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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 캅스-수사버전을 올려라] 고발장 받고도 임의파기… 청소년 윽박질러 진술 받기도

    [뉴 캅스-수사버전을 올려라] 고발장 받고도 임의파기… 청소년 윽박질러 진술 받기도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57년 만인 지난 6월, 경찰의 숙원인 ‘수사 개시권’이 명문화됐다. 검사 지휘에 관한 구체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하는 ‘수사권 조정 2라운드’ 싸움 역시 불과 2개월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 서울신문은 독자적인 수사주체로 처음 인정을 받은 경찰이 현장에서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고, 얼마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힘을 쏟았고 쏟고 있는지 등을 살필 계획이다. 또 신고·수사 절차에서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 부족한 시스템 등 수사 전반을 둘러싼 고질적인 병폐와 문제점, 원인을 짚고 해법을 모색할 방침이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수사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뉴 캅스(New Cops), 수사버전을 올려라’라는 시리즈는 크게 ▲피의자에서 피해자 중심의 수사로 ▲과학적 수사가 해답이다 ▲국민의 경찰로 가는 길 등으로 나눠 다룰 예정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인권연대·경찰대·시민단체 등의 관계자로 ‘전문 자문단’을 구성, 조언을 들었다. white@seoul.co.kr로 제보 및 의견을 받는다. ●자문단=곽대경(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박행렬(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유정현(한나라당 의원), 이동희(경찰대 법학과 교수),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윤호(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표창원(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특별취재팀=백민경, 이영준, 윤샘이나, 김진아기자 경찰은 지난해부터 지난달까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121건의 시정권고를 받았다. 권익위가 경찰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과실과 인권침해, 직권남용 등 부당함이 인정돼 개선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린 것이다. 시정권고 처분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경찰의 수사과정과 태도 등에 부당함을 느낀 국민들의 민원 신청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공공질서 유지에 힘써야 할 경찰이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아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권익위 시정권고 현황을 중심으로 경찰의 불합리한 수사관행과 수사상 과실로 국민들이 입은 피해사례를 살펴본다. ●6시간 방치 60대 남성 결국 숨져 2006년 12월 초. 112신고센터에 경북 포항시 항구우체국 앞에 한 60대 남성 A씨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이 A씨를 발견했을 때 다행히 의식은 남아 있었지만 비까지 내린 혹독한 겨울 날씨에 몸은 이미 언 상태였다. 경찰은 A씨를 병원이 아닌 지구대로 데려갔다. A씨는 그 뒤로 차가운 지구대 의자 위에서 6시간 이상 방치됐다. 평소에도 술에 취해 지구대를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의식을 잃은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항의하는 유족에게 경찰은 “주취자의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형식적인 해명을 했다. 그러나 지구대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경찰의 잘못된 대처가 고스란히 담겼다. 경찰은 A씨에게 냄새가 난다며 신문지로 얼굴과 가슴 쪽을 덮고, 가슴을 발로 차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폭행사실 등 과오를 시인했다. 권익위는 지난해 12월 해당 경찰서에 대해 ‘보호조치 대상자 처리매뉴얼 위반’에 대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사적인 용도로 개인정보 조회 경찰이 수사상의 필요에 의한 것처럼 속여 자신과 민사소송 중인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조회한 직권남용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에 사는 한 40대 남성 B씨는 사적인 이유로 서울의 한 경찰서에 재직 중인 C경감과 민사소송을 진행하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C경감이 B씨 가족의 주민번호와 은행계좌정보 등 개인정보를 재판에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C경감은 B씨 가족의 은행 계좌가 개설된 지점, 이사를 간 시점까지 세세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었다. 권익위의 조사결과 C경감은 수사과정상 필요한 정보라며 수개월 동안 B씨의 거주정보를 조회해 오고 있었다. C경감은 또 은행 콜센터에 자신이 경찰이라고 밝히며 B씨 가족의 개인정보를 요청했다. 권익위는 당시 C경감이 소속된 경찰서에 시정권고를 내렸고 C경감은 경찰 내부 징계위원회에도 회부돼 감봉조치를 받았다. ●청소년·장애인 등 인권보호 뒷전 인천에 사는 중학교 3학년생 D군은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권익위에 진정서를 냈다. D군은 이른바 ‘일진회’ 멤버로 인근 학생들을 대상으로 500만원을 빼앗는 등 상습공갈 및 협박, 특수절도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 경찰 조사과정은 문제투성이였다. 겁에 질린 D군을 윽박질러 진술을 하게 하는가 하면 늦은 시간 조사가 끝난 뒤 차비도 없는 D군을 혼자 돌려보냈다. 경찰은 보호자나 변호인이 입회했을 때만 청소년을 조사할 수 있다는 범죄수사규칙을 위반해 결국 D군의 진술은 모두 효력이 없게 됐다. 이 밖에도 경찰은 D군에게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교도소 간다.”라고 겁을 주고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밤 9시에 조사를 마칠 때까지 밥도 주지 않았다. 권익위는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에 대해 욕설과 폭언을 하고 인권보호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경찰에게 시정을 권고했다. 해당 경찰들은 자체적으로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견책처분을 받기도 했다. ●“내 업무 아냐”… 수개월 기다려야 경찰이 수사를 오랫동안 지연시켜 공소시효가 지나 버리는 등 수사 지연과 업무태만도 도마에 올랐다. 경남 통영시의 한 어촌마을에 사는 70대 노인 E씨는 마을에 조직된 어촌계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마을사람들과 불화가 있었다. E씨는 경찰서에 마을사람 중 한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어업피해 보상과 관련한 어촌계 내부의 비리를 알고 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담당경찰은 비리사건은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면서 담당자를 찾아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E씨가 고발장을 제출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참다 못한 B씨가 6개월 뒤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그제서야 “고발장이 제대로 접수되지 않았다.”는 어이없는 답변만 늘어놓았다. 화가 난 B씨는 고발장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경찰은 “문서를 이미 파기했다.”며 사과했다. 권익위는 경찰이 제출한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하지 않고, 임의로 없애 범죄수사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전남 여수의 한 어촌계장이 6년간 저질러 온 임대료 횡령, 편취 등의 각종 범죄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해 공소시효를 넘기게 한 경찰도 있었다. 마을 주민 F씨는 어촌계장이 6년간 공동어업권을 무단으로 빌려주고 임대료를 횡령하거나 여수 인근의 무인도인 수리섬의 소유권 이전을 두고 돈을 챙기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며 어촌계장을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의뢰를 받은 경찰관은 수수방관했다. 특히 경찰은 어촌계장의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탓에 지난해 6월 공소시효가 지났다. ●접수하면 신고자 보호 나 몰라라 경찰은 사건의 신고자, 목격자 등에 대한 보호를 소홀히 해 오히려 이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도 포함됐다. 40대 남성 G씨는 길거리에서 폭행사건을 목격하고 112에 신고했다가 되레 봉변을 당했다. G씨는 그날 경기도 부천에 일을 보러 갔다가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길거리에서 여성을 마구 때리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경찰에 알렸다. 잠시 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자 방금 전까지 때리고 맞던 남성과 여성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맞던 여성은 경찰에게 자신을 때린 사람은 G씨라며 거짓말을 했다. 여성이 막무가내로 우기는 통에 경찰도 G씨를 폭행 피의자로 생각하고 남녀와 함께 경찰차 뒷좌석에 태웠다. 다행히 현장을 떠나기 직전 또 다른 목격자가 “때린 사람은 G씨가 아니라 다른 남자”라고 진술해 오해는 풀렸지만, 경찰이 목격자 진술을 듣기 위해 차에서 내린 사이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던 남녀는 G씨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때리며 분풀이를 했다. G씨는 사건을 신고하고도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됐다. 권익위는 “경찰이 신고자 보호에 소홀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던 피해를 입혔다.”고 시정권고했다.
  • ‘서울의 옛 추억’을 찾습니다

