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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친구의 날’과 사이버 시대의 우정/박남기 광주교육대 총장

    [열린세상] ‘친구의 날’과 사이버 시대의 우정/박남기 광주교육대 총장

    마음에만 두고 있던 친구, 미안하거나 서운했던 친구에게 연락하고 서로의 마음도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난 5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친구와 발음이 비슷한 7월 9일을 친구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했었다. 2011년 여름 아르헨티나에 갔다가 그 나라 사람들이 친구의 날에 서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며 그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가 2007년에 7월 9일을 가출 청소년을 위한 친구의 날로 제정하고 선포했었음을 나중에 알았지만 이날이 가출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청소년과 성인들도 소중한 친구를 서로 챙기는 날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제안했더니 의외로 호응이 컸다. 그 결과 상당수 학교에서는 7월 9일 아이들 마음속에 우정이 피어나도록 하기 위한 다채로운 친구데이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 미국에서는 1919년부터 8월 첫째 주 일요일을 우정의 날로 지켜 오다가 상업성에 대한 부작용 탓에 1940년대에 들어 잊혀지게 됐다. 1958년 파라과이의 알테미오 브라초 박사가 7월 30일을 우정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해 남미의 많은 나라들과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서 우의를 다지는 날로 삼게 됐다. 그를 주축으로 인종, 피부색, 종교를 넘어 온 인류가 우정을 돈독히 하자는 세계우정운동이 전개됐고, 드디어 2011년 유엔이 7월 30일을 ‘세계 우정의 날’로 공식 선포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과거 미국의 풍습을 받아들여 8월 첫째 주 일요일을 우정의 날로 지키고 있다. 친구는 오랫동안 가까이 사귄 벗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대부분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한둘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쁜 삶을 핑계로 급우나 직장동료는 있지만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마음의 친구는 갖지 못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의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왜 그러한 친구를 갖고 있는 청소년이나 성인들의 비율은 갈수록 낮아지는 것일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상황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인내력 저하이다. 인간관계에서 상대에 대한 인내 정도는 필요 수준에 비례하고 대체 가능성의 수준에 반비례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게임을 비롯해 다양한 놀이 대체물이 있기 때문에 같이 놀다가 갈등이 생기면 불편한 마음을 쉽게 드러내고 놀이 친구를 쉽게 떠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깊은 우정을 나눈 마음의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 그런데 큰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러한 대체물은 친구 역할을 해 줄 수가 없다. 어찌 보면 게임과 텔레비전 그리고 정보기술(IT)이 새로운 놀이 상대를 만들어 주는 대신 친구는 뺏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친구의 날을 맞이해 우정은 선물처럼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내하고 존중하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쌓이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서로 친구를 챙겨 줄 것을 제안한다. IT는 사이버 우정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현대인은 가족이나 친구가 물리적으로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는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서로의 이야기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친구의 날을 맞아 세계 최고의 IT와 그 사용을 자랑하는 우리의 여건을 토대로 시대에 걸맞은 사이버 우정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키워 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단순한 사이버 에티켓 수준이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친구와 소통하고 우정을 다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소통시 유의할 점, 적절한 어휘 선정 방법, 갈등 해결 방법 등을 발전시켜 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현대인들이 바쁜 중에도 가상공간에서 친구에게 자신의 감정과 당면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면서 사이버 우정을 키워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엔이 제정한 세계 우정의 날 취지를 살려서 다문화사회 시대에 걸맞게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 그리고 삶을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지역, 피부색 그리고 종교를 넘어 모두가 친구가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날로 친구의 날을 발전시켜 가기를 기대해 본다.
  • 낡은 F-4 전투기, 20억짜리 미사일 달았더니…

    낡은 F-4 전투기, 20억짜리 미사일 달았더니…

    공군 17전투비행단은 F-4E 팬텀Ⅱ 전투기 60대로 구성되어 있는 부대다. F-4 팬텀은 미국이 1958년 개발해 미공군과 해군의 통합 전투기로 운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전 세계 모든 전투기 중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전투기였다. 특히 6t 이상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F-4팬텀은 ‘전투기+폭격기’인 전폭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 공군은 F-4D와 F-4E를 운용하였는데, F-4D는 모두 퇴역을 하였고 그 후속으로 FX사업을 통해 들여온 F-15K가 임무를 이어 받았다. 요즘 언론에서 F-4E 팬텀을 노후 전투기의 대명사처럼 부르는데 F-4도 한때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였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도 MK-82 500파운드 폭탄을 최대 24발이나 장착할 수 있으니 지상 폭격에 있어서는 유용한 전력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나갔던 전투기라도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지라 요즘에 개발된 각종 정밀타격 무기의 사용이 제한된다. 하지만 우리 공군의 F-4E는 엄청난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으니 그게 바로 AGM-142 ‘팝아이’다. 팝아이는 영어로 Popeye인데 이걸 뽀빠이라고도 읽는 사람도 있는데, 이게 팝아이인지 뽀빠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뽀빠이 만큼 강력한 것은 사실이다. 사정거리가 무려 112km나 되고 정확도는 1m이며 2m 두께의 콘크리트도 관통할 수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중 가장 정확한 미사일이며 탄두중량도 350kg이나 돼 F-15K가 운용하는 탄두중량 230kg의 SLAM-ER보다 훨씬 강하다. 우리 공군이 운용하는 모든 공대지 미사일 중 가장 강한 위력이다. 우리 공군은 2000년대 초반 한발 당 20억원에 이르는 이 팝아이 미사일을 100여발 도입하고 F-4E팬텀 전투기를 개량하여 사용할 수 있게 했다. 17전투비행단은 북한의 도발이 있으면 즉시 그 원점을 타격하기 위해 F-4E 팬텀과 팝아이 미사일을 비상대기 시켜놓고 있다. 사이렌이 울리면 불과 30분도 안 되서 팝아이를 장착하고 이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놓았다. 그런데 17전투비행단의 F-4E들은 나이가 너무 많다. 1967년생부터 1981년생 까지 있으니 이미 불혹의 나이를 넘긴 기체들이 우리 안보를 지키기 위해 아직도 현역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공군은 이를 더 사용하기 위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였으나 결국 그 한계에 왔고, 올해부터 퇴역을 시작하여 2019년까지 모든 F-4E 팬텀 전투기가 퇴역하게 된다. 그러면 이 후속기체들은 어디에? 그것이 바로 FX3 사업을 통해 들여올 차세대 전투기들인 것이다. FX3 사업이 적시에 진행되어야만이 F-4E의 퇴역에 따른 공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글·사진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www.kdnnews.co.kr) 대표
  • [기획]최고경영자=⑪ 세방(世邦)그룹 오세중(吳世重)씨

