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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센서 모자/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센서 모자/최광숙 논설위원

    독재 정권 시절 감옥에서 검열을 거치지 않고 교도관 등을 통해 몰래 밖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을 ‘비둘기를 날린다’고 했다. 1975년 김지하의 ‘양심선언’, 1987년 이부영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됐다’는 내용이 바깥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던 것도 ‘비둘기 통신’ 덕분이었다. 서신 검열은 2012년 2월 헌법재판소가 교도소의 서신 검열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계속됐다.서신 검열은 대표적인 사상 검열 중 하나다. 검열의 원조격은 소련의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비밀 경찰, 극단적인 언론 통제를 통해 소련을 ‘강철 제국’으로 만들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도 스탈린 체제를 비판해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어둠 속에 묻힐 뻔했으나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이 서방으로 원고를 빼돌린 덕분에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검열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중국은 영화나 방송 등을 검열할 뿐 아니라 인터넷까지 검열한다. 인터넷을 검열하는 인원만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톈안먼 사태’, ‘원자바오 부정축재’, ‘재스민 혁명’ 등의 표현은 아예 인터넷에서 차단된다. 네티즌들이 톈안먼 사태의 상징이 된 늘어선 탱크들 앞에 서 있는 학생의 사진에 ‘노란색 대형 오리’라는 표현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검열을 피하려 했지만 중국 정부는 용케 알고 차단했다. 정보를 통제하던 중국이 이제 사람의 ‘머릿속’까지 감시한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중국의 한 기업 노동자들은 아주 작은 무선 센서가 부착된 모자를 쓰고 일한다. 이 센서는 노동자들의 뇌파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컴퓨터로 보내 뇌파를 분석해 노동자의 걱정, 불안, 분노 등 감정 변화를 읽는다. 회사 측은 이 결과를 활용해 생산 속도 등을 조절해 작업 능률을 높인다. 센서 모자는 베이징~상하이 구간 고속철을 운행하는 기관사들도 쓴다고 한다. ‘뇌 감시’ 연구는 선진국에서도 하고 있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된 것은 중국이 처음이다. 차오젠 베이징사범대 교수는 “이러한 기술은 기업이 노동자의 감정을 통제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데 쓰여 ‘감정 경찰’로 변질할 우려가 있다”며 관련 규제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소설 ‘1984’에서 ‘빅브러더’, ‘사상 경찰’을 내세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박탈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한 조지 오웰도 센서 모자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노동도 아무렇지 않게 노래하고 싶다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노동도 아무렇지 않게 노래하고 싶다

    우리는 오랫동안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기를 꺼려했다. 글을 쓸 때 머릿속에서 ‘노동자’란 말이 떠올라도 바로 ‘근로자’로 바꾸어 썼다. 전 세계가 함께 기념하는 노동절인 메이데이도 오랫동안 기념일이 되지 못했다. 1958년부터 한국노총 창립일(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명명해 노동절을 대신했다. 1987년 이후 대중적 노동운동의 시대가 열리면서 3월 근로자의 날을 거부하고 메이데이를 기념하는 흐름이 거세졌고, 1990년에는 한국노총조차 5월 1일에 공식 행사를 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4년 문민정부 시대에 들어서서야 메이데이는 공식적인 기념일이 됐는데 여전히 명칭은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다. 분단으로 인한 ‘레드 콤플렉스’는 이렇게 우리 삶의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잘 포착하는 소설 분야에서조차 노동 쟁의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1970년 황석영의 ‘객지’에서부터였으니, 대중가요는 더 말해 무엇 하랴. 아직도 육체노동, 하급 서비스노동의 삶은 대중가요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소재다.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의 일상적 삶이 이토록 노래로 불리기 힘들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민요를 살펴보면 대중가요의 이런 경향이 일종의 편향이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뒷소리) 어어 어어이 / 허허허으 을라차아 / 어어어허 어어 어허허으허 을라차 1. 바늘 같은 허리에다 / 태산 같은 짐을 지고 / 이 고개를 어허 / 어이 넘을소냐 / (뒷소리) 2. 일락서산 해는 지고 월출동력 달 돋아오는구나 / (뒷소리) 3. 여보시오 주인님아 / 닭 잡고 술을 내어 / 욕본 일꾼 / 멕여를 주소 / (뒷소리) - ‘등짐소리’(전북 익산 민요, 1971년 민속학자 임석재 채록) ‘바늘 같은 허리’와 ‘태산 같은 짐’의 대조는 노동의 힘겨움을 아주 간명하고도 실감나게 드러낸다. 전남 장성의 ‘두엄 내는 소리’나, 전북 부안의 ‘나락등짐소리’에도 비슷한 가사가 있으니, 이 기막힌 표현이 참 많은 농사꾼들의 심금을 울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전통적 사회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근대사회이건만, 대중가요는 이런 표현을 거의 하지 못했다. 육체노동은 ‘근로’ 즉 ‘열심히 일하는 것’, 그래서 보람찬 내일을 꿈꾸는 내용으로만 허용될 뿐 일하는 사람의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이 고루 표현될 수 없었다. 내 사랑 외로운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가요 / 사랑의 노래를 불러 보고 싶지만 마음만으로는 안 되나 봐요 / 공장의 하얀 불빛은 오늘도 이렇게 쓸쓸했지요 / 밤하늘에는 작은 별 하나가 내 마음같이 울고 있네요 / 눈물 어린 내 눈 속에 별 하나가 깜빡이네요 / 눈을 감으면 흘러내릴까봐 눈 못 감는 내 사랑 / (중략) / 눈을 감으면 흘러내릴까봐 눈 못 감는 서글픈 사랑 / 이룰 수 없는 내 사랑 - 김광석 ‘외사랑’(1992, 한돌 작사·작곡) 이 노래는 1984년 신형원의 목소리로 처음 취입됐으나, 가사의 한 부분이 잘린 상태였다. ‘공장’이 문제였다. 결국 ‘공장의’를 ‘내 마음’으로 바꾸고서야 검열을 통과했다. 세상이 바뀌어 대중적 노동운동의 시대가 열린 이후에야 비로소 ‘공장’이란 말을 되살려 어렵사리 합법적 음반에 담을 수 있었다. 당시 검열 기준은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국가 위신을 손상하거나 헌법 질서를 문란케 하는 대중가요를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공장을 배경으로 한 짝사랑의 노래가 왜 이런 기준에 걸려야 하는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여전히 5월 1일이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이다. 노동, 공장 같은 말을 넣어 대중가요를 지어 불러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 기니 건국 영웅의 아들이 소녀를 16년 동안 노예 부리듯

    기니 건국 영웅의 아들이 소녀를 16년 동안 노예 부리듯

    아프리카 기니의 초대 대통령인 아흐메드 세쿠 투레의 아들이 미국 텍사스주 집에서 소녀를 16년 동안이나 노예처럼 부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미국 법무부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부친이 창당한 기니 민주당(DPG)의 현역 사무총장인 무함마드 투레와 아내 데니스 크로스(이상 57) 부부는 다섯 살 소녀를 미국 집에 데려가 집안일을 시키고 자녀들을 돌보게 하면서 학교에 못 다니게 하고 여행 문서를 위조하고 비자가 만료된 뒤에도 미국에 머무르게 강요하는 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유린했다.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영국 BBC가 28일 전했다. 이 소녀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한 것으로 보도됐다. 포트 워스 연방법원은 그녀가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고 투레 부인에 의해 벨트와 전깃줄로 맞기도 했다는 소녀의 증언을 들었다. 이 소녀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는데 돈이나 신분 증명 없이 집에서 쫓겨날 것이란 겁박을 받았다. 일간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한번은 벤치에서 잠을 자다 경찰관의 눈에 띄었는데 그 경관은 “더럽고 단정치 못한 옷차림의” 그녀가 “한눈에 봐도 두려움과 겁에 질려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 경관은 투레 저택에 그녀를 돌려보냈는데 그녀가 탈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법무부 성명에 따르면 그녀는 2016년 8월 과거 이웃이었던 여러 명의 도움을 얻어 사우스레이크에 있는 집에서 탈출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부부를 변호하는 스콧 파머 변호사는 모든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며 “악의적인 뒤집어씌우기이며 가공이며 거짓말”이라고 공박하며 부부는 소녀를 딸처럼 대했다고 주장했다. DPG는 1958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뒤 1984년까지 세쿠 투레가 집권한 26년 동안 유일한 법적 정치세력이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 가리어진 옛고을 풍경 속으로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 가리어진 옛고을 풍경 속으로

