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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화를 열망하는 日 속살 탐구서

    지난 달 30일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자,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일었다. 54년간 지속돼온 자민당 독주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선거를 통해 첫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는 점에서 자민당의 장기집권에 국민들이 염증을 느꼈다는 해석이 가장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정말 무엇이 일본 국민을 달라지게 했을까. ‘일본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이춘규 지음, 도서출판 강 펴냄)은 갈림길에 선 일본의 현재를 알게 해준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일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 저자(현 서울신문 편집국 부국장)는 장기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을 속속들이 파고 든다. “1000장 정도의 명함을 교환하면서”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감히 발로 썼다고 자부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일본의 참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부지런히 몸으로 부딪친 흔적이 그대로 배어난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일본. 그러나 정작 이웃나라의 한국인들은 일본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저자는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해 서서히 선입견을 깨어 나간다. ‘연줄’ 없이는 힘들다는 도요타자동차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아름다우면서도 거친 일본의 명산 33개를 오르내리며 “바로 이 자연에 일본 정신의 원류가 있다.”고 깨닫는다. 문화적인 숨결을 호흡하기 위해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지역 축제를 체험하는 것은 물론, 신사와 절, 고분과 묘지, 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두루두루 찾아가 본다. 예상치 못한 모습들이 흥미롭다. 폭주가가 적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밤 새워 술 마시는 ‘술꾼’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지진 대비가 철저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일본인의 80%는 “올 테면 와라.”며 지진 방재 대책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등이 목격한 사실이다. 흡연에 관대한 문화, 쓰레기 투기로 몸살을 앓는 풍경, 송년회가 끝난 뒤 홀로 라면을 먹는 모습 등에서 일본 사회의 그늘과 주름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일본에 이는 ‘변화에 대한 열망’을 직시하자고 권한다. “일본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상식으로 여기던 가치들도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그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이야말로 오해와 편견을 벗고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를 함축하고 있다. 1만 2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특파원 칼럼] 하토야마정권 섣부른 예단 금물/박홍기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하토야마정권 섣부른 예단 금물/박홍기 도쿄특파원

    일본에서 두 차례의 선거를 지켜봤다. 2년 전 참의원선거와 지난달 30일 중의원선거다. 당시 참의원선거는 민생을 도외시한 채 개념조차 애매한 ‘아름다운 일본 만들기’를 표방한 아베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참의원선거 때만 해도 일본 국민은 자민당에 미련이 남은 듯 ‘옐로 카드’만 꺼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경기 침체에 따라 사회 전반의 격차가 한층 커진 데다 사회보장체계의 허점도 속속 드러났다. 고용불안이 해소되기는커녕 심화됐다.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무책임하게 사퇴했다. 자민당은 경고를 무시했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레드 카드’없이 54년간을 유지해온 자민당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 자민당의 패배다.”라는 이시바 시게루 농림수산상의 정리가 맞다. 일본 국민은 한 표의 힘을 실감했다. 선거혁명의 실체를 봤다. “일본인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국민들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일본을 통치할 민주당 정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정권교체에 한국은 마음과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들떠 있는 듯싶다. 하토야마 유키오 차기 총리의 한국관(觀)이 참신해 보일 수 있다. 선거전 때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 아시아중시정책도 표방했다. 하지만 아베·후쿠다 전 총리도, 아소 다로 총리도 야스쿠니신사를 찾지 않았다. 침략 전쟁을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엄밀히 따져 보면 일본은 옷만 갈아입었다. 보수 우파에서 보수 좌파의 옷을 입었다. 일본은 그대로다. 아시아중시정책은 의미가 적잖다. ‘대등한 미·일 관계’와 맞물려 있다. 미국 추종 노선에서 벗어날수록 아시아 쪽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풍선효과’나 마찬가지다. 일본은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이되, 견제국가다. 미국과는 당분간 관계 조정에 들어갈 것 같다. 때문에 동아시아공동체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 하토야마 차기 총리가 아시아중시의 상징성을 내세우기 위해 첫 공식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게다가 한·일 셔틀외교가 활발한 데다 일본 측이 한국을 방문할 차례다. 북한과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로선 가시화된 대북정책이 없다. 하토야마 차기 총리는 자민당을 창당한 조부인 이치로 전 총리의 옆에서 정치를 보고 배웠다.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는 1956년 10월 소련과의 국교정상화를 실현할 주인공이다. 하토야마 차기 총리도 ‘우애외교’를 활용해 최대 과제인 북한과의 관계 개선, 나아가 국교정상화에 의욕을 보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냉정했으면 한다. 기대가 지나치면 자칫 사소한 흠에도 실망이 배가된다. 민주당 정권의 정책을 차분하게 예의주시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한 단계 높은 한·일관계를 위한 ‘예방적 외교’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일본은 머지않아 고교 교과서의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발표한다. 지난해 7월 중학교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이 명시된 만큼 고교 해설서에도 들어갈 것이 확실하다. 한국의 대응수위만 남아 있다. 야스쿠니신사의 참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국립추도시설 설립도 간단찮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전까지 구체화되지 않을 경우 추진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교포들이 갈망하는 영주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도 장담할 수 없다. 적극적인 입장인 하토야마 차기 총리와 당권을 쥔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계파들의 이견에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식과 정책 반영은 별개인 까닭에서다. 오는 16일 출범할 하토야마 정권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관망하는 쪽이 한·일 간의 문제에 지혜롭고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길이다. 박홍기 도쿄특파원 hkpark@seoul.co.kr
  • [하토야마의 뉴 재팬] ④ 민생 보듬기

