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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립 60돌 LG그룹 어제와 오늘

    창립 60돌 LG그룹 어제와 오늘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대표적인 그룹인 LG그룹이 5일 창립 60돌을 맞는다.LG는 보다 젊어진 경영진과 첨단기술을 앞세운 진취적인 경영방침을 발판삼아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과 그 실행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락희(樂喜)를 아십니까 2006년 기준 7조 5650억원의 자본금과 매출 80조원대,14만명의 대가족을 거느린 LG의 역사는 1947년 1월5일 부산 서대신동에서 시작된다. 당시 41세였던 구인회 창업회장은 사돈사이였던 고(故)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과 함께 화장품을 생산하는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세워 LG의 초석을 놓았다. 3년 뒤의 한국전쟁으로 국민의 의식주가 황폐화된 가운데 LG는 빗, 비눗갑, 칫솔, 식기류 등의 플라스틱 제품을 시작으로 생활필수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67년 국내 최초의 민간정유회사인 호남정유를 설립하는 등 성장을 거듭했고 84년 1월부터 럭키금성그룹으로 새로 태어났다. 그후 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세계화와 21세기 경영을 위한 포석으로 그룹명칭을 LG로 통합했다. ●럭키크림에서 초콜릿·샤인폰까지 세상에 락희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제품은 ‘럭키크림’이다. 갈색 용기에 당시 미국 유명 여배우의 얼굴을 담은 이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54년 최초의 국산치약인 ‘럭키치약’을 개발, 당시 국내치약시장을 독점하던 미국의 콜게이트 치약을 제치고 국내 시장을 이끌게 된다. 특히 66년에는 가루형 합성세제 ‘하이타이’를 내놓으며 주부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사업영역을 확장하던 LG는 58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했다. 이듬해 국내최초로 라디오를 생산, 전자산업의 신기원을 개척했다.60년대 접어들면서 LG는 국산 가전제품시대를 열었다.60년에는 선풍기,61년에는 자동 전화기에 이어 65년에는 국내 최초의 국산 냉장고를 선보였다.70년대에는 에어컨, 세탁기, 컬러TV 등을 내놓으면서 가전제품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다. 82년 국내 최초 마이크로 컴퓨터 ‘마이티’를 개발하면서 LG는 첨단제품 시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95년에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 상용화에 성공했다.2003년에는 국내 제약사중 처음으로 미국 FDA의 정식승인을 받은 국산 신약 팩티브를 선보였다.2004년에는 세계 최초의 지상파DMB폰,2005년에는 생방송을 멈출 수 있는 타임머신TV를 개발했다. 지난해에는 1000만대 판매를 앞두고 있는 ‘초콜릿폰’과 후속작 ‘샤인폰’을 내놓았다. 또 100인치 LCD패널이 세계 최대 LCD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등 기술을 인정받았다. ●100년 기업을 향한 LG 지난 2일 시무식에서 구본무 회장은 혁신과 공격적인 경영을 주문했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면 무한경쟁시대에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잡음없이 LS그룹,GS그룹이 분가한 뒤 ‘일등LG’를 천명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LG전자 등 주력사업분야의 부진을 놓고 LG그룹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전자·정보통신 등 주력분야의 성패에 LG그룹의 미래,LG그룹의 100년이 달려 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책에 미친 책 사랑… 한국 출판계의 죽비

    [그의 삶 그의 꿈] 책에 미친 책 사랑… 한국 출판계의 죽비

    글 최준 시인, 사진 한찬호 사진작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그를 만나기 전에 책을 한 권 읽었다. 굳이 말하자면 한 사람의 자전 에세이라 할 수 있을까. 회고록 엇비슷한데, 주인공도 젊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서 단숨에 읽어치웠다. 글쓴이는 전문 글쟁이가 아닌데도 이야기 사이사이에다 맛깔스런 양념을 칠 줄 알았고, 좀 그렇다 싶은 부분에 이르러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의뭉스럽게, 미련 없이 커튼을 내릴 줄도 알았다. 책의 주인공은 58년 개띠. 젊다. 그러나 육체적 젊음 이상으로 활달하고 부지런한 사람. 의지가 강해서 한 번 마음먹은 일이면 끝을 보는 성격. 반면 냉정한 면도 없지 않아서 상황 판단이나 사태 파악에 큰 실수가 거의 없다. 책 더미에 묻혀서 청춘을 다 보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 이렇게 일방적으로 머릿속에다 대략 정리하고, 책의 주인공을 만나러 홍대 입구로 간다. 사무실을 찾아들어 건네주는 명함을 받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그렇다. 다소 생소하지만 그는 지금 출판과 출판 마케팅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이에 관한 강의도 하고, 이런 저런 관련 매체에 글도 많이 쓴다. 그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출판인이나 출판인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연구소인 셈인데, 이에 관한 잡지도 만들고 단행본도 많이 냈다. 연구소에서 그는 책에 관련된 책만 펴냈다. 열정의 근원 그는 출판이 주먹구구식의 한탕주의가 아닌 과학이며 경영이라 한다. 복권당첨 같은 베스트셀러의 환상에만 빠져 있는 우리나라의 출판 현실과는 정반대의 지론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출판사들이 갖고 있는 근시안적 안목이 무엇보다 큰 문제인 듯하다. 소신도 의지도 없이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출판인들의 안일한 태도는 그의 제1의 비판 대상이다. 그는 출판 전반이 어렵게 된 현실도 눈여겨보고 있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런 출판 현실을 낳았지만 가장 실제적인 요인으로 서적의 인터넷 할인판매제도를 꼽는다. 모든 상거래 행위에는 일종의 룰이 있다. 서적 인터넷 할인판매는 이 룰을 깨뜨리는 행위인 것이다. 책값을 할인해 주고, 끼워 팔기도 하는 이런 변칙적인 상행위에 일부 출판사들이 동참하면서 오랫동안 오프라인의 한 축을 형성했던 동네 서점들이 사라졌다. 그는 이 현상을 출판계의 ‘자기발등찍기’라 말한다. 사무실에서 마주앉아 있는 동안 그는 책 얘기만 했다. 어느 특정한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출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한 자신의 소신과 견해를 말했다. 종이책의 소멸이니 출판계의 위기이니 말들이 많지만 그는 한국 출판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도박판에 들어앉은 듯 재수 경영에 목숨 건 일부 출판인들처럼 주먹구구식이거나 감각에만 의존하는 견해가 아니다. 전문가다. 전문가답게 자신만의 대안과 구체적인 제안을 가지고 있다. 우리 출판계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다. 책을 정말 사랑해서 출판계에 뛰어들었고 그 애정에 비례하는 열정을 가지고 출판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 책에 미친 사람 그가 자신의 저서에 쓴 프롤로그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어느 날 그의 연구소로 만화전문 출판사 사장이 찾아왔다. 영업자를 구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좋을지 난감하다는 것이었다. 만화에 미친 사람을 뽑으세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출판사 사장이 반문했다. 결국은 다 열정입니다. 만화책에 미친 사람이 만화를 팝니다. 그가 대답했다. 속는 셈치고 사장은 만화에 미친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어땠을까?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제안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안 썼을 테니까. 그는 열정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열정은 사랑의 현실적인 발현이다. 출판 입문에서 현재까지 그는 오직 책 사랑으로, 책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왔다. 그의 출판사 입문은 1982년이었다. 출판 편집자 생활 1년에 출판 영업자 15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세우고 출판 비평가로 9년, 그러니까 25년 동안을 책과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그의 인생은 책으로 깔린 길로 책을 지고 가는 셈이다. 독자들은 그를 잘 모를지 모른다. 알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판에 관련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는 한국 출판계의 죽비다. 입바른 소리 잘 하고, 불의를 못 참고, 누구보다도 출판계의 앞날을 걱정하고 그 대안에 골몰하고 있는 사람이다. 인문학이 부활해야 격동과 혼란의 시기였던 1980, 90년대에 그는 《창작과 비평사》의 영업담당자였다. 출판사 영업담당자의 업무는 서점을 상대로 책을 파는 일. 그러니 출장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 그는 모든 출판인의 꿈인 밀리언셀러도 여러 권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문 열게 했다. 이때부터 그는 출판비평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북페뎀》, 《기획회의》와 같은 출판 발전을 모색하는 잡지도 발간한다. 자신이 출판사 영업담당자로 있던 1980년대를 회상하며 그는 인문학의 소멸을 많이 걱정했다. 인문학은 모든 분야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다. 80년대는 누가 뭐래도 인문학의 시대였다. 대학 정문 부근에는 적어도 한두 개의 인문학 전문 서점들이 있었고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눈을 뜨고 시대의 모순과 불행을 바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웬만한 출판사에서는 인문학 ‘총서’나 ‘신서’ 시리즈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 승부의 단맛에 취한 출판사들이 인문학 서적 출판을 멀리하면서 인문학이 설 땅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는 인문학의 위기가 학자와 출판인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데모’보다 ‘자기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출판에 관한 활발한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반론도 있기를 바란다. 논쟁 가운데서 대안을 발견하고 길을 찾자는 것이다. 외부 상황에 일희일비하는 소용돌이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출판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한기호. 그는 책 더미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책 더미 속에다 몸을 묻는 사람이다. 책에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게 자신에게 바라는 그의 마지막 희망은 아닐까.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이미경 CJ 부회장이 ‘라디오 스타’ 재개봉한 까닭