    전남 곡성 하면 퍼뜩 떠오르는 곳이 ‘섬진강기차마을’일 겁니다. 영화 ‘곡성’도 엇비슷한 무게를 갖겠지요. 궁벽한 시골마을을 일약 관광명소로 끌어올린 곳이니 그만 한 대접쯤은 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가려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강변 풍경, 옛 추억을 길어올리는 소박하고 낡은 모습들이 그렇습니다. 버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지요. 이번 곡성행은 이런 풍경들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몽실몽실 물안개 핀 침실습지, 영혼을 깨우다 곡성은 하천이 발달했다. 곡성을 관통하는 섬진강을 비롯해 대황강(보성강) 등 크고 작은 하천들이 씨줄날줄로 곡성을 감싸고 있다. 전북 팔공산에서 발원해 진안, 장수 등을 적시며 숨가쁘게 달려 온 섬진강은 곡성의 너른 평야와 만나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른다. 느릿느릿 흐르는 강물은 곳곳에 무수히 많은 모래톱을 만들었다. 그 위에 물버들, 갈대 등이 자라며 습지를 형성했다. 여기가 바로 ‘섬진강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침실습지다. 길이가 약 5㎞에 이르는 대형 습지다. 침실습지는 생태계의 보고다. 안내판에 따르면 수달, 삵 등 생멸의 기로에 선 동물과 17종에 이르는 한반도 고유어종 등 665종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 22번째 국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유다.습지 중간에 빨간색 ‘퐁퐁다리’가 놓여 있다.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유실되지 않도록 중간중간에 구멍을 뚫었다. 그래서 퐁퐁다리다. 퐁퐁다리는 강 양쪽을 잇는다. 그 덕에 습지 여기저기를 막힘없이 둘러볼 수 있다. 침실습지 주변으로 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 탐방로를 따라 자박자박 산책을 즐기는 맛이 각별하다. 자전거 타기에도 그만이다. 신리제방도로와 생태데크, 침실목교, 퐁퐁다리 등이 자전거 마니아들의 인기 코스다.침실습지는 이른 아침에 찾아야 제맛이다. 일교차가 큰 이맘때면 아침마다 습지가 물안개로 뒤덮인다. 섬진강 위로 몽실몽실 피어오른 물안개는 습지 여기저기를 유령처럼 떠돈다. 물안개가 강과 습지를 품거나 떨칠 때마다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몽환적인 풍경 덕에 근동의 사진가들이 아침잠을 설쳐 가며 침실습지를 찾는다. 침실습지가 섬진강의 선물이라면 반구정습지는 대황강이 빚어낸 작품이다. 규모나 명성에선 침실습지와 견주기 어려워도 서정적인 자태는 전혀 뒤지지 않는다. 새의 눈으로 굽어보는 반구정습지도 빼어나다. 인근의 아미산 자락에 깃든 천태암이 전망 포인트다. 산 아래 신기마을에서 암자로 오르는 도로 곳곳에서 반구정습지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천주교도 피의 역사 곡성성당, 아픔을 보듬다 곡성 읍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추억을 소환하는 낡은 풍경들이 읍내 여기저기에 여태 남아 있다. 얼추 1㎞에 이르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지나면 곧 곡성이다. 읍내를 관통해 흐르는 영원천을 따라 걷다 보면 곡성읍교회와 만난다. 1911년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건물 옥상에 오르면 곡성 읍내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군청 옆엔 곡성성당이 있다. 1958년 옥터성지 위에 붉은 벽돌로 세워 올린 성당이다. 옥터성지는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목숨을 잃거나 옥살이를 했던 정해박해(1827)의 진원지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현지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당시 옹기마을의 주막집 주모와 술버릇이 좋지 않은 한 남성 천주교도가 옥신각신 말싸움을 벌였다. 이는 곧 주모 남편과의 주먹다짐으로 번졌다. 한데 남편이 옹기장이 천주교도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고, 발끈한 주모가 관아에 옹기장이를 천주교인이라고 발고하며 피의 역사가 시작됐다. 성당 뒤에 옥사 등 당시를 돌아볼 수 있는 시설들이 조성돼 있다. 아울러 50년을 넘나드는 시간을 건너온 곡성주조장과 협동이발관, 3대를 이어오고 있는 능파방앗간 등도 차분하게 돌아볼 만하다.#통명산·주부산 사이 굽이굽이, 옛길을 거닐다 그런데 의아하다. 여태까지 본 풍경들은 깊은 골(谷)에 들어선 고을(城)이라는 이름과 사뭇 다르다. 영화 ‘곡성’에서처럼 산자락이 중첩되고 골과 골이 이어지는 풍경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비밀은 통명산(765m)과 주부산(678m) 사이에 놓인 옛길에 있다. 구성재라는 고개를 구불구불 넘어가는 길이다. 섬진강을 따라 17번 국도, 대황강변의 18번 국도 등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곡성 사람들은 이 산길을 따라 이 고을 저 고을을 오갔다. 간선도로 노릇을 했던 옛길은 이제 840번 지방도로 내려앉았다. 곡성 사람들조차 옛길을 찾지 않는다. 그 덕에 더없이 적요한 곡성 특유의 풍경과 만날 수 있다.#나를 낮추며 절집 오르는 길, 下心을 새기다 이제 곡성의 절집 순례에 나설 차례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태안사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중심 사찰이다. 한때 실상사와 송광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번창했다는데, 지금은 오히려 실상사의 말사가 됐다. 절집으로 오르는 약 2㎞의 숲길이 백미다. 곡성군의 도로포장 제의를 태안사가 거절한 덕에 여태 흙길의 형태를 이어오고 있다. 무명 저고리 옷고름처럼 단정한 흙길 끝에 능파각이 서 있다. 계곡 위에 세워져 다리 노릇까지 겸하고 있는 건물이다. 능파(凌波)는 물결 위를 신선처럼 가볍게 걷는다는 뜻이다. 이름에 담긴 뜻을 헤아리자니 승속의 경계가 이 누각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능파각에서 조붓한 오솔길을 거슬러 오르면 일주문이다. 기교와 장식이 매우 화려한 건축물이다. 일주문까지 이어진 돌계단도 인상적이다. 반듯하지 않고 유연하게 휘어졌다. 돌계단에 담긴 뜻이 뭘까. 단순히 운치만 염두에 둔 설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휘휘 도는 길 위에 세속의 티끌을 모두 털고 오라는 가르침일 수도 있겠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비로소 절집이 시작된다. 면 전각들은 단아하다. 절집 앞 연못의 자태도 우아하다. 선사들의 사리 등을 모신 광자대사탑(보물 274호), 탑비(보물 275호) 등 볼거리도 쏠쏠하다. 절집 가장 위에 있는 배알문은 꼭 찾아야 한다. 누구나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문이다. 거듭된 보수로 옛멋은 많이 잃었지만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라는 ‘하심’(下心)의 가르침만은 여태 오롯하다. 온갖 ‘갑질’로 흉흉한 시대에 이보다 좋은 반면교사도 없지 싶다. 글 사진 곡성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곡성 읍내까지는 순천완주고속도로 서남원 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가장 알기 쉽다. 가정역, 태안사 등은 황전 나들목이 더 가깝다. ‘1933오후’는 일종의 여행자 카페다. 커피를 마시며 곡성의 명소들에 대한 정보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 전체 곡성 여정을 설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읍내 영원천 제방에 있다. 뚝방마켓은 매달 2, 4주 토요일에 영원천 변에서 열린다. 아기자기한 공예품 등과 만날 수 있다. 곡성을 대표하는 장미축제는 새달 18~27일 섬진강기차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자전거는 곡성청소년야영장 주변의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다. 시간당 1만원 정도 받는다.→맛집: 생선나라(362-4141)는 생선구이를 잘한다. 생선을 미리 구워 놓지 않아 차려내는 데 다소 시간은 걸리지만 그만큼 고소하고 신선한 생선구이를 맛볼 수 있다. 혼자 여행하는 이에겐 처마(363-8233~4)도 괜찮다. 애호박찌개를 맛깔스럽게 낸다. 딸부잣집(363-6893)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백반집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밥상을 받을 수 있다. 군청사거리에 있다. 다슬기로 끓인 수제비도 별미다. 태안사 앞 석천산장(363-6344)이 이름났다. 다만 일반 수제비와 달리 맛이 다소 쌉쌀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다슬기의 독특한 맛을 즐기는 이라면 찾을 만하다. 석곡면은 고추장에 양념한 돼지고기를 숯불에 굽는 돼지석쇠불고기로 유명하다. 석곡식당(362-3133)이 널리 알려졌다. 3인분 이상이 기본이다. →잘 곳: 읍내의 일반 숙박업소는 다소 낡은 편이다. 비용이 들더라도 심청한옥마을(363-9910)의 한옥스테이나 옛 열차를 활용한 섬진강기차마을펜션(362-6611), 유스호스텔(362-1314) 등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
  • [러시아월드컵 태극전사가 간다] ‘느린 발’ 묶어라, 16강이 보인다