    [하토야마의 뉴 재팬] ④ 민생 보듬기

    │도쿄 박홍기특파원│54년간 자민당의 독주체제를 깬 민주당 정권에 일본 국민들이 거는 기대는 높다. 오는 16일 출범하는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74%(아사히신문)에 달했다. 지난해 9월 출범한 아소 다로 정권은 48%에 불과했다. 국민들의 갈망은 명확했다. ‘안심·안정사회’다. 후생노동성의 지난 5월 국민생활 기초조사에서 57.2%가 “생활이 힘들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국민의 바람을 꿰뚫었다. 정권교체 역시 국민의 생활을 위한 수단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2007년 7월 참의원선거 때 썼던 ‘국민생활이 제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다시 내걸었다. 결국 표심은 정권교체를 낳았다. 자민당이 두 차례에 걸쳐 정권을 잃은 시기는 경제위기 때다. 1993년의 패배 땐 부동산·주식의 버블붕괴로 불리는 ‘잃어버린 10년’의 초입에, 이번엔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생활고에 허덕이는 와중에 있었다. 교도통신이 2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 하토야마 정권의 출범에 거는 최우선 과제로 40.2%(중복응답)가 경기·고용대책, 39.2%가 세금낭비 방지, 35.2%가 연금제도의 개혁을 요구했다. 안심 사회의 실현 여부가 민주당 정권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인 것이다. 하토야마호의 민생 항해는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후생노동성의 ‘매월근로통계조사’를 보면 7월 근로자의 급여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 줄어든 36만 5922엔(약 475만 8000원)이다. 역대 세 번째로 감소폭이 크다. 한국과는 물가 변수가 커 단순비교는 무리다. 시간외 근로시간은 35.6% 단축된 10.2시간, 상용고용은 832만 8000명으로 2.9% 하락했다. 일자리도, 잔업도, 급여도 줄어든 데다 고용형태도 불안정한 상태다. 민주당의 민생공약은 실제 획기적이다. 국민들은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육아 및 교육 분야에서는 중학교 졸업 때까지 1인당 월 2만 6000엔의 지급을 약속했다. 공립 고교는 의무교육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실현되면 자녀교육비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가계에 대한 직접지원 방식이다. 출산 때 일시금도 현행 42만엔에서 55만엔으로 인상한다. 재원은 자녀가 없는 전업주부 가구에 전가할 계획이다. 저출산 해소책과 연계,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고용정책으로 모든 근로자들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토록 했다.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구직자에게는 능력개발비 명목으로 월 10만엔을 줄 방침이다. 제조현장에는 원칙적으로 근로자 파견을 금지했다. 전체 근로자의 35%인 1700만명을 웃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대책이다. 안심하고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바꾸겠다는 게 민주당의 정책 기조다. 하토야마 대표도 선거 승리 직후 “생활이 좋다고 체감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2013년까지 소요될 16조 8000억엔의 재원 확보다. 현재로선 턱없이 부족하다. 민주당은 쓸데없는 예산 삭감, 불필요한 공공사업 중지, 특별회계 잉여금, 인건비 절감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국민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소득세 인상이나 국채발행에는 부정적이다. 시민단체 반빈곤네트워크는 성명에서 “선거결과는 억눌렸던 사람들의 반발심이 나타난 것이다. 국민들에게 전가한 파괴적 생활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권자는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내릴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hkpark@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신종플루 40대 여성 네번째 사망 비밀결혼 이영애 홀로 귀국 추억의 록밴드…그들이 온다 군대 안 가려고 6년간 국적세탁 이메일 대문자로만 작성했다고 해고? 포스코 “잘 놀아야 일도 잘해” 보이스피싱범 두번 잡은 은행원 동교동-상도동계 10일 대규모 회동
  • [新일본 열다] 공약으로 미리 본 일본

    [新일본 열다] 공약으로 미리 본 일본

    │도쿄 박홍기특파원│민주당 정권은 ‘새로운 일본의 역사’를 주창했다. 관료가 주도한 자민당의 ‘관료내각제’에서 탈피, 정치 중심의 내각을 구축하겠다는 게 핵심공약이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선거 내내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의 실현을 소리 높이 외쳤다. 때문에 54년간 고착된 자민당의 찌든 때를 벗기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이 단행될 전망이다. ●정치 주도로 내각 개혁 내각은 정치인들이 장악했다. 국회의원 100명 정도가 대신(장관)·부대신·정무관 등 이른바 ‘3역’을 독차지, 정책입안에서부터 결정까지 모든 과정을 좌지우지한다. 자민당 시절 관료들이 주무르던 업무를 정치인들이 도맡았다. 때문에 내각과 여당과의 불협화음이나 잡음도 잦아들었다. 내각과 여당과의 일원화와 투명화가 이뤄진 셈이다. 국민들도 현장의 민원이 비교적 쉽게 해당 부처에 전달된다. 정권의 힘은 총리를 중심축으로 한 국가전략국에 집중됐다. 전략국은 예산의 골격과 외교의 기본방침 등을 총괄한다. 30명가량으로 구성된 전략국의 외교 및 재정·경제분야의 민간 전문가들은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가의 비전까지 짠다. 명실공히 최고의 국정운영기구로서 자리매김한다. 공무원들은 몸을 사렸다. 공직사회에 메스를 대서다. 낙하산 인사는 전면금지된 데다 수당이나 퇴직금도 깎였다. 불만을 털어놓을 수 없다. 공무원의 총인건비를 20% 삭감하기로 한 공약인 탓이다. 대신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준 데에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교육비 부담↓ 출산장려금↑ 국민들은 ‘국민생활이 제일’라는 민주당의 모토를 실감했다. 무엇보다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다소 줄었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 자녀 한 명당 매달 2만 6000엔(약 33만 8000원)씩을 정부가 주는 아동수당의 덕택이다. 공립 고교의 수업료도 없어진 데다 대학의 장학금 혜택도 크게 늘었다. 민주당은 이르면 내년 6월부터 아동수당을 지급할 방침이다. 나아가 다양한 저출산 대책이 출산율도 적게나마 높였다. 출산 때 받는 일시금도 42만엔에서 55만엔으로 올렸다. 하토야마 대표가 강조한 “생활을 위한 정치의 실현”으로 수용하는 분위기다. 기업을 비롯, 고용자 측에서는 정부의 고용정책 탓에 적잖게 불편하다. 비정규직과 격차 사회의 해소를 위해 기업보다 근로자 쪽에 너무 비중을 둔 까닭에서다. 고용보험 가입조건은 현행 6개월 이상 고용에서 31일 이상으로 완화됐다. 자민당 정권 때와 달리 손쉽게 비정규직을 채용했다 해고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현실에 빠르게 적응했다. hkpark@seoul.co.kr
  • 54년만의 선거혁명… 新일본 열다

