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54년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AI 분석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2026년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주류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561
  •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눈 녹는 마른 숲에

    [박지현] 서릿발 무너지면 황토빛이 드러난다 ㅎ, ㅎ, ㅎ, 언손 녹이는 바람이 불고 있다 아직은 풀리지 않는 단단한 심줄의 땅. 차고 투명한 강물 속에 엎드린 피라미 떼 지느러미 파닥파닥 물풀 하나 흔들어놓는, 저 겨울 껍질을 깨는 뽀족한 눈 하나 있다. 눈 녹는 마른 숲에 텃새 다시 날아오고 뿌리를 감싼 물이 하늘 높이 차올랐다 아득히 잊었던 얼굴 연초록 물이 든다. 꽁꽁 막힌 길을 송곳으로 뚫는 소리 노랗게 물드는 그 울타리 긴 둘레로 가파른 숨결 고를 때 천지가 다 환하다. *시조 당선소감. 시조를 만나면서 내 삶에 허기가 조금씩 가시는 것을 느꼈다.고도로절제되고 응축된 시어,겉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아름다움,그 깊은 맛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늘 내의식의 한 가운데 나만의 비밀열쇠를 거머쥔 채 남몰래 내 길을 닦고 또 닦아왔다.살아 꿈틀대는 운율에 온통 나를 맡기면서….그래,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이젠 꼼짝없이 시조에 갇혀버린 셈이다.생활이 각박해질수록,세상이더욱 감각적으로 치달아갈수록 삶의 진솔한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진정한 그릇은 시조이리라.국적도 모르는 문화와 그 잔재들이 판을치고 있는 요즘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로 뻗어있는 것인지 …. 어려운 길을 함께 걷는 분들께 이제나마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할 일이 많아 늘 허덕이는 나에게 어려운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들께는 마음으로부터의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장롱 깊숙히 묻어둔 패물처럼 소녀적 꿈을 남몰래 꺼내보며 이따금즐거워하시던 친정어머니,고려대 문창과 교수님과 학우들,그리고 내일처럼 기뻐해 줄 친구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본명 박옥실 ▲1954년 부산 출생 ▲현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중
  • [외언내언] ‘上里果園’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륭(隆隆)한 흐름이다.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웃음판이다/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중략)/…멧새,참새,때까치,꾀꼬리,꾀꼬리새끼들이 조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1954년 현대공론 11월호에 실렸던 미당(未堂)의 시 ‘상리과원(上里果園)’의 일부다.과수원의 꽃을 보며 느낀 삶의 기쁨을 그린 것으로보이는 이 작품의 현장은 논 가운데 있던 과원이다. 당시에는 ‘상리큰과수원’으로 불렸고 현재는 전북 정읍시 상동 시내 한 복판의 정읍교육청 자리다.누이동생이 주인이었던 그곳에 미당이 다니러 왔다가 어린 조카딸들과 그 친구들이 웃어대며 뛰노는 모습을 보며 썼던시가 아닌가 싶다. 지난 24일 타계한 미당을 두고 혹자는 ‘한국의 시선(詩仙)’ ‘살아 있는 한국시사(詩史)’‘시인들 다 합쳐도 미당 하나만 못하다’는 등찬탄을 아끼지 않는다.한편 그의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의 행적을 두고 ‘친일파’ 또는 ‘친권력적’이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이런 엇갈린 평가속에서 사람들은 예술과 인간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주장하기도 한다.아마 그의 행적이 그의 예술이 이룬 성과를 가릴까하는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시만 떼어놓고 볼 때 그는 분명 ‘언어의 주술사’‘한국의 시선’이라는 칭송을 들어 부족함이 없는 시인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일제말기 친일잡지인 ‘국민문학’ 편집일을 보면서 친일시나 종군기를 썼던 일은 설사 당시로서는 ‘대세’였다 할지라도 가족과 가산을 버리고 항일독립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생각해볼 때 ‘시인’이라는 ‘공인’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실수’였다.후에 친일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에 대한 참회없이 변명으로 일관한 것은 그를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또 비록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독재자 ‘이승만회고록’ 집필이라든지,81년 전두환 대통령후보를 위한 TV연설에 나와 그를 칭송한 일 등 ‘친권력적’행적은 그가 이룬 예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미당을 따라다니는 ‘덫’이었다.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죽는다.인간을 떠난 예술이란 허구다.그런 뜻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시인이라는 미당의 타계는 ‘공인’으로서 예술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새삼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그것은 미당시의 아름다운 ‘상리과원’에 드리운 검은 구름이다. 박찬 논설위원 parkchan@
  • 미당 서정주선생의 작품세계

    한국 현대 시사(詩史)에서 미당 서정주의 위치는 확고하다.만 스무살때인 1935년부터 60여년의 시작생활로 1,000편에 가까운 시를 쏟아낸 미당을, 후학인 고은은 “서정주는 하나의 정부(政府)”라고 말한바 있다.수많은 후배 시인들은 ‘한국시의 학교’와 같은 그의 시편을 열렬히 탐구했으며 생존시에 그를 ‘살아 있는 시신(詩神)’으로떠받드는 시 독자들도 부지기수였다. 그의 시는 대다수 현대시처럼 구조분석이나 기호해석을 시도할 필요없이 그대로 주욱 읽힌다.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하기 이전의 직관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며 그 직관은 한국인의 심성에 직통한다. 시어(詩語)도 우리 주변의 흔한 말들이며 후반에 갈수록 고향의 질펀한 남도 사투리가 아름답게 녹아 있다. “신라의 국선도와 불교의 윤회 전생,그리고 민간에 떠도는 온갖 설화를 에두르는 그의 시적 방황 또는 정신사적 편력은 한국인 심상의우주에 떠올라 있는 역사의 총체,생사관,이승과 저승을 한데 아우른다”고 시인이자 평론가인 장석주는 말한다.평론가 천이두는 미당을‘구도의 시인’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한다.미당의 시는 억눌린 정신의 아픔을 노래하는 관능적인 초기시에서부터 신화 정신과 불교적 달관에 이르는 다양한 편력을 거쳤다.이같은 다양한 시세계는 15권의시집 가운데 특히 ‘화사집(花蛇集)’‘귀촉도(歸蜀途)’‘서정주시선’‘신라초(新羅抄)’‘동천(冬天)’및 ‘질마재 신화’ 등 6권에순차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화사집’(1941년)을 통해 우리는 관능과 자의식 사이에서 방황하며갈등에 몸부림치고 고뇌하는 젊음의 모습을 본다고 평론가 천이두는설명한다. 이러한 방황과 갈등을 거쳐 그는 차츰 자아를 각성하게 되며,그것은 ‘고향의 사투리’즉 전통적 가락의 확인에로 나아가는 것이다.이러한 전통적 가락에의 확인은 시집 ‘귀촉도’(1948년)를 통해서 볼 수 있는데 조선(朝鮮)적인 한의 가락에로 이어지면서,고뇌를전통적인 가락으로 다스리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이어 ‘서정주시선’(1956년)의 시편들은 이러한 한을 극복하고 체념과 달관 속에 범속한 일상성을 포용하려는 노력의 산물들로 흔히 설명된다.그래서 현세긍정의 건강한 낙천적 가락이 빚어지는데 미당은여기에 머물지 않고 ‘신라초’(1960년)에서는 생명에의 근원적인 탐구 노력을 시작한다.이 노력은 신라의 불교적 세계 천착으로 이어지며 특히 불교적 윤회에 모든 것을 위치 지으려는 의지가 뚜렷하다.다음 시집 ‘동천’(1968년)에 이르면 이러한 불교적 윤회사상이 신라천착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신앙의 체계를 이뤄,구도자로서의일정한 자세를 정립하기에 이르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머무는 대신 미당은 한걸음 더나가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신화적 원형을 천착하고자 한다.그의 고향 ‘질마재’의 설화적 공간에서 아름답게 개화한 50대 미당의 상상력은 파격적 산문시집 ‘질마재 신화’(1975년)를 낳았다.이 땅의 여느 농촌과 다를 바없는 한 마을을,한국인의 신화가 살아 숨쉬는 마을로 불멸화한 이 시집은 마을에 떠도는 간통 소문,오줌발 소리,죽어 해일이 되어 돌아온이야기 등 온갖 설화와 풍문을 신화이기도 하고 실재 뉴스이기도 한것처럼 뒤섞여 펼쳐보인다. 가끔 방언과토속어의 빈번한 사용 등 미당의 시어가 시적으로 일탈해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시적계산의 결과일 수 있다고 평론가 황현산은 주의를 환기시킨다. 미당의 여러 시(詩)외적인 행적은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다.미당의시가 고뇌나 갈등없이 쉽게 절대 영원이나 초월의 세계로 나아가며그래서 진실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들린다.일부 평론가는,미당의 시는김소월과 만해 한용운, 그리고 조지훈과 김수영에 필적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미당이 없는 한국 현대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평론가 이남호의 말에 한국시 독자 대부분은 공감할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크다란 눈이 나를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만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935년). *上歌手의 노래. 질마재 상가수의 노랫소리는 답답하면 열두 발 상무를 젓고, 따분하면 어깨에 고깔 쓴 중을 세우고, 또 상여면 상여머리에 뙤약볕 같은놋쇠 요령을 흔들며, 이승과 저승에 뻗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안하는 어느 아침에 보니까 상가수는 뒷간 똥오줌 항아리에서 똥오줌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왜, 거, 있지않아,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붕도 앗세 작파해버린 우리네 그 참 재미있는똥오줌 항아리, 거길 明鏡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서 있었습니다.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을 망건 속으로 보기좋게밀어넣어 올리는 쇠뿔 염발질을 점잔하게 하고 있어요. 明鏡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 (1972년). * 미당 선생 연보. ■1915년 전북 고창 출생□29년 중앙고보 입학■35년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입학□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김동리·오장환·이용희 등과 시전문지 ‘시인부락’동인 결성■41년 첫 시집 ‘화사집’출간□48년 제2시집 ‘귀촉도’출간■정부수립과 동시에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54년 예술원 초대·종신회원,서라벌예대 교수■61년 시집 ‘신라초’로 5·16문예상 본상 수상□72년 ‘서정주문학전집’(전5권) 출간■75년 시집 ‘질마재 신화’ 출간□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82년 시집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출간□83년 ‘미당 서정주 시전집’(전2권·91년 개정판)■97년 마지막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 출간
  • 꿈이 있는 우리학교 / 외국어대