    [기획]최고경영자=⑪ 세방(世邦)그룹 오세중(吳世重)씨

     관광업체 중「랭킹」1위를「마크」하고 있는「세방(世邦)」의 73년 외화 획득 목표액은 4백56만$, 한화로 치면 18억원. 세방(世邦)여행사,「글로발」여행사, 세방관광(世邦觀光) 3개 회사를「리드」하는 세방(世邦)「그룹」회장 오세중(吳世重)씨(49)는 대학시절 영어책을 내다 팔아 끼니를 때우던 고학생, 자수성가의 대표적인「케이스」다. 『「호텔」이 모자라요. 관광객을 받아들일「호텔」방이 없어서 이 정도에 그치고 있읍(습)니다.이 문제만 해결되면 6백만~7백만$까지도 기록할 자신이 있읍(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 까무잡잡한 얼굴. 사장이나 회장이란 인상을 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샐러리맨」과 같은 느낌이다.  세방(世邦)의 72년 실적은 관광객 3만8천명에 2백30만$. 외국관광객 한 사람에 평균 61$씩의 수입을 올린 셈이다.이에 비해 73년 목표는 7만8천명에 4백56만$로 관광객 1인당 58$씩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가늠하고 있다.  72년의 전체 외국관광객이 37만명이었으니 그 중 10%의 손님을 세방(世邦)이 시중 든 셈이다.  관광업체 중에서「톱」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한때 어머니와 팬츠 장사…영어사전 팔아 끼니 때(우)고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의 80%가 일본인입니다. 일본 관광객의 대중화가 아루어진 반면 질적인 면에선 해마다 떨어지고 있어요. 72년 관광객 1명에 대한 수입이 60$선이었던 것이 올해는 50$선으로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쨌든「붐」은「붐」이에요. 큰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 3~4년간은 한국 관광「붐」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읍(습)니다. 그 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복이 있겠지요』  오(吳)씨가 지적하는 바론 8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관광객은 구미 관광객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 구미 관광객은 일단 관광에 나서면 여러 나라를 한꺼번에 도는데 비해 일본인은 거의 한 곳에 머무르며「릴렉스」하는 관광여행이라는 것이다.  결국 3~4년 후 혹시 중공(중국)의 문이 열리면 그쪽으로 몰리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상을 하고 있다.  관광업계에 오(吳)씨가 뛰어든 것은 58년 5월. 대한여행사 해외여행부 직원으로 출발했다. 60년에 지금의 세방(世邦)을 창설, 만 13년만에「랭킹」1위의 관광업계로 세방(世邦)을 키워 왔다.  『관광업도「서비스」업이 아닙니까? 남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이라고 믿고 있지요.「정직」하면 사업도 번창하고 돈도 모을 수 있겠지요』  오(吳)씨는 고대(高大) 영문과 출신. 대학 졸업후 피난지 부산(釜山)에서 국제신보 외신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후 우연한 기회에 서북항공사로 옮겨 5년간 근무하다가 뛰어든 곳이 바로 대한여행사였다.  오(吳)씨의 학창 시절은 가난과 고생으로 점철되었던 시련기.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서 맨손으로 월남한 처지였기에 눈물나는 고생을 해야 했다.  서울에 떨어져서 어머니 동생과 함께 살림을 꾸려야 했는데 하루는 쌀독이 바닥났다. 아무리 집안을 뒤져보아도 집에 값나갈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들고 나간 것이 영어「콘사이스」. 전차 탈 차비마저 없어 마포에서 종로2가의 고서점까지 걸어야 했다.「콘사이스」를 처분하여 생긴 돈이 5백환. 메고 갔던 배낭에 살 한되를 넣고 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해 먹은 추억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대학 입학 후에는 남대문시장에서「팬츠」장사로「아르바이트」. 헌 광목을 사다 염색을 하여 만든「팬츠」를 내다팔아 생활을 꾸려나갔다.  당시「팬츠」만드는 바느질 일을 맡은 것이 어머니. 광목을 사오고 , 만든「팬츠」를 내다파는 일은 오(吳)씨가 맡았다.  『동란 때니까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거의 20대는 비참할 정도였어요, 극장이나 다방이라곤 근처에도 얼씬해 보지 못한채 나이 30을 넘겼으니까요』  공부하는 경영자로 사원 승진시험 치러  이 때문인지 오(吳)씨는 이름난 구두쇠. 꼬장꼬장하고 헛돈을 안쓰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다. 오(吳)씨와 함께 일하는 사원들의 이야기를 빌면 오(吳) 회장 자신이 메(미)주알고주알 너무나 다 알고 있어 일하기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고.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예이기에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과는 나무나 차이가 난다고 혀를 내두른다.  또 오(吳)씨는 한번 사람을 쓰면 절대로 내보내지 않는 경영자로도 유명.  현재 세방(世邦)에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중역진의 대부분이 60년 세방(世邦)이 출범할 당시 신입 사원들이었다.그래서 현재 세방(世邦)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연조 깊은 사원이 많아 월급이 너무 많이 지출되고 있다는 것. 사원 봉급이 세방(世邦) 전 예산의 50~60%를 처지하는 데다 봉급「베이스」가 높은 사원이 많아 골치를 앓고 있다.  『이젠 옛날과 사정이 많이 달라졌어요. 저희같은 관광업체의 경우엔 특히 사원들의 자질 문제가 회사의 장래를 결정하게 되었읍(습)니다. 전문 지식이 없이는 우선 만나는 고객들과 이야기가 통하질 않게 돼요. 때문에 근무 연한이 오래 되었다고 승진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치러서 일정한 수준의 성적을 따야 승진하도록 하고 있읍(습)니다』  경영자로서 영문과 출신이란「핸디캡」을 메우기 위해 오(吳)씨는 69년 고대(高大) 경영대학원 연구과정(1년「코스」)을 수료한데 이어 그 해에 또다시 석사과정에 입학,「공부하는 경영자」가 되기 위한 자세를 가다듬었다.  대학·대학원을 모두 고대(高大)에서 수료한 탓인지 사원의 8~9할이 고대(高大) 출신. 그러나 오(吳) 회장 자신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파안대소.  오(吳)씨의 취미는 바둑(7급)과「골프」(「핸디」10). 세방(世邦) 창설 후에는 사회 활동도 부지런히 해 온 편. 1960년 이후 줄곧 JCI·「로터리·클럽」회원으로 활약해 왔다.  부인 백남희(白南姬) 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지난 해부터는 수도여사대 관광개발과 강사로도 출강. 오(吳)씨 자신의 뼈아픈 대학 생활이 너무도 사무쳐 수도여사대에「세방장학회」를 마련, 가난한 대학생을 돕고 있기도 하다.  <신근수(申槿秀) 기자>[선데이서울 73년 3월 25일 제6권 12호 통권 제232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1) 시사만화의 어제와 오늘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1) 시사만화의 어제와 오늘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대명사로 군림해 온 시사만화가 여러 해째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권력을 풍자하고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며 서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픔을 대변했던 시사만화가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 무대였던 신문 지면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독자들이 신문을 펼치면 가장 먼저 찾을 만큼 높았던 열독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위기의 시사만화의 과거를 짚어보고 온라인시대 부활의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우리 만화의 역사는 시사만화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1909년 이도영 화백이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게재했던 삽화를 근대 만화의 출발로 보는데, 그게 바로 시사만화다. 시사만화는 이렇듯 언론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와 친일파를 풍자하며 민초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대한민보는 일제의 사전 검열에 맞서 시사만화 게재란을 먹칠해 인쇄한 적도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에도 시사만화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등 독재와 억압 속에 말 한마디 제대로 하기 힘들었던 시절, 시사만화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다. 1950년대 들어 시사만화의 스타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대중적인 스타는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동아·조선 등)이다. 이승만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며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고바우 영감에 이어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경향·한국 등), 김기율 화백의 ‘도토리’(서울), 정운경 화백의 ‘왈순 아지매’(경향·중앙 등), 윤영옥 화백의 ‘까투리 여사’(서울), 오룡 화백의 ‘야로씨’(조선), 이홍우 화백의 ‘나대로 선생’(동아) 등이 차례차례 스타로 떠올랐다. 시사만화의 기본이 권력에 대한 풍자라 필화(筆禍)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1958년 김성환 화백의 ‘경무대 똥통’·1972년 윤영옥 화백의 ‘새마을 운동 비판’·1986년 안의섭 화백의 ‘대통령 모욕’ 사건 등이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시사 만화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당시 일부 네 칸 만화들은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군사 정권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박재동이란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한겨레 그림판을 통해 참신하고 진보적인 한 칸 만평을 선보이며 스타로 떠올랐다. 이는 신문 시사만화의 주류가 ‘네 칸 만화’에서 ‘한 칸 만평’으로 이동하는 세대 교체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후 김상택(경향·중앙)·백무현(서울) 화백 등이 한 칸 만평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시사만화의 위기가 시작된다. 민주화 이후 만평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사들은 시사만화 지면을 점점 줄여나갔다. 2002년 동아일보는 손문상 화백이 떠나며 만평의 맥이 끊겼다. 2004년에는 문화일보와 세계일보가 각각 이재용, 조민성 화백과 갈등을 빚으며 만평을 내렸다. 2007년 매일경제 이필선 화백, 2009년 중앙일보 김상택 화백, 2011년 조선일보 신경무 화백이 지병으로 세상을 뜨며 만평이 자취를 감췄는데, 중앙일보만 박용석 화백이 맥을 잇고 있다. 시대를 풍미하던 네 칸 만화는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1999년 조선일보 ‘미스터 삐삐’(안중규), 2002년 중앙일보 ‘왈순 아지매’, 2004년 한겨레 ‘미주알’(김을호), 2008년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이 차례차례 연재를 중단했고 이후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다. 전국 단위 일간지가 한 칸 만평, 네 칸 만화를 모두 게재하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네 칸 만화를 계속 연재해 온 전국 단위 일간지는 서울신문·경향신문·매일경제밖에 없다. 한 칸 만평과 네 칸 만화를 모두 다뤄 온 곳은 서울신문·경향신문뿐이다. 시사만화가 위축되고 있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시대의 변화다. 과거와 달리 권력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수단이 많아졌고 그 경쟁에서 시사만화가 조금씩 밀려났다. 오프라인 매체의 권위가 무너진 온라인 시대가 오며 사회 풍자 기능을 인터넷 콘텐츠에 상당 부분 내주게 된 것. 언론사 내부의 원인도 있다. 민주화 이후 저항 대상이 정치 권력에서 자본 권력으로 이동했고, 광고주와의 관계를 고려한 언론사 내부 편집 방침과 시사만화가들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언론사들도 부담스러운 시사만화 게재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무한경쟁 시대에 광고매출 감소로 경영난에 봉착한 중소 언론사들은 구조조정 1순위로 시사만화를 올려 놓는 분위기다. 시사만화를 부활시키려면 시사 만화계 자체는 물론이고 언론계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많다. 많은 전문가들이 내부 편집 방향에 얽매이지 않고 시사 만화가의 소신과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한다. 독자를 사로잡을 화제작이 자주 나올 수 있도록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매일 마감을 해야 하는 국내 시사 만화가들은 외국에 비해 정신노동의 강도가 매우 높다. 정치·경제·사회 등 전문 분야별로 전담 시사 만화가를 둬 높아진 독자 수준을 충족시킬 만한 전문성과 깊이를 갖추고 이를 통해 노동 강도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사 만화계 내부의 변화도 절실하다. 독자의 관심과 욕구가 다양해진 만큼 그동안 갇혀 있던 정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시사만화의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형식 파괴를 시도하며 새로운 시대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필요성도 제기된다. 시사만화 인력이 정체된 만큼 후진 양성 시스템을 고민해 볼 시기다. 현재 전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사 만화가는 30명 안팎. 그나마 정규직은 10명가량이다. 좁은 시장 탓에 시사 만화가 지망생도 갈수록 줄고 있다. 김을호 화백 이후 여성 시사 만화가는 맥이 끊긴 상태다. 기성 언론에 소속된 시사 만화가에 견줘 상대적으로 더 많은 창작의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에 인터넷 미디어를 통한 시사만화가 늘고 있지만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에는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새로운 시사만화 플랫폼을 만들어 저변을 넓히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면이 있는 작가와 지면이 없는 작가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시사만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배포하고 여기에서 수익 구조를 만들어 작가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앞으로가 매우 중요하다.”(하재욱 전국시사만화협회 사무국장·시사만화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워크아웃 벽산건설 자금난에 법정관리

