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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구동맹 본부 브뤼셀로 이전

    【브뤼셀 연합】 서유럽동맹(WEU)이 18일 본부를 브뤼셀로 이전,현판식을 가졌다. 지금까지 런던에 본부를 두었던 WEU는 장래 유럽공동체(EC)의 독자적인 방위기구로 격상될 것에 대비,EC및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긴밀한 관계를 위해 브뤼셀 이전을 결정했었다. 지난 54년 창설된 WEU는 EC 12개국중 덴마크와 아일랜드(옵서버)를 제외한 10개국이 정식 회원국이며 터키·노르웨이·아이슬란드는 준회원국이다.
  • 중국 인민건설은행 서울사무소를 인가

    은행감독원은 18일 중국인민건설은행의 서울사무소 설치를 인가했다. 이에따라 중국인민건설은행은 3월중 서울 중구 안국화재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국내에 진출한 중국계 은행은 지난해의 중국은행에 이어 두번째이다. 중국인민건설은행은 지난 54년 설립된 개발금융전문 국영은행으로 지난 91년말 현재 국내지점 4천1백61개,국외사무소 1개,23만명의 직원을 두고 총자산이 1천2백38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내 4위,세계 46위의 은행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외환은행과 산업은행이 북경에 사무소를 낸데이어 수출입은행과 상업은행이 북경과 상해에 각각 사무소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 외교관·외신기자상대 통역 담당 통일원 공보관실 김호근씨(인터뷰)

    ◎통일정책 꿰뚫는 통역 베테랑/우리정부 공식입장 정확하게 전달/“어휘 하나 잘못선택에 큰 오해불러” 「쌍둥이할아버지 보좌관」.통일원 직원들이 그를 일컫는 말이다. 통일원 공보관실의 김호근보좌관(61).그가 맡은 일은 주한외교관및 외신기자를 상대로 한 통역이다.공보관을 보좌해 남북대화·통일문제를 포함,통일원 업무와 관련한 외국인들의 질의에 대해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을 딱부러지게 밝히는게 그의 고유 업무다. 『통일원업무와 관련한 영어통역은 단순히 회화를 잘한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우선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 북한 통일방안이 갖고 있는 허점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그래야만 외국인들에게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을 올바르게 이해시킬 수 있고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 선택된 어휘 하나가 자칫 엄청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음을 가리키는 지적 때문에 통일원 고위층은 외교관이나 외신기자들과의 인터뷰시 외부에서 동행한 통역요원을 마다하고 한사코 김보좌관만을 찾는다. 그가 통일원에 들어온 것은 지난 81년 6월.지천명의 나이에 보좌관(별정직 5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후 12년동안 오직 한자리만 지켜온 김보좌관은 외국인들이 정부 통일정책의 당위성에 대한 자신의 설명을 듣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리 남성고졸업(1회)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영어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50년 마산피란시절 미군부대에 근무하면서부터.김보좌관은 이 인연으로 54년 육군소위로 임관,68년 주한미군사고문단 동부파견대 수석고문보좌관(대위)에 오르기까지 15년간 통역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지난 10여년동안 승진이나 요직을 탐내본 적이 없습니다.「보좌관」으로 시작,오는 12월31일 「보좌관」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그러나 한번도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거창하거나 생색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통일원안에서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왔다는데 뿌듯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국민학교 교사인 부인 오일금씨(58)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둔 김보좌관은 지난 91년 서울대의대·대학원을 졸업,의학박사 학위를 받은뒤 동아대의대부교수(현 미국립보건원 교환교수)로 있던 외아들 인후씨(35)내외가 쌍둥이 손자를 낳아주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이처럼 김보좌관이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해서 통일원에서 그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으로 통하기도 한다. 『사안 자체가 갖는 복잡다기한 성격 때문에 사실 외국인들이 남북문제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따라서 외국인들은 국내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밖에 없는데 과장·추측·왜곡보도가 잦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같은 행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통일원에 보다 많은 「영어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김보좌관은 자신의 뒤를 이을 공식통역이 아직 확보되지 않고 있어 『걱정이 태산같다』고.
  • 대전EXPO 연계 백제문화제 개최 준비책임자 이관용씨(인터뷰)

    『공주는 문주왕으로부터 성왕에 이르기까지 백제 전성기에 64년간 도읍지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인만큼 이번 기회를 내외국인들에게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인식시키고 백제역사의 줄거리를 이해시키는 계기로 삼을 계획입니다』올가을의 대전엑스포와 연계돼 9월중순 개최될 제39회 공주백제문화제의 준비 책임을 맡은 이관용공주문화원장(68)의 새해 각오는 남달랐다. 그가 가장 중점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행사는 백제문화가장행렬.5천여명의 시민 학생이 참가하여 시가지를 무대로 펼치게 될 이 행사는 「문주왕 천도」「무령왕 치적」등 독자적인 주제를 갖는 11개 대열로 구성된다.그는 『최종계획은 3월말에 확정됩니다만 특히 이번에는 역사적 고증에 철저를 기해 의상과 장비 하나하나에까지 역사성과 전통성을 바탕으로한 백제문화의 참모습을 알리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원장은 19 54년 전쟁직후 「피폐한 농촌의 재건은 문화의 재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신념에서 당시 미공보원의 협조를 받아 공주문화원을 설립한 이래 40년 가까이공주문화의 첨병역할을 해왔다.『교육적 배경을 바탕으로한 이곳 주민들의 높은 역사의식 때문에 문화운동이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는 그는 건평 4백70평의 3층건물에 생활관 도서관 전시관 영화관 등을 고루 갖춘 현재 문화원건물이 지난 66년 순수한 지역주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됐다는 사실을 그 실례로 들었다. 이원장은 또 『문화원의 역할도 과거 국민홍보 위주에서 탈피,취미클럽 등 평생교육 차원에서 주민들의 각종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면서 『이번 공주백제문화제의 준비및 마무리 전과정을 통해서 17만 공주주민들이 긍지를 갖고 역사적 전통을 생활화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첼리스트 전봉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1)

