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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국부’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국부’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한 리 전 총리는 국부(國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자신은 독재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서구에 비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져 아시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녀, 덩샤오핑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고 전 총리가 물러나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리콴유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한국도 수차례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누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한 리 전 총리는 국부(國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자신은 독재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서구에 비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져 아시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녀, 덩샤오핑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고 전 총리가 물러나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리콴유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한국도 수차례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美 CIA, 우크라 사태에 개입했다” “친서방 뿌리는 극우와 파시스트”

    1997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러시아가 맞부딪히는 최전선이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이 서방과 러시아의 패권(覇權) 다툼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러시아는 친러 시위대에 무기를 제공하고 정체불명의 군인을 파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경제적인 지원을, 러시아에는 경제 제재를 시작했다. 미국의 진보적 영화감독인 올리버 스톤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못잖게 미국의 우크라이나 개입이 문제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모스크바에 망명 중인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인터뷰한 스톤 감독은 지난해 2월 벌어진 ‘마이단 학살’ 사건의 배경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조기 총선을 통해 권력 이양을 약속한 야누코비치가 굳이 시위대를 정체불명의 저격수들을 동원해 피습할 이유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사건 직후 권력은 친서방 정치인들에게 넘어갔다. 스톤은 미 정보기관의 은밀한 개입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런 관측이 지나치게 음모론적이라는 비판에 스톤은 “큰 그림을 보라”고 주문했다. 2차 대전 당시부터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극우 세력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고, 종전 이후 나치 부역의 책임을 면제한 채 대소련 선전 및 침투 공작에 이들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 중앙정보부(CIA)의 비호를 받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1991년 러스 벨란트가 펴낸 ‘옛 나치, 새로운 우파, 공화당’이란 책에도 소개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월 “(친서방) 시위대의 중심에는 극우민족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된 ‘갈리시아 사단’을 운영했고 이들이 반공과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는 역사를 더듬은 것이다. 이곳에선 1920년대에 극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기구’가 결성되기도 했다. 그 흐름은 현재 극우정당인 ‘스보보다’가 잇고 있다. 10% 안팎의 지지를 얻는 스보보다는 지난해 2월 친서방 임시정부 구성 뒤 부총리와 교육·농업·환경부 장관직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을 확대했다. 반면 러시아는 지정학적 요소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이요, 잇닿은 흑해는 유럽으로 향하는 뱃길이다. 1954년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행정구역을 재편하며 흑해 함대의 사령부가 자리한 크림반도를 연방 내 우크라이나로 편입시킨 것이 실수였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가 수출용 가스의 80%를 우크라이나에 매설된 가스관을 통해 수출한다는 사실도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는 이유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천혜의 지정학적 조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친유럽과 친러 진영으로 갈려 협상력을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日, 독도·센카쿠 영유권 주장 모순 심각”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무단 침범한 중국 어선 선장을 일본 정부가 구속한 것이 발단이 돼 두 나라 사이에 피 말리는 갈등 상황이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서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본다면 중국의 판정승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센카쿠열도는 곧 분쟁 지역’이라는 점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일본이 영유권을 갖고 있는 마당에 전 세계 뉴스에 논쟁을 다룬 보도가 나가는 것 자체가 일본으로서는 손해라 할 수 있다. 센카쿠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의 대응은 한국의 ‘독도’ 정책과 여러모로 겹친다. 이는 곧 센카쿠와 독도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에서 자기모순이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일본 외무성은 센카쿠열도에 대해서는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해결해야 할 영유권 문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독도에 대해 ‘불법 점유’를 강조하는 것과 정반대다.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논의하자고 하는 반면 일본이 일관되게 거부하는 것도 독도 문제와 정반대 상황이다.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2년 쓴 관련 논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이 독도와 센카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 심각하다. 먼저 센카쿠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도 일관되게 일본의 영토”라면서도 “단지 무인도일 뿐 아니라 청나라의 지배가 미친 흔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 영토에 편입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도 살지 않는 주인 없는 섬을 실효지배했다는 얘기가 돼 버린다. 일본은 독도에 대해서도 무주지(無主地) 선점론과 고유 영토론을 왔다 갔다 했다. 1905년 일본 내각에서는 독도를 무주지로 규정하면서 영토로 취득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하지만 1954년에는 여기에 고유 영토였다는 주장이 추가됐다. 그러다 1962년에는 더이상 무주지 선점론을 거론하지 않는 대신 “독도가 옛날부터 일본 고유 영토였다”는 고유 영토설만 주장하는 것으로 논리를 바꾼 뒤 지금까지 그 논리를 이어 가고 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쉽지 않아 더 탐나… 美 의회 합동 연설

    쉽지 않아 더 탐나… 美 의회 합동 연설

    미국의 가장 큰 우방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일본 아베 신조(얼굴) 총리의 미국 방문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이번 방미를 계기로 상·하원 의회 합동연설에 나서거나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모르게 초청된 이스라엘 총리 1996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합동연설에 나서는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등 서방의 이란 핵협상을 비난하기 위해 백악관과 협의 없이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의 초청을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합동연설을 추진, 눈총을 받고 있다. 다음달 3일(현지시간) 연설에 앞서 백악관과 의회, 이스라엘 간 공방이 계속 오고 가는 상황이다. 4월 말쯤 방미할 것으로 보이는 아베 총리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합동연설을 추진 중이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친 상황이다. 도대체 합동연설이 무엇이길래 두 나라 정상의 합동연설이 연일 도마에 오르는 것일까.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원장을 지낸 도널드 만줄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2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온 외국 정상들의 상·하원 합동연설에 대해 “미 의회 리더들은 미국의 외교정책과 국민 여론 형성을 위한 의회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외국 정상 등 중요한 인물을 초청해 연설하도록 해 왔다”며 “이는 외국 정상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미국 대표들에게 그들의 나라와 미국의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관점을 직접 전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만줄로 소장은 “몇몇의 합동연설은 외국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들이 일어난 직후에 열려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산으로 이어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해당국 정상들의 연설은 의원들은 물론 미국 국민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하원의장, 아베 연설 성사에 긍정적 의회에 따르면 외국 정상의 의회 연설은 19세기 초 시작돼 하원 리셉션에서만 이뤄지다가 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부터 상·하원 합동연설로 확대됐다. 의회 관계자는 “합동연설은 이제 미국의 우방과 동맹인 외국 정상 국빈 방문의 한 부분이 됐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미 대통령이 국빈으로 초청한 모든 외국 정상들이 합동연설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초청했더라도 합동연설은 하원의장과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의 결정에 달려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동연설을 하게 된 것은 베이너 의장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베이너 의장은 아베 총리의 첫 합동연설 추진에도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일본은 합동연설 가능성을 높게 보고 연설 내용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본 총리는 사상 처음으로 합동연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 대통령은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1989년 노태우, 1995년 김영삼, 1998년 김대중, 2011년 이명박, 2013년 박근혜 대통령 등 이미 6차례에 걸쳐 합동연설을 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국빈 방문이 아니라 공식 실무방문이었는데도 합동연설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미 의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1993년 빌 클린턴 정부 이후 현재까지 외국 정상이 36차례 합동연설을 했는데 이스라엘 총리가 다섯 차례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한국 대통령 네 차례, 인도 총리 세 차례 순이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덕수궁 돌담길/서동철 논설위원

