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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登輝스캔들 臺灣정가 또 시끌

    지난해 연말 타이완(臺灣) 정가를 강타했던 리덩후이(李登輝·77) 총통의성추문이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구랍 23일 리 총통의 성추문을 폭로했던 쉬칭중(徐慶忠) 전 행정원 부원장의 아들 쉬위안타오(徐淵濤)는 8일 리 총통이 부인 청원후이(曾文惠·73)여사 외에 상당 기간동안 2명의 여인과 관계를 맺어은 사실을 폭로한 ‘리덩후이의 진면목을 벗긴다’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고 밍바오(明報)·싱타오(星島)일보 등 홍콩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리 총통은 1949년 결혼한 청 여사의 눈을 속이며 중학교 선배의 미망인 장(張)모 여사와 25년동안 사련(邪戀)을 불태우는 한편,농림청 재직시 부하직원이었던 천위윈(陳玉雲),치과 주치의였던 스장주(石掌珠) 등과도 염문을 뿌렸다.리 총통과 타이베이(臺北)제3여중 출신의 장 여사와의 관계는 리 총통이56년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던 장 여사의 집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관계가 시작돼 81년 리 총통이 타이완성 주석에 임명되기까지 25년동안 지속됐다.리 총통은 고교선배인 차이(蔡)모씨가 54년자살한 뒤 장 여사가 의지할 곳이 없이 어렵게 살아가자 유가족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두사람간에 정이 깊어졌다. 리 총통은 이밖에 부인의 중학동창으로 농림청 부하직원이었던천 여사와 불륜의 관계를 맺었는데,천 여사는 결혼을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아왔다.리 총통은 자신의 치과 주치의였던 스 여사와도 염문을 뿌린 것으로알려졌다.리 총통은 스 여사를 수양딸로 삼았지만 그녀에게 6㏊(약 18,000평)의 땅을 사주고,두사람 명의의 별장을 구입하기도 했다. 김규환기자 khkim@
  • 소주 ‘상표권 분쟁’ 진로 이겼다

    ‘참이슬’이 또한번 웃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1부는 지난달 23일 두산이 진로의 ‘참眞이슬露’상표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침해금지’ 청구소송을 기각한 것으로 6일 밝혀졌다.반년 넘게 끌어온 상표권 분쟁은 일단 진로의 승리로 끝났다. 두산은 지난해 5월 진로의 히트상품인 ‘참眞이슬露’에 대해 자신들이 이미 상표등록한 ‘이슬’이나 ‘露이슬’과 흡사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진로가 지난 54년 등록된 ‘眞露’라는 상표의 상표권자이고 ‘참眞이슬露’ 상표중 ‘참이슬’ 부분은 ‘眞露’의 뜻글자(訓)인 점,또 두산이 출원했던 ‘이슬’ 상표는 93년 등록후 3년이 넘도록 사용된 일이없어 특허법원으로부터 등록취소 판결이 확정된 점 등을 들어 두산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진로는 “두산의 소송은 참이슬 흠집내기작전이었던 만큼 이번판결은 당연한 것”이라고 환영했다.98년 10월 출시된 참이슬은 진로를 부도의 늪에서 구해준 효자상품이자 출시 14개월만에 5억병 판매를 돌파한 소주업계의 ‘슈퍼 베스트셀러’. 두산측은 “판결에 다소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즉각 항소할 뜻을 강력히 내비쳤다.‘미소주’를 앞세워 참이슬의 아성에 도전했던 두산은 ‘순한 소주’ 시장 참패에 이어 또다시 입쓴맛을 보게 됐다. 안미현기자 hyun@
  •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 이덕완씨 당선소감

    풀무질을 했다.담금질과 망치질도 했다.푸르게 벼려진 도끼를 들고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갔다.들판에서 신작로에서 모두 써버린 낮 시간들,저녁 어스름에야 도착한 숲에는 너무나 많은 나무들로 가득하다.좋은 나무 한 짐만 하고 싶다.아궁이에 지펴진 윤기 흐르는 쌀밥 한 그릇 짓고 싶다.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다.노을 속에서 울리는 도끼질 소리가 맑게맑게 숲 속에서 메아리치고 달빛 아래에서는 파란 영혼이 자작나무 밑둥을 넘기리라. 빈 지게의 멜빵을 내 어깨에 걸려주시고 손에 도끼자루를 쥐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지게 가득 나무 한 짐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신춘문예가 뭔지는 모르시지만 기뻐하시는 노모와 IMF한파에 농촌까지 밀려와 마른 풀잎처럼 사는 아내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시쓰기 보다는 시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 이영진선생님을 비롯하여 김진경,김사인,김형수,임영조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한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문우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특히 나를 위해 뒤에서 격려해준 분들께고마움을 전한다. 새로운 천년도에는 저 사람들의 숲으로 들어가 사랑과 희망을 벼리고 싶다. 기쁘다. ?1954년 경기 파주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 1954-1956년 정부 기록사진 화보

    국정홍보처는 29일 지난 54년부터 56년까지의 정부 활동 및 시대 상황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2권을 발간했다.이 책에는 6·25 전쟁복구기의 산업현장,이승만(李承晩)대통령 당시의 선거 실태,냉전시대의 우리 상황 등과 관련한 사진 505장이 수록돼 있다.국정홍보처는 사진집을 중앙및 지방행정기관,국·공립도서관,박물관,언론사,대학 사진학과 등에 배포했으며,일반인들은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성서학자들 “내년은 서기 2003년”

    ‘서기 2000년은 3년전에 이미 지나갔다’ 종교계를 포함해 온 세상이 새해를 ‘예수탄생 2,000년’‘새 밀레니엄의시작’ 등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성서학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성서학자들은 “정확히 따져 내년은 서기 2003년”이라며 요즘 벌어지는 새밀레니엄 관련 행사를 ‘상업적인 호들갑’으로 치부한다.이들에 따르면 예수가 탄생한 해는 BC4년.따라서 지난 96년이 예수탄생 2,000년인 해였다는것이다. ‘예수탄생 BC4년설’은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주장일 지 모른다.하지만 성서학자들은 이를 거의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실제로 지난 96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선 성서학자들이 인정한 ‘예수탄생 2,000년 기념대축제(JC2000)’가 대대적으로 열렸다.한국의 교회성장연구원(CGI)이 기획하고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허가한 이 대회엔 세계 50여개국 8,000여명의 개신교 지도자와신도들이 모여 예수탄생 2000년을 축하했다. 성서학자들이 주장하는 BC4년설의 근거는 아기예수를 박해했던 헤롯대왕의사망시기와 로마제국의 호적조사 실시년도등 크게 두가지.우선 성서에선 헤롯 대왕이 BC4년에 사망한 것으로 돼있어 예수가 그 이전에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는 것.또 서기 270년까지 14년마다 실시된 로마제국의 호적조사가 있었던 것도 BC4년이란 점이다.“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호적조사때문에 마리아를 데리고 나사렛에 돌아오는 도중 예수가 태어났으며…”라고 신약성서는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로마시 설립을 원년으로 하는 달력인 로마식 연도법(AUC법)의 오차도 그 근거중 하나.로마 수도승 디오니시우스 익시거스가 AUC를 대체할 새월력을 만들면서 ‘예수탄생을 새 달력의 시점으로 하라’는 교황의 지시를받고 예수의 탄생 연대로 통용되던 AUC754년을 서기1년으로 삼아 공표했던것.그러나 성서학자들은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 고증과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예수탄생년도를 AUC754년이 아닌 AUC750년으로 밝혀냈다. 김성호기자
  • 20세기 최악 악천후…1907년 中 가뭄