    ◎절교의 기량… 무대연륜 50년의 “악장”/「첼로의 선봉」답게 작품특성 능란하게 표현/음악에 대한 사명감으로 모든 활동 적극적/국내초연작품 즐겨 연주… 청중에 싱싱한 감동 전달 바다밑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깊고깊은 암청색 선율,원로연주가 전봉초씨의 첼로언어는 날이 갈수록 그 깊은 맛을 더해 그가 켜는 베토벤은 명철의 사색처럼 심오하고 그윽하다. 작품이 지닌 특성과 표정을 능란하게 구사하며 단순한 곡 해석만이 아닌 「낙장」의 대우로 존경받는 위치다. 무대에 선지 50년.일본 동경제국음악학교 시절 요미우리(독매신문)가 주최한 전일본 신인 선발연주회에 학교대표로 참가한 것을 첫무대로 그는 지금까지 독주회 20회,서울실내악회·실험악회·서울트리오와 그가 창단해서 이끌던 바크 합주단등 실내악연주 1백회이상,시향·KBS교향악단 협연 해외연주 등등 생생한 음악의 발자취가 산적해 있다. 돌아보면 스포트라이트에 점철된 세월,수천관중과 뜨거운 박수갈채와 꽃다발 속에서 슬픔이나 좌초없이 그는 순조로운 항로를 거쳤고 그래서 그의 인생과 예술은 탄탄한 금자탑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순조로운 예술항로 그는 음악의 연륜만큼이나 무대를 알고 청중을 안다. 악기를 얼싸안고 무대에 서는 순간 객석의 분위기로 심상을 꿰뚫어 청중의 정곡을 이미 움직인다. 그가 연주에 임하는 자세는 마치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문학청년과도 같은 미세한 열기가 느껴진다.그러나 그 정열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아닌 안으로 감춘 진주빛 화염,진지하고 결곡하게 테마의 핵심에 파고든다. 얼핏 보기엔 첼로라는 악기가 갖는 철학성을 내보인 듯 하지만 그의 언어는 얼마든지 풍성하여 불꽃같은 테크닉이 숨막히게 전개된다.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애틋한 애정이 전편에 넘쳐 그의 연주는 언제나 젊고 싱싱한 감동을 던져준다. 그는 또 첼로의 선봉답게 한국초연의 레퍼토리를 즐겨 선택한다. 61년 당시로선 획기적인 「현대음악의 밤」을 열어 힌데미트·드뷔시·베버 첼로소나타를 초연했고 65년엔 베토벤만을,그 다음엔 랄로와 생상스,10년전 독주회에서도 데르블로아「조곡2번」,바하 「아리오소」,포레 「비가」등 짧으나 까다로운 곡으로 「첼로만이 갖는 절교의 표현력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노래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바이올린 박민종,피아노 정진우,첼로 전봉초등 서울대교수들로 이루어진 서울트리오는 5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초연곡을 정기연주하면서 한때는 하이페츠와 루빈스타인,피아티고르스키의 「백만불트리오」에 비유되는 황금기를 누렸고 조로가 심한 편인 음악계에 노익장 과시로 후배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는 어떤 시점에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음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자신의 위치에 합당한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고 할 수 있다 . 87년 일본 교토회관 독주회이후 만5년만인 오는 4월29일(호암아트홀)음악생활 50주년을 기념하는 제21회 독주회를 앞둔 노대가의 심경은 요즘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43년 일본데뷔 이후 올해가 꼭 50년이 된다고 해서 후배·제자들이 마련해준 자리다. 그로서는 인생을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어쩌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그래서는 아니지만 이번 연주는 여러가지 점에서 뜻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다.그는 연주때마다 앓던 심한 열병이 이번에는 전처럼 행복한 것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연주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갈고 닦은 음악인들의 종교의식」이며 그의 연주는 신에 대한 고백성사,청중은 그의 고백을 듣는 사제의 입장이고 그는 『솔직하고 진실하게 고통과 고뇌와 슬픔과 갈등을 샅샅이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이번 고백성사는 어느때보다 숙연하리라는 예감이다. ○중3때 첼로 첫 연주 전봉초씨는 평남 안주에서 커다란 잡화상을 하던 전리순씨와 이해원여사의 아들 4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집안은 풍족한 환경으로 그는 맹산 북창국민교시절 형(전화황씨)의 친구이던 김동진씨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숭실중 2학년때 평양방송국 개국기념 프로에나가 마스네의 「타이즈의 명상곡」을 연주했고 3학년되던해 첼리스트 김태연씨의 첼로연주회에 갔다가 「첼로의 남성적인 깊은 소리」와 「혼의 선을 켜는 듯한 음색」에 빠져 첼로로 바꿨다.그당시 상황에선 음악을 마음껏 공부하기란 쉽지않았으나 일본화단의 거봉인 큰형 전화황씨의 도움과 격려로 그는 일본에 유학할 수 있었다. 유학시절은 찬란하고 화려했다.같은 유학생인 박민종 정희석 윤기선씨등과 한국인만의 4중주단을 조직,영친왕 저택에 드나들며 연주를 한적도 있고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NHK교향악단 전신인 일본교향악단 도쿄송죽관현악단 수석주자로 활약,스승인 오무라(대촌묘칠)교수의 도움으로 강제 학병징집을 피해 만주 신경교향악단으로 건너갔다가 해방후 월남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음악과 관련되지 않는 생활은 찾아볼 수 없다.지금도 1년 3백65일중 그는 2백일쯤은 음악회에 들른다.크고작은 음악회 모두는 그의 동료·후배·제자들의 행사이기 때문에 그는 이를 빼놓지 않는다. 또 친구들을 좋아해서 여러모임을 가지고 있고 어떤자리에서나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예술원 회원중 술마시는 사람끼리의 수요회,또 첼리스트중 60세이상인 첼로동문회 OMC(Old Musician Club)등은 한달에 한번씩모이는 친목 모임들이다. 그는 검은 베레모에 벨트를 맨 더블보턴의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영국신사」지만 그래서 사교적이고 활동적이고 실천적이나 불의를 참지못하는 까다로운 성격탓에 「면도날」이란 별명을 듣고 있다. ○사교적·활동적 성품 79년 서울대음대학장시절 문교부가 예체능계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예능계 대학교수들이 개인레슨을 함으로써 부조리를 빚고 있는 점」을 지적,「개인레슨 엄단」을 발표하자 같은해 「음락세계」4월호에 「음악의 조기교육에는 실력있고 경험이 풍부한 대학교수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예능계 대입공동관리제 실시에 앞서 문교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있는가」를 조목조목 물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연주가이자 대학교수·음협이사장·예총회장을 두루 거쳤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첼로로 활약하는 1백여명의 직계제자,훌륭하게 키운 그의 3남2녀중 장남(성일씨)콘트라베이스 차남(성환씨)바리톤·효성여대교수,장녀(미영씨)피아니스트·교원대교수 차녀(소영씨)첼리스트,그리고 3남(시문씨)만이 공대졸업후 금성연구소에 근무하는등 안팎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인생을 승리한 것도 성취한 것도 아니며 때로 심한 비바람에 시달렸어도 음악의 열정 때문에 그것이 비바람인줄 짐작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기전 82년 낙단4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적도 있다. 『나이를 먹으니까 공수래 공수거,세상사 여부운,이른바 「모든 고통을 낫게하는 감미로운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오로지 첼로에 전념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고싶다』고. 그리고 두주일전인 지난 12월,그는 사랑하는 장남을 그의 눈앞에서 여의었다.시카고에서 콘트라베이스로 활약하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한동안 망연자실,슬픔을 감추려할수록 그의 눈가에 통한이 서려 보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인생이란 왔다가 가는 것.그가 나보다 먼저 갔을 뿐」 담담히 체념하면서도 떨리는 가슴을 주체치 못하여 그의 억양에는 처연한 오열이 실려있다.한 아들의 아버지이기 전에 예술가의 의연함과 긍지로 이를 이겨내려 애쓰지만 그의 그런 허탈감은 부모로서의 아픔일수밖에 없다. 우리 음악사에서 첼로선봉으로 커다란 획을 긋는 노대가의 이번 연주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연주일수도 있다.이번 연주에서 그는 평생동안 사랑해마지 않던 베토벤의 다섯개의 첼로 소나타와 바흐 무반주의 첼로조곡,바르토크의 루마니아 포크댄스를 암보로 들려준다. 아들의 영혼을 가슴에 묻은 첼로의 선율은 좀더 짙은 암청색을 띤채 비감을 정제시킨 관조의 경지를 보일수도 있다.그리고 첼로와 피아노가 주고받는 대화는 부자간의 사연인양 그날의 객석에 장탄식으로 여울질지도 모른다. □연보 ▲1919년3월18일 평남 안주에서 출생 ▲39년 평양 숭실중 졸업후 도일 ▲43년 일본 동경제국음락학교 졸업(Violin이인호,김동진,Cello김태연·대촌묘칠사사)재학중 일본교향락단 동경 송죽관현락단단원 ▲43∼45년 만주 신경교향락단단원(각부 수석진자로 구성된 현악4중주단 활동) ▲45년 지방순회연주중 북안에서 해방맞아 다음해 월남 ▲46년 고려교향락단 단원▲47년 서울교향락단 수석주자(서울실내악협회 창단 멤버) ▲48년 배재강단에서 제1회 첼로독주회이후 20회 ▲50∼53년 부산 피란지에서 실험락회 연주 20회 ▲52년 현제명씨 권유로 서울대 예술대 음락부 전임강사 ▲53년 서울트리오(첼로 전봉초 피아노 정진우 바이올린 박민종)창단 ▲54년 서울대 음대 학생담당 학장보 ▲58년 대한민국 문화사절단 일원으로 동남아 6개국 순회연주 ▲60년 제8차 IMC(국제음악회의)총회 한국대표로 파리UNESCO회의참석(동양에 있어서의 서양음악 주제발표) ▲65년 서울 바로크합주단창단(제21회정기연주후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에게 바통넘김) ▲67년 음악연주 25주년기념 KBS교향악단과 첼로협주곡 협연 ▲72년 서울대 4중주단 창단 ▲76∼79년 서울대 음대학장(재임시 동양음악연구소 창설) ▲79년 전봉초 교수 화갑기념 첼로오케스트라 연주회(국립극장대극장)지휘 ▲82년 낙단생활 40주년기념 전봉초첼로독주회 ▲84∼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 집행위원 ▲85∼88년 제13∼14대 한국음락협회 이사장 ▲85년 제21차IMC총회 한국대표(동독 드레스덴 기조연설) ▲87년 일본 교토 일한친선협회초청 첼로독주회(교토회관),제22차 IMC총회 한국대표(브라질) ▲88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예총)회장 ▲91년 사단법인 아세아청소년 교향악단 한국지부장 ▲현재:사단법인 코리안심포니 이사장,사단법인 국제음락애호가협회 한국본부이사장,재단법인 안익태기념사업회 재단이사장,전쟁기념 사업회이사장,예술원 회원,이복련여사와 3남2녀. 5월 문예상 본상,대한민국예술원상,금관문화훈장,국민훈장동백장 음락의 주변,농현50년 낙수
  • 조총련/흔들리는 김 부자의 해외전위조직(오늘의 북한)

