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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미발표 작품 대량 발굴

    김수영 미발표 작품 대량 발굴

    “누가 평화를 원하지 않는 자 있으랴마는/오늘도 나 거리에서 끝없이 싸운다./거리는 나의 화원이다./반공, 닭털 파는 소녀, 장타령,○○… 속에서/나는 세포를 조직하는/붉은 용사가 아니다.”(‘네거리’ 중에서) ‘풀’의 시인 김수영(1921∼1968)의 미발표 시와 일기·메모 등 미수록 산문들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릴 이번 미발표 작품은 1954년 1월에서 1961년 5월 사이의 미발표 시 15편과 일기·메모 등 30여편. 날짜를 명기하지 않은 번역 원고와 번역을 위한 영시 필사본 등도 포함돼 있다. 이 자료들은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원고지뿐 아니라 각종 봉투와 광고지·엽서, 심지어 시멘트 포대 종이 등에 시인의 육필로 쓰여 있다. 해제를 맡은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시의 경우 청서(淸書)돼 있는 ‘결별’(가제)과 ‘김일성만세(金日成萬歲)’ ‘연꽃’ 등 3편을 제외하면 초고의 형태로 돼 있어, 아직 완성되지 못했거나 시인이 불만족스러워 발표하지 않은 작품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50년대 작품 중에는 시인 특유의 발랄하고 전격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음악(大音樂)’, 주체성과 자존심을 다시 발견한 자로서의 긍지가 두드러진 ‘나의 피’, 엄숙한 선언적 울림을 담고 있는 ‘결별’ 등이 포함돼 있다. 시인의 시 제3기에 속하는 1960년작 ‘김일성만세’와 1961년작 ‘연꽃’은 금기어를 사용한 정치적 문제작으로 현실인식과 그 시적 변용 두 측면에서 기존에 알려진 시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특히 ‘사회주의 동지들’에게 혁명은 계속될 것이므로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형식으로 된 ‘연꽃’에는 ‘사회주의 동지들’이라는 만만찮은 금기어가 등장해 주목된다. 또한 남한의 언론자유를 ‘강변’한 시 ‘김일성만세’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평론가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시인이 고인’이라는 단서가 없다면 실정법상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 “시 자체의 예술적 가치나 이념적 정당성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日, 美와 영토분쟁때 ‘독도는 조선땅’ 지도 사용”

    “日, 美와 영토분쟁때 ‘독도는 조선땅’ 지도 사용”

    일본이 19세기 미국과 오가사와라(小笠原) 군도의 영유권을 두고 다투면서 독도가 조선땅이라고 명시된 지도를 제시해 영유권을 획득했던 사실이 공개됐다. (사진 왼쪽) 세종대 교수는 1854년 일본과 미국이 오가사와라 군도의 영유권 논쟁을 벌일 때 막부의 공식 지도인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를 제시해 미국 주장을 꺾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2일 공개했다. 논문에 따르면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가사와라 군도의 이름을 ‘小笠原’으로 명명했다는 고문서(1691년)와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작성한 삼국접양지도(1786년)를 내놓았으나, 미국은 ‘일본어로 쓰인 문서는 국제법상 증거능력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일본은 불어로 번역된 삼국접양지도를 제시해 미국의 주장을 꺾고 오가사와라를 국제법상 일본령으로 확정했다. 불어판 삼국접양지도에는 독도와 울릉도에 ‘조선에 속한다.( La Core)’라는 문구가 분명히 새겨져 있고 일어판에도 두 섬에 ‘조선의 소유(朝鮮の持也)’라고 명기돼 있다. 호사카 교수는 “하야시의 지도와 저서는 영토 분쟁 때 공식자료로 활용됐다.”면서 “그렇다면 지도에 조선령으로 명시된 독도는 일본이 하야시의 지도를 공식 자료로 삼은 시점에서 이미 조선령으로 확정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호사카 교수는 지난해 발표된 일본 시마네현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의 최종보고서가 왜곡됐다는 사실을 비판하기 위해 논문을 작성했으며, 일어판 논문은 시마네현 등 일본 각지에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체인스모커 스포츠 스타들

    모든 운동선수는 건강을 스스로 해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ESPN은 지난 24일 블로그 기사를 통해 스포츠 스타의 담배 피우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모(?)했다. 취재기자나 사진기자에게조차 숨기고 싶었던 장면들이 모여 28일 ‘스포츠의 룰-손에 있으면 피우지 뭘’이란 제목 아래 소개됐다. 마릴린 먼로의 남편이었던 조 디마지오는 1941년 56경기 연속 안타를 날리는 와중에도 담배를 연신 피워댔다. 에런이 베이브 루스의 최다홈런 기록을 한참 뒤쫓을 때에도 늘 손엔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로저 매리스 역시 루스의 기록을 쫓을 때 담배를 꼬나물곤 했다.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명 3루수 리치 앨런처럼 낮은 연봉을 받았다면 누구나 담배를 피워댈 것이라고 블로그 주인장은 농을 했다. 많은 이들이 몇년 전 콜로라도 로키스가 흡연실을 열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는 수십년 전부터 클럽하우스에 흡연실을 열어 놓고 있었다. 당시 흡연실을 주도한 이는 베이브 루스로 윌리 메이스 등과 어울려 시가 향에 빠져 들곤 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희한하게도 1954년 지미 다이크스가 사령탑에 오른 이후 줄곧 니코틴 중독자들이 감독을 맡아왔다.1970년대 얼 위버 감독이 구단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유니폼 안쪽에 비밀주머니를 박음질해 단 것이 들통났을 정도. 칼 립켄 시니어 역시 이 전통을 따랐다. 미프로농구(NBA)에선 흡연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황제’ 마이클 조던은 꽤나 담배를 즐겼다. 골퍼 가운데는 벤 호간과 아널드 파머가 1966년 마스터스 대회 도중 함께 담배를 피운 모습이 담긴 사진이 유명하다. 현역으로는 미겔 앙헬 히메네스, 앙헬 카브레라와 악명 높은 존 댈리가 있다. 축구선수로는 지네딘 지단, 복서로는 리카르도 마요르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임병선기자 arakis.blog.seoul.co.kr
  • 원로 국악학자 이혜구 100세 축하모임

    원로 국악학자 이혜구 100세 축하모임

    국악계 원로 만당(晩堂) 이혜구(1909∼)옹의 100세를 축하하는 자리가 새달 9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다. 올해 100세를 맞는 이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마련한 자리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옹은 경성제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경성방송국에 프로듀서로 입사, 국악 프로그램 등을 담당했으며 해방 후에는 방송국장을 역임했다. 이때 국악과 인연을 맺어 전통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옹은 1948년 ‘국악연구발표회’를 시작해 현재의 사단법인 한국국악학회의 초석을 놓았다.1954년에는 한국국악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옹은 서울대 음대 학장을 거쳐 1974년 정년퇴임한 뒤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 명예교수, 한양대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그동안 여러 편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이옹은 현재도 ‘한국음악이론’ 개정판과 ‘국악사’를 집필 중이다. 새달 열리는 축하 모임에서는 후학들이 1060쪽에 이르는 ‘만당 이혜구박사 백수 송축논문집’(민속원)을 봉정한다. 논문집 봉정에 이어 1998년 이옹의 구순을 맞아 제정된 ‘이혜구 학술상’ 제6회 시상식과 축하 연주, 국악계 관계자들이 함께 하는 축하 잔치가 이어진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내가 바로 일등 공무원] 장종환 마포구 염리동장