    [워싱턴 AP 연합] 금세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악천후는 1907년 중국에서 발생한 가뭄이었으며 이로인한 기아로 무려 2,400만명이 숨졌다고 미국 해양대기국(NOAA)이 13일 발표한 ‘세기의 악천후’ 보고서에서 밝혔다. 중국의 가뭄은 또 1928∼30년,1936년,1941∼42년등 세차례 더 이어져 수백만명이 추가로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NOAA는 말했다.다음은 NOAA가 발표한 금세기 최악의 기상이변들이다. ▲1907년 중국에서 가뭄과 기아 발생.사망자 2,400만명 추산.1928∼30년,1936년,1941∼42년 등 세차례 가뭄에서 수백만명 사망 추정.▲1921∼22년 옛소련의 우크라이나와 볼가 지역에서 가뭄 발생.사망자 25만∼500만명 추정.▲1965∼67년 인도에서 가뭄 발생.사망자 150만명 추산. ▲1931년 중국 양쯔강범람.홍수와 그에 따른 질병 및 기아로 370만명 사망.▲1972∼75년 아프리카 사헬에서 가뭄 발생.60만명 사망 추정.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1984∼85년 가뭄으로 그 이상의 희생자 발생 추정.▲1970년 방글라데시 사이클론으로 30만∼50만명 사망 추정.같은지역에서 1991년 사이클론으로 13만8,000명 사망. ▲1998년 중미에서 허리케인 미치로 1만1,000여명 사망.▲1954년 이란의 대홍수로 1만여명 사망.▲1991년 필리핀에서 태풍 델마로 6,000명 사망 추정. ▲1958년 일본에서 태풍 베라로 5,000명 사망 추정.▲1952년 런던에서 대 스모그(smog)로 4,000명 사망 추정.▲1972년 이란에서 눈을 동반한 폭풍으로약 4,000명 사망.▲1965년 겨울 네덜란드와 영국등 북부 유럽 해안에서 폭풍으로 2,000명 사망 추정.▲1900년 미국 갤버스턴섬에서 허리케인으로 8,000명 사망.
  • [의열독립투쟁] (14)김시현 의사

    살아 생전 24년을 감옥살이한 투사가 있다.36세에 독립운동에 발을 디딘 후,광복에 이르기까지 26년간 일곱 차례나 일제 경찰에 붙잡혀 16년을 감옥에서 보냈고,광복 이후 20년동안 8년을 또 투옥된 것이다. 독립운동에 첫 발을디딘 후,47년의 절반을 넘는 24년을 감옥에서 보낸 인물이 있으니,그가 바로김시현(金始顯)의사다. 김 의사는 188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김 의사를 기억하는 안동 사람들은 먼저 그의 혀짧은 연설을 알아듣느라 애쓴 이야기를 떠올리는데,이는 김의사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혀를 깨물며 투쟁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처음 김 의사의 호는 학우(鶴右)였는데 검사가 “도대체무엇을 구하려는가? 차라리 하구(何求)가 좋겠다”고 빈정대 그렇게 바꾸어썼다고 한다.29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전문부를 거쳐 법학과를 만학으로 다니다가 1917년 귀국한 김 의사는 경북 상주에서 3·1의거 와중에일경에 체포된 후 본격적인 항일역정에 접어들었다. 이 사건 직후 상하이로망명했다가 지린(吉林)으로 가서 의열단에 참여해 자금과 단원모집을 위해국내로 침투하였다.이로부터 그의 국내 침투와 피체,망명은 쉼없이 반복되었다. 거사를 벌이고, 체포되고, 출옥하면 곧바로 망명하여 다시 의거를 일으키는 연속된 행위를 해방을 맞는 날까지 마치 시계바늘 돌듯 계속한 것이다. 1920년 9월경 의열단의 제1차 국내폭탄반입에 가담했다가 대구에서 체포된그는 대구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출옥하자마자 다시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안병찬의 소개로 고려공산당에 입당하고,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에 참가하였다.이 회의장에서 김 의사는 평생의 동지요,부부가 될신여성 권애라(權愛羅·73년 작고·건국훈장 애국장)를 만났다. 그의 본부인이 고향의 집을 지키고 있었지만(본부인은 1930년 사망) 상하이로 돌아온 뒤14살 연하의 권애라와 결혼했다. 1897년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한 권애라는 개성 호수돈여학교를 다니면서 3·1의거에 참가,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그후 이화학당을 졸업한 권애라는 상하이 애국부인회에서 활약하는 등끊임없이 독립운동 대열에 참여하다가 신징(新京)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1923년 2월 독립운동사상 최대 대규모의 무기밀반입 거사가 있었다.의열단이 국내에 아지트를 만든 뒤 대규모 투쟁을 벌이기 위해 많은 양의 폭탄과무기를 국내로 수송한 공작이었다.1923년 2월초 김 의사는 중국 톈진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으로부터 다량의 폭탄과 무기 및 ‘조선혁명선언’,‘조선관공리에게’라는 선전문서를 인수했다.“동포들에게 설날 떡을 선물한다”고 표현한 그는 평소 포섭해둔 황옥(黃鈺) 경부(警部)를 동반,안동현으로 향했다. 그러나 서울에 도착한 뒤 밀고자가 생겨 관련자들이 속속 체포되었고 김 의사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았다.1930년대 김 의사의 활동은 군사간부학교 학생모집과 배신자 처단,투옥생활의 연속이었다.1929년 출옥후 곧바로 지린으로 망명한 김 의사는 그곳에서 독립군양성소 설립을 추진하다가 중국관헌에게 체포돼 3개월 동안 고초를 겪고 중국 본토로 이동하여 1932년 의열단지도부와 재결합하였다. 마침 의열단은 난징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설립,초급장교를 양성하고 있었다. 그는 베이징지역에서 학생모집 활동을 하는 한편 노을룡(盧乙龍)과 함께 한삭평(韓朔平)이라는 배신자를 처단하러 나섰다.이 의거로 체포된 그는 살인미수혐의로 1935년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나가사키형무소에 수감되었다.1939년 9월 출옥후 이듬해 4월 다시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1940년대에도 그는 역시 항일투쟁과 옥중생활로 보냈다.1941년에 국내와 베이징을 오가며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일본영사관 구치감에서 약 1년간 미결수로 생활했다.경성헌병대로 이감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또다시 베이징으로 탈출하였고,항일민족전선군을 조직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그러다가1944년 베이징헌병대에 다시 체포당한 그는 1년간 수감생활을 보내다가 1945년 서울로 이송되었고,해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1950년 5·10선거에서 민의원에 당선(안동 갑구)되어 정치활동을 펴면서 혁명가로서 그의 면모는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새롭게 타올랐다.제2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은 대통령직선제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그러나 1952년 1월 절대 다수의 반대로 부결되자 이승만은 민족자결단·백골단 등 폭력조직과 관제 데모대를 동원,연일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7월에 국회의원을 연금시키고 테러를 벌이면서 이미 부결된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발췌개헌안’을 끝내 통과시켰다.이승만의 이러한 행위가 전개되는 와중에 김 의사는 동지 유시태(柳時泰)와 함께 이승만을 처단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이 거사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4·19혁명으로 석방되었으나 1966년에 서거,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김 의사는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자는 포상받을 수 없다’는규정 때문에 독립유공 공적마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김 의사는 아내 권애라를 평생토록 ‘동지’라고 불렀다.마지막 가는 길에도 그는 아내에게 “권 동지,미안하오.내가 조국독립을 위해 몸바쳐 투쟁했는데 반쪽 독립밖에 이룩하지 못했소.남은 생을 조국통일 사업에 이바지해주오”라는 말을 남겼다.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 *김시현 의사 후손근황과 기념사업 김시현 의사는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김 의사의 부친은 구한말의병활동을 하였으며, 둘째 동생 정현(禎顯·건국훈장 애족장)씨는 중국에서독립운동을 하다가 관동군에게 처형돼 유해조차 찾지 못한 상황이다. 김 의사는 항일동지이자부인인 권애라 여사 사이에서 일점 혈육을 남겼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살고 있는 김 의사의 외아들 봉년(峯年·77)씨는 1922년 중국에서 태어났다.중국 옌지(延吉)에서 농업학교를,옌안(延安)에서 항일정치군사학교를 졸업한 봉년씨는 해방후 고향에서 면의원을 역임하였으며,대한중석에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지금은 은퇴했다.2남2녀.장남 우일(宇鎰·40),차남 홍일(弘鎰)씨는 모두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편 김 의사는 경북 예천 선영에 묘소가 마련돼 있을 뿐 뚜렷한 독립운동공적에도 불구하고 서훈은 물론 추모단체나 기념물 하나 없다. 이는 김 의사가 1954년 1월 이승만 전대통령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된 탓이다. 봉년씨는 “부친의 이승만 전대통령 암살미수사건 관련부분은 당국으로부터 특별사면을받은 만큼 원인무효가 됐다고 본다”며 “그동안 보훈처·청와대 등에 진정해봤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어 현재 서울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놓은상태”라고 밝혔다. 봉년씨는 또 “1923년 봄 의열단원들이 일제통치기관 폭파,일본인 요인처단을 목적으로 폭탄을 밀반입하다 적발된, 소위 ‘황옥 경부사건’은 주모자가부친이므로 ‘김시현의사사건’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경찰 이대론 미래없다”지휘부 첫 합숙 워크숍

