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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직업/과세형평 논란 재연/박 전 보사사건 계기로 표면화

    ◎의사·변호사 등 수입 20∼30% 신고/성실납세봉급자 “조세행정 개선을” 부동산 투기문제로 사임한 박량실전보사부장관의 소득세 신고 결과를 놓고 의사 등 자유직업 소득자에 대한 세금이 너무 낮다는 지적과 함께 세금의 형평 문제가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전장관의 경우 서울 중심부에서 이름난 산부인과 병원을 30년간 운영해 오면서 최근에 신고한 연간 소득이 지난 89년 8백98만원,90년 1천1백95만원,91년에 1천8만원 등으로 드러나자 월소득 1백만원 안팎의 일반 봉급생활자들은 『의사의 소득이 어떻게 우리보다 적으냐』는 반응들이다. 봉급생활자들은 세원이 모두 노출돼 탈세란 있을 수 없다.그러나 의사나 변호사·공인회계사·연예인·직업운동선수 등 이른바 국세청이 자유직업소득자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확한 소득 추적이 쉽지 않다.국세청은 이들 자유직업 소득자에 대해 소득표준율을 정해 그 이상 신고·납부만하면 세무조사 등을 하지 않는다. 소득표준율은 국세청이 업종마다 지역별·규모별 표본조사를 통해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때문에 유명도에 따라 사무실유지도 어려운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경우가 있는등 능력에 차이가 많은 의사나 변호사들은 늘 문제가 되고있다. 현행 세법상 산부인과 의사는 의료보험 수입의 11.5%와 일반진료 수입의 40%만 신고하면 된다.따라서 박장관처럼 수백억대의 재산과 고급승용차를 4대씩이나 갖고 있어도 연간 1백만원 남짓한 세금만 내면 되도록 세법이 엉성하게 돼있다. 이같은 불합리한 세법의 적용으로 이른바 고소득자로 알려진 의사와 변호사 등은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도 세금은 봉급생활자에 비해 훨씬 덜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88년4월 충남 금산읍에서 안과개업의였던 안모씨(당시 30세)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그때 안씨가 세무서에 신고한 월 소득은 1백52만원.그러나 유족들은 월 소득이 6백47만원이라고 주장,아직도 보험사와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법정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또 지난 89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변호사 성모씨(당시 50세)의 경우도 세무서에 월소득을 2백34만원이라고 신고했으나 실제 소득은 7백여만원에 이른다는 가족들의 주장으로 보험금 지급 결정이 아직도 미루어지고 있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때 의사와 변호사 등이 실제 수입금액의 20∼30%밖에 신고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의사와 변호사 등의 경우 사회적 지위나 명예,진료 및 상담등을 고려해 유흥업소나 일반 숙박·음식업소 등처럼 엄격하게 입회조사 등을 실시하지 않는 점도 이들의 탈세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 보험사 새 보장성상품 “인기”/모두 13종 첫선… 어떤 것이 있나

    ◎안락한 노후생활·질병치료 주종/생활비외 회갑 등 잔치때마다 축하금/새장수보험/암·당뇨병 등 걸리면 입원·수술비 지급/종합건강보험 그동안 저축성 상품 일색이던 보험시장에서 가입자의 생존시 보장을 강화한 생활보험이나 노후연금등의 순수 보장성 상품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지난해 11월 이후에 나온 신상품 15종 가운데 13종이 생활 및 연금보험이다. 본인이 생존했을 때 질병이나 노후보장 혜택을 받으려는 고객들의 욕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특히 고령화 및 핵가족화에 따라 경제적 능력이 있을 때 보험료를 내고 늙어서 연금을 탈 수 있는 연금보험 상품의 인기가 높다.최근에 개발,시판되는 보장성 보험 상품을 소개한다. ▷새장수축하연금보험◁ 계약자는 물론 배우자의 위험까지 보장해 준다.활동기의 위험보장 및 노후자금 마련이 동시에 가능하다.정년 이후 사망시까지 생활비가 지급되고 60,70,77,80,88세 때 각각 장수축하금이 나온다.1천만원짜리에 들어 88세까지 생존하면 장수축하금으로만 1천5백만원을 받을 수 있다.연금 지급 후가입자가 사망하면 가입금의 20%(배우자는 10%)를 장례비로 지급하며 개호보장특약을 선택하면 질병이나 다쳤을 때에도 별도의 추가 연금(개호급여금)을 준다.5백만∼5천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다.35세 남자가 55세부터 연금을 받는 1천만원짜리 상품에 들면 한달 보험료는 6만3천2백원.삼성생명. ○3년마다 건강자금 ▷종합건강보장보험◁ 암·당뇨병·고혈압 등 성인병에 대해 입원비와 수술비를 보장한다.가입한도는 5백만∼5천만원.40세 남자가 부부형으로 1천만원짜리에 가입했을 때 월 보험료는 7만1천9백원.부부 중 아무라도 성인병으로 입원하면 하루에 2만∼5만원의 입원 급여금을,수술시는 매회 2백만원을 지급한다.성인병이나 교통사고로 사망하면 연령에 따라 사망보험금 1천만∼2천만원과 유족연금(1백만∼2백만원씩 10차례)을 지급한다.성인병의 예방을 위해 가입 후 3년마다 30만원의 건강 관리금도 준다.대한생명. ▷유어라이프보험◁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입원치료나 수술을 중점 보장한다.계약기간은 1년이고 가입 한도액은 1백만원.계약기간을1년씩 자동으로 연장할 수 있다.30세 남자가 1구좌에 가입시 월 보험료는 2천4백30원이다.토요일이나 휴일에 교통사고 등을 당하면 최고 5천만원까지,평일 사고는 1천만원까지 보장해 준다.사고시 카드증권을 제시하면 30만원의 응급치료비가 지급된다.식중독이나 전염병 등으로 입원하면 하루 2만원의 입원비를 지원해 준다.대한교육보험. ○10년간 유가족 연금 ▷실버연금보험◁ 가입자가 평생 연금을 체증해 받을 수 있는 「정액체증형」과 물가 상승을 반영한 「물가연동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활동기의 재해 보장은 물론,사망시는 최저 10년간 유가족 생활연금도 준다.연금지급 5년 후부터 5년마다 노후건강자금이 나오고 입원이나 암치료시에도 급여금을 지급한다.35세 남자가 주보험 1천만원과 재해상해특약 1천만원에 가입하면 월 보험료는 6만2천7백원이다.연금 개시전에 사망 또는 1급 장해시는 유가족에게 매년 2백만원씩 생활연금이 지급된다.연금 개시일에 상속자금 1천만원이 나온다.흥국생명. ○배우자도 혜택받아 ▷행복연금보험◁ 개인계약과 부부계약이 있다.성인병 및 교통재해와 관련한 특약을 선택할 수 있다.연금지급 시기는 50세,55세,60세,65세등이다.35세 남자가 55세부터 연금을 탈 수 있는 1천만원짜리에 가입하면 월 보험료는 6만2천원.55세에 연간 1백50만원을 받고 그 다음해부터 매년 7%씩 연금액수가 높아진다.장수 축하금은 60세에 1백만원,이후에는 5년마다 50만원씩 더 많아진다.신한생명. ▷새가족교육보험◁ 자녀의 학자금과 가 족의 재해를 종합적으로 보장한다.만기 전에 돈이 필요하면 그때까지 적립한 금액을 받을 수도 있다.30세 남자가 2천만원짜리 18년형에 가입할 때의 월 보험료는 6만5천2백원.총 보험료 1천4백만원으로 학자금 2천1백만원(배당금 제외)을 받는 셈이다.대신생명. ○보험료 전액 배당금 ▷직장인생활보장보험◁ 각종 재해와 암을 종합 보장한다.만기시는 특약부분의 보험료를 제외하고 보험료 전액과 배당금을 내준다.30세 남자가 재해사망·교통재해보장·재해입원특약 등을 포함한 10년 만기 1천만원에 들면 월 보험료는 1만9천1백원.이 경우 암발생시 5백만원의 진단 급여금을 받을 수 있다.4일 이상 입원시는 3일 초과 1일당 3만원을 주며 1백81일 이상 장기 입원시는 3백만원이 지급된다.교통사고 사망시는 3천만원,다른 재해사망시는 2천만원,일반 사망시는 1천만원의 보험금이 지급된다.국민생명.
  • 영농구조·기술혁신 말만으론 안된다(사설)