    한국외국어대(총장 曺圭哲)는 국제적인 미래형 인재를 양성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21세기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21세기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 세계 유수대학과 학술 및 교육교류협정을 체결하고 해외어학연수단을 파견하는 한편 해외 동문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걸친 한민족 정보망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24개 외국어학과에서 27개 외국어를 가르치는 외대는 버클리대,소르본느대,동경대 등 45개국 93개 최고 명문대학과 공동학위제,학점교환등 교육교류협정을 맺고 있다.동문 7만명 가운데 10%가 세계 200여개국에서 외국어·국제지역·국제통상 전문가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 양성을 건학이념으로 지난 54년에 설립된 외대는 96년 최우수 국책대학,98년 세계화분야 교육개혁 최우수대학 지정 등을 통해 세계화의 주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외국어와 외국학의 메카. 서울캠퍼스는 통역대학원과 외국어종합연구센터 등 외국어 중심의 초일류 대학으로,용인캠퍼스는 각국의 역사와 지역환경 등 지역학을 전문으로 탐구하는 외국학의 메카로 특화시킬 계획이다.이를 위해 지난해 5월 용인캠퍼스에 6,000여평 규모의외국학종합연구센터를 개관했다.이 연구센터에는 국제지역연구소 등24개의 지역학 및 전문분야 연구소가 입주해 있다.이 때문에 국제지역학의 본산으로 불린다. 79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원한 통역번역대학원은 외대의 대표적인대학원.그동안 국제회의통역사와 전문번역사를 비롯해 1,000여명의전문인력을 배출했다.99년 교육부로부터 BK(두뇌한국)21 특화사업단으로 선정되면서 ‘통역번역종합센터’를 발족시켰다. 외국어 분야의 강점은 올해 외무고시 합격자 배출 순위에서 2위라는사실로 입증된다. ◆최첨단 디지털 교육현장. 지난 96년부터 서울과 용인캠퍼스에 고속전산망을 구축,칠판없는 사이버강의를 실시하고 있다.세계 70여개국의 3,800여개 아날로그·디지털 위성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위성수신시스템과 동화상 교육을 지원하는 VOD 교육시스템,최첨단 디지털 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정보통신분야 등 100대 벤처기업 CEO 조사에서 외대 출신이11명으로 1위를 차지했고,올해 공대 취업률은 90%에 달했다. ◆뉴 밀레니엄 리더 양성. 외대에서 영어는 기본이다.불어 등 7개의제2외국어 중 하나는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교육을 한다.또 입학 학과·학부·계열내의 전공을 이수하면서 다른 전공을 이수하는 제2전공제도도 채택하고 있다. 조규철 총장은 “법학과나 경영학과 등 비외국어과 출신도 외국어 1∼2개쯤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전문 인력을 양성,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동환기자 sunstory@. **외국어대 러시아어과 4학년 황수연씨. “짧은 유학생활이었지만 세계를 보는 안목과 자심감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MGIMO)의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지난 1월에 돌아온 황수연씨(26·러시아어과 4년·사진)는러시아에서 체득한 경험을 이같이 요약했다. 러시아 학생들과 똑같이 전공과목을 들으며 공부했던 황씨는 프랑스,독일,일본 등 각국에서 온 외국인 교환학생중 처음으로 모든 과목에서 ‘A+’를 받는 기록을 세웠다. 러시아 외무부 소속으로 최고의 학부로 인정받고 있는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는 외교관만 전문으로양성하는 특수대학이다. 황씨는 “러시아 경제,역사,언어,국제관계로 집약된 교과내용 때문에 잠시라도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며 쉽지 않았던 교육과정을소개했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황씨는 “정치,경제,행정의중심지인 크레믈린궁과 금세기 최고의 건축물인 바실리성당을 돌아보며 엄청난 규모와 섬세한 아름다움에 새삼 놀랐다”면서 “볼쇼이 극장에서 본 오페라 ‘백조의 호수’와 유럽의 창으로 불리는 페테르부르크시를 찾았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 꿈이있는 우리학교/ 원광대