    ‘경찰 대개혁 100일 작전’의 시동이 걸렸다. 경찰청은 전국의 경무관이상 간부 45명이 참가하는 ‘경찰개혁 워크숍’을26일부터 1박2일동안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갖는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지휘부가 합숙 워크숍을 통해 반성과 개혁의지를 다지는 자리를 갖는것은 경찰창설 54년 사상 처음이다. 지난 15일 취임이후 치안감 및 경무관 전원을 교체,인천 호프집 비리사건이후 만신창이가 된 경찰의 분위기 쇄신의 선봉에 나선 이무영(李茂永)신임 경찰청장은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개혁지침을 밝히고 바람직한 경찰개혁방안에대해 참석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 청장은 이 자리에서 “국민들이 비난하는 경찰의 수많은 비리와 부정에대해 간부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개혁의 전투 지휘관으로거듭나지 않는 간부들은 경찰조직에서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할 방침이다.이 청장은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경찰 대개혁 100일작전’의 구체적인 복안을 밝히고 세부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것으로보인다. 경찰은 100일작전을 통해 민생치안,시국치안,대국민서비스 등 모두 131건의개혁과제를 실천,국민의 경찰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노주석기자 joo@
  • 불교신문 한국불교 1000년 10대 사건 선정

    지난 1,000년동안 한국 불교사에 굵은 획을 그은 사건 10건을 꼽으면 어떤것이 있을까. 불교신문은 최근 새 천년을 앞두고 ‘한국불교 1,000년 10대사건’을 발표했다.이 10대 사건은 도법 실상사 주지,종림 고려대장경연구소장,목정배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장 등 불교사 관계 전문가 11명이 공동작업을 벌여 선정한 것.10대 사건을 요약한다. ■구산선문의 완성 신라 헌덕왕 13년(821년) 당나라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받아 귀국한 도의국사가 가지산문을 연 이래 실상산문(홍척),동리산문(혜철),봉암산문(긍양) 등이 생겨난다.이후 구산선문은 선종이 한국불교의 종지종통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려대장경 조조(肇造) 고려 현종 2년(1011년) 거란병이 송도를 침공하자나주로 피난한 임금이 국력을 모아 대장경판을 새겼다. ■정혜(定慧)·백련결사(白蓮結社) 운동 고려불교가 개경의 귀족 중심으로흐르면서 타락하기 시작하자 지눌은 1190년 정혜결사,요세는 1216년 백련결사를 만들어 도반들과 수선(修禪)에 힘썼다. ■임제종(臨濟宗) 법통 전래 1346년 원나라로 건너간 보우국사는 임제종18대법손인 석옥 청공을 만나 법맥을 전수받고 돌아온다.보우국사는 한국불교 선맥의 시조로 꼽힌다. ■제종(諸宗) 통폐합과 억불(抑佛)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공신들은 고려말 이래 계속돼온 배불운동을 새 왕조의 정책으로 삼고자 노력했다.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 억불책으로 빈사상태에 놓였던 불교는 세조 대에이르러 불경의 한글번역을 통해 다시 생기를 찾았다. ■임진왜란 승병활동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유정·영규 등이 각지에서 승병을 이끌고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초의·백파 선 논쟁 19세기 초 초의와 백파는 선 수행의 종류를 둘러싸고논쟁을 벌였는데 양측 제자와 당대의 석학들이 가세해 근대 한국불교 최대의논쟁으로 비화됐다. ■도성 출입금지 해제 1895년 조정은 조선 초부터 유지돼온 승려의 도성 출입금지령을 해제해 이때부터 한국불교는 산승(山僧)시대를 지나 근대불교로변모하는 계기를 맞았다. ■불교 정화(淨化)운동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를 계기로 촉발된 비구-대처승 간 분쟁으로 태고종에서는 법난(法難)으로 부른다.
  • MBC ‘일상탈출 야호’ 31일 첫회

    54년 인생에 해외여행이라고는 꿈도 꾸어본 적 없는 장의사 박길창씨,7년동안 다른 사람의 여행 뒷바라지나 했지 한번도 자신만의 길을 떠나보지 못한스튜어디스 박은정씨,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여행을 통해 자신을 충전하려는 대학생 김지은양,바쁜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댄스그룹 ‘구피’의 래퍼 신동욱,이 네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읊조리며 그 눈덮인 정상에 오르는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그 꿈이 이루어졌다. MBC가 31일 오후6시 방영하는 오락 프로그램 ‘일상탈출 야호!’(기획 장덕수)에서다.요즘 유행하는 시청자 참여 성격의 극대화이다.TV가 내꿈을 이뤄주다니.TV를 지켜보는 안방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낄 것이다. 이런 사람도 있다.가족이나 친한 친구를 제외하고는 도저히 의사소통이 안될 정도로 말이 빠른데다 ‘딱’이라는 의성어가 수시로 터져나오는 김영훈씨.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잘못된 언어습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그의 간절한 소망도 풀어준다.이렇게 TV는 사람들 마음속에간직한 꿈을 풀어주는 마법사로 둔갑하고 있다. 이번 프로는 오락물이면서도 MBC교양제작국이 처음으로 제작을 맡아 ‘건전한 오락물’이라는 기치 아래 주말저녁 시간에 전진배치했다.지난 18일 개편안에 포함돼 있었음에도 31일 첫방송이 나가는 이유는 출연자 섭외와 진행자선정,포맷 개발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탤런트 채림 등의 의사를 타진했으나 탤런트 김호진과 김선아,개그맨 이성미에게 진행을 맡기는 현실적인 선택으로 귀결됐다. 교양PD가 만든 오락물은 이렇게 다르다는 차별성과 시청률이라는 두마리의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임병선기자 bsnim@
  • [민속마을을 찾아서] 경주 양동