    이미경 CJ 부회장이 ‘라디오 스타’ 재개봉한 까닭

    ‘영화계의 큰 손’으로 불리는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이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18일 CJ에 따르면 CJ계열 멀티플렉스인 CJ CGV는 현재 서울 압구정, 인천, 동수원, 부산 동래 등 전국 4개관에서 이미 종영됐던 ‘라디오 스타’를 재상영하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재상영되기 시작한 ‘라디오 스타’는 30∼50대 관객으로부터 꾸준한 호응을 받고 있으며 20일까지 CGV 4개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CGV측은 밝혔다. 이미 종영된 영화를 재개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라디오 스타’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던 이 부회장이 직접 지시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친누나인 이 부회장은 평소 CJ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에게 “영화시장의 잠재수요 고객인 40∼50대 관객의 발길을 영화관으로 유인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으며 ‘라디오 스타’의 CGV 재개봉도 이 같은 경영철학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고 CJ측은 설명했다. ‘라디오 스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이 부회장이 “‘라디오 스타’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40∼50대 관객의 감성에 맞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으며 40∼50대는 10∼20대에 비해 반응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관람시기를 놓친 관객을 위한 재상영을 적극 검토해 보라.”고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는 것.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40∼50대 관객의 수요 개발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면서 “주요 계열사에서도 40∼50대 관객의 수요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1958년생인 이 부회장은 재작년부터 CJ그룹의 차세대 핵심사업으로 손꼽히는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서장훈 중국전·카타르전 벤치신세 왜?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 2006년 12월13일은 한국 농구사에 악몽으로 남게 됐다. 한국은 바스켓볼 인도어홀에서 열린 도하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8강전에서 중국에 52-68로 패배,1958년 도쿄 대회 이후 48년 만에 노메달이라는 치욕을 당했다. 한국농구가 고개 숙인 날 공교롭게 10여년 동안 대표팀의 간판 센터로 활약한 서장훈(32·207㎝·삼성)은 코트에서 볼 수 없었다. 예선 4경기 중 2경기 선발 출장을 비롯, 평균 16분여 동안 9점에 3.3리바운드를 책임졌지만 정작 중요한 카타르와 중국전에선 줄곧 벤치를 지킨 것.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한 하승진(21·223㎝)은 이날 16점 16리바운드의 맹활약을 펼쳐 한국농구의 희망임을 증명했다. 다만 포스트에서 분전하던 김주성(27·205㎝·동부)이 일찌감치 파울트러블에 걸리면서 경험이 일천한 하승진을 도와줄 빅맨이 아쉬웠고 자연스레 시선은 벤치의 서장훈에게 쏠렸다. 공식적인 결장 이유는 허리 부상 및 목 통증. 하지만 소속팀 삼성에서 외곽플레이가 뼛속 깊이 밴 서장훈에게 단 3∼4주의 훈련을 통해 포스트플레이를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현 대표팀의 센터 요원은 서장훈과 하승진뿐. 김주성과 김민수(24·200㎝·경희대)는 파워포워드에 가깝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서장훈 대신 다른 센터를 뽑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대표 예비명단 18명 가운데 서장훈을 대체할 빅맨이 아예 없다는 것이 한국농구의 서글픈 현주소다.최부영 감독은 “태릉에서 훈련시켜보니 장훈이는 이미 센터의 본능을 잊은 상태였다. 골밑을 비비고 들어가고 리바운드를 위해 박스아웃을 하기보다는 3점라인에서 패스를 요구하기 일쑤였다.”고 설명했다. 정상급 기량을 지녔지만 ‘장신슈터’로 변한 서장훈이 설 자리가 없었던 셈. 최 감독은 또한 “장훈이도 내 주문을 이해하고 알겠다고 했지만, 막상 예선 4경기를 뛰게 해보니 또다시 삼성에서의 플레이가 나왔다. 어차피 승진이를 업그레이드시키지 않고는 미래가 없는 상황에서 장훈이를 기용할 이유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일부에서 제기되는 불화설에 대해서는 “감정의 골이 생길 이유가 없다. 태릉에 있을 때부터 누누이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설명했다.”고 강조했다.반면 ‘중국의 서장훈’ 격인 왕즈즈(29·214㎝)의 활약은 대조적이었다. 야오밍보다 한 발 앞선 00∼01시즌 미프로농구(NBA)에 데뷔한 뒤 4시즌을 뛰고 유턴한 왕즈즈도 자국 내에서의 인기는 별로다. 서장훈처럼 골밑 몸싸움을 기피하고 외곽에서 3점슛을 즐겨 던지는 탓. 그러나 왕즈즈는 49-42까지 쫓긴 4쿼터에서 홀로 11점을 몰아쳐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하승진이 이젠리엔(19·216㎝)에 묶여 미스매치를 이용한 손쉬운 득점이 대부분이었지만 단 13분을 뛰면서 16점을 올린 왕즈즈의 모습에 벤치에 앉은 서장훈이 계속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argus@seoul.co.kr
  • 국립의료원 간호대, 성신여대에 합병

    50년 전통의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내년부터 성신여대 간호학과로 탈바꿈한다. 보건복지부와 교육인적자원부는 현행 3년제인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성신여대로 넘겨 4년제 간호대학으로 운영한다고 12일 밝혔다. 성신여대는 다음주부터 2007학년도 신입생 지원서를 접수한다. 기존 재학생은 3년 과정만 마친 뒤 바로 졸업하거나 성신여대에서 추가로 1년을 더 다니고 졸업할 수 있다. 현재의 서울 을지로6가 캠퍼스는 국립의료원 시설로 활용된다. 전후 국가재건기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1958년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의 도움을 받아 ‘국립의료원 간호학교’로 개교했으며 ‘국립의료원 간호전문학교’(77년),‘국립의료원 간호전문대학’(79년)을 거쳐 99년 3월 현재 이름으로 개명했다. 지금까지 간호사 1925명이 배출됐다.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씨줄날줄] 3000억달러 수출탑/육철수 논설위원