    ◎“영도체계 확립” 새해메시지 계기로 본 위상과 정체/노동당종속,대북지원이 주사업/21만명 가입… 지부만 3백여곳/1일 「충성의 새해모임」 갖고 김일성 신년사 관철 다짐 북한 김일성은 지난 1일 조총련(재일 조선인총연합회)의장 한덕수 앞으로 축전을 보내 조총련의 조직강화와 사상·영도체계 확립을 강조했다고 북한방송이 전했다.김일성은 이 축전에서 올해가 휴전협정체결 40주(7·27)및 정권수립 45주(9·9)가 되는 해임을 상기시키면서 조총련을 조직적,사상적으로 강화하고 모든 애국사업 즉 대북지원사업을 한 단계 끌어올림으로써 「사회주의 조국의 믿음직한 옹호자」로 육성할 것을 역설했다.이와관련 조총련은 지난 1일 도쿄에서 「충성의 새해모임」을 갖고 김일성의 신년사와 축전 내용을 철저히 관철,올해를 「재일 조선인 운동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는 빛나는 승리의 한 해」로 만들 것을 굳게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의 돈줄이자 해외 종속조직인 조총련에는 재일동포 21만5천여명이 가입돼 있다.조총련의 실권은 중앙의장단이 장악하고 있으며 전체 조직을 총괄하는 중앙조직과 일본행정구역에 준한 지방본부 및 지부·분회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중앙조직으로는 최고정책결정기구인 「중앙대회」와 최고의결기관인 「중앙위원회」그리고 의결집행기관인 「중앙상임위원회」등이 있다.중앙대회는 각 지방본부에서 선발된 대의원 2천명이 참가하는데 ▲기본활동 방침의 수립 ▲중앙위원회와 감사위원회의 사업보고에 대한 심의 결정 ▲예산 결산심의 ▲강령·규약의 심의 채택 ▲의장단·중앙위원·감사위원 선출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중앙위원회는 의장단을 비롯,감사위원·중앙상임위원 등 모든 중앙위원들이 6개월마다 한차례씩 모여 중앙대회에서 결정한 기본정책과 활동방침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한다.지난해 5월 열린 중앙위 16기 1차회의에서는 조총련 상임위원회에 「조국방문국」을 신설키로 결정,주목을 끈바 있다. 중앙상임위원회는 산하에 총무·정치·조직·재정등 13개국을 두고 있다. 조총련의 지방조직은 각 지방 현본부대표로 구성되는 「지방협의회」를 의결기관으로 하여 일본행정구역에 따라 각 도·시·부·현 및 주요 지역에 지방본부를 설치하고 있으며 그 하부조직으로 주요 도시 또는 동포밀집거주지역에 설치된 지부(약 3백여개),그리고 지역·학교·직장·단체단위로 조직된 분회(약 2천여개)를 두고 있다. 또한 산하 단체로는 「재일조선인청년동맹」을 비롯,18개 단체가 있으며 기관지 조선신보사 등 23개의 사업체와 6개의 교육관련기관이 있다.특히 조선신보사는 지난 48년3월 북한의 정책과 조총련의 활동선전을 목적으로 설립,61년9월9일 일간지화한 조선신보(조직원용·국어판 일간지·6만부)와 조선시보(조직외 선전용·일본어·주2회·4만부)그리고 인민조선(해외용·영·프랑스·스페인어판 주간지)등을 발간하고 있다. 조총련의 활동방침은 주로 중앙대회나 기별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되는데 특히 최근에는 해마다 연초에 기별 중앙위원회나 열성자회의 등 집회를 통해 해당연도의 활동과제를 하달하고 있다.그 내용은 김일성의 연설이나 김정일의 지시 또는 노동당의 결정사항을 그대로 되풀이하거나 노동당방침을 근거로 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조총련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인 지난 45년10월15일 도쿄서 재일동포대표 5천명이 모여 결성한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을 모체로 하고 있다.출범 당시 조련은 정치적 사상적 색체가 배제된 범동포적인 사회사업단체였으나 일본공산당 간부로 활동하던 김천해가 조련의 최고 고문자리를 차지하고 난 후부터 이 조직은 일본공산당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다. 이후 일본공산당과 북한노동당은 51년 1월 9일 「재일조선인통일민주전선」(민전)을 결성,6·25동란 직후 청년행동대로 결성된 「조국방위위원회」와 함께 반한활동과 비합법적인 대중투쟁에 나서게 된다.그러나 제네바회담이 끝난 뒤 54년8월 당시 북한 외상 남일이 재일동포의 지도권이 북한에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자 이를 계기로 재일동포 좌익계 단체들이 일본공산당의 지도에서 이탈,북한노동당 밑으로 들어가게 됐으며 일본공산당도 일·북수교를 부축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재일동포들의 조총련가입을 사주하는 쪽으로 당노선을바꾸고 나섰다.이같은 상황속에서 55년5월25일 도쿄에서 열린 전국민족대회서 북한을 지지하는 민족파가 민전과 조방위를 해산하고 발족시킨게 바로 오늘의 조총련이다.
  • 런던·LA형 스모그,석탄·석유가스 탓(과학상식)

