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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은 핵심보직 젊어졌다

    한국은행이 부총재보에 이어 27일자로 실·국장 인사를 하면서 간부급에 대한 인사 발령을 마무리했다. 가장 큰 특징은 주요 보직에 젊은 층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상우 정책기획국 부국장이 핵심 보직인 조사국장에 발탁됐다. 이 국장은 1957년생으로 한은의 다른 보직 국장에 비해 젊은 데다 다른 국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핵심 국장이 됐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공보실장에서 금융시장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민성기 국장도 58년생으로 상대적으로 젊다. 민 국장은 조사국, 정책기획국 등을 거치면서 정확한 판단력과 강한 추진력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주요 보직국장이 기존 52∼54년생에서 57∼58년생으로 젊어졌다.”면서 “유능한 직원 발탁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젊은 층을 핵심 보직 국장에 배치한 것은 지난 8일 이주열 부총재보가 부총재에 임명되면서 이미 예고됐다. 이 부총재는 52년생으로 직전 이승일(45년생) 부총재보다 7살이나 적다. 한은은 원활한 업무 협의를 위해 부총재의 정부쪽 맞상대인 차관들의 연령대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3일 이루어진 부총재보 인사에서도 젊은 층이 대거 입성했다. 김재천 부총재보는 53년생, 장병화 부총재보는 54년생이다. 부총재보 연령대가 2년 정도는 젊어졌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어머니 구하고 숨진 임세환 교사 40여년만에 효자상

    어머니 구하고 숨진 임세환 교사 40여년만에 효자상

    어머니 생명을 구하고 숨진 초등학교 교사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년 만에 효자상을 받는다. 24일 충북 영동군에 따르면 정구복 영동군수는 오는 27일 유림회관에서 고 임세환(1938~1968) 교사를 대신해 동생 임두환(70)씨에게 효자상을 수여한다. 영동군 용화면이 고향인 임 교사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54년 어머니가 정비소 기계에 몸이 말려들어가 하반신이 파열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수혈을 하고 살을 이식해야 어머니를 살릴수 있다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은 임 교사는 자신의 피를 뽑아 수혈하고 허벅지 살을 옮겨 붙여 어머니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임 교사는 이 때 생긴 악성빈혈이 악화돼 영동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쓰러져 끝내 부인과 두 딸을 남겨둔 채 1968년 세상을 떠났다. 당시 31세였다. 군 관계자는 “어머니를 위해 자기몸을 희생하면서 악성빈혈이 생겼지만 10여년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망가졌던 것”이라며 “임 교사 동생분들의 노력으로 뒤늦게나마 효자상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정원용 영동문화원장과 최재경 전 영동교육장 등은 ‘임세환 효자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영동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신라 왕족은 흉노의 후손?

    신라 왕족은 흉노의 후손?

    신라 왕족 김씨가 자신들이 흉노족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였던 김일제의 후손임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9세기 재당 신라인의 묘지명이 뒤늦게 연구, 보고돼 눈길을 끈다. 부산외대 권덕영(신라사 전공) 교수는 22일 “최근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당나라 금석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함통(咸通) 5년(864년) 32세로 사망한 재당 신라인의 묘지명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을 찾아냈다.”면서 “‘(신라) 김씨의 시조가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인 소호씨김천(少昊氏金天)이며 먼 조상이 흉노 조정에 몸담고 있다가 서한에 투항해 무제(武帝·기원전 141~기원전 87년) 때 시중(侍中)에 임명되고 투정후(?亭侯)에 봉해졌던 김일제’라고 적혀 있다.”고 밝혔다. 묘지명은 1954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동쪽 교외 궈자탄(郭家灘)에서 출토된 뒤 현재 시안 베이린(碑林)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동안 신라 김씨가 흉노 출신에게서 뿌리를 찾은 흔적은 문무왕릉 비편에 보이기는 하지만, 워낙 심하게 훼손돼 전후 맥락을 전혀 파악할 수가 없어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권 교수는 “6세기 중반에 와서야 신라에서 김씨, 박씨 등의 성씨를 사용한 것을 감안하면 신라 김씨의 이같은 뿌리 의식은 관념상의 시조의식일 뿐, 실제 김일제에게서 비롯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다음달 9일 한국고대사학회 제108회 정기발표회에서 이와 관련된 자료를 발표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영화 ‘크래쉬’’태양의 제국’ 원작자 발라드 타계

    영화 ‘크래쉬’’태양의 제국’ 원작자 발라드 타계

    영화 ’크래쉬’와 ‘태양의 제국’을 기억하는지.  앞의 작품은 자동차 충돌사고를 부러 일으켜 성적 욕망을 갈급하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뒤엣것은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이 운영하는 포로수용소에서 작가가 직접 보고 겪었던 일들을 실감나게 묘사해 화제가 됐다.  두 영화의 원작자인 영국의 컬트(소수 마니아들에게 열광적인 숭배를 받는) 작가 JG 발라드가 19일 런던의 자택에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향년 78.  대변인인 마거릿 핸버리는 발라드가 몇년 동안 질병 을 앓아왔다면서 이날 오전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그의 사인이 지난 2006년 진단받은 전립선암인지 여부를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생전의 발라드는 ‘뉴웨이브 사이언스 픽션’의 기수로 일컬어졌다.1973년 발표한 크래쉬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1996년 제임스 스페이더와 홀리 헌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화화했다.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가 일본군이 상하이 체류 외국인들을 가뒀던 포로수용소에 3년간 수용됐던 경험은 1984년작 ‘태양의 제국’에 담겼다.1987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지금은 대스타로 성장한 크리스천 베일을 아역 주인공으로 내세워 스크린에 옮겼다.  발라드는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영국으로 건너와 1960년대 전업작가로 변신해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소설만 15편을 발표했고 수십 편의 단편을 집필했다.  핸버리는 “발라드의 현대 생활에 대한 날카롭고 몽상가적인 관찰이 전세계에서 출판된 훌륭하고 강렬한 소설들에 녹아들면서 그에게 걸트적인 명성을 안겨줬다.”고 문학적 업적을 요약했다.생전의 그는 사이언스 픽션이란 장르 대신 “미래의 심리를 묘사하는 게 본령”이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크래쉬’가 스크린으로 옮겨지자 이를 본 젊은이들이 차량을 이용해 자살하거나 고속도로를 폭주하는 등 말썽을 일으켜 젊은애들을 부추긴다는 도덕적 비난도 들어야 했다. 그의 디스토피아적인 문장은 록그룹 라디오헤드와 조이 디비전,싱어송라이터겸 프로듀서인 트레버 하워드 등으로부터 존경을 얻게 했다.그의 단편 ‘더 사운드 스위프’는 그룹 버글스에 의해 ‘더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로 옮겨져 MTV가 첫 방송으로 낸 영광을 차지했다.  친구이며 동료 작가인 이언 싱클레어는 “윤리의식의 붕괴라는 재앙을 정면에서 맨먼저 다룬 인물”이라고 고인을 평한 뒤 “처음에는 유명인사라는 매력에 이끌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종의 철학으로 정립시켜 (문학사에)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말년에도 고인은 ‘슈퍼 칸느’와 ‘밀레니엄 인간’ 같은 작품을 남겼다.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에서 문학 담당을 맡았으며 잡지 ‘옵서버의 서평 담당인 헵지바 앤더슨은 “초기에 그는 과학 픽션을 주로 썼는데 이는 매우 전위적인 것으로 비쳤다.이들 소설들의 밑바닥에는 폭력을 부추기는 듯한 장치가 있었다.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그런 장면들은 전혀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그는 “우리는 지금 일종의 ‘발라드가 꾸민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갈파했다. 그는 인류가 사회와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진보한다는 믿음에 대해 냉소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유명하다.”인류를 계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완벽한 환상이다.우리가 제 정신이며 대부분의 시간 이성적인 존재였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데 사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라고 호주 일간 ‘The Age’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발라드는 1954년 헬렌 매튜스와 결혼했으며 64년 폐렴으로 사별했다.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비극은 소설 ‘여인들의 친절’로 형상화됐다.유족으로는 세 자녀가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다시 ‘청명’의 혼을 느낀다