    우리나라가 지난 5일 오후 6시에 수출 30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에서 11번째라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몇달 전인 1948년 2월, 무역선 ‘앵도호’가 홍콩과 마카오에 건어물과 한천을 내다 판 이후 58년 만이다. 첫 해에 1900만 달러이던 수출액이 무려 1만 6000배로 불어났으니 실로 격세지감이다. 수출전선에서 땀과 열정을 쏟은 무역인들의 노고에 그저 머리숙여 감사할 뿐이다. 수출한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이는 아무래도 박정희 전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전통적 가치관을 스스로 ‘상공농사’로 바꾸고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무서운 집념을 보였다. 덕분에 우리의 무역사는 1964년 11월30일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수출총사령관’을 자칭하며 팔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파는 ‘수출 제일주의’를 밀어붙였다.1억 달러를 달성한 날은 ‘제1회 수출의 날’로 지정됐고, 지금까지 ‘무역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자신감을 얻은 우리나라는 1971년 10억 달러,1977년 100억 달러,1995년 1000억 달러 고지를 차례로 넘었다.10억 달러 달성에는 한 해 1억 달러 이상 수출된 가발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100억 달러 돌파에는 종합상사들이 중심에 섰다. 이어 수출 주종목이 중화학 제품으로 바뀌면서 수출액은 해마다 목표 이상을 거두게 된다. 당시 대통령의 닦달이 어찌나 심했던지, 상공부 직원들은 연말이면 목표액을 채우려고 수출품을 실은 배를 일단 항구에서 통관시켜 공해상까지 나갔다가 돌아오게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곤 했다. ‘잘 살아 보자.’는 국민의 호응도 대단했다.60∼70년대 ‘공돌이·공순이’로 불리던 구로공단 근로자들은 수출의 첨병이었다.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들의 땀이 오늘의 성취에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1964년에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한 나라는 한국과 과테말라 등 12개국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진국 진입에 실패했다는 점은 국가지도자와 기업, 그리고 국민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OUR STORY] 눈내리는 플롯폼에 서보셨나요

