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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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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장 대·소극장에 새이름

    국립극장의 대극장과 소극장이 각각 ‘해오름극장’과 ‘달오름극장’ 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됐다. 국립극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위상과 이미지에 걸맞는 이름을 찾아왔다.국립극장은 일반 공모에서 뽑힌 해오름·달오름극장이 아름다운 우리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극장의 성격과 잘 맞는데다, 세계로 뻗어나가고자하는 국립극장의 포부를 잘 나타내고 있어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새 이름은 일반인 721명이 참가한 인터넷투표에서 60%,문화예술계와 학계·언론계 주요인사 500명을 대상으로 한 의견수렴에서는 78%의 지지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서동철기자
  • 국립극장 50주년 기념공연 ‘수궁가’

    오는 29일 50주년을 맞는 국립극장(극장장 김명곤)이 기념공연으로 완판창극 ‘수궁가’를 무대에 올린다. 국립극장 전속 창극단의 완판창극 공연은 ‘춘향전’(98년)‘심청전’(99년)에 이어 세번째.‘춘향전’은 객석점유율 80%,‘심청전’은 전회매진의 기록을 세운 바 있어 이번 무대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수궁가’는 지난달 27일 타계한 허규 전국립극장장의 유작을 김명곤 극장장이 연출하는 작품.김극장장은 앞서 ‘춘향전’에서는 대본을,‘심청전’에서는 대본과 연출을 맡아 흥행의 견인차 구실을 해냈다.작창은 안숙선 창극단 예술감독이 맡는다. ‘수궁가’는 토끼의 간을 구하려는 별주부 얘기를 소재로 인간세태를 풍자한 작품으로 총 11장으로 구성된다.김극장장은 “자라의 충성심과 토끼의 지혜라는 교훈 외에 자라의 출세욕,토끼의 허영심 등 양면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겠다”고 설명했다.풍부한 합창곡과 역동적인 몸동작으로 시종 유쾌한 웃음을 선사할 계획.안숙선 예술감독은 “완판창극의 의미와 소리의 맛을 동시에 살리려고 애썼다”고덧붙였다. 안숙선 유수정 김금미(토끼 역)조통달 왕기석 왕기철(별주부 역)윤충일 김학용(용왕 역)등 쟁쟁한 국악인들이 3일씩 번갈아가며 공연한다.공연시간은 중간휴식 1시간을 포함해 총 4시간30분.창극단외에 무용단 극단 국악관현악단등 국립극장의 4개 전속단체 150여명이 힘을 합해 만든다. 50주년 기념식 직후인 5월6일 오후4시 첫무대를 가진 뒤 14일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공연한다.토끼띠와 용띠 관람객에게는 으뜸석과 버금석을 30%할인해주고,70세이상 고령자들은 무료 관람의 혜택을 준다.(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 *국립극장 한국신극 중심무대로 50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국립극장은 문을 연 지 두달만에 전쟁의 포화에 휩싸여 유랑하는 등 쉰해동안 숱한 영욕의 세월을 거쳐온 우리 극장사의산증인이다.1948년 법령 제정에 따라 2년간 준비한 끝에 50년 4월29일 옛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 둥지를 틀고,극예술연구회·극예술협회·동양극장 계열을 아우른 우리나라 신극의 중심무대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부민관이 폭격 당하자 전선을 따라 대구로 내려가 피난살이를 했다.57년 서울로 돌아온 국립극장은 옛 명동예술회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전속인 국립극단을 탄생시켰다.62년에는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오페라단을 창단했다.당시 명동이 한국문화의 메카 구실을 한 데는 국립극장의 공이 컸다. 문화예술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극장이 지금의 장충동 자리로 옮겨온것은 73년.연극평론가 유민영씨는 “이때부터 국립극장에 침체기가 시작됐다”면서 “문공부 출신 극장장이 1∼2년씩 자리만 지키다가 지나감으로써 거대공룡 국립극장은 무대예술의 사각지대가 됐다”고 회고했다.74년에는 광복절 행사를 치르다 육영수여사가 피격되는 불행한 사건도 겪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창극정립운동을 펼쳐 국악발전을 이끌고,97년이후 발레상설공연을 갖는 등 각 분야 공연예술을 균형있게 발전시킨 공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특히 올해부터는 책임운영기관으로 탈바꿈해 내부 구조개편과수준높은 공연 등 극장 전반에 걸쳐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념식은 5월 6일 오후 2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이순녀기자
  • 50-60년대 한국미술의 한단면-한국은행 소장품展

    한국은행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이 기획전을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선보였다.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6월12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국은행과 공동으로 덕수궁 분관에서 열고 있는 ‘한국근대미술의 한 단면-한국은행 소장품을 중심으로’전이 그 자리다. 6월 20일까지. 이 전시에는 김인승의 ‘봄의 가락’을 비롯해 박상옥의 ‘한국은행’,김은호의 ‘풍악추명’,박항섭의 ‘포도원의 하루’,심형구의 ‘수변’,,변관식의 ‘비폭 앞의 암자’,이상범의 ‘야산귀로’,허백련의 ‘어형초제’,박승무의 ‘청강어락’,장우성의 ‘신황’등 모두 72점이 나와 있다. 한국은행 본점과 16개 지점이 갖고 있는 1,800여점 가운데 작품성이 뛰어난것들만을 골라 뽑아 공개한 것이다.이와 관련,전시를 주관한 최은주 덕수궁분관장은 “미술품 수집가가 적었던 1950∼60년대에는 은행이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며 “당시에는 국전을 치르고 나면 정부에서 주요 미술품의 매입을권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시작중 백미는 봄을 기다리는 설렘과 희망을 첼로 연주가와 감상자인 청년군상의 초상에 빗대어 형상화한 김인승의 ‘봄의 가락’(1942).구도의 치밀함과 인체의 해부학적 묘사,세심한 채색 등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또 박상옥의 ‘한국은행’(1959)은 한국은행 주변풍경은 물론 삼각산과 인왕산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해 당시의 정황을 보여주며,김은호의 ‘풍악추명’(1958)은 비단결처럼 흘러내리는 금강산의 폭포와 화려한 단풍이 인상적인 채색 산수화다. 이번 한국은행 소장품전은 공공기관 미술품 콜렉션의 첫 대중적 외화(外化)작업이란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나아가 미술품을 소장한 다른 공공기관에게도 그동안의 미술품 소장정책을 되돌아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정책을 펴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종면기자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정보화는 앞서 나가자