    ◎서울 여름­LA형… 겨울엔 런던형 발생 본격적인 난방이 시작되며 대기오염이 극심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발표한 「인구1천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세계 대도시의 대기오염도 조사」결과 서울의 오염도가 제2위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대기오염사고는 1952년 영국 런던에서 발생했다. 12월5∼12일까지 스모그가 완강하게 지표바로위에서 버팀으로써 약4천명의 사망을 유벌시킨 대사건이다.즉 석탄 연소시 생기는 아황산가스(SO₂)와 황산화물(SO□),미립에어로솔,보진등이 런던의 유명한 안개와 혼합되어 전 연령층의 심폐성질환,만성기관지염,폐섬유증을 일으켰다.그후 영국은 세계최초로 1956년 대기청정법(Clean Air Act)을 제정한 국가가 됐다.이 런던 스모그과 비교되는 것이 LA스모그이다.LA스모그란 석유계 연료를 대량 쓰던 54년 생긴 것으로 석유계에서 배출된 탄화수소와 이산화질소등이 빛과 반응,2차오염물질을 생성시키며 가시거리 단축 및 눈·귀·기도·폐등의 점막을 자극,가축 식물 사람에 영향을 끼쳤다.런던스모그에는 안개,LA에는 빛의 광화학적작용이 매개체가 됐다. 환경과학자들은 우리의 대기오염이 여름철은 LA형,겨울철에는 런던형으로 나타난다고 진단한다.서울의 자동차대수가 지난 6일로 5백만대를 돌파,자동차매연과 난방용으로 쓰이는 석유·석탄등의 화석연료에서 생성되는 각종 오염물질로 도시인들은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져 가고 있다.
  • 오존,대기중에 있을땐 인체유해(인체와 환경)

    ◎여름에 잦은 LA형 스모그 주범/두통·폐출혈·시각장애까지 유발 오존층이 뚫리면 사람에게는 물론 지구환경에 크나큰 피해를 준다. 그러나 오존이 성층권위에 있을때 이야기고 우리가 숨쉬며 생활하고 있는 대기중에서는 그렇지 않다.비상이 약으로도 쓰이지만 독이 될수도 있는 이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오존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자외선에 자극을 받아 산소가 분리되면서 대기중의 산소와 결합해 생겨난다. 문제는 오존이 인체에 유해하고 폭발성이 있으며 선진국형 스모그라 불리는 로스앤젤레스형스모그의 주범이라는 사실이다.광화학적스모그라고도 하는 이스모그 주성분의 90%가 오존이다. 그래서 광화학적스모그는 아황산가스가 주범으로 겨울철에 나타나는 런던형스모그와는 달리 자외선량이 많은 여름철에 잘 나타난다.「오존오염안개」라는 표현이 적절할것 같다. 지난 5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발견돼 로스앤젤레스형스모그로 불리고 있는데 런던형스모그보다는 피해는 작다.그러나 지난70년 4월에는 로스앤젤레스부근 1백30만평에 심어져있던 1백년생 판다로사소나무를 모두 고사시키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0년6월 이같은 현상이 처음 서울에 나타난 이래 매년 여름철이면 그 징후를 보이고 있다.자동차가 크게 늘어난 결과다. 오존의 대기중 농도가 시간기준인 0.1㎛만되도 30분이상 있으면 두통이 일어난다.0.8∼1.7㎛에 이르면 폐충열까지 일으킨다는 연구보고도 있다.또 체내효소제를 혼란시켜 유전인자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시각장애까지 유발시킨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를 두고볼때 갈수록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만큼 서울등 우리나라 대도시가 제2,제3의 로스앤젤레스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직 우리가 그렇게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데도 신문지상에서 스모그현상에 대한 보도에 큰지면을 할애하며 「위험수위」 「중증」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서슴지않고 있는것도 이때문이다.
  • 장기에서 골수·뇌까지 이식/심장이식성공계기,한국이식수술 현주소조명

    ◎장기/69년이후 신장이식 3천건 넘어/골수/만성백혈병은 수술성공률 90%/뇌사인정안해 기관 수요자보다 제공자 절대부족 「현대의학기술의 꽃」으로 불리는 이식수술은 최근 10년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시·청·지각을 비롯한 인체의 거의 모든 조직에서 이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50,60년대 신장·간등의 장기이식이 시작된뒤 70년대 골수이식,80년대 뇌이식이 잇따라 성공했고 90년대에는 동물조직을 인체에 이식하는 이른바 「이종이식」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최근 서울중앙병원 송명근박사팀의 심장이식수술 성공을 계기로 우리나라 이식수술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장기이식◁ 만성신부전증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장이식은 지난 5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이래 세계적으로 25만명이 수술을 받았다.국내에서는 69년 가톨릭의대 이용각박사팀의 집도이후 87년 2백14건,89년 5백72건,91년 6백50건등 지금까지 3천여건의 이식이 행해졌다.국내 이식기관수도 32개에 이르며 성공률은 5년생존기준으로 85%정도이다.구미에서는 90%가 뇌사자신이식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가족간 이식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7월 서울중앙병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세계 최장생존은 29년. 간이식은 88년 서울대 김수태박사팀이 첫 개가를 올린이후 국내에서 지금까지 8건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3월 인제의대 이혁상교수팀이 간암환자를 대상으로 수술에 성공했고 7월에는 김수태박사에 의해 생체부분이식이 이뤄졌다.간이식은 간구조의 복잡성과 기능의 다양성으로 인해 장기이식중 가장 어려운 분야로서 생존율은 70%정도이나 간암환자일 경우 3년생존율이 25%에 불과하다.63년 미스타즐박사의 시술아래 세계적으로 매년 2천5백건이상이 시행되고 있다. 말기심장병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심장이식의 경우 62년 남아공에서 처음 실시돼 80년대이후 매년 2천5백건씩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88년 경찰고문으로 숨진 명로렬군(당시 16세)의 심장폐동맥과 판막을 부천세종병원팀이 부분이식하는데 성공했고,최근 서울중앙병원 송명근박사팀이 처음으로 심장전체이식의 장을 열었다.70년대말까지는 성공률이 50%를 밑돌았으나 최신 면역억제요법과 기술개발에 힘입어 현재 90%이상을 기록하고 있다.1년생존율은 85%,5년생존율은 75%정도. 당뇨병치료법으로 각광받는 췌장이식은 지난 7월이후 서울중앙병원 한덕종박사팀이 4건을 성공시킨 것이 전부.10월에는 생체췌장부분이식까지 성공적으로 시행됐으며 췌장이식의 1년생존율은 80%정도이다. 한편 폐이식은 국내에서는 전무한 실정인데,이는 폐가 사후 가장 손상되기쉬운 장기인데다 환자의 호흡기에 맞는 것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골수이식◁ 골반뼈속에 있는 피를 만드는 조혈세포가 조혈기능을 잃었을때 정상의 골수로 대체해주는 수술법.우리나라에서는 83년 가톨릭의대 김동집교수팀이 급성임파구성 백혈병환자에게 형제의 골수이식을 성공한뒤 단일기관으로서는 1백70건의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급성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 빈혈은 그대로 두면 3개월∼1년이내 사망하지만 이식을 행하면 50∼80%의 장기생존이 가능하다.만성백혈병의 경우 성공률이 90%에까지 이른다. ▷뇌이식◁ 뇌세포이식을 통해 뇌질환을 치료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파킨슨질환에 국한되고 있다.82년이후 전세계 8백여명의 파킨슨병환자가 수술을 받았으며 국내에서는 가톨릭의대 최창락박사가 8건을 성공시킨 것이 전부. 최근 태아의 뇌를 이식할 경우 거부반응이 적고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외국에서는 지난해이래 20여건이 시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윤리적인 문제때문에 임상적용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파킨슨질환뿐만이 아닌 뇌출혈시 뇌낭,시상부및 기저부파손으로 심한 신경마비증을 보이는 환자에게 태아의 신경세포를 이식하는 방법이 동물실험을 통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문제점◁ 최근들어 세계 이식수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놔사인정에 대한 법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이다.즉 간장·심장·신장이나 뇌이식을 받고자 하는 수요자는 매년 크게 늘고 있지만 조직제공자는 절대부족한 형편이다.서울대 김수태박사는 『우리 의학기술도이제는 어떤 조직이라도 이식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자부한다』며 『최근 사이크로스포린과 같은 강력한 면역억제제도 많이 나오고 있어 장기공여자만 나타나면 선진국과 같은 높은 성공률을 기록할수 있다』고 말했다.
  • 국제조형협 서울총회 26일 개막

