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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신속한 지원, 양국관계 긍정효과”

    “한국 신속한 지원, 양국관계 긍정효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인 에즈라 보걸(80)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세계 2차 대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일본이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번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보걸 교수는 16일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이 플라자호텔에서 주최한 KF포럼에서 ‘한국과 중국, 1978-79: 발전의 전환점’을 주제로 한 강연과 서울신문 등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관료사회는 굳건하며, 일본 국민들은 강한 저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탄탄한 관료사회도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서 일본의 강력한 정치 리더십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보걸 교수와의 단독 및 공동 인터뷰 내용이다. →일본 대지진이 한·일, 일·중 관계에 미칠 영향은. -한국이 매우 신속하게 일본을 지원하고 나선 것은 잘한 일이며 한·일 관계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매년 200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는 등 인적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한국처럼 일본을 잘 아는 나라도 없다. 한편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본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는 계기는 될 것이다. 일본 대지진이 당장은 한·일, 일·중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동북아 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 부재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데. -일본의 탄탄한 관료사회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나. -강력한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다. →중국 급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건 등을 계기로 동북아에서는 한·미·일과 북·중 간의 신냉전구도가 구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들이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 등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부임 초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협력 관계에 방점을 뒀는데, 이를 두고 미국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반응과 함께 지난해 중국이 과도하게 강하게 대응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최고위급 간의 관계 개선을 통해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고 본다. 지난해 중반 이후 중국 군부도 보다 조심스러워졌다. 앞으로 군부와 정치적 지도자 간의 힘겨루기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으며, 시진핑 등 차세대 지도자들이 군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이나 미국, 일본의 바람직한 대중 정책 방향은. -한국이나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상호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원칙에 입각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 궁지로 몰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중국이 우려하는 점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미·중 간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최고 정치 지도자 간 관계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대중, 대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발전시켜 나가려면 한국과 일본 정부 내에 여야,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지닌 진영의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해 정권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정책의 근간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주제를 북한으로 돌려 6자회담에 대한 전망은. -북한 핵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6자회담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 대해 확실하게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보걸 교수는 ▲1930년 7월생 ▲1958년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1964~2000년 하버드대 교수 ▲1972~1977년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센터소장 ▲1995~1999년 페어뱅크 연구소장
  • 베이비붐세대 4668명 조사

    베이비붐세대 4668명 조사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 나은퇴(가상인물)씨는 9년 뒤인 2020년에 은퇴할 생각이다. 은퇴 후 한달 생활비는 200만원(현재가치 환산)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월 소득 386만원의 52% 수준이고 지금 쓰는 생활비 278만원의 72%에 해당한다.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하면 지금보다 씀씀이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0만원이면 국민연금연구원이 은퇴 후 적정 생활비(부부 기준)로 제시한 174만원(전국 평균)과 215만원(서울)의 중간쯤으로 다소 빠듯하게 느껴진다. ●노후 대비 저축 월 17만원 불과 은퇴 후 생활비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58만 6000원을, 직장에서 받는 퇴직연금으로 9만 2000원을 충당할 계획이다. 나머지 132만 2000원은 개인 저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나씨가 노후를 생각해 저축하는 돈은 한달에 17만원에 불과하다. 충분히 노후자금을 모으지 못했는데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권유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비단 나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1963년에 태어난 720만명 베이비붐 세대가 가진 평균적인 고민이다. 8일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메트라이프 노년사회연구소가 한국갤럽에 의뢰, 지난해 5~9월 전국 15개 시·도의 베이비붐 세대 4668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준비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를 위한 개인적인 저축과 투자가 상당히 미흡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30.3%였다. 15.8%는 은퇴 준비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고, 계획조차 없다는 사람도 10.6%에 달했다. 반면 은퇴자금 준비를 마친 사람은 8%에 불과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월 평균 17만원을 은퇴 자금을 위해 저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8명이 보험을 연금 상품으로 이용하고 10명 중 7~8명이 국민연금을, 6~7명은 예금과 적금에 투자한다고 답했다. 연구소는 “베이비붐 세대가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으며 은퇴 자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저축 포트폴리오가 없음을 알려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징검다리 직업 등 활성화 예상 이들이 은퇴 자금 마련에 소홀한 까닭은 자녀를 위한 지출이 많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월 평균 소득은 386만원으로 전체 가계 평균소득의 1.12배에 해당한다. 수입의 대부분은 자녀 교육과 결혼에 들어간다. 대표적으로 대학등록금은 연 소득의 21%인 973만원, 평균 유학비용은 연 소득의 35%인 1621만원으로 조사됐다. 자녀 결혼자금은 연 소득의 74%인 3428만원에 달했다. 은퇴 이후 수입원도 불안정하다. 베이비붐 세대는 본인의 은퇴 시점을 62.3세로, 기대수명을 81.5세로 예상한다. 약 20년간 근로 소득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에 맞춰 고령자 노동시장에 변화가 일 것으로 연구소는 내다봤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서 20년 전부터 관찰된 징검다리 직업(브리지 잡)과 시간제 근로, 복지서비스 일자리 등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경혜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정부와 기업이 고령 노동자의 노동 가치에 대해 적절히 평가하고 현존하는 징검다리 직업 시장을 체계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지민·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정보 격차 줄여야 장애인도 출근 기쁨 누려”

    “정보 격차 줄여야 장애인도 출근 기쁨 누려”

    “정보 교류의 격차를 극복해야 장애인도 동등한 취업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18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시각장애인이자 33년째 시각장애인 복지사업을 벌이고 있는 신인식(56) 서울 온누리교회 부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신 목사는 이날 대구대학교 직업재활학과에서 ‘자동응답시스템(ARS) 기반 시각장애인 웹 사용성 모형개발’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마트폰 등 시각을 중요시하는 매체가 대세인 요즘 시각장애인들이 웹 서비스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자를 소리로 바꿔 주는 프로그램 소개와 향후 전망을 논문에 담았다. 네 살 때인 1958년 낙상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신 목사는 78년 한국맹인서비스센터 초대 소장을 지내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연구사업을 벌여 왔다. 그는 “1980년대 초 장로교 신학대학 학생 시절 ‘오픈북 시험’을 자주 봤는데 다른 학생들은 좋아했어요. 그런데 앞을 못 보는 나에게는 이 시간이 정말 지옥 같았어요.”라고 돌이켰다. 이때 그가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떠올린 것이 바로 ARS 였다. ARS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으며, 취업 등에서 기회를 균등하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안마사 정도에 머무른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고요. ARS는 이를 극복할 수 있고, ‘출근하는 기쁨’을 줄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러한 구상을 1994년 실천에 옮겼다. 세계 최초의 무형(無形) 도서관 ‘종달새 도서관’을 서울 회현동에 열었다. 현재 종달새 도서관은 국내 일간지 2종과 주간지 4종을 날마다 녹음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전화로 전해 주고 있다. 단행본 800여권도 제공하고 있다. 매일 5000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이 도서관을 이용한다. 요즘 이용자들 사이에 “애인 없이는 살아도 전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신 목사는 2001년 4월 장애인의 날에 시각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전화를 이용한 음성 포털 서비스 제공 시스템 및 그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김양진·김진아기자 ky0295@seoul.co.kr
  • 2013년 ‘만19세’ 되면 부모 승낙없이 결혼하고 아이 입양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만 19세부터 법률상 성인으로 인정돼 독자적 법률행위가 가능해진다. 또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의 법적 능력을 제약하는 금치산·한정치산자 제도가 없어지고 대신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된다. 국회는 18일 본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 법안은 2013년 7월부터 시행된다. 개정 법안에 따르면 만 19세부터는 모든 법률행위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즉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어도 신용카드를 발급 받거나 근로계약을 맺을 수 있다. 부모 승낙 없이 결혼도 가능하다. 개별법상 미성년자 자격 제한 규정에서 벗어나, 변리사 등 전문자격증을 따서 사회활동을 할 수 있고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게 된다. 현재 국내법에서 나이 제한을 두고 있는 조항은 150개 정도다. 성년후견제도 도입으로 금치산 선고를 받은 사람이라도 일용품을 사는 등의 일상생활은 혼자 할 수 있게 된다. 한정치산자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온전한 능력을 인정하되 거액이 오고 가는 계약이나 보증처럼 중요한 법률 행위에 대해서만 후견인의 동의를 받게 된다. 법무부는 2009년에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단계적인 민법 전면 개정을 추진해 왔다. 4년 계획으로 2013년 이를 완료할 예정이다. 김우현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고 민생 기본법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향후 물권, 채권 등의 차례로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후속 법령도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봉은사, 4대강 사업비 16억 압류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가 경기도가 파주시 이동면 소재 하천 부지를 무단으로 사용하고도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해 ‘4대강 사업비’ 16억원을 압류한 것으로 밝혀졌다. 17일 수원지법과 경기도에 따르면 봉은사는 1958년부터 이동면 소재 1만 3000여㎡의 하천 부지를 경기도가 무단으로 사용한 사실을 확인하고 ‘하천편입부지 보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14억 2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경기도를 상대로 제기했다. 봉은사는 지난해 1월과 10월 수원지법과 서울지법의 1, 2심 판결에서 잇따라 승소하자 수원지법에 보상금과 이자 등 16억여원에 대한 가집행을 신청했고 법원은 지난달 31일 자로 압류 및 추심명령을 내렸다. 봉은사는 이에 따라 경기도 4대강 사업 관련 예산 가운데 ‘한강 살리기 제1공구’(팔당댐~양평대교) 사업 시행을 위해 지급받을 16억여원을 압류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軍 1인자 탄타위 vs 차기후보 1위 무사 ‘스포트라이트’

    軍 1인자 탄타위 vs 차기후보 1위 무사 ‘스포트라이트’

    이집트에도 혁명의 꽃은 피었다. 이제는 그 꽃이 맺을 열매라 할 ‘포스트 무바라크’의 주인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군부의 수장인 무함마드 탄타위(76) 국방장관과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암르 마무드 무사(75) 아랍연맹 사무총장에게로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무바라크의 측근 오마르 술레이만(75) 부통령과 시위 정국에서 존재감을 새롭게 드러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69)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빚어낼 변주곡이 관심을 더하고 있다.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 1956년 보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20년간 국방장관직을 지켜온 탄타위는 무바라크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군 최고위원회의 위원장이다. 차기 대통령이 집권할 때까지 사실상 이집트 내 1인자이다. 술레이만과 함께 무바라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인물이다. 국민들로부터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술레이만 이상의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8년 미 외교전문에 따르면 군 중간 간부들은 그를 ‘무바라크의 푸들’로 부르는 등 불만을 갖고 있다. 또 카이로 주재 미 대사관은 탄타위를 “개혁에 저항하는 인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파트너다. 시위 발생 이후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다섯 차례나 전화 통화를 했고, 게이츠 장관은 지난 10일 이집트 군부에 대해 “민주주의 진전에 기여를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금까지는 건강이 좋지 않고 정치적인 야망이 없는 인물로 알려진 데다 이집트 군부도 12일(현지시간)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힌 점 등에 비춰 당장 그가 대권을 이어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역대 대통령이 군부 출신이었고, 군이 늘 막후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것을 감안할 때 ‘킹 메이커’로서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은 남아 있다. 물론 상황 변화에 따라 직접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암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의 수장인 무사 총장은 군이 아닌 외교관 출신이다. 이집트의 최고 명문 카이로 대학 법학과를 졸업, 1958년 외무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무바라크 정권에서 10년간 외무장관을 지내 ‘뉴 페이스’와는 거리가 멀지만 무바라크 정권의 관리로는 드물게 높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중동 정책에 있어서는 친이스라엘적인 무바라크와 달리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 해제를 촉구하기 위해 아랍연맹 관리로는 처음으로 가자지구를 찾기도 했다. 그는 혁명 이전부터 오는 9월 대선 후보로 자주 거론돼 왔다. 이 때문에 무바라크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고 결국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 지난 2001년 아랍연맹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바라크 퇴진 운동이 전개되면서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고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1위에 올랐다. 그동안은 사실상 무소속 후보의 입후보를 차단해온 헌법 때문에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아랍연맹 사무총장직을 연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도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아들 가말이 후계자 후보에서 지워진 뒤 권력을 넘겨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부통령에 임명된 이후 무바라크와는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다 미국, 이스라엘 등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다. 특히 군 출신이라는 점에서 군부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무바라크가 지난 10일 연설에서 퇴진을 거부한 채 술레이만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국민들에게는 ‘무바라크=술레이만’의 등식이 더욱 강하게 각인됐다. 무바라크가 하야를 발표했던 11일 시위대는 술레이만을 향해 “무바라크와 함께 떠나라.”고 촉구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은 시위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급거 귀국, 야권의 대표 주자로 지목돼 왔다. 2005년 IAEA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무바라크 대통령과 달리 부패에 물들지 않고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외국 언론들의 지대한 관심과는 달리 오랜 외국 생활로 인한 괴리감 등으로 정작 이집트 국민들로부터는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국내 정세에 어둡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럼에도 본인의 대선 출마 의지는 강하다. 2009년 IAEA 총장에서 물러난 뒤 비상계엄법의 폐지와 대통령의 3선 연임 제한 등 개헌을 촉구하는 등 개혁에 앞장서 왔다. 한때 불출마 보도가 나오자 “국민들이 이집트에 변화를 지속시키길 원한다면 난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씨줄날줄] 스푸트니크/이춘규 논설위원