    ‘새천년 새 비전을 제시하는 교육개혁의 선두주자’ 원광대가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호남 제1의 명문사학’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북 익산시 신룡동에 위치한 원광대는 1946년 원불교에 의해 설립된 종립학교.원광대는 반백년의 역사 동안 15개 단과대학 21개 학부(54전공) 18개 학과에 전교생 2만3,000여명의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107개 동아리에 6,200여명의 학생들이 다양한 특기·적성 활동을 펼치고 있다.54년 동안 8만여 동문을 배출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정신에 바탕해 ‘과학과 도학을 겸비한 인재양성’을 건학의 기본정신으로 삼고 있다. 원불교재단 대학이지만재단의 간섭은 거의 없는 편이다. ■개혁과 도약 특히 시대적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정보화·세계화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는 등 ‘원광비전 21’을 수립해 다른 대학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원광대는 정문에 들어서면서부터한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다.50여만평의 부지는울창한 숲과 호수,조형미를 갖춘 건물이함께 어우러져 전국에서도캠퍼스가 가장 아름다운 학교중에 하나로 꼽힌다. 4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 촬영무대가 되기도 했을 정도다. 원광대는9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리 없는 개혁’을 꾸준히 단행해왔다.그결과 각 부문에서 명실공히 호남 제1의 사학으로 도약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한다. 두뇌한국(BK)21사업에서도 4개분야 가운데 전자정보,한의학,약학 등 3개분야가 선정됐다.이 역시 충청·호남지역 대학중 유일하다. 2000년 의학분야 우수대학 평가를 받은 원대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SCI(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논문 실적이 전국 6위에 랭크됐다.교수연구분야는 전국 7위를 차지했다.법과대학도 2000년 전국 대학 법학분야 평가에서 호남·충청권에서 최상위에 랭크됐다.우수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해 4년간 등록금 면제,고시관 입실,숙식제공,학습지원금 지급 등 각종 특전을 주고 있다.고시특강 영상강의실,고시정보자료실,정독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고시관 입관은 수능성적 전국상위 10% 이내인 입학생 가운데 사법시험,행정고시 준비 희망자 가운데 선발하며 재학생 가운데서는 매년 6월과 12월 모의고사를 실시해입관 자격자를 선발하고 있다.문의는 (063)-850-5180. ■국제교류 국제화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15개국 43개 대학과 교류를하고 있고 대학내 25개 연구소에서는 매년 1회 이상 전국 또는 국제규모의 학술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학생,교수 교환은 되지 않고 있으며 학점인정제도도 도입돼 있지 않다.주로 상호방문,원광대 교수의 영어권 대학 연수,중국과 일본대학에 학생 2∼3명을 연수보내는 정도로 교류실적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교수는 모두 567명으로 교수1인당 학생수는 28명이다. ■등록금·장학금 등록금은 전국 사립대와 비슷한 수준이다.올 신입생 기준으로 인문사회학부 199만4,000원 예체능·공학 235만3,500∼271만1,500원 약학 275만1,500원 의·치·한의학 318만원이다.입학금은 38만4,000원이다. 장학금 규모도 연간 110억원으로 전국에서 4번째로 많다.교내 장학금이 25종,교외장학금은 53종에 이른다.재학생 3명중 1명꼴로 연간 30만8,000원의 장학금을 받는다. ■입학전형 2001학년도 신입학 전형에는 수능 응시계열에 관계 없이교차지원이 가능하고 변환 표준점수를 반영한다.제2외국어는 반영하지 않는다. 교장추천,실업계고교 출신,교역자,선·효행자,대안학교출신,만학도,주부,특수교육대상자 등은 특차모집한다. 2000학년도 정시모집 최종합격자 수능평균점수는 한의예과 383,의예과 374,치의예 375,약학 366,한약학 366,경찰행정 344,전기전자 295 국어교육 322 경영 280 인문 263 등이었다. 주·야간 교차수업을 허용하고 의·약학계열을 제외한 전 학부에서 복수전공을 취득할 수 있다.모든 학부 2,3학년때 전체 정원의 20%까지 전과를 할 수 있다.성적 우수자는 조기졸업도 가능하다. ■앞으로의 과제 원광대는 나름대로 적지않은 고민도 안고 있다. 무엇보다 고민스러운 점은 낮은 취업률.대학측은 군입대와 대학원진학을 포함한 전체취업률을 60%선,순수취업률을 50% 선으로 밝히고 있는데 그치고 있다.급변하는 디지털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을추진하고 있으나 예산이 부족하고 우수 학생을 유치하는데 한계가있어 의치약계열을 제외하고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원광대는 이에따라 2002학년도부터 대학입학제도가 다양화될 경우우수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 일부 학과는 수능성적이 낮아도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도권과 충청권 학생들이 대거 입학했다가 2∼3학년 때 편입시험을 봐 빠져나가는현상이 현저하다. 이때문에 매년 편입시험을 실시해 학생을 보충하고있는 점은 학교발전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익산 임송학기자 shlim@. *인터뷰- 宋天恩총장. “창의력있고 ‘도덕성’을 갖춘 인재 양성을 통해 우리 대학을 ‘호남 제일의 대학’으로 만들겠습니다” ‘도덕주의’를 학교 운영의 모토로 내걸고 있는 송천은(宋天恩·63)원광대 총장은 ‘인성 교육’을 무척 중요시한다.물질 문명이 발달할수록 ‘된 사람’의 존재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더욱 빛이 난다는것이다.그래서 그는 94년 취임후 대학 교당을 통해 학교 사랑운동과기도운동,선과 인격 수련,사회봉사활동의 학점화 등을 통한 도덕주의를강조해 오고 있다.올해는 공대 신입생 전원을 충남 논산 삼동원원불교 훈련원에 입소시켜 4월부터 6월까지 1박2일씩 도덕과 과학을함께 하는 공학도로서의 품성을 연마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봉사활동이 뛰어나고 웃어른에 대한 공경심과 효행이 지극한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덕성(德性)장학금’을 신설한 것도 같은 취지입니다”. 또 원광대를 한의학과 생명공학 분야의 메카로 육성,호남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이를 위해 그는 ▲실용 학풍조성 ▲연구 기능 강화 ▲사회 중심 교육 ▲교육 연구 인프라 구축▲고객 지향적인 마인드 도입 ▲재정 확충 등 6가지 전략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익산 조승진기자. * 도올 김용옥 수학 한의대 '간판'. 1972년 설치인가를 받은 원광대 한의대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광주,전주,익산,순천,군포 등에 부속한방병원을 두고 있다.국내에서가장 많은 1,000여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입학한 600여명의 재학생들이 52명의 교수진과 함께한의학의 연구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졸업후에는 한의사로 개원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각 대학 한방부속병원 인턴·레지던트로 근무할 수 있다. 석·박사과정을 통해 교수·연구직으로 진출할 수 있고 한방군의관,한방보건진료소 한의사 등으로진출한다.보건복지부 한방과,국립한의학연구소,국립의료원내 한방진료부 등에 직업공무원으로 봉직하기도 한다. 2,000여명의 졸업생들이 국내 한의학계의 큰 맥을 형성하고 있다.공자 TV강의로 인기와 비판을 동시에 얻고 있는 도올 김용옥도 이곳에서 한의학을 배웠다. 원광대 한의대는 지난해 교육부의 BK21 한의학 특화사업 부분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한의학을 체계화,실용화,동서의학 협진체제 구축,한의학의 치료영역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익산 임송학기자. *신입생 1,300명 기숙사 혜택. 원광대 기숙사는 내년 3월부터 올해보다 600여명이 늘어난 2,700여명을 수용하게 된다.600여명 수용가능한 규모의 기숙사 한동을 새로지었기 때문이다.이 가운데 약 절반인 1,300여명은 신입생에게 할애된다. 모두 2인1실형인 기숙사는 밤 11시 이후엔 출입이통제된다.기숙사비는 보증금 없이 사용료만 1학기당 70여만원이다.입사생은 매 학기마다 새로 선발된다.선발 기준은 학교 성적과 집과의 거리 등이 적용된다.물론 신입생은 입학성적이 적용되며 생활보호대상자는 우대된다. 기숙사에는 학생들을 위해 각종 헬스기구가 갖춰진 체력단련실과 별도의 독서실,빨래방,휴게실 등이 마련돼 있다. 하숙비는 주로 새 건물이 많은 학교앞 대학로 주변의 경우 2인1실이25만원∼30만원선이고 인문대 뒤쪽과 정문쪽은 25만원 이하이다.또1인 1실은 대체로 35만원∼40만원선이며 매년 1∼2만원씩 상승해 왔다. 자취방은 집의 노후화 정도와 위치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전세는1,300만원∼1,700만원선이고 월세는 1년분이 100만원∼350만원 선이다. 전주와 군산,정읍지역에 정기 통학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전체학생의 10% 이상인 1,800여명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이와 함께 매일학교에서 익산역과 터미널 방면으로 매시간마다 학교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익산 조승진기자 redtrai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그에 대한 대답으로 김 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강력한 김 대통령의 다짐 및 이행,특히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번 수상에 새롭고 중요한 몫을더한 것도 역시 명백합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조처에 대해 수여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노벨평화상의 역사에서 자주 보아 온 것처럼 올해도 역시 평화와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용기의 문제입니다.김 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습니다.그의 의지는 개인적,정치적 용기이며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쟁지역에서는 너무 자주 결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김대중씨는 민주한국의 대통령입니다.김 대통령의 집권까지의노정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수십년 동안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습니다. 가혹한 교도소 환경 속에서도 김대중씨는 삶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그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한 ‘즐거움’에 대해 썼습니다.동양과 서양의 모든 종류의서적 통독이 그것입니다.신학·정치학·경제학·역사 그리고 문학 서적들입니다.가족과의 짧은 면회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방해 시도가 있었음에도,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사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일도 허용되었습니다. 김대중씨의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 수상자,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상을 받지는않았지만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 함께 말입니다.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국외자들에게 거의 초인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이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보다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햇볕’이라는 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햇볕과 바람이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데서 따온 것입니다.‘햇볕정책’은 바람을 막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서로 나누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최소한 추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입니다.김대중씨는남한이 북한을 합병하거나 흡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시간이 걸리고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목표는 통일입니다. 김대중씨가 현재 진행 중인 해빙과 화해의 주동자라는 점은 의심할여지가 없습니다.아마 그의 역할은 동서독 간의 관계 정상화에 아주중요한 동방정책 추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빌리 브란트에 비교될수 있습니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 보다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 김대중대통령 연보. ■1925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金雲植)씨와 어머니장수금(張守錦)여사의 4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1933년 하의도보통학교 입학,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해 수석 졸업■1939년 목포상업학교 입학■1945년 4월 차용애씨와 결혼해 홍일(弘一)·홍업(弘業) 두 아들 둠■1954년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1956년 10월 민주당 입당■1959년 6월 강원도 인제 재선거에서 낙선■1961년 5월14일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5·16 쿠데타로 수감■1962년 5월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재혼■1963년 11월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1967년 7대 의원 당선■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후보 당선■1971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배■1973년 8월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공작원에게 피랍■1976년 3월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1980년 5월 내란음모죄로 구속■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사형 확정■1982년 12월 미국 망명■1985년 2월 귀국한 뒤 동교동 자택에 감금■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유학차 영국으로 향발■1993년 7월 귀국■1994년 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1995년 7월 정계 복귀■1997년 12월 15대 대통령 당선■2000년 6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200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수상
  • 장애인교수의 ‘장애제자 사랑’