    ◎27개국서 3백여명 참가 「예술가 지위향상」 주제토의/북한은 불참… 30일부터 대규모 국제전도 미술올림픽이라 일컬어지는 국제조형예술협회(IAA)제13차 정기총회및 대표자회의가 26일부터 12월1일까지 서울 올림픽파크호텔에서 열린다.1954년 창립이래 지난 66년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이후 동양권에서는 두번째가 되는 이번 행사에 세계27개국의 미술인 3백여명이 참가한다.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박광진)가 IAA한국위원회 역할을 맡아 운영하는 이번 총회의 주제는 「예술가 지위에 대한 유네스코 권고안」.즉 예술가의 지위향상을 위해 유네스코권고안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놓고 전세계 미술인들이 자료와 정보,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그러나 이번 총회는 IAA한국위원회측이 예상했던 북한미술인 초청이 수포로 돌아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지난 89년 마드리드총회에서 북한측이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한데 따라 우리측은 올초부터 꾸준히 그들의 참가를 요청해왔으나 냉담한 반응끝에 불발로 끝나 버렸다. 한편 이번 총회와 함께 행사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대규모 국제전을 오는 30일부터 12월6일까지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개최한다.여기에는 참가국 60개국의 대표작 60점과 국내작가 작품 3백30점이 전시된다. 또 한국을 찾은 각국 미술인들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온양민속박물관·천안아라리오미술관등을 들러보게 함으로써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국제조형예술협회는 유네스코본부에 사무국을 두고있는 세계유일의 비정치적 미술단체로 회원국은 87개국.3년마다 회원국을 순회하며 총회를 열고 임원개선및 세계미술의 당면문제를 토의하고 있다.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2

