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50주년
    2026-07-25
    검색기록 지우기
  • 장병
    2026-07-25
    검색기록 지우기
  • AI 플랫폼
    2026-07-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017
  • 「이산티 가죽박물관」 올 6∼7월 개관

    ◎창업 50돌 기념… 18C 제품 등 1천점 전시 이산티는 창업 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이탈리아 유일의 가죽제품 박물관을 개장한다.아직 개장일자를 정확히 잡지는 않았지만 곧 장소를 마련,오는 6∼7월에는 문을 열 계획이다. 박물관에 전시될 물건들은 밀라노의 B 코리오 거리 이산티 본사에서 200m쯤 떨어진 한 아파트에 임시로 보관돼 있다.아마토 회장의 조카로 이 곳의 물건관리를 맡고있는 지오바니 이산티는 『유행은 과거의 것이 오늘날에 재현되는 등 돌고 돌기 때문에 유행과 디자인에서 남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아마토회장이 이 박물관을 개관하려는 것』이라고 설립취지를 밝혔다. 30평쯤 되는 이곳에는 1700년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시대의 가죽 핸드백을 비롯,현대에 이르기까지 1천여점의 가죽제품들이 보관돼 있다.이곳에는 200여년전의 유명배우들이 썼던 가죽가면,가죽길이를 재는 1800년대식 자,가방에 문양을 찍는 도구및 가방에 구멍을 뚫는 공구 등 가죽제품 제작과 관련된 물건들도 다수 보관돼 있다.아마토 회장이 60년전부터 모은것들이다.그는 이산티를 만들때 고풍스런 옛 제품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위해 수시로 고물상 등을 돌아다니며 가죽제품들을 모았다.지금까지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1천명을 넘었다고 지오바니는 귀띔한다. 그는 『이 곳에 모아놓은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대별로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양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수십년 뒤에는 이와 비슷한 양식들이 유행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따라서 박물관은 이산티가 새 가죽제품을 만들어낼때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데이터 베이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 동종업계가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 서양화가 권옥연(이세기의 인물탐구:116)