    [러시아월드컵 태극전사가 간다] ‘느린 발’ 묶어라, 16강이 보인다

    대한민국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을 기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 개막이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신태용 국가대표팀 감독은 다음달 1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대표팀 소집 명단을 발표하기 위해 K리거와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막바지 점검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팀은 다음달 28일 온두라스(대구), 6월 1일 보스니아(전주)와 평가전을 치르고 3일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로 떠나 전지훈련 캠프를 차린다. 이튿날 최종 엔트리 23명을 FIFA에 제출한다. 이어 7일 볼리비아, 11일 세네갈을 상대로 마지막 담금질을 마친 뒤 12일 러시아 땅을 밟는다. 개막 D-50인 25일부터 매주 수요일 본선 F조, 유럽 평가전 상대들을 분석하고 격전지와 베이스캠프를 미리 둘러보는 시리즈를 네 차례 싣는다.한국의 러시아월드컵 16강 진출 전망은 가히 밝다고 할 수 없다. 한국(FIFA 랭킹 61위)이 속한 F조에 ‘디펜딩 챔피언’ 독일(1위), ‘북중미 강호’ 멕시코(15위), 이탈리아를 꺾고 올라온 스웨덴(23위)이 포진해서다. 객관적 전력에서 만만한 상대가 없다. 지난달 28일 FIFA 지정 A매치 데이를 마친 뒤 일제히 발표한 ‘월드컵 파워 랭킹’에서 한국은 바닥을 헤맸다. 가디언은 한국을 32개국 중 28위, ABC는 29위, 야후스포츠는 30위, 블리처리포트는 29위로 꼽았다. 한국이 ‘언더도그의 반란’을 일으키려면 스웨덴과의 첫 경기(6월 18일)를 꼭 잡아야 한다. 그나마 전력 차가 적은 스웨덴에 무조건 1승을 거둬 승점 3점을 따낸 뒤 나머지 경기에서 적어도 승점 1점(무승부)을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조 1위를 차지할 게 유력한 독일 외 나머지 세 팀이 남은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데 스웨덴에 패하면 순식간에 불리한 국면을 맞는다. 첫 경기를 놓치면 팀 분위기도 가라앉아 더욱 난처해진다. 스웨덴은 자국에서 열렸던 1958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준결승 이상에 네 번 진출했다. 한국과 월드컵에서 만난 적은 없으나 A매치 역대 전적에서는 2승 2무로 우위다. 2016년부터 스웨덴 지휘봉을 잡은 얀 안데르손(56) 감독은 대표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7·LA 갤럭시)의 ‘원맨팀’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조직력을 강조해 ‘원 팀’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난 두 차례 월드컵에서 본선에 오르지 못한 데다 유로 2016에서는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하면서 팀 재정비에 대한 주문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리빌딩 결과 스웨덴은 러시아월드컵 지역예선 A조에서 네덜란드를 3위로 밀어냈고 이어진 플레이오프(PO)에서는 이탈리아를 1승1무로 누르며 12년 만에 본선 진출을 가름했다. 스웨덴은 4-4-2 포메이션을 선호한다. 러시아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A조 10경기와 이탈리아와의 PO 2경기에서도 그랬다. 파상공세보다는 세트피스나 역습을 이용한 ‘한 방’을 노린다. 빠른 측면 공격과 강한 압박도 특징이다. 수비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여 예선 10경기 동안 26골을 넣고 9실점으로 막았다. 수비진의 ‘느린 발’은 단점이다. 골문 근처에서 공을 뺏겼을 때 대처가 늦다. 갑자기 침투 패스가 들어올 때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신장이 큰 편이지만 이른 타이밍에 올라온 크로스에 늦게 반응한다. 공격 면에서도 크로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반면 중앙으로 바로 치고 나오는 플레이는 적어서 다소 단조롭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스웨덴에서도 우리나라를 상대로 1승을 거둬야 한다고 볼 것이다. 평소에 비해 공격적으로 나올 텐데 역습을 어떻게 할지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며 “빠르지 않은 점을 노려 정교한 세트 플레이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다. 반면 상대의 높은 신장을 고려해 코너킥과 프리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경계할 선수는 에밀 포르스베리(27·라이프치히)다. 왼쪽 날개에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며 팀을 이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으로 파고들며 주위 선수들을 활용하는 패스 플레이가 장점이다. 템포 조절과 지휘 능력이 수준급이고 활동량도 많다. 월드컵 지역예선 10경기에 모두 출전해 4골을 뽑았다. 더불어 주장을 맡은 안드레아스 그란크비스트(33·크라스노다르)는 러시아 리그에서 뛰고 있어 현지 분위기에 익숙하다. 정통 스트라이커인 마르쿠스 베리(32·알아인)도 슈팅 능력을 갖췄다. 변수는 이브라히모비치의 합류 여부다. 그는 2016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지만 최근 미국 ABC 방송의 인기 토크쇼인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해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며 열망을 드러냈다. 노쇠했다는 말을 듣지만 미국 LA 갤럭시에 입단한 이후 4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으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그러나 안데르손 감독은 “내 월드컵 계획엔 없다”며 선을 긋고 있어 다음달 16일 발표할 엔트리를 지켜볼 일이다. 개성이 워낙 강해 조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신중하다. 한국에서는 황희찬(22·잘츠부르크)이 스웨덴전의 키플레이어로 꼽힌다. ‘황소’ 별명에 걸맞게 저돌적 플레이를 펼친다면 상대의 느린 수비를 헤집고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주헌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상대방 약점을 잘 간파해 끝까지 탄탄하게 수비하며 버티다 ‘한 방’을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그녀와 함께 한국영화의 한 세기가 끝난 듯합니다”

    “그녀와 함께 한국영화의 한 세기가 끝난 듯합니다”