    ◎문명의 세계절­가치관은 어떻게 변하나/쥐 아닌 고독을 사냥하는 고양이/시대 따른 효용변화/가축으로서의 가치 정보기능으로 이행/소외된 도시인의 외로움 달래주는 역할/「정보화」 진행 따라 애완동물 수요 증가 □황규호문화부장=지난번 대화의 마무리 부분에서 농업사회 산업사회 그리고 정보사회의 세 문명의 단계에 대해서 약간 언급이 있으셨지만 그 개념을 더 확실하게 알고 싶습니다.앞으로 이 연재대화를 읽게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서도 오늘은 우선 그 개념의 윤곽만이라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이어령 전문화부장관=교과서적인 풀이 보다는 퀴즈로 풀어가는 것 어떨까요.왜 있지않습니까.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세왕자 수수께끼말입니다.아름다운 공주에 구혼을 하기위해서 왕성을 향해가던 세 왕자가 길에서 만나 서로 공주에게 바칠 자기 보물을 자랑하게 됩니다. □예.이제 생각이 납니다.어렸을 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첫째 왕자는 천리밖의 것을 내다볼 수 있는 거울을 가지고 있었고 둘째 왕자는 단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를 그리고 세번째 왕자는 죽은 사람도 살리는 불사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말이지요. ○누구와 결혼하나 ■그래요.그런데 그 첫번째 왕자가 천리밖에 있는 공주의 모습을 거울로 비쳐보니 막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는 거지요.위급한 것을 알고 세왕자는 천리마에 올라타서 왕성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도착하여 불사약을 먹였습니다.이렇게해서 공주의 생명을 건졌는데 문제는 어느 왕자와 결혼해야 되느냐 하는 수수께끼입니다. □정말 난처하네요.천리안이 없었다면 공주의 위급함을 몰랐을 테고 천리마가 없었더라면 불사약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구요.서로 인과가 뒤얽혀서 이중 하나만 없어도 공주의 목숨은 구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이 문제를 푸는 사람의 가치관이 어느 시대의 문명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 그 해답은 각기 달라지게 될 겁니다.먹는 곡식을 위주로 생각한 농업사회,다시말하면 물물교환을 하던 그런 시대에는 단연코 세째 왕자하고 결혼을 해야 합니다.왜냐하면 첫째왕자도,둘째왕자도 보물이 없어진 것은 아니잖습니까.그러나 불사약은 공주에게 먹였으니 완전히 수중에서 사라졌지요.없어진 것입니다. □정말 그러내요.모든 가치를 있고 없는 물질자체의 소유로 생각할때 두 왕자는 그저 자기 보물을 사용했을 뿐이지 준 것은 아니지요.천리안도,천리마도 그대로 수중에 있으니 아무 손해도 본 것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그런데 산업시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둘째왕자가 됩니까. ■물론입니다.산업사회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되었지요.동력이라는 에너지가 아닙니까.천리마는 바로 그러한 동력을 상징하고 있지요.호스 파워(마력)라고 하지 않습니까.자동차의 값도 몇마력인가 하는 힘에 따라 결판이 납니다.영국은 공장기계를 돌리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전 세계의 바다로 통하는 해양교통의 포트(항구)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산업사회의 새 시대를 열 수가 있었습니다.물질에서 에너지로,그리고 소유에서 기능으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게 됩니다.가령 콘도미니엄같은 시설은 소유하는 값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권만을 사고 파는 것입니다.골프장 회원권의 상품도마찬가지구요. □그렇다면 정보화시대의 인간은 첫번째 왕자의 천리안에 영광을 안겨주겠군요. ■물질이나 에너지에 의존해온 시대에서 벗어나 정보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사회,그것이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정보화사회의 특징입니다.옛날 사고로 본다면 세 왕자가운데서 제일 손해본 것도 없고 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은 것이 바로 천리안입니다.천리마는 뛰었으니 에너지라도 소모하지 않았습니까.불사약은 아예 없어졌으니 말할 것도 없고요.천리안으로 얻은 정보란 것은 무게도,형체도,에너지로도 환산될 수가 없고 소비된 흔적도 없습니다.그래서 산업사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일수록 정보 아이디어 그리고 디자인 같은 것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는데 인색합니다. □그렇군요.우리가 값이라고 하면 가시적인 물질에 대해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물체지요.그래서 컴퓨터의 하드웨어를 사는데는 몇백만원을 내면서도 머리로 짜낸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정보체인 소프트웨어는 디스켓 몇장에 불과한 것이니까 단돈 몇만원을 내도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무의식중 바뀌어 ■십원짜리 물건이라도 그냥 가져오면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몇십만원하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불법복제하여 쓰는 것에 대해서는 도둑질 했다는 생각이 없습니다.그래서 이 수수께끼를 각자 풀어보면 자기가 어느 시대에 속하는 문명인인가 하는 것을 채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자신도 얼른 첫번째 왕자에게 표를 던지기 어려운 실정인 걸 보면 아직 저는 농경사회에 살고 있는 농부라고나 할까요. ■아닙니다.누구나 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새에 생각이 변하고 있는 거지요.농업에서 공업,공업에서 정보,더 정확하게는 마음을 주고 받는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로 가치관이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지요.가령 우리 주변에 있는 고양이를 예로 듭시다.왜 인간은 고양이를 기르게되었는지.동서 할것 없이 옛날에는 주로 고양이의 가치는…. □쥐를 잡는데 있었지요. ■그렇습니다.고양이의 상품가치는 실용적인 기능가치에 있었습니다.그 대표적인 일화가 옛날 중학교 영어교과서에도 실렸던 위친턴의 고양이 이야깁니다.위친턴이라는 가난한 소년 점원은 무역선이 떠날 때 자기 고양이를 팔아달라고 선장에게 맡겼지요. ○런던 위친턴동상 □옛날 유럽 무역선의 선장들은 사람들이 맡긴 위탁상품을 팔아서 그 이익을 나누어 가졌다고 하던데 이 경우도 그랬군요. ■옛날 영국의 선장들은 지금의 주식회사 사장과 같았던 모양이에요.물건을 맡기는 사람들은 주주라고 할 수가 있구요.그런데 이 배가 폭풍을 만나 어느 낯선 항구에 표착하게 되고 선장일행은 왕의 만찬에 초대를 받게 됩니다.그런데 갑자기 쥐들이 나타나 손님이 먹기도 전에 음식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거예요.왕이 이 쥐 때문에 고민을 하자 선장은 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느냐고 물었지요.왕은 고양이가 무어냐고 반문합니다.이 나라에는 고양이란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선장은 위친턴의 고양이를 가져와 보였고 쥐들이 그야말로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자 왕은 거액의 돈을 주고 이 보물을 삽니다.큰 돈을 벌게된 위친턴은뒷날 거부가 되어 런던에는 고양이를 안고 있는 그의 동상까지 섰다는 겁니다. □하찮은 고양이도 장소에 따라 그 상품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통상국가다운 이야기군요. ■고양이의 상품가치는 쥐를 잡는 효용성에 따라 달라졌지요.갑자야화라는 일본문헌을 보면 양잠업이 성행한 동북지방에서는 말은 한냥인데 고양이는 다섯냥으로 거래되었다는 겁니다.쥐는 누에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누에치는 집에서는 너도나도 고양이를 기르려고 해서 그 수요가 달렸기 때문이라는 거지요.또 페스트가 만연되어도 고양이 값이 올랐구요.페스트는 쥐가 옮기는 병균이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고양이의 가치가 실용적인 기능에서 정보로 그 상품가치가 변했다는 겁니다.말하자면 쥐를 잡아주기 때문에 기르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는 애완물로서 기르는 거지요.마음의 소통 대상이 된겁니다.정보화시대의 고양이는 쥐가 아니라 소외된 도시인의 고독을 사냥해주는 것으로 변한 겁니다. 물질적 기능으로서의 동물은 가축이지요.그러나 이미 그 가치가 변하여 커뮤니케이티브한 것이 되면 잡아먹지 못합니다.우리가 개를 먹는다는 것은 개가 아직도 기능적 도구(효용성)가치에 있다는 반증입니다.그러나 자기가 기르는 개는 먹지 못합니다.이미 마음의 소통대상으로 변하였기 때문입니다.더러 술먹고 금붕어를 잡아먹는 사람도 있긴 있지만 같은 물고기라도 금붕어를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금붕어는 마음의 소통대상인 애완물이기 때문이지요. □정보화시대를 마음의 시대,커뮤니케이션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가 확실해지는 것 같습니다.도둑을 지키는 기능성보다 인간과 대화를 하는 마음의 벗으로 즉 애완용으로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가고 있는것도 정보화 사회가 오고 있다는 하나의 눈금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마음이 고달플때는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됩니다.그런데 마음이 외로우면,이를테면 마음이 고플때에는 무엇으로 채우나요.그 마음을 채워주기 위해서 있는 것중의 하나가 애완동물들입니다.미국에서는 지금 팻으로 기르고 있는 개와 고양이가 1억정도 되고 일본은 고양이의 경우는 7백만마리,개는 3백50만마리라고 합니다.확실한 통계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정보화시대가 될수록 애완용 고양이나 개는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고양이는 이제 단순한 애완용의 영역을 넘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까지 변했다는 겁니다.요즈음 아파트의 신혼부부는 고양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지요.남편을 향해 직접 밥먹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보고 『나비야 저녁 다 되었다.밥먹자』 그러면 신랑은 『나비야 조금있다가 먹자? 아직 내 일 다 끝나지 않았단다』라고 말입니다.(웃음) □산업사회는 인간관계를 단절시켰고 그 결과로 이제 사람들은 그 단절을 메우는 방법을 의식주이상으로 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같습니다. ○디자인값이 월등 ■가령 몇십년전만해도 냉장고나 전화기에는 색채나 디자인이라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냉장고는 냉동기능만 좋으면 되었지요.그래서 냉장고는 전부 흰빛이었습니다.그런데 요즈음 들어서서 냉장고는 다채색으로 변했고 심지어 부티가 난다해서 검은 냉장고까지 등장하게됩니다.기능면에서만 본다면 냉장고의 색채는 복사열을 방지하는 흰빛이 최고입니다. 전화도 그렇지요.옛날 체신부 관인이 찍힌 검은색 전화는 이제 눈을 비비고 찾아도 볼 수 없어요.기능적으로 그리고 코스트 면에서 본다면 때 안타는 검은 빛이 제일 좋지요.그러나 전화가 많이 보급되어 수요가 차게 되면 단순한 기능만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즉 기능과는 관계가 없는 정서적 가치가 등장하게 됩니다.미국에서는 1954년에 프린세스 폰이라고 하여 8가지 색채의 전화기가 나와 대히트를 합니다.색채와 모양 그것이 바로 상품의 정보가치라고 부르는 겁니다.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우리나라의 속담처럼 말입니다.배고플 때는 더운밥 차가운 밥을 가릴 여지가 없습니다.그러나 어느정도 먹을 것 입을 것이 넉넉해지면 필연적으로 삶의 질이나 취미 그리고 자기의 마음에 드는 선택적 자유를 추구하게 됩니다.정보화시대는 그래서 초산업주의라고도 부르지요.기능위주의 산업주의 시대에는 하이테크 일변도 였지만커뮤니케이티브한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마음을 움직이는 하이터치 상품이 나오게 된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옷감이 제일 비쌌지만 다음에는 옷감보다 의복을 짓는 싻이 더 비싸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요즈음은 어때요.옷을 짓는 재단비보다 디자인 값이 월등 비쌉니다.패션시대 그것이 정보화시대지요. □오늘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다음엔 이런 관점에서 구체적인 한국의 실정을 놓고 말씀듣기로 하겠습니다.
  • 일 방위비삭감 첫 추진/대장성/내년도 예산 올 수준 이하로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대장성은 내년도 방위비예산을 금년도보다 줄일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이 3일 보도했다. 이는 동서 냉전구조 붕괴이후 국제관계가 안정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삭감이 실현될 경우 지난 1954년 방위대 발족이후 처음으로 방위비 감액이 이루어지는 셈이라고 이신문은 말했다. 내년도 예산가운데 방위당국이 산출,제시하고 있는 방위비는 금년보다 3·6%가 늘어난 4조7천1백71억엔이나 대장성은 인건비와 식량비·시설 정비비등을 억제할 경우 삭감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대해 방위청은 일본 안전보장정책의 근간을 위협하는 처사라며 반발할 것으로 보여 방위예산이 정치문제화할 공산이 크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관측했다. 일본은 재정사정이 아무리 악화되더라도 매년 방위비를 예외없이 늘려왔기 때문에 대장성의 이같은 방침이 실현될 것인지 여부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
  • 미의 판문점경비 한국군이양 제의 의미(해설)