    ‘서울의 옛 추억’을 찾습니다

    우리나라 전화카드의 시작은 1986년부터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내외 임원과 선수들의 통신 편의를 위해 주요 경기장과 호텔, 선수촌 등 주변에 카드 공중전화를 설치하고 2종의 카드를 발행했는데, 바로 일명 ‘따릉이’(5000원권)와 ‘장고춤’(1만원권)이다. 한 시민이 국내 카드전화 문화를 처음 연 ‘따릉이’와 ‘장고춤’를 기증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올해 3월부터 ‘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고 연락주세요-여러분의 과거가 서울의 미래가 됩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생활자료 수집 운동을 벌여, 최근까지 광복 이후 서울의 변화된 모습과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자료 1000여점을 수집했다고 26일 밝혔다. 또 다른 시민은 1954년 교부된 운전면허증을 내놨다. 1950년대 서울의 자동차등록대수는 인구 10만 명당 5대 수준으로 총 1만대를 넘지 못했다. 면허증에는 사진과 본적, 주소이동사항, 적성검사 일시, 포상과 교통위반 관련 사항까지 표시돼 있다. 이밖에도 박물관은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의류, 특별시민증, 도장 만드는 도구, 새마을 모자, 서울올림픽 기념메달도 기증받았다. 최근 철거된 화양고가도로나 노량진 고가도로 명패, 종묘와 창덕궁 연결공사 기공식 안내책자, 무상급식 주민투표 관련자료 등 박물관 측이 직접 현장을 누비며 수집한 자료도 있다. 박물관은 이들 자료를 정리해 영구 보존하고, 상설·특별전시를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기증한 시민들에게는 특별 예우하고 증서도 발급한다. 기증을 원할 경우 유물관리과(724-0156)로 연락하면 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햇빛 드는 中 축구계

    중국 남부 광둥성에 세계 최대 규모의 축구 아카데미가 세워진다. 중국 프로축구팀 광저우헝다(廣州恒大) 클럽이 연고지인 광저우에 축구경기장 76개를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축구 아카데미를 세운다고 반관영통신인 중국신문사가 21일 보도했다. 광저우헝다는 내년 9월 1일 개교 목표로 1880무(畝·약 37만 6000평, 1무는 약 200평)를 확보, 축구경기장 76개를 갖춘 축구 아카데미를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 축구 진흥’과 ‘축구 스타 양성’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전 중국에서 축구 기초와 잠재력을 갖춘 남녀 청소년들을 모집해 학습과 축구 기량 연마를 병행하는 전일제 기숙학교로 운영하기로 했다. 헝다축구아카데미 총설계사인 훙웨이(洪衛)는 “중국은 아직 축구 인구가 많지 않고, 리그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대규모 기초시설을 통해 축구 인구 확대와 축구 소질 향상을 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헝다 측은 스페인 프로축구 명문팀 레알마드리드와 축구 아카데미 설립을 합작하기로 했으며 향후 세계 최대의 축구센터 빌딩과 체력훈련 빌딩, 전술분석실 등의 전문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광저우헝다는 1954년 창설된 중국 최초의 시정부 소속 축구팀으로 2010년 헝다그룹이 전체 지분을 인수했다. 중국 남자 축구는 지난해 스포츠 도박에 연루된 프로 축구계의 승부조작 등으로 신뢰를 잃었으며 국제경기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후진타오 주석 등 공산당 최고지도부까지 축구계를 질책했을 정도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해남-끄트머리土末에서의 시작 기억이 사는 곳, 해남

