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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30 지방직 7급 난이도 상승 대비하라

    D-30 지방직 7급 난이도 상승 대비하라

    올해 마지막 공무원 시험인 지방직 7급 공채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10월9일 서울, 인천, 울산, 제주를 제외한 전국 12개 시·도에서 치러지는 이번 시험에는 모두 2만 2774명이 원서를 냈다. 하지만 선발인원이 가장 많은 경기도도 24명만 뽑는 등 각 지역별로 10명 안팎의 채용규모를 보이고 있어 수험생들은 또 한 번 높은 경쟁률을 이겨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가 일괄 출제하는 시험인 만큼 국가직 7급 방식에 맞춰 공부를 진행하되, 올해 국가직 7급 난이도가 유난히 낮았다는 사실을 고려, 갑작스러운 난이도 상승에 반드시 대비를 해야 한다. 서울신문은 에듀스파와 함께 이번 지방직 7급 시험 대비전략을 구성해 봤다. 지난 7월24일 실시된 국가직 7급 시험은 수험생 가채점 결과 지난해에 비해 일반행정직 합격선이 18~19점 오를 것으로 예측될 만큼 쉽게 출제됐다. 국가·지방직 7·9급은 1~2달 간격으로 진행되고 모두 행안부 수탁 출제 문제를 이용해 치러진다. 때문에 특정 시험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았다면 다음 시험은 이를 고려한 ‘난이도 조절’이 중시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 휴전과정 등 정리 잘하길 유두선 남부행정고시학원 국어 강사는 “국가직 7급이 변별력을 상실한 만큼 올해 지방직 7급은 어렵게 출제될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독해를 바탕으로 시간 단축연습을 꾸준히 하고 문법에서는 어법, 표준발음, 로마자·외래어 표기, 맞춤법 등을 최종 정리해 두어야 한다. 영어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지난해 기출문제의 유형과 그동안 스스로 정리해 둔 부분을 재점검하는 것이 좋다. 김채환 영어 강사는 “특히 문법은 짧은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부분이다.”면서 “매일 3~5개 정도의 독해지문 연습과 병행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사는 최근 7·9급 등 관련 시험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따라서 기존 7급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수능 등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접할 필요가 있다. 선우빈 강사는 “특히 한국전쟁발발 60년이 되는 해인 점을 염두에 두고 휴전과정과 1954년 제네바 회담내용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달 15일 공개된 광화문과 관련, 경복궁의 역사와 건물의 특징들도 출제 가능성이 높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행안부 수탁 출제로 인해 지방직 시험의 특색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수험생 입장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김유환 행정법 강사는 “법령과 판례에서 기본서 구석에 있는 지엽적인 부분들이 많이 출제되는 등 지방직의 전형적인 출제경향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빈출 법률인 행정절차법,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 정보공개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올해 전면 개정된 행정심판법의 조문들은 여러 번 반복해 정리해야 한다. ●경제학 선택과목화 영향 작을 듯 방성은 행정학 강사는 “지방직 특유의 지방행정 관련 문제들에 더해 최근 출제가 잦아지고 있는 조직론의 정보화부분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은 올해부터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다. 박지훈 경제학 강사는 “기존에는 미시경제학 40%, 거시 및 국제경제학 40%, 계산문제 20%의 비중을 보였다.”면서 “선택과목으로 변경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고보험료 계산, 게임이론의 내쉬균형 등이 빈출주제로 꼽힌다. 헌법은 최근 판례비중이 늘고 이론 부분 난이도는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론은 기출문제를 활용해 점검하고, 판례는 논리구조를 명확히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 국회직, 법무사, 법원행정고시, 법원서기보시험의 기출문제를 풀고 간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황남기 헌법 강사는 “헌법조항 중 특히 통치구조 조항을 반복해서 암기해야 한다.”면서 “특히 국회법, 지방자치법은 출제빈도가 높으니 재차 점검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연·남상헌기자 oscal@seoul.co.kr
  • [관가 후속인사 술렁] “벌써 우리?”… 1953~54년생 ‘속앓이’

    [관가 후속인사 술렁] “벌써 우리?”… 1953~54년생 ‘속앓이’