    [내가 바로 일등 공무원] 장종환 마포구 염리동장

    “여기 두 칸 짜리 공동변소가 있었는데 아침마다 20∼30m씩 줄을 섰어. 밤 늦도록 술이라도 퍼 마신 다음 날엔 바지에 똥오줌 지리는 일이 허다했지. 급할 땐 저기 학교 담벼락을 넘어가 해결하곤 했다니까.” 24일 마포구 염리동 상록아파트 입구. 전쟁통에 월남해 1954년부터 염리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김창진(87)옹이 아파트 정문과 맞은편 숭문고 담장을 가리키며 기억을 더듬었다. “화장실 앞이 아침인사 장소였네요. 어색하거나 민망하진 않았어요?” 옆에서 김옹의 이야기를 꼼꼼히 받아적던 장종환(54) 염리동장이 각진 안경알 너머로 두 눈을 반짝이며 되묻는다. 그는 요즘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골목길이며 우물터 등 마을 곳곳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로 분주하다. 구술을 채록해 마을의 생활사로 복원하는 일은 그가 구상하는 ‘염리 창조마을’의 핵심사업이다. ‘창조마을’은 염리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일종의 ‘마을성 회복’ 프로젝트다. 장소에 얽힌 기억을 복원해 정서적 유대의 원천으로 삼고, 활발한 문화·예술활동을 매개로 지역 사안에 대한 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다. 처음엔 다들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일개 동(洞)이 나설 일이 아니란 얘기였다.‘어설픈 시민단체 따라하기’라는 냉소도 들려왔다. 농촌이 아닌 도시, 그것도 주민 이동이 잦기로 악명높은 ‘개발 유랑민’의 도시 서울에서 관이 주도한 ‘마을 만들기’가 성공한 전례는 드물었던 탓이다. 장 동장은 우회로를 택했다. 초기에는 동이 주도하되 ‘창조 아카데미’라는 자치학습 프로그램을 열어 주민들을 마을 만들기의 주역으로 길러낸다는 구상이다. 또 주민센터와 지역주민, 전문가로 창조마을 추진위원회’를 구성, 마을 만들기의 기획과 실행을 전담시킬 계획이다. ‘창조 마을’의 콘텐츠로 활용할 지역 자원도 풍부한 편이다. 염리(鹽里)라는 지역명이 유래한 옛 소금창고와 소금전 터, 일제시대 일본인 목장의 인부들이 기거하던 마루보시 사택,1960∼70년대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달동네 골목길은 염리동만 갖고 있는 훌륭한 문화 자산이다. 욕심이 있다면 동네에 얽힌 이야기와 영상들을 수집해 지역 생활문화 사료관을 여는 것.‘소금창고’라는 이름까지 점찍어 뒀다. 정감있는 골목길을 발굴해 ‘달동네 테마코스’로 육성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당장의 바람은 소박하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2세대들에게 ‘고향 염리동’에 대한 추억과 얘깃거리를 남겨주는 것이다. 이같은 바람은 “명절에도 갈 곳이 없다.”는 그의 하소연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지난 1월 부임한 장 동장은 마포구청 문화체육과장과 기획예산과장을 지낸 마포구의 터줏대감이다. 그의 고향은 염리동과 맞닿은 공덕동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베이징 올림픽 D-110일’ 태릉 선수촌 이에리사 촌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베이징 올림픽 D-110일’ 태릉 선수촌 이에리사 촌장

