열려있어 이곳서 연구하는한국인 과학자는 250명에 이른다.이는 중국(300명)에 이어두번째. 연구자로서 최고지위인 랩 치프(Lab Chief,세포신호전달연구실장)에 오른 이서구박사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정신의학연구소 진혜민박사·생명공학정보센터 장원희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해 화제가되기도 했다.국내에서는 서울대 연구처장을 맡고 있는 의대 박상철교수가 이곳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는등 학계,연구계 인사가 많아 동창회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미국인들의 NIH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높아만 가고 있다.NIH는 99년과 2003년사이에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으며올해도 약 6%,10억달러의 예산 증액이 이뤄져 이 계획은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신연숙편집위원
  • 아듀! 김포

    ‘안녕! 눈물과 환희의 김포 국제공항이여….’ 한국의 관문으로 온갖 애환이 서려있는 김포국제공항이 40년 역사를 접는다.29일 인천공항 개항과 함께 국제 항공편이 일괄 이전함에 따라 ‘국제’란 이름을 잃고 국내선전용으로 바뀐다. 입주기관 임직원 500여명은 23일 오후 3시 공항 경찰대에서 ‘송별회’를 열고 석별의 정을 나눴다.김포공항에는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외 항공사,김포세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공공기관,은행,면세점,음식업소,운송업체 등 ‘작은 국가’라고 불릴 만큼 각양각색의 210여개기관이 상주해 왔다. 김포공항은 때로는 추억의 장소로,때로는 아픔의 장소로국민과 애환을 같이했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60년대만 해도 전송하러 나온 가족·친지들이 청사 옥상 ‘송영대’(送迎臺)에 올라 이륙하는 항공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훌쩍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70년 일본 적군파의 일본항공 요도호 피랍사건 때는 기장이 항공기를 김포공항에 착륙시키자 공항측은 평양인 것처럼 속이기 위해 청사에 인공기(人共旗)를 내걸기도 했다. 80년에는 대한항공 KE015편이 김포공항에 착륙하던 중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1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86년 9월에는 공항청사 앞 휴지통에서 테러로 추정되는폭발사고가 발생해 5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김포공항은 1939년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에 일본군이 1,317m의 활주로를 건설해 ‘가미카제 특공대’의 훈련장으로 쓰면서 태동했다. 58년 국제공항을 여의도 비행장에서 김포로 이전했으나 3년 뒤인 61년에야 미국으로부터 항공관할권을 인수하면서명실상부한 국제공항으로 거듭났다. 60년에는 국제선과 국내선이 함께 사용하는 김포공항 종합청사가 준공됐고 국영항공사인 대한항공공사가 국내선정기 운항을 시작했다.69년 3월 한진상사의 조중훈(趙重勳)사장이 대한항공공사를 불하받으면서 ㈜대한항공을 출범시켜 민간항공 시대가 열렸다. 78년 국내선 청사 준공에 이어 80년 7월 김포공항을 관할,운영하는 한국공항공단의 전신인 국제공항관리공단이 창설됐다. 이후 국제교역 증대,해외여행 자유화,항공수요 폭주등으로 제2민항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88년 금호그룹이현재의 아시아나항공인 ㈜서울항공을 설립, 복수 민항시대가 열렸다. 김포공항 근무 경력만 6년인 김포세관 황규철(黃圭哲)휴대품통관국장은 “일제시대 출입국자에 대한 감시서(監視署)로 출발해 공항과 운명을 같이해온 김포세관도 뒤안길로 사라진다”면서 “몸은 인천으로 옮겨가지만 김포공항은 마음의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한수기자 onekor@
  • 타계한 경제거목 王회장 정주영씨/ 창업자 세대의 퇴장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의 타계로 한국경제를이끌어온 재계 1세대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이들은 건설 중공업 전자 자동차 무역 유통 식품 화학 에너지 등 국내 대표산업을 일구며 60∼80년대의 고도성장을이끌어왔다.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황제식 경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산업구조를 왜곡,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와 같은 위기를 초래했다는 평가도 있다. 창업 1세대로는 고 정 회장을 비롯,고 이병철(李秉喆) 삼성,고 구인회(具仁會) LG,고 최종현(崔鍾賢) SK 회장과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신격호(辛格浩) 롯데,조중훈(趙重勳) 한진 회장 등이 꼽힌다. 87년 타계한 이병철 회장은 섬유 가전 반도체 금융 등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업들을 키워냈다.48년 무역회사인삼성물산공사를 시작으로 제일제당 제일모직 삼성전자를설립했다.삼성은 지난해 그룹 순익 8조원의 기록을 세우며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다. 구인회 회장은 47년 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국내 화학공업의 기반을 닦았다.58년 금성사를 세워 라디오 선풍기 세탁기 냉장고 TV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69년 구인회 회장이 타계한 뒤아들 구자경(具滋暻)회장이 이끌다가 95년 이후 손자 구본무(具本茂)회장이 경영을 하고 있다. 