    해남-끄트머리土末에서의 시작 기억이 사는 곳, 해남

    1 두륜산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까지 이르는 산책로는 소사나무 군락지다. 10월에는 그 열매를 볼 수 있다 2 땅끝 전망대를 향하는 길에는 어김없이 연인들의 맹세가 굳게 잠겨 있었다 3 수군들이 성을 세우고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길목에 자리잡은 이진마을. 지금은 평화롭기만 하다 끄트머리土末에서의 시작 기억이 사는 곳, 해남 해남은 첫사랑 같은 곳이다. 아주 오래전, ‘휴가’라는 것이 처음 생겼을 때, 해남을 선택했었다. 처음 만나는 남도. 그후 해남은 시간과 함께 멀어지기만 했었던 것 같다. 다시 찾은 해남에서 나는 적지 않은 기억을 되찾았고, 또 수정해야 했다. 익룡이 살던 중생대 백악기,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던 조선시대까지 다녀왔고, 시작을 위한 끝이라는 땅끝 전망대에서 ‘유구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아득하게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살아있는 것들, 첫사랑처럼 또렷한 기억의 각인들을, 말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전남대 생태관광연구센터 www.ecotourlab.org 되찾은 기억은 이런 것이다. 첫 해남 여행은 아주 추운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국토의 끝이라니. 돌아보면 청승 무모한 청춘의 자작극이다. 게다가 보길도에서 돌아 나오는 배가 풍랑으로 뜨질 못해 여행은 하루가 더 길어져 버렸다. ‘섬에 갇히는 로망’은 그때 그렇게 허무하게 이뤄져 버렸다. 아무튼 당시의 내게 해남은 고산 윤선도의 땅,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의 끝이었고, 김지하 선생이 그러했듯(그는 땅끝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단다) 청춘의 고뇌를 끝장내 버리고 싶었던 곳이었다. 수정된 기억은 이렇다. 땅끝의 사자봉 위에는 높다란 전망대와 미니레일이 있었고, 두륜산 정상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팀이 다녀갔던 여운이 곳곳에 진하게 남아 있었다. 불사는 대흥사, 미황사의 모습을 많이 바꾸었고, 그때는 템플스테이라는 것도 없었다. 우항리에 세워진 공룡박물관과 화석지는 ‘메가급’ 변화에 속했다. 10년 세월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내가 고이 품어 온 기억은 따로 있다. 문학과 풍류에 선행하는 생존 자체의 문제, 그래서 목숨을 걸고 이 땅을 지켜냈던 민초들의 어제와 오늘이 보였다. 쉽게 말해 ‘명량대첩’ 같은 전쟁의 기억이다. 주인공은 불멸의 이순신 장군이지만, 승리의 기쁨은 모두를 초대하는 축제가 됐다. ‘강강술래’를 추며 지역 주민들이 주도하는 축제의 마당에는 나름대로의 ‘격한’ 드라마가 있었다. 또한 달량진성처럼 아직도 ‘역사의 잔해’로만 남아있는 쓸쓸한 풍경들도 껴안았다. 고장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과 동동주 기울이며 그 마음도 전해 받았다. 더 나아갈 길 없는 막다른 곳, 땅끝에서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땅끝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해남 앞바다.바삐 오가는 노란 모노레일은 바다 속을 드나드는 것만 같다 ‘해남이쿠누스 우항리엔시스’를 만나다 한양에서 1,000리라 했나. 땅끝土末을 품고 있는 해남으로 내려왔으니 가장 먼 과거로, 무려 8,3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가뿐했다. 우항리 공룡박물관이다. 내게 공룡의 기억이 없으니, 공룡을 ‘노래’했던 기억을 좀 빌려 써야겠다.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그럼 무엇이 생겼었을까. 공룡이 헤엄치고 익룡이 날아다니고 아주 심심한 것 같은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80년대에 ‘꾸러기들’이라는 팀이 부른 이 엉뚱한 노래를 꽤 좋아하여 즐겨 불렀었다. 그 익룡들을 우항리에서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발자국(35cm)은 이곳의 지명을 따 ‘해남이쿠누스 우항리엔시스’로 명명되었다. 세계에서 7번째, 아시아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공룡 화석의 보고인 우항리의 백악기 퇴적층이 드러난 것은 금호 방조제 공사 이후 이 지역이 담수호를 낀 육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후반에 국내외 과학자들이 조사한 이후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에는 공룡박물관까지 설립할 수 있었다. 우항리 화석지(33만 평방미터)는 이런저런 공룡의 발자국 화석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발자국 크기가 작게는 52cm, 크게는 95cm나 되는 초식공룡의 몸집은 얼마나 컸던 걸까(몸통길이만 7m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발자국 105개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 보호각(대형 공룡관)이 세워졌다. 익룡 발자국 443점과 물갈퀴새의 발자국(전세계에서 발견된 물갈퀴새 발자국 중 가장 오래됐다) 1,000여 점을 보호한 익룡 조류관, 조각류 공룡관까지, 보호각은 총 3개가 있다. 화석으로만 남아있는 공룡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은 공룡박물관에서 얻을 수 있고 연꽃이 가득한 연못에 공룡 모형을 설치한 야외공원은 기념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우항리 공룡박물관 | 주소 전남 해남군 황산면 공룡박물관길 184 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문의 http://uhangridinopia.haenam.go.kr 1, 2 우항리 일대는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공룡뼈와 화석 모형을 전시하고 있는 공룡박물관의 규모도 공룡사이즈라 꼼꼼히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3 단청을 벗어버린 대흥사 대웅전은 한결 부드러운 인상이다 4 소가 멈춘 자리에 지었다는 미황사는 달마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전설은 알수록 재미있고, 절은 볼수록 아름답다 5 두륜산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고계봉(638m). 맑은날에는 제주도까지 보인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땅끝으로 달려가는 공룡의 등뼈 최고最古의 다음은 최장最長이다. 두륜산에는 국내 최장거리의 케이블카(1.6km, 왕복 성인 8,000원)가 연결됐다. 다행히도 직행으로 고계봉(638m)에 내려주는 것은 아니고 내려서 286개의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뿌연 안개가 사방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맑은 날에는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했지만, 전망대 위에 섰을 때에는 한반도 지도 모양의 마을도, 월출산도, 주작산도, 완도, 진도 등의 섬들도 모두 안개에 숨어들었다. 골짜기에 들어앉은 대흥사도 고계봉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힘차게 달려온 소백산맥이 두륜산(703m)을 통과해 남쪽의 달마산(489m)을 지나고 급기야 땅끝의 사자봉(155m)에 이르러서야 수그러드는 모습을 어렴풋이 목격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암봉으로 이어진 능선을 타고 바다까지 흐르고 싶지만 산행은 금지되어 있어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대흥사 입구까지는 차로 이동했다. 구림구곡九林九曲의 10리 숲길을 배신하는 마음이 아팠지만 해가 저물고 있었다.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地處로 불렸던 안전한 절집은 전쟁을 피해 곱게 늙었다. 1,000개의 불상이 모셔진 천불전뿐 아니라, 추사 김정희가 쓴 무량수각 현판,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 정조대왕이 쓴 표충사 현판도 남아 있어 살아있는 ‘서예 박물관’으로 불린다. 도를 닦는 것은 차를 마시는 것과 같다 했는데禪茶一如, 초의선사가 머물면서 차를 즐겼다는 일지암에 가지 못한 것도, 차 한잔을 마시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차창 밖으로 달마산이 나타날 때마다 내 시선은 고정되었다. 유홍준 교수는 암릉으로 솟아오른 산의 모양새를 ‘공룡의 등뼈’ 같다고 했었다. 그럴싸한 표현이다. 누군가는 달마대사가 살고 있다고도 했다. 달마Dharma·法산, 진리의 산이라니, 과감하고 멋진 이름이다. 설화 속의 어떤 이는 같은 산정을 두고 1만개의 불상을 보기도 했다. 그게 바로 미황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금인金人이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우전국(인도)에서 온 금인이 검은 소를 따라가다 주저앉는 자리에 불경을 모시라는 말에 따라 미황사가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黃’은 금인의 황금빛을 뜻한다. 1754년 이후 단청을 덧칠하지 않아 색이 바래 버린, 아니 화장을 벗은 대웅보전은 해질 무렵마다 아름다운 황금빛이 된다. 기둥 아래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가 새겨진 이유는 ‘대웅보전’이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알수록 흥미로운 절이다. 솟아오른 등뼈의 릴레이가 멈추는 곳이 땅끝土末(북위 34도17분21초)이다. 노란 모노레일(395m, 왕복 4,000원)을 타고 사자봉 정상의 전망대(38m)로 올라가는 대신 시비가 도열해 있는 산책로를 선택했다. 연인들의 간절한 마음과 언약은 이곳에서도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앞날을 어찌 알겠나. 꼭 그만큼 불투명한 전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희미해서 더 아름다운 풍경. 여기가 끝이 아니라 저 너머 무엇이 있으리라는 희망 없이는 사랑도, 여행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다의 눈물이 거둔 승리 해남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승리의 기억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대패시켰던 명량대첩(1597년 9월16일)에 대한 기억이다. 제갈량이 바람의 방향을 읽어 적벽에서의 승리를 이끌어 냈듯, 울돌목 거센 물살의 방향을 예측하여 이순신 장군이 승리를 거둬낸 명량대첩은 ‘기적의 해전’이라는 수식까지 달고 있다. 고작 13척의 전력으로 133척의 왜군은 대파한 것. 명량대첩은 매년 가을 축제를 통해 다시 재현되는데 올해는 9월30일부터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 보게 될 ‘우수영 국민관광지’에는 충무사, 어록비, 전시관 등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을 기념하는 여러 시설과 조각상,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또 우수영과 진도 사이, 울돌목 물길에는 여름 내내 거북배가 바삐 움직였다. 뱃시간을 놓쳐 버렸지만 울돌목의 물결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빠른 물길이 암초에 부딪치는 소리와 사방으로 소용돌이치는 물의 아우성. 예부터 바다가 운다鳴梁고 한 이유를 알겠다. 명량해전의 승리는 그 눈물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일 터. 때마침 주말이라 펼쳐진 명량역사체험마당은 흥겨운 시간이었다. 등에 ‘수水’를 새기고 행렬하는 수군들의 교대식은 사뭇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뒤이어 남도 소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판소리 한판과 절제된 듯 화려한 군무, 강강수월래 무대가 이어졌다. 목숨을 바쳐 땅을 수호한 선조들을 기억하는 따스한 몸짓, 갸륵한 아우성이었다. 1 명량해전을 펼쳐졌던 울돌목에는 아직도 ‘긴 칼 옆에 찬’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으니 듬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큰하다 2, 3 우수영관광지에서는 여름 동안 주말마다 명량역사체험마당을 펼친다. 각각 수문장 교대식과 강강수월래 공연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9월의 해남 여행, ‘초요기를 올려라!’ 알고 보니 9월의 해남은 여러 축제와 행사가 오버랩되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여름 내내 토요일마다 깃발을 나부꼈던 명량역사체험마당이 9월24일까지 개최되고, 곧 이어 명랑대첩축제가 9월30일부터 10월2일까지 개최된다. 땅끝작은음악회도 그 마지막 무대를 9월17일에 대흥사에서 펼쳐 놓는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생태관광연구센터의 기획으로 진행되는 해남여행상품 ‘초요기를 올려라’는 명랑대첩축제와 명량역사체험마당 등의 이벤트와 함께 땅끝마을, 두륜산, 대흥사 등의 해남 명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일정을 구성했다. 여행상품 초요기를 올려라 출발 2011년 6~11월 매주 토, 일요일 및 공휴일 출발. 명량대첩축제기간(9월30일~ 10월2일)에는 매일 밤 출발. 서울 교대역 9번 출구, 오전 7시 출발. 요금 1박2일 11만9,000원(왕복 교통비, 1박 3식, 가이드, 입장료, 보험 포함) 문의 여행스케치 www.toursketch.co.kr 당신이 아직 모르는 해남이야기 우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모든 여행지는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고, 그것을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찾아가 보면 초라하고 허망할 수 있는 해남 북평면의 무명소無名所들. 그 이름들을 기억해 두시라. 해남군의 예산 지원이 확정된 북평면 일대가 완도의 길목이었던 시절의 활력을 되찾을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허망한 남창장’에 언능 와보소” 박상일 지역활력연구소 소장 이름부터 에너지가 넘치는 지역활력연구소의 박상일 소장. <해남신문>의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해남포럼, 해남습지 보전모임, 남도문화관광센터를 만들었던 그는 남도의 음식과 풍습에 대해 막힘이 없다. 요즘 그가 ‘꽂힌’ 대상은 ‘남창장’이다. 혹시 ‘허망한 남창장’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다른 장에 비해 일찍 서고 일찍 파장이 되어 버리기에 낭패를 본 사람들에게서 나온 푸념이 허무한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해남에서 완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생기기 전에 남창장은 인근 섬에서 해산물을 가득 실은 채 모여들고, 제주도에서도 밀감을 싣고 올 정도로 흥한 장이었다. 현재는 규모도 손님도 줄었지만, 혹시 2일, 7일에 해남에 오게 되거든 장차 ‘풍물 어시장’으로 달라질 남창장을 기대해 달라는 것이 박상일 소장의 당부다.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옛 시절의 영광은 멀어졌지만 사람과 물자가 모이고 흩어지는 장터의 기능만은 유효하다. “달량진성, 이진진성, 그대로랑께요” 노명석 북평면 청년회장 40대의 청년회장이라고 소개를 받은 것이 쑥스러운 듯 웃기만 하던 그가 북평면 남창리에 도착하자 성큼 앞장서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돌담이 그대로 남아있죠. 이렇게 잘 보존된 성벽은 별로 없다네요. 저기, 저 집들은 안에 들어가 보면 뒷담이 모두 옛 성벽으로 되어 있어요.” 조선시대 이 자리에 수군의 진지였던 달량진達梁津이 설치됐고, 그 안에 남쪽의 조운창(조세를 거둔 현물을 모아두던 창고), 즉 남창을 두었기에 그 이름이 남창리다. 1498년(연산군 5년)의 일이니 500년이나 서 있었던 돌담은 정말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 지난해 달량진성이 향토유적으로 지정됐고, 이제 본격적으로 손님맞이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주민들에게 떨어진 즐거운 숙제다. 아직은 쇠락한 상태인 시골 마을의 풍경을 등에 지고 뭔가 고민에 빠진 듯한 그의 얼굴에 듬직한 ‘청년’이 있었다. 그가 두 번째로 안내한 곳은 멀지 않은 이진진梨津鎭성터였다. 약 2.5km의 석벽 중 940m 정도가 남아있으니 역시 양호한 상태다. 서문터에 남아있는 옹성에는 우물터까지 보존되어 있다. 마을에서 까만 현무암이 발견되는 것은 제주에서 이곳까지 배에 조랑말을 싣고 왔던 흔적이라고 했다. 역사의 파편들이 골목마다 박혀 있었다. “우리집의 포석정 볼라요?” 함박골큰기와집 김순란 여사 새로 지은 한옥집. 그러나 모양만 한옥집인 숙소가 아니라 한옥의 가치와 정신을 살리되 현대인 편의를 더한 한옥집. 그게 바로 ‘함박골큰기와집’이다. 고향인 해남 북평면 오산리에 돌아와 민박을 꾸린 김순란 여사는 직접 황토를 발라서 건강한 한옥집을 완성했다. 그 집에 머무는 자체가 일종의 치유였다. 직접 담그는 동동주는 가장 먹기 좋을 때 내놓는 것이라 실패가 없고, 숙취도 없다. 두 동의 사랑방은 각각 넓은 마당을 끼고 있으니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기 일쑤. 자리끼 물병에 민트 잎을 따 넣어 주고, 동동주에도 꽃잎을 따 넣을 줄 아는 그녀는 풍류의 고수이기도 하다. 마당 한쪽에 직접 고안하고 복원한 미니 포석정에 물을 채우고 동동주잔을 올리니 정말 술잔이 한 바퀴 돌아 내 앞으로 돌아왔다. 선비처럼 시를 읊어야 할 것 같은 밤이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은 뜻밖의 것이었다. 급하게 손끝으로 대충 짓이겨 새끼손가락에 얹어 주었던 봉숭아꽃이 지금 고운 살구빛으로 내 몸에 스며들어 있다. 각인된 추억이다. 주소 전남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 1016-2(차경리) 요금 4인실은 5~8만원, 8인실은 15~20만원 문의 011-9606-7557 www.hanbakgol.c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61년만에…6·25戰때 전사 국군 2명 유해 수습해 가족 품으로