    가끔 이런 말을 한다.‘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고. 금의환향, 개선장군이 읊으면 더욱 ‘멋져부러’다. 원래는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가 처음 말했다. 적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뒤였다. 카이사르는 또 루비콘강을 건널 때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비장한 심정을 역사에 남기기도 했다. 짧고 강한 멘트가 인상적이어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된다. 오늘날 올림픽대회 같은 큰 결전을 앞둔 상황, 그리고 승리의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와 축배의 잔을 들 때도 종종 인용된다. 언제부터인가 올림픽경기에서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TV화면에 선수 프로필과 함께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우리들은 대한 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기른 힘과 닦은 기술 최후까지 떨쳐보세/이기자 이겨야 한다∼’라는 노래(모기윤 작사·김희조 작곡)가 흘러나왔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스트레스 해소로 막판 컨디션 관리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109일(8월8∼24일) 남았다. 티베트사태로 성황봉송 레이스에 일부 차질이 빚어지고는 있지만 내로라하는 세계적 선수들이 다 ‘베이징시계’에 맞춰 놓고 대회전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13억 인구의 중국은 자국 개최라는 이점을 최대한 이용, 금메달 40개로 미국을 누르고 종합 우승을 확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10개를 따내 10위권 안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양궁, 태권도, 레슬링, 핸드볼, 수영, 역도, 유도, 남자체조 등에서 금메달을 기대한다. 하지만 다른 올림픽 때와는 달리 가장 어려운 대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대규모의 투자 등 이번 대회에 ‘올인’하는 만리장성의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관중의 광적인 응원이나, 경기장 곳곳마다 간단치 않은 텃세가 우리 선수들을 괴롭힐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이같은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걱정하면서도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120% 발휘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에리사(54) 태릉선수촌장이다. 그럴 것이 올림픽에 출전할 우리나라 대표선수들 대부분이 현재 태릉선수촌에서 마지막 비지땀을 쏟아내고 있다. 이 촌장 또한 ‘대한 건아’들의 큰언니, 큰누나, 혹은 어머니로서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사라예보의 전설’처럼 세계를 제패한 ‘영웅’으로 그 누구보다 선수들의 심정을 가장 잘 알 터. 이 촌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불암산 기슭에 자리잡은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선수들과 마주쳤지만 폭풍전야의 정중동처럼 어떤 비장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태릉선수촌에서는 현재 360명 정도가 맹훈련 중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 10개를 획득하고 ‘톱10’ 진입이 무난할까요. “선수들을 볼 때마다 제 마음 같아서는 금메달을 팍팍 찍어내고 싶습니다. 사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다른 대회보다 무척 어렵습니다. 각 종목마다 중국선수와 맞닥뜨려야 하고 시합장 분위기도 중국에 유리하게 만들겠지요.88서울올림픽때 우리가 4위, 중국이 1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역전이 되는 것이지요. 또 같이 10위권 진입을 다툴 일본도 우리에 비해 메달 가능 종목이 넓은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끈질긴 정신력과 저력이 살아나면 기대 이상의 결과도 나올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금메달 가능 종목은 어떤 것인가요. “현재로선 양궁(2), 태권도(2), 유도, 여자역도, 남자수영, 레슬링, 남자체조 등에서 8∼10개를 금메달권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 톱권인 (박)태환이와 (장)미란이가 경기를 잘 뛰어주길 바라고 있지요.” ▶올림픽 100여일을 앞두고 요즘 선수들은 어떻게 보냅니까. “선수든 지도자든 다 베이징에 올인해 있지요. 모든 것이 정해진 스케줄에 의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이들에게 잘 먹게 하고, 쉴 때 잘 쉬게 하고 또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쯤이면 선수나 지도자나 사기가 매우 중요할 때입니다. 컨디션 조절도 물론입니다. 그래서 식당 등에서 선수들을 볼 때마다 항상 탈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지요. 혹 짧은 바지라도 입었으면 ‘이 녀석아 환절기 때 감기 들면 어떻게 하느냐.’고 야단을 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다 아들딸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이 촌장은 요즘 하루 정해진 공식일정 외에 틈나는 대로 식당의 주방장과 요리사 등을 만나 ‘좋은 음식’을 자주 주문한다. 또 종목별 지도자들과 식사를 같이 하며 선수들의 건강상태나 어려운 문제 등 이런저런 얘기를 터놓고 하는 일도 더욱 많아졌다. 이때마다 후배들에게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면 후회하지 않을 결과가 나온다.”라고 강조한다. ▶촌장에 취임한 지 만 3년(임기 4년)이 됐습니다. 여성으로서 소회가 남다를 텐데요. “너무나 힘든 3년이었지만 동시에 아주 값진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아무나 와서는 안 되는 자리라는 것도 실감했지요. 고통도 뒤따랐고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1년 남았지만 우리의 체육 발전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는 체육인이자 여성으로 첫 선수촌장을 맡아 화제가 됐다. 당초 주위에서 일부 우려도 있었지만 지난 3년 동안 뛰어난 행정역량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런 등등의 이유가 덧붙여져 올초 역대 올림픽메달리스트 168명으로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도전하라는 추대를 받고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IOC 위원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IOC 위원에 뽑힐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전체 IOC 위원 중 여성몫이 20%(23명)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16명밖에 안 돼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일단 명분은 세웠다고 봅니다. 또 우리나라도 이젠 선수 출신도 (IOC 위원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2006년 3월 IOC로부터 ‘아시아 여자선수상’을 수상한 것도 이롭게 작용할 것입니다. 여기에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위상 등등을 고려할 때 낙관적으로 기대하고 있지요. 시기가 언제라고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IOC 자격심의위와 집행위를 통과하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지요.” 현재 공식적으로 IOC 위원에 도전한 국내 인사로는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가 유일하다. 문대성 동아대 교수의 경우는 선수분과위원이기 때문에 영역이 약간 다르다. 이 촌장의 경우 비어 있는 ‘여성몫’을 노리고 있는 것. ●여성 몫 IOC 위원에 도전할 것 꼭 45년 전 이맘 때였다. 대부분의 국내신문은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만리장성 중국을 꺾었다’ 그러면서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이에리사 등 한국 여전사들이 일본은 물론 세계 최강 중국을 무너뜨리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고 대서특필했다. 바로 이날은 건국 이후 첫 국제대회 금메달이자 한국 구기종목이 세계를 처음 제패한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렇게 태어난 ‘사라예보의 전설’이 IOC 위원 도전은 물론 이번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하는 또다른 이유이다. 이 촌장은 아직도 독신이다. 까닭을 묻자 “수다 떠는 친구들도 있고, 집에 가면 솔직히 씻고 자기도 바쁘다. 휴일에는 가끔 혼자 산에 올라 심호흡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면서 “이제 와서 뭘….” 하며 미소만 짓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4년 보령 출생. ▲70년 제10회 아시아 탁구선수권대회 주니어부 개인단식 우승. ▲71년 국내대회 8관왕. ▲72년 제15회 스칸디나비아 오픈탁구대회 개인전 단·복식 우승. ▲73년 서울여상 졸업, 제32회 세계 탁구대회(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단체전 우승. ▲76년 제28회 독일 국제오픈탁구대회 개인전 단·복식 우승. ▲97년 명지대학교 체육학 박사. ▲99년 용인대학교 교수.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탁구대표팀 감독. ▲05년 태릉선수촌장. ▲06년 국제올림픽위원회 ‘여성과 스포츠 트로피’ 수상. #주요 저서 ‘2.5g의 세계’‘탁구훈련지도서’외 다수.
  • [부고] 애국지사 박종길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박종길 선생 별세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애국지사 박종길 선생이 9일 새벽 서울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84세. 1924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44년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인 토교대(土橋隊)에서 활동했다. 광복을 맞아 귀국, 육사 5기생으로 입대한 뒤 6·25전쟁에 참가해 용문산 전투, 하천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54년 중령으로 예편한 뒤 3·4·5대 민의원을 역임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63년 대통령표창을,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정기원(82) 여사와 아들 재민·장락·승민씨, 딸 연화·경란씨 등 3남2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이다.(02)3410-6901.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음악이 부리는 조화/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글로벌 시대] 음악이 부리는 조화/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뉴욕필의 평양 공연이 있은 지 달포가 지난 지금도 이에 대한 평가는 진행형이다. 당초 공연 전부터 미국에선 찬반이 분분했다. 지지자들은 음악이라는 인류 보편적 매개체를 통해 북한 사람과 소통하는 기회라는 데 의미를 뒀고 이 공연이 북·미관계를 푸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도 가졌다. 반대자들은 북한의 선전에 이용될 뿐이라고 했다. 논란의 와중에서 주최측은 북한에 공연 중계, 외신 취재, 양국 국가를 포함한 연주곡의 자유선정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해 비판론을 무마코자 했다. 현장에 다녀온 미국인들은 공연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청중도 점점 호응을 높여가다가 끝내 기립하며 못내 작별을 아쉬워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북한 언론이 공연을 아주 작게 취급한 사실과 청중이 동원된 것으로 보였다는 점, 공연 후에도 북한이 핵문제에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남북 축구경기에서 우리 국가 연주에 여전히 반대하였음을 들어 그 성과를 부인하였다. 이렇듯 북한과의 문화교류는 예외 없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찬반 모두 부분적인 진실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과 외국간의 교류에는 의당 북측의 계산된 의도가 있을 것이나,(최근 북측은 뉴욕필 공연을 개방 사례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상대측의 목표가 전혀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반화하여 말하면 단기적으로는 북에 득이 되면서 장기적으로는 상대가 겨냥하는 효과도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1931년 전설적인 재즈 연주가 루이 암스트롱은 그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텍사스의 오스틴에 공연을 하러 간다. 청중 중에는 찰스 블랙이라는 텍사스 대학 신입생이 있었다. 그는 암스트롱이 누구인지 모르고 재즈 음악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다. 그가 공연에 간 이유는 함께 춤출 여학생들이 많이 온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날 연주를 듣고 흑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그는 암스트롱을 비롯한 흑인 음악가들의 천재적 재능과 공연장을 압도하는 권위, 예술적 자기통제 능력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때까지 하인으로서의 흑인만을 보아왔던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한 고교생은 음악은 좋으나 그래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래도 저들은 상스러운 검둥이일 뿐’이라면서 나가 버렸다고 한다. 후일 블랙은 예일 법대의 저명한 헌법학 교수가 된다. 그런데 16세에 접한 암스트롱의 음악은 흑백문제에 대한 그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결국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권소송에 참여하도록 이끈다.1954년 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위 소송에서 흑백분리가 위헌이라는 기념비적 판결을 내릴 때 그는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승소에 큰 기여를 했던 것이다. 평양의 뉴욕필 공연에 온 사람들 대부분은 동원된 사람들일 수 있다. 중계에 접한 많은 이들도 뉴욕필이 누구인지 모를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뿌려진 감동의 씨앗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지금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상당수는 ‘그래도 저들은 원쑤 미제일 뿐’이라고 단정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은 심금을 울리는 보편적 언어로 말한다. 그것이 어떠한 조화를 부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지 지금 말하기는 이르다. 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경색국면으로 치닫는 요즈음 뉴욕필이 남긴 음향은 벌써 공허한 듯 보인다. 그러나 ‘신세계로부터’나 ‘파리의 미국인’의 선율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또 ‘캉디드 서곡’을 연주하기 직전 작곡자 번스타인의 영혼이 지휘하게 하자면서 지휘석을 비워 경의를 표한 로린 마젤의 모습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게다. 그 기억의 자리는 음악이 정치공학과는 다른 작동원리와 시간개념으로 조화를 부리는 곳일 테고 그 조화는 진행형일 것이다. 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 [부고] 최광석 OB축구회 명예회장

    1954년 한국대표팀을 스위스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데 기여한 최광석 한국OB축구회 명예회장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다닌 최 명예회장은 1954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월드컵 아시아예선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 최연소 대표선수로 출전해 1골을 기록,5-1 대승을 이끌었다. 일주일 뒤 2차전에선 2-2로 비겼지만 한국은 사상 첫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다. 최 명예회장은 은퇴 이후 한양대, 외환은행 감독을 역임했고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서울시축구협회 부회장, 한국OB축구회 회장을 지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고 장례는 축구인장으로 거행된다. 발인은 8일 오전 8시.(02)921-1099.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5년간 1℃ 상승했는데 지구온난화?