    원로배우 한지일·김동호 등 발길 엄앵란 “영화에만 몰두한 분” 염수정 추기경도 애도 메시지 “뜻깊은 일 하고파” 각막 기증 한국 영화계의 한 획을 그었던 원로배우 최은희의 빈소에는 17일 원로급 영화인들의 발길이 온종일 이어졌다. 고인의 뜻에 따라 영화인장이 아니라 가족장으로 치러졌지만,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를 기억하려는 이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는 이날 영화계 유명 인사들이 고인을 찾았다. 배우 엄앵란은 “고인 덕분에 영화배우의 길로 들어섰다”면서 고인에 관해 “사생활도 없이 오로지 영화에만 몰두한 분”이라고 떠올렸다. 지방의 한 요양병원에 머무는 배우 신성일도 최씨의 별세 소식에 가슴 아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성일은 최씨와 신상옥 감독의 제작사인 신필름을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원로배우 한지일은 “신상옥과 최은희 두 분의 기념관을 짓는 게 평생소원이셨는데 그걸 보지 못하고 가셔서 한스럽다”고 했다. 한지일은 1971년 고인의 남편인 신상옥 감독에게 캐스팅돼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신 감독의 ‘신필름’ 마지막 세대의 배우로 꼽힌다. 원로배우 최지희는 고인을 “대한민국 영화를 위해 태어난 분”이라고 표현했다. 1958년 ‘아름다운 악녀’로 데뷔한 최지희는 10여편의 영화를 고인과 함께했다. 자매 역할로도 여러 번 만났다. 이밖에 영화 ‘상록수’, ‘빨간 마후라’ 등에 고인과 함께 출연하며 1960∼197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끈 원로배우 신영균을 비롯해 최난경·고은아·태현실·윤일봉·정혜선도 빈소를 찾았다. 신상옥 감독 아래서 8년 동안 조연출 생활을 했던 이장호 감독도 조문했다. 이 감독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최은희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정말로 한국영화의 한 세기가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이종덕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좌교수도 빈소를 찾았다.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신상옥 감독 별세 이후 해마다 추모 행사에서 추모사를 맡았다. 김 전 위원장은 “작년까지는 최은희 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추모 행사를 했는데 올해는 참석하지 못하셨다”며 안타까워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배우 이대근·이병헌·박중훈·전도연 등은 조화로 예우를 갖췄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날 염수정 추기경이 고인의 빈소에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고 밝혔다. 염 추기경은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고인은 영화 속 변화무쌍한 역할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 주신 분으로 기억합니다”라고 전했다. 앞서 고인은 2010년 6월 “내 생을 정리하면서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며 천주교 서울대교구를 통해 사후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전날 별세 직후 각막 기증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고 유족은 전했다. 발인은 19일,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다. 김기중 기자 gjkiim@seoul.co.kr·연합뉴스
  • 일제 만행 폭로한 ‘34번째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 48주기 추모식 열려

    일제 만행 폭로한 ‘34번째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 48주기 추모식 열려

    3·1운동 당시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면서 ‘34번째 민족대표’로 알려진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의 48주기 기념식이 12일 열렸다. 스코필드 박사는 독립운동에 이바지하는 등의 공로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서울대 주최로 수의과대학 스코필드홀에서 진행된 추모기념식에는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기념식에 앞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스코필드 박사 묘역에 참배했다. 정 명예회장은 “3·1운동의 기록자와 홍보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스코필드 박사를 한국사회는 민족대표 33인에 이어 34번째 민족대표라 부른다”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 정의감, 불의와 부패에 대한 투쟁은 3·1운동을 겪으며 스코필드 박사가 다듬어 온 소중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성 총장은 “이번 추모기념식은 스코필드 박사의 나눔과 베풂의 정신을 나누는 자리”라고 말했다. 성 총장은 관악구에 사는 중학생과 서울대 수의과 재학생들에게 스코필드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21세기의 스코필드를 향하여-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1916년 선교와 교육을 위해 한국에 온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탑골공원과 시청 앞에서 벌어진 3·1운동과 경기 화성시 제암리 학살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전 세계에 알렸다. 1958년 한국에 돌아온 박사는 1970년 서거할 때까지 서울대 수의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고아와 어려운 학생을 돌보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선 선비 분투기(奮鬪記)…강진 다산초당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선 선비 분투기(奮鬪記)…강진 다산초당

    “폐족(廢族) 집안의 자식으로서 학문마저 게을리한다면 어찌 하겠느냐. 과거를 치를 수는 없을지라도 책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구나”(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정약용)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불운하였고 불우하였다. 그의 집안은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의 소용돌이 속에서 멸족(滅族)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신유박해는 사학(邪學)으로 규정한 천주교의 전파를 막는 것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 벽파들이 남인 시파를 제거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적 숙청이었다. 남인들 가운데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노론들이 이를 트집 잡은 것이었다. 이로써 조선은 다시 한 번 더 세상에 나갈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조선 후기의 집권 주도층이었던 노론 세력들은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갖다 바치는 망국(亡國)의 주연들이 된다. 나라가 끝모르게 기울어져 가던 조선 후기, 선비 정약용은 전라남도 강진 땅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다. 조선의 뿌리부터 바꾸어 세계와 교류하고자 하였던 앞선 지식인, 다산 정약용의 삶이 담긴 전라남도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으로 가보자. 다산은 분명 조선조(朝鮮朝) 여타 선비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양반 구색이나 맞추어볼 심사로 삶을 띄워 보내던 게으른 사대부들과는 달리 정약용은 강진땅 험한 유배지에서도 여전히 정갈한 삶을 이어 나갈 정도로 타고난 선비였다. 다산은 일찌감치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던 인물이었는데, 1762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태어난 그는 이미 4살 때에 천자문을 익힐 정도로 문재(文才)가 비상하였다. 1789년 봄 대과에 차석으로 급제한 정약용은 초계문신(抄?文臣)의 칭호를 얻어 예문관 검열에 임명이 되면서 승승장구의 삶을 살아갈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산은 정조(正祖. 1752-1800)가 가장 아끼던 젊은 신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1789년 한강의 배다리를 만드는 공사의 규제를 만들어 한강의 주교(舟橋)를 설계하였을 뿐만 아니라, 1796년에 축조한 화성 성곽을 올리는 공사에서 거중기를 이용하여 일을 수월하게 하였으니 정조 임금의 눈에는 꼭 들어맞는 신하임에는 분명하였다. 하지만,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삶은 대변혁을 맞게 된다. 정조임금이 승하한 뒤 바로 순조(純祖. 1790-1834)가 1800년에 즉위하고 정순대비 김 씨가 수렴청정하면서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된다. 이 와중에 다산과 가까이 교유(交遊)하였던 이가환, 권철신, 이승훈, 최필공 등과 아울러 친형인 정약종마저 목숨을 잃는다. 정약용과 정약전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여 각기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되고, 정약용은 1801년 11월에 강진 땅에 도착한다. 다산이 처음 강진 땅에 머문 곳은 바로 동네 주막이었고, 후일 그는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고마움을 표하기도 하였다. 이후 다산은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인 이청의 집 등등을 전전하다가 외가(外家)인 해남 윤씨 자손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던 강진 땅 만덕산 언저리 야트막한 야산인 다산(茶山)의 산정(山亭) 주변에 초당을 짓는다. 다산초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저술에 몰두한다. 조선의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개혁안을 정리하는 데 우선 대표적인 목민관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하여, 행정 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경세유표(經世遺表)>, 죄와 형벌에 관한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을 포함하여 약 500여권 이상의 책을 갈무리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다산초당은 다산이 머물렀던 때의 초당(草堂)이 아니라 1958년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으면서 초가를 허물고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집으로 중건한 것이어서 실제 그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머물던 초당의 자리에서 그가 품었음직한 삶의 회한과 슬픔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다산초당에 오르는 뿌리의 길은 그가 머물던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관람객들에 여전히 깊은 여운을 준다. <다산초당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강진 땅을 밟게 된다면, 불우한 조선 선비의 삶을 이해하려면. 2. 누구와 함께? - 역사적, 문학적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다.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 귤동마을에 내려 걸어올라가야 한다. 4. 감탄하는 점은? - 다산초당에 이르는 길. 흔히 뿌리의 길이라고 불리며 다산초당의 진짜 모습이라고 일컫는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강진 땅에서 제일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 평일은 한산하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천일각, 동암, 연못. 뿌리의 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한정식 ‘설성식당’. ‘수인관’ ‘해태식당’ ‘제일식당’ ‘청자골 종가집’ ‘남문식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korean.visitkorea.or.kr/kor/bz15/where/where_main_search.jsp?cid=126419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두륜산 대흥사, 고산 윤선도 기념관, 해남우항리공룡화석지, 땅끝마을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다산초당에 이르는 뿌리의 길이 바로 다산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몸으로 전해오는 다산이 겪었던 삶의 흔적들. 다산초당이 목적지가 아니라 다산초당에 이르는 뿌리의 길을 꼭 밟아 보도록. 눈물겹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해외에서 온 편지] 절제된 화음, 삼바의 탄력… 브라질 보사노바에 빠지다