    ‘8·8개각’과 후속 차관인사가 완료된 뒤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50대 중후반 공무원들이다. 개각 후 그동안의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것이 각 부처의 과제로 남은 가운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명예퇴직 활용이기 때문이다. ●통상 정년 3~4년전 ‘당면’ 대상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경우에 따라 후배 공무원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의미로 명퇴를 받아들이는가 하면, “아직 할 일과 힘이 남았는데 나가기를 종용하는 듯하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올해 정부 부처의 명퇴 연령은 1953~1954년생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정년인 60세를 3~4년 앞둔 나이다.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한 과장급 공무원은 “명예퇴직은 온전히 자신의 의사에 따라 진행하는 것인 만큼 퇴직을 원치 않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면서도 “공무원이 자신의 필요만 앞세워 인사에 숨통을 트려는 조직의 생리를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기본급 50%X0.82X남은 기간 공무원 명예퇴직 수당 지급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명퇴 대상자는 총 재직 기간 20년 이상에 희망일로부터 정년까지 1년 이상 남은 사람이다. 명퇴 신청자에게는 기본급 50%에 0.82와 남은 기간을 곱한 액수만큼의 명퇴 수당이 지급된다. 예를 들어 잔여 정년이 2년이고 본봉이 300만원이면 명퇴금은 2952만원(150만원×0.82×24개월)을 받는 식이다. ●행안부 “연령만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명예퇴직은 의원면직제도라 연령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퇴직수당으로 창업을 하는 등 새로운 삶을 열어 가려는 공무원들이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상 정부부처에서는 인사적체 해소와 능률제고를 위해 정년 잔여기간이 3~4년인 이들을 대상으로 명퇴 신청을 받는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인사수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명예퇴직 사례가 있을 수는 있지만 단순히 연령만으로 이를 강제한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라고 밝혔다. 남상헌기자 kize@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29)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고전 톡톡 다시 읽기] (29)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어느 날 한 무리의 아이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그들이 타고 온 비행기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아이들을 지켜 줄 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제 구조를 받을 때까지 제 힘으로 버텨야만 한다. 끔찍한 일이다. 더 끔찍한 사실은, 아이들이 아직 자신들의 처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능력은 누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기 마련인가보다. 어른이 없다는 사실에 은근히 기뻐하며 자유를 만끽하던 아이도, 불시착과 무인도, 구조라는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수영과 나무열매 따먹기를 즐기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뭔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마침내는 살아남기 위해 해야할 일들을 아이들 스스로 해내기 시작한다. 구조를 위한 봉화를 올리고, 사냥을 위해 사냥부대를 꾸린다. 이런 일들을 도모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설프긴 해도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다수결이라는 민주적 절차로 대표를 선출하고, 친구의 안경을 돋보기로 삼아 봉화의 불을 붙이는 과학적 재기를 발휘하기도 한다. 처음엔 실패를 거듭했던 사냥도 경험을 통해 점점 익숙해진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뿐이다. 그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기 자신의 힘만으론 구조 받을 수 없다. 구조란 나의 한계 너머에 있는 힘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니까. 아이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뱀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처음 그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린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꿈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 비웃음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비웃음이야말로 헛된 꿈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아이들은 말문을 닫는다. 모두들 뱀을 보았다는 아이의 말로 인해 자기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구조를 받지 못한 채 이 무인도에서 영원히 살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 아이들이 봉화와 사냥을 시작하고, 또 그것에 집착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이들의 힘겨운 싸움은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는 어처구니없는 전쟁으로 돌변한다. 봉화를 지키고자 하는 아이들은 지금 즉시 구조받기를 원한다. 사냥을 원하는 아이들은 지금 당장 고기를 먹어야만 구조를 받을 때까지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아이들에게 합의란 없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려 해도 두 가지 선택 모두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화를 지키려는 아이들은 얼핏 무력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언제 바다를 지나갈지 모를 구조선에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해선 한시도 봉화 곁을 떠나선 안 되는 것이다. 반면 사냥을 원하는 아이들은 폭력에 매혹 당해버린 야만인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망각하고 있진 않다. 이들의 입장에선 언제가 될지 모를 구조를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이다. 사냥하는 아이들은 손 놓고 구조를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당장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둘의 싸움은 지극히 당연하고 또 지독히 참혹하다. 아이들의 전쟁은 당연한 수순이다. 불안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 궁리해낸 대안을 누군가 반대한다는 건 완벽해 보였던 자신의 방법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불안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해일처럼 닥쳐오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선 자기를 반대하는 적을 설득시키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적을 전멸시키는 수밖에. ●1954년 발표… 약 30년 뒤 노벨문학상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이 1954년 쓴 장편소설 ‘파리대왕’이다.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인 ‘파리대왕’은 그에게 1983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파리대왕’이라는 소설 제목은 히브리어의 ‘베엘제버브’를 번역한 것이다. 곤충의 왕이라고 직역할 수도 있는 이 단어는 암시적으로 악마를 상징한다. 제목 그대로 소설 속 무인도에 던져진 아이들은 악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파리대왕’의 결말은 아이들이 자신의 적을 전멸시키기 전에 영국 군인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 결말을 해피앤딩으로 읽는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제 무인도에 갇혀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되고, 그토록 원하던 어른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찜찜하다. 무인도라는 곳은 그 바깥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바깥의 세계에는 탈출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윌리엄 골딩의 말마따나 아이들은 어른들이 구해줬을지 몰라도, 그 어른들은 과연 누가 구해줄 수 있단 말인가. 이제 탈출할 곳이 전혀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서로의 의견이 충돌되어 서로를 죽이는 싸움이 벌어진다면, 과연 그들에게 구원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간절히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에게 구원은 어디에나 있다. 아이들의 무인도 생활 중에도 구원은 도적처럼 분명히 찾아왔었다. 처음 만난 소년들과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될 때, 무인도의 곳곳을 탐험하며 까닭도 모르는 채 희열에 잠겼을 때, 그리고 봉화를 올리기 위해 큰 나무를 함께 나를 때. 하긴, 구원이라 하기에 이 사건들은 너무나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사건인들 어떠한가. 구원이 나의 한계 너머에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라면, 그 구원의 힘은 바로 ‘나’의 바깥에 있는 ‘너’에게 속해 있을 것이다. 너와 함께일 때 구원은 매 순간 나를 찾아올 것이고, 내 앞의 너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구원이 아무리 사사롭다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종영 영상글밭 사하 연구원
  • 부처 1급 실장 ‘인사태풍’ 예고