    25년간 1℃ 상승했는데 지구온난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 예측해 단죄하는 ‘프리크라임’은 범죄 없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프리크라임을 구성하는 세 명의 예지자들의 의견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그러나 세 사람 중 두 사람의 의견이 같다면 나머지 한 사람의 의견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의 의견)로 무시된다. 영화는 전체를 위한 편의성이라는 이름으로 묻혀지는 소수의 의견이 때론 옳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확한 대처 위해서는 소수의견에도 관심을 2008년 현재 전 세계 최고의 화두는 단연 ‘지구온난화’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온난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대의 재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류멸망’을 이끌어낼 무시무시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의 위험이 실제 과학적 사실보다 훨씬 과대포장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상청의 한 관계자는 “지구온난화에 인류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은 분명히 심각할 정도로 부풀려져 있다.”면서 “다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이같은 사실을 용기내서 말할 학자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환경단체와 운동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확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위험을 과대 포장’하는 것보다 ‘정확한 사실 파악’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최대의 일기예보 전문 회사 ‘웨더 채널’ 설립자인 존 콜만은 최근 전 미국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를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고작 1도의 기온변화가 있었고 지난 겨울은 엄청나게 추웠다.”면서 “이산화탄소는 10만개의 공기 입자 중 겨우 38개를 구성할 뿐인데 마치 전체인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수 미디어가 지구 온난화 주장만 보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을 통한 법적 공방은 지구 온난화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저명한 기상학자이기도 한 콜만은 고소장과 동시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마이클 만의 1999년 보고서는 명백한 오류”라며 “지난 1000년간 1990년대가 가장 더웠고, 그 중 1998년의 온도가 최고였다는 만의 결론은 그가 제시한 연구결과와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또 미항공우주국(NASA)이 1840년 이후 매년 발표하고 있는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 기록에 따르면 역대 10위까지의 해 중 1990년대는 세 차례,21세기 이후에는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 이는 인간이 지속적으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불가능한 결과라고 콜만은 설명했다. CNN 진행자인 글렌 벡 역시 “지구온난화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사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고어의 ‘불편한 진실’을 패러디한 제목의 베스트셀러 ‘불편한 책’을 통해 “기상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직장에서 해고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침묵하고 있다.”면서 “반론에 대한 언로가 막혀 있고, 만약 제기하면 마녀사냥식 공격에 당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英법원 ‘불편한 진실´ 9가지 오류있다고 판결 지구온난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고어에게 2007년 노벨평화상을 안긴 영화 겸 베스트셀러 ‘불편한 진실’을 둘러싼 논란도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고어가 직접 출연한 영화 ‘불편한 진실’이 기후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점을 들어 노벨상과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불편한 진실과 관련된 논란은 영화상영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영화를 지구온난화 교재로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고어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교사협회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교육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며 사양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영국 법원은 영화 내용상 오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영국 고등법원의 마이클 버튼 판사는 “영화가 지구온난화를 다루는 데 있어 9가지 잘못된 점이 있고, 이 중 상당수는 고어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기 위해 과장되고 기우적인 맥락에서 나타났다.”며 “영화를 중등학교에서 교육자료의 일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방적인 관점을 상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은 영화에 대해(괄호안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 ▲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가 인간이 만든 지구온난화로 인해 물에 잠기게 될 것(침수로 인해 사람들이 대피한 사실 없음) ▲멕시코 만류를 통해 따뜻한 해수가 북대서양을 건너 서유럽으로 순환하는 해양 컨베이어를 마비시킬 것(IPCC 보고서에 따르면 순환 벨트가 정지하는 것은 불가능함) ▲65만년 동안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온도변화에 대한 두 개의 그래프가 완전히 일치(두 개의 그래프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많은 변수가 존재함)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사라진 것은 온난화 때문(다른 원인들이 밝혀지고 있음) ▲차드호가 마른 것은 지구 온난화의 대표적인 예(차드호는 인구증가와 목초, 지역적인 기후변화로 말랐음) ▲허리케인 카타리나는 지구 온난화로 발생(뒷받침할 증거 없음) ▲북극곰이 얼음을 찾기 위해 먼 거리를 헤엄치다가 바다에 빠져 죽고 있음(실제로는 폭풍으로 인해 물에 빠져 죽은 북극곰 네 마리가 발견됐을 뿐) ▲지구 온난화로 전 세계의 모든 산호초가 탈색됐음(산호초 탈색은 과도한 어업행위, 오염 등으로 인한 것) 등을 들고 있다. 특히 버튼 판사는 “고어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까운 시일내에 해수면이 6m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같은 일은 최소한 1000년 이상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자축행사 없는 삼성 창립 70주년

    삼성그룹이 22일로 고희(古稀)를 맞는다. 고(故) 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 3월22일 ‘삼성상회’라는 식품점을 대구에서 차린 지 딱 70년 되는 날이다. 하지만 서울 태평로2가 그룹 본사의 분위기는 차갑고 무겁다.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이에 따른 수사 등 창사 이래 가장 어지러운 상황을 맞은 탓이다. 전·현직 최고경영진에 이어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까지 검찰조사를 받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축(自祝)은 생각할 수도 없다. 삼성그룹은 2006년 말 기준 매출 152조원, 순익 14조원으로 다른 그룹들과 엄청난 격차를 보이는 국내 부동(不動)의 1위 기업이다.59개 계열사에 25만명이 고용돼 있고 브랜드 가치는 170억달러, 주식 시가총액은 140조원에 이른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SDS, 제일기획 등 대부분 주력기업들이 해당 업종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수출은 2006년 기준 700억달러로 국내 전체의 21.5%를 차지했다. 성장 초기 선망의 대상이었던 일본 대표기업 소니를 이미 브랜드가치와 시가총액에서 제쳤다. 삼성그룹이 1950년대 이후 보여온 사업영역 확장은 규모와 속도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삼성은 제일제당(53년 창업)과 제일모직(54년) 등 경공업 중심에서 63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인수와 69년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 창업을 통해 현재 그룹의 주력인 금융과 전자사업을 시작했다.74년 삼성중공업·삼성석유화학 등 중화학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78년 삼성반도체,82년 삼성반도체통신 등으로 첨단산업 진출의 씨앗을 뿌렸다. 그룹 관계자는 20일 “경공업-중화학공업-전자업-정보기술(IT)로 이어지는 삼성의 선택은 한국의 기업사와 궤적을 함께한다.”고 말했다. 87년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삼성그룹은 88년 ‘제2창업’,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등 글로벌 기업으로 위상을 빠르게 확보했다. 그러나 삼성은 지금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97년 외환위기,2002년 대선자금 수사,2005년 안전기획부 ‘X파일’ 사태와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발행 수사 등 그간 숱한 고비를 넘겨왔지만 이번에는 강도가 전과는 다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삼성 개혁 촉구, 특검의 강도높은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에도 삼성중공업이 연루됐다. 삼성그룹은 이번에 70주년 기념식이나 임직원 포상 등을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삼성 70년사’ 발간 작업도 중단했다. 지난해 말 이 회장 취임 20주년 기념식이나 올초 시무식 취소와 같은 맥락이다. 삼성은 4월 특검 수사가 끝난 뒤 ‘그룹 쇄신안’을 내놓는 것을 추진 중이다. 삼성 관계자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높은 대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삼성이 ‘제3창업’에 버금가는 대결단으로 이번 위기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갈지 주목된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흑인 첫 뉴욕주지사 데이비드 패터슨

    [피플 인 포커스] 흑인 첫 뉴욕주지사 데이비드 패터슨

    엘리엇 스피처(49)가 성매매 스캔들로 중도하차함에 따라 뉴욕 부지사에서 주지사로 승격한 데이비드 패터슨(53)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바마에 도움줄까” 관심집중 패터슨은 흑인으로 세 번째이며 시각 장애인으로 첫번째 주지사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미스터리맨’이라 불릴 정도로 그의 실체는 과소평가돼 있지만 생애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임에 분명하다. 주지사이며 슈퍼대의원이 된 패터슨이 같은 흑인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검은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대선 정국에서 관심거리다. 12일(현지시간) BBC,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따르면 패터슨은 1954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뉴욕 부시장을 역임한 유명 정치인인 바실 패터슨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3개월 만에 질병에 걸려 왼쪽 눈은 완전히 시력을 잃었고 오른쪽 눈도 거의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맹도견이나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을 거부했다. 시각 장애도 그의 학구열을 막지 못했다. 패터슨은 공립학교의 첫번째 장애인 학생이 되었고, 녹음된 교과서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학업에 정진해 우등으로 졸업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역사, 홉스트라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85년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소수계 지원등에 앞장 패터슨은 2002년부터 뉴욕주 민주당 소수파 리더로 활동하다 2006년 뉴욕 주지사로 출마한 스피처의 러닝메이트가 되면서 스피처와 관계를 맺었다. 당시 정치평론가들은 의례적인 자리인 부지사에 출마하기로 한 그의 결정에 의아해했다. 민주당이 재집권하게 되면 패터슨이 주류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패터슨의 도박은 스피처의 낙마로 보상받았다. 1999년에 뉴욕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한 패터슨은 그동안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부지사 취임 후엔 대체에너지 및 줄기세포 연구, 소수계 지원에 앞장서 왔다. 컬럼비아대 부교수이기도 한 그는 할렘에서 부인 미셜 페이지,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日 자동차 54년만에 우승