    불은 인간 생활의 질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구석기 시대에 인간이 불을 이용하게 되면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체온을 유지, 수명을 크게 연장할 수 있었다. 사냥이나 전쟁에도 이용됐다. 열매를 건조시켜 건과를 만들었다. 해충을 죽였다. 신석기인들은 재를 비료로 이용하는 화전농법을 개발했다. 불이 화재와 같은 불행도 초래하지만 불의 발견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견으로 여겨지고 있다. 종이 발견 전 인간은 돌·금속·찰흙 외에 동물의 뼈·대나무 등을 이용해 기록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을 저며 서로 이어서 기록하는 재료를 만들어 썼다. 기원전 2500년께 종이와 유사하게 만들어져 기록용으로 활용됐지만 종이에 비견되지는 못했다. 서기 105년 후한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고 나서야 인류의 기록문화는 비약적으로 진보한다. 디지털시대에도 종이는 도도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원자폭탄처럼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과학은 고비고비마다 인류 생활에 변화를 주었다. 나침반은 항해술을, 금속활자는 인쇄문화를 꽃피웠다. 현미경·천체망원경은 정밀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증기기관은 인류의 이동시간을 단축했다. 전지와 전등은 인간의 활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다이너마이트, 전화, 자동차, 비행기, 진공관의 발명도 인류생활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과학은 경쟁을 통해 진화했다. 옛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1957년 10월 발사된 스푸트니크 1호는 인류의 우주시대를 열어젖혔다. 당시 미국과 체제 우월성 경쟁을 벌이던 소련의 결정타였다. 미국이 과학기술에서 소련에 앞선 걸로 인식되던 때라 스푸트니크는 미국에 충격과 공포심마저 안겼다. 미국은 부랴부랴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고 과학자를 양성, 1969년 유인우주선을 최초로 달에 착륙시키고서야 스푸트니크 충격에서 벗어났다. 스푸트니크 충격으로부터 50여년. 미국이 다시 위기감에 휩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를 ‘스푸트니크 순간(moment)’으로 표현했다. 새 세계의 경쟁국인 중국, 인도 같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적 위협을 거론하면서다. 이들 국가의 수학·과학·교육과 신기술 개발 투자가 미국에 스푸트니크 충격과 같은 위협이라는 것. 교육개혁, 사회간접자본 재건, 정부 지출 억제 등에 힘써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자고 했다. 스푸트니크 충격이 미국에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이광재 강원지사 대법 판결전 본지 격정토로 “면직 슬픈게 아니라 현실이 눈물난다”

    이광재 강원지사 대법 판결전 본지 격정토로 “면직 슬픈게 아니라 현실이 눈물난다”