    다시 ‘청명’의 혼을 느낀다

    40~50대 역사학자와 한학자 가운데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지곡서당은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시절 5·16군사 정부에 대항하다가 쫓겨난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1914-1999) 선생이 세운 한국학연구소였다. 청명은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로부터 개화기 위창 오세창의 뒤를 잇는 금석학자이자 거의 마지막 한학자이자, 서예가다. 선생이 돌아가신지 10년만에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방랑연운(放浪烟雲)) 청명 임창순’을 조명하는 기획전을 16일부터 5월10일까지 연다. 청명이 남긴 양대 유산인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와 청명문화재단 공동 주최로 그의 생애와 시·문(詩文)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아들인 안동대 임세권 교수를 비롯한 유가족과 제자 등 주변 인사들이 소장해 온 청명의 서예와 금석문 등도 모았다. 4세 때부터 서당에서 공부한 청명은 제도권 학교는 가 본 적이 없지만 해방 직후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합격해 경북중학과 대구사범에서 교편을 잡았다. 40세가 된 1954년 성균관대 교수에 임용됐다. 1960년 4·19 학생운동이 일어나자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 글씨를 직접 써 가두시위에 나섰으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에 의해 대학에서 나가야 했다. 그는 1963년 서울 종로 수표동에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해 연인원 5000명에 이르는 한학 연수생을 배출하다가 1974년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에 ‘지곡정사’(芝谷精舍)를 세웠다. 이번 전시에는 친필인 ‘지곡서당’(芝谷書堂) 현판과 인물화로 유명한 한국화가 김호석 화백이 그린 성철 스님 진영도 전시된다. 청명은 이 진영에 써 넣은 4언시 22구의 발(跋)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성철의 법어에 “산 밖에 산이 없고, 물 밖에 물이 없네.”(山外無山, 水外無水)라고 대구하고 있다. 탁본 수집가로서의 면모도 드러난다. 1988년 울진봉평비 발견 당시 현장에서 직접 탁본을 하고 글자를 조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그의 연구 혼을 그대로 담은 육필원고 등으로 만날 수 있다. 아무래도 하이라이트는 광개토왕비 탁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꼽히는 1889년 ‘광서기축본(光緖己丑本)’이다. 일본이 광개토대왕비를 날조하기 전의 탁본으로, 광개토왕비 연구의 기본이 된다. 평생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放浪) 연기와 구름(烟雲)과 같이 살아간 청명은 바둑이나 마작, 화투 등 잡기에도 심취했다고 한다. 아들인 임세권 교수가 이겨도, 져도 끝이 없는 아버지와의 바둑두기에 질려 바둑을 끊었을 정도로 말이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라는 ‘서여기인(書如其人)’과 학문과 예술이 일치한다는 ‘학예일치’의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전시다. (02)580-166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처칠 아침식사는 토스트와 위스키

    1954년 6월 영국 BOAC 항공사의 미국행 비행기 안. 영국 총리로서 마지막 미국 방문을 앞둔 윈스턴 처칠은 이곳에서 펜을 들고 기내식 메뉴를 스스로 고쳤다. 삶은 달걀, 토스트 등 평범한 메뉴 속에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담배와 위스키.오는 23일 ‘성(聖)조지 축일’을 기념해 슈롭셔주 러들로에서 경매에 부쳐질 처칠의 메뉴판이 공개됐다고 텔레그래프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공개된 메뉴판은 인쇄된 메뉴판에 처칠이 자필로 두개의 쟁반에 나눠 가져올 것을 명시한 아침 목록이 적혀 있다. 첫번째 쟁반에는 빵, 커피, 치킨 등 일반적인 음식들을 요구했고 두번째 쟁반에는 자몽, 설탕, 위스키, 물수건, 시가를 담아올 것을 요청했다.당시 승무원이었던 리처드 웨스트우드 브룩스는 이를 최근까지 보관해 왔고 이를 경매에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처칠이 왕성하게 식사를 한 뒤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로 이를 씻어내렸음을 볼 수 있다.”면서 “80대에 이렇게 잘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을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때가 타고 잉크가 번지긴 했지만 훌륭한 역사의 단편”이라고 덧붙였다.이 메뉴판의 예상 낙찰가는 1500파운드(약 300만원) 정도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미스·동부고속」최복희(崔福姬)양-5분 데이트(189)

    「미스·동부고속」최복희(崔福姬)양-5분 데이트(189)

