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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5만명 「그날의 감격」 되새겨/기념식·경회루 연회 이모저모

    ◎뙤약볕 아랑곳 않고 “통일” 의지 새로 다져/“「총독부」 철거는 한민족의 정신적 해방” 강조 김영삼 대통령은 15일 광화문 앞 광장에 마련된 광복50주년 경축식에 참석한 뒤 경복궁 경회루에서 내외귀빈을 초청,광복절 기념 리셉션을 베풀었다. ○…이날 상오10시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경축식장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이홍구 국무총리 등의 영접을 받으며 단상에 올라 3부요인과 김승곤 광복회장을 비롯한 애국지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다. 김대통령은 고 이동휘 선생의 손녀 리 류드밀라씨 등 애국지사와 후손 11명에게 대통령장과 독립장 등 각급 포상을 직접 수여하고 격려한 뒤 경축사를 낭독했다. 김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동안 광화문앞 광장을 가득 메운 5만여 청중들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10여차례 박수를 치며 연설을 경청했다. 경축사에 이어 김대통령은 통일과 미래에 대한 의지를 형상화한 남녀학생들의 집단체조를 관람했고 이어 손기정옹으로부터 「통일성화」를 인계받아 성화봉송단과 함께 통일전망대로 떠나는 황영조 선수에게 인계. 김대통령은 1시간 가량의 경축식이 끝난 뒤 이기택 민주당총재와 김종필 자민련총재등 단상의 초청인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행사장을 떠났다. 한편 가칭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은 정당대표가 아닌 탓으로 경축식 초청대상에서 제외됐다. ○…김대통령은 이어 이날 낮12시 경복궁내 경회루에서 열린 경축연회에 참석했다. 3부요인과 각계 인사·해외동포·주한외교사절단 등 1천여명이 참석한 이날 경축연회에서 김대통령은 『오늘 날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은 조국 광복을 위해 이름 없이 광야에서 사라진 수많은 애국열사와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조국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 덕분』이라고 추모했다. 김대통령은 『광복절인 이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면서 『6·25는 통일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으나 공산주의의 종말을 예고 하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전쟁이었다』고 평가하고 평화와 자유를 지키고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함께 싸운 우방국에 대해 국민을 대표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대통령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우리 민족이 정신적으로 해방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광복의 그날 만세를 부르던 심정으로 돌아가 위대한 나라,위대한 국가를 만드는 데 힘쓰자』고 역설했다. 경축연회에서 김대통령은 학창시절의 독립운동으로 이번에 독립유공자 포상인 애족장을 수여받은 홍영기국회부의장에게 감회를 물었고 홍부의장은 『옥중에서 맞은 해방의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당시의 감격을 회고했다. 이날 경축연회에는 이기택 민주당총재와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초청돼 지난 달 31일 청와대 회동에 이어 김대통령과 야당총재들의 만남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됐으나 이총재와 김총재는 개인사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 구총독부 건물 해체/일 언론 상세히 보도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언론들은 15일 한국의 해방 50주년 기념식과 일제식민지지배의 상징이었던 옛조선총독부 해체철거작업을 관련사진을 곁들여 보도했다. 언론들은 이날 김영삼대통령이 『건전한 한일관계의 구축은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하는 등 경축기념식행사모습 등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산케이(산경)신문 등은 이날 총독부건물 첨탑이 대형크레인으로 해체되는 사진과 함께 총독부 해체사실을 전했다.
  • 일류국가는 일류정치로(사설)

    진정한 광복인 통일을 향한 지표와 집권후반의 국정지표를 아울러 제시한 김영삼 대통령의 8·15경축사는 50주년의 역사적인 계기에 합당한,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충격을 주는 새로운 내용보다 국정최고책임자로서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한간 기본원칙과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일류국가건설의 목표를 밝힌 것은 실천적 의지의 표현으로서 더 설득력이 크다. 국민대화합과 지속적 개혁을 바탕으로 선진화와 세계화를 통해 수준높은 문화국가로서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일류국가를 만들자는 집권후반기 국정운영기조와 청사진은 정권적 차원을 넘는 민족적 차원의 비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나라 잃은 선대의 이상을 우리 후대의 현실로 만들기 위한 이 시대 국민의 과제이기도 하다.이러한 국가적 과제는 정치가 국민통합과 국력결집의 견인차로서 선진국수준의 책임과 역할을 다함으로써만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과연 우리정치는 파당적 권력투쟁보다는 국가적 통합,그리고 과거역행보다는 미래전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동서냉전이 종식되고 문민민주화가 실현되었으면 그만큼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을 신바람나게 하는 정치로 바뀔 만도 한데 어찌된 일인지 그동안 우리정치는 지역간·정파간·세대간 갈등과 구시대적 투쟁을 심화시키는 분열현상을 빚고 있다.특히 지방선거와 대형사고이후 그러한 분화와 해체현상이 가속화됨으로써 국민역량의 결집은커녕 국력의 분산과 낭비를 조장하는 후진적 모습이다.대통령이 강조한 분열이 아닌 통합의 새 정치는 국가발전을 위해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그런 점에서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뼈저린 성찰 위에 새 정치를 위한 다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계중심국가건설의 주체가 되는 일류정치와 정치인은 결국 일류국민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후진적 정치인을 가차없이 심판하지 않고 면죄부를 주는 수준 낮은 행태로는 정치선진화의 실현은 쉽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한반도 평화구축 「기본틀」 제시/김 대통령 광복절경축사에 담긴 뜻