    “그 옛날에는 덕수궁 담 뒤에 있는 영성문 고개를 사랑의 언덕길이라고 일러 왔다. 영성문 언덕길은, 한편에는 유서 깊은 덕수궁의 돌담이 드높이 쌓여 있고 다른 한편에는 미국영사관, 지금의 대사관 돌담이 높다랗게 막힌 데다가 좌우편 담 안엔 수목들이 담장 밖에까지 울창한 가지를 내뻗어서, 마치 자연의 터널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남의 이목을 꺼리는 젊은 남녀들은 흔히 사랑을 속삭이고자 영성문 언덕길을 찾아왔던 것이다.”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된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의 한 토막이다. 영성문 언덕길이란 서울 신문로에서 덕수초등학교를 거쳐 미국대사관저로 이어지는 고갯길을 말한다.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의 후문 역할을 했던 영성문(永成門)은 1920년 헐렸다. 고갯마루에서 덕수궁 담장을 따라 서울시립미술관 너머까지 길게 이어지는 길을 덕수궁 돌담길이라고 부른다. 이 길이 오래전부터 낭만의 거리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덕수궁 돌담길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격동의 근대사가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덕수궁은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버리자 피란지에서 돌아온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을 임시 거처로 쓰면서 궁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이라고 불린 이곳에서 즉위했다. 같은 해 창덕궁이 완성되자 광해군은 행궁을 떠나며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이름을 내린다. 하지만 이후 200년 넘게 창덕궁과 경복궁에 정궁(正宮) 역할을 맡김에 따라 경운궁은 잊혀진 궁궐이 됐다. 넓었던 경운궁의 영역도 상당 부분 잠식됐다. 옛 정릉동, 곧 정동은 19세기 후반 구미 공관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떠오른다. 가장 먼저 공관을 개설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루시우스 푸트 초대 미국공사가 1883년 민씨 일가의 기와집을 사들인 것이다. 이후 영국공사관이 1884년, 러시아공사관이 1885년, 프랑스공사관이 1889년, 독일영사관이 1891년, 벨기에영사관이 1901년 자리 잡는다. 경운궁은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스포트라이트틀 받는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공세에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경운궁으로 환궁한다. 담장을 새로 쌓는 등 궁궐의 모습을 다시 갖추었다. 고종은 이듬해 대한제국을 열지만 1907년 퇴위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의 궁호(宮號)가 덕수(德壽)로 정해지면서 태황제의 거처는 덕수궁으로 불리게 됐다. 이후에도 덕수궁의 담장은 1960년대까지도 남쪽을 제외하고는 움츠러들기만 했다. 서울시가 덕수궁 돌담길을 완성하는 작업에 나섰다고 한다. 한말 영국공사관이 들어서며 막힌 둘레길을 잇기로 영국대사관과 합의했다는 것이다. 온전한 덕수궁 돌담길을 다시 걸으며 한말의 역사를 생각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아베, 美하원 연단 설 듯… 한인단체 반발

    아베, 美하원 연단 설 듯… 한인단체 반발

    아베 신조(얼굴) 일본 총리가 오는 4월 말 또는 5월 초 미국 방문에서 의회 하원 연설을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원 공동연설이 어려워지자 하원 연설로 선회한 것인데, 미주 한인단체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22일(현지시간) “최근 일본을 방문한 미 연방의회 대표단에 아베 총리가 의회 연설에 대해 적극적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들었다”며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비롯한 의회 지도부의 분위기도 긍정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당초 상·하원 합동연설을 추진해 왔으나 의회 내부 반발 등을 고려해 우선 하원 연설을 추진하고, 상황에 따라 합동연설도 마지막까지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방침이다. 의회 소식통은 “의원들이 아베 총리의 합동연설에 긍정적이지 않다”며 “하원 연설도 베이너 의장이 결정하겠지만 아베 총리가 어떤 내용을 언급할 것인지에 따라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많다”고 전했다. 오바마 정부와 의회 지도부가 과거사를 이유로 아베 총리의 의회연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내부의 기류를 알면서도 연설을 수락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 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미·일방위협력지침 재개정 등 실리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총리의 하원 연설이 성사되면 요시다 시게루(1954), 기시 노부스케(1957), 이케다 하야토(1961)에 이어 54년 만이자 역대 네 번째로 하원 연설을 하는 일본 총리가 된다. 그러나 상·하원 합동연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추진했다가 과거사 문제로 제동이 걸린 바 있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과거사에 대한 포괄적 반성을 표명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행보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정대위·위원장 이정실 조지워싱턴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이날 아베 총리의 의회 연설 추진 반대 청원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대위는 한인 등 미 시민들이 ‘아베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 없이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앞으로 보내도록 독려할 방침이다. 한인 풀뿌리운동단체 시민참여센터(KACE)도 같은 내용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졸업식에 담긴 ‘2015 희망과 꿈 그리고 사랑’] DMZ 작은학교, 평화를 외치다