    경주용 자동차가 출전하는 포뮬러1과 달리 개조된 상용차로 경쟁하는 전미개조자동차경주대회(NASCAR)는 지난 1954년 뉴저지주 린덴에서 열린 도로경주에서 앨 켈러가 영국산 재규어를 몰고 우승한 이후 미국 자동차들의 독무대였다.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만을 허용한 대회 규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나스카 스프린트컵 코발트 툴스 500에서 카일 부시(23)가 운전한 도요타 캠리가 맨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54년 만에 미국 아닌 나라의 업체가 만든 자동차가 우승하는 신화를 재현했다고 워싱턴타임스가 10일 보도했다. 일본 업체지만 미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도요타는 지난해 나스카에 데뷔,40경기를 치른 끝에 마침내 이같은 쾌거를 일궈냈다. 도요타레이싱개발(TRD)의 짐 오스트 회장은 “이보다 더 기쁠 수 없다. 도요타에 영원히 기억될 날이다. 이 시리즈에 뛰어든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를 실감하고 있다.”고 기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하숙생’ 최희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하숙생’ 최희준

    스피노자는 스스로 ‘왕따 철학자’였다.46세 폐병으로 죽을 때까지 집을 떠나 홀로 ‘하숙생’과 ‘나그네’로 전전했다. 하지만 주위의 어떤 비난과 찬사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삶을 살았다.‘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을 폈다. 그래서 헤겔은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스피노자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 곳곳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 대부분 철학자나 다름없다. 부모를 뒤로하고 고향집을 떠나 ‘하숙생’으로, ‘나그네’로 다들 살고 있을 터이다. 모진 비바람이 닥쳐도 ‘나름대로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하나 둘 꿈의 벽돌을 쌓고 있다. 이름을 떨치든 아니든 ‘나 태어나 열심히 잘살아 보겠노라.’고 고민하고 다짐하면서 고군분투한다. TV가 아주 드믈었던 1964년,‘하숙생’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애인을 구하려다 화상을 입고 버림받은 남자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 사람들은 비운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럴 때마다 허스키한 저음의 음성이 미치도록 나지막이 깔렸다.‘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이랑 두지 말자 미련이랑 두지 말자/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어가듯 정처 없이 흘러간다∼’ 전파를 탄 지 불과 10일도 안돼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다. 경향각지 선술집에서는 너도나도 젓가락 반주에 ‘인생은 나그네길∼’을 불렀다. 그럴듯한 ‘철학적 깊이’에 다들 심취하는 모양이었다.‘그래, 인생이 뭐 별거냐, 벌거숭이로 왔다가 벌거숭이로 가는 것을’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서민들의 지친 삶을 어루만지는 노래로 대표되는 ‘하숙생’이다.1960년대 톱가수 최희준(72)씨가 불렀다.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왜? 이 노랫말을 직접 쓴 고 김석야 선생이 생전에 답했다.“교통 요충지인 천안삼거리를 오가는 길손들의 애환을 어릴 적부터 보면서 드라마로, 노래로 만들어 보겠노라.”고. 40대 이상의 팬들은 물론 30대의 젊은 층도 가수 최희준을 아는 사람이 많다. 전무후무하게 서울대 법대를 나온 가수이자 전 국회의원, 그리고 학사 출신 가수 1호로도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일흔을 넘긴 지난해 그는 ‘대한민국 연예예술상대상’과 ‘화관문화훈장’을 받으면서 ‘영원한 하숙생’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2008년 그에겐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1936년 쥐띠생인 그가 쥐띠해를 맞아 노래인생 50년을 기념한다.‘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진고개 신사’‘빛과 그림자’‘하숙생’‘종점’‘팔도강산’ 등 수많은 히트곡을 모아 올가을 특별한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다. 되도록 추억의 팬들을 많이 만나려고 대극장을 물색 중이다. 그를 서울교육문화회관 커피숍에서 만났다. ▶노래 인생 50년을 맞는 소감은 어떠신지요?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예나 지금이나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떨려요.‘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로 데뷔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봤을 때 ‘올드미스’라는 제목이 쉽게 나왔을까요? “제가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른 것은 서울대 3학년 때인 1958년입니다. 지금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법대 대표로 저와 가야금 하시는 황병기 선생이 출전해 입상을 했지요.6·25이후 미군의 영향이 많았을 때였습니다. 군복을 염색해 입고 다니기도 했거든요.1959년 대학졸업 후 미8군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데 손석우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니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내사랑 주리안’‘그림자’‘목동의 노래’ 등을 주시더군요. 그러면서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부를 수 있는 밝은 풍의 노래를 보급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하셨지요. 이른바 ‘홈송’입니다. 여전히 꼬장꼬장하신 손 선생님은 나이가 90인데도 건장하게 잘살고 계십니다. 지난해에 한번 만나 뵈었지요.” ▶데뷔 당시 같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여럿 되지요? “패티김, 이미자, 남일해, 한명숙, 박재란, 위키리 등 많습니다. 미8군에서 노래를 같이 부른 사람도 많고요.” ▶서울대 법대를 진학했다면 당연히 법관 지망생이었겠네요? “원래는 상대 입학원서를 들고 다녔는데 아버님께서 무조건 법대를 넣으라고 했어요. 장차 법조인이 되라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노래로 빠졌으니 아버지가 많이 속상해하셨습니다.‘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발표하고 나더니 당시 대한일보의 임영웅(현 산울림극단 대표)씨가 ‘대기만성형 학사가수 1호’ 어쩌구저쩌구 대문짝만 하게 기사를 쓰는 바람에 아버님이 알게 됐습니다. 보름 동안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요.” ▶법대를 진학했는데 고시공부는 안 했습니까? “대학 3학년때 제8회 고등고시에 응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봤더니 ‘이건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습니다.” ▶대학 동기들은 누구입니까? “서울대 법대 12회 출신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이한동 전 총리, 남재희 전 국회의원, 김용태 전 내무장관 등입니다. 동기들 중 저 혼자 노래를 부르다 보니 모임에 가면 제 주변에 다들 앉으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정치실세들 주변에 모이더군요, 하하하.12회니까 매년 12월12일날 송년회 겸 만납니다.” ▶가수에서 국회의원도 했습니다. 재선에는 왜 도전을 안 하셨는지요?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로 안양지역구에서 출마해 다행히 당선이 됐습니다. 문화관광위를 맡아 입법을 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재선도전은 공천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관뒀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하숙생’의 가사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인생이 뭐냐 하는 것은 항상 화두가 됩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때로는 묵상을 하게 만들고, 철학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들리지요. 종교계에 계신 분들도 ‘생각할수록’ 의미가 깊다는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저도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래 과연 인생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또 가사처럼 부담없이 인생을 살다 보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병대에서 복무하셨지요? “121기입니다.1961년 9월에 입대해 64년 2월에 제대했지요.‘해병 연예대’의 모병 광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나가는 모병선전과 전국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습니다. 여자 가수도 동행했는데 박재란, 이금희, 한명숙, 현미, 이춘희 등 당대의 스타들이었습니다. 해병 연예대의 멤버는 도미, 남백송, 박일호, 방태원, 박경원, 코미디언으로는 임희춘 등이었지요. 우리의 뒤를 이어 남진, 진송남, 박일남, 오기택 등이 해병 연예대의 전통을 이었습니다.” ▶요즘 노래를 들으면서 격세지감을 느끼시지요? “옛날에는 생각도 못 했던 깜짝 놀랄 만한 노래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중음악이 정규대학의 과목으로도 채택되고 있고 노래를 참 잘 부르는 후배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지요. 한류가 힘을 갖는 것도 실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 근황은 어떻습니까? “아들 둘, 딸 하나 두었는데 다들 결혼해 잘살고 있습니다., 안사람과 단둘이 오붓하게 살고 있지요. 일주일에 두어 번 헬스클럽에서 안사람과 같이 운동을 합니다. 좋아하던 술은 3년 전에 딱 끊어 버렸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저작권료를 얼마 받느냐고 하자 “가수는 받는 게 별로 없다. 그런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돼야 되는데….”라고 했다. 노래는 무엇이냐고 했더니 “말만 들어도 사춘기 때처럼 여전히 가슴이 뛴다.”며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6년 서울 출생 ▲54년 경복고 졸업 ▲59년 서울대 법대 졸업 ▲58년 가요계 데뷔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64∼66년 10대가수왕 ▲70∼72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 ▲96∼2000년 새정치국민회의 안양동안갑지구당위원장.15대국회 문화관광위원 ▲01∼04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근감사 ▲02년 최희준 가을밤 콘서트(정동극장) ▲03∼현재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이사장 ●주요 히트곡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하숙생, 팔도강산, 빛과 그림자, 종점 등 200여곡 발표
  •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박·고 없어도 ‘일본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1.7진” 지난 19일 중국 충칭의 다티안완 스타디움에서 만난 축구전문 프리랜서 기자 요시자키 에이지뇨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선수권대회에 참여한 일본 대표팀의 전력을 평가해 달라는 한국 기자들의 주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이비차 오심 전 감독이 표방했던 ‘축구의 일본화’가 오카다 다케시 감독 체제에서 단절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채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전력이 예전 같지 못한 일본과 23일 오후 7시15분 충칭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대회 세 번째 경기를 갖는다.1954년 3월 스위스월드컵 예선에서 5-1 승리를 거둔 이후 70번째 한·일전. 이번 대회 나란히 1승1무인 한국과 일본 모두 승리할 경우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돼 사실상의 결승전이다. 통산 전적에서 38승19무12패로 한국이 단연 앞서지만 항상 전력과 관계없이 명승부를 펼쳐온 한·일전 특성상 두 팀의 자존심 싸움이 불꽃을 튈 전망이다. 특히 허 감독으로선 사상 최강으로 꼽힌 올림픽대표팀이 1999년 9월 두 차례 평가전에서 잇따라 1-4,0-1로 무릎을 꿇은 아픔을 씻어낼 기회다. 대회 전부터 공격과 미드필더진 부상으로 골치를 앓아온 일본 대표팀은 이제 수비진에까지 부상 신드롬이 번져 아예 2진으로 내려앉을 태세. 야스다 미치히로와 이와마사 다이키 등 수비 주축들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오카다 감독은 도리 없이 4-2-3-1 시스템으로의 전술 변용을 실험한다. 허정무호도 다급하긴 마찬가지. 허벅지 통증이 심각해 일본전 결장이 확정된 박주영(FC서울)에 이어 고기구(전남)마저 사타구니 통증으로 출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공격 자원으로 남은 카드는 조진수(제주) 한 명뿐. 염기훈(울산)과 이근호(대구)를 끌어올려 투톱을 가동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으나 전체 포메이션에 변화의 폭이 너무 커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20일 북한전 후반 교체돼 나간 중원사령관 김남일(빗셀 고베)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남북대결 뒤 허 감독은 “김남일의 교체로 경기를 주도할 선수가 없어져 고전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엔도 야스히토(감바 오사카)와의 중원 싸움을 이겨낼지가 승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북한대표팀 정대세(24·가와사키) 역시 허벅지와 엉덩이 연결 근육에 문제가 생겨 중국전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22일 팀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 중국전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미군 반환 공여지 개발 ‘탄력’