    80년대초 우리 농촌인구는 1천만명이었다.이제 5백70만명이 되었다.19일 발표된 92년도 농업통계가 이를 밝히고 있다.지난해엔 특히 그 축소비율이 커졌다.전년대비 농가 3.6%,농가인구 6%가 줄었다.80년대 10년간 연평균 3%였던 인구축소비율이 패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그런가 하면 노령인구는 지난해 또 1% 늘었다.이렇게 됨으로써 현재 남은 인구중 30%이상이 50세를 넘은 심각한 불균형 인력구조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이므로 자연 공가와 버려진 마을만이 아니라 휴경지까지도 늘고 있다.휴경지는 91년이 극단적이었는데 단 한햇동안 28%나 늘어났었다.한마디로 황폐해지고 있을뿐 아니라 농업의 기반이 근본적으로 붕괴되는 것이나 아닌가라는 우려를 가질만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관점은 제한돼 있다.농업의 문제를 인력란의 측면에서만 접근해가고 있다.모심기와 벼베기 일손을 도와야 할때 비상을 걸면서 황망히 나서 본다.그리고 농기계보내기 운동이나 또는 농기계수리봉사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다.물론 이런 일도 하기는 해야 한다.하지만 보다근본적인 농업구조 속에서 곡물생산에 대한 새로운 선택을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때에 있는 것이다. 농업과 식량문제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큰 불확실성의 과제이다.단순한 생산과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오염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이로인해 무엇보다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1950년부터 84년까지 세계의 농민들은 곡물생산량을 2.6배 증가시켰다.종자개량,경작기술의 현대화에 힘입은 결과였다.그러나 87년과 88년 주요곡물생산국 전부가 극심한 가뭄을 일시에 맞았다.수확량은 갑자기 50년 이전보다 낮아졌다.이때문에 세계 밀가격은 가장 낮았던 87년에 비해 48% 상승됐고 쌀가격은 38% 인상됐다. 이러한 기상이변만이 원인도 아니었다.화학비료의 효력감퇴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오존층 파괴의 영향도 확인됐다.콩과류 식물은 어느 것이든 자외선투과량 증가에 따라 생산이 감소된다.관개용수의 오염과 염분화도 생산의 4분의1을 축소시키고 있다.토지의 질저하와 토양유실도 현저해지고 있다.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현상에 의해 세계의 농지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전반적으로 곡물생산과 곡물시장에 가시적 전망을 할 수 없는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쌀 생산량이 한해 1백50만섬씩 줄고있는 단계에 있다.말만으로 농촌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영농기술 혁신과 영농규모의 재편등을 통해 농업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능한 산업으로 만들어내는 정책적 작업에 과감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 유방암 예방/피암약 삼가고 비타민 충분히

    ◎미 암협회·연구소 안내책자 통해 홍보/비만·18세전 출산여성 발암 위험성 커/3개월마다 촉진 필요… 조기발견이 최선 40대 이상 여성들에게 많이 발병하고 있는 유방암은 비타민 A와 C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식품을 매일 섭취하고 3개월에 1회정도 유방을 손으로 만져 젖멍울이 있는가를 직접 확인하면 예방할 수 있다. 미국암협회와 국립암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중년기 여성을 무서운 유방암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길」이란 안내서에 의하면 유방암은 비타민 C가 풍부한 사과·배·귤·녹차와 싱싱한 푸성귀,그리고 간유·버터·달걀노른자·당근·고추 등 비타민A가 많이 함유된 식품을 많이 먹으면 어느정도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안내서는 40대 이상의 여성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유방을 만져 단단한 멍울이 있는가를 촉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유방암 예방에 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촉진에 의해 만져질 수 있는 암조직은 지름이 1.3㎝ 안팎인데 매모그라피(유방뢴트겐조영법)에 나타나는 점보다 약간 큰 편이다. 미국의 중년 여성들은 3분마다1명꼴로 유방암이 발견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18만명의 새 환자가 발생,4만6천명이 이 병으로 숨졌다.여성들의 유방암 발생빈도를 살펴보면 일생을 통해 9명중 1명은 유방암을 앓게 되는데 50년전에는 유방암 발생률이 20명중 1명으로 매우 낮았었다. 미국암협회는 요즘 유방암이 증가하는 원인은 여성들의 평균수명이 길어진데다가 각종 진단법의 발달로 조기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유방암 발생은 비만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표준체중보다 25%정도 더 뚱뚱한 여성은 32%가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비만증과는 대조적으로 정상적인 체중을 가진 여성의 유방암 발생빈도는 19%로 훨씬 낮게 나타난다. 젊었을 때 가족계획을 위해 먹는 피임약을 많이 복용했던 여성들은 중년기에 들어서면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뉴욕주립대 건강관리과가 20∼49세 사이의 여성 2천1백33명을 대상으로 먹는 피임약과 유방암과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먹는 피임약을 4년이상 계속 복용한 여성들은 비복용자보다 80%이상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난포호르몬의 일종인 에스트로겐 보충요법을 15년 이상 받은 사람은 절반이상이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을 갖고 있다.그러나 동물에게 발정을 일으키는 에스트로겐은 뼈를 튼튼하게 보호하고 좋은 콜레스테롤인 고밀도지질단백질(HDL)을 생성,미국여성의 사망원인 1위인 관상동맥경화증을 예방하는 약리작용을 갖고 있다. 가족중 특히 어머니나 그 자매가 유방암에 걸린 병력을 가진 가정에서 태너난 여성중에는 이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데 양쪽 유방에 암이 발생한 가족은 더욱 높은 발생빈도를 나타낸다. 유방암은 사춘기가 일찍오고 폐경이 늦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12살 이전에 생리가 있었던 여성은 정상적인 여성에 비해 20%정도 유방암 발생빈도가 더 높으며 55세 이후에 폐경이 된 여성은 50세전에 폐경이 된 사람보다 2배이상 높은 발생률을 나타낸다.또 18세 이전에 아기를 낳은 여성은 30세 이후에 출산하거나 아기를 낳은 경험이 없는 여성보다 4배이상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을 갖고 있다. 아직 유방암을 완치할 수 있는 약은 없다.그러므로 조기발견만이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다.암조직이 유방내에만 있을 때는 수술요법·동위원소요법,화학요법을 통해 5년 생존율이 92%에 달한다.5년안에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그후 암으로 죽는 일이 거의 없다.
  • 마약사범 재범률 높다/평균 25%… 히로뽕은 55%나

    ◎작년 8백명 구속/아편상용 무려 42% 증가 92년 한햇동안 경찰에 적발된 마약류사범은 91년보다 0.6%늘어났으며 이가운데 아편사범은 4백68명으로 4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은 21일 지난해 전국에서 마약류사범 1천4백2명을 적발,8백명을 구속하고 5백72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히로뽕 4㎏과 대마초 61.9㎏,코카인 1백g,생아편 1.6㎏등을 압수했다. 적발된 마약류사범들을 유형별로 보면 ▲생아편·앵속등 마약사범 4백68명 ▲대마사범 6백12명 ▲히로뽕등 향정신성 의약품사범 3백22명이며 대마사범은 91년보다 7.8%,히로뽕사범은 19.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마약류사범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5.1%로 가장 많고 인천 15%,충남 14.8%순이었으나 아편등 마약사범은 충남이 34.4%,대마사범은 인천이 30.1%,히로뽕 사범은 부산이 36%로 각각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령별로는 마약사범은 50세이상이 54.5%,대마사범은 20대가 46.7%,향정신성의약품사범은 30대가 47.8%로 가장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마약류사범가운데 여자가 19.5%였으며 특히 아편사범은 여자가 45.5%나 됐다. 또 전체마약류사범의 재범률이 25.5%로 높았으며 특히 히로뽕사범은 재범률이 55.3%로 절반이상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 일인 50%“진정한 대한사과 필요”/일 리서치,1천1백명 설문조사

    ◎“정신대·창씨개명 사실 몰랐다” 21%/“65%가 한국상품 싸지만 품질 나빠”/“앞으로 정치·사회 민주화 진척될것” 76% 일본인의 절반 가량이 과거 일제의 침략행위에 대해「한국민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말로만의 사죄가 아니라 일본국민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죄」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 리서치센터(소장 반도건치)가 한국언론회관의 의뢰로 도쿄·오사카(대판)·삿포로(찰황)·후쿠오카(복강)등 4개 도시에 거주하는 20∼50세 일본인 1천5백명(응답자 1천1백4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이미지」설문조사 결과이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식민통치기간에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일본어 교육·창씨개명·강제연행·종군위안부 문제등)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8.2%에 그친 반면 21.8%는 「전혀 몰랐다」거나 「거의 몰랐다」고 대답해 일본의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사죄와 보상에 대해 49.9%는 「한국민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일본 국민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죄와 역사 교과서등의정확한 기술」이라고 응답했으나 14.3%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모든 문제가 처리됐기 때문에 더이상 해서는 안된다」고 답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35.6%)거나 「인도적인 견지에서 적절한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27.7%)고 대답,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인은 「한국의 정치·사회 민주화는 일본 보다 약간 뒤지고 있다」(55.3%)고 인식하고 있으나 「정치·사회민주화가 앞으로 진척될 것」(76.2%)이라고 답해 한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 상품에 대해서는 「가격은 싸지만 품질이 좋지 않다」(65.6%)고 혹평하고 있으며 「한국 상품을 한번도 사본적이 없다」고 밝힌 사람도 21.1%에 이르렀다.
  • 중기 창업자 절반이 30대/진흥공단,9백5명 대상 조사