    [졸업식에 담긴 ‘2015 희망과 꿈 그리고 사랑’] DMZ 작은학교, 평화를 외치다

    “이곳은 무럭무럭 꿈을 키우는 동네입니다. 이제 떠난다니 무척 서운해요.” 13일 오후 2시 경기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길 150 대성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 주인공들은 이렇게 목소리를 모았다. 2층 교실엔 DMZ(Dream Making Zone·꿈을 일구는 장소)이라고 쓴 커다란 그림이 눈길을 붙잡았다.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안에 자리한 대성동 마을을 지키는 아이들의 소망을 담은 듯했다. 제46회 졸업식에선 남녀 2명씩 모두 4명이 180~183호 졸업장을 받았다.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대성동 마을은 1953년 휴전협정을 통해 ‘공동경비구역(JSA)에 남북이 하나씩 마을을 남기자’고 합의해 생겼다. 현재 49가구 주민 207명이 살고 있다. ‘평화의 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곡창 지대를 가르며 흐르는 사천(沙川) 사이로 가깝게는 200여m를 건너면 북한 땅인 개성특별시 기정리 마을이 나타난다. 이날 졸업식엔 강당을 꽉 채우고도 남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저마다 한복을 곱게 갖춰 입은 아이들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질문엔 또렷또렷 시원하게 대답을 내놨다. 김예진(12)양은 “북한과 아주 가까워 무섭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우리나라와 미국 군인 아저씨들이 영어 등 공부를 가르쳐주는 덕분에 즐겁다”고 말했다. 졸업식에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재홍 파주시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서형석 소장 등 군 관계자, 교육청·시의회 관계자, 마을 주민, 재학생, 학부모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퓨전타악 동아리 등 재학생들은 언니·오빠들을 위해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를 열창하는 등 멋진 공연을 선물하며 마지막 등교를 배웅했다. 진영진 교장은 졸업생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수여하며 졸업과 진학을 축하했다. 정 장관은 학교에 ‘대성동초교 변천사 사진기록집’을 건넸다. 국가기록원에서 조사한 자료를 담아 뜻을 더했다. 졸업생들은 파주시 문산 중학교에 2명, 조리읍 중학교에 1명, 고양시 일산지역 중학교에 1명 진학한다. 1954년 22명으로 첫발을 뗀 대성동초등학교는 한때 전교생이 10명 이하로 줄어 폐교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2006년 공동학구로 지정돼 다른 지역 학생의 입학이 허용되면서 전교생 30명으로 커졌다. 파주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新국토기행] 부산 중구

    [新국토기행] 부산 중구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부산 중구는 20여년 전까지 부산시청을 비롯한 행정기관과 기업 및 금융기관, 상업시설이 집중된 부산의 중심이었다. 시청 이전으로 한때 침체기를 맞았으나 최근 제2롯데월드 등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등 전통시장의 시설 현대화사업과 영화 촬영지로 명성을 얻으면서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특히 중구는 일제강점기 부산항을 중심으로 일제의 대륙침탈 전초기지 역할을 하며 도시화가 진행,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수많은 청년이 이곳에서 강제노역이란 이름으로 배에 몸을 실었으며, 광복 및 6·25전쟁 당시 외국에서 귀국한 동포들과 피란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의 뜨거운 피와 메케한 최루탄 연기가 뒤섞인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기도 했다. 지금은 유통·숙박·문화·상업시설과 해양친수공간을 연계한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 볼거리 ●남포동·부평동 영화거리 ‘부산국제영화제(BIFF)광장’ 부산국제영화제가 1996년 출범과 더불어 남포동과 부평동 일대 극장가를 새로 단장하면서 탄생한 곳이 BIFF광장이다. 당시 ‘스타의 거리’와 ‘영화제의 거리’도 선포했다. 유명 영화감독과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영화 포스트, 야외 상설무대가 있어 매년 BIFF 전야제가 열린다. 광복 이후 한두 군데 극장이 생기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남포동 극장가는 1960년대에 이르러 20여개의 극장이 한꺼번에 들어서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영화거리가 됐다. 이곳은 부산극장과 대영시네마, CGV남포극장 등 극장이 한곳에 밀집돼 있다.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로 넘쳐나면서 부산의 젊은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랜드마크 부산타워가 우뚝 솟아있는 ‘용두산공원’ 부산 한복판에 자리 잡은 용두산공원은 산의 형태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4년 대화재로 소실된 이후 새로 조성되면서 120m 높이의 부산타워가 들어섰다. 부산타워는 부산의 상징이자 중구의 랜드마크로서 전망대에 오르면 부산 시가지와 부산항이 한눈에 펼쳐진다. 날씨가 맑으면 멀리 대마도까지 보여 중구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꼭 들러야 하는 명소 중 하나다. 요즘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영화흥행에 발디딜 틈 없는 ‘국제시장’-120년 전통 ‘부평깡통야시장’ 국제시장은 광복 이후 일본과 중국 등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모여들어 노점을 차리면서 시작됐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항에서 하역된 군수품과 생활용품 등이 국제시장으로 들어오면서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도매로 물건을 뗀다고 해서 ‘도떼기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먹자골목과 젊음의 거리, 만물의 거리, 아리랑 거리, 구제 골목 등으로 구분된다. 부평깡통시장은 초창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등 깡통 제품을 판매,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120년 전통을 자랑하는 향토 음식과 다문화 음식 등 풍부한 먹을거리와 관광, 쇼핑이 어우러진 전국 최초의 야시장이 불야성을 이룬다. ●부산 민주항쟁의 산증인 ‘보수동 책방골목’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전쟁 당시 손정린(현 보문당서점 대표)씨 부부가 미군부대에서 나온 잡지와 만화 등을 판매하는 좌판을 차린 게 계기가 됐다. 휴전 직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학생과 문인들의 문화적 갈증을 없애주던 문화공간 구실을 했으며, 부산 민주항쟁의 한몫을 담당했다. 현재 국내 유일의 책방골목으로 명성을 이어가며 40여개 서점이 영업하고 있다. ●일제 침략의 상징 ‘부산근대역사관’ 일제 강점기인 1929년 건조된 역사관 건물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됐다. 광복 이후인 1949년부터 미국 해외 공보처 부산문화원으로 사용됐다. 이 건물은 부산시민들의 끊임없는 반환요구로 1999년 미 문화원이 철수하고 우리 정부로 반환된 뒤 그해 6월 부산시가 인수했다. 시는 일제침략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을 시민들에게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3년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조성했다. 이곳에는 외세의 침략과 수탈로 형성된 부산의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개항기 부산, 일제의 수탈과정, 근대도시 부산,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 부산의 근대거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부산 최초의 연륙교 ‘영도다리’… 2013년 47년 만에 재개통 1934년 11월 23일 개통된 영도다리는 부산 최초의 연륙교로서 길이가 214.63m로 내륙 쪽의 31.30m를 도개교로 만들었다. 육지 쪽 다리의 일부인 도개부가 하루 7차례씩 들어 올려졌는데 이 장관을 보려고 몰려든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영도다리는 1966년 9월 1일 안전을 위해 철거된 이후 그 자리에 새로운 다리가 건설돼 도개 중단 47년 만인 2013년 11월 27일 재개통됐다. 하루 한 차례 다리를 들어 올려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산비탈 위 산복도로마을에 설치된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삶의 터전을 잡으면서 형성된 산복도로마을에 지난해 전국 최초로 주민복지형?모노레일이 설치돼 주민들로부터 큰?호응을?얻고?있다.?이?모노레일은?산복도로?고지대?서민의?이동수단이자?관광자원으로도?활용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수산시장 ‘자갈치 시장’ 국내 최대의 수산시장으로 숱한 이야기와 화제가 쌓인 곳이다. 6·25전쟁 후 여인네 중심의 어시장 형태로 자리를 굳히면서 ‘자갈치 아지매’라는 정겨운 이름까지 생겨났다. 부산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부산의 대명사로 불리며 억척스러운 경상도 아줌마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파닥거리는 생선의 물 튀기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로 늘 시끌벅적한 전통시장이다. 항구에서 갓 잡아올린 생선들이 중매인을 통해 생선가게로 공급되며, 생선가게와 횟집에선 싱싱한 생선을 사시사철 입맛에 따라 맛볼 수 있다. 시장 건물 밖 노점에는 생선 파는 아낙네들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행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국내 최대 어항 특유의 번잡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 먹거리 ●100년 이상 역사 자랑하는 ‘부평시장 어묵 골목’ 수산물이 풍부했던 부산에서 만들어진 부산어묵의 역사는 100년 이상 될 만큼 두텁다. 노점상에서 판매하는 불량 음식의 대명사였던 어묵은 이제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해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부평시장은 부산 어묵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부평동 사거리 새콤달콤한 유혹 ‘족발 골목’ 광복동과 부평동을 연결하는 이면도로의 중심부 부평동 사거리에는 부산 최대의 족발 골목이 자리하고 있다. 족발 집마다 입구에 무더기로 쌓아놓은 족발이 행인의 입맛을 자극한다. 족발 특유의 구수한 맛과 냄새는 식욕을 돋우고 채소와 어우러진 족발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버무려 먹는 맛은 족발의 신세계를 선사한다. ●고추장 양념 버무린 곰장어와 싱싱한 활어회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가 생선회다. 자갈치시장에는 수많은 횟집이 밀집, 싱싱한 활어를 직접 골라 곧바로 회를 즐길 수 있다. 또 ‘아나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곰장어요리도 자갈치시장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자갈치시장 곰장어요리는 산 곰장어를 매콤한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연탄불에 구워먹는데 부산 앞바다의 정취가 한데 어울려 절로 술을 부른다. ●해바라기씨·호박씨·땅콩 넣어 고소한 씨앗 호떡 부평동 깡통야시장의 명물 ‘씨앗 호떡’은 밀가루 반죽에 설탕에 버무린 해바라기씨와 호박씨, 땅콩 등을 넣은 것으로 고소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부평동과 남포동 일대에 조성된 BIFF광장에는 씨앗 호떡을 비롯한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구수한 향에 건강은 덤 ‘죽 골목’ 부평동 깡통시장에는 죽 골목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는 잣죽을 비롯한 깨죽과 호박죽, 녹두죽, 콩죽, 수수죽 등 육지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식을 이용해 죽을 쑤어 팔고 있다. 물엿만큼이나 뻑뻑하게 쑤어내는 죽 맛은 구수하기 그지없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이다. 특히 치아가 좋지 않은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게 더없이 안성맞춤인 영양식이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260년 금녀의 벽’ 허문 여제와 공주