    조선시대 양반 마을의 전통이 잘 보존돼 있는 양동민속마을.역사의 향기가담겨 있는 옛 기와집들은 조선시대 건축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궁궐의 위엄은 아니지만 옛 선비들의 당당함이 배어 있는 고풍스런 고가들.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한 단면이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뎌내며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양동마을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설창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100채가 넘는 기와집과 초가집,노비들이 살던 가랍집 등 150여채의 집들이 숲과 나무 그리고 실개천과 어우러져 서정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정부는산업화 과정에서도 전통가옥의 모습을 잃지않은 이 마을을 지난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했다. 양동마을은 문헌상으로 15세기 양민공 손소(1433∼1484)가 처음 들어와 그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돼 있다.손소는 1467년 이시애의 난을 진압할 때 공을 세운 인물.그의 아들 손중돈은 중종 때 판서를 지냈으며 외손자인 회재 이언적은 조선시대 18현(賢)중의 한명인 저명한 성리학자.경주권의 대표적인유림세력을 형성하며 월성 손씨와 여주(여강) 이씨의 가문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양동마을에는 국가지정 문화재 18점과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5점,향토문화재 8점등 많은 문화유산이 옛 영화의 한 단면을 전해주고 있다.국가지정 문화재는 국보 283호인 통감속편(중국의 편년체 역사책),손소 영정과 조선시대전통가옥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무첨당·향단·관가정 등 4점의 보물,그리고 월성 손씨 종가집,안락정,강학당,낙선당,심수정,근암고택 등 중요민속자료 13점 등이다. 전통가옥들은 설창산의 안골·두동골·물봉골·장태골 등 4개의 골짜기를중심으로 배치돼 있다.이 마을은 설창산에서 뻗어내린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 형태를 한 명당이라는 전설의 땅.3명의 현인이 나타난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양동마을의 집들은 우리나라 고건축의 역사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대표적 건축물의 축조 배경과 그 건물의 구조 및 배치에는 월성 손씨와 여주 이씨간의 대립과경쟁관계가 반영돼 있어 더욱 흥미롭다.두 집안은 혼인관계로 맺어져 오며시대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반복해 왔다.그 경쟁의 관계가 마을의 전망 좋은 언덕받이에 손씨 종가인 서백당(1454년경 건축)과 이씨 종가인 무첨당(1460년경 건축)이 각각 자리잡고 있는 집의 배치에서 잘 나타난다. 건축 경쟁의 절정은 관가정과 향단.관가정과 향단은 모두 이 마을 부의 원천이었던 안강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을입구 언던받이에 있다.중종때 이언적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 지은 향단은 50년전에 건축한 외삼촌(손중돈)의 관가정을 규모에서 압도하고 있다.손씨들이 주도하던 고향마을에 자신과 가문의 입지를 세우기 위한 도전적 건축이라 할 수 있다.당초 99간으로지어진 이집은 가장 큰 저택이었다.지금은 51간으로 보수돼 있다.두 집안을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만들어진 배경을 이해하고 양동마을을 찾으면 더욱 알찬 답사여행이 될 것이다. 양동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신분제도와 건축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역사의현장.조선시대 신분사회의 위계질서가 집의 위치에서 그대로 나타나 있다.대종가일수록 높고 전망 좋은곳에 자리잡고 저택 밑에는 가랍집이 지어져 있다.해방초기만 해도 가랍집이 40여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20여채로 줄었다.관리사무소 (0561)762-4541 [경주 양동마을 가는길]■가는길 경부고속도로 영천IC로 나와 포항으로 가는 28번 국도를 타고 안강을 지나 제2강동대교가 끝나는 지점 신호등에서 좌회전하면 양동마을 입구(영천IC에서 34km).경주에서 15분마다 출발하는 안강행 버스를 타고 양동마을입구(30분 소요). ■주변 관광지 경주와 인접해 있어 경주관광과 연계하면 더욱 알찬 여행이될 수 있다.이언적 선생의 저서와 친필 등이 보존돼 있는 옥산서원도 가까이있다. 양동(경주) 이창순기자 cslee@
  • 독립운동가 遺骸 4위 국내봉환

    일제시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선열 유해 4위가 광복 54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처는 27일 만주지역 독립운동가 구춘선(具春先·1857∼1944),이응삼(李應三·1892∼1963),전인학(全麟鶴·1898∼1957),원용서(元用瑞·1878∼1919)선생 등 4위의 유해를 28일 국내로 봉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196위 가운데 66위가 국내로 봉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되게 됐다. 유해는 28일 오전 11시 김포공항으로 들어와 오후 3시 대전국립묘지에 도착,조병세(趙炳世)국가보훈처 차장과 광복회원,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안장식을 갖고 애국지사 제2묘역에 안장된다. 우득정기자 djwootk@
  • ‘구텐베르크 성경’ 인터넷에 띄운다

    [마인츠(독일) DPA 연합] 세계출판사상 가장 오래된 책의 하나인 ‘구텐베르크 성경’이 곧 원래의 포맷대로 인터넷상에 뜨게돼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볼 수 있게 된다. 1454년에 간행된 구텐베르크 성경을 인터넷에 올리려는 계획은 지난 8월 독일 북부도시 괴팅겐에 있는 마인츠대학에서 시작됐다.이 계획의 목표는 고선명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1,282쪽의 이 책을 디지털화하는 것. 원본의 전자화된 복본이 인터넷을 통해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라틴어로 쓰여진 이 구텐베르크판(版)은 쪽당 42줄로 되어 있어 B42로 불리어진다.이 판은 “특히 아름다운 삽화로 장식된 것”이라고 이 계획의 기획자들중 한사람인 에른스트 피셔 교수가 말했다. 이 책은 인쇄술에 있어 걸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구텐베르크 성경책들은지극히 드물어 현재 전세계에 불과 38∼39권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 성경은 오는 12월 www.sub.unigoettingen.de/gdz.gutenberg/index1.htm. 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그리고 이 성경의 전문을 수록한 CD롬도 12월에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 [日 核무장 할것인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