    ◎“대출·공장부지확보 가장 힘들다” 중소기업의 창업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창업자중 30대가 절반가량이며 창업자의 3분의2는 중소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지난 84년부터 91년까지 중소기업을 창업한 9백5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62.3%가 『창업전에 중소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나머지는 대기업 근무(22.4%),공직(4.9%),대학 및 연구기관근무(1.8%)등이었다. 창업자들의 전직 업무분야로는 기업체 임원이 36·4%로 가장 많았고 기술직이 33.2%,일반관리직이 18.8%,영업직 6.3%,연구직 2.9% 등으로 나타나 창업자들이 창업당시에 이미 창업분야에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창업자의 학력은 대졸(53.3%) 고졸(26.1%),대학원이상(7.3%),중졸이하(7.2%)등의 순이었다. 창업당시 연령은 31∼40세가 전체의 43.3%로 가장 많았고 41∼50세가 38.1%,51세이상이 13.3%,30세이하가 5.2% 등으로 조사돼 창업자의 절반가까이가 30대이하였다. 창업기업의 종업원규모는 20인이하 소기업이 89년 41.7%에서 91년에는 70.8%로 크게 늘었는데 이는 창업기업들이 인력난때문에 자동화시설투자를 늘린 때문으로 풀이됐다. 한편 이들 창업기업은 담보부족으로 은행대출을 받기가 힘들고 공장부지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점을 경영애로로 꼽았다.
  • 「뇌사입법」 불댕긴 장기이식의 해/92의학계 어떤일 있었나

    ◎간·심장이식 잇단 성공,「심장사」 재검토/에이즈 수혈감염에 수술공포증 확산/불임퇴치 등 신기술연구 활발… 메탄올허용치 싸고 격렬논쟁도 92년 의학계는 한마디로 「장기이식의 해」로 규정지을 수 있다.굵직굵직한 이식수술이 잇따라 성공했고 이에따라 장기이식의 전제조건인 뇌사인정을 둘러싼 공방도 어느해보다 뜨거웠다.또 에이즈 수혈감염 파문및 응급실 진료거부사태,인체유해여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메탄올파동」등으로 큰 획을 그을 수가 있다. ▷장기이식·뇌사입법 논란◁ 88년 서울대병원 김수태박사의 간이식수술이후 주춤했던 장기이식열기는 지난 3월 서울백병원 이혁상교수팀의 두번째 간이식성공과 6월 김박사의 생체간부분이식의 개가로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특히 지난달 서울중앙병원 송명근박사팀의 국내 첫 심장이식수술 성공은 현실적으로 「뇌사」와 「심장사」사이에서 표류해오던 국내 사망인정에 관한 기준이 어떤 형태로든지 매듭지어지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이와관련,올 한해에만뇌사문제와 관련된 공청회가 10여차례나 열렸고,지난 3일엔 서울대병원이 독자적인 뇌사판정기준을 선포함으로써 뇌사입법을 촉진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이에따라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 오던 보사부도 급기야 뇌사입법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뇌사와 장기이식을 둘러싸고 끝없이 펼쳐져왔던 공방과 「법따로 현실따로」의 기형적인 행태가 92년을 계기로 매듭의 전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에이즈 수혈감염◁ 수혈에 의한 에이즈감염자는 지난달말 현재 국내 전체에이즈환자 2백35명중 5.9%인 14명.전체환자에 비해 그리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수술뒤 4년9개월만인 지난4월 에이즈 감염사실을 알고 자살한 이모씨(21)사건과 수혈과정중 에이즈에 감염된 노부부의 자살사건이 잇따라 발생,수혈로 인한 에이즈감염공포가 몰아쳤다. 이에따라 각 병원에서는 수술받을 환자들이 수술을 기피해 수술지연의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했다.이는 혈액관리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으로서 수혈사고를 막기 위한 종합적인 개선대책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됐다.이 가운데 수술때 출혈을 억제하거나 수혈을 않고 수술하는 무혈수술법,수술때 환자 자신의 혈액을 수혈하는 자가수혈법등 대처방안이 활발히 모색되기도 했다. 한편 에이즈는 초기의 「해외 성접촉」에 의한 감염에서 내국인간의 성접촉에 의한 감여으로 전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예방노력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임상활동과 신기술◁ 92년의 두드러진 의학적 성과 가운데 하나가 불임치료분야의 발전.불임치료는 지난해까지만해도 서울대병원 차병원 등 몇몇 기관에서만 시술이 가능했지만 올해들어서는 20여곳의 중소 전문병원으로 급속 확산됐다.지난4월 영동제일클리닉 조정현박사팀이 시험관수정및 수정란의 난관이식을 동시에 실시하는 「복합수정법」을 개발했고 마리아불임클리닉 임진호소장은 생체아교를 이용한 불임치료술로 임신성공률을 기존의 20%선에서 40%까지 끌어올렸다. 또 복강경수술이 부인과질환의 치료수단에서 담낭절제술과 십이지장궤양등 외과계 영역까지 보편화되어 시술기관이 30여곳에 이르고 있다.한편 분자생물학적 기법을 이용한 새로운 기술연구도 활발,종합효소연쇄반응(PCR)기법의 진단기술 개발및 서울대 김성권교수팀의 한국형 유행성출혈열 진단법확립등도 큰 성과로 꼽힌다. 또 뇌종양을 치료하는 방사선기기 감마나이프를 대체할 수 있는 국산 「포톤나이프」가 계명대 최태진교수팀에 의해 개발된 것도 국내 의료진의 부단한 연구결과에 의한 산물로 평가된다. 이밖에 지난5월 징코민등 6개약품에서 메탄올이 검출된 사건은 보건의료체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그 허용기준치를 놓고 보사부와 소비자단체간에 한동안 입씨름 공방이 계속됐다.이 문제는 결국 보사부가 메탄올허용치를 설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움에 따라 미제로 남게 되었으며,특히 갑작스런 수사종결 등으로 많은 의혹을 사기도 했다. 이외에 응급 의료체계의 문제점이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중앙병원,전남대부속병원 전공의가 응급의료분쟁에 휘말려 잇따라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이로인해 의료계의 신뢰가 크게 실추됐을뿐 아니라 책임있는 전문의는 뒤로 빠지고 수련과 교육을 받아야하는 애꿎은 전공의만 수난을 겪어야 했다. □국내 에이즈감염 요인별 현황 92년 11월31일 현재(단위:명) 전체환자 국외접촉 국내외국인 내국인접촉 수 혈 혈액제제등 접 촉 국내 국외 기 타 235 104 15 94 7 7 8 (33) (3) (30) *()는 동성연애 경험자수 □성별·연령별 에이즈환자 분포 연령 계 남 여 계 235(27) 208(20) 27(2) 10세이하 3 3 ­ 11∼20세 9 9 ­ 21∼30세 105(8) 91(6) 14(2) 31∼40세 80(11) 69(7) 11(4) 41∼50세 29(4) 27(4) 2 51∼60세 6(3) 6(2) ­(1) 61세이상 3(1) 3(1) ­ **()는 사망 및 이민자
  • 국내 에이즈감염자 2백35명/오늘 「예방의 날」… 실태를 알아보면