    올해가 6·25전쟁 50주년.우리 국민의 70%가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로이제 우리 모두는 전쟁을 거의 잊어 가고 있다.그러나 돌이켜 보면 지난 100년간 우리 민족은 1894년 청일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러일,중일,태평양,6.25전쟁 등 다섯 번의 전쟁과 한일합방의 수난을 겪어야 했고 분단의 뼈저린 아픔을 지금도 계속 겪고 있다. 지난 100년, 왜 우리 민족은 이렇게 반복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는가? 흔히반도국가로서의 지정학적 여건과 약소민족이었던 점을 그 이유로 든다.그러나 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나 오스만 터키도 반도국가였고 오늘날작은 이스라엘은 상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불리한 여건속에서도 4차례의 중동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우리 민족이 수난을 반복한 첫 이유는 무엇보다도 상무정신(尙武精神)의 결여에 있었다고 본다.스스로 나라를 지키려는 자위정신보다는 강대국에 의존하려는 사대주의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의 전쟁에 제물이 되어예외 없이 수난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시대적 환경 변화에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지도층의 정책적 과오였다.19세기 중반,조선의 대원군은 국제정세 변화를 외면한 채 쇄국만을고집하였다.그 결과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다시금 대원군 시대와 비슷한 또 하나의 전환기적 시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산업화 시대를 뒤로 하고 이제 정보화 시대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보화 시대의 안보 100년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분명한 것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자위정신을 가지고 스스로나라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계속 갖추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특히북한 위협이 소멸된 이후의 미래 안보는 초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더욱어렵고 힘든 과업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군 스스로는 미래 정보화 시대의 안보환경을 예측하고 정보전·과학전에 대비한 첨단 정예군을 육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산업화 시대의 재래식전력 증강에만 집착하다가는 다시 정보화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첨단정예군의 육성은 무엇보다도 우수한 인재 양성과 첨단 무기체계의 개발이 중요하다.우리 군이 야전부대에 인터넷 교육장을 설치하고,교육개혁을 통해 인재양성에 주력하면서,미래 첨단 전력 위주로 군사력을 정비해 나가는것도 모두 선진정보화 군을 육성하려는 노력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 군은 지난 안보 100년의 교훈을 거울삼아 미래 안보 100년을 착실하게준비해 나가고 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간다는 것이 우리 군의 각오다. 趙成台 국방장관
  • 여권 ‘밀레니엄 대사면’ 분산실시 어떻게

    여권이 ‘밀레니엄 대사면’의 시기와 방법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단계적 실시’목소리가 세를 얻어가고 있다. 여권은 당초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 2주년과 3·1절에 맞춰 지난 2월말 수백만명이 혜택을 보는 대대적인 사면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하지만 ‘총선용’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총선 이후로연기했다. 총선이 끝남에 따라 다시 대사면의 방법을 논의중이나 여러 대안만 떠오를뿐 아직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특히 6월12∼14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열리게됨으로써 밀레니엄사면은 그와 연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문제를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고위관계자가 사견임을 전제한 뒤“간첩사범을 제외한 공안사범에 대한 큰 폭의 사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어쨌든 여권은 밀레니엄 사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크므로 빠른 시일 안에 그 실시 시기와 규모·방법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여권의 고민은 두가지.앞서 밝혔듯 공안사범까지 포함,사면대상을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와 함께 대규모 사면을 실시할 적절한 계기를 어느 때로 잡을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불교계는 석가탄신일인 다음달 11일을 기해 대사면을 단행해줄 것을 정부·여당에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여권으로서는 밀레니엄 사면의 의미와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여타 종교단체와의 형평 문제를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민주당은 석가탄신일과 한국전쟁 50주년인 6월25일,8·15광복절 등 중요한 날에 사면을 분산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석가탄신일에는 사형수를 무기수로 감형하거나 일부 모범수를 석방하고,한국전쟁 50주년에는 공안사범을 중심으로 사면을 단행한다는 것이다.이어 8·15 때는경제사범 등 일반 범죄자들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사면을 실시한다는 구상이다. 여권은 사면대상 선정 원칙으로 공익과 국민화합을 제시하고 있다.부정부패,비리에 연루됐다 하더라도 파렴치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면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징계받은 일부 공무원·공기업·금융기관종사자에 대해서도 사면을 검토하고,부정수표단속법 위반자 등 IMF(국제통화기금)형 경제사범도 선별해 사면·복권한다는 방침이다.식품위생법,건축법,도로교통법 위반 등 생계형 행정사범에 대해서도 적절한 방법으로 사면·복권이 단행될 전망이다. 이지운기자 jj@
  • 호주에 6·25 참전기념비 세워진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산화하거나 부상을 입은 호주군 1,500여명의 공훈을 기리기 위한 참전기념비가 호주 캔버라시 전쟁기념관앞 앤젝공원에 세워진다. 호주 6·25전쟁 참전기념비건립위원회는 오는 18일 오전 9시(현지시간) 앤젝공원에서 월리엄 패트릭 호주총독과 존 하워드 수상 및 참전용사와 시민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준공식을 갖는다. 김종성(金鍾成)국가보훈처 차장,백선엽(白善燁) 6·25 50주년 기념사업위원장,윤재철(尹在喆) 대한민국상이군경회장 등 국내인사 80여명도 참석한다. 기념물은 12m 첨탑형태의 기념탑과 한국산 화강암으로 다듬어진 기념로,한국 정부가 기증한 ‘가평돌’ 등으로 조성됐다. 6·25전쟁당시 호주는 보병 2개대대,항공모함 1척,구축함 4척,2개 비행편대등 모두 1,700여명이 참전,306명이 전사하고 1,216명이 부상을 입었다. 노주석기자 joo@
  •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LA타임스 기고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11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을 여는데 기여해 왔다며 미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다음은 그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간추린 것.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는 획기적 사건이 될 것이다.한반도 분단 이후남북한 정상회담은 한번도 열린 적이 없으며 남북한은 55년간 서로 상대를비난해왔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전 발발 50주년에 즈음해 열린다는 상징적 의미외에김정일(金正日)의 공식적인 국제사회 데뷔 무대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남북화해는 72년 7·4 남북공동성명,91년말 남북기본합의서,94년 김일성(金日成)의 남북정상회담 제의 등으로 희망이 부풀었으나 무산됨으로써 ‘획기적인’ 원칙들도 잊혀졌다.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몇년간의 외교활동,남한과 미국의 극적인 정책변화,고집세고 심술궂은 이미지와는 대조되는 북한의타협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른 의미를 지닌다. 3년간 끝었던 북한의 핵개발문제는 94년6월 전쟁위기까지 갔으나 줄기찬외교노력으로 북한의 핵발전프로그램을 동결시켰고 이는 아직도 유효하다.북한은 97년 4자회담에 동의함으로써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닌 남한과 대화 거부라는 종전 입장을 버렸다.98∼99년 북한의 대규모 지하 핵시설 의혹 소동은 미국의 사찰 허용으로 마무리됐고 미국은 작년 9월 미사일 시험 중단 대가로 50년만에 대북경제제재를 완화키로 합의했다.북한정부는 최근 이탈리아와 수교 이후 독일,프랑스,영국,호주 등과 관계개선 회담을 진행하고 있으며고위급 대표단이 다음달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어느 역대 한국 및 미국 대통령보다도 정책 변화를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98년2월 취임식에서 북한과 능동적 화해 및 협력을추구하고 전임자들과는 달리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 시도를 지지할 것을 약속했다.김대통령은 98년6월 방미 때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공개적으로 요청한첫 한국대통령이었다.그는 북한에 양보를 요구하지 않고 식량과 원조품을 전달했다.그의 ‘햇볕정책’은 오랜 남북문제 연구와 지도자로서의 경륜 끝에나온 것이다. 김대통령은 아직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는 한국전을 마무리한 사람으로서 이임하길 바라고 있다.이는 긍극적인 화해와 통일에 필수적인 전제요건이다.미국 정치인들은 김대통령의 이런 야심을 시기하거나 간섭하지 말고 그를지지하고 밀어줘야 한다. 로스앤젤레스 연합
  • 韓銀 소장 미술품 전시회