    부처 1급 실장 ‘인사태풍’ 예고

    사상 최대 규모의 차관 인사로 공직사회에 인사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조만간 단행될 실장급(1급) 인사에서 행정고시 25~27회 출신이 전면에 배치되는 등 세대교체 바람도 예상된다. 15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8·13 차관 인사’ 후속으로 이어질 고위직 인사를 놓고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주 이뤄진 차관 인사에서 행시 23~24회가 포진하면서 부처마다 세대교체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행시 기수로는 25~27회가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 행정 중추로 부상하고, 1954년 이전 출생자들은 퇴진압박을 받고 있다. 다만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있어 인사는 연말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질 전망이다. 국토해양부는 제1·2 차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의 내부승진으로 대규모 인사 요인이 발생했다. 그동안 국토부 1급(8명)은 행정고시 23~27회가 차지하고 있었다. 주류는 4명이 포진한 23회였다. 하지만 이번에 23회인 정창수 제1차관, 한만희 행복도시청장과 24회 김희국 제2차관이 기용되면서 27회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게 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행시 기수로는 23~24회, 나이로는 1954년생이 퇴진압박을 받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김남석(23회), 안양호(22회) 차관 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22~25회가 포진하고 있는 실장급 교체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행안부는 다른 부처에 비해 간부급 인사 적체가 심해 세대교체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나이를 기준으로 한 퇴직에 대해선 행안부 관계자는 “현 1급 실장들의 나이가 많지 않아 강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차관 인사 후폭풍으로 행시 25~26회의 1급 진입이 예상된다. 류성걸 예산실장이 제2차관으로 내부 승진해 공석인 자리에 25~26회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재정부 1급은 행시 23~24회가 주축이다. 부처종합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부고] 한국 고고학 선구자 윤무병 학술원 회원 별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자 한국 고고학의 선구자인 윤무병 전 충남대 교수가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5년 만주 신경법정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부터 국립박물관 보급과장, 고고과장, 학예관 등을 역임했다. 1974~1989년에는 충남대 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81~1995년에는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박물관에서 근무할 당시 전국의 고인돌과 선사시대 주거지, 경남 해안 일대 패총 발굴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고인돌에 대해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발굴조사를 처음 실시해 고인돌 연구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을 받는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은관문화훈장, 3·1 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감은사’ ‘한국지석묘연구’ ‘한국청동기문화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최순(81)씨와 아들 기련(에프앤유신용정보 이사), 딸 나호·선희, 사위 김동국(한양대 화학과 교수), 임현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7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남 천안공원묘원이다. (02)2258-5951.
  • 이상용 고백 “9kg 체중감량 성공은 번데기”

    이상용 고백 “9kg 체중감량 성공은 번데기”

    ‘뽀빠이’ 이상용(67)이 9kg 감량 비법을 고백했다. 이상용은 2일 방송된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300회 특집에 출연해 “매일 2시간씩 운동한다”며 “번데기를 먹고 한 달만에 9kg를 감량했다”고 말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상용은 “번데기를 아침에 한 사발을 먹으면 배가 안 고프다”며 “54년째 5km 마라톤과 60kg 역기 800개를 하고 있다”고 말해 출연진을 놀라게 했다. 이어 “매달 70권의 책을 읽는다. 내용을 적어놓고 하루 17~18개의 레퍼토리를 남긴 뒤 다 본 책은 태운다. 자다 깨어나도 10시간은 말할 수 있다”고 말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사진 =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방송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부고] 한국문학 세계에 알린 수필가 전숙희씨 별세

    [부고] 한국문학 세계에 알린 수필가 전숙희씨 별세

    국제펜클럽 종신 부회장이자 학교법인 계원학원 이사장을 지낸 원로 수필가 벽강(璧江) 전숙희(田淑禧)씨가 1일 오전 8시 경기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이화여자 전문학교 재학 시절이던 1938년 단편소설 ‘시골로 가는 노파’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54년 첫 수필집 ‘탕자의 변’을 발간하는 등 여러 수필집과 문학집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었다. 2007년 자전 에세이 ‘가족과 문우 속에서 나의 삶은 따뜻했네’를 출간하며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1970년 동서문학(옛 동서문화)을 창간하고 1997년 한국 문학 유산 보존을 목적으로 국내 최초의 현대문학 자료관인 한국현대문학관(옛 동서문학관)을 설립해 국내 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83~199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지낸 고인은 우리 문학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1988년 동서 진영 작가들을 서울로 초청해 국제펜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국제펜클럽 종신 부회장으로 선임됐으며, 대한민국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독 문화교류회 이사, 한·러 친선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고인은 1997년 독일 괴테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한·러 수교 10주년이던 2000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푸시킨 문화훈장을 받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교육사업에도 힘을 쏟았던 고인은 동생인 고(故) 전락원 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 함께 1979년 계원예술고교, 계원디자인예술대학을 포함한 계원학원을 설립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강영국(재미 사업가)·영진(한국현대문학관 관장)·딸 은엽(미술가)·은영(미술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이며 발인은 5일 오전 8시이다. 영결식은 경기 성남 정자동 계원예고에서 5일 오전 10시부터 문인장으로 진행된다. (02)3010-2230.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찌아찌아어와 광둥어/김성호 논설위원

    시대 구분을 할 때 선사, 역사를 가르는 기준은 문자의 사용 여부다. 문자를 사용하면서 인류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문자와 언어 또한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방언이 많은 나라에선 표준어며 공용어를 세웠고, 커뮤니케이션을 돕기 위한 국제보조어 에스페란토까지 생겨났을 정도이다. 그러나 문명 발달과 함께 발전했던 문자, 언어가 소통과 발달의 장애가 되는 경우도 있다니 아이러니다. 언어와 문자는 개인과 사회의 양식과 문화를 지배한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 제국주의시대 많은 나라들은 점령의 1차적 수단으로 언어의 통제를 썼다. 구한말 열강들이 한반도에 진출하면서 어김없이 들었던 카드도 종교와 언어였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민족말살책으로 썼던 정책도 조선어 교육 폐지와 일본어 상용(常用)이었다.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6500여개. 유네스코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가운데 5900개가 21세기 말 이전 사라질 것이라 한다. 그나마 199개 언어는 사용자가 10명도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언어가 개인, 사회의 양식과 문화를 비춘다고 할 때 언어의 폐기는 문화와 양식의 소멸이다. 그런 ‘언어의 위기’시대에 한글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니 흐뭇한 일이다. 554년 전 “어린 백성을 어엿비 여겨 맹가노니….”라며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의 뜻이 만천하에 통한다니. 인도네시아 정부가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을 공식 승인했단다. 8만여명의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표기문자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알파벳만으론 찌아찌아어의 단어나 문장을 표기할 수 없어 한글을 쓰게 했단다.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이 다른 소수민족으로도 번질 전망이다. 사라져갈 위기의 소수민족 언어를 살려내겠다는 인도네시아의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이 입증된 사례로 반길 일이다. 그런데 그저 좋아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글 승인을 문화침략으로 보며 반발하는 인도네시아인들도 적지 않단다. 때마침 중국 광저우(廣州) 시민들의 광둥어(廣東語) 지키기 시위가 한창이다. 광저우 지역방송에 중국 표준어 푸퉁화(普通話·만다린)를 쓰도록 강요한 중국 정부에 맞서 광둥어와 광둥 문화유산을 지켜내겠다는 집단의 반발이다. 고대 로마가 ‘팍스 로마나’의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데는 점령·지배지의 문화·언어 존중과 보존이 숨어 있다. 한글은 지배의 문자가 아니라 소통의 문자라야 한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8월의 크리스마스… ‘Cool~寒’ 몸짓에 빠지다