    [해외에서 온 편지] 절제된 화음, 삼바의 탄력… 브라질 보사노바에 빠지다

    보사노바는 1950년대 말 리우데자네이루 남부 코파카바나에서 태어나 미국, 유럽, 일본, 우리나라에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브라질 음악의 한 장르이다. 보사노바의 매력은 절제된 악기 소리들이 낮게 화음을 이루면서 속삭이는 보컬의 노래와 지적인 조화를 이루면서도 삼바의 리듬을 바탕으로 싱커페이션이 가미된 독특한 탄력으로 우아한 아름다음을 만들어내 감미로움에 빠져들게 하는 데 있다.#탄생 60년…창시자 이름 따 리우 공항도 ‘통 조빙’ 보사노바는 1958년 ‘그리움은 이제 그만’ 곡이 발표되며 시작됐으니, 올해로 탄생 60주년이다. 이 곡은 보사노바 창시자인 작곡가 통 조빙, 시인이며 외교관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클래식기타 연주가이자 가수인 조아웅 질베르토가 함께 만들었다. 브라질에서는 통 조빙 생일인 1월 25일을 ‘보사노바의 날’로 정했고, 리우 국제공항도 ‘통 조빙 공항’으로 부른다. 보사노바가 시작된 1950년대 후반 정치·사회 환경을 보면, 주셀리노 쿠비체키 대통령이 수도를 남서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국토 중앙으로 이전하기 위해 당대 지식인들을 모아 세계에서 처음으로 모던한 스타일의 계획도시를 건설하고 있었고, ‘50년을 5년 안에’라는 슬로건으로 산업개발이 일어났으며, 1958년에는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 당시 브라질인들은 새롭고 다른 국가가 탄생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고, 이러한 영향으로 젊은 뮤지션들도 음악에서 새로운 리듬을 찾았다.브라질 젊은 뮤지션들이 새로운 음악을 찾고 있었지만, 보사노바는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시대의 변화가 반영돼 나타났다. 1940~50년대는 전후 영향으로 미국산 모델이 물밀듯이 들어와 음악에서도 재즈가 인기를 끌었으며, 삼바리듬도 좀더 느리고 사랑과 고독을 노래하는 삼바칸사웅이 유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미 젊은 뮤지션들은 기타를 치며 모던한 리듬과 작은 소리로 멜로디와 화음을 조화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음악을 현대화시키기 위해 악기를 쿨재즈(Cool Jazz)와 유사하게 절제되고 낮게 켰으며, 보컬도 튀거나 과장되지 않게 악기의 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데 집중했다. 일부 음악 비평가들은 악기를 다루는 것에 근거하여 보사노바를 쿨재즈의 단순 모방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보사노바가 쿨재즈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보사노바 소문을 듣고 허비 만, 토니 베넷, 찰리 버드, 돈 페인, 스탄 게츠 등 많은 미국 재즈 뮤지션들이 브라질을 찾고 실제로 보사노바 리듬을 가미하여 앨범을 발표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보사노바도 재즈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 재즈에도 큰 영향… 포르투갈어로 들어야 제맛 특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는 미국에서 보사노바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2년 스탄 게츠와 찰리 버드가 발표한 ‘재즈삼바’ 앨범은 100만장이 팔렸고, 스탄 게츠는 1963년에 통 조빙과 ‘Getz/Gilberto featuring A. C. Jobim’ 앨범을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 1962년 11월 통 조빙, 조아웅 질베르토, 루이스 봉파, 호베르토 메네스카우, 세르지오 멘지스 등 브라질 보사노바 음악인들은 미국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 공연은 보사노바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통 조빙이 작곡하고 프랭크 시나트라와 공연도 했던 ‘이파네마의 소녀’는 비틀스 ‘예스터데이’ 다음으로 많이 듣는 노래이다. 추천하고 싶은 전통 보사노바로는 ‘향수’, ‘이파네마의 소녀’, ‘한음계 삼바’, ‘음치’, ‘코르코바도’를 들고 싶으며, 포르투갈어로 들어야 제맛이 난다.
  • 어머니가 보낸 엽서, 60년이 지나서야 받게 된 딸

    어머니가 보낸 엽서, 60년이 지나서야 받게 된 딸

    미국의 한 여성이 살아생전 딸에게 쓴 편지가 60년이 지나서야 주인을 찾았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은 북부 인디애나주 출신의 샤론 앤 공워가 지난 달 29일 오래된 엽서 한 장을 건네받았다고 전했다. 엽서는 고션시에 자리잡은 호텔 ‘퀄리티 인 앤 스위츠’(Quality Inn & Suites)의 매니저 크리스틴 컴즈에 의해 빛을 보게 됐다. 캐비닛을 청소하던 컴즈가 서랍 안 깊숙이 숨겨져있던 엽서를 발견한 것이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엽서에는 1958년 8월 26일이라는 날짜가 조그맣게 적혀있었고, 남부 캘리포니아 인근 거리에 늘어선 야자수 사진이 앞면에 실려 있었다. 3센트(약 320원) 우표가 붙여진 엽서는 보존 상태가 좋았다. 엽서에 기입된 날짜를 보고 컴즈는 ‘세상에 별 희한한 일을 다보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엽서에 적힌 미스 샤론 앤 공워라는 이름을 단서로 주인을 찾아나섰고, 수신인이 호텔 근처 와카루사 마을 노인의 집에 살고 있는 거주민임을 알아냈다. 엽서를 받은 공워는 “엽서가 늦게 전해진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1973년 세상을 떠나셨는데 난 더 이상 많은 유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의 엽서를 전달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감격했다. 이에 컴즈는 “어떻게 엽서가 호텔까지 오게됐는지 모르겠다. 버려졌을지도 모를 편지를 우연히 찾아서 다행이다. 나야말로 오늘 당신을 웃게 만들 수 있어 기쁘다”고 답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그린 재킷 누가 입나

    그린 재킷 누가 입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올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명인열전’ 마스터스가 5~8일(현지시간) 막을 올린다. 1997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인 87명이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자웅을 겨룬다. 우승자에게만 허락된 ‘그린 재킷’을 누가 걸칠지를 놓고 팬들이 들썩이고 있다.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타이거 우즈(43)의 5번째 그린 재킷 도전이다. 우즈는 2005년 이후 13년 만에 다시 정상을 노린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최근 두 개 대회 연속 불참했다가 3년 만에 오거스타에 돌아온 우즈는 최고 컨디션을 자랑한다. 긴 슬럼프를 딛고 복귀해 최근 발스파챔피언십 준우승,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5위를 차지했다. 우즈는 우리 시간으로 5일 오후 11시 42분 티오프 한다. 우즈는 4일 연습라운드에서도 구름 갤러리를 몰고 다녔다. 그는 필 미컬슨(48)과 함께 9개 홀을 돌면서 이글을 2개나 낚았다. 13·15번홀에서 각각 5m와 1.2m 퍼팅을 성공했다. 만약 이번에 그린 재킷을 입으면 1986년 46세로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던 잭 니클라우스(78)를 제치고 역대 최고령 우승자로 기록되는 미컬슨도 5연속 버디로 맞불을 놓았다. 로리 매킬로이(29·북아일랜드)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여부도 관심이다. 매킬로이는 2011년 US오픈, 2012년 PGA챔피언십, 2014년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했다. 메이저대회 중 마지막으로 남은 마스터스를 평정하려고 도전을 거듭했지만 허사였다. 매킬로이가 우승하면 유럽 출신 중 첫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어렵기로 악명을 날리는 ‘아멘 코너’(11~13번홀)를 어떻게 공략할지도 관건이다. 아널드 파머(미국)가 마스터스에서 처음 우승한 1958년 12번홀에서 친 공이 벌타 없이 구제될 때 “아멘” 하고 외친 게 현지 매체에 실리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505야드로 전장이 긴 편인 11번홀(파4)은 지난해 나흘 내내 단 하나의 이글도 생산하지 못한 반면 보기 이하를 108번 쏟아냈다. 변화무쌍한 바람 때문에 난코스로 꼽히는 12번홀(파3)에서도 이글 없이 보기 이하만 72번이었다. 510야드로 파5치고 짧은 13번홀에선 그나마 이글이 여섯 차례 터졌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만델라 前부인·인권운동가 ‘흑인 마마’ 위니 만델라 별세