    54년만의 선거혁명… 新일본 열다

    │도쿄 박홍기특파원│30일 새로운 일본이 열렸다. 이날 실시된 중의원선거(총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은 54년간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에 완벽하게 압승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달성,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체제를 출범시키게 됐다. 반면 자민당의 ‘1955년체제’는 막을 내렸다. 선거구별 개표 집계에 따르면 31일 0시20분 현재, 총의석 480석 가운데 민주당은 301석을 획득, 단독 과반수 241석을 훨씬 넘어섰다. 자민당은 112석, 공명당은 20석에 그쳤다. 또 공산당 8석, 모두의 당과 사민당이 각각 5석을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민주당은 절대안정의석을 얻어 중의원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도 독점할 전망이다. 투표율은 69%를 넘어 지난 2005년 총선거의 67.5%보다 높았다. 차기 총리에 오를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이날 밤 선거결과와 관련, “국민의 뜻이 마침내 결실을 보아 정권교체를 이루게 됐다.”며 국민의 성원에 감사했다. 정권교체를 선택하는 총선거에는 모두 1374명이 출마했다. 소선거구제로 300명,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눈 비례대표제로 180명 등 모두 480명을 뽑았다. 지난 20 05년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296석, 민주당은 113석을 얻었다. 창당 이래 최대 참패를 당한 자민당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아소 다로 총리는 “자민당에 대한 불만을 씻어내지 못했다.”면서 패배를 선언한 뒤 사퇴의 뜻을 밝혔다. 호소다 히로유키 간사장을 비롯, 당료들도 책임을 지고 당직을 내놓기로 했다.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를 포함,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등 정치 원로 및 중진들도 줄줄이 낙마했다. 연립정권의 한축이었던 공명당의 오오타 아키히로 대표도 낙선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31일 곧바로 ‘정권인수팀’을 구성, 정권 인수 작업에 공식 돌입하기로 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새달 15일쯤 열리는 특별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정권이행팀은 하토야마 대표가 31일 발표할 관방장관, 국가전략국 담당상, 재무상, 외무상 등 주요 각료 내정자와 간사장 등 당 중역들로 구성된다. 특히 하토야마 대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등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 한·일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긴밀하고 대등한 외교’를 천명, 미·일 관계의 조정이 주목되고 있다. hkpark@seoul.co.kr
  • [하토야마의 뉴 재팬] ① 총선 압승 의미·전망

    [하토야마의 뉴 재팬] ① 총선 압승 의미·전망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국민은 30일 54년간에 걸친 자민당 장기정권을 거둬들였다. 선거의 결과는 여론조사의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민당은 지난 2007년 7월 참의원에 이어 중의원까지 민주당에 넘겼다. 1955년 창당된 자민당은 존립마저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민주당의 승리는 자민당 정치의 종식과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선택의 결과다. 자민당은 당초 내세웠던 반공과 경제성장을 1990년대 시대적 흐름과 함께 국민들의 땀과 노력 끝에 달성했다. 그렇지만 자민당은 일당으로서의 지위만 누렸을 뿐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 못했다.장기집권에 따른 관료조직의 폐쇄성과 단체 및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족(族)의원’ 등 이른바 ‘정·관·업’의 유착은 고질화됐다. 민주당이 목소리를 높인 것처럼 자민당은 ‘관료가 주도하는 정치’로 굳혀졌다. ●사회개혁 양극화만 키워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출현은 자민당으로서는 분수령이었다. 자민당에 재기할 기회를 줬지만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부터 5년5개월에 걸쳐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두고 추진한 사회 개혁은 빈부, 대도시와 지방, 도시와 농촌 간 등의 양극화를 한층 키웠다. 때문에 개혁의 효과보다 폐단이 부각됐다. 2005년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을 깨부순다.”는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믿음에 296석을 몰아줬지만 자민당은 바뀌지 않았다. 국민들은 실망했다. ●“이번엔 바꾸자” 열망 반영 더욱이 고이즈미 전 총리에 이은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아소 다로 총리는 더욱 구태를 탈피하지 못했다. 파벌의 담합에 따라 총리가 선출되는 데다 새로운 정치인의 등용을 막는 정치세습제에 연연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은 전체 근로자의 33%를 넘어섰고 ‘워킹푸어(근로빈곤층)’도 일반화됐다. 지난달 실업률은 5.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국민들의 속내를 정확히 꿰뚫었다. 2007년 참의원선거에서는 ‘국민생활이 제일’을, 이번 선거에서는 ‘정권교체, 새로운 일본’을 기치로 내걸었다. 국민들은 자민당과의 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민주당을 대안으로 삼았다. 자민당 정권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다. 아사히신문의 28일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가 됐을 때 무려 54%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은 철저하리만큼 표밭을 다졌다. 자민당은 수권정당의 책임과 경제회생을 강조했지만 국민들을 파고드는 데 실패했다. 자민당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은 그만큼 깊었다. ●관료들 위상 추락 불가피 민주당의 집권은 내정과 외교에 적잖은 변화를 예고한다. 자민당 정권에서 정책의 중심에 서 있던 관료들의 위상 추락은 불가피하다.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일본 정치의 중심을 관료에서 국민으로 바꾸겠다.”고 역설했던 터다. 대미 외교의 경우 미·일 동맹을 기본으로 하되 자민당의 미국 ‘추종’과는 달리 ‘대등한 외교’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참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탓에 사민당, 국민신당과 연립 등의 공조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따라 내년 7월 예정된 참의원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할 때까지 힘의 논리에 앞서 대화와 협력을 내세우며 신중하게 대응, 정국을 운영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hkpark@seoul.co.kr
  • [新일본 열다] 한·일 FTA 체결 속도 붙을 듯… 첨단 IT·나노 등 수출확대 기대