    [OUR STORY] 눈내리는 플롯폼에 서보셨나요

    7년 동안 330여 차례나 기차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1주일에 최소한 한번 이상은 기차를 타야만 가능한 숫자다. 거리로는 22만 2000여㎞. 지구를 다섯바퀴 돌고도 남는 거리를 국내선 기차로만 여행한 셈이다.1999년 이후 모아온 기차표가 1200여장에 달하고, 기차역 주변 음식점 명함만 600여장이다. 가슴에 KTX 1호 승객이란 ‘훈장’도 달고 있다. 이만하면 우리나라에서 기차여행 좀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 이런 건 어떨까. 의자 하나만 달랑 놓인 간이역을 비롯해, 경전선과 영동선 일부를 제외한 국내의 모든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 보기도 했다. 폐선이 된 기차역을 찾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축구를 워낙 좋아해 전북 현대의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불원천리, 기차를 타고 찾아 간다. 홈구장인 전주까지는 461호 첫 열차부터 마지막 열차인 489호까지 시간대별로 모두 타보았다. 직업상(그의 현재 직업은 기차여행 가이드다) 다녀온 것을 제외하더라도, 강원도 정동진역에 내린 것만 무려 80여회에 달한다. 32세의 청년 박준규. 우리나라 기차여행의 대표선수다. 그와 함께 강원도 북부의 고원도시 태백시를 다녀왔다. 글 사진 태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준규씨와 떠난 기차여행 아침 8시. 배낭하나 멘 단출한 차림의 박준규씨와 함께 청량리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가는 무궁화 열차에 올랐다. 갑자기 추워진 바깥 날씨와는 달리 열차 안은 포근하고 안락했다. “기차를 처음 탄 것은 유치원 때였어요. 지금은 레일 바이크로 유명한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외가에 가기 위해서였죠. 초등학교 시절에는 혼자서 문경까지 다녀오곤 했어요.” 당시 기차는 그에게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가 오롯이 기차여행을 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진주행 통일호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5박6일 동안 지리산 종주를 한 것이 그의 첫번째 기차여행이었다. 이후 기차는 그에게 따로 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는다. 왜 그렇게 기차여행이 좋은지 궁금했다.“내 집은 기차라고 할 만큼 기차여행이 편하고 즐겁기 때문이죠. 기차여행은 세상사의 축소판인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과 일들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죠. 어떤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될지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도 있고요. 의자를 돌려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산과 들, 강 등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참 좋아요.” 양평역에서 단체관광에 나선 촌로 10여명을 태운 기차는 다시 강원도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노인들이 열차에 오르면서 조용하던 객실 분위기가 한순간 왁자지껄해졌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들뜬 모습이다. 승객이 별로 없어, 맞은편 의자에 다리를 뻗은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차여행을 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취미가 직업이 될 만큼 빠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대학 3학년때는 기차로만 4박5일 동안 여행한 적도 있어요. 거리로는 5000㎞ 정도 됐고요. 군대를 제대한 다음 그야말로 기차여행에 굶주렸던 때였죠.‘한붓 그리기’처럼 청량리에서 출발해 강릉, 부산, 목포를 돌아 대전, 천안까지 간 다음 다시 장항, 군산을 거쳐 서울로 오는 코스였어요. 중앙선과 태백선, 경전선, 동해남부선, 호남선, 장항선 등 거의 전 노선을 한번에 돌았던 거죠.” 원주를 지난 기차는 어느덧 태백준령을 향하고 있다. 금교 신호장과 치악역 중간에 있는 ‘금대 2터널´은 루프식 터널. 일명 ‘또아리 굴´로 불린다. 경사가 급해 직선으로는 오르지 못하고, 용수철처럼 빙글빙글 돌아서 가야 한다.‘유령굴’로도 불리는 치악터널을 지날 때는 괴기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왠지모를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태백-영동선. 청량리역까지 오는 1640호 열차의 경우, 강릉역 등 이 구간에 있는 모든 역에서 출발해 보기도 했다.“우리나라의 원초적인 지형을 지나는 코스예요. 평균속도가 60㎞ 이하여서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죠. 이 코스의 백미는 흥전에서 나한정 구간이에요. 경사가 급하고 고도차가 400m에 달해 열차가 스위치 백으로 운행해야 하죠. 내년 하반기에는 루프식 터널로 바뀐다고 하니, 아쉽네요. 영동선은 정동진역 다음부터가 정말 좋아요. 열차가 바다와 나란히 달리죠. 안인역의 해돋이도 좋고요.” 두번째로 좋아하는 코스는 정선선.“‘느림의 미학’을 한껏 맛볼 수 있는 구간이죠. 구불구불한 조양강을 따라 증산에서 아우라지까지 1시간 정도 가는데, 역마다 펼쳐지는 시골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어요. 자그마한 간이역과 북한강의 경치가 이어지는 중앙선도 둘째가라면 서럽죠. 특히 경북 의성역에서는 반드시 자장면을 먹어봐야 해요. 맛이 정말 일품이에요. 기차에서 어떻게 자장면을 시켜 먹냐고요? 제 홈페이지(www.traintrip.wo.to)에 오시면 알려 드릴게요.” 기차가 가뿐 숨을 내쉬며 강원도 영월땅으로 접어 들었다. 옛날 큰 물난리 때 삼척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척산과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등 수려한 풍광이 차창 밖으로 잇달아 펼쳐졌다. 서강에서는 큰고니 4∼5마리가 물위에 뜬 채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가다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했어요. 지금은 없지만요. 여자친구보다 기차가 훨씬 좋아요. 수학공식으로 표현하자면 ‘여친 기차’죠. 축구와 비교하자면 ‘여친 축구’쯤 될까요.”이렇게 얘기했던 그도 기차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였던 함백을 지나자 아련한 눈망울로 ‘새비재’오르는 길을 바라보았다. 새비재는 ‘그녀’와 견우가 타임캡슐을 묻은 소나무가 있는 곳. 그는 정말로 여자친구보다 기차가 좋은 걸까. ● 기차여행 고수되기 첫째: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라. 열차나 버스 등의 출발정보가 담긴 ‘월간 시각표’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팸플릿 등을 반드시 챙길 것. 둘째:각종 할인혜택을 꼼꼼히 챙겨라. 철도회원에 가입해 일정 포인트를 적립하면 무료여행도 가능하다.KTX의 경우 비즈니스 카드 할인(주중 30%, 주말 15%), 역방향 할인(5%), 자동발매기 할인(1%) 등을 합치면 최대 36%까지 싸게 여행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사전예매 할인, 철도회원 카드 할인, 얼리 버드(early bird)할인 등 다양한 할인혜택이 있다. 셋째:장시간 여행에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챙겨라. 물 등 간단한 먹거리와 디지털 카메라, 각종 충전기 등을 가져갈 것. 밤열차는 춥기 때문에 작은 담요 등도 가져가면 좋다. 충분한 수면을 위해선 안대가 필수다. ■ ‘문화재급’ 추억의 간이역 10곳 간이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굵직한 사건들로 점철된 20세기의 역사이자, 그 시기를 살아간 세대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번듯하지는 않지만, 허술한 겉모습에서 외려 푸근함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간이역의 사전적 의미는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 철도법에서는 역원배치 간이역과 무배치 간이역 이하 등급의 철도역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국 650여개의 기차역 중 400여곳이 간이역이다. 다음은 박준규씨가 추천한 가볼 만한 간이역들이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언론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진 곳은 제외하고, 아직 소개가 덜 된 ‘문화재급’ 간이역으로만 선정했다. 1. 구 전라선 서도역 한 문학가의 작품이 역사(驛舍)를 살려낸 특이한 경우에 해당된다. 고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주요 배경지. 혼불문학관이 인근에 위치하면서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1930년대 지어진 목조역사를 최근 대대적으로 보수해 예전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주변 풍경이 수려하고, 현 서도역에서 도보로 5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어서 접근하기도 수월하다. ▲가는 길 용산이나 영등포역→여수행 열차→남원역→75번 버스→서도역. 무궁화가 하루 10회, 새마을호는 3회 운행하고 있다. 현재 서도역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2. 구 전라선 오수역 붉은 벽돌로 지어진 1950년대 중반의 전형적인 간이역. 지금은 기차가 새로 지은 오수역으로 다니고 있다. 주인을 구한 개 이야기로 유명한 이곳은 지역이름 또한 오수(獒樹·개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의 무덤에 꽂아 놓은 지팡이에서 싹이나 커다란 나무가 되자, 이 나무를 오수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영화 ‘광복절특사’에서 주인공들이 탈출하기 위해 이용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가는 길 용산, 영등포역→여수행 열차→오수역. 무궁화호가 하루 9회 운행. 오수역에서 구오수역까지는 도보로 이동해도 될 만큼 가깝다. 3. 중앙선 문수역 1941년 7월1일 현재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작은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과 철길이 어우러진 풍경이 좋다.65년 된 역사도 아름답지만, 역사 옆에 있는 보선반 건물도 비슷한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옛 건물이다.30년 전 폐역된 승문역까지 철길을 따라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는 트레킹하기에도 좋다. 경북 영주시에서 가까워, 부석사 등 관광후 들러볼 만하다.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문수역. 무궁화호가 하루 1회 운행. 4. 영동선 하고사리역 강원도 삼척시 골짜기에 위치한 곳으로, 하루 단 한번 열차가 선다. 상상속으로만 그리던 그림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두평 남짓한 맞이방(대합실)과 무인 간이역, 그리고 역사앞에 가지를 내린 채 서있는 수양버들이 하고사리역의 전부지만, 철도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어쩌면 철거될지도 모르는 곳이어서 더욱 더 아쉬운 곳이다.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영주역→강릉행 열차로 환승→하고사리역. 무궁화열차가 하루 1회 운행. 영주발 강릉행 열차는 아침 6시5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영주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영주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5. 구 수인선 송도역 10년 전 운행을 중단한 협궤철도 수인선의 종착역. 어천역과 소래역 등과 함께 아직까지 남아 있는 수인선의 3대 역사 중 한 곳이다. 현재는 일반기업체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인천 도심에 있어 경관이나 운치는 다른 간이역에 비해 덜하지만, 과거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협궤 꼬마열차의 추억이 어려있는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동인천역→6-1번,46번 버스→송도역 삼거리. 6. 정선선 나전역 꼬마열차로 유명한 정선선의 4대 간이역 중 한 곳. 과거 석탄을 나르던 정선선이 이제는 관광객을 나르는 철길로 바뀌었고, 그 중심에 나전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목조역사인데다, 성신여대 미대 학생들이 그린 도깨비그림이 인상적이어서 철도마니아뿐 아니라,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가는 길 청량리역→강릉행 열차→증산역 →아우라지행 통근열차로 환승→나전역. 증산과 아우라지를 오가는 통근열차는 하루 2회 운행. 청량리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증산역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통근열차와 연결된다. 7. 경원선 서빙고역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서울시내에 남은 역사 중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다.1958년에 지어졌다. 전철 서빙고역과 맞붙어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서빙고역 하차. 8. 동해남부선 거제역 1940년대에 지어진 일제시대 간이역. 철도역사가 플랫폼 위에 서있는 몇 안되는 역사 중 한 곳이다. 부산광역시 거제동에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 동해남부선 이설 및 광역 복선전철화 작업과 함께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동해남부선 철길과 맞닿은 벽화도 볼거리다. 철도에 관한 시와 귀여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가는 길 서울역, 영등포역→포항, 울산행 열차 →경주역 하차→거제역. 무궁화 열차가 하루 3회 운행. 9. 중앙선 우보역 중앙선에는 유난히 1940년대 초반에 지어진 역사가 많이 남아 있다. 그중 경북 군위군에 위치한 우보역과 화본역이 추천할 만하다. 두 곳 모두 시골 한적한 마을을 감싸안은 모양으로, 하루 4∼5회 열차가 선다. 기차가 아니면 접근이 쉽지 않은 깊은 산 속 간이역이다. 아담한 간이역사 외에도 오래 된 화물홈의 모습과 역장의 친절함이 인상적인 곳.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안동역 하차→부전행 열차→우보역. 무궁화 열차가 하루 1회 운행. 10. 구 문경선 진남역 석탄산업이 한창이던 1960년대 문경선과 가은선의 분기점이자 신호장역으로 개업한 곳이다.60년대 지어진 곳으로는 보기 드물게 목조역사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레일바이크 매표소로 쓰이고 있다. 문경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서는 가은선 가은역 앞 가은농공단지, 또는 문경선 진남역을 이용하면 된다. 진남교반과 그 아래를 흐르는 영강의 경치가 일품인 곳. 여행과 레저를 겸할 수 있는 멋진 간이역이다. ▲가는 길 서울역→김천역 하차→영주행 열차(하루 3회 운행)→점촌역→가은, 문경행 시내버스→진남휴게소.
  • ‘신도쿄 타워’ 디자인 공개

    |도쿄 이춘규특파원| 오는 2011년 완공되면 61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방송탑이 될 ‘신도쿄 타워’의 디자인이 25일 공개됐다. 도쿄 시 외곽 스미다 구에 세워지는 이 탑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캐나다 토론토 소재 CN 타워(553m)의 기존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일본 6대 방송사들이 500억엔(약 4400억원)을 들여 2008년 착공하는 이 타워는 지난 1958년 건설된 333m 높이의 현 도쿄 타워를 대체한다. 해마다 25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쿄의 상징물 도쿄 타워는 그대로 존속, 관광용 등으로 사용된다. 새 방송탑은 지상디지털 방송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도쿄 등 수도권 TV와 라디오 방송 등을 커버하게 된다. 새 탑에는 지상 350m와 450m에 각각 대형 전망대가 설치돼 원통형 공중 회랑을 통해 사방을 조망해 볼 수 있게 된다.taein@seoul.co.kr
  • 원로가수 신카나리아 별세

    원로가수 신카나리아(본명 신경녀)가 24일 새벽 5시쯤 경기도 안산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94세. 1912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32년 조선예술단을 거쳐 시에론·빅타·콜롬비아 레코드사의 전속가수로 활동했다.40년대에는 신태양, 라미라,KPK 등 악극단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나는 열일곱살이에요’를 비롯해 ‘강남제비’ ‘에헤라 좋구나’ ‘아리랑선풍’ ‘노들강변’ 같은 숱한 히트곡을 남겼다.1958년 한국무대예술원 중앙위원을 시작으로 가수협회 부회장과 원로연예인상록회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고, 문화포장(1998년)과 각종 공로상도 받았다. 장례는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장으로 치러지고 유해는 전북 국립임실호국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딸 이혜정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6일 오전 10시30분.(02)2072-2011.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장 펀드, 이번엔 ‘화성산업 개조’