    ◎「당사자 원칙」­「주변국 협조」 분명히/비핵화선언 등 기존합의 준수 강조 김영삼 대통령은 광복 50주년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기본원칙들을 제시했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 당사자간 협의와 대화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당사자원칙」이 그 첫번째의 것이다.주변국들은 「협조」할 뿐 결코 평화협상의 당사자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선언 등 모든 남북간 합의사항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도 못박았다.이는 6공말 남북간에 이뤄진 합의사항 준수를 김대통령이 처음 강조한 것이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정전 체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우리는 정전협정을 준수하면서 남북한 당사자간 협의에 의해 새로운 평화체제를 모색하자는 입장이다.김대통령은 이같은 우리의 원칙을 다시한번 분명히 했다. 남북 양측의 견해가 팽팽하다.어느 일방의 양보없이는 교착상태 타개가 어렵다.이때 중요한 것은 국제 여론이다.어느 주장이 더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느냐가 관건이다. 그동안 우리는 주로 남북 당사자 원칙만을 강조해왔다.한반도에서 평화가 파괴될때 그 피해자는 바로 7천만 우리 민족임을 고려할때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6·25 참전국인 미국 중국 등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가의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김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당사자 원칙만 수용하면 주변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추후 협의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2+2」 「2+4」등으로 관련국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의 협의 과정에서 융통성을 갖자는 취지로 이해된다.아울러 최근에 이어졌던 북측의 비우호적 행위때문에 획기적이고 보다 구체적 제의를 담으려던 정부의 의지가 약화돼 대북 메시지가 다소 원칙론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김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이 있기 하루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미 평화협정체결」을 되풀이 주장하는 고루한 자세를 보였다.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의여론에 밀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응했듯 멀지 않은 장래에 남북 당사자원칙을 수용하게되는 상황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은 남북문제에 있어 특히 「인내」를 강조했다.쌀회담에서 보듯 북한의 태도는 종잡을수 없다.그에 일희일비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길은 멀어질 뿐이다.줏대를 갖고 일관성있는 정책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새로운 제안보다 기본원칙을 정리하고 기존합의를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한것 같다.쌀회담등에 따른 비판을 흔쾌하게 수용한 결과로 볼수 있다. 한편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광복 이후 50년 역사를 절대빈곤의 시대,남북대치와 군사독재의 어둠의 시대로 구분지은뒤 미래를 선진,통일의 시대로 규정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이라고 강조했다.통일을 위해 남북문제 해결과 함께 우리 내부의 화합,그리고 일제 잔재 해소를 역설해 시선을 모았다. 국내 문제와 관련,김대통령은 「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 사회 각 분야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될것을 촉구했다.특히 정치에 있어 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국민을 통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은 시기적으로 보아 특별히 의미있는 언급으로 받아들여 진다.
  • 김 대통령 8·15 경축사/전문

    ◎광복반세기 올해 남북관계 새 장 열길/민족정기 회복위해 총독부 철거 마땅/지속적 개혁… 21세기엔 역사의 전면에 친애하는 국민여러분,북한동포와 해외동포 여러분,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귀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사에 새 지평을 열자는 굳건한 결의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지금 우리의 귓전에는 잃었던 국권을 되찾은 기쁨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던 반세기전 그날의 환호가 생생합니다. 우리의 가슴은 온갖 고난을 뚫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반세기에 대한 깊은 감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다가오는 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대로 만들자는 굳은 다짐속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선열들의 축복과 7천만 겨레의 기대가 이 자리에 충만해 있습니다. 이 경하스러운 날을 맞아 나는 먼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묵묵히 땀흘려 일해 오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우리 겨레에게 지난 50년은 가혹한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운을 안은채 국가건설의 대장정에 나서야 했습니다.물려받은 빈곤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생존마저 위협받아야 했던 「절대빈곤의 시대」를 헤쳐나와야 했습니다.극단적인 남북대치와 군사독재 아래 민주주의가 질식하던 「어둠의 시대」를 뚫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사슬을 끊던 불같은 투혼과 강철같은 의지로 우리는 분연히 일어섰습니다.불과 한세대 남짓한 짧은 기간에 우리는 가장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제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뛰어올랐습니다. 민주의 씨앗이 싹트기조차 어렵던 그 메마른 땅위에 문민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웠습니다.민족의 자존을 크게 드높이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고히 세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의 당당한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자유와 풍요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선열들의 소망이 마침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내외동포 여러분.우리의 성취가 이처럼 빛나는 것임에도 우리의 광복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습니다.남북의 민족성원 모두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일 것입니다. 통일의 큰 길을 열기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평화없이는 통일된 조국은 물론 민족의 장래 또한 기약할수 없습니다. 나는 민족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해결되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책임은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의 협조와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안정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간의 합의사항은 존중되어야 합니다.평화의 첫걸음은 신뢰구축이며 신뢰는 서로 약속한 것들을 지키고 실천에 옮기는데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같은 기본원칙을 밝히면서 남과 북이 지금의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가운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야말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해가 되어야 마땅합니다.나는 북한이 조속히 안정되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오고 남북간에도 신뢰가 증진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국민여러분께 당부 드립니다.평화통일은 우리 모두의 절실한 염원이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것은 냉엄한 현실의 과제입니다.통일문제에 대해서는 환상적인 기대도,성급한 포기도 모두 금물입니다.꾸준한 인내심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그것이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광복 반세기라는 역사의 장을 넘기는 오늘 우리의 눈앞에 새 하늘,새 땅이 열리고 있습니다.우리 민족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는 21세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역사의 전면에 나설 아시아·태평양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선조들의 꿈과 후손들의 소망이 담긴 민족의 꿈을 활짝 펼칠 때가 왔습니다.우리는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제 나는 7천만 겨레의 여망을 모아 민족이 나아갈 길을 역사앞에 엄숙히 선언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조국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일류국가」로 만드는 것,이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사적 소명입니다.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는 세기로 만들어 나갑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나라의 각 분야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고루 확산되어야 하며 한차원 더 높은 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정치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낡은 틀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 정치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경제 또한 선진경제권에 진입해야합니다.경제의 규모가 더욱 커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고도화되어야 하겠습니다.또한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고루 나누어지고 삶의 질을 존중하는 경제가 되어야 합니다. 정당한 부가 존경을 받고 분배의 정의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통일에 대비하는 경제역량 또한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진정한 문화국가를 건설해야 하겠습니다.무엇보다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제도와 관행이 확고하게 정착되어야 하겠습니다.정신문화가 존중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실현되는 투명한 사회가 되어야합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자랑스런 민족문화를 꽃피워야 하겠습니다. 셋째,인류와 세계의 발전에 더욱 기여하는 민족이 됩시다. 우리는 지금 역동적인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만드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나아가,민족의 웅대한 꿈을 저 넓은 세계무대에서 펼쳐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와 긴밀하게 협력하고당당하게 경쟁해 나가야 하겠습니다.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진정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는 청산과 계승을 통한 창조의 과정입니다.우리는 오늘 옛 조선총독부를 철거하는 역사적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이 건물이 철거되어야만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경복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민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우리의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온 국민의 뜻과 의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옛 조선총독의 관저를 철거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 입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단순히 식민잔재의 외형적인 청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속에 남아있는 그릇된 역사의 잔재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한·일 두나라 관계가 불행했던 과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건전한 한일관계의 구축은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건전한 반성의 토대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애국선열 등 1천4백여분을 새로 독립운동 유공자로 모셨습니다.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열들의 애국애족정신은 우리가 이어 받아 후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나는 광복 전반세기와 후반세기를 잇는 대통령으로서 역사의 창조적 발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거대한 문명사적 변혁 앞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지금 안으로는 내실을 다지면서 밖으로는 21세기를 향한 역사의 격랑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더이상 미움과 분열과 갈등으로 소모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미움을 사랑으로,분열을 통합으로,갈등을 조화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나는 오늘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대대적인 특별사면과 복권을 단행하였습니다.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대규모의 일반사면도 실시할 계획입니다.이는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대화합을 이루어 새출발하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겠다는 충정에서 내린 결단입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이후에 이루어진 부정부패 관련자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했습니다.이것은 부정부패는 반드시 척결한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제 온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조국과 민족의 앞날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를 통해 위대한 국민만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우리 모두 다시 한번 한민족의 위대한 21세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을 세계화합시다.변화와 개혁을 힘차게 추진합시다.그리하여 세계의 중심에 우뚝서서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일류국가」의 꿈을 실현합시다. 50년후 광복 한 세기가 되는 그날,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진정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합시다.감사합니다.
  • 남북 문화교류 동질성회복 전제돼야