    한국은행이 창립 50주년 기념 사업으로 소장 미술품 전시회를 연다. 오는 20일부터 두달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한국은행본점 건물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화와 유화 72점이 일반에 공개된다. 전시작품 중에는 김인승의 ‘봄의 가락’, 박상옥의 ‘한국은행’, 박항섭의 ‘포도원의 하루’, 심형구의 ‘수변(水邊)’, 김은호의 ‘풍악추명(楓岳秋明)’, 변관식의 ‘비폭앞의 암자’, 이상범의 ‘야산귀로(野山歸路)’,조중현의 우중구압(雨中驅鴨), 허백련의 ‘어형초제(漁兄樵弟)’ 등 유명 작품이 포함돼 있다. 이 작품들은 한은 창립 이후 한두 작품씩 구입해 건물내에 전시해 왔던 것으로 근대 미술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라고 한은은 밝혔다. 손성진기자 sonsj@
  • 남북 정상회담/ 청와대·정부 움직임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는 1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에 따른 준비작업에착수했다.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NSC)는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갖고조만간 열릴 실무 준비접촉에 대비한 대책을 논의했다. 통일부와 경제부처 등 관련 부처들도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와 관련자료수집에 들어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대북포용정책의 개가로 평가했다.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30여년 동안대북정책을 준비해왔고, 그 내용이 대북포용정책으로 집약된 것”이라며 “북한은 처음에는 이 정책을 자신들의 체제를 흔들기 위한 것으로 의심했지만,일관되게 추진하자 진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베를린선언이 인식변화를 가져온 주요 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이 선언이후 포용정책의 참뜻이 화해와 협력의 정신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회담을 갖자고 나온 것”이라고강조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연말쯤 이뤄질 것으로 본 탓인지놀라움을감추지 못한 분위기다. 박 대변인은 “이렇게 빨리 성사될 줄은 몰랐다. 김대통령도 놀라워 한다”고 전하고 “내일 열릴 국무회의에서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 대통령의 구상과 정부부처의 준비사항 등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외교안보부처] 긴장감을 보이며 본격적인 회담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통일부는 “교착상태의 남북관계가 도약의 기회를 맞게됐다”며 환영하면서 “회담준비 주무부처로서 냉전구조 해체와 남북 평화공존 계기를 만들 수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또 “비공개 접촉의 보안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장·차관 등 몇몇을 제외하곤 진행사항을 몰랐다”고놀라와 하면서도 “94년 정상회담을 준비한 경험이 있어 준비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사전통보하는등 후속 조치에 분주했다. 9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강국 등에게 회담개최 합의 사실을 알렸다. 이와함께 북한에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러시아와도 한반도평화와 화해를 위한 협력관계를 강화,남북관계 진전에 협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국방부는 공식논평을 내지는 않았으나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보고 환영하는 분위기다.특히 6·25전쟁 50주년에 역사적인 회담이 열리게 된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있다. [경제 및 문화 부처] 본격적인 대북경협에 대비한 대책마련에 돌입했다.특히그동안 민간차원의 단편적 교류가 정부간 협력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으로 종합적인 교류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재경부는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 방지협정,결제제도 등의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남북경협이 시작된지 10년이 됐으나 민간차원의 경협은 적지않은 한계를 지니고 이어 남북 정부간 대화가 필요했었다”고 말했다. 비료지원 등 남북협력 방안을 준비해온 농림부도 고무된 분위기다.남북한의농업기술을 상호보완하고 구제역 방역과 산불방지,솔잎혹파리 방제 등 공통현안에 대한 공동연구와 작업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정보통신부는 남북이산가족 문제등의 진전과 함께 남북간 통신문제 해소가최우선시될 것으로 내다봤다.한 관계자는 “남북교류가 본격화될 경우 남북통신문제가 유선전화는 물론 이동전화에서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본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는 정부예산에서 지원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중이다.또 내년 예산편성때 남북협력기금을 대폭확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해양수산부는 남북한간 컨테이너 직항로 및 백두산 항로 개설과 남북 민간단체간 합의한 동해 남북공동어로 조업을 당국의 지원아래 성사시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박지원(朴智元)장관이 측근들도 모르게 베이징을 오가며 대북특사 역할을 했다는데 놀라워했다.기자회견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온 박장관은 “문화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실·국장들로 팀을 구성하여 앞으로의 남북 문화교류에 대비할 생각”이라고 한걸음 나아간 계획을 밝혔다. 박장관은 “북한쪽과 접촉해보니 언어부터가 서로 달라져 애로가 많아 언어와 문화재 분야는 당장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체육분야도 북한은 고지대의 마라톤연습장 등을 제공하고,우리도 겨울철에 북한선수들이기후가 따뜻한 지역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협력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피력했다. 양승현 노주석 서동철 김환용기자 yangbak@
  • 남북 정상회담/ 성사 의미·전망