    ‘260년 금녀의 벽’ 허문 여제와 공주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영국의 앤 공주 등 여성 7명이 260년 만에 ‘골프 발상지’로 불리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클럽(R&A)의 첫 여성 회원이 됐다. R&A 골프클럽이 11일 발표한 여성 회원은 소렌스탐과 앤 공주 외에 메이저 대회에서 4승을 거둔 로라 데이비스(영국), 스코틀랜드 여자 아마추어 대회에서 7승을 거둔 벨 로버트슨(영국),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한 흑인 선수 르네 파월(미국), LPGA 투어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인 루이스 서그스(미국), 국제골프연맹(IGF) 회장을 지낸 선수 출신 랠리 시가드(프랑스) 등 7명이다. R&A 골프클럽은 3년 내에 여성 회원 수를 15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1754년 설립된 R&A 골프클럽은 그동안 남성들만 회원으로 받아오다가 지난해 9월 여성 회원의 입회를 허용하기로 하며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 이 골프 클럽은 20년 전까지 입구에 ‘개와 여성은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세워 놓았을 정도로 여성차별이 심했던 곳이다. 영국왕실골프협회 역할을 하는 이 골프클럽은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하나인 브리티시오픈을 주관하고,세계 골프 규칙을 만들고 개정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 선정된 여성 회원 7명 가운데 6명이 골프 선수였고, 앤 공주만 비골프선수 출신 회원이 됐다. 앤 공주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승마 선수로 출전한 경력이 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두산그룹] 역대 상의회장 14명 중 4명이나 배출