    미군 반환 공여지 개발 ‘탄력’

    정부의 반대로 두차례 보류됐던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 개정안이 19일 국회를 통과, 전국 반환공여지의 97%가 몰려 있는 경기북부지역을 중심으로 개발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미군기지 환경 오염 치유의 경우 국방부에서 전담해오던 방식이 변경돼 국방부가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지자체에 복구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해 최대 3년까지 소요되던 환경오염 정화기간 이전에 지자체가 부지를 매각해 조기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점이 고무적이다.20일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북부지역과 부평 등을 중심으로 대학유치와 산업단지 조성, 관광단지 개발 등이 추진되고 있다. ●대학 및 산업단지 유치에 주력 파주시는 돌려받을 캠프 에드워드, 캠프 자이언트, 캠프 스탠턴에 각각 이화여대 서강대 국민대 캠퍼스를 유치할 예정이다. 반환 공여지 개발 사업을 추진한 이후 가장 두드러진 성과다. 첨단산업단지가 조성되고 남북교류를 위한 협력장도 마련된다. 의정부시 도심 복판에 자리잡아 교통 체증의 원인으로 지목된 캠프 라과디아에는 사통팔달 도로가 깔린다.2009년까지 폭 30여m, 총 1380m 길이의 도시계획 도로가 십자 모양으로 놓인다.1954년 도로 계획 수립 이후 기지 때문에 손을 못 대온 곳이다. 부평미군부대 부지 59만㎡와 주변 미개발지를 포함한 61만 5000㎡에는 공원과 녹지 외에 병원과 대학이 들어서고 도로도 크게 확충한다. 부족한 경찰서도 신축한다. 하남시는 미군반환공여구역과 주변지역에 대한 1단계 발전종합계획의 일환으로 지난해 11월6일 중앙대학교 ‘하남글로벌 캠퍼스’를 유치하기로 한 데 이어 덕풍천 자연형 하천조성사업과 산곡천 자연형 하천조성사업, 제3정수장 신설사업, 시립보육시설 신축, 청소년쉼터(체육공원) 조성 등 5개사업에 총 978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포천시는 3조 8000억원을 투입해 관광단지를 조성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DMZ(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차별화된 에코-디자인 체류형 사계절 테마관광도시다. 풍부한 청정 자연환경에 휴양·체험기능을 고루 갖춘다. 동두천시는 미군기지 터에 대기업 및 외국대학을 유치하고 골프장도 조성할 계획이다. 대기업 및 외국대학과 연구시설을 유치하고 나머지는 배후 주거시설과 공공용지로 개발한다. ●도로 등 공공사업 74건 추진 경기도에서 주한미군이 반환하는 공여지는 172.98km1/3이다. 전국 반환 면적(177.97km1/3)의 97%를 차지한다. 경기도는 공여지사업으로 국지도 및 국도 대체우회도로 사업 등 공공사업 74건에 2조 7217억원과, 관광레저단지 조성 등 순수 민자사업 5건 4조 4433억원 등 79건 7조 1650억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한다. 시·군별로는 화성시가 23개 사업으로 가장 많고 파주 15건, 가평 10건, 양주 6건, 동두천 5건, 연천 4건, 용인 3건 등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기존의 요구대로 완전한 법제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4년제대학 신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요구사항이 관철돼 1단계 발전종합계획에 반영된 공여지 개발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의정부 윤상돈·인천 김학준 기자 yoonsang@seoul.co.kr
  • 전설적 종군 사진기자 카파 스페인 내전 기록 필름 3500여장 멕시코서 찾았다