    8월의 크리스마스… ‘Cool~寒’ 몸짓에 빠지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생뚱맞게도 크리스마스 무대가 펼쳐진단다. 한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할 기세다. 바로 미국 오리건발레단이 새달 15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치는 ‘호두까기 인형’에서다. 오리건발레단이 한국에서 공연을 갖기는 처음이다. 샌프란시스코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지낸 제임스 칸필드가 1989년 창단한 오리건발레단은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뉴욕시티발레단, 보스턴발레단, 샌프란시스코발레단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발레단으로 꼽힌다. 해마다 5개의 시즌 프로그램을 소화한다. 대표작인 ‘호두까기 인형’은 ‘무용계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조지 발라신 안무 버전이다. 발라신은 호두까기 인형사(史)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 발레의 원조 격인 러시아에서조차 외면받던 이 작품을 세계적으로 대중화시킨 일등공신이다. 1950년대 뉴욕시티발레단에 몸담고 있던 발라신은 발레단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1954년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 위에 올렸고 뜻밖의 선풍적인 인기에 연일 화제가 됐다. 러시아에서는 아마추어 어린이 무용수들이 나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작용했던 반면, 미국에서는 가족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와 맞물리면서 그 인기가 탄력을 받았다. 당시 자녀가 있는 뉴욕의 중산층 가정은 모두 뉴욕시티발레단으로 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인기는 유럽과 아시아로 뻗어나갔고 전 세계 크리스마스 시즌에 항상 공연되는 ‘필수 레퍼토리’ 반열에 올랐다. 오리건발레단의 수장인 크리스토퍼 스토웰도 주목할 만하다. 2003년 예술감독에 취임한 그는 ‘호두까기 인형’을 비롯해 ‘한여름 밤의 꿈’ ‘돈키호테’ 등 발라신의 작품을 주로 선보이며 ‘발라신 스페셜리스트(전문가)’로 거듭났다. 발라신과 스토웰의 찰떡궁합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다. 김선희발레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영재교육원의 무용수들도 함께한다. 2만~12만원. 1544-1681.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과학을 앞선 SF 소설들

    허버트 조지 웰스가 타임머신이라는 황당무계한 소재를 상상했을 때, 사람들은 터무니없다고 치부했다. 하지만 불과 10년 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이 황당한 상상력은 가능성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가 그러하다. 가상공간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1984년 발표된 소설의 배경은 사이버 스페이스이다. 컴퓨터나 인공지능 등 컴퓨터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었던 윌리엄 깁슨은 고물 타자기 한 대로 이 놀라온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소설은 지금 보아도 낯설기만 한 용어로 가득하다. 사람의 두뇌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사이버 스페이스로 들어가는 방식을 창안한 소설은 이후의 사이버펑크라는 SF소설의 하위 장르를 탄생시켰으며 소설뿐 아니라 음악, 영화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쥘 베른의 소설 ‘달세계 여행’에는 미국에서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약 100년 뒤인 1969년 미국의 암스트롱이 달나라 착륙에 성공한다. 쥘 베른의 상상력이 현실이 된 사례는 또 있다. 그의 소설 ‘해저 2만리’는 잠수함을 타고 해저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소설이 발표되었던 1870년에는 아직 잠수함이 발명되기 전이었다. 그로부터 84년 뒤인 1954년 세계 최초로 취항한 미국의 핵잠수함은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잠수함 이름인 노틸러스를 그대로 썼다. 이름뿐 아니라 소설 속 다른 아이디어도 상당부분 수용했다고 밝혔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의 일화도 있다. 영국 공군의 레이더 담당 교육장교로 근무하던 그는 최첨단의 통신 장비를 접하면서 기이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1945년 그는 공군 시절의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무선세계’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통신위성이 발사되었으며,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이 전 세계로 TV중계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소설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이기도 한 것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경북도 학도병 선양비사업 주먹구구