    ◎허무·고독을 즐기는 화단의 신사/세련된 멋·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레 공존/구상·추상 오가며 미지의 세계 정신적 탐구 권옥연은 슬픔과 허무가 엇갈리는 낭만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다.화려하고 사치한 사교적인 면을 지니면서 「군중속에 둘러싸인 고독」 같은 이미지가 전신에 배여 있다.스스로를 옷 한벌도 없는 「무의자」로 불리기를 원하거나 그림 곳곳에 잔잔한 슬픔의 무늬가 운문율처럼 번지고 문학적 향수와 비감을 감추지 않는 것도 그만의 예술가적 기질일 것이다. 그의 작품도 일본과 프랑스유학에서 연유한 세련된 멋과 우리만의 꾸미지 않은 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럽게 공존된다.이른바 지난 역사속에 숨겨진 한국인 특유의 비애와 한을 떨쳐버리지 않고 이를 안으로 익삭여서 그림의 특징으로 삼은 것이 특별히 남다르다.그의 화면의 배경은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듯 무겁게 내려앉은 청람의 하늘과 차갑게 빛나는 납빛의 달,상서로운 길조 한마리가 피안을 향한 아득한 미래를 응시하면서 미묘한 조율과 변주로 탐미적 향기를 풍겨낸다. 그의초기작품은 자연주의적 공간의 원근법을 무시하고 수평으로 전개되는 선상에서 간결하고 절제된 대상이 평탄한 색조로 수직구도를 이루고 있었다.이는 한때 고갱의 예술세계에 경도된 흔적이기도 하지만 평론가 유준상에 따르면 「사상을 색채가 아닌 형체에 의해서 파악」하고 「인간을 비극적인 고뇌의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추상화는 「해학성과 불가사의한 세계를 동경하는 정신적 탐구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림곳곳 잔잔한 슬픔… 화면구성의 배치와 균형뿐만 아니라 색채의 의장을 무시한 자기억제적인 색조는 「관념적인 영원성마저 표출시킨다」고 했다.또 내적 경험을 암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상형기호는 보석타래처럼 허공을 부유하면서 「비현실세계에서의 신비적 허무」로 반짝이는 것도 그만이 보여주는 화경의 특징이다. 그는 유치한 것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치장을 역겨워한다.예를 들어 당장에 눈에 띄는 그림보다는 어둠이 눈에 익어 천천히 나타나는 그림이야말로 「벨벳속에 싸인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다」고 주장한다.그래서 낯설고 새로운 수많은 미학적 체험과 깊은 모색의 시기를 거쳐 그의 화면은 「바닷속같이 괴괴한,정일과 정미의 경지」를 끌어낸다.구상에서 추상,다시 최근에는 「구상적이면서도 구성적」인 그림으로 그는 남보다 앞장선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그의 일상적인 매너는 누구를 만나든 포용력 있게 반기는 제스처에 능하다.한때는 주한프랑스대사로 10여년이상 한국에 머물었던 로제 상바르대사와 절친하여 그가 주관하는 파티의 주역이었고 다른 자리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등 사교적인 폭이 두껍고 넓은 편이었지만 실제로는 의외로 비사교적이고 사회성이나 경영에 어둡다. 정이 많고 정의감이 투철하여 같은 예술원회원인 천경자씨가 가짜 미인도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여 철저히 감싸주었고 그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원로화가 김흥수씨가 「외국작가초대에 대한 이의제기」나 「국전의 의미」를 묻는 시비를 만들 때도 옳은 것의 편에 서서 이들을 두둔해왔다. ○17세에 선전 입선 같은 함흥 출신에다일본과 프랑스유학을 비슷한 시기에 보낸 김흥수씨는 『그는 함흥의 명문가의 자손으로 남보다 풍족한 성장기를 보냈고 올바르게 처신하여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으면서도 언제나 겸허하여 오만이 없다』고 말한다.이른바 예술가로서 신사의 도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보기드문 순수파라고 할 수 있다. 화가로서의 그의 위치나 면모를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그의 긴 화력과 그가 성취한 새롭고 혁신적인 화풍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미하다. 그는 함남 함흥읍에서 대지주의 5대독자로 태어나 조부모와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은 천진무구성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어릴 때는 음악과 문학에 심취하여 『지휘자나 작곡가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음악에 관한 한 앉은 자리에서 100여곡 이상의 노래가 그의 몸에서 물처럼 흘러나온다.오죽하면 작곡가 김성태씨는 『그의 머리를 한번 해부해보고 싶다』고 했고,김순애씨는 『그가 허밍으로 부르는 즉흥곡을 악보로 써둔다면 틀림없이 주옥 같은 명편』이 됐을 거라고 감탄할 정도다. 함흥에서 서울 제2고보(경복고)로 유학한 후 3학년되던 해 선만 학생전람회에서 준특선,다음해 특선했고 졸업반인 5학년때 선전에서 입선하면서 17세에 벌써 화가로 호칭되었다.그러나 『50년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화가」라는 타이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리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었다』고 자신을 돌아본다.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화가이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도쿄와 파리유학,수많은 국제전에 선정,초대되었고 세종문화회관 개관때도 가로 40m,세로 20m의 초대형 「십장생도」커튼을 제작하여 화제가 되는가 하면 일본·덴마크·파리국립·현대·근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그는 개인적으로 금곡에는 개인박물관을 가지고 있고,무대의상을 미술의 차원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 부인 이병복씨는 국제무대에서 공연하는 극단 자유극장의 대표이며 한때 서울대에 출강하긴 했지만 한평생 그림만을 그려온 전업작가다. ○40m 「십장생도」 제작화제 이처럼 행복만이 점철된 그에게 뼈저린 아픔이 있었다면 두고 온 산하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 봄 긴 투병끝에 있던 장남을 잃은 일이다.지상의 모든 슬픔을 온몸으로 얼싸안은 채 『나는 평생 철들지 못한 철부지였으나 아들을 잃자 갑자기 철드는 자신을 느꼈다』고 소년처럼 절규한다. 자녀는 파리화단에서 활동하는 딸(이나씨)과 첼리스트인 차남(유진)이 있다.지난해 도시계획에 밀려 고풍스럽고 오래된 광희동집을 떠나 성북동의 빌라로 이사하게 되자 현대적인 낯선 분위기가 싫어서 집에선 잠만 자고 장충동 화실에서 거의 하루를 보낸다.술을 마다하지 않으며 줄담배를 피운다. 그의 신작분위기는 빈 바위 같은 회색산정과 앙상한 나목에 앉은 흰새 한마리.새는 머언 공간을 향한 긴 응시를 끝내고 지금 마악 비상직전,아니면 탐색직전의 긴장과 정적을 품고 있다.그의 득의의 화면은 보는 이의 마음에 철학의 심연을 만들어주고 있으나 이제 허무주의와 문학주의를 딛고 그는 화가의 가장 찬란한 광채인 청람의 보석 같은 구두점을 그의 화면속에 감추고 싶어하는 시기다. □연보 ▲1923년 함남 함흥 출생 ▲39년 선만학생전람회 특선 ▲40·42년 선전입선,제2고보(경복) 졸업 ▲44년 도쿄제국미술학교 졸업 ▲48년 첫개인전(동화백화점 화랑) ▲49년 국전입선 54·56·60년 국전특선 ▲56∼60년 체불,파리살롱도톤,파리 레알리테누벨전선정초대출품 ▲60년 프랑스 파리아카데미 드페수학,도쿄 일본교갤러리 개인전 ▲61∼72년 국전초대작가 및 국전심사위원 역임 ▲65년 도쿄개인전,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 출품 ▲68년 서울개인전(신세계미술관)「한국현대회화전」(도쿄국립근대미술관) ▲70년 엑스포70 세계100인선 작가로 선정,현대화랑개관 기념전 ▲73∼74년 한국미술대상 심사위원,미 국무성 초청 미국문화계 시찰 ▲75년 「한국현대미술가 100인선집」 출간(금성출판사) ▲78∼현재 금곡박물관장 ▲79년 개인전(갤러리 현대),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및 소강당 커튼(막)제작(가로 40m,세로 18m) ▲83∼현재 예술원회원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서울·파리전」(서울갤러리) ▲95년 광복 50주년 기념 특별전 ▲96년 이목화랑 개관 20주년기념전 출품(권옥연·천경자·윤중식·임직순) 〈작품소장〉 미국 체이스맨해턴은행·도쿄국립근대미술관·일본겸창근대미술관·덴마크코펜하겐국립근대미술관·파리국립현대미술관외 〈수상〉 예술원상·보관문화훈장·3·1문화상
  • 1997년/슈베르트 탄생 200주년·브람스 타계 100주년