    6·25전쟁 때 전사한 국군 2명의 유해가 61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8일 1950년 입대해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정우상·조용수 하사의 유해를 수습해 신원을 확인하고 이날 고향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고인들은 1950년 추석을 불과 엿새 앞둔 9월 20일 경남 통영에서 함께 입대해 같은 소대에서 8개월간 전투에 나섰다가 이듬해 전사했다. 6·25전사에 따르면 고인들은 입대 후 북진 대열에 합류해 원산탈환 작전에 이어 국군의 선봉으로 함북 청진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1·4후퇴 뒤 중공군의 5월 공세에 맞섰던 1951년 5월 22일 대관령전투에서 무공을 세우고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대관령전투는 설악산을 방어 중이던 수도사단이 급거 강릉지역으로 남하해 대관령 일대에서 북한군 12사단과 중공군 27군의 진출을 저지한 전투다. 두 사람에게는 1954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다. 고인들의 시신은 당시 수습되지 못한 채 강원 평창의 대관령 전투현장에 남겨졌는데, 지난 5월 17일 유해발굴감식단과 36사단 장병에 의해 인식표(군번)와 함께 수습됐다. 국방부는 인식표에 적힌 군번을 단서로 유가족을 추적하고 유전자(DNA) 감식으로 비교한 결과 두 사람이 수도사단 1연대 3대대 11중대 2소대 소속이었던 것을 확인했다. 53사단장과 박신한 유해발굴감식단장은 이날 지역 행정기관장 및 보훈단체 회원들과 함께 유가족의 자택을 방문해 국방부장관 이름의 신원확인 통지서와 위로패, 유해 수습 때 관을 덮은 태극기와 유품을 전달했다. 61년 만에 형의 유해를 찾은 정 하사의 동생 우향(68·경남 양산)씨는 “꿈에도 그리던 형님을 찾았고 이번 추석에 형님을 모시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국가보훈처와 협의해 다음 달 중 국립대전현충원에 형제를 함께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몽골에 ‘금융한류’

    몽골에 ‘금융 한류’가 확산되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이 앞다퉈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산업은행은 몽골 국책은행의 경영을 4년간 맡게 됐다. 산은은 30일 몽골 국회에서 수흐바타르 바트볼드 몽골 총리와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몽골개발은행과 위탁경영계약을 맺었다고 31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위탁경영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산은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와 경쟁 끝에 지난 3월 몽골 국무회의에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고 이후 세부 계약조건을 협상한 뒤 최종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에 따라 산은은 1954년 설립 이후 축적한 개발금융 노하우를 활용해 막 걸음마를 시작한 몽골개발은행의 업무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몽골의 국가 전략산업 프로젝트 수행도 지원한다. 이를 위해 김장진 몽골개발은행장을 포함한 5명의 직원이 자금조달과 운용, 리스크 관리 등 경영 주요 부문 책임자로 파견된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3000m 장애물] 자리포바 ‘야생의 체력장’ 케냐 아성 깼다