최종현 회장은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석유화학·에너지 전문기업군을 만들었다.80년 대한석유공사 민영화 과정에서 쟁쟁한 재벌을 제치고 인수에 성공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지금의 SK텔레콤으로키웠다.재계 1세대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 전면에 남아있는신격호 회장은 42년 일본에 건너가 껌을 생산하면서 그룹의 토대를 닦았다.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월드등을 설립,식품·유통분야에서 최고기업을 만들었다. 조중훈 회장은 조선소 직공에서 시작해 대한항공을 만들어낸 입지전적 인물.68년 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권유로 대한항공을 인수,세계 10대 항공사로 키워냈지만대형 항공사고와 탈세 등으로 99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우중 회장은 67년 대우실업으로 출발,과감성과 추진력으로 ‘세계경영 대우그룹’을 만들고 전경련 회장까지 지냈으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그룹 해체의 쓴맛을 봤다.지금은 회계조작 등의 혐의를 받고 해외에서 떠돌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 *이병철·정주영 비교. 재계에서 고 정주영(鄭周永)현대 명예회장과 고 이병철(李秉喆)삼성 회장은 끊임없는 비교의 대상이다.국내 산업사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차지하는 위치에서도 그렇지만성격이나 외모,경영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극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이들의 성격차이가 곧바로 ‘현대식’과 ‘삼성식’을 나누는 기준이되기도 한다. 나이는 이 회장이 정 회장보다 다섯살 많다.이 회장이 천석꾼 집안에서 유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치밀하게 창업의 기틀을 다진 반면 정 회장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만큼 어려운 가정에서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학력도 정회장은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게 고작이나 이 회장은일본 와세다대에서 수학했다.그래서인지 이 회장은 경영교과서를 경영 실무에 적극 반영한 반면 정 회장은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해법을 선호했다.정 회장이 폐 유조선을 동원해 서산 간척지 물막이 공사를 마무리지은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성격도 정반대다.곱상한 이 회장은 술 잘마시는 사람들을질색했고, 타고 난 기골장대형인 정 회장은 술 못먹는 사람을 싫어했다.정 회장은 사원들 모임에 불시에 나타나 애창곡인 ‘해뜰날’ ‘나를 두고 아리랑’ ‘이거야 정말’등을 부르며 밤새워 술을 마시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흐트러지지 않는 옷차림에 표정 변화가 없었던 이 회장은 강한경남 억양의 사투리로 함축적으로 끊어 말하기로 유명했다. 상대방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들을 경우에도 결코 다시말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기질이 사업에도 그대로 반영돼 현대는 건설 자동차철강 중공업 등 중후장대(重厚長大)형 그룹으로, 삼성은섬유 가전 식품 금융 같은 경박단소(輕薄短小)형으로 발전했다. 김태균기자
  • 국민고충처리위원장 이원형씨 내정

    국민고충처리위원장에 이원형(李沅衡·57)변호사가 내정된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영광출생으로 원광대 법학과를 나온 이변호사는 지난58년부터 3년간 곡성·구례경찰서장을 하다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이후 서울지검 부장검사,제천지청장,11대 국회의원,국민회의 서울 은평을 지구당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씨줄날줄] 돌아온 은어

    은어는 청정수에서만 산다.이름처럼 그 맛이 담백하면서 오이 향이 은은하게 풍겨 여름날,선비의 술상에 은어회가 오르면 최고의 호사로 쳤다.도마에 오른 은어가 ‘죽는 것은 괜찮으나 상놈의 입에 들어갈까 슬프다’며 탄식했다는 얘기는아마도 어느 협량(狹量)한 양반이 아랫 것들 입에 들어가는것이 아까워 지어낸 말이리라. 1급수에서만 산다는 ‘물고기의 귀족’이 한강에 돌아왔다. 1999년,41년 만에 발견됐을 때만 해도 농반진반,“아마도 길잃은 은어인가 보다” 했는데 이번에는 어종으로서의 서식이 확인됐다. 또 1958년 이후 한번도 보이지 않던 버들메치,황쏘가리,젓뱅어,가숭어,점농어 등이 함께 나타난 것으로 보아 한강의 수질이 은어가 서식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고믿어도 될 것같다. 서울시 한강관리사업소가 국립수산진흥원 청평내수면 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5월16일부터 12월20일까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강에는 모두 56종의 물고기가 서식하는 것으로확인됐다.이는 1958년의 61종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한강의 어종은 1990년에는 21종까지 줄었다.1970년대의 한강 공유수면 매립공사와 1982년부터 5년간 시행된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서식환경이 변한 데다 수도권인구 급증으로 수질이급격히 떨어진 탓이었다. 