    ◎유사시 미군 자동개입 인계철선/신중협의 거쳐 단계추진 바람직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은 군사분계선상에 세워진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을 축으로 하는 반경 4백m의 원형지대로 54년 11월8일 유엔군과 공산군의 협정에 따라 쌍방 35명씩의 장병들이 공동경비하게 됐다. 76년 8월18일 북한측의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하기전까지만해도 이 지역안에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지지 않아 양측 경비병이 자유롭게 통행했으나 충돌 방지를 위해 그해 9월16일부터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분할했다. 당시부터 공동경비구역안의 북측지역은 북한군이,유엔군측지역은 주한미군이 주축이 된 한미 양국군이 경비를 담당해 왔다. 최세창국방부장관이 밝힌 JSA경비임무의 한국군이양은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위해서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풀이할 수 있으나 유엔군사령부(UNC)가 존속하는한 JSA의 경비책임은 미군이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주목되고 있다. JSA경비를 한국군이 맡는다는 것은 주한 미군의 역할이 주도적역할에서 보조적 역할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지역은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해주는 인계철선의 역할을 하고있어 한미간의 신중한 협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국방당국자들의 의견이다. 한미양국은 지난해 10월1일 휴전이후 미군이 맡아온 서부전선 휴전선1마일에 대한 경계임무를 한국군이 맡도록 합의함에 따라 1백55마일 전 휴전선에 대한 경비를 모두 한국군이 맡게된 바 있다. 지난해 10월 휴전선 경비에 이어 JSA경비책임문제가 한미간에 긴밀히 협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조치들이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 조용직씨 의원직 승계

    민자당의 김영삼총재가 13일 국회의원직(전국구)사퇴서를 박준규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박국회의장은 김총재의 의원직 사퇴서를 곧 본회의에 회부,표결처리할 예정이며 사퇴서가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민자당 전국구 예비후보인 조용직부대변인이 자동적으로 의원직을 승계한다. 김총재는 지난 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된 이래 지끔까지 헌정사상 최다선인 9선을 기록했다.
  • 대림 창립53돌/건설업 정상 도전,해외사업 확대

    대림산업(회장 이재준)이 9일로 창립 53주년을 맞았다. 지난 39년 10월 부평역앞 허허벌판에 목재등 건설자재를 취급하는 「부림상회」로 출발한 대림산업은 현재 12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지난 54년 서울증권설립,55년 중기사업소 설립,63년 대림콘크리트 설립등으로 성장을 해오던 대림은 지난 60년대와 70년대 건축관급공사와 월남특수에 힘입은데다 지난 79년 호남에틸렌을 인수하고 81년 대림자동차공업을 출범시키면서 명실공히 그룹대열에 들어서게 됐다. 대림산업은 오는 2000년도의 목표를 「쾌적하고 풍요로운 삶의 창출자로서 매출액 10조원,수익률 5%」로 정하는등 국내 건설업계의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특히 신규사업 비중을 전체 매출의 40%,해외사업 비중을 20%까지 확대시키고 생산성을 현재의 5배로 증대시키기 위해 인력의 고급화,기술력 고도화,해외사업의 활성화등을 세부전략으로 추진중이다.
  • 대법원판사 2번 거친 소신파/이정우 법무(신임장관 등 프로필)

    순수법관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법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성격이 소탈하고 원만해 후배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는 평을 받고 있다. 5공시절 두번의 대법원판사를 거치면서 85년 이른바 「박세경변호사사건」 당시 박변호사에게 적용된 구계엄법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내기도 한 소신파. 「공해문제에 관한 사법적 구제」등 공해에 관한 논문을 많이 발표할 정도로 학구파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고려대법대 재학중이던 54년 제6회 고시사법과에 합격,법조계에 입문했으며 고교시절에는 축구선수를 지내기도 한 만능스포츠맨. 부인 서병희씨(58)와의 사이에 3남1녀.
  • 서인도­유럽문화 작품속에 접목

    ◎노벨문학상 수상 월코트의 생애와 문학세계/수상소감/“서인도문학 우수성 인정에 뿌듯” 내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때 무척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내생각에는 트리니다드 출신작가 V S 나이폴이나 에이레 출신 시인 시머스 히니가 받을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을 내가 받게됨으로써 서인도문학의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됐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나는 어렸을때부터 작가로서의 성공을 꿈꿔왔고 이제 그 꿈을 이뤘다.그러나 이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열심히 창작에 몰두할 계획이다.또 상금을 받게되면 고향에 연극스튜디오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카리브해 민요·토속신화를 시로/영국인 아버지·아프리카 출신 어머니 복합전통 계승/은유속의 강렬한 이미지가 특징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연방 세인트 루시아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데릭 월코트씨(62)는 서인도·유럽·흑인문화,흑·백문화간의 통합이라는 주제를그의 작품속에서 일관되게 그려왔다. 한림원은 월코트의 수상이유를『일생을 통해 탁월한 역사적 안목과 다양한 문화를 접속시킨 훌륭한 시들을 발표해 서인도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게 됐다』고 밝혔다.그의 시들은 아름다운 운율과 다양한 이미지·은유,언어(영어)에 대한 남다른 감각으로 알려져왔으며 특히 지난 90년에 발표된 「오메로스」는 『64장으로 된 장엄한 카리브 서사시』라는 극찬을 받았다.이밖에도 그는 독창적인 희곡들을 다수 발표,이를 자신이 창단한 트리니다드 극장에서 직접 연출하는등 희곡부문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보여오기도 했다.특히 「원숭이 산에서의 꿈」(67)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이작품은 캐나다와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되었다.그리고 트리니다드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최근 20년간의 역사를 다룬 또 다른 희곡 「마지막 카니발」(86)이 곧 연극으로 만들어져 스톡홀름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월코트는 영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 흑인노예의 후예로 식민지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와 유럽이라는 복합적인 문화에서 성장했다.따라서 자신의 복합적인 문화적 환경들을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속에 그려 내용과 형식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풍부한 작품세계를 보여줬다.카리브해에 살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흑인 후예인 그는 이런 문화적·형식적인 상이점등을 강력하고도 독창적으로 작품속에 용해시켜내는 문학적 업적을 남기는데 공헌했다. 그는 다양한 스타일과 배경,주제들을 즐겨 다루어왔다.인종주의,제국주의의 부당함,열강들의 멸망,그리고 개인적·문화적·정치적인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도 주제로 등장한다.그의 작품세계는 은유와 이미지가 다양하고 강렬한 것이 특징이다.세인트 루시아와 자메이카에서 수학한 그는 영어로 작품을 쓰면서도 크레오어와 서인도지방의 방언을 작품속에 가능한한 많이 도입,지방방언의 아름다움을 살리려는 남다른 노력을 쏟는등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그는 또 작품의 소재와 모티브를 서인도제도의 민담과 토속신화,전설등에서 많이 가져옴으로써 이곳 문화를 외국에 자연스럽게 소개시켰다. 그는 희곡 「도핀바다」(1954) 「원숭이산에서의 꿈」(1967)등에서 세인트 루시아지방의 전설들과 신화,그리고 식민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식민정치가 인간의 영혼에 끼칠 수 있는 해악등을 강력히 떠올렸다.반면 그의 시들은 희곡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종문제,식민지문제등을 다루고 있지만 형식상으로는 희곡보다 영국적인 전통을 많이 따르고 있다.대표시집 「또 하나의 삶」(1973)은 자전적인 장시로 이전의 역사적·사회적인 주제들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접근들을 보여준다. 18살때 2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를 한 그는 그러나 62년에 시집 「푸른 밤에」를 발표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그는 문학이외에도 미술과 언론등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활동을 해온 인물로 알려져있다.1962년 현재 부인인 마가레드 루스 메일리드여사와 재혼했고 세자녀를 두었다. ○월코드 연보/1954년 희곡 「도핀바다」로 데뷔 ▲1930년 서인도제도 세인트 루시아 출생 ▲세인트 메리대및 자메이카 웨스트 인디즈대 수학 ▲1948년 시집 「젊은이들을 위한 비문」으로 데뷔 ▲1953년 트리니다드로 이주 ▲1954년 희곡집 「도핀바다」출판 ▲1959년 트리니다드 극문학연구회 설립 ▲1962년 시집 「푸른 밤에」로 유명해짐 ▲1971년 민속극 「원숭이 산에서의 꿈」으로 오비상 수상 ▲1986년 희곡 「최후의 카니발」출판 ▲1988년 퀸즈 골프 메달 시부문 수상 ▲현재 미보스턴대 영문학교수 재직 ○대표작/장편서사시 「오메로스」로 영예 ◇희곡=▲도핀바다(1954) ▲이오네(1957) ▲티 진과 형제들(1958) ▲원숭이산에서의 꿈(1967) ▲오 바빌론!(1976) ▲회상(1979) ▲판토마임(1981) ◇시=▲푸른 밤에(1962) ▲캐스터웨이와 시들(1965) ▲걸프와 시들(1969) ▲또다른 삶(1973) ▲모자반(1976) ▲스타애플왕국(1980) ▲행복한 여행가(1982) ▲한여름(1984) ▲오메로스(1990)
  • 한­미 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요지