    ◎예술종합학교 예술연,「남북…」 종합보고서 발표/85년부터 합동공연…이질감속 상호 이해의 장/비무장지대 통일축제·나진항구 축제 등 제안 남북 문화교류를 분석한 종합적인 보고서가 발표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교장 이강숙)예술연구소 김춘미·김용환·민경찬·이영미 연구팀이 지난 1월부터 7개월간 연구작업을 통해 작성한 「남북 교류공연 분석및 통일지향적 공연구성안 연구」보고서가 그것으로 정치·경제등 타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진했던 남북문화 교류에 대해 그 원칙과 구체적인 교류방안까지 제시,눈길을 끈다. 연구팀은 남북문화교류의 장을 연 지난 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90년 제1회 범민족 통일음악회와 송년 통일전통음악회를 비롯,제3국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남북한 양측의 반응을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남쪽은 북쪽의 공연예술에 대해 「신파조」 혹은 「유치하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면 북쪽은 남쪽에 대해 「퇴폐적」「양풍」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85년 첫공연이 서로 이질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면 90년은 긍정적인 상호이해의 물꼬를 튼 만남의 자리였고 95년 올해는 서로 적극적인 동질성을 찾는 남북교류가 되어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남북문화교류는 △문화 최우선의 원칙 △문화 동질성 회복의 원칙 △문화 다원성의 원칙이라는 기본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의견이다. 남북문화교류의 동질성을 찾기 위한 대안으로는 전민족적인 대중적 공연물, 비무장지대등에서 벌이는 국제적 규모의 한민족 통일축제,음악전문인 중심의 교류공연,어린이 문화교류,윤이상음악제,남쪽사람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경제특구인 나진항구 축제등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그동안 정치적 흐름에 매어있던 남북문화교류를 순수 문화예술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예술연구소의 김춘미소장은 『광복50주년을 맞는 올해 남북통일은 실현가능한 일로 다가오고 있으며 예술문화계에서도 교류를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문화교류중 가장 대중적이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공연물 교류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 장애인 2백80명 한라산서 “통일기원”/극기등정대회 참가

    ◎성판악 출발 6시간 사투… 정상올라/가져온 천지물,백록담에 「합수식」도 장애인 2백80여명이 광복 50주년인 15일 6시간여의 힘겨운 사투 끝에 한라산 백록담 정상에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기원제를 올렸다. 「통일염원,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국제장애인협의회(회장 권홍사)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가 후원한 제2회 통일염원 장애인 한라산 극기등정대회(대회장 허삼수 국회의원) 참가자들은 섭씨 30도가 넘는 폭염과 험한 산길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정복에 성공했다. 이 대회는 지난 91년8월15일의 1회 대회에 이어 4년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6·25 및 월남전 전상자,시각 및 뇌성마비장애자,지체부자유자 등 전국 25개 장애인단체 회원 2백80여명과 자원봉사자 2백30여명 등 5백여명이 참가했다. 부산발 카페리편으로 이날 상오7시50분 제주항에 도착한 일행은 제주시가 마련한 환영식에 참석한 후 상오9시 해발 750m의 성판악에 모여 10개 조로 나누어 20여명의 대한적십자사 산악안전대원의 안내로 등정에 나섰다. 해발 1200m의사라악대피소까지 4㎞의 자갈길을 거쳐 3.3㎞ 떨어진 해발 1500m의 진달래밭을 통과하는 동안 몇몇 참가자들은 폭염과 험한 산길 때문에 한때 탈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등정을 계속,하오3시30분쯤 총연장 9.6㎞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라산 정상에 서는 기쁨을 맛보았다.몸은 불편하지만 「하면 된다」는 자활의지와 인간승리의 참모습을 보여준 쾌거였다. 등정에는 지난 14일 부산역광장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린 최현대(40·부산시 사상구 모라3동 주공아파트 104동 1403호)·이순옥(48)씨 부부 등 4쌍의 장애인부부와 한경송(57·부산시 동구 초량3동 627)·김낙순(50)씨 부부 등 부인이 해방둥이인 2쌍의 부부가 참가했다. 1급장애자인 김도곤(46·부산시 남구 대연3동 103의 4)씨 등 부산 장애극복하나회 소속 3명은 두 다리가 없는데도 끝까지 등정,다른 장애인에게까지 감동을 안겨줬다. 정상에 오른 장애인들은 지난해 7월10일 우리나라와 미국·중국 등 3개국 장애인 1백여명이 참가한 백두산 극기등정대회 당시 채취한 천지의 물과 흙을 백록담의 물과 흙에 서로 합치는 「통일기원제 및 합수합토제」를 봉행,1백만 장애인의 통일염원을 기렸다.
  • 무라야마 담화/사죄·반성 담겨/정부 평가