    일명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가 화성산업 지분 5%를 확보, 경영참여를 선언하고 나섰다. 펀드 운영회사인 라자드 에셋 매니지먼트 LLC는 22일 화성산업의 주식 63만 4570주(5.09%)를 장내 매수해 경영 참여 목적으로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장하성 펀드는 지난 4월과 5월,11월에 걸쳐서 수차례 화성산업의 지분을 장내 매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의 고문을 맡고 있는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화성산업은 영업가치와 자산가치가 훌륭하며 IMF구제금융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기업 내용도 좋고 미래 전망도 밝지만 대구에 기반을 둔 중견기업이라는 한계로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화성산업의 경영진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협력키로 합의했으며 회사 측의 동의를 얻어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회사가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데 협력키로 했다.”고 말했다. 1958년에 설립된 화성산업은 대구 소재 중견기업으로 화성개발, 화성기술투자, 동아애드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1972년 대구에서 동아백화점을 신축개점해 유통업에도 진출했으며 1988년에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화성산업은 작년 매출과 순이익이 각각 5017억원,175억원이었으며 올 들어 3·4분기까지 누적 매출액과 순이익이 각각 3887억원,73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올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인중 대표는 창업주인 이윤석 명예회장의 아들로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직도 맡고 있다. 한편 이날 화성산업은 가격제한폭까지 올라 1만 6800원에 마감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왕실 보물 엿보기’에 빠진 日열도

    |나라 김미경특파원| 58년째 해마다 같은 주제로 열리는 박물관 특별전이 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전국 곳곳에서 수십만명이 몰려와 전시회를 관람하며 감탄한다. 우리나라 경주에 비견되는 일본의 고도(古都) 나라에 있는 나라국립박물관이 매년 10∼11월에 개최하는 ‘쇼쇼인(正倉院) 특별전’이 그것이다. 쇼쇼인은 일본 왕가의 고대 보물창고로, 나라국립박물관 인근 도다이지(東大寺) 중심지인 대불전(大佛殿)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소장품이 9000여점에 이르지만 한번도 전면 공개된 적이 없다. 그러다가 58년 전부터 해마다 한차례씩 20일 정도만 일반에 70∼90점씩 공개되고 있다. 이른바 ‘신비주의’ 전시효과 못잖게 특수를 누리고 있다. 나라박물관에 파견근무 중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최선주 학예연구관은 “쇼쇼인 소장품은 일왕가 등 특수층만 관람하다가 일반에 공개된 뒤 누구나 한번쯤은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전을 통해 이른바 ‘일왕가 엿보기’에 일본인들이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천평승보(天平勝寶) 8년(756) 쇼무일왕(聖武天皇)이 사망하고, 그의 49재일에 왕비인 고묘(光明)가 생전 남편 쇼무가 아끼던 물품 650여점을 도다이지 대불(大佛)에 헌납했다는 국가진보장(國家珍寶帳) 목록을 필두로 1250년 전 쇼쇼인의 출발선을 되돌아보는 전시로 기획됐다. 국가진보장에는 백제 병풍 등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에 보냈던 보물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또 전체 전시품 90점 가운데 올해 처음 공개된 13점 중에는 신라시대 제작된 불경으로 추정되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 제72~80이 모습을 선보였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필체나 보존상태 등으로 볼 때 나란히 전시된 일본 불경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이와 함께 왕실에서 사용된 화려한 의상과 악기·그릇·칼·향로·사찰 등이 완벽한 보존상태를 뽐냈다. 또한 도다이지 창건에 사용된 물품과 각종 불교 공양구 등도 왕실가를 엿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chaplin7@seoul.co.kr
  • ‘철권 독재자에서 오욕의 사형수로’

    ‘철권 독재자에서 오욕의 사형수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양 극단의 평가를 받는다. 반대자에 가차없는 권력의 화신, 한때나마 아랍 민족주의의 영웅이라는 두 얼굴이 혼재한다.난폭한 스타일은 유년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생후 몇 개월 뒤 부친을 잃고 계부에게 폭언과 구타를 당했다는 대목이 자서전에 나온다. 후세인은 중학생 때 바그다드로 상경, 바트당에 들어가 1958년 쿠데타에 참가한다. 당시 아랍민족주의를 탄압하던 친영(親英) 정권의 압둘 카림 카셈 장군을 암살하려다 실패,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68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이번엔 2인자로 등극한다.32세 때의 일이다. 혁명지휘위원회 부의장으로 사회간접시설을 깔고 문맹퇴치에 앞장서면서 당시 이슬람 근본주의로 ‘회귀’한 이란과는 달리 근대주의자로 비쳤다. 하지만 권력을 잡자 곧바로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등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당시 그를 만난 한 정치인은 “침실 옆에 12켤레의 구두와 스탈린 책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후 8년간 전쟁에서 50만명을 희생시켰고 쿠르드족엔 화학무기를 퍼부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기도 했던 그가 좋아한 영화는 ‘대부’. 쿠웨이트 침공 실패와 걸프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끈질김도 보였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WMD)를 숨기고 알 카에다를 도왔다는 이유로, 조지 부시 대통령과는 9·11 이후 한 지구촌에서 살 수 없는 ‘운명’이 된다. 2003년 고향 티크리트 인근에서 마을주민의 밀고로 지하벙커에서 생포된 그는 쑥대머리의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이후 재판정에서 보여준 호통은 한편의 소극. 신분을 밝히라는 재판부에 첫 마디가 “나는 이라크 대통령이다. 당신은 이라크인인데 나를 모른단 말이냐. 당신이야말로 누구냐.”였다. 그후 꺼진 마이크를 붙잡고 “내 말 좀 들어보라.”고 호소하기도 여러 차례. 이제 시선은 또 다른 ‘악의 축’ 지도자에 쏠린다. 미국의 전략대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이 ‘뜨끔’할는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클림트 작품 누르고 ‘최고가’ 될 듯

    사고뭉치에다 조울증 환자, 평생 술에 절어 산 화가. 추상표현주의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20세기 후반 미국 화단에 돌풍을 일으킨 잭슨 폴록(사진 왼쪽·1912∼1956)에게 따라다닌 딱지다. 그가 평단의 주목을 받은 건 44세란 젊은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요절하기 전 6년간뿐이었다.‘스스로를 망친 천재’(영국 BBC) 폴록의 진가가 이제 제대로 평가받게 된 걸까. 폴록이 58년 전 스튜디오 바닥에 가로 1.2m, 세로 2.4m의 캔버스를 깔아놓고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완성한 ‘넘버 5,1948(오른쪽)’이 1억 4000만달러(약 1316억원)에 팔렸다고 뉴욕 타임스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신문에 따르면 이 그림을 소유하고 있던 할리우드의 연예 재벌 데이비드 게펜은 전날 뉴욕 소더비 소속인 토비아스 마이어의 중개로 멕시코 금융업자인 데이비드 마티네스(48)에게 팔기로 했다.이번 거래가 사실로 확인되면 지금까지 가장 비싼 그림이었던 오스트리아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1907년작)을 누를 것으로 보인다. 클림트의 작품은 지난 6월 화장품 재벌인 로널드 로더가 1억 3500만달러에 사들였다. 그러나 게펜이나 마티네스, 소더비 어느 쪽도 이번 거래를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클림트 작품은 로더사가 운영하는 맨해튼 5번가의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해 쉽게 관람할 수 있는 반면, 폴록의 작품을 관람객이 직접 보기는 힘들 것 같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3일 예상했다.마티네스가 2년 전 5470만달러를 주고 매입한 타임워너센터 안의 초호화 아파트 벽에 그림을 걸어놓을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11월, 거장의 모차르트에 젖는다