    황원탁(黃源卓)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0일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발표를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지난 55년간 분단과 갈등,분열과 대립의 역사에서 화해와 협력,평화와 공존공영의 길로 들어설 전기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또 올해는 6·25전쟁 발발 50주년을 맞는 해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이날 남북이 동시에 발표한 합의서에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교류와 협력,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정상회담의 목적을 분명히 명시하고있다. 사실 정상회담 성사는 대북 포용정책의 목표가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 정착에 있다는 것을 북한이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지난 2년 동안 포용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북한이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왔다는 자체가 그 방증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 이후 조금씩움직이던 북한이 마침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일련의 과정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황 수석도 “베를린선언은 포용정책이 화해와 협력을 위한 정책이라는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이었다”면서 “북한이 이를 이해하고 신뢰하게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무엇보다 포용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국제적 지지가 동인(動因)이 되었다.포용정책은 그동안 국내 보수세력의 반발과 북한의 돌출 행동에 의해 여러차례 위기를 맞았다.북한 무장 잠수정 침투와 연평해전,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그리고 야당의 ‘주기만 하는 정책’이라는 비판 등으로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에 부딪혀 왔다.총선정국으로 들어서면서성과 부진을 이유로 야당의 포화 대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그때마다 “북한의 태도에 일희일비할 수는 없다”며 포용정책의 지속을 강조했다.이번 정상회담 개최 합의로 일관된 대북정책의 실효성을입증하게 된 셈이다. 북한측 입장에서 보면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개방노선을 추구하기로했다는 것을 뜻한다.정상회담 자체가 국제사회의 남북간 당사자 대화 ‘압력’을 북측이 받아들인 결과라 할 수 있다.아울러 우리를 ‘개방 파트너’로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SOC 건설 지원 등 경협문제와 이산가족 상봉을포함한 제반 문제가 포괄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여 한반도 내부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예고된다. 이렇게 볼 때 남북 정상회담의 키워드는 한반도 냉전종식과 평화정착,화해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춤의 대가 4人의 4色 춤향연

    ‘4인4색(四人四色),나흘간의 춤이야기’.한국무용을 대표할 만한 대가 네명의 춤세계가 19∼22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주인공들은 국립무용단 단장을 지낸 송범(74·초대)조흥동(59·2대)최현(71·3대)국수호(52·4대)다. 국립중앙극장 개관 5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이 공연은 여러 면에서 의의가 크다.첫째 이 시대를 주름잡는 한국춤 대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의미가 있고,둘째로는 국립무용단이 폐쇄성을 벗어난다는 상징적인 뜻이 있다. 그동안에는 단장에서 물러나면 아예 인연이 끊어지다시피했는데,연초 5대에오른 배정혜단장이 총연출을 맡아 전임자들을 한자리에 ‘모신’것.그만큼무용계에서는 신선한 기획으로 받아들인다. 넷 가운데 첫 공연을 하는 이는 국수호(19일).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티벳의 하늘’을 내놓는다.안무자 스스로 ‘춤극’이라 이름붙인,현대적이고 이야기전개가 뚜렷한 40분짜리 작품이다.지난해 추문 끝에 구속돼 단장직을 물러난 뒤 처음 갖는 공식무대여서 무용계 이목이 집중돼 있다. 뒤이은 20일에는 ‘단아하고 섬세하며 때론 화려하고 교태 넘치는’최현의춤 ‘연가’‘군자무’‘최현 춤의 약동’이 준비돼 있다.3일째(21일)에는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조흥동이 ‘천지제’‘시나위’‘진쇠춤’‘삶의 역동’을,마지막 날(22일)에는 예술원 회원 송범이 ‘산조’‘사랑의 춤’‘강강술래’로 관객을 맞는다. 그러나 화려한 춤잔치는 이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국립무용단은 2부 무대로 4인의 작품에 못잖은 영남춤 안무자 네 명의 ‘영남춤 모음’을 매일 한가지씩 무대에 올려 ‘4색’을 함께 감상하게끔 프로그램을 짰다. 영남춤은 예로부터 “소리는 호남,춤은 영남”이라 했을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걸죽한 신명의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다. 4색을 보여줄 안무자는 김덕명 김온경 이윤석 하용부 등으로 덧배기춤(영남춤)중에서 ‘동래학춤’‘양산사찰학춤’‘고성오광대’‘밀양북춤’‘밀양범부춤’등 5편을 골랐다.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유’보유자인 문장원(84)을 비롯해 안무자와 국립무용단이 한데 어울린다.한편 국립무용단은 이번공연 공연을 앞두고 무용팬을 위한 특별할인제를 마련했다.4회 공연을 모두버금석(S석)에서 감상하는 ‘나흘티켓’을 4만원에,무용단의 올해 공연 전체를 으뜸석(R석)에서 관람하는 ‘일년티켓’을 7만원에 판매한다.공연은 매일7시30분.(02)2274-3507∼8. 이용원기자 ywyi@
  • 리뷰/ 국립극단 50돌 기념극 ‘태’