    일본은 핵무장을 할 것인가.지난 19일 핵무장 필요성을 주장한 일본 방위청차관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의 발언은 주변국을 바싹 긴장시켰다.일본 보수세력의 의중을 드러낸게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었다.일본 정부는 니시무라 차관을 전격 경질하고 비핵3원칙을 거듭 확인했으나 한번 불거진 의혹은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핵무장 가능성을 짚어본다. ●핵개발 및 전략 핵정책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총리 같은 보수정치인이 주도해왔다.나카소네의 결정적 역할로 54년 3억엔의 ‘과학기술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됐다.이 예산은 전후 일본 핵개발의 첫걸음이 됐다.이후 일본은 ‘원자력기본법’,‘전원(電源)3법’을 제정,핵개발과 정책을 이끌어왔다. 일본은 핵정책의 기조가 해외의존도가 높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핵기술의 자주적 개발을 통해 일본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핵개발이 핵에너지 이용이라는 평화적 목적에 있다는 논리다.그러나 동전의 앞면같은 이 논리의 뒷면에는 핵잠재력을 확보해 외부의 위협에대처하겠다는 속셈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사실상 일본은 핵무장에 필요한모든 물자와 기술을 갖고 있는 ‘핵무기 준보유국’이다. 일본의 핵무기 개발 역사는 2차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패전 직전 구일본군이 원산 앞바다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증언은 이를 뒷받침한다.67년에는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총리가 핵무장을 검토하라는 비밀지시를 내리기도했다.세계 3위의 원전 설비국인 일본이 핵무장으로 돌 경우 순식간에 중국을 능가하는 핵강국으로 돌변할 수 있는 이유는 핵저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장 가능성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핵무장은 미국이 일본에 대한 핵우산을 걷는 상황이전제되는 미일 안보동맹의 파기를 의미한다.현단계에서 미일동맹이 파기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동맹체제를 깨고 독자적인 방위태세를 갖추는 것이 일본 안보와 국익에 최선이 아님을 지금의 일본 정책결정자들은 인식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견제도 핵무장을 저지하는 안전판이다.특히 북한의핵보다 더 무서운 일본의 핵무장은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갈등을 높이고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국내 사정도 여의치 않다.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 국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평화헌법’과 핵무기의보유,제조,반입을 금지한 비핵 3원칙을 수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가능성은 존재한다.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은 지난 21일 ‘99 서울경제포럼’에 참석,“일본의 핵무장은 고려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밝혔다.적어도 니시무라 발언은 일본의 핵무장 논의의시발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그런 점에서 보수세력의 속내를 반영한 것으로보이는 그의 발언은 계산된 것이든 돌출된 것이든 나름대로 ‘성공’한 셈이다.일본이 중국,러시아와 적대관계로 되거나 북한의 핵위협이 고조될 경우일본이 돌연 핵 무장을 선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日 核무기 제조능력은 현재 일본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일본은 53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용하는 미국,프랑스에 이은세계3위의 원전국으로 현재 2기를 건설중이다.전력생산중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33.4%로 핵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원자력위원회 원전 운용계획에 따르면 2010년까지 80∼90t의 플루토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중 55t을 이달초 핵누출사고를 낸 도카이무라(東海村)등 국내 재처리시설에서 생산하고 30t을 프랑스 영국에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연료로 쓰고 발생한 잉여 플루토늄의 양은 분석가에 따라 다르지만 미 핵군비통제센터는 2010년까지 일본이 100t의 플루토늄을 보유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정부의 공식통계로는 5t 가량에 불과하다.플루토늄의 비축은 핵무기제조의 주원료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난달 프랑스 등에서 들여온 플루토늄·우라늄 혼합연료(MOX) 440㎏이 핵폭탄 60개를 제조할 수 있는 양으로 볼때 최소 추정치 5t으로도 1,000개의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핵무기 제조에 쓰이는 플루토늄 확보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나 몬주 같은 고속증식로의 열판에서 순도 높은 플루토늄을 분리하는게 가장 일반적이다. 또한 핵무기 제조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게 정설이다.도카이무라에 있는 핵연료주기기술연구시설(RETF)과 레이저분리(LIS)기술은 고순도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하고 있다. 더욱이 단시일내에 대대적인 핵무장이 가능한 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일본의 통신위성 개발은 상업용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위성발사에 쓰이는 로켓은미사일로의 전용이 가능하다.일본의 H-2 로켓은 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성능과 맞먹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핵탄두와 격발장치를 운반수단에 장착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다.F15전폭기 및 E-2C등 공군력,이지스 군함 및 잠수함 등을 보유하고 있어 언제 어디서든 핵운반은 가능하다. 이밖에 레이저 농축,플루토늄 제련,핵융합 등 핵관련 기술과 자원,기자재의 잠재력은 선진7개국(G7)중 선두를 달리고 있다.핵전문가들은 일본이 핵무장을 결심하면 4∼5개월내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황성기기자
  • [사설]‘정권교체 印尼’의 앞날

    인도네시아의 새 대통령에 제2야당인 국민각성당(PKB)의 압둘라흐만 와히드후보가 당선됐다. 독립후 54년만에 처음으로 인도네시아가 헌법절차에 따른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것은 인도네시아는 물론 아시아의 민주주의발전을 위해 환영할 일이다.온건한 성향의 회교지도자인 와히드대통령의 취임으로 수하르토 퇴진이후 혼란과 불안이 계속돼온 인도네시아가 국민적 통합을 이루고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기 바란다. 그러나 평화적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앞날은 여전히 불안한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수하르토를 승계하여 지난 17개월동안 집권해온 하비비대통령의 후보사퇴로 집권 골카르당의 후보가 없는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협의회(MPR)는 예상과 달리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있는 민주투쟁당(PDIP)의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여사대신 와히드후보를 택했다.선거결과에 반발하여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메가와티 지지자들을 진정시키고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 와히드대통령에게 닥친 당장의 과제이다. 와히드대통령 앞에는수하르토정권의 장기독재가 남긴 부정·부패구조를 척결하고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며 국민들이 바라는 민주화와 개혁을 이루어야하는 어려운 과제들이 쌓여있다.내분으로 대통령후보조차 내지못했지만오랜 집권당이었던 골카르당을 비롯한 보수·기득권세력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지금까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군부의 동향도 새대통령에게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동티모르에 이은 다른 지방들의 분리독립운동을 해결하는 난제도 남아있다. 인도네시아가 안고있는 산적한 과제들이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되었다고하여하루아침에 모두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와히드대통령은 건강상의문제에다 정치적 기반도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2년의 장기독재정권을무너뜨리고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이룬 민주 시민들의 힘이 다시 한번 뭉쳐져야만 가능할 것이다.이런 점에서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지지자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호소한 메가와티여사의 자세를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의 정국안정에 그의 역할이 기대된다. 인도네시아의 안정과 민주화는 그 나라의 장래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특히 우리나라와는 많은 교민들과 기업들이 진출해있는데다 교역과 투자, 자원협력 등 외교·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두나라 모두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하의 경제위기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으로 극복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정책집행의 공통점이있다. 인도네시아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 민주주의의 참다운 힘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20세기 문명기행] (3)질병으로부터의 해방