    벽산건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했다고 26일 공시했다. 올 들어 풍림산업, 우림건설에 이어 세 번째 건설업체의 법정관리 신청이다. 회사 측은 “서울중앙지법이 신청서와 관련 자료를 서면 심사해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1958년 설립된 벽산건설은 시공능력평가 순위 26위의 중견 종합건설업체로 2010년 6월 채권은행들의 기업별 신용등급평가에서 C등급을 받고 7월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채권단은 워크아웃 이후 두 차례에 걸쳐 2174억원을 지원하고 벽산건설 오너인 김희철 회장도 290억원가량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 경영정상화를 도모했다. 하지만 주택경기 침체로 인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지난해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이후 자금사정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결국 법정관리행을 택했다. 벽산건설의 PF금액은 약 4000억원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백석문학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다

    백석문학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다

    “정거장에서 60리/60리 벌길은 멀기도 했다.//가을 바다는 파랗기도 하다!/ 이 파란 바다에서 올라온다-/민어, 농어, 병어, 덕재, 시왜, 칼치…가// 이 길외진 개포에서/나는 늙은 사공 하나를 만났다./이제는 지나간 세월//앞바다에 기여든 원쑤를 치러/어든 밤 거친 바다로/배를 저어 갔다는 늙은 전사를.!//멀리 붉은 노을 속에/두부모춰럼 떠 있는 그 신도라는 섬으로 가고 싶었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의 시인 백석(그림·1912~1995?)이 1957년 9월 19일 북한의 문학전문 주간지 ‘문학신문에 발표한 시 ‘등고지’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이 시는 ‘앞바다에 기여든 원쑤를 치러’의 이념성이 강한 대목만 빼면 백석 시의 특징인 한국적 서정성과 정취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석이 북한에 머물면서 1950~60년대에 쓴 시 3편과 ‘문학신문 편집국 앞’ 등 산문 4편, ‘고요한 돈 1·2’ 등 번역소설 2편 등이 새로 발굴됐다. 이번에 발굴된 백석의 시와 산문, 번역소설은 1948년 분단 직전으로 한정됐던 백석 문학의 지평을 넓혀 주고, 북한에서의 문학 활동의 단초를 밝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는 중국 베이징국가도서관, 옌볜도서관, 북한의 조선국립중앙도서관, 레닌도서관,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실, 일본 도쿄에 있는 여러 도서관 등에서 꼼꼼히 찾은 것이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백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백석문학전집 1·2’(서정문학 펴냄)에 발굴 자료를 모두 담았다. 최 교수는 “백석 문학의 전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작품을 하나하나 원본과 대조해 정본화하는 작업까지 거쳤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번에 나온 백석전집이 2012년 6월 20일 현재까지 유일한 정본”이라고 선언한 뒤 “출간기록은 있지만 발굴되지 않은 ‘테스’, ‘고요한 돈 3’, 행방이 묘연한 1960년대 시집 등을 계속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주 영남대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시는 ‘등고지’ 외에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조국의 바다여’ 등으로 분단 이후에도 이념적 색채가 없이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백석의 색깔을 유지한 부문들이 확연하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1962년 4월 10일 발표한 ‘조국의 바다여’가 흥미로운데 당성이 강한 ‘붉은 작가’로 단련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부정적으로 써놓았다.”고 말했다. 백석답지 않게 이런 식이다. “…바다여 잠잠하지 말라, 잠자지 말라/세기의 죄악의 마귀인 미제,/간악과 잔인의 상징인 일제/박정희 군사 파쑈 불한당들을/그 거센 물결로 천 리 밖, 만 리 밖에 차던지라” 그러나 백석의 이런 노력에도, 그는 평양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백석은 1958년 당성이 약한 인민들을 지방 생산현장으로 보내는 ‘붉은 편지’를 받고,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로 내려가 양치기로 살면서 생애를 마쳤다. 이번에 발굴된 ‘문학신문 편집국 앞’(1959년 1월 18일)과 ‘관평의 양’(1959년 1월 14일), ‘가츠리섬을 그리워하실 형에게’(1961년 5월 21일), ‘체코슬로바키야 산문 문학 소묘’(1957년 3월 28일) 등에서는 백석이 ‘붉은 편지’를 받고 관평리로 내려가는 과정과 그곳의 삶이 드러난다. 특히 ‘문학신문 편집국 앞’에서 백석은 “이 속에서 어찌 제가 당이 기대하는 붉은 작가로 단련되지 않겠습니까. 맡겨진 일에 힘과 마음 다하여 훌륭한 조합원이 되여 앞으로 좋은 글을 쓸 것을 다시 한 번 맹세합니다. 1월 10일 삼수 관평에서”라고 쓰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숄로호프의 장편소설을 번역한 ‘고요한 돈 1·2’(1949~1950)도 흥밋거리다. 러시아의 혁명 전후를 다룬 이 번역소설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배낭에서 발견되곤 했단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작품해설에서 “세계문학의 반열에 들어 있는 작품을 매개로 한국어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고 있다.”면서 “번역문학이지만 토속어·토착어의 보고이자 아름다운 시적 창조물들을 감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자아냈다.”고 분석했다. 백석이 1957년 1월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해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이유도 관심사다. 김 교수는 “원래 백석은 외국문학분과위에 있다가 아동문학분과위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간다. 자유롭지 못한 북한 상황 탓에 아동문학을 했을 것으로 추정해 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고 말했다. 1956년 북한 공산당은 소설가 등 작가들에게 ‘장르를 불문하고 아동문학에 투신하라.’고 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발굴로 백석 문학의 총체성에 한걸음 다가갔다.”면서 “본래 백석문학이 어느 지점에서 균열했는지를 연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최 교수 등이 속한 한국비평문학회는 오는 30일 서울여대에서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도 연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커버스토리] “숙련공 베이비부머 일터에 남겨라”