    ◎기획음반 출시·기념 음악제 다채/연중무대·세계진출 정상급 특별연주도/예술가곡 콘쿠르·유품전시 등 이벤트 다양 97년은 서양 음악사로 볼때 기념할만한 일이 많은 해.슈베르트 탄생 200주년,브람스 타계 100주년,멘델스존 서거 150주년,도니제티 탄생 200주년이며 최초 오페라 「다프네」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공연된지 400년째를 맞는다.따라서 내년에는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음악제,브람스페스티벌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음반사들의 기획음반 또한 풍성하게 쏟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슈베르트협회(회장 조상현)가 1월부터 12월까지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음악제를 연다.탄생일인 1월31일 개막 갈라콘서트를 시작으로 열리는 「예술가곡 음악회」는 그의 600여 가곡가운데 150여곡이 연주된다.헤르만 프라이,피터 슈라이어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내한,국내 중견성악가들과 무대를 꾸민다. 이밖에 피아노 콩쿠르와 예술가곡 콩쿠르,자필악보등 유품전시회,영화상영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벌어진다. 내년을 「슈베르트의 해」로선포한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그의 생가와 리히렌탈 성당 등 곳곳에서 연중 기념음악회가 이어진다. 브람스 관련 음악회는 내년 7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7인의 남자들」공연이 눈에 띈다.지휘자겸 피아니스트 정명훈,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김영욱,첼리스트 조영창·양성원,피아니스트 한동일,비올리스트 최은식 등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7명의 한국 남자아티스트들이 함께 출연,타계 100주년을 맞는 브람스 작품을 집중연주한다. 도이치그라모폰,데카,BMG,EMI등 대형음반사들의 기획음반도 내년 한해 풍성히 쏟아질 전망.도이치그라모폰은 가장 먼저 브람스의 관현악과 실내악·피아노곡·가곡·협주곡 등을 총망라,46개 CD로 구성된 세계최초의 브람스 전집을 지난주 발매했다.또 슈베르트 최고 걸작만을 모아 20개의 CD로 편집한 음반 「슈베르트 걸작선」을 내년 3월 출시한다. 데카 역시 슈베르트와 브람스 기획음반을 시리즈로 발매할 계획.「더블 데카」,즉 한장값에 두장의 CD가 들어있는 음반으로 내놓는다. 내년 상반기 슈베르트전집을,중반에 브람스전집을 낼 예정인 BMG는 도니제티 탄생200주년 기념 음반을 낸다.라인스도르프 지휘의 로마오페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로베르타 피터폰이 루치아를 맡아 열연한 명음반을 새로 제작한 것. 내년에 창립100주년을 맞는 음반사 EMI는 EMI 100주년 기념음반과 함께 슈베르트 전집음반,미국 테너 토머스 햄프슨의 슈베르트 가곡음반 등 다채로운 기획음반을 내놓는다.
  • 서울신물 선정 1996년 10대 뉴스­국내

    ○OECD 가입 확정 정부는 지난 12일 국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비준서를 프랑스 정부에 기탁,이 기구의 가입을 확정지었다.선진국의 국제경제,공공정책 협의기구의 성격을 갖는 OECD의 29번째 회원국이 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결정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됐으나,금융 자본 서비스 분야에서의 개방확대로 선진국과의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들어가게 됐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 9월18일 새벽 강릉시 안인진리 해안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함이 발견됐다.동해안 군사시설 정찰임무를 띤 이 잠수함에는 26명이 타고 있었으며 좌초직후 전원 강릉 일대로 침투했다.군 당국은 2개월간 공비소탕작전을 벌여 1명 생포,24명 사살의 전과를 올렸다.우리측도 민간인 4명을 포함,11명이 사망했으며 국내외에 북한의 침략성을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일가족 17명 대탈북 10월26일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씨((61) 일가 16명과 이들의 탈북을 도운 북한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30)가 죽음을 무릅쓴 44일간의 대탈주 끝에 12월 9일 서울에 도착했다.함북 회령에서 중국,홍콩을 거쳐 망명한 이들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망명한 최대규모로 기록됐으며 식량난,경제난 등으로 위기에 봉착한 북한체제의 이완현상이 심각함을 보여주었다. ○2002년 월드컵 유치 지난 5월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에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권을 따내 한국은 또 한번 국제 스포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조직위구성 및 유치활동 등 모든 면에서 경쟁국 일본보다 뒤늦게 뛰어들어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막판 응집력으로 공동개최를 이끌어내 한국스포츠의 저력을 발휘했다.특히 월드컵 공동개최는 국제사회에서의 한·일 공조분위기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총련 연세대 시위 한국 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지난 8월12일 정부의 불허 방침에도 아랑곳없이 「8·15 조국통일 범민족 청년학생 통일축전」을 개최하기 위해 연세대를 불법 점거,9일동안 폭력시위를 벌였다.이 사태로 구속기소된 학생만도 444명이나 돼 사법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점거농성의 중심지로 건물의 절반 이상이 불에 탄 연세대 종합관은 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전·노씨 세기의 재판 12·12 및 5·18사건과 비자금 사건으로 법정에 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항소심이 끝나고 대법원의 최종 심판만 남겨두고 있다.1·2심 포함,피고인은 5·6공의 핵심인사와 재벌총수 등 모두 34명.법정에 불려나온 증인만도 최규하 전 대통령 등 70여명으로 「세기적 재판」이라고도 불렸다.1심에서 사형과 징역 22년6월을 선고받았던 전·노 피고인은 2심에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옛 총독부 건물 철거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준공된지 70년만에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 침탈의 본거지로 세운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제 패망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일제의 상징물로 남아있다가 경복궁 복원과 민족정기 회복차원에서 철거작업에 들어가 지난해 광복50주년 기념식때 중앙돔 첨탑이 해체된지 1년 4개월만에 완전히 철거됐다. ○노동법 개정 파문 지난 4월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신노사관계 구상 발표로 시작된 노동법 개정작업은 노사 및 공익대표로 구성된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의 7개월에 걸친 절충에도 불구하고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합의도출에 실패했다.정부는 노개위의 공익위안을 토대로 정부안을 마련,12월초 국회로 넘겼지만 여야의 의견 대립으로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했고,이어 열린 임시국회에서도 여야가 대치중이다. ○15대 총선 여당 승리 15대 국회의원을 뽑은 4·11총선은 야당분열에 따른 비판여론과 세대교체 바람에 힙입어 신한국당의 승리로 끝났다.지역구 253석 가운데 121석을 얻어 전국구 18석을 포함,전체 299석 중 139석을 확보했다.특히 서울에서 첫 여당 승리라는 대이변을 기록했다.또 역대 어느 선거보다 신진기예들의 진출이 두드러져 46·5%가 초선의원인 점도 특징중 하나였다. ○안두희씨 피습 살해 역사의 진실은 끝내 묻히는가.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씨(79)가 지난 10월23일 상오 인천시 중구 신흥동 3가 동영아파트 502호 자택서 박기서씨(46·버스운전사)의 피습을 받고 살해됐다.박씨는 범행에「정의봉」이라고 새겨진 몽둥이를 사용했으며 경찰에서는 『평소 백범선생을 존경해와 안두희를 죽였다』고 진술했다.현재 각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박씨에 대한 구명운동이 한창이다.
  • 개신교/KNCC의 「개혁·개방」 이룬 해/’96 종교계 결산