    <원고지 89장 분량 인터뷰 전문 수록> 이광재 강원도지사는 대법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확정 판결로 지사직을 잃은 27일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 절차와 결과에 실망스럽다.”면서 “지사직을 잃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현실이 가슴 아프고, 도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판결 바로 전날인 26일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이 지사는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정치 현안, 2012년 대통령 선거 등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이 지사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제해 왔으며, 지난해 6월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뒤에도 도정과 관련한 인터뷰만 해 왔다. 정치 현안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인터뷰는 서교동에 자리잡은 강원도 서울사무소 5층 회의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오전 11시부터 1시간 40분동안 이어졌다. ●대법 상고심 결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지금까지도 백척간두 위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심정으로 살아왔다. 다 잘될 거라 본다. 불교 경전에 나오듯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정치적 탄압’이라고 말하고 싶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 가면서 선한 생각만 가져도 세상을 구제하지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하게 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나를 보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이번 판결을 맡은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나. -없다. →박시환 대법관을 만난 적이 있나.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강원도지사 직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 사장이 당선될 것으로 보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성공했다고 보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또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를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과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했다. →실패한 절반은 무엇인가. -당시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그러다 보니 너무 큰 상처가 났다. 예를 들어 행정중심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국회로 왔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작다. 국가의 5% 정도밖에는 바꿀 수 없다고 본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아…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다. 제3의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은 진화해야 한다고 본다. →참여정부의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잘못됐나.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다 홍보수석, 인사수석, 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기존 것을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가장 큰 이유가 뭘까. -내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잘 이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었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고…,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다 돌아섰다. 그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했다. 변호사로 기득권층에 진입했지만 사건을 맡기 어려워 직접 찾아가는 인권변호사가 됐고,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선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또다시… 정치가 좀 담백했으면 좋겠다.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참여했다. 그 당시 386들은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보나.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들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 봐야 전체 수석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둘 정도였다. 19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그렇게 따지면 김종필 총재도 30대에 정권의 2인자가 아니었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의 전환기 당시 대통령은 루스벨트, 케네디,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이었다.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다. →386 정치인들에게 여전히 공통된 지향점이 남아 있나. -세대의 에너지라는 것이 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이유가 뭔가. 그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를 겪었다. 그러니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386세대도 마찬가지다. 데모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80년대에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척박한 현실에서 몸으로 앞서 나가고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하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안희정, 유시민, 김두관, 문재인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가운데 60%는 노 대통령이,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씩 갖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한 말이다. 나는 오히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참여정부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와 안 지사, 김 지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재인 전 비서실장 중에서 노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켰지.(웃음) →문 실장이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30초 넘게 고심을 하다가) 잘 모르겠지만, 문재인 실장이 손학규 대표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했으면 좋겠다. 물론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했으면 좋겠지.(웃음)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이 없나. -그렇지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분이다. 다만 지금은 민주당이 아니니까. →다섯분 가운데 정치 지도자로서의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가장 낫나고 보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이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다. →안희정 지사와는 협력 관계인가, 경쟁 관계인가.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정치현안과 2012년 대선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개헌은 해야 하지만, 시점을 놓쳐 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가 아닌가. 어떤 개헌이 필요한 가는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으로 보나.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정치인,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대한민국의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특히 동북아 지역의 명운을 가르는 해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향후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몰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 개헌 문제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웃돈다. 이 지사는 몇점을 주겠나. -이미 대통령인데,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또 서민경제가 어렵다. 이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까지 이 두 가지 문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 지사 본인에게는 몇점을 주고 싶나. -나는 지사 업무 수행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50점쯤 주겠다. 강원도에서 나의 지지율도 그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포용과 통합이다. 국민통합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무엇일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또 동북아 평화와 물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박근혜 대세론’이 강하다.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경선 패배를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순간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앞으로 대통령의 비즈니스 역할이 커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가, 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모르겠지만, 멋진 승부를 벌이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 없이 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한나라당에서는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예측가능한 정치를 해야 한다. →현재 박 전 대표와 1대1로 붙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누구라고 보나. -그걸 말할 수 있나. 나도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지지율 23%포인트까지 뒤졌다가 13%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결국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가진 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다. →정치권이 좌파와 우파로 나뉘었는데, 이데올로기가 없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만 봐도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정부 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어느 하나가 옳을 수 있나.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할 때 각 부처 최고의 엘리트들과 일한 경험이 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불교신자다. 본인의 종교가 정치 활동에 영향을 미치나.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참여정부 때 실세여서 강원도에 예산을 많이 주도록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다만 나는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그때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과 일관성 있게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분들이 보수적인데 왜 작년에 민주당 후보인 이 지사를 선택했다고 보나. -첫째,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 둘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안다는 점. 셋째, 그래서 도지사 시켜 일하게 한 다음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로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강원도지사 선거 때 공언한 대로 10년 후 대통령 선거에 나올 건가.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 나와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장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전문 (200자 원고지 89장) 이광재 강원지사가 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지사직을 잃었다. 2년만에 막을 내린 박연차 게이트의 종착역에서 끝내 내리지 못한 채 “선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도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 인터뷰는 선고 전날 진행됐다. 이 지사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우여곡절 많았던 취임 이후의 소회와 정치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2012년 대선 등 정치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는 이도운 정치부장과 대담 형식으로 서울 서교동 강원도민회관 4층 회의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강원지사 강원지사가 중앙 정치권에서 크게 주목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지사가 당선되고 나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강원도는 대륙 국가로 가는 전진기지다. 올해 23개국을 다룬 ‘세계 흥망사’라는 책을 내려고 한다.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을 관통하는 철도 문제, 중국·러시아의 자원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때 신성장 동력이 나온다. 서울 중심의 서쪽으로 기울어진 배가 동쪽으로 균형을 잡는 극동아시아 시대가 온다. 지금은 강원도의 역사가 부상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국가 및 강원도의 발전 전략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흔한 말로 ‘호남은 푸대접, 강원도는 무대접’이라고 한다. 현 정권의 내각과 청와대 수석에 강원도 출신 없다. 도민들이 지역 차별을 느끼나.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만 해도 강원도 출신 장·차관들이 많았는데 현 정권에는 아무도 없어 안타까움이 많은 것 같다. 1년에 9000만여명이 강원도에 온다. 우리가 더 잘하면 그 분들이 강원도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상고심 27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잘 될거라 본다. 기본적으로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증거가 없고 , 궁박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 말에 따라 유·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미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무죄가 난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은 무죄가 났고, 나는 절반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났다. 더 결정적으로는 재판정에 박연차 씨가 나와 진술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재판장이 불러주지 않은 것도 문제다. 더군다나 한 차례가 아니고, 대여섯 차례에 걸쳐 돈을 10억원 넘게 거절한 건 내가 유일한 사람이다. 잘 될 거라 본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수용할 건가.  -백척간두 위에서 항상 진일보하는 인생을 살아왔고 잘 될 거라 본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털고 지사직에 전념할 건가, 아니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건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불리한 상황이 극복되기를 희망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가는 건데 내가 선한 생각만 갖고 살아도 세상을 구제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정치인 이광재까지는 모르겠지만 잘 풀릴 거라 본다.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항상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날 보고 근거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유죄 파기환송될 경우) 시한부 임기인데 도정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죄를 확신한다. 취임 이후 직무가 정지되는 어려운 와중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도정이 안정됐고 변화됐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도정 업무는 훨씬 더 강화되고 추진 속도가 붙을 거라고 본다. 언론에서 박시환 대법관과 이 지사의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나.  -모르겠다.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박시환 대법관과 만난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열심히 지역을 돌고 있다는데 어떤가. 엄 사장이 당선가능성 있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구제역 판결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영향을 주게 되나. 아니면 동계올림픽 유치가 판결에 영향을 줄까.  -그건 모르겠다. 오는 7월 6일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치돼야 한다. 연평도 사건도 그렇고 서민들의 생계도 어려워 국민들이 힘 빠져 있다. IMF 구제금융 당시 박세리 선수가 우승해 희망을 줬는데 이번에 평창이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강원도는 이미 두 번이나 울었다. 이번에는 강원도 ‘감자바우’들이 하는 일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써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꼭 될 거라고 본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유치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줬나.  -IOC위원회에서 워낙 평이 좋으시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IOC내 존경받는 분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구제역 발생으로 고심이 많은데 강원도 민심은 어떤가.  -구제역 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건 이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할 단계에 왔다는 거다. 첫째, 앞으로 질병이 위기관리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 둘째, 아직 구제역 연구소조차 없다. 미국은 케네디대통령이 1961년에 만들었는데 우리는 백신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국에 연락해서 공급받고 백신 자체도 모자란다. 구제역 연구소를 국가 차원에서 만들 필요가 있고 전반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 셋째, 가축을 키울 때 근본적인 전환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보니 동물을 일정 기간 이상 가둬서 키우지 않았다. 초지에서 방목하고, 불가피하게 가둬놓고 키우면 철저히 관리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구제역을 막는 것과 시장을 활성화 시켜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다. 강원도는 빨리 출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다들 재래시장에 못 나와 물건을 못 파니까 어렵다. 어차피 제수 상품을 사야 하니까 도청 공무원 월급의 일정액을 떼서 대대적인 상품권 구매운동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새끼가 젖을 물면 1분 이내에 쓰러지는데 오랫동안 버티다 쓰러지는 소를 보며 또 한번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할 때가 왔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사건이었다. ●참여정부와 고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문제에 대한 대응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시키면서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 문제도 박수 받고 해결했다.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됐다. 모든 것은 자기 지지자들과 했던 싸움이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지 않고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진보라고 진보의 정책을 다 쓸 수 없고, 보수라고 보수의 정책을 다 쓸 수 없다. 대통령은 중간을 가게 돼 있다. 내가 청와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방폐장 문제 다음 정권에 넘기자, 약체 정권인데 지지자들과 싸워서 별로 얻을 게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그럴 바에 왜 대통령을 하나. 내가 있을 때 어려운 문제를 하나씩 돌파해야 나라가 진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것, 이것이 가장 의미있다고 본다. 절반의 실패는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또 너무 상처가 났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이번 국회로 오게 됐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보다 사상가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자신의 힘에 비해 너무 거대한 어젠다를 세웠다.하지만 행복도시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화두의 일부를 내보였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아, 그런 사람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이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적통이라기 보다 제 3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결국 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참여정부가 만들었던 청와대와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잘했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한 부분은.  -참여정부가 했던 시스템을 현 정부가 다 반대하다가 다시 돌아갔다. 홍보수석 폐지했다가 다시 만들고, 인사수석·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존재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다. 노 대통령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공직자와 수많은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그런 시스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 체제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런 문제 볼 때마다 아쉬움이 있다.  나도 전임 도지사를 절대 비판하지 않고 다 안고 있다. 차차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하고 일은 혁신적으로 한다. 책을 쓰면서 23개국을 연구해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은 제조업이 강하고 기술이 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정보통신부가 없어지는 걸 보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결국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무한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앨빈 토플러가 ‘미국 대통령 되면 미국을 얼마나 변화시킬까. 5%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걸 못 바꾼다. 오히려 기존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주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다.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어떤 이유라고 보나.  -요즘 주말이면 봉하마을에 1만명이 온다고 한다. 놀랍다.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 서민 대통령.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 때 노 대통령은 어쨌든 법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법을 배워야 한다, 리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면서 아침 7시에 불러 헌법 공부를 시켰다. 집이 인천이라 국회 근처에 방을 잡고 밤새며 일을 했다. 청문회에서 대단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나 글은 굉장히 쉽다. 어디서 이렇게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언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들이 판·검사를 접대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걸 하지 말자고 했다. 그 뒤 사건이 안 들어와서 직접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인생이 말야, 남녀가 모든 걸 버리며 사랑하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면 1만원짜리 하나 갖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듣고 확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대정부 질의 원고가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면 대통령을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갖고 있다가 1992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하면서 호남 사람들 이 의원회관실로 울며 전화하더니 애를 더 낳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영남 사람이지만 이렇게 나라가 분열되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걸 말씀드렸고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자고 하니 나가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을 치르면서 최고위원 선거 준비했고 대선 나간다고 계획 세웠다. 1993년 12월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완전히 생각을 굳혔다. 갔다 와서 안희정 씨를 만나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라 현역 국회의원 대상으로 계보 만들기가 어려우니 지방자치 실무연구소를 만들고 싱크탱크를 만들자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가장 감동을 받은 건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인이고 권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노 대통령은 계속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아마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런 농담이 있다.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는. 양면성이 있다. 분노는 사랑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노동자와 서민을 변호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노동자와 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냐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나도 대한민국 사법고시에서 50명 뽑을 때 된 사람이다. 판사도 됐고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나 국회라는 게 뭐냐, 나같은 사람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줘야 균형을 잡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뭐 쉬운 길을 가냐. 나는 뭐 좋냐. 내가 무슨 바보냐’고 했다. 항상 유대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처음에 공산주의자 나치가 공산주의자 선언할 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 있었다, 그러나 나치가 나를 체포하러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강연에서 많이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세분석 하지 말라고 했다. 참모들은 참아야 기회가 온다고 조언하는데 ‘내가 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하냐’고 따졌다. 이러면 참모들은 힘들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5대 총선 종로에서 떨어지고 정말 막막했다. 두 번 떨어지고 나서 내가 노 대통령에게 종로로 가자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이명박·이종찬 후보에게 다 지는 걸로 나왔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 정치 1번지에서 의미있는 전사를 해도 정치인은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다. 천신만고 끝에 현역이 됐다. 그 뒤에 부산에 가겠다는 거다. 왜 거기로 가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걸 생각하는데 도구가 된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분이 계속 어려우니까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좋을 때 떠나지, 어려울 때 못 떠난다.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내가 세속적인 출세를 한 거다. 내가 큰 역량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터뷰하러 오면서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노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사람들이 다 돌아서더라.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했다. 변호사로서 대한민국 기득권에 진입했지만 인권변호사가 됐고, 경상도 사람으로 민주당에 소속돼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이런 얘기할 때 가슴 아팠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제일 중요한 게 의리라고 생각한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렇게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좀 정치가 담백했으면 좋겠다. ●386과 486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정권에 참여했다. 국가를 장악할 준비가 돼 있었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봐야 전체 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비서관 둘 빼면 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이 사람들이 주력 부대였다. 수석이 대체로 50대 중반, 노 대통령과 같거나 조금 많거나 적었다.  또 김종필 총재가 30대에 공화당 의장하지 않았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세 번 오는데 공황기, 동서 냉전기, 신자유주의 물결이 들어서기 직전이다. 한번은 루즈벨트, 한번은 케네디, 한번은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의 대통령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준비가 돼 있느냐,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정리하자면 너무 과하게 폄하하려 하는 의도 속에서 본질에 맞지 않는 비난이 있었고, 나이만으로 모든 걸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 당시 나쁜 배합 아니었다. 386 정치인들은 현재 공통된 지향점이 있나.  -세대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것은 그 당시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 전쟁을 치렀다. 석회석과 다이아몬드는 성분이 똑같다. 그런데 어떤 압축과 고열과정 겪느냐에 따라 석회석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6·25 전쟁과 8·15 해방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그 에너지가 있었기에 40대 기수론이 가능했고 살아가는 힘이 있었기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보자는 열망이 가능했다. 박정희라는 지도자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경제 발전도 가능했다.  데모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 80년대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데모를 하든 안 하든 척박한 현실에 몸으로 앞서 나간 사람,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수백만이다. 학생운동 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386으로 폄하될 일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해 나가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중에 학생 운동 한 사람들은 소수였다. 당시 70만명씩 대학갈 때다. 80년대 학번부터 87년까지 보면 490만명의 대졸자를 갖고 있다. 취직을 많이 못해서 문화운동을 이끈 사람들도 이 주류들이다. 강한 386에너지가 있다. 운동만 한 386이 아니고, 80년대라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아간 강력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이제 486이라고 하는데 용어는 어떤가. 386 상징성 때문에 쓰는 게 낫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본다. 세대 에너지를 좀더 얘기하자면 68년도에 유럽의 학생운동을 이끈 6·8세대들이 다 유럽의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세대 에너지가 강하다고 본다. 존중될 필요가 있다. 다만 나처럼 못난 사람이 정치하게 되면서 정치권에 대해 조금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부채 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386 세대는 충분히 의미있는 세대다. 40대가 우리 경제의 주류 아닌가. 회사의 과장, 부장으로 일하면서 사회와 경제를 끌고 가는 강력한 세대다. 내가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에너지 만큼 못한 게 미안하다. 올해 70세 넘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영화제위원장을 강원도 문화예술제전 이사장으로 모셨다. 김 위원장은 1년 반을 해외에 있었다. 20대 청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세대간 벽을 두기보다 신구 조화를 강력히 꾀해야 할 때다. 중국이란 나라의 역동적 힘은 젊은 사람을 키워주고 권력자들은 전 정권 권력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데서 나온다. 난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강력한 동력이라 본다. ●친노세력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60%은 노 대통령에게,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하다. 내가 노 대통령과 가장 오래 있었고, 노 대통령의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 게 내 숙제다. 참여정부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사람이 사는데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건 변함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 안희정 지사, 김두관 지사, 유시민 전 장관, 문재인 비서실장 중에서노 대통령은 누구를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키지(웃음) 문 실장은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한참을 생각하다)잘 모르겠지만 손학규 대표와 문재인 변호사가 잘 경선했으면 좋겠다.(웃음)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 경선했으면 좋겠다. 김두관 지사 말을 들어보면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 없나.  -그렇지는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특별한 애정 가졌던 분이다. 지금 민주당은 아니니까. 지사 제외하고 나머지 분 중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낫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에서 시작되는 거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라고 본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5명 가운데 누가 대표 주자로 출마하면 좋을까. 문재인 실장인가.  -손 대표, 문 실장, 정동영 최고위원도 하겠지. 안희정 지사와는 경쟁 관계인가.  -둘다 의미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자리, 교육, 복지 세 가지 영역에 지사직을 걸었다.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정치가는 희망을 파는 상인인데 국민들은 너무 위대하고 똑똑하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그래야 정치를 얘기할 수 있다. 난 분명히 그렇게 할 거다. ●정치 현안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이 지사의 생각은.  -도 지사가 그런 얘기도 해야 하나(웃음). 개헌은 해야 하지만 노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했을 때 해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노 대통령이 하자고 했던 시기에 했으면 전체 대통령의 임기나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을텐데 시점을 놓쳐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다. 국회의원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 어떤 개헌 방향이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여당에서 개헌을 계속 추진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 같나.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전 보면서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진짜 대한민국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명운을 가르는 해다. 북한은 권력 교체기고 우리는 대통령 선거다. 중국 지도자가 바뀐다. 러시아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 있다. 아시아 전반에도 남북 문제를 둘러싼 큰 틀의 변화가 오는 시기다. 남북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대한민국 명운을 끌고 갈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장길도 계획이라는게, 나진선봉으로 바다로 나오는 것이다. 내년 10월되면 푸틴 대통령이 만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다. 얼마 전에는 몽골의 석탄을 한·중·러가 철도를 놔주는 조건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몽골 자원이 동해안으로 나오게 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캄차카 반도 위로 북극 항로가 100~120일 열린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 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한국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천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 투구하고 여야를 떠나 내년 10월 APEC 의제는 단연코 남북의 정세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관리할 거냐, 북한을 경유하는 철도는 어떻게 될 거냐, 몽골·북한의 엄청난 광물 자원 어떻게 가져갈 거냐, 북한 물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거냐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극동아시아의 변화에 여야를 떠나 모든 정파가 외교에 진력해야 한다. 130년 전 구한말 상황이 온 것이다. 강원도가 여기에 한 축이 있다. 지사직을 걸었다.  무상복지 논란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복지 하면 무상이다. 그런데 성장 없는 복지가 어디 있고,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성장이 어디 있나. 지금처럼 주택 문제,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20년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동안 성장동력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서민들을 어떻게 할 건가를 놓고 머리 맞댈 일이지 지금 개헌으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50%를 웃돈다. 100점 만점에 몇점 정도 주겠나.  -글쎄. 난 통일보단 평화를 원한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서민경제 부분에 집중해줬으면 한다. 지금 서민들이 살기 너무 어렵다. 고용없는 성장과 거대한 눈부신 지표는 존재하는데 서민 삶은 거기에 없다. 임기 마지막에 두 가지를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어차피 대통령인데. 물론 국민 원성 사면 안 되지만 너무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역사와 승부하면서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게 중요하다.. 평화보다 통일 원하는 거 맞나.  -그럼,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지지율 조사하면 어느 정도.  -한 50% 나올 거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잘못하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이야기에 로마의 번성 요인에 관한 글이 있는데 하나는 포용이다. 로마가 일어났던 건 이민족에 대한 포용, 로마인이 아닌데도 시민권을 주고 외부 사람도 황제가 될 수 있게 했다. 두번째 통합이다. 국민통합이란 건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되고 서민경제가 잘 된다. 내년 10월 APEC 정상회담을 반드시 국가의 전 역량을 모아야 한다. 틀의 변화는 임기 후반기에 있다. ●민주당 전적으로 공감한다. 민주당의 3대 무상 정책에 찬성하나.  -일자리, 교육 문제를 통해 건강한 중산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게 국가 전체적으로 복지다. 이를 어떻게 끌고 갈 거냐의 문제와 또 하나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는가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강원도는 이렇게 정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투자, 들어오는 기업에 특혜를 확실히 주겠다는 게 내 주장이다. 상장 회사 3개를 유치했다. 일자리 만드는 부분을 해 나가는 거다. 교육 분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와 중국어를, 강릉 영동지역은 영어와 러시아를 시범학교를 정해 집중할 생각이다. 연세대학교 초·중·고를 원주에 만든다든지 해서 교육 부분을 굉장히 강화하려 한다. 복지 예산은 늘었는데 많은 걸 못한다. 시범사업을 해보는 거다. 시범사업을 해서 내 가설이 맞으면 확대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2018년 돼야 연금시대 열린다. 2018년에 연금 받을 정도로 연세드신 분은 노후 준비가 안돼 있다. 경로당에 집중하자. 복지의 인프라라고 생각하면 경로당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소 한마리에 200만원, 키우면 한 달에 1만 5000원을 준다. 100마리를 키우면 150만원인데 이걸 경로당 짓는데 쓰자. 소가 새끼 낳으면 소 한마리 800만~1000만원 하는데 그 돈으로 경로당을 도와줄 수 있다. 3년 지나면 소를 팔고 송아지 한 마리가 생긴다. 증식의 모델을 만드는 거다. 농촌형 복지다. 이걸 시범사업으로 해서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부모가 있으면 세액공제를 받는다. 그러지 말고 효도통장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일정액을 자식 월급에서 10만원 떼 주자.  노인들 쓰레기 줍는거 말고 유럽처럼 꽃을 가꾸게 하고, 도시형 같은 경우 할아버지들이 도시의 쓰레기, 명함 등을 수거해오면 계산해서 주고 경로당 운영비를 주고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  논쟁할 때 서로 존중할 필요있다. 인간이 제도로 만들어낸 게 투표(정치)와 화폐(경제)다. 성장과 불평등은 쌍둥이 자식이다. 경제에서 성장은 미덕이다. 그러나 결과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걸 해소하려는 게 평등이고, 그게 정치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 닮으려고 한다. 이기적, 이타적 유전자가 큰 논란을 일으키는데 성장과 복지라는게 그런 측면이 있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철학적인 답변이다. 손학규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리더십에 만족하나.  -내가 그것까지 얘기할 건 아닌 것 같은데.(웃음) 가급적 일에 몰두하는 편이고 강원도 일에 성과를 내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여의도와 정치판을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보도 없다. ●2012년 대선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도정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동북아의 평화 정세와 물류 문제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극동아시아가 천연가스 50%를 갖고 있다. 북한도 그렇다. 철길, 뱃길로 어떻게 연결해서 해나갈 건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신성장 동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후보 선호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세론이 강한데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좋은 분이다. 지난 번 경선에서 졌을 때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할 때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국민 마음 속에 섰다. 앞으로 점점 더 비즈니스 대통령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국민들은 예측가능한 미래와 예측가능한 대통령을 원하고 세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통령을 원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도 했고, 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좋은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안 나설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멋진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없이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박 전 대표와 일 대 일로 붙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그걸 말할 수 있나. 하지만 이런 것 같다. 내가 지지도 마이너스 23%였다가 플러스 13%로 이겼다. 박연차 게이트로 찜찜한 게 있으면 국회의원 안 나갔다. 내가 감옥갔을 때 강원도민들이 사랑으로 모든 걸 거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갖고 있는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온다. 