    정부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에 대해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 일본의 태도에 대해 주목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무부의 서대원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우리는 일본 정부가 전후 50주년을 계기로 진정한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철저하게 역사의 진실을 규명해 올바른 역사인식이 확립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바란다』고 말하고 『그러한 바탕에서만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우호협력 관계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 국론 분열 노린 전술적 공세/재야·운동권 부추겨 「연방제」등 선전

    ◎북은 통일대축전 왜 열었나 북한이 8·15 50주년을 맞아 판문점에서 개최한 「8·15통일대축전」은 우리측 당국과 민간의 분열을 노리는 통일전선전술적 대공세로 풀이된다. 이같은 성격은 「대축전 북측준비위」가 노동당 대남비서인 김용순을 위원장으로 노동당 전위기구인 조평통 중심으로 구성된데서 두드러진다.이는 북측이 우리측 당국이 제안한 8·15공동경축행사를 일언지하에 거부하면서 남쪽의 재야와 한총련 등 운동권의 참여를 적극 선동해온데서도 확인된다. 남한정부를 제외한 남북 및 해외친북인사 등을 초청한 군중집회성격의 대민족회의를 통해 북한의 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연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한마디로 북측이 8·15때마다 개최해온 범민족대회의 확대판인 셈이다. 다만 이번 대축전에서는 음악회와 미술전시회 등 문화행사를 종전보다 늘린 점이 특징이다.하지만 이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기본계급(노동자·농민계층)이외에 지식인·종교인·예술인 등 이른바 「보조역량」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한국내 「대중투쟁」을 부추기기 위한 저의가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민족통일대축전」 개막/밀입국 한총련대표 3명 참석 북한은 15일 상오 판문점에서 김용순 노동당 대남비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조국해방 50돌 민족통일대축전」 개막식을 개최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는 천도교 청우당 류미영중앙위원장 등과 북한의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밀입북한 한총련 대표 정민주·이혜정양,범청학련 공동사무국장 최정남 등이 참석했다. 이날 북측 대표로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조평통 부위원장인 안병수는 이번 행사의 개막이 『민족단합과 통일을 지향하는 온겨레의 드팀 없는(꿋꿋한) 의지의 시위』라고 주장했다. 정민주양은 『연방제 통일방안은 우리 민족이 처한 실정에서 통일을 가장 확신성 있게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북한의 통일방안을 찬양하는 내용의 대표연설을 했다. 통일대축전 참가자들은 이어 판문점 북측 지역에 건립된 김일성의 친필비를 돌아보았다고 북한 중앙방송이보도했다.
  • 어제 태극기 게양률 81.4%/새마을 지도자협 조사

    ◎예년 광복절 비해 두배 광복 50주년인 15일 전국 가정의 태극기 게양 비율은 81.4%로 나타났다.다른해 광복절의 게양비율 30∼40%보다 두배 이상 높은 것이다. 새마을 지도자 중앙협의회(회장 석종윤)가 이날 서울과 부산 등 전국 28곳의 1만3천9백42 가정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81.4%(1만1천3백49가정)가 태극기를 게양했다. 게양 비율은 서울과 인천 등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가,단독주택 지역(78%)보다는 아파트 지역(83%)이 다소 높았다. 협의회는 『지난 90년과 91년의 광복절에는 30∼40%만 태극기를 달았다』며 『50주년 광복절을 보다 뜻깊게 생각하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 한총련 1만5천명 격렬시위/판문점진출 무산

    ◎경찰과 공방… 하오 늦게 하산 「한국 대학 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 정태흥) 소속 대학생 1만5천여명은 15일 낮 12시쯤 경기도 고양시 동산동 삼송리 검문소 앞에서 범청학련이 판문점에서 개최키로 한 「8·15 민족공동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판문점 진출을 시도하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2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10시40분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연신내역에서 내려 집결한 뒤 구파발쪽으로 가려다 경찰의 저지를 받자 왕복6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투석전을 벌이며 격렬시위를 벌였으며 경찰들은 최루탄을 쏘며 이에 맞섰다. 이어 학생들은 삼송리 검문소 부근까지 진출,이곳에서 경찰과 다시 대치해 가로수 철제 받침대를 뽑아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시위를 계속했으나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막혀 해산했다. 이날 시위로 연신내역에서 구파발,삼송리에 이르는 6차선도로가 2시간30분 동안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또 시위과정에서 조선대생 나철원군(22·경영학과3년)이 머리가 찢어지는 등 학생 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연신내와 구파발역,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 등 시내 곳곳에 경찰 1백48개 중대 1만7천여명을 배치,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민족공동행사」 폐막 「8·15 50주년 민족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공동대표 이창복)는 15일 하오 서울대에서 8·15 민족공동행사 폐막 기자회견을 갖고 『민족공동행사가 추진됨에 따라 남북간 대결구도와는 무관하게 남북대중들은 화해와 통일을 바라고 있는것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남측준비위원회는 지난 4월22일 민족공동행사 발족 이후 4개월 동안 통일기행,통일자전거대회,거북이마라톤,통일음악회 등의 행사를 가진데 이어 이날 「남북해외의 7천만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북측준비위원회,해외준비위원회와 공동명의로 발표했다.
  • 지방행사 현장/경기­화성 화산 독지리서 「3·1운동 봉화」 올려