    54년생. 올봄 보성여고를 졸업하고 동부고속에서 안내원 수습과정을 밟고 있는 입사 2개월째인 풋내기 아가씨. 때문에 티 없이 즐거울 수만 있는 최복희양이다. 양계업을 하는 최걸석씨(54)의 2남3녀중 둘째딸. 『대학도 안 간 채 집에만 있게되면 옷차림도 추레해지고 게으름만 늘 것 같아서』가 취직한 이유. 거기다 『좀 더 세상을 알고 제 손으로 돈을 벌어보고 싶은 욕심』이 조금 얹혀 있다. 요새는 가끔 안내실습을 나가면서 고속도로상의 「인터체인지」안내, 지방마다의 특산물, 고적 설명들을 익히고 있는데 단골손님들의 피로를 풀어줄 만한 숨겨진 고을 얘기들을 열심히 모으고 있는 중. 제일 무서운 사람은 회사의 높은 분들이고 집안일을 돕고 있는 언니와 제일 친하다. 좋아하는 음식은 냉면. 결혼은 3~4년 뒤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많이 사귀어보고 결정하겠다는 신중파. [선데이서울 72년 6월 18일호 제5권 25호 통권 제 193호]
  • [보고 듣고 즐기세요]

    ● 연극·뮤지컬 ●링링링링 4월5일까지 나온씨어터. 연극 ‘이’‘즐거운 인생’의 극작 겸 연출가 김태웅의 신작. 돌고 도는 인생의 순환 구조를 연인들의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로 풀어낸다. 1만 5000원.(02)3675-3677.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4월1~12일 혜화동1번지.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오늘날 20대의 서글픈 현주소. 1만 5000~2만원. (02)3673-5580. ●기발한 자살여행 4월1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죽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삶의 희망을 깨닫는 유쾌한 로드 뮤지컬. 4만 4000~7만 7000원.1544-1555. ●주유소 습격사건 6월14일까지 백암아트홀. 주유소에 들이닥친 네 명의 ‘꼴통’이 펼치는 통쾌한 난장판. 영화 OST로 익숙한 노래들이 흥을 돋운다. 5만~6만원.(02)549-3135. ● 대중음악 ●오아시스 내한공연 4월1일 오후 8시30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5만 5000~8만 8000원. (02)3444-9969. ●말로 재즈 콘서트-디스 모먼트 4월4일 오후 7시 마포아트센터 아트맥홀. 3만~4만원. (02)3274-8600. ●이미자 노래 50년 4월2~3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만~15만원. (02)724-6316. ●W&Whale 콘서트 4월3~4일 오후 8시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 4만 4000원. (02)545-9174. ●이선희 라이브콘서트 4월1~3일 오후 8시, 4일 오후 7시, 5일 오후 6시 코엑스 오디토리움. 9만 9000~12만원. (02)2631-1706. ● 클래식·무용 ●서울모테트합창단 창단 20주년 연주회 31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예원학교와 서울베아투스의 합창단, 서울모테트스트링앙상블 등과 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 1만~10만원. (02)579-7284~5. ●신춘음악회 ‘봄의 향기’ 4월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류석원 음악감독의 지휘로 스트라빈스키의 카드놀이, 하이든 첼로협주곡 D장조,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 3만~10만원. (02)576-3332. ●현대무용단 탐 정기공연 31~4월1일 오후 7시30분 서울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기존 발표작 중 우수작품으로 꼽히는 조은미의 ‘조소’와 ‘경멸 別章’을 선보인다. 2만원. (02)3277-2584. ● 전시 ●우제길 개인전 4월15일까지 UNC갤러리. 1954년 개봉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에서 영감을 받은 미니멀화 12점. (02)733-2798. ●읽는 사진, 느끼는 사진 5월2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강홍구, 김아타, 정영두 등 국내 사진작가 25명의 작품 103점 전시.(02)2124-8800. ●서교육십 인정게임(그림) 5월10일까지 상상마당. 미술 비평가 60명에게 추천받은 국내 주목할 만한 신예작가 60명의 그룹전. (02)330-6223. ●자크라펀 타나티라논, 파린 막수드 2인전 4월3~12일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 태국 작가인 타나티라논의 영상설치 작품과 파키스탄 작가인 막수드의 사진과 설치전. (02)995-0488.
  • 인간 문선명을 만나다

    “하나님은 왜 나를 불렀을까요?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지난 1월 구순(九旬)을 맞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를 펴냈다. 3년간의 기획을 거쳐 2년여의 집필과 탈고, 수정 끝에 나온 자서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전 등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를 관통하며 종교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문 총재의 역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 총재는 자서전을 통해 “16세 되던 해 부활절(4월17일) 아침, 기도 중 홀연히 인류 구원에 대한 천명을 자각하고 일평생 공의의 노정을 걷기로 다짐했다.”고 밝히고 있다. 평양과 부산에서 뜻을 펴다 서울 청파동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회)를 창립해 본격적으로 선교에 나선 게 1954년. 1957년 일본에서 해외선교를 시작해 197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세계 선교를 본격화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 총재는 책에서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치렀던 여섯 번의 투옥, 평화 전도사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뒷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광복 이후 성경책 하나만 달랑 들고 평양에서 교회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렇게 회고한다. “평양에 가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나를 그렇게 반대하고 돌을 던지던 기성교회가 부산에서도 역시 나를 반대했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였습니다. 이단 사이비니 하는 접두사 없이 그냥 이름만으로 불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책에는 특히 대학가에서 이단으로 몰려 문 총재를 따르는 학생과 교수들이 퇴학·퇴직당하던 이야기며 초기 미국 선교 시절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가 감히 미국을 상대로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느냐.’며 멸시하던 일에 대한 고백이 솔직하게 담겨 눈길을 끈다. 384쪽 1만 45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요리연구가 하선정씨 별세

    요리연구가인 ‘하선정요리학원’ 회장인 하선정씨가 6일 오전 3시30분 노환으로 타계했다. 87세. 고인은 1954년 서울 종로에 국내 최초 요리학원인 ‘수도가정요리학원’을 설립한 후 자신의 이름을 딴 김치, 젓갈 가공식품을 만들며 사업가로도 입지를 굳혔다. 유족으로는 딸 박희지(하선정요리학원 원장)씨와 사위 김항구(항진TNT 회장) 씨가 있다.
  • ‘요리계 대모’ 하선정씨,향년 87세로 타계