    ◎“내국인간 접촉” 40% 차지/전세계 환자 2백만·감염 1천만명 1일은 세계보건기구가 제정한 다섯번째의 「에이즈 예방의 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시도는 에이즈 감염과 확산방지를 위한 가두 캠페인을 편다. 에이즈는 지난 81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된 이후 지난 6월말 현재 1백69개국에서 50만1천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그러나 실제 환자수는 2백만명,감염자는 1천만∼1천2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000년에는 감염자 수가 3천만∼4천만명선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중 90%이상이 개발도상국에서 발병,상대적으로 개도국 비중이 높은 아시아지역에서만 2천만명의 감염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며 감염자중 1천2백만∼1천8백만명이 환자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1월말 현재 2백35명의 감염자중 10명의 환자가 발생,아시아지역의 국가로는 22번째로 높은 환자발생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85년 12월 해외근로자가 처음으로 에이즈감염자로 확인된 이래 초기에는 국외 성접촉이주요 감염요인이었으나 최근에는 내국인끼리의 성접촉을 통한 감염이 증가,2백35명(남 2백8명,여 27명)의 감염자 가운데 40%인 94명이 내국인 접촉으로 감염됐다.이밖에 국외 성접촉이 1백4명,국내 외국인과의 성접촉이 15명,수혈로 인한 감염 14명(국내와 국외 각각 7명씩),혈액제제등 기타 경로로 인한 감염이 8명이다.특히 이중 내국인간의 성접촉 감염자 가운데 30명과 국내 외국인과의 성접촉 감염자 가운데 3명등 33명이 동성연애 경험자로 판명됐으며 감염자중 26명이 사망했다. 감염자를 연령별로 보면 10세 이하가 3명,11세에서 20세이하가 9명,21∼30세가 1백5명,31∼40세가 80명,41∼50세가 29명,51∼60세가 6명,61세이상이 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발생한 감염자의 10%를 차지하는 마약중독자의 정맥주사에 의한 감염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에이즈 확산방지를 위해 지난 86년부터 특수업태부와 수입혈액제제,87년부터 모든 헌혈액에 대해 에이즈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을 제정,체계적인검사및 관리체계의 기반을 마련했다.또 88년 4월부터 감염우려가 높은 외항선원에 대해서도 검사를 실시하고 감염자에 대해서는 6개월마다 면역기능검사및 건강검진과 함께 발병억제제인 AZT를 투여해 주고 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6)

    ◎유년시절:4/5세때 살던 강동군 내동마을 개명/혁명사적지 지정… 행적과 함께 미화/50세 넘도록 묻어뒀다가 뒤늦게 “조명” 60년대 후반부터 봉화리 “우상화” 김일성은 그가 어릴 때 만경대를 떠나고 거기에서 1백50리가량 동쪽에 있는 평남 강동군 고읍면 동삼리 내동부락에 가있었던 사실을 역시 50세가 넘도록 전기에서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평양종실중 중퇴 그는 김형직이 강동에 있었던 사실이 일제 관헌자료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안 60년대 후반부터 이 시기의 자기 행적을 우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형직은 평양 숭실중학교를 중퇴한후 만경대에 있어서 순화학교 교사를 하였다.그후 1916년 봄에 강동의 내동부락에 가서 명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60년대 중반이후의 전기들에 의하면 그는 그후 17년 가을에 조선국민회가 검거되자 그 곳에서 체포되었다고 한다. 한편 김일성은 부친보다 1년 늦은 17년 봄에 내동부락에 가서 18년 봄에 만경대에 돌아온 모양이다.만5세때 일이므로 그가 이 시기의 자기 행적을 잊어버려도 부자연하지않는 시기이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강동군 봉화리라고 지명이 바뀌어지고 「혁명사적지」로 조성되어 있다.또 이 시절의 김일성에 대한 「사적」들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창작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⑴평등주의…1917년 가을,봉화산에 살맹이가 빨갛게 익었을때 그는 친구들과 가서 그것을 땄다.나중에 모였을때 보니 그들이 딴 살맹이 양은 제각기 달랐다. 김일성은 그것을 모두 한곳에 모으도록 하고 아이들의 머리 수만큼 따온 살맹이를 똑 같이 나누어 주었다. ⑵군마놀이(말바위놀이)…학교 뒷산의 언덕에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널려 있었다.그는 이것을 말로 간주하여 그중에서 가장 큰 바위에 자신이 올라 타고 다른 바위에 아이들을 앉혀 「조선군대 말타고 나간다!」,「우리군대,장수군대 번개번쩍 나간다」등의 구령을 외치고 놀았다. ⑶연설…김일성은 명신학교교실에서 가르치는 부친의 말을 교실 밖에서 들었고 학생들의 글소리를 그대로 외웠다. 부친은 일제의 죄행을 단죄하고 반일투쟁을 호소하는 연설문을 그에게 써주었다.그래서 그는 기념일이나 학예회,시국강연회,토론회,노래보급회,글짓기모임 등에 나가면 이러한 곳에서 연설하였다. ○대연설가로 선전 「김일성의 어린시절」이야기는 크게 나누면 부친 김형직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기 전과 체포 후로 나뉘어진다.부친의 체포 자체는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김일성의 성장과정을 소설화하면 그 스토리는 이러한 순차성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일화」들은 김형직 「체포」이전의 이야기들인데 그 우상화작업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 이상과 같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조작물이다. 예를 하나만 들면 1910년대는 한문을 큰 글이라 하여 숭상하고 한글은 암클이라고 멸시한 반봉건사회였다.그런데 김일성은 「한글」쪽에 정통하여 「한문에 소양있는」부친으로부터 한글로 쓴 원고를 받고서는 가는 곳마다 연설했다고 쓰고 있는데 이러한 연설은 「일제를 단죄하고 반일투쟁을 호소」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어린아이 장난을 과장한 만경대의 군사놀이나 강동의 군마놀이 같은 수준이 아니라 그는 만5세에 한글을 아는데 그치지 않고 대중을 선점선동하는 타고난 대연설가로 되어버렸다. 그런데 「김일성의 어린시절」은 사실이야 어떻든지간에 김형직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는 이야기부터 「원수에 대한 증오」가 김일성의 「실천투쟁」과 결부되게 된다. ⑷투쟁…1917년 가을 김형직이 일제에게 체포되었을 때 그는 부친을 잡아가는 일본경찰을 향하여 돌맹이를 던지려고 하였다.모친이 그를 제지하자 그는 분노의 울음을 터뜨렸다. ○실천투쟁과 결부 모친은 김형직이 지붕의 기와 밑에 감추어 놓은 비밀문건을 불사르고 경찰이 장롱을 수사하려 들자 앞을 가로막고 나서면서 그들의 낯짝에 침을 뱉었다. 김일성은 이런 모친을 보면서 일제에 대한 증오심에 불탔다. 그후 강반석은 아이들을 데리고 1918년 봄에 만경대로 돌아온다. ①「무지개 비낀 만경봉」86∼104면 ②같은 책 105∼109면
  • 21개 생보사/「무배당보험」 첫선/주요 새 상품 어떤것이 있나