    뇌졸중,암,교통사고,심장질환,당뇨병,자살….지난해 우리 국민의 주요 사망원인이다.순서에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지금부터 100년전 이같은 조사를 했다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폐렴,폐결핵,콜레라,디프테리아,소아마비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20세기 전반 반세기는 일단 걸리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감염성 질환의정복사였다.금세기초 50세에 불과했던 평균수명이 지금 80세 안팎까지 높아진 것은 페니실린을 필두로한 항생제와 각종 예방백신 개발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이와함께 진단기술의 비약적 발전,장기이식 확산,수술기법의 첨단화,유전자발견과 생명과학 발전,먹는 피임약및 발기부전치료제 등장 등이 20세기 의학적 성과로 특징지워진다. 감염성 질환 정복의 실마리가 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렌즈기술자였던 안톤 레벤호크가 개발한 현미경이었다.그때까지 콜레라,디프테리아,결핵,폐렴 등 수많은 세균성 질환에 걸린 환자들이 영문도 모른채 죽어갔다.그런 병의 정체,즉 병원균들은 그후 19세기 말까지 현미경렌즈아래 그 실체를 속속 드러낸다.예방백신도 잇달아 개발된다. 이러한 배경아래 20세기 들어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개발됐다.1928년 영국 런던대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연히 페니실린 노테튬이라는곰팡이가 병원균을 죽이는 것을 발견한다.그리고 1942년 곰팡이에서 대량의페니실린을 추출하는데 성공한다.당시 페니실린은 2차대전 부상병 치료에서95%라는 놀라운 상처 회복률을 보였다. 세균말고도 바이러스가 소아마비 등 치명적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알려진것은 20세기 초다.1909년 오스트리아의 칼 란트슈타이너는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처음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1930년엔 전자현미경 개발로바이러스의 구조가 밝혀지고 세포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도 이뤄졌다. 그리고 드디어 1955년 미국의 조너 소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백신이 개발되기전 미국에서만 매년 수천명의 아이들이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거나 다리 불구가 됐다.백신 덕분에 소아마비는 1994년 지구의 서반구에서는 완전히 박멸됐음이 공표됐다.백신이 보급되지 않은 제3세계 오지에서만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진단의학은 현미경에 X레이가 힘을 보태면서 눈부신 발전을 시작한다.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발견한 X레이는 기존의 현미경 이론과 접목해 인체속을 수술 없이 처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는 더욱 발전해 여러가지 각도로 방사선을 쏘여 그 결과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컴퓨터 단층 촬영장치(CT)와 핵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개발로 이어졌다.인체 내부를 정교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진단기술이 발달하고 첨단 의료기기들이 등장함에 따라 수술기법도 눈부시게 발전했다.각종 장기는 물론 혈관 속까지 손금보듯 관찰하며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그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 장기이식수술이다.1954년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신장이식수술이 이루어져 장기이식의 장을 열였다.1967년에는 남아공에서 인공심폐기를 이용,신장이식보다 훨씬 어려운 심장이식에 성공했다. 20세기 중반이후 미생물학의 진보는 현미경이나 방사선을 이용해 인체기관을 식별하는 전통적 기술을 넘어서고 있다.분자생물학 발달로 이제 과학자들은 인체조직을 더이상 물리적 특성에 의해 식별하지 않고 유전자 구조를 통해식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초는 1953년 미국의 왓슨과 영국의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형 구조를밝히면서 제공했다.유전자 연구는 이후 가속도가 붙어 DNA 복제와 확대가 가능하게 됐다.유전자 연구는 암 등 지금까지 한계에 부딪쳤던 난치병 치료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먹는 피임약과 발기부전 치료제 개발도 20세기 의학의 성과에서 빼놓기 어렵다.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러셀 마커 교수는 1960년 멕시코에서 자생하는 백합과 식물 ‘얌’에서 추출한 스테로이드계 물질 프로게스테인을 이용해 피임약을 개발했다.그것은 인체의 호르몬 생성과정에 간섭해 배란을 방해하는기전을 가진 피임약이었다.경구용 피임약 개발은 의학적 성과와 함께 인구억제와 여성의 임신에 대한 공포 해소 등 사회적인 기능까지 수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시판될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는 20세기를 마감하는마지막 의학적성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부작용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비아그라는 각종 질환에 의한 발기부전 환자와 노인 등에 ‘청춘’을 되찾아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세기 의학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금세기들어 계속 줄어들던 감염성 질환 사망자가 81년 이후 증가추세를보이고 있다.80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에서는 감염성 질환에 의한 사망이 58% 늘어났다는 충격적 보고도 있다.그 주범은 바로 에이즈다. 에이즈환자는 1981년 처음 발견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돼 왔다.미국에서는 몇가지 치료제를 혼합해 사용하는 방법으로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이 줄고 있지만,치료제를 살 능력이 없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경우 사망요인의수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 노약자들의 폐렴이나 독감으로 인한 사망률도 증가 추세에 있다.이는 세균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기 때문이다.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반코마이신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은 21세기에도 20세기에 이어 감염성 질환과의 전쟁을 치러야하는게 아닌지 우려를 낳게 한다. 거침없이 돌진하는 생명과학 연구와 사회적 가치체계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도 21세기의 커다란 과제다.동물복제가 이미 일상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간의 정체성 보전이 강력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자는 물론 과학자 조차도 과학발달이 인간에게 행복을 줄 것인가에 회의적인 이들도 있다.건국대 생물학과 조명환 교수(43)는 “인간 행복을 위한 과학의 역할에 논란이 있다면 이를 무시하면 안될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는 “그럼에도 대부분의 과학자가 맹목적인 과학발전을 위해 끌려가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21세기에는 질병과의 싸움이라는 20세기에졌던 짐에 더해,탈인간화하는 생명과학 연구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한 짐까지 져야할지 모른다임창용기자 sdragon@
  • [쉽게 읽기] 문명이 준 상처 지혜로 극복

    인디언들에게도 세대 차이는 있는 것 같다.비장한 울림을 전해주던 시애틀추장의 연설문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를 기억하는 나에게 이 책은 문명인이 된 그 후예들의 삶을 들려 준다.1854년,대대로 살아온 땅을 팔라는 백인들의 제안에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반문하던 그 때부터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그 아름답던 사람들은 지금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책을 쓴 ‘곰의 마음’은 인디언으로서는 매우 성공한 현대인에 속한다. ‘곰 씨족’인 아버지와 ‘바람 씨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곰의 공격을 받고도 “나는 너를 내 아버지로 존경한다”고 말하며 대화를 나눌만큼 용감한 인디언이면서 동시에 세인트 존스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심리학자이기도 하다.그들은 사라진 전설이 아니다.지금도 어느 도시 한켠에서 문명에 적응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물려 받은 지혜로 문명이 입히고간 정신의 상처들을 치유해 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인디언 주술사로서의 길과 인디언 교회의 전도사의 길을 함께 걸어온 그에게서 두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이상할 정도다.그러나 그것은 문명의 시각에서 가지게 되는 의심에 불과할 뿐,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그들은 ‘땀의 움집’에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훈련을 통해 ‘위대한 영혼’을 만나왔던 것이다.일요일 한두 시간을 종교라는 포도주에 영혼을적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삶 전체를 종교로,찬미로 흐르게 만드는 사람들이다.인디언들은 백인들을 ‘종이 부족’이라고 부른다.모든 것을 종이에 남겨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인디언들은 마음에새긴 약속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자연에 대하여,인간에 대하여,‘곰의 마음’은 자신 속에 살아 있는 인디언의 언어를 현대적으로 번역해서 들려 주고 있다.이 세련되고 유쾌한 인디언의 지혜는 현대인의 정신을 치유하는 데 아스피린을 대신할 만한 피요테(그들의 약초)같은것이면서 막다른 위기에 다다른 문명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인디언에게도 세대 차이는 있다고 했지만,어쩌면 그 차이는 거울의 선도의 차이일 뿐 그 오래된 거울은 다행히도 아직 깨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희덕 시인
  • [장청수칼럼] 한반도 脫냉전 기류와 후속과제