    한국 요리계의 대모인 하선정 ‘하선정종합식품’ 회장이 6일 오전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7세. 고인의 유족으로는 딸 박희지(하선정요리학원 원장)씨와 사위 김항구(항진TNT 회장)씨가 있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 15호 영안실이며 발인은 8일 오전 8시. 고인은 1954년 서울 종로에 국내 최초 요리학원인 ‘수도가정요리학원’을 설립,요리연구가로 이름을 알렸다.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김치·젓갈 가공식품을 만들며 식품 사업가로서도 자리매김했다.‘하선정 식품’은 국내에서 포장 젓갈의 선두 주자로 유명하다. 고인은 배급 밀가루가 주식이었던 50년대 제빵용 전기오븐을,80년대에는 끓일 필요없는 김치용 젓갈 등을 개발해냈다.또 한식 상차림에 외국의 뷔페식 식사와 중국식 회전상의 개념을 접목시켜 360도 회전이 가능한 ‘회전상’을 개발하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美 아이비리그 첫 한국계 총장 김용 박사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첫 한국계 총장이 탄생했다. 49세의 하버드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인 김용(미국이름 Jim Yong Kim) 교수이다. ●“한국 이민사회 대표 자랑스러워” 다트머스대는 2일(현지시간) 김 교수를 제17대 총장으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에 한국계는 물론, 아시아계가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인 이민 1.5세들의 위상을 다시 한번 보여 주는 사례다. 8개월에 걸쳐 400명의 후보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 작업을 거쳐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다트머스대를 이끌 차기 총장으로 내정된 김 교수는 오는 7월1일 취임한다. 김 총장 내정자는 이날 다트머스대에서 행한 연설에서 “대학 총장직을 맡게 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운을 뗀 뒤 “비전과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세상에 나아가 변화를 가져올 미래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혼자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나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조언하는 일을 맡은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정 발표 직후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으로 최초의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에 선출된 데에 한국인으로서 매우 자랑스럽다.”면서 “한국 이민사회를 대표할 수 있게 된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빈국 구호·WHO 에이즈국장 거쳐 김 총장 내정자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치과의사인 아버지 등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왔다. 아시아인 가정이라고는 두 가구에 불과했던 중부의 아이오와주 머스커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대로 진학했다. 이후 하버드대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년 넘게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존경받는 학자이자 의사인 동시에 에이즈와 결핵 등 개발도상국의 질병 퇴치에 앞장서며 미국 의학계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일찌감치 빈민국 지원활동에 관심을 돌렸다. 하버드 의대 재학 시절인 1987년 동료인 폴 파머 박사와 함께 의료구호단체인 ‘파트너스 인 헬스’를 설립, 이후 페루 등 남미와 러시아, 말라위 등에서 결핵퇴치 등 의료지원 활동을 해왔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으며 전세계적으로 에이즈 환자 치료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왔다. 2005년 미 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선정 ‘미국의 지도자 25인’에 뽑힌 데 이어 2006년에는 미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들었었다. 김 총장 내정자는 보스턴 아동병원 소아과 의사인 부인 임연숙씨와의 사이에 8살과 생후 4일(지난달 27일 출생)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kmkim@seoul.co.kr ●아이비리그(Ivy League) 하버드, 예일, 다트머스, 프린스턴, 컬럼비아, 코넬, 브라운, 펜실베이니아대 등으로 미국 동부지역의 8개 명문 사립대. 1954년 스포츠 경기 리그로 처음 결성됐다.
  • [모닝 브리핑] “한국전 월북자 1만271명” 자료 첫 공개

    한국전쟁 때 월북자 수는 1만 271명이라고 집계된 자료가 처음 공개됐다. 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20일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3월 기준으로 작성된 월북자와 직업별 납북자 명부를 별도로 분류한 1954년판 ‘한국연감’을 서울 서대문 한국연구원에서 찾아냈다고 밝혔다. 6·25사변피납치인사가족회가 부산 피란 시절인 1951년 8월 작성한 이 명부에는 ‘피납치자수’와 ‘월북자수’가 각각 8만 2959명, 1만 271명으로 기록돼 있다. 또 납북자 2514명이 정부 요인급 관공리 328명, 법조계 88명, 교육계 113명, 언론계 79명, 실업계 391명, 의사및 의학계 40명, 은행가 및 회사원 209명 등 직업별로 분류돼 명단이 담겨 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산은 “민영화 지연 속탑니다”

    산은 “민영화 지연 속탑니다”

    민유성 총재를 비롯해 산업은행 임직원들은 요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최대 현안인 민영화가 지연되고 있어서다. 민영화 불확실성에 발목 잡혀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부정적 시선에 제대로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민영화 내용을 담은 산은법 개정안(민영화법)은 국무회의를 통과해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11일 “다음달 3일까지인 이번 임시국회에서 민영화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4월 정기국회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는 지방선거 등이 있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영화 법안의 핵심은 산은을 정책 부문과 상업 부문 둘로 쪼개는 것이다. 정책 부문은 정책금융공사(KPBC)를 신설해 지금의 국책 금융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상업 부문은 일반 시중은행들처럼 완전히 민영화돼 시장경쟁을 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이같은 구상을 법안에 옮겨 국회 통과를 시도했다. 하지만 금·산분리 완화 연장선상이라는 야당의 반대와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투자은행(IB) 회의론, 정책 기능 약화 우려 등이 겹치면서 해를 넘기고 있다. 산은 측은 “1954년 산은 설립 때부터 공고(公庫·정책)와 상고(商庫·상업)로 나눠야 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지금처럼 두 가지 기능을 어정쩡하게 하는 것보다는 분할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민영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대놓고 요구할 처지도 못된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경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데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대형 사건사고 때문이다. 자칫 ‘제 밥그릇만 챙긴다.’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 민 총재의 속앓이가 깊어가는 이유다. 한 임원은 “실상 민영화 법안은 글로벌 금융 위기 시의 정책 기능을 더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법안에 대한)오해도 많고 민영화 지연에 따른 유·무형의 손실도 엄청나지만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만 하더라도 민영화 논의가 본격화된 지난해 5월 “민영화가 이뤄지면 (산은에 대한)정부 지원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며 산은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전격적으로 낮췄다. 그로부터 9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무디스는 이 전망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국내 은행 평가 때 다른 은행들에는 모두 ‘안정적’(Stable) 전망을 준 것과 대조된다. 산은 측은 “신용평가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라면서 “차라리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말했다. 조직 불안정에 따른 손실도 적지 않다. 산은은 민영화 법안이 통과되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은행(민영화된 산은), 증권사(대우증권), 자산운용사(산은자산운용), 여전사(산은캐피탈) 등의 자회사를 거느리며 글로벌IB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이 경우 자금 조달에 한계가 생길 수 있다. 현재 점포가 40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공격적 인수·합병(M&A) 등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민영화 자체가 1년 넘게 표류하면서 중·장기 경영 전략이 올스톱된 상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진동수 금융위원장의 추진력에 내심 기대를 거는 눈치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산은 민영화가 바람직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금융위기로 인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1만(萬)원권(券) 미리 좀 구경합시다