    만델라 前부인·인권운동가 ‘흑인 마마’ 위니 만델라 별세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 부인이자 정치적 동지인 위니 마디키젤라 만델라가 2일(현지시간)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AFP통신은 이날 위니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위니는 지병으로 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다. 그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으로, 1958년부터 38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 갔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만델라 전 대통령이 수감되면서 27년 동안 두 딸을 홀로 키우며 옥바라지를 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당원으로서 남편을 대신해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 정책)에 맞서 싸워 흑인들로부터 ‘마마’(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011년 남아공판 노벨평화상인 ‘우분투상’을 받았다. 하지만 오명도 만만치 않다. 위니는 ‘비폭력운동’을 지향하던 만델라 전 대통령과 달리 타협 없는 급진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경호대로 활동했던 만델라연합축구클럽(MFC)이 1988년 경찰 정보원이라는 의심을 받은 14세 소년을 살해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았다. 1994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자 그는 예술문화교육기술 차관에 임명됐지만 이듬해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해임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낙랑=요동설 vs 낙랑=평양설… 北·中 국가대항전으로 번지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낙랑=요동설 vs 낙랑=평양설… 北·中 국가대항전으로 번지다

    한사군의 중심군현인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 한국의 고대사학계는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2017년경에는 이른바 젊은 역사학자들이 여럿 나서서 이런 주장을 되풀이했는데, 한 보수 언론은 이들에게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나아가 이들은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질문에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우리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자는 모두 동의한다.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다 끝났다.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한국일보’, 2017년 6월 5일)”라고 말했다.●南학계는 일제 학자 주장 비판 없이 수용 이들의 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100년 전 조선총독부에서 ‘낙랑군=평양’이라고 못 박은 이후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논쟁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이라고 한·중 사료에 숱하게 나오는 고려·조선의 북방강역을 함경남도 함흥평야로 조작한 이케우치 히로시의 설을 지금껏 추종하는 것처럼 일체의 논쟁 없이 추종한다는 뜻이다. ‘낙랑군=평양’설에 대한 비판은 숱하게 있었다. ‘후한서’(後漢書)의 ‘광무제본기’ 주석에 “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在遼東)”라고 말한 것을 비롯해서 낙랑군이 고대 요동에 있었다는 중국 사료가 숱하기 때문이다.●北 고조선 노예제와 왕험·낙랑 규명 논쟁 그럼 북한 학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 학계도 남한처럼 ‘낙랑군=평양’설이 100년 전에 논증이 끝난 문제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남한과 다른 것은 북한 학계가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북한 학계의 고조선사 논쟁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고조선의 사회 성격에 대한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고조선의 강역과 중심지, 즉 왕험성의 위치와 낙랑군의 소재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고조선의 사회 성격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역사 발전 5단계설 중에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가의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인류 사회의 생산 관계를 토대로 ‘①원시 공동체 사회→②고대 노예제 사회→③중세 봉건제 사회→④근대 자본주의 사회→⑤공산주의 사회’의 다섯 단계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이중 고조선의 사회 성격이 노예제 사회인지 봉건제 사회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사회경제사학자 김광진(金洸鎭)은 ‘력사과학’ 1955년 8~9호에 발표한 ‘조선에 있어서 봉건 제도의 발생 과정’에서 조선 역사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1935년 철학박사 학위를 딴 고고학자 도유호(都宥浩)가 ‘력사과학’ 1956년 3호에 ‘조선 력사상에는 과연 노예제 사회가 없었는가’를 발표해 김광진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노예제 사회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김광진이 재반박하면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10여 차례의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 논쟁은 경성제대 출신의 김석형이 ‘력사과학’ 1961년 3호에 ‘조선 고대사 연구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리론상의 문제’를 발표함으로써 정리돼 갔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조선이 봉건제 사회인 고구려·백제·신라로 발전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이론이 북한 학자들의 지지를 얻어가면서 고조선은 노예제 사회로, 삼국은 봉건제 사회로 견해가 정리됐다. 고조선이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나중에 요동반도의 강상 무덤과 누상 무덤에서 대규모 순장(殉葬) 유골이 발굴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낙랑=평양설 北서 中사료 근거로 비판 고조선의 수도인 왕험성과 낙랑군의 위치 문제도 숱한 논쟁을 거쳤다. 도유호를 비롯한 고고학자들도 처음에는 고조선의 도읍과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으로 보았다. 그러자 문헌 사학자들이 중국 사료를 근거로 평양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와중인 1958년 북한은 리지린이란 학자를 북경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보내 고조선사를 연구하게 했다. 와세다대 출신의 리지린은 해방 후 과학원 력사연구소 고대사연구실에서 근무했고, 1959년 ‘력사과학’ 5호에 ‘광개토왕비 발견 경위에 대하여’를 발표했지만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유학생으로 선발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북경대 지도교수가 고사변(古史辨) 학파의 중심이었던 구제강(顧剛·1893~1980)이란 사실은 범상한 대목이 아니었다. 중국의 신문화운동을 이끌었던 고사변 학파는 중국인들이 그간 사실로 받아들였던 숱한 역사적 상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옛것을 의심해서 가짜를 판별한다”(疑古辨僞)라는 말로 상징되는 고사변 학파는 구제강과 첸쉬안퉁(錢玄同·1887~1939), 북경대 총장을 역임한 후스(胡適·1891~1962) 등이 중심이었다. 이중 첸쉬안퉁은 한자(漢字)를 폐지하고 로마자 식의 병음자모로 바꿔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고사변 학파는 중국 고대사의 숱한 문적들은 유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심지어 공자가 쓴 ‘춘추’(春秋)도 공자가 아닌 노(魯)나라 사관들이 집단으로 쓴 것이라고 보았다. 구제강은 ‘첸쉬안퉁 선생과 고대 사서(史書)를 논하다’(與錢玄同先生論古史書)라는 논문 등에서 중국 고대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 속 고대사의 기간이 더욱 길어진다”는 것이다. 주(周)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된 전설상의 인물은 우(禹)였는데, 공자 때에는 요순(堯舜)으로 끌어올려졌고, 전국(戰國)시대에는 다시 황제(黃帝)·신농(神農)씨로 끌어올려지고, 진(秦)나라 때 삼황(三皇)이 나오고, 한(漢)나라 이후 반고(盤古)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상 중심인물에 대한 내용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공자 때의 순(舜)임금은 ‘다스리지 않고도 다스려지는(無爲而治)의 성군(聖君)’이었지만 맹자(孟子) 때에는 효자의 모범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1926년 ‘고사변’ 제1권을 출간한 이래 1941년의 7권까지 350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사마천 이래 이른바 ‘중국을 위해 치욕의 역사는 감춘다’는 ‘위한휘치’(爲漢諱恥)의 춘추필법으로 중국의 사가들이 왜곡했던 이(夷)의 역사, 즉 한국 고대사를 새롭게 밝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유학사관 비판 구제강, 중화사관 못 벗어 그러나 고사변 학파의 중심인물인 구제강 자신은 끝내 ‘위한휘치’의 춘추필법을 벗어나지 못한 중화주의 역사가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차지하고, 만주와 몽골을 중국 본토에서 분리시키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을 제창하고, ‘중국본토론’을 내세우자 구제강은 1936년 ‘변강연구회’(邊疆硏究會)를 창립해 이에 맞섰다. 일제의 ‘중국본토론’은 만주·몽골과 조선 등은 중국의 영토가 아니니 중국은 본토에 대해서만 통치권을 가진다는 이론이었다. 곧 일제가 만주·몽골을 차지하겠다는 것인데 구제강은 이에 맞서 만주·몽골 등은 중국사의 강역이란 논리로 맞섰다. 구제강은 1939년 2월 자신이 주간을 맡고 있는 ‘변강주간’(邊疆周刊)에 ‘중화민족은 하나’라는 글을 게재해 여러 민족의 혼합으로 중화민족이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 공산당에서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이 하나의 ‘중화민족’이란 논리로 소수민족의 강역을 중국 영토라고 우기는 국가 이념의 토대가 됐다. 그는 또 운남(雲南)에서 발행하던 ‘익세보’(益世報)에 “‘중국본부’라는 한 이름은 빨리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평론에서 중국인들이 중화와 이민족을 나누는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을 비판했다. ‘중국본부’라는 용어를 쓰면 일제가 만주와 몽골을 낚아채 갈 것이라는 경고였다. 고사변 학파를 주도할 때는 유학사관이 왜곡한 고대사를 의심하자던 구제강은 막상 한중 고대사에 이르자 중화 사관으로 돌아섰다. 좋게 말하면 애국적 중화 사가(史家)가 된 것이었다. 그는 위만조선의 도읍이 대동강 남쪽에 있었고, 따라서 낙랑군도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평양’설을 주장했다. 따라서 북한에서 온 유학생 리지린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리지린은 중국 고대사서에 ‘낙랑=요동’설이 숱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구제강의 학문 지도를 받기 위해서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단지 학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지도교수인 구제강과 제자 리지린 사이에 일종의 국가대항전이 전개되는 셈이었다. <계속> 北·中 공동 고고유물 발굴 1964년 강상·누상무덤서 ‘요동도 고조선 강역’ 고증 북한은 중국과 1963년 조·중 고고발굴대를 조직해서 만주 지역의 고고유물 발굴에 나섰다. 1964년 요동(遼東)반도 끝자락 여대시(旅大市·여순과 대련)의 감정자구(甘井子區) 후목성역(後牧城驛)에서 강상(崗上) 무덤과 누상(樓上) 무덤이 발굴되면서 고조선의 강역이 평남에 국한되었다는 조선총독부의 주장과 달리 만주까지 걸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기전 8~7세기쯤의 무덤인 강상 무덤에서는 140명의 순장(殉葬) 무덤이 발견됐고, 누상 무덤에서도 주인을 따라서 죽인 50여명의 순장 무덤이 발견됐다. 고조선이 노예를 순장했던 노예제 사회였다는 사실이 유적·유물로 드러난 것이었다.
  • 공무수행 중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도 순직 인정