    지난달 12일 베를린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조건부 중단합의를 이끌어냄에 따라 북·미관계는 획기적 전환기를 맞게 됐다.미 행정부가 의회의 승인 절차가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대북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함으로써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와 협력의 길을 열게 됐기 때문이다.북한상품의미국내 반입과 미국상품의 대북수출 허용을 비롯해 북·미간 민간 및 사업용 자금의 송금이 가능하게 됐다.농업과 광업등 사회간접자본과 관광부문에 대한 미국기업의 대북투자도 이뤄질 수 있게 됐다.이같은 미국의 조치는 한국전쟁 이래 50년동안 지속돼온 대북제재의 빗장이 풀렸다는 점에서 획기적인사건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한·미·일 3국의 합의에 의한 ‘페리보고서’가 북한에 제시됐다.향후 대북 정책방향의 지침서가 될 페리보고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생화학무기등 대량살상무기(WMD)개발중단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고 남북간의 평화공존체제를 확고히 한다는 전제아래 중·장기적 목표와 정책권고사항을 제시했다.페리보고서는 대북 포용정책을 기본바탕에 깔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중단과 북·미,북·일관계 개선,남북관계 진전을 연계해 3단계의 포괄적 접근방식을 통한 한반도 냉전종식을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단과 미국의 대북경제제재 완화조치로 연계된 포괄적 대북포용정책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대장정에 중요한 첫걸음을 디뎠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또한 북한으로 하여금 경제회생과 체제생존을확실하게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도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실제로 베를린 북·미협상 타결 이후 한반도에는 탈(脫)냉전기류가 엿보이고 있다.남북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어느 정도의 진전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남북대결을 벌인 북한 남녀농구단이 오는 12월 서울을 방문해 현대농구단과 경기를 갖기로 함으로써 남북 스포츠교류가 폭넓게 이뤄질 전망이다. 북한 농구단의 서울방문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직접 지시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그리고 현대가 북한의 서해공단개발을 위해 내년초에 착공키로 합의하는 등 남북경협의 규모가 점차 증대되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 성과다.특히 서해공단 개발사업 협의를 위해 김용순(金容淳)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이 12월중에 서울을 방문키로 합의한 것은 하반기 남북관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할만한 의미있는 진전이다.김용순의 방한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회생과 우리정부가 요구해왔던 남북관계 개선 문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빅 이벤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의미있는 변화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금강산 관광객의 신변안전보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금강산 관광객이 12만명에 이르고 있으며,민영미씨억류사건 이후 재개된 금강산관광에서 북한체제를 비난발언한 관광객과 북한 환경감시원에게 월북의사를 표명한 관광객을 정치적으로 문제삼지 않은 것은 남북 상호신뢰 구축과 협력증진의 긍정적 징후로 보여진다.최근 한반도에 흐르고 있는 이같은 탈냉전 기류는 국민의 정부가 확고한 목표를 두고 일관되게 추진해 온 대북포용정책의 성과로 평가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임기중에 54년동안 계속되어온 한반도의 냉전을 기필코 종식시키겠다는 자신감과 의지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해방이후 처음으로 우리가 한반도정책을 주도하는 입장에 선 만큼 한·미·일 3국의 대북포용정책 공조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기필코 이끌어내야 한다.3국이 북한에 대한 적정수준의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그들로하여금 체제불안과 국제적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하며 북한 스스로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그런 바탕 위에서 남과 북이 함께 한반도의 뿌리깊은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민족적 저력을 십분 발휘해야 하겠다.
  • [대한광장] 지진피해 타이완 지원 이유

    일본의 한신 대진재,터키 지진재난에 이어 타이완 전 섬이 몽땅 침몰하는듯한 대참사가 일어나 세계가 경악과 비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최근에는 멕시코에서도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지구촌이 지진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구의 재앙은 천재만은 아닌 것같다.60억 인구의 자연훼손,오염,산업폐기물 투기,불법 매몰,마구잡이 간척및 굴착 등 인재에 자연이 노한 것이 아닌가하는 여론도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타이완은 9월 21일부터 리히터 규모 7.6의 강진과 10일 동안의 크고 작은여진으로 사망 2,060명,부상 8,672명,실종 및 매몰 189명으로 집계됐으며 건물 6,100동이 붕괴·반파되고 5,398동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그러나 실제이 숫자는 정확치 않고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해 사망이 6,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니 얼마나 심각한가를 체감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타이완당국은 지진 구호를 위해 약 3조원(800억 타이완 달러)을 투입하고전국에 6개월간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리덩후이 총통이 재난구제책을 발표하면서 재난지역에 군경파견,생필품 사재기 엄벌 등의 긴급조치를 취하고 있다.국민들도 재해구호기금으로 630만달러를 내놓았고 유력한 대선후보도 내년 대선자금 600만 달러를 전액 쾌척하였다고 한다. 이에 맞춰 우리의 119구조대가 현지에 급파되어 매몰돼 있던 소년을 무너진 건물속에서 구조했다.또 우리 국민 22만명이 모금한 성금을 주한 타이완대표부에 전달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그동안 한국에 가졌던 타이완 국민들의 감정도 좋아져 타이완간의 항공협상이 재개되리라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정부도 9월25일 각의에서 5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이밖에 각종 구호장비와 식량,가설주택,발전기 18대,그리고 건물 안전진단 전문가들과 훈련받은 개까지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은 1992년 중국대륙과 수교하면서 매우 성급하고도 미숙하게,일방적으로 사전 통고도 없이 쫓기듯 매정하게 타이완에 대해 단교조치를 취했다.금싸라기같은 서울 명동의 대사관 자리도 중국측 외교관이 급작스럽게 짐을 챙겨가지고 입주케 했다.이에 대한 울분과 응어리가 가시지 않아 타이완내 한국유학생들은 고통을 당해야 했고,교민들은 고개를 떨구고 골목길로만 다녀야 했다.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신규식,이동녕,김구 등 40여명의 우리 애국지사는 상하이로 가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5)를 수립하고 27년간 국민당과 함께 중국대륙을 이동하며 독립투쟁을 했다.이때 국부 쑨원(孫文) 총통이 임시정부 청사와 식량을 마련해줬고,그가 작고한 1925년부터 45년까지는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물심양면으로 지원,우리 임시정부가 일제 강점하에서대표성을 갖고 국내외 독립운동을 통합할수 있었다. 1940년 3월 13일 중국 지장에서 순국한 이동녕 주석은 유언으로 이런 말씀을 남겼다.“우리가 일제에게 완전 점령당하지 않고 나라를 우리손으로 찾을수 있게 적극 지원한 것은 국민당 총통과 중국민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장 총통은 광복후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까지 수백만원의 건국준비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김구 주석은 환국할 때 장 총통에게 “27년 동안 도와준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예의가 바른 우리나라는 두고두고 갚을 것”이라며 그가 마련해준 고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특히 장 총통은 이봉창의거(1932년 1월 8일)에 이어 윤봉길의거(1932년 4월 29일)를 본 뒤 임정을 적극 지원하면서 “두 나라의 우정과 신의,교류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지금 타이완은 섬 자체가 침몰할지도 모르는 대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일제하의 어려운 시절,우리를 도와줬던 타이완의 재난과 참사를 결코 남의 나라 일로만 바라보고 있어선 안될 것이다./이현희 성신여대교수.현대사
  • [한진·통일그룹 탈세] 2. 어떤 수법 동원했나