    ◎불교­사찰환경 보존·지역개발 대립 핫이슈/카톨릭­2천년 「대희년」 준비·우리말 교리서 완성 올해 개신교와 불교·카톨릭 등 종교계는 조용한 가운데 교계별로 「21세기를 맞는 준비」를 갖춘 한해였다. 불교계는 사찰환경보존과 지역 주민들의 개발의지가 첨예하게 대립했으며 개신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를 가맹교단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교회협의 개혁과 개방을 이루었으며 카톨릭은 2000년 대희년을 맞는 준비와 교리서·미사통상문의 우리말 시행등 카톨릭신앙의 토착화에 성공한 한해였다. 불교신문과 불교방송·월간 불교등 불교 관련 언론인들이 뽑은 「96 불교계 10대뉴스」는 ▲경부고속철도 경주도심통과 반대운동 ▲해인골프장 건설 반대운동 ▲대통령 국군군종센터 방문및 종교편향 파문 ▲석굴암 돔과 본존불에 균열발견 ▲불교 대구방송국 개국 ▲해인사 고려대장경 CD롬화 ▲초파일 전후로 잇따라 일어난 훼불사건 ▲종합토지세법을 비롯한 사찰 토지관계법 정비 ▲불교청소년단체 파라미타창립 ▲세계불교석학 세미나 등이다. 이밖에 ▲한·중·일 불교우호대회 개최와 ▲서경보스님·이기영 박사 등 열반과 타계도 주요뉴스였다. 불교계는 올해 연초부터 고속철도의 경주도심 통과와 해인사 인근의 가야산 해인골프장 건설 반대운동을 편 결과 사찰환경과 문화재보호차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뜻깊은 한해였다. 기독교 신문이 선정한 개신교계의 올해 주요뉴스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개혁과 개방 ▲북한주민 돕기운동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여성목사 탄생 ▲다락방전도운동 이단규정 ▲기독신학대학원과 합동신학대학원 설립인가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했던 교계인사들 반성 및 과거 청산성명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지역총회제로 전환 ▲한국찬송가공회 「수정본 찬송가」발행 중단 ▲부활절연합예배 여의도광장에서 장충체육관으로 장소변경 등이다. 가톨릭신문이 선정한 카톨릭교회 10대뉴스는 ▲한·일 주교단이 공통역사교재의 편찬추진 ▲한국주교단의 교황청방문 ▲카톨릭교회 교리서 우리말본 완간 ▲우리말 새 미사 통상문 인중 및 시행 ▲김대건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수원교구 최덕기 부주교 탄생 ▲인천 가톨릭대학교 개교 ▲광주 및 대구평화방송국 개국 ▲서울 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북녘형제와 국수 나누기운동 전개 ▲한국교회에 첫 4형제신부 탄생 등이다. 이밖에 불교와 개신교,카톨릭,민족종교 등이 연합해서 북한수재민돕기 운동을 펴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설립했으며 남북통일에 대비해서는 북한에 있던 사찰·교회·성당 등 종교시설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돋보였던 한해였다.
  • 국회 내년 50주년 상징조형물 건립/작가 정보원씨 선정

    정보원씨(조각가)가 97년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 들어설 대형 상징조형물의 작가로 17일 선정됐다. 내년에 개원 50주년을 맞는 국회가 국민과 함께 하는 국회의 이미지를 높이고 민족통일의 염원과 국민화합의 의미를 상징할 대형조각을 설립하기 위해 엄정한 공모와 심사과정을 거쳐 선정한 정씨는 과거 수직 지향의 상징조형물들과는 달리 신선하고 현대적인 감각의 예술성있는 작품으로 심사위원들(12명)의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 김 대통령,변리사회에 축전

    김영삼 대통령은 17일 하오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대한변리사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축전을 보내 우리나라가 세계 제5위의 산업재산권 출원대국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해온 변리사회의 노고를 치하했다.
  • 유니세프 VIP카드 판매한다

    ◎헵번 등 유명인사 직접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10장 1세트 1만원… 수익금 전액 기금에 활용 세계의 명배우 오드리 햅번은 화가로는 어떨까.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그림솜씨는 목소리만큼 감미로울까.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이를 기념,세계의 유명인 10명이 직접 그린 유니세프 VIP카드를 내놨다.이들이 기증한 한장씩의 그림을 각각 카드 표지로 디자인,1세트 10장씩을 1만원에 판매한다.가격은 싼편이 아니지만 카드판매대금이 유니세프 기금으로 활용되는 만큼 제3세계 어린이들을 도우며 유명인들의 그림솜씨도 감상하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림을 기증한 사람은 ▲유니세프 친선대사 배우 오드리 헵번(영국) ▲유니세프 친선대사 가수 나나 무스쿠리(그리스) ▲유니세프 음악인 대표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스페인) ▲덴마크의 마가레트 여왕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이탈리아) ▲피카소의 딸인 화가 팔로마 피카소(프랑스) ▲패션디자이너 하나에 모리(일본) ▲〃 소니아 리키엘(프랑스) ▲섬유디자이너수잔 콜리에,사라 캠벨 자매(영국) ▲인테리어 디자이너 앙드레 풋만(프랑스) 등이다.카드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은 서울 교보문고와 명동에 있는 유니세프카드집.구입하고 싶으면 736­7862로 주문하면 된다.
  • 일 우익 망언과 또다른 「폭발」/최두삼 국제부장(데스크 시각)