    경북도의 6·25 전쟁 참전 학도 의용군 명예 선양비 건립 사업이 전시성으로 전락할 우려를 낳고 있다. 예산 확보 및 구체적인 계획 수립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도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학도 의용군 출신 학교를 대상으로 명예 선양비 건립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장으로 달려 나갔던 학도 의용군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6·25 전쟁에 대한 교훈과 선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도는 지금까지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 확보나 학도 의용군 출신 학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6·25 당시 도내의 많은 학생들이 안동·다부동·안강·영천·포항 전투에 참전하고, 치안·간호활동에 참가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정도가 고작이다. 도는 또 규모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선양비 건립 사업 예산의 일부를 시·군비로 충당할 계획이지만 정작 시·군과는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따라서 도는 뒤늦게 7월부터 학도의용군 출신 학교를 파악하고 해당 학교로부터 명예 선양비 건립 신청을 받은 뒤 관련 예산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자칫 예산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운 것은 물론 행정 불신 조장마저 우려된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경북 도내 학교 중 전몰 학도 의용군이 생긴 학교는 경주공업중, 경주중, 경주 문화중, 안강중, 안동농림중, 안동중, 안동사범학교, 안동 병산중, 안동 신망중, 안동 경안중, 포항중, 포항 동지중, 포항수산학교, 영일중, 포항수산대학, 의성중, 의성 농업중·공업중, 의성 양명중, 영주 내성중, 풍기중, 영주농업중, 문경중, 금천농림중, 김천중, 문동고등공민교, 경산 자인중, 선산 오상중, 상주 함창중, 상주농잠학교, 성주농업중, 청도 기한중·풍남중, 고령중 등 30여곳이다. 지금까지 이들 학교의 학도 의용군 출신 전사자는 모두 142명으로 확인된 상태다. 도내 학교 관계자들은 “도가 학도 의용군 명예 선양비를 세워 주겠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관련 예산과 구체적인 계획이 없고 학교 등과 사전 협의가 없어 제대로 추진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한편 경주중·고등학교는 1954년 국내 학교로는 최초로 교정 내에 학도 의용군 전몰 추념비를 세운 이후 매년 6·25 때면 동창회 및 학교 관계자,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추념식을 갖고 있다. 6·25 당시 경주중·고교의 학도 의용군은 320명에 달했으며 이 중 48명이 전장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4강 더이상 신화 아냐… 亞 축구의 ★이 되다

    4강 더이상 신화 아냐… 亞 축구의 ★이 되다

    1954년 첫 월드컵 출전 뒤 56년 동안 이어졌던 한국 축구 월드컵 도전사에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새역사를 쓴 남아공월드컵. 8강의 문턱에서 아쉽게 돌아섰지만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한국도, 세계도 놀랐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16강을 넘어 8강, 4강에 도전하기 위한 과제와 희망이 무엇인지 5회에 걸쳐 짚어 본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허정무 감독과 태극전사들은 변방에서 맴돌던 한국 축구를 세계 축구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이는 하루아침에 우연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2002년 ‘4강신화’ 이후 8년 동안 끊임없는 도전과 좌절을 겪으며 쟁취한 성과물이라 더욱 값지다. 2002년 홈에서 벌어진 한·일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써 내려간 한국은 2006년 독일에서 토고에 2-1로 역전승, ‘원정 월드컵 첫 승’이란 소중한 성과를 거뒀다. 또 이 대회 준우승팀인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극적인 동점골로 무승부를 거뒀다. 스위스에 0-2로 패하며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딕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이후 9개월의 짧은 준비기간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리고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유로 2004 챔피언 그리스를 2-0으로 꺾고,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며 당당히 16강에 진출했다. 전술적으로도 세계 축구를 완전히 따라잡았다. 2002년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세계 축구의 대세로 자리잡은 포백 수비를 이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스리백 수비로 본선에 나섰다. 2006년에는 포백과 스리백 시스템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그리고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포백 시스템의 공격적 성향을 완벽히 구현했다. 비록 선수 개인의 실수로 수비에서 약점이 노출되는 모습도 보였지만 전체적 전술 운용 면에서 흠잡을 곳은 많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 4경기를 통해 보여준 공격수들의 적극적인 수비가담, 공·수를 넘나드는 미드필더들의 폭넓은 움직임, 수비수들의 효과적인 공격가담은 ‘한국형 토털사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높은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협력을 통해 공격의 결정력과 수비의 견고함을 높였고, 전·후반 90분 내내 맹렬히 뛸 수 있는 체력까지 과시했다. 아시아 축구의 리더로서 체격과 개인기가 뛰어난 유럽, 남미, 아프리카의 강호들과 싸워 이길 방법을 보여준 것이다.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맞붙었던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의 각 나라 축구협회 등록선수는 각각 35만 9221명, 33만 1811명, 5만 8710명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등록선수는 3만 1127명. 얕은 뿌리로 큰 열매를 맺었다. 이는 국가대표를 향한 선수 개개인의 열망과 팀에 대한 충성심 등 ‘아시아적 가치’로 대변되는 열정과 집중력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축구 전반의 수준향상을 이끄는 원동력임을 새삼 확인시켜 준 것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메릴린 먼로’ 엑스레이 사진, 경매價 5천만원

    ‘메릴린 먼로’ 엑스레이 사진, 경매價 5천만원

    미국의 섹스심벌 고(故) 메릴린 먼로가 지난 1954년 병원에 촬영한 가슴 엑스레이 사진이 4만 5천 달러(한화 약 5천 413만 원)에 낙찰됐다.먼로의 엑스레이 사진은 당초 3천 달러(한화 약 360만 원에 팔릴 전망이었으나 지난 27일 실제 경매에서 예상 경매가를 훨씬 웃도는 가격에 주인을 만나 식지 않는 인기를 입증했다.이 밖에 이날 경매 품목에 포함된 먼로의 물품 중 그녀가 마지막 사진 촬영 당시 앉았던 의자는 3만 5천 달러에 팔렸다.사진 = 메릴린 먼로 회고전(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일부 네티즌 일본 8강 기원