    ‘두산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954년 공식 출범한 대한상의에서 2015년 현재까지 14명(연임 포함)의 회장이 거쳐 간 가운데 두산그룹에서 배출한 역대 회장만 4명이다. 1961년 대한상의 역사의 3분의1이 넘는 시간을 두산그룹 출신 회장들이 집권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한상의는 박씨 집안 것이라는 이야기가 농담 삼아 나올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산그룹과 대한상의의 첫 인연은 고 박승직 창업주가 1905년 민족계 은행과 상사 등을 지배하려는 일본 상인들에 맞서 조선 상인들이 결성한 경성상업회의소(대한상의 전신)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부터다. 이후 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이 1967~1973년 대한상의 회장을 맡았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재계 최초로 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수창 전 두산 회장도 1980~1988년까지 대한상의 회장을 맡았다. 초대 회장의 넷째인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은 회장 시절인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상의를 이끌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2013년 7월 대한상의 회장을 사임하면서 14만 상공인을 대표하는 대한상의 회장직에 올랐다. 박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이 되면서 대한상의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달 임기가 만료되는 박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직을 연임할 전망이다. 서울상공회의소는 오는 24일 정기 의원총회를 열어 임기 3년의 22대 회장을 선출한다. 서울상의 회장은 관행적으로 대한상의 회장을 맡는다. 박 회장은 신년 인터뷰에서 “(회장직을) 1년 8개월 수행했는데 제가 한 번 더 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여쭤 봐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해 연임 의사를 보였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 천재 수학자의 비극적 삶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 천재 수학자의 비극적 삶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게임/앤드루 호지스 지음/김희주·한지원 옮김/동아시아/872쪽/3만 6000원 너저분한 외모에 말을 더듬었지만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아이가 있었다. 미적분에 대한 지식 없이도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독학하던 이 소년은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해 첫사랑을 만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는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 입학해 수학을 전공하며 수치해석, 확률, 통계에 큰 관심을 보였다. ‘계산가능한 수와 결정문제 적용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지능을 가진 ‘만능기계’에 대해 언급한다. 2차 대전 중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난해한 나치독일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해 잠수함 유보트를 괴멸시키고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컴퓨터의 아버지’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앨런 튜링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허무하고도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다.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1885년 형법 개정법 제11조에 어긋나는 중대한 외설행위’로 체포되고, 1952년부터 2년간 재판을 받고 결국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요법 형벌을 받았다. 맨체스터대 왕립연구소에서 해임됐으며 컴퓨터 개발에서도 손을 떼야 했던 그는 결국 1954년 6월 7일 41세라는 나이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먹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게임’은 튜링의 출생부터 어릴 때의 일화, 대학시절 모습, 암호해독 과정 등 그의 학문적 성과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서술한다. 옥스퍼드대 수리물리학 교수인 저자는 튜링을 알았던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공들여 모아 인류의 역사를 바꾼 천재 수학자의 삶을 재구성했다. 과학적 정확성과 명료한 스타일,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모범적인 과학전기라는 평가를 듣는 책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움푹 파인 오랜 상처는 저 깊은 곳에 묻어두오

    움푹 파인 오랜 상처는 저 깊은 곳에 묻어두오

    강원 양구는 흔히 ‘최전방의 군사도시’ 정도로 인식된다. 부분적으로는 그리 볼 수도 있지만, 품고 있는 자연과 삶의 풍경들을 보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표적인 게 고산준령에 둘러싸인 거대한 분지 펀치볼이다. 시계가 탁 트인 날엔 정말 거대한 ‘화채 그릇’처럼 보인다. 분지 바닥에 눈이라도 쌓이면 꼭 요거트가 가득 채워진 듯하다. 이 모습 하나만으로 양구를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여기에 화가 박수근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박수근미술관과 전쟁기념관, 국토정중앙천문대 등 은근히 볼 게 많다.양구는 호반의 도시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지도를 보면 금방 확인이 된다. 북쪽으로는 파로호를 사이에 두고 화천과 이웃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소양호 상류의 물줄기를 인제와 공유하고 있다. 두 호수의 물을 가두고 있는 평화의 댐, 소양댐 등이 각각 화천, 춘천에 속해 있어 상대적으로 양구의 이름이 덜 알려졌을 뿐 이처럼 거대한 호수를 두 개나 품고 있는 지역은 사실 찾아보기 쉽지 않다. 양구에 안개가 자주 끼는 건 이 때문이다. 호수의 수온과 외부의 온도차가 큰 날엔 어김없이 짙은 안개가 몽실몽실 피어난다. 지역 간 차이도 심하다. 춘천에서 양구읍내로 들어가는 웅진터널 초입까지는 멀쩡하다가도 터널만 나서면 10m 앞도 분간하기 힘들 만큼 안개가 낀다. 이 덕에 곧잘 서정적인 아침 풍경이 펼쳐진다. 양구의 대표 아이콘인 ‘펀치볼’(Punch Bowl)의 정식 명칭은 해안분지(亥安盆地)다. 한데 그보다는 펀치볼이라는 이름이 훨씬 귀에 익다. 펀치볼은 화채 그릇이란 뜻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해안분지를 내려다본 뒤 펀치볼이라 불렀고, 그 이름이 여태 이어지고 있다. 펀치볼은 격전지였다. 한국전쟁 당시 양구가 무대였던 9번의 큰 전투 가운데 4번의 전투가 펀치볼에서 벌어졌다. ‘무적 해병’의 신화가 만들어진 ‘도솔산 전투’와 40일 동안 주인이 6번이나 바뀌었다는 ‘가칠봉 전투’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펀치볼이 속한 행정구역은 해안면이다. 돼지 해(亥) 자에 평안할 안(安) 자를 쓴다. 이런 희한한 이름을 갖게 된 내력은 이렇다. 아주 오래전 해안분지 일대는 해발 600m까지 물이 차 있었다고 한다. 습한 지역이었던 탓에 뱀이 많이 서식했는데, 주민들은 무시로 출몰하는 뱀을 퇴치할 방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한데 지나던 승려가 집집마다 돼지를 키울 것을 권했다. 돼지는 뱀, 개구리 등을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데다 뱀에게 물려도 두꺼운 비계 때문에 독이 퍼지지 않았다. 뱀의 천적이었던 셈이다. 그 덕에 주민들은 편하게 농사를 짓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안분지의 남북 길이는 11.95㎞, 동서는 6.6㎞다. 둘레는 무려 33㎞에 이른다. 크기가 근 백리에 달하는 초대형 화채 그릇인 셈이다. 왜 첩첩산중에 이런 분지가 생겼을까. 일부에선 거대 운석과의 충돌설을 주장한다. 한데 이 정도 크기의 운석과 충돌했다면 그 여파로 지구는 또 한번 빙하기를 겪었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엔 ‘차별침식’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게 대세다. 분지의 중심부는 화강암, 바깥쪽은 변성퇴적암이다. 지표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화강암은 지표상에 노출되면 심한 풍화작용을 일으킨다. 이 탓에 주변 산지의 변성퇴적암보다 중심부가 훨씬 빠르게 침식됐고, 가운데가 푹 꺼진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북한 땅이었던 해안분지를 되찾은 건 한국전쟁 뒤다. 1954년 유엔군 사령부로부터 ‘수복지구’ 행정권을 넘겨받은 한국 정부는 민북 지역에 대한 정책적 이주를 추진했다. 1956년 처음으로 해안면에 정착한 개척민들은 바로 그때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을지전망대에서 굽어본 펀치볼의 모습은 경이롭다. 바닥은 해발 500m대로 푹 꺼졌다. 마치 거대한 원반형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앉았던 듯하다. 그 주변으로 1000m가 넘는 고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쌌다. 서쪽은 가칠봉(1242m)과 대우산(1179m), 도솔산(1148m), 대암산(1304m) 등이 막아섰고, 동쪽엔 달산령(807m)과 먼멧재(730m)가 우뚝하다. 북쪽은 휴전선이다. 그 너머로 금강산의 봉우리 일부가 걸개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먼 길 달려 양구까지 온 것도 이 모습 한번 보자는 뜻이었다. 그 노고에 자연은 넘치도록 보상을 해 줬다. 펀치볼 주변엔 이른바 4대 안보 관광지가 있다.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 통일관, 양구 전쟁기념관 등이다. 을지전망대는 군사분계선 1㎞ 남쪽의 가칠봉 능선에 있다.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전망대다. 펀치볼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안개가 차오르는 겨울철에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다. 제4땅굴은 1990년 3월 양구 동북쪽 26㎞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됐다. 군사분계선에서 1.2㎞ 떨어졌다.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은 해안면 통일관에서 신청서를 작성한 후 갈 수 있다. 전쟁기념관은 통일관 바로 옆에 있다. 양구까지 와서 박수근미술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양구는 박수근(1914∼1965)이 나고 자란 곳이다. 정림리 생가터에 2002년 박수근미술관이 조성됐다. 미술관을 중심으로 아담한 정원과 숲길이 조성돼 있어 가족 나들이를 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미술관은 언뜻 산성을 연상하게 할 만큼 견고한 외벽을 둘렀다. 바로 옆에는 포스트모더니즘풍의 건물이 함께 서 있다. 상충되는 이미지의 건축물들이 고향의 색감 아래 혼재돼 있다. 미술관에서는 박수근이 그린 그림과 삶의 편린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족들과의 애틋한 사연, 당대와 불화한 예술인의 쓰디쓴 인생 역정 등을 엿볼 수 있다. 미술관은 박수근의 유품, 습작, 판화, 삽화 등을 상설 전시하는 기념전시실 두 동과 기념품 판매장으로 나뉜다. 미술관 밖은 개울가다.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을 소재로 수많은 걸작들을 쏟아낸 현장이다. 박수근 동상은 기념사진 명소다. 원래 가족 사진을 모티브로 제작됐는데, 사진에서는 ‘난닝구’를 입고 있지만, 동상은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게 차이다. 박수근 화백 작고 50주년인 올해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다양한 기념 전시회가 마련된다. 별 헤는 겨울밤을 체험하고 싶다면 국토정중앙천문대를 찾으시라. ‘한반도의 배꼽’이라는 양구의 정중앙점 부근에 건설된 천문대다. 천체투영실에서는 의자에 누워 가상의 밤하늘과 우주여행을 떠날 수 있다. ‘우주 이야기’를 담은 공상과학영화, 별자리와 우주에 대한 3D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천문대의 특성상 관람 시작 시간이 늦다. 양구의 여러 명소들을 둘러보고 와도 늦지 않다. 오후 2시부터 관람이 가능하며 대신 밤늦게까지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서울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춘천을 지나 양구로 향한다. 양구읍에선 45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돌산령 터널을 지나 해안면이다. 옛길은 돌산령터널 직전에 우측 옛길 입구로 올라가야 한다. 한데 옛길로 가면 풍경은 좋지만 겨울에는 제설 작업이 안 돼 위험할 수 있다. 46번 국도 대신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국도보다 다소 빠르게 갈 수 있다. 양구북한관 480-2674. 양구의 명소 두타연은 동절기에 오전 9시~오후 4시까지 출입할 수 있다. 월요일은 쉰다. 이목정안내소 482-8449. 숲 해설가와 함께 ‘펀치볼 둘레길’을 돌아보려면 양구국유림관리소(481-8565)에 예약해야 한다. 박수근미술관(480-2284)은 양구 초입, 국토정중앙천문대(480-2586)는 도촌리에 있다. →맛집:해안면의 정주골(481-6777)은 시래기고등어찜, 산채정식 등을 잘 한다. 시래원(481-4200)은 시래기정식, 시래기닭찜을 내준다. 남면 도촌리에 있다. 광치막국수(481-4095)는 막국수와 돼지고기 편육이 맛있는 집. 양구 읍내의 석장골오골계식당(482-0801)에선 갖은 양념에 잰 오골계를 숯불에 구워 먹는다. →잘 곳:양구 KCP호텔(482-7700)이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한국관광공사의 베니키아 호텔 체인에 가입돼 있다. 읍내에선 센츄럴모텔(481-2121)이 깔끔한 편. 남면의 광치자연휴양림(482-3115)도 인기다. 해안면 쪽에는 평화펜션(481-5672), 펀치볼민박(481-0878) 등이 있다.
  • [설 선물 특집] 금강제화 - 시집 안간 누나가 반길 ‘글램’ 핸드백