    『한국인들은 모기를 보고도 칼을 빼든다(견문발검)』­이 말은 남모 전 국회의원이 한국인의 성품을 두고 한 말이다. 요즘 일본인들은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고 한다.일본 우익정치인들이 뭔가 한마디 내뱉고 지나칠 때마다 한국인들은 또 망언을 토해낸다고 핏대를 올리며 흥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또 이런 말을 자주한다.『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한국에 사죄하며 살아가야 하는가.국왕을 비롯해 가이후,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 등 역대 수많은 총리들이 사과하고 사죄했는데도 또 계속 사죄해야 한다는 말인가.그러니 일본에서 혐한론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같은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인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자.삶의 자유를 짓밟고 부모형제의 목숨까지 앗아간 원수에 대한 원한이 한두차례의 사과만으로 확 풀리겠는가.그것도 그들이 가만히 입을 봉하고 있으면 모르되 계속 자기들에겐 잘못이 없다며 우리의 속을 뒤짚는 망언을 되풀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잘못없다” 되풀이 지난 53년 한일회담대표였던 구보다 간이치로가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국에 유익했다』며 시작된 일본우익의 망언은 패전 50주년인 지난해 『한일합방은 합법적이었다』(무라야마 전 총리)로 극에 달한후 최근들어 다시 쏟아지고 있다.가장 가관인 것은 외국요인들에게 야스쿠니신사(정국신사)를 참배토록 하자는 최근의 주장이다. 도대체 야스쿠니신사가 어떤 곳인가.다른 나라에서처럼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자기나라를 지키기 위해 숨져간 영령들이 모셔진 곳이 아니지 않은가.그곳에는 조선침략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와 2차대전 전범 도조 히데키(동조영기) 등 A급 전범들을 비롯,청일전쟁,노일전쟁과 만주침략 등 대부분 외국 침략에 나섰던 약2백50만명의 위폐가 안치된 곳이다.일본은 그동안 외국을 침략만 해왔을뿐 침략을 받아본적이 없기 때문에 일부 내전 희생자를 빼면 대부분이 침략군 소속일 수밖에 없다. 일본우익의 망언을 들을 때마다 항시 생각나는 것은 독일이다.그들에겐 망언이 없기 때문이다.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은 85년 『과거에 눈을 닫는자는 현재도 볼수 없다』고 말했는가 하면 콜총리도 지난해 『독일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나치학살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죄했다.독일지도자들이 나치묘소에 참배하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독일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왜 망언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가.일부 학자들은 일본인들이 명치유신이후 서구화하면서부터 아시아인을 깔보기 때문이라고 한다.그것보다는 2차대전이후 등장한 냉전체제 때문에 군국주의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사실을 꼽는 학자도 있다.전후 경제발전기에도 주역을 맡게된 군국주의 주역들이 스스로 자기의 과거를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태도와 대조적 그러나 이같은 일본인들의 망언배경보다 더 경계해야할 일이 있다.그것은 재일동포 수학자인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일본인들이 50년을 주기로 국민적 에너지를 축적·폭발시켜왔으며,그 가장 큰 희생양은 항상 한국이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1543년 조총 두자루를 수입해다가 약 50년후 전유럽보유량보다 많은 조총을 만들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19세기 중엽 명치유신에 성공한후 약 반세기만에 조선을 삼켰고 그후 반세기도 안돼 2차대전을 일으켰다가 패전했다. 2차대전후 또다시 50년이 흘렀다.그동안 일본은 오직 경제건설에만 매진하더니 결국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에 올라섰다.그러더니 최근 들어서는 경제대국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속셈을 보이기 시작했다.경제수준에 걸맞는 군사대국,정치대국도 돼야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그러면서 개도국들에 대한 정부개발원조(ODA)를 대폭 늘리고 유엔평화유지군(PKO)에도 참여하면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빈발해지고 있는 망언들을 고려하면 지난 반세기동안 경제를 중심으로 축적된 에너지가 또다시 폭발직전의 발화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이제 일본인들의 망언에 대해 조건반사적으로 흥분하기보다는 일본의 또다른 폭발에 대응해 어떻게 해야 큰 피해를 모면할 수 있을지 통찰해볼 시기인 것 같다.
  • 김정일 우상화에 인터넷까지 이용

    ◎북 중앙통신,5일부터 홈페이지 개설/일에 사이트 설치… 본격 체제선전 채비/불온내용 안방 침투 우려… 접속 차단대책 시급 ○대남 체제선동 목적 북한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오는 5일부터 국제 컴퓨터통신망인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본격적으로 김정일찬양과 체제선전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지금까지는 친북단체들이 캐나다·미국 등 외국에서 북한관련 홈페이지를 개설,북한을 선전하고 김정일의 우상화에 앞장서온 경우는 있었지만 북한이 직접 홈페이지 개설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에 따라 북한체제 선전물과 김부자에 대한 찬양내용이 안방까지 쉽게 침투할 수 있어 무분별한 접속차단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의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은 지난 10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도쿄의 소식통을 빌려 보도함으로써 처음 알려지게 됐다.그후 최근 미국내 친북단체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2월5일 창립 50주년을 기념,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한다』는 알림이 게재됐다. ○일 신문이 처음 보도 현재 북한은 인터넷 접속국이 아니어서 북한 영토안에서는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없기 때문에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에 사이트를 설치했으며 미국등에도 설치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앙통신은 도쿄에 있는 조선중앙통신의 전문배급회사인 「조선통신」을 통해 인터넷 접속 서비스제공회사와 계약을 체결,영문기사를 「코리안 뉴스」라는 이름으로 제공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측은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목적에 대해 북한 뉴스의 신속한 전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남 체제선전과 선동,그리고 김정일 찬양과 우상화에 더 큰 목적이 있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요미우리신문은 홈페이지 개설목적과 관련,「김정일비서에 대한 선물의 의미도 있다」고 밝혀 김에 대한 찬양과 우상화에 관련된 내용들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임을 시사했다.실제로 북한은 외국의 친북인사를 이용,인터넷에 김을 찬양하는 내용을 많이 전송했다.또 인터넷에 북한 체제의 선전방이 개설된 것에 대해 우리측으로부터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우리측이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 일 자민당 거침없는 「극우 드라이브」 배경