선거를 예단할 수 없다. 내가 이길 거라고 누가 봤겠나. 노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음 대선에서 공통된 표심을 가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누가 됐든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은 이젠 예측가능한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난 항상 오류가 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치판이 온통 좌파 우파니 하는데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 발전만 봐도 갈라놓고 싸우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1950년대 소위 소련 체제가 경제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뤘다. 미국이 과학자 양성을 위해 수월성 학교교육으로 완전히 바꿨다. 70년대 들어 유럽형 복지모델이 얼마나 강력한 성장모델 됐나. 제 3세계 아시아의 용들은 독재국가라는 비판받으면서도 얼마나 성장했나. 미국 경제도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융성했나.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어려움을 겪지 않나. 경제 발전만 봐도 이렇듯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경제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이것이 옳다고 하나. 역사가 말하지만 진보 보수 관점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경제사 이론을 보더라도 국가의 시장 개입이 진보였는데 한때는 개입하지 않는 게 진보였다가 지금은 또 개입하려고 하지 않나.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르겠지만 정치로 얘기하면 진보 보수, 좌파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한다. 언론관은 노 대통령과 같나.  -극도로 언론 노출을 피해왔다. 내가 노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었는데 모시는 사람은 자기 일이 없는 거다. 노 대통령 모실 때 문고리 잡고 인의 장막을 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소개했지만 내 스스로 인터뷰한 적이 없었다. 청와대에서도 근무했는데 공무원과 사이는 어땠나.  -잘 지내는 편이다. 국정상황실장 할 때 부처 고시 성적 최고였던 분들과 일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유능하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일은 혁신적으로 하는데 사람을 너무 자주 바꾸는 건 옳지 않다.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아침 운동을 과장이랑 걷고, 국장이랑 밥을 먹고, 한 사람씩 알아가고 있다. 조직은 마음으로 일하는 거지 명령으로 일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에게 나한테 충성하지 말고 강원도민에게 충성하라고 한다. 종교가 불교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나.  -잘 모르겠다.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다른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프란체스카 수도사가 한 말이 너무 와닿는다. 5세기 때 쓴 책인가. ‘수도원의 역사’란 책에서 넌 왜 풀이나 바위와 나무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왜 인간만 영혼이 있다고 보냐. 나무에도 산에도 생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칭기스칸 아들은 신이 10가지 손가락을 준 이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실세라 강원도 예산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동의하나.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국회 와서 처음한 게 내가 담당하는 산하기관을 전부 돈 것이다.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그래서 예산을 따는 거다. 물론 힘이 든다. 담당 사무관이 제일 중요하다. 수백대 일의 경쟁력을 뚫은 공직자를 설득해야 생명력을 갖고 일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 있게 일관성 갖고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가 보수적인데 왜 이 지사를 유권자들이 선택했다고 보나.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과 또 하나는 청와대의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알고 그래서 도지사 시켜 강원도를 위해 일 시킨 다음에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을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내가 선거 때 마지막 연설에서 ‘청와대 국정경험, 국회의원 경험 살려서 10년이 지나면 대통령에 나가겠다’고 한 연설이 시청률 20%까지 올라갔다. 10분짜리 연설인데 나도 놀랐다. 인구는 적은데 적이 없는 데가 강원도다. 이광재를 키워 대통령까지 가보자는 열망이 컸던 거 같다. 10년 후 대통령 나올 건가.  -도 지사를 잘해야 한다.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그것 외에는 뭐. 대통령을 옆에서 많이 봤고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안다. 자리를 탐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강원도 일에 욕심을 내겠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도지사 선거 때 이광재 지사가 정말 연설을 잘하더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도 차기 대선에서 이광재는 왜 안 되고 김두관은 왜 안되겠느냐고 하더라. 10년 약속이 5년으로 당겨질 수도 있나.  -나는 산에서 잘 잔다. 산에서 자면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다 자기 가는 길이 있다. 큰 배가 가는 바다에도 길이 있다. 넓은 창공 같지만 두루미도 가는 길이 있다. 너무 삶에 애달복달 말고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살면서 그 길을 가는 거다. 내가 너무 노 대통령과 어렸을 적부터 큰 일을 하다보니 세상 사는 게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만약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노 대통령 같은 사람 될까.  -왜 그러나. 강원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나와서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사 일을 잘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이광재 강원지사가 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지사직을 잃었다. 2년만에 막을 내린 박연차 게이트의 종착역에서 끝내 내리지 못한 채 “선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도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 인터뷰는 선고 전날 진행됐다. 이 지사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우여곡절 많았던 취임 이후의 소회와 정치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2012년 대선 등 정치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는 이도운 정치부장과 대담 형식으로 서울 서교동 강원도민회관 4층 회의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강원지사 강원지사가 중앙 정치권에서 크게 주목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지사가 당선되고 나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강원도는 대륙 국가로 가는 전진기지다. 올해 23개국을 다룬 ‘세계 흥망사’라는 책을 내려고 한다.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을 관통하는 철도 문제, 중국·러시아의 자원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때 신성장 동력이 나온다. 서울 중심의 서쪽으로 기울어진 배가 동쪽으로 균형을 잡는 극동아시아 시대가 온다. 지금은 강원도의 역사가 부상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국가 및 강원도의 발전 전략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흔한 말로 ‘호남은 푸대접, 강원도는 무대접’이라고 한다. 현 정권의 내각과 청와대 수석에 강원도 출신 없다. 도민들이 지역 차별을 느끼나.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만 해도 강원도 출신 장·차관들이 많았는데 현 정권에는 아무도 없어 안타까움이 많은 것 같다. 1년에 9000만여명이 강원도에 온다. 우리가 더 잘하면 그 분들이 강원도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상고심 27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잘 될거라 본다. 기본적으로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증거가 없고 , 궁박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 말에 따라 유·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미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무죄가 난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은 무죄가 났고, 나는 절반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났다. 더 결정적으로는 재판정에 박연차 씨가 나와 진술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재판장이 불러주지 않은 것도 문제다. 더군다나 한 차례가 아니고, 대여섯 차례에 걸쳐 돈을 10억원 넘게 거절한 건 내가 유일한 사람이다. 잘 될 거라 본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수용할 건가.  -백척간두 위에서 항상 진일보하는 인생을 살아왔고 잘 될 거라 본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털고 지사직에 전념할 건가, 아니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건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불리한 상황이 극복되기를 희망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가는 건데 내가 선한 생각만 갖고 살아도 세상을 구제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정치인 이광재까지는 모르겠지만 잘 풀릴 거라 본다.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항상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날 보고 근거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유죄 파기환송될 경우) 시한부 임기인데 도정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죄를 확신한다. 취임 이후 직무가 정지되는 어려운 와중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도정이 안정됐고 변화됐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도정 업무는 훨씬 더 강화되고 추진 속도가 붙을 거라고 본다. 언론에서 박시환 대법관과 이 지사의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나.  -모르겠다.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박시환 대법관과 만난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열심히 지역을 돌고 있다는데 어떤가. 엄 사장이 당선가능성 있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구제역 판결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영향을 주게 되나. 아니면 동계올림픽 유치가 판결에 영향을 줄까.  -그건 모르겠다. 오는 7월 6일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치돼야 한다. 연평도 사건도 그렇고 서민들의 생계도 어려워 국민들이 힘 빠져 있다. IMF 구제금융 당시 박세리 선수가 우승해 희망을 줬는데 이번에 평창이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강원도는 이미 두 번이나 울었다. 이번에는 강원도 ‘감자바우’들이 하는 일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써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꼭 될 거라고 본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유치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줬나.  -IOC위원회에서 워낙 평이 좋으시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IOC내 존경받는 분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구제역 발생으로 고심이 많은데 강원도 민심은 어떤가.  -구제역 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건 이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할 단계에 왔다는 거다. 첫째, 앞으로 질병이 위기관리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 둘째, 아직 구제역 연구소조차 없다. 미국은 케네디대통령이 1961년에 만들었는데 우리는 백신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국에 연락해서 공급받고 백신 자체도 모자란다. 구제역 연구소를 국가 차원에서 만들 필요가 있고 전반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 셋째, 가축을 키울 때 근본적인 전환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보니 동물을 일정 기간 이상 가둬서 키우지 않았다. 초지에서 방목하고, 불가피하게 가둬놓고 키우면 철저히 관리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구제역을 막는 것과 시장을 활성화 시켜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다. 강원도는 빨리 출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다들 재래시장에 못 나와 물건을 못 파니까 어렵다. 어차피 제수 상품을 사야 하니까 도청 공무원 월급의 일정액을 떼서 대대적인 상품권 구매운동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새끼가 젖을 물면 1분 이내에 쓰러지는데 오랫동안 버티다 쓰러지는 소를 보며 또 한번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할 때가 왔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사건이었다. ●참여정부와 고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문제에 대한 대응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시키면서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 문제도 박수 받고 해결했다.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됐다. 모든 것은 자기 지지자들과 했던 싸움이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지 않고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진보라고 진보의 정책을 다 쓸 수 없고, 보수라고 보수의 정책을 다 쓸 수 없다. 대통령은 중간을 가게 돼 있다. 내가 청와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방폐장 문제 다음 정권에 넘기자, 약체 정권인데 지지자들과 싸워서 별로 얻을 게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그럴 바에 왜 대통령을 하나. 내가 있을 때 어려운 문제를 하나씩 돌파해야 나라가 진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것, 이것이 가장 의미있다고 본다. 절반의 실패는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또 너무 상처가 났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이번 국회로 오게 됐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보다 사상가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자신의 힘에 비해 너무 거대한 어젠다를 세웠다.하지만 행복도시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화두의 일부를 내보였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아, 그런 사람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이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적통이라기 보다 제 3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결국 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참여정부가 만들었던 청와대와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잘했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한 부분은.  -참여정부가 했던 시스템을 현 정부가 다 반대하다가 다시 돌아갔다. 홍보수석 폐지했다가 다시 만들고, 인사수석·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존재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다. 노 대통령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공직자와 수많은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그런 시스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 체제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런 문제 볼 때마다 아쉬움이 있다.  나도 전임 도지사를 절대 비판하지 않고 다 안고 있다. 차차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하고 일은 혁신적으로 한다. 책을 쓰면서 23개국을 연구해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은 제조업이 강하고 기술이 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정보통신부가 없어지는 걸 보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결국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무한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앨빈 토플러가 ‘미국 대통령 되면 미국을 얼마나 변화시킬까. 5%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걸 못 바꾼다. 오히려 기존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주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다.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어떤 이유라고 보나.  -요즘 주말이면 봉하마을에 1만명이 온다고 한다. 놀랍다.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 서민 대통령.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 때 노 대통령은 어쨌든 법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법을 배워야 한다, 리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면서 아침 7시에 불러 헌법 공부를 시켰다. 집이 인천이라 국회 근처에 방을 잡고 밤새며 일을 했다. 청문회에서 대단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나 글은 굉장히 쉽다. 어디서 이렇게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언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들이 판·검사를 접대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걸 하지 말자고 했다. 그 뒤 사건이 안 들어와서 직접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인생이 말야, 남녀가 모든 걸 버리며 사랑하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면 1만원짜리 하나 갖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듣고 확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대정부 질의 원고가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면 대통령을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갖고 있다가 1992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하면서 호남 사람들 이 의원회관실로 울며 전화하더니 애를 더 낳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영남 사람이지만 이렇게 나라가 분열되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걸 말씀드렸고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자고 하니 나가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을 치르면서 최고위원 선거 준비했고 대선 나간다고 계획 세웠다. 1993년 12월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완전히 생각을 굳혔다. 갔다 와서 안희정 씨를 만나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라 현역 국회의원 대상으로 계보 만들기가 어려우니 지방자치 실무연구소를 만들고 싱크탱크를 만들자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가장 감동을 받은 건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인이고 권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노 대통령은 계속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아마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런 농담이 있다.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는. 양면성이 있다. 분노는 사랑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노동자와 서민을 변호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노동자와 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냐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나도 대한민국 사법고시에서 50명 뽑을 때 된 사람이다. 판사도 됐고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나 국회라는 게 뭐냐, 나같은 사람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줘야 균형을 잡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뭐 쉬운 길을 가냐. 나는 뭐 좋냐. 내가 무슨 바보냐’고 했다. 항상 유대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처음에 공산주의자 나치가 공산주의자 선언할 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 있었다, 그러나 나치가 나를 체포하러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강연에서 많이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세분석 하지 말라고 했다. 참모들은 참아야 기회가 온다고 조언하는데 ‘내가 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하냐’고 따졌다. 이러면 참모들은 힘들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5대 총선 종로에서 떨어지고 정말 막막했다. 두 번 떨어지고 나서 내가 노 대통령에게 종로로 가자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이명박·이종찬 후보에게 다 지는 걸로 나왔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 정치 1번지에서 의미있는 전사를 해도 정치인은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다. 천신만고 끝에 현역이 됐다. 그 뒤에 부산에 가겠다는 거다. 왜 거기로 가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걸 생각하는데 도구가 된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분이 계속 어려우니까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좋을 때 떠나지, 어려울 때 못 떠난다.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내가 세속적인 출세를 한 거다. 내가 큰 역량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터뷰하러 오면서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노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사람들이 다 돌아서더라.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했다. 변호사로서 대한민국 기득권에 진입했지만 인권변호사가 됐고, 경상도 사람으로 민주당에 소속돼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이런 얘기할 때 가슴 아팠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제일 중요한 게 의리라고 생각한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렇게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좀 정치가 담백했으면 좋겠다. ●386과 486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정권에 참여했다. 국가를 장악할 준비가 돼 있었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봐야 전체 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비서관 둘 빼면 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이 사람들이 주력 부대였다. 수석이 대체로 50대 중반, 노 대통령과 같거나 조금 많거나 적었다.  또 김종필 총재가 30대에 공화당 의장하지 않았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세 번 오는데 공황기, 동서 냉전기, 신자유주의 물결이 들어서기 직전이다. 한번은 루즈벨트, 한번은 케네디, 한번은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의 대통령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준비가 돼 있느냐,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정리하자면 너무 과하게 폄하하려 하는 의도 속에서 본질에 맞지 않는 비난이 있었고, 나이만으로 모든 걸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 당시 나쁜 배합 아니었다. 386 정치인들은 현재 공통된 지향점이 있나.  -세대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것은 그 당시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 전쟁을 치렀다. 석회석과 다이아몬드는 성분이 똑같다. 그런데 어떤 압축과 고열과정 겪느냐에 따라 석회석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6·25 전쟁과 8·15 해방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그 에너지가 있었기에 40대 기수론이 가능했고 살아가는 힘이 있었기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보자는 열망이 가능했다. 박정희라는 지도자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경제 발전도 가능했다.  데모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 80년대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데모를 하든 안 하든 척박한 현실에 몸으로 앞서 나간 사람,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수백만이다. 학생운동 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386으로 폄하될 일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해 나가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중에 학생 운동 한 사람들은 소수였다. 당시 70만명씩 대학갈 때다. 80년대 학번부터 87년까지 보면 490만명의 대졸자를 갖고 있다. 취직을 많이 못해서 문화운동을 이끈 사람들도 이 주류들이다. 강한 386에너지가 있다. 운동만 한 386이 아니고, 80년대라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아간 강력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이제 486이라고 하는데 용어는 어떤가. 386 상징성 때문에 쓰는 게 낫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본다. 세대 에너지를 좀더 얘기하자면 68년도에 유럽의 학생운동을 이끈 6·8세대들이 다 유럽의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세대 에너지가 강하다고 본다. 존중될 필요가 있다. 다만 나처럼 못난 사람이 정치하게 되면서 정치권에 대해 조금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부채 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386 세대는 충분히 의미있는 세대다. 40대가 우리 경제의 주류 아닌가. 회사의 과장, 부장으로 일하면서 사회와 경제를 끌고 가는 강력한 세대다. 내가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에너지 만큼 못한 게 미안하다. 올해 70세 넘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영화제위원장을 강원도 문화예술제전 이사장으로 모셨다. 김 위원장은 1년 반을 해외에 있었다. 20대 청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세대간 벽을 두기보다 신구 조화를 강력히 꾀해야 할 때다. 중국이란 나라의 역동적 힘은 젊은 사람을 키워주고 권력자들은 전 정권 권력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데서 나온다. 난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강력한 동력이라 본다. ●친노세력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60%은 노 대통령에게,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하다. 내가 노 대통령과 가장 오래 있었고, 노 대통령의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 게 내 숙제다. 참여정부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사람이 사는데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건 변함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 안희정 지사, 김두관 지사, 유시민 전 장관, 문재인 비서실장 중에서노 대통령은 누구를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키지(웃음) 문 실장은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한참을 생각하다)잘 모르겠지만 손학규 대표와 문재인 변호사가 잘 경선했으면 좋겠다.(웃음)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 경선했으면 좋겠다. 김두관 지사 말을 들어보면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 없나.  -그렇지는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특별한 애정 가졌던 분이다. 지금 민주당은 아니니까. 지사 제외하고 나머지 분 중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낫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에서 시작되는 거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라고 본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5명 가운데 누가 대표 주자로 출마하면 좋을까. 문재인 실장인가.  -손 대표, 문 실장, 정동영 최고위원도 하겠지. 안희정 지사와는 경쟁 관계인가.  -둘다 의미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자리, 교육, 복지 세 가지 영역에 지사직을 걸었다.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정치가는 희망을 파는 상인인데 국민들은 너무 위대하고 똑똑하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그래야 정치를 얘기할 수 있다. 난 분명히 그렇게 할 거다. ●정치 현안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이 지사의 생각은.  -도 지사가 그런 얘기도 해야 하나(웃음). 개헌은 해야 하지만 노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했을 때 해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노 대통령이 하자고 했던 시기에 했으면 전체 대통령의 임기나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을텐데 시점을 놓쳐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다. 국회의원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 어떤 개헌 방향이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여당에서 개헌을 계속 추진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 같나.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전 보면서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진짜 대한민국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명운을 가르는 해다. 북한은 권력 교체기고 우리는 대통령 선거다. 중국 지도자가 바뀐다. 러시아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 있다. 아시아 전반에도 남북 문제를 둘러싼 큰 틀의 변화가 오는 시기다. 남북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대한민국 명운을 끌고 갈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장길도 계획이라는게, 나진선봉으로 바다로 나오는 것이다. 내년 10월되면 푸틴 대통령이 만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다. 얼마 전에는 몽골의 석탄을 한·중·러가 철도를 놔주는 조건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몽골 자원이 동해안으로 나오게 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캄차카 반도 위로 북극 항로가 100~120일 열린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 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한국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천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 투구하고 여야를 떠나 내년 10월 APEC 의제는 단연코 남북의 정세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관리할 거냐, 북한을 경유하는 철도는 어떻게 될 거냐, 몽골·북한의 엄청난 광물 자원 어떻게 가져갈 거냐, 북한 물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거냐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극동아시아의 변화에 여야를 떠나 모든 정파가 외교에 진력해야 한다. 130년 전 구한말 상황이 온 것이다. 강원도가 여기에 한 축이 있다. 지사직을 걸었다.  무상복지 논란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복지 하면 무상이다. 그런데 성장 없는 복지가 어디 있고,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성장이 어디 있나. 지금처럼 주택 문제,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20년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동안 성장동력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서민들을 어떻게 할 건가를 놓고 머리 맞댈 일이지 지금 개헌으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50%를 웃돈다. 100점 만점에 몇점 정도 주겠나.  -글쎄. 난 통일보단 평화를 원한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서민경제 부분에 집중해줬으면 한다. 지금 서민들이 살기 너무 어렵다. 고용없는 성장과 거대한 눈부신 지표는 존재하는데 서민 삶은 거기에 없다. 임기 마지막에 두 가지를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어차피 대통령인데. 물론 국민 원성 사면 안 되지만 너무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역사와 승부하면서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게 중요하다.. 평화보다 통일 원하는 거 맞나.  -그럼,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지지율 조사하면 어느 정도.  -한 50% 나올 거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잘못하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이야기에 로마의 번성 요인에 관한 글이 있는데 하나는 포용이다. 로마가 일어났던 건 이민족에 대한 포용, 로마인이 아닌데도 시민권을 주고 외부 사람도 황제가 될 수 있게 했다. 두번째 통합이다. 국민통합이란 건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되고 서민경제가 잘 된다. 내년 10월 APEC 정상회담을 반드시 국가의 전 역량을 모아야 한다. 틀의 변화는 임기 후반기에 있다. ●민주당 전적으로 공감한다. 민주당의 3대 무상 정책에 찬성하나.  -일자리, 교육 문제를 통해 건강한 중산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게 국가 전체적으로 복지다. 이를 어떻게 끌고 갈 거냐의 문제와 또 하나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는가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강원도는 이렇게 정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투자, 들어오는 기업에 특혜를 확실히 주겠다는 게 내 주장이다. 상장 회사 3개를 유치했다. 일자리 만드는 부분을 해 나가는 거다. 교육 분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와 중국어를, 강릉 영동지역은 영어와 러시아를 시범학교를 정해 집중할 생각이다. 연세대학교 초·중·고를 원주에 만든다든지 해서 교육 부분을 굉장히 강화하려 한다. 복지 예산은 늘었는데 많은 걸 못한다. 시범사업을 해보는 거다. 시범사업을 해서 내 가설이 맞으면 확대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2018년 돼야 연금시대 열린다. 2018년에 연금 받을 정도로 연세드신 분은 노후 준비가 안돼 있다. 경로당에 집중하자. 복지의 인프라라고 생각하면 경로당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소 한마리에 200만원, 키우면 한 달에 1만 5000원을 준다. 100마리를 키우면 150만원인데 이걸 경로당 짓는데 쓰자. 소가 새끼 낳으면 소 한마리 800만~1000만원 하는데 그 돈으로 경로당을 도와줄 수 있다. 3년 지나면 소를 팔고 송아지 한 마리가 생긴다. 증식의 모델을 만드는 거다. 농촌형 복지다. 이걸 시범사업으로 해서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부모가 있으면 세액공제를 받는다. 그러지 말고 효도통장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일정액을 자식 월급에서 10만원 떼 주자.  노인들 쓰레기 줍는거 말고 유럽처럼 꽃을 가꾸게 하고, 도시형 같은 경우 할아버지들이 도시의 쓰레기, 명함 등을 수거해오면 계산해서 주고 경로당 운영비를 주고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  논쟁할 때 서로 존중할 필요있다. 인간이 제도로 만들어낸 게 투표(정치)와 화폐(경제)다. 성장과 불평등은 쌍둥이 자식이다. 경제에서 성장은 미덕이다. 그러나 결과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걸 해소하려는 게 평등이고, 그게 정치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 닮으려고 한다. 이기적, 이타적 유전자가 큰 논란을 일으키는데 성장과 복지라는게 그런 측면이 있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철학적인 답변이다. 손학규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리더십에 만족하나.  -내가 그것까지 얘기할 건 아닌 것 같은데.(웃음) 가급적 일에 몰두하는 편이고 강원도 일에 성과를 내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여의도와 정치판을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보도 없다. ●2012년 대선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도정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동북아의 평화 정세와 물류 문제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극동아시아가 천연가스 50%를 갖고 있다. 북한도 그렇다. 철길, 뱃길로 어떻게 연결해서 해나갈 건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신성장 동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후보 선호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세론이 강한데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좋은 분이다. 지난 번 경선에서 졌을 때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할 때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국민 마음 속에 섰다. 앞으로 점점 더 비즈니스 대통령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국민들은 예측가능한 미래와 예측가능한 대통령을 원하고 세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통령을 원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도 했고, 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좋은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안 나설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멋진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없이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박 전 대표와 일 대 일로 붙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그걸 말할 수 있나. 하지만 이런 것 같다. 내가 지지도 마이너스 23%였다가 플러스 13%로 이겼다. 박연차 게이트로 찜찜한 게 있으면 국회의원 안 나갔다. 내가 감옥갔을 때 강원도민들이 사랑으로 모든 걸 거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갖고 있는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온다. 선거를 예단할 수 없다. 내가 이길 거라고 누가 봤겠나. 노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음 대선에서 공통된 표심을 가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누가 됐든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은 이젠 예측가능한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난 항상 오류가 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치판이 온통 좌파 우파니 하는데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 발전만 봐도 갈라놓고 싸우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1950년대 소위 소련 체제가 경제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뤘다. 미국이 과학자 양성을 위해 수월성 학교교육으로 완전히 바꿨다. 70년대 들어 유럽형 복지모델이 얼마나 강력한 성장모델 됐나. 제 3세계 아시아의 용들은 독재국가라는 비판받으면서도 얼마나 성장했나. 미국 경제도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융성했나.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어려움을 겪지 않나. 경제 발전만 봐도 이렇듯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경제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이것이 옳다고 하나. 역사가 말하지만 진보 보수 관점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경제사 이론을 보더라도 국가의 시장 개입이 진보였는데 한때는 개입하지 않는 게 진보였다가 지금은 또 개입하려고 하지 않나.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르겠지만 정치로 얘기하면 진보 보수, 좌파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한다. 언론관은 노 대통령과 같나.  -극도로 언론 노출을 피해왔다. 내가 노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었는데 모시는 사람은 자기 일이 없는 거다. 노 대통령 모실 때 문고리 잡고 인의 장막을 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소개했지만 내 스스로 인터뷰한 적이 없었다. 청와대에서도 근무했는데 공무원과 사이는 어땠나.  -잘 지내는 편이다. 국정상황실장 할 때 부처 고시 성적 최고였던 분들과 일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유능하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일은 혁신적으로 하는데 사람을 너무 자주 바꾸는 건 옳지 않다.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아침 운동을 과장이랑 걷고, 국장이랑 밥을 먹고, 한 사람씩 알아가고 있다. 조직은 마음으로 일하는 거지 명령으로 일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에게 나한테 충성하지 말고 강원도민에게 충성하라고 한다. 종교가 불교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나.  -잘 모르겠다.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다른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프란체스카 수도사가 한 말이 너무 와닿는다. 5세기 때 쓴 책인가. ‘수도원의 역사’란 책에서 넌 왜 풀이나 바위와 나무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왜 인간만 영혼이 있다고 보냐. 나무에도 산에도 생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칭기스칸 아들은 신이 10가지 손가락을 준 이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실세라 강원도 예산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동의하나.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국회 와서 처음한 게 내가 담당하는 산하기관을 전부 돈 것이다.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그래서 예산을 따는 거다. 물론 힘이 든다. 담당 사무관이 제일 중요하다. 수백대 일의 경쟁력을 뚫은 공직자를 설득해야 생명력을 갖고 일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 있게 일관성 갖고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가 보수적인데 왜 이 지사를 유권자들이 선택했다고 보나.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과 또 하나는 청와대의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알고 그래서 도지사 시켜 강원도를 위해 일 시킨 다음에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을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내가 선거 때 마지막 연설에서 ‘청와대 국정경험, 국회의원 경험 살려서 10년이 지나면 대통령에 나가겠다’고 한 연설이 시청률 20%까지 올라갔다. 10분짜리 연설인데 나도 놀랐다. 인구는 적은데 적이 없는 데가 강원도다. 이광재를 키워 대통령까지 가보자는 열망이 컸던 거 같다. 10년 후 대통령 나올 건가.  -도 지사를 잘해야 한다.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그것 외에는 뭐. 대통령을 옆에서 많이 봤고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안다. 자리를 탐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강원도 일에 욕심을 내겠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도지사 선거 때 이광재 지사가 정말 연설을 잘하더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도 차기 대선에서 이광재는 왜 안 되고 김두관은 왜 안되겠느냐고 하더라. 10년 약속이 5년으로 당겨질 수도 있나.  -나는 산에서 잘 잔다. 산에서 자면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다 자기 가는 길이 있다. 큰 배가 가는 바다에도 길이 있다. 넓은 창공 같지만 두루미도 가는 길이 있다. 너무 삶에 애달복달 말고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살면서 그 길을 가는 거다. 내가 너무 노 대통령과 어렸을 적부터 큰 일을 하다보니 세상 사는 게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만약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노 대통령 같은 사람 될까.  -왜 그러나. 강원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나와서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사 일을 잘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소설가 이순원 “한없이 다정한 어머니 꼭 다시 돌아오세요”