    공무수행 중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도 순직 인정

    정부 ‘위험직무 순직’ 요건 확대 순찰 활동·벌집 제거 등도 포함 공무상 재해 보상 민간수준 상향 9월 시행… 유족급여 내주 적용 앞으로는 소방관이 벌에 쏘여 숨지더라도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동안 제한적으로 열거돼 있던 위험직무순직 요건을 재정비하고, 환경 변화에 따른 다양한 유형의 위험직무를 반영해 요건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공무상 재해 보상을 민간 수준으로 대폭 올리고, 무기계약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도 공무 수행 중 사망하면 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인사혁신처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공무원 재해보상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13일 밝혔다. 공무원 재해보상제도는 공무원연금법에 규정돼 있었지만, 58년 만에 공무원연금법에서 떼어내 새로 만들었다. 공무상 재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 법의 시행은 공포 후 6개월 이후다. 다음주쯤 공포되는 것을 고려하면 9월 말쯤 시행된다. 단 순직(위험순직 포함) 유족에게 지급하는 급여 인상과 위험순직 인정대상 확대는 법 공포 후 즉시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동안 경찰은 ▲범인·피의자 체포 ▲경비·주요 인사 경호, 대간첩과 대테러 작전, 교통단속과 교통 위해 방지 업무를 하다 사망했을 때만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긴급신고 처리를 위한 현장활동 ▲범죄예방 등을 위한 순찰활동 ▲해양오염확산 방지 작업을 하다가 사망해도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다. 소방공무원은 화재진압 등의 지원활동을 하다가 사망한 경우와 벌집·고드름 등 위험제거를 위한 생활안전활동이 추가됐다. 어업감독 공무원이 불법어업 지도·단속을 하다가 숨졌을 때와 출입국관리직 등 사법경찰이 범죄 수사·단속·체포 등 과정에서 숨졌을 때도 위험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다. 재해보상 수준도 현실화했다. 지급률을 높이고, 20년을 기준으로 한 차등지급 원칙을 없앴다. 공무 수행 중 사망했다면, 순직유족급여는 현재 민간의 산재보상 대비 53∼75%에 그쳤다. 그러나 순직유족급여는 개인 기준소득월액의 26%(20년 미만 근무) 또는 32.5%(20년 이상)에서 38%로 개선했다. 위험순직 유족급여는 개인 기준소득월액의 35.75%(20년 미만) 또는 42.25%(20년 이상)에서 43%로 높였다. 공무 수행 중 사망했다면, 무기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라 하더라도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 심사를 거쳐 공무원과 동일하게 순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사망 시 경제적 보상은 현행 산재보상 등을 그대로 유지한다. 순직으로 인정되면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보훈보상대상자 등록 신청이 가능하다. 아울러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시간선택제 공무원도 연금법 적용을 받게 된다. 이들은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상시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국민연금을 받아 왔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2016년 말 기준 국가직 1271명, 지방직 8575명 등 총 9846명이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재즈 거장’ 류복성도 성추문…“피해자에 사과”

    ‘재즈 거장’ 류복성도 성추문…“피해자에 사과”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음악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 1세대 재즈뮤지션 류복성(77)이 성추문에 휩싸이자 사과했다.재즈 드럼과 라틴 퍼커션의 거장인 류복성(77)은 지난달 25일 한 여성 재즈 보컬 A씨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수 남성 뮤지션들의 성추행을 고발하며 “용서를 구하시려거든 공개 사과를 하시라”고 하자 지난 1일 게시글에 댓글로 사과문을 공개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최근에 불거진 재즈계 미투 운동에 제 이름이 올라있는 걸 발견했다”며 “이번 기회에 내 음악 인생 60년을 되돌아보며 뼈저린 성찰을 하게 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의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상처 입으신 후배 뮤지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류복성은 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해당 글을 읽고 사과문을 올렸다”며 “재즈 클럽 공연은 고정이 아니라 한 클럽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공연해 스케줄이 맞는 가수들과 한다.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반갑다고 악수하고 허그하고 그런 것이 생활화됐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류복성이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되자 KBS는 3일 오후 방송될 KBS 창립 45주년 특집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류복성의 출연 분량을 편집하기로 했다. 1958년 미8군쇼에 입단하며 데뷔한 류복성은 재즈 드럼과 라틴 퍼커션의 거장으로 불린다. 1971년 MBC 드라마 ‘수사반장’의 메인 테마곡에서 봉고 연주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 평창올림픽 종합 7위 확정…17개 메달 ‘역대 최다’

    한국, 평창올림픽 종합 7위 확정…17개 메달 ‘역대 최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 신기록을 세웠다.한국은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를 획득해 국가별 최종 메달레이스에서 종합 순위 7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태극전사들이 평창에서 획득한 17개의 메달은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따낸 14개 메달을 뛰어넘는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한국은 11위 일본(금 4·은 5·동 4), 16위 중국(금 1·은 6·동 2)을 따돌리고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자리했다. 전통의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이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합작했다. 남자 스켈레톤 윤성빈(24·강원도청)이 아시아 선수 썰매 최초의 메달을 금메달로 장식하며 힘을 보탰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금메달 1개, 은메달 4개와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배추보이’ 이상호(23)는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값진 은메달을 획득해 한국 스키에 동계올림픽 출전 58년 만에 감격스러운 첫 메달을 안겼다. ‘팀 킴’(Team Kim)의 돌풍을 일으킨 여자 컬링은 대회 마지막 날인 25일 두 번째 올림픽 출전 만에 역사적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원윤종(33)-전정린(29·이상 강원도청)-서영우(27·경기BS경기연맹)-김동현(31·강원도청)의 봅슬레이 남자 4인승 대표팀도 독일과 공동 은메달을 획득하고 대미를 장식했다. 대한민국은 스키(스노보드), 스켈레톤, 봅슬레이, 컬링 4개 종목에서도 메달을 일궈 사상 최초로 6개 종목 메달 수집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평창올림픽에서도 쇼트트랙은 남녀 8개 종목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하며 메달박스로서 제 몫을 해냈다. ‘슈퍼 골든데이’였던 22일 쇼트트랙 남자 500m와 5,000m 계주, 여자 1,000m에서 ‘노골드’에 그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24일 빙속 매스스타트와 스키 스노보드에서 기대했던 메달이 나와 한국 선수단은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확실한 우승 후보였던 이승훈(30·대한항공)이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김보름(25·강원도청)은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각각 따냈다. 이상호는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깜짝 은메달을 보태 우리나라의 순위 도약에 힘을 보탰다. 대회 마지막 날 메달 주자로 나선 봅슬레이 남자 4인승과 여자 컬링은 감격스러운 은메달 2개를 보태며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상호는 누구...배추 밭에서 스노보드를 접하다