    월드컵이 국민 모두를 단합시키는 거리응원에서 벗어나 ‘외교 용어’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사회학적 관점을 넘어 ‘국제정치적 관계’로 성숙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간 나오토 일본 총리에게 “우루과이에 한국팀이 패했지만 일본은 8강에 진출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다. 앞서 이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월드컵 경기 결과가 화제에 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담 말미에 “한국이 월드컵에서 패한 데 대해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고 언급했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도 “일본이 8강에 올라 아시아축구의 위상을 높이길 바란다”며 “혼자(한국)만의 노력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고 응원했다. 이 대통령의 일본 8강 진출 발언은 특히 관심을 끌었다. ‘아시아 축구의 맹주’ 한국이 비록 8강 진출에 실패했으나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해 8강에 합류하라는 기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본을 응원하는 이 같은 기류는 약하지만 조심스럽게 퍼지고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대통령과 간 일본 총리 간의 직접 대화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에 더욱 긍정적”이라며 “이런 것을 계기 삼아 케케묵은 한·일관계를 한 단계씩 성숙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온라인 게시판을 중심으로 일본의 8강 진출을 기원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무조건 일본을 배척했던 과거와는 달리 일본을 선의의 라이벌이자 아시아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넓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앙숙으로 꼽혀 왔다. 특히 축구 한·일전에서의 라이벌 의식은 극에 달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예선전 당시 이유형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만약 한일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일 수교도 맺기 전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몇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일본의 선전에 관대한 목소리는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가 가진 통합의 에너지를 국제정치 특히 한·일 간의 건설적 관계 형성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로 상대국가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당장 한·일 갈등 해결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화해 무드를 한층 무르익게 할 수 있다는 것.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한·일 관계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감정’이었다.”면서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 아시아 지역민이라는 소속감까지도 느끼면서 일본과 연대 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민족주의, ‘내 나라’라는 작은 틀에 갇혔던 사고가 더 커진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을 라이벌로 여겨 ‘일본이 8강에 진출하면 배가 아플 것 같다’, ‘일본 16강전 상대국인 파라과이가 우루과이보다 못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민영·윤샘이나기자 min@seoul.co.kr
  • 한국전쟁 직후 배경 자전적 소설

    순이 할머니가 말한다. “니, 앞으룬 분이 간나랑 놀지 말어! 그 간나는 빨개이여.” 순이가 연신 묻는다. “할머이, 분이가 나쁘너?” “할머이유, 빨개이가 나쁘너?” 할머니는 답한다. “분이는 어래서 죄가 없어두 그 집 아부지가 빨개이래서 놀문 안 돼.” 그러자 순이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찬다. “아덜이 뭔 죄여! 왜서 못 놀게 해? 뭘 어찌라구 안죽까정 빨개이 타령이너?” 그러니까 전쟁이 막 끝났으니 얼추 1953~54년쯤일 게다. 장소는 휴전선 언저리 강원도 양양 어느 곳일 테고. 순박하고 씩씩한 여섯 살 순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 철이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양양읍내에 옷수선 가게를 열고 살면서 가끔씩 찾아온다. 한국 전쟁의 전화(戰禍)가 채 가시지 않은 이때, 어른들 세상에서 벌어지는 지긋지긋한 공포와 불안은 아이들에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경자의 장편소설 ‘순이’(사계절 펴냄)다. 한국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을 전형화시키기 보다는 강원도 양양 출신 이경자의 어린 시절이 꼬박 투영된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마을 사람들끼리 때로는 쉬쉬하며 반목하고, 때로는 애틋한 예전의 정으로 살고 한다. 순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신기하고, 두렵고, 재미난 것들로 가득하다. 전쟁 이후 급하게 변하는 세상은 찐 감자에 고추장 대신 버터를 발라먹게 하고, 미국을 ‘천당’이라고 여기게 한다. 강원도의 투박하고 구수한 입말-이해가 안되는 단어도 간혹 나온다.-과 때로는 다투고 탐욕을 부리더라도 순박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 나와 티격태격 거리며 사는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살아보지 않은 시절의, 살아보지 않은 지방의 이야기건 만 이처럼 우리 마음 속 고향의 원형은 순박함의 복원, 건강함의 복원으로 매 한 가지다. 왈칵 안아주고 싶은 순이가 소설을 읽는 내내 눈앞에 어른거리며 뛰어다니는듯 하다. 소설 속 순이는 이제 환갑을 훌쩍 넘겼겠다. 이 땅의 모든 순이가 여전히 해맑기를! 98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오늘 한국전쟁 60주년] “수용인민군들, 반대파 토막살해뒤 바다 버려”

    [오늘 한국전쟁 60주년] “수용인민군들, 반대파 토막살해뒤 바다 버려”