    선생님…, 다시 한번 또 불러봅니다. 선생님…. 지난 22일 아침 저는 전국에서 모인 길꾼들과 함께 제 고향 강원도의 바우길 위에 있었습니다. 길을 걷는 도중 김영현 선배가 전화문자로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거짓말 같은 소식인가 믿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무숲 사이의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겨울 하늘은 저토록 차고 맑은데, 제 기억 속에 하고많은 선생님의 모습 중 3년 전 어느 봄날, 박경리 선생님을 저 세상으로 보내 드리던 영결식장에서 저희를 두고 이렇게 떠나시면 남은 사람들의 빈자리는 어떻게 하시냐고 우시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차분히 하려고 해도 차분해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자 모두 저처럼 놀란 얼굴을 하였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오래도록 선생님의 책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도 가슴 한구석을 텅 비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23년 전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내리 10년간 신춘문예에 낙방하다가 어느 문예지에 응모한 제 작품을 선생님께서 뽑아 주셔서 정식으로 한국 문단에 나왔습니다. 옛날 선비들에게는 어려서부터 글을 가르쳐 준 사사스승과 과장에서 글을 뽑아 준 발탁스승이 있는데, 두 스승에 대한 예를 언제나 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새 작가로 저를 뽑아 주신 것을 지금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언젠가 동인문학상 시상식 때 선생님께서는 제 어머니에게 다가오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저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저와 저의 문학이 이 땅에 있게 해 주신 두 어머니의 모습 같았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에 대한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후배 작가들이 우리가 현역작가로 함께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선생님께 한없이 기대고 의지하며 위로받아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문단에 참으로 큰 어머니의 모습으로 선생님께서 후배 작가들을 지켜봐 주셨고, 저희는 또 선생님의 넓은 품에 저마다 한식구로 위안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 우리 작가들에게만이겠습니까? 제가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모두 똑같은 마음과 똑같은 얼굴로 놀랐던 것은 한국의 모든 독자들 역시 지금껏 선생님의 글에서 한없이 따뜻하고 넓은 어머니의 모습을 느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에 어떤 독자는 선생님의 글에 대해 세 줄만 읽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책을 다 읽고 나면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위로받은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자들도 그렇고 함께 글을 쓰는 작가들도 그렇고, 선생님은 선생님을 직접 뵌 사람들에게도 뵙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 문학을 지켜 오셨고, 마지막까지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은 현역 작가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 더 믿을 수 없고, 더 애통한 것인지 모릅니다. 선생님의 수많은 독자분들도, 또 글을 쓰는 저희도 아직 선생님을 놓아 드릴 준비가 전혀 안 되었는데 어느 아침 선생님께서는 홀연히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별의 놀라움은 언제나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일처럼 낯설고 눈물은 또 언제나 이렇게 늦게 흐르는가 봅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너무 크시고 고우신 선생님…. 누가 이렇게 바쁜 걸음으로 선생님을 우리 곁에서 데려가는지요. 좀 더 오래, 그리고 아직도 많이 선생님을 봐야 할 우리의 빈 가슴은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선생님을 데려가는지요.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가셔도 잊지 마시고 저희와 이 땅의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돌아오세요, 선생님.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꼭 돌아오세요, 선생님…. ●이순원은 1958년 강릉 출생. 1988년 등단.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등 수상. ‘은비령’, ‘정동진’, ‘워낭’ 등 출간
  • 법원 ‘사법살인’ 인정… 죽산 반세기만에 ‘복권’