서울시가 1958년 이후 여섯 번의 한강 물고기 생태조사를통해 한번이라도 한강에 서식했거나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확인한 어종은 모두 87종이다.따라서 싱어,묵납자루,쉬리,줄몰개,배가사리,꾸구리,버들치,갈겨니,종개,퉁가리,붕퉁뱅어,송사리,드렁허리,농어,둑중개,버들붕어 등이 더 돌아와야 할 한강의 물고기 가족이다.그동안 한강은 잠실수중보와 신곡수중보가 설치된 이후 유속이 크게 감소했다.그 결과 지수(止水)성 물고기가 늘어 1958년 조사 때 없었던 7종의 어종이이번 조사에서 나타났다.그 대신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 계류성 물고기가 크게 감소해 앞으로 어떤 물고기는 한강에서영원히 구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어쨌든 은어와 함께 한동안 사라졌던 물고기 가족이 나타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앞으로 남획을 막으면서 더 많은 연구와 투자로 한강의 어종을더 불러들여야할 것이다.물고기가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김재성 논설위원jskim@
  • 한강 은어 43년만에 돌아왔다

    ‘맑아진 한강,아직 쉬리는 없어도 은어,점농어는 돌아왔습니다’ 한강에 살고 있는 물고기 종류가 점차 한강 종합개발 이전상태를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한강관리사업소는 13일 국립수산진흥원 청평 내수면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한강의 어류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모두 56종의 물고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70년대의 한강 공유수면 매립공사와 82년부터 5년동안추진된 한강 종합개발사업이 끝난 뒤인 90년 조사 때 발견된 21종에 비하면 11년만에 35종이나 늘어난 것이다.58년 첫조사의 61종에 근접한 수준이다. 한강사업소는 서울시와 주변 수도권 도시의 하수처리율이높아짐에 따른 수질개선으로 생태계가 안정을 되찾고 있기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잠실수중보 아래에서 수질개선을 입증하는 대표종인 은어가 58년 조사 후 처음 발견됐고 그동안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버들메치,젓뱅어,가숭어,점농어,황쏘가리,강주적양태,날개망둑 등 7종이 처음 출현했다.잠실수중보상류에서는 대농갱이,납지리가,중·하류에서는 강준치,누치등이 대거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깨끗한 물에만 사는참게,황복,웅어,쏘가리,모래무지 등도 무리로 발견됐다. 그러나 58년 첫 조사 때 관찰됐던 싱어,묵납자루,쉬리,줄몰개,배가사리,꾸구리,버들치,갈겨니,종개,퉁가리,붕퉁뱅어,송사리드렁허리,둑중개,버들붕어 등 16종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58년 61종이 확인된 이래 87년 41종,90년 21종등으로 어종이 줄었다가 94년 39종으로 감소세가 반전된 이래 98년 46종,지난해 56종이 발견되는 등 점차 서식어종이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 한강관리사업소는 “86년 잠실·신곡수중보가 설치된 이후 유속이 감소하면서 정체된 물에 사는 지수성(止水性) 물고기는 늘어난 반면 흐르는 물에 사는 계류성(溪流性)물고기는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더욱 다양한어종이 살 수 있도록 체계적인 생태환경 복원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김정욱·백운출씨 한림원과학상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全武植)은 22일 한림원 청암과학상에 고등과학원 김정욱(金正旭·67)원장,한림원 덕명공학상에 광주과학기술원 백운출(白雲出·67)석좌교수가 제2회 한림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김정욱 원장은 중성미립자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로 원자핵을 처음으로 소립자로 취급,전자기의 기본성질 연구에 공헌했다.또 통일장 이론의 기본이 되는 핵력 등의 상수가 고(高)에너지 상태에서 통일된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공로 등을인정받았다.김 원장은 58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시 전체 수석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국민훈장 모란장(98년)을 받았다. 백운출 석좌교수는 360㎞ 길이의 광섬유를 생산할 수 있는‘대형 광섬유 모재의 고속인출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공로가 인정됐다.69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국민훈장목련장(99년)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23일 한림원 정기총회와 함께 열리며 수상자에게는3,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함혜리기자 lotus@
  • [1950년대 지구촌 신익희선생 여행기](2)