    ◎총선승리 고무 “입지회복” 안간힘/과거 양보한 정책 “되돌려놓기” 속셈/견제세력 몰락·보수정당 침묵 동조 일본 자민당이 지난 10월 총선승리후 최근들어 강력하게 극우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자민당은 지난 28일 외교관계합동부회를 열고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 요인들에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도록 만들자」고 의견을 모으는가 하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한다는 외교지침 「일본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을 내세웠다.이 지침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시 독도가 한국수역에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회의에 참석한 외무성 관계자가 『야스쿠니참배에는 중국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자 외무성이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배려한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이에 앞서 27일 열린 국방관계합동부회에서는 방위청을 국방성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자민당이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극우적주장을 거침없이 내놓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거둔 「작은 승리」로 단독정권이 가능하게 된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93년 7월 총선에서 패배한 뒤 자민당은 목소리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요즘 자민당은 지난 3년동안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했던 그 모든 것을 「원상회복」시키려는 듯 극우 강변을 토해내고 있다.자민당에서는 하시모토 총리가 마닐라에서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지난해 종전 50주년을 맞아 발표된 8·15 총리담화를 인정한다고 말하자 이를 왜 인정하느냐고 투덜댔다.오쿠노 세이스케 의원 등은 최근들어 「종군위안부는 상행위였다」면서 교과서에서 이 항목을 삭제해야 한다는 망언을 계속하고 있다.그 뿐만아니라 『식민지시대 좋은 일도 했다』(와타나베 미치오 전 외상·에토 다카미 총무청장관)는 식민지시혜론,『한·일 합방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됐다』(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한·일 합방합법론,『침략전쟁을 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사쿠라이 신 운수상)는 침략전쟁부인론 등의 망언이 끊이질 않고 계속돼 오고 있다. 이들을 제어할 일본내 세력도 미약하다.사민당 신당사키가케는 몰락했고 민주당은 아직 힘이 충분하지 못하다.신진당은 바탕이 보수인데다가 총선패배,당내분열,부패사건 등으로 자민당의 독무대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민당의 최근 언동을 보면 역시 자민당이라는 정당의 총체적 의사는 극우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주변국들로서는 일본이 걸어가는 길에 대해 늘 주의깊게 지켜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들이 많다.
  • 서울신문/「전직 사우 초청의 밤」 대성황

    ◎전 사장 6명·창간사우 김영상옹 참석 눈길 22일 저녁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대회의장에서 열린 서울신문 창간 51주년 기념 「전직사우 초청의 밤」에는 전직 사장 6명을 비롯한 전·현직 임직원 600여명이 참석,서울신문의 어제와 오늘을 얘기하며 미래의 청사진을 함께 설계했다. 대형스크린을 통해 「창간 51년 도전 100년」이라는 제목의 홍보 영상물과 개통 1주년을 맞은 뉴스넷 시범운영이 펼쳐져 행사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손주환 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14대 김종규 사장의 축사,축하케이크 커팅,전직사우의 회고담,연예인의 축하공연 등 여흥의 순으로 진행돼 축제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지난해 50주년 행사와는 달리 올해는 외부인사를 초청하지 않고 전직 사우들만 한자리에 모여 오랜만에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끽했다.장기봉(5대),김종규(14대),문태갑(15대),서기원(19대),신우식(20대),윤형섭씨(21대) 등 전직 사장 6명이 참석,손사장과 웃음꽃을 피우며 환담을 나눴다. ○…대회의장은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나와 입구부터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대성황을 이루었다.입구에는 손사장을 비롯한 현 임원진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입장하는 전직 사우들에게 『반갑습니다.어서 오십시오』라며 반갑게 맞았다.창간사원으로 정치부 기자였던 김영상옹(80)은 『해방 당시 서울신문은 좌우익의 혼란속에서도 꿋꿋하게 중립을 지켜온 제 1일의 정론지였다』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다. ○…케이크커팅에 이어 15대 사장이었던 문태갑씨는 『50살이 넘은 서울신문은 이제 흔들리지 않는 거목이 되었다』며 건배를 제의했다.19대 서기원 사장은 『친밀감을 주는 산뜻한 가로쓰기 편집은 세계화의 시류에 적절한 변화』라며 『언론의 상업주의가 팽배한 요즘 꼿꼿하게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서울신문 수습 13기로 입사한 이태형씨(한국수자원공사 사장)는 회고담을 통해 『어리숙했던 후배 기자가 국장을 하고 있다』고 조롱섞인 농담을 건네자 장내는 웃음 바다를 이루었다.
  • “신문 변혁” 주도… 언론사 새 장 열다(서울신문 51년)