    법원 ‘사법살인’ 인정… 죽산 반세기만에 ‘복권’

    사법부가 반세기 만에 ‘사법살인’을 인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는 20일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죽산(竹山) 조봉암(1898~1959)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사형 집행 52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게 됐다. 재판부는 국가변란 혐의에 대해 “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결성됐다고 볼 수 없다.”며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이 북한의 위장평화통일론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유일한 직접 증거인 육군특무부대 증인이 상급 법원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신빙성이 없고, 증인의 진술은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특무부대가 증인을 영장 없이 연행해 수사하는 등 불법으로 확보해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보당을 창당한 죽산의 사형은 당시 이승만의 정적 제거 차원이라고 해석한 셈이다. 대법원이 죽산 조봉암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1959년 당시의 사형 선고와 집행이 사실상 ‘사법살인’이었음을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어두운 과거’를 바로잡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사법부의 과거청산 결정판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많다. 한편 재판부는 조봉암의 또 다른 혐의인 불법무기 소지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재심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뒤늦게나마 그 잘못을 바로잡고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직접적으로 ‘사과’란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반세기 만의 무언의 사과’라는 분석이다. 독립운동가로 제헌의원과 국회부의장, 초대 농림부 장관 등을 지낸 조봉암은 진보당을 창당하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상했지만, 1958년 간첩죄 등으로 기소됐다. ▲북한의 주장과 같은 평화통일을 정강정책으로 하고 대한민국을 변란할 목적으로 진보당을 결성했다는 것(국가보안법 위반) ▲육군 특무부대 공작요원 양이섭을 통해 자금 원조 등의 북한 지령을 받았다는 것(간첩죄) ▲허가 없이 권총 1정과 실탄 50발을 소지한 것(군정법령 5호 위반) 등이 그가 받은 혐의다. 1심에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됐지만 2심과 3심에서 각각 사형이 선고됐다. 1959년 7월 30일 재심 청구는 기각됐고,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죽산의 사형 집행을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행위이자 정치탄압”이라고 규정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황희석 변호사는 “반세기 만에 진실을 밝혔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박수칠때 떠난다…룰라 브라질 대통령 오늘 ‘아름다운 퇴장’

    박수칠때 떠난다…룰라 브라질 대통령 오늘 ‘아름다운 퇴장’