    한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일상의 뒤안에는 얼마나 무수한 뜻이 숨어 있는 것일까.오태석 작·연출의 ‘태’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어찌할 수 없는 ‘핏줄’의 질기디질긴 생명력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수백년전 역사의 한대목을 빌려 작품이 전하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은,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고 생명마저도 복제 가능하다고 믿는 요즘 시대에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때는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권좌에 오른 직후.세조는 단종의 복위를 충언하는 사육신에게 삼족을 멸하는 중형을 내린다.그 하나인 박팽년의 며느리는아들을 출산한 뒤 때마침 태어난 종의 아들과 자리를 바꾼다.종의 아들은 그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박씨 가문의 아들은 이름없는 노비의 자식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한편 권력을 위해 피바람을 일으킨 세조는 밤낮으로 사육신의 망령에 시달린다. 역사를 배경으로 했지만 무대는 대단히 현대적이다.한가운데 놓인 병풍 하나와 잘린 대나무를 연상케 하는 네 귀퉁이의 한지 기둥이 세트의 전부이다.불필요한 치장을 생략함으로써 배우들이 무대 위를 마음껏 장악하도록 했다는느낌을 준다.국립극장 대극장의 앞쪽 객석 일부를 들어내고 이를 무대로 활용했는데,여기서 얻어지는 무대의 공간감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 작품의 독특한 구조를 효과적으로 객석에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무대에서 실제부르는 창(唱)과 신시사이저 음악의 공존도 낯설지 않게 들린다. 지난 74년 초연 이후 수차례 재공연한 이 작품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시각으로 해석돼 왔다.70∼80년대 공연이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에,90년대의공연이 ‘용서와 화해’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면,이번 공연은 작가가 원래의도한 ‘생명’그 자체에 대한 탐구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양반의 대를 이어주느라 제 자식을 빼앗긴 어미의 실성한 모습이나,집안남자를 모두 잃은 아낙네들이 무덤 앞에서 절규하는 장면 등은 이같은 주제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국립극단 50주년 기념작으로 올린 이 공연은 9일까지 계속된다.(02)2274-1151∼8이순녀기자 coral@
  • 6·25 교육용 포스터 공모

    교육부는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교원과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용 포스터 작품을 공모한다고 3일 밝혔다. 전쟁의 참상과 의의를 되새기고 통일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내용으로2명 이상 공동작품도 가능하며,응모기간은 오는 10일부터 내달 10일까지 한달간이다. 초·중등교원과 학생은 시·도교육청에,대학교원과 대학생은 교육부에 내면되고 모두 48편을 뽑아 상장과 부상 또는 상금을 준다. 자세한 내용은 교육부 홈페이지(www.moe.go.kr)에 소개돼 있고,문의는 각시·도교육청 또는 교육부 학교정책과(720-3340,3046∼7)로 하면 된다. 박홍기기자 hkpark@
  • 바흐를 알면 고전음악이 보여요

    서양 고전음악을 말하라면 우리는 흔히 모짜르트나 베토벤을 떠올린다.그러나 서양 고전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열에 아홉은 바흐라고 대답한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그가 완성한 ‘평균율’과 ‘대위법’은 서양 고전음악의 본격적인 원류라고 할 수 있다.서양 고전음악을 이해하려면 바흐를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악성(樂聖) 베토벤은 바흐를 ‘음악의 바다’라고까지 극찬했다. 올해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서거 250주년이다.세계 곳곳에서는 그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음악의 바다,바흐’(정종목 지음 박병국 그림 창작과비평사)는 어린이들을 위한 바흐 인물이야기이다.균형있는 구성으로 어린이들이 서양 고전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필요한 기초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바흐는 음악가 집 안에서 태어났다.할아버지는 연주를 했고,아버지는 시(市)음악가였다.사촌아저씨도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다.따라서 음악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자연스러웠다.연주와 노래 등 타고 난 재능도 뛰어났지만 배움의 열정도 강했다.달빛 아래서 악보를 썼고,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를 듣기 위해 몇십킬로미터를 걸어 가기도 했다. 이 책은 바흐의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준다.합창 지휘자로 있을 때 바손 연주자의 솜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염소 소리같다’고 무안을 줬다가 싸움을했다거나 경쾌하고 극적인 교회음악을 만들었다고 성직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도 굴하지 않던 신념 등이 들어 있다.책 끝부분에는 어린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바흐의 주요작품과 푸가(fuga),토가타(toccata) 등 음악용어를 쉽게 설명해 놓았다. 또 바흐의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고,바흐의 사진이나 고전음악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관련 웹사이트도 소개되어 있다. 김명승기자 mskim@
  • 천재음악가 쿠르트 바일의 작품세계

    유태계 무정부주의자로 나치치하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독일의 천재음악가 쿠르트 바일 작고 50주년을 맞아 케이블 예술영화TV(채널37)가 특집을 마련한다. 2일 밤9시 바일의 음악세계를 다룬 다큐 ‘9월의 노래’에 이어 작고일인 3일 밤10시에는 그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함께 만든 ‘서푼짜리 오페라’가방영된다.‘서푼…’이 흑인 재즈와 캬바레 음악을 차용해 독일의 순수예술혈통을 오염시켰다며 히틀러 정권은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그는 파리를거쳐 뉴욕으로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작품은 60년동안 상연이 금지됐다. 임병선기자
  • 北·美고위급회담 늦어질듯