    11월, 거장의 모차르트에 젖는다

    모차르트의 해석가로는 현존 최고로 평가받는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사진 위·77)가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이자 고전주의 최고의 종교음악인 ‘레퀴엠’을 들고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 그는 옛 음악을 오리지널 고악기로 재현해 연주하는 ‘당대 연주’라는 역사주의 연주양식을 개척한 거장. 몬테베르디의 음악을 되살려내고 바흐 르네상스를 주도하면서 서양음악 연주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모차르트의 250주년 탄생일인 지난 1월27일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공식 기념식은 비엔나 필을 지휘한 그의 연주와 연설로 시작됐을 만큼 모차트르 연주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특히 2006년 이후 연주회를 크게 줄이겠다고 ‘부분 은퇴’를 선언해 유럽 음악계를 놀라게 했던 만큼 그의 이번 방한 연주는 그의 생전에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아시아 순회연주의 마지막 기착지로 선택한 서울에서는 11월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아르농쿠르와 만날 수 있다.‘레퀴엠’외에도 ‘주일의 저녁기도’를 레퍼토리로 한 연주회에는 1953년 그가 만든 고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콘첸투스 무지쿠스 비엔나(50명),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50명)과 소프라노 율리아 클라이터, 테너 베르너 귀라 등 4명의 솔리스트가 함께 무대에 선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12월5일 잘츠부르크에서 그가‘레퀴엠’을 연주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차르트 250주년 공식행사는 막을 내린다.6만∼30만원.(02)2250-1512. 또한 브람스와 베토벤의 연주를 듣고 싶다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내한공연(사진 아래)이 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비발디 바그너 슈만 리스트에서 현대의 침머만, 칸첼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장들의 걸작을 초연하거나 헌정받는 등 458년의 역사에 깃든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6년 만의 방한에서는 아시아투어로 호흡을 맞춘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한다. 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1번과 4번을,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6번 ‘전원’을 들려준다.19일에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2만∼13만원.(02)518-7343.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20세기 사진예술 거장 만레이를 만난다

    20세기 사진예술의 최고 거장 만레이(1890∼1976)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규모 특별전이 개최된다. 또 지난 150년 사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도 열린다. 11월4일부터 12월1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2관에서 열리는 ‘만레이 특별전 및 세계 사진 역사전’은 지금까지 세계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레이를 조명하고, 사진 역사의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다. 전시 작품 상당수가 작가가 생전에 직접 프린트하고,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는 빈티지 프린트(촬영 3년 이내에 인화한 것)로, 일부 빈티지들은 가격이 1억∼2억원에 달하는 등 작품 가격이 총 100억원대에 달한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서울신문과 MBC, 김영섭 사진화랑이 주최하고 서울시, 문화관광부가 후원한다. 만레이는 1920년대에서 30년대 사이에 일어났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심인물로 활약한 인물. 사진이 가진 화학적 물리적인 기능을 통해 무의식 세계로부터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촉발시키는 작업을 했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환상적이고 신비로우면서, 부드러운 정감과 유동적 리듬을 띠는 등 정서적 농도가 짙다. 솔라리제이션으로 불리는 네거티브 인화, 레이오그라피 등 획기적인 사진기법을 개발, 지금도 많은 사진가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만레이 빈티지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으로 알려진 ‘Kiki Odalisque(1925년)’‘Portrait of Valeatine Hugo(1933년)’ 등 10점이 소개된다. 이밖에도 1980년대에 프린트된 작품 등 만레이의 대표작 120여점이 소개된다. 세계사진역사전은 1858년 세계 최초로 공중촬영을 한 나다르에서 몇 해전 타계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까지 유명 작가 65명의 사진 330여점을 소개한다. 이중 프랑스 사진가인 에티엔 카르자와 피에르 페티트가 촬영한 시인 보들레르와 음악가 바그너의 초상화는 140년 이상 지난 희귀 사진으로 가장 주목을 끄는 작품이다. 이 밖에 브랏사이의 ‘커플’, 자크-앙리 라르티크의 ‘Simone’, 조엘 스턴펠드의 대형 컬러 풍경사진,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라람의 움직임’, 밸로크의 뉴올리언스 창녀사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표작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이번 전시를 기념해 알란사이악 퐁피두미술관 부관장(4일)을 비롯, 이경률(10일) 최봉림(17일) 박주석(24일) 진중권(12월2일) 전영백(12월8일) 등 미술 및 예술 관련 전문가들이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사진 컬렉션과 역사, 현대의 사진예술 등에 대한 강의를 갖는다. 또 4일 오프닝 특별공연으로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기타의 귀재’ 임정현이 ‘캐논변주곡’을 연주한다. 전시 관람료는 성인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 문의 김영섭사진화랑(www.manray.co.kr,02-733-6332).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부고] 장기수 출신 한학자 이구영씨 별세

    북한공작원 출신으로 22년간 복역한 이력을 지닌 한학자 노촌(老村) 이구영씨가 20일 오전 2시 경기 안양 자택에서 별세했다.86세. 1920년 충북 제천 출생인 노촌은 집안 대대로 저명한 문인과 학자를 배출한 연안 이씨 후예로 조선중기 때 저명한 정치인이자 문인인 월사 이정귀의 후손이다. 부친 이주승과 작은아버지 이조승은 구한말 의병활동에 참여해 의병장들인 이강년과 유인석의 종사관(비서)을 각각 지낸 전력이 있다.1943년에는 독서회 사건에 연루돼 1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공간에는 사회주의 계열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했다. 1958년 공작원으로 남파된 그는 그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공작도 못해 보고” 경찰에 검거돼 22년간 복역하다가 1980년 출소했다. 젊은 시절 벽초 홍명희를 사사하며 한학을 익힌 그는 장기수로 지내는 동안 옥중에서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와 심지연 경남대 교수를 비롯한 시국사건 투옥자들을 제자로 거느리며 그들에게 한문과 서예를 가르쳤다. 출소 이후 ‘이문학회’라는 한학 관련 모임을 만들어 후학양성과 작품활동에 투신했다. 유족은 1남2녀. 빈소는 강북삼성병원, 발인은 22일 오전.(02)2001-1096.
  • [책꽂이]

    ●茶명상(지장 지음, 차와사람 펴냄) 우리는 차를 통해 자각력을 키우고 의식을 확장하고 자비의 마음을 갖는 등 ‘응용명상’을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왜곡과 치우침이 없는 마음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초의 스님이 역설한 중정청경(中正淸境)의 경지다. 마음의 빛을 찾아주는 차명상의 이론과 실제를 담았다.1만 2000원.●난초(이어령 엮음, 종이나라 펴냄) 동양에서 난초가 소개된 것은 공자가 빈 골짜기에서 난초를 봤다는 일화 공곡유란(空谷幽蘭)을 통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와의 인연 때문인지 난초는 유교문화권에서 특히 대접받는다. 그러나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들어가기 전 은곡(隱谷)을 지나던 공자가 본 난초는 우리가 아는 난초와 다를지도 모른다. 난초의 종류는 워낙 다양해 제대로 분류하기 어렵다. 이름에 ‘난’자가 붙은 문주란·군자란·용설란·고란초 등은 난초가 아니다. 일본 화투에 그려진 5월난초라는 것도 난초가 아니고 창포다.‘한중일 문화코드 읽기-비교문화상징사전’의 하나.3만원.●안병무-시대와 민중의 증언자(김명수 지음, 살림 펴냄) 민중신학의 개척자 안병무 평전. 민중이라는 용어를 신학해석의 핵심틀로 사용하며 영적 구원보다 정치적 구원이 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그의 민중신학은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함께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신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민중 현실에 눈을 뜨게 된 안병무는 성서를 민중의 눈으로 읽는다. 한 예로 민중의 의미로 쓰이는 ‘오클로스(ochlos)’라는 단어가 마가복음에 36번이나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1만원.●사막에 숲이 있다(이미애 지음, 서해문집 펴냄) 중국 네이멍구의 마오우쑤(毛烏素) 사막은 봄의 불청객 황사의 진원지. 풀 한 포기 살기 어려운 이 황량한 모래땅에도 희망이 자라고 있다. 죽음의 땅 1400만 평이 푸른 숲으로 바뀐 것. 인위쩐이라는 여성이 기적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중국에서 가장 긴 내륙하천으로 알려진 타리무허가 10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서북지방의 벽지 닝샤후이족 자치구에 있는 소금호수 쿠수이후도 말라붙어 버릴 정도로 심각한 중국. 그러나 이 책은 아직도 재생의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8500원.●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정인영 지음, 랜덤하우스 코리아 펴냄)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를 창립한 대산 신용호의 전기.1958년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창립한 대산은 교육을 보험에 접목한 교육보험을 만들었고 1980년에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표어를 내건 교보문고를 설립했다. 이어 1992년 문학인의 창작과 문학 번역 등을 지원하는 대산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잦은 병치레로 취학 적령기가 4년이나 지나 학교에 입학한 그는 보통학교나 중학교를 다니지 않고 독학했으며 1000일 동안 계속 책을 읽는 등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대한 열의와 독서열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1만원.
  • [北 핵실험 파장] 美제공 핵우산은 충분할까?