    [설 선물 특집] 금강제화 - 시집 안간 누나가 반길 ‘글램’ 핸드백

    금강제화는 경기 침체를 고려해 부담 없는 가격대에 실속 있는 패션 아이템과 선물받는 사람이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상품권 등 다양한 설 선물 품목을 준비했다. 남성들을 위한 선물로는 정통 신사화 ‘리갈’이 있다. 견고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졌으며 바닥에 코르크 소재를 사용해 오랜 시간 신어도 피로감이 적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1954년 출시 이래 연평균 30만 켤레, 누적으로 1000만 켤레가 판매될 정도로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제품이다. 가격은 19만 8000원. 여성들을 위한 선물로 브루노말리의 봄, 여름 시즌 신상품 ‘글램’ 핸드백이 있다. 이탈리아 본고장 느낌을 살린 볼로냐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취향에 따라 숄더, 토트, 백팩까지 다양한 스타일 연출이 가능하다. 블랙과 실버 두 가지 색상으로 출시된 브루노말리 글램 핸드백 가격은 65만원이다. 또 금강제화에서는 미국 정통 골프웨어 PGA 투어, LPGA의 의류를 비롯해 백팩, 지갑, 벨트 등도 만날 수 있다. 이번 봄 유행 색인 노란색에 프리미엄 덕 다운을 사용한 LPGA 조끼(30만 8000원)는 겨울과 봄 사이의 아이템이다. 스타일을 살려 주는 동시에 넉넉한 수납과 편안함을 주는 랜드로바 백팩(8만 8000원)은 신학기를 맞은 청소년을 위한 선물로 좋다. 이 밖에도 금강제화의 ‘금강상품권’은 다양한 패션 상품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게 장점으로 5만원부터 50만원까지 다양한 권종으로 구성됐다.
  • 기일에 맞춰… 가족 품에 안기는 6·25 참전용사