    [3000m 장애물] 자리포바 ‘야생의 체력장’ 케냐 아성 깼다

    들판 위의 사냥감을 쫓아 달린다. 바위를 뛰어넘고 첨벙첨벙 냇가를 건넌다. 때로는 무기를 들고 쫓아오는 적을 피해 사력을 다해 달린다. 인류 최초의 달리기 원형을 그대로 담은 경기, 여자 3000m 장애물 경기 결승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나흘째인 30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펼쳐졌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자신의 최고기록을 1초 이상 앞당긴 9분 07초 03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은 율리야 자리포바(러시아)가 차지했다. 자리포바는 중·장거리에 강한 케냐의 아성을 깨고 당당히 정상에 올랐다. 튀니지의 하비바 그리비는 9분 11초 97로 국내 최고 기록을 세우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 시즌 최고 기록을 가진 우승후보 밀카 체모스 체이와는 9분 17초 16으로 동메달에 그쳤다. 장애물 경주는 트랙 위의 크로스컨트리다. 들판과 냇가, 산속을 달리던 자연 속의 경기장을 트랙 위로 옮겨 왔다. 3000m 장애물 경주의 영문 명칭인 ‘3000m SC’(Steeplechace)에서 알 수 있듯이 1800년대 초 영국에서 마을마다 서 있는 교회 첨탑을 지표로 삼아 시냇물을 건너고 돌을 뛰어넘는 장거리 레이스에서 유래했다. 그 당시 언덕을 넘고 물웅덩이를 뛰어넘었던 것처럼 강한 지구력과 허들을 뛰어넘는 유연성, 순발력 등이 요구된다. 인류 달리기의 원형을 그대로 따온 장애물 경주는 제1회 하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남자 장애물 경기는 1900년 2회 파리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4회 런던올림픽부터 3000m로 규격화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여자 종목도 추가됐다. 1954년부터 장애물 28차례, 물웅덩이 7차례라는 규칙이 실시되면서 비로소 세계기록으로 인정받게 됐다. 트랙 위로 옮겨온 장애물 경주는 400m 길이의 트랙 7바퀴 반을 돌면서 허들을 모두 28번 넘고 웅덩이를 7번 가로질러야 한다. 웅덩이는 길이 3.66m에 가장 깊은 곳이 70㎝로 허들을 멀리 뛰어넘는 선수일수록 얕은 곳에 떨어져 유리하다. 다른 경기와 달리 허들도 한 레인에 하나씩 서 있는 것이 아니라 3.96m의 긴 허들을 넘어야 한다. 때문에 결승에 나온 15명의 몸싸움이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다른 장거리 종목처럼 케냐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선수들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장애물 경주의 하이라이트는 허들과 물웅덩이가 연달아 설치된 장애물을 넘는 순간이다. 허들을 도약해 연달아 웅덩이를 지나야 해 선수들에게는 가장 힘든 장애물이지만 선수가 착지하는 순간 찰박이는 물보라가 장관을 연출해 관중들에게는 눈요깃거리가 된다. 장애물 경주의 역사 초반에는 물웅덩이 근처에서 넘어지는 선수들이 많아 관중들이 일부러 웅덩이 근처에 자리를 잡기도 했지만 근래 들어 넘어지는 선수는 거의 없다. 한편 남자 3000m 장애물 결승은 다음 달 1일 오후 8시 25분 열린다. 대구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김성환 외교 “동해 단독표기 추진”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2일 동해 표기 문제와 관련, “우선적으로 동해·일본해 병기(倂記)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1차 전략의 목표일 뿐으로, 궁극적으로 동해 단독표기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동해’ 외에 ‘한국해’나 ‘조선해’ 등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김 장관은 내외신기자 브리핑에서 “지명과 관련된 국제기구들은 특정 지명에 대해 관련국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할 때는 병기를 권고하고 있다.”며 “최근 국제수로기구(IHO)에서도 많은 회원국들이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표기하고 있는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서울신문 8월 12일자 1면 보도>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어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적 이름을 되찾아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다.”며 동해 외 한국해 등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김 장관은 독도 영유권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될 가능성에 대해 “일본이 이미 1954년 ICJ에 회부하는 것을 제의한 바 있으나, 당시 외교공한을 통해 ‘한국은 독도 영유권을 갖고 있어 ICJ에서 권리를 증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내용을 전달했다.”며 “그 뒤로 우리 정부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고 못 박았다.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대해 김 장관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포함한 핵 활동을 중단하고, 중단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확인하는 과정 등 사전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라며 “북한이 이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언급, 북측의 움직임에 맞춰 추가 협상에 나설 뜻을 시사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두 얼굴의 일본

    일본은 영토 문제와 관련해 양면 작전을 구사한다. 중국과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다툼에 대해서는 중국의 공세를 애써 무시하며 조용히 실효적 지배를 강화한다. 하지만 한국과의 독도, 러시아와의 남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분쟁에는 최대한 문제를 제기해 국제적으로 이슈화시키는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세는 무척 집요하다. 자민당 의원 3명의 한국 입국이 좌절되자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방안을 한국 정부에 공식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케이신문은 10일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한국이 최근 들어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계속 강화하고 있어 독도 문제를 정식으로 양국 간의 교섭 의제로 삼으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1954년과 1962년 한국 측에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고 제안한 바 있어 이번에 제안이 이뤄지면 49년 만이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정당성을 세계에 호소하려는 의도지만 한국이 동의할 가능성이 낮은 데다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당사국인 한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이 신문은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지만 이 문제를 정식으로 교섭 테이블에 올려 (독도의 실효지배를 강화하는) 한국의 처사에 일본이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독도에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려는 한국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일본은 역으로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해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 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국회의 초당파 보수 의원 그룹인 ‘국가주권과 국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이하 ‘행동하는 의원연맹’)이 현재 사유지인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하는 법안 제출을 추진하고 있다. 센카쿠열도의 국경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국유화와 함께 향후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의 상주 기지 건설도 추진한다. 일본 어선의 피난항 건설도 검토하기로 했다. 중국을 의식해 센카쿠열도에서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는 현재 일본 사이타마현에 거주하는 소유자가 일본 정부로부터 연간 2400만엔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57년 샘표’ 국내 최장수 상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는 ‘샘표’로 나타났다. 31일 특허청에 따르면 상표법이 시행된 1949년 이후 현재까지 살아있는 국내 상표는 1954년 5월 10일 등록된 전통발표식품 간장을 상품으로 한 샘표로 57년 2개월간 사용하고 있다. 외국인 상표로는 ‘펩시콜라’가 54년 9월 27일 등록해 56년 9개월간 유지되고 있다. 상품별로는 주류의 경우 ‘진로’(56년)와 영국의 ‘시바스리갈’(50년), 화장품은 ‘태평양’(52년)과 프랑스의 ‘샤넬’(47년)이 최장수 상표였다. 또 핸드백은 ‘금강’(30년)과 프랑스의 ‘루이비통말레띠에’(32년)로 외국 브랜드의 존속 기간이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2000만원 넘는 야구공 등장…金 칠했나?