    이홍구(李洪九)주미 대사는 29일 북·미 고위급회담은 다소 시일이 늦어질 전망이나 이미 합의된 미조사팀의 5월 북한 금창리제2차 현장조사 때 북·미관계에 대한 접근 방법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밝혔다. 이대사는 이날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진상 조사 역시 6·25발발 50주년 한·미 공동행사 이전에 마무리짓도록 한·미가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미회담 실질적인 경제제재 해제 효과를 얻기 위해 테러리스트 명단에서제외시켜줄 것을 주장하는 북한은 이를 고위급회담과 연계,회담 개최가 늦어질 공산이 크다.북한내 정권 위상 강화와 대미협상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서해 군사분계선 문제나 회담전 테러국명단 제외를 주장하고 있다고보인다. 따라서 김정일(金正日)의 생일과 한국의 총선이 있는 4월 중순이 지난 시점까지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이끌 경우 어떤 식으로든 회담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노근리 조사 오는 6월25일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추념하는 6·25발발 50주년 행사 이전에조사를 완료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조사 내용을 왜곡하거나 감추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다만 현재 피해자 측에서 보상 문제로 변호사를 선임한다면 미국도 변호사를 내세워 대응할 공산도 있어 시간이더 걸릴 수 있다. ?범인인도 요청 현재 한국정부가 1차 수명의 명단을 제출,미 사법당국이 소재파악에 나서는 등 움직임이 있다.그러나 내용은 밝히지 않는 것이 좋으며,현재 어떤 진행 상황인지는 전해듣지 못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hay@
  • 안중근의사 순국 90주기/ 安의사 의거와 ‘대한매일신보’