    “장애인 휴게실 건립은 작은 걸음에 불과합니다.장애학생들도 불편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30년 전부터 근육퇴화증을 앓아온 연세대 경영학과 이학종(李學鍾·65)석좌교수가 29일 내년 2월 정년퇴직 때 받게 될 퇴직금 중 1억원을 연세대 장애학생들의 편의시설을 건립하는데 기부하기로 했다.정산하지는 않았지만 이교수의 퇴직금은 1억원을 조금 넘는다. 근육퇴화증은 근육이 점점 굳어지는 희귀병.이교수는 그동안 교내장애우 인권동아리인 ‘게르니카’ 회원들과 장애학생 복지문제 등에대해 토론하다가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말에 휴게실과 시각장애인용 점역실을 건립하기로 결심했다.1차로 지난 9월 동료 교수와동문들로부터 모금한 1억원과 사재 5,000만원을 기증했다. 내년 중반쯤 완공될 연세대 백양관 휴게실에는 지체장애인용 침대,청각장애인용 팩시밀리,시각장애인용 컴퓨터 음성합성기 등이 설치된다.점역실에는 점자프린터와 확대 독서기 등 첨단장비가 들어선다. 지난 54년 미국으로 유학,81년 연세대 교수로 부임하기까지 뉴욕주립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이교수는 장애학생들도 불편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미국에 비해 너무나 불편한 한국 현실이 항상마음에 걸렸다. 더욱이 7년 전까지는 다리를 절기만 했을 뿐이어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지만 점점 상태가 나빠지면서 서 있기조차 어렵게 되자 마음한 구석에 살아있는 동안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일었다. 연세대에는 95년까지 장애학생을 위한 화장실이 없었다.경영관에는승강기조차 없었다.이교수는 “학생들이 휠체어를 번쩍 들어 계단을올라 강의실로 옮겨주었다”고 회상했다. 백발의 이교수는 이날 입가에 시종 엷은 미소를 지으며 “별 것 아닌데…”라며 자신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는데 대해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는 “앉아서 공부만 하라는 하늘의뜻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회한은 없다”고 했다. 이교수의 기탁 사실이 알려지자 가족들도 환영했다.장남 규성씨(35·벤처사업가)와 차남 규정씨(33·의사)는 아버지와는 별도로 얼마간의 돈을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이송하기자 songha@
  • “종교방송 독자적 수익구조 절실”

    ‘종교방송은 선교매체인가,언론매체인가.’최근 일부 종교방송이 파행경영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종교방송이 안고있는 본질적 문제를 천착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54년 종교방송이자 민영방송의 시원으로 출범한 기독교방송(CBS)은우리 방송사에 적잖은 업적을 남겼으나 기독교방송 노동조합은 지난10월 이후 현재 50여일째 장기파업중이다.CBS의 파행은 국내 종교방송의 문제점을 포괄적으로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크리스챤아카데미 미디어교육센터가 주관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한가운데 지난 24일 서울YWCA회관에서 열린 ‘한국 종교문화와 종교방송’ 토론회에서는 국내 종교방송이 안고있는 고질적인 문제점들에대한 전문가들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있었다.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최창섭 교수는 ‘종교방송의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종교방송은 법인의 성격상 종교기관이면서 언론기관이라는 이중적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며 “목적상은 종교기관이지만 공익에봉사해야 한다는 언론기관의 사명을 겸해 근본적으로갈등요소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종교방송은 공영·상업방송과는 달리 모두 비영리 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경영재원은 법인의 기본재산에서 나온다.그러나 실제로 법인의 운영재원이 기본재산의 수입만으로는 조달이 불가능해 이중적인 경영수단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현실이다.따라서 비영리 법인이지만 상업방송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교계의 헌금수입으로 충당한다. 선교방송만을 지향하는 극동·아세아방송을 제외한 나머지 종교방송의 경우 광고수입이 전체수입의 80∼90%에 달한다.이는 결국 종교방송이 일반방송과 차별화는 커녕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으로작용하고 있다.이에 대해 CBS 민경중 기자는 “해당 종단과 관계도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종단,교단에 기대기보다는 안정적인 수익구조 창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문제가 되고있는 CBS의 파행은 최고경영자의 정치지향성등 자질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민기자는 “재단이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하고,경영진 역시 노조를 강압하는 대신 재단과의 밀월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파행이 악순환을거듭하고 있다”며 “재단이사회가 일방적으로 경영진을 임명하는 현행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교계에서 임명한비전문 경영자가 경영미숙으로 인한 경영난이 노사갈등의 원인으로작용하고 있다.특히 CBS의 재단이사장·사장을 교계 목사로 채우는것은 방송의 전문성 확보차원에서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종교방송의 언론매체로서의 역할과 관련,최교수는 “선교·교육기능과 함께 대안매체로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순수 공익적 기능이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민기자는 “특정계층의 전유물이아닌,소외계층에게도 정보를 제공하는 예언자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아울러 종교간 배타성이 극심한 한국의 종교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타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언론재단 김영욱 박사는 ‘방송의 종교관련 프로그램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국내 공중파방송은 종교 영역에서 ‘삶의 문제 해결’에 대한 정보보다는 담임목사 세습문제 등 종교계의 구조적 문제 보도에 치우쳤다”고 지적하고“종교 교리 소개나 종교계 현황 등에 대한 보도로 종교가 삶의 중요한 영역임을 일깨워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故 유강열화백 수집 유물 기증

    유강열(劉康烈·1920∼1976) 전 홍익대 미대 교수의 부인 장정순(張貞順·71)씨가 고인이 수집한 한국 민화와 민예품 304점과 전문서적1,400여권을 20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장씨가 기증한 문화재는 민화를 중심으로 서화류 74점,목공예품·자수공예 등 전통공예품이 107점,토기류 77점,도자기 43점 등이다. 기증유물들은 한국적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서구적인 조형 세계를 섭렵하다 한국적 이미지로 귀착한 유화백의 작품에 예술적인 모티브를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유화백은 1954년 발족된 국립박물관 한국조형문화연구소의 초대 연구원을 거쳐 홍익대에 재직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중앙박물관은 다음달 4일 기증유물 공개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먹거리 축제를 찾아서] (19)한려수도 굴

    바다에서 건진 단백질 덩어리로 일컬어지는 굴이 맛있는 계절이 왔다. 1599년에 간행돼 서양에서는 식생활의 교범이 된 ‘버틀러의 식사지침’은 영문 R자가 붙지 않은 달(5∼8월)에 생산된 굴은 먹지 말도록 권하고 있으며,11월에 채취한 굴이 가장 맛있고,약효가 높다는 동의보감의 기록에서 보듯이 요즘 채취하는 굴이 최고다. 통영굴수하식양식수협이 소비자들의 친밀감을 높이고,내수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한 ‘대도시 순회 한려수도 굴축제’가 16일부터 서울·대전·대구·광주 등지에서 24일까지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생굴 및 굴요리 무료 시식회를 갖고 남해안 청정해역에서 생산된 굴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고,요리강습도 한다.행사기간중 판매는 안하지만 매일 3,000명에게 1인당 생굴 150g씩 무료로 나눠준다. 인류가 굴을 식용으로 사용한 역사는 깊다.유럽에서는 기원전 95년쯤 로마인 세르기우스 오라타가 양식을 시작했다.동양에서는 5세기무렵 중국 남북조시대때 대나무에 끼워서 양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우리나라도 선사시대 패총에서보듯이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상으로는 1454년(단종 2년) 공물용으로 양식한 것이 처음이다. 옛부터 굴은 우수한 영양식품으로 호평받고 있다.담백질 함량이 10%로 어류의 평균 20%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유의 3%에 비하면 3배 이상 많다.영양분의 소화흡수율이 높아 유아나 어린이,노인 및 병약자들이 먹기 좋은 영양식품이다. 굴은 동양인못지않게 서양인도 좋아한다.굴에는 에너지의 원천인 글리코겐과 성호르몬을 활성화시키는미량영양소 아연(Zn)이 다량 함유돼 있어 최음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Eat oyster,love longer(굴을 먹어라,보다 오래 사랑하리라)’고하는 격언이 전해질 정도다. 굴요리는 종류도 많다.어린이 간식이나 술안주용으로 굴튀김이 좋고,병후 영양식으로는 굴밥이 그저그만이다.굴해장국은 주당들의 쓰린속을 확 풀어준다.프랑스인들은 반쯤 깐 생굴에 치즈를 얹고 소스를쳐서 먹는다. 굴축제는 첫날 행사는 서울 충정로 해양수산부 앞에서 열리며,17일에는 과천종합청사 민원실,18∼19일 대전 동방마트,21∼22일 대구 대백프라자,23일 광주 신세계백화점,24일 여수시청으로 이어진다. 김장철을 앞두고 있는 주부들은 좋은 굴 고르는 요령과 요리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다.가장들도 줄리어스 시저가 영국 템즈강 하구에서나는 굴을 얻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도버해협을 건넌 의미를 느껴봄직 하다.문의 (055)645-4511∼3. 창원 이정규기자
  • ‘司試 복수정답’ 메가톤급 파장