    1만(萬)원권(券) 미리 좀 구경합시다

    오는 6월1일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쌀 1가마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된다. 2천9백년전 기자조선때 자모전(子母錢)이 생겨난 이래 가장 고액권인 1만원짜리 화폐가 생겨나기 때문. 석굴암 부처님의 인자스러운 모습이 담긴 새 1만원권은 전등불에 비추어 보거나 자외선 아래서만 보이는 색깔들이 들어 있어 위조는 1백% 불가능. 가로 17.1cm,세로 8.1cm인 1만원권은 지금의 5백원짜리 보다 조금 큰편. 흑갈색을 주색(主色)으로 하고 앞면에 10가지 색깔, 뒷면에 4가지 색깔이 들어 있으며 앞면엔 무궁화꽃과 석굴암 부처님 그림이, 뒷면엔 불국사 전경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1만원권 종이의 질. 영국에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어온 용지는 면 80%, 아마 20%를 섞은 최고급지로 위조화폐를 막기 위해 오른쪽 중앙부에는 세로로 은선(가능 쇠줄로 종이 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음)이 들어있고 왼쪽 중앙에는 희게 비어 있는 자리가 있는데 이곳을 전등불이나 햇볕에 비추어 보거나 물속에 넣어보면 또 다른 부처님 모습이 보인다(석굴암 12여래상중 오른쪽 2번째 불상). 게다가 자외선 아래서만 보이는 가는 색실이 종이 속에 들어있어 가짜 1만원권을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김성환(金聖煥) 한국은행 총재는 『우선 올해안에 연말 회폐 발행고 1천억원(추산)의 15%에 해당하는 3백억원 어치의 1만원권을 찍어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1만원권이 생겨나면 물가를 자극하지 않나 걱정하고 있으나 한국은행측은 1천원이나 5천원권이면 몰라도 1만원권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폐가 처음 생겨난 것은 기자조선 흥평왕 9년(서기전957년)으로 되어있다. 기록상엔 자모전(子母錢)을 만들어냈다고 되어 있으나 이 자체가 돈 이름이 아니고 큰돈(母錢) 작은돈(子錢)의 두 종류가 있었던 듯. 이보다 앞서 삼한시대에는 조개껍질이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했다. 기자조선때 첫화폐 등장…지폐 나온건 불과 80년전 이후 철, 구리, 은, 금등으로 동전이 계속 통용되어 오다가 종이로 된 돈이 처음 생겨난 것은 이조 고종3년인 1893년 이니까 고작 80년전. 태환서(兌換署)에서 만들어낸 우리나라 첫 지폐는 호조태환권으로 지폐 한가운데 두 마리의 용이 들어있고 두 용이 끌어안은 여의주속에 『이 환표는 통용하는 돈으로 교환할 것이라』(此券以通用正貨交換也)고 쓰여있다. 엄격히 말하면 화폐라기보다는 정부발행의 보증수표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조 광무6년(1902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의 「다이이치」은행이 남의 나라에서 「부기명식 일람출급 어음」즉, 화폐를 만들어냈다. 이 돈은 우리정부의 인가를 받은 것이 아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돈을 받지 않았다. 이러자 일본측은 군함을 인천항에 몰고 와 이의 통용을 우리나라 정부에 강요, 결국 공식허가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은행권의 시조. 우리나라의 1만원은 미화로 28$에 해당한다. 그럼 세계에서 가장 최고액의 지폐는 얼마짜리일까? 현재까지로는 미국에서 발행된 10만$짜리가 최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3천9백만원이나 된다. 미국 제28대 대통령인 「윌슨」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나 현재 통용되지는 않고 일부 애호가들의 「컬렉션」용으로만 쓰이고 있을 뿐. 미국에서도 1만$ 짜리가 통용되고 있는데 1944년부터 찍어냈으나 해마다 사용량은 줄어들어 65년까지 3백76장이 시중에 나돌았을 뿐.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 『이 행운을 찾아가십시오』란 팻말과 함께 장식용으로 걸려 있기도 하다. 액면가치와는 상관없이 실제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돈은 서기 303년에 만들어진 10「아우레이」금화. 단 1개밖에 없는 이 금화는 경매에서 7만5천$에 팔렸다. 지폐를 처음 만들어낸 것은 중국 사람들로 기원전 119년에 만들어냈다고. 그러나 지폐로서 형태를 갖춘 것은 7세기 당(唐)나라 시대 때부터 라고. 그러나 세계에서 처음으로 은행권이 발행된 것은「스톡홀름」은행권. 지금까지 1662년 12월에 찍어낸 5「다렐」짜리 지폐가 남아있는데 이 지폐는 3백여년을 전해와 지폐로선 최고령자. 가장 큰 지폐는 중국 명(明)나라 때의 1관(貫)짜리로 가로33cm, 세로 23cm로 어린이들 책가방만한 크기. 가장 크기가 작은 지폐 역시 중국 것으로「저장」지방 은행이 1908년에 만들어낸 5푼(分) 짜리로 세로 3cm, 가로5.5cm로 성냥갑보다도 작다. 화폐는 아니지만 1961년 1월 24일 1억1천9백59만5천6백46「파운드」의 액면 값이 적힌 수표가 「라자드·브러더스」회사에서 발행되었다. 이 수표는 영국「포드」자동차판매에 관계된 거래에서 쓰인 것으로 종이에 적힌 가치로는 지금까지 사상 최고. 사람들이 지페를 널리 쓰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으나 경화(硬貨)의 역사는 꽤 오래다. 기원전 700년께 옛 「터키」에서 금과 은을 섞어 경화를 만들어낸 게 동전의 할아버지. 1659년「스웨덴」에서 만들어진 10「다렐」짜리 동전은 무게가 17.5kg이나 되었다니 많은 돈을 갖고 다니려면 꽤나 무거웠을 듯. 또 「야포」섬의 토인이 쓰던 「후에」라는 석화(石貨)도 꽤 커서 직경이 3.7m나 되었다고. 이쯤 되면 돈이 아니라 바위를 굴리고 다니는 기분이었을 듯. 이 돌돈 1개로 아내 2명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800년께 인도의 남부「콜파타」지방에는「바늘머리」라고 불리던 동전이 이었는데 1개의 무게가 불과 6.5g.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1654년에 만들어진 인도「무갈」제국의 2백「물」금화는 명목가치로나 실질가치로나 금화로선 세계 최고. 금2.2kg이 들어 있었다니 돈으로 쓰지 않고 금으로 쪼개 팔아도 본전을 뽑았다고. 가장 가치가 없던 금화는 남「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쿠루가」금화. 값은 3「펜스」. 인류의 역사만큼 돈의 역사도 오래여서 세계에서 단 1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동전도 모두 1백여종이나 있다고. <창(昌)> [선데이서울 72년 4월 23일호 제5권 17호 통권 제 185호]
  • 독도 경비대 李경사 시신 발견 “실종직전 회식… 술 안 마셨다”