    6·25전쟁 때 전사한 국군 참전용사의 유해가 본인 기일(忌日)에 64년 동안 애타게 기다린 가족의 품에 안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북한군과의 교전 중 전사한 고(故) 김영탁 하사(당시 23세)의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 장관 명의의 위로패, 유품 등을 28일 고향인 경북 청도에서 여동생 김경남(84)씨에게 전달한다고 27일 밝혔다. 육군 9사단 29연대 소속이던 김 하사는 1950년 9월 입대했고 1951년 1월 15일 강원도 정선·강릉 일대에서 인민군 침투부대 격멸작전에 참여했다 전사했다. 군 당국은 1954년 김 하사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도 김 하사 유해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유족들은 다만 1951년 1월 16일(음력 1950년 12월 9일)부터 김 하사가 보이지 않았다는 주변의 증언을 토대로 음력 12월 9일을 기일로 정해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 유해가 전달되는 28일은 음력으로 12월 9일이다. 하지만 60여년이 지난 2013년 9월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 동해시에 사는 김기준(76)씨로부터 “아버님이 동해 망상동 선산 인근에 국군 전사자 일부를 매장했다고 말씀하셨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후 감식단은 제보지역에서 7구의 유해와 함께 현장에서 군번 ‘1136180’이 선명하게 새겨진 스테인리스 재질의 인식표와 버클, 단추 등을 함께 발견했다. 이후 유전자 감식 등 15개월 동안 확인 작업을 벌인 결과 유해 1구와 유품의 주인공이 김 하사로 확인됐다. 여동생 경남씨는 “살아생전 오빠를 현충원에 모시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가슴에 묻었던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00년부터 국군전사자 8477구를 발굴했고 이번에 김 하사의 신원을 포함해 모두 100명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에게 통보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얼어붙은 최영함, 이상 없을까…캐나다 토론토함 소식에 다시 화제

    얼어붙은 최영함, 이상 없을까…캐나다 토론토함 소식에 다시 화제

    ‘얼어붙은 최영함’ 얼어붙은 최영함 사진이 다시 한번 눈길을 끌고 있다. 해군 순항훈련에 참가한 최영함(4400t급)이 선체 곳곳이 꽁꽁 얼어붙은 채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입항하는 모습이 러시아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모았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21일 “최영함이 마지막 기항지인 블라디보스토크 항으로 이동 중 파고 6∼7m, 풍속 60∼70노트, 기온 영하 16∼18℃ 등 악천후를 만났으나 각종 무기체계 및 장비 작동에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러시아 해역에서 눈 폭풍을 만나 함포와 함수, 갑판 난간 등이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작전수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해군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대공 미사일인 SM-2와 함포 등 함정 내 무기체계는 고온 및 저온에도 작동이 가능하도록 자동 보온·보냉·항습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임관을 앞둔 해군 사관생도 등이 참여한 해군 순항훈련전단은 지난 9월 18일 진해항을 출항했으며, 오는 23일 진해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이번 순항훈련에는 ‘아덴만 여명 작전’ 때도 활약한 최영함과 군수지원함인 천지함(4200t급)이 참가했으며, 순항훈련단은 미국 괌을 시작으로 호주, 인도, 러시아까지 12개국 12개항을 순방하며 90여일간 3만 7000여km를 항해했다. 해군 순항훈련은 1954년 이래 올해로 61회째다. 한편 캐나다 해군의 호위함 토론토함도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을 위해 나토군과 함께 대서양과 지중해 등에서 합동 해상작전을 벌이고 귀환하는 과정에서 꽁꽁 얼어붙어 화제가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얼어붙은 최영함 다시 화제…해군 “작동엔 이상 없어”

    얼어붙은 최영함 다시 화제…해군 “작동엔 이상 없어”

    ‘얼어붙은 최영함’ 얼어붙은 최영함 사진이 다시 한번 눈길을 끌고 있다. 해군 순항훈련에 참가한 최영함(4400t급)이 선체 곳곳이 꽁꽁 얼어붙은 채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입항하는 모습이 러시아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모았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21일 “최영함이 마지막 기항지인 블라디보스토크 항으로 이동 중 파고 6∼7m, 풍속 60∼70노트, 기온 영하 16∼18℃ 등 악천후를 만났으나 각종 무기체계 및 장비 작동에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러시아 해역에서 눈 폭풍을 만나 함포와 함수, 갑판 난간 등이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작전수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해군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대공 미사일인 SM-2와 함포 등 함정 내 무기체계는 고온 및 저온에도 작동이 가능하도록 자동 보온·보냉·항습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임관을 앞둔 해군 사관생도 등이 참여한 해군 순항훈련전단은 지난 9월 18일 진해항을 출항했으며, 오는 23일 진해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이번 순항훈련에는 ‘아덴만 여명 작전’ 때도 활약한 최영함과 군수지원함인 천지함(4200t급)이 참가했으며, 순항훈련단은 미국 괌을 시작으로 호주, 인도, 러시아까지 12개국 12개항을 순방하며 90여일간 3만 7000여km를 항해했다. 해군 순항훈련은 1954년 이래 올해로 61회째다. 해군 관계자는 “최영함과 천지함이 96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오는 23일 진해항으로 돌아오면 정밀 점검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얼어붙은 최영함, 캐나다 토론토함 화제…해군 “작동엔 이상 없어”

    얼어붙은 최영함, 캐나다 토론토함 화제…해군 “작동엔 이상 없어”

    ‘얼어붙은 최영함’ 얼어붙은 최영함 사진이 최근 캐나다 토론토함 소식에 다시 한번 눈길을 끌고 있다. 해군 순항훈련에 참가한 최영함(4400t급)이 선체 곳곳이 꽁꽁 얼어붙은 채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입항하는 모습이 러시아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모았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21일 “최영함이 마지막 기항지인 블라디보스토크 항으로 이동 중 파고 6∼7m, 풍속 60∼70노트, 기온 영하 16∼18℃ 등 악천후를 만났으나 각종 무기체계 및 장비 작동에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러시아 해역에서 눈 폭풍을 만나 함포와 함수, 갑판 난간 등이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작전수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해군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대공 미사일인 SM-2와 함포 등 함정 내 무기체계는 고온 및 저온에도 작동이 가능하도록 자동 보온·보냉·항습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임관을 앞둔 해군 사관생도 등이 참여한 해군 순항훈련전단은 지난 9월 18일 진해항을 출항했으며, 오는 23일 진해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이번 순항훈련에는 ‘아덴만 여명 작전’ 때도 활약한 최영함과 군수지원함인 천지함(4200t급)이 참가했으며, 순항훈련단은 미국 괌을 시작으로 호주, 인도, 러시아까지 12개국 12개항을 순방하며 90여일간 3만 7000여km를 항해했다. 해군 순항훈련은 1954년 이래 올해로 61회째다. 한편 캐나다 해군의 호위함 토론토함도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을 위해 나토군과 함께 대서양과 지중해 등에서 합동 해상작전을 벌이고 귀환하는 과정에서 꽁꽁 얼어붙어 화제가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얼어붙은 최영함, 캐나다 토론토함 화제…해군 “작동엔 이상 없어”