    [커버스토리] “숙련공 베이비부머 일터에 남겨라”

    “출산율을 높이고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를 최대한 생산 현장에 머무르게 하는 등 새로운 수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기종 통계청장은 22일 인구 5000만명 돌파를 맞아 서울 강남구 경인지방통계청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우 청장은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15~49세의 가임 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이 2.1명 아래로 떨어지던 1983년(2.06명) 출산 대책을 전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합계출산율 2.1명은 인구가 줄어들지 않는 대체출산율(인구를 현상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이기도 하다. 그는 “출산율 효과는 단기적으로 나타나기보다 아이들이 커서 다시 아이를 낳게 되는 30여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그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합계출산율이 대체출산율 아래로 떨어진 지 30여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이지만 2060년에는 1.4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우 청장은 “출산율을 1.8명까지 올리면 인구가 5000만명 이하로 줄어드는 시점이 2045년에서 2058년으로 13년 늦춰지고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도 2060년 40.1%가 아닌 35.8%(2046년 예상치)가 돼 고령화 속도도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고령층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실질 은퇴 연령과 취업률은 높지만 자원봉사 참가율은 낮은 ‘고단한’ 노년이다. 우 청장은 “고령자 대부분이 제조업 등의 생산 현장이 아닌 자영업 등 서비스 분야에 있다.”며 “베이비부머는 산업 현장에서 떠나면 급격하게 몰락하거나 해외 여행 등을 떠나는 이중 구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베이비부머가 산업 현장을 떠나면 ‘숙련 단절’이 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정년 연장은 출산율 제고와 함께 반드시 추진해야 할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자원봉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도 주문했다. 그는 “자원봉사를 나눔의 개념이 아닌 생산과 소비를 통해 사회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 청장은 “북한 인구 등도 더하면 대한민국 인구는 8000만명”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이 추계한 북한 인구는 2012년 기준 2443만명으로 남한 인구의 절반 수준이다. 재외동포는 727만명이다. 북한도 2037년 인구가 2654만명으로 정점에 이른 뒤 감소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빠른 2030년 5216만명을 기록한 뒤 감소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고전 vs 낭만…새달 발레 명품 대표작 진검승부

    고전 vs 낭만…새달 발레 명품 대표작 진검승부

    우아한 발레를 두고 ‘격돌’이라는 말은 다소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쓸 수밖에 없다. 7월 공연 달력을 보면 퍼뜩 떠오르는 가장 적절한 말이다. 국내 정상급 발레단인 유니버설발레단(UBC)이 7~14일 고전발레의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리는 데 이어 18~22일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가 낭만발레의 걸작 ‘지젤’을 공연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작품인 데다, 장소도 두 공연이 같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라 그야말로 ‘진검승부’다. ■30년 만에 온 맥밀런 버전…UBC의 ‘로미오와 줄리엣’ 또 ‘로미오와 줄리엣’인가, 라고 할 수 있겠다. 셰익스피어 3대 비극 중 하나이자, 영원한 사랑의 성서인지라 많은 장르에서 공연한다. 발레도 마찬가지여서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바탕으로, 레오니트 라브롭스키(1940년·마린스키 발레단), 존 크랑코(1958년·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케네스 맥밀런(1965년·로열발레단), 장-크리스토프 마이요(2006년·몬테카를로 발레단) 등 안무가별 버전도 많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공연하는 것이 크랑코와 맥밀런 버전이다. 맥밀런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등장인물과 내면 묘사가 셰익스피어의 원전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 받으며, 안무가를 ‘드라마 발레의 거장’에 올려놓았다. 맥밀런 버전은 1983년에 영국 로열발레단이 한·영수교를 기념해 국내에서 공연한 뒤 한번도 무대에 오른 적이 없다. 이번 공연은 거의 30년 만에, 최초로 한국발레단이 올리는 맥밀런 버전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 UBC는 이 공연에 폴 앤드루스가 새롭게 만든 영국 버밍엄로열발레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옮겨왔다. 맥밀런 재단의 데보라 맥밀런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로열발레단 스태프 10여명이 내한해 원전에 가까운 발레를 선사한다. 수석무용수 안지은과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객원무용수로 활약한 로버트 튜슬리, 김나은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주역으로 나선다. 황혜민은 이승현과 연기한 뒤 ‘단짝’ 엄재용과 대미를 장식한다. (02)580-1300. ■줄리켄트 등 초호화 무용수…ABT의‘지젤’ 발레단의 위상으로 본다면 영국의 로열발레, 프랑스의 파리오페라발레와 함께 ‘세계 톱3’이다. 작품은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역시 대표작으로 손꼽히니, 둘의 만남이 기대될 수밖에 없다.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ABT는 드라마틱한 내용에 윌리(처녀 혼령)들의 군무가 환상적인 낭만발레의 전형, ‘지젤’을 들고 왔다. 섬세한 내면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을 ABT의 지젤은 모두 5명이다. 줄리 켄트와 팔로마 헤레라, 시오마라 레예즈 등 세계적인 무용수가 총출동한다. 지난해 미국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지젤’로 데뷔한 한국인 무용수 서희와 솔로이스트 가지야 유리코도 무대에 선다. 알브레히트와 힐라리온이 각각 4명, 윌리들의 여왕 미르타가 5명이라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한편, 어떤 공연을 볼까 갈등깨나 하겠다. 공연을 기획한 더에이치엔터테인먼트 측은 “ABT 무용수와 스태프 130여명에 국내 스태프 80명, 60인조 오케스트라가 참여하는 초대형 규모이자 화려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물론 관전포인트는 정확한 동작과 섬세한 연기를 펼치는 세계적인 무용수들의 기량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02)598-3119.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토끼와 원숭이’ 만화책 문화재 1호 되나