    ‘민주주의의 롤모델’ ‘엘리트를 넘어선 노동자 대통령’ 남미독립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도, 아르헨티나 빈민의 어머니로 불렸던 ‘에비타’ 에바 페론도 그만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진심을 보여준 정치인과, 정치인의 진심을 믿고 따른 국민. 8년간 그가 이끈 브라질에는 우파와 좌파의 경계도, 노동자와 부유층의 대립도 없었다. 모두를 위한 정치,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비웃음을 샀지만 그가 만들어낸 브라질의 오늘은 민주주의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레임덕’이라는 용어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31일(현지시간) 퇴임을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전세계의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브라질 여론조사기관 센수스가 룰라 대통령의 퇴임을 사흘 앞둔 29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 룰라 대통령의 개인 지지율은 87%를 기록했다.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83.4%로, 2003년 정부 출범 이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룰라 대통령은 국영 라디오의 주례 담화 ‘대통령과의 커피 한잔’의 고별방송에서 “지난 8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지해 준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밝히고 눈물을 흘렸다. 2003년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브라질은 300억 달러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는 빚더미를 안고 있었다. “엘리트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선반공 출신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외침은 공허했고, 오히려 그의 노동자 성향이 브라질 사회의 대립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우세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구두닦이, 금속공장 노동자를 전전하던 강성 노동운동가의 대통령 당선은 노동자 계급이 일으킨 ‘깜짝 반란’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꿨다. 룰라 정부는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물류시설 확충, 에너지 개발 확대 등을 담은 경제성장촉진(PAC) 프로그램을 실시해 8년간 연평균 7.5%의 실질성장률을 기록했다. ‘빈곤 퇴치 프로그램’은 2900만명을 ‘먹을 고민’에서 구출했고, 중산층은 3000만명 이상 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경제와 정치 모두에서 미국 중심의 구도에 맞서 ‘할 말은 하는’ 지도자로 평가되며 G7 시대를 다자외교 시대로 바꾼 주역으로 평가된다. 룰라 대통령의 성공에는 ‘실용’ ‘포용’ ‘상생’ ‘스킨십’ ‘협상’ 등 다섯 가지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그의 정책엔 좌도, 우도 없었다. ‘강한 추진력’을 제외한 모든 신념을, 실질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과감히 버렸다.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노동운동 현장에서 40년 가까이 대립하던 대기업과 기존 정치 세력의 힘을 적극 활용했다. 10여개의 정당을 규합해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기업인들도 적극 영입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면서 브라질 경제를 지배하는 농축산 기업들에 대해서도 지원책을 펼쳐 상생을 모색했다. 8년간 이어진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는 ‘심장에서 우러나는 정치’를 내세운 스킨십의 결과다. 8년간 670일가량을 수도가 아닌 지방에서 보내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고, 현장에서는 경호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국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노동운동가 출신 특유의 협상력이 중요한 무기로 쓰였다고 평가한다. 모든 정치 활동을 협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정당 간 대립, 기업인과 노동자의 대립, 국제사회의 역학 구도에서 룰라는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온건하게 목소리를 내며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90%에 가까운 국민의 성원 속에 시민으로 돌아가는 룰라 대통령의 향후 행보도 관심거리다. 그는 대선 재출마(3선) 가능성에 대해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직 복귀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 일부 외신들은 그가 브라질 국내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의 요직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룰라가 일궈낸 브라질은 이제 그의 정치적 양녀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로 이어진다. 호세프 신임 대통령은 ‘PAC의 어머니’로 불릴 정도로 룰라 대통령의 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취임 이전이지만 그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70%에 육박하는 이유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룰라 약력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코주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 ▲1952년 상파울루주 산토스에서 초등학교 입학 ▲1958년 초등학교 중퇴/구두닦이 시작 ▲1960년 금속공장 취업 ▲1966년 노동조합 가입 ▲1975년 철강노조 위원장 당선 ▲1980년 노동자당 결성 ▲1986년 연방 하원의원 진출 ▲1989~1998년 세차례 대선 출마, 낙선 ▲2002년 대선 승리, 34대 대통령 취임 ▲2006년 재선 성공 ▲2009년 2016년 올림픽 유치
  • 병원 인턴제도 50년만에 사라진다

    오는 2014년부터 전문의가 되기 위한 인턴·레지던트 과정이 통합돼 단일 수련체제로 바뀐다. 기존 인턴제를 없애는 대신 레지던트 제도를 확대·강화해 전문적인 의료 지식과 기량을 익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문 의료인력 양성기간이 현재보다 줄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1차 진료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학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문의 제도 개선 방안 연구 최종보고서’를 최근 확정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이 연구용역은 보건복지부 의뢰로 수행됐으며, 최종안은 복지부에 제출됐다. 복지부는 최종보고서를 토대로 내년에 ‘의료인 및 의료관계자의 양성 관련 시행령’을 개정, 전문의 수련제도 개편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1958년 미국식 의료제도를 모방해 병원 인턴을 처음으로 선발한 이후 50년 넘게 유지돼 온 전문의 양성 제도가 처음으로 ‘수술대’에 오르게 되는 것. 서울신문이 단독 입수한 최종보고서(안)에 따르면 현재 의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턴 제도는 2014년부터 부분 또는 완전 폐지하는 대신 기존 레지던트 제도를 확대한 ‘스트레이트 인턴제’(뉴 인턴제)가 도입된다. 또 현재 4년으로 일원화된 레지던트 수련기간 역시 진료과목별로 조정된다. 수련기간은 스트레이트 인턴제가 도입되는 2014년 이후 26개 전문 진료과학회에서 논의해 조정하도록 했다. 스트레이트 인턴제가 도입되면 의대 졸업생들은 현재보다 일찍 전공과를 선택할 수 있어 레지던트 1년차부터 수습 전공의로 의료현장에 투입될 전망이다. 현행 인턴제도는 매년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1년 동안 전공의 필수과목인 내과·외과·산부인과 등에서 각 4주 이상씩, 소아과에서 2주 이상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인턴과정을 마치면 레지던트 4년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수련제도는 여러 진료과에서 다양한 현장 경험을 습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장기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해 전문인력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으며, 잡무와 낮은 급여로 신진 의료인력을 혹사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기존 인턴제도가 폐지되면 일반진료를 위한 ‘진료 면허제’도 새로 마련될 전망이다. 의학회는 스트레이트 인턴제를 통해 전문의가 배출되고, 이와는 별도로 일반 진료를 담당할 ‘진료 전문의’를 양성해 국민 건강의 근간을 이루는 1차 의료를 맡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석·이영준기자 ccto@seoul.co.kr
  • [연평도사태 한 달] 수십만 포탄 견딘 진먼다오의 힘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타이완 최전방의 섬, 진먼다오(門島)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 군 당국이 진먼다오 지하요새를 참고해 연평도 등 서북도서 요새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까지 들린다. 진먼다오는 서북 도서와 비슷한 입지다. 타이완 본섬에선 120여㎞나 떨어져 있지만 중국 본토와는 2㎞ 거리다. 1958년 8월 23일부터 44일동안 중국군은 47만발의 폭탄을 이 고도에 쏟아부었지만 섬을 빼앗지는 못했다. 섬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지하 도시를 방불케하는 진먼다오의 지하요새화와 “진먼다오에 가면 돈 벌고 먹고살기 쉽다.”는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준 타이완 정부의 정책 노력이 배경이 됐다. 진먼다오 고량주가 타이완을 대표하는 술이 된 것도 보이지 않게 섬의 산업과 경제를 부추기기 위해 애써온 타이완 정부의 노력 결과였다. 주민들에 대한 복지 및 연금 특혜, 기업활동 등에 대한 세금 감면 및 보조금 지급 등 제도화된 유인책은 주민들의 호응을 얻어냈고 진먼다오 안보의 초석이 됐다. 진먼다오 쇠고기가 타이완 최상의 쇠고기로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섬의 경제를 살려 주민들을 남게한다.”는 타이완 정부의 정책이 섬세하게 작동한 덕택이었다. 유인책이 주민들을 섬에 남게하는 소프트 파워로 힘을 발휘했다면 섬의 요새화는 하드 파워로 작동했다. 동서 20㎞, 남북 5~10㎞의 섬 전체를 땅 속으로 그물망처럼 연결했다. 지하에는 폭 1m, 높이 2m의 지하통로가 2㎞나 이어진 민간대피소들이 12곳이나 건설돼 있다. 각 대피소를 연결하면 무려 10㎞나 되는 갱도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런던통신] 맨유를 만든 두 명장 버스비와 퍼거슨

    [런던통신] 맨유를 만든 두 명장 버스비와 퍼거슨

    1900년대 초반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평범했던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이후 두 명의 스코틀랜드 출신 명장과 함께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거듭났다. 1958년 2월 6일 비극적인 뮌헨 참사에도 불구하고 1968년 맨유를 유럽 정상에 올려놓았던 매트 버스비 경과 1999년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트레블(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을 달성한 알렉스 퍼거슨 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국 전역에 내린 폭설로 프리미어리그(EPL) 일정 대부분이 취소된 19일(현지시간) 영국 언론들이 일제히 이 두 감독을 언급한 건 퍼거슨 감독이 새롭게 수립한 기록 때문이다. 1878년 팀 창단 이후 맨유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휘봉은 잡은 감독은 24년 1개월 13일의 故 버스비 경이다. 그러나 이날을 기점으로 그 기록은 24년 1개월 14일의 퍼거슨 경에 의해 깨지게 됐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만으로 퍼거슨 감독의 기록을 모두 표현할 순 없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EPL에서 축구 감독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짧다는 얘기가 있다. 2006년 영국 워릭 경영대학원(Warwick Business School)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잉글랜드 감독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약 2년이었다. 허나 퍼거슨은 무려 24년간 성공신화를 써 내려왔다. 퍼거슨 감독 자신도 이 같은 대기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맨유 홈페이지를 통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순간이 올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버스비 감독의 재임 기간이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그는 뮌헨 참사 이후 팀을 재정비해 유럽 정상에 올랐다. 이는 매우 엄청난 일이며 버스비 감독이 영원히 기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선배 감독의 업적을 더 높이 평가했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이 버스비 감독은 뮌헨 참사로 인해 8명의 선수들을 잃었고(당시 맨유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는 뮌헨 공항 근처에 추락했고 그로인해 43명의 탑승자 중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또한 중태에 빠졌다. 그러나 버스비 감독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고,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위기에서 맨유를 다시금 유럽 정상급 클럽으로 일으켜 세웠다. ▲ 닮은 꼴, 버스비 감독와 퍼거슨 감독 사실 누구의 업적을 더 높이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명장이 맨유에서 만든 스토리는 영화처럼 화려하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 미러>는 “위대한 두 감독이 위대한 클럽을 만들었다(Great Men Shape Great Club)”며 두 명장을 극찬했는데, 이는 그만큼 그들의 행보가 위대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1912년 클럽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언스트 맨그널 감독이 떠난 이후 맨유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등 암흑기를 보낸다. 특히 1930/1931시즌에는 개막 이후 12연패의 수렁에 빠졌고 이듬해 개막전에 올드 트래포드를 찾은 관중은 겨우 3,500여명에 불과했다.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던 맨유를 구한 건 1946년 지휘봉을 잡은 버스비 감독이었다. 그는 부임 2년 만에 FA컵 정상에 올랐고, 1951/1952시즌에는 41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부임 이후 꾸준히 유망주 발굴에 박차를 가했던 그는 데니스 바이올렛, 마크 존슨, 던컨 에드위즈, 바비 찰튼 등 이른바 ‘버스비의 아이들’을 이끌고 리그를 맨유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뮌헨 참사로 주축 선수 대부분을 잃은 맨유는 한 때 리그 중위권까지 추락하며 다시 암흑기를 걷는 듯 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버스비 감독은 바비 찰튼을 중심으로 팀을 재정비했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67/1968시즌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유럽피언 챔피언십(현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기적을 연출했다. 클럽의 황금기를 이끌던 버스비 감독이 팀을 떠난 이후 맨유는 1970~80년대 또 다시 침체기를 겪는다. 그러던 1986년 11월 맨유는 또 한 번 스코틀랜드 출신의 명장 퍼거슨 감독과 만난다. 퍼거슨은 버스비 경과 찰튼 경 등 맨유 관계자들의 지지 아래 유망주 발굴부터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세웠고 1990년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맨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 나갔다. ’버스비의 아이들’이 맨유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끌었다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데이비드 베컴, 네빌 형제 등 ‘퍼기 아이들’은 맨유의 두 번째 황금기를 열어 젖혔다. 영국 언론은 물론 라이벌 클럽들 모두 “그런 어린애들로는 우승을 할 수 없다”며 비아냥 거렸지만, 퍼거슨 감독은 에릭 칸토나를 중심으로 ‘퍼기의 아이들’을 이끌고 거의 모든 우승 트로피를 휩쓸었다. ▲ 퍼거슨 “버스비 경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 이처럼 두 명장이 걸어온 길은 고스란히 맨유의 찬란한 역사가 됐다. 그리고 맨유의 역대 최장수 감독이 된 퍼거슨의 성공신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4년간 EPL 우승 11회, FA컵 우승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FIFA 클럽월드컵 우승 1회 등 수 많은 영광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그의 발걸음은 아직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퍼거슨은 영국 대중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버스비 경은 하늘이 내게 내려준 선물이었다. 그는 내가 장기적으로 팀을 만들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고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며 버스비 경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버스비에서 시작된 맨유의 영광은 이렇게 퍼거슨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사진=영국 일간지 ‘데일리 미러’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pitchaction.com
  • 눈길끄는 사립미술관 두 곳 기획전