    54년 만의 일본 정권 교체는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부는 일본 자민당과 민주당의 경제정책 차이가 크지 않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의 내수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라 우리 기업의 일본 진출이 좀 더 쉬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민주당의 경제정책 기조는 과거의 ‘대기업 주도 경제’를 중소기업과 가계 중심의 ‘서민 경제’로 옮겨오겠다는 것이다. 미국 국채 매입규모를 줄이겠다고 밝힌 점을 들어 엔화 강세를 점치는 시각도 있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30일 “일본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공약과는 달리) 실제로 경제 정책의 큰 변화를 꾀하긴 어려워 보인다.”면서 “특히 수출 위축을 가져올 수 있는 엔화 강세를 용인할 가능성은 낮은 만큼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이 미국 중심의 통상 정책에서 벗어나 각국과의 FTA를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여 한·일 FTA에도 속도가 날 전망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민주당의 외교정책 기조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인 만큼 한·일 FTA에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아시아 시장을 놓고 양국의 경쟁 또한 치열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일(對日) 수출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코트라는 “일본 대기업 및 투자자 20여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정보기술(IT), 환경, 나노테크 등 첨단 산업분야에서 한국의 수출 기회가 늘어나고 일본 기업의 대한(對韓)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일본 자동차 부품과 의료용품, 실버·육아용품 시장 진출여건도 호전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박대식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본부장은 “내수지향 정책을 표방하는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다만 수출 지향적이었던 일본 기업이 정책 변화에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지, 새 정부가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두걸 김효섭기자 douzirl@seoul.co.kr
  • [新일본 열다] 오자와 창당 13년만에 정권창출 총지휘

    [新일본 열다] 오자와 창당 13년만에 정권창출 총지휘

    │도쿄 박홍기특파원│30일 중의원선거에서 일본의 정치판을 뒤엎은 민주당은 고작 13년의 역사를 가졌다. 54년된 자민당과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비유될 정도다. 민주당은 지난 1996년 9월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가 정치개혁을 내걸며 신당 사키가케를 탈당한 뒤 창당했다. 현 민주당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구 민주당으로 부른다. 민주당의 현 체제는 1998년 4월 민정당·신당우애·민주개혁연합 등이 합류하면서 갖춰졌다. 창당 때만 해도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이룰 것이란 관측은 사실 불가능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잡당’으로 불릴 만큼 보수에서 좌파까지 이념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은 데다 6개의 당이 뭉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계파·이념을 떠나 목표는 확실했다. 정권교체다. 특히 핵심인물들이 만만찮았다. 당의 얼굴인 하토야마 대표를 비롯해 오자와 이치로, 간 나오토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이 포진했다. 모두 당대표 출신이다. 오자와 대표대행은 지난 5월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선거운동을 총연출했다. 하토야마 대표를 후임으로 선택한 것도 오자와의 작품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킹 메이커, 선거의 귀재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책공약, 선거전략, 후보공천, 후보자금지원에 이르기까지 선거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질적인 일등 공신이다. 오자와 대표대행은 또 당내에서 120명의 의원을 거느린 최대계파의 수장이다. 게다가 정치신인들이 이번 선거에서 대거 당선, 새로운 ‘오자와 칠드런’이 생겼다. 하토야마 대표가 당 밖의 간판이라면 오자와 대표대행은 당 안에서의 최대 실세다. 때문에 자칫 하토야마 내각과 오자와 정국이라는 이중권력체제가 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간 대표대행과 오카다 간사장의 역할도 컸다. 당 내에서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간 대표대행은 변리사 출신으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1980년 사회민주연합 후보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1998년 민주당의 당권을 잡았지만 다음해 당내 선거에서 패배, 하토야마에게 대표직을 내줬다. 2002년 12월 다시 당 대표에 올랐지만 2004년 5월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 사건이 터져 물러났다. 도쿄대 법대 출신의 오카다 간사장은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당내 소장파 의원의 지지를 받는 차세대 주자다. hkpark@seoul.co.kr
  • [新일본 열다] 日민주당 과거사에 전향적… 한·일관계 발전 기대