    ◎암·성인병 등 대상 납입료 9∼18% 저렴/최고 2억까지 보장… 개인·가족형 등 다양 보험 계약자에게 배당금을 주지 않는 대신 보험료를 깎아주는 무배당보험 신상품이 최근 21개 생명보험사에서 판매되고 있다. 무배당 상품은 기존의 상품과 달리 이자배당금이나 확정배당금·사차배당금(예정 사망률과 실제 사망률의 차이에서 생기는 이익 배당)·장기유치 배당금등이 없으나 보험료는 9∼18%나 싸다.반면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재해를 당하거나 질병이 생겼을 때는 보장을 받을 수 있다.각 생보사들의 무배당 상품을 알아본다. ▷새생활 암보험◁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가입금액의 50%를 지급하고 교통사고 및 재해등으로 심하게 다쳤을 때도 고액을 보장해 준다.암으로 인한 고도 장해나 사망시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며 암으로 입원하면 입원비와 수술비를 보장한다.가족계약으로 가입하면 배우자와 자녀까지 보장해 준다.만기환급형은 계약기간이 끝났을때 납입한 보험료 전액을 돌려받고 그동안 냈던 보험료의 이자만으로 고액을 보장받을 수 있다.기간은 10년과 20년만기,80세만기등 3종류이고 가입한도액은 5백만∼3천만원이다.삼성생명. ▷새가족 안심보험◁ 재해를 당했거나 일반 사망시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까지 고액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가족 보장성이다.대부분의 보장성 보험이 일반사망보다 재해사망시 더 많은 보험금을 주지만 이 상품은 재해뿐 아니라 질병·일반사망 때도 최고 3천만원까지 보험금을 지급한다.평소에 건강관리 자금으로 쓰도록 일정기간마다 가족건강 설계자금도 지급한다.보험료의 납입은 월납·3개월납·6개월납·연납이 있고 가입연령은 18∼50세이다.삼성생명. ▷재해부 21세기 암치료보험◁ 암에 걸렸을 때 치료·수술 및 완치를 위한 비용을 최고 1천만원(가입금액 1천만원 기준)까지 보장한다.배우자가 암진단을 받았을 때는 6백만원,자녀는 4백만원까지 보장한다.암으로 인한 사망 또는 1급 장해시에도 주보험자는 1천만원,배우자는 6백만원의 보험금을 타고 사망급여금(1종 2백만원,2종 2백만원+이미 납입한 보험료 전액)도 지급된다.대한교육보험. ▷21세기 평생안심보험◁ 활동기 연령에 재해로 사망했을 때 최고 1억원을 보장받고 일반사망시에도 5천만원까지 보험금이 지급된다.노후에는 2년마다 81만원의 건강관리금이 나온다.성인병으로 1백21일 이상 입원하면 매년 3백65만원씩 간호급여금이 지급된다.보험료 납입 기간중 2∼3급 재해 장해를 당한 이후에는 보험료가 전액 면제된다.30세 남자가 노후보장 혜택을 60세부터 받으려는 경우의 월 보험료는 3만5천1백원.대한교육보험. ▷리빙헬스보험◁ 암과 재해를 중점 보장하고 가입금액에 따라 최고 2억원까지 보험금이 지급된다.10년 만기의 1천만원짜리에 가입했을 때 계약 5년후에 건강관리금으로 2백만원이 나온다.20년 만기는 5년후 1백만원,10년후 1백50만원,15년후 2백만원의 건강관리금이 각각 지급된다.질병으로 입원할 경우 입원일수 31일이상 30일마다 50만원의 생활급여금이 추가로 보장돼 최대 6백만원을 지급한다.제일생명. ▷간치료보장보험◁ 기존의 유배당 보험보다 보험료가 4·1∼19·9%쯤 싸다.각종 간질환및 재해를 보장하고 만기때 보험료 전액을 돌려받는다.간암진단 확정시는 가입금액 전액을 지급받고 간질환으로 인한 입원 또는 치료시 비용이 나온다.37세 남자가 20년 만기의 1천만원짜리에 가입할 경우 월보험료는 1만5천5백원이다.이 가입자가 간암 진단을 받으면 1천만원이 일시금으로 지급된다.수술시는 2백만원을 받고 4일 이상 계속 입원시는 3일 초과 1일당 10만원씩 최고 1백20일까지 보장된다.흥국생명. ▷암보험◁ 순수보장형(1종),생존시 5년마다 건강 진단자금 30만원과 만기 생존시 50만원을 지급하는 중도급부형(2종),만기시 보험료를 돌려주는 환급형(3종)이 있다.가족형 계약이면 주 피보험자나 배우자중 누가 사망하더라도 그 이후의 보험료가 면제된다.사망특약및 입원특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유배당보다 월보험료가 13∼30%정도 싸다.35세 남자가 10년 만기 가족보장형에 가입할 경우 월보험료는 2만3천1백원.한덕생명. ▷특별보장보험◁ 각종 재해와 암·일반사망등을 종합 보장한다.보장금액을 매년 10%씩 체증시켜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보장이 되도록 했다.10년과 20년 만기가 있고개인형과 부부형 중 선택이 가능하다.가입금액은 5백만∼3천만원이고 가입연령은 21∼60세이다.35세 남자가 부부형으로 가입금액 1천만원,간병입원특약 1천만원짜리에 들면 월보험료가 4만8천4백원이다.태평양생명. ▷한가족보장◁ 보험교통사고에 대한 보장을 강화했고 연령에 비례해서 보험금이 지급된다.만기까지 피보험자가 생존하면 주보험료 전액을 돌려준다.주보험은 1천만원까지,특약은 2천만원까지 가입이 가능하다.교통사고로 사망했을때 최고 1억1천만원,장해시는 3천1백만원까지 보장된다.교통사고로 입원하면 3일 초과 1일당 2만원씩의 입원급여금이 나온다.부부형은 배우자도 주피보험자의 60%를 보장해준다.대신생명.
  • 20∼30대 여성/자궁경부염 발병 많다

    ◎서울 목병원 6개월동안 환자검진 결과/암발생자 98명중 61%나 차지/유·조산의 원인… 조기치료 절실 최근 서울의 한 부인과 건강진단센터를 찾은 여성의 95.7%가 각종 질병에 걸려있거나 신체이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여성의 건강관리와 정기검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20∼30대의 여성에게서 자궁경부염증이 많았고 30대에서는 유방의 유선변형,30∼50대에서는 골밀도수치저하가 많이 발견돼 젊은 여성들에게도 건강이상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목병원 여성종합건강센터가 지난 3월부터 6개월동안 이곳에서 검진을 받은 3백3명의 진단결과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건강하다고 판정된 여성은 13명(4.3%)에 불과했다. 진단을 받은 여성의 연령분포는 19세이하가 1명,20대 43명,30대 1백5명,40대 84명,50세이상이 70명. 가장 많은 질환은 자궁경부염증으로 98명(31%)에서 발견되었는데 20대와 30대가 61명으로 60%이상을 차지했다.자궁경부염증등 질 및 자궁내의 세균감염은 유산 또는 조산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조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유방의 악성 또는 양성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우선조직변형은 80명(26%)에게서 나타났는데,특히 30대에서만 57명이 발견돼 피검자 전체의 18.8%,30대 총수의 54.2%나 차지했다. 또 골밀도수치가 정상이하로 내려간 여성이 60명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골다공증의 원인이 되는 골밀도저하증은 보통 40대 이후에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30대에게도 11명이나 발견도 발병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 20대이하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빈혈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8∼10%의 고른 발병분포를 보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간디스토마가 12명(4%),폐디스토마가 8명(2.6%)에서 발견돼 회충 등 토양매개성기생충 감염률이 0%에 가깝게 떨어진 대신 디스토마환자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건강진단센터의 유정자박사는 『피검자들이 스스로 몸에 이상을 느껴 찾아온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예상보다 많은 환자가 발견됐다』면서 『모든 질병은 조기치료가중요한 만큼 여성들 자신이 건강에 더욱 관심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새 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

    ◎김형직 우상화에 조선국민회 이용/회원명단에 포함된 사실 뒤늦게 알아/68년판 전기부터 정치·군사 투쟁가로/단체성격도 임정과 관계 없는듯이 기술 김일성은 그의 부친 김형직이 조선국민회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50세가 넘도록 모르고 있었다.이 점은 부친이 조선국민회의 「지도자」였다는 대대적인 선전이 행하여지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김일성은 조선국민회 뿐 아니라 그것보다 더 기초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았던 인물이다.예를 하나만 들면 그는 52년 전기에서는 부친이 1928년에 36세로 사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그후 사망한 해는 26년으로 시정되었으나 사망당시의 부친의 나이는 1964년에 나온 박상혁의 「조선민족의 위대한 령도자」까지 32세로 시정된 일이 없었다.이러한 전기들에는 조선국민회 같은 것은 단 한줄도 기술되지 않았었다. 조선국민회는 1917년에 평양에서 결성된 비밀결사이다.이 결사의 회원명단에 김형직의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당시 일본에서 조총련의영향하에 있었던 재일사학자 강덕상교수이다. 강교수는 지금은 조총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지만 1960년대까지는 북한을 지지하고 있었다.그런 관계로 그는 60년대에 김형직과 관련된 자료들을 조총련을 통하여 북한에 보냈다. ○재일사학자 발견 그런데 이 자료를 입수한 무렵의 북한은 김일성의 유일지도체제를 세우는 와중에 있었다.그는 1967년에,해방전 보천보전투 때 이 전투를 국내에서 도운 박금철 이효순 등을 숙청하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서두르게 되었다.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이란 북한주민이 오직 김일성의 사상만으로 사고하고 그의명령지시 대로만 움직이며 과업수행 과정에서 언제나 김일성에게 충성을 바쳐야 하는 체제를 확립한다는 말이다. 김일성은 이 책동의 일환으로 1968년에 백봉이라는 가명을 쓴 저자이름의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을 출판하게 하였다.종전의 김일성전기와는 내용이 판이한 이 전기에서 비로소 「조선국민회」를 김형직 우상화의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김형직을 우상화하는데 단순히 그를 과대선전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역사적인 존재인 국민회 자체를 북한체제의 「정통성」에 부합되도록 그 활동내용을 뜯어 고쳐버렸다. 1917년에 실제로 평양에서 조직된 조선국민회는 1919년에 대한민국회로 개편되어 상해임시정부의 지도를 받게되는 조직이었다.이 국민회가 19년 10월에 상해임정에 보낸 규칙초안을 보면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립목적이 있다. 「대한정을 관민상화하고 자순하며 신의 공보를 유종함을 목적으로 함」 당시의 대한국민회는 일제식민지하에서 대한이란 국호를 사용하고 관민이 서로 화합하여 자문을 주고 받는 정치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그러나 이 단체는 동시에 신에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기독교단체이기도 하였다.훌륭한 독립단체이기는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종교결사이기도 하였던 것이다.대한민국회의 전신이 조선국민회이므로 조선국민회도 이상과 거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68년 백봉이 쓴 전기에 나오는 「조선국민회」는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다. 「이조직은 우리 나라에서 과학적 마르크스­레닌주의사상이 보급되기 이전에 벌써 반제민족해방의 과업을 정확히 내세웠으며 조국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방도로서 외국세력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인 힘에 의거하며 청원이나 개량의 방법이 아니라 정치적활동과 군사적 활동을 적절히 배합할 것을 내세웠다」 북한에서는 이상과같이 원래의 조선국민회나 대한국민회의 설립목적에서 신과 종교를 빼고 이 결사가 마치 무신론자의 단체인 것처럼 만들었다.또 외세의존이나 「청원이나 개량의 방법」같은 것을 부정하여 상해임정과의 연계를 끊어버렸다.이 국민회의 성원들 속에는 미국이나 재미교포와의 연계를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 많았는데 이러한 연계마저 끊어서 「반제민족해방의 과업」을 수행하는 「자주적인」정치비밀결사였던 것처럼 그 목적을 바꾸어버린 것이다. 김일성은 50세 무렵까지 부친 김형직의 정치활동 중에 조선국민회원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그러나 이 점에 대하여 알게 된 순간부터 조선국민회의 활동을 그대로 두는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존재인 조선국민회가 설정한 목적 자체를 이상과 같이 변경하게 하였다. ○50세 넘도록 몰라 그러나 백봉의 전기가 나오는 무렵은 아직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책동이 초기단계에 있었다.이 때문에 북한이 설정한 목적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사상이 보급되기 이전」시기에 국민회가 결성되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이것은 조선국민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이 아니며 김형직도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의미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또 백봉은 「이 조직은… 3·1운동 이전의 가장 큰 반일운동조직이었다」라고 하였다.3·1운동 이전의 가장 큰 반일조직은 따로 있지만 이러한 표현은 김형직이 3·1운동 이전 밖에 조선국민회에 있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백봉은 3·1운동 이후 조선국민회가 대한국민회로 발전하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이 때문에 그는 독재자인 아들의 뜻과는 정반대로 이승만이 설립한 상해임정에 김형직이 붙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조선국민회는 3·1운동 이전의 조직이라고 그 활동을 중도에서잘라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은 김형직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조선국민회에서의 그의 활동은 3·1운동 이전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점에서 그후의 전기들과 구별되는 전기이다. 현대사자료25,강덕상론,일본 미스즈서방간,544면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백봉저,1968년 평양 인문과학출판사간,14면 같은책 동면
  • 「농촌돕기」에 참여하는 보람(사설)