    *佛·獨등 서유럽 9개국 순방. UN군 우방국을 찾아 사의를 표하는 제2의 임무를 위해 낙위(諾威·노르웨이)의 오슬로와 서전(瑞典·스웨덴)을 거쳐 6월12일 정말(丁抹·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뻬이콘(베이컨)을 만드는데 가서 보니까 낳은지 8개월쯤 되는 어린 ‘도야지’를 잡아서 만들었다.목장 주인은 비밀을알려주겠다며 “새끼가 태어난지 2∼3일만에 다른 곳으로 데려가 인공으로 젖을 먹여 기르면 1년에 2번밖에 새끼를 낳지못하는 어미 도야지가 새끼를 3번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화란(和蘭·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헤이그에서는 애국열사 이준(李儁)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묘지 이름이 ‘힐 오브 뉴오크’라고 하니 신상릉(新橡陵)인셈이다. 마침 이역(異域)의 향수를 자아내는 궂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묘 앞에 서서 눈을 감으니 47년 전 선생이 순국하시던 때가 떠올랐다.일본 제국주의의 흉도(凶濤)는 일거에우리나라를 병탄하려 하였다.1905년 소위 을사보호조약으로우리나라는 이미 망한 것이다. 선생의 비문은 영문으로 ‘이준 선생은 1858년 한국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하여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서거하다’라고 쓰여 있었다.중간에 한자로 ‘李儁’이라고 표기돼있는데 필적으로 보아 선생의 생전 동지이던 이상설(李相卨)선생의 친필인 것이 분명하다.한시가 떠오른다. 壯志未酬一身輕 宇宙長留萬古名 我來今讀墓前碑 後人不禁追慕情 ‘큰 뜻을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몸을 던졌으니,그 이름이 우주에 오래토록 머물 것이다.내가 지금 와서 묘앞의 비를 읽으니 후세 사람들은 추모의 정을 금하지 못하겠구나.’ 선생의 유골을 파서 본국으로 가져 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이준 선생의 묘가 여기 있는 이유가 알려져야 하기에 말렸다. 20일 룩셈부르크를 떠나서 백이의(白耳義·벨기에)를 거쳐불란서(佛蘭西·프랑스)에 왔다.파리공항에서 전규홍(全奎弘)공사가 맞았다. 개스톤 몬너빌 상원의장은 불란서 식민지인 남미 혼혈에 흑인 계통 신사로 언변과 풍채가 상당한 장년 정치가였다.에드워드 해리오 하원의장은 내가 한국의 사정을 말할 때마다 “트레비용”을 연발하니 그것은 우리말로 “옳거니 과연 그렇지요”라는 말이다. 내 나라 일에 바쁜 나로서 남의 나라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고 싶지 않으나 이 나라는 나라 일에 성실한 책임자가 적고정부 인사라는 이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국외로 도피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니 이 나라의 전도(前途)가 어렵다는 생각이들었다. 파리의 밤은 주록등홍(酒綠燈紅).술은 푸르고 등불은 붉으며 미려한 부인들이 곱게 단장하고 밤을 낮 삼아 삼삼오오떼를 지어 몰려 다니니 파리는 과연 향락의 도시인 동시에불란서를 좀먹는 죄악의 도시다.경계의 거울로 삼지 않을 수없다. 이즈음 본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통일없는 휴전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과감한 영단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했다. 이태리(伊太利·이탈리아) 로마에는 7월2일 도착했다.가톨릭 법황(法皇·교황)의 나라인 바티칸이라는 독립국이 특이하다.인구 1,000여명의 독립국 형태로 있으면서 법황이 황제노릇을 한다. 피우스 법황은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관심을갖고 있었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법황은 “한국에 대하여많은 도움을 못 주어 대단히 미안하다.힘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고난 많이 받은 한국은 응당 원조해야 할 것이다”라면서 친절하고 정다운 말을 하였다.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전쟁 전에 법황의 평화 권고에 좀더 귀를 기울이고 이성적으로처리했다면 수백만 인류를 전화의 불구덩이에 몰아넣지 아니하였을 것이요,좀더 조기강화(早期講和)를 하였어도 그 화를 감소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종교를 믿지 아니하고 독재의폭군이던 무솔리니도 법황에게만은 경의를 표한 흔적이 있다. 그것은 전 세계에 널려있는 가톨릭 교도의 여론을 계산해넣은 정치적 고려가 아닌가 한다. 정리 안동환기자sunstory@
  • 이응노화백 거주 ‘수덕여관’ 경매에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화백이 살았던 ‘수덕여관’이 경매에 나온다. 9일 충남도에 따르면 이 화백의 첫째 부인인 박귀희(朴貴姬·92)씨 측은 ㈜서울경매를 통해 수덕여관을 경매에 내놨다. 경매는 다음달 실시될 예정이다. 충남 홍성 출신의 이 화백이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수덕사 경내에 있는 건평 83평짜리 초가인 수덕여관을 산 것은지난 50년. 6·25전쟁이 터진 뒤 부인과 함께 고향으로 피난을 온 이화백은 이 여관을 구입,6년간 운영하다 58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이후 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2년여간 옥고를 치르고 나온 뒤 잠시 이 여관에 머물렀다.그 때 앞마당에있는 바위 2개에 10m와 2m짜리 추상화를 새겨놓았다. 현재 여관 소유권자는 고암의 손자인 이종진(李鍾震·51)씨로 경기도 분당에서 어머니 박씨와 함께 살고 있으며 친척에게 수덕여관의 관리를 맡기고 있다. 충남도는 96년 수덕여관을 도 기념물 103호로 지정했다. 예산 이천열기자 sky@
  • 日산케이신문 ‘모택동 비록’