    설 연휴 기간에 새벽근무 대기 중 실종됐던 독도경비대원이 끝내 숨진 채로 발견됐다.경북지방경찰청은 28일 오전 10시5분쯤 독도 동도 망양대 옆 얼굴바위(바위섬)와 절개지 사이 틈 속에서 울릉경비대 소속 독도경비대 통신반장 이상기(30·부산시 북구) 경사의 시신이 울릉군 민간 해난구조대에 의해 발견됐다고 이날 밝혔다.이 경사의 시신에는 추락했을 때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얼굴 부위의 가벼운 외상 외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경찰은 이 경사의 시신을 독도경비대 막사로 옮긴 뒤 헬기편으로 포항의료원으로 이송했으며, 검찰 지휘를 받아 29일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 경사는 부인(27)과 네살 된 아들, 두살 된 딸을 두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이 경사가 27일 새벽 휴식 시간에 독도경비대 숙소 주변을 혼자 걷다 발을 헛디뎌 80여m 아래 절벽으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원인을 규명한 뒤 유족들과 상의해 장례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또 경북청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숨진 이 경사와 독도경비대 간부 2명, 독도 등대원 2명 등 모두 5명이 설날인 26일 오후 9시쯤부터 2시간여 동안 독도 등대에서 회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하지만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회식 때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한편 경북경찰이 1954년부터 독도 경비업무를 맡은 뒤 독도를 지키다 숨진 경찰관은 모두 7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부고] 유명 테너 색소폰 연주자 뉴먼

    유명 테너 색소폰 연주자 데이비드 팻헤드 뉴먼이 20일(현지시간)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75세.22일 AP통신에 따르면, 그의 매니저인 카렌 니먼은 뉴먼이 췌장암 투병 끝에 미국 뉴욕주 킹스턴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뉴먼은 1954년부터 ‘레이 찰스 밴드’ 그룹에서 12년간 활동했으며 바리톤 색소폰으로 시작해 이후 테너 색소폰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뉴먼은 1990년 재즈 드러머 아트 블래키, 싱어송라이터 닥터존 등과 함께 연주한 음반으로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공기업 CEO에게 듣는다] (11)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공기업 CEO에게 듣는다] (11)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전기가 안 들어오면 한국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이 달려갑니다. 전봇대부터 사용자 집까지의 전기고장과 안전문제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한국 최고의 전기 기술자들이 모여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저도 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한국전력공사에서 고장수리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지난 14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은 전기안전공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3선 의원을 지낸 그는 지난해 9월 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임 사장은 “12년 동안 국회의원을 하면서 피감기관을 ‘호통’치는 입장에서 처지가 바뀌어 피감기관장석에 앉아 보니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면서 “전체 화재의 20%가 전기로 인한 것인데 안전관리를 강화해 이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 3년 임기 동안 전기안전공사를 최고의 공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에서 낙하산 인사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전기안전공사 사장이 꼭 전기전문가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사장은 회사를 잘 이끌 수 있는 사람, 대외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하고 외부에서 오면 내부승진자가 하기 어려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공기업 사장을 청와대로 불러 임기 3년을 그냥 때우지 말고 경영자의 철학을 갖고 일해 달라며 한 사람씩 경영계획을 물었다.”면서 “이후 공기업 사장끼리 따로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우리가 제대로 해야 다음 사람들도 낙하산이니 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는 소신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 사장은 “우리 공사는 90% 이상이 현장업무라서 효율적인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1인 3역을 할 수 있는 유능한 직원을 육성하고,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윤리의식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세계최고의 전기안전 전문기업으로의 도약’이라는 새 비전을 정했다. 임 사장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고객가치 극대화, 역동적 조직문화, 성장동력 창출의 경영방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취임한 지 100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기안전공사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주력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안전관리업무를 민간시장에 대행시키고 있다. 임 사장은 “민간에 전기안전관리업무를 맡기면서 178억원 규모의 시장확대는 물론 250여개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시에 임기 중 전기안전공사의 자본잠식 해소를 목표로 재무구조 개선대책반도 만들었다. 전직원 생산성 10% 향상을 통해 2012년까지 2876명 정원의 10%인 289명을 감축하는 인력운영 효율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임 사장은 “2003년부터 정원을 동결해 더이상의 인력감축은 무리라는 내부 반발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말 본사조직만 10개 조직을 폐지하고 올해 3개 사업소 통폐합을 추진하는 등 조직의 슬림화와 효율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사와 노사관계에도 변화가 있었다. 전기안전공사가 만들어진 뒤 처음으로 상임임원 4명 중 2명을 내부인사로 선임했다. 능력이 있으면 임원이 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줘 역동적 업무분위기도 만들었다. 또 2000년 이후 최대폭인 35명의 고위간부 승진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같은 분위기로 창사 이후 처음으로 성과 상여금 15% 반납이라는 노사합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인력감축도 계획하고 있지만 19일에 70~80명 규모의 신규인력도 뽑는다. 임 사장은 “경영효율화와 신규일자리 창출이 상호 모순되는 부분도 있지만 정년퇴임 등 자연감소분 등을 감안하면 신규 인력도 필요하고 조직 순환을 위해서도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신규 인사를 할 계획”이라며 “다른 공기업 사장들이 인사문제를 정하지 못할 때 먼저 모범을 보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임인배 사장은 ▲1954년 경북 김천 출생 ▲81년 영남대 법학과 졸업 ▲96~08년 국회의원(15~17대) ▲96~06년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위원 ▲05년~ 대한사이클연맹 회장 ▲06~08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06년~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07년~ (사)한민족통일포럼 이사장 ▲08년 10월~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 과학을 악용하는 기업들