    지금 농촌의 들녘은 한없이 풍요롭게 보인다.누렇게 고개숙인 벼,빨간 고추,갖가지 색깔로 잘익은 과일등,하나하나가 수확기의 풍요와 기쁨이 듬뿍 담겨져 있음직하다.더군다나 농사의 대종인 벼농사의 경우 올해로 연속 12년째 풍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농촌과 그 실상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풍요는 있을지언정 가을걷이의 기쁨은 그렇질 못하다. 벼베기의 일손이 없고 고추를 따고 과일을 수확할 사람이 없다.예년같으면 상당한 진척을 보았어야 할 벼베기도 9일 현재 15%에 그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농촌의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오늘날 농촌에 있어서 사람부족현상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농촌을 떠나는 사람이 매년 50만명내지 60만명에 이르고 있고 그나마 농촌을 지키는 사람은 노령화·부녀화되어 가고있다. 농촌인구중 50세이상이 39%나 된다.농촌의 일손이 모자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지금처럼 농촌을 돕는 노력이 요청되는 때도 없다. 서울신문사는 이러한 농촌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위한 사업으로 내고향농촌돕기성금운동을 펼치고 있다.농촌이 가장 바쁜 시기인 봄철 모내기때와 가을철 벼베기 때등 연간 두차례씩 벌이고 있는 이 사업에 각계의 동참이 잇따르고 있다.내고향 농촌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같은 동참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등으로 농업부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저하된 탓인지는 모르되 농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적어져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농촌돕기성금운동이 한없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정부는 올해부터 2000년까지 42조원을 들여 농어촌구조개선대책을 추진중에 있다.생산기반의 정비·농업기계화·농업기술개발·유통시설개선 등의 사업들이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따라서 사업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당면한 문제인 인력을 지원하자는 것이다.이중에는 직접 농촌에 일손을 보태주는 것이라든지 그렇지 못할 경우 성금을 통해 농기계구입으로 일손을 덜어주는 방법들이 포함되어 있다.일손돕기사업으로 금년 모내기철에는 연인원 1백25만명의 인력을 지원했고 60억원상당의 농기계도 보내줬으며 10만대에 해당하는 농기계도 수리토록 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달말까지는 대충 끝내게 될 추수때는 연인원 1백만명정도의 일손이 모자란다는 추산이다.그동안 기계화영농의 진척으로 벼베기의 경우 80%정도가 콤바인이나 바인더등 기계수확으로 이뤄지고 있다.이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기계도 아직 크게 모자랄 뿐만 아니라 꼭 사람의 손이 필요한 작업이 많다. 농촌돕기성금은 단순히 농촌을 돕는다는 뜻만 담겨져 있지는 않다.농촌을 직·간접으로 돕는 과정에서 농촌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잊혔던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어쩌면 흙이 주는 자연의 이치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효과일는지도 모르겠다.지금쯤 그러한 농촌으로 달려가보는 것도 가장 값어치 있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라 믿는다.
  • 새 전기 「세기와 더불어」를 보고(신고 김일성 자서전연구:1)