    ①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제24차 안보협의회의(SCM)가 1992년10월7∼8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다. ②양측은 범세계적인 화해와 협력의 추세에도 불구하고,동북 아시아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포함한 불안정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미국은 지역내 미국의 이익을 감안하여 아시아 안보와 관련된 지속적 역할과 동지역에 미군의 장기주둔을 재천명하였다. ③양측은 지난 23차 SCM 이후 한반도문제의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몇가지의 긍정적인 사건들이 발생했음에 유의하고,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기반을 제공하는 뜻에서 이러한 합의들이 즉각적이고도 완전하게 이행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④양국은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다짐하였다.양측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동 협정을 이행하며 IAEA 핵사찰을 수용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고 유용한 1단계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⑤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관련하여 최장관과 체니장관은 북한이 강제사찰을 포함한 신뢰성있고 효과적인 남북 상호사찰에 동의하고,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핵재처리 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증할 수 있도록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공약을 즉각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⑥미국은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안보공약을 재천명하였다. ⑦최장관과 체니장관은 향후 주한미군 감축과 현 한미연합방위체제에서의 역할 조정등 한미간 군사현안은 「한미연합 억제력 유지」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단계적,신축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⑧양측은 주한미군에 대하여 「한미양국 정부와 국민이 대북억제력을 제공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고 믿는 한」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기로 합의하였으며,주한미군의 추가감축은 북한의 핵개발 계획에 대한 불확실성이 철저하게 규명될 때까지 계속 유보하기로 합의하였다. ⑨양측은 한국군에 대한 평시 작전통제권을 늦어도 1994년 12월31일까지 한국에 전환하기로 합의하였다.또 남북관계 특히 상호핵사찰 등에 있어서 의미있는 진전이 없을 경우 93팀스피리트 훈련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조치를 계속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⑩양측은 한국정부가 93년도에 2·2억달러 상당의 지원을 주한미군에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⑪양 장관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아태지역의 안정과 한미 양국의 공동이익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공동 인식하에,한미안보협력도 남북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유지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양측은 1953년 군사정전 협정은 남북간 직접협상에 의해 평화체제로 대체될 때까지 존속되어야 하며 군비통제도 남북간 직접대화에 의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⑫양측은 1990년대 기간중 한미 쌍무관계는안보동맹에서 점차 한미 쌍무적,한반도,지역,세계 차원에서의 상호 존중과 협력에 기초한 보다 포괄적인 정치,경제,안보 동반자 관계로 진전될 것임을 확인하였다. ⑬양국 대표단은 한미간 방산,군수,기술 협력이 양국의 국가이익에 최대한 기여하는 방향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이라는데 합의하였다. ⑭금년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특히 급변하는 국제정세하에서 전통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아태지역내 양국의 공동 이익을 위하여 미래 지향적인 장기 안보협력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데 합의하고 차기 안보협의회의는 1993년 상호 편리한 시기에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 수교 막후주역… 외교관 38년/노재원대사(얼굴)

    지난 54년 서울 법대 3년 재학중 제6회 고등고시 행정과(외무)에 합격,외무부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38년동안 한길을 걸어온 정통외교관. 외무부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로 매사를 깔끔하게 처리한다는 평.한중수교교섭과정에서도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해냈다. 차기 장관후보로 물망에 오를만큼 능력은 물론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틈만 나면 책을 잡는다.훤칠한 키에 출중한 외모로 영국신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부인 조재선씨(60)와 1남1녀.
  • “보라매 군번 1번”…공군창설 주역/타계한 김정렬 전 총리의 일생

    ◎초대·3대총장 역임… 57년 국방장관으로/63년 정계 진출… 87년 6공출범 기틀다져 7일 세상을 떠난 김정렬전국무총리는 지난해 3월 한일 협력위원회 회장자격으로 일본을 방문,일·북한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을 일본정부에 전달하는등 최근까지 건강을 유지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서울 태생으로 일제하에서 일본 육사와 일본 명야육군비행학교를 졸업하고 정부수립후인 48년 공군사관학교장을 거쳐 대령으로 초대공군참모총장을 지낸 한국공군 창설의 주역이자 산역사이다.그의 군번은 공군 1번이다. 6·25 전쟁중인 53년 공군중장으로 진급,전쟁직후인 54년 다시 제3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내다 57년 예편해 4·19혁명이 날 때까지 군의 최고책임자인 국방부장관으로 관계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공군에 몸을 담고있는 동안 현대전에서 공군의 중요성을 감안,공군을 육군에서 독립시켰으며 당시만해도 첨단 기종인 T­6훈련기 10대를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왔다.이 훈련기를 도입하기위해 공군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항공의 경종」이라는 책을자비로 발간,전국적인 건국기 헌납운동을 불러 일으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5·16후인 63년 공화당에 참여,정계에 발을 디뎌놓은뒤 초대의장을 2개월간 지내다 주미대사로 나갔으나 67년 제7대 전국구의원으로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 71년부터는 삼성물산사장으로 재계에 입문,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등을 역임한뒤 80년 5공때는 비교적 한직인 국정자문위원으로 일선을 떠나있다가 87년 국무총리에 기용됐다.당시 우리사회는 정권이양과 국민의 욕구분출로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제13대 대선을 무리없이 치르고 사회불안도 원만히 해결,6공출범의 기틀을 마련했다. 최근 정부수립후 주요사진 1백50장을 수록한 회고록을 준비중이었으나 지병으로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부인 이희재여사(73)와는 올해가 결혼 49년으로 금혼식을 불과 한달 남겨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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