    30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총선거의 결과가 예상대로 야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사실상 54년만의 정권 교체가 앞으로 한·일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관심거리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한·일관계의 중요한 변수가 돼 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민주당 정권의 등장에 따라 한·일관계는 보다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야스쿠니 신사 및 군위안부 문제 해결 등을 정책 목표로 삼는 등 그동안 집권해온 자민당보다 상대적으로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 자신은 물론이고 각료들도 자숙토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매년 8월15일 야스쿠니를 참배해 한·일 간 갈등을 일으키는 등 자민당 정권 때의 총리들은 야스쿠니를 대체로 참배해 왔다. 민주당은 야스쿠니 신사를 대신할 새로운 국립추도시설 설치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또한 재일동포의 숙원인 영주권자 지방참정권 부여도 ‘조기에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독도 문제에 대한 한·일 간의 이견은 여전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독도 문제에 있어선 자민당 정권의 ‘독도 일본 영토화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채수 고려대 교수는 “자민당은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직접적 개입한 사람들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기반으로 유지돼 온 정당이지만 민주당은 걸프전 이후 글로벌리즘(세계화)을 강조하는 측면이 커 역사 교과서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한국 및 중국의 여론을 자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한·일 관계는 더욱 긴밀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민주당이 한국을 중시하는 입장을 표방하고 있고, 과거사 문제에 있어선 무라야마 담화 계승 입장을 밝히는 등 전향적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한·일관계는 좀더 우호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민주당 정권은 내부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파벌이 있어 내년 참의원 선거 이후까지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1990년대 연립정권 당시 무라야마 총리는 태평양전쟁과 그 전에 행한 침략,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를 표명했다. 윤 교수는 대북정책과 관련, “민주당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대화와 압박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 개선 상황을 지켜보며 북한에 대화 제스처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1993년 10개월여 ‘깜짝 야당’… 고이즈미 시절 민심이반 심화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을 54년간 통치해온 이른바 ‘1955년 체제’의 자민당이 사실상 궤멸된 상태다. 중의원선거에서 처음으로 제1당도 빼앗겼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자민당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권력을 장기 독점해 왔다. 하지만 2007년 7월 참의원선거 패배에 이어 이날 중의원선거도 완패했다. ●1955년 자유당+민주당으로 탄생 자민당은 창당 이래 10개월간을 빼고는 사실상 집권당의 위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터다. 1990년 중의원선거 때 리쿠르트 사건, 우노 소스케 전 총리의 여성스캔들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텼다. 1993년 중의원선거에서는 과반수에 실패했지만 제1당을 지켰다. 물론 당시 자민당 장기 집권에 반발한 야당들이 비(非)자민, 비공산 연립정권에 합의해 호소카와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한때 처음 야당으로 전락했다. 총리도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이치 의원이 맡았다. 하지만 호소카와 내각의 자중지란에 따라 자민당은 1995년 6월 일본사회당 등과 연립, 다시 여당으로 복귀했다. 10개월 만이었다. 이후 자민당은 한층 쇠퇴의 길에 빠져들었다. 중의원·참의원선거에서 잇따라 기존의 표를 잃어갔다. 자유당, 공명당과의 연립을 통해 정권을 겨우 유지했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郵政·우체국) 선거’는 예외다. 우정 민영화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개혁 표방에 유권자들은 열광했다. 자민당은 296석을 획득했다. 언론들은 ‘진통제 효과’로 평가했다. 실제 고이즈미 총리의 재임 5년 5개월 동안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 심화, 농촌의 피폐화 등 개혁의 피로증에 민심 이반은 심화됐다. 세습 정치인의 전형인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중도 퇴진, 아소 다로 총리의 좌충우돌 행동과 발언은 자민당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한층 키웠다. ●16선 가이후 전총리도 첫 고배 반자민당 정서는 정치 원로와 중진들에게도 직격탄이었다. 16선의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는 정치인생 49년 만에 처음 고배를 마셨다. 자민당내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야마자키 다쿠 전 부총재, 아소 총리의 친구인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9선의 요사노 가오루 재무상 등도 힘을 쓰지 못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사설] 日 54년만의 정권교체 새 한·일관계 열기를

    일본은 변화를 선택했다. 어제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했고, 자민당은 몰락했다. 10개월가량 정권이 교체된 적은 있지만 자민당은 제1당 지위를 굳건히 유지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54년만의 명실상부한 정권교체다. 총선 결과는 늙은 일본을 개조해 일본을 새롭게 디자인하라는 일본 국민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신 일본을 내건 민주당 집권은 일본 국내 정치뿐 아니라 대외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에도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몰아칠 것으로 본다.자민당 몰락엔 금권정치와 관료주의 등에 대한 일본 국민의 염증이 녹아 있다. 민주당은 보수·우파인 자민당의 묵은 때를 벗기는 개혁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첫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상징에 맞는 대대적 개혁 바람이 일본 곳곳에 몰아칠 전망이다. 개혁의 출발점은 관료가 주도한 자민당의 관료내각제 탈피와 사회보장제도의 대수술이 될 것이다.우리는 특히 일본의 대외정책 변화에 주목한다. 자민당 정권은 틈만 나면 북한 핵문제를 빌미로 핵무장론을 꺼냈고, 역사교과서와 독도 문제 왜곡을 일삼았다. 민주당은 군사력 증강을 비롯한 우경화에 반대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대화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천명해놓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고 자민당 정권보다 유연한 과거사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과거 같은 한·일 간 역사 갈등은 줄어들 소지가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민주당은 대미 발언권을 높여 대등한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한다.민주당 집권은 한·일 관계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역사 교과서와 독도 문제 등 과거사에 치우쳤던 한·일 관계를 이참에 미래지향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한·일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외교적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동경한국학교 증축 기공식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동경한국학교가 한국 정부의 지원과 교민 모금으로 증축공사를 들어갔다.동경한국학교는 24일 오전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와 교직원, 학부모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가졌다.증축은 현재 학교의 운동장 일부에 지상 4층, 지하 1층, 연면적 2975㎡의 건물을 짓는 공사다. 총공사비는 6억 7000만엔(87억원)이다. 공사비의 절반은 정부의 지원, 나머지 절반은 교민들의 모금으로 충당된다. 현재 교민들은 2억 4800만엔을 모았으며, 약정을 받은 액수도 8800만엔에 이른다.공사가 내년 봄까지 끝나면 초등학교 전 학년을 3개 학급씩으로 편성, 교실 부족에 따른 대기 학생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현재 1~3학년까지만 3개 학급씩을 두고 있다. 전체 학생수는 초등부 590명, 중등부 253명, 고등부 257명 등 1100명이다. 이들 가운데 주재원 등 체류자의 자녀들이 73.7%인 811명이다. 학교는 지난 1954년 26명의 학생으로 문을 연 뒤 지금껏 81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쓰러지는 병사/김성호 논설위원