    최근 행정심판위원회가 제42회 사법시험 1차시험 문제가 복수정답임을 인정하자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42회 사시 1차시험에서 단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 처분을 받게 된한 수험생이 행정심판위에 ‘출제오류’를 문제삼아 행정심판 청구를냈고, 행정심판위는 이 수험생의 손을 들어준 것.하지만 주목할 점은이 결정이 당사자 한명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 이번 42회 사시의 합격점수는 84.44점이었고,김모씨의점수는 84.07점이었다. 딱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된 것이다.이후 지난 6월 김씨는 “헌법 1책형 34번 문제가 복수정답”이라고 주장하며행정심판위에 불합격처분 취소 행정심판 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행정심판위는 ▲문제에 정부형태를 묻는다는 명시적인 기술이 없고 ▲문제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며 ▲확실한 정답이 있다고해서 다른 문항의 정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김씨의 불합격을 취소하도록 했다. [행자부 입장] 행자부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모든 전문가들이 판단을토대로 결정한 것을 뒤엎는 일이 벌어져 곤혹스럽다는 것이다.출제위원,외부전문가 등 5명으로 구성된 정답심사위원회의심의를 거쳐 ‘정답은 단 하나’로 결론 내렸었다. 행자부는 “약간 헷갈리기는 했지만 출제자의 의도를 이해하면 충분히 정답을 골라낼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이 행자부의 입장이 확고하더라도 행정심판위의 의결은법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다. [수험생 반응] 일부 수험생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행정심판위의결정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복수정답 가능성이 짙은 다른 문제에 비하면 이번 헌법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현재 시험문제 출제 오류와 관련,행정소송 등을 낸수험생들은 큰 힘을 얻은 것만은 확실하다. [행정심판위의 결정이 미칠 파장] 행자부는 김씨에게 합격처분을 내려야 하지만 김씨처럼 단 한문제 차이로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수험생 6∼7명(추정)에게도 같은 처분을 내릴지는 미지수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법시험위원회를 열어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지난 98년 치러진 제40회 사시부터 매해 문제 정답과 관련된 소송이 줄을 이어 현재 40회(3문제) 41회(5문제),42회(4문제)가 대법원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거나 행정소송 중에 있다.이 문제들은 행정심판위에서 거론된 이번 문제보다복수정답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 심판위의 결정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송 당사자가 100여명에 이르고,소송 결과에 영향을 받게 될 수험생은1,000여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의결이 미칠 파장을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최여경기자 kid@. *출제오류 시비 문제. 무엇이 ‘옳지 않은’ 답항일까? ‘③1948년 헌법과 1954년 헌법에서는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을 두었으나 1962년 헌법부터 대통령을 두면서도 부통령을 두지 아니하는 형태를 취한 후 지금까지 부통령을 둔 적이 없다’ ‘⑤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시에 매우 긴요한 예외적인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국방부장관을 겸할 수 있다’ 행정자치부는 ⑤번을 정답으로 발표했다.하지만 지난달 27일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둘다 ‘옳지 않아’ 답이 될 수 있다고의결했다. 행정심판위에서 ③번 역시 정답이 될 수 있는 근거로 삼은 것은 ▲행자부 주장과 달리 답항에 대통령중심제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히 부통령제를 두지 않은 헌법개정연도를 묻는 질문으로 볼 수 있고 ▲인도 등에서는 실제로 내각제를 취하면서 부통령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어 청구인의 청구를 인정했다.우리나라가 실제로 부통령을 두지 않는 헌법 개정은 내각책임제 상태이던 60년에이뤄졌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대통령중심제에서 부통령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부통령이 없는 변형된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어 이에대한 종합적 이해를 묻는 문제”라며 ⑤번이 ‘명백하게 옳지 않으므로’ ⑤번이 정답’이라는 입장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새만금 갯벌 이제라도 다시 살려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새만금 갯벌을 살리십시오”20년 동안 일본 시마네(島根)현 나카우미(中海)간척사업 반대운동을해 지난 9월 사업이 중단되도록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시마네대호보 다케히코(保姆武彦·57) 교수는 8일 녹색연합 주최로 서울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이같이 주문했다. 호보 교수는 신화를 바꾼 인물로 통한다.일단 시작한 공공사업은 멈추지 않는 일본 풍토에서 54만명의 서명 등 끈질기게 시민운동을 펼쳐 8,000억원을 투입해 37년을 끌어온 나카우미 간척사업을 중단하게했기 때문이다. 강연회 전날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지인 새만금을 방문한 호보교수는 “4만㏊(여의도의 120배)나 되는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면서“새만금 문제를 단순한 지역·환경차원이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로만들고 국제 여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보 교수는 “미국과 유럽도 기존의 댐을 허무는 등 자연 회복사업을 공공사업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라면서 새만금간척사업의 경제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나카우미는 동해로 흘러드는 수심 7m의 호수로 홍수 및 염해방지,농업용수 공급,농토 확보 등을 위해 1954년 간척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방이 완공되면서 바닷물의 흐름이 차단되자 일본에서 호수어업이 번성한 곳으로 꼽히는 나카우미의 수질은 급속도로 오염됐다. 재첩 생산량도 줄었다. 간척사업 반대를 위해 연대했던 70여개의 풀뿌리 주민운동단체들은제방을 300m쯤 허물고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게 해 아름다운 호수를회복할 계획이다. 호보 교수는 “21세기에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환경보호뿐이며,나카우미의 교훈을 살려 새만금의 갯벌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강조한 뒤 전국 200여개의 환경단체가 모여 24일째 새만금살리기 밤샘 농성을 하고 있는 조계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창수기자 geo@
  • [베이징은 지금] 中國 고교생 가슴에 새겨진 周恩來

    중국 대륙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누구일까.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중국인들이지만 이에 대한 해답 만큼은 분명하게 밝힌다. ‘영원한 총리’로 불리는 저우언라이(周恩來)라고.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에 따르면 중국 전역의 고등학생 1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신을 낳아준 부모(6%)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24.5%가 저우언라이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중국사람들이 저우를 가장 존경하는 이유는 철저하고 진정으로 인민들을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73년 72일간 병상에서 있으면서도 비서를 매일 불러 집무를 계속했다.걱정하는 측근에게 “나처럼 역사무대에 던져진 인간의 몸은사물(私物)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특히 암투병중이던 73∼76년 미국·일본과의 수교작업,베트남전쟁의마무리,문화혁명의 폐허 속에서의 국가경제 재건,덩사오핑(鄧小平)복권 등 마오의 사후(死後)에 대비한 권력의 재편성,개방·실용주의노선 쪽으로 선회하는 문제 등에 대해 몰두했다. 이때부터 저우는 ‘인민들을 위해 잠도 자지 않고일한 사람’,‘늘인민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을 지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각인됐다.‘위대한 인물이지만,무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는 마오쩌둥(毛澤東)과는 달리 권력에 대한 마음을 철저히 비워 ‘영원한 2인자’로 남은,어머니같이 친근한 사람의 이미지로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1898년 장쑤(江蘇)성에서 태어난 저우는 1917년 일본에 유학했으며,20년부터 4년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파리에서 중국 공산당에입당했다.34년 마오와 함께 장정(長征)에 참가했고 35년 시안(西安)사건때 중국 공산당 대표로 국공합작을 성공시켰다.54년 신헌법 공포와 함께 총리에 취임한 뒤 76년 죽을 때까지 총리를 지냈다.20여년동안 총리를 지낸 덕분에 중국 사람들은 그를 ‘영원한 총리’라고부른다. 김규환특파원 khkim@
  • 2000 대한매일 廣告大賞 우수상 수상작·수상소감