    ◎제주­법정사 승려들 「항일 만세대행진」 재현/부산­마안산 정상서 3·1운동 기념탑 기공식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 및 예술행사가 15일 전국 곳곳에서 다채롭게 마련됐다. 지역 주민들은 「광복 50주년 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로 행사들을 지켜보며 광복의 감격과 의미를 되새겼다.많은 주민이 자녀들과 함께 길놀이나 전시장,예술·문화공연을 관람하며 「나라 사랑」의 마음을 되새겼다. ○…제주에서는 상오8시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법정사 승려들의 항일운동 만세 대행진이 걸궁팀과 사물놀이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6시간에 걸쳐 재현됐다.중문 청년회의소가 주관했으며,1천여명이 참가했다.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공유수면 매립지에서는 제주 해녀항쟁 만세 대행진이 펼쳐졌고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는 영화인협회 제주지부가 아리랑 영화제를 마련해 도민화합과 통일의지를 일깨웠다. 하오에는 제주시 탑동 제주해변 공연장에서 제주 시립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끌리오합창단과 남녕고 합창단이 공동으로 광복 50주년 기념 「연합 음악제」를 마련해 광복절을 경축했다. ○…경기도 화성에서는 하오7시 우정면 화산리 봉화산과,이 곳에서 20여㎞ 떨어진 송산면 독지리 봉화산 등 두 곳에서 3·1운동을 알리는 당시의 봉화 올리기 행사를 재현했다. 가로·세로 1.5m,높이 2m의 봉화대에 불이 지펴지자 7백여명의 주민은 일제히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그날의 감격을 만끽했다. 수원의 경기도 문화술회관에서는 고 전동례 할머니의 체험을 토대로 일제에 저항한 제암리 주민의 비극적인 참상을 그린 창작 무용극 「제암리 아침」이 공연돼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명장동 마안산 정상에서는 3·1운동을 주도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3·1운동 부산 기념탑」 건립 기공식이 열렸다. 또 부산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한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리는 백산 독립기념관이 중구 대창동 옛 백산상회 자리에 문을 열었다.전시실 지하 1층에 백산선생이 사용했던 벼루·청동화로·가방·친필 서한 등 유품 12종 55점을 전시해 놓았다. ○…경남에서는 상오10시50분부터 진주시칠암동 경남도 문화예술회관에서 한국예총 경남도지회 주관으로 광복 50주년을 축하하는 종합연극 「지킴이」가 1시간40분 동안 무대에 올려졌다. 무용과 연극·민요 병창·풍물패·합창·태껸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을 한데 묶어 5막12장으로 구성한 이 극은 일제의 억압과 설움을 꿋꿋한 민족정신으로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극이 끝나자 배우·풍물패·합창단 등 1백30여명의 출연진 모두가 오색 방울이 날리는 무대로 나와 관람객들과 함께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대전시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대전 역사 창조를 위해 지난 6일부터 시민회관에 마련한 「광복과 대전 발전 사진전」에는 마지막 날인 이날도 1천5백여명이 몰렸다. 일제 때부터 21세기 청사진까지 주제별로 시대상황을 담은 사진 2백여점이 전시됐다.
  • 「광복 50」 뜻 기려 자전거 국토 종단(조약돌)

    ◎퇴직공무원 박덕조씨 대장정 15일 ○…지난해 6월 정년퇴직한 전 경인지방국세청 홍보계장 박덕조(62)씨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고 나라사랑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자전거로 부산에서 경기 금촌읍 통일동산에 이르는 국토종단을 눈앞에 두고 있어 화제. 자전거 앞뒤에 태극기를 꽂고 가슴엔 「우리의 소원 통일」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박씨는 지난 1일 낮 12시 부산 용두산공원 이순신장군 동상앞에서 출발,14일 하오 2시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사를 거쳐 광복 50주년을 맞는 15일 낮 12시 서울 금촌읍 교화리 통일동산에 도착 예정. 박씨의 국토종단 경유지는 부산∼김해∼밀양∼추풍령∼대전∼신탄진∼천안∼평택∼수원∼과천으로 이어지는 국도로 15일 내내 비교적 안전한 낮시간대에만 은륜의 종단을 계속. 그러나 부산 구포와 영동시 부근에서는 질주하는 대형트럭이 일으킨 바람에 밀려나 길옆 논둑으로 나뒹굴어지는등 5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박씨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의 땅과 우리의 정신을 더욱 더 사랑하자는 뜻에서 자전거종단을계획했다』고 설명.
  • 광복절 전야 곳곳 교통 대혼잡/도심 차량통제로

    ◎주요도로 밤새 북새통 광복 50주년 전야인 14일 밤 경축행사 준비에 따른 도심 교통통제로 서울시내 곳곳이 극심한 교통혼잡을 빚었다. 광복절 중앙경축식 행사를 위해 이날 하오 2시부터 15일 하오 7시까지 광화문∼세종로로터리,적선로터리∼동십자로터리 구간 교통이 전면통제되면서 종로,을지로,퇴계로,청계로 등 주요 도심대로는 통제구간을 피해 몰려 드는 차량들로 하오 내내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하오 6시를 넘어서면서 퇴근길 차량이 한꺼번에 몰려 종로와 을지로등은 4대문안 교통이 한때 마비되다시피했으며 이 여파로 성산로와 의주로등 도심을 빠져 나가는 대부분 도로는 물론 이면도로의 정체현상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또 이날 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광복50주년 기념 멀티미디어 영상쇼」에 청소년을 중심으로 10만명 가까운 시민이 몰려 여의도 주변도로와 인근 88대로등도 이어지는 차량행렬로 혼잡을 빚었다.
  • 대만·말련 등 축하행사…일에 사과 촉구/종전50주년…아태국 표정

    ◎학살고발 영화전·폭죽 터뜨리며 행진­중·대만/“경제대국 일 눈치”… 조용하게 보내 대조­동남아 2차대전 종전기념일인 8월15일은 일본에게는 패배의 날이지만 많은 아시아국가에게는 일본식민지지배로부터 해방된 환희의 날이다.종전 50주년를 맞아 한국·대만·호주 등은 이날 일본의 패전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를 벌이거나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과거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등 일본의 패전의 의미와 잔학상을 부각시켰다.하지만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동남아국가는 의도적으로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등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북에서는 수리눙 장군(74)을 필두로 20여만의 대만인이 북을 치고 깃발을 휘두르고 폭죽을 터뜨리며 시가를 행진,일본통치 종식 50주년을 기념. 이등휘 총통의 보좌관인 하우페이춘씨는 『50년전 오늘이야말로 중국인에게 가장 영광스런 날이었다』고 회고. 행진자중에는 「나는 중국인이다」란 표어를 내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부와 남부대만으로부터 올라온 이들도 끼어 있었다. ○…중국은 잔혹한 학살을 고발하는 영화상영과 우표전시회,신문사설등으로 일본항복 50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나 주요우방의 비위를 건드리는 않기 위해 신중한 반응. 특히 강택민 국가주석은 13일 발간된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일본군에 의해 3천5백만명의 인명손실을 입은 나라의 수뇌치고는 용의주도한 발언을 해 주목.『나는 모든 일본인과 정치인이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으며 또한 역사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중·일관계의 정치적 기조를 지켜나갈 것으로 믿는다』 한 중국관리는 사적으로 『일본 항복 50주년을 맞아 중국이 공식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 있는 마당이므로 일본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폴 키팅 호주총리는 14일 일본에 대해 2차대전중의 군국주의와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하고 어린이에게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교육시키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촉구. 키팅총리는 이날 호주의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가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인 15일을 맞아 『일본이 군국주의정책으로 이웃국들에게 커다란 희생과 손해를 입혔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가를 대표해 이에 대한 유감표명을 해주길 바란다』고 언급. 그는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였는데도 전쟁의 희생자였다는 메시지를 일본인에게 남겼다』면서 『일본이 전쟁을 시작한 만큼 전쟁은 일본의 사과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 ○…2차대전중 일본의 침략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동남아국가들이 말레이시아의 국지적인 행사개최를 제외하고는 종전 또는 해방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동남아국가들의 이같은 반응은 이 지역 최대의 경제협력 파트너이자 원조제공국으로 등장한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경제협력(21세기 한­일 새 지평:3)