    마오쩌둥(毛澤東)이 곡물·철강 증산을 위해 1958년부터 추진한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화는 실패로 끝났다.그에 따라 류샤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 등 실권파가 권력 전면에 나섰다.마오쩌둥은 권력 회복을 위한 음모를 꾸몄다.66년부터 학생들을 ‘홍위병’으로 동원,정적을 무자비하게 제거한 문화대혁명이 그것.국가주석 류샤오치를비롯해 피해자가 1억명에 달했다. 마오쩌둥은 ‘조반유리’(造反有理·항거에는 이치가 있다)라는 말로 홍위병의 방종을 부추겼다.76년 마오쩌둥 사망 후 4인방이 체포됨으로써 10년만에 막을 내린 문혁의 내막은 오랜 세월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지난 99년 중화인민공화국 50주년을 전후해 자료들이 공개되기시작했다. ‘모택동비록’(문학사상사)은 일본 산케이신문 특별취재반이 중국현지에서 이같은 자료들을 수집해 문화대혁명 전후의 상황을 정리한중국의 현대 권력투쟁사다.류샤오치 일가가 비판대에 서고,장칭(江靑)이 실크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수입 비디오를 보다 순순히 체포되는 모습 등이 박진감 넘치게재구성됐다. 마오쩌둥은 “나는 평생 두가지 일을 했다.장제스(蔣介石)와 일본인들을 몰아내 나라를 세웠고,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했다.그러나 81년 6월 중국 공산당 11차 6중 총회의 결의는 “마오쩌둥동지가잘못 일으킨 문화대혁명은 반혁명 집단에게 이용돼 당과 국가와 인민에게 크나큰 재난을 불러일으킨 내란”이라고 평가했다.적도 자기편도 속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음산하고 처참한 권력투쟁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이 책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주혁기자
  • 김정일 訪中/ 경제특구 시찰할듯

    16일 현재 상하이(上海)에 체류 중인 것으로 확인된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는 앞으로 6일간 중국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김 위원장은 체류기간 동안 상하이의 상징이자 공업·금융·첨단산업지대인 푸둥(浦東)개발지구를 시찰할 예정이다.개혁·개방의 전진기지이자 공업지대인 광둥성(廣東省) 선전(深과)경제특구도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푸둥(浦東)=서울시만한 신도시 개념의 푸둥지구는 중국 정부가 경제발전 장기 전략의 하나로 국가차원에서 개발한 곳.푸둥개발계획은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상하이 공산당서기였던 88년 당시 시장이던주룽지(朱鎔基) 총리와 함께 만들었다.푸둥을 홍콩에 버금가는 금융도시 만들어 중국이 ‘아시아 경제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는 상하이(上海) 발전의 핵으로 삼겠다는 것이 개발 목표였다. 푸둥은 뉴욕의 맨하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그 중에서도 루자쭈이 금융무역구는 80층을 넘는 빌딩들이 숲을 이룬다.푸둥을 가로지르는 폭 100m의 스지다다오(世紀大道)는 파리의 샹젤리제를벤치마킹했다.도로외곽에는 경제발전 외에 인간의 삶을 함께 생각한다는 모토 아래 4겹의 나무숲을 만들었다.스지다다오는 푸둥을 가로질러 연간 8,000만여명의 여행객과 500만t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능력을 갖춘 푸둥 신공항까지 이른다. ■다롄(大連)=랴오둥 반도의 서남쪽 끝에 위치한 다롄은 인구 550만명의 대도시.중국의 항구·공업·무역·관광 도시다.면적은 1만2,000㎢.현재 중국에서 가장 개방된 도시로 외국기업 투자가 활발한 지역이다.중국내 경제기술개발구 중 하나며,주로 일본기업들이 전자산업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97년 포항제철이 공장을 세웠으며,LG산전 등이 진출해 있다.수만명의 조선족과 1,000여명의 한인이 체류하고 있다. 다롄은 ‘중국에서 가장 깨끗한 곳’,‘중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90년대 초 중국 8대 원로인보이보(薄一波)의 아들 보시라이(薄熙來) 시장 재임 6년간 연 16%의고성장을 이뤘다.90년대 후반 울타리를 없애자는 캠페인에 따라 시청사 등 주요 관공서와 일반 대형 건물들까지 담을 허무는 등 도시 미관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다. ■선전=세계 최대의 정보기술 산업기지로 떠오르는 ‘중국 경제특구1호’다.1980년 중국 개혁·개방의 전진기지이자 이후 20여년간 중국이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초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변화의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곳. 중국의 100대 기업 중 무려 23개의 기업이 광둥성내에 있고,수출실적을 따져봐도 선전-상하이-둥관의 순이니 선전특구는 그야말로 중국경제성장의 1등 공신인 셈이다. 선전시를 이같은 정보기술 산업의 세계적 생산거점으로 만든 원동력은 바로 젊고 의욕있는 인재들의 대거유입으로 인한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 이런 이유로 일본·대만·한국업체 등을 비롯,외국계 전자부품업체들도 최근 이곳으로 대거 몰리고있다. 선전특구 주민들의 평균연령은 30세를 넘지 않는다. 선전특구는 오는 2008년까지 조성될 2,000만평 규모의 북한 개성국제경제지대(개성공단)의 선행모델이 되고 있어 남북한의 경제적 실익과도 관계가 깊은 곳이다. 이진아·이동미기자jlee@. *상하이 어떤 곳인가. 양쯔강 하류에 자리잡은 세계적인 무역항 상하이(上海).상하이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42년부터다.아편전쟁 뒤 체결된 난징조약에 의해 개항구(開港口)가 됐기 때문이다.그로부터 158년이 지난지금 상하이는 세계 10번째 안에 드는 무역·경제·금융의 중심지로탈바꿈했다. 상하이시는 4년 전부터 장강(張江) 하이테크개발구 거리를 야심차게개발하고 있다.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장강의 모델이다. 장강은 상하이가 기술도시임을 대변해준다. 상하이시와 중국 정부가 1996∼2000년까지의 5개년 계획중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곳은 푸둥(浦東)특구.