    국내 최초로 만화책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 한국만화박물관은 21일 “국내 첫 만화 단행본으로 알려져 있는 고 김용환 화백의 ‘토끼와 원숭이’를 지난 4월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1946년 5월 조선아동문화협회가 발간한 이 책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연말까지 등록 문화재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만화박물관은 고 김종래 화백의 ‘엄마 찾아 삼만리’(1958년) 육필 원고도 함께 문화재로 등록할 계획이다. 등록 문화재는 국가가 엄격한 규제를 통해 보존하는 국보·보물·사적 등 지정 문화재와 달리 생성 연도가 크게 오래되지 않아 역사적·학술적 가치는 다소 떨어지지만 보존 및 활용 가치가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현존 최고(最古)의 영화 필름인 ‘청춘의 십자로’(1934년) 등이 등록 문화재로 올라 있다. ‘토끼와 원숭이’는 그동안 기록으로만 존재해 왔으며 실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문 32쪽짜리인 ‘토끼와 원숭이’는 마해송 원작의 동화를 김 화백이 만화로 옮긴 작품으로 그림과 글이 분리된 삽화체 형태다. 일각에서는 김 화백의 또 다른 작품인 ‘홍길동의 모험’이 1945년 후반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단행본 효시로 보기도 한다. 원로 만화가 박기준 화백은 “‘토끼와 원숭이’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그림이 뛰어나고 예술적 가치가 높다.”면서 “의인화된 동물을 소재로 한 점은 당시 일본보다 우리 만화가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고] 김종건 前법제처장 별세

    김종건 전 법제처장이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77세. 전북 익산 출신으로 1958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광주지검 검사, 대전지검 부장검사, 법무부 교정국장, 수원지검 검사장 등을 거쳐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 제14대 법제처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태(국제통상투자자문 대표)·헌태(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지태(외환은행 차장)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8일 오전 8시. (02)3410-6915.
  • 신당동 가옥 개방은 언제…

    서울 중구 신당동 박정희 가옥은 당초 올해 9월에 일반인들에게 개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년으로 연기된 상태다. 유족과의 협의, 문화재청 현상변경 등 관련 절차 이행, 전문가 자문사항 반영 등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다. 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12일 “향후 박정희 가옥은 12월까지 전시공사를 마치는 대로 점검을 거쳐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정희 가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인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할 때까지 생활했던 곳이다. 시 문화재과에 따르면 당초 유족 측에서는 가옥 내 물건들을 2010년까지 이전하기로 했지만 이전 장소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지난해 6월이 돼서야 이전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복원공사도 당초보다 5개월 늦어져 지난해 12월 준공할 수 있었다. 복원공사 뒤에도 전시공간 조성을 추진하면서 근현대사와 근대건축 전공학자들로 구성된 전시자문위원회의 자문사항 반영, 대통령기록관 등 관련기관과의 협의를 통한 전시유물 확보 등을 위해 전시 공사가 늦어지면서 개방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 2월 기념관을 개관한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은 원래 올여름에 도서관도 개방할 예정이었지만 가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 개관을 위해서는 기념사업회와 시가 운영협약을 체결하고 건물을 시에 기부채납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지만 시와 기념사업회 측은 도서관 성격에 대해서도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우울증으로 한때 자살 생각했던 패티김

    우울증으로 한때 자살 생각했던 패티김

    23일 오전 9시 10분 방영되는 SBS 좋은아침은 1958년 미8군 무대로 데뷔한 이래 54주년 만에 전격 은퇴를 선언한 가수 패티김을 초대했다. 패티김의 역사는 화려하다. 광복 이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초청한 가수, 1962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공연을 한 가수, 1989년 대중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콘서트를 연 가수, 1989년 미국 카네기홀에 입성한 최초의 한국 가수, 2000년 한국 가수 최초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입성한 한국 가수 등등. 패티김에게 따라붙는 말은 언제나 최고, 최초다. 그런데 조금 희한한 최초도 있다. 바로 연예인 가운데 최초로 이혼기자회견을 한 사람이라는 것. 오랜 연예부 기자 활동으로 그때 일을 소상히 아는 방송인 이상벽이 등장해 얘기를 전해준다. 그가 기자 시절 알고 지냈던 패티김의 사소한 일상과 고 길옥윤과의 이혼기자회견에 얽힌 뒷얘기들이다. 이상벽이 들려주는 재밌는 일화 가운데 하나는 시체잠. 자기관리에 철저한 패티김이기에 잠을 잘 때도 목에 주름이 가지 않도록 베개 없이 똑바로 누워 잔다. 옆으로 누우면 얼굴에 주름이 갈까 봐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펴는 버릇까지 있다. 패티김은 아직도 20대와 같은 유연성과 탄력을 갖춘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자기 관리의 비결은 요가에 있다. 스튜디오에서 직접 고난이도 요가동작을 선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사람도 한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갱년기 우울증 때문이다.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 바로 가수 조영남. 조영남은 패티김에게 “지금 이렇게 죽으면 사람들이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해 동정도 못 받는다.”고 한마디했는데 이 때문에 자살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패티김에게도 소소한 사생활의 기쁨이 있다. 미국에 있는 둘째 딸 카밀라가 딸을 낳은 것. 출산한 딸을 위해 미역국도 끓여주는 등 친정엄마 노릇을 톡톡히 해온 사연을 들려준다. 또 장녀 정아가 낳은 손주들 자랑에도 여념이 없다. 이번 방송에서는 둘째 딸이 낳은 손녀 루나도 방송에 처음 공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유전·영양보다 중요한 건 체계적인 훈련”

    “유전·영양보다 중요한 건 체계적인 훈련”

    남자 육상 세계기록 보유자들은 단거리냐 장거리냐에 따라 다른 핏줄을 갖고 있다. 100m와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 110m 허들의 다이런 로블레스(쿠바), 400m의 마이클 존슨, 400m 허들의 케빈 영(이상 미국)까지 모두 서아프리카 혈통이다. 반면 800m의 데이비드 라디샤와 1000m의 노아 웅게니, 3000m의 다니엘 코멘(이상 케냐), 5000m와 1만m의 케네니사 베켈레, 마라톤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이상 에티오피아)는 모두 동아프리카 핏줄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1958년 설립돼 숱한 자메이카 육상 영웅들을 배출해 온 자메이카 기술대학의 에롤 모리슨(67) 총장이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오륜동 한국체육대학교를 찾아 자국이 스프린트(육상 단거리) 강국으로 떠오른 비결을 공개했다. 의학박사인 그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액티넨(ACTN) 3’란 유전자 성분이 스프린트 강국을 일군 단초가 됐다고 주장해 왔다. ‘액티넨 3’는 근육의 빠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 성분으로 스타트 반응속도가 승부를 좌우하는 100m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데 자메이카와 서부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이들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리슨 총장은 강연에서 “유전물질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식물성 스테롤과 동화성 유도물질을 많이 함유한 식단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유망주를 조기 발굴해 지속적으로 훈련시키는 시스템. 유전적 요인이든, 영양학적 요인이든 어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중·고교에선 근육조직을 강화하고 혐기성 에너지를 증진시키는 생화학적 훈련을 실시하고 나중에 대학과 국가대표팀에서는 한층 더 집중화된 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라고 주문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부고] ‘비지스’ 싱어 로빈 깁

    [부고] ‘비지스’ 싱어 로빈 깁

    아름다운 가성의 하모니로 디스코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팝그룹 비지스의 싱어 로빈 깁이 20일(현지시간) 사망했다. 62세. AP통신에 따르면 로빈의 가족들은 성명을 내고 “로빈이 지병인 암과의 오랜 싸움 끝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로빈은 2010년 결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돼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힘든 투병 생활을 계속해 왔다. ‘깁 형제들’(Brothers Gibb)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비지스는 큰형인 배리 깁을 비롯해 쌍둥이인 로빈 깁, 모리스 깁 등 삼형제로 구성된 밴드다. 지난 2003년 모리스 깁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공식 해체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위치한 맨 섬에서 태어난 깁 형제들은 1958년 부모와 호주로 옮겨 오면서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스픽스 앤드 스펙스’(Spicks and Specks)라는 싱글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얻은 비지스는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1967년 첫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 ‘스테인 얼라이브’(Stayin’ Alive), ‘새터데이 나이트 피버’(Saturday Night Fever),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How Deep Is Your Love) 등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인기를 모았다. 특히 비지스는 1977년 가장 잘 팔리는 앨범 중 하나인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사운드 트랙을 발표하면서 큰 명성을 얻었다. 이 앨범은 대중음악 역사상 하드록의 시대를 끝내고 댄스 음악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도쿄 스카이트리 22일 개장… ‘경제대국 부활’ 상징물 기대