    “이 필름들은 카파의 잃어버린 성배와 같다.”포토 저널리즘의 신화로 불리는 전설적인 종군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사진 왼쪽)가 스페인 내전을 기록한 필름 3500여장이 멕시코에서 발견돼 사진계가 들썩이고 있다. 국제사진센터(ICP)는 1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라진 카파의 필름을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전격 공개했다.ICP는 카파의 작업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던 제다 타로, 세계적인 사진 에이전시 매그넘을 함께 세운 데이비드 세이머의 작품들도 같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3개의 얇은 종이가방에 담겨 뉴욕타임스, AFP 등에 따르면 이번 발견은 사진계의 일대 충격이다. 그동안 그의 스페인 내전을 담은 필름이 ‘멕시코 가방’에 들어있다는 풍문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 내전 중 찍은 필름들을 파리의 암실에 남겨두고 1939년 미국으로 떠났고 나치의 파리 침공 와중에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여겼다. 그는 필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 중 지뢰를 밟고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 필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22년 미국의 한 기차역에서 분실한 초기 원고뭉치와 더불어 전세계 문화계에서 ‘보물분실’ 사례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필름은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한 멕시코 장군의 손에 들어갔다가 그의 후손들이 뒤늦게 가치를 알고서 카파의 동생 코넬이 세운 ICP와 몇 년간 협상 끝에 이번에 공개됐다.‘멕시코 가방’은 3개의 얇은 종이가방으로 판명됐다. ●‘병사의 죽음´ 연출 여부 밝혀질 듯 필름들에 세간의 눈이 쏠린 이유는 전쟁사진 중 최고걸작인 그의 작품 ‘병사의 죽음(오른쪽)’의 연출 여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936년 스페인 코르도바 인근의 한 언덕에서 찍은 ‘병사의 죽음’은 당시 프랑스 잡지 ‘뷔(Vu)’에 실린 뒤 완벽한 구도와 현장감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진실이야말로 최고의 사진이며 최대의 프로파간다이다.” 등의 말을 남긴 카파이즘(Capaism·투철한 기자정신)도 그의 스페인 내전 취재에서 태동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환경·생명] 전국 軍사격장 주변마을 르포

    [환경·생명] 전국 軍사격장 주변마을 르포

    군 사격장 소음과 진동 등으로 사격장 인근 주민들이 갖가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격장 인근 주민들의 환경권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1월26일자 서울신문 보도> 2006년판 국방백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방부에 접수된 사격장 관련 민원은 총 246건으로 현재 40여만명이 국가를 상대로 군사격장 관련 피해소송을 진행 중이다. 과연 사격장 인근 주민들이 느끼는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서울신문은 전북 고창군 미여도 공군사격장, 충남 보령시 웅천사격장, 그리고 2005년 폐쇄된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사격장 지역을 찾아가 주민들의 환경권 실태를 살펴보았다. ●“극심한 소음… 하루에도 몇번씩 놀라” 사격장 인근 지역을 찾은 기자에게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토로한 고충은 바로 소음이었다. 예고없이 들리는 폭발음에 놀라 넘어지거나 불안증세를 보이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충남 보령시 웅천군 소황리의 웅천사격장(1996년 12월 설치)은 육상사격장이 논 한가운데 있다보니 소음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2003년 서울시립대가 측정한 이 지역의 순간 최고소음은 107∼112㏈로 전기톱 소리(약 100㏈)보다 높았다. 마을에서 3대째 살고 있는 최종엽(67) 할아버지는 “사격장 소음에 아이들이 놀라 울거나 가축이 날뛰다 유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전북 고창군 동호해수욕장은 환경부로부터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선정될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지만 바닷가에서 4.2㎞ 떨어진 미여도 공군사격장(1978년 설치)의 소음(평균 83㏈) 탓에 마을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마을에서 40년을 살았다는 전금례(61) 할머니는 “소음 때문에 임신이 잘 안되자 타지로 1∼2년 떠나있다가 아이를 낳아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며 한숨지었다. ●오폭 피해 공포도 커 하지만 주민들이 사격장 이전을 원하는 더 큰 이유는 바로 오폭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 오폭을 경험한 주민들은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미온적 대응방식 때문에 더욱 강경한 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난 2004년 6월에는 웅천사격장에서 훈련 전투기가 발사한 연습탄이 웅천역 광장에 떨어졌다. 지난해 2월에도 사격 훈련 중인 KF-16 전투기가 추락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경북 상주시 공군 낙동사격장에서도 2002년 9월 F-16D 전투기가 인근 야산에 추락했고, 전남 담양군 담양전차포 사격장(1954년 설치)에서는 지금까지 전차 파편 등에 맞아 1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돈 웅천사격장 소음대책위원장은 “오폭으로 우리집이 폭격을 당할 수도 있는데 누가 자기 집 주변에 사격장이 남아있기를 원하겠냐.”고 반문했다. ●토양·지하수 오염도 심각 쓰고 버려지는 탄약·탄피 등에서 비롯되는 토지·지하수 오염도 주민들의 삶을 위협한다.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미군 쿠니사격장(2005년 폐쇄)의 경우 지난 16∼17일 국방부가 전체면적 2376만 9000㎡ 를 감식한 결과 6960㎡가 중금속에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납의 경우 기준치의 34배,TPH(총석유계 탄화수소)는 4배가 검출됐으며, 지하수에도 발암물질인 PCE(테트라클로로에틸렌)가 기준치의 8배나 함유돼 있었다.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책위원장은 “이번 조사에는 땅 속에 방치된 불발탄과 사격 잔재물에 대한 조사가 모두 누락돼 있다.”면서 “치유작업 실시설계에 앞서 이 부분도 철저히 조사해 반영해야 한다.”고 국방 당국에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현실적 이주대책 요구에 정부는 미온적 현재 사격장 주변 주민들은 사격장 이전 및 폐쇄가 어렵다면 현실적인 이주대책이라도 세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 당국은 예산상 이유 등을 들어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다. 낙동사격장은 사격장 주변 농지에 대한 강제매수를 통해 주민 이주가 일부 이뤄지기도 했지만 턱없이 낮은 보상가격 때문에 반발에 부딪혔다. 담양전차포 사격장의 경우 2001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전차포 소음과 파편 등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심각하다.”며 사격장 이전을 권고했지만 육군은 아직 대체부지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군사격장 주변 주민 실태조사 보고서를 작성한 녹색연합 고이지선 간사는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 사격장 주변의 주민에 대한 건강조사가 단 한 차례도 이뤄진 적이 없다.”면서 “이제부터라도 국방부, 환경부, 지자체 등이 사격장 인근 주민들의 환경권 보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창·보령·화성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미여도사격장 김형균 대책위원장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정부 보상금이나 노리고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수십년간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와서 ‘못 살겠다.’며 들고 일어나냐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헌법 35조에 나와 있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이 우리에게도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격장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이곳은 한가롭고 아름답던 어촌이었는데 지금은 30년째 쏟아지는 ‘소음폭탄’으로 가축도 살기 힘든 마을로 변했어요.” 지난 23일 전북 고창군 동호해수욕장. 밤새 내리던 눈이 조금 그치는가 싶더니 곧바로 하늘에서 ‘웅’하는 엔진음이 들려온다. 그러자 백사장에서 미여도 사격장을 바라보던 김형균(44) 미여도사격장 반대 대책위원장의 미간이 금세 찌푸려진다. “날씨가 갠다 싶으니까 곧바로 전투기들이 선회 비행을 시작하는 거예요. 마을 주민들에게 ‘이제 곧 폭격을 시작하겠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신호죠. 그러면 미여도 주변에서 고기잡이 하던 배들도 부랴부랴 자리를 피합니다.” 이곳에서는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공군 전투기들의 폭격훈련이 이뤄진다. 훈련 중 마을에 들리는 소음은 평균 83㏈. 지하철을 탔을 때 들리는 소음(약 80㏈)을 넘어선 것으로 일상적인 대화뿐 아니라 TV 시청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훈련 중에는 섬 주변 반경 9.2㎞ 이내가 모두 접근 금지구역으로 지정된다. 미여도는 이곳에서 물고기가 잡히는 유일한 곳이어서 어민들의 생계 또한 타격이 크다. “이곳에서 태어난 저 역시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한 동안 타지에 나가 살다 온 경험이 있어요. 우리 마을에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럴까를 고민하다 소음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2006년부터 반대 대책위를 꾸린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죠. 현재 우리 군에 등록된 어선 수만 750척이니까 선장과 선원, 그리고 가족들까지 합치면 고기잡이로만 2000∼3000명이 먹고 사는 셈인데요. 그런데도 훈련 중에는 섬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하면 어민들은 뭘 먹고 삽니까?”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민들은 폭격 훈련 중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금지구역에 들어가 조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늘 오폭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실제로 김씨도 조업 중 전투기에서 쏟아진 탄피들이 배 안에 가득 떨어져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아직까지 정부는 여지껏 우리를 단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어요. 그저 군부대에서 몇 번 왔다 간 것으로 면피하려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납니다. 올해부터는 대정부 투쟁 등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입니다. 제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우리에게 성의있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고창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태국전하와 사랑맺은 한국여인