    반세기 동안 창고의 박스 안에 보관돼 있던 ‘엄청난’야구공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평범해 보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 야구공은 뉴욕 양키즈팀 선수 특히 ‘레전드급 선수’로 불리는 조 디마지오의 사인 뿐 아니라 마릴린 먼로의 키스마크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공이다. 이 공이 다음달 4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미 스포츠 수집 전시회’에 나올 것으로 알려져 수집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는 세간을 뜨겁게 달군 스타커플이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와 유명 스포츠 스타의 만남은 엄청난 이슈가 됐고, 두 사람은 1954년 결혼에 골인했지만 9개월 만에 이혼에 이르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세기의 커플인 만큼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의 흔적이 모두 담긴 이 야구공은 두 사람이 사망한 후에도 고가의 컬렉션으로 손꼽혔다. 1952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뉴욕양키즈 팀 26명 전원의 사인과 약간 흐릿해진 먼로의 입술 자국이 담긴 이 야구공은 이번 경매에서 최소 2만 달러(약 2100만원)이상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이번 경매에는 뉴욕 양키스의 4번 타자였던 루 게릭이 1934년 일본 투어 당시 입은 유니폼(낙찰 추정가 약 3억 2000만원)과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손꼽히는 사이 영이 1908년 입은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낙찰 예정가 약 3억 7000만원) 등 10여 점이 나올 예정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부고] 첫 ‘본드 걸’ 린다 크리스티안

    최초의 ‘007 본드 걸’이었던 여배우 린다 크리스티안이 별세했다. 87세. AFP통신 등 외신들은 크리스티안이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의 팜데저트에서 숨을 거뒀다고 고인의 딸인 로미나 파워의 말을 인용해 24일 보도했다. 1923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안은 31세인 1954년 ‘카지노 로열’의 TV 버전에 출연해 제임스 본드의 상대역인 본드 걸을 처음 연기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co.kr
  • “하이닉스 인수는 STX 안정성장 승부수”

    “하이닉스 인수는 STX 안정성장 승부수”

    “10년 만에 100배 성장한 STX그룹에 향후 10년의 패러다임은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찾는 것이죠.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는 안정적인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한 또 하나의 승부수입니다.” 대표적인 ‘경제기획원(EPB) 라인’ 공직자에서 STX그룹의 미래 전략을 직접 그리는 기업인으로 변신한 신철식(57) STX미래연구원장(부회장)을 25일 만났다. 서울역 주변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시티타워 16층 원장실에서 그는 과거 공직 시절과 다를 것 없이 호탕한 웃음과 시원한 말투로 STX의 미래와 최근 정부 정책 등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신 원장이 STX에 합류한 것은 지난해 2월. 1978년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08년 3월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차관급)을 끝으로 관복을 벗었다. 30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예산과 기획 파트에서 일한 대표적인 ‘기획통’이다. 경제 관료의 대부로 손꼽히는 고 신현확 전 총리의 외아들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STX에서 그가 할 역할은 STX의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미래연구원을 이끄는 것. 평생 국가재정 기획에 몸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최근 신 원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하이닉스 인수. 강 회장, 이종철 ㈜STX 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들과 함께 이번 달 초 인수의향서(LOI) 제출을 손수 결정했다. STX의 하이닉스 인수 추진의 가장 큰 이유는 그룹 전체 사업의 90%가 조선과 해운 등에 쏠려 있기 때문.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상황이 닥치면 충격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신 원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조선·해운의 비중을 30~40%로 줄이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조선해운과 반도체는 어울리지 않는 업종이지만 사이클에 민감하고 이를 대처하는 방법도 같은 만큼, 실제 경영에서의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찾는 것도 하이닉스 인수의 배경이 됐다. STX는 2001년 출범 이후 자산 규모가 4400억원에서 2010년 32조원으로 100배 가까운 성장을 일궈냈지만 앞으로는 지속 가능한 회사로 변모하는 게 가장 큰 화두라고 그는 말한다. “회사가 급성장하다 보면 다양한 구성원들이 동질화되지 못한다는 취약점이 있습니다. 일관성 있는 조직을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게 시급하죠. 여기에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성장이 둔화되면 회사는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느냐가 STX의 앞으로 10년의 패러다임이 될 것입니다.” 신 원장이 지난 4월 중국 다롄에서 공식 발표한 ‘비전 2020’은 10년 후 STX의 비전이라는 그의 고민이 담겨 있다. 특히 에너지 자원 분야를 새 성장동력으로 설정했다. 신 원장은 “STX는 유럽에서 크루즈 선사를 인수하는 등 다른 기업보다 발빠르게 세계화를 단행했다는 점이 강점”이라면서 “아프리카 등 자원부국들도 과거 피식민지 국가 중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를 자원 개발의 파트너로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기획과 예산 전문가로 살아온 신 원장은 최근 국가 정책, 특히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신 원장은 “국가채무비율이 최근 10년 간 6~7% 올라갔지만 (국가의) 곳간 열쇠를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서 “잘못된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이 1990년대 말부터 계속됐고, 현 정부에서는 분위기가 바뀔 줄 알았지만 결국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통일 등을 감안할 때 재정건전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면서 “지도층이 장기적인 이익과 건전성에 가치를 두는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국민들이 존중하는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신철식 부회장은 ▲1954년 경북 칠곡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국방대학원 ▲22회 행정고시 합격 ▲경제기획원 산업4과 관리총괄과장, 재정경제원 통상과학예산담당관·건설교통예산담당관, 기획예산처 예산관리국 관리총괄과장·사회예산심의관·산업재정심의관·정책홍보관리실장, 국무조정실 정책차장, 우호문화재단 이사장, STX미래연구원장(부회장)
  • [산업계, 고령화에 맞춘다] 숙련공서 이익 창출…日 미라이공업을 배우자

    [산업계, 고령화에 맞춘다] 숙련공서 이익 창출…日 미라이공업을 배우자

    한때 신생아가 너무 많아 고민하던 대한민국은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 1~2위를 다투는 저출산 국가가 됐다. 저출산은 그대로 급격한 고령화로 이어져 이제 한국은 2018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상황에 놓였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050년엔 평균 연령이 53.7세가 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인구구조의 변화를 겪고 있다. 1960년 6명이었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이 2008년 1.19명으로 낮아졌다. 반대로 2000년 전체인구 대비 노인인구(65세 이상) 비율은 7.2%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2018년에는 노인인구 비중이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엔 전체 인구의 20%가 65세가 넘는 초고령사회를 맞게 될 전망이다. 선진국의 경우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바뀌는 데 프랑스가 115년, 독일 40년, 이탈리아 61년, 미국 72년 등이 걸렸지만 한국은 18년에 불과하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증가율 둔화는 인구 구성비율을 변화시키며 산업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노인 부양비를 높일 경우 성장잠재력이 약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에 대해 장기적으로 기업의 정년 폐지를 고려하라고 제언했다.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한국인들을 향해 “그동안 모범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최근 고령화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면서 “한국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에 나서려면 OECD가 내놓은 권고안을 수용해 지속가능한 성장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OECD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민연금 수령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높이는 대신 급속한 고령화를 타개하기 위해 나이 들어서도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60세 이전으로 정해져 있는 기업 정년제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정년제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기업들의 은퇴수당을 일시금 대신 연금으로 전환할 것도 권고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사회를 맞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정년 연장으로 고령화사회의 해법을 찾는 기업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유토피아 경영’을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미라이공업. 이곳의 정년은 70세로 법에서 정한 것보다 높다. 더군다나 법에서는 60~65세 때 급여를 절반만 줘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미라이공업은 급여를 한 푼도 깎지 않는다. 비용을 줄이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월급을 제대로 주고 일할 수 있는 의욕을 북돋워 두세배의 이익을 창출하게 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미라이공업은 1년에 140일 가량을 쉰다. 일본에서 가장 길다. 하루 근무시간도 7시간 15분에 불과하고 연간 근무시간은 1600시간이다. 그런데도 잔업을 금지하고 있으며 전 직원(800여명)은 모두 정규직이다. 그렇다면 미라이공업은 과연 어떤 식으로 수익을 창출할까. 중소기업인 미라이공업은 마쓰시타, 도시바 등 대기업과 같은 종류의 전기설비제품을 만들면서도 영업이익률이 15%에 달하는 놀라운 실적을 거두는 것은 직원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차별화 전략 덕분이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노하우를 쌓은 직원들은 미라이공업에 특허를 대량으로 쏟아낸다. 현재 2만여종에 달하는 제품 모두가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제품이며, 이 가운데 90%가량은 특허 제품이다. 국내의 경우 최근 GS칼텍스가 내년부터 정년을 2년 늘리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해 주목받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하고, 만 58세 이후에는 임금을 기본급의 80%를 주기로 했다. GS칼텍스는 국내 정유 4사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처음 도입하는 업체가 됐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숙련인력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장기 고용을 통해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도 지난해 정년을 현행 58세에서 60세로 2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도 동시에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한전의 정년 연장은 1954년생 이후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1952~1953년생은 6개월에서 1년6개월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2만여명에 달하는 한전 직원의 정년 연장은 공공 부문에 정년연장 붐을 조성하고 민간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지구서 외계인 흔적 찾으려면 ‘이곳’으로”