    “분뇨통을 들고 나오는 포로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성규(가명)야.’라고 외쳤죠.” 국군 헌병단으로 1949년에 입대, 1954년에 전역한 강옥(80) 일등중사는 휴전이 다가오던 1953년의 어느 날 한양공고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인 성규씨를 자신이 감시하고 있던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만났다. 그는 성규씨와 고교 시절 축구부로 함께 생활했다. 강 중사는 “함께 공을 차며 지냈죠. 참 보고 싶었었는데 안타까운 만남이었죠.” ●축구 시합 준비 중에 전쟁 소식 고교 졸업 후 연락이 닿지 않던 성규씨는 전쟁이 나자 인민군에 붙잡혀 의용군으로 끌려오게 됐다. 친한 친구를 만난 반가움과 함께 포로로 잡혀온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끓어올랐다. 강 중사는 성규씨를 도와줄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와주고 싶었지만… 당시엔 국군이 포로와 친하게 지내면 엄청난 의심을 받거나 고초를 겪게 되니까… 쉽지 않았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성규씨는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석방 때 풀려나 국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고교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1950년 6월25일. 강 중사는 경기도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7사단 헌병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일요일이던 전쟁 발발 당일에 그는 부대원들과 축구시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을 예상하지도 못했고, 믿어지지도 않았다. 북한군은 국군이 방어선을 구축할 겨를도 없이 밀고 내려왔다. ●반공포로 석방 헌병도 당일 아침에 알아 전세는 유엔군의 지원으로 역전됐다.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넘어 북으로 올라갔다. 1951년 중공군이 가세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1·4 후퇴 길에 올랐다. 강 중사는 당시 평양 포로수용소 경비를 담당했다. 밀고 내려오는 인민군과 중공군을 피해 포로들을 데리고 진남포 항구에서 수송선에 올랐다. 그와 포로들은 거제포로수용소로 이동했다. 1950년 11월 만들어진 거제포로수용소에는 10만명 이상의 전쟁포로가 수용됐다. 유엔군이 제네바 협정에 따라 포로를 관리하고 국군 헌병단은 그 외곽 경계를 담당하게 됐다. “유엔군이 제네바협정에 따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했죠. 국군들보다 포로들의 차림새가 더 좋았어요. 배가 부르니까 폭동도 일으키고….” 당시 포로수용소 안은 제네바협정을 준수한 유엔군 덕에 포로들만의 규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부는 나무로 모형 총과 칼을 만들어 제식훈련을 하고, 일부는 국기게양대를 만들어 경례를 하고 군가를 불렀다 특히 인민군들은 포로들 가운데 사상이 불순하다고 판단되면 재판을 거쳐 살해하고 토막내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포로들은 매일 아침 수용소를 나와 거제 앞바다에 분뇨통을 비웠는데 거기에 살해한 포로의 시체를 토막내 함께 버렸어요. 한동안 그렇게 해오다 수상히 여긴 헌병의 검열에 비인간적인 행위가 들통났죠.” 1952년 5월7일 수용소장 F T 도드 준장이 76포로수용소 시찰 중 납치 감금됐다. “포로들이 분뇨통을 비우기 위한 시간에 도드 준장이 시찰을 나왔다가 당했죠.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죠.” 도드 준장이 납치되자 국군과 유엔군은 거제수용소를 탱크로 에워싸고 구출을 시도했다. 도드 준장의 납치 배경에는 유엔군 측이 송환원칙을 어기고 포로들에게 본국 귀환을 포기시키려고 협박과 고문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강 중사는 유엔군이 제네바 협정을 잘 지켜줬다면서 협박과 고문이 있었다는 말에 의문을 달았다. 당시 도드 준장 납치 사건은 4일 후 미국이 협박 등의 행위를 인정하면서 해결됐다. 1953년 6월18일 갑작스럽게 이뤄진 반공포로 석방은 당일 아침에야 알 수 있었단다. 비밀리에 진행된 반공포로 석방은 외곽을 경계하는 헌병단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갑자기 새벽에 포로들이 도주하더라고요. 외곽을 경계하던 우리에겐 전혀 연락 온 바가 없었죠.” 당시 국군은 이들의 석방을 도주로 오해해 사격하기도 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전쟁은 중단됐다. 강 중사는 이듬해 4월까지 근무하고 전역했다. 강 중사의 아들은 현재 공군 중령으로, 며느리는 육군 중령으로 군문(軍門)의 대를 잇고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막판 ‘피말린 20분’ 한국이 웃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태극전사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허정무 감독은 선수들을 껴안았고, 이영표(알 힐랄)는 감격해 눈물을 쏟았다. 23명의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역사’를 만끽했다. 스타디움엔 ‘대~한민국’ 소리가 울려퍼졌고 태극기가 나부꼈다. 한국이 ‘약속의 땅’ 더반에서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새 역사를 썼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이은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던 선배들의 한(恨)은 56년이 지나서야 풀렸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3일 더반의 모저스 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B조 최종전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겼다. 칼루 우체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이정수(가시마), 박주영(AS모나코)의 연속골로 역전했다. 기쁨도 잠시, 후반 24분 야쿠부 아이예그베니에게 페널티킥 골을 헌납해 2-2 무승부가 됐다. 남은 20여분은 정말 길었다. 후반 34분엔 오바페미 마르틴스가 정성룡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었고, 후반 40분엔 교체로 들어간 빅터 오빈나에게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허용했다. 골이나 다름없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하지만, 지면 그대로 탈락이었다.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시간이 정말 안 갔다. 16강이 힘들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고 할 만큼 끝까지 가슴 졸였다. 그래서 더욱 값졌다.최후의 승자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1승1무1패(승점4)로, 같은 시간 그리스를 2-0으로 누르고 3전 전승을 거둔 아르헨티나(승점9)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그리스는 1승2패(승점3), 나이지리아는 1무2패(승점1)로 탈락했다. 이번 대회까지 7회 연속(총 8회) 본선무대를 밟은 한국은 안방의 한·일월드컵을 빼고는 단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은 2002년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물리치고 4강에 진출했지만, 세계 축구팬들은 홈 그라운드 이점이 너무 강했다고 깎아내렸다.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이런 시선은 더욱 강해졌다. 2010년 허정무호가 이런 왜곡된 눈빛을 바로잡았다. 더반 최병규·서울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첫 원정 16강 원동력은