    1954년 미국암학회가 50~69세에 사망한 백인 18만명을 조사한 결과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1.5배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담배회사는 이를 인정하기보다는 폐암의 다른 원인을 찾기 위해 컨설턴트와 연구자를 고용했다. 이들은 흡연과 폐암이 ‘상관’ 관계는 있지만 ‘인과’ 관계는 아니라는 애매한 말로 응수했다. ‘개인별 발암 유형은 유년기에 결정’, ‘심리적·가족적 요인이 폐암의 원인 가능성’ 등 조사 결과를 쏟아냈다. 과학에 맞서 과학으로 싸운 것이다. ‘청부과학’(데이비드 마이클스 지음, 이홍상 옮김, 이마고 펴냄)은 이렇게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학을 얼마나 그악스럽게 이용하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자본과 결탁해 교묘하게 데이터를 조작하고,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기업이 청탁한 연구로 떼돈을 버는 과학이다. 클린턴행정부에서 에너지부 차관보였던 환경·보건 전문가 마이클스는 “기업의 이익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연구를 쓰레기 과학이라고 치부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사고 파는 과학에 맞서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책의 목적을 설명한다. 담배를 비롯해 석면, 플라스틱 화합물, 납, 수은, 크롬, 벤젠, 디아세틸 등 각종 유해물질에 얽힌 이야기는 같은 유형을 갖는다. 유해물질에 연관된 사람이나 노동자가 꾸준히 사망하면 행정당국은 이를 입증할 만한 실험과 조사를 진행하고, 예방할 적정 기준을 제정하려고 움직인다. 문제가 된 기업은 반박할 만한 다른 과학적 근거를 들먹이며 길게는 수십년의 시간을 끈다. 이러는 사이에 발생하는 피해는 노동자, 환경 등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식이다. 마이클스는 ‘청부과학’에 맞서 유해물질을 규제하고 환경을 보호할 방법으로 최종심판자로서 법원의 기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화학물질 제조업자는 안전검사를 의무화하고, 제품의 유독성과 위험물질 정보를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실험 결과를 신뢰하면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기업의 이기와 유리한 정책적 판단에 과학이 휩쓸리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책의 원제(Doubt Is Their Product)가 가진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한 타이어 제조공장의 집단 돌연사, 반도체 공장의 여성노동자에게 특정 질병이 발병할 확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는 한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1만 9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김수용