    ◎수평 분업으로 공생체제 구축을/바람직한 한·일의 경제관계/경제블록화 대응,보완관계 필요/무역장벽 제거… 기술 등 공유해야 8·15광복 50주년을 맞는 지금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시대에 진입해있다.공산체제 붕괴이후 이념 전쟁대신 경제전쟁이 각국의 운명을 거는 싸움이 되었다.유럽국가들은 EU통합을 통해 국제경쟁의 우위확보에 초국가적인 대응체제를 구축했다.미국은 범미주의를 회복하고 세계경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으로 북미자유무역연합(NAFTA)을 출범시켰다.NAFTA는 미국의 기술과 자본,캐나다의 풍부한 자원 그리고 멕시코의 저렴한 노동력을 결합시키는 강력한 경제블록으로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동맹군의 성격을 띤다.이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대형공업국가들의 희생이 따르고 있다. ○충격흡수력 잃어 실제로 일본과 한국은 통화절상과 시장개방 압력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일본의 경우 8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의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플라자 협약에 의거,달러에 대한 엔화의 가치가 두배로 절상됐다.일본은고도의 기술축적에 힘입어 당시 통화절상의 충격을 힘겹게 이겨냈다.그러나 최근 들어 엔화절상압력이 다시 가해졌다.금년초 엔화는 달러에 비해 15%이상 절상됐다.여기에 미국이 슈퍼301조라는 초법적 무기를 통해 자동차등 주요 일본상품에 무자비한 무역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다.그러자 일본경제는 더 이상의 충격흡수 능력을 잃고 구조적 침체현상을 겪고 있다.그리고 엔화는 무력증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본경제가 퇴조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경제는 일단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자동차·철강·조선·반도체 등 주력 상품들이 일본수출시장을 잠식하면서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단기적 과도 현상일뿐 내면적으로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우선 이미 고개를 들기 시작한 원고가 수출증가를 반전시키고 있다.외세에 의한 이득을 외세에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산업기반의 대일 의존도가 커서 일본경제의 위기가 이전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 수출산업의 근간인 자본재와 원료·중간부품의 일본의존도가 30%나 된다.이러한 구조하에서 일본 엔화절상으로 인해 국내 물가가 오르고 산업전반에 걸쳐 고비용구조화하고 있다.결국 일본과 한국 두나라 경제가 함께 위기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 반사이익 그러면 광복 50주년을 맞아 향후 바람직한 한·일 경제관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양국 경제는 근본적으로 적대적 경쟁관계가 아니라 우호적 보완관계를 가져야 한다.국제 시장을 지배하는 유일한 논리는 힘의 논리이다.따라서 양국이 공동 대응능력을 기르는데 국경을 초월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이런 견지에서 한·일간의 수평분업을 통해 공생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양국 경제가 수직적으로 연결될 때 한 나라가 위험을 맞으면 다른 나라도 같이 위험을 맞는다.그러나 수평적으로 연결될 때 한 나라 경제가 위험을 맞으면 다른 나라가 이를 상당부분 상쇄하면서 위험제거효과를 가져온다.양국경제는 역사적으로도 대륙으로부터의 문물을 전수해가며 협조한 경험이 있다. ○시너지효과 기대 일본경제는 무역흑자때문에화를 입고 있다.일본의 연간 무역흑자는 1천3백억달러나 된다.지나친 흑자유입은 내부적으로 경제를 고물가체제로 만든다.또한 외부적으로 외국으로부터 통상압력을 거세게 받는다.무역흑자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난관을 자초한 것이다. 반면에 한국 경제는 만성적인 무역적자구조를 면치못하고 있다.경제발전이 기술개발에 의한 부가가치 창출보다는 단순조립을 통한 수출실적증대 위주였다.따라서 경제가 외형은 크나 내실이 없다. 이런 구조하에서 한·일 양국은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기술·자본·인력등 모든 생산요소에 대해서 공유체제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금세기초 식민지배 관계라는 앙금을 씻고 다가오는 2000년대의 한일 신시대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양국경제의 협조는 필수적이다.그러면 양국경제는 수출과 수입에 있어 불균형구조를 개선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양국 경제는 국제시장에서 어떠한 위협도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것이다. 이박에 한·일 양국은 상호보완 차원에서 북한 경제를 함계 도와 궁극적오로 북한도 공동번영체의 한 구성원으로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47세) ▲서울대 공대졸 ▲미 컬럼비아대 경영학 박사 ◎기업제휴 늘려 경제국경 낮춰야/한·일경제의 새로운 전개/한국 규모 커져 파트너로 재인식/반도체 교역급증… 역조개선 징후 올해는 제2차대전 종료 50주년이다.또 동시에 한일국교 정상화 30주년이기도 하다.전자는 「광복 50주년」으로서 한국인에게 선뜻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후자는 한국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내에 여러가지 견해가 있을 것이다.필자는 이것을 「개발 30주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한일국교정상화가 한국의 경제발전의 커다란 실마리가 됐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 실마리 한일국교정상화 추진이 미국의 대소련 포위망정책의 일환,즉 냉전의 산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권력기반이 아직 다져지지 않았던 60년대 초반에 박정희정권이 국교정상화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해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교섭의 타결을추진한 점이다.『조국을 근대화하는데 최초로 필요한 재원과 기술을 얻기 위해 한일관계는 타결되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이다』(김종필).이 선택이 올발랐던 것은 국민이 경제발전을 추진한 박대통령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 등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30년동안 한일경제관계를 간단히 돌이켜 보자.우선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양국의 무역관계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크게 변화했다는 점이다.한국의 대일무역은 65년 2억1천60만달러 규모에서 94년 3백89억1천3백만달러로 1백84배나 늘었다.연평균 19.7%의 신장률을 보였다.이러한 급격한 양적 변화는 당연히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그것은 일본의 한국으로부터의 수입품목의 구성변화에 명확히 나타난다.65년에 16.9%밖에 안되던 공업제품비율은 93년에는 80%에 달하고 있다.이 사실은 같은 해 일본의 수입전체에서 공업제품의 비율이 52%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한일관계가 일본과 제3국과의 관계보다 경제적으로 긴밀화(수평분업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미·일 의존 낮아져 두번째로는 한국의 무역에서 점하는 일본의 셰어의 저하다.미국의 셰어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저하하고 있어 이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시장의 다각화,특히 미일경제에의 의존의 저하로서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한국경제는 미일의 바운더리를 넘어서 세계에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양국인의 왕래의 활발화이다.한국을 찾는 일본인 여행자수와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94년에는 각각 1백64만4천명,1백5만2천명에 달했다.한국인의 일본 방문자수가 엔고하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상 세가지 점은 한일경제관계의 긍정적 측면으로 말할 수 있다.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역시 짙어진다.한일간에는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이 존재하고 있다.이 원인은 기본적으로는 한국이 수출촉진을 통해 고도성장을 꾀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자본재산업의 육성을 뒤로 돌렸다는 점에 있다.자본재 공급은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해 왔다.이것은 한국경제의 상황에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그렇지만 이러한 정책은 결과로서 수입유발적인 산업구조를 형성시켜 거액의 대일적자를 한국에 초래시켰다. ○역조 성장정책 탓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양국경제관계를 생각해보고 싶다.지난해이후 엔고는 다시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를 급증시키고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없던 현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양국간에 가져오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먼저 반도체등 부가가치가 높은 공업제품의 대일수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반도체 수출의 급증은 대일무역 적자축소의 돌파구역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두번째로는 한국기업에 의한 일본기업의 매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한국기업은 대일시장공략의 거점만이 아니고 기술 및 인재 등을 확보해 국제화 추진상 유리한 발판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셋째 삼성그룹과 닛산과의 승용차생산 제휴다.승용차생산은 전후방 연계가 넓다.그 승용차산업의 공장이 부산에 설치된다는 사실은 한국남부와 규슈지방의 경제적 교류를 한층 활발하게 만들어 한일경제의 보더리스(borderless)화를 진전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일 기업 매수 늘어 이상 세가지 측면에서 양국경제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한국경제의 실력향상은 양국간의 경쟁을 심화시킬 뿐만이 아니라 상호 파트너로서 재인식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10년후 한일국교 정상화 40주년은 한국에 있어 보다 긍정적으로 맞이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노조에 신이치 ▲일 아세아대 교수(53세) ▲와세다대 경제학과졸 ▲아 경제연 국제교류 실장
  • 101세 독립투사 김경하옹의 광복 50돌 기원