    태국전하와 사랑맺은 한국여인

    유사(有史)이래 우리나라 여성이 타국의 왕실과 인연을 맺기는 고려(高麗)말엽 원순제(元順帝)의 제2왕후가 된 기(奇)씨가 최초. 이로부터 6백여년이 흐르는 오늘, 태국의 왕족과 결혼, 15년만에 모국을 찾은 박명복(朴明福) 여사(44)가 두번째의 여성이 될 듯-.「몸·박(朴)」이라는 왕족의 존칭을 받고 있는 이 화제의 주인공은? 사귈땐 왕족(王族)인줄도 몰라…남편은 국왕(國王) 할아버지뻘 태국은 1782년의「차쿠리」왕조 이래 입헌군주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57년 결혼한 박여사의 부군「차오·조티시·데바쿤」씨(64·차오는 왕족 남자에 대한 존칭)는 9대째인 현「부미볼」태국왕의 할아버지뻘이 되는 근친. 『저의 시아버님께서는 4대국왕의 왕자였어요』 왕족 촌수를 풀이하는 박여사의 얘기다. 박여사와「조티시·데바쿤」씨가 부부의 인연을 맺기는 57년 서울에서. 『그때「언커크」태국 대표로 저의 주인이 한국에 나와 있었어요』 이화여대로는 제1회 영문과출신. 49년에 한국은행에 입행했다가 EAC로 옮겨 미국 유학을 마치고 54년에 귀국한 박여사에게 당시 WHO에 있던 태국인의 소개로 약1년간 교제끝에 태국왕족의 아내가 된 것. 처음 교제할 때는「전하」라는 칭호를 받고있는 왕족인 줄을 몰랐었다는 얘기. 『결혼은 서울서 간단하고 조촐하게 했어요. 저의 주인이 마침 미국 대사로 가시게 되어 몇 년간 미국서 살았지요』 “우리애들 모두 친한파(親韓派)죠…어머니 나라를 절대지지” 그후「유엔」대사를 역임, 태국 외무부국장 자리에서 4년전 정년퇴직, 현재는 조용히 가정에서「골프」를 즐기고 있다고. 현재 태국에 있는 한국인중 외국인과 결혼한「케이스」는 29가구. 부인이 태국인인 경우는 12, 남편이 태국인인 경우가 7, 남편이 미국인인 경우가 10가구인데 이중 남편이 태국인인 경우는 유일하게 박여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태국군인이 한국에 주둔했을 때 맺어진 것이라고. 15년만인 지난 4월 22일 3주간 예정으로 잠시 귀국한 박여사는 과거 주 태국무관이던 손장래(孫章來)준장 부인 정영자(鄭英慈)여사의 안내로 부산까지 관광하기도 했는데『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더니 정말 모국이 놀랍도록 변했어요』라고 탄성을 연발한다. 『이번에 우리 어린애들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게 여간 섭섭하지가 않아요. 어머니 나라가 보고싶다고 여간 아닌데 말이지요…』 자녀는 1남1녀를 두고 있다는데 올해 14살인 딸은 왕족 학교에, 12살의 아들은「인터내셔널·스쿨」에 보내고 있다고. 『우리 아이들…어머니 나라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이라면 열성이 보통 아닙니다. 아빠와 엄마가 정구를 해도 엄마가 이기라고 응원할 정도로-. 『저번 축구시합때 한국이 승리하니까 얼마나 좋아들 하는지 아버지가 우스갯 소리로 한국으로 추방하겠다고 말해 웃음바다가 된 일이 있어요』 처음 태국에 도착했을 때의 얘기를 묻자, 무지무지하게 더운 나라라는 것과「바나나」를 비롯, 풍족한 과일이 제일 먼저 눈에 띄더라고. 『내가 왕족과 결혼했다니까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들 있는데 사실은 그저 먹고 살 정도의 재산뿐입니다』 “부부함께 태국과 한국의 교량이 되고파” 아직도 변함없이 또렷한 모국어로 말을 잇는다. 현재 왕족으로서 받는 대우는 연4백「바트」의 국왕이 내리는 명목상의 은사금(恩賜金) 정도라고. 『계보상으로 저의 시댁 집안을 말하면 시아버지께서는 31명의「라마」4세 자녀중 내이시고 주인은 다음대의 11형제중 막내입니다』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는 승려를 거쳐야만 지도자나 요직에 앉을 수 있기 때문에 박여사 가정은 철저한 불교신도들이라고. 시누이는 76세의 노처녀로 왕족학교의 교장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궁중 의식중 진기한 풍습은 높은 분 앞에 갈때는 저만큼서부터 무릎을 꿇고 기어가는 것. 『태국 국민들의 왕족에 대한 신뢰도는 보통이 아닙니다. 우상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정신적인 지주로 말입니다』 지금 태국에는 약 4백여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데, 모두 부유하게 잘들 지내고 있다고 교포들의 근황을 박여사는 말하고 있다. 『태국나라 국적을 얻는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태국 정부가 배정한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쿼터」가 매년 5백명이었는데 금년엔 50명으로 줄었어요. 자기만 좀 부지런하면 살아가는데 아무 불편 없읍니다』 더위만 잘 참을 수 있다면 우리 한국인이 많이 태국에 건너와 살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주인과 저는 미력하나마 한국과 태국간에 하나의 교량적인 역할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금 태국에는 무역진흥공사가 나가 있는데 가장 인기있는 품목은 인삼과 모직물이란다. “한국여성의 긍지 지키려 각별히 언행에 조심해요” 태국에 있는동안 제일 먹고 싶었던게 김치였다고 말하는 박여사, 귀국하자마자 정여사에게 김치부터 찾았다고 웃는다. 『우리 한국 여성들, 이번에 와 보니까 더 세련되고 많이 예뻐졌더군요. 아주 유행에 민감한 것 같아요』 며칠전 미장원에 들러 태국은 지금「맥시·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했더니 한국에선 벌써「맥시·스타일」이 한물 갔다고 해서 새삼 놀랐단다. -왕족이 외국인과 결혼하는걸 꺼리는 경향은 없나요? 『별로 그런거 없읍니다. 전 지금까지 태국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백안시한다거나 그런 경우를 당해 본 일이 없어요』 -왕족이기 때문에 특별히 받는 제약 같은 건 없는지요? 『옛날엔 격식도 갖추어야 했겠고 제약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거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사에 주의하고 있읍니다』 한국여성의 긍지를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한마디. 지금 박여사의 가장 큰 소망 하나가 있다면 태국에 멋진 회관 하나를 지어 양국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일이다. 이번에 다시 태국으로 가면 한 10여년 후에야 다시 모국을 방문하게될 것 같아 안타깝단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모습을 열심히 뛰어 다니며 보고 있읍니다. 다음에 올 땐 한국이 더 멋지게 발전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읍니다. 그리고 그때의 모습을 보는 재미로 기다리고 참겠어요』라고 동족애에 넘친 인사를 잊지 않는다. <承> [선데이서울 71년 5월 16일호 제4권 19호 통권 제 136호]
  • [부고] 이정석 前대한언론인회장 별세

    이정석 전 대한언론인회 회장이 16일 오후 7시30분 별세했다.76세. 고인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54년 조선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을 거쳤다. 이후 KBS로 자리를 옮겨 보도국장과 워싱턴ㆍ런던특파원, 올림픽방송본부장, 기획조정본부장을 역임한 뒤 한국방송제작단 사장과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소현씨와 장녀 이수린(미국 거주), 장남 이인욱(아크인터내쇼날코리아 부장), 차남 이인용(그로스베커드 사원)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8시.(02)3410-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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