    대한민국 최고의 수의학자요 생명공학자로 우뚝 섰다가 급전직하한 황우석 박사. 최초로 인간 체세포핵을 난자에 주입해 세포분화를 이끌어 내며, 불세출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물. 그를 추종불허의 인기인에서 반윤리적 과학자로 끌어내린 건 조작의 탄로였다. 진실과 진리의 바른 추적이 아닌 왜곡, 은폐의 병든 양심을 철저히 응징당한 것이다. 황우석 허위논문 사건 이후 수년 간 조작과 허위의 사슬이 줄줄이 드러났다. 신정아 학력조작이 불거지더니 인기 연예인, 교수, 정치인, 목사, 심지어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강남 모 선원의 주지까지. 자고 나면 터지는 허위와 조작의 연쇄 탄로에 많은 이들은 ‘속았다’는 억울함보다는 세상에 만연한 기만에 더 허탈해했을 것이다. ‘사진 저널리즘의 전설’로 영웅시되는 헝가리 출신 종군사진가 로버트 카파(1913∼1954년)의 대표작이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1936년부터 3년간에 걸쳐 스페인을 초토화시킨 스페인내전의 한 전투에서 총탄을 맞고 죽어간 병사의 모습을 담은 ‘쓰러지는 병사’. 스페인의 한 대학교수가 사진속 배경과 병사의 모습이 조작 연출된 허위임을 주장했다는데. 논란을 따라 사진속 현장을 추적한 취재진과 역사학자들이 교수의 손을 들어줬단다. 스페인 내전의 아픔과 긴박한 전투현장을 단 한장의 흑백사진으로 담아낸 ‘쓰러지는 병사’. 이 사진으로 명성을 얻은 로버트 카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거쳐 베트남 인도차이나전쟁 종군 중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사진기를 놓지 않았다는 그의 정신을 후대는 ‘카파주의’로까지 칭송했는데. 사후 55년만에 밝혀진 진실앞에 카파는 무슨 말을 할까. 청문회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허위와 조작으로 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라지는 우리의 유명인사들. 어디 고위직 후보자 청문회의 일그러진 인사뿐이랴. 제자의 논문까지 훔치는 표절 교수며, 외국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을 버젓이 베껴 시청자를 우롱하고도 할 말 다 하는 방송 제작진…. 이제 ‘카파주의’의 정의를 한번 바꿔봄은 성급한 것일까. ‘진실은 하나뿐이고 언젠가는 밝혀진다.’고.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월드이슈] 자민당 지지율 민주당 절반… 54년만에 정권교체 힘받아