지금은 세계 100대 기업중 57개기업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외국금융기관 46개 지점과 142개 사무소도 개설됐다.푸둥은 상하이가 경제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다. 상하이는 한국에도 친숙한 도시다.상하이의 마땅로(馬當路)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옛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임시정부 청사에는 1926년 12월부터 1932년 5월까지 6년동안 이곳에서 활동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문헌·실물자료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상하이가 이처럼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역사적 배경 외에도 상하이방(幇)의 역할도 크다.상하이 출신이거나 이곳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해온 상하이 인맥을 일컫는 상하이방은 장쩌민(江澤民) 당총서기 겸국가주석을 정점으로 주룽지(朱鎔基) 총리,쩡칭홍(曾慶紅) 당조직부장 등이 포진해있다.쉬쾅디(徐匡迪) 현 상하이 시장도 주 총리가 밀어주는 실세다.황쥐(黃菊)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겸 상하이시 당서기는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푸둥 개발주역 쉬쾅디 상하이시장. 푸둥(浦東)특구를 실질적으로 일궈낸 쉬쾅디(徐匡迪) 상하이(上海)시장(64)은 당간부 출신이 아니면서도 고위직에 오른 전형적인 기술관료다.그의 고속 출세에는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도움이 컸다.하지만 과학기술과 교육분야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는 36년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의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났다.59년 중국 베이징(北京) 철강학교를 졸업한 뒤 모교에서 야금학을 가르쳤다.항공기에 사용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개발해훈장을 받을 만큼 야금학에서는 일인자였다.중국인으로는 드물게 80년대 영국과 스웨덴에서 유학했다. 89년 상하이시 교육부장에 임명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3년 뒤인 92년에는 상하이시 행정부시장으로 승진했다. 그해 상하이방의 도움으로 중국공산당 중앙후보위원에 올랐다.94년에는 시 부서기,95년에는 시장으로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97년에는 당중앙위원으로 임명돼 권부의 핵심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 그는 상하이를 방문한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푸둥특구의 눈부신발전상을 소상하게 보여주고 북한 정보기술(IT) 개발의 모델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충식기자
  • [공직인맥 열전](13)문화관광부.상

    문화관광부는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에 발족한 공보처를 뿌리로 하지만,1990년 신설된 문화부가 순수혈통의 시조다.1993년에는 체육청소년부와 합쳐 문화체육부가 됐고 1994년 당시 교통부의 관광국을 넘겨받았다.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된 1998년 정부조직 개편에서 폐지된 공보처의 일부 기능을 이관받아 현 체제를 확립했다. 옛 문화공보부 출신의 문화관료들이 주축을 이루지만,교육부를 고향으로 하는 체육청소년부와 교통부 출신 등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편가르기가 적지않았던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최근에는 문화와 체육·청소년·관광 부서 사이에 무리없는 순환인사가 이루어지는 등 조직이안정을 찾고 있다. 이홍석(李弘錫)차관보는 체육부가 고향이지만 로스앤젤리스와 뉴욕의문화원장을 거치면서 문화수업을 쌓았다.신중한 성격에 판단력을 갖추었다.카리스마가 있지만 위압적이지 않고,옆집아저씨를 대하듯 부드러운 인상이다. 박문석(朴文錫)기획관리실장은 문예지를 통하여 등단한 시인답지 않게 강력한 추진력으로 대외업무에서 적잖은 성과를 거두었다.그러나같은 이유로 업무추진 과정에서는 종종 ‘소리’가 나고,친화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김순길(金順吉)종무실장은 신문행정국장과 광고진흥국장을 역임한 공보처 출신.1998년 ‘대학살’때 살아남은 데는 부여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이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서민적이지만,뛰어난 기획집행력으로주위를 놀라게 한다. 오지철(吳志哲)문화정책국장은 문화부 최고의 브레인이라고 할 만하다.광범위하게 업무를 꿰뚫고 있는데다,성격도 합리적이어서 존경받는다.대한체육회 국제과장에서 체육부로 발탁된 경력이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을만큼 능력을 인정받아,1급 승진 1순위라는 데 이견이 없다.소신을 발휘해야 할 대목에서 주춤거린다는 평도 있다. 노태섭(盧太燮)예술국장은 판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하여,말많고 탈많은 문화예술 지원업무를 무리없이 교통정리한다.일 욕심이 많은 반면잔정도 많고 따뜻한 성격이다. 임병수(林炳秀)문화산업국장은 시골사람같은 외모에서 드러나듯 선이굵고 대범한 ‘맏형’.합리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나면 잔가지에 신경쓰지 않고 돌파력을 발휘한다.