    도쿄 스카이트리가 22일 개장한다. 높이 634m로 타워로는 세계 최고 높이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일반 상업용 빌딩까지 포함했을 때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부르즈칼리파(828m) 다음으로 높다. 63빌딩(264m)의 2.5배, 에펠탑(301m)의 2배 높이다. 2008년 7월 착공 당시 스카이트리의 예정 높이는 610m였다. 그러나 건설 도중 2010년 10월 개장한 중국 광저우타워가 같은 높이라는 점이 밝혀져 2009년 10월 634m로 변경했다. 중국과 일본이 높이 자존심 대결을 벌인 셈이다. 스카이트리 시행사인 도부철도 측은 개장 첫해 3200만명의 관람객이 이 타워를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도쿄 디즈니랜드의 연간 관람객 수 2535만명을 넘는 수준이다. 지난 7일 기준으로 입장권 예약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개장 당일 오전 경쟁률은 335대1에 달했다. 이처럼 일본인이 스카이트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스카이트리가 단순한 타워 차원을 넘어 일본 경제의 부활을 이끄는 상징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8년 완공된 도쿄타워는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 일본 경제의 부흥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스카이트리 타워는 지난해 3·11 대지진 이후 무너진 일본 경제의 부활을 알리는 21세기 건축물이 될 것이라는 게 일본인들의 바람이다. 실제로 경기침체에 빠진 일본은 현재 ‘스카이트리발(發) 특수’가 일고 있다. 여행 업체들은 이미 스카이트리 특화형 관광 상품을 내놓았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스카이트리 연간 입장객이 3000만명만 돼도 437억엔(약 6100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다른 경제연구소들도 스카이트리로 인해 연간 1조원에 가까운 경제효과가 나올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도쿄 스미다구에 들어선 스카이트리 타워는 전파 송신탑이다. 내년부터 NHK를 비롯한 6개 방송사의 디지털 방송용 송출탑으로 사용된다. 이 타워의 중간 콘크리트 부분에 강철 튜브들이 있어 이 튜브들이 구조적으로 중간부를 여러 구획으로 나눈다. 지진이 일어나면 콘크리트 코어 및 스틸 프레임은 건물 전체가 흔들리지 않게 서로 보완하도록 고안됐다. 총공사비는 650억엔(약 9580억원)이다. 이 타워의 공사를 주도한 도부철도 측은 스카이트리를 단순한 전파 송신탑으로 세우지 않았다. 350m 높이와 450m 높이에 각각 전망대가 있고, 300여개의 상점과 레스토랑, 천문대, 아쿠아리움 등 상업시설이 있는 ‘소라마치’(하늘동네)가 들어섰다. 소라마치는 1950년대 일본 서민들의 전통 상점가였던 ‘시타마치’를 그대로 재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행정대집행법 시행령 첫 개정

    행정대집행법시행령이 1954년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개정된다. 행정안전부는 17일 “그동안 한번도 손을 보지 않아 계고서 송달 방법 및 관련 서식 등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아 행정대집행법시행령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면서 “송달 방법을 현실화하고, 어려운 행정용어를 순화하는 등 이달 중 전문가, 지역 공무원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친 뒤 개정안을 완성해 오는 7월에 입법예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행정대집행법은 두차례 바꿔 행정대집행법은 행정이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의무를 이행해야 할 상대방인 국민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의무를 위반한 경우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강제집행제도다. 대집행법은 1954년 제정된 뒤 1984년,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됐다. 하지만 계고서의 송달 방법 등을 담은 시행령은 1954년 10월 7일 제정 이후 한번도 개정되지 않아 실제로 법을 집행하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가장 큰 문제가 계고서, 대집행영장 등을 보낼 때다. 현재는 직접 전달하거나 등기우편으로만 가능하다. ●계고서·대집행영장집행 현실 외면 또 대집행의 대상자가 전달받는 것을 거부할 경우, 시행령 4조는 ‘의무자의 근린에 거주하는 성년 2인을 입회시킨 후 그 거부하는 사실을 수령증용지 이면에 기재하고 입회자와 함께 서명 또는 기명날인함으로써 송달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행정대집행 담당 공무원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정이라고 지적한다. 같은 동네에 살며 서로 낯붉히는 상황을 원치 않는 경우, 2명의 입회인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다. 잘 모르는 사람의 일이라면서 아예 개입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기도 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본인이 동의할 경우 전자우편으로도 보낼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인근 주민 2명 입회 등 조항도 현실과 맞지 않은 만큼 삭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 동의땐 전자우편 사용토록 또한 ‘사송’(직접 전달), ‘당해송달 서류’(전달할 서류) 등 어려운 행정용어도 순화하고, 이와 관련된 계고서, 대집행영장, 증명서, 비용납부명령서, 공시송달서 등 서식도 일제히 개정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단독] “승단 정화 안되면 또 핵폭탄급 폭로”

    [단독] “승단 정화 안되면 또 핵폭탄급 폭로”

    조계종 승려들의 호텔 도박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은 13일 “이(도박동영상)보다 더 큰 핵폭탄이 있다.”면서 “도박한 승려에 대한 검찰 수사와 종단의 대처 방안을 보고 터뜨릴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성호 스님은 이날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승려들의 도박, 음주, 음행, 횡령, 은처(隱妻·부인을 숨겨 두는 행위)가 고위층에도 존재하며 그에 관한 자료, 사진, 동영상을 갖고 있다.”면서 “그것을 제가 폭로하지 않도록 그 전에 승단이 정화됐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9일)한 이후 어떻게 지냈나. -신변에 위험을 느껴 동가숙서가식으로 지낸다. →어디서 기거하나. -보안상 말씀 드리기 어렵다. →동영상 발견 경위는. -대웅전에 기도하러 가는데 부처님 앞에 휴대용 저장장치(USB)가 놓여 있었다. 그게 지난 7일이었다. 시간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컴퓨터에 넣어 보니까 도박하는 영상이었다. 부처님께서 나한테 심부름 시킨 일이란 생각이 탁 다가왔다. →어느 절에서 발견한 건가. -밝힐 수 없다. 운명적으로 내가 (고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불교를 위해 희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종단이 잘되기 위해선 아픔과 희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동영상이 부처님 앞에 있더라는 얘긴 납득이 안 간다. -그런 걸 갖다 놓은 사람들이 나라면 (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도박에 연루된 스님들과 다른 계파인가. -난 계파에 소속돼 있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 종권을 잡고 있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천승가회) 소속이다. 지금의 총무원장은 이들 위에 얹혀 있는 형국이다. →총무원 내 계파 간 갈등, 백양사 현 주지와 후임 주지를 둘러싼 갈등이 복합돼 있다는 시각이 있다. -백양사 내분은 모른다. 도박한 스님이 백양사 문중이라고 하는데 난 모르겠다. →도박한 스님들은 안면이 있는 분들인가. -T, E, B 등 세 명 정도다. 그들은 직업이 승려가 아니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스님처럼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도박, 음주, 결혼, 축재 등 계율을 어기는 스님들이 어느 정도인가. -중벼슬은 닭벼슬이라고 했는데 스님들이 권력놀음에 심취해 있다. 국회의원을 국민이 걱정하듯 국민들이 종교인을 걱정한다.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스님들은 특권층이 아니지 않은가. 사회악을 일소해야 할 검찰과 경찰에선 알고도 종교집단이라고 겁먹고 조사도 않고, 여론 수그러들면 그냥 넘어가다 보니까 이렇게까지 일이 커진 것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을 했으면 이런 사태가 안 났을 것이다. 해외에서 몇백억원을 잃었다는 스님들도 있다. →자승 총무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했는데. -그건 쇼다. 그 사람이 나가야 한다. →조계종의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돈이라고 본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돈을 만지면서 도박이란 데 손을 대고, 시주란 게 자기 돈이 아닌데 자기 돈처럼 쓴다. 스님이 월급이 뭐냐. 다 도적질한 거다. 신도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내놓은 걸 자기 돈처럼 쓴다. 스님은 정진수행하고 돈 관리는 신도들이 해야 한다. 제가 고발한 것은 고발장에 적시한 피고발자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계율을 어긴 스님을 다 청소해 달라는 것이다. 사회악 척결차원에서 해야 한다. →제2, 제3의 폭로가 이어질 것이란 소문이 있다. -엄청난 핵폭탄이 있다. 그보다 더 큰 게 있다. 제가 고발할 때는 그냥 했겠나.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화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고 순교한다는 각오로 하는 것이다. 종단이 바로 가야 한다. 종단이 망할 수는 없다. 종단 정화가 들불처럼 일어나길 바란다. →언제쯤 터뜨릴 건가. -상황 봐서 종단이 정신 못 차린 것 같으면,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한다. 정치적인 중들, 종단을 사당화한 세력들, 처자식 숨겨 놓은 스님들은 종단에서 특별기구를 만들어 다 뿌리 뽑아야 한다. 폭탄을 터뜨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갖고 있다는 폭탄의 실체가 있나. -자료가 있다. 어마어마한 것이다. 서류, 동영상, 사진도 있다. →혼자서 그런 일들을 못할 텐데, 누구와 같이 하는 건가. -그런 게 자발적으로 온다. 얼마나 심하면 (다른 스님들이) 그런 걸 찍었겠나. 여러 곳에 묻어 놓았다. 김성호·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성호스님은 누구 1958년생으로 전북 익산 남성고를 나와 법대 2학년을 마치고 사법시험 공부를 위해 들어간 사찰에서 ‘금강경 오가해’를 접하고 1976년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동국대에서 선학과 박사를 마친 뒤 충남 대조사, 경북 운남사, 전북 금당사 주지를 했다. 송월주 스님의 총무원장(1994~98년) 시절 호법부 상임감찰, 사업국장, 사서실(비서실) 차장을 지냈다. 2009년 총무원장 선거 때 현 자승 총무원장과 관련된 괴문서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멸빈(승적 박탈)의 징계를 받았으나 법원에서 제적 징계의 효력 정지 판결을 받은 바 있다.
  • 국방부 “6·25전쟁 한국지원국은 63개국”