    꿈은 또다시 이뤄졌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첫 본선에 올랐던 한국이 무려 56년 만에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쾌거를 일궈 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일궜던 한국은 이제 당당히 아시아를 넘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한국이 첫 원정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우선 풍부한 경험을 들 수 있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이미 세계와 당당히 맞섰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당시 출전했던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비롯해 이영표(알 힐랄), 김남일(톰 톰크스), 안정환(다롄 스더), 이운재(수원), 차두리(프라이부르크) 등 6명은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이다. 차두리를 제외한 5명은 2006년 독일 대회에도 참가한 경험이 있다. 태극전사 23명 중 해외파가 10명이나 되는 것도 의미가 깊다. 그중 유럽파는 6명이다. 박지성, 박주영(AS 모나코),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 등 유럽파들은 젊은 나이에 세계 무대를 경험하면서 한국 축구의 기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이들의 영향으로 선수들의 기량과 체력이 예전보다 월등해졌음은 물론이다. 박찬하 KBS N 해설위원은 “해외파들의 경험이 원정 16강 진출의 디딤돌이 됐다. 이들은 외국 선수들과 부딪쳐도 주눅 들지 않고,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 해결능력을 키워 왔다.”고 분석했다.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이로 인한 달라진 조직력도 큰 몫을 했다. 이른바 ‘양박쌍용’으로 대변되는 ‘젊은피’들이 선배들의 풍부한 경험과 조화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대표팀의 주축인 박지성과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모두 20대다. 이들은 2002년 선배들이 이뤄낸 ‘4강 신화’의 업적을 보며 꿈을 키워온 당찬 신세대들이다. 특히 주장 박지성은 예전 홍명보, 김남일 등 과거 주장들과 달리 ‘온화한 리더십’으로 대표팀을 결속시켰다.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한 것. 과거 위계질서가 강했던 대표팀 내 분위기는 현재 거의 사라졌다. 서형욱 MBC 해설위원은 “박지성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대표팀 내 신구 조화에 큰 역할을 했다. 박지성의 경력과 기량을 후배들이 잘 알고 있어 선수들이 잘 따라준 것이 한몫했다.”면서 “나이가 어린데도 2002년 주장이었던 홍명보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팀 분위기를 잘 이끌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사설] 월드컵 원정 첫 16강,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제 새벽을 하얗게 지새웠다. 동틀 무렵, 월드컵 태극전사들은 마침내 16강 진출 낭보를 보내왔다. 2002년 서울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지만 원정 첫 16강 진출은 한국 축구사에 또 하나의 큰 발자취를 남기는 쾌거다. 1954년 첫 출전 이래 무려 일곱 차례의 기나긴 원정 도전 끝에 얻어낸 값진 열매이기 때문이다. 8년 전 4강 신화가 행운이 아니라 실력이었음을 입증한 것이기도 해서 더욱 기쁘다. 예선리그에서 만난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는 모두 내로라하는 축구 강국들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주눅들지 않고 사력을 다해 맞섰고 기어이 당초의 목표를 이루었다. 세계무대에서 ‘축구 약소국’의 낙인을 훌훌 털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 속으로 당당하게 진입한 것이다. 이제 내친 김에 더 높은 목표와 더 큰 꿈을 향해 거침없이 진군하길 기대한다. 세계 강호들이 모인 대회에서 경기마다 투혼을 발휘해준 선수들이 대견스럽다.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23명 선수들의 선전이 국민에게 선사한 행복과 위안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태극전사들은 국민을 신나게 했고 하나로 묶어주었다.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주었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지방선거, 세종시·4대강 공방으로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의 마음을 모처럼 달래준 것이다. 국민의 한결같은 성원 역시 태극전사들이 16강에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었을 줄로 믿는다. 아무쪼록 이런 국민적 자부심과 즐거운 분위기가 대화합으로 승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모레 밤 태극전사들은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 8강 진출을 놓고 또 일전을 치른다. 우루과이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6위로 한국(47위)보다 한 수 위다. 국가대표팀은 역대 전적에서 네 차례 맞붙어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하지만 예선전처럼 집중력과 조직력을 십분 살리면 두려운 상대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은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더 보고싶어 한다. 남은 경기에서도 대한 건아의 기개를 마음껏 떨쳐주길 바란다. 태극전사와 함께 꾸는 국민의 꿈은 언제나 즐겁다.
  • 등번호 ‘10번’…펠레가 달면서 축구선수 ‘로망’이 되다

    등번호 ‘10번’…펠레가 달면서 축구선수 ‘로망’이 되다

    박주영·이영표·최용수·고정운·이상윤의 공통점은 뭘까. 너무 어렵다고? 그렇다면 카카(브라질)·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웨인 루니(잉글랜드)·루카스 포돌스키(독일)·세스크 파브레가스(스페인)의 공통점은 어떤가. 그렇다. 이들은 모두 월드컵에서 등번호 10번을 달았거나 달고 있는 선수들이다. 루니는 2007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0번 유니폼을 입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뤼트 판 니스텔루이가 레알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8번이던 루니가 10번을 달게 된 것. 루니는 “위대한 전설들은 10번을 달았다.”며 감격했다. 10번은 그 정도로 축구선수에게 ‘로망’이다. 10번은 각 팀의 ‘에이스’에게만 허락되는 번호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축구황제’ 펠레가 ‘10번=슈퍼스타’의 공식을 만들었다. 펠레는 1958년 스웨덴월드컵부터 1970년 멕시코대회까지 브라질의 세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통산 개인득점이 1281골에 이르는 전설적인 활약이 10번의 권위를 창조했다. 펠레의 은퇴 뒤 10번은 에이스의 대명사가 됐다. 지코,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카카가 차례로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의 10번을 물려받았다.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로타어 마테우스(독일), 지네딘 지단(프랑스), 델 피에로(이탈리아) 등 ‘전설’들도 10번의 영광을 입었다. 10번은 팀원들의 무한 신뢰를 받는 존재다. 우리가 뒤지고 있더라도 해결해 줄 거라는 굳은 믿음을 짊어진 자리다. 빛나는 카리스마와 뛰어난 경기력, 정확한 골 결정력, 인기까지 골고루 갖춰야 달 수 있는 번호다. 그라운드 내의 사령탑이며 득점원인 셈. 한국에선 박주영(AS모나코)이 10번의 주인공이다. 2005년 본프레레호에서 처음 10번을 달더니, AS모나코로 이적할 때도 10번을 받아서 화제가 됐었다. A매치 43경기에서 14골. 박주영은 4년 전 독일월드컵에서도 10번을 달았다. 그러나 쓰라린 기억뿐이다. 골맛을 보지 못하고 벤치만 달궜다.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 유일하게 출전했지만 자신의 파울로 내준 프리킥이 결승골로 연결되며 가슴을 쳤다. 애타게 남아공월드컵을 기다려 온 이유다. 2002년 월드컵 때 10번을 달았던 이영표(알 힐랄)는 2004년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12번으로 변신했다. 1998년 월드컵 땐 최용수, 94년엔 고정운, 90년엔 이상윤이 10번의 영광을 입었다. 86년 멕시코월드컵 때는 한국의 월드컵 첫 골을 쏜 박창선이 10번의 주인공이었다. 1954년엔 성낙운이 달았다. 남아공에 모인 32명의 꿈 많은 10번들. 이번엔 누가 ‘최고의 No.10’으로 기억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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