지프를 타고 출퇴근할 정도로 외부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성격으로,휴일이면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 농장을 가꾼다. 박양우(朴良雨)관광국장은 1958년생으로 문화부의 차세대를 이끌고갈 대표주자 가운데 한사람이다.업무능력과 집중도가 뛰어나고 리더쉽을 발휘한다.항상 웃는 표정으로 부처의 분위기를 밝게하는 데 한몫한다. 배종신(裵鍾信)체육국장은 교육부 시절 체육정책과 인연을 맺었다.성실하고 뚝심있다.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부하직원의 의견을 많이 듣고 반영하는 스타일이다.올해 중앙공무원교육원에 입교한다. 정진우(鄭鎭宇)청소년국장은 친화력이 있으면서도 업무추진에서는 집요한 성격을 보여준다.육사 25기로 문화부 내 이른바 ‘유신 사무관’ 출신의 리더.문화부에 사관학교 출신이 적잖게 요직에 자리잡은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정국장의 존재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자리가오는 3월 개방형 직위로 전환돼 정국장은 곧 외부 요직으로 옮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김삼웅 칼럼] ‘소용돌이 정치’의 현주소

    그레고리 헨더슨이 1968년에 저술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는 지금도 한국 정치의 속성을 이해하는 교과서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주한미대사관 문정관과 정치 담당 자문을 하면서 ‘소용돌이 치는’ 한국 정치의 현장을 지켜보고 분석한내용을 한권의 책으로 저술했다. 헨더슨이 한국에 체류한 시기는 이승만의 폭정이 절정에 달한 자유당 말기부터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우여곡절 끝에 ‘민선 대통령’에 취임한 기간에 해당된다. 헨더슨은 조선시대에서 일제 식민통치와 미군정을 거쳐 이승만·장면·박정희정권에 이르는 한국 정치의 양상을 정치문화와 정치 발전의 관점에서 분석했다.그리고 한국 정치의 본질을 네 부분으로 집약했다. 첫째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적 열쇠는 동질성과 중앙집중에있으며,둘째는 엘리트와 대중간에 매개 그룹이 없는 사회관계로 인해한국 정치의 역학은 사회의 모든 활동적 요소들을 태풍의 눈인 중앙권력을 향해 치닫게 하는 거센 소용돌이(vortex)를 닮았으며, 셋째는이런 중앙집중적환경 속에서 한국의 정치는 당파성과 개인 중심, 기회주의성을 보이면서 합리적 타협의 기초를 결여하게 되었으며,마지막으로 이런 소용돌이 정치 패턴에 대한 처방은 다원주의와 분권화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외국인이 분석한 한국 정치의 틀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양상으로 운영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더욱 안타까운 일은한국 사회의 소용돌이 패턴이 중앙정치 등 상부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기저에도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사회 발전과 정치 변동에 따른 정치인의 새로운 충원과 도태가 이루어지고 헌법과 국회법 등 법률과 제도가 바뀌었으며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어느 정도 분권화도 이루어졌다.또 수평적 정권 교체로인권이 크게 신장되고 사법권과 민간단체들의 영향력도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다원성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정치문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오히려 소용돌이 패턴은 근대화 과정에서 변종되어 악화된 감이 없지 않다.제도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의인주의,사적관계를 중히 여기는 사고,형식주의나 명분주의 집착 등전통적인 태도는 여전히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혈연·학연·지연 등연고주의는 개인이나 각급 단체,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부동의 사회생활법칙으로 자리잡고 있다.무엇보다 저자가 소용돌이를 잠재울대안으로 제시한 중간 매개 집단과 정치 세력들마저도 자체 내에 소용돌이 패턴을 복제하는 경향을 보인다.”(김달중,소용돌이의 정치해제) 지금 우리 정치는 다시 ‘소용돌이’의 블랙홀로 다가서고 있다.1996년 4월에 실시된 제15대 총선때 1,000억원대에 이르는 안기부(현 국정원)자금이 구 여권에 흘러 들어갔다는 검찰의 수사가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정국이 혼미 양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경제 회복을 위한 일대 계기가 되기를 바랐던 청와대 여야 영수회담이 입씨름으로 결렬되면서 타협을 모르는 여야 대립은 안기부 선거자금문제가 터지면서 극한 대결로 치닫게 되었다. 한국 정치의 속성대로 또 한차례 정국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것이고,이로 인해 경제 위축과 사회적 혼미는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검찰은 그동안 실추된 권위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철저하게 진실규명 차원에서 수사해야 한다.국가 안보의 막중한 책임을 맡은 안기부의 국가예산이 특정 정당의 선거자금으로 전용됐다면 용서받기 어렵다. 민주당은 이 사건을 국면 호도용이나 다른 정치 목적에 이용해서는안된다.어디까지나 진실규명에서 검찰의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한나라당도 범법 사실을 야당 탄압으로 몰아 정치 공세를 펼 것이 아니라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소용돌이 정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과감한 분권화와 지방자치의 활성화 그리고 정당의 민주화가 요구된다.이것은 헨더슨의 주문이기도 하다. 국민은 지금 경기 침체와 실업 그리고 때마침 불어닥친 폭설과 추위에 떨고있다.정치권은 안기부자금 구 여권 불법 유입사건이 ‘사회전체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진상규명과경제 살리기에 협력해야 할 것이다. 김삼웅 주필 kimsu@