    “지구서 외계인 흔적 찾으려면 ‘이곳’으로”

    미국우주항공국(이하 NASA)이 화성탐사에 앞서, 지구상에서 화성과 환경이 가장 유사한 곳을 선정하고 실제조사탐험에 나섰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15일 보도했다. NASA가 화성의 ‘대역’으로 선정한 곳은 바로 호주 남서부의 필바라 지역. 이곳은 지구초기생명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지질·진화 및 우주학적 관점에서 매우 중대한 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1954년 필바라에서 발견된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는 독특한 줄무늬가 그려진 암석으로, 당시 여러 나라 과학자들이 생명체의 초기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스트로마톨라이트와 같은 30억 년 이상 된 암석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NASA는 지구상에서 초기생명체의 가장 오래된 흔적을 보유하고 있는 필바라 지역에서 화성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계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탐사의 훈련 및 교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맥케이 NASA 연구원은 “화성과 매우 유사한 표면을 가진 필바라 지역에서 화성의 외계생명체 탐사를 위한 훈련을 시작할 것”이라면서 “이곳에서의 자세한 연구 및 훈련이 외계인을 찾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구의 나이와 거의 비슷할 것 같은 이곳의 암석들은 우리가 화성으로 로봇을 보낼 때 큰 단서가 되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학자들은 화성이 한때 물이 매우 많은 행성이었으며, 외계생명체가 살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NASA 측은 내년 쯤 월면자동차를 화성으로 보내 외계생명체의 흔적을 찾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짝퉁 루이뷔통/박홍기 논설위원

    명품(名品)은 자신만의 향기와 가치를 지닌다. 전통과 함께 남이 따를 수 없는 기술, 출고량 제한에 따른 희소성은 기본이다. 값은 비싸다. 대신 질을 담보하는 까닭에 쓸수록 진가를 드러낸다. 장인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유럽에서 명품은 재력이 받쳐주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루이뷔통은 150년의 역사를 가진 명품 브랜드다. 제조자 이름이기도 하다. 트렁크 회사 견습공 출신인 루이뷔통은 1854년 프랑스 파리 중심가 루데브데 4번가에 처음 여행가방 전문점을 냈다. 당시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과 실용성 덕에 큰 호응을 얻었다. 인기는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루이뷔통의 첫 글자 ‘LV’에 아르누보 경향의 꽃과 별을 결합시킨 디자인은 아들 조르주 뷔통이 1896년 모조품을 막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루이뷔통 핸드백은 우리나라에서 ‘3초 백(bag)’으로 불린다. 3초마다 눈에 띌 만큼 흔한 탓에 ‘국민가방’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5초 백’은 구치다. 특정계층의 소유물이 아닌 것이다. 루이뷔통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4200억원으로 10년 만에 8배나 급증했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속설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베블런 효과다. 미국 사회학자 베블런은 1899년 ‘유한계급론’에서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자각 없이 이뤄진다.’라고 갈파했다. 베블런 효과와 좀 다른 구매심리를 스놉(snob) 효과라고 한다. 미 경제학자 하비 레이번스타인이 1950년 제시한 ‘특정 상품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 희소성이 떨어지면 그 상품의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사기 어려운 값비싼 상품을 보면 더 사고 싶어 하는 속물근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과 다르다는 백로(白鷺)효과다. 스놉 효과는 일본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1980~90년대 호황 시절 명품 핸드백은 일본 여성들의 필수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 루이뷔통 전체 판매량의 70%가량을 일본이 차지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명품 매출액이 최근 몇년간 감소세다. 경제 불황보다 희소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명품 선호도는 아직 일본 수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올 상반기 특허청에 적발된 짝퉁 명품 가운데 루이뷔통이 가장 많았다. 짝퉁이라도 들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과시욕이나 허영심 때문인 듯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베블런 효과가 스놉 효과로 바뀔지 자못 궁금하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美 7세 여아의 恨 54년만에 풀렸다

    美 7세 여아의 恨 54년만에 풀렸다

    1957년 12월 3일 미국 일리노이주. 이곳 시카모어 지역에 살던 금발의 소녀 마리아 리덜프(당시 7세)가 집 앞에서 친구와 놀던 중 한 소년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리덜프는 5개월 뒤 인근 야산에서 발견됐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 범인을 쫓을 단서는 리덜프가 자신을 목말 태운 소년을 ‘조니’라고 불렀다는 친구의 어렴풋한 기억뿐이었다. 54년간 미궁에 빠져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살인의 추억’이 경찰의 집념 어린 추적 끝에 풀렸다. ●납치·살해 후 경찰로 근무 미국 일리노이주 디캘브 카운티 검찰은 1일(현지시간) 리덜프를 납치, 살해한 혐의로 잭 대니얼 매컬러프(71·사건 당시 이름은 존 테시어)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리덜프의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살던 매컬러프는 친구와 놀던 리덜프를 유인해 죽였다. 경찰은 친구의 증언에 따라 ‘조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는 “납치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시카고행 기차를 타고 있었다.”고 말했고 이 때문에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빠졌다. 그는 혹시 계속될지 모를 경찰의 수사를 피하려고 군에 입대한 뒤 이름도 ‘존 테시어’에서 ‘잭 대니얼 매컬러프’로 바꾸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 군 전역 후에는 결혼을 하고 경찰에 투신해 워싱턴주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익명의 제보 바탕으로 다시 탐문수사 완전범죄로 끝날 듯했던 매컬러프의 살인극은 그를 쫓던 일리노이주 경찰이 알리바이상의 허점을 발견하면서 발각됐다. 50년이 지났지만 경찰은 이 사건 수사를 포기하지 않았고, ‘매컬러프가 범인’이라는 익명의 제보를 바탕으로 다시 탐문수사를 본격화한 끝에 지난해 매컬러프의 전 여자 친구로부터 결정적인 진술을 이끌어냈다. 그녀가 “(무혐의의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던) 열차표를 우연히 봤는데 검표도장이 찍히지 않은 미사용 티켓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 진술을 바탕으로 경찰은 잊혀졌던 매컬러프의 행적을 다시 집요하게 추적, 마침내 시애틀의 자택에서 그를 체포하는 것으로 54년 만에 리덜프의 한을 풀게 됐다. 마리아 리덜프의 오빠인 찰스 리덜프는 범인의 체포 소식을 듣고 “(동생이 숨진 뒤) 모든 것이 평소처럼 계속됐지만, 동생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면서 “그는 정말 똑똑한 소녀였고 (살아있었다면) 정말 뭔가 될 아이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7세 여아 살인범 54년 만에 잡았다