    구한말 구국항일지 ‘대한매일신보’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다음날부터 관련기사를 대서특필,민족지로서의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특히 안 의사의 사형언도일인 1910년 2월 14일을 전후해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공판내용을 보도했다.또 안 의사의 옥중소식이나 가족근황 등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보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안 의사 의거 다음날인 10월 27일자 대한매일신보(한글판)는 하얼빈발 26일자 전보를 인용,이토가 하얼빈역에서 ‘한국사람’에게 총을 맞은 사실을 보도하였다.같은 날짜 ‘잡보’에서는 ‘조선일일신문’의 호외보도를 인용,이등박문이 26일 아침 암살당하였다고 보도하였다.11월 21일자에서는 일본 ‘대판조일(大阪朝日)신문’의 보도를 인용,안 의사가 예심에서 밝힌 이토를처단한 이유 15항을 실었는데 그 내용은 1.명성황후 살해 2.을사조약 체결,… 5.군대해산 등이다.이 해 12월 5일부터는 뤼순감옥에 수감중이던 안 의사의 동정을 변호인 등 면회자들의 입을 통해 ‘뤼순통신’이란 제목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1월 29일자 ‘시모시자(是母是子)’라는 기사에서는 안 의사의 어머니 조(趙)마리아 여사가 “중근은 러일전쟁 이후로 줄곧 위국헌신 사상을 가지고있었으며 국채보상금 모집때도 아내의 패물을 기꺼이 내놓았다”며 아들을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두고 조 여사의 인간됨이 한국에서 드문 인물이라고보도하였다. 한편 안의사에 대한 재판이 본격 시작된 이듬해 2월부터는 공판내용을 연일지면의 절반 가량을 할애해 보도하기 시작했다.안 의사에게 ‘살인죄’로 사형이 언도된 14일을 전후해 12일자부터 대한매일신보는 10회에 걸쳐 이를 보도하였다.15일자에서는 안 의사가 최후변론에서 “나는 일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의군(義軍)의 참모중장으로 이 거사를 한 즉 의전(義戰)의 포로이니 보통 형사피고인으로 처리함은 불가하다”고 진술한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순국 하루전인 3월 25일자에는 안의사가 변호인을 통해 한국동포에게 보내는 유언을 실었다.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3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그 목적을달성치 못하고 여기서 죽노니 2천만 형제자매들은 분발하여 학문을 면려하고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유지를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나는 아무런유감이 없다” 이밖에도 대한매일신보는 안 의사가 옥중에서 작성한 편지 6통을 남긴 사실도 보도하였다.이 편지들은 안 의사가 사형언도 당일 어머니와 부인 앞으로쓴 2통과,홍(洪)신부,아우 명근(明根),민(閔)주교,숙부 등 4명 앞으로 쓴 4통 등 모두 6통이다.천주교 신자인 안 의사의 편지 첫머리는 모두 ‘야소(耶蘇,예수)를 찬미합니다’,‘아멘’ 등으로 시작하고 있다.특히 부인 앞으로보낸 편지에서 안 의사는 “이슬과도 같은 허망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배필이 되고 다시 주(主)의 명(命)으로 이에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멀지 않아 주의 은혜로 천당영복의 땅에서 영원(靈源)에 모이려 하오…장남 분도는신부가 되게 하려고 마음에 결정하였으니 잊지말고 천주께 바쳐 신부가 되게하시오”라고 부탁하였다. 한편 대한매일신보는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당일 이를호외로 보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실물은 전하지 않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安의사 유해발굴 70년대부터 추진. 우리 정부는 지난 77년부터 안의사의 유해 발굴작업을 추진해 왔으나 아직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중국과 수교 이전에는 현장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데다 그 이후도 중국이 북한을 의식,적극적인 협조를 보이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 유해발굴작업은 80년대 중반부터 정부차원에서 본격 추진됐다.86년12월 정부는 외무부(현 외교통상부)·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중국 당국에 협조요청을 한 바 있으며,88년에는 중국을 방문한 학자들을 통해 조사를 의뢰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89년 안의사 의거 80주년 기념 학술회의 참가차 당시보훈처 관계관이 뤼순감옥을 처음 답사했으나 묘소위치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2년 뒤인 91년 중국지역 독립운동관련 사적지 답사차 방중한 학자 및 관계공무원 일행은 뤼순감옥 뒷편의 공동묘지가 모두 발굴된 후 일반건물이 들어섰으며,안 의사 묘소의 이장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특히 이들은 북한측에서도 수 차례 안 의사 묘소를 방문,조사를 벌였으나 묘소위치 확인에 실패하였다는 사실을 들었다. 92년 안 의사 유가족과 안의사숭모회 관계자 등이 현지 방문조사를 벌였으나 특별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93년 8월 한중외무차관 회의시 우리정부는다시 협조요청을 하였으나 중국측은 묘소확인의 어려움과 안 의사가 북한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이 해 11월 정부는 광복50주년행사의 일환으로 범국민적 차원에서 일본내자료수집과 관련자 면담 등 다각적인 노력을 벌였으나 이 역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94년 방한한 중국 문화부 장관은 조사결과 근거자료가 없어 묘소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우리정부에 공식 전달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 70년대 중반 김일성 주석의 특별지시와 중국당국의 특별협조를 얻어 뤼순감옥 기록 등을 검토하고 감옥 주변을 조사했으나 유해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의사 90주기 행사 참석을 위해 최근 방한한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손자인 안웅호(安雄浩·67·재미)씨는 방한기간중 안 의사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굴될 경우 안 의사 유해 진위확인에 필요한 DNA검사 등을 위한 혈액·머리카락 등의 채취에 참여할 계획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최근 도쿄에서 공개된 자료를 입수,검토하여 유익한 자료로 판단될 경우 정부차원에서도 묘소발굴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특별제언/ 安의사 유해 찾아 판문점에 모시자. 그날 중국 뤼순(旅順)은 흐린 날씨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찌 하늘인들천하 대장부, 만대 의사가 가는 길에 무심하겠는가. 안중근의사는 모친이 새로 지어 보낸 한복(상의는 백무지, 하의는 흑색)으로 갈아입고 얼굴에 희색을 띠며 형장으로 향했다.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달리 유언할 아무것도 없지만 원래 나의 거사는 오로지 동양평화를 위한성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바라건데 오늘 임검한 일본관헌도 행여 나의뜻을 양지한다면 피아의 구별없이 합심협력하여 동양평화를 기도하기를 절망(切望)할 뿐이다. 덧붙여 내 요망은 죽음을 앞두고 동양평화만세를 삼창하고싶다”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그의 마지막 소원도 거부하고 형을 집행했다. 교수형이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15분, 당시 안의사는 32세, 국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지 5개월 되는 날로서 생을 접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다. 집행전날 면회온 두 동생이 슬퍼하자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꼭 죽는 법, 죽음을두려워할 내가 아니다. 삶은 꿈과 같고 죽음은 영면하는 것, 조금도 어려운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동생들을 달랬다. 사마천은 일찍이 사람은 한번 죽지만 그 의의는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있고기러기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고 했다. 정의를 위한 죽음은 태산보다 중하지만 불의한 장수는 기러기털보다 가벼운 것, 안의사의 속령 32세를 어찌 짧다고 하겠는가. 안의사의 순국을 청국의 원세개(袁世凱)는 이렇게 찬양했다. 平生營事只今畢 死地圖生非丈夫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歲死千秋 평생 벼르던 일 이제야 끝냈구나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아니고 몸은 한국출신이지만 이름 만방떨치니 백년못사는 인생 죽어 천년을 가리. 순국 5분후 안의사의 관은 백포(白布)에 쌓여 뤼순감옥 성당에 안치되어 우덕순·정도광·유동하 3동지에게만 마지막 예배를 시키고 오후1시 감옥묘지에 매장되었다. 안의사는 동생들에게 “유골은 하르빈공원묘지에 묻었다가국권회복 후 고국으로 반장하라”고 일렀다. 기록마다 ‘고국’또는 ‘고향’으로 표기가 다르다. 백암 박은식은 거사 후에 쓴 ‘안중근전’에서 ‘국권회복이 반장고토(國權回復而返葬故土)’라 하여 ‘고토’라고 표시했다. 안의사의 고향이 황해도신천인 관계로 북한이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어 유언의 내용은 중요한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로’모시느냐가 아니라 유해를 찾는 작업이 급선무다. 유해를 찾게되면 판문점이나 휴전선에 남북함께 안의사기념관을 짓고 그곳에 봉안했다가 통일후 고향에 안장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건국이래 처음으로 안의사의 유해발굴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한 일이다. 때마침 안의사 유골발굴위원회 도교(東京)사무국에서유해 매장장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어유해발굴 가능성을 높이고있다. 안의사 순국 90주년, ‘국권회복’55년만에 이제야 의사의 유해발굴에 나선것은 남북한 7천만 동포의 부끄러운 일이지만, 새천년 벽두에 남북이 함께참여하여 유해발굴이 성사된 다면 민족적 경사가 될것이다. 안의사는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형집행으로 완성하지 못하고 서론 부분만 집필했지만 그의 사상과 활동의 연관성을 어느정도 보여준다. 그는 동양평화를 실현하고 일본이 자존(自存)하는 길은 한국의 국권을 되돌려 주고 만주와 청나라에 대한 야욕을 버린 뒤 서로 독립한 3국이 동맹하여서양 세력의 침략을 막고 나아가 개화의 역(域)으로 진보하여 구주와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고 했다. 90년전 안의사의 주장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양 3국은 ‘구주와 세계각국’과 더불어 세계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할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 통일되어 한·중·일의 ‘독립한 3국’이 정립하여 아시아 평화와공존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안의사 순국 90주년의 의미이며 그의 유지(遺志)이기도 하겠다. 김삼웅 주필 kimsu@
  • 서재필박사 기념공원 예산부족 공사중단