    ◎광복조국 밝은 모습 뿌듯/민족통일이 마지막 소원/“서대문 형무소 붉은 담장 아직도 눈에 선해”/김좌진 장군 딸등도 함께 감회 젖어 늙은 독립투사가 15년만에 다시 들러 바라다본 광복 50주년의 조국땅은 밝고 힘에 가득차 있었다.살아있는 최고령 독립투사인 김경하옹. 평북 강계가 고향인 김옹의 올해 나이는 1백1세. 그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금세기가 아닌 19세기말인 1895년 3월 24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열혈청년의 정열이 남아있는 듯 김옹은 광복 50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4일 상오 서울 독립공원에서 기자들에게 큰 소리로 소회를 피력했다.『70여년전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벽돌 담장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나라 잃은 청년의 비애같은 것이 느껴집니다.그러나 오늘 이 땅에 사는 청년학생들이 밝고 힘에 넘쳐 가슴 뿌듯합니다』 김옹은 조국이 자기를 잊지않고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해 준 게 무척 흡족한 모습이었다. 김옹이 독립투사로 형극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진 기미년 4월8일 강계 장날.당시강계 영실중 교사로 재직중이던 김옹은 동료 교사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 일본 기마헌병에 붙잡혀 징역 2년6월형을 받고 평양감옥에 수감된다.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병보석 되어 풀려나자 만주로 피신,선교활동을 통한 항일운동을 계속했다. 우연한 인연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40여년동안 목사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조국사랑은 누구나 당연한 것이며 결코 자랑거리가 안되는데…』. 김옹의 곁에는 김옹처럼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조국 땅을 밟은 김좌진 장군의 외동딸 김순옥(68·중국 연변)씨와 전명운 의사의 둘째딸 전경영(72·미국 로스앤젤레스)씨,그리고 외국인이면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고종황제의 밀사로 외교활동을 했던 호머 헐버트의 손자 리처드 헐버트(67·뉴욕 캐미컬뱅크 직원)씨가 자리를 함께 했다.그들의 표정도 김옹과 같이 감회에 젖어 있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이렇게 자랑스런 일을 한 줄은 몰랐어요.살면서 고생은 했지만 정말 자랑스러워요』 청산리전투의 영웅 김좌진장군의 딸 김순옥씨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의얼굴조차 모른다.독립운동 뒷바라지에 고생만 하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 세상을 떠나 아버지의 부하였던 김기철에 의해 키워졌다고 했다. 『어떻게 소문을 듣고 일본경찰들이 찾아와 여러차례 매를 때리곤 했어요』.농사를 짓고 살면서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고생을 했다는 그녀는 이번에 장군의 외손녀인 위연홍(45)씨와 함께 처음으로 조국땅을 밟았다. 미국의 외교고문자격으로 친일 행각을 노골적으로 벌이던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뽑았던 전명운의사의 딸 전경영씨는 『영원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어릴적 부터 미국에서 자란 탓에 우리말은 서툴지만 사회사업을 하는 애국지사의 후손답게 힘차고 또렷또렷하게 얘기했다. 묵묵히 듣고있던 최고령 독립투사 김옹은 『이제 바라는 게 있다면 남이든 북이든 한자리에 모여 오래오래 사이좋게 번영하는 민족의 통일,통일을 이룩하는 것입니다』.이 말을 뒤로 김옹의 눈에는 「간절한 소망」의 이슬이 맺혔다.
  • 오늘 광복 50돌/대대적 경축 행사