    ◆LG전자 (LG엑스캔버스)-오상근 판촉광고 1팀장 가까운 장래에 가장 큰 시장변화를 가져올 핵심요인은 바로 ‘디지털’입니다.특히 전자시장은 디지털 시장의 승부로 판가름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계 최초로 대형 PDP(벽걸이)TV를 개발하는 등 디지털시장에서 세계 선두기업의 위치를 다지고 있는 LG전자는 기술개발 못지 않게 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있습니다. 이번 수상 광고는 그 첫번째 작품인 ‘엑스캔버스’(Xcanvas)의 1차런칭 광고로,다른 요소를 과감히 배제하고 전체 구도의 중심에‘Xcanvas’ 로고를 강하게 부각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끌고 브랜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현했습니다. Xcanvas 광고는 디지털 시장에서 명실공히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잡기 위한 각종 활동의 서막을 알린 것입니다. ◆하나로통신 (하나넷)-두원수 홍보이사 하나로통신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초고속인터넷 ‘나는 ADSL’을 비롯,초고속 무선인터넷 ‘B-WLL’,국내 최초로 시범서비스를 개시한 차세대 서비스 ‘VDSL’ 등을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과 마케팅을 앞세워 상용서비스 개시 1년 6개월만에 100만 가입자회선을 달성하는 등 초고속 인터넷서비스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이제 초고속 통신네트워크를 기반으로 e-비즈니스 전문기업으로서변신을 선언하고,인터넷데이터센터 ‘엔진’과 종합멀티미디어 포털‘하나넷’을 중심축으로 한 다각적인 인터넷 사업의 전개를 통해 기업과 개인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이버플랫폼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멀티미디어 종합포털 ‘하나넷’을 모든 네티즌에게 개방하고,국내외 기업과 제휴를 통해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대량 확보함으로써 국내 제1의 가족 지향적 포털서비스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매일유업 (뼈로가는 칼슘두유)-한도문 홍보실장 뼈로 가는 칼슘두유는 철저한 소비성향 조사와 시장상황 분석을 통해 두유시장의 마케팅 상황을 충분히 검토해 반영한 제품입니다. 매일유업은 두유가 건강음료라는 인식이 강하고 건강에 관심을 갖는층,장년층,환자식,유아식 등 고정 소비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틈새를 찾아 공략한다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두유는 우유와 비슷한 영상소를 함유하고 있으나 칼슘 함량은 일반우유의 4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습니다.당사는 이 점에 착안해 두유에 부족한 칼슘을 우유 수준으로 강화해 건강 지향적인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시장 침체기에 있는 두유시장의 틈새를 공략했습니다.칼슘두유는 하루 평균 10만팩 이상 판매되고 있어 위축된두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할 것입니다. ◆기아자동차 (옵티마)-김길영 광고팀장 2000년 7월 대한민국 자동차시장에 새로운 혁명이 예고되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야심작인 ‘나만의 제국-옵티마’의 출시로 중형차의새 지평이 열린 것입니다. 당사는 탁월한 성능과 높은 경제성,실용성을 지닌 카 3총사(카니발카스타 카렌스) 시리즈로 미니밴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해 오고있습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승용차시장에서도 ‘대표차종’을 만드는 것이 기아자동차의 당면 과제였고 피나는 노력과 연구를거듭한결과,올해 7월 옵티마를 내놓았습니다. 광고의 메인 카피인 ‘나만의 제국’을 형성화하기 위해 등장시킨엘크는 옵티마의 중후한 카리스마를 나타내는데 매우 효과적이었으며,로키산맥의 드높은 산세와 단아한 호수 경관의 조화는 옵티마의 고품격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대한매일 광고대상의 영예는옵티마에게 또 다른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대한항공 (스카이팀)-김맹녕 광고담당 이사 스카이팀은 아시아의 대한항공,북미의 델타항공,유럽의 에어프랑스,중남미의 아에로멕시코 등 각 대륙을 대표하는 4개 항공사를 회원으로 하는 새로운 항공사 동맹체입니다. 스카이팀은 대한항공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일이었으나 광고에는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이 필요했습니다.대한항공스카이팀이 구체적으로 고객들에게 어떤 메리트를 제공하는지 그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지금 막 동이 터오는 붉은 하늘은 출범의 의미와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헤드라인은 정직하게 출범의 의미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것이구체적으로 소비자에게 어떤 메리트를 가지는지는 바디 카피에서 풀어주었습니다. 스카이팀은 넓어진 노선망과 항공편을 바탕으로 마일리지 공동 적립,회원사간 연결 체크인,라운지 공동 이용 등과 같이 새로운 차원의수준높은 서비스를 통해 한층 편리한 항공여행의 세계를 펼쳐나갈 것입니다. ◆진로(참眞이슬露)-김양환 광고팀장 23도 소주시장을 석권한 참眞이슬露는 술을 마실 때나 마신 다음날에도 숙취가 적은 깨끗한 소주를 원하는 소비자 욕구에 부응해 만들어진 혁신적인 제품입니다.제품의 성공에는 우수한 품질이 필수적이지만 좋은 제품도 좋은 마케팅 전략이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20대 젊은층에서 부터 음용을 유도하는 타깃 집중화 전략과 이에 수반한 프로모션 전략,20대 젊은층이 자주 모이는 유흥가 중심 확산의유통전략,대나무 숯의 효능을 알리는 홍보전략 등 하나로 집중된 마케팅이 있었기에 오늘날 참眞이슬露가 있었던 것입니다.또 탤런트 이영애씨에 이어 황수정씨를 모델로 제품의 깨끗함과 모델의 깨끗한 이미지를 잘 연결, 기존 소주광고와 차별된 광고를 집행했던 것도 참眞이슬露의 성공에 큰 몫을 했습니다. ◆삼성옥션 (기업PR)-신일곤 인터넷경매팀장 90년대 말부터 불어온 전자상거래 열풍은 닷컴기업 거품론이 대두되는 최근까지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습니다.수익모델 부재라는 절대 명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포털사이트와 달리 상품의 판매라는 ‘유통’의 기본 컨셉에서 출발한 쇼핑몰들은 좀더 편리하게많은 상품들을 팔기 위한 끊임없는 자구노력으로 전자상거래라는 개념을 소비자들에게 정착시켰습니다. 그 중 ‘경매’라는 한국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방법을 통해 물건을 팔고,물물교환을 하는 e-마켓플레이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경매는쇼핑몰에는 없었던 ‘사는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전자상거래의 차세대 주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삼성옥션은 차별화된 성격의 상품군을 크게 3가지 ‘존’(ZONE)으로묶어 경매에 출품하고 있는데,모두 경험이 풍부한 전문 상품기획자들에 의해 상품이 선별되며 살 만한 상품을 모아 자신있게 고객들에게선보이고 있습니다. ◆SK㈜ (기업PR)-이만우 홍보팀장 SK㈜의 기업 PR광고가 상을 받은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방대한 사업영역을 가진 SK㈜.하지만 소비자의 인식 속에 SK㈜는여전히 에너지 기업이었습니다.SK㈜는 에너지화학 이외에 생명공학,인터넷사업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는 기업입니다. 이번 광고는 SK㈜의 다양한 사업영역과 각 영역에서 선두에 서 있는기업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를 위해 사용된광고의 소재는 어린아이와 비둘기.어린아이의 손에서 날아간 비둘기는 SK㈜의 다양한 사업영역을 상징하는 사이트의 창 모양으로 변하며세상으로 펼쳐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SK㈜의 생명과학과 인터넷 사업영역의 첨단 이미지를 표현하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SK㈜는 사회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명실상부한 마케팅회사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청호나이스 (디지털정수기) 차용택 홍보팀장 청호 디지털 정수기의 이번 수상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만들겠다는 청호의소신과 의지를 독자가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봅니다. 청호는 날로 심각해져 가는 물 부족과 오염에 대한 경각심 및 남다른 사명감으로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출시된 ‘디지털 정수기’ 광고를 제작하면서,눈에 보이지않는 기술과 수질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심했습니다.결국 디지털을 통해 차별화된 제품으로 더 깨끗한 물을 만든다는 상투적인 표현보다는언제나 더 좋은 제품,더 완벽한 수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기업 의지와그 마음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앞으로 청호는 기업이나 제품의 자랑보다 정직한 제품과 정직한 기술을 추구하는 기업의소신과 철학을 꾸준히 지켜 오염 없는 나라,물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밀리오레 (기업PR)-류도원 홍보부장 밀리오레는 오픈 초기부터 감각적이고 독특한 광고를 진행해왔습니다.오픈 당시 방영된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는 간결한 문장에 밀리오레 상가 컨셉을 정확히 담아낸 카피로 유명하며 ‘…끝에서 …까지’라는 수많은 아류작들을 출현시켰습니다. 밀리오레 광고 4탄으로 진행된 ‘밀리오레 환타지편’은 리딩 브랜드로서의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이미지를 잘 보여줬으며 판타지 소설을 광고에 접목시킨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인쇄광고의 경우 대부분이 전파광고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고 전파광고와 함께 진행돼 소비자들이 밀리오레 광고를 더욱 잘 기억할 수있도록 했습니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은 밀리오레의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좋다,밀리오레’라는 짧고 경쾌한 카피와 멋진 패션의 여인이조화를 이뤄 패션 천국으로서 밀리오레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LG건설 (기업PR)-박준원 홍보담당상무 오피스빌딩·도로·교량·아파트 등 우리 생활을 풍요롭고 편하게만들어주는 건축물 뒤에는 항상 건설회사의 노력이 배어 있습니다.하지만 산업발전 공헌도에 비해 건설부문의 대(對)고객 이미지나 친밀감은 소비재보다 다소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LG건설은 기술력,품질,지구촌 건설 등 건설의 강한 이미지 위에 소비자가 쉽게 기업성격을 알수 있도록 건설업의 전 사업부문을단순명료하게 표현하는데 광고의 컨셉을 두었습니다. ‘정도경영’‘초우량 LG’의 그룹 이미지에 ‘21세기 초우량 건설’이라는 LG건설의 비전을 담아낸 LG건설의 기업광고는 이로써 단기간에 LG건설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낼수 있었습니다.LG건설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도 첨단기술과 완벽한 품질로 고객 여러분께 다가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한국도로공사 (기업PR)-김성진 기획홍보과장 생활 속의 작은 소품 하나를 통해서도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를 배우고 또 다음 세대로 이어져 문화국가로서의 면모를 이어갑니다.30년전경부고속도로의 태동과 함께 국토의 대동맥으로서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고속도로는 현재 2,050㎞에서 2004년 3,400㎞로 늘어나 전국 어디에서고 국민 누구나 30분 이내에 고속도로 진입이 가능하게 함으로써국민들의 삶을 풍성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를 광고로 표현하게 됐습니다.한국도로공사가 지향하는미래의 고속도로는 ‘안전한 길 편하게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정보·환경·물류 고속도로입니다. ◆대한생명 (뉴바로바로연금보험)-고석표 홍보부장 이번 수상작인 ‘뉴 바로바로 연금보험’은 가입 즉시 연금이 지급되는 업계 최초의 보험상품으로,노년을 대비해 목돈을 맡길 곳을 찾는 정년퇴직자나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려는 ‘실버세대’에게 적합한상품입니다. 이번 광고는 헤드라인 “무슨 소리냐,너희들이나 잘 살아라”처럼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노후를 해결하려는 실버세대의 안정적인노후생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한편으로는 앞으로 은퇴 연령이 낮아지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덜어드리겠다는 대한생명의 의지를 담고있습니다. 지난 1년간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보업계 2위의 영업실적으로 이를극복해낸 것은 고객들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대한생명은 ‘고객의 가치를 높이고 고객을 감동시켜라’는 고객중심의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더욱 더 고객의 소리를 상품과 서비스 개발 등에 즉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산업은행 (기업PR)-정재섭 홍보팀장 54년 설립 이래 산업은행이 걸어온 길은 해방 이후 한국의 산업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창립 이후 46년여를 줄곧산업자금을 공급하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97년 외환위기 때에는 국제시장에서 쌓아온 신인도를 바탕으로 해외자본을 도입을 통해 금융위기 극복에 전력을 쏟았습니다.산업은행은 이러한 우리의 실체를 제대로 알리고 고객과도 정감이 있는은행으로서 이미지도 제고시키고자 이 광고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산업은행의 심볼마크가 기억에 남도록 빨간색과 파란색이 강렬한 조화를 이루며 사람 인(人)자를 표현하고 있는 은행의 심볼마크를 활용한 ‘등대’를 소재로 선택했습니다.칠흙같은 밤,멀리서 비춰오는 한줄기 빛이 안전항해의 길잡이가 되듯 우리 금융산업의 내일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겠다는 내용입니다.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고 어려울수록 더 큰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우리 은행의 의지를 등대의 역할로비유한 것입니다. ◆현대전자(네오미)-이광석 홍보팀장어느 새 우리 생활 속에서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폰은 이제 이동전화나 문자 메시지 서비스 뿐 아니라 인터넷접속까지 가능한 모바일인터넷 환경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현대전자 ‘네오미’는 내장된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 이미 IS95B, 64Kbps의 초고속 무선 데이터 통신을 가능케 했고,검색 전용 네비게이션키를 채택하여 보다 빠르고 편리한 웹 서비스를 실현하는 등 인터넷을 가장완벽하게 구현해주는 휴대폰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우수한 제품성능을 바탕으로,현대전자 ‘네오미’의 광고 캠페인은시대가 아무리 빠르게 진보해도 변하지 않는 10대와 20대의 감수성-‘순수’를 컨셉으로 진행되어 왔으며,이번에 그 3차 광고가 ‘대한매일 광고대상’을 수상 했습니다.
  • 베일속의 인물 라오안여사