    [월드이슈] 자민당 지지율 민주당 절반… 54년만에 정권교체 힘받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제45회 중의원선거가 18일 공시됐다. 오는 30일 결전의 날을 재확인시켜 주는 신호다. 이에 따라 12일간의 공식 선거전은 한층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선거의 최대 쟁점은 정권 선택이다. ‘책임’을 내세운 자민당이 ‘55년 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변혁’의 기치를 든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룰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로선 민주당의 지지율이 자민당을 큰 차로 앞섬에 따라 정권교체를 통한 ‘일본의 지각변동’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출마 후보는 자민당 326명, 민주당 330명, 공명당 51명, 공산당 171명, 사민당 37명, 국민신당 18명 등을 포함, 137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소 다로 총리는 17일 열린 6개 정당 대표토론에서 “자민당에는 일관성이 있는 공약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관료 정치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정권 교체의 의지를 불태웠다. 아소 총리와 하토야마 대표의 정권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민주당, 단독 과반수 획득나서 선거의 귀재로 불리는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는 16일 이와테현 유세에서 “어떻게 해서든 과반수를 차지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의 목표는 총의석 480석 가운데 과반수인 241석이다. 정계개편을 주도, 안정적인 집권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의석수다. 지난달 21일 중의원 해산 때 민주당의 의석은 112석이었다. 129석을 더 얻어야 한다. 현재의 흐름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크다. 아사히신문이 18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투표할 정당으로 비례대표는 민주당 40%, 자민당 21%로 절반 가까이 차이가 벌어졌다. 도쿄신문의 조사에서는 소선거구에서 민주당 35.8%, 자민당 18.7%로 민주당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잡지 주간포스트는 민주당 267석, 자민당 153석으로 예측했다. 반면 자민당은 방어가 최선인 상황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최근 “가끔은 야당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자민당의 미래를 거론할 정도다. 기존의 의석 303석은 포기했다. 대신 과반수의 획득에 매달리고 있다. 정계개편의 여력을 갖기 위해서다. 물론 민주당과 자민당 모두 과반수를 얻지 못하거나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정권이 선전해 과반수를 차지하는 경우 등 변수는 적지 않지만 정치권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하다. ●신예 女후보·킹메이커 대결 민주당은 자민당의 거물 정치인을 겨냥, 기자·아나운서·NGO대표·교수 등의 여성 후보들을 내세웠다. 2005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썼던 ‘자객 공천’이다. 오자와 전 대표의 작품이다. 자민당의 거물들이 바짝 긴장했다. 정계의 ‘킹메이커’이자 자민당 최대파벌의 실질적인 보스인 모리 요시로(72·13선) 전 총리도 심기가 편치 않다. 지역구에 뿌리도 없는 중의원 비서 출신의 새내기인 다나카 미에코(33)가 뛰고 있어서다. 후쿠다 야스오(73·6선) 전 총리는 후지TV 기자 출신의 미야케 유키코(44)에, 아베 정권 때 관방장관을 지낸 시오자키 야스히사(58·5선) 의원은 지방방송의 아나운서 출신인 나가에 다카코(49)에 맞서는 형국이다. “원폭 투하, 어쩔 수 없었다.”라고 발언했다가 경질된 규마 후미오 전 방위상은 간염 치료제 피해소송의 원고 측 대표를 맡아 승소, 유명해진 후쿠다 에리코(28)를 대항마로 만났다. 우정개혁선거 때 ‘자객’으로 등장한 고이케 유리코(57·5선) 전 방위상은 에바타 다카코(49) 전 도쿄대 특임교수를 ‘역자객’으로 만났다. 다니가키 사다카즈(59·9선) 전 재무상은 오하라 마이(35) 전 환경단체 대표, 고가 마코토( 69·9선) 선거대책본부장 대리는 한때 자신의 비서였던 노다 구니요시(51) 후쿠오카 야메시 시장과 한판 승부를 겨룬다. 오타 아키히로(63·5선) 공명당 대표는 아오키 아이(43) 참의원이 맡았다. 민주당의 ‘자객’들이 목적을 달성하면 정치권의 물갈이도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세습후보 선거당락 불투명 지역(선거구)·간판(지명도)·가방(자금) 등 이른바 ‘3대 요소’를 물려받은 세습 출신 후보들의 당락이 불투명하다. 전에는 ‘세습=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자민당의 중의원 303명 가운데 35.3%인 107명이 세습 출신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이 냉랭하다. 자민당의 입후보 가운데 101명, 민주당은 21명가량이 세습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차남 신지로(28)가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은 세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탓에 세습·비세습의 대결구도마저 낳고 있다. 4년 전 고이즈미 총리의 발탁으로 정치에 입문한 소위 ‘고이즈미 칠드런(아이들)’, 지역구 36명과 비례대표 47명 등 83명의 향방도 가늠하기 힘들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힘이 빠진 탓에 지원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더욱이 자민당 내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다. 시미즈 세이치로(57)를 비롯, 줄줄이 자민당을 탈당해 신생당을 찾거나 출마를 포기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살아남을 고이즈미 칠드런은 10명 안팎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hkpark@seoul.co.kr ■용어클릭 ●중의원 선거 4년 임기의 중의원은 480명이다. 1명을 뽑는 소선구제에서 300명, 11개 권역에서 비례대표제로 180명을 선출한다. 한국과 달리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에 중복 입후보할 수 있다. 때문에 소선거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로 ’부활 당선’이 가능하다. 헌법에서 예산안의 의결, 조약의 승인, 총리 지명에서 참의원보다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 내각 신임 및 불신임 결의권을 갖는다. 반면 중의원은 참의원과 달리 내각에 의해 임기 중 해산될 수 있다. 중의원 선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껏 21차례 치러졌으나 임기 만료에 따른 선거는 1976년 12월 미키 다케오 내각 때가 유일하다.
  • ‘파리대왕’ 골딩 15세소녀 겁탈하려 했다

    소설 ‘파리대왕’(1954년 출간)으로 유명한 작가 윌리엄 골딩(1911~1993년)이 15세 소녀를 겁탈하려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선데이 타임스에 따르면 문학비평가이자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영문학)인 존 카레이는 최근 골딩의 자료 보관실에서 미공개 자서전 2편과 소설 등을 찾아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미공개 자서전 중 하나인 ‘남성,여성 그리고 지금(Men,Women&Now)’에서 골딩은 옥스퍼드대에 재학 중이던 18세 때 15세 소녀 도라를 겁탈하려 했던 과거를 고백했다.이 책은 그가 부인에게 자신의 ‘악마적 성격’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쓴 책이다.  자서전에 따르면 골딩은 16세에 잉글랜드 윌트셔주 말버러에서 음악수업을 듣던 중 당시 13세인 도라라는 소녀를 만났다.2년 후 도라를 다시 만난 골딩은 그녀를 겁탈하려고 한다.골딩은 자서전에서 “산책을 하던 도중 도라가 격렬하게 사랑하고 싶어하는 줄 알고 관계를 가지려 했다.”면서 “하지만 그녀가 강력하게 저항해 실패했다.”고 밝혔다.  골딩의 고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2년 후 다시 만난 그들은 결국 성관계를 맺는다.골딩은 도라가 교사였던 골딩의 아버지에게 이 장면을 훔쳐보게 했다고 고백했다.또 현장에는 골딩의 형인 조셉도 여자 친구과 성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카레이 교수는 이를 ‘도라의 복수’라고 설명했다.도라는 골딩의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결코 모범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카레이 교수는 골딩이 비망록에서 도라에 대해 ‘타고난 타락’이라든지, 13세 때 이미 ‘(성적으로)불타오르기 시작했다’라든지,14세 때 ‘이미 섹시한 영장류’ 등으로 적고 있지만 도라와 관계를 맺은 것을 부끄러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내면에 잠재한 야만성을 의식하고 있던 골딩은 스스로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나치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도라는 골딩의 이같은 자의식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골딩이 자서전을 통해 고백한 사실들은 1983년 자신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파리대왕’의 주제인 인간의 잔인한 본성과 흡사하다고 설명했다.자서전에 따르면 골딩은 도라를 강간하려 했을 뿐 아니라,교사로 일할 당시 수학여행 장소에서 자신이 인솔하던 학생들을 두 패로 나눠 싸움을 붙인 뒤 이를 관찰했다.  골딩의 대표작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불시착한 10대 청소년들이 ‘지성’과 ‘야만’으로 편으로 갈라 대립하는 상황을 그렸다. ‘파리대왕’은 여러 출판사에서 수차례 거절을 당한 끝에 어렵게 출판된 것으로 이번 자서전에서 밝혀졌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추자도 8·15 축구대회 아시나요