    정부가 광복 50주년 기념행사로 추진해온 서재필(徐載弼·1864∼1951) 박사기념공원 사업이 장기간 중단된 채 방치되고 있다. 24일 전남 보성군에 따르면 출생지인 문덕면 용암리 6만6,000㎡에 들어설서 박사 기념공원 사업이 99년말 완공 목표로 92년 착공됐으나 예산 부족으로 지난해부터 공사가 중단돼 생가터 복원과 조경공사 등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지난해까지 총 사업비(105억원)의 85%선인 89억3,000만원만 투자됐고 보성군이 지난해 국·도비 등 15억7,000만원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으나반영되지 않았다.사당과 유물전시관,조각공원만 완공된 상태다. 서 박사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국고보조사업이 아니라며 사업비를 시·군에서 충당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말했다.서 박사는 문덕면 용암리에서8살까지 살다가 상경,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등 평생을 항일 독립운동에 바쳤다. 보성 남기창기자 kcnam@
  • 올해 회갑맞는 연출가 오태석씨

    지난 16일 오후 국립극장내의 국립극단 연습실.배우들의 움직임이 가장 잘보이는 곳에 자리한 극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60)이 배우들의 몸짓,대사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연신 무언가를 적고 있다.간간히 엄지와 중지두손가락을 ‘탁탁’튕기며 극의 리듬을 잡아주기도 한다.무대위의 작은 움직임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매순간마다 무대구석구석을 세밀히 훑는다. 연습중인 작품은 그의 초기작인 ‘태(胎)’.올해 50주년인 국립극단이 역대공연작 185편가운데 평론가,연극인,관객들의 의견을 참고해 우수레퍼토리로선정한 작품으로,4월1∼9일 국립극장 대극장(02-2274-1172)공연을 앞두고 있다.74년 초연된 ‘태’는 우리 전통의 소리와 몸짓을 토대로 한 한국적 무대양식,세조의 왕위찬탈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통해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이끌어낸 탁월한 주제의식 등으로 3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국립극단이 지난 반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태’를 선택한 것도 이 작품이 지닌 우리식 연극문법과생명의 원천에 대한 작가의 경외심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생명복제다 뭐다 해서 인명이 경시되는 요즘 보다 근원적인 생명의 실체와 의미를 보여주고자 합니다”이번 공연은 회갑을 맞은 오태석의 올해 첫 무대이기도 하다.37년이라는 녹록치않은 연극인생을 걸어오고도 여전히 소년같은 호기심과 청년의 열정을간직한 그로서는 그닥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순(耳順)’에 접어든 그의 작품세계에 거는 연극계의 기대는 남다르다.“글쎄요,어영부영하다보니여기까지 왔네요.아직 철도 안들었는데…”쑥스러운 웃음으로 말꼬리를 흐리는 그의 입가에는 연극만을 외길삼아 살아온 천상 연극쟁이로서의 고집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연세대 철학과 재학중이던 63년 연희극예술연구회에 막잡이로 들어가 처음연극과 인연을 맺은 그는 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웨딩드레스’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극작가와 연출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83년 창단한 극단목화는 서양 연극의 문법에서 벗어나 3·4조 또는 4·4조의 구어체에다 마당극 등 전통적인 놀이의 형식을 빌려 질박한 우리 정서를 표출하는 ‘오태석식 연극’의 산실역할을 해왔다.‘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백마강 달밤에’등을 비롯한 그의 모든 작품에서 보여지는 비약과 생략,초논리적 유희 등은 오태석 연극을 특징짓는 주된 기호들이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역사 재해석에 초점을 맞춘 그의 작품들이 요즘 젊은 세대 입맛에 맞을까 싶은데 지난해 5월 대학로에 전용극장(아룽구지소극장)을세우면서 기획한 ‘오태석연극제Ⅱ’의 결과는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지난 2월까지 장장 10개월간 계속된 연극제기간에는 대학생 등 젊은 층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대학로를 떠났다가 5년만에 되돌아와 내심 초조했던 오태석은 “가능성을 충분히 발견했다”고 만족해했다. ‘극이 해학을 놓쳐서는 안된다’‘목에 힘주지않고 관객들을 풀어주는게 내 연극’이라는 오태석의 말속에는 동시대의 젊은이들과 호흡하려는 노장 연출가의 치밀한 자기단련이 숨어있다.오태석은 올 11월 런던무대에 진출한다.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는 여러차례공연했지만 영국은 처음이다.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춘풍의 처’와 ‘부자유친’을 공연할 예정이다.지난해 한국유학생이 ‘태’를 런던 소극장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은 덕에 현지 언론이벌써부터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국내에서는 4월29일부터 고향인 충남·대전지역에서 ‘오태석연극제’가 기획돼있어 그에겐 어느해보다 바쁜 한해가 될 것같다. 이순녀기자 coral@
  • 히로시마 원폭투하 조종사 토머스 윌슨 피어비 사망

    [윈더미어(미 플로리다주) AP 연합] 제2차 대전 중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 B-29 폭격기 조종사 토머스 윌슨 피어비씨가 16일 병환으로 플로리다주 올랜도 자택에서 숨졌다.81세. 45년 8월6일 당시 26세밖에 안됐지만 64차례의 출격경험이 있었던 베테랑공군 대위 피어비씨는 B-29폭격기 ‘에놀라 게이’에 원폭을 싣고 일본을 향해 이륙했고 원폭투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이후 공군 장교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실버스타를 비롯한 훈장 5개를 타기도 한 피어비씨는 70년 30여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하고 조용한 삶을 살았다. 피어비씨는 95년 원폭투하 50주년 기념 회견에서 “원폭으로 많은 사람이희생된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공군 장교로서 명령에 따라 원폭투하 임무를 수행한 데 대해서는 결코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피어비씨의 사망으로 B-29 폭격기에 탑승했던 승무원 중에는 당시 조종사로이후 준장까지 오른 폴 티베츠씨등 4명만 남게 됐다. 일본 나가사키(長崎)에다른 원폭을 투하했던 커미트 비언씨는 8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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