    17일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의 한국 방문에 동행할 부인 라오안(勞安) 여사.주 총리가 평소 공식석상에 동반하지 않아 세계 언론에거의 알려지지 않은 베일 속의 인물이다. 라오 여사는 29년생으로 주 총리보다 한살 적다.주 총리와 같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출신에다 ‘후난성 성립 제1중학교’와 명문칭화(淸華)대학도 선후배 사이다.유명 약국집 딸이었던 라오 여사는고등학생때 오빠의 소개로 ‘신동’이었던 주 총리를 알게 돼 54년결혼했다. 에너지·기계 분야 전문가인 주 총리와는 달리 엔지니어인 라오 여사는 상하이(上海) 투자자문회사에서 상무이사까지 지냈다.영어,불어,러시아어 실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라오 여사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자 한동안 부부관계가 나쁜게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는게 중국 외교부측의 설명이다.대학에서 경극반 회원이었던 두 사람은 주 총리의 상하이 시장 시절,라오 여사가 창을 하면 주 총리가 박자를 맞추는 금실을 과시하기도 했다.슬하에 1남1녀. 황성기기자
  •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사선넘어 민족화해의 물꼬 트다

    온갖 풍상(風霜)과 비운(悲運),그리고 좌절과 고난….흔히들 다섯번에 걸친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55차례의 연금,10년의 망명생활로 부른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인동초’로 불리는 섬마을 소년이 한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그것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랑스런 평화상을.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향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긴 여정을 세계가 노벨평화상이라는값진 명예로 보답한 것이다. ◆유년시절과 정치입문 제 79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인 김 대통령은1925년 12월3일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 사이의 네형제중둘째로 태어났다.그는 5년제였던 목포상업학교를 43년 졸업한 뒤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운회사에 취직한다.해방되던 45년 해운회사를 차려 불과 4∼5년만에 화물선 15척을 소유하는 상업수완을발휘,목포신문사까지 인수하는 촉망받는 청년실업가로 급성장하게 된다. 학창시절,웅변에 능했던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54년 해운노조의 지지를 받아 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어찌보면 불운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역정은 이 때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두번의 실패 끝에 61년 5월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나,겨우 사흘만에 5·16 쿠데타로 국회가해산되는 바람에 당선 무효,정치규제라는 불운을 맞게된다.박정희(朴正熙)가 대통령에 당선된 63년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고향인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6대 의원에 당선,정연한 논리와 합법적인 의정투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커다란 절정중 하나는 라이벌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꺾고 40대에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일.끝내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했지만,그의 정치적 위상은 당선에버금갔다. ◆정치적 고난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집권층의 탄압을 받게되는 고난의 신호탄이기도 했다.대통령 후보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정책과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등 한반도외교정책은 뒷날 탄압의 빌미를제공하고,그 때부터 덧칠해진 ‘정치조작’은 그를 평생 괴롭히는 낙인으로 붙어다니게 된다. 국회의원 지원유세 도중,트럭 암살기도로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었고,유신철폐를 주장하다 73년 여름에는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79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는 민주화를 이루려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군사법정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급기야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당시 수형생활 도중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가족들과 2년여동안 나눈 엽서는 뒷날 ‘김대중의 옥중서신’으로 출간돼 수감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국제여론과 미국 정가의 압력으로 특별감형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올라 미국내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개설했고,하버드대 국제문제 연구소 객원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대중참여 경제론’을 완성한다. 85년 2월8일 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미 각계지도자 20여명과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연행돼 가택연금 상태에놓이게 되나 김영삼 전대통령과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야권후보단일화실패로 대선에서 패했고,5년뒤에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출마한김영삼 전대통령에게 패배,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유학길에 오른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IMF극복 통일방안 연구를 하다 93년 귀국,아태재단을 설립한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계에 전격 복귀한다.이후 IMF 파고에서 ‘준비된대통령’이란 구호로 당선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의 위업을달성,3전4기의 신화를 낳는다. 그러나 당선 다음날부터 ‘6·25 이후 최대 국난’인 IMF위기와 싸운다.외자유치를 위해 당선자 시절부터 외국인들을 만났고,취임 이후에도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2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변했고,경제위기는 계속됐다.하지만 그의 헌신성은 사상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을 이끌어냈고,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 등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했다.또취임사에서 대북 3원칙을 천명하고,북한에 대한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폈다. 하지만 소수정권의 한계는 취임초부터 정치불안정이 계속됐고,원내 안정의석 확보의 필요성을 느껴 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원내 제1당이 되지못해 여전히 정치적 어려움에봉착해 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노력은 IMF 구제금융에 들어간 지 1년반만에약속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현재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또 98년말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액인 400억달러를 돌파했고,국제신용기관의 한국의 신용등급은 상향조정되기에 이른다.실업자수도 80만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대북 햇볕정책 또한 결실을 맺기 시작해 금강산 관광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공동선언’이라는 남북관계 대장전을 마련했고,남북이산가족 상봉,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비전향 장기수의 북송,경의선 복원공사 착수,남북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으로 발전시켰다.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이다.그가 평생을 준비해 온 3단계 통일정책의 1단계 완성을 향해 숨가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김대통령 연대기