    미국이 남한에 제공하는 핵우산은 과연 충분한가. 북한의 핵실험 사태로 새삼 제기되는 의문이다. 미군의 핵이 현재 남한 내에 배치돼 있지 않은 ‘역외(off-shore) 핵우산’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전하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현재 미군의 핵전력은 인근 일본의 요코스카, 오키나와 등 미군기지와 괌 등에 인접해 있어 북의 핵도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 일각에서는 “미군이 철수시켰던 전술핵이 다시 배치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9일 국회에서 “미국으로부터 현재는 그럴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는 반응을 받았다.”고 밝혔다. 핵무기는 크게 전략핵과 전술핵으로 나뉜다. 장거리·대규모 살상용인 전략핵과 달리 전술핵은 야포나 크루즈미사일 등을 이용한 단거리·국지전용이라 할 수 있다.1958년 주한미군에 첫 배치된 전술핵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전면 철수됐다. 당시까지 주한미군에는 1720여개의 전술핵무기가 비치돼 있었다고 한다. 1991년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전술핵 철수를 선언한 지 15년만에 다시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군의 전세계적 핵전략을 다시 짜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술핵 재배치는 역설적으로 북을 핵클럽 국가로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군사적으로도, 전술핵 재배치는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밀도가 높은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 개발로 이지스함,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용 잠수함, 전폭기 등을 이용해 해상·공중에서도 충분히 전술핵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상 전술핵 배치의 필요성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 실시하는 등 위기가 가속화되는 경우에는 심리적인 안보 측면에서도 전술핵을 재배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불현듯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언어가 없는 인간세상을 말이다. 우선 ‘사랑한다’고 못하겠지. 또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 엉뚱한 싸움판도 벌어지겠지. 이래저래 오해와 진실이 마구 뒤엉켜 결국은 멸망?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과연 몇개나 될까. 학자들에 따르면 6000여개는 족히 넘는다. 또 2주에 걸쳐 하나씩 소멸된다고 한다. 이는 지구 생태계 또는 작은 부족의 멸종과 비례한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민족의 상처와 영혼을 켜켜이 담으며 살아온 우리 언어. 남북 분단 60여년, 겨레의 언어 역시 그 세월만큼 간격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남쪽에서 사용하는 ‘전업주부’를 ‘가두녀성’으로,‘도넛’을 ‘가락지빵’으로,‘반딧불이’를 ‘에디벌레’로 각각 다르게 사용한다. 또 계산기 하면 남쪽에서는 전자계산기를 연상하지만 북한에서는 컴퓨터로 통한다. 아울러 ‘해커’를 ‘헤살꾼’으로 ‘스파게티’를 ‘구멍국수’ 등으로 사용하며, 전문·학술용어의 경우 그 차이의 정도는 훨씬 심각하다. 만약 남북 의사가 같이 수술대에 있다면 시술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마 제주도에서 함경도의 방언까지 몽땅 비교한다면?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난 1970년대초였다.7·4 공동 성명과 적십자 회담 등을 위해 6·25이후 남북 당국자가 처음으로 만났다. 남측 요원이 회담장에서 서비스를 하던 북한 여성에게 “아가씨”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접대부로 불러주세요.”라고 당황케 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남과 북이 분단된 후 언어차이를 처음으로 실감케 한 사례였다. ●겨레말은 남한 표준어·북한 문화어·방언 합친 말 1989년 3월이었다.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 언어의 이질감을 얘기하면서 ‘통일대사전’을 공동으로 편찬하자고 했다. 이후 논의가 중단되다가 2004년 12월 13일 금강산에서 남북 편찬위원들이 만나 결성식을 가짐으로써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됐다. 이후 지난해 2월 편찬위 1차정기회의(금강산)를 시작으로 그동안 7차례에 걸친 실무접촉을 가졌고 오는 2012년까지 30만여 어휘를 담은 남북한 단일사전, 즉 ‘겨레말큰사전’을 펴내기로 했다.‘겨레말’은 남한의 표준어, 북한의 문화어, 그리고 남북의 방언을 합친다는 뜻이다. 현재 남측과 북측은 각각 방언조사 등 편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은(73) 시인을 만났다. 장소는 서울 마포에 위치한 편찬사업회 사무실. 지난달 말 제7차 편찬위 평양회의에 다녀온 직후였다. 어느 정도 진척이 됐을까. 그는 “현재 ‘ㄱ’과 ‘ㄴ’ 부분을 끝냈다면서 남북 모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ㄱ’의 경우만 하더라도 올림말이 6만 9000여개에 달했단다. 남쪽은 10여군데에 대한 방언조사를 끝냈고 북측도 다섯군데를 조사해 서로 CD로 자료를 교환했다. ●우리말은 세계 10위권 유지하는 민족어 남과 북에서는 현재 ‘표준국어대사전’(50만 9000여 어휘 수록)과 ‘조선말대사전’(33만여 어휘)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이 사전들은 현장조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두 사전에서 공통적인 것과 다른 것 20만개를 뽑고, 이들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10만개를 새로 추가시키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최근 조사된 호복이(전북지방, 흠씬 익도록 삶거나 끓이는 모양), 큰아베(경북, 할아버지), 쪼시락허다(전남, 하찮다) 등이 될 수 있다. “언어란 세월이 지나면서 소멸 또는 변질되지요. 우리 근대사 이후 겨레 언어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연해주, 중앙아시아, 만주 일대는 물론 60년대 이후 미국으로 가지고 간 언어도 조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얼마전 사할린 징용자 위령제에 다녀왔다.”면서 30년대 후반부터 우리 동포가 약 15만명이 이주했는데 현재는 3만명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순수 언어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남과 북 각 지역의 방언과 향토어 속에 우리 말을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된다고 부연했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우리 겨레말을 집대성하는 일이며, 우리 후손들이 만나야 할 ‘대사전’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때문에 2012년 이후에도 계속 보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남측 편찬위원들은 학자나 교수들이 대부분이지만 북한의 경우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에서 직접 관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글은 세계 문자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문자입니다. 또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프랑스어보다 많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갑니다. 러시아어도 푸슈킨 이후 주목을 받았고 독일어는 괴테의 ‘파우스트’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우리말도 근대문학 이후 표현력이 아주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 이전의 양반들은 주로 한문 중심이었다는 것. 예를 들어 편지를 쓸 때에도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시옵고….’라는 식이었다. 결국 활발한 신문학 운동은 모국어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대국어들이 횡행하는 오늘날에 우리말이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게 된 것도 대단한 민족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고 이사장은 이런 우리글이 다음 세대에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다. 인터넷상에 계속 퍼지는 언어와 영어 등의 영향으로 우리 언어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레말 큰사전을 통해 방향타를 잡고 또 자국어 보존을 위한 정책도 꾸준히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말이란 한 시대가 지나면 사라진다.6·25 이후만 보더라도 우리말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고대시와 지금이 다르듯이 현재 사용되는 우리말이 나중에 고어로 남게 되고 일부는 공중에 흩어져 소멸된다고 했다. ●남북, 문화행위로써 우선 동질성 회복해야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당시 세종대왕은 몽골과 여진 지역에도 학자를 파견했다. 또 티베트어 연구는 물론 산스크리스트어를 사용하는 승려도 참여시키는 등 세계적 언어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고 했다. 실제로 몽골에 가면 당시 사신이 다녀갔다는 자료가 현재 남아 있다는 얘기를 몽골학자한테 전해들었다고 귀띔했다. 또 세종은 여진과 말갈족들을 끌어들이는 등 이주정책을 펼쳤는데 놀랍게도 아직까지 함경도 지방에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단다. “아마 당시 한글창제 작업은 중국 몰래 했겠지요. 한자(漢字)와 다른 문자를 따로 만든다는 것은 천자(天子)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볼 때 불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공표도 조심스럽게, 즉 보다 쉽게 민중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라는 식으로 중국을 달랬지요. 또 비로소 한자 지배의 구속에서 벗어나 최초로 민중문자와 민족언어를 가졌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겨레말 편찬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 고 이사장. 세상에 놀러오지는 않았다고 강조하는 그는 “남북은 정치·군사적 문제만이 아닌 먼저 문화행위로써 서로 동질성을 회복하고 스며들다 보면 통일도 가능해진다.”고 역설했다. 이어 “겨레말에 의탁하여 살아온 지난 역정을 바쳐 ‘이젠 죽을 수 있다. 이제 죽어도 된다.’라는 몇년 뒤의 궁극적 감회를 예감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km@seoul.co.kr ■ 고은이 걸어온 길 ▲1933년 군산 출생(본명 고은태), 군산고 중퇴 ▲52년 입산,10년간 승려생활(법명 일초) ▲58년 조지훈 등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 발표로 등단 ▲60년 첫 시집 ‘피안감성’ ▲62년 환속, 재야 운동가로 활동 ▲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출간. 제1회 한국문학상 ▲86년 ‘세계의 문학’에 ‘만인보’ 연재 ▲89년 제3회 만해문학상 ▲90년 민족문학작가회장 ▲99년 미 하버드대 연구교수. 버클리대 초빙교수 ▲2004년 제4회 베를린문학페스티벌 자문위원 ▲05년∼현재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 성대결, 약인가 독인가?