    ◎연재를 시작하며/역사의 고비마다 갈이입은 「사상의 옷」/통일 앞두고 그의 정체 정통하게 알아야/52년 40세때 초간후 수없이 개작/이번엔 “이민위천이 좌우명” 주장 김일성은 이번 80회 생일에 「세기와 더불어」란 회고록을 냈다.그가 태어난 1912년 무렵부터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1932년까지를 2권으로 나누어 회고한 자서전이다. 따라서 이 회고록은 앞으로 1932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또 해방후 1992년까지를 구분해 합계 십몇권 정도 나올 것이 예상된다.제1권이 3백61페이지이므로 적어도 5천페이지 정도되는 방대한 김일성 일대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여느 공산국가 독재자들과는 달리 자기의 「전기」를 즐겨 출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출판하기만 하면 그것을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보급하는데도 열심이다. 그는 또 유달리 꺾어지는 해의 생일을 중시하여 이 때 공식전기를 출판한다.이 전기들은 다음과 같이 시대가 내려 올수록 그 분량이 방대하게 되는 특성도 있다. ○62년엔 중공계 숙청 1952년(40세 생일)「김일성장군의 전기」1권 68면.1972년(60세 생일)「김일성동지 작전」1권 8백60페이지.1982년(70세 생일)「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전기」3권 합계 1천5백페이지. 이상을 보면 그가 50세 생일을 맞은 1962년에는 공식전기가 나오지 않았다.52년의 전기가 나온 후 북한에서는 남로당파·소련파·연안파·국내파들이 모두 숙청되었으므로 김일성은 62년에는 중공계 항일빨치산이었던 그와 그 일당만을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둔갑시키는 「공식전기」를 출판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일당조차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취급하는 아량은 없었다.그는 1967년에는 식민지시대 보천보전투에 참가한 박금철 등을,그리고 69년에 그와 가장 가까운 빨치산시대의 전우인 최광등을 숙청하였다. 이 숙청과정인 1968년 그는 자기만을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둔갑시킨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을 출판하였는데 이 두권짜리 책이 또 대폭적으로 내용이 바뀌어 나온 것이 72년 전기인 것이다. 김일성유일독재는 1980년 제6차당대회에서 김일성부자 독재체제로 굳어졌다.김일성자신뿐이 아니라 김정일의 「충성」과 「효성」도 반영된 것이 82년 전기로 된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전기들이 출판되는 이유의 하나는 이것이 그의 우상화작업이기 때문이다.그는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얼마든지 은폐하고 왜곡하며 날조한다.그는 해방직후부터 일관되게 그렇게 해왔다.46년 김일성의 기요과장이었던 연안파의 고봉기는 그로부터 이러한 명령을 받은 일이 있었다. 「보고문이나 회의록 같은 건 다 앞으루 역사적 문건으로 남겨야 할 거니까…이제라두 늦지 않았으니…없는 건 만들어 놓구 또 있다 하더라두 기록이 잘못됐거나 한 건…다 고쳐 놓을 필요가 있단 말이요.해방전의 자료들두 그렇지,필요한 것만 남겨두구 필요찮은 건 다 없애치우는게 좋잖을까?」 이와같은 은폐·왜곡·날조 같은 행위는 그의 전기가 새로 나올 때마다 첨가되어 현재의 우상화된 김일성이 생겨 났다.실상을 제쳐두고 허상만 요란하게 선전하는 이러한 우상을 위하여 북한의 당원들과 대중들은 갖은 「충성」을 다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전기들이 출판되는 또하나의 이유는 그 유일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김일성의 사상정신적 억압수단이 바로 「주체사상」과 「혁명전통」이기 때문이다.그의 전기는 혁명전통의 핵심자료로 되어 있다. 1986년 5월31일 김일성은 「조선로동당건설의 역사적경험」이란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의 위업을 계승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당이 이룩한 혁명전통을 옳게 계승해나가는 것입니다.우리 당이 계승하여야 할 혁명전통은 주체의 혁명전통입니다….혁명전통을 계승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혁명전통의 순결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오직 우리 당이 이룩한 주체의 혁명전통만을 인정하고 그것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며 이 밖에는 그 어떤 다른 「전통」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민정신 개조 수단 한때 우리 당안에 기어들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항일빨치산의 전통만이 혁명전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느니,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느니 하면서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 오가잡탕을 섞어 넣으려고 하였습니다.그들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과 인연이 없는 것을 들고 나와 혁명전통과 뒤섞어 놓으려고 한 것은 혁명전통을 거세하고 자기들의 종파적야욕을 실현하기 위한 책동이었습니다.앞으로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흐리게 하거나 말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순결하게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김일성이 「주체의 혁명전통」이니,「혁명전통의 순결성」이니 하고 있는 것은 모두 그의 사상과 그 자신의 행적을 말하고 있다.「주체」란 다른 중공계 항일빨치산이 갖고 있었던 사상은 아니며 「순결성」이란 김일성 이외에는 아무도 지닐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10년에 한번씩 나오는 김일성의 공식전기란 그의 사상과 행적을 서술한 책이다.따라서 김일성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순결하게 계승해」나가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이 전기에 실린 자신의 사상과 행적을 철저히 옹호하고 그 내용대로 알아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식전기들에 반영된 그의 사상과 행동이란 전기마다 달라서 거기에는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예를 들어 52년 전기에서의 그의 사상이란 마르크스·레닌주의사상에서도 최악의 사상인 스탈린주의였다.72년 전기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라는 그가 창시했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이었다.그런데 82년 전기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근본이 다른 사상이 주체사상인 것처럼 되어 있다.김일성은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자신의 사상을 바꾸어 나가는데 그것이 그대로 이러한 전기들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도 그 사상은 다시 달라지고 있다.머리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이는 것이다. 「이민위천,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한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 신앙이며…생활의 본령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비교하는 대신 「이민위천」사상을 가져와서 이와 동일시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주체의 원리를 자신의 「정치적신앙」이라고까지 하였다. 세계의 마르크스·레닌주의국가들이 붕괴되어 가는 길위에서 그는 이제 사상을 「신앙」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그는 현재 주체의 원리와 혁명전통으로 북한주민을 세뇌시킨데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세뇌된 사고를 김일성부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의 차원으로 유도하고 있다.이러한 현실이 김일성의 입으로 나온 것이 앞의 말이 아닌가 싶다. 사상 뿐 아니라 김일성의 행적도 전기마다 다른 것이 얼마든지 있다. 현재 한반도에는 통일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통일은 몇년 후에 현실로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압도적 다수가 내다보는 근미래이다. ○“정치적 신앙” 강조 그런데 한국국민은 지금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북한체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채로 지내고 있다.김일성만을 알고 따르는 북한주민과 김일성의 정체를 거의 모르는 한국국민이 다같이 통일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 양측 주민이 서로 상대방의 사상과 행동에 정통하여야 할 것이다.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국민의 책임이 무겁다.한국에서는 국민들이 북한체제와 김일성부자의 정체및 북한주민의 정신상태를 알아야만 그들과 대화를 하여 사상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본지에서 시작되는 「세기와 더불어」의 분석비판은 한국국민과 앞으로의 북한주민에게 다같이 김일성과 그 독재체제의 진상을 알리는 공통의 장을 제공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필자는 1987년에 김일성평전과 그 속편을 출판한 일이 있는데,연구를 시작한 1983년부터 이 무렵까지는 근본자료와 연구서적들이 태부족하였다.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는데 이 어려운 작업에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진실을 위해서는 과거의 자신의 학설도 버릴 부문은 대담하게 버릴 작정이다.다만 버릴 때는 일일이 그 이유를 열거하겠다. □주 해 ①「김일성의 비서실장」고봉기의 유서 1989년 천마사간,17면 ②「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경험」김일성,1986년 단행본,조선로동당출판사간(이하 「당간」이라고 함)1백12∼1백13면 ③「세기와 더불어 1」.1992년 4월9일 당간 2면 ④「김일성평전」 「김일성평전 속」,1987년 북한연구소간(이하 평전,혹은 평전(속)이라고 함)
  • 신청 1만8천명중 컴퓨터 추첨/방문단 선정기준 문답풀이

    ◎서울 39명등 각 시·도 고르게 선정 오는 8월25일부터 28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게 될 이산가족방문단 1백명의 인원선정기준 등에 대해 문답풀이로 알아본다. ­방문단 1백명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부모 또는 자식을 상봉코자 하는 70세이상 신청인 54명과 배우자를 만나려는 70세이상 4명,부모를 상봉하려는 50세이상 69세이하 42명으로 구성된다. ­1백명을 연령별·성별·출신지역별·거주지별로 구분하면. ▲연령상으로 다시 구분하면 70세이상이 58명이며 50세이상 69세이하가 42명이다.이 가운데 남자가 82명이며 여자는 18명이다. 출신지역별로는 황해도가 25명으로 가장 많고 평남 20명,함남·평북 17명,함북 10명,경기 7명,강원 4명 등이다. 또 신청인의 거주지는 서울이 39명,경기 18명,인천 9명,부산 7명,강원 6명,충남 3명,대구·대전·광주·충북·경남·경북·전남·전북·제주가 각 2명씩이다. ­선정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먼저 그동안 대한적십자사·통일원·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등에 신청한 4만8천2백87명 가운데 이번 선정기준(70세이상자로서 부모 또는 자식,배우자 상봉희망자및 50세이상 69세이하자로서 부모 상봉희망자)에 맞지 않는 2만9천9백49명의 비자격자를 제외한 1만8천3백38명을 대상으로 한다. 인원선정은 단계별로 나눠 컴퓨터로 추첨한다. 1단계로 혈연관계·연령별·성별·출신지역별·거주지별 항목 선정인원수의 분포에 따라 방문단 인원의 3배수인 3백명을 선정한다. 2단계는 3백명중 해외여행결격자(신원조회담당기관 판정)를 제외하고 1단계의 항목별 선정인원수의 분포와 직업별·종교별 선정인원수의 분포를 추가,2백명을 뽑는다. 3단계로 2백명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부적격자를 빼고 2단계 항목별 선정인원수의 분포에 따라 상봉대상자의 소재확인을 의뢰한 인원을 선정하고 나머지 인원은 예비후보로 한다. ­최종 방문단인원 1백명은 어떻게 뽑는가. ▲상봉대상자의 소재가 확인된 신청인 가운데 상봉대상자의 혈연관계를 고려한 일정순위에 따라 선정될 예정이다.세부사항은 현재 논의중이다.
  • “생필품공장 연20∼30일 가동”/귀순 김영성씨 일문일답