    ▲1925년 12월3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출생 ▲43년 목포상고 졸업 ▲48년 목포일보 사장 ▲51년 흥국해운 사장 ▲54년 5월 3대 민의원출마(낙선) ▲61년 5월 5대 민의원 보궐선거 당선(강원도 인제) ▲63년 7월 민주당 대변인 ▲68년 5월 신민당 정책위의장 ▲70년 1월 신민당 7대 대통령후보 지명 ▲71년 4월 대통령 선거 낙선 ▲71년 5월24일 교통사고,25일 8대 의원 당선(전국구) ▲73년 8월8일 일본 망명중 중앙정부 요원에 납치,강제 귀국후 가택 연금 ▲76년 3월 긴급조치 9호위반 5년형 확정 투옥 ▲80년 2월 사면 복권 ▲80년 9월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81년 1월 무기감형,82년 3월 무기에서 20년 감형.12월 미국 출국 ▲85년 2월 귀국,가택연금 ▲87년 12월 13대 대통령 낙선 ▲92년 12월 14대 대통련선거 낙선 ▲95년 정계복귀 ▲97년 12월18일 15대 대통령 당선 ▲2000년 6월13일 남북정상 역사적 만남
  •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 조실 추대 진제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의 유일한 종립 선원인 경북 문경의 봉암사 태고선원(太古禪院)이 12일 2,0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진제(眞際) 스님을 조실로 추대하는 법회를 가졌다.1,000년의 선맥을 이어온구산선문중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태고선원은 지난 97년 이후 조실이 없는 상태로 운영돼오다 이날 새 수장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꾀하게 됐다. 봉암사 선원은 지난 1950년을 전후해 성철 스님을 시작으로 청담 자운 우봉 스님 등 4명이 “일체의 세속적인 관심은 끊고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운 ‘봉암사 결사’로 유명한 곳.이후 향곡 월산 종수 보경 법전 서우 혜암 도우 등 모두 20명이 결사에 참여했으며 종정 3명과 총무원장 6명을 배출한 현대 조계종풍의 산실이다.신도포교나 기도 기능은 수행하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정진하고있는 수행도량으로 산문을 개방하지 않은채 120여명의 스님들이 사시사철 안거정진을 계속하고 있으나 이날만은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진제스님은 경허,혜월,운봉,향곡 스님으로이어지는 불교의 선맥을잇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지식(善知識).54년 20세의 나이에 출가,설석우 (薛石友)선사를 은사로 득도했으며 71년 부산 해운대 장수산기슭에 해운정사를 창건,94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을역임했다.이 시대 수행도량으로서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봉암사의 조실을 맡아 선객들을 지도할 진제 스님을 만났다. ■조실에 추대된 경위와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 하안거 해제일대중공사를 열어 조실로 추대키로 결정했으니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전국의 선객들이 모이는 이 곳에서 모든 대중과 호흡을 같이해정진에 몰두할 것이다. ■태고선원을 어떻게 이끌 생각이십니까 진정한 도인들이 이곳에서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더 많은 수좌들을 수용할 수있도록 선방을 더 만들 것이다.봉암사에만 거하면서 직접 수좌들을지도하겠다. ■선에 대한 비판이 적지않습니다.한국 선의 위기를 해결할 방도가있습니가 선은 그야말로 부처님의 살림살이 그 자체다.서양의 지식인들이 선을 찾아드는 것도 자신의 몸·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방법으로인식했지 때문이다. 이런 선의 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껍데기 선에몰두하는 것이다. ■재가자들에 선원을 개방할 의향은 없으신가요 선원은 수도가 으뜸이다.요즘 사찰들은 본말이 바뀌었다.여기는 수좌들이 주야로 정진하는 특별한 선원이다.재가자 선방은 불가능하다. ■외국에 선을 적극적으로 유포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숭산 스님같은분들이 활동했던 것처럼 외국에서 선 확산을 위해 활동하는 선승들이많다. 나는 국내에서만 몰두하겠다■종도나 국민에 대해 하고싶은 말씀은 참 나를 밝혀야 한다.참 나를모르곤 무한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모든 국민들이 생활에서 선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참 나를 찾는 길이다. ■전문적인 선 수행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습니까 스님이나 일반인이나 다 똑같다.스님도 농사짓고 밥짓고 빨래하며 살아간다.쓸데없는 생각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잡념을 털어버리고 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마음을 쓴다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욕심 공포 불안이다 없어지게 된다. ■당 송대에 만들어진 화두가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나요 화두는 제불제조(諸佛諸祖)게서 깨달으신 경계를 만인앞에 적나라하게드러낸 것이다.깨달은 진리의 세계에 고금이 있을 수 있나■달라이 라마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95년 인도에서 만나 오랜시간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소승불교 자비사상을 세계에 전파하는 1등 포교사다.하지만 대오견성의 안목을 갖춘 선승은 아닌 것 같다. 문경 김성호기자 kimus@
  • [발언대] 사이버공간 은어·비속어 한글오염 심각

    9일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하는 기념일로서 조선어학회가 1926년 본디 ‘가갸날’이라고 정하였는데 오늘날에는 ‘한글날’이라고 부르고 있다.제554돌 한글날을 맞아 우리는 우리글의 우수성을 널리 선양하고 문화적 긍지를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한글사랑에앞장서야 겠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사이버공간에는 비속어와 은어,국적 불명의 외래어,생소한약어 등이 난무하는 등 ‘한글오염’ 현상은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맞춤법이나 문법을 완전히 무시한 언어가 넘쳐나면서 세대간 대화단절과 건전한 국어생활을 크게 위협하고 있어 심각한문제가 아닐 수 없다.그 사례들을 보면 가튼데(같은데), 조아(좋아),모냐(뭐냐),겜방(게임방),띰띰하다(기분이 좋지않다),되자나(되잖아),마니(많이),마나서(많아서),칭구(친구),남니다(납니다),추카추카(축하 축하),넹(네),알쥐(알지),구치(그렇지),갈께엽(갈께요),금 잘있어(그럼 잘있어),암거나(아무거나),짐 갈껀가여(지금 갈것 인가)등 이해조차 어려운 말들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말의사용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향후 심각한 언어생활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맞춤법이나 문법에 맞는 바른 언어사용을 위한체계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언론 등도 문제가 많다.수많은 외래어를 여과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생활방식,습성’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사용,어리둥절한 경우도 있다. 554년 전에 만들어진 이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글을 세계 어느 민족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가.맞춤법에 어긋난 말들을 사용하는 네티즌과외래어를 무분별하게 혼용해 사용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에 대해 당부한다.외래어를 사용해야 박학다식하다는 선입견을 하루빨리 버려야한다.또 사이버공간의 글도 맞춤법에 맞는 말을 사용하도록 하자.이를 위해서는 학교교육의 강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한글은 7,000만우리민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며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우리가 한글을 보다 곱고 바르고,떳떳하게 사용한다면 영어 못지않은 국제어로서 통용될 그날이 올수 있다.우리가우리말을 사랑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우리한글을 써주고 아껴주겠는가? 한글은 우리의 글이요 우리가 영원히계승 발전시켜야 할 7,000만 한민족 고유의 글인 것이다. 김동균 [부산광역시 여성정책과]
  • 상상력·실험성 돋보인 소설 두권

    ◆박경철 '마음의 지도'. 읽기가 쉽지는 않지만 공들여 쓴 실험성 소설 두편이 눈길을 끈다. 박경철의 ‘마음의 지도’(문학사상사)는 올 삼성문학상 수상작으로심사위원들로부터 ‘이면의 또 다른 나를 추적하는 추리기법적 과정이 집요하다’ ‘소설 속에서의 소설 쓰기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현실과 허구의 이중성을 교묘하게 교란시키면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는등의 평을 받았다. 63년생의 작가는 94년 등단한 뒤 수편의 장편을 발표했다. ◆김정환 '파경과 광경'. 김정환의 ‘파경과 광경’은 한층 야심적인 실험적 소설이다.임종을앞둔 아흔아홉 살의 화자가 전생과 그 전전생의 기억을 살려 자신의가족사를 추적하는 형식인데 작가는 인물소설 형식을 빌려 파란의 20세기를 형상화하고자 한다.54년생의 작가는 “실패로 끝난 20세기를,전생의 전생,그러니까 인류 전체의 역사와 신화를 추적해서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했다고 말한다.김정환은 80년 등단한 뒤20여권의 시집과 소설 등을 냈다. 김재영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