    ◎5만명 「환희의 그날」 기념식/구 총독부 중앙돔 첨탑 제거/세종로/김 대통령,대북 메시지 발표 15일은 제50주년 광복절.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새 나라를 세운지 반세기를 맞는다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21세기 새시대로 접어든다는 감격을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누는 특별한 날이다. 정부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경축식을 15일 상오 9시 광화문앞 세종로 광장에서 김영삼대통령과 3부요인및 각계대표,광복회원,해외동포및 일반시민 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한다. 「광복 50년,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날 경축식에서는 특히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상부첨탑이 크레인으로 철거된다. 김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남북한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등에 관한 기본입장을 천명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향도 밝힐 예정이다. 한편 광화문에서 충무공동상에 이르는 세종로 일대의 교통을 통제한 가운데 치러지는 경축행사는 식전·식후 행사까지 포함,15일 상오9시에서 2시간10분간 계속되는데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수 있다. 본행사는 김승곤 광복회장의 기념사,정명훈씨 등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4인의 축가 「동방의 빛」 연주와 합창,독립유공자 포상,김대통령 경축사,참석자들의 광복절노래 제창과 만세3창,축하비행 순으로 진행된다. 전국의 사찰·교회·선박은 본행사 시작 1분전 일제히 타종,취명을 해 광복절을 경축한다.
  • 책으로 되새겨보는 광복 50주년/대형서점 「특별코너」를 살펴보면

    ◎항일투쟁사·일제만행 고발 서적 많아/해방후 현대사 다룬 책도 눈여겨 볼만 광복 50주년을 맞은 오늘 관련서적들을 읽으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이 시대를 사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이다.대형서점이 정리한 관련도서 목록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주요서적들을 골라 본다. 올해는 한일관계를 다룬 책들이 유난히 많이 쏟아져나왔다.게다가 내용과 형식이 아주 풍부해 특정 사건·인물의 평가에서 양국 역사·문화의 본질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이 연구서·소설·수기·비평 등 갖가지 형태로 선보였다. 올해 나온 관련도서들을 살펴보면 먼저 일제의 국토강점에 대항해 해외에서 벌인 항일독립투쟁을 소개한 것들이 돋보인다.독립유적지 기행을 비롯,독립운동가의 수기와 전기 등을 통해 자칫 세월에 묻힐뻔한 귀중한 증언들을 수록했다.또 일제의 침략정책을 분석한 연구서,친일파의 모습을 까발린 책도 여럿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만행도 집중 조명했다.종군위안부·징병·징용 등의 강제동원,한국인 원폭피해자의참상,관동대지진 때의 집단학살 등의 실상을 폭로하고 일본이 보상해야 할 부분은 하루빨리 해결하도록 촉구했다.이 가운데는 가해자측인 일본인들이 과거를 반성하는 뜻에서 낸 책들과 제3국인이 객관적 시각으로 일제를 비판한 것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일본은 없다」로 촉발된 일본비평서 붐은 올해에도 이어져 한·일 양국의 상대국 비평서가 많이 출간됐다.상대방의 약점만을 들춰내 비난으로 일관한 책들이 여전히 섞여 있지만 역사·문화를 깊이있게 분석한 책들도 여럿 나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이밖에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지적한 책도 여러권 나왔다. 광복이 「일제 마수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광복은 곧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현대사회의 출발을 뜻하기도 한다.이런 점에서 광복이후 현대사를 다룬 책들도 눈여겨 볼만 하다.미군정 3년의 공과를 평가하거나,해방공간에서 남북의 어느 한켠에 서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통일 노력을 기울인 남북협상파의 궤도를 추적한 연구서들이 돋보인다.
  • 돌아오는 배… 떠나는 학생들/김성수 사회부 기자(현장)

    ◎남북문제 인식의 괴리 극명히 표출 「돌아오는 배와 떠나는 학생들…」 광복 5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나온 두 뉴스는 우리 정부 당국과 북한측,우리 대학생들의 남북문제에 대한 인식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두 뉴스는 북한측에 억류됐던 우리측 쌀 수송선 삼선비너스호가 이날 하오 3시 포항항에 입항한다는 것과 「한총련」소속 여대생 2명등 대학생 3명이 판문점에서 열리는 「8·15 민족공동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베를린을 경유,이날 평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8일 동안이나 북한에 강제 억류됐던 삼선비너스호가 청진항을 출발,포항으로 항해하고 있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것은 13일 아침이었다. 휴일 아침 국민들은 선원들이 풀려나 무사히 귀환하고 있다는 소식에 늦게 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8·15 이전에는 돌아오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가족들의 기쁨은 더욱 컸다. 그러나 14일 상오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실에서는 「한총련」 학생들이 또다른 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8·15 민족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범청학련남측본부」 대표자격으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이날 낮 12시 평양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북한측과 쌀수송선 귀환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쌀수송선 억류 문제로 대북감정이 가뜩이나 격앙되어 있는 상태에서 불거져 나온 돌발사건이라 파장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대다수 국민들은 도와 주러 간 사람들을 트집잡아 일주일이 넘게 붙잡아 두었다가 생색이라도 내듯 풀어 주는 북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날 서울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총련」 대변인 김민욱(단국대 총학생회장)군은 『95년을 조국통일의 원년으로 앞당기기 위해 남·북한과 해외에 있는 젊은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려고…』라고 파북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북쪽의 태도에 비추어 그같은 충격 요법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이들의 몸짓이 아무리 순수하다해도 북한 당국에 이용될 것은 뻔할 것이라는게 많은 국민들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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