    눈길끄는 사립미술관 두 곳 기획전

    시간의 무게와 인연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는 때, 사립미술관 두 곳의 기획전이 눈길을 끈다. 올해 개관 21주년인 금호미술관은 그간 미술관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작가 21명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는 ‘21 & Their times’(그들의 시간들)를 열고 있다. 최근 신관을 개관한 김종영미술관은 ‘연리지, 꽃이 피다’전을 통해 1950년대 폐허의 화단에서 우정을 나눴던 세 거장, 장욱진·김종영·김환기을 추억한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은 지금까지 600여회 전시에서 실험성이 강한 중견·신진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해 왔다. 이 가운데 미술관의 정체성을 보다 뚜렷이 각인시켜줬던 21명의 작가를 초대했다. 근작과 더불어 작업의 모티브가 됐던 오브제나 드로잉, 그리고 초기작을 나란히 배치했다. 미술관이 작가를 키우고, 작가는 미술관을 키운 ‘동반 성장’의 시간을 함께 돌아보도록 한 구성이다. 독특한 필묵기법으로 수묵화의 전통을 새롭게 확장시켜온 김호득은 천장에서 바닥으로 길게 떨어지는 먹지에 노란색 분필로 수직의 선을 그은 설치 작품을 한쪽 벽면에 설치했다. 그 옆에는 1990년대 수평선 작업이 걸려 대조를 이룬다. 조각가 정현은 지난해 기무사터에서 열렸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신호탄’전에 선보인, 대형 작품의 원형이 된 철수세미 작품 등과 함께 철도용 침목·아스팔트·철근 등 그가 즐겨 다루는 작업 재료들을 전시했다. 재료의 성질을 살리고, 인공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김태호는 10년간 지속적으로 해온 미니멀 회화 작품과 작업의 근간이 되었던 드로잉, 사진들을 출품했다. ‘맨드라미 작가’ 김지원도 맨드라미 생화를 박제시킨 오브제를 비롯해 맨드라미와 관련된 다양한 실험과 모색의 흔적을 선보인다. 내년 2월 6일까지. (02)720-5114.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의 ‘연리지, 꽃이 피다’전은 한자리에 가장 모으기 어렵다는 1950~60년대 장욱진, 김환기, 김종영의 대표작 35점과 소묘 30점을 전시한다. 1910년대에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한 세 작가는 한국전쟁 후 서울대학교에 적을 두고, 신사실파 등을 통해 서로 교유하며 전통과 현대, 사실과 추상, 동양과 서양을 융합해낸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꼽힌다. 충남(장욱진), 경남(김종영),전남(김환기) 등 출신 지역과 성장 배경이 다른 이들이 전후 서울의 황량한 풍토에서 나눴던 우정을, 서로 다른 뿌리를 지닌 두 나무가 얽혀 한 몸을 이루는 연리지(連理枝)에 비유한 점이 흥미롭다. 일반에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희귀작들이 여러 점 나왔다. 물고기의 형상을 사각과 삼각의 색면으로 분할해 구성한 장욱진의 초기작 ‘물고기’(1959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는 추상미술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엿보게 한다. 고향 앞바다를 닮은 푸른 빛 화면에 달 하나가 떠 있는 김환기의 ‘산과 달’(1950년대)은 일반인은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개인 소장자를 설득해 어렵게 전시했다는 후문. 조각가 김종영의 ‘꿈’(1958년)은 세부적인 형태를 생략하고, 절대적인 미를 추구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밖에 김환기가 뉴욕 시절 신문지 위에 그린 과슈 작품, 장욱진이 매직펜과 먹으로 간결하게 그려낸 소묘, 서예에 능했던 김종영의 수묵 추상소묘 등을 만날 수 있다. 내년 2월 11일까지. (02)3217-648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사람] 구자현 조달청 구매사업국장

    [이사람] 구자현 조달청 구매사업국장

    “불량자재를 사용하는 등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공급한 업체는 공공조달시장에 발을 못 붙이게 해 ‘조달물품은 싸구려’라는 이미지를 바꾸겠습니다.” 구자현(52) 조달청 구매사업국장은 13일 ‘조달제품 명품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우수한 품질을 꼽았다. 그동안 공공조달 시장은 양적 성장을 이뤘다. 중소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참여가 늘고, 2005년 다수공급자계약제도(MAS·Multiple Award Schedule) 도입 후에는 쇼핑몰도 활성화됐다. 하지만 진입장벽을 낮춘 결과 품질저하와 부실기업 문제가 발생했다. 구 국장은 13일 “현재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된 품목이 32만여개에, 연간 거래 규모가 11조원에 달한다.”면서 “시장 조성 및 업체에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한다는 목적이 달성된 만큼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품질검사의 한계’라는 현실적인 문제점이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MAS는 규격과 품질을 수요기관이 책임진다. 조달청도 초기 제도 도입 당시 같은 방식을 택했으나 수요기관이 감당하지 못하면서 민원과 갈등이 생겼고 결국 계약기관인 조달청이 품질검사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조달청의 품질점검 실적은 1%로 98만건 중 9800건, 쇼핑몰은 등록상품 32만여개 중 1377개로 0.43%에 불과했다. 운이 나쁘면 걸리고 운이 좋으면 지나가는 셈이다. 전 품목을 직접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달품의 품질과 관련해 업체의 자율은 보장하되 위반 시 강력한 책임을 묻는 자율 방식을 도입했다. 부실이 드러나면 경고에 그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하면 6개월간 공공기관 입찰 참여를 불허한다. 진입은 가능하나 조달청의 이력관리에 기록이 남아 ‘신인도’ 하락으로 수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연내 나라장터에 정보이력을 공개할 계획이어서 부정당업체(공사 수주나 물품 납품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업체)는 사실상 조달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구 국장은 “불량자재를 사용해 납품했던 업체가 적발돼 18억원을 환수당하고 공공조달 입찰이 막히자 폐업을 했다.”면서 “강력한 처벌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업체에는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시행 예정인 ‘자가품질보증제’는 조달제품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품목과 제도 운용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업체의 노력 여하에 따라 납품검사가 면제되는 등 ‘채찍과 당근’이 확실하다. 부정당업체는 처벌이 끝나더라도 일정기간(2년) 입찰 감점을 받고 입찰 및 계약보증금 부담률도 높아진다. 경쟁이 심하고 국민 보건 및 안전관련 품목은 부실업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재무상태와 품질·기술능력 등을 평가해 쇼핑몰에 참여시키는 거래사전자격심사제(PQ)도 도입된다. 구 국장은 “공공조달시장은 수요가 적고 가격이 비싼 신기술의 초기 시장 기능도 수행한다.”면서 “우수한 품질을 발판으로 도전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블루칩 우량시장을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구자현 국장 약력<< ▲1958년 충남 부여 ▲대전고, 서울대 영문학과 ▲행시 25회 ▲조달청 행정관리담당관, 기획예산담당관, 시설국장, 기획조정관, 서울지방조달청장
  • 역대 노벨상 시상식 불참·거부 11명 면면

    100여년간 이어져온 노벨상 시상식에 수상자가 불참하거나 수상을 거부한 사례는 류샤오보를 포함해 11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9건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대부분 독재정권의 압력 때문이다. 노벨상 중 평화상 수상자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류샤오보가 네 번째로, 대리인 수상과 상금 전달까지 모두 이뤄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1936년 나치 치하의 독일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중병을 앓고 있었고 정권이 출국을 불허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메달 수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리인이 상금을 받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돌프 히틀러는 집권 당시 오시에츠키뿐 아니라 모든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1938년 화학상을 받은 리하르트 쿤을 비롯해 아돌프 부테난트(1939년 화학상), 게르하르트 도마크(1939년 생리·의학상) 등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중 쿤은 1945년, 도마크는 1947년에야 상장과 메달만 전달 받았고, 부테난트는 수상을 포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이 노벨상 수상자 탄압을 주도했다.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던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정부의 지시로 수상을 거부했다. 반체제 물리학자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 역시 1975년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여가 금지됐지만, 이탈리아 출국 비자를 갖고 있던 그의 부인이 대리 수상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해 민주화 운동을 펼친 공로로 평화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1983년)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1991년)는 각각 부인과 아들이 대리인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중에서도 수상 거부자가 있었다. 1973년 베트남 평화협정의 공로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레득토 북베트남 총리는 “베트남에 아직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절했다. 자의로 노벨상 수상을 포기한 사람은 레득토 총리와 1964년 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 등 두 명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미인은 딸 낳는다고?”… 진화심리학이 답한다

    “미인은 딸 낳는다고?”… 진화심리학이 답한다

    ‘엄마의 외모를 보면 자녀의 성별을 알 수 있다?’ 고정관념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회 현상을 기발하게 풀이해 온 한 진화심리학자가 다시 도발적 해석을 내놓았다.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이 그렇지 못한 여성보다 딸을 낳을 확률이 8%가량 높다는 것. 진화심리학은 환경에 맞춰 신체가 진화하듯 심리 또한 생존을 위해 가장 유리한 쪽으로 변화한다고 보는 학문이다. 1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은 ‘우리의 진화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기사를 통해 런던 정경대 사토시 가나자와 박사가 그동안 던져온 색다른 해석을 보도했다. 가나자와는 조만간 출간될 ‘생리학’지에 1958년생 여성 1만 7000명이 45세가 됐을 때 어떤 성별의 자녀를 뒀는지 분석한 결과를 실었다. 이들 여성은 유년기에 영국의 ‘아동 성장 연구’에 참여한 사람으로 7살 되던 해 교사로부터 외모를 평가받아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분석 결과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은 집단은 아들과 딸을 같은 비율로 낳았으나 ‘아름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은 쪽은 58대42의 비율로 남자아이를 더 많이 낳았다. 가나자와는 “예쁜 외모는 아들보다 딸이 물려받을 때 더 유용해서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여성이 잠재적으로 딸을 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들을 둔 남성의 이혼 확률이 낮은 이유도 진화심리학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남성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배우자로서의 능력을 평가받는 반면 여성에게는 젊음과 신체적 매력이 중요하다고 가나자와는 주장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상살이에 유용한 지위를 물려줄 수 있으나 딸에게 신체적 아름다움을 물려주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아들을 둔 남성이 가정을 지키려는 본능을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해석했다. 가나자와는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보다 똑똑하다.’는 사회적 통념도 진화심리학을 통해 풀이했다. 지난 3월 그가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 ‘매우 진보적’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평균 지능지수(IQ)는 106이었던 데 반해 ‘매우 보수적’이라고 답한 사람의 평균 IQ는 95에 그쳤다. 가나자와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이지만 타고난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려는 쪽으로 진화해왔다.”면서 “이 때문에 머리가 더 좋은(더 진화한) 사람일수록 진보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가나자와는 “자살 폭탄 테러범 대부분이 무슬림인 것은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결혼 문화도 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자연히 제 짝을 찾지 못하는 남성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진화심리학적으로 성비를 맞추려는 경향 때문에 죽는 데 두려움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부고] ‘제국의 역습’ 어빈 커시너 감독

    영화 ‘스타워스’ 시리즈 가운데 ‘제국의 역습’ 편을 만든 감독 어빈 커시너가 폐암 투병 끝에 지난 27일 타계했다. 87세. 192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커시너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화학교를 졸업했으며 1958년 데뷔작 ‘스테이크아웃 온 도프 스트리트’를 시작으로 영화감독의 길을 걸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제국의 역습’ 외에도 007 시리즈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과 ‘로보캅2’ 등이 있다. 조지 루커스 감독은 커시너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낸 성명에서 “세계는 위대한 감독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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