  • 농어민·中企人 새해소망/ 대구 화성산업(주) 이인중사장

    “부실업체를 하루빨리 시장에서 퇴출시켜 경쟁력을 가진 우량기업의 경영부담을 덜어줘야 합니다” 화성산업㈜ 이인중(李仁中·54·대구시 중구 덕산동)사장은 “지난해 1년동안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펼친 끝에 워크아웃 기업 가운데가장 단기간내 기업개선 작업을 마쳤다”면서 “새해에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1군 건설업체로 대구 동아백화점 등을 경영하고 있는 화성산업㈜은IMF관리체제 이후 급격한 매출 감소와 아파트분양 저조로 98년 11월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등 58년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신청 당시 지원받기로 한 신규자금 350억원을 한푼도 지원받지 않고도 차입금 1,700억원을 상환하는 등 20여개월만인 지난해 8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 이 사장은 “‘회사를 살리자’며 모든 임직원들이 아파트 분양에발벗고 나섰고 알짜 부동산 매각,인원 감축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며 “새해에도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 이내로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해 건설경기 전망에 대해 “수주물량 격감과 업체간 과당경쟁에 따른 채산성 악화,신인도 추락으로 인한 자금조달 어려움 등으로 여전히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부실업체를 시장에서 퇴출시켜 가격,품질,기술 등에서 경쟁력을 가진 우량기업의 경영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화성산업은 새해 아파트 리모델링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토목부문에서는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역을 넘어 전국을 대상으로 수주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이 사장은 “지역 건설업체는 막대한 자금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대형 수도권 업체에 밀려 고사직전에 있다”면서 “지방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지역의무공동도급 수급비율을 높이는 등 특단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관급공사의 경우 공사대금 지급이 적기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산을 조기에 집행하는 등 정책적인 배려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화성산업은 올해 유통분야의 인터넷 비즈니스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말 문을연 동아백화점 인터넷쇼핑몰과 다점포화된 오프라인의 조화를 통해 인터넷 비즈니스 경쟁력 확보에도 적극 나선다는구상이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中~타이완 ‘小3通’ 새달부터 열린다

    타이완정부는 내년 1월 1일 중국 푸젠(福建)성 도시들과 부분적으로개시되는 소3통(三通:通航,通商,通郵)의 1단계 준비를 마쳤으며 3∼5개월의 시험 운영을 거쳐 확대 실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일간 명보(明報)는 25일 타이완 대륙위원회의 덩전중(鄧振中)부주임 말을 인용,“소3통의 1단계 작업이 완료됐으며 이를 3∼5개월실시한 후 완벽한 평가를 거쳐 확대 실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의 옌완진(顔萬進) 부비서장은 이날 “소3통개방 후의 분쟁등 사건 발생에 대비해 ‘소3통 행정협조센터’ 산하에 양안 사무처리 소조를 운영,모든 문제들을 재량껏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소3통의 실험 실시를 위해 설치된 행정협조센터에는 행정원 교통부와 재정부,농업위원회,경찰,해양순찰대등 각 부서의 부책임자급 인사들이 참여,부처별 유기적인 협조를 모색할 방침이며 행정 편제상 (타이완)푸젠(福建)성에 속하는 최전선 진먼(金門)과 롄장(連江)등 2개현정부 관계자들도 위원회에 참여한다. 진먼,롄장 현정부 관계자들의 참여는 진먼다오 주민들의 편의 지원및 정부의 3통 실시 의지 등에 대한 주민들의 의혹을 해소시키기 위한 것으로 신문은 풀이했다. 타이완 교통부는 보도진 편의를 위해 랴오루어완(料羅灣) 부두의 컨테이너 박스를 임시 여객 서비스센터로 개조했으며 통관 등의 예행연습 상황 취재도 허용하고 있다.정부는 1958년 8.23 포격전이 발생한 격전지인 진먼다오가 양안교류의 매개로 변신했음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한편 개항일인 1월 1일에는 치우이런(邱義仁) 행정원 비서장(총리비서실장)이 진먼다오와 함께 소3통이 실시되는 마주(馬祖)를 시찰,현지 사찰인 톈허우궁(天后宮)과 중국 푸젠성 푸저우(福州)간의 예불신도 500여명의 교류 현황을 지켜볼 예정이다. 또 진먼다오와 푸젠성샤먼(廈門)간의 소3통 개방행사에는 예쥐란(葉菊蘭) 교통부장과 대륙위의 덩 부임 등이 참석한다. 홍콩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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