    국방부는 10일 6·25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나라 수가 63개국으로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방회관에서 열린 ‘6·25전쟁 지원국 현황 연구 포럼’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을 거쳐 이같이 확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010년부터 미국 국립문서보존소(NARA) 증거 자료를 수집하는 등 세계 각국의 자료를 수집했다.”며 “당시 세계 93개 독립국 중 65% 이상의 국가가 대한민국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6·25전쟁 당시 한국을 지원한 국가는 ‘한국동란전란지’에 근거해 41개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엔 이외의 경로를 통한 물자지원 등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등 정확한 숫자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존에 알려진 미국을 비롯한 참전국 16개국과 노르웨의 등 의료 지원국 5개국에 대해서는 변동 사항이 없었다. 그러나 물자지원국 수가 기존에 알려진 20개국에서 3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번에 6·25 지원국 명단에 추가된 국가는 물자지원국인 오스트리아, 미얀마, 캄보디아, 도미니카, 이집트, 독일, 과테말라, 온두라스, 헝가리, 인도네시아, 이란, 자메이카, 일본, 모나코,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시리아, 타이완, 베트남 등 19개국이다. 여기에 당시 지원의사를 밝혔지만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브라질, 니카라과, 볼리비아 등 3개국도 포함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논란이 있었던 지원 기간 범위도 확정했다. 종료시점을 정전 당시인 1953년에서 전후복구 지원 기간인 1958년까지로 늘린 것이다. 국방부는 포럼에서 도출된 내용을 토대로 국방백서와 교과서의 개정 등을 추진하고, 올해 6월 6·25전쟁 기념식을 통해 지원국들에 감사를 표할 계획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베트남 얼굴 기형 어린이 17년째 무료수술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베트남 얼굴 기형 어린이 17년째 무료수술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동심이다. 생각할수록 가슴 설렌다. 옥구슬 굴러가듯 영롱하다. 하여 누구나 불렀다.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동요의 아버지 고(故) 윤석중 선생이 남긴 ‘어린이날 노래’이다. 지천에 꽃이 피고 나무와 들판에는 온통 푸름으로 가득하다. 앵두와 어린 딸기의 계절이다. 그래서 고 피천득 선생은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라고 읊었다. 두 밤만 자면 어린이날이다. 세상에서 어린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어린이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얼마나 될까. 더구나 한결같이 어린이를 위하고 많은 업적을 남기기란 쉽지 않다. 백롱민(54)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기형 얼굴을 가진 어린이만 17년째 무료로 수술해 주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서 매년 봉사활동을 펼쳐 그동안 3000여명의 기형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삶과 희망의 미소를 선물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에게도 이러한 무료 수술을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요즘에는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어린이에게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백 교수는 의학계에서 구순구개열 수술 분야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구순구개열은 입술, 입천정, 코 등의 기형을 동반하는 것으로 최근에는 출산율 감소로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가장 흔한 선천성 얼굴 기형 중 하나다. 이러한 얼굴을 가진 어린이들은 마음의 상처로 웃음을 잃은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40여명의 의료진과 봉사활동 중 어린이날을 며칠 앞둔 지난달 30일 오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백 교수를 만났다. 부원장 직책을 맡고 있어서 그런지 바쁜 회의 도중 잠시 짬을 내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자리에 앉으면서 백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라는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나누고 사랑하고 베푸는 만큼 세상은 더 환해집니다’라는 부제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저자 이름이 특이했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Smile For Chidren)였다. 이에 대한 설명이 적힌 글을 살짝 들여다봤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우리나라 성형외과의 살아 있는 전설 백세민 박사가 주축이 되어 선천적 얼굴 기형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주기 위해 결성한 단체. 1989년 전국 순회 진료를 통해 국내의 얼굴 기형 어린이 환자에 대한 무료 수술을 시작한 이래 1996년부터는 베트남 의료봉사를 시작해 그동안 3000여명의 얼굴 기형 환자에게 희망의 미소를 선물했다.’ 백 교수는 백세민 박사의 친동생으로 현재 40명의 의료진과 함께 기형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과 몽골 등지에서는 백 교수를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부터 나왔다. 잘 팔리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일해 왔던 것을 한번 모아보자는 의견이 있어서 지난해 말 발간했는데 1만부 이상은 나간 것 같아요. 아마 많이 팔리면 봉사자금 마련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4600명이 넘는 얼굴 기형 어린이의 진료를 지원했으며 그중 1150여명은 수술비를 지원받아 환한 웃음을 되찾았거든요.” ●환자집 수소문해서 찾아 가기도 세민얼굴기형돕기회에 대한 설명이 다시 이어진다. “처음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의료진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시작해 오다가 1995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게 됐다.”면서 “이 모임에 가입된 회원은 1000명 정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계기로 베트남 어린이들과 인연을 맺게 됐을까. “1989년부터 국내 어린이들 위주로 활동을 해 오다가 법인이 결성되면서 조금 여력이 생겼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눈을 돌리자고 했지요.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나라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주한 베트남 대사를 만나게 됐고, 또 그 대사가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베트남 의무사령부 관계자를 소개하면서 베트남 현지에서 수술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백 교수는 처음에는 현지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 국가나 미국 등에서도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진도 그러려니 하는 선입견이 작용했던 것.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심성의껏 임하는 자세에 베트남 사람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지 반응 썩 좋지 않아 “우리 한국 사람들은 원래 부지런하잖아요. 정신없이 일했지요.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관광할 생각도 안 하고 노는 날도 없이 일했습니다. 처음 200명의 어린이들 수술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베트남 사람들이 다음에도 꼭 와달라고 간절이 바라더군요. 처음에는 오래 활동할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까지 계속 인연을 맺게 됐어요.” 베트남 활동은 하노이에서 처음 시작해 50개 지방자치 단체를 돌면서 계속됐다. 그러나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결코 쉽지가 않았다. 교통편 등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도 있었지만 환자를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것. 얼굴 기형을 가진 환자들 대부분이 밖으로 안 나오고 집에 숨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수소문해서 찾아가는 수술방식도 병행했다. 백 교수 팀은 입국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쉼 없이 강행군한다. 보통 한 번 갈 때마다 200명 정도 수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7일 동안 머무를 경우 하루에 30명씩 수술을 한다. 따라서 밤늦게까지 수술이 계속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류탄을 가지고 놀다가 터져 목과 손이 붙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얼굴과 상체 대부분이 화상을 입은 어린이를 봤습니다. 마취조차 안 되는 상태를 보고 마음이 매우 아팠지요. 유일한 방법은 내시경 마취였는데 베트남에는 그런 장비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한국으로 초청해 내시경으로 마취한 뒤 1차 수술을 했고 그 다음 베트남에서 두 번 수술한 끝에 그 어린이는 새 희망을 찾게 됐습니다. 