    한장의 사진 속에는 지나간 역사의 한 순간이 시간이 정지된듯 그대로 살아 있다.올해로 51돌을 맞은 서울신문도 그 무르익은 연륜만큼이나 뜻깊은 사진을 많이 남기고 있다.낡은 한장의 사진에는 서울신문 변화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격동과 부침을 겪으며 발전해온 우리 역사가 숨쉰다.서울신문이 우리 사회와 창조적으로 교감,그 발전을 이끌어온 사실이 무엇보다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서울신문과 우리사회를 씨줄·날줄 삼아 짜인 사진들을 통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서울신문의 기념비적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서울신문 1호◁ 1945년 11월23일자 서울신문 첫호 1면.서울신문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이어받아 창간했음을 전하는 기사가 한가운데 보인다.지령을 제13738호로 한 것은 1904년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로부터의 계승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 ▷언론메카 기공식◁ 1982년 4월6일 서울신문사는 태평로 옛사옥을 헐고 현재의 서울신문사·프레스센터 건물인 새사옥 신축에 들어갔다.지난 39년 건축돼 해방,정부수립,6·25,5·16 등 파란많은 한국현대사를 고스란히 지켜보며 서울신문과 영욕을 같이한 구사옥은 이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신사옥 기공식에서 힘차게 삽질하는 인사는 맨 왼쪽에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한사람 건너 문태갑 당시 서울신문사장,그 곁에 이광표 당시 문공부장관 등이다.새사옥은 84년말 완공됐다. ▷을지로 사옥 시절◁ 1982년 12월16일 서울 을지로5가 서울신문 임시사옥 게시판에서 「김대중 석방」을 알리는 속보를 보는 시민들.새사옥을 짓는 3년간 서울신문은 농협 건물에서 셋방살이를 해야했지만 서울신문 가족은 최신식 건물에서 더 크게 도약할 미래를 꿈꾸며 어느때보다 부지런히 뛰어 「중공기납치범」사진 특종,「아웅산 폭발사건」일보 등 잇따른 특종을 엮어냈다. ▷국내 첫 CTS 도입◁ 서울신문이 1985년 1월1일자부터 언론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컴퓨터편집조판시스템(CTS).태평로 새 사옥으로 돌아온 때에 맞춰 서울신문은 기존의 납활자 제작방식에서 탈피,최신기술의 결정체인 CTS로 신문을 찍어내며 전자신문시대의 새 장을 열었다.이후 모든언론사가 앞다퉈 CTS 대열에 참여했고 제작시간 단축,지면개선 등 신문제작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대구 분공장 준공◁ 1992년 7월1일 서울신문은 대구인쇄본부 건물을 준공,신문의 지방화시대를 열었다.준공식에 참석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대표 등 축하방문객들은 시설들을 둘러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구로공장에 이어 건립된 대구인쇄본부는 신문의 전국 동시인쇄를 가능케 해 「정보의 지방공유시대」를 앞당겼다.대구인쇄본부는 현재 하루 30만부 정도를 찍어내면서 서울판과 똑같은 따끈따끈한 뉴스를 지방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인터넷 신문시대 개막◁ 1995년 11월22일 창간 50주년을 기해 서울신문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서비스하는 「뉴스넷」을 도입했다.이로써 네티즌들은 서울신문을 비롯해 자매지인 스포츠서울·뉴스피플·TV가이드 등에 실린 모든 기사를 인터넷상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신속하고 세밀한 정보제공으로 「뉴스넷」은 개통 열달 만에 「하루 접속 1백만건 돌파」라는 기적을 일궈냈다.그러나 정보화의 혁명적 물결에 대비하고 더 나아가 이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서울신문의 정보화노력은 이제부터가 시작단계라 할 수 있다.
  • 대학동문들이 만든 연극 2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서울대 50돌 축하… 환경문제 등 다뤄/꿈꾸는 거인,활란­이대 「이연회」창단… 초대총장의 「삶」 대학동문 연극인들이 함께 만든 연극 2편이 잇따라 공연된다. 서울대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본교 연극반출신들을 모아 만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이화여대가 동창연극인모임 이연회를 창단하면서 기념으로 만든 「꿈꾸는 거인,활란」이 그것. 「난장이가…」은 작가 조세희가 지난 78년 발표,올해 100쇄를 돌파한 소설을 연극화한 작품이다.90년대 후반과 당시의 사회상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환경문제,산업재해문제 등을 깊이있게 다룬다.또 난장이,앉은뱅이,꼽추의 실재하는 아픔을 동화적 낭만주의와 결합시킬 계획이다. 이 연극은 막강한 출연·제작진을 내세운다.김지하가 총예술감독을 맡고 연극 「비언소」의 작가 이상우가 연출을 맡았다.또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단장 김영동이 김민기의 음악을 연주하고 민속극협의회 의장 임진택이 극 사이사이 소리로 표현한다.또 연극 「날보러와요」의 연출가김광림이 조명디자인을 맡았다.이와 함께 이낙훈,심양홍,김명곤,김의성 등 현역배우 등이 등장하고 연극배우 방은진이 특별출연한다. 오는 26일 서울대문화관에서 기념공연한뒤 30일부터 12월4일까지 서울 동숭동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518­1317. 19일부터 24일까지 이화여대 가정관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꿈꾸는 거인,활란」은 이연회 창단기념작으로 이대 초대총장 김활란 박사의 일대기를 연극으로 다뤘다. 이연회측은 『김박사가 세상을 뜬지 26년째가 되면서 이대학생들에게도 잊혀진 존재가 된 그를 다시 한번 현실속에 불러 들이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박정자 이영란 권인하가 각각 김활란의 생애를 나이별로 연기한다.양진성 극본,명인서 연출.515­0336.
  • 경복궁이 보인다(사설)

    가슴이 확 트인다.맑은 가을 하늘에 우뚝 선 북악의 이마가 더욱 빛난다.조선조의 정궁 경복궁 한복판에 우리 민족의 정기를 짓밟으며 들어섰던 옛 조선총독부건물이 없어지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13일 하오 근정전을 가리고 있던 회의실 뒷벽이 해체됨으로써 조선총독부의 흉물스러운 모습이 사라졌다.지난 95년 광복 50주년 기념식때 상부 첨탑이 제거되면서 시작된 총독부건물 철거작업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선 것이다.해체된 건물의 잔해인 시멘트더미 등이 올 연말까지 치워지면 우리 민족을 억눌렀던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 총독부건물은 70년만에 이 지상에서 없어진다. 일제침략의 상징이자 식민통치 36년의 산실이었던 총독부건물의 철거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운다는 의미를 지닌다.또한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단절된 역사를 복원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93년 국민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몇십년간 논란의 대상이 돼오던 총독부건물을 완전철거한다는 결단을 내린 것은 바로 그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철거작업과 함께 『치욕의 역사도 역사로서 보존해야 한다』는 철거반대여론이 일부에서 거세게 제기되기도 했지만 총독부건물이 없어진 지금 『역시 철거하길 잘했다』는 감회를 우리는 느낀다.철거하기 전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던 오랜 체증이 뚫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의식과 문화속에 배어든 일제잔재를 깨끗이 청산해 진정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다.오는 2009년 광화문의 제위치 찾기로 마무리될 경복궁 복원작업도 차질없이 진행해 북한산에서 근정전과 광화문을 지나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축을 완전히 되살릴 때가 기다려진다.
  • 서울대생 「도서관 은어」 눈길