    바다낚시 최고 명소인 추자도. 제주도에서도 쾌속정으로 1시간쯤 가야 나오는 ‘섬속의 섬’이다.이런 추자도에서 1956년 이후 54년째 주민축구대회가 8·15 광복절이면 어김없이 열린다. 추자도 출향인들이 설이나 추석 명절에는 고향에 가지 못해도 8·15 주민축구대회에는 반드시 참석하는 전통이 있다. 인구 3000여명인 추자도의 가장 오래된 행사다.올해도 역시 계속된다. 15일 추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대회 결승전이 벌어진다. 주민들의 열기는 유럽리그 못지않게 뜨겁다. 이번 대회에는 추자초등학교와 신양분교(옛 신양초등학교), 추자중학교 등 각 학교 동창생들로 구성된 15개팀이 출전, 14일부터 이틀간 토너먼트 방식으로 열전을 치른다. 제일 어린 팀의 평균 나이는 20세이고, 최고령 팀은 44세이다.올해 축구대회를 준비한 김문봉(36) 전 연합청년회장은 ”다른 지방으로 나가 있던 젊은이들은 8·15축구대회 때만 되면 집안의 경조사까지 거짓으로 만들어가며 고향을 찾아온다.”고 말했다.추자도 축구대회는 1956년 홍순일(72)씨를 비롯한 추자초등학교 26회 졸업생 70여명이 광복을 기념하고, 주민 화합을 위해 마을대항 축구대회를 열기로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그해 8월15일 추자초등학교에서 광복절 행사를 겸한 1회 대회가 열렸다. 팀이 많을 때는 19개팀에 이르렀다.한편 14∼16일 추자도에서는 ‘제2회 추자도 참굴비 대축제’가 열려 굴비 무료시식회·굴비엮기·굴비요리 경연·선상낚시 체험 등의 행사도 열린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소토마요르는…

    소아 당뇨에 걸려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던 소녀는 50년 뒤 미국 대법관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완성했다. 1954년 뉴욕 브롱크스의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노동자인 아버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났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공장 노동자로 근근이 일하던 아버지가 9살 때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특유의 교육열로 자녀들을 미국 유수의 명문대에 보내는 저력을 발휘한다. 1972년 장학금을 받고 프린스턴대에 입성,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예일대 로스쿨에서는 학회지 편집장을 맡았다. 이후 뉴욕지방 검찰청과 로펌을 거쳐 1991년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연방지방법원 판사로 지명됐다. 성향은 진보로 구분된다. 일부 판결에서는 인종적 편견을 보였다는 이유로 공화당의 거센 공세를 받아왔다. 특히 이번 청문회에서는 2001년 UC버클리대 강연에서 “현명한 라틴계 여성이 백인 남성보다 더 훌륭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해 비난을 받았다. 그는 “단어 선택이 부적절했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76년 결혼했으나 1983년 이혼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필리핀 민주화의 주역 아키노 前대통령 타계

    필리핀의 20년에 걸친 군부독재를 마감시켰던 ‘피플파워’의 주역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이 1일 암투병 끝에 타계했다. 76세.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 상원의원은 “어머니가 이날 오전 3시18분(현지시간)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결장암으로 16개월간 투병해 왔다. 미국을 방문중인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10일간의 공식애도 기간을 갖도록 지시했다. 부유한 정치가문에서 태어난 아키노 전 대통령은 뉴욕 마운트 세인트 빈센트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이어 1954년 당시 전도유망한 정치인 베니그노 아키노와 결혼, 남편의 사망 이전까지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하지만 필리핀의 정치가 그녀의 인생을 180도로 바꿨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고 1972년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 지도자였던 남편 베그니노 전 상원의원이 투옥,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98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3년 뒤 귀국하던 베그니노는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던 중 피격, 사망했다. 마르코스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절정에 이르던 와중에 치러진 1986년 2월의 대선은 부정으로 얼룩졌다. 이때 시민들의 거센 봉기로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가 결국 하와이로 도피하면서 평범한 주부였던 아키노 여사가 대통령직에 올랐다. 나약한 미망인에서 강한 의지를 가진 ‘철의 여인’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바꾼 아키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순탄치 않았다. 군부의 도움을 받아 집권했지만 재임기간 동안 7번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농지개혁은 오히려 빈부의 격차를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공산당 반군과의 대화는 군부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시키는 등 헌법을 개정,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지기도 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초 미국 하버드대에 체류할 때 아키노 전 대통령의 남편과 교분을 가졌다. 이때 인연으로 아키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식 때도 참석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모닝 브리핑] 몽양 딸 려원구 北 조국전선 의장 사망

    몽양 여운형 선생의 딸인 려원구(81)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이 사망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1일 전했다. 려 의장은 1928년 11월 서울 종로구에서 여운형 선생의 셋째 딸로 태어나 1946년부터 8년간 모스크바에서 유학을 한 뒤 1954년부터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세 차례 피선됐으며 1998년 9월부터 9년반 동안 우리의 국회 부의장격인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으로 활동했다.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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