    [만나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김수용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의 총본산인 대한민국예술원 김수용(80)회장을 15일 서울 서초구 반포로 예술원 회장실에서 만났다. 예술원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초경찰서 사이 양지바른 동산에 대한민국학술원과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1954년 개원한 예술원의 회원은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무용 등 4개 분과에서 활동 중인 83명의 기라성같은 예술계의 큰 어른들이다. 김 회장이 내민 명함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영화감독 김수용’이라고 적혀 있다. 2007년 영화감독 출신으론 첫 회장으로 선임된 김 회장의 영화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명함에서 오롯이 묻어났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이스트우드 노익장 부러워… 저도 자신있는데” →감독 데뷔하신 지 올해로 51년째를 맞습니다. 10년 전 109번째 작품 ‘침향’을 연출한 이후 예술원 활동에만 치중하고 계시는데요, 110번째 메가폰을 잡을 계획은 없으신지요. -미국의 배우출신 영화감독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체인질링’이라는 신작을 내놓았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우리는 동갑내기입니다. 할리우드의 제작환경과 그 분의 노익장이 부럽더군요. 나도 이렇게 뒷방에 물러나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구상을 끝낸 작품이 있습니다. 각본은 90% 이상 완성상태입니다. 투자가만 있으면 찍어서 상도 휩쓸고,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을 자신이 있는데…. →어떤 작품이며, 누가 출연하는지 공개할 수 있으신가요. -친구처럼 지내는 신영균·최은희씨와 저 이렇게 셋이서 영화 한편 찍자고 의기투합했어요. 두 사람 다 젊고 예쁠 때 영화밖에 없으니 지금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것이었죠. 80대 노인 두 사람을 한 작품에 공동 출연시킬 경우 흥행에 지장을 주니까 두 개의 작품에 각각 출연시키려고 합니다. 최은희는 ‘무지개는 언제 뜨나요’(윤흥길 원작)에서 아들을 유혹하는 비운의 여관 조바로, 신영균은 ‘만월’(고은 원작)에서 꽃뱀 딸에게 당하는 밀도살꾼으로요. 두 배우의 상대 남녀는 공개 선발할 생각입니다. 촬영장소도 정해졌어요. 그런데 흥행이 될까요?… ●“영상물등급위원장 시절 모든 가위 내다버렸죠” →두 원로의 컴백에 개인적으로 기대가 큽니다. 김 감독께서는 탐미적 사실주의의 문예영화와 실험적 성향의 모더니즘영화, 흥행영화, 시대상황을 풍자한 저항영화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를 남기셨는데, 대표작을 자천하신다면. -‘갯마을’(65년·오영수 동명소설 원작)과 ‘안개’(67년·김승옥의 무진기행 원작) 두 편을 꼽고 싶습니다. 문예영화를 50편가량 찍었는데 소설가협회에서 가장 문학적인 영화감독으로 뽑혀 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걸레스님 중광을 다룬 영화 ‘허튼소리’에 대한 당시 공연물윤리위원회의 지나친 검열에 항의해 1986년 은퇴를 선언하신 뒤, 1998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앉으셨는데, 위원장으로 6년 동안 일하면서 어떻게 심의하셨나요. -등급위에 있던 모든 가위를 내다버렸습니다. 대신 12, 15, 18세(지금은 19세) 3등급제를 실시했습니다. ‘거짓말’(1999년·장선우 감독)과 ‘죽어도 좋아’(2002년·박진표 감독) 등 몇 작품 때문에 좀 시끄러웠지만 일단 등급판정을 보류시켜 시간을 끄는 방법으로 분위기를 가라앉혔죠. 절대 자르지는 않았어요. →예술원 안팎에서 대한민국예술원상의 회원 독식비판과 회원 외부추천 강화, 방송 등 대중예술분야의 별도 분과설치요구 등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예술원위상 재정립과 예술원의 변화를 위한 구상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예술원이 올해로 개원 55주년을 맞습니다. ‘위대한 국가의 초석은 위대한 예술의 창조에 있다.’는 창립선언문에 나와 있는 설립취지를 지키면서 활동영역을 넓혀나갈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예술원상의 경우 지난해부터 회원은 수상할 수 없도록 고쳤습니다. →예술원법상 회원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종신제가 대부분인데 굳이 4년 연임제를 도입한 이유는 뭡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도 회원 83명 중 이해구(101·국악), 김성태(100·작곡), 이원경(93·연극)선생 등 3분이 종신회원입니다. 회원 평균 연령은 79세입니다. 부분 종신제죠. 지난 55년 동안 80년대에 회원 1명이 사회적 물의를 빚어 연임에 실패한 사례가 유일합니다. 제 임기 중에 종신제를 적극 추진할 생각입니다. ●“임기 내 회원종신제·예총회관으로 이전 추진”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인 예술원만의 독립청사가 없어 교육과학기술부 소속 학술원에 더부살이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창피하지만 사실입니다. 우리 회원 일동은 대학로에 있는 예총이 목동 예술인회관으로 이전하면 예총회관으로 옮겨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고 있고,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의 소망이 새해에 꼭 이뤄졌으면 합니다. →건강비결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집안의 가훈이 ‘건강을 잃으면 세계를 잃는다’입니다. 중구 장충동 주택에 50년째 사는데 일주일에 4회는 남산걷기를 합니다. 하루 1만보는 기본이지요. 학창시절 이래 40년째 일기쓰기도 계속하고 있어요. ●걸어온 길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47년 안성공립농업학교 수료 ▲1950년 서울사범 본과 졸업, 6·25전쟁 참전 ▲1954년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육군대위) ▲1958년 영화감독 데뷔(공처가) ▲1978~1995년 중앙대, 단국대, 동국대, 경희대, 서울예대 강사 ▲1983년 마닐라 및 하와이영화제 한국대표 ▲1984~1985년 몬트리올영화제 및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 ▲1985년 청주대 예술대학 부교수 ▲198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선임 ▲1994~1998년 청주대 교수 ▲1999~2005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2005~2007 대한민국예술원 연극·영화·무용분과 회장 ▲2007~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주요 작품 ▲굴비(1963년)▲혈맥(65년)▲저하늘에도 슬픔이(65년)▲갯마을(65년)▲유정(66년)▲산불(67년)▲안개(67년)▲사격장의아이들(67년)▲만선(67년)▲봄봄(69년)▲춘향(70년)▲토지(74년)▲극락조(75년)▲화려한 외출(77년)▲웃음소리(77년)▲망명의 늪(78년)▲사랑의 조건(79년)▲만추(81년)▲허튼소리(86년)▲사랑의 묵시록(95년)▲침향(98년) 등 총 109편 연출 ■ ‘감독’ 김수용은 베레모에 선글라스를 낀 노(老)감독을 만나러 대한민국예술원에 갔다. 그런데 기자를 맞이한 그는 의외로 말끔히 빗어넘긴 맨머리에 세련된 정장 차림이었다. 엷은 색안경과 의전용인 듯한 무색안경을 두고 계속 만지작거렸다. “회장님에겐 색안경이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라는 말 한마디에 “그렇죠.”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색안경을 착용했다.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베레모와 선글라스다. 한국 영화감독의 고전적 이미지를 만든 주인공이다. 그의 첫 저서 ‘예술가의 삶’(1993년·혜화당)을 보면 화려한 은막의 스타들이 총출연하는 흑백사진 118장이 실려 있다. 한번 따져봤다. 그가 베레모를 쓰기 시작한 1962년 이후 사진은 거의 빠짐없이 베레모와 선글라스 둘 중 하나는 착용하고 있었다. 한밤중이거나 시상식이거나 하는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예술은 멀고 흥행은 가깝잖아요.” ‘한국영화의 선구자이자 산 증인’인 김 감독을 만나면 들을 수 있는 ‘18번 대사’이다. 성적을 떠난 야구·축구감독이 무의미하듯 영화감독과 흥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이다. 여배우 트로이카의 선두주자 남정임을 발굴한 ‘유정’(1966년·이광수 원작)은 서울 국도극장에 걸린 지 50일만에 33만명이 운집했다. 당시 서울인구가 300만명 시절이니 ‘전회 매진사례’가 내걸린 초유의 대박이었다. ‘저하늘에도 슬픔이’의 29만명 기록을 1년만에 깨버린 것이다.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친구역 엑스트라로 출연한 인연으로 감독의 길에 들어선 것은 보너스다. 성공신화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공륜의 검열에 항의해 은퇴한 뒤 복귀해서 만든 ‘사랑의 묵시록’(1995년)은 일본자본의 영화라는 이유로 극장을 잡지 못했고, 109번째 연출작 ‘침향’(1998년)의 실패로 사재를 털어야 했다. 1960∼70년대를 겪은 세대라면 알게 모르게 그가 만든 영화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이유는 109편의 영화 목록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평단의 평가는 어땠을까. 70년대 이후 작품에 대해 하길종 감독은 ‘어설픈 실험’이라고 비난했고, 동료 김기영 감독은 “갯마을 같은 서정적인 드라마를 계속했더라면…”이라는 우정어린 충고를 남겼다. 그와 동시대에 활약한 감독들을 비교한 어느 평론가의 글도 흥미롭다. “신상옥 감독은 전설로 남았고,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 김기영 감독은 기인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유현목 감독은 드문 예술적 지성의 소유자로, 이만희 감독은 재능을 술로 탕진하면서도 천재성을 지켰다. 하지만 김수용 감독에게는 변변한 수식이 없다. 다만 그는 기복 없는 샐러리맨처럼 고른 호흡으로 영화를 찍었다. 그것이 김수용식 전설이다.”라고. 김수용 감독의 전설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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