얼마 전 편지가 왔는데 일자리도 얻었고 곧 결혼하게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마음이 아팠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로 남아 있지요.” 2001년 호찌민 다오175병원에서 구개열 수술을 받은 바우쫑(당시 8세)이라는 여자아이는 입천장이 벌어진 채로 태어났지만 부모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수술받을 형편도 못 됐지만 그가 사는 곳 주변에 수술해줄 병원이나 의사도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국 의료봉사단이 무료수술을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120㎞를 달려와 수술을 받고 밝은 모습을 찾았다. 이를 본 바우쫑의 부모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006년 하노이에서 차로 세 시간 정도에 있는 남딘에서 134명의 환자를 수술할 때였다. 두옹(당시 14세)은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구순구개열이 심해서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탓이다. 두옹은 그동안 베트남 병원과 미국 자선단체 지원으로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 두옹 부모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백 교수 팀을 찾았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입도 다물어지고 무엇보다 정상적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1년 뒤 두옹은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삶의 자신감까지 얻어 행복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많은 어린이들에게 먹는 것은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본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이런 아이들에게 수술은 인생 전체를 바꾸어주는 기적이나 다름없지요.” ●하루에만 30명씩 수술 강행군 백 교수는 베트남에 갈 때마다 기금을 모아 장비와 소모품, 마취기계까지 필요한 의료장비를 구입한다. 그리고 치료를 마치고 난 후에는 현지 병원에 기증하고 돌아온다. 매번 가서 직접 치료해 주는 것보다 베트남 의사들을 교육해서 그들이 계속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의료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 열정과 봉사정신을 가지고 수술에 임해준 한국 의료진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베트남 아이들에게 희망의 미소를 찾아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요즘에도 이에 동참하려는 의사들이 늘고 있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다음 달 23일부터 30일까지 베트남 빈롱 지역으로 봉사를 떠나 또 다른 200명의 얼굴 기형 어린이에게 희망의 미소를 찾아줄 예정이다. 그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그랬더니 “의사로서 돕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고 싶다.”면서 “이를 위해 그동안 평양에 두 번 다녀왔는데 아직 진척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한국의 슈바이처’ 백롱민 교수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아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동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성형외과학), 분당서울대병원 과장을 거쳐 현재 진료부원장을 맡고 있다. 1995년부터 사단법인 세민얼굴기형돕기회를 결성, 지금까지 베트남 얼굴 기형 어린이 3000여명, 국내 얼굴 기형 어린이 1000여명 등에게 무료수술을 해 오고 있다. 이 밖에 대한의학레이저학회 이사장, 대한두개저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두개안면성형외과학회 상임 이사, 대한안면윤곽성형연구회 회장, 미국성형외과학회(ASPS), 미국 국제미세수술학회(WSMS) 회원으로 있다.
  • [문화마당] 기적의 신비/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문화마당] 기적의 신비/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루르드’(Lourdes,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2009년)라는 영화가 있다. 루르드는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성모 발현을 공인받아 유명해진 가톨릭의 성지이다. 매년 세계 각지로부터 약 600만명의 관광객과 순례자가 찾아오는 루르드는 ‘기적의 땅, 치유의 땅’으로 일컬어진다. 1858년 14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가 성모 발현을 체험한 마사비엘 동굴에서 성모의 말씀대로 샘을 파, 그것을 마신 이들이 치유의 은사를 입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동굴의 샘물은 기적의 샘물이 되었고, 지금도 기적에 대한 소망을 안고 병을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루르드로 모여든다. 사실 기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신의 존재 혹은 초월적 현상 등 이성이나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유사 이래 철학, 종교, 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규명하고자 애써 왔던 가장 본질적인 담론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는 신의 존재를 논증하고자 했고,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는 ‘만들어진 신’에서 불가지론을 들어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루르드’는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틴(실비 테스튀)은 전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묶여 있는 다발성 경화증 환자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수프를 떠먹을 수도,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다. 그녀는 답답한 일상을 떠나기 위해 루르드로 왔고 그곳에서 침수의식과 기도를 바친다. 그런데 그녀의 기도는 그리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의 모든 것에 냉담하고 의욕도 없어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기적이 찾아온다. 꿈에서 목소리를 들은 이후 그녀가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의 영화 내용은 타종교 신자들이나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이들로서는 특정 종교와 관련된 현상이라고 여겨져 그다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면모와 재미는 이후부터이다. 사람들은 신심이 돈독해 보이지도 않는 크리스틴에게 왜 ‘기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의아해한다. 그들은 내가 아닌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에 대해 질투하고, 정말 기적이 맞는지 의심한다. 영화 ‘루르드’가 기적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이성적·논리적으로 추론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 황당무계함이나 비현실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가장 영리하게 처리한 사례이다. 영화는 크리스틴의 ‘기적’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녀를 쓰러뜨린다. 온몸을 뒤덮은 마비에서 풀려나 호감을 갖게 된 남자와 즐겁게 춤을 추던 크리스틴은 휘청하면서 쓰러진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술렁임. 크리스틴은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에 앉아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이 얼마나 잔인한가? 옥죄던 마비에서 벗어나 비로소 육신의 자유를 누리던 그 기쁨의 정점에서 다시 쓰러뜨리다니. 물론 본디 마비상태로 돌아간 것인지, 일시적인 피로현상인지 불확실하게 처리함으로써 보는 이들의 상상에 맡기는 전략을 택하고 있지만, 그 어떤 쪽이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기적의 신비’인 까닭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적을 체험하는 일은 얼마나 될까? 아니, 기적이란 무엇이며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기적을 종교적 신비현상으로 접근하면 희귀하고 불가사의한 것이지만, 세속적으로 생각하면 기적은 희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삶이 엄혹하고 고통스러울 때 기적을 바란다. 기적은 그를 고통으로부터 곧추세우고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므로 곧 희망인 것이다. 3·11 대지진으로 쓰나미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일본 소년의 축구공이 알래스카까지 떠내려 와 발견되어 소년에게 곧 전달될 것이라는 외신이 있었다. 모든 것을 쓰나미가 쓸어가 버린 줄 알았는데 대륙을 넘고 대양을 건너 소년의 소중한 추억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고, 이것이 희망 아닌가. 그래서 ‘루르드’의 마지막 장면, 크리스틴의 입가에 떠오른 엷은 미소는 기적의 신비를 체험한, 기적이 희망임을 안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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