    성대결, 약인가 독인가?

    지난 2001년 하와이에 사는12살짜리 소녀가 남자들과 골프대결을 벌인다는 뉴스가 나돌았을 때 골프팬들은 “참 대단한 아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뒤 “내 최종 목표는 꿈의 마스터스대회”라고 야무지게 선언했을 땐 “역시 목표는 커야 좋은 것”이라며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를 키웠다. 그러나 5년 뒤 10여 차례 남자대회에 나선 뒤 줄줄이 컷 통과 도전에 실패한 그를 두고 이제 그의 이름 앞에는 ‘무모한 소녀´라는 말이 따라붙고 있다. 심지어 ‘사기꾼인가, 아닌가´라는 극단적인 제목의 토론까지 펼쳐지는 마당이다. 그의 ‘성(性)대결´은 과연 부추길 만한 것이었을까. ●벙커에 빠진 천재 지난해 나이키골프와 1000만달러의 후원계약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미셸 위(17)가 ‘벙커´에 빠졌다. 어쩌면 그의 골프인생 최대의 위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잇따라 남자대회에 도전했지만 컷 통과는 둘째치고 내리 꼴찌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만을 남겼다. 성적을 훑어보면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급격한 하향곡선이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미셸 위는 분명 ‘장타´가 주무기다. 그러나 그 잣대는 ‘여성´이라는 범주 안에서다. 남자대회는 코스에서부터 여자무대와는 다르다. 페어웨이 세팅이 까다로운 건 물론,17세 소녀가 날리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지난 84럼버클래식의 경우엔 코스 전장이 올해 미프로골프(PGA) 투어 대회장 가운데 세번째로 긴 7516야드였다. 골프 칼럼니스트 이종현씨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17세에 불과한 소녀가 받는 압박감”이라면서 “미셸 위 자신은 ‘남자대회가 재미있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속되는 컷오프는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동반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물론 언젠가 컷을 통과할 때가 있겠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상실감, 사라진 천재소녀의 신비감은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삼위일체´의 합작품?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 이후 58년 만에 단 한 차례 남자무대에 도전, 컷 통과에 실패한 뒤 “내가 설 자리가 아니다.”며 깨끗하게 물러났다. 미셸 위는 왜 그만두지 못할까. 이종현씨는 “그러나 그의 도전은 당초 본전을 건지려는 스폰서와 흥행 유지를 위한 미골프협회의 상술, 그리고 부모의 ‘지나친 과시욕´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현지 언론의 찬·반 공방도 뜨겁다. 골프다이제스트의 칼럼니스트 론 시락은 “PGA 투어의 경우 대회당 750만∼800만 달러의 거금이 들어가는 만큼 ‘흥행카드´인 미셸 위를 적극 활용하는 게 나쁘지 않다.”면서 “갤러리 동원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성대결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의 봅 해리그는 “미셸 위에 대한 신비로움이 사라진 데다 자신도 성대결에 나설 만큼 충실히 준비를 못하고 있다.”면서 “이제 그의 성대결이 조롱거리로 변한 만큼 향후 기업들이 미셸 위를 초청하지 않을 경우 ‘먼데이 예선´을 통과하지 않는 한 그의 성대결은 결국 원천 봉쇄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男다른 그녀들의 도전 20세기 최초로 스포츠 남자경기에서 공식 성대결을 펼친 여성은 지난 1945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로스앤젤레스오픈에 참가한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였다. 그는 이 대회에서 세계 골프 사상 처음으로 남자대회 컷을 통과한 여성골퍼로 이름을 남겼다. 이후 지금까지 60년이 넘도록 그의 ‘대업´을 재연한 골퍼는 없다. 2003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BOA콜로니얼에서 ‘성벽´에 도전했지만 2라운드 합계 5오버파 145타로 탈락했고, 같은 해 수지 웨일리(미국)도 그레이터하트포드오픈에서 컷오프됐다. 이후 소피 구스타프손(스웨덴)과 미야자토 아이(일본)도 일본무대에서 남자대회 컷 통과를 별렀지만 실패했다. 다만 박세리(29·CJ)와 미셸 위가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한 차례씩 컷을 통과했다. 하지만 대회 비중과 코스의 길이 등이 논란이 돼 인정받지 못했다. 골프 외의 종목에서도 여성들의 도전은 거셌다. 가장 화끈한 승리의 주인공은 킥복싱 선수 출신의 마거릿 맥그리거.1999년 그는 미국 시애틀에서 경마 기수 출신의 로이 초우와 복싱 최초로 ‘링위의 성대결´을 펼쳐 일방적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막 데뷔한 초우는 신장과 몸무게, 기량에서 맥그리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물 간 남성을 제물로 삼았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건 맥그리거만이 아니었다.1973년 당시 여자프로테니스(WTA) 랭킹 1위의 빌리 진 킹(미국)은 윔블던 챔피언 출신의 보비 릭스를 상대로 3-0 승을 거둬 남성의 콧대를 꺾었지만 당시 킹은 30세, 릭스는 55세였다. 반면 1992년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지미 코너스와 비교적 ‘동등한´ 성대결을 펼친 끝에 패했다. 불발된 경우도 있다.1998년 캐리 웹(호주)은 남자선수 닉 팔도와 존 댈리, 마이클 캠블과의 ‘포섬 성대결´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2년 뒤 테니스의 비너스 윌리엄스는 존 매켄로에게 도전장을 던졌지만 “(육상의)매리언 존스가 모리스 그린을 이기려 든다.”는 핀잔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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