    7세 여아 살인범 54년 만에 잡았다

     1957년 12월3일 미국 일리노이주. 이곳 시카모어 지역에 살던 금발의 소녀 마리아 리덜프(당시 7세)가 집 앞에서 친구와 놀던 중 한 소년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리아는 5개월 뒤 인근 야산에서 발견됐지만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범인을 좇을 단서는 마리아가 자신을 목말 태운 소년을 ‘조니’라고 불렀다는 친구의 어렴풋한 기억뿐이었다. 54년간 미궁에 빠져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살인의 추억’이 경찰의 집념 어린 추적 끝에 풀렸다.  미국 일리노이주 드칼브 카운티 검찰은 1일(현지시간) 마리아를 납치, 살해한 혐의로 잭 대니얼 맥컬러프(71·사건 당시 이름은 존 테시어)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마리아의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살던 맥컬러프는 친구와 놀던 마리아를 유인해 죽였다. 경찰은 친구의 증언에 따라 ‘조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는 “납치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시카고행 기차를 타고 있었다.”고 말했고 이 때문에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빠졌다.  그는 혹시 계속될지 모를 경찰의 수사를 피하려고 군에 입대한 뒤 이름도 ‘존 테시어’에서 ‘잭 대니얼 맥컬러프’로 바꾸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 군 전역 후에는 결혼을 하고 경찰에 투신해 워싱턴주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완전범죄로 끝날 듯했던 맥컬러프의 살인극은 그를 쫓던 일리노이주 경찰이 알리바이상 허점을 발견하면서 발각됐다. 50년도 지났지만 경찰은 이 사건 수사를 포기하지 않았고, ‘맥컬러프가 범인’이라는 익명의 제보를 바탕으로 다시 탐문수사를 본격화한 끝에 지난해 맥컬러프의 전 여자친구로부터 결정적은 진술을 이끌어냈다. 그녀가 “(무혐의의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던) 열차표를 우연히 봤는데 검표도장이 찍히지 않은 미사용 티켓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 결정적 진술을 바탕으로 경찰은 잊혀졌던 맥컬러프의 행적을 다시 집요하게 추적, 마침내 시애틀의 자택에서 그를 체포하는 것으로 54년 만에 리덜프의 한을 풀게 됐다. .  마리아의 오빠인 찰스 리덜프는 범인의 체포 소식을 듣고 “(마리아가 숨진 뒤) 모든 것이 평소처럼 계속됐지만, 동생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면서 “그는 정말 똑똑한 소녀였고 (살아있었다면) 정말 뭔가 될 아이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괴짜 뉴욕 노숙자 “구걸 아닌 ‘사회적 실험’ 수행 중”

    괴짜 뉴욕 노숙자 “구걸 아닌 ‘사회적 실험’ 수행 중”

      세계적인 대도시 미국 뉴욕에 사는 한 젊은 노숙자의 세련된 ‘구걸 프로젝트’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노숙인이 시민 100만명을 대상으로 1달러를 구걸하는 장기 계획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공공연하게 밝히고 실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9일 미국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크리스 쿤(30)이라는 이 노숙자가 ‘AskAMillion.com’ 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한 뒤 ‘뉴요커 100만명에게 (적어도)1달러를 요청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를 ‘구걸행위’가 아닌 ‘사회적 실험’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쿤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거지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면서 “매일 몇명에게 돈을 요청하고, 몇사람이 얼마를 준 것인지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며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 실험임을 강변했다. 그가 한 여성에게 이런 ‘원대한 목표’를 귀띔하자 그녀가 선뜻 웹사이트 구축과 기록 관리를 위해 노트북 하나를 공짜로 선물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지난 5월초부터 한 손에 메모판을 들고 이른바 ‘사회적 실험’을 시작하면서 구걸 대상자의 성별과 인종, 그리고 받은 액수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지난 5월1일 500명을 만나 127달러를 얻은 것을 시작으로, 낱낱이 웹사이트에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쿤은 오후 1시 이전이나 출근 전철 안에서 구걸 행위를 삼가는 등 나름의 ‘사회적 실험 준칙’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고 한다. 아칸소 주 태생인 그는 12세 때 집을 떠나 지금까지 사회보호시설과 교도소를 전전하다가 현재 노숙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날씨가 나쁘거나 다리가 아파 쉬는 날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그가 3462명에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뉴욕시청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그의 원대한 목표는 오는 2054년에 가서야 끝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 허핑턴 포스트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씨줄날줄] 태풍의 역설/이춘규 논설위원

    폭풍이나 돌풍 등 강한 비바람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고구려 모본왕 2년 3월(서기 49년 음력 3월)에 위력적인 폭풍 때문에 나무가 뽑혔다는 기록이 있다. 초속 30m 정도로 추정된다. 신라에서도 경주에 큰바람이 불고 금성동문이 저절로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정종 때인 950년 음력 9월 1일엔 폭우와 함께 질풍(疾風)이 불어 사람이 죽고, 건물이 무너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폭풍우 기록은 많다. 태풍(typhoon). 그리스 신화 티폰(Typhon) 어원설이 유력하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거인족 타르타루스 소생인 용 티폰은 파괴적이었지만 제우스신에게 폭풍우 이외의 능력은 빼앗긴다. 티폰의 파괴성과 폭풍우가 결합해 ‘typhoon’이 됐다는 것. 폭풍을 뜻하는 아라비아어 ‘투판’(tufan)이 태풍이 됐다고도 한다. 중국 남부에서 강한 바람을 타이후(大風)라고 했는데 서양의 티폰과 결합, 타이푼이 돼 동양에 역수입됐다는 소수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태풍(颱風)은 1904~1954년의 ‘기상연보 50년’에 처음 사용됐다. 서태평양 열대성 폭풍이 태풍. 열대성 폭풍은 발생 지역에 따라 태풍, 허리케인(대서양), 윌리윌리(호주 서부), 사이클론(인도양)으로 불린다. 발생 지역과 소멸 지역이 다른 경우도 있다. 1972년 태풍 29호는 인도양 벵골만으로 빠져나가 태풍에서 제외됐다. 2002년 태풍 17호, 24호는 허리케인이 서쪽으로 이동해 태풍이 됐다. 허리케인 명칭을 그대로 썼다. 어제 5호 태풍 ‘메아리’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태풍은 2000년부터 ‘아시아명’이 사용된다. 미국과 아시아 14개국·지역이 각각 10개씩 제출한 140개를 순번을 정해 사용한다. 다 쓰면 1번부터 재사용한다. 1번은 캄보디아의 담레이다. 우리나라는 11번 개미와 너구리(53번), 장미(67번) 등을 제출했다. 태풍 피해가 잦은 일본은 ○○호를, 필리핀은 독자 이름을 더 쓴다. 태풍은 1967년엔 39개, 지난해는 14개로 해마다 발생 빈도가 다르다. 태풍은 무섭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비를 뿌려 수자원을 공급한다. 음용·산업용으로 귀하다. 바다밑을 뒤집어 적조 현상을 없애고 어족 자원을 풍부하게 한다. 대기 오염물질도 쓸어간다. 나비 등 곤충도 이동시킨다. 열대지역 식물 씨앗은 물론 새나 조개, 해파리류도 이동시킨다. 생물 다양성을 크게 높여 준다. 자연재해 대처 기술도 높이게 해 준다. 태풍에 철저히 대비하고, 역설에도 주목하면 태풍이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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