    이상호는 누구...배추 밭에서 스노보드를 접하다

    ‘배추 보이’ 이상호(22·한국체대)가 한국 스키 사상 최초로 올림픽 포디엄 두 번째에 섰다. 한국 스키가 1960년 미국 스쿼밸리 동계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래 58년 만에 거둔 값진 은메달이다. 이상호는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예선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25초06 기록으로 출전 선수 32명 중 3위로 여유 있게 16강에 진출했다. 토너먼트로 진행된 16강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16강에서 드미트리 사르셈바에프(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를 0.54초 차로 제쳤고, 8강에서는 베냐민 카를(오스트리아)을 0.94초 차로 따돌렸다. 4강은 극적이었다. 이상호는 잔 코시르(슬로베니아)와의 경기에서 레이스 중반까지 0.16초 차로 뒤져 3~4위전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러나 막판 스퍼트에 성공해 100분의1초 차로 코시를 앞지르며 기적 같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강원 정선군 사북읍 출신인 이상호에게 이번 올림픽은 ‘고향’에서 열리는 뜻 깊은 대회였다. 또한 평행대회전 종목이 열린 휘닉스 파크는 그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이상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집 근처 고랭지 배추밭을 개량한 눈썰매장에서 스노보드를 처음 접했다. 그래서 ‘배추 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팀원 대다수가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마늘 소녀단’으로 불리는 여자 컬링팀과 한쌍을 이루는 별명이다. 이상호의 메달 획득은 한국 스키?스노보드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다. 그동안 설상 종목 선수들은 ‘메달 밭’ 빙상에 가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 없지 않았다. 이상호 또한 무관심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지난해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2관왕에 올랐고,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선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는 윤성빈(스켈레톤)의 한국 설상 종목 최초의 메달 획득과 더불어 설상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평창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롯데 신동빈 “아뿔싸, 상호가 올림픽 은메달을~”

    롯데 신동빈 “아뿔싸, 상호가 올림픽 은메달을~”

    지난 13일 서울구치소행, 옥중에서 메달 소식 한국 스키의 58년 올림픽 출전 사상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된 ‘배추 보이’ 이상호(23)가 인형 세리머니를 펼친 시상식에서는 무라사토 아키(일본) 국제스키연맹(FIS) 부회장이 나섰다.그러나 올림픽 시상 관례상 해당 국가의 스키협회 회장이 직접 시상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왜 무라사토 부회장이 대신 했을까. 현재 대한스키협회의 회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스키 애호가인 신 회장은 지난 2014년 대한스키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 회장의 지원으로 스키협회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에게 필요한 전문 인력을 붙이는 ‘전담팀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상호 역시 그 덕에 24일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은 성화봉송 주자로도 나서는 등 줄곧 평창동계올림픽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해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평창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 13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평창올림픽 스키종목에서 한국 선수의 메달 획득을 손꼽아 기다리던 신 회장은 옥중에서 이 소식을 접하게 됐다. 대한스키협회 관계자는 “오늘이 마침 가족면회 날이라 사위가 찾아가서 (이상호의 은메달 소식을) 전해주기로 했다”면서 “신 회장의 이상호에게 직접 메달을 줄 수 있었지만 아쉽게 됐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8년만의 올림픽 첫 메달, ‘이상호 슬로프’로 남는다

    58년만의 올림픽 첫 메달, ‘이상호 슬로프’로 남는다

    올림픽 슬로프 보존 차원 .. 기념관도 검토이상호(23)의 올림픽 첫 스키 메달이 ‘이상호 슬로프’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남는다. 이상호는 24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땄다. 경기가 열린 슬로프는 휘닉스 평창에서 운영하던 ‘듀크(상단부)’와 ‘도브 매니아(하단부)’를 하나로 결합해 올림픽 규격에 맞게 고친 것이다. 휘닉스 평창 관계자는 “올림픽 슬로프를 보존하면서 이상호 슬로프로 명명하려고 한다. 이상호 선수 본인과 스키협회가 찬성한다면, 우리 쪽에서는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밝혔다. 민병관 휘닉스 평창 대표이사는 지난해 대한스키협회와 만난 자리에서 ‘만약 금메달을 따면 슬로프에 이상호 이름을 달아주겠다’고 약속했다. 휘닉스 평창 측은 이상호가 비록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한국 올림픽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워 명칭 변경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상호가 사용한 스노보드와 경기 장면 등을 활용해 기념관을 운영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일반인도 ‘이상호 슬로프’에서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휘닉스 평창 관계자는 “올림픽 코스는 일반인이 그대로 타기에는 위험하다.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난 뒤 올해 11월 새 시즌에는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추보이 해냈다” 이상호, 한국 스키 사상 최초 은메달

    “배추보이 해냈다” 이상호, 한국 스키 사상 최초 은메달

    ‘배추보이’ 이상호(23)가 한국 스키 사상 올림픽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이상호는 24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네빈 갈마리니(스위스)에게 0.43초 차로 져 준우승했다. 한국 스키는 1960년 스쿼밸리 대회부터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시작 58년 만에 처음으로 올림픽 시상대에 서게 됐다. 강원도 사북 출신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고랭지 배추밭을 개량한 썰매장에서 처음 스노보드를 탔던 이상호는 지난해 3월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은메달로 한국 스키 첫 월드컵 메달리스트가 된 선수다. 올림픽에서도 한국 스키에 첫 메달을 안긴 이상호는 대한스키협회가 주는 올림픽 은메달 포상금 2억원도 받게 됐다. 이상호는 이날 예선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 25초 06을 기록, 출전 선수 32명 가운데 3위로 여유 있게 16강에 진출했다. 토너먼트 제도로 진행된 16강부터도 이상호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이상호는 16강에서 드미트리 사르셈바에프(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를 0.54초 차로 제쳤고 8강에서는 베냐민 카를(오스트리아)을 역시 0.94초 차로 따돌렸다.준결승 상대는 예선을 2위로 통과한 얀 코시르(슬로베니아)였다. 평행대회전 경기는 예선 성적이 좋은 선수가 블루와 레드 코스 가운데 어느 쪽에서 달릴지 정할 수 있다. 이날 경기에서는 유독 레드 코스의 승률이 높았고, 선택권이 있는 코시르는 당연히 레드 코스를 택했다. 이상호는 코시르와 경기에서 레이스 중반까지 0.16초 차로 뒤져 3-4위전으로 밀려나는 듯했지만 막판 스퍼트에 성공, 불과 0.01초 차로 코시를 앞지르며 기적 같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예선 1위였던 갈마리니였다. 갈마리니 역시 레드 코스를 택했고, 블루 코스에서 뛴 이상호는 초반 랩타임에서 0.45초 차이로 뒤졌다. 중반까지 격차를 0.23초 차로 좁히며 다시 한 번 역전 드라마를 꿈꿨던 이상호는 하지만 결국 0.43초 차로 갈마리니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로 만족하게 됐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스노보드를 타고 알파인 대회전 코스를 더 빨리 통과하는 선수가 이기는 경기다. 예선 1, 2차 시기를 거쳐 상위 16명이 16강부터 토너먼트로 순위를 정한다. 16강부터는 기록을 측정하지 않고 선수의 일대일 맞대결에서 더 빨리 결승선에 도달한 쪽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으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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