    얼어붙은 최영함, 캐나다 토론토함 화제…해군 “작동엔 이상 없어”

    ‘얼어붙은 최영함’ 얼어붙은 최영함 사진이 최근 꽁꽁 언 채 귀환한 캐나다 토론토함 소식에 다시 한번 눈길을 끌고 있다. 해군 순항훈련에 참가한 최영함(4400t급)이 선체 곳곳이 꽁꽁 얼어붙은 채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입항하는 모습이 러시아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모았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21일 “최영함이 마지막 기항지인 블라디보스토크 항으로 이동 중 파고 6∼7m, 풍속 60∼70노트, 기온 영하 16∼18℃ 등 악천후를 만났으나 각종 무기체계 및 장비 작동에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러시아 해역에서 눈 폭풍을 만나 함포와 함수, 갑판 난간 등이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작전수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해군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대공 미사일인 SM-2와 함포 등 함정 내 무기체계는 고온 및 저온에도 작동이 가능하도록 자동 보온·보냉·항습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임관을 앞둔 해군 사관생도 등이 참여한 해군 순항훈련전단은 지난 9월 18일 진해항을 출항했으며, 오는 23일 진해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이번 순항훈련에는 ‘아덴만 여명 작전’ 때도 활약한 최영함과 군수지원함인 천지함(4200t급)이 참가했으며, 순항훈련단은 미국 괌을 시작으로 호주, 인도, 러시아까지 12개국 12개항을 순방하며 90여일간 3만 7000여km를 항해했다. 해군 순항훈련은 1954년 이래 올해로 61회째다. 한편 캐나다 해군의 호위함 토론토함도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을 위해 나토군과 함께 대서양과 지중해 등에서 합동 해상작전을 벌이고 귀환하는 과정에서 꽁꽁 얼어붙은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톨릭의료원, 외과 살리기에 나섰다

     국내 최대 의료기관을 이끌고 있는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 최근 들어 전공의 지원 미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과 살리기에 나섰다. 의료 분야에서 외과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음에도 갈수록 지원자가 줄어 자칫 의료계가 ‘외과 슬럼프’에 발목이 잡혀 심각한 진료 차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우려 때문이다. 국내 의료기관이 구성원들의 뜻을 모아 특정 진료과 살리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톨릭학교법인은 15일 서울 서초동 법인 성당에서 법인 상임이사인 박신언 몬시뇰을 비롯한 법인 보직자와 의료원 관계자 등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생명존중의 영성 실천을 위한 가톨릭의대 외과학교실 비전선포식’을 갖고 외과 중흥책을 제시했다. 이날 비전선포식에는 박신언 몬시뇰 외에 강무일 가톨릭중앙의료원장, 직할병원장, 박조현 가톨릭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김종석 대한외과학회장, 김광태 국제병원연맹회장, 외과학교실 김인철·김세경 명예교수, 이준 외과학교실 동문회장과 학교법인 산하 8개 병원 외과 교수 및 전공의 등이 참석했다.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은 ‘외과의 발전 없이는 우리 의료계도 내일이 없다’는데 뜻을 같이 하고, 다양한 외과 발전책을 제시했다.  박신언 라파엘 몬시뇰은 “지난 1954년 발족해 60년의 전통을 가졌을 뿐 아니라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하면서 한국 이식외과와 면역학 발전에 신기원을 이룬 가톨릭대 의대 외과학교실은 생명을 살리는 최선봉이자 생명존중 영성 실천의 기관 이념을 실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임상의학교실”이라면서 “외과학교실에서 제시한 발전 방안에 동감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박조현 서울성모병원 외과 주임교수는 “앞으로 법인 및 의료원 등 상위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우수한 전공의 확보를 위한 최상의 수련과 맞춤형 교육시스템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수련과정에서의 복지혜택도 대폭 확충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전공의를 단순 진료인력으로만 보지 않고 피교육자로서 정당하게 대우할 것”이라면서 “80시간 근무, 대체인력 확보, 4년차 전공의 해외연수, 내시경초음파실 파견근무, 인센티브 제공 등의 실천 뿐 아니라 의료원 산하병원, 동문, 협력병원 등과 같이 협의해 전공의들의 수련 이후 진로를 적극 보장하는 등 파격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박 교수는 “미래 외과의 중심은 이식수술 분야”라면서 “국내 최초의 신장이식을 필두로 이식수술을 주도해 온 가톨릭의료원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2년 내에 의료원 산하 최소 5개 병원에서 다기관 협진으로 이뤄지는 신장·간이식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식수술은 몸의 중요한 장기를 교체하는 수술인 만큼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대수술이 대부분이다. 교수급 의사 3명과 전임의 3명, 전공의 6명 등 이식외과 외에도 관련 진료과 의사를 합해 12명이 수술에 참여할 뿐 아니라 수술 지원인력 등 20여명의 인원이 필요한 분야다.  박 교수는 이와 관련, “의료원이 서울성모, 여의도성모, 의정부성모를 비롯한 8개 부속병원으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의료기관으로 성장했지만 각 병원마다 이식팀을 따로 구성해 운영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좀 더 효율적인 이식수술을 위해 다기관 협진을 구상 중이며, 연구 역시 다기관 공동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의료계에서 외과는 진료가 어렵고 위험해 ‘의료계 3D 업종’으로 불리고 있다. 게다가 수가 등 보상체계도 다른 전공과와 다르지 않아 전공의 지원자들의 주요 기피 분야가 되었다. 실제로, 2015년 외과 1차 전공의 모집에서도 대부분의 병원이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했으며, 지방의 경우 단 한명의 전공의도 확보하지 못한 병원이 많다.  이런 현상은 전공의 부족현상으로 이어져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가 인상이나 전공의 발전기금 조성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 되었으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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