    ◎두꺼비→빈자리서 수면·메뚜기→자리찾아 헤매 서울대 학보 「대학신문」은 11일 개교 50주년을 맞아 연재중인 「관악풍속도」에서 서울대생들이 사용하는 은어를 소개했다. 메뚜기는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빈 책상을 잠시 점령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학생」이다.사마귀는 이들의 천적으로 「메뚜기」에게 접근해 「여기는 제자린데요」라며 자리를 「먹어치우는」 이들을 가리킨다. 두꺼비는 빈자리 아무곳에나 가서 엎어져 자는 사람들로 대책이 없어 학생들이 가장 경계하는 유형이다. 「도자기」는 「도서관 자리 잡아주는 기둥서방」의 준말로 도자기 없는 여학생은 서럽다.
  • 일 중의원 41% “헌법개정 찬성”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 공포 50주년(3일)을 맞아 마이니치(매일)신문이 중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헌법의식 조사」에서 41%가 헌법개정에 찬성한 반면 호헌입장을 밝힌 의원은 34%를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중의원 5백명중 3백32명(66%)이 참가한 이 조사에서는 특히 개헌 찬성이유로 84%가 『반세기의 시대흐름에 맞춰 전반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과거와 같은 「호헌파­개헌파」의 대립구도가 엷어지고 헌법의 전반적 개정에 적극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현행 헌법이 지금까지 해온 역할과 공헌에 대해서는 응답의원의 54%가 「전쟁 포기」를,11%가 「언론 출판의 자유」를 각각 꼽았다.
  • 북 중앙통신 창설 50주년/인터넷에 홈페이지 개설/12월5일부터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12월5일 창설 50주년을 맞아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전세계에 뉴스를 발신하게 된다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2일 보도했다. 도쿄의 북한관계 소식통을 인용한 이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은 북한 뉴스를 세계에 빨리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김정일비서에 대한 선물의 의미도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중앙통신은 홈페이지의 이름을 「코리안 뉴스」라고 명명할 예정이며 중앙통신을 받아서 전해주는 도쿄의 조선통신사가 도쿄의 프로바이더(인터넷 접속서비스 제공업자)와 계약을 체결해 홈페이지를 개설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달 말부터 시험운용에 들어가게 될 홈페이지를 통해 영문 뉴스를 제공할 예정이며 사진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한반도 정책(일 보수정권 앞날:4·끝)

    ◎새 정권 외교정책 기존틀 유지/독도 영유권·과거사 문제 더 불거질듯/대북한 관계싸고 줄다리기 외교 전망 새로 출범할 일본 신정권의 한반도관련 외교정책은 지금까지의 노선에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선 이전에도 하시모토정권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동북아의 안정을 도모하는 자세를 취해왔다.이런 기본방향에 큰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다.따라서 대한반도 외교안보정책,경제정책에 있어서는 기존의 틀이 유지될 것이다.이번 선거에서도 이슈는 행정개혁,소비세 인상 등 국내문제였다.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영원한 라이벌 하시모토 류타로 자민당총재와 오자와 이치로 신진당수의 일전이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또 한면에서는 한·일관계가 기우뚱거릴 요소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93년 이후 이번 선거에 이르기까지 3년3개월동안의 한·일관계를 되돌아보면 기복이 심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첫번째로 등장한 호소카와정권에서 개선 조짐이 나타났었다면 무라야마정권에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총리는 과거사 등에 대해서는 전향적 인식을 내비쳤다.하지만 사회당과 자민당은 대북한 관계개선에 주도권 경쟁을 벌이면서 한국과의 충분한 협의를 생략한채 내달았다.광복 50주년을 맞아 망언이 잇달았다.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유엔 해양법조약 비준을 계기로 새삼스레 불거져 나와 양국관계를 최악으로 몰고갔다.김영삼 대통령은 「버릇을 고치겠다」고 별렀고 대북한 파이프를 구축하려다 한국에 견제당한 가토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은 방한시 김대통령이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다닐 정도로 양국관계는 개인간 차원까지도 악화됐다. 겨우 회복의 길로 접어든 것이 하시모토정권 아래서다.물론 영유권이라든가 과거사 인식 문제 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북한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이를 한국과의 외교에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보수세력들의 계산도 그대로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한 교포신문의 선거전 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교과서에 있어서 한국에 대한 기술」에 대해 자민·신진·민주 등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고 공산·사회당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재일동포에 대한 참정권 부여에 대해 자민당만 필요없다고 대답했고 다른 당들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전후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자민당은 문제될 만한 사안이 없다고 대답해,B·C급 전범보상과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었다.대북한 교섭 재개와 식량지원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가 나타날 가능성도 남아 있다.한·일관계는 안정이라는 큰 틀속에서 늘 파랑주의보가 내려질 수 있는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조선시대 교육내용 “한눈에”/서울대 30일부터 규장각 자료전시회

    『요즘에는 인재를 뽑을때 성적만을 중시하고 도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학식이 높고 행실이 올바르다 해도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그 도를 시험할 방법이 없다』­이이의 독서론. 『천·지를 배웠으면 일월 성신 산천 구릉 등도 배워야 하는데 천자문은 이같은 응용력을 기르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태워 없애야 한다』­박지원의 담총외기. 서울대 규장각이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마련한 「규장각 자료로 보는 조선시대의 교육전」에 전시된 내용들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후기의 실학자 유형원은 반계수록의 학교사목에서 국가개혁에는 반드시 교육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며 각 읍에 1차 학교를 설립할 것을 주장했다. 당시에도 뜨거웠던 교육열 못지 않게 교육개혁이 국가적인 과제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후기 국왕들의 학습내용을 수록한 열성조계강책자차제에 따르면 교육을 가장 중시했던 영조는 세자시절 소학·대학 등을 수학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44권의 경전을 아침·점심·저녁 하루 3차례 신하들과 학습했다. 또 윤최식의 일용지결에 따르면 당시 선비들은 계명이라고 일컬은 새벽 2∼4시부터 하루 16∼18시간을 자기수양과 독서에 몰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