    한진그룹은 항공기 도입과정에서 생겨난 거액의 리베이트를 해외유출하거나국내로 일부 반입, 사주의 개인목적에 사용한 것으로 국세청 조사결과 드러났다.일성건설 등 통일그룹 계열사는 허위계약서를 작성하는 수법 등으로 세금을 탈루했다. ■ 한진그룹?리베이트 사용(私用) 대한항공은 91∼98년 중 외국 A,B사(가명)의 항공기를 구매할 때 C사의 엔진을 장착하는 조건으로 받은 리베이트(엔진가격 할인금액)의 일부인 1,685억원을 국내로 들여와 조중훈(趙重勳) 회장과 조양호(趙亮鎬) 회장 등이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실제로 600만달러의 리베이트를 97년 11월26일 국내로 들여오고 98년 7월29일에 이 중 18만달러(2억5,000만원)를 개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3개를당좌수표로 나눠 찾았다.원래 리베이트는 자산으로 계상해 법인세를 내야 한다. ?해외 현지법인에 재산 빼돌리기 리베이트를 조세회피지역(Tax Haven)인 아일랜드 더블린에 100만달러를 출자해 설립한 현지법인 KA사로 넘겼다.국내본사가 받아 장부에 올려야 하는데 해외현지법인에 넘김으로써대한항공 재산 1억8,400만달러가 해외현지법으로 이전돼 814억원의 세금이 누락됐다. 97∼98년 중 중고항공기를 외국기업의 서류상 특수목적회사(SPC) 등에 시가의 70%에 팔고 다시 임차하면서 리스계약 종료후 항공기소유권이 현지법인인 KA사로 넘어가도록 했다.즉 저가양도로 인한 차액 30%(1억9,000만달러)가 KA사로 넘어갔다. 또 외국사의 항공기를 구매하기 위해 96년부터 선급금 형식으로 8,200만달러를 지급하고 이 항공기를 KA사가 금융리스 방법으로 다시 구매토록 하면서선급금 중 2,200만달러만 대한한공이 회수했다.미회수금 6,000만달러는 KA사로 빼돌렸다. ?계열사 부당지원 대한항공은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계열 한진투자증권이 발행한 후순위채 170억원을 고가로 사들였다.또 주가가 3,100원이던 한진투자증권의 유상증자에 참여,94만2,193주를 주당 5,000원에 취득해 대한항공 이익을 부실계열기업에 넘겼다. ?변칙증여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은 90년 이후 자녀들에게 회사자금 1,579억원을 유출시켜 계열사 주식 취득자금으로 썼다.조회장은 94년10월 대한항공주식 75만주를 팔고 이 대금을 5개은행 지점에서 수표로 찾아 본인 명의의종합금융사 어음관리계좌(CMA)에 분산관리하다 95년 1월 조양호 등 6명의 수익증권 계좌에 입금시켰다.이 돈을 유상증자 대금으로 사용했으며 이러한 수법으로 총 967억원의 소득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해외위장 송금 한진해운은 거래은행에 해외송금을 의뢰했다가 취소하는 방법으로 96? 이후 16차례에 걸쳐 회사자금 38억원을 인출해 빼돌렸다.특히해외에 이미 지급한 컨테이너 임차료 40만4,000달러의 증빙서류를 복사해 사용함으로써 이 만큼이 추가로 송금된 것으로 위장했다. ?취득원가 과다계상 한진종합건설은 취득했던 매립지를 양도하면서 취득원가를 정상가액 567억원보다 높은 827억원으로 과다계상함으로써 양도차액 260억원을 적게 신고,특별부가세 64억원을 내지 않았다. ■ 통일그룹?일성건설 95∼98 사업연도 중에 공사현장 노무비를 거짓으로 산정해 공사원가를 실제보다 22억원 많게 계산했다.94년에는 공사대금으로 받은 부동산을 관계사에 23억원에 팔고도 17억원으로 매각한 것처럼 허위계약서를 작성해 차액 6억원을 현금으로 받아챙겼다. ?세계일보 광고국 특별판촉비 14억원을 접대성 경비로 사용한후 회사 주변음식점에서 받은 간이영수증으로 대체해 결손금을 늘렸다.94∼98 사업연도중 판매국에서 신문유가지 확장사업을 하면서 지급한 수당 61억원을 노무비로 처리했다.97∼98년에는 재단에서 무상으로 지원받은 739억원을 이익으로잡지 않았다. ?한국티타늄공업 계열사 대출금 이자 158억원을 수입으로 계상하지 않았고95년7월 공장신축때는 보상비를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회사자금 2억원을 유출시켰다. 추승호기자 chu@ -최대위기 맞은 '한진패밀리' 한진그룹이 창사 54년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한진은 지난 45년 한진운수로 시작해 6·25전쟁의 특수속에 트럭운수사업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66년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항공공사(KNA)를 인수한 뒤 현재 해운·금융·중공업 분야에서 1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6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한진은 재계에서도 유명한 혈족경영체제로 조중훈(趙重勳)회장 일가가 핵심계열사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조회장은 지난 4월 잦은 항공사고의 책임을지고 대한항공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의 총수로 군림하고 있다. 92년부터 네 아들에게 계열사를 물려줬지만 아직도 한진이 ‘1.5세대 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조회장의 장남인 양호(亮鎬·50)씨가 대한항공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을 비롯,차남 남호(南鎬·49)씨는 부친이 회장으로 있는 한진건설 부회장을 맡고 있다.3남 수호(秀鎬·45)씨는 한진해운사장,4남 정호(正鎬·41)씨는 한진투자증권사장으로 있다.조회장을 정점으로 4남이 그룹 핵심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더구나 조회장 일가는 여전히 대한항공의 지분 25.3%를 보유하며 후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지난 4월 대한항공 사령탑에 심이택(沈利澤) 사장을 내세웠지만 외형상으로만 전문경영인체제일 뿐 실제로는 족벌경영을 해 온 셈이다. 당시 대한항공이 잇따른 사고로 조회장의 퇴진이란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내몰린 것을 두고 건교부 안팎에서는 “경영진이 화(禍)를자초했다”고 입을모았다.조회장은 지난 88년 아시아나항공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권과 밀착관계를 유지하며 대한항공을 외형상 세계 10대 항공사로 키웠다.그러나 독점이란 이름아래 서비스 개선에는 늘 뒷전이었으며 항공기 조종사들의 상벌규정을 만들어 무리한 운항을 부추겼다.또 승객의 안전을 도외시한 채 수익성만좇는 경영으로 지난 30여년간 숱한 항공사고를 냈다. 팔순이 다 된 조회장의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대한항공 직원들은 “최고경영자가 (우리를) 먹여살리는 존재로 여긴 나머지 군림하려 드는 것이 가장 섭섭하다”고 털어 놓을 정도다.지난해 8월 회사측은김포활주로 이탈사고 뒤 조회장과 조종사간의 간담회를 추진했다.그러나 조회장은 “그런 것 하면 (조종사들의) 기(氣)만 살려주게 된다”며 이를 거부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조회장은 평소 “창업자에게 은퇴란 없다”는 말을 즐겨 썼다.대한항공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도 수렴청정(垂簾廳政)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심복 중의 한 사람인 심사장을 내세워조씨 일가가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해 놓았다.실제로 ‘조중훈-조양호-심이택 라인’은 지금도 물밑에서 가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박건승기자 ksp@ -통일그룹은 어떤회사 통일그룹은 통일교가 ‘선교를 위한 경영’을 내세우며 운영해온 기업이다. 그룹의 모태는 교주인 문선명(文鮮明)목사가 59년 인천에 세운 ‘예화(銳和)산탄공기총 제작소’로 나중에 그룹의 주력사인 통일중공업이 됐다.60년대후반부터 사업확장을 시작,일성종합건설·일신석재·한국티타늄·㈜일화·선도산업·통일실업·세계일보 등이 그룹 계열사로 합류했다.최대주주는 통일교의 재산을 관리하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유지재단’이며 현재 그룹총수는 황선조(黃善祚) 세계일보 부회장이 맡고 있다. 그러나 통일그룹은 만성적인 경영부진과 방만한 경영,복잡하게 얽힌 계열사간 지급보증 등으로 IMF관리체제 이후 급격히 동반몰락의 길을 걸어왔다.특히 지난해 말 통일중공업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대상에서 탈락한 것이 결정적이었다.현재 통일중공업·한국티타늄·일신석재·일성건설 등 주력 4개사가 법정관리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탈세조사 발표에 대해 “법정관리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터진 이번 일로 그룹 경영정상화가 더욱 힘들어지지 않을까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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