    ◎젊은세대 정치에 무관심… 50대이상 “함구”/월남자가족 출간추방… 「이산재회」 걸림돌 ­귀순동기는. 『58년 맏형이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당했고 1·4후퇴때 두 형이 월남했다는 사실이 70년대초 밝혀져 그때부터 불이익을 받아왔다.그후 체코유학동기생들의 도움으로 재기,89년 55세에 후보당원이 되기는 했으나 크게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중 동독파견근무이후 동구권몰락의 엄청난 변혁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개방밖에 살길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이로인해 베를린 대표단장으로 부터 질책과 감시를 받아왔다.귀국하면 큰형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을 두려워하게됐고 이때문에 탈출을 결심했다』 ­북한의 건축기술수준과 평양과 지방의 차이는.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괜찮았으나 65년이후 설계전문교수들이 성분불량으로 숙청된 이후부터 설계원 처우가 낮아 인재고갈상태에 있다. 만수대혁명박물관등 기념비적인 건물과 살림집들과 건축설비나 자재등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만 그나마 거의 모든 건설이 평양에 집중되고 있다.때문에 남포·원산 등 일부 지방도시를 제외하고는 지방의 건축물들은 60년대 지어진 「성냥곽같은」조립식 주택들이 고작이다』 ­김정일비서도 50년대말 동독 항공군관학교에 유학했다고 하는데. 『김정일이 한때 모스크바대학으로부터 유학제의를 받았으나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서만 공부하겠소」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그가 외국유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북한주민들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새세대들은 아예 정치에 무관심하다.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반면 50세이상의 나이많은 사람들은 최근 상황이 나빠지고 있음을 의식해 아예 의사표시를 하지않는다』 ­월남가족이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대우와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월남자의 가족으로 자기 고향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그들은 모두 산간오지로 추방당했다.때문에 이산가족의 명단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월남자의 가족은 최저생활계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최근 일본이나 미국에 가족을 둔 사람은 이들의 방문을 「구원의 천사처럼」기대하고 있다.단번에 집이 새로 생기고 잘하면 평양으로 이주시켜 주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경제실상은. 『현재 완전 가동중인 공장은 금광이나 시멘트공장 군수공장등 외화벌이용 공장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청진의 경우 ▲청진제강소 5∼6년전부터 가동완전중지 ▲김책제철소 4개 대형용광로중 1개만 가동 ▲청진화학섬유공장 20% 가동 ▲생필품공장 김부자생일선물공급시 20∼30일정도 가동등이 최근 나타난 엄연한 현실이다.
  • 지중해의 고도에 남은 「일제36년」(객석에서)

    ◎문화사절단,안익태선생 말년보낸 마요르카 방문/현지선 일식이름 「에키타이안」을 통용/시당국에 「익 태안」으로 정정을 요구 「에키타이 안(Ekitai Ahn)」은 누구인가. 적어도 우리들의 이름에서 만큼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해 오던 일제의 흔적이 지중해의 고도 마요르카에는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에키타이 안」.안익태의 일본식 발음이다. 애국가의 작곡자,또 애국가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한국환상곡」의 작곡자 안익태선생은 그가 만년을 보냈고 숨을 거둔 이곳 팔마 데 마요르카에서는 지금도 「에키타이 안」으로 불려지고 있다. 스페인령 발레아레스제도의 주도 팔마데 마요르카에는 그를 기념하는 거리가 있다.그러나 이곳의 팻말에도 「익태 안 거리」가 아니라 「에키타이 안 거리」라고 씌어있다.「카예 에키타이 안」.일본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을 기념하는 거리인 것이다. 마요르카섬에 살고 있는 50세이상의 중·노년층은 대부분 50년대에서 60년대초까지 마요르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열정적으로 지휘해 항상 객석을 가득 채웠던 마에스트로 안을 기억하고 있다.마요르카의 택시운전사들도 대부분 그를 기억하고 그의 거리와 그가 실던 집으로 데려다 준다. 그러나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익태 안이 아닌 「에키타이 안」이었다. 유럽을 순방하고 있는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이 팔마의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22일 아침.이곳에서 발행되는 「발레아레스」신문에는 음악평론가 마누엘 산토라리오의 기고가 실렸다.이들의 제목도 「에키타이 안과 코리아」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일본사람과 한국」이라는 기묘한 제목인 셈이다. 더욱 이상한 일은 이날 하오10시부터 있었던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현장에서 벌어졌다.마요르카공연을 현지에서 준비한 조갑동 주바르셀로나 총영사도 인사말을 통해 안익태선생을 「에키타이 안」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국내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다만 한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안익태선생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인식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음악평론가 산토라리오도 기고에서 『애국가를 작곡한 한국의 영웅 에키타이 안의 생전의 면모를 다시 보고 싶으면 오늘 한국문화사절단의 공연을 꼭 봐야 한다』고 썼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마요르카에 살고 있는 선생의 미망인 롤리타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제치하에서 오스트리아의 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선생은 당연히 일본당국이 발급한 여권을 가지고 있었고 물론 성명란에도 「에키타이 안」이라고 씌어 있었다.따라서 그의 공식적인 이름은 「에키타이 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그러나 당시에 자신을 「에키타이」보다는 「익태」또는 「익타이」로 소개했다고 한다.그러나 유럽사람들에게 한국식 발음보다는 일본식 발음이 편했고 또 음악회를 알리는 포스터와 팸플릿 등에도 「에키타이」라고 써 있으니 그의 명성이 높아갈수록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요르카의 현실에 접한 문화사절단 일행은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단장인 이승렬국립국악원장과 황병기교수(이화여대)등 사절단 대표는 이날 공연장을 찾은 팔마시 당국자들에게 안익태선생의 표기를 「에키타이 안」에서 「익태 안」으로 바로 잡아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물론 이 뜻이 받아들여져 거리의 이름도,신문기사도 「익태 안」으로 씌어질 날이 곧 올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요르카 사람들은 좀 더 오래 선생을 「에키타이 안」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고학력자 공급과잉­「3D기피」만연/젊은층 실업율 급증

    ◎15∼24세 9.2%,25∼29세 4.4% 차지/대구·대전 4.3%로 최고 산업현장의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피하려는 이른바 3D기피현상으로 젊은층의 실업이 크게 늘고 있다. 또 지방보다는 대도시의 실업률이 매우 높고 제주도가 전국에서 고용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1·4분기 지역별 고용동향」에 따르면 이 기간중 전체 실업률은 2.9%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었으나 15∼24세연령층의 실업률은 전년동기보다 0.2%포인트가 높아진 9.2%를 기록했다. 25∼29세의 실업률도 4.4%로 같은 기간 0.6%포인트가 높아졌으며 50세이상 실업률은 전년동기보다 0.4%포인트가 떨어진 0.7%를 나타냈다. 이처럼 젊은층의 실업이 증가한 것은 졸업과 함께 일자리를 구하려는 신규실업자가 늘어난데다 고학력취업난등 인력수급상의 불균형과 3D기피현상 때문으로 분석됐다.특히 15∼24세 여성의 실업률이 4월 현재 7.6%로 전년동기보다 1.6%포인트가 높아져 고졸및 대졸여성의 실업이 상대적으로 많아진 것으로 드러났다.업종별 고용동향을 보면 1·4분기중 농림어업 취업자가 시설원예등에 힘입어 2백37만명으로 전년동기보다 3.2%(7만4천명)가 늘었으나 광공업종사자는 4백93만명으로 같은기간 2.2%(11만2천명)가 감소했다. 반면 건설업·도산매·음식숙박등 사회간접자본과 기타부문의 취업자는 1천76만명으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6.7%(67만5천명)가 증가해 이들 부문으로의 인력집중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제조업취업자의 감소로 취업자가운데 임금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1·4분기 63.3%에서 올해 62.9%로 줄었고 건설·서비스업의 팽창과 소규모산업의 증가로 자영업주가 지난해 동기보다 30만명이 늘어난 5백10만명에 달했다. 지역별 실업률은 대구와 대전이 4.3%로 가장 높았고 인천(4.0%) 서울·부산(3.9%)광주(2.9)등 대도시도 전체평균실업률(2.9%)을 웃돌았다.그러나 나머지 9개도의 실업률은 평균 1.8%였고 이중 제주(1.1%)경북(1.3%)지역이 특히 낮았다.
  • 농지구입자금 지원대상/60세까지로 대폭 확대

    ◎농민후계자는 땅값의 1백%까지 농림수산부는 농민들이 영농규모를 확대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지금까지 농어촌 진흥공사를 통해 50세이하의 농민까지 지원하던 농지구입자금을 60세까지로 올려 지원하는등 지원대상범위를 확대하고 지원기준도 대폭 완화키로 했다. 농림수산부는 26일 「농가 영농규모 적정화사업 실시요령」을 이같이 개정,이날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 개정내용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농지소유규모가 0.5∼3㏊미만인 농민이 농지를 구입할 때 50세이하까지 농지구입자금을 지원(20세이상의 후계농민이 있을때는 55세까지 지원)해 왔으나 이날부터 60세까지로 지원 대상범위를 넓혔다. 이와함께 지금까지 농지구입자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던 시 지역내의 농지에 대해서도 경지정리가 끝났거나 수리시설이 완비된 우량농지는 농지구입자금을 지원해주는 한편 지원대상 농지에서 해당농가까지의 거리도 현재 8㎞이내에서 20㎞이내로 늘렸다. 또 지금까지 농가당1회로 끝냈던 농지구입자금의 지원을 소유한 전체농지가 3㏊가 될때까지 회수에 관계없이 계속 지원하며 지원규모도 지금까지 농지매매가격의 90%이내에서 농민후계자인 경우에는 1백%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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